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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서울 신촌의 한 술집. 몇몇 음대생이 술잔을 나눴다. 작곡, 바이올린, 오보에 등 전공은 달랐지만 고민은 같았다. ‘클래식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취기가 오르자 하나둘 진심을 꺼내 보였다. 모두 같은 마음. “그래도 음악이 제일 재미있어.” “거리로 나가 보면 어떨까.” 누군가의 제안에 다들 ‘유레카’가 번쩍했다. “관객과 소통하면서 미래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음대생 40여 명이 클래식 버스킹(거리공연)을 하는 ‘후즈아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후즈아트 소속 이상준(23·계명쇼팽음악원 작곡과 3학년), 전용진(20·연세대 관현악과 2학년), 강연경 씨(20·성신여대 기악과 2학년)를 만나봤다. 청춘 음대생의 ‘클래식 먹고사니즘’. 알싸하게 시리면서도 근사하게 파릇했다. ○ 버스킹 해보니 어때? 이=내가 쓴 곡을 누가 들어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확인했어. 클래식은 물론 현대음악은 어렵다고 외면받는데, 버스킹을 통해 ‘작은 노력의 마법’을 발견했지. 예컨대 가사가 있거나 잘 알려진 클래식 곡을 섞으면 집중도가 높아지더라고. 전=음악 하는 기쁨 가운데 하나는 역시 소통이더라. 유럽은 춤추면서 클래식 버스킹도 하고 굉장히 발상이 다양하잖아. 물론 집집마다 바이올린 한 대쯤 있는 곳이니 단순 비교는 무리지만. 우리도 팝 오보이스트 이세림 씨나 바이올리니스트 제니윤 씨 등이 활동하며 지평을 넓히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지. 강=아무래도 한국 사회는 유럽보다 다소 각박하잖아. 버스킹을 해도 시민들이 즐길 여유가 없어 보일 때도 있었어. 클래식 팬들이 보수적인 편이라 다양한 시도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기도 하고. 하지만 중요한 건 즐거움 아닐까? 접근법이 다양해지면 취향에 따라 클래식을 골라 즐길 수 있잖아.○ 음악 계속 할 거야? 강=바이올린이 좋아 전공했는데 오케스트라 단원 되기가 이리 힘들 줄이야. 유학파에 고(高)스펙 지원자가 넘쳐나니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잖아. 바이올린은 취미로 남겨두고 임용을 준비하려고…. 음악 교사도 경쟁률이 어마하지만. 이=같은 과 한 학년 30명 가운데 1명이라도 작곡가가 되면 성공했다고 해. 작곡으로만 먹고살기? 진은숙 선생님(전 서울시향 상임작곡가)이 유일할 거야. 학계에 남으면 그나마 곡 발표할 기회가 생기니 대부분 교수를 꿈꾸지. 문제는 지망생이 점점 늘고 있다는 거야. 전=난 바흐가 정말 좋거든? 음악이 소름 돋게 계산적이잖아. 바로크음악 합주를 하고 싶은데, 국내에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가 유일하지. 그나마 한두 명 뽑는 오보에는 언제 선배들이 관둘지 몰라. 해외 취업도 고려하고 있어.○ 너네만 힘드니? 강=물론 취업난은 ‘전공 불문’이지만 우리 처지는 좀 특수한 편이지. 다른 친구들은 자격증을 딴다든지 ‘취업 준비’라는 게 있잖아? 우린 연주자가 아니면 진로가 너무 좁아. 대부분 학원이나 개인교습을 생각하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지. 전=교습비가 교수가 아닌 이상 10년 전 가격인 회당 5만∼10만 원 선이잖아. 근데 그것도 경쟁이 치열해서 구하기 힘들어. 얼마 전에 유학생 출신 개인교사를 시급 2만 원에 구하고 있단 얘기도 들리더라. 이=‘조성진 신드롬’ 이후 피아노 입시생이 2, 3배쯤 늘었대. 클래식 스타 탄생은 반길 일이지만, 다른 연주자가 설 자리는 좁아지는 역효과도 생기니 큰일이야. 양극화가 아닌 전체 파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할 텐데. 우리 버스킹이 이런 현실을 타개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어. 3명 모두=하여간 잊지 말자. 그래도 우린, 음악이 제일 재미있어.이설 기자 snow@donga.com}

“한국인이자 유럽인인 특성을 살려 한국과 세계를 잇는 무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석하는 각국 정상과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실내공연의 총괄감독을 맡은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얀센스 씨(43·사진)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벨기에로 입양된 한국인인 그를 6일 전화 인터뷰했다. ‘세계인의 화합’을 주제로 한 이번 공연에는 국내외 아티스트 3, 4개 팀이 참가한다. 그는 “한국의 멋과 세계의 멋을 고루 담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버려져 9개월 때 벨기에 가정에 입양됐다. 기타는 8세 때 처음 손에 쥐었다. 피아노를 치고 싶었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양부모는 어린이용 기타를 사줬다. 14세에 벨기에 청소년 콩쿠르에서 1위를 한 뒤 벨기에 몽스 왕립음악원, 파리 고등사범음악원, 브뤼셀 왕립음악원을 거치며 기량을 다졌다. 이후 미국 뉴욕 카네기홀을 비롯한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국 땅은 친부모를 찾기 위해 2006년 처음 밟았다. 한동안 한국에서 활동한 건 친부모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아직 친부모를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절반인 한국 자체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아내를 통해 한국 문화를 더 깊이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 관객과 호흡하는 공연은 정말 멋집니다.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한번 음악으로 통하면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무대에서 고국의 관객과 감정을 공유할 때마다 전율을 느낍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얼씨구 좋다!” 구수한 우리 소리와 피리 연주…. 지난해 2월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무대에 오른 ‘시너지’와 ‘피리협주곡’에는 한국의 정서가 진하게 묻어났다. 2015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상주작곡가로 1년간 활동한 재미동포 작곡가 이수연 씨(42·사진)의 작품들이다. 그는 올해 22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다시 상주작곡가로 선정됐다. 미국 뉴욕에 사는 그를 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열두 살 이후로 미국에서 살았지만 국악이 그렇게 좋았어요. 목사인 아버지가 한국에 다녀오실 때마다 구해주신 국악 음반을 듣고 또 들었죠.” 오케스트라와 소통하고 작품을 협연하는 상주작곡가는 흔치 않은 기회다. 그는 “국악에 대한 열정으로 좋은 점수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원래 공학도였다. 정보기술(IT) 붐이 한창인 시절 부모의 권유로 미국 새너제이주립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한데 오가며 듣던 음악 수업에 인생이 바뀌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악과 가까이 지냈어요. 부전공을 할 생각으로 음악 수업을 듣는데 언제부턴가 제가 자꾸 곡을 분석하고 있더군요. 결국 작곡과로 전공을 바꿨죠.” 이후 미시간대 작곡과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뉴욕으로 갔다. 유튜브와 책으로 국악을 배웠다. 이따금 뉴욕의 아마추어 한국 연주자와 교류했지만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2016년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2주간의 워크숍은 단비 같은 시간이었다. “서울과 전남 진도를 오가며 전통 가락과 장구 피리 대금 등 악기를 배웠어요. 짧은 시간이지만 국악의 맛을 익힐 수 있었죠. 이후 두 달간 몸과 마음으로 체득한 가락을 쏟아내 ‘시너지’를 완성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음악가의 천국’인 뉴욕에서도 국악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유명 작곡가인 조지 크럼과 루 해리슨도 한국 음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바이브레이션이 강한 국악의 음색은 깊고 슬프면서도 신명납니다. 최근 핫한 아프리카 음악 못지않죠. 요즘은 대금을 활용한 곡을 구상하고 있어요.” 그는 각종 페스티벌에서 창작곡을 선보이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2년에는 클래식 음악잡지 스트링이 선정한 ‘현악계를 한층 더 발전시킬 25인의 작곡가’에 이름을 올렸다. “뉴욕에서 동양인 작곡가로 살아가는 일이 녹록지는 않지만 후회는 없어요. 국악을 제대로 공부해서 동서양의 하모니를 선보이고 싶습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서울에서 평창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2시간 반 남짓, KTX로 1시간 반을 달려야 한다. 짧지 않은 거리다. 평창 가는 길, 음악으로 기분을 예열하는 건 어떨까. 자동차로 움직인다면 그룹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를 크게 틀어보자. 평창 겨울올림픽은 3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열정을 되새기면 뭉클함과 투지가 동시에 끓어오르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1988년 이후에 태어났다고? 걱정 마시라. 추억 없이 그냥 들어도 좋다. 미국의 록 밴드 밴 헤일런의 ‘점프(Jump)’, 스웨덴의 록 밴드 유럽(Europe)의 ‘더 파이널 카운트다운’도 두근거림 지수를 높이기에 좋다. 기차에서 지인과 이어폰을 나눠 꽂고 들을 음악으론 ‘피겨 여왕’ 김연아의 연기곡을 추천한다. 카미유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2009년 4대륙 피겨선수권 대회),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2010년 밴쿠버 올림픽 프리스케이팅), 만토바니의 ‘어릿광대를 보내주오’(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프로그램)가 대표적이다. 가족 단위로 이동한다면 영화 ‘겨울왕국’의 주제곡이 딱이다. 언제 들어도 좋은 ‘렛잇고’, ‘같이 눈사람 만들래?’, ‘사랑은 열린 문’으로 흥을 돋우자. 커플들은 눈싸움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제곡을 듣는 건 어떨까. ‘러브스토리’, ‘눈싸움’ 등의 잔잔한 음률이 설경과 만나 우주적 하모니를 선사할 것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평창 마운틴 클러스터, 강릉 코스털 클러스터, 아이스 아레나…. 평창 겨울올림픽에 가고 싶긴 한데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다. 문화 행사도 매일같이 열린다는데 어디에 어떻게 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 마음은 굴뚝같은데 아는 게 없어 좌절 중인 커플, 가족, ‘혼족’, 외국인 등 4색(色) ‘평알못’(평창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완전 정복 가이드를 준비했다. 평창 가는 길에 들으면 좋을 추천 음악도 담았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D-6일. ‘평알못’(평창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방대한 일정표 앞에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하고픈 건 많고 시간은 없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고 체험하고 먹어야 할까. 커플, 가족,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이 편한 ‘혼족’, 외국인을 위한 4색(色) 맞춤 가이드를 준비했다. ○ 커플-우리 둘이 분위기 있게 ▽관람 추천 경기 서늘한 공기 속에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다 보면 없던 정도 생기기 마련. 이 때문에 커플은 어떤 경기를 봐도 실패할 확률이 작다. 굳이 꼽자면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의 꽃’ 피겨스케이팅을 권한다. 새하얀 빙판과 클래식 음악이 잊을 수 없는 분위기를 선물할 것이다. 최신 시스템으로 온도 15도, 습도 40%가 유지돼 관람 환경도 쾌적하다. ▽경기장 볼거리 평창 올림픽플라자 문화ICT관에서는 신비한 빛의 세계가 기다린다. 건물 밖에서 시작되는 빛의 흔적을 좇다 보면 벽면을 가득 메운 불상 벽과 마주한다. 작품명은 류재하의 ‘한국을 느끼다’. 이어 텔레비전 모니터 166개로 만든 ‘거북’, ‘네온TV’, ‘비디오 샹들리에’ 등 백남준의 작품이 나타난다. 이중섭, 이응노 등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 20점도 전시됐다. 가상현실(VR) 체험존에서는 실제 눈밭을 질주하는 듯한 아찔함을 느낄 수 있다. ▽인근 즐길거리 ―대관령 하늘목장: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는 곳. 영화 ‘겨울왕국’ 속 못지않은 설경에서 눈썰매, 트랙터 드라이브 등을 체험할 수 있다. 033-332-8061 ―월정사 전나무 숲길: 일주문에서 월정사 앞 금강교까지 1km 남짓한 전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피톤치드 향이 그득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면 몸과 마음이 생기를 되찾는 듯하다. ―무이예술관: 2001년 폐교를 개조해 만들었다. 건물 내·외부에 그림과 조각 등이 전시돼 있는데, 평소 전시를 즐기는 커플이라면 가볼 만하다. 낡은 학교 건물에서 서로의 학창 시절을 공유하면 관계 지수가 ‘업’된다. 033-335-6700 ▽먹거리 평창군 봉평면 메밀거리에는 메밀 전문 음식점이 모여 있다. 봉평산 메밀에 간장소스와 마늘향으로 맛을 낸 메밀파스타가 별미. 김치나 나물을 넣어 부친 메밀전병, 시원한 메밀 막국수는 배불러도 맛보자.○ 가족-아이들과 시끌벅적 ▽관람 추천 경기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속도감 있고 경기시간이 짧은 썰매 종목을 추천한다. 썰매는 모양과 타는 방법에 따라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로 나뉜다. 스켈레톤은 썰매에 엎드려서 머리부터 내려온다. 루지는 썰매에 누운 채 발부터 하강한다. ‘빙판 위의 F1’으로 불리는 봅슬레이는 2명 또는 4명이 트랙을 고속 질주한다. ▽경기장 볼거리 평창과 강릉의 라이브 사이트에서는 매일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생중계하고 응원전을 펼친다. 경기가 없을 때는 난타, 케이팝 콘서트 등 공연이 열린다. 특히 강릉 라이브 사이트에서는 무료 개방 아이스링크 등 겨울 스포츠도 체험할 수 있다. 대회 기간에 투입되는 11종의 로봇 85대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 경기장 곳곳에 안내로봇, 서비스로봇 등이 배치된다. ▽인근 즐길거리 ―대관령 양떼목장: 올림픽플라자에서 차로 10분 거리. 한겨울엔 양들을 방목하지 않아 축사에서 건초를 주고 양털을 만질 수 있다. 설원 한가운데 오뚝 선 오두막을 배경으로 ‘가족 인생샷’을 노려봄 직하다. 033-335-1966 ―평창송어축제: 진부역 인근 진부면 오대천 일대에서 열리는 송어축제에서는 얼음낚시, 맨손잡기는 물론이고 얼음 자전거와 스케이트도 체험할 수 있다. 추위를 막기 위해 텐트를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하는 게 좋다. 033-336-4000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 진부역에서 차로 1시간 반 이상 걸린다. 다소 멀지만 국내에서 유일하게 탐험이 가능한 동굴이라 놓치기 아깝다. 일정을 확인한 뒤 예약하고 가면 배를 타고 동강이 품은 동굴 내부를 체험할 수 있다. 소요 시간은 1시간 반. 9세 이하 어린이와 65세 이상 노인은 입장할 수 없다. 033-334-7200 ▽먹거리 신나게 놀았으니 이제 먹을 차례. 평창군 대관령면 인근에 포진한 한우타운에서 가족 고기파티를 벌이는 건 어떨까. 한우의 대명사 횡성뿐 아니라 대관령, 강릉, 정선 등 강원도 전역에서 품질 좋은 한우를 맛볼 수 있다. ○ ‘혼족’-나 홀로 유유자적 ▽관람 추천 경기 프리스타일스키는 ‘설원의 꽃’, ‘설원의 곡예’라 불린다. 한 편의 행위예술처럼 화려한 공중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4명의 선수가 동시에 펼치는 공중곡예전은 혼자라도 외로울 틈을 주지 않는다. 경기 장소는 휘닉스파크리조트. ▽경기장 볼거리 강릉 올림픽파크에서는 매일 60여 명이 퍼레이드를 한다. 국방부 취타대가 대열을 이끌고 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가 뒤를 따른다. 뮤지컬 쇼 형식이라 남녀노소 함께 즐기기 좋다.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 ‘안성 남사당바우덕이축제’, ‘한복 플래시몹’ 등 신명나는 행사가 한가득이다. 밤을 아름답게 수놓는 ‘진주 남강 유등축제’, ‘서울 빛초롱축제’도 놓치지 말자. ▽인근 즐길거리 ―커피거리: 열 친구보다 커피 한 잔이 고마울 때가 있다. 아름다운 안목해변의 커피거리에서 인생 커피를 진하게 한잔 하자. 평소 소홀히 했던 독서, 걷기, 사색까지 더해지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경포대: 강원의 대표 관광지인 경포대에선 이달 25일까지 ‘파이어 아트 페스타 2018’이 열린다. 대한민국 전통 향가인 ‘헌화가’에서 영감을 얻어 해변에 설치된 미술작품을 정해진 기간에 불태우는 제의적인 행사다. ―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 주인장이 60여 년간 수집한 축음기, 오르골, 라디오 등 25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축음기 시절 아날로그 음악이 마련된 음악감상실은 방문객을 과거로 안내한다. 에디슨과학박물관에 전시된 에디슨의 대표 발명품 2000여 점도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033-655-1130 ▽먹거리 다리가 아파 오면 강릉역에서 차로 20∼30분 떨어진 주문진으로 이동하자. 홍게, 대게, 킹크랩, 랍스터 등 갑각류를 저렴하고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혼술’을 기울이며 고독을 만끽하자.○ 외국인-“아이 러브 평창” ▽관람 추천 경기 한국은 쇼트트랙 강국으로 통한다. 한국만의 노하우가 이어져 왔고 여기에 기술력이 더해지며 국제무대에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국 선수가 출전하는 경기장을 찾아도 좋지만 한국에 왔으니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뜨거운 응원 문화를 경험해 보길 권한다. ▽경기장 볼거리 평창 올림픽플라자 전통문화관에는 침선(바느질로 옷과 장신구를 만드는 것), 갓일(갓을 만드는 것) 등 무형문화재들의 시연이 마련됐다. 대금, 가야금, 판소리 등 전통 공연도 즐길 수 있다. 한옥으로 꾸며진 전통문화마당에서는 탈춤 공연이 열린다. ▽인근 즐길거리 ―오죽헌: 보물 제165로 지정된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생가. 강릉이 배출한 여러 문인과 예술인을 기리는 명소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다. 동절기에는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033-660-3301 ―강릉예술창작인촌: 오죽헌과 붙어 있는 이곳은 원래 초등학교였다. 학생들이 떠난 빈자리는 개성 넘치는 수공예 작품들이 채우고 있다. 2층 동양자수박물관에 전시된 수백 년 전의 자수들이 외국인의 구미를 당길 만하다. 033-642-2210 ―정동진: 1995년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정동진도 지척에 있다. 해안을 따라 뻗은 레일바이크, 모래시계 공원 등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먹거리 강릉 중앙시장에서 닭강정, 매운 칼국수, 감자옹심이, 아이스크림 호떡 등에 도전해 보자. 시끌벅적하고 푸근한 한국의 시장 인심은 덤이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영화더 포리너(사진)감독 마틴 캠벨. 출연 청룽, 피어스 브로스넌. 7일 개봉. 15세 이상웃음기 뺀 청룽표 정극 액션. 모든 액션을 대역 없이 소화한 그에게 박수를. ★★★(★ 5개 만점)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감독 유아사 마사아키. 목소리 출연 다니 가논, 시모다 쇼타, 에모토 아키라. 1월 31일 개봉, 전체관람가 시골 소년이 인어소녀를 만나며 벌어지는 성장 일기. 지난해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상 수상작. ★★★☆인시디어스4: 라스트 키감독 애덤 로비텔. 출연 린 섀이, 스펜서 로크, 조시 스튜어트, 하비에르 보테트. 1월 31일 개봉. 15세 이상귀신보다 무서운 그녀의 과거, 공포영화치곤 탄탄한 전개. ★★★ ■ 공연뮤지컬 ‘캣츠’ 내한공연 앙코르(사진)더 빨라지고 더 새로워졌다. 30여 년간 전 세계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 ‘캣츠’의 리바이벌 버전. 고양이 분장과 군무가 격동적으로 변했다. ‘메모리’ 등 유명 넘버를 듣는 즐거움은 여전하다. 1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5만∼15만 원. 1577-3363 ★★★☆연극 ‘템페스트’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우리의 전통적인 어법과 감성으로 재해석한 극단 목화의 대표작. 주인공 프로스페로가 가락국의 8대 왕인 질지왕으로, 나폴리왕 알론조는 신라의 20대 자비왕으로 바뀌었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삼국유사 속 캐릭터로 덧칠해 한국적 색채를 냈다. 21일까지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 전석 3만 원. 02-2261-0500 ♥♥♥(두근지수 ♥ 5개 만점) ■ 클래식금호아트홀 아름다운 목요일 알렉산더 크냐제브 첼로러시아의 첼리스트 알렉산더 크냐제브가 바흐 무반주 첼로 전곡을 연주한다.8일 오후 7시 서울 금호아트홀. 6만 원. 02-6303-1977첼로 거장 로스트로포비치의 후계자. 바흐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 ♥♥♥♥서울시향 2018 티에리 피셔와 르노 카퓌송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과 티에리 피셔가 협연해 뒤티외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들려준다.2월 9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1만∼9만 원. 1588-1210뒤티외의 대가 카퓌송과 피셔가 해석한 ‘한여름 밤의 꿈’. ♥♥♥♥ ■ 콘서트마마스 건(Mamas Gun)(사진)황금빛 솔, 디스코, 펑크 리듬 위에 현대적인 은빛 멜로디를 토핑한 영국 밴드.3일 오후 7시, 4일 오후 6시 서울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7만7000원. 02-563-0595박효신, 존 박에게도 작곡해 준 보컬 앤디 플래츠의 매끈한 선율 감각, 밴드의 뛰어난 라이브 실력. ♥♥♥♥원오크록(One Ok Rock)강렬한 록으로 일본을 넘어 세계로 위세를 떨친 일본 밴드. 2일 오후 8시 서울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 8만8000∼11만 원. 02-6925-1818밴드의 첫 일본 4대 돔구장 투어를 앞두고 펼치는 월드투어 중 서울 무대. ♥♥♥♥ }
서울 서초구청(구청장 조은희)과 W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김남윤)가 서초구 강남대로 서초문화예술회관 아트홀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9곡)을 일곱 차례에 걸쳐 공연한다. 2일 오후 7시 반 열리는 첫 공연에서는 교향곡 9번 ‘합창’을 선보인다. 이날 무대에는 합창단 W콘서트콰이어도 함께한다. 3월 9일에는 1·2번, 5월 29일에는 6번 ‘전원’을 연주한다. 이어 3번 ‘영웅’(6월 15일), 4·8번(10월 30일), 7번(11월 27일)이 무대에 오른다. 5번 ‘운명’은 12월 중에 연주할 예정이다. 금요일 공연(2일, 3월 9일, 6월 15일)은 무료로, 연주 당일 공연장에서 표를 받아 입장하면 된다. 화요일 공연은 유료(가격 미정)지만 서초구민, 학생, 국가유공자는 할인해준다. 02-2155-8301이설 기자 snow@donga.com}
정부가 북한의 금강산 공연 돌연 취소로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앞둔 공연장들도 애가 타고 있다. 2월 8일 강원 강릉아트센터에서,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지만 주무 부처인 통일부가 초청 규모는 물론이고 일반 관람객들의 입장 방식 등 기본 사항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릉아트센터 관계자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등 사전점검단이 다녀가고 일주일이 넘었는데 객석을 전부 초청석으로 할 건지, 선착순으로 관객들을 입장시킬지, 시민들은 어떻게 초대할지에 대해 정부가 아무런 언질이 없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공연장 측과는 상의 없이 일반 관람객을 다 초청한다고 발표해서 당황스러웠다. 애초부터 유료화 검토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극장 측도 이번 기회에 대국민 홍보를 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있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현송월 등 북측 점검단은 방남 당시 남다른 공연 의지를 피력했다고 한다. 남북 실무접촉에 참여했던 정치용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30일 취임 기념 간담회에서 “(900여 석 규모의) 강릉아트센터를 우리 측에서 제의하자 현 단장이 ‘900석으로 뭘 보여줍네까. 남측에서 확실히 뭔가를 보여줄 만한 공간이 더 없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 감독은 “(북측에서) 오케스트라 단원 140여 명 가운데 50∼60명이 무대 앞쪽에서 춤과 노래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문재인 정부에 평창 올림픽 기간 중 남측에 머물 북한 대표단에 대한 현금 지원 가능성을 두고 “우려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대화 국면이 시작된 이후 미 정부가 우리 측에 우려 섞인 의견을 전달한 것은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대화 과정에서 우리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알려 달라”고 말한 바 있다. 때문에 김정은이 평창 올림픽 전후 펼치는 유화 공세를 더 이상 지켜만 보지 않겠다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30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주말 외교 채널을 통해 북한의 고위급 인사, 응원단이 포함된 대표단에 현금, 현물 등이 전달될 가능성을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북한 대표단의 예상 동선도 알아봤다고 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형식은 문의에 가까웠지만 사실상 우리 정부의 평창 관련 행보를 지켜보다 브레이크를 한 번 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은 북측 대표단 방남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등을 위반했는지와 관련해선 “한국 정부의 판단이 우선”이란 취지의 메시지를 우리 정부에 알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이설 기자}

개성이 뚜렷한 세계적인 스타 3명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의 2월 무대에 오른다. 시작은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수드빈. 다음 달 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 브루크너 교향곡 제6번 등을 연주한다. 청량한 음색과 세련된 해석으로 스타가 된 그는 세계적 오케스트라들과의 협연과 다채로운 레퍼토리의 음반으로 사랑받고 있다. 지휘는 네덜란드 출신 안토니 헤르뮈스가 맡는다. 두 번째 주자는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이다. 9, 10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 수석 객원 지휘자 티에리 피셔와 협연한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프랑스 작곡가 앙리 뒤티외의 바이올린 협주곡 ‘꿈의 나무’ 등을 들려준다. 소프라노 이윤경과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함께한다. 마지막은 소프라노계의 샛별 율리야 레즈네바가 장식한다. 러시아 출신인 그는 22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헨델의 합주 협주곡 제4번, 비발디의 오페라 ‘그리젤다’ 중 ‘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를 부른다. 모차르트 오페라 ‘코시 판 투테: 여자는 다 그래’ 가운데 서곡과 아리아, 콘서트 아리아 ‘어찌 그대를 잊으리’, 퍼셀의 ‘아서왕 모음곡’, 텔레만의 ‘수상음악’도 선보인다. 바로크 음악 전문가인 폴 굿윈 카멀 바흐 페스티벌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는다. 14세기부터 현대음악까지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아우르는 그는 2007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작품을 훌륭하게 연주한 공로로 독일 할레시로부터 헨델 명예상을 받았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국내 재계 최고경영진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연령이 56.5세에서 59.3세로 2.8세가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기술 발전으로 첨단 경영기법이 쏟아지면서 젊은 피 발탁이 강세를 보였을 거라는 예측과는 상반된 결과였다. 정년 연장에 따른 여파라는 시각도 있지만 학계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베테랑을 이용한 안정 경영이 확산된 결과라는 해석에 방점을 둔다. 동아일보와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 중 금융감독원에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기업 대표이사를 대상으로 2008년 초와 올해를 기준으로 비교해 봤다. 조사한 결과 눈길을 끄는 변화가 적잖았다.》최근 10년 사이에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연령이 2.8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학계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젊은 피’ 발탁을 통한 공격 경영보다는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을 이용한 안정 경영이 확산된 결과라는 분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일각에서는 각종 규제로 투자 의욕이 떨어진 기업들이 성장보다는 현상 유지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26일 동아일보와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 중 금융감독원에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기업 대표이사를 대상으로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초와 올해 초 기준 경력을 비교 조사한 결과다. 이번 조사는 금융위기 발생 10년을 맞아 국내 대기업 컨트롤타워가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됐다. 조사 대상은 2008년 초 206개사 271명(공동 대표 포함), 올해 초 279개사 326명(공동 대표 포함)이다. 최근 10년간 인수합병(M&A)이나 법인 설립 등을 통해 늘어난 계열사를 반영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지 않아 인사 적체가 빚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기업에 있어 현상 유지는 죽음을 뜻하는 만큼 부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노련한 CEO 선호 지난해 10월 말 실시된 삼성전자 인사의 키워드는 ‘세대교체’. 권오현 부회장과 윤부근, 신종균 사장(당시 직책) 등 60대 대표이사들이 모두 물러나는 대신 김기남, 김현석, 고동진 사장 등 50대가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삼성에서 촉발된 세대교체 파도가 국내 기업들에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그러나 동아일보와 CEO스코어가 지난해 말 대기업들의 정기 인사를 반영해 집계한 30대 그룹 계열사 대표이사 통계는 이런 예상과는 달리 대표이사 평균 연령이 높아졌음을 보여줬다. 실제로 LG전자는 조성진 부회장(62)을 2015년 말 대표이사로 내정해 현재까지 회사를 이끌게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이상훈 전 사장(63)을 이사회 의장으로 내정해 젊은 대표이사들과 균형을 맞추도록 했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은 경기가 안 좋을수록 충성심이 강한 노련한 경영자를 찾는 경향이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금융위기 이후 대외적인 확장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수세적인 경영을 해왔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명문학교 비중은 줄어…‘간판’보다는 ‘실력’ 이번 조사를 통해 대표이사들의 출신학교 지형도가 바뀌었다는 점도 확인됐다. 우선 명문고 비중이 대폭 낮아졌다. 올해 초 기준 경기고 출신 대표이사 비중은 6.3%로 전국 고교 중 대표이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초(13.8%)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경기고와 함께 서울 지역 3대 명문고로 꼽혔던 경복고와 서울고까지 합치면 3개 학교의 대표이사 배출 비중은 이 기간 42.4%에서 15.5%로 크게 줄어들었다. 명문고 비중이 감소한 것은 1974년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추진된 고교평준화와 무관하지 않다. 대기업 요직에서 활약하던 비(非)평준화 세대들이 은퇴할 연령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그 대신 평준화된 다양한 학교들이 대표이사를 배출했다. 실제로 대표이사를 1명이라도 배출한 고교가 2008년 초에는 81곳이었지만 올해 초에는 101곳으로 늘어났다. 대학도 비슷한 양상이다. 이 기간 서울대 출신 비중이 34.1%에서 27.3%로 감소했다. 고려대는 15.2%에서 11.5%, 연세대는 12.5%에서 10.2%로 각각 떨어졌다. 이에 따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이른바 ‘SKY대’ 출신 대표이사 비중이 2008년 초 61.7%에서 올해 초엔 49.2%로 줄었다. 그룹별로 보면 삼성그룹이 같은 기간 53.8%에서 37.5%, 현대차그룹이 45.0%에서 40.9%, LG그룹이 85.7%에서 75.0%로 각각 떨어졌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고교 평준화 세대가 대표이사급으로 성장하면서 과거 명문고 출신 CEO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만 명문대 출신이 줄어든 것은 국내 기업의 인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내 기업의 경영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서 간판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정착된 결과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경영학과 출신 ↓, 이공계 출신 ↑ 대표이사들의 대학 시절 전공은 경영학이 제일 많았다. 올해 초 기준으로 전체 대표이사의 31.7%가 경영학도 출신이다. 대표이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도 서울대 경영학과(전체의 7.1%)였다. 하지만 10년 전과 비교하면 그 비중은 확연히 줄었다. 2008년 초 기준 경영학과 출신 대표이사 비중은 44.7%였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 비중도 10.1%나 됐다. 경제학과 출신 대표이사 비중도 같은 기간 17.4%에서 9.3%로 감소했다. 반면 공대 출신 대표이사 비중은 올해 초 기준 39.9%였다. 10년 전(34.8%)과 비교하면 5.1%포인트 높아졌다. 수학과 등 이과 계통 학과까지 합치면 46.4%까지 올라간다. 10년 전 이공계 출신 대표이사 비중은 43.2%였다. 이공계에서는 서울대 화학공학과가 대표이사 배출 1위였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등 대표이사 8명을 배출했다. 10년 전(4명)과 비교하면 갑절로 늘었다.송진흡 jinhup@donga.com·이설·이세형 기자}

‘경복고, 고려대, 경영학 전공, 56세, 남성.’ 올해 초 현재 국내 30대 그룹 주요 계열사에 근무하는 오너 경영인 102명의 평균 스펙이다. 동아일보와 CEO스코어가 금융감독원에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30대 그룹 계열사 279곳을 조사한 결과다. 평균에 가장 근접한 인물은 경복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재현 CJ그룹 회장(58). 전공이 다르고 나이도 두 살 많지만 평균 모델과 가장 비슷하다. 10년 전 평균 스펙은 경복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52.9세 남성이었다. 전공은 올해처럼 경영학과 출신이 가장 많았다. 당시 30대 그룹 계열사에 재직 중인 오너 경영인 85명 중에선 구본준 ㈜LG 부회장(67)이 평균에 가장 근접했다. 당시 57세로 경복고와 서울대 통계학과를 졸업했다. 올해 초 기준으로 오너 경영인 배출 1위 대학은 각각 17명이 나온 서울대와 고려대(비중은 각각 17.5%)였다. 10년 전에는 18명(21.7%)을 배출한 서울대가 1위였다. 고려대는 15명(18.1%)으로 2위였다. 해외 유학파가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해외 대학 가운데 미국 브라운대가 올해 3명(3.1%)이나 돼 가장 많았다. 서던캘리포니아대(2명)와 베네딕트대(1명) 등은 새로 이름을 올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조현상 효성 사장 등이 브라운대에서 수학했다. 학과별로는 8명(8.6%)이 졸업한 고려대 경영학과가 10년 전(5명, 비중은 7.4%)과 마찬가지로 1위 자리를 지켰다. 이어 각각 3명(3.2%)을 배출한 고려대 법학과와 연세대 경영학과가 그 뒤를 이었다. 출신 고교는 경복고가 2008년 초(23.3%)와 올해 초(20.3%) 모두 압도적인 1위였다. 오너가가 몰려 있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이나 성북구 성북동 등과 경복고가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인권 교육은 어릴 때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생에게 맞는 교육 모델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만들었죠.” 최근 ‘인권수업’(지식프레임)이란 책을 펴낸 서울 강서구 발산초등학교 교사 이은진 씨(37)는 초보 교사 시절 ‘왕칼(왕카리스마) 선생님’이라 불렸다. 잘못은 엄하게 다스리고 잘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아 붙은 별명이었다. 하지만 5년쯤 지나자 상벌에 기초한 이런 통제 방식에 강한 회의가 들었다. 야단을 치는 강도가 갈수록 강해진 데다 아이들도 버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씨는 “처음에 따뜻하고 친절하게 학생들을 대했더니 교실이 엉망이 됐다”며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니 ‘3월에는 웃지 마라’ ‘깐깐하게 굴어라’고 했다. 이후 교실은 조용해졌지만 아이들이 나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교사와 학생의 수평적 관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행동이 아이들의 자기결정권에 상처를 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학생들의 인권에 눈을 뜨게 된 계기다. 하지만 막상 인권 교육을 하려니 자료가 부족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시민 강좌를 참고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교육 모델을 만들었다. “왕칼 시절 ‘왜요?’ ‘안 돼요?’는 저희 반 금지어였어요. 학생은 어른(선생님)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작은 일도 함께 풀어가려 합니다. 예컨대 말투가 거친 아이에게는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선생님이 무안해. 표현을 조금 바꾸면 어떨까’라고 동의를 구하는 식이죠. 4학년 사회시간 ‘일하는 사람들’ 단원에서는 ‘노동’(블루칼라)과 ‘근로’(화이트칼라)라는 단어에 담긴 편견을 들여다보는 등 교과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인권을 다룹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교실의 위계질서 안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을 살피는 일이다. 교실에도 힘의 피라미드가 있는데, 그 속에서 존재감이 약한 아이들은 자기결정권을 침해받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하지 마’라고 하면 편하지만 금지는 근본 해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랍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고고(孤高) ― 김종길(1926∼2017)북한산이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밤사이 눈이 내린,그것도 백운대나 인수봉 같은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을 하듯가볍게 눈을 쓰고깵신록이나 단풍,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눈이래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로는 드러나지 않는,심지어는 장밋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하는,그 고고한 높이를 회복하려면백운대와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기다려야만 한다.12월에는 김종길 시인의 시 ‘성탄제’를 빼놓을 수 없다. 산타 할아버지의 옷보다 더 붉고, 선물보다 더 고마운 아버지의 사랑이 ‘성탄제’에 담겨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김종길의 또 다른 명편 ‘고고’ 역시 겨울의 작품이다. ‘성탄제’가 깊게 뜨거워지는 시라면, 시 ‘고고’는 높게 차가워지는 시다. 사람은 모름지기 뜨겁게 사랑하되 고고하게 높아져야 한다는 뜻인 걸까. 물론 시인은 이런 메시지를 위해 두 편의 겨울 시를 쓴 것이 아니다. 그런데 김종길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자꾸만 ‘성탄제’와 ‘고고’가 겹쳐져서 생각된다. 생전의 그는 어린 후학에게도 존대하고 예의를 지키는 분이었다. 원고를 부탁하면 원고지에 직접 글을 적어 우편으로 전하는, 그러면서도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분이셨다. 만날 때마다 ‘저런 분을 어른이라고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사람의 품위란 무엇일까 생각하며 ‘고고’를 읽는다. 시에는 정좌하고 앉은 북한산이 우뚝하다. 신록과 단풍을 털어내고 원래 모습 그대로 솟은 산이야말로 기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겉치레와 허세가 난무하는 세상에 이렇게 고고한 사람, 즉 어른들이 많아질 필요가 있다. 그 좋은 본보기였던 시인은 지난봄에 별세하고 없지만, 시가 남아 사람의 고고한 품격을 지지하는 듯하다.나민애 문학평론가}

다시 한 해가 끝나갑니다. 새로운 한 해가 곧 시작됩니다. 나이 들수록 시간의 흐름이 더 빨라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새해 인사를 나눈 지가 어제 같은데 며칠 남지 않은 2017년의 날들이 ‘마지막 잎새’처럼 펄럭입니다. 생각해 보면 ‘한 해’라고 하는 것은 인류가 인위적으로 나눈 시간 단위일 뿐입니다. 한 달, 하루, 한 시간, 일 분, 일 초 모두 같습니다. 동식물의 세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봅니다. 나누기는 보통 무엇인가를 통제하려고 하는 짓입니다. 무거운 물건을 나르기 전에 하는 해체도 나누기입니다. 요리책에 나오는 1, 2, 3, 4 순서도 나누어서 하라는 지침입니다. 시간 단위도 나누기의 산물입니다. 세상을 등질 때까지, 100년을 한 단위로 여기며 산다면 어떨까요? 지루하기도 하겠지만 우선, 개인의 삶에서 100년이라는 시간을 한 뭉치로 다루기는 뇌의 정보 처리 능력으로도 불가능합니다. 둘째, 나누어지지 않은 평생에 주는 학점은 낙제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쁜 일 51%, 좋은 일 49%인 인생의 분류는 실패작입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을 나누면 달라집니다. 올해는 좋지 않았지만 내년은 잘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깁니다. 어제는 힘들었지만 오늘은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합니다. 오전은 집중, 오후는 늘어지게 쉬는 융통성도 확보됩니다. 나누기의 지혜는 시간의 무한성을 내 손으로 통제 가능한 유한성으로 바꿉니다. 주중과 주말을, 근무시간과 퇴근 후 시간을 나누어 행복지수를 높입니다. 구분 없이 멋대로 섞인다면 정말 끔찍할 겁니다. 시간 나누기는 상업적으로도 활용됩니다. 연말에 백화점 등이 벌이는 대대적 할인행사는 유한하다는 착각을 소비자들에게 불러일으킵니다. 우리 모두 다 똑같은 행사가 내년에도, 그 뒤에도 계속된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2017년 마지막 행사’ 광고는 2018년이 없을 것 같은 환상을 유발합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더군다나 사려고 하는 물건이 몇 개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장이 뛰고 혈압이 올라갑니다. 현장으로 갑니다. 사람이 몰릴수록 사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그냥 나오면 인생의 실패자로 전락한 느낌이 듭니다. 할인행사 전 1만 원을 할인 후 5000원으로, 반값 가격표는 시간의 전후를 영리하게 비교해 보여줍니다. 홈쇼핑 방송의 ‘남은 시간’ 자막은 더 극적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압박합니다. 연말까지는 꼭 이루겠다는 결심을 많은 사람들이 합니다. 12월 31일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닻 없이 풍랑에 흔들리는 쪽배의 신세가 될 것입니다. 마감일은 마음을 쫓는 사냥개입니다. 새해가 밝은 1월 1일의 역할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난다 해도 첫날 없이는 새로운 출발이 불가능합니다. 새해에는 취직을 하겠다, 돈을 모아서 원하는 것을 사겠다, 낡은 관계는 지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겠다 등등의 계획 수립은 어려워질 겁니다. 올해 12월 31일과 내년 1월 1일은 단 하루 차이이지만 끝과 시작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느끼는 차이는 엄청납니다. 연말은 뒤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이때 조심해야 합니다. 미처 이루지 못한 일보다는 이미 이룬 일에 집중해서 자존감을 올려야 합니다. 이루지 못한 일은 늘 확대되어 마음을 후벼 팝니다. 연말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교는 슬픔, 불안, 우울의 씨앗이자 열등감을 찍어내는 공장입니다. 올해가 엉망진창이었어도 완전히 망치지는 않았습니다. 실패의 경험은 오래 간직해야 할 좋은 교과서입니다. 올해 안에 미처 이루지 못한 계획이 있다면 12월 31일 이전에 빨리 내년 365일을 더해 2년짜리 계획으로 변경합시다! 마음이 편해집니다. 단, 새해 할 일은 한 해가 아닌 월별로 나누어, 미루지 말고 단계별로 마치도록 합니다. 연말에 버리고 갈 것은 자신의 삶에 점수를 매기지 못해 안달하는 버릇입니다. 연말연시만이라도 ‘멍 때리며’ 살아봅시다. 출연자들이 순위를 다투며 경쟁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시청을 피하길 권합니다(관계자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합니다). 맥주를 마시고 닭튀김을 먹으면서 넋을 놓고 보아도 상을 타거나 출연료를 받는 사람은 어차피 남이고 내가 아닙니다. 비교만 되고 살만 찝니다. 대리만족? 어렵습니다! 깊이 있게 제작된, 삶의 고뇌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청을 추천합니다. 정 힘들면 그저 살아서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합시다. 후회와 우울감이 불쑥 올라올 때 복식호흡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새해 계획 수립에도 너무 애쓰며 매달리지 맙시다. 어차피 구체적인 실행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혼돈스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목적이 더 크다고 봅니다. 대강 하도록 합시다. 목록 몇 개만 만들면 ‘시작이 반!’이라는 착각에 빠져 마음이 편해집니다. 종이에 크게 적어 눈앞에 붙여 놓으면 한동안 동기부여도 됩니다. 하루 24시간, 한 달 약 30일, 한 해 365일이라는 시간 단위는 결국 삶의 경험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우리의 치열한 몸부림입니다. 하나씩 올라가는 계단과 같이 다음 층에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릴까 하는 궁금증 겸 두려움, 다시 한 번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제공해 줍니다. 우리의 삶이 두려움과 희망의 비빔밥이라면 잘 비벼야 맛있습니다. 아니면 한쪽은 고추장이 몰려 너무 맵고, 다른 쪽은 대책 없이 싱거워서 먹기가 거북할 겁니다. 하루 한 장씩 뜯을 수 있는 일력을 좋아합니다. 새해 첫날을 보내고 한 장을 뜯어도 무려 364장이 남습니다. 365일을 한 장에 몰아 한눈에 보이도록 친절하게(?) 찍어 낸 종이를 보면 광속으로 엄습해 오는 공황을 애써 막아야 합니다. 비슷한 이유로 전자수첩보다는 종이수첩을 선호합니다.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고 여기저기 쉽게 넘겨 볼 수 있으며 전기 없이도 작동하고, 자손들에게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습니다. 혹시 유명해지면 박물관에 보존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 하루하루가 귀한 연말입니다. 뜻깊게 보내려 해도 후회와 다짐 속에 어영부영 흘려보내기 쉬운 시간이기도 하지요. 이럴 때일수록 계획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2017년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으신가요? 》 새해엔 더 사랑하게 하소서“이 나이가 되고 보니 식솔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그렇게 뿌듯합니다. 올해엔 다 같이 교회에서 연말을 보내고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게 소원인데 아마 불가능하겠죠? 마음먹기 나름인데 아이들 생각은 저와 다른가 봐요.”―이문수 씨(71·부산 거주) “올해 아빠가 우울증으로 고생하시다가 최근에 발작 증세를 보여 입원까지 하셨어요. 엄마가 일을 하셔서 늘 곁에 계시지 못해 (결혼해 떨어져 사는) 제가 수시로 찾아뵀는데 잘 모시지 못했어요. 모든 일에 트집을 잡아 괴롭히니 저도 한계가 오더라고요. 죄송한 마음을 담아 연말에 가족파티를 열고 손편지를 드릴 계획입니다.”―현모 씨(39·직장인) “12월 30일부터 나흘간 영국 런던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여자친구가 1년 전 유학을 떠났는데 영상통화로는 그리움이 해소되지 않아 비행기 표를 끊어버렸죠. 함께할 시간은 하루 이틀 남짓에 표값은 150만 원이 넘지만 개의치 않아요. 지구 반 바퀴를 날아가 함께 새해를 맞을 생각을 하니 설렙니다.”―하모 씨(33·유통업계 종사) “올해엔 유독 학교 과제, 과외, 다문화가정 자녀들 멘토링 봉사 등으로 바빠 고향에 거의 못 갔어요. 그래서 연말에 부모님과 함께 4박 5일간 대만으로 여행을 다녀오려 합니다. 대만은 모녀끼리 함께한 첫 여행지인 데다 어머니가 특히 좋아하는 나라예요. 10년 만의 가족여행을 앞두고 마음이 뿌듯하네요.”―한송희 씨(23·대학생) “아들 며느리가 두 돌 된 손녀를 저한테 맡기고 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 파리로 여행을 떠나요. 친구들은 평소에도 맞벌이하는 아이들 대신 육아로 고생하는데 여행 갈 때도 아이를 떠맡기느냐며 눈을 흘기던데 저는 좋아요. 힘들지만 손녀딸 보는 게 놀이이자 휴식이고, 요즘 유일한 기쁨이거든요.”―김란희 씨(60대 주부) 함께 웃으면 복이 와요“명동성당은 매년 그해의 주요 사건에 따라 주제를 바꿔 건물을 장식합니다. 2018년은 주교좌 명동대성당이 봉헌된 지 120년이 되는 해라서 신자의 메시지 120개를 새긴 원형판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뜻에서 304개의 별을 장식했죠. 이런 상징물들이 상처받은 이웃에게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정혜원 씨(51·주교좌 명동대성당 사목협의회 기획홍보봉사 분과장) “구세군은 전국 410여 곳에서 자원봉사자 6만 명이 12월에 집중적으로 모금활동을 합니다. 명동은 최초로 모금을 시작한 장소이고 고액 기부자도 많아 책임감을 갖고 일하죠. 명동의 모금액은 하루 평균 50만∼100만 원 정도입니다. 모금액이 가장 큰 곳은 잠실 롯데월드와 코엑스 쪽이죠.”―변종혁 씨(37·구세군 사관학생) “8년 전부터 남는 시간에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장애인 분들을 위한 김장, 이발, 병원 환자안내 등을 하는데 봉사활동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주부라서 연말에도 시간이 나는 편이고, 이제 주기적으로 뵙지 않으면 그분들 얼굴이 눈에 밟혀요.”―강모 씨(59·주부) 바쁘지만 이 맛에“연말에는 송년회 등으로 술자리가 많아져 폭행사건이 늘어납니다. 음주운전도 많아지고요. 그래서 지역 순찰근무와 음주운전 측정을 평소보다 강화하죠. 고되지만 ‘경찰관들 덕분에 든든하다’는 인사를 받으면 힘이 납니다. 그 맛에 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한모 씨(27·경찰관) “학생들 방학, 크리스마스, 신정, 설 명절에 맞춰 개봉하는 영화가 많아서 영화사는 연말에 훨씬 바빠요. 그래도 올해의 마지막을 그냥 보내긴 싫고 잠을 줄여서라도 송년회엔 꼭 참석하려고 해요.”―이모 씨(27·영화사 직원) “이벤트 업체는 연말에 평소보다 예약이 3배까지 많아져요. 저희 가게는 프러포즈 같은 이벤트를 주로 진행하는데 예약이 꽉 찼습니다. 노래 부르기, 맞춤 케이크 선물 등 방식은 제각각인데, 최근에 언어장애가 있는 손님이 한 프러포즈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두 분 다 장애가 있어서 시각적 효과에 최대한 신경을 썼는데, 정성껏 준비한 영상편지를 재생하니 두 분이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분들 덕분에 뿌듯한 마음으로 연말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이모 씨(34·더 로즈 신도림점 운영) 부대에서 보는 일출은 싫어“TV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크리스마스와 새해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습니다. 군 복무 중인데 다들 같은 생각이라 연말 휴가 신청이 밀려 있습니다. 부대에 남아 있으면 새해 첫날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뒷산에 올라가 해뜨는 것도 봐야 하거든요. 피곤한 일이죠. 내려와서 먹는 떡만둣국은 괜찮지만요….”―이민주 씨(23·군인) “올겨울이 끝날 때까지 ‘집순이’ 생활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한 달 전에 첫아이를 출산했거든요. 조리원 생활을 거쳐 집에 갇힌 지 2주째인데 답답증이 심해서 걱정이에요. 아기가 밤낮 구분 없이 2시간마다 울어대니 시간 감각이 무뎌지네요. 창밖엔 눈이 펑펑 내리고 TV에선 연말 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되는데 저만 딴 세상 왕따가 된 기분이에요.”―손지영 씨(34·회사원) “내년 2월에 회계사 시험이 있어서 ‘열공 모드’를 유지해야 합니다. 요즘 오전 8시 반부터 다음 날 오전 1시 반까지 매일 거의 15시간씩 공부하고 있어요. 학원에선 더 배울 게 없을 것 같아서 혼자 공부하는데 외롭고 우울하고 때론 좌절감도 듭니다. 하지만 시험이 코앞이니 바깥 분위기는 모른 척 달려야죠.”―안찬희 씨(25·대학생) 내가 더 소중해 “방학식 다음 날인 12월 30일에 스리랑카로 떠날 계획입니다. 헤르만 헤세가 쓴 ‘인도 여행’이라는 책에 ‘스리랑카는 원시성을 간직한 나라’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책을 읽고 여행지를 스리랑카로 정했어요. 여행을 다녀오면 조금은 욕심을 내려놓고 새해를 맞을 수 있겠죠.”―신모 씨(56·중학교 교사) “여든이 넘었어도 평소엔 생각 없이 지내다가 연말이 돼야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네요. 올해엔 벗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시기마다 부침을 겪다 보니 남은 인연이 그리 많지 않네요. 손녀에게 ‘지금 친구를 많이 만들어 둬라. 친구가 자산이다’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이형래 씨(83·서울 구로구 거주) “11월에 오래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연말에 집중적으로 다친 마음을 돌보려 합니다. 한 시기를 지나갈 때는 정리를 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이 생기는데 그러지 못해서 힘들었어요. 혼자 작은 서점 투어를 하면서 불필요한 감정은 싹 털어 버리려고요.”―홍지수 씨(30대 직장인)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청담동 숍에 가서 피부 관리와 머리 손질을 하고 치과에서 미백치료도 받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못 입어본 지 10년 넘은 화려한 원피스 차림으로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신년을 맞을 거예요. 아이 셋을 줄줄이 낳으며 10년 넘게 주부로만 생활하니 미친 듯 일하고 놀던 예전의 제가 그립습니다. 두 달 전부터 남편에게 한풀이 한 번만 하게 해달라고 작업 중입니다.”―김유경 씨(39·세 아이의 엄마) “추억이 깃든 여행지에 가서 그곳의 일상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20, 30대 시절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그중에서 스코틀랜드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다국적 친구들과 ‘디기디비딥’으로 한마음이 됐던 밤과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령투어’가 특별했죠.”―김모 씨(40·IT업계 종사) 이설 기자 snow@donga.com·조경준 인턴기자 한국외대 경제학과 3학년}

영화배우 정준호 씨(사진)가 불교계 장기기증 운동단체인 생명나눔실천본부(이사장 일면스님)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생명나눔실천본부는 20일 서울 종로구 본부에서 위촉식을 열고 “장기기증의 활성화와 생명 나눔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적극 나서달라”며 정 씨에게 위촉장을 전달했다. 정 씨는 장기기증 서약서에 서명하며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에 동참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994년 설립된 생명나눔실천본부는 보건복지부 지정 장기기증 희망등록 전문 홍보·교육 기관으로, 장기기증 희망등록, 자살예방센터 운영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혼자’와 ‘시간’은 저의 오랜 화두예요. 누구나 혼자만의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마련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56)가 1일 새로운 책 공간을 선보인다. 금액에 따라 정해진 시간 동안 마음껏 책을 골라볼 수 있는 일명 ‘혼자의서재’다. 책방 한 층 아래에 위치한 ‘혼자의서재’에 들어서자 유럽의 여느 집 거실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벽난로와 붙박이 서재로 꾸민 거실을 지나니 장서 2000여 권이 꽂힌 서가가 나왔다. 미로처럼 뻗은 좁다란 길 끝마다 웅크리고 있기 딱 좋을 공간이 숨어 있었다. “모처럼 시간이 났는데 집에 있긴 따분하고 카페는 시끄럽고. 책을 읽다가 쉬다가 명상을 하는 등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마침 SK D&D의 지원으로 오랜 구상을 현실화 할 수 있었죠.” 이용료는 2시간에 3만 원, 4시간에 4만5000원, 1일 6만5000원. 다소 비싸지만 대부분 신간으로 구성된 ‘책방마님’의 추천 책 이용권과 커피 1잔, 약간의 베이커리가 포함된 가격이다. 크고 작은 도서관과 서점, 북카페가 넘쳐나는 요즘 이곳만의 장점은 뭘까. “서가의 큐레이션과 옆 사람과의 간격, 의자 종류까지 세심하게 고려했어요. 잠시라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분들이 오실 것 같아 ‘최인아책방’에 비해 문학 비중은 늘리고 경제·경영 서적은 줄였죠. 의자는 편안함을 고려해 암체어, 소파베드, 리클라이너로 구성했습니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등의 명카피로 잘 알려진 최 대표는 2012년 제일기획 부사장직에서 물러나 지난해 8월 책방으로 제2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지난 1년 4개월이 마치 10년 같다”며 “힘들지만 ‘쓰임’이 있다는 점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손님들이 ‘강남에 책방을 열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때 더없이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하면서 다른 이에게 도ㅇ움이 된다는 점이 이 일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참, 카피라이터로 활동할 때와 달리 내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점도 좋고요.(웃음)” 그는 “전문가 추천 코너를 마련하고 매달 자신이 추천한 책을 배달하는 ‘북클럽’ 서비스도 계획 중”이라며 “책과 함께 비우고 채우고 사유하는 충만한 ‘혼자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바람에 어깨가 움츠러들고 손발이 곱습니다. 온통 잿빛 차림의 거리 풍경에 마음까지 칙칙해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추위에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추위를 모르는 사람처럼 당당히 겨울을 맞기 위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월! 동! 준! 비!“열대지방 동물인 코끼리는 날씨가 추워지면 눈물이 많이 맺혀서 거품이 일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타고난 조건과 다른 환경에 사느라 고생하는구나 싶어 안쓰럽죠. 사자나 원숭이 우리에는 열선바위(따뜻한 바위)와 열등이 있습니다.”―고슬기 씨(31·서울대공원 사육사) “남극은 여름철에도 기온이 보통 영하 15도, 흐리면 영하 30도까지 떨어져요. 현장에 나가면 보통 1주일 정도 머무는데, 모든 종류의 식음료가 다 얼어버려요. 코가 얼면 콧물이 나오는 줄도 몰라서 얼굴이 참혹해지죠. 물이 부족해 며칠 동안 씻지 못하고 침낭에 들어가면 몸냄새가 훅 올라오는 것도 고역입니다.”―허순도 씨(52·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극지고환경연구부 부장) “올해엔 분홍, 초록 등 강렬한 색깔의 털이 장식됐거나, 무채색이 아닌 튀는 색상의 패딩이 인기죠. 부츠는 양말처럼 신는 양말부츠가 세계적인 ‘핫템’으로 떠올랐어요. 부츠가 발목을 두툼하게 감싸면 종아리가 굵어 보이는데, 양말 부츠를 신으면 발목라인을 살릴 수 있습니다.”―정혜미 씨(33·롯데백화점 홍보팀 과장) “자동차 월동 준비는 냉각수 부동액 관리가 가장 중요한데요. 실외 주차장의 경우 최저기온을 파악한 뒤 정비소에서 그보다 5도 더 낮게 부동액 비중을 낮추는 게 좋습니다. 지나치게 낮은 온도에 대응하려 하면 부동액의 점성이 높아지면서 차가 고장 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임기상 씨(59·자동차10년타기운동본부 대표) “저는 추위를 즐기는 편이에요. 웅크리고 벌벌 떨기보다는 가슴을 펴고 맞서면 추위가 좀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겨울 액티비티 스포츠를 즐깁니다. 부모님과 태백산 등성이를 따라 겨울 등산도 가고 일본에 스노보드도 타러 가죠. 새벽 겨울산에 오르면 칼로 베이는 듯 볼이 따가운데, 그 느낌도 은근 중독성이 있더군요. 하하.”―임성빈 씨(33·유통업계 종사) ‘깔깔이’를 아시나요?“저희 가족의 겨울 실내복은 일명 ‘깔깔이’입니다. 어른은 물론 두 살, 여섯 살 딸도 아래위로 깔깔이 패션을 하고 있어요. 어느 날 인터넷에서 유아용 깔깔이를 보고 너무 귀여워서 호기심에 구입했는데 가볍고 따뜻하고 활동하기도 편하더군요. 잘 때는 난방텐트를 쳐서 난방비를 절약합니다.”―서은미 씨(37·서울 마포구) “족열기와 다리 마사지기, 발열 신발깔창 없이는 겨울을 날 수 없어요. 20년 전 군대에 다녀온 뒤 몸이 곯았는지 겨울만 되면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거든요. 일할 때는 발열깔창을 깔고, 집에 가서는 바로 족탕을 한 뒤 다리 마사지를 해요. 올해인 신발 바닥에 열선을 깐 발열신발을 구매할 예정입니다.”―박모 씨(40대 중반·자영업) “USB메모리를 이용한 각종 발열용품들이 올해에 특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발열 방석, 마우스패드, 접이식 등받이 히터, 신발, 귀마개, 담요, 책상보, 손난로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제품이 발열 기능을 갖췄죠. 특히 보조배터리 겸 손난로로 쓸 수 있는 발열 손난로가 아이디어 상품 중에선 돋보입니다. 중소기업의 1만∼6만 원대 제품들이 주를 이룹니다.”―황훈 씨(38·쿠팡 홍보팀 차장) 먹는 것이 제일 중요“평소 소화가 잘 안 되고 체하는 경우가 많거나 손발이 차면 추위를 잘 타죠. 이런 분들은 걷기 등 운동을 꼭 해야 합니다. 신체 부위 중 허벅지가 끌어올리는 체온이 전체 몸 중 40% 가까이 차지하거든요. 음식 중에는 양파 마늘 인삼 생강 대추 계피 등이 체온을 높이는 데 좋습니다.”―이상곤 씨(52·갑산한의원 원장) “저는 생강 마니아예요. 홍삼은 비싸서 못 먹고 몸속까지 후끈하게 해주는 음식은 생강이 제일이거든요. 생강차는 물론 생강 절편, 생강 과자, 생강 절임 등을 입에 달고 살죠. 그중 특히 좋아하는 건 생강 절편인데, 집에서 만들어 먹어요. 생강 껍질을 일일이 벗긴 뒤 꿀과 설탕을 버무려야 해서 만드는 과정은 만만치 않지만 쓴맛과 단맛의 조화는 그 어떤 간식도 못 따라갈 걸요?”“―손은정 씨(39·서울 성동구 거주) “겨울에는 특히 단백질을 잘 챙겨 먹어야 합니다. 체온이 1도 떨어지면 면역력은 반으로 떨어지는데 단백질이 면역에 좋거든요. 두부탕, 두부콩전, 꼬막·홍합·피조개를 넣은 조개전 등을 별미로 추천합니다.”―임경숙 씨(59·수원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추위가 두려운 사람들“한파가 다가오면 공무원들이 침낭, 깔개, 패딩 등을 주지만 영하의 추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에요. 밤을 보낼 수 있는 실내 시설이 많지 않아 서울역이나 유리문이 갖춰진 종로 지하철 역사에서 박스집을 만들죠. 일단 잠들면 괜찮은데, 잠들기까지가 고역이에요. 등에서 한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거든요.”―김모 씨(노숙인) “반지하 단칸방에서 두 아이와 함께 지내요. 건물이 오래되고 허술해서 겨울엔 칼바람이 그대로 들어와요. 외풍 때문에 밥 먹거나 공부할 때도 아이들은 이불 뒤집어쓰고 생활해요. 화장실이 제일 문제예요. 바깥 화장실과 다름없는 공기의 화장실에서 두 살 된 딸을 씻기면 피부가 빨갛게 터요. 로션을 사 바를 형편도 안 되고….”―이모 씨(경기 부천시 거주) “혹한기 훈련은 생각만 해도 머리털이 비쭉 솟아요. 손끝, 발끝, 귀끝이 얼어붙는 감각이 되살아나거든요. 군에서 귀마개, 목도리, 안면마스크, 장갑 등을 주는데 올겨울에는 비니가 추가됐어요. 지급차에서 밍크내복, 양말 등을 살 수 있지만 민간 쇼핑몰을 더 자주 이용합니다. 왠지 더 ‘간지’나는 것 같거든요.”―이상일 씨(21·군인) 럭셔리 월동?!“2, 3년 전부터 캐나다 북부 옐로나이프와 아이슬란드 등의 오로라 관련 상품이 인기입니다. 항공편이 적다 보니 300만∼500만 원대로 비싼 편인데도 특별한 경험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은 백두산 온천을 많이 찾고, 신혼부부는 따뜻한 남반구의 호주 여행을 선호합니다.”―류민우 씨(30·하나투어 홍보팀) “중학교 2학년인 큰딸이 얼마 전 방탄소년단이 광고하는 퓨마 롱패딩을 사달라고 하더군요. 그건 20만 원대 후반이라 비싸서 대신 10만 원대 초반의 다른 브랜드 제품을 사줬어요. 앞으로 3년간 패딩은 없다고 못 박으면서요. 덩달아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도 패딩 타령을 하는데, 브랜드에 눈뜨는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것 같아요.”―신지원 씨(47·중학생 자녀 학부모) “저는 모피를 좋아해요. 패밀리세일이나 시장을 이용하면 가격도 많이 다운돼서 살 만하고(그래도 최소 100만 원은 훌쩍 넘지만), 모피 하나만 걸쳐도 스타일이 살거든요. 최근 밍크나 여우를 산 채로 잡는 영상이 퍼지면서 모피 반대 운동이 열을 띠고 있는데, 모피를 입는다고 무작정 타인을 비난하는 분위기는 불편해요. 가치관과 취향이 다른 거잖아요.”―신모 씨(40·직장인) “요즘 20만∼30만 원짜리 롱패딩이 ‘신등골브레이커’라며 일부 학교에서 금지령을 내렸다는데, 그건 ‘오버’ 같아요. 몇 년 전 노스페이스는 70만∼80만 원대라 등골브레이커라 할 만했지만 롱패딩은 따뜻한 데다 교복보다 저렴하잖아요. 그게 싫으면 교실을 따뜻하게 해주든지요.”―이모 양(17·고등학생) “저희 때는 교복 재킷에 목폴라, 귀마개, 장갑, 모자 이런 것들로 버텼고 일부만 떡볶이 코트로 멋을 냈죠. 요즘엔 가을에는 브랜드 조끼에, 겨울에는 패딩에 난리더군요. 사실 5만 원대 이월상품도 쓸 만한데 아이돌을 광고모델로 내세워서 학생들을 유혹하는 기업들이 문제라고 봐요.”―박수진 씨(25·학원강사) 이설 기자 snow@donga.com}

“‘짠테크’족도 ‘욜로’족도 비난의 대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 나름의 욕망이 있을 테니까요. 다만 돈에 상처받는 소비는 ‘나쁜 소비’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짠테크’와 현재를 즐기자는 ‘욜로’의 기 싸움이 팽팽하다. 지난달 24일 만난 경제생활교육계 대모인 박미정 푸른살림 대표(44·사진)는 “독하게 아끼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저축할 이유를 찾지 못해 가진 돈을 탕진하는 이들도 있다”며 “그 나름대로 까닭이 있기에 무조건 비난할 순 없다”고 말했다. 다만 “돈을 쓰거나 못 쓰는 데서 상처를 받는다면 소비 패턴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읽지도 않는 책을 잔뜩 사 모으는 탓에 월세를 내지 못하는 A 씨, 알고 지내는 모두에게 밥을 사느라 원할 때 여행을 가지 못하는 B 씨 모두 나쁜 소비의 사례예요. 돈을 쓰고 나서 후회하고 정작 필요한 건 하지 못해 슬퍼하죠. 내가 내 돈을 쓰고도 스트레스를 받는 건데 ‘밸런스 소비’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절약과 자기만족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 원하는 건 누리고 후회할 소비는 줄이자는 밸런스 소비는 짠테크와 욜로의 중간 개념. △지출 내용을 쓴 뒤 식비 문화생활비 품위유지비 등으로 분류 △욕망의 우선순위에 따른 소비를 하고 있는지 확인 △욕망을 억누르지 않는 방향으로 소비 방향을 조정하는 순서를 따른다. 박 대표는 금융계에 종사하다가 개인 파산까지 한 경험을 토대로 생활경제교육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저서 ‘적정소비생활’로 이름을 알린 뒤 최근 대형 포털에서 오디오 방송을 시작해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지름신’과 ‘탕진잼’ 같은 유행어는 모두 소비에 대한 죄의식을 담고 있죠. 하지만 욕망은 인정받고 이해받아야 해요. 소비를 하기 전에 필요 순위를 따지는 습관을 들이면 어느덧 밸런스 소비가 몸에 밸 겁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소리든 춤이든 몸을 따라가는 장단은 전 세계에 국악이 유일합니다. 조선시대 세종 이후 궁중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악보 없이 구전으로만 수세기 이상 이어 왔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최근 만난 ‘국악 전도사’ 남궁연 씨(50·사진)는 이렇게 말하며 열정과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펼쳤다. 노트북에서 보여준 동영상에는 여인의 노랫가락에 맞춰 한복 차림의 무용수가 유연한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민요 배따라기를 버클리 출신 음악감독(김진수 민경훈)이 편곡·연주한 곡인데 한국 무용 춤사위와 절묘하게 어우러지죠?” 또 다른 동영상에서는 한 여성이 오묘한 음악에 맞춰 ‘각기춤’과 발레를 섞은 듯한 춤을 췄다. “아쟁, 거문고, 장구로 즉흥 연주한 곡에 강효형이 안무한 국립발레단의 리허설 장면이에요. 국악처럼은 들리지 않죠?” 드러머, 라디오 DJ, 강사, 연출가, 크리에이터 등 수많은 직함을 가진 남궁 씨는 요즘 국악에 ‘다걸기(올인)’ 중이다. 지난 1년간 ‘2017 대한민국 무형문화재대전’에 올릴 공연을 준비해 왔기 때문. 26∼29일 전북 전주시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열리는 이번 무형문화재대전에서 그는 무형문화재 이수자들이 중심이 된 ‘이수자 합동공연: 시간의 단면’을 기획·감독했다. “지난해 국악방송 DJ를 하면서 매주 한 명씩 명인들을 만났어요. 클래식으로 치면 지휘자 카라얀급의 대가들과 1년간 만난 것이죠. 그분들의 공통된 바람 중 하나가 성공한 예술인이라는 결과보다 과정의 고통을 봐 달라는 거예요. 그런 바람과 젊은 국악인이 대를 잇는 과정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공연 제목을 ‘시간의 단면’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는 클래식처럼 국악이 널리 향유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책 차원에서 이뤄지던 국악과 다른 예술 분야의 협업이 조금씩 자발적인 차원으로 넓어지고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발레리나 김주원 씨는 스페인 국립무용단 수석 김세연 씨와 함께 소리꾼 이나래의 ‘닻’이란 곡에 안무를 입혀 무대에 올린다. 남궁 씨는 “다른 예술 분야의 유명인들이 국악을 활용해 많은 작품을 만드는 것을 돕고 싶다”며 “이런 노력이 계속된다면 언젠가 국악에서도 멋진 히트곡이 나오는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남궁 씨에게 이번 공연은 더욱 각별하다. 그간 국악 공연을 많이 연출했지만 욕심을 완전히 버리고 준비한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 “정신 차리고 만든 첫 공연이니 ‘감탄’을 넘어 ‘감동’을 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공연뿐 아니라 한지공예, 매듭 팔찌, 강강술래 등도 체험할 수 있으니 많이 와서 우리 문화를 즐겼으면 합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