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째 선수들 ‘붉은악마 vs 초록전사’ 축제가 시작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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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RUSSIA 월드컵]운동장밖 응원전도 관전 포인트

인공지진, 동성애 혐오 응원, 벌금 1000만 원…. 단 한 경기 만에 역대급 일화를 많이도 남겼다. 멕시코 축구팬은 열정과 과격의 경계에 걸친 팬심으로 ‘자국 선수단마저 외면한 워스트팬(worst fan)’이란 오명을 썼다. 어찌 됐든 한국에 이들은 위협적인 12번째 선수다. 한국 응원단이 분발해야 하는 이유다. 23일 밤 12시 멕시코와의 일전에 앞서 양국의 응원단 대결 포인트를 들여다봤다.

○ 축구사랑: 추억 vs 열기

“아내의 반대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 친구 하비에르예요.”

최근 멕시코 방송에서 희한한 장면이 방영됐다. 월드컵을 보기 위해 러시아에 건너온 여섯 남자가 사람 크기의 종이 인형을 데리고 다니며 먹이고 입히고 재웠다. 동창생인 이들은 수년 전부터 러시아 월드컵 여행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곗돈을 붓고 중고 스쿨버스를 산 뒤 멕시코 상징색과 문양으로 차를 꾸몄다. 하지만 그들 중 하나인 하비에르는 아내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친구들은 함께하지 못한 하비에르의 종이 인형과 축구여행을 다닌다.

한국의 축구사랑은 2002년 이후 세계적 수준으로 달아올랐다. 월드컵을 개최한 경험과 각종 드라마를 거듭하며 이룬 4강 신화는 ‘꿈에도 못 잊을’ 국민 추억으로 꼽힌다. 이후 대표단의 성적에 따라 부침이 있었지만 축구에 대한 관심은 늘 보통 이상이다. 월드컵은 당연히 챙겨봐야 할 이벤트가 됐고, 월드컵 기간엔 각종 ‘특수’가 넘친다.

멕시코의 축구사랑은 훨씬 전면적이다. 멕시코 교민이나 한국의 멕시코인들은 “한국은 일부 광팬을 제외하곤 월드컵 시즌에만 전 국민적인 응원 열기가 끓어오른다. 멕시코는 늘 열기로 뒤덮여 있고, 월드컵 기간엔 활화산처럼 열기가 폭발한다”고 했다. 이번 월드컵이 멕시코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현지 언론은 “6월 말에 8강 진출이 결정되면 7월 1일 대선 투표율이 낮아지고, 그러면 지지율이 높은 좌파 후보가 불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현지 응원: 대통령 포함 1000여 명 vs 3만 명

한국과 멕시코 경기에는 멕시코 팬 3만여 명이 찾을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 등 외신은 “멕시코 팬이 거리를 점령했다. 어디를 가도 아즈텍 복장을 한 초록전사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멕시코는 월드컵을 인생 이벤트로 여기는 이들이 상당수다. 4년간 돈을 모아 축구여행을 떠나고 다시 귀국해 일하다 축구여행을 계획하는 식이다. 송기진 주멕시코한국문화원장(45)은 “멕시코인들은 뭐든 한번 빠지면 끝장을 본다. 취미 이상으로 취미를 즐기는 문화가 보편적”이라고 했다.

“멕시코는 빈부격차가 심해요. 과거 식민시대 토지 재벌이 적지 않아 이들은 여유롭게 축구여행을 즐기죠. 그렇다고 저소득층은 축구여행을 떠나지 못하느냐. 그들도 갑니다. 월급이 30만∼40만 원 선인데 매달 5만∼10만 원씩 저축해서 축구여행을 가는 거죠.”

6월 흥행 돌풍을 일으킨 축구 관련 코미디 영화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나타내 보인다. 영화 제목은 ‘너는 나의 열정(res mi pasion)’. 멕시코 프로축구단 ‘크루스 아술’에 빠져 직장과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축구광의 이야기를 다뤘다. 주인공은 영화 마지막 순간에야 삶의 균형을 되찾고자 마음먹는다. 송 원장은 “저소득층 축구 광팬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몇 달간 응원 여행을 하고 돌아와 다시 직장을 찾는다. 영화의 인기는 내용이 그만큼 실감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관중은 최대 1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붉은악마’ 등 응원단은 갓을 쓰고 전통 복장 차림으로 외국인 관중에게 한국 홍보를 하는 등 수적 열세를 만회하려 애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경기장을 찾아 힘을 보탠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표팀 월드컵 경기를 관전하는 건 16년 만에 처음.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경기장을 찾은 바 있다. 해외에서 열리는 A매치 관전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 거리응원: 광화문광장 vs 소칼로광장

한국은 2002년 월드컵 응원 역사를 새로 썼다. 거리응원, 붉은악마, 월드컵 베이비, 축맥(축구&맥주), 월드컵 여신 등으로 대표되는 응원 문화를 꽃피웠다. 이후 성적에 따라 들쑥날쑥했지만 응원 문화는 진화를 거듭하며 이어지고 있다. 이번 월드컵 열기는 다소 식었다. 하지만 ‘애국심’을 덜고 해외 경기를 응원하는 등 응원 문화는 한층 성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에도 곳곳에서 거리응원전이 열린다. 서울에선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영동대로 일대, 연세로, 스타필드 하남 아쿠아필드 등에서 응원전이 준비돼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 야탑역 광장,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과 원마운트 이벤트 광장, 인천 동인천역 북광장, 경기 수원월드컵경기장에도 스크린이 걸린다.

스포츠펍에서 새벽을 불태우는 방법도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봉황당’과 상수동 ‘더그아웃’, 서울 이태원 ‘커넉스’ ‘샘라이언스’ 등이 있다. 스포츠펍이 아니라도 ‘축맥’ 프라임타임을 준비하는 호프집이 적지 않다. 회사원 김주한 씨(43)는 “동네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모바일로 삼삼오오 축구를 즐길 것”이라고 했다.

멕시코에서는 20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멕시코시티 소칼로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경기를 본다. 경찰의 통제하에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며, 경기 후엔 20여 분 떨어진 레포르마 거리로 몰려가 축제를 즐긴다. 18일 멕시코-독일전 땐 광장에만 7만5000명이 몰렸다. 이르빙 로사노가 선제골을 넣은 순간, 이들이 동시에 발을 구르는 바람에 인공지진까지 감지됐다.

오전에 경기가 끝나면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종일 거리에서 여흥을 즐기는 게 일반적이다. 여차 하면 1박 2일로 잔치판을 벌인다. 멕시코인인 구스타보 산체스 계명대 컴퓨터공학과 조교수(29)는 “멕시코에선 집이나 펍, 거리에서 응원을 한다. 주로 맥주에 감자칩이나 땅콩 같은 간단한 안주를 곁들이며, 경기 후엔 테킬라도 마신다. 거리에선 음주가 불법”이라고 했다.

○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 vs ‘야 야 야이 송’

한국의 공식 월드컵 응원가는 2002년 이후 조금씩 변해 왔다. 2002년 발매된 응원가 음반 ‘꿈은 이루어진다’에 수록된 ‘오 필승 코리아’(윤도현밴드)와 ‘Into The Arena, 아리랑’(신해철)이 히트했다. 2006년 발매된 응원가 음반 ‘Reds, Go Together’에서 록그룹 트랜스픽션이 부른 ‘승리를 위하여’도 명곡으로 꼽힌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응원가 앨범 ‘위, 더 레즈(We, the Reds)’에는 빅스의 레오와 걸그룹 구구단의 김세정이 부른 ‘우리는 하나’ 등이 실렸다.

멕시코는 ‘시에르토 린도’라는 노래를 떼창(떼로 부름)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율에 단조로운 가사 등 응원가로선 최적의 요소를 갖췄다. ‘야 야 야 야이야’라는 후렴구가 유명해 ‘야 야 야이 송’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후렴구에 ‘푸토(puto)’라는 욕설을 붙이는 게 문제. 독일전 때도 후렴구에 욕설을 섞어 국제축구연맹(FIFA)이 멕시코축구협회에 벌금 1000만 원을 매겼다. 이에 멕시코축구협회 측은 자국 팬들에게 욕설 자제를 당부했다. AP통신은 “멕시코의 가장 큰 적은 다음 상대인 한국이 아니라 자국 팬”이라고 전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러시아 월드컵#붉은악마#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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