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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누에머리 흔들며, 전동 같은 앞다리, 동아 같은 뒷발로양 귀 찌어지고,쇠낫 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하늘이 무너지고땅이 툭 꺼지난 듯, 자라 정신없이 목을 움추리고 가만이 엎졌것다”판소리 ‘수궁가’에서 호랑이가 등장하는 대목입니다. 산 속 동물들이 자기 나이를 떠벌이며 서열을 정하느라 다투는 사이, 별주부가 토끼를 ‘토생원’이라고 부르려다 실수로 ‘호생원’이라 말하자 ‘생원’소리를 처음 들은 범이 반색하며 내려오는 장면이죠.수궁가와 별주부전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지만, 세세한 에피소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2020년 크로스오버 밴드 ‘이날치’가 이 대목을 한국관광공사의 뮤직비디오로 알리며 유명해졌죠. 이 영상이 대박이 난 뒤 새로 뭔가 등장하면 ‘범 내려온다’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게임 체인저’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아래 문단을 보신다면 이 비유는 선뜻 쓰기가 어려워 질 것입니다.▽별주부가 한 꾀를 얼른내고 목을 길게 빼어 호랭이 앞으로 바짝바짝 달려들며 “자! 목 나가오 목 나가!” “호랭이 깜짝 놀라 ”그만 나오시오 그만 나와! 이렇듯 나오다가는 하루 일천오백발도 더 나오겠소. 어찌 그리 조그마한 분이 목이 들랑달랑 뒤움치기를 잘 하시오“…(중략)…”호랑이 쓸개가 좋다 허기로 도량귀신 잡어타고 호랑이 사냥을 나왔으니 네가 일찍 호랑이냐 쓸개 한 봉 못 주겠나 도량귀신 게 있느냐 비수 검드는 칼로 이 호랑이 배 갈라라!“호랭이 다리(주요부위)를 꽉 물고 뺑뺑 돌아노니 어찌 호랭이가 아팠던지 거기서 의주 압록강까지를 도망을 했겄다. 거기서 저 혼자 장담하는 말이 ”아따! 그놈 참 용맹 무서운 놈이로다. 나나 된 게 여기까지 살아왔지 다른 놈 같으면 영락없이 죽었을 것이다.“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호랑이는 납작 엎드린 자라를 보고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자라는 용기를 내 버티고, 꾀를 내 허풍을 떤 뒤 호랑이의 그 곳을 꽉 물자 호랑이가 비명을 지르며 줄행랑을 친 것입니다. 수궁가에서 ‘범’은 허우대만 좋고 실속은 없는 캐릭터입니다. ‘범 내려온다’는 명예로운 비유가 아니라 치욕스런 표현에 더 가깝습니다.▽‘1만 시간의 법칙’도 내용의 절반만 인용되는 용어입니다.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Outliers)’에 등장해 유명해진 개념지요. 책의 초·중반부 핵심 내용입니다. 자기계발서나 방송 교양 프로그램, 언론 칼럼에도 숱하게 인용되는 용어입니다.그런데 글래드웰이 하고 싶어 하는 주제는 책 후반부에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일반인들도 이미 자기 분야에서 1만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인데, 누구는 아웃라이어가 되고 누구는 왜 평범하는 사는가….글래드웰은 그 이유를 ‘운’과 ‘환경’으로 꼽습니다. 개인이 처한 상황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1950년대에 태어난 아프리카 아이는 전자제품은 구경도 못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빌 게이츠는 10대에 당대의 슈퍼컴퓨터를 자유롭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개인 능력과 노력 이외에도 가정 환경(부모), 사회 배경(국가), 지적 자원, 문화 자본 등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글래드웰은 정부나 사회, 국제단체 등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며 책을 맺습니다. 글래드웰은 이 얘기를 하려고 1만 시간 법칙을 인용한 것이죠. 누구나 자기의 꿈을 위해 1만 시간을 훈련할 기회를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계발서로 시작해 사회복지학으로 끝나는 책입니다. 국내에서 인용되는 1만 시간 법칙은 의미가 반쪽만 전달된 사례입니다.▽오독(誤讀·misreading)은 텍스트의 의미를 잘 못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것을 뜻하는데요,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에 대해 창작자-독자, 창작자-비평가, 독자-비평가들의 생각 차이를 말합니다. 문해력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인지, 의도나 감정 차이로 해석을 다르게 할 수 있는데 현대 철학자들은 오히려 이 오독을 즐기라고 권유합니다. 그래야 저마다의 상상력에 의해 새로운 문학작품이 끝없이 창조된다는 것이죠. 좋은 영화일수록 해석이 분분하다는 것과 비슷합니다.하지만 이것은 예술작품 얘기고요, 정보의 전달이 중요한 실용서 등에서 오독이 있어서는 안 되겠죠. 비문학작품을 쉬운 문장으로 쓰는 이유입니다. 오독을 막는 방법은 뭘까요. 책이라면 일단 끝까지 읽고, 수궁가도 끝까지 들어야겠네요.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속담이 와 닿습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전통 명절인 단오(음력 5월 5일)를 하루 앞둔 2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직원들의 도움으로 ‘창포물에 머리 감기’를 시연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국내 최대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이 1일 개막했습니다. 28회째이며 5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립니다. 코로나19로 축소된 뒤 3년 만에 정상 개최네요. 개막 첫날인 1일엔 주최측의 예상 관람객 3만 명을 훌쩍 넘는 인파가 몰려 성시를 이뤘습니다. 독서인구가 줄어 출판시장이 어렵다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인 이 전시회의 올해 주제는 ‘반걸음’.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변화는 고정관념을 깨고 용기 있게 나아가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네요. 국내외 195개 출판사와 저자·강연자 214명이 참여하고 강연·대담이 306회 진행됩니다. 10개 브랜드와 600권 분량의 북 큐레이션도 만날 수 있고, 최근 3년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도서 30종을 선보이는 전시도 함께 마련됐습니다.개막 첫날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올해 주빈국은 수교 60주년을 맞은 콜롬비아. 주빈국관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주요 작품인 ‘백 년의 고독’과 ‘콜레라 시대의 사랑’ 등이 전시됐습니다.김영하 작가의 ‘책은 건축물이다’ 강연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프랑스 부스독일 부스‘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도서 30종을 전시한 코너입니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숲세권 테라스 원룸 임대합니다. 아기 새 육아에 좋은 환경입니다. 뱀과 족제비가 못 알아채도록 담쟁이덩굴로 도배도 해뒀습니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연잎과 소금쟁이가 떠 있습니다. 녹조가 심해지자 수질을 정화하기 위해 다년생 수생식물을 심은 인공 수초섬이죠. 10년 가까이 물속에 뿌리를 내린 풀들이 올해도 푸릇하게 잘 자랐네요. 물고기들이 산란처로도 애용한다니 생명도 잘 품고 있는 듯합니다. ―충북 청주시 대청호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2016)’는 상처와 기억에 대한 영화입니다. 강렬한 은유의 이미지로 상처와 기억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설정된 가해자는 수전(에이미 애덤스)이고 피해자는 옛 연인 에드(제이크 질렌할)입니다. 정확히는, 에드가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기는 설정입니다. 실제로 수전은 옛날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죠.수전이 누워서 에드의 습작 소설을 읽던 빨간 소파는 영화 속 영화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시신의 배경으로 변용됩니다. 수전이 습작을 읽은 뒤 빨간 소파에서 앉아 “첫 페이지부터 읽어야 할지 갈등이 생긴다”며 냉정하게 평가했거든요. 작가가 꿈인 에드의 마음엔 연인의 비난이 거대한 트라우마 불도장으로 찍힙니다. 시신이 등장한 미장센은, 언어폭력이 인격살인이라는 상징입니다. 피와 상처를 상징하듯 빨간색으로.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피해자는 상처 받던 상황 하나하나를 초단위로 깨알같이 기억합니다. ▽말로 상처받은 피해자는 트라우마가 뼈에 사무치는데 정작 가해자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곤 합니다. 심지어 상처 받은 건 오히려 자신이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가해자는 왜 기억하지 못할까요. 비수가 된 말들이 사실은 별 의미 없이 던진 말이었기 때문 아닐까요. 오히려 도와주려는 선의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직언, 쓴소리를 해줬다고 뿌듯해 할 수도 있습니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추궁하면 “장난이었다, 친해지려 그랬다”라고 변명합니다. 진심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장난이었을 수도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건 미처 생각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미술관장인 수전은 회사 복도에 걸린 작품 ‘Revenge(복수)’를 보면서도 자신의 결정으로 구입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복수가 전개된다는 것과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전제를 은유의 방법으로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또 복수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변신시키는 것이니까요. 가해와 피해는 언제라도 역전될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합니다.학교폭력과 가정폭력이 대물림되듯, 가해도 복제됩니다. 피해자도 권력이 생기면 언제든지 가해자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당한만큼 가해자에게 되갚아 줄 수도 있고, 엉뚱한 약자에게 분풀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가해와 피해가 엉키고 섞입니다. ▽“…아파트의 8층에는 다섯 명의 대학생이 함께 살고 있다. 나는 가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들과 마주치는데, 그들이 각각 혼자 있을 때 이렇게 물어보았다. ”화장실 쓰레기를 얼마나 자주 내다 버립니까?“ 그러면 ”두 번에 한 번씩“이라고 대답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세 번에 한 번씩“이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또 한 학생은 터진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다가 화를 내며 말했다. ”굳이 말하자면 언제나 저에요. 90%요.“ 그들의 대답을 모두 합치면 100%가 되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모두 합쳐 무려 320%에 이른다! 그런 식으로 공동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시스템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과대평가한다. 결혼에 있어서도 그와 똑같은 메터니즘이 작용한다. 학문적으로 증명된 바에 의하면, 남자나 여자나 모두 원만한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데 각자 자신들의 기여도가 50%를 넘는다고 평가한다…” / 심리학자 롤프 도벨리의 책 ‘스마트한 생각들’에서상처는 기억과 맞닿아 있지만, 기억은 언제든지 편의적으로 왜곡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기억하니까요. 여기에 자기 연민까지 더해지면 늘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되죠. 결국 가해자는 아무도 없고 모두가 피해자인 상황만이 연출됩니다. 타인이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비난해도 정작 본인은 ‘내가 진짜 피해자’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큽니다. 가해는 반복되고 상처 복제되고 기억은 왜곡되기 일쑤입니다. 결국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서 일은 더 커집니다.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한발 떨어져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상황을 돌아보는 냉정한 시각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울러 오늘도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도 경계해야 하고요. 영화에서 에드의 복수는 이뤄졌을까요? 스포일러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성공합니다. 매우 소심한 방법으로요.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잣방울을 따고 싶은 걸까요? 다람쥐 한 마리가 줄을 타고 슬금슬금 내려옵니다. 미안하지만 LED 전구랍니다. ―서울 구로구에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아기 새가 떠난 빈 나무 둥지에 날아든 씨앗이 싹을 틔웠네요. 쉴 새 없이 생명을 키워내는 ‘둥지 엄마’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경기 구리시 동구릉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왼쪽은 미완성, 오른쪽은 측백나무 미로 정원.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하게 보이면서도 다르네요. 공사가 끝나면 어느 쪽이 더 붐빌까요?―경기 광주시 팔당물안개공원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어릴 적 처음 봤을 때는 신비의 계단이었습니다. 마법으로 움직이는 줄 알았죠. 하지만 자동차와 똑같이 바퀴로 움직이는 운송 수단이네요. ―서울 구로구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022 봄 궁중문화축전 마지막 날인 22일 골목길 퍼레이드인 ‘구나행(驅儺行)―흑호 납시오!’ 행렬이 서울 종로구 창경궁을 출발해 대학로로 향하고 있다. 역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전통의례인 ‘나례(구나)’를 재해석한 이 행렬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된 대학로 일대 골목상권을 돌며 소상공인의 번영을 기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낭만(浪漫)은 일본에서 들어온 단어입니다. 일본에선 ‘로망(ロマン)’으로 읽지요. 동아시아에서 유럽 언어를 가장 먼저 번역한 일본인들이 ‘Roman’을 음차(音借)한 것입니다. 로망은 뭘까요?유럽 문명의 뿌리인 로마의 공식 언어는 라틴어였고, 성경 철학 신학 법전 등 거의 대부분의 기록과 책자가 라틴어로 기록됐죠. 로마 몰락 이후 중세시대에도 라틴어는 여전히 귀족 왕족 등 지배계급의 공식 언어였습니다. 일반 대중들은 라틴어 대신 지금의 각국어의 뿌리가 된 언어로 말했고요. 라틴어는 지배·피지배 계급을 가르는 기준이었습니다.▽중세 시대, 대중의 언어를 정통 라틴어와 대비해 ‘로만쯔’ ‘로만니쓰’ 등으로 비하해 불렀습니다. 로마 사투리라는 뜻입니다. ‘로망’은 멸시의 단어입니다. 마치 조선 양반들이 한글 소설을 ‘언문 패설(稗說)’로 업신여겨 불렀던 것처럼.귀족들이 철학 신학책을 라틴어로 보는 동안 서민들은 자기 언어로 쓰인 남녀상열지사나 기사들의 영웅담 소설에 열광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로맨스 소설의 원조가 됐다고 봐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로망’이란 어원은 꾸며낸 이야기, 즉 판타지 속 설정이라고 봐야겠죠. 주인공은 왕자나 공주 또는 기사였으니…. 대중들의 신분 상승에 대한 꿈을 대신해 준 것 같기도 하고요.▽‘로맨스’ ‘낭만’의 핵심은 비현실입니다. 판타지여야 합니다. 일단 현실적이지만 않으면 낭만이라고 볼 수 있죠. 즉 현실의 대척점에 있는 것들이죠. 단테가 14세기 쓴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 1472년 판.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방언으로 기록해 당시 귀족들에게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현대 이탈리아어가 토스카나의 주도인 피렌체 방언을 표준어로 삼게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책이기도 합니다. ▽외국인이 찍어 올린 한국 풍경 사진은 종종 화제가 됩니다. 상당수의 댓글이 “여기가 한국이라고?”입니다. 익숙한 장소인데도 전혀 다르게 보이죠. 물론 ‘포토샵’을 너무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현실과 너무 다른 모습이라 당황스럽죠.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의 풍광이 비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진과 예술이 원래 그런 것 아닐까요? 판타지를 추구합니다. 저 또한 사진기자로서 사실과 진실에 근접하게 촬영해야 하는 의무를 알지만, 회화(繪¤·pictorial)적으로 찍고 싶다는 본능이 자꾸 솟구쳐 갈등을 겪습니다. 판타지와 낭만에 대한 욕구입니다.▽케이크를 먹어보는 것이 로망인 아이가 있습니다. 마침내 케이크 한 조각을 먹습니다. 꿈을 이룬 것이지요. 내친김에 두 조각, 세 조각을 더 먹습니다. 아뿔싸. 처음 먹었을 때보다 감동이 덜합니다. 만약 네 번째로 먹는다면 더 이상 만족감도 없고 배만 불러 오히려 고통이 될 지도 모릅니다. 이른바 ‘한계효용(限界效用) 체감(遞減)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독일 경제학자 허만 고센(Hermann Heinrich Gossen)에 의해 정리된 것인데요, 변화무쌍한 인간의 욕구를 설명하기에 좋습니다.저는 이것을 ‘행복 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르는데요, 꿈을 이루게 되면 행복감이 엄청 오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감이 점점 약해집니다. 돈 100만원을 갖는 것이 로망이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목표를 이룹니다. 그런데 기쁨은 잠깐, 오히려 불안해집니다. 누가 내 100만 원을 훔쳐 갈까봐, 100만원으로는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이 돈은 더 이상 로망이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나에게 주어져 있던 현실인 것입니다. 그냥 원래 있는 환경. 심지어 불편한 현실일 때도 있습니다.▽로망이 실현되면 행복감이 몰려오지만 이내 그 로망은 현실로 내려옵니다. 꿈을 이룬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원래 로망과 현실의 본질이 그렇습니다. 오히려 이때가 또 다른 로망을 꿈꿀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꿈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듯 일상생활에서라도 낭만도 찾고 가슴 설레는 것을 찾아 다시 떠나야겠죠. 하나의 꿈을 이뤘다면, 다시 다른 꿈을 찾으러 다시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다음 무대로, 다음 단계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앞으로 혹은 옆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이겠죠.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나뭇잎 모양이 새겨진 벤치. 떨어진 대왕참나무 잎을 대보니 비슷하지만 좀 다르네요. 다른 잎이 벤치 주인일까요. ―서울 중구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7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들이 단청 무늬로 장식된 의자에 앉아 경회루를 감상하고 있다. ‘2022 봄 궁중문화축전’ 행사는 22일까지 진행되는데 경회루, 향원정 앞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명상: 궁을 보다’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 빈 의자들을 채우고 사진을 찍어볼까요. 무지개 아래에서 모두가 꿈을 꾸는 표정으로 나올 듯합니다. -서울 종로구 화동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쉿! 전원주택 담장 기와로 위장해 잠시 쉬고 있습니다. 빌런들이 말썽을 부리면 언제든 출동할게요.―강원 평창군 봉평면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개떡처럼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섬뜩한 내용이 숨어 있는 속담입니다. 누구는 개떡처럼 말해도 괜찮고, 누구는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합니다.소통은 평등 관계보다 상하 관계에서 더 많이 일어납니다. 정보가 상호 교류되는 쌍방향보다 일방적인 지시가 훨씬 많죠. 방향에 따라 소통의 모양새는 사뭇 다릅니다. 지시나 통보, 즉 위에서 아래로 메시지가 갈 때는 간단합니다(물론 지시는 간명할수록 좋습니다).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가는 소통, 즉 보고는 꼼꼼합니다. 직장인들이 보고서 작성에 애를 먹는 이유죠.옛날 회사에선 이런 풍경이 흔했습니다(지금은 보기 드뭅니다). 회의 때 좌장이 지시를 하면 모두들 열심히 받아 적습니다. 좌장이 퇴장한 뒤에는 남은 사람들끼리 “아까 그 말씀이 무슨 뜻이었지?”라며 의중을 알기 위해 고심합니다. 모두가 궁예로 빙의해 독심술을 시전합니다. 소통은 권력관계를 반영합니다. 타인을 자신의 의도대로 행동하게 할 수 있는 힘, 즉 영향력은 권력의 핵심입니다. 민주주의 이전 사회에선 가장 큰 영향력이 물리적 강제력이었습니다. ‘법보다 주먹’이 통하지 않는 현대사회에선 그럴 수 없죠. 그런데 대화로 소통할 때 폭력적인 모습을 띨 때가 많습니다. 물리적인 폭력이 사라지니 언어폭력이 대신하는 것일까요. 소통이 애매한 구조로 돼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로버트 포즌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책 ‘그는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해내는가(Extreme Productivity, 2012년)에서 상하 관계의 소통에 대해 이렇게 충고합니다. 요약했습니다.“두루뭉술하게 지시하는 상사에겐 캐물어라. 이런 상사는 평소에 별말이 없거나 돌려 말하다가 갑자기 폭탄을 던져 직원들을 당황하게 한다. 업무지시의 목표와 기대가 무엇인지를 물어라. 더 의사소통하라.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요청하라.”놀랐습니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인 줄 알았던 미국인들도 소통에 애를 먹고 있다니…. 강자의 화법이 있고 약자의 화법이 있습니다. 위 책 같은 자기계발서의 ’소통‘은 주로 약자의 화법이 주제입니다. 당연하죠.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이 대부분 약자일테니까요.상사라고 소통에 애를 먹지 않을까요. 기업의 임원이나 팀장이신 주변 지인들은 한결같이 “아랫사람들이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 “요즘 친구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속상해 하십니다. 저는 포즌 교수의 주장을 거꾸로 적용하면 좋지 않을까 제안합니다. 상사의 의중을 정확하게 캐물어야 하는 것처럼, 지시할 때는 단순하지만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이죠. 또 지시나 보고를 물리적 억압이라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업무가 진행되면서부터는 보고와 피드백을 자주 주고받으며 중간 확인을 계속 하고요. 이를 위해선 평소 수평적 관계를 자주 유지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거스 히딩크 축구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하며 스포츠계에 여러 선진기법을 전수했죠. 팀내 소통방식을 바꾼 것도 그 중 하나인데요, 최소한 훈련과 경기에서만큼은 모두가 반말을 쓰도록 했습니다. 명보! 선홍! 고참 선수라고 예외는 아니었죠. 소통 시간도 줄이고, 개인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2022 베이징 겨울 올림픽 여자 컬링 선수 경기를 TV로 유심히 봤는데요, 컬링 대표팀도 경기 중엔 모두 반말을 하더군요. 작전타임 때도 코치와 선수 모두 다 반말을 합니다. 1초도 아까운 작전타임 시간에 존칭을 쓰느라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마치 ’야자 타임‘같아 웃음도 나왔고요. 히딩크가 스포츠계에 미친 영향이 참 컸다는 생각이 들면서 서로 반말을 쓰는 관계, 즉 수평적인 관계가 되면 지위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고 부담 없이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적극적으로 묻고 확인하는 것. 단순하고 쉬운 것이지만 권력 관계를 고려하면 윗분께 꼬치꼬치 캐묻기 참 애매합니다. 평소에 신뢰관계가 확실하지 않다면 더더욱. 반대로 상사가 직원에게 꼬치꼬치 지시하거나 물어도 ’갑질‘로 여겨질까봐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떡하겠습니까. 직접 의중을 서로 확인해야죠. 상사가 보고를 요청하는 것은 일을 방해하거나 압력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빠른 의사결정과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 믿으셔야 합니다. 부하가 캐묻는 것은 일이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임이라고 믿어야 하고요.우리가 친구들과의 수다를 중시하는 이유. 수평적이고 격의 없는 편하게 떠드는 관계. 사실 이게 진짜 소통이죠. 목적의식 없는 소통, 대화를 위한 대화. 이해관계 없는 나눔.3개월 뒤 모습입니다. 사장님이 문구를 수정해 놓으셨네요. 소통을 아시는 분이 분명합니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초여름 더위가 나타난 12일 오후 서울 양천구 한울근린공원 물놀이터를 찾은 가족들이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양천구는 이번 달부터 9월까지 주요 공원과 가로변에 설치된 수경시설을 가동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연분홍 토종 철쭉. 해발 800m 산속에서 터진 꽃망울에 날벌레들이 너도나도 모여듭니다. ―강원 평창 흥정산에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990년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우주 이론 못지않게 그의 휠체어에 있던 소통 장비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전신마비에 가까운 장애를 겪는 호킹 박사이지만 소통은 물론 강연도 가능했기 때문이죠.과학기술의 발전은 장애인의 불편함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돼 왔습니다. 전동 휠체어와 근력 로봇 같은 장애인 전용 기술도 있지만, 스마트폰 같은 일반 IT 기기도 장애인들에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줍니다. 최근 20여 년 동안 장애인을 도운 ‘일반’ 기술들을 살펴볼까요.▽문자메시지(1990년대 후반 대중화) 청각 장애인들에게 ‘원격 실시간 의사소통’이라는 혁명을 선물한 기술입니다. 1990년대 초까지는 무선호출기(삐삐)를 통해 약속된 숫자 암호로만 연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단문메시지(SMS)였지만 스마트폰 이후 메신저 앱이 퍼지면서는 장문에 사진·영상까지 첨부돼 청각 장애인의 소통 영역이 무한대로 확장됩니다. 이전엔 PC통신과 팩스로 소통했지만 유선의 한계가 있었죠.▽무선 화상통화(2000년 후반 대중화)아이폰이 국내에 첫 상륙한 직후인 2009년 초로 기억합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생소한 장면을 지하철역에서 봤습니다. 한 승객이 스마트폰을 세워놓고 수어로 대화를 하는 모습. 물론 상대방도 수어로 대화 중이었죠. 모바일 화상통화는 저도 아직 낯설 때라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그분들은 제가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두 분의 행복한 표정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저는 수어를 모르지만, 마치 이렇게 대화하는 것 같았습니다.“세상 진짜 좋아졌어. 이제 우리도 전화로 통화할 수 있어!”▽VR(가상현실)·AR(증강현실)주로 발달 장애인을 위한 교육 기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직업 가상 체험, 면접 가상 체험 등으로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VR로는 산 정상 풍광이나 과격한 놀이동산 놀이기구 등 장애인들이 접하기 힘든 곳을 진짜처럼 경험하게 해주죠.▽노이즈 캔슬링 (2016년 이후 대중화)역파동으로 주변 소음을 제거하죠. 1970년대 1980년대 열차 기관사와 항공기 조종사를 위해 미국 보스와 독일 젠하이저가 개발한 기술입니다. 기관사와 조종사들의 직업병 중 하나는 소음성 난청인데 이를 해결하고자 한 기술.이를 대중화한 것은 일본 소니로 기억하는데요, 1990년대 이미 기술을 확보했으나 2016년 블루투스 무선 헤드폰에 이 기술을 적용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노이즈 캔슬링은 소리를 없애는 기술인데 장애인과 무슨 상관이냐고요?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많이 쓴다고 합니다.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야 챙모자를 쓰거나 눈을 감고 안 보면 그만인데, 궁시렁대는 ‘소리’는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한가할 때 타지 왜 공간을 많이 차지하느냐”는 투의 중얼거림이 제일 많이 들린다는데요, 이럴 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아주 유용하다고 합니다. 불편한 소리를 안 듣게 해주니까요. 많은 장애인의 필수 아이템이라고 합니다. 혁명적인 IT의 별난 쓰임새 같아 씁쓸합니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