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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검사키트 가격은 얼마예요? 한 번에 몇 개나 살 수 있어요?” 13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약국.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유통개선 조치가 내려진 첫날, 키트를 사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정부는 자가검사키트 ‘품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이날부터 약국과 편의점에서 한 번에 5개까지만 키트를 살 수 있도록 제한했다. 온라인 판매도 중단했다. 다만 재고 물량에 한해서만 16일까지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재기로 인한 가격 급등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다” “진짜 필요한 사람만 구입하도록 하는 정책 같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하지만 현장에선 정부의 구매 수량 제한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은 “오늘까지는 구매 수량에 제한 없이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매 수량 제한 시행일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 이날 동아일보 취재팀이 서울에 있는 약국 13곳을 둘러본 결과 절반 남짓인 7곳에서만 키트 구매가 가능했다. 그중 4곳에서는 정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5개 이상 살 수 있다”고 했다. 9일 취재팀이 방문한 종로구와 마포구 약국 10곳 중 7곳에서 품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수급 자체는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었다. 키트 구입 수량 제한 등 정부의 조치로 가격이 조금씩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취업준비생 이모 씨(25)는 “온라인 가격이 너무 비싸 당황스러웠는데 사재기가 사라져 가격이 안정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13일 기준으로 온라인에서 키트 재고분 가격은 1회당 평균 1만 원 내외였지만 일부 쇼핑몰에선 3배 이상 높은 3만2000원을 부르기도 했다. 다소 안정되긴 했지만 지난달 중순까지 키트 하나에 3000∼5000원에 팔렸던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김모 씨(53)는 “얼마 전 아들이 코로나19에 확진된 이후 매일 키트로 ‘셀프 검사’를 하고 있다”며 “재고가 떨어지기 전 온라인에서 20개를 주문했다”고 했다. 구매 수량 제한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사람이 한 번에 구매하는 수량은 제한하면서 구매 횟수는 제한을 두지 않아 다른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하루에 여러 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지금은 마스크 판매를 관리하던 때처럼 절대적인 물량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안정적인 유통이 필요하다”며 중복 제한을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식약처는 14∼28일 전국 약국과 편의점에 자가검사키트 3000만 개를 공급할 예정이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60세 미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의 ‘셀프 재택치료’가 10일 시작됐다. 시행 첫날부터 방역당국의 부실한 의료기관 안내와 원칙 없는 진료비 때문에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날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5만4122명으로 처음 5만 명을 넘어섰다. 재택치료자도 17만4177명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는 이날부터 재택치료자의 약 15%에 해당하는 고위험군만 하루 2회 건강 모니터링을 하고 나머지 환자의 모니터링은 중단했다. ‘셀프 치료’ 상황에 놓인 재택치료 환자들은 어느 의료기관으로 연락할지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정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 전화 상담과 처방이 가능한 동네 병의원 1900곳을 공개했다. 하지만 주소나 지도 없이 엑셀 파일로 시군구, 병원명, 전화번호만 올려 환자들이 인근 병의원을 찾으려면 일일이 전화나 검색을 해야 했다. 코로나19 의심환자 진료를 병행하는 ‘호흡기전담클리닉’과 야간 상담이 가능한 ‘재택치료 의료상담센터’ 명단도 올라왔지만 어떤 상황에 각 기관을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정부는 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외래진료센터’의 경우 관할 보건소에 문의하도록 했다. 환자는 보건소와 연락이 닿지 않으면 센터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 상당수 보건소 안내전화는 온종일 통화 중이었다. 정부는 재택치료자의 비대면 진료 비용에 대해서도 우왕좌왕했다. 이날 오전에는 재택치료자들이 전화 상담 및 처방을 할 때 하루 두 번 이상 진료를 받으면 두 번째부터 진료비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오후에는 이를 철회하고 무상 진료라고 했다. 정부는 13일부터 자가검사키트 판매를 온라인에서는 금지하고 약국과 편의점에만 허용하기로 했다.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하고 판매가격 범위를 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라지만 급증하는 재택치료자나 자가격리자의 온라인 구매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어린이집과 노인복지시설 등의 216만 명에게는 21일부터 주당 1, 2회분의 자가검사키트를 배포하기로 했다. 한편 질병관리청은 14일부터 노바백스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당일 예약이나 의료기관을 통한 잔여 백신으로 접종할 수 있다.“혼자 사는데 확진, 약없이 버텨”… “병원서 ‘진료기록 없다’ 거절”[오미크론 대확산] ‘셀프 치료’ 첫날… 확진자들 혼란 서울 송파구에 사는 안모 씨(30)는 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직후 기침과 가래 증상이 심했지만 확진 3일 차인 10일까지도 병원 진료를 받지 못했다. 보건소는 대면 진료를 할 수 있는 외래진료센터 2곳을 전화로 알려줬지만 가까운 곳이 2.7km 거리다 보니 자동차가 없는 안 씨는 방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동네 병·의원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었다. 안 씨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데 상비약도 없어서 그냥 버티고만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비대면 진료 거부당해 ‘자체 처방’정부가 10일부터 새로운 재택치료 체계를 도입했지만 관련 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재택치료자들의 혼란이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방역 당국의 모니터링이 중단된 만 60세 미만 ‘일반관리군’ 확진자 상당수는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동네 병·의원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나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서 비대면 진료 가능 병원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 사실 자체를 모르는 재택치료자가 적지 않다. 정부는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된다고 했지만 “비대면 진료 동네 병원” “전화상담 처방 동네 병원” 등으로 검색해도 제대로 된 정보는 찾기 어렵다. 9일 확진 판정을 받은 이모 씨(59)는 “키워드를 바꾸며 여러 차례 검색했는데도 비대면 진료 동네 병원이 어딘지 찾지 못했다”며 “따로 사는 아들에게 부탁해 겨우 확인했다”고 토로했다. 일부 재택치료자는 비대면 진료를 거절당했다. 9일 확진 판정을 받은 박모 씨(54·서울 양천구)는 10일 발열이 심하고 호흡도 힘들어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는 병원에 연락했다. 그런데 “우리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기록이 없어 진료가 어렵다. 진료 받은 적이 있는 병원에 연락하라”는 답만 돌아왔다. 같은 날 확진된 취업준비생 이모 씨(25) 역시 “인후통이 심해져 비대면 진료 가능 목록에 있는 병원에 여러 차례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아 결국 집에 있는 상비약으로 ‘자체 처방’을 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외래진료센터 정보도 확인하기 힘들었다. 6일 확진 판정을 받은 정모 씨(28·서울 관악구)는 “외래진료센터는 어디서 찾아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혼자 사는데 증상이 악화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불안하고 무섭다”고 했다.○ 진료 문의하자 “명단 잘못 올라갔다”비대면 진료를 맡은 일부 동네 병원은 전화가 폭증해 제대로 된 진료를 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호흡기 전담 클리닉은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은 데다 비대면 진료를 원하는 전화까지 몰린다”며 “비대면 진료는 30분에서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전화가 몰리면서 아예 전화를 안 받는 병원도 적지 않았다. 심평원의 전화상담·처방 목록에 올라 있는 울산의 한 병원은 전화 진료가 가능한지 문의하자 “우리는 검사만 진행하고 있다”면서 “비대면 진료를 하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목록에 잘못 올라간 것”이라고 했다. 진료 기관 종류가 지나치게 많은 것도 혼선을 가져오는 요인 중 하나다. 심평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의료기관만 호흡기 전담 클리닉, 호흡기 진료 지정 의료기관, 전화상담처방 동네 병·의원, 재택치료 의료상담센터, 재택치료 관리의료기관 등 5종류에 이른다. 한 재택치료자는 “종류가 워낙 많고 용어가 낯설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유채연 기자 ycy@donga.com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가족을 향한 무분별한 욕설이나 악플은 삼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빅토르 안(안현수)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 기술코치는 8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같이 당부했다. 전날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편파 판정’ 논란이 일자 안 코치 부인 인스타그램 계정 등에 자녀 신상을 공개하고 안 코치 부부를 비난하는 악성 댓글이 수천 개 달린 탓이다. 안 코치는 “아무 잘못도 없는 가족들이 상처 받고 고통 받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안 코치 부인은 8일 오후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을 끝내 중단했다. 유튜브에도 안 코치 관련 영상이 여러 건 게시됐다. ‘이슈’를 전하는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상 안 코치의 언행에 관해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다루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조회수 수만∼수십만 건을 기록한 이 영상들 아래에는 안 코치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의 댓글이 수십 건씩 달렸다.○ 진화하는 온라인 괴롭힘최근 ‘사이버 불링’(온라인 괴롭힘)에 시달리던 유명인이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잇따른 가운데 과거 포털사이트의 댓글 창에서 가해졌던 괴롭힘이 개인 SNS 댓글창과 다이렉트메시지(DM), ‘사이버 레커’(특정인에 대한 논란을 자극적으로 편집해 다루는 인터넷 방송 채널) 영상 등으로 형태를 바꾸며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근거 없는 루머 등에 시달리다가 4일 극단적 선택을 한 배구 선수 김인혁(27) 역시 SNS 댓글과 DM, 사이버 레커 동영상 등을 통해 사이버 불링을 겪었다. 김 선수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경기 때마다 수많은 DM, 악플 진짜 버티기 힘들다”며 “이제 그만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 선수의 외모를 둘러싼 커뮤니티 반응 등을 편집한 사이버 레커 동영상이 여러 개 게시되기도 했다.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BJ(방송 진행자) 잼미(27) 역시 그에 관한 논란을 다룬 사이버 레커 영상이 지난해 여러 차례 게시됐다. 유족은 5일 “장미(BJ 잼미)는 그동안 수많은 악플과 루머 때문에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았고, 그것이 (사망의)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신고도 소용없어포털 연예·스포츠뉴스의 댓글 폐지 이후 SNS 등을 통한 사이버 불링 정도는 오히려 심해졌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방송인 홍석천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댓글 기능 폐지 이후 ‘가(假)계정’(사용자의 정체성을 숨긴 계정) 등을 사용해 악성 DM을 보내는 사람이 늘었다”며 “신고를 해도 처벌 수위가 낮고, 절차도 복잡하다. 사이버 불링에서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고 말했다. 도를 넘은 내용일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규정 위반 게시물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해외 주요 플랫폼의 경우 이행하지 않아도 이유를 소명할 의무는 없다. 구글이 지난해 1∼10월 방심위의 시정 요청을 이행한 비율은 78.9%에 그쳤다. 송경재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인터넷 사용자의 윤리 교육과 더불어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25일 오후 4시 50분경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중년 부부가 아파트 건물 앞에 차를 세우자 경비원 A 씨가 걸어나왔다. A 씨는 트렁크를 연 뒤 쌀포대를 들고 아파트 동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경비원은 밖으로 나와 부부의 차를 직접 주차했다. 지난해 10월 21일 시행된 일명 ‘경비원 갑질금지법(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28일로 시행 100일을 맞았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직접 둘러본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에선 개정안이 금지한 업무를 어쩔 수 없이 하는 경비원들이 적지 않게 발견됐다. 경비원 갑질금지법은 2020년 5월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최희석 씨가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다. 개정 시행령에 따르면 청소나 재활용 분리배출 감시 등을 제외한 △대리주차 △대형폐기물 수거 △물품 배달 등의 업무를 경비원에게 시키면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가 입주자대표회의에 부과된다. 24일에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이웃단지 거주민 B 씨가 경비원을 폭행해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B 씨가 술에 취해 주차장 차량들을 발로 차자 주차장을 관리 중이던 경비원 C 씨가 이를 말렸고, B 씨가 C 씨의 복부와 뒷목 등을 수차례 가격한 것. 이처럼 여전히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경비원에 대한 ‘갑질’이 이어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이를 규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는 경비원들이 자신들의 업무 범위에 대해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파트 경비원 강대열 씨는 “적으면 1~2개월, 길면 6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는 경비원들이 많아 (고용에) 불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최근 해고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8명 측은 “경비 노동자의 준법 근무와 노동조건 개선 요구에 해고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경비원 갑질금지법이 실효성을 가지도록 일부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무법인 태원의 김남석 변호사는 “갑질과 괴롭힘 등은 모호한 영역이라 노동청과 같은 제3 기관에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안 실효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 ‘갑질’이라는 모호한 영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원영식 초록뱀미디어 회장(61)과 원 회장의 부인, 아들이 14일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에 1억 원씩 총 3억 원을 기부했다. 사랑의열매에 따르면 원 회장 가족은 2012년 1억 원 이상 기부자클럽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입하는 ‘패밀리아너’ 1호 가족이 됐다. 최근까지 모두 21억 원 이상을 기부했고, 이와 별개로 홀몸노인 지원과 장학사업 등도 펼쳐 왔다. 원 회장은 “지병이 있는 어머니를 오래 모시며 의욕을 잃었던 학생이 도움을 받은 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룬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또 초록뱀미디어 대주주 및 계열사들이 지난해 조성한 기금 ‘굿웨이위드어스’를 통해 취약계층의 의료비 및 장학사업을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송영길 물러가라.” “너희들이 다 망쳐놓고 무슨 낯짝으로 왔느냐.” 더불어민주당이 ‘성난 불심(佛心)’에 진땀을 뺐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2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종교편향 불교왜곡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를 찾아 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봉이 김선달’ 발언에 대해 재차 사과를 시도했지만 참석자들의 거센 야유 속에 발언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갔다. 동행했던 정 의원은 조계사에 발조차 들이지 못했다. 역대급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대선을 앞두고 불교계 표심 이탈 우려가 커지면서 당 안팎에서는 정 의원의 자진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과문도 못 읽고 돌아온 與이날 행사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장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 이를 받는 사찰을 ‘봉이 김선달’에 빗댄 정 의원의 탈당 및 제명을 요구하는 한편 현 정부의 종교 편향을 비판하기 위한 자리로 전국 스님 3500여 명이 참석했다. 전국승려대회는 조계종 종헌종법(宗憲宗法)에 규정되지 않은 비상조치로 1994년 승려대회 이후 28년 만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이날 “온전히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하기 위해 문화재보호법으로 인정받은 문화재구역입장료도 통행세로 치부받기에 이르렀다”며 “전통문화를 보존 계승해야 할 정부가 앞장서 종교 간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부추기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원행 스님을 찾아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께서도 걱정이 너무 많다”며 “대통령께서도 대규모 승려대회가 열리게 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발목 수술로 휠체어를 탄 채 조계사를 찾은 송 대표는 이날 단상에 올라 직접 사과문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스님 및 신도들의 반발에 결국 마이크도 잡지 못했다. 송 대표는 이후 조계사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불교의 역사와 전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불교계와 국민 여러분께 상처와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여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거듭 자세를 낮췄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선 후보가 당선되면 특정 종교 편향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 의원도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로 인해 불교계에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서 참회와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다만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으며 탈당 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커지는 “대선 악영향” 우려대선을 46일 앞두고 여전히 심각한 분위기에 민주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한 표도 아쉬운 게 이번 대선“이라며 “봉이 김선달 발언 논란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향한 불교계의 집단 반발로 번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불교계와 가까운 한 중진 의원은 “대선에 명백한 악재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사과하고 또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 의원이 스스로 탈당을 결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점차 많아지는 모양새다. 한 수도권 의원은 “당헌당규상 정 의원을 제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정 의원이 스스로 당을 나가는 것 외엔 사태 수습이 쉽지 않다”고 했다. 정 의원이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핵관(이재명 핵심 관계자)’이 탈당을 강요했다”는 글을 올려 논란을 재차 확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당 지도부가 108배를 하고, 정세균 전 국무총리까지 등판해 겨우 사태를 수습해가는 과정이었는데 정 의원이 올린 페이스북 글 때문에 다시 일파만파를 일으켰다”며 “정 의원이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면 송 대표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유채연 기자 ycy@donga.com}

《2020년 1월 20일 국내에서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나온 지 2년이 흘렀다. 그 사이 누적 확진자는 70만 명을 넘었고 누적 사망자는 19일 기준으로 6500명에 육박한다. 도둑처럼 찾아온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가족을 앗아갔고, 삶의 터전을 무너뜨렸으며, 끝 모를 우울감을 퍼뜨렸다. 동아일보는 지난 2년 동안 이 아픔을 가까이서 지켜본 3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코로나로 어머니는 중환자실, 딸은 숨져… 너무 가슴아팠던 장례” 지난해 12월 24일 경북 칠곡군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했다. 거동이 불편했던 고인의 수족 역할을 했던 아내도 코로나19 증상이 악화되면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코로나19는 평생 함께한 부부의 마지막 인사조차 가로막았다. 그나마 자녀들은 창문 너머로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강봉희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장(69)은 “칠곡군 요청을 받고 시신 수습에 나섰는데 가족들이 고인의 마지막을 못 보는 게 안타까워 일부러 방 창문을 열어놔 발코니에서 볼 수 있게 했다”고 돌이켰다. 자녀들은 강 단장의 배려를 무척 고마워했다. 강 단장은 “그나마 자택에서 사망해 가능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사망자 장례지침은 ‘선(先)화장 후(後)장례’를 원칙으로 한다. 병원에서 사망한 경우 의료진이 시신을 이중 팩으로 밀봉한 뒤 넘겨주기 때문에 강 단장도 고인의 얼굴을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사망자 대부분은 유족이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화장터로 옮겨진다. 강 단장은 그런 죽음을 바로 옆에서 마주해왔다. 그가 마지막을 지킨 코로나19 사망자만 33명. 11일 대구에서 만난 강 단장은 “코로나19 사망자의 시신을 대할 때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초기에는 코로나라면 경찰도 출동을 안 했다. 그래도 나 아니면 누가 할까 싶어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강 단장이 처음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수습한 것은 대구 집단감염 사태 때였다. 수십 명의 사망자가 나왔지만 감염 공포 탓에 어느 장의업체도 염습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대구시는 2004년부터 지역에서 무연고자와 기초생활수급자의 시신 염습 봉사를 해 온 강 단장에게 읍소했고, 강 단장이 나섰다. 강 단장이 시신을 수습하고도 감염되지 않는 걸 본 뒤 사설 장례지도사들도 차츰 코로나19 사망자 수습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요즘 유족이 격리 중이거나 연고가 없는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주로 수습한다. 나머지 가족들의 격리가 해제될 때까지 유골을 보관하기도 한다. 11일 오후 4시 시립화장장인 대구 수성구 명복공원에 운구차량 한 대가 도착하자 강 단장이 “털고 가세요. 속에 있는 거 다 내려놓고, 좋은 곳 가세요”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화장한 시신은 코로나19로 숨진 37세 여성이었다. 지금까지 수습한 코로나19 사망자 가운데 가장 젊다. 강 단장은 “젊은 사람이 이렇게 세상을 떠나면 특히 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사망자의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도 코로나19에 확진돼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기에 강 단장이 유족을 대신해 고인의 ‘마지막’을 챙겼다. 강 단장은 “망자의 마지막 존엄을 지킨다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면서 “고인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고 해도 그건 달라질 건 없다”고 말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해 12월 17일 화장 전 장례를 먼저 치를 수 있도록 지침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족이 충분히 애도할 기회를 보장하면서 사망자 체액에 의한 감염 가능성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지침이 개정되진 않았다. 강 단장은 인터뷰를 마치기 전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며 “의료진들도 팩에 시신을 밀봉하기 전 사망자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담아 유족에게 전달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폐업 자영업자들, 손실보상금도 철거비로 써” 김정규 철거업체 대표 “일감 늘었지만 도저히 웃을수 없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씁쓸한 호황’을 누리는 이들이 있다. 폐업한 자영업자들의 가게 인테리어를 철거하는 업자들이다. 18일 경기 수원시 독서실 인테리어 철거 현장에서 만난 김정규 쌤인테리어철거 대표(54)는 “폐업이 급증하면서 철거 일감은 코로나19 전보다 두 배가량으로 늘었지만 철거 견적을 묻는 자영업자들의 서글픈 얼굴을 마주하면 도저히 웃을 수 없다”고 했다. 독서실 주인 이모 씨(48)는 2018년 직장을 그만두고 권리금 3000만 원에 독서실을 인수했다. 독서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할 무렵 코로나19가 터졌다. 매달 200만∼300만 원의 적자가 났다.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없자 이 씨는 지난해 12월 문을 닫았다. 남은 건 1억 원가량의 빚뿐이었다. 김 대표는 “최근에는 중심 상가 1층이 아니면 권리금 받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며 “반면 인건비와 폐기물 처리 비용은 40% 정도 늘었다. 돈이 없으면 폐업도 쉽지 않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은 철거 비용을 내기 위해 정부지원금을 고스란히 털어 넣기도 한다. 독서실 주인 이 씨도 정부에서 받은 손실보상금 800여만 원을 철거비로 냈다. 김 대표는 “매일 찾아와 철거 현장을 보면서 울던 중년 여성이 특히 기억난다”며 “보증금을 다만 얼마라도 돌려받도록 꼼꼼하게 철거하려고 한다. 월세가 밀려 받을 보증금도 없다는 술집 주인에게는 중고 집기를 최대한 비싸게 팔아 소액을 건네기도 했다”고 돌이켰다.“확진자들, 주변에 피해 줬다는 죄책감에 큰 고통” ‘심리상담’ 최기홍 고려대 교수 “내향적 사람들 고립상태 많이 빠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무섭거나, 가족을 잃어 슬픈 상황에서 삶의 무게를 새삼 느끼며 힘들어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2020년 8월부터 코로나19 확진자와 자가 격리자 등을 대상으로 100여 회의 전화 심리상담을 진행해 온 최기홍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18일 이렇게 밝혔다. 경제적 취약계층에 더욱 가혹했던 코로나19는 심리적으로도 원래 취약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최 교수는 “한 60대 여성은 코로나19 확진 후 자녀와 손자들이 자신 때문에 격리됐다고 자책하며, 죄책감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19는 사람들 간 사회적 거리를 더욱 떨어뜨려 놨다”며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거나, 사회적관계망이 적은 동시에 내향적인 사람들이 고립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로 무기력증이나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은 크게 늘었다. 최 교수 연구팀이 2020년 5월부터 성인 남녀 1000명을 2개월마다 추적 조사한 결과 자살 위험 신호를 보인 비율이 지난해 한때 전체의 30%를 넘기도 했다. 최 교수는 “거리 두기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우울감을 느끼는 비율이 상당히 늘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축적된 우울감과 불안감의 여파는 최소 3, 4년은 이어질 것”이라며 “심리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기회가 공공서비스의 일환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대구=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수원=유채연 기자 ycy@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정부가 대형마트, 상점, 백화점의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적용을 전국적으로 해제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법원이 14일 서울지역 대형마트 등의 방역패스에 제동을 걸면서 혼선이 커지자 한발 물러난 것이다. 정부는 도서관 박물관 영화관 등 비위험 시설의 방역패스 적용도 함께 해제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16일 오후 방역전략회의를 열고 이 같은 방역패스 조정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앞두고 방역패스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국민 불편과 혼선을 줄이는 게 먼저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는 14일 “상점, 마트, 백화점은 이용 행태에 비춰볼 때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백신 미접종자들의 출입 자체를 통제하는 불이익을 준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며 서울 소재 마트 등에 대한 방역패스 집행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에 지역 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특히 17일부터 마트, 백화점에 대한 방역패스 계도 기간이 끝나고 위반 시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이 시작돼 더 큰 반발이 우려됐다. 방역패스를 둘러싼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일부 시설 방역패스의 선제적 해제와는 별개로 법원의 방역패스 집행정지 결정에 대한 항고를 진행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원고 측도 “전체 방역패스가 중단돼야 한다”며 16일 즉시 항고 입장을 밝혔다. 방역패스 반발 커 완화하기로… 도서관-박물관 등 추가해제도 검토“지방 차별” 지역 형평성 논란에 지자체 온라인 청원도 이어져서울원정 쇼핑 등 부작용도 초래… 전문가 “오미크론 이달말 우세종방역 구멍에 대유행 우려” 지적 정부가 16일 전국의 3000m² 이상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대해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적용을 중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건 일단 지역 간 형평을 맞추고 국민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다. 방역패스 관련 소송이 이어지면서 제도 전반에 대한 혼란과 불신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의도도 있다. 정부는 박물관, 도서관, 영화관 등 비위험 시설의 방역패스를 추가 해제해 여론을 다독이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 저위험 시설 추가 해제 검토주말 동안 서울 이외 지역의 마트와 백화점 등에서는 혼선이 빚어졌다. 법원이 14일 서울 지역의 마트 등에 대해서만 방역패스 효력 정지를 결정한 여파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치지 않았거나 방역패스 유효기간이 지난 ‘비서울 거주자’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경기 지역 미접종자 일부는 서울 원정 쇼핑에 나서기도 했다. 온라인 청원도 이어졌다. 정부는 이처럼 혼선과 반발이 커진 상황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16일 관련 부처 회의에서는 원칙대로 방역패스를 유지하자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역당국은 서울과 이외 지역의 형평성을 우선 고려했다. 여기에 애당초 방역당국이 전파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시설부터 단계적으로 방역패스를 해제해 나가기로 방침을 세웠던 것도 이날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새해 대통령 신년 업무보고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밝힌 바 있다. 16일 방역패스 추가 해제 대상으로 검토된 박물관, 도서관, 영화관 등은 식당 카페(2그룹)에 비해 위험도가 낮다고 분류한 시설(3그룹 또는 기타 그룹)이다. 정부 관계자는 “음식 섭취만 하지 않는다면, 마스크를 쓰고 이용하면 집단감염 등 위험도가 비교적 낮은 시설”이라며 “유행이 안정화되면 이 같은 저위험 시설부터 해제하려던 것을 조금 앞당기자는 의견이 제시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17일 중안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 같은 방역패스 조정안을 확정 발표한다. 선제적 방역패스 해제는 향후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종환)는 4일 학원, 독서실, 스터디카페의 방역패스 적용 중단을 결정하며 “이용자가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고, 운영자도 방역수칙 준수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이런 시설에 대한 방역패스를 선제적으로 해제함으로써 향후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 오락가락 방역패스 행보보건의료계에선 정부의 방역패스 정책의 신뢰도가 저하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이달 말을 전후해 국내 우세종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방역 구멍이 커질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방역패스 일부 중단이 백신 무용론으로 번지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거리 두기 등 방역 완화가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6일 발표한 한국-캐나다 팬데믹 협력연구단의 연구에 따르면 백신 3차 접종이 현재와 비슷(하루 40만 건)하게 진행되면서 접촉률(이동량)이 20% 높아지면 2월 말 하루 확진자 수가 9만5459명까지 늘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3차 접종이 하루 60만 건씩 이뤄지고 접촉률이 현재와 같다면 확진자 수는 9389명 수준으로 전망됐다. 오미크론 폭증을 막기 위해선 부스터샷과 함께 방역패스, 고강도 거리 두기 등이 유지돼야 한다는 얘기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유채연 기자 ycy@donga.com}

16일 오후 3시 10분경 경기 성남시 현대백화점 판교점. 한 여성고객이 입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확인 기기에 휴대전화를 댔다. 그러나 ‘QR코드’를 업데이트하지 않은 탓에 유효하지 않은 코드임을 알리는 ‘딩동’ 소리가 났다. 이 여성은 직원 도움을 받은 후에야 백화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사이 QR코드 확인 기기 앞에는 대기줄이 생겼다. 반면 비슷한 시각 서울 강남구 롯데백화점 강남점에서는 방역패스 확인없이 손님을 입장시키는 ‘프리(free) 패스’ 상황이 펼쳐졌다. 코로나19 백신 미접종자도 ‘안심콜’ 등을 통해 출입자 명부 등록만 하면 자유롭게 입장했다. 서울행정법원이 14일 방역패스 집행정지 신청 일부를 인용하면서 서울에 있는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대규모 점포 460여 곳에 대한 방역패스 효력을 정지시켰기 때문이다.● 서울은 되고, 경기는 안 된다백화점 마트 등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 여부가 지역별로 달라지면서 시민들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이외 지역의 대규모 점포 2540여 곳에 대한 방역패스 효력이 유지되는 탓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치지 않았거나, 방역패스 유효기간이 지난 ‘비서울 거주자’의 반발이 적지 않은 것. 대전에 사는 류모 씨(26)는 “조만간 백신을 접종할 계획인데, 한동안은 생필품을 대형마트에서 사지 못하고 배달시켜야 할 판”이라며 “인구가 밀집된 서울은 빼고 지방만 방역패스로 규제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부산에 사는 백신 미접종자 김모 씨(49)는 “같은 미접종자인데 서울에서는 대규모 점포에 입장할 수 있고, 부산은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번에 일부 인용된 집행정지 신청처럼) 부산시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청원도 이어지고 있다. 법원 결정이 내려진 14일 이후 인천과 경기 수원, 고양 등 각 지자체의 주민 청원 게시판에는 ‘서울 외 지역에서도 방역패스 적용을 멈춰 달라’는 내용의 청원 글이 이어졌다. 서울 외 지역 백화점과 마트에는 입장 가능 여부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경기 김포시의 한 대형 점포 관계자는 “서울은 방역패스가 없어도 그냥 들어갈 수 있다는데 김포는 왜 안 되느냐’는 전화 문의가 14일부터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점포들은 방역패스 계도기간이 16일로 끝나면서 더 긴장하고 있다. 17일부터 방역패스를 확인하지 않은 업체는 1차 위반 시 150만 원, 2차 이상 위반 시 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별도로 운영 중단 명령까지 받을 수 있다.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이용자에게도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된다. 경기 남양주시의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계도기간이라 방역패스가 없어도 안내만 하고 입장시켰는데, 17일부터 고객 항의가 얼마나 이어질지 가늠이 안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형평성 논란이 이어지자 정부는 서울 이외 지역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대해 방역패스 적용을 중단할지 여부를 고심 중이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법원의 결정에 대해 즉시 항고를 해도 다시 판단이 나오기까지 여러 주가 걸리는 만큼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며 “이 같은 점도 고려해 (적용 중단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방역당국은 내부적으로 마트와 백화점은 식당, 카페 등에 비해 위험도가 낮은 시설로 판단해 방역패스 완화 시 가장 먼저 적용을 해제할 수 있는 시설로 분류한 바 있다. 정부는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거쳐 서울 이외 지역 마트 등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백신을 안 맞았다고) 마트 입장을 막는 건 인권침해 아닙니까?” 10일 오후 5시경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 입구. 한 중년 여성이 강하게 항의하자 안내 직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시행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고성이 이어지자 안내 직원도 “고객센터에 전화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0분 후 이번에는 고령 남성이 “추가 접종(부스터샷)까지 했지만 휴대전화를 가져오지 않았다”며 마트에 들어가겠다고 고집했다. “정부 지침이라 어쩔 수 없다”며 직원이 가로막자 남성은 지갑을 땅에 던지면서 욕설을 했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경찰까지 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10일 면적 3000m² 이상의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에 코로나19 방역패스가 적용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이 같은 실랑이가 빚어졌다.○ “방역패스가 뭐예요?”이날 마트와 백화점에는 방역패스가 번거롭다고 항의하는 고객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방역패스 확인이 지체되면서 입구에 긴 줄이 생기기도 했다. 이날 오전 11시 반경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입구에는 20여 명이 추위 속에서 줄을 서 입장을 기다렸다. 특히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지 않은 고령자들이 방역패스 인증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날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을 찾은 채모 씨(78)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큐아르(QR) 코드를 설치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질병관리청 ‘쿠브(COOV)’ 앱과 접종 정보를 연동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보다 못한 직원이 대신해 연동을 진행하면서 입장까지 5분 넘게 걸렸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방역패스를 언급하면 그게 뭐냐고 물어보시는 어르신이 적지 않다”라고 했다.○ “막무가내로 입장도”10일부터 ‘미접종자 출입 제한’이 원칙이지만 16일까지는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 계도 기간이다 보니 일부 백화점과 마트는 “방역패스가 없는 사람도 입장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기도 했다. 이날 낮 12시 40분경 이마트 성수점을 방문한 백신 미접종자 배모 씨(72)는 직원으로부터 “계도 기간이라 입장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고 수기로 출입명부를 작성한 뒤 입장했다. 한 마트 관계자는 “(방역패스 미소지자가) 들어가겠다고 하면 들어갈 순 있다. 다음엔 못 들어가신다고 안내드리고 있다”고 했다. 다른 백화점 관계자도 “손님이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면 어쩔 수가 없다”며 “막무가내로 입장한 방역패스 미소지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현장에선 손님은 방역패스 적용을 받는데 백화점과 마트 종사자는 적용받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방역패스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야기하는 기본권 침해 및 경제적 피해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방역패스를 적용하지 않을 경우 모임 인원 제한과 다중이용시설 운영시간 제한 등 거리두기 조치를 더 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이 같은 정부 측 입장을 담아 서울행정법원에 방역패스 효력 정지 소송 관련 추가 자료를 제출했다. 방역패스 효력 정지 여부를 검토 중인 재판부는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원고 측이 제출한 자료와 피고 측인 복지부 제출 자료를 함께 검토해 수일 안에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가족들과의 외출은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는 마트마저 못 간다니 서럽고 억울하네요.” 둘째 임신 22주차인 회사원 김모 씨(37)는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일부터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갈 수 없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연면적 3000m² 이상 규모의 마트나 백화점, 대형서점 등이 이날부터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의 적용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김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1차를 맞은 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됐고, 산부인과 의사의 권유에 따라 2차 접종을 안 했다. 그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니 모유 수유가 끝날 때까지 백신을 맞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방역당국 등에 따르면 약 98%의 임신부가 접종을 마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나 홀로 쇼핑’도 불가능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았거나 방역패스 유효기간이 지난 사람 중에서 접종불가 사유서나 48시간 안에 발급받은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확인서가 없는 사람은 10일부터 대형마트와 백화점을 이용할 수 없다. ‘혼밥’이 허용되는 식당 카페와 달리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선 ‘나 홀로 쇼핑’도 불가능하다. 백신에 대한 불안으로 접종을 하지 않았다는 허모 씨(57)는 “마스크를 벗는 식당 카페는 ‘혼밥’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마스크를 끼는 대형마트 백화점은 혼자 쇼핑할 수 없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며 “당분간 인터넷 쇼핑만 해야 할 판인데 신선식품 등 온라인 구매가 어려운 제품도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백신 1차 접종 이후 심장 압박과 호흡 불안정 등 부작용이 생겨 2차 접종을 하지 않았다는 대학생 박모 씨(25)는 9일 오후 2시 반경 가족과 함께 경기 안양시의 한 대형마트를 찾았다. 박 씨는 “주말에 가족들과 마트에서 장을 보곤 했는데, 앞으로는 못 들어간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나왔다”며 “마트에서 생필품을 살 권리까지 제한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방역패스가 시설 이용자에게만 적용되고 직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을 두고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고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출근해 일하는 건 괜찮지만 퇴근 후 ‘쇼핑’하는 건 방역지침 위반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고용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종사자에 대해서는 접종 완료 등을 의무화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직원 늘리고 준비 나선 대형마트·백화점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은 주말 동안 매장 출입구 개수를 줄이고 추가 직원을 배치하는 등 방역패스 적용을 대비하느라 분주했다. 서울 성동구의 한 대형마트는 9일 오후 ‘전자출입명부를 작성해 달라’는 안내문을 ‘방역패스를 미리 준비해 달라’는 내용으로 교체했다. 업체 측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전자출입명부 작성과 달리 방역패스는 일일이 직원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형서점 관계자는 “방역패스 검사를 위해 추가로 채용해야 하는 직원이 10명에 달한다”며 “비용도 비용이지만 최근 채용이 어려워져 계도 기간이 끝나는 이달 16일까지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온라인 쇼핑으로의 고객 이탈이 더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달래기 위해 대형 유통업체 옥죄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종이 신문을 가위로 스크랩하고 LP 음반을 수집하는가 하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인화한다. 부모 세대가 아닌 요즘 2030세대의 이야기다. ‘오래된 것’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재미에 푹 빠진 청년들의 모습을 들여다봤다.》아날로그 감성에 푹 빠진 2030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의 ‘6DP(6days.paper)’ 계정에는 가위로 오려낸 여러 신문 기사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 속 신문의 기사 문장이나 칼럼 구절에는 여러 색깔의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고, 각종 이모티콘도 붙어있다. 인상 깊은 문장이나 글귀는 따로 적어놓기도 한다. 언뜻 봐선 정체를 알기 힘든 이 계정의 팔로어는 7일 기준 약 1만5600명. 지난해 5월 계정을 개설한 뒤 7개월여 만에 급성장했다. 가장 인기를 끈 게시물의 조회수는 약 10만 회다. 개인의 공부 내용을 기록하는 용도로 유행했던 ‘공스타그램’(공부+인스타그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계정은 ‘신스타그램’(신문+인스타그램)이다. 주 6일 발간되는 일간지 중 8개(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경제 한국일보)의 기사를 요약하고 스크랩한 것이 이 계정의 주요 게시물이다. 젊은층이 신문을 멀리한다는 통념과 달리 이 계정 팔로어의 80.3%가 18∼34세다. 주로 ‘2030세대’인 것이다. 팔로어들은 24시간 동안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스토리’ 형태의 게시물이 올라오면 이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계정에 공유했다. 게시글에 “종이 신문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는 감상과 댓글을 남기며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30세대가 오래된 것의 장점을 재발견하는 ‘역주행’을 즐기고 있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대신 LP판을 즐기고, 전자책 대신 종이책을 집어 든다. 스마트폰 카메라 대신 필름 카메라를 찾기도 한다. 익숙함이나 편리함 대신 직접 만지고 소유할 수 있는 ‘물성(物性)’을 중시하고,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 지금은 찾기 어려운 감성을 발견하는 재미도 2030세대를 역주행 열풍으로 이끄는 요인이다.○ 밑줄 치며 신문 열독하는 ‘2030’“다른 사람은 어떤 기사를 재밌게 읽었는지 알게 되는 재미가 있어요. 신문 지면을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포털 사이트 기사만 보다가 ‘6DP’에 올라오는 기사를 보니 신선하고 좋아요. ‘이런 게 신문 기사였지…’ 하고 새삼 신문 읽던 기억이 나요.” 인스타그램 ‘6DP’ 팔로어들이 이 계정에 보내는 반응이다. 이 계정을 운영하는 진예정 씨(31)는 한 방송사의 라디오 PD다. 진 씨도 댓글을 남긴 팔로어처럼 지난날 신문의 매력에 빠졌던 이들 중 한 명이다. 30대가 되고 직장 생활을 하던 진 씨에게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찾던 진 씨는 불현듯 20대 초반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매체’였던 종이 신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신문을 읽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지인, 친구들만 볼 수 있는 개인 계정에 자신이 읽은 신문 기사 관련 게시글과 감상을 짧게 올렸다. 그런데 주변 반응이 뜨거웠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진 씨는 자신처럼 종이 신문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있음을 실감했다. 신문 읽기 ‘역주행’의 수요가 예상보다 많을 수 있다고 느낀 진 씨는 곧 ‘6DP’ 계정을 개설했다. 지금은 1만5600여 명의 팔로어와 함께 신문을 읽는다. 진 씨는 “신문을 읽으면,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제공해 이용자를 편협한 시각에 갇히게 하는 ‘필터 버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사진과 캡션(사진설명), 제목 등 지면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에 집중해 콘텐츠를 하나하나 곱씹을 수 있는 것이 신문의 매력”이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신문은 매력적인 읽을거리가 빼곡한 매체입니다. 손으로 직접 종이 신문을 넘기고, 밑줄을 치며 읽으면 그 콘텐츠를 ‘씹어 넘기고 있다’고 저절로 느껴져요. 앞으로 더 많은 팔로어들께 제가 느낀 재미와 매력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진 씨) 대학생 강지수 씨(24)는 ‘6DP’ 계정 덕분에 신문 읽기에 새롭게 눈을 떴다. 그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 기사를 읽으면 별 생각 없이 화면 스크롤만 내리면서 텍스트를 보게 된다”며 “지면 기사를 읽으면 기사 배치와 편집을 확인할 수 있고, 정보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수연 씨(24)는 ‘6DP’ 계정 콘텐츠를 즐기다가 다음 달부터는 자신도 신문을 구독하기로 했다. 이 씨는 “지면과 소통하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 씨(25)는 “이 계정을 발견하고 어린 시절 신문 활용 교육(NIE·Newspaper In Education)을 하며 오려 붙이던 신문 지면을 떠올렸다. 원래 집에서 아버지만 신문을 보셨는데 한 달 전부터는 제가 가장 먼저 신문을 꺼내 읽는다”고 했다. 이 계정의 한 팔로어는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에게 종이 신문의 매력을 알리는 계정을 만들어줘 정말 감사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오래된 것’의 고유한 재미 2030세대 사이에서 LP판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김애림 씨(35)는 LP 음반 수집가다.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월 1만 원 정도를 내면 전 세계의 다양한 인기 음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지만, 김 씨는 수십만 원을 들여 턴테이블을 마련하고 LP판을 구매해 음악을 즐긴다. 김 씨는 “단순히 음악 감상이라고만 생각하면 LP 음반을 통한 청음이 비싸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LP는 음악을 듣기까지의 매 순간이 가치 있는 과정이 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문득 음악이 필요한 순간에 앨범을 하나하나 만지며 고르는 과정의 설렘, LP판을 조심스럽게 꺼낼 때 느껴지는 소중함이 좋다”고 했다. LP 음반을 수집하는 양모 씨(30)도 “LP 음반은 가격도 만만치 않고, 한 판에 수록된 곡의 수도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정말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다”며 “‘최애’ 가수의 소중한 LP 음반을 직접 만지고 소장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려놓을 때 들리는 ‘치직’ 소리도 이들이 꼽는 LP의 매력이다. 실제 LP판을 찾는 젊은층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LP 상품 구매자 중 20대와 30대를 더한 비율은 2019년 27%에서 2021년 40.8%로 크게 늘었다. 2017년 문을 연 국내 유일 LP판 제작업체 ‘마장뮤직앤픽처스’ 관계자는 “지난해 주문량이 2020년에 비해 2.5배가량으로 늘었다”면서 “최근 공장 가동 시간을 늘렸다”고 했다.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음반 판매점 ‘바이닐앤플라스틱’ 관계자는 “매장 방문 고객 중 젊은층이 많아 최신 인기 아티스트들의 한정판 음반을 만들어 선착순 판매하는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LP 음반을 찾는 고객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이들의 감성에 맞춰 디자인된 상품도 나오고 있다. LP판은 검은색이라는 통념을 깨고 흰색, 빨간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제작돼 젊은 세대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LP판이 제작되고 있다. 이른바 ‘컬러반’이다. 흩뿌린 듯한 무늬가 인쇄된 ‘스플래터’를 비롯해 다양한 디자인의 LP판이 시험 제작되기도 한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데이식스 등 인기 아이돌 가수들도 팬들을 위해 LP 앨범을 출시했다. 한 대형기획사 관계자는 “젊은층의 팬들에게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LP 음반 발매를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사라지던 필름 카메라도 젊은층에게 다시 ‘핫한’ 아이템이 됐다. 4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필름 카메라 숍 ‘필름로그’는 이날 오후 약 1시간 동안 매장을 찾은 손님 8명이 모두 20대였다. 배상인 필름로그 팀장은 “매장을 찾는 손님의 90%가 2030세대”라며 “이 연령대 손님들은 저렴한 일회용 카메라나 이를 재활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카메라’를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 매장처럼 필름 카메라를 판매하면서 사진관처럼 현상도 해주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부모 세대와 교감 매개 이처럼 오래된 물품을 찾는 젊은 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물성’을 즐긴다는 것이다.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라는 뜻의 물성은 최근 몇 년 사이 이어지는 ‘역주행’ 열풍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 단어다. 콘텐츠를 디지털 방식으로 소비하는 대신 아날로그 매체를 통해 보다 밀접하게 손으로 느끼고 만지며 향유하는 트렌드를 설명해 준다. 대학생 박민영 씨(25)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도서관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전자책을 자주 이용했다. 하지만 3개월 뒤 다시 종이책을 꺼내들었다. 박 씨는 “전자책을 읽고 나서야 내가 종이책 페이지를 넘기는 느낌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디지털 콘텐츠는 손쉽게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혼자 향유한다는 감각을 갖기 어렵다”며 “디지털 콘텐츠가 범람할수록 ‘원본’에 대한 욕구와 갈망이 커지고, 디지털 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촉각’ 같은 실재하는 감각도 중시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젊은 세대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책, 음악 등 특수한 콘텐츠 영역에서 ‘물성’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유행은 부모 세대와 손쉽게 소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대학생 신명길 씨(24)는 아버지를 따라 취미로 LP 음반 수집을 시작했다. LP 애호가인 아버지가 오래된 재즈 LP 음반을 2017년 신 씨에게 선물하면서부터다. 신 씨는 아버지에게 LP판 관리 방법 등에 대한 조언을 자주 구한다고 했다. 신 씨는 “본격적으로 LP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는 부모님과 중고 LP 음반 매장을 방문하는 일이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46년째 LP 음반 판매점 ‘서울레코드’를 운영 중인 황승수 사장은 “LP를 즐겨 듣던 부모님과 새롭게 LP를 찾게 된 2030세대가 함께 매장을 방문하는 모습도 최근 종종 보인다. LP 레코드를 통해 세대가 교감하는 모습이 즐겁다”고 말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 이수빈 씨(26)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필름 카메라에 관심을 갖게 이 씨는 어느 날 오래전부터 집안 구석에 놓여 있던 부모님의 필름 카메라가 떠올랐다고 했다. 이 씨는 “오래된 카메라에서 어머니가 찍어둔 필름을 발견하고 어머니와 함께 현상소에서 이 필름을 인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가 향유하던 문화를 젊은 세대가 재발견하고 함께 즐기는 건 서로 다른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라며 “자연스럽게 세대 간 공감대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의 ‘뉴트로’ 유행은 옛것의 답습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청년 세대는 오래된 것을 계속 혁신하고 재해석할 것”이라고 말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의 ‘6DP(6days.paper)’ 계정에는 가위로 오려낸 여러 신문 기사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 속 신문의 기사 문장이나 칼럼 구절에는 여러 색깔의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고, 각종 이모티콘도 붙어있다. 인상 깊은 문장이나 글귀는 따로 적어놓기도 한다. 언뜻 봐선 정체를 알기 힘든 이 계정의 팔로어는 6일 기준 약 1만5600명. 지난해 5월 계정을 개설한 뒤 7개월여 만에 급성장했다. 가장 인기를 끈 게시물의 조회수는 약 10만 회다. 개인의 공부 내용을 기록하는 용도로 유행했던 ‘공스타그램’(공부+인스타그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계정은 ‘신스타그램’(신문+인스타그램)이다. 주 6일 발간되는 일간지 중 8개(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경제 한국일보)의 기사를 요약하고 스크랩한 것이 이 계정의 주요 게시물이다. 젊은층이 신문을 멀리한다는 통념과 달리 이 계정 팔로어의 80.3%가 18~34세다. 주로 ‘2030세대’인 것이다. 팔로어들은 24시간 동안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스토리’ 형태의 게시물이 올라오면 이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계정에 공유했다. 게시글에 “종이 신문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는 감상과 댓글을 남기며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30세대가 오래된 것의 장점을 재발견하는 ‘역주행’을 즐기고 있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대신 LP판을 즐기고, 전자책 대신 종이책을 집어 든다. 스마트폰 카메라 대신 필름 카메라를 찾기도 한다. 익숙함이나 편리함 대신 직접 만지고 소유할 수 있는 ‘물성(物性)’을 중시하고,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 지금은 찾기 어려운 감성을 발견하는 재미도 2030세대를 역주행 열풍으로 이끄는 요인이다.● 밑줄 치며 신문 열독하는 ‘2030’“다른 사람은 어떤 기사를 재밌게 읽었는지 알게 되는 재미가 있어요. 신문 지면을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포털 사이트 기사만 보다가 ‘6DP’에 올라오는 기사를 보니 신선하고 좋아요. ‘이런 게 신문 기사였지…’ 하고 새삼 신문 읽던 기억이 나요.” 인스타그램 ‘6DP’ 팔로어들이 이 계정에 보내는 반응이다. 이 계정을 운영하는 진예정 씨(31)는 한 방송사의 라디오 PD다. 진 씨도 댓글을 남긴 팔로어처럼 지난날 신문의 매력에 빠졌던 이들 중 한 명이다. 30대가 되고 직장 생활을 하던 진 씨에게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찾던 진 씨는 불현듯 20대 초반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매체’였던 종이 신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신문을 읽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지인, 친구들만 볼 수 있는 개인 계정에 자신이 읽은 신문 기사 관련 게시글과 감상을 짧게 올렸다. 그런데 주변 반응이 뜨거웠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진 씨는 자신처럼 종이 신문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있음을 실감했다. 신문 읽기 ‘역주행’의 수요가 예상보다 많을 수 있다고 느낀 진 씨는 곧 ‘6DP’ 계정을 개설했다. 지금은 1만5000여 명의 팔로어와 함께 신문을 읽는다. 진 씨는 “신문을 읽으면,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제공해 이용자를 편협한 시각에 갇히게 하는 ‘필터 버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사진과 캡션(사진설명), 제목 등 지면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에 집중해 콘텐츠를 하나하나 곱씹을 수 있는 것이 신문의 매력”이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신문은 매력적인 읽을거리가 빼곡한 매체입니다. 손으로 직접 종이 신문을 넘기고, 밑줄을 치며 읽으면 그 콘텐츠를 ‘씹어 넘기고 있다’고 저절로 느껴져요. 앞으로 더 많은 팔로어들께 제가 느낀 재미와 매력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진 씨) 대학생 강지수 씨(24)는 ‘6DP’ 계정 덕분에 신문 읽기에 새롭게 눈을 떴다. 그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 기사를 읽으면 별 생각 없이 화면 스크롤만 내리면서 텍스트를 보게 된다”며 “지면 기사를 읽으면 기사 배치와 편집을 확인할 수 있고, 정보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수연 씨(24)는 ‘6DP’ 계정 콘텐츠를 즐기다가 다음 달부터는 자신도 신문을 구독하기로 했다. 이 씨는 “지면과 소통하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 씨(25)는 “이 계정을 발견하고 어린 시절 신문 활용 교육(NIE·Newspaper In Education)을 하며 오려 붙이던 신문 지면을 떠올렸다. 원래 집에서 아버지만 신문을 보셨는데 한 달 전부터는 제가 가장 먼저 신문을 꺼내 읽는다”고 했다. 이 계정의 한 팔로어는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에게 종이 신문의 매력을 알리는 계정을 만들어줘 정말 감사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오래된 것’의 고유한 재미2030세대 사이에서 LP판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김애림 씨(35)는 LP 음반 수집가다.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월 1만 원 정도를 내면 전 세계의 다양한 인기 음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지만, 김 씨는 수십만 원을 들여 턴테이블을 마련하고 LP판을 구매해 음악을 즐긴다. 김 씨는 “단순히 음악 감상이라고만 생각하면 LP 음반을 통한 청음이 비싸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LP는 음악을 듣기까지의 매 순간이 가치 있는 과정이 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문득 음악이 필요한 순간에 앨범을 하나하나 만지며 고르는 과정의 설렘, LP판을 조심스럽게 꺼낼 때 느껴지는 소중함이 좋다”고 했다. LP 음반을 수집하는 양모 씨(30)도 “LP 음반은 가격도 만만치 않고, 한 판에 수록된 곡의 수도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정말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다”며 “‘최애’ 가수의 소중한 LP 음반을 직접 만지고 소장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려놓을 때 들리는 ‘치직’ 소리도 이들이 꼽는 LP의 매력이다. 실제 LP판을 찾는 젊은층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LP 상품 구매자 중 20대와 30대를 더한 비율은 2019년 27%에서 2021년 40.8%로 크게 늘었다. 2017년 문을 연 국내 유일 LP판 제작업체 ‘마장뮤직앤픽처스’ 관계자는 “지난해 주문량이 2020년에 비해 2.5배가량으로 늘었다”면서 “최근 공장 가동 시간을 늘렸다”고 했다.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음반 판매점 ‘바이닐앤플라스틱’ 관계자는 “매장 방문 고객 중 젊은층이 많아 최신 인기 아티스트들의 한정판 음반을 만들어 선착순 판매하는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LP 음반을 찾는 고객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이들의 감성에 맞춰 디자인된 상품도 나오고 있다. LP판은 검은색이라는 통념을 깨고 흰색, 빨간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제작돼 젊은 세대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LP판이 제작되고 있다. 이른바 ‘컬러반’이다. 흩뿌린 듯한 무늬가 인쇄된 ‘스플래터’를 비롯해 다양한 디자인의 LP판이 시험 제작되기도 한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데이식스 등 인기 아이돌 가수들도 팬들을 위해 LP 앨범을 출시했다. 한 대형기획사 관계자는 “젊은층의 팬들에게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LP 음반 발매를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사라지던 필름 카메라도 젊은층에게 다시 ‘핫한’ 아이템이 됐다. 4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필름 카메라 숍 ‘필름로그’는 이날 오후 약 1시간 동안 매장을 찾은 손님 8명이 모두 20대였다. 배상인 필름로그 팀장은 “매장을 찾는 손님의 90%가 2030세대”라며 “이 연령대 손님들은 저렴한 일회용 카메라나 이를 재활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카메라’를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 매장처럼 필름 카메라를 판매하면서 사진관처럼 현상도 해주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부모 세대와 교감 매개이처럼 오래된 물품을 찾는 젊은 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물성’을 즐긴다는 것이다.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라는 뜻의 물성은 최근 몇 년 사이 이어지는 ‘역주행’ 열풍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 단어다. 콘텐츠를 디지털 방식으로 소비하는 대신 아날로그 매체를 통해 보다 밀접하게 손으로 느끼고 만지며 향유하는 트렌드를 설명해 준다. 대학생 박민영 씨(25)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도서관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전자책을 자주 이용했다. 하지만 3개월 뒤 다시 종이책을 꺼내들었다. 박 씨는 “전자책을 읽고 나서야 내가 종이책 페이지를 넘기는 느낌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디지털 콘텐츠는 손쉽게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혼자 향유한다는 감각을 갖기 어렵다”며 “디지털 콘텐츠가 범람할수록 ‘원본’에 대한 욕구와 갈망이 커지고, 디지털 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촉각’ 같은 실재하는 감각도 중시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젊은 세대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책, 음악 등 특수한 콘텐츠 영역에서 ‘물성’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유행은 부모 세대와 손쉽게 소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대학생 신명길 씨(24)는 아버지를 따라 취미로 LP 음반 수집을 시작했다. LP 애호가인 아버지가 오래된 재즈 LP 음반을 2017년 신 씨에게 선물하면서부터다. 신 씨는 아버지에게 LP판 관리 방법 등에 대한 조언을 자주 구한다고 했다. 신 씨는 “본격적으로 LP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는 부모님과 중고 LP 음반 매장을 방문하는 일이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46년째 LP 음반 판매점 ‘서울레코드’를 운영 중인 황승수 사장은 “LP를 즐겨 듣던 부모님과 새롭게 LP를 찾게 된 2030세대가 함께 매장을 방문하는 모습도 최근 종종 보인다. LP 레코드를 통해 세대가 교감하는 모습이 즐겁다”고 말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 이수빈 씨(26)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필름 카메라에 관심을 갖게 이 씨는 어느 날 오래전부터 집안 구석에 놓여 있던 부모님의 필름 카메라가 떠올랐다고 했다. 이 씨는 “오래된 카메라에서 어머니가 찍어둔 필름을 발견하고 어머니와 함께 현상소에서 이 필름을 인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가 향유하던 문화를 젊은 세대가 재발견하고 함께 즐기는 건 서로 다른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라며 “자연스럽게 세대 간 공감대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의 ‘뉴트로’ 유행은 옛것의 답습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청년 세대는 오래된 것을 계속 혁신하고 재해석할 것”이라고 말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유리공예 실습은 교수님 시연을 ‘줌’(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으로 지켜보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이쪽 업계에 취업하려면 학교 실습 경험이 가장 중요한데, 실습은 거의 못 해보고 졸업하게 됐어요.” 경기도의 한 전문대 유리세라믹디자인과에 ‘20학번’으로 입학한 A 씨(22)는 올 2월 졸업을 앞두고 고민이 커졌다. A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2년 동안 학교에 제대로 등교해 본 적이 없다. 수업은 거의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됐고, 학교에는 6일 정도 출석한 게 전부다. 시험도, 실습도 모두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A 씨는 “이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전공을 선택했는데, 비대면 수업만 이어지다 보니 ‘이 길로 가는 게 맞나’라는 고민이 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3년째 이어지는 가운데 전문대 학생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등교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전문대의 강점인 실습교육 시간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전문대 지표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사립전문대 전체 학생 43만5056명 중 4주 이상 현장실습을 이수한 학생은 전체의 6.7%(2만9172명)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교를 쉬거나 그만두는 학생도 늘었다. 김춘호 영진전문대 조리제과제빵과 교수는 “2020년에 실습과목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니 학생 참여도와 강의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졌고, 휴학하겠다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전문대생 취업역량 강화를 위해 2021년 졸업자 중 미취업자와 2022년 졸업예정자 약 3만 명을 대상으로 각종 자격증 취득 및 교육비를 지원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실습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실질적인 현장실습이 어려운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표준 원격실습 체제 구축을 교육부에 제안 중”이라고 말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유리공예 실습은 교수님 시연을 ‘줌’으로 지켜보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이쪽으로 취업하려면 학교에서 실습 경험이 가장 중요해 진학을 결심했는데 졸업을 앞두고 고민이 커졌습니다.” 한 전문대 유리세라믹디자인과에 ‘20학번’으로 입학한 A 씨는 올 2월 졸업을 앞두고 고민이 커졌다. A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2년 동안 학교에 제대로 등교해본 적이 없다. 수업이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돼 학교에 6일 정도 출석한 게 전부다. 시험도, 실습도 모두 온라인에서 이뤄졌다. A 씨는 “이 분야에 취업하고 싶어 전공을 선택했지만 비대면 수업만 이어지다보니 ‘이 길로 가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3년째 이어지며 전문대 학생들의 시름이 깊다. 정상 등교가 이뤄지지 않으며 전문대학의 강점인 실습교육 시간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전문대 지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사립전문대 원격강좌 수강 인원은 2016년 13만4417명에서 지난해 336만7109명으로 2405% 증가했다. 2020년 사립전문대 전체 학생 43만5056명 중 4주 이상 현장실습을 이수한 학생도 전체의 6.7%(2만9172명)에 불과하다. 실습수업 시수가 부족하니 현장 경험도 자연히 부족하다. 김홍렬 대한미용사회중앙회 총무국장은 “교수가 머리를 자르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과 본인이 직접 잘라보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교를 쉬거나 그만두는 학생도 늘었다. 김춘호 영진전문대 조리제과제빵과 교수는 “2020년에 실습과목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니 학생 참여도와 강의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휴학하겠다는 학생도 많았다”고 말했다. 전문대 산업디자인학과에 20학번으로 입학한 신혜림 씨(23)는 “1학년 때 실습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다보니 2학년 때 실습을 따라가기 어려웠다”며 “취업도 어렵게 되자 동기들의 3분의 2가 4년제 대학 편입 공부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전문대생 취업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 계획을 발표해 2021년 졸업자 중 미취업자 및 2022년 졸업예정자 약 3만 명을 대상으로 각종 자격증 취득 및 교육 비용 등을 지원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실습 공백을 메우기에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구대 게임콘텐츠학과 20학번 차정하 씨(21)는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장비 사용법 학습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실질적인 현장 실습이 어려운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표준 원격실습 체제 구축을 교육부에 제안 중”이라고 말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

1일 강원 고성지역에서 최전방 철책을 넘어 월북한 남성은 2020년 11월 초 같은 지역으로 월책 귀순한 탈북민 A 씨로 확인됐다. 동일인이 1년여 만에 똑같은 수법으로 같은 지역 내 군사분계선(MDL)을 유유히 넘나들 만큼 최전방 경계태세가 해이해지고 경찰 등 관계기관의 탈북민 관리도 큰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거세다. 군 관계자는 3일 브리핑에서 “1일 정오경 민통선 지역 내 폐쇄회로(CC)TV에 찍힌 월북자의 인상착의가 2020년 11월에 귀순한 30대 초반의 A 씨와 거의 동일하다”며 “현재까지 대공 용의점은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A 씨는 지난해 12월 30일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그는 2020년 11월 초 22사단 예하 최전방 경계부대(GOP)의 3m 높이 철책을 뛰어넘어 월남한 지 14시간 만에 아군에게 발견됐다. 당시 그는 체중 50여 kg에 왜소한 체격으로 귀순 직후 합동조사에서 기계체조 경력이 있다고 진술했다. A 씨의 월북 직후 군은 서해 군 통신선으로 우리 국민 보호 차원의 대북통지문을 두 차례 보냈고 북한은 “수신을 잘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한다. 이후 A 씨의 신병 확보 등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은 오지 않은 상태라고 군은 전했다.南北을 제 집 드나들듯… 경찰, 작년 월북 징후 알고도 수사 안해 철책 넘어 왔던 귀순자가 철책 월북30대 초반 탈북민 A 씨는 2020년 11월 귀순한 지 13개월 만인 1일 강원 고성 최전방경계부대(GOP) 철책을 뛰어넘어 유유히 북한으로 향했다. 월남(越南)했을 때와 동일한 방식과 경로로 다시 월북(越北)한 것. A 씨가 사실상 남과 북을 ‘제 집 드나들듯’ 오간 사실이 확인되면서 군의 최전방 경계태세와 신변보호 대상인 탈북민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온다. A 씨가 귀순한 지 1년여 만에 다시 월북하면서 “간첩 활동을 위해 위장 귀순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국은 일단 “대공 혐의점은 없다”고 밝혔다. ○ 남파공작원 의혹…당국은 “대공 혐의점 없어” A 씨가 1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간 직후 군 열상감시장비(TOD)에는 점으로 표시된 북한군 3명이 북측 지역에서 포착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에 엄격한 북한이라 ‘소동’이 있을 법한데 별다른 징후는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군 총성도 울리지 않았다. A 씨는 월북 전 신변보호 담당관에게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을 여행하는 방법도 문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A 씨가 남한에서 간첩 활동을 하기 위해 귀순했고, 월북 일자까지 북측과 맞춘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군은 이와 관련해 3일 “아직 A 씨의 대공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거듭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A 씨는) 중요한 정보를 알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특이 동향이 (우리 당국에) 보고된 적도 없다”면서 “(귀순 직후 받은 합동조사 당시) 진술 불일치 등 특이점도 없었다”고 했다. 일각에선 험한 지형의 동부전선 일대를 넘나들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A 씨가 민간인이 아닌 남파공작원이란 추측도 쏟아졌지만 당국자는 “북한에서 훈련받은 군인이란 사실도 확인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통일부 산하 탈북민 정착기관인 하나원을 수료한 A 씨는 정착 과정에서 향수병 등으로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을 주변에 토로했다고도 한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며 청소용역원으로 일한 A 씨는 남한 정착 후 경제적 상황도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우리 당국은 일단 경제적 상황이나 향수병 등 신변 문제로 월북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6월 A 씨의 월북 징후를 두 차례 포착했지만 내사 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추가 수사를 벌이진 않았다. 북한으로 되돌아간 A 씨의 신변과 관련해선 아직 특이 동향이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 철책 부근 족적 남았는데 ‘귀순자’ 오판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 씨의 월북 직후 군과 경찰, 정보당국은 월북 가능성이 있는 탈북민을 4명으로 좁히고, 그중 A 씨를 특히 유력한 인물로 지목했다. A 씨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 당국은 A 씨의 휴대전화가 1일 강원 고성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최종 확인되면서 그가 월북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월북 직전 민간인통제선 폐쇄회로(CC)TV 등에 포착된 A 씨는 2020년 귀순 당시와 유사한 인상착의를 한 채 태연하게 초소 등을 살폈다. 지형지물에 익숙한 행동을 보인 것. 당국은 북한에서 기계체조 경력이 있었다고 진술한 A 씨가 귀순 때와 유사한 방식으로 월북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50kg가량의 왜소한 체격인 그는 귀순 당시 감지센서(광망)가 달린 GOP 철책에 하중을 최소화하면서 철책과 철책 사이 설치된 철주(기둥)를 이용해 3m 높이의 철책을 손쉽게 넘었다. 월책(越柵) 직후 눈이 쌓인 철책 주변엔 A 씨 족적도 일부 남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월책이 유력했던 정황이 현장에 있었음에도 이날 오후 6시 40분경 A 씨가 넘은 철책 광망이 울려 현장에 출동했던 초동조치반은 철책만 확인한 뒤 ‘이상 없다’고 결론 내렸다. 철책에서 북쪽으로 1km가량 떨어진 GP 보급로 일대에서 A 씨를 처음 인지할 당시 22사단은 그가 북한에서 넘어온 귀순자라고 오판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가 너무 걱정돼요. 아이들도 힘들겠지만 가정학습을 시키기로 결정했어요.” 코로나19가 어린이집 등을 비롯한 교육시설에서도 확산하는 가운데 한 주부가 최근 영유아 교육 정보를 공유하는 한 온라인 카페에 올린 글이다. 자신을 ‘워킹맘’이라고 밝힌 또 다른 학부모는 “어린이집에 (코로나19 확진자) 밀접접촉자가 발생했다는 전화가 와 일단 아이를 급히 하원시켰지만 대안이 없으니 아침마다 걱정 속에 등원시킬 뿐”이라고 썼다. 최근 어린이집을 비롯한 교육시설에서도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이 지속되면서 부모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12월 19~25일 교육시설 관련 확진자는 270명, 12월 26일~1월 1일 163명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서울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 중 교육시설 부문의 확진자가 가장 많았다. 서울 성동구에서 6세 남아를 키우는 워킹맘 이모 씨(42)는 “아이들이 어린데다 식사 시간이 있으니 유치원에서 마스크를 계속 끼고 있기가 어렵다”면서 “이미 여러 차례 같은 반 친구나 선생님이 확진돼 아이가 귀가했었는데, 그 때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나도 집에 와서 아이를 돌봐야 했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아예 보내지 않을 수도 없으니 어째야 하나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일부 가정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대신 ‘방문 돌봄 서비스’를 활용하기도 한다. 돌봄 교사가 가정으로 방문해 30분에서 수 시간 가량 돌봄, 학습, 미술 수업 등을 하는 서비스다. 7세, 2세 아이를 둔 문모 씨(40)는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며 둘째의 어린이집 등원을 미루고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가정 방문 돌봄 서비스 업체 ‘째깍악어’ 관계자는 “2020년 대비 지난해 신규가입자가 255% 늘었고, 최근에는 서비스 이용 문의가 더욱 잦다”고 말했다. 수업에 따라 다르지만 서비스에는 통상 시간당 1만5000원~2만5000원의 비용이 든다. 물론 이 서비스가 종일 돌봄을 대신해줄 수는 없기에 맞벌이 부모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광주에서 6세 남아를 키우는 김모 씨(39)는 “방문 돌봄 서비스를 2020년 이용했었는데 교사가 찾아오는 시간에 맞춰 누군가 집에 있어야 해 어머니께 부탁을 드려야 했다”며 “결국 어린이집에 아이를 다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오전에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려서 ‘뭐지’ 싶었는데 10분쯤 뒤에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어요.” 3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그랜드프라자 건물 2층에서 미용 매장을 운영하는 상인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이날 오전 11시 34분경 이 건물 지하 3층 기둥이 큰 소리와 함께 크게 파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건물 붕괴 우려가 제기되면서 입주민 등 60여 명에게 대피 명령이 내려졌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경찰과 소방, 고양시는 신고 접수 후 출동해 시민 접근을 제한하며 현장을 통제했다. 3호선 마두역 출구 일부도 통제됐다. 고양시는 “전문가의 육안 확인 결과 일단 건물 붕괴 위험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 3층 기둥 보수공사를 조속히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31일 오후 6시부터 건물에 대한 사용제한 명령이 내려져 안전이 완전히 확보될 때까지 진입이 금지된다. 사고가 난 건물은 마두역 8번 출구와 인접한 상가 건물로, 내부에 모두 18개의 점포가 입주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 앞에는 직경 5m, 깊이 0.5m의 도로 지반이 침하된 것으로 관측됐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건물 앞 도로 지반이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한 것은 4년여 전부터라고 한다. 옆 건물에서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하는 안모 씨(58)는 “최근 한 달 사이에 눈에 띄게 지반이 내려앉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고양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24일경 안전신문고를 통해 지반 침하 신고가 들어왔고, 자체 진단 후 전문가 자문이 필요하다고 판단돼 대기 중인 상황이었다”며 “지반 침하와 기둥 파손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주택가. 좁은 골목을 15분가량 걸어 도착한 박강훈(가명) 씨의 집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현관문 너머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이틀 전인 28일 오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사회복지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집 안에서 싸늘한 박 씨의 주검을 발견했다. 불이 켜진 전기밥솥에는 먹을 사람이 없는 밥이 담겨 있었다. 보온 시간으로 볼 때 박 씨는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 마지막 식사를 한 것으로 추정됐다. 범죄 정황은 없었다. 경찰은 검안의 소견을 바탕으로 박 씨가 25일경 급성 심장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박 씨의 유족을 수소문하고 있지만 30일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박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였고, 40대였다.○ 한파 속 홀로 숨진 ‘고위험 가구’크리스마스를 전후해 기초생활수급자의 안타깝고 외로운 죽음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연말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거리 두기가 강조되면서 주변과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홀로 임종을 하고 뒤늦게 주검으로 발견되는 고독사 사례가 적지 않은 것.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고시원 공용 화장실에서는 80대 고시원 주민 김장용(가명) 씨가 숨져 있는 것을 직원이 발견했다. 전날부터 화장실 문이 계속 잠겨 있었던 것으로 볼 때 김 씨는 27일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고시원 측에 따르면 김 씨는 2016년부터 이 고시원에 월세 20만 원을 내고 혼자 살았다. 다른 가족과 교류도 거의 없었다고 해 경찰이 김 씨의 시신을 수습했다. 종로구가 김 씨의 ‘무연고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이 고시원에서는 24일에도 혼자 살던 70대 주민 1명이 방 안에서 혼자 숨을 거뒀다. 2011년부터 거주해온 70대 강모 씨였다. 연락을 받고 찾아온 자녀가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렀다. 김 씨와 강 씨도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코로나19로 사회적 단절 심화고독사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더 악화되고 있다. 감염 확산을 우려해 일부 복지 서비스가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된 탓이다. 서울시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에서도 지병이 있는 1인 가구 등을 고독사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가구’로 분류해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고위험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대면 모니터링을 비대면 모니터링과 병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고위험 가구는 휴대전화가 없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아 관리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28일 숨진 채 발견된 김 씨도 이달에는 지자체 연락을 받지 못했다. 지자체 복지 담당자는 휴대전화가 있는 고시원 직원을 통해 김 씨의 건강상태 등을 간접적으로만 확인했다. ‘고위험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되던 교류 프로그램도 사실상 중단됐다. 종로구 주민센터 관계자는 “문화 체험과 한식 조리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었는데 코로나19로 2년째 멈춘 상황”이라며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교류를 활발하게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고독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감염병 사태를 핑계로 우리 복지 시스템이 가진 문제점을 덮어버리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안부를 확인하거나, 현관문만 열고 1, 2m가량 떨어져 잠시 대화하는 등 비대면 관리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석 달 새 부모를 연이어 잃고도 ‘혼자서 잘 살아보겠다’고 하더군요.” 경기 시흥시 연성동 행정복지센터 신미숙 복지팀장은 박재민(가명·17) 군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재민이는 올 7월 간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10월 어머니마저 숨지며 혼자가 됐다. 남은 건 부모님의 빚뿐이었다. 수년간 병원에서 지냈던 아버지는 개인회생 후 매달 18만 원씩 갚고 있었다. 어머니는 금리 연 10%의 카드론 450만 원을 남겼다. 재민이 통장으로 매달 기초생활 생계급여 55만 원이 들어오면 부채 상환 원금과 이자로 40여만 원이 빠져나갔다. 남은 돈으로는 먹거리를 사기도 어려웠다. 재민이 혼자 힘으로 빚을 처리할 수도 없었다. 민법상 친척 등이 친권자로 지정된 뒤 재민이를 대리해 채무 상속 포기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재민이는 그런 법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 재민이에게 최근 희망이 생겼다. 본보가 올 5월 ‘빚더미 물려받은 아이들’ 시리즈를 통해 빚의 대물림에 고통받는 아이들의 사연과 법의 허점을 지적한 뒤 정부가 ‘미성년 빚 대물림 방지 대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달 1일부터 부모 등 친권자가 사망하면 지방자치단체와 대한법률구조공단(구조공단)이 미성년자 유족의 채무 상속 포기를 일괄 지원하는 제도가 시행됐다. 재민이를 만난 후 신 팀장은 6일 구조공단으로 ‘위기아동 법률구조 요청서’를 보냈고, 구조공단은 최근 이모를 후견인으로 지정해 상속 포기 절차를 밟고 있다. 신 팀장은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재민이에게 (우리 사회가) 적어도 빚부터 물려주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구조공단에 따르면 대책 시행 이후 채 한 달이 안 된 28일까지 10명의 아이가 이 제도를 통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별도의 상속 포기 절차 없이도 미성년자가 재산보다 많은 빚을 물려받지 않도록 민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와 독일 등이 이미 유사한 법을 시행 중이다. 본보 보도 전후로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백혜련 의원 등이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없이 반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재산보다 많은 빚 떠안게된 미성년, 복지센터 직원이 법률구조 요청구조공단, 상속포기 절차 등 지원…전국 곳곳서 지원 요청서 보내와“복지 담당자가 선제적 발굴해 빚더미 안고 사회 첫발 막아야”부산에 사는 A 군(16)은 올 9월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어릴 적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잃은 A 군에게 남겨진 것은 아버지가 남긴 재산보다 많은 빚이었다. 자칫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뻔한 A 군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부산지역 복지센터의 한 직원이었다. 법무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가 연계한 ‘미성년 빚 대물림 방지대책’이 이달 1일 시행됐다. 부산 복지센터의 이 직원은 대책이 시행된다는 교육을 지난달 30일 대한법률구조공단(구조공단)에서 받다가 A 군의 사정을 떠올렸다. 이 직원은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아이의 이름 석 자가 뇌리에 계속 박혀 있었다”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빚까지 물려받은 아이라 더욱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직원은 다음 날 A 군의 고모를 통해 ‘정확한 부채 규모는 모르지만 A 군의 아버지가 재산보다 많은 빚을 남겼다’는 말을 듣고 곧장 경북 김천시에 있는 구조공단 본부에 ‘위기아동 법률구조 요청서’를 보냈다. 요청서는 이달 2일 도착했다. 대책 시행 하루 만이다. 구조공단은 A 군의 고모를 법정 후견인으로 신청한 뒤 상속재산 조회부터 상속 포기 절차까지 일괄 지원하고 있다. 구조공단에 따르면 대책 시행 이후 전국 곳곳에서 법률 지원 신청서가 도착했다. 그 결과 이달 28일까지 10명의 아이가 이 제도를 통해 빚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생후 6개월 된 갓난아기부터 18세 청소년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구조공단 내부에서도 “부모 등 친권자가 죽고 빚부터 물려받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복지 담당자가 선제적 발굴해야”법무부는 이달 1일 ‘미성년 빚 대물림 방지대책’을 발표하면서 친권자가 세상을 떠나고 미성년자만 남은 경우뿐 아니라 유족 가운데 친권자가 있더라도 별거 등의 사유로 법률 대리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적극 법률 지원에 나서달라고 지자체 등에 권고했다. 지난달 25일 세상을 떠난 아버지로부터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빚을 물려받은 B 양(2)도 지자체 담당자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채무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B 양에겐 상속 포기 등 법적 절차를 밟아줄 어머니가 있었지만 중국 출신으로 우리말이 서툴고 법 절차를 잘 몰랐다. 지난달 말 B 양의 어머니로부터 남편의 사망신고 서류를 접수한 제주시 한 주민센터의 정모 주무관은 제도 시행 하루 만인 2일 구조공단에 B 양의 구조 요청서를 제출했다. 정 주무관은 “외국인 어머니가 한국에서 법률적 행위를 하기 쉽지 않고, 한국어마저 서툴러 즉시 개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공단의 위승용 변호사는 “지금으로서는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자치단체 복지 담당자가 부모 등 친권자가 사망한 미성년 가정에 적극 개입해 사례를 발굴해야 ‘빚의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모가 남긴 재산 없다면 법률 지원 신청”이달 13일 구조공단에는 태어난 지 6개월이 갓 넘은 C 양의 ‘법률구조 요청서’가 들어왔다. 홀로 아이를 키우던 어머니가 지난달 세상을 떠난 뒤 복지시설에 맡겨진 아이였다. 친권자가 없다 보니 어머니가 남긴 재산과 빚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아이의 사례를 관리하는 대전지역의 한 복지 담당자는 “상속재산을 조회해 부채 규모를 파악하는 등 법률 지원이 필요하다”고 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구조공단은 “구체적인 부채 규모를 알지 못하더라도 아이가 친권자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다고 판단되면 대체로 빚이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선 구조공단에 법률 지원 신청을 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위 변호사는 “부모의 빚을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채가 불어날 수 있다”며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아이들이 빚을 떠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유채연 기자 y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