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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교향악단(KBS향)이 상주 작곡가와 명예 지휘자 제도를 도입한다. 젊은 지휘자와 연주가를 양성하는 ‘KBS 아카데미’를 개설하는 한편 독일 도이체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RP)와 공동 연주 및 연주가 교류도 갖는다. 피에타리 잉키넨 KBS향 신임 음악감독은 26일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잉키넨 감독은 “핀란드에서는 어린 음악가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휘자로 성장한다”며 “KBS 아카데미를 통해 내가 경험한 방식을 바탕으로 한국의 젊은 음악가, 특히 지휘자들을 성장시키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을 지낸 드미트리 키타옌코(1999∼2004년 재직)와 요엘 레비(2014∼2019년 재직)를 명예지휘자로 위촉해 이들의 업적을 기념하고 KBS향의 연주회와 아카데미에서도 역할을 맡기겠다고 설명했다. 2017년부터 DRP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잉키넨은 한국인과 독일인 상주 작곡가를 위촉해 이들에게서 받은 작품을 KBS향과 DRP에서 연주하고 두 악단의 단원 교류 및 한국과 유럽에서의 합동 공연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보스턴 교향악단과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가 두 악단에서 펼쳐온 활동과 비슷한 형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KBS향의 연주 역량을 아시아 대표급으로 확고히 하고, 공석 중인 수석급 단원들은 국가 간 여행의 자유가 확보되는 대로 오디션을 통해 채우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내 여러 도시에서 연주회를 펼치고 KBS의 여러 채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팬들을 찾아가겠다고 밝혔다. 또 2024년 유럽 연주여행과 2025년 이후 미국 연주여행도 계획 중이라고 설명했다. 잉키넨은 앞서 2006, 2008, 2020년 KBS향 정기연주회를 지휘한 바 있으며 이달 28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2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정기연주회를 시작으로 올해 여섯 차례 정기연주회를 지휘한다. 첫 정기연주회에서는 시벨리우스 카렐리아 서곡과 레민카이넨 모음곡,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가 협연하는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콘서트 메인 프로그램인 레민카이넨 모음곡에 대해 그는 “독특한 음색이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는 곡이지만 단원들이 남다른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연습하고 있다”며 만족을 표시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제가 생각하는 프랑스 음악의 특징은 ‘부드러움’입니다. 그 부드러움은 프랑스어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현악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의 첼리스트인 이원해(31·사진)가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만으로 구성한 리사이틀 ‘프렌치 가든’을 꾸린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선배인 피아니스트 이효주와 호흡을 맞춰 드뷔시 첼로 소나타와 생상스의 소나타 1번, 현대 작곡가 불랑제의 ‘3개의 소품’, 프랑크의 소나타를 연주한다. “이번 연주곡들을 작곡한 프랑크와 생상스도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의 대선배시죠. 프랑크와 불랑제는 이 학교의 교수를 지내셨습니다.” 이원해는 프랑스 불로뉴비양쿠르음악원과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수석 졸업했고 독일 베를린예술대를 1년 수료한 뒤 다시 네덜란드 헤이그왕립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을 수석 졸업했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의 문화를 두루 경험한 그는 “프랑스어는 둥글면서 콧소리가 많이 섞였고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많다. 음악도 앞으로 쏘는 소리보다 더 내적으로 다양한 색채를 표현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드뷔시 소나타에는 플루트나 류트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음색이 들어있죠. 생상스의 소나타는 그를 기른 대고모가 세상을 떠나고 프랑스가 프로이센에 패한 시기의 작품이어서 그런 슬픔이 녹아있습니다. 음악교육자로 유명한 불랑제의 곡들은 민요 색깔이 강하고 화려합니다.” 리사이틀 후반부는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만으로 꾸몄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에게 주는 결혼 선물로 작곡한 곡인 만큼 여러 일들을 거쳐 행복으로 가는 커플의 희로애락이 담겼습니다. 원곡이 바이올린곡이니 첼로로는 더 낮은 음역에서 선율을 표현하게 되죠. 자칫 덜 생생하게 들릴 수 있는 부분을 더 잘 표현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학교 선배인 이효주와의 협연은 이번이 처음. 그러나 서로가 프랑스 작품들의 스타일에 정통하기 때문에 “맞춰 갈수록 잘 통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효주는 피아노3중주단 ‘트리오 제이드’ 단원으로, 이원해는 노부스 콰르텟 단원으로 활동해 실내악에 대한 애정이 깊은 점도 공통분모다. 29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3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KBS교향악단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닷새 차이로 연달아 새 지휘자의 취임 연주회를 갖는다. 핀란드 지휘자를 나란히 음악감독으로 영입한 KBS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은 같은 날 열리는 정기연주회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지난해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결정된 핀란드의 피에타리 잉키넨은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취임 후 첫 정기연주회를 연다. 시벨리우스의 ‘카렐리아 서곡’(자주 연주되는 카렐리아 모음곡과 다른 작품)과 핀란드 설화에서 소재를 딴 ‘레민카이넨 모음곡’을 지휘하고, 2010년 쇼팽콩쿠르 우승자인 러시아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2020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을 맡아온 오스모 벤스케는 29,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오스모 벤스케의 모차르트 레퀴엠’ 콘서트를 지휘한다. 콘서트 전반부에는 금관악기만으로 연주하는 라우타바라 ‘우리 시대의 레퀴엠’, 현악기로만 다케미쓰 ‘현을 위한 레퀴엠’ 등 두 곡의 20세기 레퀴엠(진혼음악)을 선보이고 후반부에 모차르트 ‘레퀴엠’을 연주한다. 국립합창단과 소프라노 임선혜, 알토 이아경, 테너 문세훈, 베이스 고경일이 협연한다. 서울시향은 “이 콘서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추모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두 악단 정기연주회 중 29일 저녁에는 KBS교향악단이 서울 롯데콘서트홀, 서울시향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동시에 서게 됐다. KBS교향악단은 2016년 롯데콘서트홀과 우선대관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지만 정기연주회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어와 일부 음악팬의 혼선도 우려된다. 한편 지난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프랑스의 다비트 라일란트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취임 연주회 ‘빛을 향해’를 지휘한다. 진은숙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5장 전주곡과 슈만 교향곡 2번,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협연하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한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최근 악단 명칭에 ‘국립’을 추가해 ‘국립 오케스트라’ 또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2001년 예술의전당 상주단체가 된 뒤 국립오페라단이나 국립발레단 등과 함께 국고 지원을 받고 있다. 1969∼1981년 ‘국립교향악단’ 명칭으로 활동한 KBS교향악단은 이에 대해 12일 “국립 명칭을 쓰기 위해서는 사회적 공론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의견을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영국 화가 조지 클로젠의 1916년 작품 ‘울고 있는 젊은이’에는 벌거벗은 채 어두운 들판에 얼굴을 묻고 꿇어 엎드린 여성이 나온다. 클로젠은 제1차 세계대전 중 목숨을 잃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실제 그의 딸도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잃었다. 각자의 이유로 상실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자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그림 속 여성에게 투사했다. ‘이 여성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그림 위에 그려보라’고 하자 사람들은 담요, 따뜻한 빛, 안아주는 사람 등을 그렸다. 자신이 받고 싶은 위로를 그림에 더한 것이다. 한번은 ‘난 늘 이런 식이야’라며 과거를 탓하고 같은 후회를 반복해온 사람이 찾아왔다. 저자는 그에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조각상 갈라테이아에게 반한 나머지 조각상이 인간이 될 것이라고 믿었고, 신은 결국 갈라테이아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하루를 ‘긍정적 자기 예언의 힘’으로 살아간다면 그 하루가, 나아가 인생이 바뀔 것이라는 메시지다. 미술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는 저자는 자신의 상담을 받은 이들에게 큰 공감과 위로를 준 미술품 28점을 골라 이 작품들이 가진 치유의 힘을 전한다. ‘제3자 되기 기법’ ‘빗속의 사람 그림검사’ 같은 심리지식을 설명하며 그림을 통해 건강한 마음을 되찾는 법을 알려준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단 1년 8개월 동안 호흡을 맞춘 현악4중주단이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콩쿠르 실내악 부문 1위와 5개 특별상을 휩쓸었다. 지난해 5월 낭보를 전해온 아레테 콰르텟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전채안(25) 김동휘(27)와 비올리스트 장윤선(27), 첼리스트 박성현(29)으로 구성된 이 무서운 신예들이 입상 후 처음으로 고국에서 자기들만의 무대를 갖는다. 20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리는 ‘아름다운 목요일―아레테 콰르텟’ 콘서트에서 하이든 현악4중주 25번, 버르토크 현악4중주 5번, 슈만 현악4중주 2번 등 세 곡을 연주한다. 네 사람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입상 후 처음으로 콩쿠르 당시의 과정을 세밀히 밝혔다. ―아레테 콰르텟은 무슨 뜻인가요. 결성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박: ‘특출한 재능’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입니다. 제가 팀을 만드는 걸 좋아해서 먼저 현악앙상블을 결성했습니다. 연주회 뒷풀이에서 장윤선 씨에게 ‘현악4중주를 만들자’고 얘기를 꺼냈어요. ‘죽을 각오로 하고 싶은 사람 넷을 모아보자’며 모은 멤버들이죠(웃음). ―2년도 안 돼 유명 콩쿠르 우승팀이 되었고 특별상을 휩쓸었습니다. 비결이 뭔가요. 이 콩쿠르에서 종종 있는 일이었나요. 전: 비결은 없고, 굉장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많이 부딪쳤고, 싸웠고, 가족처럼 지냈죠. 특별상은 악기 메이커 ‘게바’가 주는 상과 작곡가 마르티누의 이름을 딴 마르티누상, 체코 라디오상, 프라하시(市)상, 악보 출판사 베렌라이터가 주는 상 등 다섯 개였습니다. 이 콩쿠르 실내악 부문은 16년 만에 열린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많다 적다를 말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지난해 콩쿠르는 2위 없이 1위와 3위 이하만을 시상해 아레테 콰르텟이 큰 실력차로 우승했음을 나타냈다).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까. 김: 코로나19 상황에서 넷이 함께 독일 뮌헨음대에 입학하자마자 도전한 콩쿠르였어요. 독일에 도착한 뒤 1, 2차 예선이 비디오 심사로 바뀌었는데, 녹화할 공간을 찾고 녹음 엔지니어를 찾는 것부터 힘든 일이었죠. 스승인 크리스토프 포펜 교수님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전: 작품 해석에 대해 각자 주장이 강해요. 결선 전날 서로 예민해져서 심하게 싸웠어요. 쉬자, 일단 악기를 내려놓고 내일까지 하지 말자는 얘기가 나왔고, 악기와 함께 마음도 내려놓았었죠.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입니다. ―이번에 들려줄 프로그램은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구성했나요. 장: 작곡가 세 사람이 곡을 쓸 때 큰 도전이었던 곡들이죠. 저희도 처음 해보는 작품들이고, 이 거장들의 도전에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골랐습니다. 박: 하이든의 4중주 25번은 첼로에 비중을 둔다는 시도를 했고, 슈만 4중주 2번은 네 악기의 음역대가 비슷하면서 계속 중심이 이동합니다. 버르토크의 4중주 5번은 네 악기가 동등한 역할을 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들을 잘 부각시키려 합니다. 3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단 1년 8개월 동안 호흡을 맞춘 현악4중주단이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콩쿠르 실내악 부문 1위와 5개 특별상을 휩쓸었다. 지난해 5월 낭보를 전해온 아레테 콰르텟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전채안(25) 김동휘(27)와 비올리스트 장윤선(27), 첼리스트 박성현(29)으로 구성된 이 무서운 신예들이 입상 후 처음으로 고국에서 자기들만의 무대를 갖는다. 20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리는 ‘아름다운 목요일-아레테 콰르텟’ 콘서트에서 하이든 현악4중주 25번, 버르토크 현악4중주 5번, 슈만 현악4중주 2번 등 세 곡을 연주한다. 네 사람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입상 후 처음으로 콩쿠르 당시의 과정을 세밀히 밝혔다. ―아레테 콰르텟은 무슨 뜻인가요. 결성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박: ‘특출한 재능’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입니다. 제가 팀을 만드는 걸 좋아해서 먼저 현악앙상블을 결성했습니다. 연주회 뒷풀이에서 장윤선 씨에게 ‘현악4중주를 만들자’고 얘기를 꺼냈어요. ‘죽을 각오로 하고 싶은 사람 넷을 모아보자’며 모은 멤버들이죠. (웃음) ―2년도 못되어 유명 콩쿠르 우승팀이 되었고 특별상을 휩쓸었습니다. 비결이 뭔가요. 이 콩쿠르에서 종종 있는 일이었나요. 전: 비결은 없고, 굉장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많이 부딪쳤고, 싸웠고, 가족처럼 지냈죠. 특별상은 악기메이커 ‘게바’가 주는 상과 작곡가 마르티누의 이름을 딴 마르티누상, 체코 라디오 상, 프라하 시(市)상, 악보출판사 베렌라이터가 주는 상 등 다섯 개였습니다. 이 콩쿠르 실내악 부문은 16년 만에 열린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많다 적다를 말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지난해 콩쿠르는 2위없이 1위와 3위 이하만을 시상해 아레테 콰르텟이 큰 실력차로 우승했음을 나타냈다)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까. 김: 코로나19 상황에서 넷이 함께 독일 뮌헨음대에 입학하자마자 도전한 콩쿠르였어요. 독일에 도착한 뒤 1차 2차 예선이 비디오 심사로 바뀌었는데, 녹화할 공간을 찾고 녹음 엔지니어를 찾는 것부터 힘든 일이었죠. 스승인 크리스토프 포펜 교수님이 많이 도와 주셨습니다. 전: 작품 해석에 대해 각자 주장이 강해요. 결선 전날 서로 예민해져서 심하게 싸웠어요. 쉬자, 일단 악기를 내려놓고 내일까지 하지 말자는 얘기가 나왔고, 악기와 함께 마음도 내려놓았었죠.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입니다. ―이번에 들려줄 프로그램은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구성했나요. 장: 작곡가 세 사람이 곡을 쓸 때 큰 도전이었던 곡들이죠. 저희도 처음 해보는 작품들이고, 이 거장들의 도전에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골랐습니다. 박: 하이든의 4중주 25번은 첼로에 비중을 둔다는 시도를 했고, 슈만 4중주 2번은 네 악기의 음역대가 비슷하면서 계속 중심이 이동합니다. 버르토크의 4중주 5번은 네 악기가 동등한 역할을 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들을 잘 부각시키려 합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검은 A, 흰 E, 붉은 I, 초록 U, 파란 O: 모음들이여,/언젠가는 너희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랭보의 시 ‘모음’ 이다. A는 검고 E는 하얗다니, 시인은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을까. 이 시는 문학에 ‘공감각(共感覺)’을 도입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공감각이란 시각과 청각, 후각과 시각 등 다른 감각이 서로 대응되는 것을 말한다. 김광균의 시 ‘외인촌’에서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라는 구절, 박남수 ‘아침 이미지’에 나오는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이라는 구절 등도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을 표현한 사례다. 하지만 ‘U는 초록, O는 파랑’이라는 식의 공감각은 뜬금없이 여겨질 수도 있다. 상상력이 풍부한 문인들도 랭보의 이 구절에 대해서는 ‘공감’과 ‘비공감’이 팽팽하다. 프랑스어가 모어(母語)인 사람은 공감하는 비중이 높다고 한다. 언어에 따라 모음의 뉘앙스나 이미지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랭보와 같은 천재만 이런 식의 연관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기자에게 숫자 3은 노랑, 4는 밝은 빨강, 5는 파랑, 6은 진한 분홍, 7은 초록, 8은 남색, 9는 고동색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지인들에게 얘기하면 ‘나도 숫자에서 색깔을 연상한다’며 일부는 공감하지만 일부는 다르게 느낀다는 식으로 저마다의 심상(心象)을 들려주곤 한다. 냄새에서 색깔을 연상하거나 소리에서 맛을 느낀다는 사람도 드물지만 존재한다. 음악사에서 공감각을 표현한 대표적 인물로는 러시아의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이 꼽힌다. 후기낭만주의와 20세기 음악 사이에 속한 그의 작곡 양식은 ‘신비주의적’이라고 표현된다. 그는 당대에 유행했던 ‘신지학(神智學)’에 심취해 그 사상을 자신의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신지학이란 특정 종교를 초월해 개인의 직관으로 신을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관 또는 그 세계관을 연구하는 학문이었다. 이에 따른 영향으로 스크랴빈은 기존 화음체계를 벗어난 이른바 ‘신비화음’을 작품에 도입했고, 작품 속의 ‘엑스터시’를 통해 신을 표현하거나 체험하기를 시도했다. 스크랴빈의 공감각적 시도는 특정 높이의 음이 특정 색깔과 대응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었다. C음(도)은 빨강, D(레)는 노랑, E(미)는 하늘색이었다. 피아노 건반에서 바로 옆에 있는 음보다 5도(네 음) 차이 나는 음이 더 가까운 색을 나타낸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가 상상한 음의 색깔은 화음이나 조성(調性)과도 연관됐다. C음이 빨강이니 C장조(C음을 ‘도’로 사용하는 장조)도 빨강, C화음(도미솔)도 빨강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특정 음이나 조에서 색깔을 떠올렸던 그의 감각은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것이었을까. 음악가들도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같은 시대 작곡가였던 라흐마니노프는 회고록에서 스크랴빈의 색채론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썼다. 스크랴빈은 이에 대해 라흐마니노프가 오페라에서 금빛 보물 상자를 나타내는 장면을 D장조로 썼다는 점을 지적했다. 스크랴빈 자신이 ‘D음이나 D장조는 노랑’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 당신은 부정하려 했지만, 당신의 직관이 무의식적으로 그 법칙을 따른 것입니다.” 아마도 라흐마니노프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크랴빈은 나아가 자신의 색 이론을 구현할 ‘악기’를 개발했다. 영어로 ‘instrument’이지만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니 악기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clavier ‘a lumi’eres(빛의 피아노)’라고 이름 지은 이 기계는 건반을 누르는 데 따라 그 음에 해당(한다고 스크랴빈이 생각)하는 빛을 스크린에 투사했다. 스크랴빈은 관현악 작품인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 1915년 뉴욕 초연 때 이 기계를 선보였다. 스크랴빈의 ‘색채-소리’ 이론은 자기만의 엉뚱한 망상이나 집착이었을까, 아니면 대부분의 프로 음악가들조차 느끼지 못한 것을 자신만의 뛰어난 감각으로 포착한 것이었을까. 6일은 스크랴빈의 탄생 150주년 기념일이었다. 이 ‘기이한 천재’의 여러 면모를 재조명하는 일이 올해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기를 바란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습니다. 음악가로서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기에 좋은 기회여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0년을 돌아보기에 조금은 낯선 나이, 23세.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의 이력은 여러 ‘최연소’로 채워졌다. 2016년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17세로 최연소 우승했고, 2019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하며 최연소 수상 기록을 세웠다. 2018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선 결선 진출자 중 최연소로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가 열 번째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2022년을 맞는다. 영상 1도로 다소 기온이 오른 10일 오전,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네 개의 온도에 맞춰 기획한 콘서트를 설명했다. 먼저 이달 13일에는 금호아트홀 신년음악회 ‘22℃의 산뜻함’을 연다. 피아니스트 박종해와 헝가리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후버이의 ‘카르멘 환상곡’ 등을 연주한다. “22도는 일상 속의 기분 좋은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온도입니다. 2년 넘게 코로나19 속의 일상을 살아왔기에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고자 하는 느낌을 담았죠.”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 사라사테, 왁스만, 후버이 등이 주요 선율을 발췌해 자기만의 ‘카르멘 환상곡’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 중 후버이의 카르멘 환상곡을 연주한다. “후버이의 곡은 주제들을 연결하는 부분의 반짝거리는 음이 신년 분위기에 맞는 설레는 에너지를 줍니다. 이날 첫 곡으로 연주할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32번, 마지막 곡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소나타의 끝 악장 등도 한 해를 열어갈 기분 좋은 에너지를 드리게 될 겁니다.” 그는 이어 4월 14일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콥스키와 함께하는 ‘100℃의 뜨거움’에서 파야의 ‘스페인 민요 모음곡’ 등을 통해 남국의 뜨거움을 선사한다. 8월 25일 ‘0℃의 차가움’에서는 바이올린 솔로만으로 표현하는 차가움을, 12월 15일 피아니스트 김다솔, 첼리스트 문태국과 함께하는 ‘36.5℃의 포근함’에서는 브람스 작품이 드러내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전하겠다고 설명했다. 예술 애호가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곱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그는 “열한 살 때 작은 콩쿠르에 준비 없이 나가 탈락했는데 오기가 생기더라. 제대로 해보면 어떻게 되나 보고 싶은 생각에 열심히 하게 됐다”며 웃음을 지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경기 성남시 분당구 미금일로 상가 대로변. 지하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벽면마다 가득한 류트 리코더 오보에 트럼펫 등 각종 악기와 양피지에 채색한 네우마(중세 악보), 첼로 엔드핀(연주 시 악기를 바닥에 고정시키는 도구)을 비롯한 각종 악기 부속들이 시야 가득히 몰려왔다. 악기 800여 점과 악기 부품 5000여 점, 악보 등 각종 문헌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오르페오 음악박물관이다. 악기 사이를 뚫고 나타난 신재현 관장(54)이 환한 웃음을 건넸다. 신 관장은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교통사고로 죽을 위기를 넘긴 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며 음악 유학을 떠났다. 헝가리 코다이 음악원에서 합창지휘와 음악교습을 배우고 2002년 귀국했다. 헝가리에서 알게 된 유럽 지인들과 인터넷 경매를 통해 본격적인 악기 수집을 시작했다. 그동안 모은 악기로 2017년 지금의 자리에 박물관을 열었다. 오카리나와 트리올레(세줄 우쿨렐레)를 제작하는 교육용 악기 업체 ‘초담예교’를 운영하며 재원을 마련해 왔다. “소장품 가격요? 거의 경매로 구한 것들이고, 그때그때 가격은 달라지니 어림하기가 힘듭니다.” 특별히 의미 깊은 악기를 물어보니 그는 1917년 제작된 ‘하프 기타’를 가리켰다. 독일어로 ‘전쟁을 회상하며 평화를 기원하다, 1914∼1917’이라고 쓰여 있다. 현대 기타와 르네상스 시대의 ‘테오르보’를 합친 모양의 이 희귀한 악기는 인터넷 경매로 구했다. 5000달러에서 경매가 시작되었고 58명이 참여해 신 관장이 약 2만 달러에 낙찰 받았다. 특별히 공들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북한과 가까운 파주에 음악박물관 마을을 이루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오르간, 기타, 플루트 등을 전문으로 모으는 악기 수집가들이 참여할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남북의 아이들이 예술 교육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자리가 되겠죠. 그곳에서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설명하기 딱 좋겠다는 뜻에서 이 악기는 꼭 사고 싶었습니다.” ‘도시 속의 악기박물관’으로 입소문이 난 오르페오 음악박물관은 2019년 성남시티투어 ‘도시락(樂)버스’ 6개 코스에 포함되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첼리스트 송희송 마스터클래스, 오르페오 첼로 앙상블 연주회 등 부대행사를 포함한 시대별 첼로 전시회를 한 달 동안 열었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도시락버스는 중단된 상태. 금, 토요일만 전화 예약을 통해 방문객을 받고 있다.성남=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조이 오브 스트링스(Joy of Strings). ‘현(絃)의 즐거움’이란 뜻이다. 현악 앙상블의 즐거움을 전파해 온 이 실내악단이 창단 25주년을 맞이했다. 1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25주년 기념 신년음악회 ‘헬로, 2022’를 연다. ‘지선아, 사랑해’로 알려진 사회복지학자 이지선(한동대 교수)이 사회를 맡고, 리더 이성주(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한국예술영재교육원장·사진)와 변지혜 악장, 타악 연주자 심선민이 협연한다. “시작은 우연했어요. 1997년, 서울 강남의 한 민간 음악회장이 ‘스승과 제자가 함께하는 음악회’를 기획했는데, 저는 제자와 함께 2중주를 하기보다는 한예종 학생들로 현악앙상블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죠. 당시로서는 드문 시도여서 그런지 반응이 컸고,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네요.” 이성주 교수는 “한동안 학생들이 유학도 다녀오고 하면서 멤버가 조금씩 바뀌었지만, 창단 10주년 즈음해서부터는 열여섯 멤버가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자랑하고픈 성과를 묻자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려한 앙상블로 인정받은 일’을 꼽았다. 2013년 국내 악단 최초로 오스트리아 아이젠슈타트에서 열린 하이든 페스티벌에 초청돼 찬사를 받았고, 이듬해 벨기에 소로다 문화재단 200주년 기념 공연에도 초청됐다. 2015년에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서울과 고베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이번 콘서트는 이 교수가 솔로를 맡는 비발디 ‘사계’ 중 ‘겨울’로 시작해 쇼팽 발라드 1번 현악앙상블 편곡판, 심선민이 협연하는 생상스 ‘죽음의 무도’, 이 교수가 연주하는 크라이슬러 ‘사랑의 슬픔’ ‘사랑의 기쁨’, 변지혜 악장이 솔로를 맡는 김한기 곡 ‘까치까치 설날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서곡과 ‘봄의 소리’ 왈츠, 타악기와 함께하는 ‘두드림 모음곡’으로 이어진다. “비발디 ‘사계’와 쇼팽의 발라드는 인류를 위협했던 전염병과 전쟁의 어두운 역사가 깃든 곡이죠. 어둡게 시작하지만 사람의 일생을 얘기하는 ‘사랑의 슬픔’ ‘사랑의 기쁨’을 통과하면서 한층 밝고 희망찬 새해로 나아가는 프로그램을 담았습니다.” 조이 오브 스트링스는 9월에 25주년을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롯데콘서트홀 주최로 ‘음악과 무용’ ‘음악과 그림’을 주제로 한 ‘아무르 무지크’ 시리즈 공연도 5월과 12월에 마련한다. “열여섯 명이면 군더더기 없이 꽉 찬 느낌을 전하는 현악 앙상블이죠. 하나로 움직이는 모습을 느낄 때 행복하고, 악단 이름처럼 즐기며 연주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서로의 눈빛만으로 하나를 느끼는 이 행복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3만∼10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서양의 백유리가 판매되기 시작해 안경을 만들어 동전만 하니, 눈앞에 두면 눈이 밝아져 털끝을 능히 볼 수 있으니 오묘하구나.” 청나라 초 문인 공상임(孔尙任)이 남긴 기록이다. 한때 안경은 서구식 근대화의 산물로만 여겨졌지만, 조선 정조대왕을 그린 영화와 TV 드라마가 안경 쓴 왕의 모습을 등장시키면서 ‘조선시대 안경’에 대한 인식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안경은 누가 언제 처음 만들었으며 언제 어떻게 동아시아에 전래됐을까. 중국 해양사를 연구해 온 저자는 전화, 휴대전화, 인터넷을 능가하는 편의의 혁신을 가져온 ‘안경’을 키워드로 중세 이후 근대까지의 유라시아 교역 네트워크를 추적한다. 안경의 발명은 1280년대 유럽에서 이뤄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배경에는 이슬람에 축적된 유리 기술과 지식이 있었고, 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는 유럽과 아랍에서 13세기 말 동시에 퍼져 나갔다. 중국에 유입된 기록은 명 선덕제(재위 1425∼1435년) 시대부터 보이지만 본격적인 사용은 16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초기 아시아로 전파된 안경은 외교와 무역을 병행하는 명의 조공무역 루트를 따랐다. 안경과 기타 물품들을 조공한 지역은 사마르칸트(현재의 우즈베키스탄)와 천방국(메카), 믈라카(말레이시아) 등으로 기록돼 명이 북방과 해양의 이민족을 구분하면서 관리한 방식을 보여준다. 저자는 안경의 중국 전파가 원 제국 멸망 이후 단절된 것으로 여겨졌던 유라시아 교역 네트워크 회복의 증거라고 해석한다. 명은 조공품에 후한 보상을 했고, 품질 좋은 안경들이 중국으로 들어왔다. 중국인들이 안경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면서 안경은 동아시아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명 만력제(재위 1572∼1620년) 시대에는 광저우를 시작으로 중국 강남 지역에 안경 제작이 확산됐다. 원시경(돋보기)이 시작이었지만 이어 근시경도 보급되었다. 청 건륭제(재위 1736∼1796년) 때가 되면 도수를 12단계로 세밀히 나누어 판매할 정도였다. 중국인들은 유리보다 수정으로 만든 안경을 높이 평가했다. 유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화기(火氣)가 눈을 해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안경이 조선에 전래된 것은 임진왜란 때로 보인다. 이익(李瀷)은 1740년경 저술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이 애체(애j)라는 안경이 장차 중국으로 전해오게 될 것이고 가정에서도 반드시 갖출 것이다’라고 썼다. ‘애체’는 조선시대 안경을 부르는 가장 친숙한 이름 중 하나였다. 18세기 북경을 오간 연행(燕行) 사절의 기록에도 안경이 수없이 언급된다. 실학자 이규경(1788∼1856?)이 쓴 ‘안경류’에는 안경을 근시안경 원시안경으로 구분하고 형태에 따라서도 구분한 글이 나온다. 일상의 중요한 사물을 화제로 교역의 세계사를 꼼꼼히 풀어간 점이 돋보이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다. 저자는 유럽에서 안경이 발견된 뒤 반세기 뒤에는 중국에도 안경이 도달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더 세밀한 논증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책의 주제에 중요한 부분도 아닌 만큼 생략하는 편이 나았을 듯싶다. ‘선덕 연간’ ‘건륭 연간’ 등의 표기가 나올 때마다 서기 연도를 부가해 표기했다면 중국 역사에 친숙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에게 한층 친절했을 듯하다. 종종 등장하는 ‘글라인딩’ 표기는 ‘그라인딩(grinding·연마)’의 오기로 보인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바이올리니스트 정누리(16·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는 올해 10월 24일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폐막한 제56회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결선에 진출해 2위를 차지했다. 파가니니 콩쿠르는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와 함께 바이올린 부문 세계 양대 콩쿠르로 통한다. 바이올린계의 최고 기대주 중 한 명으로 떠오른 그를 입상 이후 처음 e메일로 인터뷰했다. ―꿈의 대회인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나이에 비해 놀라운 성적을 거뒀습니다. 어떤 기분이었는지요. “존경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거쳐 간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파가니니의 고향인 제노바에서 그의 작품들을 연주한다는 것부터 감회가 남달랐습니다.”(파가니니 콩쿠르는 살바토레 아카르도, 기돈 크레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이자벨 파우스트 등의 유명 연주가를 배출했다.) ―최연소 결선 진출자에게 주는 상과 현대 작품을 가장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 주는 ‘파가니니의 친구상’도 받았습니다. 어떤 현대곡을 연주했는지요. “카를로 보카도로의 ‘부드럽고 무한한 날개(Un‘ala soffice, infinita)’라는 곡을 연주했습니다. 준결선에서 연주한 뒤 작곡가가 찾아와 ‘이 곡을 이렇게 잘 연주한 사람은 없었다’고 하셨어요. 곡 중간 기계의 움직임과 금속성이 느껴졌는데, 오늘날의 삶과 환경을 나타냈다고 생각해서 잘 표현하려 했습니다.” ―파가니니 콩쿠르 입상은 오래 꿈꿔 오던 일인가요. “중학교 2학년 때 선생님께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곡을 공부하자고 하셔서 매주 한 곡씩 하기 시작했어요. 4주째에 4번을 들으시고는 ‘어려운 곡인데 너무 잘했다’며 그 자리에서 파가니니 콩쿠르를 준비하라고 하셨죠. 크게 느껴졌던 대회를 준비하라고 하셔서 기뻤습니다. 콩쿠르는 변수가 많기 때문에 특별한 결과를 기대하지는 않았고, 음악 자체만을 위해 연주하려 했습니다.” ―바이올린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집에 샤갈의 그림이 있었어요. 에펠탑 옆에서 천사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죠. 제가 그림 속의 바이올린을 가리키며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여섯 살 때 동네 바이올린 학원에서 시작했습니다.” ―여덟 살 때부터 영재원에서 김남윤 교수에게 배우고 있죠. “선생님은 레슨 때 먼저 제 생각을 물어보고 제 의견을 존중하시지만 필요할 땐 예리하게 지적해 주십니다. 음악에 헌신하시는 모습을 보며 늘 감명을 받고 있어요.” ―연주가로서의 ‘롤모델’이 있다면….(그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 20세기 피아니스트들을 꼽았다) “리흐테르가 연주한 슈베르트 소나타 21번이나 바흐 평균율, 코르토가 연주한 슈만의 피아노곡들을 들어보면 자유로움과 고독이 교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안다의 모차르트 협주곡 음반에서는 기쁨과 슬픔, 밝음과 먹구름이 엇갈리는 느낌을 받죠. 저도 예술의 양면을 잘 포착해서 연주하고 싶습니다.” ―쉴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책과 영화도 보고 자전거도 타죠. 겨울 바다를 바라보는 걸 정말 좋아해요. 20세기 연주가들의 음반을 좋아해서 LP 음반을 수집해 보려 합니다.” ―바이올린 이외의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습니까. “피아노와 첼로, 관현악에도 관심이 있고 고흐, 세잔 같은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거나 화가의 일생을 알아보는 걸 좋아해요.” ―새해 목표가 궁금합니다. “파가니니 콩쿠르 후 해외에서 많은 연주 제의를 받았는데,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곡들을 연주하고 싶어요. 예술가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한 해를 바라고 있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바이올리니스트 정누리(16·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는 올해 10월 24일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폐막한 제56회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 최연소로 결선에 진출해 2위를 차지했다. 파가니니 콩쿠르는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와 함께 바이올린 부문 세계 양대 콩쿠르로 통한다. 바이올린계의 최고 기대주 중 하나로 떠오른 그를 입상 이후 처음 e메일로 인터뷰했다. ―꿈의 대회인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나이에 비해 놀라운 성적을 거뒀습니다. 어떤 기분이었는지요. “존경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거쳐 간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파가니니의 고향인 제노바에서 그의 작품들을 연주한다는 것부터 감회가 컸습니다.” (파가니니 콩쿠르는 살바토레 아카르도, 기돈 크레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이사벨레 파우스트 등의 유명 연주가를 배출했다) ―최연소 결선 진출자에게 주는 상과 현대 작품을 가장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 주는 ‘파가니니의 친구상’도 받았습니다. 어떤 현대곡을 연주했는지요. “카를로 보카도로의 ‘부드럽고 무한한 날개(Un’ala soffice, infinita)‘라는 곡을 연주했습니다. 준결선에서 연주한 뒤 작곡가가 찾아와 ’이 곡을 이렇게 잘 연주한 사람은 없었다‘고 하셨어요. 곡 중간 기계의 움직임과 금속성이 느껴졌는데, 오늘날의 삶과 환경을 나타냈다고 생각해서 잘 표현하려 했습니다.” ―파가니니 콩쿠르 입상은 오래 꿈꿔 오던 일인가요. “중2때 선생님께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곡을 공부하자고 하셔서 매주 한 곡씩 하기 시작했어요. 4주째에 4번을 들으시고는 ’어려운 곡인데 너무 잘했다‘며 그 자리에서 파가니니 콩쿠르를 준비하라고 하셨죠. 크게 느껴졌던 대회를 준비하라고 하셔서 기뻤습니다. 콩쿠르는 변수가 많기 때문에 특별한 결과를 기대하지는 않았고, 음악 자체만을 위해 연주하려 했습니다.” ―바이올린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집에 샤갈의 그림이 있었어요. 에펠탑 옆에서 천사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죠. 제가 그림 속의 바이올린을 가리키며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여섯 살 때 동네 바이올린 학원에서 시작했습니다.” ―여덟 살 때부터 영재원에서 김남윤 교수에게 배우고 있죠. “선생님은 레슨 때 먼저 제 생각을 물어보고 제 의견을 존중하시지만 필요할 땐 예리하게 지적해 주십니다. 음악에 헌신하시는 모습을 보며 늘 감명을 받고 있어요.” ―연주가로서의 ’롤모델‘이 있다면. (그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 20세기 피아니스트들을 꼽았다) “리히테르가 연주한 슈베르트 소나타 21번이나 바흐 평균율, 코르토가 연주한 슈만의 피아노곡들을 들어보면 자유로움과 고독이 교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안다의 모차르트 협주곡 음반에서는 기쁨과 슬픔, 밝음과 먹구름이 엇갈리는 느낌을 받죠. 저도 예술의 양면을 잘 포착해서 연주하고 싶습니다. ―쉴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책과 영화도 보고 자전거도 타죠. 겨울 바다를 바라보는 걸 정말 좋아해요. 20세기 연주가들의 음반을 좋아해서 LP 음반을 수집해보려 합니다.“ ―바이올린 이외의 예술분야에 관심이 있습니까. ”피아노와 첼로, 관현악에도 관심이 있고 고흐, 세잔 같은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거나 화가의 일생을 알아보는 걸 좋아해요.“ ―새해 목표는. ”파가니니 콩쿠르 후 해외에서 많은 연주 제의를 받았는데,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곡들을 연주하고 싶어요. 예술가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한 해를 바라고 있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의 대극장 아트홀맥(사진)이 기존 객석 수보다 25% 늘어난 1004석 규모로 변신해 선보인다. 마포아트센터는 1년 4개월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30일 이승원 지휘 KBS교향악단과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바리톤 김기훈, 테너 박승주, 소프라노 손지수가 출연하는 2021년 송년음악회를 연다. 임지영이 연주하는 사라사테 ‘치고이너바이젠’과 세 성악가가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 중창, 가곡을 들려준다. 마포문화재단에 따르면 이번 공사로 무대 폭이 13.6m에서 15.4m로 넓어졌다. 조명 및 음향이 개선됐으며 2관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수 있는 피트(반주악단 공간)도 확보했다. 1, 3층 로비가 넓어졌고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수도 늘었다. 이번 공사로 서울 강북지역 내 구 단위 공연장 중 1000석 이상 규모는 충무아트센터 대극장(1255석)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2곳이 됐다. 마포문화재단은 아트홀맥을 내년 3월 정식 재개관하며, 이후 ‘M-소나타시리즈’와 자체 제작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헨델과 비발디 등의 바로크 음악은 기도와 성찰, 마음의 위로를 주죠. 어려운 시기에 많은 분들이 저와 이 무지치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올해 데뷔 35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59)가 창단 70주년을 맞이한 실내악단 ‘이 무지치(I Musici)’와 만났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5, 26일 ‘조수미 & 이 무지치’ 콘서트가 열린다. 조수미는 이 무지치 반주로 퍼셀과 헨델, 비발디 등의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를 노래하고, 이 무지치는 단독으로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집 ‘사계’도 들려준다. 이탈리아어로 ‘음악가들’을 뜻하는 이 무지치는 조수미가 졸업한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 출신 연주가들이 1951년 창단한 악단. 콘서트에서 ‘사계’를 의욕적으로 소개하며 세계적으로 사계 붐을 불러온 주역으로 꼽힌다. 조수미와의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해외 입국자들이 열흘 동안의 자가 격리 기간을 의무적으로 갖게 되면서 노령 연주자가 많은 이 무지치도 한국에서 자가 격리를 해왔다. 조수미는 “나는 평소 그리웠던 한국 음식을 잘 먹고 있어서 ‘확찐자’가 되어 나올 게 걱정이었다”며 “이 무지치 단원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매일 물어보고 ‘잘 지내고 있다’는 답을 들었지만, 집과 가족들이 얼마나 그리울까 생각하면 마음이 짠했다”고 말했다. “서로 기념비적인 공연이잖아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예정된 곳에서 공연을 다 해야겠다는 결심을 얘기했고, 이 무지치도 그걸 원했어요. 자가 격리로 일부 지방 일정이 늦춰졌지만 이번 한국 투어는 양쪽 다 간절한 기회였기에 모두들 이해해 주었죠.” 조수미는 데뷔 20주년을 맞은 2006년 첫 바로크 앨범을 발매했고 2014년에는 바흐 아리아 앨범을 내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 맞춰 조수미와 이 무지치가 협연한 앨범 ‘LUX(빛) 3570’도 데카 레이블로 발매됐다. 3570은 조수미의 데뷔 35주년과 이 무지치의 창단 70주년을 의미한다. 조수미는 “영화 ‘기생충’을 세 번 봤는데, 여기 나온 헨델 오페라 ‘로델린다’의 아리아 ‘내 사랑하는 이여’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앨범에 넣자고 제안했다. 이 무지치도 5분 만에 ‘너무 좋다’는 답을 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 계획에 대해 “러시아 오페라 아리아 앨범이 나올 예정이며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부문 등 여러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6만∼22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헨델과 비발디 등의 바로크 음악은 기도와 성찰, 마음의 위로를 주죠. 어려운 시기에 많은 분들이 저와 이무지치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기 소망합니다.” 올해 데뷔 35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59)가 창단 70주년을 맞이한 실내악단 ‘이무지치(I Musici)’와 만났다. 25, 26일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조수미 & 이 무지치’ 콘서트다. 조수미는 이 무지치 반주로 퍼셀과 헨델, 비발디 등의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를 노래하고, 이 무지치는 단독으로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집 ‘사계’도 들려준다. ‘음악가들’을 뜻하는 이 무지치는 조수미가 졸업한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 출신 연주가들이 1951년 창단한 악단. 콘서트에서 ‘사계’를 의욕적으로 콘서트에서 소개하며 세계적인 사계 붐을 불러온 주역으로 꼽힌다. 조수미와의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해외 입국자들이 열흘 동안의 자가격리 기간을 의무적으로 갖게 되면서 노령 연주자가 많은 이 무지치도 한국에서 자가격리를 해왔다. 조수미는 “나는 평소 그리웠던 한국 음식을 잘 먹고 있어서 ‘확찐자’가 되어 나올 게 걱정이었다”며 “이무지치 단원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매일 물어보고 ‘잘 지내고 있다’는 답을 듣었지만, 집과 가족들이 얼마나 그리울까 생각하면 마음이 짠했다”고 말했다. “서로 기념비적인 공연이잖아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예정된 곳에서 공연을 다 해야겠다는 결심을 얘기했고, 이무지치도 그걸 원했어요. 자가격리로 일부 지방 일정이 늦춰졌지만 이번 한국 투어는 양쪽 다 간절한 기회였기에 모두들 이해해 주었죠.” 조수미는 데뷔 20주년을 맞은 2006년 첫 바로크 앨범을 발매했고 2014년에는 바흐 아리아 앨범을 내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 맞춰 조수미와 이무지치가 협연한 앨범 ‘LUX(빛) 3570’도 데카 레이블로 발매됐다. 조수미는 “영화 ‘기생충’을 세 번 보았는데, 여기 나온 헨델 오페라 ‘로델린다’의 아리아 ‘내 사랑하는 이여’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앨범에 넣자고 제안했다. 이무지치도 5분만에 ‘너무 좋다’는 답을 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 계획에 대해 “러시아 오페라 아리아 앨범이 나올 예정이며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부문 등 여러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주인 따라 노래하던 애견 신디 2019년 세상 떠나 바리톤 흐보로스톱스키 타계 예감하며 눈물 흘려” 조수미에게 두 가지 ‘특별한 존재’와의 인연을 물어보았다. 그는 갈색 요크셔테리어 ‘신디’를 키워왔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맞아 하노버에서 열린 기념 콘서트 리허설 휴식시간 중 조수미의 ‘밤의 여왕의 아리아’에 맞춰 신디가 노래하는(?)영상이 동아닷컴에 단독 보도되면서 신디의 존재가 알려졌다. 2013년에는 신디와 꼭 닮은 강아지 ‘통키’를 데리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두 강아지는 그 뒤 어떻게 지냈을까. “신디는 저와 쭉 함께 살다가 2019년에 18살 나이로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하노버에서 노래할 때는 다섯 살이었죠. 통키는 2008년 만난 아이에요. 기아로 미래에 대한 꿈을 잃어버린 전 세계 아이들을 돕는 TV 프로그램에서 걸그룹 카라와 함께 봉사활동을 나갔었는데, 신디와 똑같이 생긴 강아지가 버려져 있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 살지 않기 때문에 동생 조영준 SMI 대표가 입양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해외에서 공연하고 있을 때 통키가 그만 사라져 버렸어요. 제가 SNS 계정에서 통키를 찾아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결국 찾지 못했죠.” 조수미는 2017년 뇌암으로 세상을 떠난 러시아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의 ‘절친’이었다. 러시아와 한국 등에서 여러 차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그와의 추억도 물어보았다. “디마(흐보로스토프스키의 애칭)는 62년생 호랑이띠로 저와 같은 나이죠.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랑 나는 엄청난 인연이다’라고 말했어요. 그가 죽기 전 1년 전 쯤 러시아에서 같이 공연할 때 처음으로 ‘그가 언젠가 세상을 떠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공연 전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을 떠나기 3, 4년 전부터 약간 병적인 모습이 보이긴 했어요.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주변 사람들을 무섭게 하곤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는 다시 좋아져서 ‘예술가답게 독특한 면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병의 한 증상이었던 거죠. 그의 병을 알게 된 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세상에 오래 같이 있을 사람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항상 만날 때마다 1초라도 더 보려고, 한 마디라도 더 하려고 했어요. 그처럼 완벽한 사람은 때로 하늘이 빨리 데려가시더군요.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이 마침 제 생일(11월 22일)이었어요. 아 생일이구나 하고 일어나자마자 디마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죠. 매우 슬퍼하긴 했지만 생각하고 있던 일이어서 많이 놀라진 않았어요. 디마는 제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고, 카라얀 선생님과 더불어 매일 머리에 떠올리는 사람입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은 음악적으로 어려운 곡이지만 어떤 낭만주의 협주곡 못잖게 커다란 힘을 지닌 곡이죠. 확신이 있었기에 결선곡으로 택했고, 표현할 수 있는 모두를 쏟아 넣었습니다.” 제16회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1위의 영광을 안은 김준형(24·독일 뮌헨음대)은 20일 수상을 통보받고 이렇게 말했다. 올해 피아노 부문으로 열린 이 콩쿠르에서 2위는 예수아(21·독일 하노버음대), 3위는 이승현(27·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음대 석사과정), 4위는 이택기(25·미국 커티스음악원), 5위는 유성호(25·한국예술종합학교), 6위는 한규호(28·독일 뮌스터음대)에게 각각 돌아갔다. 이번 콩쿠르는 12개국 139명이 참가를 신청했다. 예비심사를 통과한 8개국 57명이 예선에 참가했으나 각국 심사위원 11명이 참여한 1, 2차 예선과 준결선을 거치면서 한국 국적의 6명만 결선에 진출했다. 동아일보사와 서울시 주최, LG 협찬, 상명대와 라율아트홀 후원으로 열린 이번 대회 결선은 16, 17일 서울 종로구 상명아트센터 계당홀에서 장윤성(서울대 교수) 지휘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열렸다. 임종필(심사위원장·전 한양대 교수), 아비람 라이헤르트(서울대 교수), 유영욱(연세대 교수) 등 3명의 운영위원은 현장에서 심사를 진행했다. 이와 함께 결선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이 해외 심사위원 8명에게 전달돼 심사표 취합 및 20일 오전 온라인 회의를 거쳐 각 등위 수상자가 이날 결정됐다. 김준형은 피아노를 치는 누나(김경민·2012년 국제 하이든 콩쿠르 피아노 1위)가 부러워 부모님을 졸라 열두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피아노를 시작하기 약간 늦은 나이였지만 한자리에 앉아서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죠.” 3년 만인 2012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뒤 이듬해 서울예고 1학년 때 독일 뮌헨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스승인 안티 시랄라(핀란드)는 1996년 ‘동아국제음악콩쿠르’ 이름으로 열린 제1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4위로 입상한 바 있다. 김준형은 “선생님이 종종 내 앞에서 당시 대회의 추억을 얘기하셨다”고 말했다. 시랄라는 “귀로 먼저 잘 들은 뒤 손으로 쳐라. 모든 것을 다 노래하라”고 강조했다. 2017년 독일 ARD 콩쿠르 특별상, 2019년 덴마크 오르후스 콩쿠르 4위를 수상한 김준형은 올해 고국에서 처음으로 국제콩쿠르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그에게 콩쿠르 기간 중 어려웠던 점을 묻자 “결선 직전 숨이 가빴다”고 했다. 입국을 준비하는 동안 ‘입국자 10일 자가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급히 예정보다 일찍 입국해 가정용 사일런트 피아노(헤드폰을 사용하는 무소음 피아노)를 대여해 연습했지만 콩쿠르에 사용하는 콘서트 그랜드피아노와 터치가 달라 연습하기 쉽지 않았다. 앞으로 피아니스트로서 가고 싶은 길을 묻자 김준형은 솔직하게 “지금까지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왔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깊이 생각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2월 뮌헨음대 석사과정을 졸업한 뒤 같은 대학 현대음악과에 진학할 예정이다. 이번 대회 심사위원장인 임 전 교수는 “김준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성과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적 스타일을 성공적으로 조합해 성숙한 연주자임을 증명했다”고 평했다. 유 교수는 “나이답지 않은 차분함과 노련함이 돋보였다. 자신의 목소리가 완성된 연주자”라고 말했다. 라이헤르트 교수는 “설득력 있는 스타일로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을 선보였다. 감각적인 음색과 앙상블의 센스를 가진 연주가”라고 평가했다. 이번 콩쿠르 입상자들은 1위 5만 달러(약 5900만 원), 2위 3만 달러, 3위 2만 달러 등의 상금을 받는다. 2등 수상자인 예수아는 2차 예선에서 베토벤 소나타를 가장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 원로 피아니스트 신수정(서울대 명예교수)이 제공한 기금으로 시상하는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예수아에 대해 임 전 교수는 “놀랍도록 다재다능한 역량을 발휘했다”고, 라이헤르트 교수는 “정열적이고도 흠 없는 연주를 펼쳤다”고 평가했다. 시상식은 28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광화문사옥 20층 CC큐브에서 열린다. 결선 영상은 이달 말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user/seoulcompetition1415)에 공개된다.주최 : 동아일보사, 서울특별시협찬 : LG후원 : 상명대학교, 라율아트홀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작곡가들에겐 탄생 100주년이니 서거 50주년이니 하는 기념연도가 왜 그렇게 중요하죠? 화가나 문호의 경우보다 훨씬 크게 기념하는 것 같아요.” 지인의 질문에 잠시 골똘해졌지만 이내 답을 찾았다. 음악은 재현예술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악보만 들여다봐서는 음악을 느낄 수 없다. 연주라는 ‘행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연주하는 순간, 그 자리는 진품이 있는 자리가 된다. 그러므로 어떤 작곡가의 탄생이나 서거 기념연도를 맞아 그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 2021년은 생상스 서거 100주년이었다. 2022년은 어떤 작곡가들의 기념연도일까. 벨기에 출신 프랑스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1822~1890) 탄생 200주년을 맞는다. 탄생 150주년이 되는 작곡가로는 영국의 본윌리엄스, 러시아의 스크랴빈, 스웨덴의 알펜 등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작곡가로서보다 문인으로 더 알려진 인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새해에 서거 200주년을 맞는 독일 작가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1776~1822)이다. 연말에 사랑받는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 들리브의 발레 ‘코펠리아’,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가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작곡됐다. 호프만은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살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독일 문화계는 이른바 ‘요정 낭만주의 시대’로 불린다. 소설 속에 요정과 같은 초현실적 존재가 자주 등장하고, 꿈과 현실이 모호하게 뒤섞였다. 호프만은 법률을 전공하고 법관이 됐지만 예술에 대한 매혹을 버리지 못하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모차르트를 사랑해 기존의 자기 이름에 모차르트의 중간이름(미들네임)인 ‘아마데우스’를 집어넣었다. 낮에는 법관으로 일하고 밤에는 예술가들과 어울리는 이중생활 때문에 ‘밤의 호프만’ ‘도깨비 호프만’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음악가도로 알려졌다. 물의 요정을 소재로 한 오페라 ‘운디네’를 썼고, 교향곡이나 발레곡, 피아노곡도 작곡했다. 밤베르크 궁정악단에서 악장(오늘날의 지휘자)으로 일하기도 했다. 밤베르크에 가면 광장에 그의 동상이 있고, 그가 글을 쓰고 작곡하던 작업실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들리브의 발레 ‘코펠리아’는 호프만의 단편 ‘모래요정’에서 이야기를 따왔다. 인조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인간형 로봇, 휴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오늘날에도 다시 읽어볼만한 이야기다. 같은 이야기는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1막에도 사용됐다. 이 오페라에서 한층 사랑받는 장면은 3막 시작 부분의 ‘호프만의 뱃노래’다. 3막은 여성에게 매혹당해 자신의 그림자를 넘겨주고 마는 사람의 이야기다. 호프만의 ‘섣달 그믐날 밤의 모험’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호프만의 작품세계는 낭만주의 작곡가인 슈만의 정신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슈만의 피아노곡 ‘크라이슬레리아나’는 호프만의 소설 ‘수코양이 무르의 인생관’에 나오는 음악가 크라이슬러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주인공인 크라이슬러는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고양이 무르에게 들려준다. 그런데 무르가 그 이야기를 작가 호프만의 이야기가 적힌 종이에 적어 두 이야기가 뒤섞여 버린다. 뒤섞인 이야기처럼, 슈만의 이 피아노곡도 변덕스럽게 분위기가 마구 뒤섞인다. 슈만이 가진 두 가지 자아를 상징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호프만과 가장 친해지기 쉬운 경로는 역시 연말마다 찾아오는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일 것이다. 어린 소녀 클라라가 쥐와 싸우는 호두까기 인형 왕자를 도와주고 보답으로 인형의 나라를 여행한다는 소설 ‘호두까기 인형과 쥐의 왕’에서 줄거리를 가져왔다. 클라라가 신고 있던 구두를 던져 쥐의 군대를 물리쳤듯이 2022년에는 당면한 대역병의 공포 앞에서 인류가 도전과 실험정신, 용감함으로 난관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우선은 ‘호두까기 인형’의 행복한 선율과 함께 모두가 행복한 성탄을 맞이하시길 기원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작곡가 이신우(52·서울대 작곡과 교수)의 작품에는 숭고함과 영성(靈性)의 추구가 있다. 낭만주의 시대가 지난 뒤 작곡가들의 주요 관심사에서 제외됐다고 여겨져 온 영역이다. 그가 새 앨범 ‘죽음과 헌정’ ‘틸 던(Till Dawn)’을 소니뮤직 레이블(사진)로 내놓았다. 두 앨범은 대역병 시대의 흔적이자 자취다. 작곡가는 2020년 연구년을 영국에서 보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확산과 록다운(이동제한·봉쇄)을 겪었다. 위도가 높아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나라에서 그는 고통과 상실, 고독을 탐구했고 악보에 써내려갔다. ‘틸 던’은 ‘새벽이 올 때까지’라는 제목 뜻대로 어둠을 탐구하며 빛을 기다리는 소리의 시(詩)다. 2019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 입상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스티븐 김과 피아니스트 박영성이 호흡을 맞췄다. 작곡가는 의도한 바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음악적 문법을 고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프고도 섬세하게’라고 표시한 3악장은 바이올린 독주의 처연한 독백이 풍부한 전통 조성의 선율선으로 표현된다. 5악장 ‘또렷하고 신비롭게’는 풍요로운 피아노의 분산화음 위에 회복과 위안의 메시지가 가만가만히 전달된다. ‘죽음과 헌정’은 1866년 조선의 대동강가에서 삶을 마감한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의 마지막 순간을 그렸다. 헝가리 포퍼 콩쿠르 우승자인 첼리스트 제임스 김이 피아니스트인 일리야 라시콥스키 성신여대 교수와 협연했다. ‘찌르듯이, 아프게’로 표시한 5악장에서 두 악기가 수놓는 비가(悲歌)와, 고전주의 소나타의 서주 같은 화음으로 시작하는 7악장 ‘고요하고 투명하고 밝게’가 가장 먼저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신우는 “인간의 심리와 내면에 대한 탐구, 존재의 근원과 자연, 초월적 세계는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두 앨범에서 이를 음악적으로 투영하려 했다”고 말했다. 새 작품들 외에 ‘틸 던’ 앨범에는 2013년 작품인 ‘시편 소나타’ ‘죽음과 헌정’ 앨범에는 2016년 작품 ‘찬송(Psalmody)’ 등을 함께 실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작곡가 이신우(52·서울대 작곡과 교수)의 작품에는 숭고함과 영성(靈性)의 추구가 있다. 낭만주의 시대가 지난 뒤 작곡가들의 주요 관심사에서 제외되었다고 여겨져 온 영역이다. 그가 두 종의 새 앨범 ‘죽음과 헌정’, ‘틸 던(Till Dawn)’을 소니뮤직 레이블로 내놓았다. 두 앨범은 대역병 시대의 흔적이자 자취다. 작곡가는 2020년 연구년을 영국에서 보냈고,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대확산과 락다운(이동제한·봉쇄)을 겪었다. 위도가 높아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나라에서 그는 고통과 상실, 고독을 탐구했고 악보에 써내려갔다. ‘틸 던’은 ‘새벽이 올 때까지’라는 제목 뜻대로 어둠을 탐구하며 빛을 기다리는 소리의 시(詩)다. 2019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 입상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스티븐 김과 피아니스트 박영성이 호흡을 맞췄다. 작곡가는 의도한 바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음악적 문법을 고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프고도 섬세하게’라고 표시한 3악장은 바이올린 독주의 처연한 독백이 풍부한 전통조성의 선율선으로 표현된다. 5악장 ‘또렷하고 신비롭게’는 풍요로운 피아노의 분산화음 위에 회복과 위안의 메시지가 가만가만히 전달된다. ‘죽음과 헌정’은 1866년 조선의 대동강가에서 삶을 마감한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의 마지막 순간을 그렸다. 헝가리 포퍼 콩쿠르 우승자인 첼리스트 제임스 김이 피아니스트인 일리야 라쉬콥스키 성신여대 교수와 협연했다. ‘찌르듯이, 아프게’로 표시한 5악장에서 두 악기가 수놓는 비가(悲歌)와, 고전주의 소나타의 서주같은 화음으로 시작하는 7악장 ‘고요하고 투명하고 밝게’가 가장 먼저 친근하게 다가온다. 작곡가 이신우는 “인간의 심리와 내면에 대한 탐구, 존재의 근원과 자연, 초월적 세계는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두 앨범에서 이를 음악적으로 투영하려 했다”고 말했다. 새 작품들 외에 ‘틸 던’ 앨범에는 2013년 작품인 ‘시편 소나타’, ‘죽음과 헌정’ 앨범에는 2016년 작품 ‘찬송(Psalmody)’ 등을 함께 실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