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가운데 1악장 카덴차 부분을 직접 작곡할 정도로 에너지를 쏟아 준비했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29일 오후 8시 열리는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의 52주년 기념 정기연주회 무대에 서는 피아니스트 원현정(33)의 목소리에는 열정이 넘쳤다. 이날 서울아카데미 앙상블은 정치용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레스피의 ‘옛 춤곡과 아리아 조곡’,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 등도 연주할 예정이다. 원 씨는 피아니스트로서 무대에 서기까지 수많은 시련을 극복해왔다. 네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예원학교를 졸업했지만 일반고인 이화여고에 진학했다. “혹독한 연습에 지쳐 돌연 피아노가 싫어졌다”는 이유에서 였다. “제게 다시 용기를 주신 것은 어린 시절 스승님이었어요. 제게 ‘재능이 있으니 피아노를 다시 쳐보라’고 설득하셨지요. 결국 대학에서 피아노과로 진학한 뒤에 마음 가는 대로 음악을 하며 피아노에 대한 흥미를 되찾았죠.” 그는 이화여대 피아노과를 거쳐 미국 이스트먼음대 석사, 미시간대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영국 왕립음악학교에서 최고연주자 과정도 이수했다. 그런데 석사 1년 차 때 건초염(힘줄을 덮고 있는 건초에 생기는 염증)이 찾아왔다. 2년 동안 건반 앞에 앉을 수조차 없어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밑바닥에서 헤매던 어느 날, 팔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직 음악에, 선율에 감동한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벅찼어요. 힘들 때면 팔을 쓸 수 없었던 그 시절을 떠올려요. 모든 음이 제자리에 놓인 듯한 ‘건반 위의 음유 시인’머리 퍼라이아(미국)의 연주를 동경해요.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여성만으로 구성된 실내악단인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은 ‘한글날 노래’ 등을 작곡한 고(故) 박태현 작곡가와 당시 서울시향 여성 단원들이 1966년 ‘서울 여성 스트링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1984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1991년 대만 정부 초청 연주 등 350여 차례 해외공연을 소화해 왔다. 3만∼5만 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인공지진, 동성애 혐오 응원, 벌금 1000만 원…. 단 한 경기 만에 역대급 일화를 많이도 남겼다. 멕시코 축구팬은 열정과 과격의 경계에 걸친 팬심으로 ‘자국 선수단마저 외면한 워스트팬(worst fan)’이란 오명을 썼다. 어찌 됐든 한국에 이들은 위협적인 12번째 선수다. 한국 응원단이 분발해야 하는 이유다. 23일 밤 12시 멕시코와의 일전에 앞서 양국의 응원단 대결 포인트를 들여다봤다. ○ 축구사랑: 추억 vs 열기 “아내의 반대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 친구 하비에르예요.” 최근 멕시코 방송에서 희한한 장면이 방영됐다. 월드컵을 보기 위해 러시아에 건너온 여섯 남자가 사람 크기의 종이 인형을 데리고 다니며 먹이고 입히고 재웠다. 동창생인 이들은 수년 전부터 러시아 월드컵 여행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곗돈을 붓고 중고 스쿨버스를 산 뒤 멕시코 상징색과 문양으로 차를 꾸몄다. 하지만 그들 중 하나인 하비에르는 아내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친구들은 함께하지 못한 하비에르의 종이 인형과 축구여행을 다닌다. 한국의 축구사랑은 2002년 이후 세계적 수준으로 달아올랐다. 월드컵을 개최한 경험과 각종 드라마를 거듭하며 이룬 4강 신화는 ‘꿈에도 못 잊을’ 국민 추억으로 꼽힌다. 이후 대표단의 성적에 따라 부침이 있었지만 축구에 대한 관심은 늘 보통 이상이다. 월드컵은 당연히 챙겨봐야 할 이벤트가 됐고, 월드컵 기간엔 각종 ‘특수’가 넘친다. 멕시코의 축구사랑은 훨씬 전면적이다. 멕시코 교민이나 한국의 멕시코인들은 “한국은 일부 광팬을 제외하곤 월드컵 시즌에만 전 국민적인 응원 열기가 끓어오른다. 멕시코는 늘 열기로 뒤덮여 있고, 월드컵 기간엔 활화산처럼 열기가 폭발한다”고 했다. 이번 월드컵이 멕시코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현지 언론은 “6월 말에 8강 진출이 결정되면 7월 1일 대선 투표율이 낮아지고, 그러면 지지율이 높은 좌파 후보가 불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현지 응원: 대통령 포함 1000여 명 vs 3만 명 한국과 멕시코 경기에는 멕시코 팬 3만여 명이 찾을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 등 외신은 “멕시코 팬이 거리를 점령했다. 어디를 가도 아즈텍 복장을 한 초록전사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멕시코는 월드컵을 인생 이벤트로 여기는 이들이 상당수다. 4년간 돈을 모아 축구여행을 떠나고 다시 귀국해 일하다 축구여행을 계획하는 식이다. 송기진 주멕시코한국문화원장(45)은 “멕시코인들은 뭐든 한번 빠지면 끝장을 본다. 취미 이상으로 취미를 즐기는 문화가 보편적”이라고 했다. “멕시코는 빈부격차가 심해요. 과거 식민시대 토지 재벌이 적지 않아 이들은 여유롭게 축구여행을 즐기죠. 그렇다고 저소득층은 축구여행을 떠나지 못하느냐. 그들도 갑니다. 월급이 30만∼40만 원 선인데 매달 5만∼10만 원씩 저축해서 축구여행을 가는 거죠.” 6월 흥행 돌풍을 일으킨 축구 관련 코미디 영화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나타내 보인다. 영화 제목은 ‘너는 나의 열정(res mi pasion)’. 멕시코 프로축구단 ‘크루스 아술’에 빠져 직장과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축구광의 이야기를 다뤘다. 주인공은 영화 마지막 순간에야 삶의 균형을 되찾고자 마음먹는다. 송 원장은 “저소득층 축구 광팬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몇 달간 응원 여행을 하고 돌아와 다시 직장을 찾는다. 영화의 인기는 내용이 그만큼 실감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관중은 최대 1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붉은악마’ 등 응원단은 갓을 쓰고 전통 복장 차림으로 외국인 관중에게 한국 홍보를 하는 등 수적 열세를 만회하려 애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경기장을 찾아 힘을 보탠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표팀 월드컵 경기를 관전하는 건 16년 만에 처음.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경기장을 찾은 바 있다. 해외에서 열리는 A매치 관전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 거리응원: 광화문광장 vs 소칼로광장 한국은 2002년 월드컵 응원 역사를 새로 썼다. 거리응원, 붉은악마, 월드컵 베이비, 축맥(축구&맥주), 월드컵 여신 등으로 대표되는 응원 문화를 꽃피웠다. 이후 성적에 따라 들쑥날쑥했지만 응원 문화는 진화를 거듭하며 이어지고 있다. 이번 월드컵 열기는 다소 식었다. 하지만 ‘애국심’을 덜고 해외 경기를 응원하는 등 응원 문화는 한층 성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에도 곳곳에서 거리응원전이 열린다. 서울에선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영동대로 일대, 연세로, 스타필드 하남 아쿠아필드 등에서 응원전이 준비돼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 야탑역 광장,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과 원마운트 이벤트 광장, 인천 동인천역 북광장, 경기 수원월드컵경기장에도 스크린이 걸린다. 스포츠펍에서 새벽을 불태우는 방법도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봉황당’과 상수동 ‘더그아웃’, 서울 이태원 ‘커넉스’ ‘샘라이언스’ 등이 있다. 스포츠펍이 아니라도 ‘축맥’ 프라임타임을 준비하는 호프집이 적지 않다. 회사원 김주한 씨(43)는 “동네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모바일로 삼삼오오 축구를 즐길 것”이라고 했다. 멕시코에서는 20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멕시코시티 소칼로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경기를 본다. 경찰의 통제하에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며, 경기 후엔 20여 분 떨어진 레포르마 거리로 몰려가 축제를 즐긴다. 18일 멕시코-독일전 땐 광장에만 7만5000명이 몰렸다. 이르빙 로사노가 선제골을 넣은 순간, 이들이 동시에 발을 구르는 바람에 인공지진까지 감지됐다. 오전에 경기가 끝나면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종일 거리에서 여흥을 즐기는 게 일반적이다. 여차 하면 1박 2일로 잔치판을 벌인다. 멕시코인인 구스타보 산체스 계명대 컴퓨터공학과 조교수(29)는 “멕시코에선 집이나 펍, 거리에서 응원을 한다. 주로 맥주에 감자칩이나 땅콩 같은 간단한 안주를 곁들이며, 경기 후엔 테킬라도 마신다. 거리에선 음주가 불법”이라고 했다. ○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 vs ‘야 야 야이 송’ 한국의 공식 월드컵 응원가는 2002년 이후 조금씩 변해 왔다. 2002년 발매된 응원가 음반 ‘꿈은 이루어진다’에 수록된 ‘오 필승 코리아’(윤도현밴드)와 ‘Into The Arena, 아리랑’(신해철)이 히트했다. 2006년 발매된 응원가 음반 ‘Reds, Go Together’에서 록그룹 트랜스픽션이 부른 ‘승리를 위하여’도 명곡으로 꼽힌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응원가 앨범 ‘위, 더 레즈(We, the Reds)’에는 빅스의 레오와 걸그룹 구구단의 김세정이 부른 ‘우리는 하나’ 등이 실렸다. 멕시코는 ‘시에르토 린도’라는 노래를 떼창(떼로 부름)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율에 단조로운 가사 등 응원가로선 최적의 요소를 갖췄다. ‘야 야 야 야이야’라는 후렴구가 유명해 ‘야 야 야이 송’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후렴구에 ‘푸토(puto)’라는 욕설을 붙이는 게 문제. 독일전 때도 후렴구에 욕설을 섞어 국제축구연맹(FIFA)이 멕시코축구협회에 벌금 1000만 원을 매겼다. 이에 멕시코축구협회 측은 자국 팬들에게 욕설 자제를 당부했다. AP통신은 “멕시코의 가장 큰 적은 다음 상대인 한국이 아니라 자국 팬”이라고 전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악보가 아닌 내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가 있어요. 음악과 함께 한없이 자유로운 그 순간을 사랑합니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립교향악단 사무실. 북유럽을 대표하는 노르웨이 태생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57)를 만났다. 농구 선수처럼 큰 체격이지만 미소와 말투는 더없이 온화하다. 그는 21, 22일 ‘트룰스 뫼르크의 엘가 ①②’, 23일 ‘실내악 시리즈Ⅲ: 트룰스 뫼르크’ 무대에 오른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 E단조와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제2번 F장조, 슈만의 피아노 사중주 Eb장조 등을 연주한다. “엘가 곡은 여러모로 ‘작별’의 정서와 맞닿아 있고, 브람스 첼로 소나타는 강렬한 선율이 매혹적이에요. 실내악은 브람스와 슈만의 관계를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울 겁니다.” 뫼르크는 첼리스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를 뒀다. 처음엔 아버지 친구에게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11세부터 아버지에게 첼로를 배웠다. 피아노, 바이올린과 달리 첼로는 처음부터 내 악기다 싶었단다. 그는 “작은 실수도 못 견디던 나와 달리 아버지는 여유가 넘치는 분이었다. 아버지의 너그러움 덕분에 첼로를 더 사랑할 수 있었다”고 고인이 된 아버지를 떠올렸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수제자인 프란스 헬메르손, 러시아 첼리스트 나탈리아 샤콥스카야 등을 사사한 그는 각종 콩쿠르를 휩쓸며 유럽과 미국에서 활약했다. 하나 2009년, 느닷없는 시련이 닥쳤다. 뇌염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왼쪽 팔이 마비된 것. “병이 낫는다면 매 순간 기쁘게 힘껏 살아내겠다고 기도했어요. 2년 뒤 기적처럼 병이 나았고 예전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 조금은 여유가 생겼죠. 여전히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실수를 해도 크게 자책하진 않습니다.” 첼로를 켜지 않을 땐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역사적 맥락에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사한다”며 최근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를 추천했다. “심준호 이경윤 등 2명의 한국인 제자를 뒀어요. 이번 무대는 제자 심준호와 함께해 기대가 큽니다.” 21, 22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 1만∼9만 원. 23일 오후 5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1만∼5만 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1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서울시향의 차이콥스키 협주곡’. 오후 8시에 시작한 공연은 10시를 훌쩍 넘겨 끝났다. 지휘봉을 잡은 러시아 출신 바실리 페트렌코(42)는 관객석에 강력한 음악적 쾌감을 안겼다. 첫 곡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캐나다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가 무대에 올랐다. 연미복 차림의 두 남자가 눈짓을 주고받고선 눈을 감았다. 에네스의 연주는 눈부시게 정확하고 빨랐다. 노승림 음악평론가는 “20세기 줄리아드 학파의 연주를 최고 수준으로 구가하는 연주자”라고 그를 평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제2번 E단조엔 전성기 시절 라흐마니노프의 예술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휘자 페트렌코는 이 작품에 대해 “구체제가 붕괴되고 혁명으로 전환기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탄생한 작품이라 역사 속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소개했다. 이 곡은 연주 시간이 1시간이 넘어 종종 40분 내외로 줄인다. 시향은 전체 버전을 연주했지만 지루하진 않았다. 페트렌코는 자칫 놓치기 쉬운 작곡가의 의도를 꼼꼼히 반영해 음악적 재미를 살렸다. 각 파트는 정확히 때를 맞춰 치고 빠졌다. 페트렌코는 영국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과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유럽연합 청소년 오케스트라 등 3곳에서 상임 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서울시향 단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의 리더십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페트렌코는 연주 전 기자 간담회에서 “지휘자는 지휘봉을 갖고 지휘하지만 ‘지휘봉은 소리 내지 않는다’고 배웠다”며 “단원들을 통해 소리가 만들어지기에 단원들을 존중해야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고작) 이걸 위해 그렇게 대대적인 선전을 한 거야? (늘 자랑하던) ‘거래의 기술’은 어디 갔지? 이게 다인가?’ 지난해 영국 BBC의 ‘화제의 방송사고’로 스타가 됐던 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인 12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보여준 태도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국제협약을 탈퇴하며, ‘파투’(화투에서 판이 무효가 되는 것)도 불사하던 것과는 사뭇 달라 의아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대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치밀한 포석(布石)에 ‘말린(?)’ 것일까. 아니면 비즈니스 게임의 고수로서 최후의 순익을 즐기려는 것일까. ○ 사업가 출신의 거래 본능 트럼프 대통령의 잘 알려진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는 사업가로서의 거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중 하나가 불확실한 리스크를 피하려 한다는 점과 ‘을’이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에서 도박이 합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고 한다. 5000달러면 살 수 있던 가정집이 30만 달러로 오르더니 나중에는 100만 달러까지 간 것.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투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합법화 전에 사면 큰 차익을 벌 수 있지만 만약 안 될 경우 물거품이 되기 때문. 카지노는 수익성이 엄청난 사업이기 때문에 돈을 더 주더라도 합법화가 된 후 입지가 좋은 곳을 골라 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1977년 애틀랜틱시티에서 도박이 합법화한 후 3년이 더 지난 1980년 카지노 사업을 시작했다. 트럼프보다 먼저 사업에 뛰어든 업체들이 공사 지연, 공사비 부족, 카지노관리위원회의 허가 거부 등의 어려움을 충분히 본 뒤였다. 호텔 공사도 서두르지 않았다. 통상 다른 업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기 위해 호텔 공사와 카지노관리위원회의 허가 절차를 동시에 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확실하게 카지노 영업 허가를 받은 뒤 공사를 시작하기로 하고, 만약 인허가가 지나치게 늦어지면 땅을 팔고 사업을 접겠다는 방침으로 협상에 임했다. 일단 호텔 공사를 시작하면 물러날 곳이 없기 때문에 카지노위원회가 이런저런 요구를 할 경우 거절할 수 없어 계속 끌려다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코가 꿰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피한 셈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돌출적이고, 불확실적이며,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다른 면모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언제 어떻게 상황이 달라질지 모르는 게 국제 정세인데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과 시간까지 명기할 경우 당장은 찬사를 받겠지만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길 경우 미국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모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과정이 명시될 경우 미국 입장에서는 속된 말로 ‘한 번에 다 털어먹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이후에는 차질이 생길 때마다 비판만 들어야 하는 반면에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과 시간표를 명기하지 않으면 향후 성과가 나올 때마다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공이 된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비핵화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데 11월 선거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한 방’에 털어먹기보다는 성과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것이다.○ 명분보다는 이익 대표적인 게임 이론 중 하나인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자동차 게임으로, 서로 마주 보고 달려오다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지는 경기다.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1000억 달러 추가 관세 부과를 지시하고 8, 9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을 보이콧하는 등 다른 나라가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놓는 치킨게임 전술을 자주 써왔다. 물론 그 기저엔 명분이나 고상한 가치가 아닌 ‘머니’가 깔려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적 마인드를 그대로 드러냈다. 북-미 정상회담 후 한미 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고 있다. 한국도 돈을 내고 있지만 100%는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반 정치인들이 비록 속마음엔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에둘러 말하거나 다른 비유적 수사로 표현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적나라한 화법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도 외교안보의 관점이 아닌 사업과 미국의 이익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종수 교수는 “핵이 당면한 문제인 우리에게는 비핵화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철저한 해체 프로세스가 우선이지만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비핵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신들의 이익이 더 큰 고려 사항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꿰뚫은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 엔진 시험장 파괴라는 선물을 안겼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자신의 실적으로 자랑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CVID를 명기하기보다는 북한이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하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약속을 하나하나 이행하면 이를 비핵화 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포장해 성과를 낸 것처럼 알리려 할 것이라는 얘기다.○ 게임은 계속된다 트럼프의 방식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할지는 미지수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이다. ‘허가’를 받아내고 ‘돈’을 버는 게 부동산 개발의 목적이다. 하지만 사적 재화를 다루는 비즈니스와 공적 재화를 다루는 정치는 다르다. 정치 영역은 경제적 이익 외에 고려해야 할 가치가 많다”며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국적으로 게임의 승리자가 될지를 놓고도 관측이 엇갈린다. 이한영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외교 분야의 경우 극단적으로 막장까지 갔을 때 겪을 파국이 전쟁”이라며 “파국의 상황이 (경제 분야보다) 훨씬 심각하기 때문에 양측이 협상에 더 조심스럽게 임하게 되고, 그래서 더 좋은 협상을 이끌어낼 가능성도 높아진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사업을 할 때보다 덜 저돌적일 수밖에 없었을 테고, 또 이번 회담은 순차게임이라 아직은 결론 내리기가 이르다”고 말했다. 안세영 성균관대 국제협상전공 특임교수는 “트럼프가 마치 양보처럼 보이는 통 큰 협상전략을 쓴 것으로 본다”며 “북한이 예전처럼 잔재주를 부리면 반격 전략으로 거칠게 나올 것”이라고 했다. 실제 김정은 일가가 과거처럼 미국을 상대로 장난치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른바 참수작전 등으로 자신을 제거할 수 있는 미국에 대해 갖는 불안감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 그러나 종신 집권자이자 국가 오너인 김 위원장으로선 임기가 정해져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자기 나름대로의 장기적인 스케줄을 갖고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진구 sys1201@donga.com·이설 기자}

“최근엔 뇌과학 관련 책을 읽고 있어요. 사람의 감정, 심리, 사고의 회로가 궁금해서요.” 한국계 최초로 BBC 선정 신세대 예술인에 선정된 미국 국적의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24)에겐 ‘나이보다 성숙한 연주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13일 전화로 만난 그는 “할머니 손에서 자라 다소 조숙한 편이다. 연주가 성숙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했다. 에스더 유는 미국 뉴저지주에서 나고 자라 6세 때 벨기에로 이주했다. 바이올린을 처음 접한 건 4세 무렵. 당시 뉴욕 스즈키아카데미 4년 과정을 8개월 만에 끝내 신동 소리를 들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3위), 퀸 엘리자베스 바이올린 콩쿠르(4위)에 모두 최연소 입상했다. 2014∼2016년엔 한국계 최초로 BBC 선정 신세대 예술인에 선정됐다. “할머니가 피아니스트셨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취미로 각각 바이올린과 피아노, 플루트를 배우셨어요. 태아 때부터 클래식을 접한 셈이죠.” 평소에도 클럽보다 독서나 등산을 즐겨 ‘젊은 할멈(young grandma)’이란 별명을 가졌지만 음악에 있어선 도전을 즐긴다. 영국 음악축제 ‘BBC프롬’에서 만난 동료와 ‘젠 트리오’를 결성해 음반을 냈고 2년 전엔 서울의 한 클럽 무대에 올랐다. 최근엔 영화 ‘체실비치에서’의 OST를 녹음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팬들과 일상도 적극 공유한다. 그는 “콘서트홀이나 무대에서만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무대 위나 밖에서 팬과의 만남을 즐긴다”고 했다. 그는 일반 국제학교를 거쳐 독일 뮌헨음대에 입학했다. 이 시절 공부한 지식과 인연은 가장 값진 음악적 자산이라고. ‘전설적 거장’과의 협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로린 마젤은 복잡다단한 음악가의 삶을 건강하게 이끄는 방법에 대해 알려줬고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에겐 음악을 향한 헌신과 넘치는 에너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에스더 유는 27일 부산, 28일 서울에서 러시아의 거장 미하일 플레트뇨프가 이끄는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연주곡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그는 “시벨리우스콩쿠르 최종 결선 무대에서 연주했던 곡”이라며 “위대한 지휘자가 이끄는 러시아 오케스트라와 고국에서 공연하게 돼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일시정지 상태의 구체관절인형 같았다. 꼿꼿한 자세와 견고한 표정. 오른팔만 격렬히 운동할 뿐, ‘얼음여왕’은 마지막 음표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곳곳에서 나지막한 감탄사가 터졌다. 누군가는 이렇게 내뱉었다. ‘사람이 아니다. 컴퓨터다.’ 이달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러시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물로바(59)가 무대로 걸어 나왔다. 크림색 인어라인 드레스 차림 탓인지 키가 더 커 보였다. 연주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이 한 곡만 남겼어도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렸을 것’이란 찬사가 따라붙는 독일 낭만파 대표곡이다. 한없는 투명함에서 진한 페이소스를 담은 묵직함까지. 연주에 따라 스펙트럼이 넓다. 물로바는 구도자처럼 부동의 자세로 한 음 한 음 빠르고 정확하게 짚어 나갔다. 격렬하지는 않지만 맑고 단단한 에너지가 전해졌다. 한 음악계 관계자는 “몸과 감정은 함께 간다. 움직임을 절제하다 보니 음색도 이지적이고 투명한 것”이라고 했다. ‘컴퓨터 연주’는 러시아에서 받은 혹독한 훈련 덕이다. 연주자가 되면 서방 세계에 드나들 기회가 비교적 많았던 1960년대, 부모는 네 살배기 딸에게 바이올린을 쥐여줬다.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친구 하나 없이 연습만 했다”. 시벨리우스 경연대회(1980년)와 차이콥스키 콩쿠르(1982년)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1983년에는 영화 같은 탈출 작전으로 세계 언론을 장식했다. 당시 연인인 지휘자 박탕 조르다니아와 핀란드 공연 도중 스웨덴으로 망명한 것. 2년 뒤 빈에선 26세 연상의 거장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를 만났다. 5년간 동거하며 아들 미샤 물로프아바도를 낳았다. 8일 선보인 앙코르곡 ‘브라질’은 재즈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는 아들이 작곡했다. 2000년 이후 바로크 음악, 재즈 등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결혼한 영국인 첼리스트 매슈 발리는 든든한 음악적 동지다. “남편은 클래식과 재즈, 인도음악, 전자음악을 넘나들며 장벽을 허무는 음악을 사랑해요. 저도 다양한 레퍼토리를 탐험하며 음악가로서 풍부한 경험을 하고 있답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정치외교학과 12학번으로 입학해 학생회 활동을 했다. ‘알바연대알바노조’에서 적극 목소리를 냈다. 2015년 1월 일명 ‘김군 사건’이, 2016년 ‘강남역 살해 사건’이 터졌다. 당시 온·오프라인을 통해 페미니즘을 파고들었다. ‘불꽃여성농구단’ 동료들과 2016년 5월 21일 여성운동단체 ‘불꽃페미액션’을 만들었다. 이달 2일 페이스북코리아에 항의하는 ‘찌찌해방만세’ 시위를 벌인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가현 씨(26) 이야기다. “퍼포먼스 차원이었어요. 취재진이 없으면 우리끼리 사진 찍고 마무리할 생각이었는데….” 7일 양천구에서 만난 가현 씨가 말했다. 상의 탈의 시위가 남긴 인상은 강렬했다. 대중은 미투운동 이후 소강상태였던 페미니즘을 다시 돌아봤고, 저마다 ‘신체의 자유’란 물음표를 머릿속에 그렸다. ○ 불꽃페미액션: 가현 이야기 ‘불꽃페미액션’은 낙태죄 폐지와 천하제일겨털대회 등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여성해방 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이다. 집행부 5명과 회원 200여 명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연대하고 행동한다. 회원 대부분은 20대다. 30대는 20% 안팎이다. 가현 씨는 웃통을 두 번 깠다. 5월 ‘월경페스티벌’과 이번 페이스북 항의 시위에서다. 두 번째 탈의는 첫 번째 시위 때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이 음란물로 파악해 삭제하면서 이뤄졌다. 남성 가슴 노출 사진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 가슴 사진만 삭제한 데 항의하는 뜻으로 2일 시위를 진행한 것.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후 설왕설래가 뜨거웠다. “벗고 다니겠다는 게 아니라 벗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적극 지지한다.”(29세 여성 학원강사) “반대하진 않지만 상의 탈의를 무기로 삼아선 안 된다. 이럴 땐 드러내고 저럴 땐 ‘시선강간’이라 공격하고. 잣대를 일원화해야 한다.”(40대 남성 언론인) “가슴을 보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자가 초식을 할 수 있나.”(20대 남학생) (이에 반발하며) “그건 학습된 거다. 가슴을 드러내고 생활하는 부족도 있고, 조선시대 아들 낳은 여성들도 가슴을 내놓고 다녔다.”(20대 여학생) 응원을 건넨 이들도 많았지만 온라인에선 비난이 쏟아졌다. “상의 탈의를 하면서 ‘시선강간’으로 남성을 비난하느냐. 짧은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오를 땐 뒤따르는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는 댓글이 가장 흔했다. 이에 가현 씨은 “가리지 않으면 몰래 카메라에 찍힐 위험이 있다. 여성의 안전과 남성의 불쾌한 기분, 둘 중 무엇이 중요한가”라고 반문했다. 외모를 비하하거나 성희롱에 가까운 댓글도 넘쳤다. 가현 씨를 비롯한 회원들은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시위의 뜻과 방식에 대한 비판이라면 수용하겠는데, ‘고추가 안 서네’ ‘뚱뚱하네’ 하는 글은 “좀 그랬다”. “사실 비난엔 익숙해요. 가슴을 ‘까기’ 전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순간부터 상상 가능한 온갖 욕이 날아왔죠. 한데도 등에 살이 접혔다는 이야기는 상처가 됐어요. ‘내가 더 예뻤더라면 덜 비난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코르셋 운동: 2030 여성 이야기 “근대화를 거치며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여성의 신체가 대상화됐다. 인터넷에 가둬두고 언제든 꺼내보는 물건처럼 된 것이다.”(김혜경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뒤에서 몰래 성적 대상화를 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불법촬영 범죄가 대표적이다.”(가현 씨) “남자는 웃통을 벗으면 상남자고 여자는 비키니를 입어야 상여자인가. 2000년대 들어 여성을 소비하는 콘텐츠가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편견이 심화됐다고 본다.”(30대 페미니스트) 가슴해방 운동은 이에 맞서는 방식이다. 1968년 미국 미스아메리카대회장 밖에선 속옷 태우기 운동이 있었다. 2000년대 한국 여성단체는 ‘노브라 선언’을 했다. 2009년 우크라이나에서 결성된 국제여성인권단체 ‘페멘(FEMEN)’은 가슴을 노출하고 꽃왕관을 쓴 채 여성 인권을 외친다. 2015년 미국에선 가슴 노출을 단속하는 공권력에 맞서 ‘프리 더 니플(Free The Nipple)’ 운동을 벌였다. ‘코르셋 벗기’ 운동도 같은 맥락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20대 여성 중심 카페 ‘여성시대’, ‘쭉방카페’ 등에는 코르셋 벗기에 동참한 이들의 인증샷이 넘쳐난다. ‘단백질 히잡(긴머리) 자르고 드라이기도 안 쓴다. 사람처럼 살고 있다’, ‘화장품 살 돈으로 책 사고 맛난 거 먹는다. 내 얼굴을 평가하지 않게 된다. 자존감이 높아진다’ ‘봉긋한 가슴을 위해 하던 브래지어를 벗었다. 세상 시원하다. 빨랫감이 줄었다. 브래지어 비싼데 돈 굳었다’ 등이다. 코르셋 벗기를 주도하는 건 1020세대. 30대도 간간이 참여한다. 정연보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모 평가, 외모로 인한 차별, 성적 대상화가 여성에게 더 심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탈코르셋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코르셋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송모 씨(27)는 “온라인 카페에서 화장품을 부순 인증샷을 올리는 이들이 많은데 실제 주변에 그런 친구는 단 1명”이라며 “이유야 어쨌든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라고 했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 김모 씨(37)는 “운동을 통해 뱃살이 줄어들 때 뿌듯함을 느낀다”며 “탈코르셋 동참 여부는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가현 씨는 “동참하지 않는 여성들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탈코르셋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 여혐 vs 남혐: 1990년대생 남성 이야기 1980년대의 시니어페미니스트,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영페미니스트에 이어 2015년 이후 넷페미, 영영페미니스트 세대가 등장했다. ‘메갈리아’ ‘워마드’ 등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뜻한다. 개별로 활동해 일상적 문제에 보다 집중하며, 온라인이 무대인 탓에 과격한 성향을 띤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랜 기간 응축된 페미니즘 에너지가 온라인과 만나 폭발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여혐 vs 남혐’ 논란으로 번지는 점은 안타깝다는 의견이 나온다. 20대 취업준비생 강모 씨는 “넷페미들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성에게서 찾는다. 양보 없이 뭐든 더 내놓으라는 식이어서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어머니 세대가 겪은 차별을 이용해 혜택을 받으려는 것 같다”, “남성에게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심을 체험해보라며 화장실 몰카를 설치하는 건 범죄”라는 비판도 있다. 1990년대생 남학생들은 여성들에게 학업경쟁 등에서 밀려난 첫 번째 세대다. 이들은 대체로 페미니즘에 부정적이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항한 ‘90년생 김지훈’ 소설 크라우드펀딩 활동, 페미니즘 성향을 보인 연예인들 비난 등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자연히 페미니즘 이슈마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이는 시대 배경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과거 2030 남성에게 결혼과 취업은 도달 가능한 목표였다. 지금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개별경쟁 가속화, 노동인구 고령화, 대학졸업 인구 증가에 따라 청년세대 전체가 진창에 빠졌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청년세대가 더 나은 시대를 고민하기 힘든 사회구조다. 눈앞의 논쟁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청년세대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계급 문제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페미니즘 운동은 ‘기성세대 아웃’ 성격이 짙다. 남성중심 체제에 복무하는 기성세대 여성도 ‘아웃’ 대상에 포함된다”며 “기존 체제에 종속된 남녀 간 갈등은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생 여성들은 동년배 남성들의 인식을 어떻게 느낄까. ‘불꽃페미액션’의 선물 씨(가명)는 “동년배 페미니스트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대부분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얕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덕목은 여성의 말을 경청하고 남성 지인들에게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꽃페미액션’의 한솔 씨는 “대부분 무관심한 상태에서 남성 주류 매체를 통해 페미니즘을 접한다. 그러니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성평등은 모든 성별이 함께 잘살기 위함이다. 거부감을 조금만 걷고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미러링(Mirroring·혐오 뒤집어 보여주기)은 여성이 받은 혐오를 남성에게 덧입혀 되돌려주는 전술이다. ‘된장녀’에 대응하는 ‘한남충’을 만들어 모욕을 주는 식이다. 최근엔 남성에게 코르셋을 씌우기도 한다. 가슴, 허리, 다리 등으로 여성의 신체를 쪼개 품평하는 남성문화를 모방해 넓은 어깨, 핑크빛 입술, 잘록한 허리, 상·하체 비율을 따지며 외모 잣대를 들이대는 것. 남성용 핑크색 립밤이 출시되기도 했다. ‘워마드’는 장애인, 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도 미러링의 대상으로 삼는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한다. 최근 워마드 게시판에는 남성 화장실을 불법촬영한 사진과 게시글이 올라온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성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넷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최모 씨(26)는 “워마드의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남성들과 공존해야 하므로 이들을 덮어놓고 비난하는 행위는 반대한다”고 했다. 한 시니어페미니스트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성 문제, 계급 문제, 탈식민주의 문제 등의 맥락에서 진지하게 이슈에 접근했다. 요즘은 역사의식 구조의식이 빈약하다”며 “전체 맥락에서 이슈를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여성계가 정치 세력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워마드’의 문제 행동에 침묵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페미니스트 머릿수 늘리기에 골몰해 범죄 행위에도 눈을 감는다는 지적이다. 취재하면서 만난 20대 여성들은 같은 점수를 받고도 남성이 취업에 유리하다는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게임업계에 취업하고픈 꿈이 좌절됐을 때 페미니즘을 찾았다고 말했다. ‘노오력’을 해도 뚫기 힘든 벽 앞에 기댈 곳은 페미니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동면하다 터진 넷페미니즘 에너지는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택광 교수는 “방향을 잡고 에너지를 분출할 때다. 지금의 페미니즘은 사회적 모순 해결을 과제로 삼은 과거와 달리 더 나은 사회 건설을 고민한다.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정치외교학과 12학번으로 입학해 학생회 활동을 했다. ‘알바연대알바노조’에서 적극 목소리를 냈다. 2015년 1월 일명 ‘김군 사건’이, 2016년 ‘강남역 살해 사건’이 터졌다. 당시 온·오프라인을 통해 페미니즘을 파고들었다. ‘불꽃여성농구단’ 동료들과 2016년 5월 21일 여성운동단체 ‘불꽃페미액션’을 만들었다. 지난 1일 페이스북코리아에 항의하는 ‘찌찌해방만세’ 시위를 벌인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가현(26) 씨 이야기다. “퍼포먼스 차원이었어요. 취재진이 없으면 우리끼리 사진 찍고 마무리할 생각이었는데….” 7일 양천구에서 만난 가현 씨가 말했다. 상의 탈의 시위가 남긴 인상은 강렬했다. 대중은 미투 운동 이후 소강상태였던 페미니즘을 다시 돌아봤고, 저마다 ‘신체의 자유’란 물음표를 머릿속에 그렸다. ●불꽃페미액션: 가현 이야기 ‘불꽃페미액션’은 낙태죄 폐지와 천하제일겨털대회 등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여성해방 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이다. 집행부 5명과 회원 200여 명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연대하고 행동한다. 회원 대부분은 20대다. 30대는 20% 안팎이다. 가현 씨는 웃통을 두 번 깠다. 지난 5월 ‘월경페스티벌’과 이번 페이스북 항의 시위에서다. 두 번째 탈의는 첫 번째 시위 때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이 음란물로 파악해 삭제하면서 이뤄졌다. 남성 가슴 노출 사진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 가슴 사진만 삭제한 데 항의하는 뜻으로 지난 1일 시위를 진행한 것.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후 뜨거운 설왕설래가 오갔다. “벗고 다니겠다는 게 아니라 벗을 수도 있다는 거잖나. 적극 지지한다.”(29세 여성 학원강사) “반대하진 않지만 상의 탈의를 무기로 삼아선 안 된다. 이럴 땐 드러내고 저럴 땐 ‘시선강간’이라 공격하고. 잣대를 일원화해야 한다.”(40대 남성 언론인) “가슴을 보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자가 초식을 할 수 있나.”(20대 남성 학생)(이에 반발하며) “그건 학습된 거다. 가슴을 드러내고 생활하는 부족도 있고, 조선시대 아들 낳은 여성들도 가슴을 내놓고 다녔다.”(20대 여성 학생) 응원을 건넨 이들도 많았지만 온라인에선 비난이 쏟아졌다. “상의 탈의를 하면서 ‘시선강간’으로 남성을 비난하느냐. 짧은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오를 땐 뒤따르는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는 댓글이 가장 흔했다. 이에 가현은 “가리지 않으면 몰래 카메라에 찍힐 위험이 있다. 여성의 안전과 남성의 불쾌한 기분, 둘 중 무엇이 중요한가”라고 반문했다. 외모를 비하하거나 성희롱에 가까운 댓글도 넘쳤다. 가현을 비롯한 회원들은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시위의 뜻과 방식에 대한 비판이라면 수용하겠는데, ‘고추가 안 서네’ ‘뚱뚱하네’ 하는 글은 “좀 그랬다.” “사실 비난엔 익숙해요. 가슴을 ‘까기’ 전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순간부터 상상 가능한 온갖 욕이 날아왔죠. 한데도 등에 살이 접혔다는 이야기는 상처가 됐어요. ‘내가 더 예뻤더라면 덜 비난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코르셋운동: 2030 여성 이야기 “근대화를 거치며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여성의 신체가 대상화됐다. 인터넷에 가둬두고 언제든 꺼내보는 물건처럼 된 것이다.”(김혜경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뒤에서 몰래 성적 대상화를 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불법촬영 범죄가 대표적이다.”(가현) “남자는 웃통을 벗으면 상남자고 여자는 비키니를 입어야 상여자인가. 2000년대 들어 여성을 소비하는 콘텐츠가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편견이 심화됐다고 본다.”(30대 페미니스트) 가슴 해방 운동은 이에 맞서는 방식이다. 1968년 미국 미스코리아대회장 밖에선 속옷 태우기 운동이 있었다. 2000년대 한국 여성단체는 ‘노브라 선언’을 했다. 2009년 우크라이나에서 결성된 국제여성인권단체 ‘페멘’(FEMEN)은 가슴을 노출하고 꽃 왕관을 쓴 채 여성 인권을 외친다. 2015년 미국에선 가슴 노출을 단속하는 공권력에 맞서 ‘프리 더 니플’(Free The Nipple) 운동을 벌였다. ‘코르셋 벗기’ 운동도 같은 맥락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20대 여성 중심 카페 ‘여성시대’, ‘쭉방카페’ 등에는 코르셋 벗기에 동참한 이들의 인증샷과 간증이 넘쳐난다. ‘단백질 히잡(긴머리) 자르고 드라이기도 안 쓴다. 사람처럼 살고 있다’, ‘화장품 살 돈으로 책사고 맛난 거 먹는다. 내 얼굴을 평가하지 않게 된다. 자존감이 높아진다.’ ‘봉긋한 가슴을 위해 하던 브래지어를 벗었다. 세상 시원하다. 빨랫감이 줄었다. 브래지어 비싼데 돈 굳었다.…’ 등이다. 코르셋 벗기를 주도하는 건 1020세대. 30대도 간간이 참여한다. 정연보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모 평가, 외모로 인한 차별, 성적 대상화가 여성에게 더 심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탈코르셋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코르셋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송모 씨(27)는 “온라인 카페에서 화장품을 부순 인증샷을 올리는 이들이 많은데 실제 주변에 그런 친구는 단 1명”이라며 “이유야 어쨌든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고 했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 김모 씨(37)는 “운동을 통해 뱃살이 줄어들 때 뿌듯함을 느낀다”며 “탈코르셋 동참 여부는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가현 씨는 “동참하지 않는 여성들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탈코르셋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여혐vs 남혐: 1990년대생 남성 이야기 1980년대의 시니어페미니스트,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영페미니스트에 이어 2015년 이후 넷페미 세대가 등장했다. ‘메갈리아’ ‘워마드’ 등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뜻한다. 개별로 활동해 일상적 문제에 보다 집중하며 온라인이 무대인 탓에 과격한 성향을 띤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랜 기간 응축된 페미니즘 에너지가 온라인과 만나 폭발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여혐vs남혐’ 논란으로 번지는 점은 안타깝다는 의견이 나온다. 20대 취업준비생 강모 씨는 “넷페미들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성에서 찾는다. 양보 없이 뭐든 더 내놓으라는 식이어서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어머니 세대가 겪은 차별을 이용해 혜택을 받으려는 것 같다”, “남성에게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심을 체험해보라며 화장실 몰카를 설치하는 건 범죄”라는 비판도 있다. 1990년대 생 남학생들은 여성들에게 학업경쟁 등에서 밀려난 첫 번째 세대다. 이들은 대체로 페미니즘에 부정적이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항한 ‘90년생 김지훈’ 소설 크라우드펀딩 활동, 페미니즘 성향을 보인 연예인들 비난 등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자연히 페미니즘 이슈마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이는 시대 배경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과거 2030남성에게 결혼과 취업은 도달 가능한 목표였다. 지금은 아니다. IMF 한국외환위기 이후 개별경쟁 가속화, 노동인구 고령화, 대학졸업 인구 증가에 따라 청년세대 전체가 진창에 빠졌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청년세대가 더 나은 시대를 고민하기 힘든 사회구조다. 눈앞의 논쟁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청년세대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계급문제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택광 교수는 “페미니즘 운동은 ‘기성세대 아웃’ 성격이 짙다. 남성중심 체제에 복무하는 기성세대 여성도 ‘아웃’ 대상에 포함된다”며 “기존 체제에 종속된 남녀 간 갈등은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생 여성들은 동년배 남성들의 인식을 어떻게 느낄까. ‘불꽃페미액션’의 선물 씨는 “동년배 페미니스트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대부분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얕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덕목은 여성의 말을 경청하고 남성 지인들에게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꽃페미액션’의 한솔 씨는 “대부분 무관심한 상태에서 남성주류 매체를 통해 페미니즘을 접한다. 그러니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성평등은 모든 성별이 함께 잘 살기 위함이다. 거부감을 조금만 걷고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 우리 모두의 이야기 미러링(Mirroring·혐오 뒤집어 보여주기)은 여성이 받은 혐오를 남성에게 덧입혀 되돌려주는 전술이다. ‘된장녀’에 대응하는 ‘한남충’을 만들어 모욕을 주는 식이다. 최근엔 ‘미러링’으로 남성에게 코르셋을 씌우기도 한다. 가슴, 허리, 다리 등으로 여성의 신체를 쪼개 품평하는 남성문화를 모방해 넓은 어깨, 핑크빛 입술, 잘록한 허리, 상·하체 비율을 따지며 외모 잣대를 들이대는 것. 최근 남성용 핑크색 립밤이 출시되기도 했다. 남성 혐오 사이트 ‘워마드’는 장애인·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도 미러링의 대상으로 삼는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한다. 최근 사진과 워마드 게시판에는 남성 화장실을 불법촬영한 게시글이 올라온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성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넷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최모 씨(26)는 “워마드의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남성들과 공존해야 하므로 이들을 덮어놓고 비난하는 행위는 반대한다”고 했다. 한 시니어페미니스트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성문제, 계급문제, 탈식민주의문제 등 맥락에서 진지하게 이슈에 접근했다. 요즘은 역사의식 구조의식이 빈약하다”며 “역사의식을 가족 전체 맥락을 읽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여성계가 정치 세력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워마드’의 문제 행동에 침묵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페미니스트 머릿수 늘리기에 골몰해 범죄 행위에도 눈을 감는다는 지적이다. 취재하면서 만난 20대 여성들은 같은 점수를 받고도 남성이 취업에 유리하다는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게임업계에 취업하고픈 꿈이 좌절됐을 때 페미니즘을 찾았다고 말했다. ‘노오력’ 해도 뚫기 힘든 벽 앞에 기댈 곳은 페미니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동면하다 막 터진 넷페미니즘 에너지는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택광 교수는 “방향을 잡고 에너지를 분출할 때다. 지금의 페미니즘은 사회적 모순 해결을 과제로 삼은 과거와 달리 더 나은 사회 건설을 고민한다.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5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올해 ‘디토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피아니스트 한지호(26), 첼리스트 문태국(23), 클라리네티스트 김한(22)을 만났다. ‘디토 앙상블’의 리더인 용재 오닐(40)은 10년째 디토 페스티벌을 이끄는 리더. 3인방은 올해 디토 페스티벌이 선정한 라이징 스타다. 피아니스트 한지호는 2014 독일 뮌헨 ARD 국제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고, 첼리스트 문태국은 아시아인 최초로 2014년 카잘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실력파. 두 사람은 올 2월 워너 인터내셔널 듀엣 앨범을 함께 녹음했다. 문 씨는 “형하고 알고 지낸 지는 1년 정도 됐는데, 두 사람 모두 음악가치곤 성격이 무던한 편이라 의견은 달랐지만 조율이 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씨는 “무대에서 연주자도 일종의 연기를 한다. 감정을 소모하고 나면 다시 그것을 채우는 시간이 필요한데, 성격이 예민하면 그 과정이 힘들다”며 의견에 동의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은 최근 핀란드 방송 오케스트라 최연소 부수석으로 임명됐다. 그는 “원래 솔로에 관심이 많았는데 클라리넷은 모차르트 곡을 제외하면 연주할 곡이 많지 않았다”며 “목관 앙상블 ‘바이츠퀸텟’ 동료인 함경과 조성현이 오케스트라에 입단한 영향도 컸다”고 설명했다. ―이번 디토 페스티벌 무대는 어떻게 꾸렸나. ▽문=10주년을 맞아 초심으로 돌아가 음악에 더 집중하는 게 모토다. 드뷔시와 풀랑을 연주하는데, 정말 즐겁게 준비하고 있다. ▽김=하고 싶은 곡들을 넣다 보니 굉장히 어려운 레퍼토리가 완성됐다. 8년 만에 갖는 국내 독주회 무대인데, 상당히 어깨가 무겁다. ―셋 다 중고교 때 유학을 갔다. 투자한 만큼 도움이 됐는가. ▽문=국내에도 유학파 교수님이 많아서 교육면에선 비슷하다. 다만 클래식 뿌리가 서양음악이라 문화·언어적 측면에서 이점이 크다. ▽한=확신이 있다면 결과와 관계없이 유학생활이 어디에서든 활용될 거라 본다. 재능의 크기는 다 다르지만, 가진 그릇을 꽉 채운다면 크든 작든 쓸 곳이 있을 거다. ▽김=한국에선 어릴 때부터 악기에만 집중해 다른 분야를 접할 기회가 적다. 외국에선 다른 공부도 하면서 악기를 한다. 그리고 대학에 가면 본격 연습에 매진한다. 반면 한국은 중고등학교 때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대학에선 지치는 경향이 있다. ―악기 외에 음악에 도움이 되는 공부가 있다면…. ▽김=수학도 도움이 된다. 음계나 옥타브 차이도 수학과 관계가 깊다. 리듬감도 좋아지고 무의식으로 채운 지식들이 무대에서 표출된다. ▽한=사유의 방식이 더 유연해질수록 예술가로서 영감을 얻기 쉬운 상태가 된다. 그래서 많이 읽는 게 중요하다. ▽문=숲에 나무 시냇물 꽃 다람쥐 등이 공존해야 조화로운 생태계가 되듯 전인적 교육이 음악성에도 중요하다고 본다. ―대중적인 기획이나 스타 시스템을 도입하는 클래식 공연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부정적이진 않지만 연주자는 늘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이미지가 소진되고 다른 스타가 나오면 힘들 수 있다. 정보 유통이 짧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클래식 시장이 달아오르긴 쉽지 않다. 하지만 종이책처럼 클래식은 꾸준할 거라고 본다. ▽문=스타가 아니라 나의 성 ‘문(moon)’처럼 은은하게 자리를 지키는 솔리스트가 되고 싶다. 문태국&한지호 9일 오후 8시. 김한 10일 오후 2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3만∼5만 원. 1577-5266 이설 기자 snow@donga.com}

‘신이 내린 목소리’와 ‘바이올린 여제’의 무대는 잔향이 길었다. 관객들은 기립해 마음을 전했고 일부는 공연장에 남아 여운을 달랬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지난달 31일 열린 ‘조수미와 로베르토 알라냐의 디바&디보 콘서트’는 맛과 품격을 잡은 파인 다이닝 같았다. 클래식 마니아와 일반 관객을 고려한 선곡, 유머러스한 연출, 반주자와 성악가의 호흡이 돋보인 2시간이었다. ‘데뷔 동기’인 조수미와 알라냐는 선의의 경쟁을 하듯 ‘달렸다’.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귀한 천사들’,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신비로운 이 묘약’에서 찰떡 호흡을 과시하다가도 각자의 무대에서는 날 선 기량을 뽐냈다. 조수미는 화려한 디바와 친근한 누이를 오가며 관객을 쥐락펴락했다. 한국 초연곡인 오베르의 오페라 ‘마농 레스코’ 중 ‘웃음의 아리아’는 소름이 돋았고, 앙코르곡 ‘호프만의 이야기’ 중 ‘인형의 노래’에서 인형 연기는 사랑스러웠다. 알라냐는 박수 유도, 술 취한 연기, 귀여운 퇴장으로 ‘무대 위의 동물’임을 입증했다. 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정경화의 무대는 삶의 아름다움과 비애가 녹아든 한 편의 로드무비였다. 복숭앗빛 한복 드레스 차림으로 바이올린과 밀고 당기며 포레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했다. 70세를 맞은 그의 브람스는 깊었고 프랑크는 슈크림처럼 부드러움을 더했다. 12년간 한 무대에 서온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의 기지도 돋보였다. 예민한 스타를 달래는 매니저와 우직한 동반자로 색채를 바꿔 가며 여제 곁을 지켰다. 앙코르 무대에서는 생전 그의 무대의상을 책임진 고 이영희 디자이너를 추모했다. ‘사랑의 기쁨’ 선율은 관객들을 추억에 잠기게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실향민 1세대들은 거의 다 돌아가셨죠. 젊은 손님이 많아진 지는 꽤 됐고, 최근엔 여성 손님들이 급증한 느낌입니다.”(우래옥 김지억 전무·85) 지난달 31일 오후 2시 지하철 2·5호선 을지로4가역. 휴대전화 화면에 구글 지도를 띄웠다. 평양냉면 노포(老鋪) 우래옥은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았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지도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한곳을 향했다. 좁다란 골목엔 자가용 행렬이 멈춰 서 있었다. 사람과 자가용 사이를 헤치고 북적대는 주차장을 지나 우래옥 건물에 들어섰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홀에는 손님 100여 명이 대기 중이었다. “우리 집은 (대기실이 따로 있어서) 줄 안 서. 다른 집이 줄이 길지.” 이곳에서 55년간 일했다는 김지억 전무가 농을 건넸다. 매년 여름이면 평양냉면 신드롬이 일지만 올해엔 온도와 시기, 그리고 양상이 조금 다르다.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때 북한이 진짜 평양냉면 맛을 보여주겠다며 제면기까지 이고 오는 퍼포먼스를 보인 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아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하는 유머 섞인 한마디까지 겹치며 평양냉면 열풍에 불을 지폈다. “이것 봐, 장부를 보면 대충 몇 명 왔는지 알 수 있지.” 30명씩 기입된 장부가 25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한 팀을 2명 정도로 잡으면 이미 1500그릇 넘게 팔았다는 의미다. ○ 2030 사로잡은 평양냉면 정상회담이 열린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신한카드의 평양냉면 가맹점 카드 사용량은 직전 4개 주간 평균보다 80%가 늘었다. 20대 사용률이 특히 도드라졌다. 롯데슈퍼가 같은 기간 냉면류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정상회담 사흘 전(4월 24∼26일)보다 73.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양냉면은 실향민 1세대가 망향의 아픔을 달래던 음식이다. 1970년대 실향민 2세대와 식자층 베이비붐 세대가 제2의 부흥을 이끌었다. 전직 공무원 장현 씨(70)는 “광화문 을지로 인근에 평양냉면 노포들이 몰려 있었는데, 당시 회식 장소로 인기였다. 자연히 평양냉면이 미식의 관문으로 자리 잡았고 냉면으로 해장하는 ‘선주후면(先酒後麵)’ 문화가 전파됐다”고 전했다. 최근엔 평양냉면에 입문한 2030들이 적지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유명 가게를 하나씩 방문하는 ‘도장깨기’가 유행하며 ‘완냉샷(냉면을 다 먹은 그릇사진)’이 넘쳐난다. 특히 젊은 직장인들이 모여 있는 강남 분당 판교 등지의 신흥 냉면가게들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딱 잡히는 맛 없이 슴슴하고 단순한 이 음식의 매력은 무엇일까. “처음 먹을 때는 걸레 빤 물을 마시는 것 같았어요. 한데 한 번 두 번 반복해서 먹으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극이 없는 맛이 중독을 부른달까요. 맛을 찾으려 애쓰는 과정이 재미있어요.”―박지민 씨(26·학생) “차갑고 진한 고기국물이 일품이에요. 떡볶이 먹을 때 어묵 국물은 조미료 맛이 강해서 몇 번 들이켜고 마는데, 냉면 육수는 끝없이 들어가요. 감칠맛 때문인지 다른 요소 때문인지 모르겠네요.”―김동민 씨(33·유통업) 미디어와 SNS의 영향도 크다는 지적이다. 온라인에서 평양냉면 가게 족보를 외며 면발과 육수를 놓고 토론하고, 미디어로 인해 평양냉면이 유행으로 번지는 찰나, 정상회담으로 관심이 증폭됐다는 것이다. ○ 냉면의 현지화 올 4월 TV에서 북한에 간 남한 예술단의 일거수일투족이 흘러나왔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백지영의 냉면시식기. 면발은 거무튀튀했고 쭉 뽑아 올린 길이는 150cm는 족히 돼 보였다. 육수도 맑은 빛과 거리가 멀었다. 이 장면은 남한의 ‘평양냉면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툭툭 끊어지는 면발과 맑은 육수’를 경전처럼 받들며 메밀 함량과 육수 구성성분을 따지던 그들 아닌가. 정작 북한 냉면의 면은 질기고 육수는 검다니, ‘멘붕’에 빠질 만했다. 알고 보니 면은 전분 함량을 높이고 육수에는 간장을 섞어 검은색을 띤다고 했다. 면발이 거무튀튀한 건 소화가 안 될 때 쓰는 식소다 때문이라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실향민 1세대가 북에서 경험한 평양냉면은 어떨까. 중학생 때 월남한 이인범 평안북도 중앙도민회 고문(83)은 “육수 재료는 정확히 모르지만 동치미가 들어간 건 확실하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밥으로도 간식으로도 먹었다”고 했다. 김금례 씨(87)는 “이북은 10월부터 겨울날씨라 동치미를 담그면 깊은 맛이 난다. 한데 남한에서는 그 맛을 내기 힘들다보니 냉면 육수를 고기로 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들이 경험한 평양냉면은 동치미에 순면에 가까운 메밀면을 말아 넣은 국수 정도로 보인다. 집집마다 겨울이면 동치미 국물을 만들고 메밀반죽을 틀에 짜 국수를 뽑았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평양에서도 닭, 꿩, 쇠고기 등 육수를 동치미와 더러 섞어 썼다. 하지만 서민들은 대부분 동치미로 육수를 냈다. 남한에선 고기육수를 주로 쓴다. 북한과 달리 남한 초겨울은 그리 춥지 않다. 싱싱한 무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입에 착 붙는 동치미를 만들 여건이 아니었던 셈. 이 때문에 의정부 평양면옥은 탕 문화에서 힌트를 얻어 양지로 육수를 뽑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래옥은 1등급 한우 암소 사태를 푹 우려낸다. 장충동 평양면옥도 고기 국물을 쓴다. 반대로 북한에서는 면의 재료가 바뀌었다. 원래 평양냉면은 메밀 100%의 순면을 주로 썼다. 너무 툭툭 끊어진다 싶으면 메밀과 전분을 8 대 2 정도로 섞어 찰기를 더했다. 남한은 이 공식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반면 북한에선 전분 함량이 껑충 뛰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는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를 ‘경제 사정에 따른 냉면의 현지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옥류관 청류관 고려호텔 민족식당 등 북한의 4대 냉면을 모두 맛봤는데 한국의 그것과 다르다. 동치미 함량이 높고 면발도 메밀을 많이 쓰지 않는다. 슬쩍 이유를 물어봤더니 고기와 메밀을 구하기 힘들어서 그렇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 남한 평양냉면의 계보 평양냉면은 계보를 알아가는 재미도 크다. 실향민의 아픔과 역사적 요소가 가미돼 매력적인 스토리로 다가온다. 남북분단이라는 상황으로 사실을 확인할 수 없어 신비감이 더해진다. 노포들은 을지로와 그 인근에 몰려 있다. 남한의 평양냉면 역사는 1940년대 을지로 4가에서 개업한 ‘서래관’(폐업)이 시작이다. 1946년 우래옥이 개업했고 1970∼1980년대 필동면옥·을지면옥·장충동 평양면옥 등이 뒤를 잇는다. 외식문화가 없던 당시 평양냉면은 특별한 먹거리로 시대를 풍미했다. 우래옥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평양냉면집이다. 평양 유명 냉면가게인 명월관 주인이 개업해 3대째 명맥을 잇고 있다. 을지로 본점은 창업주 고(故) 장원일 씨의 손녀 경선 씨(66)가, 대치동 분점은 손주 근한 씨(64)가 운영한다. 우래옥은 쇠고기만으로 육수를 우려낸다. 순면 또는 전분을 살짝 섞은 면 두 가지를 맛볼 수 있다. 우래옥 영업부장인 유병석 씨는 “업게 평균보다 연봉이 높은 편이다. 퇴직금도 준다”며 “직원 대부분 20∼30년씩 내 살림 돌보듯 일하는 것도 우래옥의 경쟁력”이라고 했다. 서울 냉면은 크게 의정부 계열과 장충동 계열로 나뉜다. 의정부 계열은 1·4후퇴 때 월남한 고(故) 홍영남, 김경필 씨 부부가 1969년 개업한 의정부 평양면옥이 거점이다. 곧 북한에 돌아갈 줄 알고 북과 가까운 경기 연천군에 자리를 잡았다가 12년 뒤 의정부로 가게를 옮겼다. 본점은 1남 3녀 중 아들 진권 씨(66)가 물려받아 부인이 운영한다.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은 첫째 딸과 둘째 딸이 운영한다. 셋째 딸은 잠원동에 ‘본가 평양면옥’을 차렸다. 의정부 계열 냉면은 고춧가루가 뿌려져 나온다. ‘장충동 계열’ 평양면옥은 논현동 평양면옥과 분당 평양면옥으로 나뉜다. 평양에서 대동면옥을 운영하던 고(故) 김면섭 씨의 며느리 변정숙 씨가 1985년 개업했다. 본점은 큰아들 김대성 씨가, 논현점은 둘째 아들 김호성 씨가 운영한다. 도곡점 신강점은 4대 손자·손녀들이 맡았다. 주방장 출신 임세권 씨가 독립해 개업한 진미평양냉면도 있다. 을밀대는 1971년 마포에서 개업해 서북권 강자로 떠올랐다. 봉피양은 만화 ‘식객’ 속 냉면 장인인 김태원 조리사가 만드는 곳으로 잘 알려졌다. 평양냉면의 대중화와 선구자들의 홍보 활동으로 신흥 강자들도 속속 등장했다. 강남 진미평양냉면, 합정 동무밥상, 강남과 마포까지 진출한 판교 능라도, 여의도 정인면옥 등이 대표적. 평양냉면 마니아로 동호회 활동을 해온 김수경 씨(44)는 “신흥 강자들의 트렌드는 ‘섹시함’이다. 감칠맛과 간이 세지고 있다”며 “평양냉면 대중화에 따라 여러 사람의 기호를 반영하기 위한 결과로 보인다”고 했다. ▼ 백령도-양평에 ‘황해도 냉면’… 부산은 밀면으로 변형 ▼“나도 있다” 각 지역 냉면문화평양냉면은 남한 곳곳에 뿌리내리며 개성을 더했다. 북한과 지척인 인천 백령도에는 황해도식 메밀냉면이 꽃을 피웠다. 백령도는 메밀밭이 지천이다. 이곳에 자리 잡은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은 메밀 100% 순면에 사골처럼 진한 육수, 여기에 까나리액젓을 넣어 풍미를 더했다. 사곶냉면, 부평막국수, 변가네웅진냉면 등이 유명하다. 경기 양평군 옥천면에는 황해도식 냉면이 전해진다. 황해도 출신 이건협 씨가 1952년 개업한 ‘황해냉면’이 대표적. 굵은 면발에 간장이나 설탕으로 간을 한 육수가 특징이다. 옥천냉면과 옥천고읍냉면 등이 있다. 진주냉면은 권번문화와 맞물려 발달했다. ‘선주후면’에 따라 입가심으로 먹던 국수에 남은 안주를 올려먹던 게 진주냉면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1915년 ‘부인필지’에 소개된 명월관 요리법에 따르면 고기국물에 ‘디포리’ 홍합 새우 등 해물장국을 섞어 육수를 낸다. 해산물 잡내를 잡기 위해 무쇠몽둥이 집어넣고 15일간 숙성 절차를 거친다. 부산은 냉면이 밀면으로 변형됐다. 메밀 대신 미군에게 배급받은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팔면서 밀면이 탄생했다. 유재우 내호냉면 사장은 “함경도 흥남에서 냉면집을 운영하던 증조할머니가 밀면을 처음 만드셨다. 손님들은 밀가루를 쓰니 면이 부드러워졌다며 좋아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편 함흥냉면집은 서울 중구 오장동 일대에 몰려 있다. 오장동에 자리 잡은 함경도 피란민은 고향에서 먹던 농마국수를 변형해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감자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질긴 면을 매운 양념 가자미회 홍어회와 비벼 먹는다. 오장동 흥남집과 신창면옥이 대표적이다. 권이학 오장동 흥남집 이사는 “양념장과 회의 쫀쫀한 식감이 함흥냉면의 매력이다. 함흥냉면이야말로 중독성이 대단한 음식”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실향민 1세대들은 거의 다 돌아가셨죠. 젊은 손님이 많아진 지는 꽤 됐고, 최근엔 여성 손님들이 급증한 느낌입니다.”(우래옥 김지억 전무·85) 지난달 31일 오후 2시 지하철 2·5호선 을지로4가역. 핸드폰 화면에 구글 지도를 띄웠다. 평양냉면 노포(老鋪) 우래옥은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았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지도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한 곳을 향했다. 좁다란 골목엔 자가용 행렬이 멈춰 서 있었다. 사람과 자가용 사이를 헤치고 북적대는 주차장을 지나 우래옥 건물에 들어섰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홀에는 손님 100여 명이 대기 중이었다. “우리 집은 (대기실이 따로 있어서) 줄 안 서. 다른 집이 줄이 길지.” 이곳에서 55년간 일했다는 김지억 전무가 농을 건넸다. 매년 여름이면 평양냉면 신드롬이 일지만 올해엔 온도와 시기, 그리고 양상이 조금 다르다. 4월26일 남북 정상회담 때 북한이 진짜 평양냉면 맛을 보여주겠다며 제면기까지 이고 오는 퍼포먼스을 보인 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아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하는 유머 섞인 한마디까지 겹치며 평양냉면 열풍에 불을 지폈다. “이것 봐, 장부를 보면 대충 몇 명 왔는지 알 수 있지.” 30명씩 기입된 장부가 25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한 팀을 2명 정도로 잡으면 이미 1500그릇 넘게 팔았다는 의미다. ●2030 사로잡은 평양냉면 정상회담이 열린 4월 27일~29일 신한카드의 평양냉면 가맹점 카드 사용량은 직전 4개 주간 평균보다 80%가 늘었다. 20대 사용율이 특히 도드라졌다. 롯데슈퍼가 같은 기간 냉면류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정상회담 사흘 전(4월 24일~26일)보다 73.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양냉면은 실향민 1세대가 망향의 아픔을 달래던 음식이다. 1970년대 실향민 2세대와 식자층 베이비붐세대가 제2의 부흥을 이끌었다. 전직 공무원 장현 씨(70)는 “광화문 을지로 인근에 평양냉면 노포들이 몰려 있었는데, 당시 회식 장소로 인기였다. 자연히 평양냉면이 미식의 관문으로 자리 잡았고 냉면으로 해장하는 ‘선주후면(先酒後麵)’ 문화가 전파됐다”고 전했다. 최근엔 평양냉면에 입문한 2030들이 적지 않다. 소셜네트워크(SNS) 상에는 유명 가게를 하나씩 방문하는 ‘도장깨기’가 유행하며 ‘완냉샷(냉면을 다 먹은 그릇사진)’이 넘쳐난다. 특히 젊은 직장인들이 모여 있는 강남 분당 판교 등지의 신흥 냉면가게들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딱 잡히는 맛 없이 슴슴하고 단순한 이 음식의 매력은 무엇일까. “처음 먹을 때는 걸레 빤 물을 마시는 것 같았어요. 한데 한번 두 번 반복해서 먹으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극이 없는 맛이 중독을 부른달까요. 맛을 찾으려 애쓰는 과정이 재미있어요.”-박지민 씨(26·학생) “차갑고 진한 고기국물이 일품이에요. 떡볶이 먹을 때 오뎅 국물은 조미료맛이 강해서 몇 번 들이켜고 마는데, 냉면 육수는 끝없이 들어가요. 감칠맛 때문인지 다른 요소 때문인지 몰르겠네요.”-김동민 씨(33·유통업) 미디어와 SNS의 영향도 크다는 지적이다. 온라인에서 평양냉면 가게 족보를 외며 면발과 육수를 놓고 토론하고. 미디어로 인해 평양냉면이 유행으로 번지는 찰나, 정상회담으로 관심이 증폭됐다는 것이다. ●냉면의 현지화 지난 4월 TV에서 북한에 간 남한 예술단의 일거수일투족이 흘러나왔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백지영의 냉면시식기. 면발은 거무튀튀했고 쭉 뽑아 올린 길이는 150cm는 족히 돼 보였다. 육수도 맑은빛과 거리가 멀었다. 이 장면은 남한의 ‘평양냉면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툭툭 끊어지는 면발과 맑은 육수’를 경전처럼 받들며 메밀 함량과 육수 구성성분을 따지던 그들 아닌가. 정작 북한 냉면의 면은 질기고 육수는 검다니, ‘멘붕’에 빠질 만했다. 알고 보니 면은 전분 함량을 높이고 육수에는 간장을 섞어 검은 색을 띤다고 했다. 면발이 거무튀튀한 건 소화가 안 될 때 쓰는 식소다 때문이라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실향민 1세대가 북에서 경험한 평양냉면은 어떨까. 중학생 때 월남한 이인범 평안북도 중앙도민회 고문(83)은 “육수재료는 정확히 모르지만 동치미가 들어간 건 확실하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밥으로도 간식으로도 먹었다”고 했다. 김금례 씨(87)는 “이북은 10월부터 겨울날씨라 동치미를 담그면 깊은 맛이 난다. 한데 남한에서는 그 맛을 내기 힘들다보니 냉면 육수를 고기로 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들이 경험한 평양냉면은 동치미에 순면에 가까운 메밀면을 말아 넣은 국수 정도로 보인다. 집집마다 겨울이면 동치미 국물을 만들고 메밀반죽을 틀에 짜 국수를 뽑았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평양에서도 닭, 꿩, 소고기 등 육수를 동치미와 더러 섞어 썼다. 하지만 서민들은 대부분 동치미로 육수를 냈다. 남한에선 고기육수를 주로 쓴다. 북한과 달리 남한 초겨울은 그리 춥지 않다. 싱싱한 무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입에 착 붙은 동치미를 만들 여건이 아니었던 셈. 이 때문에 의정부 평양면옥은 탕 문화에서 힌트를 얻어 양지로 육수를 뽑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래옥은 1등급 한우 암소 사태를 푹 우려낸다. 장충동 평양면옥도 고기 국물을 쓴다. 반대로 북한에서는 면의 재료가 바뀌었다. 원래 평양냉면은 메밀100%의 순면을 주로 썼다. 너무 툭툭 끊어진다 싶으면 메밀과 전분을 8대2 정도로 섞어 찰기를 더했다. 남한은 이 공식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반면 북한에선 전분 함량이 껑충 뛰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는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를 ‘경제사정에 따른 냉면의 현지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옥류관 청류관 고려호텔 민족식당 등 북한의 4대 냉면을 모두 맛봤는데 한국의 그것과 다르다. 동치미 함량이 높고 면발도 메밀을 많이 쓰지 않는다. 슬쩍 이유를 물어봤더니 고기와 메밀을 구하기 힘들어서 그렇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남한 평양냉면의 계보 평양냉면은 계보를 알아가는 재미도 크다. 실향민의 아픔과 역사적 요소가 가미되 매력적인 스토리로 다가온다. 남북분단이라는 상황으로 사실을 확인할 수 없어 신비감이 더해진다. 노포들은 을지로와 그 인근에 몰려 있다. 남한의 평양냉면 역사는 1940년대 을지로 4가에 개업한 ‘서래관(폐업)’이 시작이다. 1946년 우래옥이 개업했고 1970~1980년대 필동면옥·을지면옥·장충동 평양면옥 등이 뒤를 잇는다. 외식문화가 없던 당시 평양냉면은 특별한 먹거리로 시대를 풍미했다. 우래옥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평양냉면집이다. 평양 유명 냉면가게인 명월관 주인이 개업해 3대째 명맥을 잇고 있다. 을지로 본점은 창업주 고(故) 장원일 씨의 손녀 경선 씨(66)가, 대치동 분점은 손주 근한 씨(64)가 운영한다. 우래옥은 소구기만으로 육수를 우려낸다. 순면 또는 전분을 살짝 섞은 면 두 가지를 맛볼 수 있다. 우래옥 영업부장인 유병석 씨는 “업게 평균보다 연봉이 높은 편이다. 퇴직금도 준다”며 “직원 대부분 20~30년씩 내 살림 돌보듯 일하는 것도 우래옥의 경쟁력”이라고 했다. 서울 냉면은 크게 의정부계열과 장충동계열로 나뉜다. 의정부계열은 1.4 후퇴 때 월남한 고(故)홍영남, 김경필 부부가 1969년 개업한 의정부 평양면옥이 거점이다. 곧 북한에 돌아갈 줄 알고 북에 가까운 경기도 연천군에 자리를 잡았다가 12년 뒤 의정부로 가게를 옮겼다. 본점은 1남 3녀 중 아들 진권(66)씨가 물려받아 부인이 운영한다.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은 첫째 딸과 둘째 딸이 운영한다. 셋째딸은 잠원동에 ‘본가 평양면옥’을 차렸다. 의정부 계열 냉면은 고춧가루가 뿌려져 나온다. ‘장충동계열’ 평양면옥은 논현동 평양면옥과 분당 평양면옥으로 나뉜다. 평양에서 대동면옥을 운영하던 고(故) 김면섭 씨의 며느리 변정숙 씨가 1985년 개업했다. 본점은 큰아들 김대성 씨가, 논현점은 둘째 아들 김호성 씨가 운영한다. 도곡점 신강점은 4대 손주·손녀들이 맡았다. 주방장 출신 임세권 씨가 독립해 개업한 진미평양냉면도 있다. 을밀대는 1971년 마포에서 개업해 서북권 강자로 떠올랐다. 평랭의 대중화와 선구자들의 홍보활동으로 신흥 강자들도 속속 등장했다. 강남 진미평양냉면, 합정 동무밥상, 강남과 마포까지 진출한 판교 능라도, 여의도 정인면옥 등이 대표적. 평양냉면 마니아로 동호회활동을 해온 김수경 씨(44)는 신흥강자들의 트렌드는 ‘섹시함’이다. 감칠맛과 간이 세지고 있다“며 ”평양냉면 대중화에 따라 여러 사람의 기호를 반영하기 위한 결과로 보인다“고 했다. ●”나도 있다“ 각 지역 냉면문화 평양냉면은 남한 곳곳에 뿌리내리며 개성을 더했다. 북한과 지척인 인천 백령도에는 황해도식 메밀냉면이 꽃을 피웠다. 백령도는 메밀밭이 지천이다. 이곳에 자리 잡은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은 메밀 100% 순면에 사골처럼 진한 육수, 여기에 까나리 액젓을 넣어 풍미를 더했다. 사곶냉면, 부평막국수, 변가네웅진냉면 등이 유명하다.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에도 황해도식 냉면이 전해진다. 황해도 출신 이건협 씨가 1952년 개업한 ‘황해냉면’이 대표적. 굵은 면발에 간장이나 설탕으로 간을 한 육수가 특징이다. 옥천냉면과 옥천고읍냉면 등이 있다. 진주냉면은 권번문화와 맞물려 발달했다. ‘선주후면’에 따라 입가심으로 먹던 국수에 남은 안주를 올려먹던 게 진주냉면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1915년 ‘부인필지’에 소개된 명월관 요리법에 따르면 고기국물에 디포리 홍합 새우 등 해물장국 섞어 육수를 낸다. 해산물 잡내를 잡기 위해 무쇠몽둥이 집어넣고 15일간 숙성절차를 거친다. 부산은 냉면이 밀면으로 변형됐다. 메밀 대신 미군에게 배급받은 밀가로루 냉면을 만들어 팔면서 밀면이 탄생했다. 유재우 내호냉면 사장은 ”함경도 흥남에서 냉면집을 운영하던 증조할머니가 밀면을 처음 만드셨다. 손님들은 밀가루를 쓰니 면이 부드러워졌다며 좋아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편 함흠냉면집은 서울 중구 오장동 일대에 몰려 있다. 오장동에 자리잡은 함경도 피난민은 고향에서 먹던 농마국수를 변형해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감자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질긴 면을 매운 양념 가자미회 홍어회와 비벼 먹는다. 오장동 흥남집과 신창면옥이 대표적이다. 권이학 오장동 흥남집 이사는 ”양념장과 회의 쫀쫀한 식감이 함흥냉면의 매력이다. 함흥냉면이야말로 중독성이 대단한 음식“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20년 전 6월 3일이 생생해요. ‘괜히 외국 가서 바보가 되는 것 아닌가’ 걱정했죠.” ‘아시아의 종달새’ 소프라노 임선혜(42)는 노래만큼 말도 잘했다. 유럽 진출 20주년을 맞은 소감을 막힘없이 풀어냈다. 그는 서울대 음대에 다니던 21세에 독일 칼스루에 국립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자선 공연을 위해 잠시 귀국한 그와 23일 전화로 만났다. 그는 이달 경남 산청 성심원(3일), 부산 소년의 집(4일), 충남 서천 어메니티 복지마을(8일), 서울 명동대성당(11일)에서 ‘평화나눔음악회’를 열었다. 2009년부터는 문화 소외지역을 찾아 ‘희망나눔콘서트’도 매년 열고 있다. 그는 “클래식을 알고 나면 특별한 자긍심 같은 게 생긴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과 음악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사회에 어떻게 하면 보탬이 될까.’ 꽤 오랜 기간 그는 이 화두를 붙들고 살았다. 나의 노래가 다수에게 가닿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다른 길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아나운서와 청소년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고려했다. 고민은 어느 날 느닷없이 풀렸다. “10여 년 전쯤인가. ‘노래는 꼭 남을 위해 부르는 게 아니다. 스스로에게 기쁨과 위로가 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어요. 이후 노래에 집중하게 됐죠.” 유학길에 오른 지 1년 반. 고음악 거장 필리프 헤레베허가 지휘하는 공연의 솔리스트 대타로 출연했다. 이후 수많은 거장의 ‘러브콜’을 받으며 고음악계 디바로 성장했다. 2005년부터 함께한 지휘자 레네 야콥스도 그중 하나. 야콥스는 “동양철학 때문인지 기독교인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서양 클래식계가 잃어버린 영성을 임선혜에게 느낀다”고 했다고 한다. 7월엔 야콥스가 지휘·연출한 콘서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수잔나 역을 맡는다. 콘서트 오페라 3부작 다 폰테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지난해 ‘여자는 다 그래’에서는 데스피나 역을 맡았다. 내년에는 ‘돈 지오반니’의 무대에 오른다. 그는 “무대장치와 의상 없이 공연하는 콘서트 오페라는 출연자들이 갖가지 아이디어를 보태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의 침대맡엔 ‘한 글자 사전’, ‘조용히 다가온 나의 죽음’ 등 책 7권이 놓여 있다. 그는 읽고 쓰고 노래하길 즐기되 현실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수시로 점검한다. “하루에 몇 번씩 비행기를 타고, 음악으로 시대여행을 하고, 무대 위와 아래의 삶을 오가고. 자칫 현실과 동떨어지기 쉬운 삶이라 늘 밸런스를 신경 써요. 혼란스럽지만 지루할 틈 없는 성악가의 삶을 사랑합니다.” 7월 6일 오후 7시 반, 7일 오후 5시 서울 롯데콘서트홀. 4만∼15만 원. 1544-7744 이설 기자 snow@donga.com}

다음 달 개성으로 똘똘 뭉친 클래식 성찬이 펼쳐진다. 이른 더위와 미세먼지로 심신이 힘든 초여름, 공연장으로 작은 피서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13년간 독일 베를린필하모닉 악장으로 활동한 바이올리니스트 가이 브라운슈타인이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한 무대에 오른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장조 OP 78 ‘비의 노래’ 등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 2일 오후 7시 서울 LG아트센터. 4만∼9만 원. 02-2005-0114 세계적인 현악4중주단인 아르테미스 콰르넷과 파벨 하스 콰르텟의 공연도 기대를 모은다. 독일 현악4중주단인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5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무대를 꾸민다. 실내악 강국 체코의 현악4중주단 파벨 하스 콰르텟은 8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에서 스메타나 현악4중주 제1번 E단조 ‘나의 생애로부터’ 등을 들려준다. 4만∼8만 원. 02-2005-0114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악단인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2년 만에 내한 공연을 한다. 24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제임스 개피건이 지휘봉을 잡고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선보인다. 5만∼18만 원. 02-599-5743 베를린 필하모닉 첼리스트 12명으로 구성된 ‘베를린필 12첼리스트’는 6년 만에 시대를 가로지르는 레퍼토리를 들고 한국을 찾는다. 27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슈만의 ‘로망스’, 영화 ‘타이타닉’의 사운드트랙,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 등을 선보인다. 3만∼15만 원. 02-548-4480 이설 기자 snow@donga.com}

올 화이트 바지 정장에 완벽하게 정리된 손톱, 흐트러짐 없는 화장과 헤어…. 23일 오후 경기 군포시 군포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난 소프라노 조수미는 밀랍인형 같았다.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막 귀국한 사람치곤 외모도 태도도 해사하고 말쑥했다. 뒤편 테이블에 어지럽게 널린 파우치, 샌드위치, 물병이 ‘자기관리 화신’의 노고를 조용히 다독이고 있었다. 조수미는 주 근거지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출발해 필리핀에서 유네스코 자선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참이었다. 31일 출국 전까지 군포(26일), 제주(29일), 서울(31일)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31일 오후 7시 반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치는 듀엣공연 ‘디바&디보’가 핵심이다. ‘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미다.’ 1998년 소프라노 조수미는 음악잡지 ‘객석’에서 이렇게 썼다. 20년이 흐른 지금도 이 ‘성미’는 변함없는 듯했다. “하고 싶어서” “내가 원해서” “남 의식 안 하고” “감정에 충실하게”…. 1시간 동안 그가 쏟아낸 언어엔 이거다 싶으면 재지 않고 직진하는 돌격정신이 묻어났다. 조수미는 잘 노는 전교 1등 같다. 배꼽티 차림으로 기자회견에 등장하고(1992년) 앙코르 무대에서 말춤을 추는 등(2012년) 개구진 모습으로 음악계 안팎을 휘저었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사회공헌’. 장애인, 동물보호, 예술교육에 특히 마음이 뜨거워진다.○ 어릴 적 장애인 친구 생각에 ‘휠체어 그네’ 국내 도입 “어릴 때부터 약자들에게 마음이 쓰였고, 꽤 오래전부터 조금씩 동물 장애인 아동 등의 보호활동을 해왔어요. 한동안 그분들을 일부러 외면했어요. 감정 절제가 안 돼 펑펑 울다 보면 컨디션이 엉망이 됐거든요. 40대 이후에 그분들과 대면할 용기가 생겼고, 최근 더 많이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듭니다.” ―휠체어 그네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지요. “2012년쯤이었나. 호주에서 처음 휠체어 그네를 접하곤 옛 친구를 떠올렸어요. 다리가 불편했던 그 친구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놀이터 한구석을 지켰죠. 수소문 끝에 휠체어 그네를 제작해 5년째 각 지역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2018년 평창 겨울패럴림픽 개회식 무대에도 서게 됐지요.” ―애견인으로서 동물보호 활동에도 적극적입니다. 개고기 반대 발언도 했고요. “어려서부터 반려견과 함께했고 지금도 반려견 신디, 로이, 샤넬과 함께 지내요. 국내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명예이사로 후원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유기견에 특히 관심이 많은데 국내 보호소는 시설이 너무 열악해요. 사람이 지구의 유일한 주인은 아니잖아요. 동물복지를 위한 교육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기부 금액도 꽤 될 것 같습니다만…. “금액은 알리고 싶지 않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지구를 떠나고 싶기에 원하는 걸 할 뿐이에요. 커리어든, 사회공헌 활동이든 사심은 없습니다. 언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조금이나마 관심을 일깨울 수 있어서예요.” ―세간의 평가에 초월한 강철멘털 같습니다. “성악가는 심장에 거짓이 깃들면 관객에게 울림을 줄 수 없어요. 그래서 감정에 순응하는 겁니다. ‘조수미’는 ‘조수미’의 베스트 프렌드예요. 여장부 조수미가 한없이 여린 조수미와 부딪치고 화해하며 단단하게 성장해 왔어요. 그게 제 인생입니다.”○ 정치인도 아닌데…. 조수미는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예술교육 시스템, 후학 양성, 통일, 여성 등 거미줄처럼 관심이 뻗친다. 정치인도 아닌데 자꾸 ‘이건 저렇게, 저건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후학 양성이 최근 새로운 관심사라고 누군가가 귀띔하더군요. “후학 양성이라기엔 거창하고요. 가진 걸 후배들에게 나누는 일에 흥미를 느낍니다. 10여 년 전부터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간간이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있어요. 음악적 테크닉뿐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자세나 실전 노하우 같은 것들을 알려주죠. 제게 선생님 자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예술교육 시스템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집대성해 정리하고 싶습니다.” ―음악의 힘은 무한한 것 같습니다. “음악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어떻게 그려낼지 늘 고민합니다. 예컨대 호주 공연에서 밝은 느낌의 ‘국가 찬가’를 들었는데, 우리도 엄숙한 애국가 외에 경쾌한 찬가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아이디어가 현실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이런저런 사유를 즐깁니다. 통일 문제도 그중 하나이지요.” ―해외 곳곳을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사회 문제와 해결책이 동시에 보이나요.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요즘 제가 느끼는 문제는 속도예요. 한국은 사회가 너무 빠르고 바쁘게 굴러가다 보니 변화 자체에 무감각해졌다고나 할까요. 유럽에서 주로 살아온 저는 그들의 삶을 대체로 이해하는 편이에요.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의미와 가치는 우리가 빠른 변화 속에 놓치고 지나치는 요소들과 관련이 깊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요. “가족의 의미, 약자에 대한 배려, 교육의 방향, 삶의 의미…. 여러 면에서 우리와 다르죠. 고국을 찾을 때마다 빠른 템포에 발을 동동 굴리다가 뭔가 잊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 탁월한 전략가? 조수미라는 브랜드는 후퇴가 없었다. 전천후 디바에서 친근한 이웃집 누나로, 한국 홍보대사에서 여성 리더로. 기존 미덕을 간직한 채 가치를 한 겹씩 더하며 30년 넘게 장수했다. 철 바뀌면 옷장 정리하듯 자연스러운 변신도 마음의 소리에 따른 것일까. ―브랜드 전략이랄까요. 큰 틀에서 향후 행보는 오롯이 혼자 결정하는지요. “해외에 거주하기 때문에 미디어에 비치는 한국의 모습이 전부인 경우가 많아요. 이 때문에 종종 매니저 일을 하는 남동생과 소통합니다. 전반적 사회 분위기가 제가 하고자 하는 일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를 주로 토론하지요. 예컨대 세월호 사건, 미투운동 등은 외신을 통해 접하기에 정확한 분위기를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그런 다음 지인들과 전화 통화나 티타임을 하며 상황 파악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다음은요. “적절한 문화 행보를 고민하지요. 노래를 하는 사람이 사회·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갖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현대인 대부분이 삶의 질이 주 관심사이고 문화는 삶의 질과 가장 밀접한 영역이죠. 오랫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며 국가의 위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어요. 국가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든 과정을 거쳐 여성 리더로 성장했습니다. 여성 문제에도 관심이 있나요.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경쟁과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쿨’해야 합니다. 저도 질투를 합니다만 인정할 건 인정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내가 더 단단해지더군요.” ―‘쿨’요? “상대를 인정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볼 때 진정한 성장이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외면의 아름다움은 언젠가 사그라집니다. 감수성과 나의 생각, 느낌을 신실하게 돌봤으면 합니다.” ―유럽에서 부당한 일을 많이 겪었나요. “인종차별은 어디에나 있어요. 유럽 진출 초기에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오디션에서 탈락했고 독일어를 못해 마스터클래스에서 쫓겨났죠.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당시엔 충격이 컸어요. 하지만 유럽 사회는 실력이 있으면 언젠가는 인정을 합니다. 특별할 것 없는 제가 성공한 건 포기하지 않고 재능을 갈고닦았기 때문이에요.”○ 지독한 완벽주의자 그는 지독한 완벽주의자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공연 전엔 ‘호콕’(호텔에만 머무름)하고 킥복싱과 ‘홈트’(유튜브 보며 집에서 운동)로 체력을 다진다. 공연 전엔 완벽주의 기질이 극한으로 치닫는다. 무대, 의상, 객석 의자까지 제대로 각이 잡혀야 안심이 된다. 허름한 야외공연장 객석 의자가 거슬려 방석 수천 개를 산 적도 있다. ―평생 절제하는 삶, 힘들지 않나요.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8시간 동안 방에 가둬 두고 피아노 연습을 시켰어요. 누구도 대신 연습해주지 않고,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였습니다. 습관이 돼서 힘들지 않아요.” ―무대 밖에서는 어떤가요. “비슷해요. 뭐든 풀세팅을 선호하죠. 집에서 밥 한 끼를 먹어도 테이블 세팅을 갖춰요. 손님도 왕처럼 대접하죠. 살아온 모양처럼 몸이 굳었는지, 어떤 의사가 말하길 제 어깨가 돌처럼 딱딱하대요.(웃음)” ―어머니 꿈이 성악가셨다죠. 건강 상태는 어떠신가요. “7년째 치매로 고생하고 계신데, 거의 매일 저녁 식사 전에 전화로 이야기를 건넵니다. 오페라 아리아를 몇 곡이나 흥얼거리실 정도로 클래식을 사랑하셨죠. 로베르토 알라냐를 제일 좋아하셨는데, 이번 공연에 모실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알라냐는 어떤 동료인가요. “무대 위 동물이죠. 끼를 타고났어요. 무대 밖에선 소탈하고 천진하고 세상 물정 모르고. 저와 비슷한 면이 많아요. 사실 알라냐의 전 부인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와 더 친해서 한동안 어색하게 지내다가 다시 가까워졌어요.(웃음)” 깔깔 웃고 대책 없이 울다가 무대 위에선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조수미는 천생 예술가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반쪽 조수미였다. 그는 인터뷰 이슈를 소속사 직원에게 직접 카톡으로 주문할 만큼 빈틈없었다. 예술가의 감성과 최고경영자(CEO)의 냉철함을 동시에 품은 여전사 같았다. “러시아, 브라질, 현대음악 등 음악 욕심은 끝이 없어요. 언제 하고픈 걸 다 할지, 휴.” 그의 인생 ‘챕터2’가 닻을 올렸다. 조수미와 로베르토 알라냐의 디바&디보 콘서트. 8만∼20만 원. 02-399-1000 이설 기자 snow@donga.com}

올 화이트 바지 정장에 완벽하게 정리된 손톱, 흐트러짐 없는 화장과 헤어…. 23일 오후 경기 군포시 군포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난 소프라노 조수미는 밀랍인형 같았다.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막 귀국한 사람치곤 외모도 태도도 해사하고 말쑥했다. 뒤편 테이블에 어지럽게 널린 파우치, 샌드위치, 물병이 ‘자기관리 화신’의 노고를 조용히 다독이고 있었다. 조수미는 주 근거지인 로마에서 출발해 필리핀에서 유네스코 자선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참이었다. 31일 귀국 전까지 군포(26일), 제주(29일), 서울(31일)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31일 오후 7시 반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치는 듀엣공연 ‘디바&디보’가 핵심이다. ‘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미이다.’ 1998년 소프라노 조수미는 음악잡지 ‘객석’에서 이렇게 썼다. 20년이 흐른 지금도 이 ‘성미’는 변함없는 듯했다. “하고 싶어서” “내가 원해서” “남 의식 안 하고” “감정에 충실하게”…. 1시간 동안 그가 쏟아낸 언어엔 이거다 싶으면 재지 않고 직진하는 돌격정신이 묻어났다. 조수미는 잘 노는 전교 1등 같다. 배꼽티 차림으로 기자회견에 등장하고(1992년) 앙코르 무대에서 말춤을 추는 등(2012년) 개구진 모습으로 음악계 안팎을 휘저었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사회공헌’. 장애인, 동물보호, 예술교육에 특히 마음이 뜨거워진다. ●어릴 적 장애인 친구 생각에 ‘휠체어 그네’ 국내 도입 “어릴 때부터 약자들에게 마음이 쓰였고, 꽤 오래전부터 조금씩 동물 장애인 아동 등의 보호활동을 해왔어요. 한동안 그분들을 일부러 외면했어요. 감정 절제가 안 돼 펑펑 울다 보면 컨디션이 엉망이 됐거든요. 40대 이후에 그분들과 대면할 용기가 생겼고, 최근 더 많이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듭니다.” ―휠체어 그네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지요. “2012년쯤이었나. 호주에서 처음 휠체어 그네를 접하곤 옛 친구를 떠올렸어요. 다리가 불편했던 그 친구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놀이터 한구석을 지켰죠. 수소문 끝에 휠체어 그네를 제작해 5년째 각 지역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2018년 평창 겨울패럴림픽 개회식 무대에도 서게 됐지요.” ―애견인으로서 동물보호 활동에도 적극적입니다. 개고기 반대 발언도 했고요. “어려서부터 반려견과 함께했고 지금도 반려견 신디, 로이, 샤넬과 함께 지내요. 국내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명예이사로 후원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유기견에 특히 관심이 많은데 국내 보호소는 시설이 너무 열악해요. 사람이 지구의 유일한 주인은 아니잖아요. 동물복지를 위한 교육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기부 금액도 꽤 될 것 같습니다만. “금액은 알리고 싶지 않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지구를 떠나고 싶기에 원하는 걸 할 뿐이에요. 커리어든, 사회공헌 활동이든 사심은 없습니다. 언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조금이나마 관심을 일깨울 수 있어서예요.” ―세간의 평가에 초월한 강철멘털 같습니다. “성악가는 심장에 거짓이 깃들면 관객에게 울림을 줄 수 없어요. 그래서 감정에 순응하는 겁니다. ‘조수미’는 ‘조수미’의 베스트 프렌드예요. 여장부 조수미가 한없이 여린 조수미와 부딪히고 화해하며 단단하게 성장해 왔어요. 그게 제 인생입니다.”●정치인도 아닌데…. 조수미는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예술교육 시스템, 후학 양성, 통일, 여성 등 거미줄처럼 관심이 뻗친다. 정치인도 아닌데 자꾸 ‘이건 저렇게, 저건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후학 양성이 최근 새로운 관심사라고 누군가가 귀띔하더군요. “후학 양성이라기엔 거창하고요. 가진 걸 후배들에게 나누는 일에 흥미를 느낍니다. 10여 년 전부터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간간이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있어요. 음악적 테크닉뿐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자세나 실전 노하우 같은 것들을 알려주죠. 제게 선생님 자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 예술교육 시스템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집대성해 정리하고 싶습니다.” ―음악의 힘은 무한한 것 같습니다. “음악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어떻게 그려낼지 늘 고민합니다. 예컨대 호주 공연에서 밝은 느낌의 ‘국가 찬가’를 들었는데, 우리도 엄숙한 애국가 외에 경쾌한 찬가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아이디어가 현실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이런저런 사유를 즐깁니다. 통일 문제도 그 중 하나이지요.” ―해외 곳곳을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사회 문제와 해결책이 동시에 보이나요.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요즘 제가 느끼는 문제는 속도예요. 한국은 사회가 너무 빠르고 바쁘게 굴러가다 보니 변화 자체에 무감각해졌다고나 할까요. 유럽에서 주로 살아온 저는 그들의 삶을 대체로 이해하는 편이에요.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의미와 가치는 우리가 빠른 변화 속에 놓치고 지나치는 요소들과 관련이 깊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요. “가족의 의미, 약자에 대한 배려, 교육의 방향, 삶의 의미…. 여러 면에서 우리와 다르죠. 고국을 찾을 때마다 빠른 템포에 발을 동동 굴리다가 뭔가 잊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탁월한 전략가? 조수미라는 브랜드는 후퇴가 없었다. 전천후 디바에서 친근한 이웃집 누나로, 한국 홍보대사에서 여성 리더로. 기존 미덕을 간직한 채 가치를 한 겹씩 더하며 30년 넘게 장수했다. 철 바뀌면 옷장 정리하듯 자연스러운 변신도 마음의 소리에 따른 것일까. ―브랜드 전략이랄까요. 큰 틀에서 향후 행보는 오롯이 혼자 결정하는지요. “해외에 거주하기 때문에 미디어에 비치는 한국의 모습이 전부인 경우가 많아요. 이 때문에 종종 매니저 일을 하는 남동생과 소통합니다. 전반적 사회 분위기가 제가 하고자 하는 일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를 주로 토론하지요. 예컨대 세월호 사건, 미투운동 등은 외신을 통해 접하기에 정확한 분위기를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그런 다음 지인들과 전화 통화나 티타임을 하며 상황 파악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다음은요.“적절한 문화 행보를 고민하지요. 노래를 하는 사람이 사회·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갖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현대인 대부분이 삶의 질이 주 관심사이고 문화는 삶의 질과 가장 밀접한 영역이죠. 오랫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며 국가의 위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어요. 국가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든 과정을 거쳐 여성 리더로 성장했습니다. 여성 문제에도 관심이 있나요.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경쟁과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쿨’해야 합니다. 저도 질투를 합니다만 인정할 건 인정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내가 더 단단해지더군요.” ―‘쿨’요? “상대를 인정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볼 때 진정한 성장이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외면의 아름다움은 언젠가 사그라집니다. 감수성과 나의 생각, 느낌을 신실하게 돌봤으면 합니다.” ―유럽에서 부당한 일을 많이 겪었나요. “인종차별은 어디에나 있어요. 유럽 진출 초기에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오디션에서 탈락했고 독일어를 못해 마스터클래스에서 쫓겨났죠.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당시엔 충격이 컸어요. 하지만 유럽 사회는 실력이 있으면 언젠가는 인정을 합니다. 특별할 것 없는 제가 성공한 건 포기하지 않고 재능을 갈고닦았기 때문이에요.”●지독한 완벽주의자 그는 지독한 완벽주의자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공연 전엔 ‘호콕’(호텔에만 머무름)하고 킥복싱과 ‘홈트’(유튜브 보며 집에서 운동)로 체력을 다진다. 공연 전엔 완벽주의 기질이 극한으로 치닫는다. 무대, 의상, 객석 의자까지 제대로 각이 잡혀야 안심이 된다. 허름한 야외공연장 객석 의자가 거슬려 방석 수천 개를 산 적도 있다. ―평생 절제하는 삶, 힘들지 않나요.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8시간 동안 방에 가둬 두고 피아노 연습을 시켰어요. 누구도 대신 연습해주지 않고, 정상 자리를 유지하려면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였습니다. 습관이 돼서 힘들지 않아요.” ―무대 밖에서는 어떤가요. “비슷해요. 뭐든 풀세팅을 선호하죠. 집에서 밥 한 끼를 먹어도 테이블 세팅을 갖춰요. 손님도 왕처럼 대접하죠. 살아온 모양처럼 몸이 굳었는지, 어떤 의사가 말하길 제 어깨가 돌처럼 딱딱하대요.(웃음)” ―어머니 꿈이 성악가셨다죠. 건강 상태는 어떠신가요. “7년째 치매로 고생하고 계신데, 거의 매일 저녁 식사 전에 전화로 이야기를 건넵니다. 오페라 아리아를 몇 곡이나 흥얼거리실 정도로 클래식을 사랑하셨죠. 로베르토 알라냐를 제일 좋아하셨는데, 이번 공연에 모실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알라냐는 어떤 동료인가요. “무대 위 동물이죠. 끼를 타고났어요. 무대 밖에선 소탈하고 천진하고 세상 물정 모르고. 저와 비슷한 면이 많아요. 사실 알라냐의 전 부인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와 더 친해서 한동안 어색하게 지내다가 다시 가까워졌어요.(웃음)” 깔깔 웃고 대책 없이 울다가 무대 위에선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조수미는 천생 예술가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반쪽 조수미였다. 그는 인터뷰 이슈를 소속사 직원에게 직접 카톡으로 주문할 만큼 빈틈없었다. 예술가의 감성과 최고경영자(CEO)의 냉철함을 동시에 품은 여전사 같았다. “러시아, 브라질, 현대음악 등 음악 욕심은 끝이 없어요. 언제 하고픈 걸 다 할지, 휴.” 그의 인생 ‘챕터2’가 닻을 올렸다.이설 기자snow@donga.com}

제 손으로 방 한 번 닦아본 적 없는 A 씨 커플. ‘혼수가전 체크리스트’를 뽑아 들고 야심 차게 가전제품 매장을 방문했지만 두통만 얻고 돌아왔다. 전부 들이고 싶지만 집은 좁고 예산은 적고, 필수 품목을 고르려니 지인이고 포털이고 답변이 천차만별이다. ‘시간거지’인 워킹맘들이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만한 품목을 추려봤다.혼자 쓸고 닦고… 물걸레 로봇청소기 싱글이던 그 시절, 팔팔하던 20대에도 퇴근 후 집에 오면 늘 녹초였다. 세수할 힘도 없어서 소파에 한동안 누워 있었다. 낼모레 마흔인 지금은 체력이 더 달린다. 그런데 집에 오면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단 1%라도 힘을 덜어준다면 뭐든 집에 들여놓게 된다. 지인 집에서 보고 곧바로 지난달 주문을 넣은 물걸레 로봇청소기가 대표적이다. 결혼 전 30여 년 동안 한 번도 물걸레로 바닥을 닦아보지 않았기에 물걸레질이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 걸레를 빨아 무릎을 꿇고 거실을 한 번만 닦아도 진이 빠진다. 대충 청소기만 밀고 모른 척하려 해도 미세먼지가 내려앉은 바닥에서 뒹굴고 노는 아이를 보면 그럴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물걸레 로봇청소기는 신세계였다. 먼저 무선 청소기로 한 번 쓱 민 다음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알아서 온 집을 돌아다니며 바닥을 닦는다. 주변 장애물을 잘 파악해서 알아서 요리조리 피해 다니기도 한다. 물론 아주 구석진 곳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지만 로봇이 가지 못하는 곳이면 아이도 잘 가지 않는다. 그냥 무시하면 된다. 아이 매트 위에 올려보니 매트에서만 열심히 돌아다닌다. 스스로 낙하하지 않도록 공간을 가늠하며 청소하는 듯했다. 주말 아침에 청소기 한 번 돌리고 “물걸레 로봇아 청소하렴” 하고 나가면 그만이다. 요즘 인기 있는 제품은 에브리봇, 아이로봇, 브라바, 삼성, 에코백스, 유진로봇, 다이슨 등이다.(결혼 7년 차 워킹맘 기자 K 씨)진작 살걸 ‘기특한 너’… 스타일러 미세먼지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3월에 주문해 4월에 겨우 받은 아이템이다. 도저히 옷장 옆에는 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거실 소파 옆자리를 내주었다. 스타일러에 꽂힌 첫 번째 이유는 옷을 세탁소에 맡길 시간이 없어서다. 워킹맘들은 주중이면 1분도 아껴서 움직여야 한다. 당연히 옷을 다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약간 구겨지고 더러워진 옷은 비용이 들더라도 세탁소로 보낸다. 문제는 세탁소에 옷을 맡길 시간이 주말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중에는 세탁소 아저씨를 만날 수가 없다. 매번 주말에 옷을 맡기고 평일 밤늦게 찾아오다 보니 입고 싶을 때 옷이 없는 일이 적잖다. 퇴근하고 몸이 천근처럼 느껴질 때 옷을 대충 의자 위에 걸쳐놓다 보니 구겨져 있을 때도 많다. 출근 준비에 시간을 쫓기며 옷을 잡았다가 주름진 모양에 소스라치게 놀랄 때도 있었다. 스타일러를 사용한 지 한 달. ‘더 일찍 샀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럽다. 일단 구겨진 재킷과 트렌치코트에 ‘짱’이다. 고급 의류 코스로 34분 정도 돌려주면 깔끔해진다. 면 셔츠도 다림질까진 아니어도 주름이 사라지고 새 옷 같아진다. 미세먼지 때문에 찜찜했던 이불 살균도 할 수 있다. 이용하기도 간단하다. 퇴근해서 구겨진 재킷과 셔츠를 스타일러에 넣고 돌린 뒤 다음 날 아침에 꺼내 입으면 된다. 4월에 겨울옷 정리할 때도 요긴했다. 드라이클리닝을 하고 한 번밖에 입지 않아 또 세탁소에 맡기기가 애매했던 옷들은 스타일러에 돌린 뒤 정리했다. 보송보송한 느낌이 좋았다. 특히 패딩, 모피에 효과가 컸다. 단점도 있다. 결정적으로 실크제품은 사용할 수 없다. 주름진 실크 스카프와 실크 블라우스, 실크 스커트에 적절한 조치가 절실했는데…. 스팀을 기본으로 하다 보니 고급 소재로 만든 제품들은 사용하기 어려운 것 같다. 요즘 주목받는 제품은 LG전자 트롬 스타일러, 10만 원대의 간소형 제품인 미국 해밀턴비치의 이지스팀백 등이 있다. 삼성전자와 웅진코웨이 등도 신제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결혼 9년 차 워킹맘 J 씨)반찬부터 간식까지 ‘뚝딱’… 에어프라이어 둘째를 낳고 지난해 겨울부터 육아휴직 중이다. 그간 잘 보살펴주지 못한 첫째에게 맛난 걸 많이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손은 느리고 요리 감각은 없고…. 그때 에어프라이어를 추천받았다. “고기나 고구마, 감자, 어묵, 아무거나 그냥 넣기만 하면 돼.” 쉽고 간편하다는 말에 넘어가 샀다가 창고에 처박아 둔 가전제품이 많다는 사실에 잠깐 갈등했다. 그때 친구의 말은 쐐기가 됐다. “굽네치킨도 만들 수 있어.” 다음 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에어프라이어를 골라 사들였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밥과 간식을 전부 해결할 수 있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다섯 살 아들은 에어프라이어를 거친 삼겹살과 스테이크로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다. 고구마, 감자, 생선, 만두, 치킨 등도 자주 만들어 먹는다. 특히 치킨은 허브양념을 뿌리고 파, 양파를 썰어 넣은 뒤 에어프라이어에 튀기자 마법처럼 굽네치킨 같은 모양새가 나왔다. 돈가스는 지나치게 바삭바삭해 맛이 덜하지만 꼬마돈가스는 괜찮았다.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요령도 생겼다. 기름기가 쫙 빠져야 좋은 고기, 만두, 튀김 등은 기름종이를 깔아야 한다. 그 대신 기름기가 자작해야 맛이 나는 피자, 떡, 돈가스 등은 기름종이를 깔지 않는다. 요리 소요 시간은 180∼190도에서 20∼30분가량. 냉동식품과 튀긴 음식을 많이 먹게 돼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안 된다. 새우나 큰 돈가스는 튀김 정도가 불만스럽다. 기름을 닦아내는 일이 다소 귀찮지만 베이킹소다와 뜨거운 물을 섞어 불리면 때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대우어플라이언스, 필립스와 트레이더스의 제품이 요즘 인기다.(결혼 7년 차 워킹맘 L 씨)빨래 널기 끝… 건조기 결혼 6년 차, 마침내 건조기를 집에 들였다. 미국 연수 중 ‘코인 세탁방’에서 쓰던 건조기의 편리함을 잊지 못해서다. 비가 쏟아지던 날에도 바삭바삭할 정도로 잘 말라 있는 옷들을 꺼낼 때 느껴지던 상쾌함도 잊기 어려웠다. 기자의 집은 96m² 정도. 실내가 좁아 건조기를 사기 전까지 고민이 컸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세탁기 위에 건조기를 놓았더니 공간 걱정이 사라졌다. 다만 키가 작다면 세탁물을 넣고 빼는 게 좀 불편할 수 있다. 건조기를 한 달간 사용해본 결과 두 가지 점이 특히 맘에 들었다. 우선 빨래가 끝난 옷을 꺼내 건조대에 거는, 가장 귀찮은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다. 특히 여름 장마철에 건조대 옆에서 제습기 두 대를 돌려도 꿉꿉한 냄새가 나 불쾌했다. 이제는 그럴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평소 입던 옷에 얼마나 많은 먼지들이 붙어 있었는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도 있다. 건조기를 다 돌리고 난 뒤 먼지거름망을 꺼내 보면 먼지가 수북하다. 특히 미세먼지 경보라도 울린 날 먼지거름망을 꺼내 보면 묘한 쾌감까지 느낄 수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무엇보다 건조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린다. 한 시간 동안 세탁한 옷들을 표준 코스로 건조하면 평균 두 시간 넘게 걸린다. 삼성전자, LG전자, 독일 블롬베르크, 터키 아첼릭 등이 내놓은 건조기들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결혼 6년 차 워킹맘 기자 L 씨)‘청소 바보’를 천재로 바꿔주는 무선청소기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부부의 ‘지저분 견딤 지수’는 매우 높다. 신혼 때에는 먼지와 사이좋게 뒹굴며 살았다. 아이가 생기면서 견딤 지수는 급격히 떨어졌다. 먼지가 방 구석구석에 쌓이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청소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유선청소기의 실타래처럼 꼬인 줄을 풀고, 거리가 멀어져 콘센트에서 플러그가 빠질 때마다 전원을 다시 꽂다 보면 심신이 바닥났다. 결국 무선청소기를 찾았다. 처음 사용할 때는 괜히 샀다 싶었다. 끈이 얽히고설켜 분노를 유발하던 유선청소기에 비하면 양반이었지만 손목과 손아귀가 너무 아팠다. 버튼을 계속 꾹 누른 채 청소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청소가 끝나고 나선 다신 못 하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이용 횟수가 늘어나면서 통증은 사라졌다. 그때부터 무선청소기의 진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돌릴 때마다 ‘샤샤삭’ 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사라지는 시각적 쾌감이 상당했다. “게으른 인간도 청소하게 만든다”는 지인들의 얘기가 과장이 아니었다. 친정과 시댁에도 무선청소기를 선물했다. 한데 반응이 달랐다. 60대로 비교적 체력이 좋은 편인 친정어머니는 주변에 “딸에게서 좋은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하신다. 70대인 데다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시어머니는 “너무 무겁기도 하고 청소 결과도 맘에 들지 않는다”며 물걸레 로봇청소기를 찾으셨다. ‘무선청소기+스탠드형 물걸레청소기’ 또는 ‘무선청소기+로봇청소기’ 조합으로 돌리니 집이 말끔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특히 얼굴 쪽으로 바람이 불고, 필터를 비울 때 묵은 먼지가 날리는 점은 개선이 필요하다. 요즘 무선청소기 제품은 다양해지는 추세. 다이슨, LG전자, 일렉트로룩스, 디베아 등의 제품이 인기다.(결혼 5년 차 워킹맘 S 씨)친정엄마 건강 지킴이… 전기레인지 어려서부터 불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요리할 때마다 불안하다. 활활 타오르는 불이 냄비 옆구리를 스쳐 솟구치거나 바람에 일렁일 때면 화들짝 놀라는 일도 잦았다. 두 아이를 낳곤 가스레인지가 더 못마땅해졌다. 천방지축 아들들의 키가 자라면서 부엌에 대한 공포는 더더욱 커졌다. 행여 손잡이를 돌려 가스레인지를 켤 수도 있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여기에 미세먼지도 전기레인지를 구매하도록 만든 큰 요인이 됐다. 일주일 내내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려 실내 환기를 못 하게 된 데다 가스레인지에서도 심각한 미세먼지가 나온다는 언론 보도를 봤다. 일하는 딸 대신 부엌에 살다시피 하시는 친정엄마의 건강이 염려됐다. 전기레인지는 가열 방식에 따라 인덕션과 하이라이트로 나뉜다. 인덕션은 빨리 가열되고 빨리 식고, 하이라이트는 천천히 가열되고 천천히 식는다. 보통 인덕션 1개, 하이라이트 2개를 섞은 하이브리드 제품을 많이 산다고 한다. 전기레인지를 들여놓은 뒤 요리를 할 때 이산화탄소를 맡을 일이 줄어 만족스럽다. 요리 과정에서 느껴지는 열기도 덜해 쾌적한 기분마저 들었다. 전기레인지 전용 냄비를 써야 한다고 했지만 요즘은 다 호환이 된다. 뚝배기가 거의 유일한 금지 품목이다. 청소도 간편하다. 사용한 직후에 물티슈나 건티슈로 닦아주고, 일주일에 한 번 전용세제로 세척해주면 끝이다. 쿠쿠전자, LG전자, 삼성전자, 쿠첸 등 대부분 가전회사가 전기레인지를 내놓고 있다.(결혼 8년 차 전직 워킹맘 K 씨)정리=이설 기자 snow@donga.com}

“50년 가까이 외국 생활을 했지만 와인은 늘 자신이 없었어요. 언젠가 와인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4월과 이달 9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양태규 전 몬트리올 총영사(81)를 만났다. 첫 만남에선 와인 강의를 들었고 두 번째엔 그가 만든 와인을 마셨다. “내가 만든 와인이 자랑스럽다. 와인 맛이 어떠냐”고 묻는 노신사의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번졌다. 마치 와인과 사랑에 빠진 20대 청년 같았다. 그는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은 내추럴와인으로 제3의 인생을 열었다. 외교관으로 32년, 해외 대학 교수로 13년간 일한 뒤 2009년 이제 좀 쉬자 싶어 한국에 들어왔다. 그런데 펄펄 끓는 피를 잠재울 수 없었다. 일흔둘, 하고 싶은 것도 수두룩했고 묵히기 아까운 능력도 많았다. “그림을 그릴까, 책을 쓸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죠. 그러다 문득 와인이 떠올랐어요.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적잖은 와인을 접했지만 제대로 파고들면 어떨까 싶었죠. 온라인에서 관련 정보를 찾으며 와인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독한’ 와인공부가 시작됐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 그는 7개 언어를 한다. 이런 외국어 능력을 바탕으로 온라인에서 크고 작은 와인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학구파 기질을 살려 각국의 와인자료를 보다 보니 ‘조지아(옛 그루지야)’라는 이름이 나왔다. “조지아는 와인의 발상지예요. 황토 항아리인 크베브리(Qvevri)에서 포도를 숙성시켜 만들죠. 천년에 걸쳐 내려온 기술로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기술보다 조지아의 양조방식이 더 뛰어나다고 칭송했어요.” 조지아의 내추럴와인에 강한 호기심이 일어 2010년 3개월간 와이너리 현지답사를 다녔다. 농가를 빌려 크베브리 5개를 묻고 포도 종을 골라 같은 해 말 첫 와인을 만났다. ‘초심자의 행운’이 따라와 기가 막힌 와인이 나왔다. 그는 포도는 직접 재배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발품을 팔아 좋은 테루아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최고의 포도를 매입한다. 처음엔 700병 정도 만들다가 최근엔 자신감이 붙어서 1500병 정도로 양을 늘렸다. 한국에 올 때마다 조금씩 들여와 지인들과 나눠 마신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파노라마처럼 쭉 뻗는 소리를 원합니까, 제 방에서 듣는 아늑한 소리를 원합니까?” 올해 4월 경기 부천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사무실. 박영민 상임지휘자와 세계적 음향설계자인 나카지마 다테오 씨(47)가 머리를 맞댔다. 부천필하모닉 전용홀의 설계를 맡은 나카지마 씨가 부천필 측의 요구사항을 듣는 자리였다. 음악가의 추상적인 요구에 설계자가 기술적 답변을 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박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색깔을 파악하기 위해 집요하게 음악 관련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나카지마 씨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음향설계자다. 이 분야의 대부인 러셀 존슨(2007년 사망)의 후계자로, 세계적인 공연장을 다수 설계한 영국 애럽사의 음향 및 무대디자인 팀을 이끌고 있다. 폴란드 브로츠와프의 ‘국립뮤직포럼’, 덴마크 올보르의 ‘북유틀란트 하우스 오브 뮤직’ 등이 그의 작품. 2021년 완공 예정인 부천필 전용홀 음향설계를 맡은 그를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애럽 한국지사 사무실에서 화상으로 만났다. “미적 기준이 다른 것처럼 공연장도 각각 그 나름대로의 소리(tone)와 특성(identity)이 있어요. 공연장이 추구하는 소리를 이해하기 위해 설계 전 고객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눕니다.” 공간의 규모, 습도, 온도, 벽면과 바닥의 재질…. 음향설계는 수십 가지 변수를 조율해 원하는 음색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객석과 형태를 정하고, 흡음과 반사를 고려해 마감 재료를 선택하고, 잔향과 초기음 등을 고려해 정교하게 설계를 가다듬는다. 그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최신 기술을 토대로 설계해도 결과는 늘 예상을 비켜간다”며 “이것이 음향설계의 마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래 음악도였다. 캐나다 토론토왕립음악원을 졸업한 뒤 독일 일본 네덜란드 등에서 바이올리니스트와 지휘자로 활동했다. 연주자나 무대 관련 일을 하다가 음향설계로 진로를 바꾸는 이들이 적잖지만 지휘자 출신은 드물다. 그는 “무대에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한 점이 큰 도움이 된다. 지금도 가끔 설계한 무대에서 지휘를 하며 설계가 어떻게 구현됐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99년 세계적 음향회사인 아르텍(2013년 애럽에 합병)의 창립자인 러셀 존슨과 만나면서부터. 지휘자인 그에게 러셀은 “공연장의 소리는 연주자, 악기, 관객, 공간이 어우러져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건넸고, 그는 공간과 교감하며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점에 매료돼 아르텍에 입사했다. 음반, 디지털, 영상 등 클래식과 만나는 길이 다채로워지는 시대, 공연장은 어떤 경쟁력을 갖춰야 할까. “공연장은 웅장함, 생동감, 따뜻함 등 단순한 소리 이상을 경험하는 공간입니다. 제 손끝에서 탄생한 공연장이 그 지역의 정체성(identity)을 잘 담아내길 바랍니다. 공연장을 방문한 이들이 자연스레 그 지역의 정서에 녹아들고, 그곳만의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요.”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