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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재혁의 새 앨범 ‘쇼팽’(오키드 클래식스 발매) 첫 곡으로 실린 쇼팽 발라드 1번을 CD 플레이어에 올려놓는다. 발라드란 ‘이야기하듯 풀어나가는 곡’을 뜻한다. 장면마다 구분되며 연결되는 이 곡을 조재혁은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려 나간다. 뚜렷한 단절 없이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굽이친다. 공간감이 풍요하면서도 해상도가 뚜렷한 녹음이 큰 강약 대비를 받쳐준다. 흔히 듣던 것과 사뭇 다르고, 인상적이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렸죠. 시인들이 하는 일은 일상의 단어를 재배열해 예술로 만드는 것입니다. 쇼팽은 이미 존재하는 음악적 단어들을 가져와서 그 어휘를 확장합니다. 반음계 음표 하나로도 섬세한 화성을 만들어 내죠.” 음반 발매에 앞서 지난달 유튜브에 공개한 인터뷰 영상에서 조재혁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음반에 실은 쇼팽 발라드 1∼4번 전곡과 피아노소나타 3번을 들고 6월 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이 외에 4월 29일 제주 서귀포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전국 7개 도시 투어도 갖는다. 같은 레퍼토리로 지난달 29일 베를린 필하모니 체임버홀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리사이틀홀, 뮌헨 알러하일리겐호프교회에서 독일 순회공연을 열었다. 전 좌석이 매진됐고 함부르크에서는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조재혁의 여섯 번째 앨범인 이 음반은 그의 첫 쇼팽 음반이다. 1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쇼팽은 처음부터 마음에 담고 있던 작곡가”라고 말했다. “그의 발라드 네 곡은 각각 색상이 진해서 연주회에서 한 번에 연주하는 일은 드뭅니다. 어떻게 한데 엮을까 고심했죠.” 음반 후반부에 실은 소나타 3번에 대해서는 “대학 1학기 실기시험 때 처음 쳤으니 함께한 세월이 오래다. 매우 심오한 곡인 만큼 평생의 프로그램으로 삼을 작품으로 여기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녹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독일 하노버 라이프니츠홀에서 이뤄졌다.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등 여러 명인이 음반을 녹음한 곳이다. 많은 연주자들이 음반을 만들 때 여러 부분을 따로 녹음한 뒤 편집해 붙이지만 그는 모든 곡을 여러 번 친 뒤 하나를 고르는 ‘원컷’ 방식을 택했다고 밝혔다. 칠 때마다 연주의 설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도이체 그라모폰(DG) 부사장을 지냈고 그래미 클래식 프로듀서상을 수상한 마이클 파인이 음반 프로듀싱을 했고 톤마이스터 최진이 녹음 엔지니어를 맡았다. 애플뮤직에서는 입체음향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19세기 영국 상징주의 화가 와츠의 유화 ‘희망’은 눈을 가린 여자가 줄 끊어진 리라를 연주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화가는 깊은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희망’으로 나타내고 싶었을 것이다. 세기가 바뀌어 마틴 루서 킹 목사는 미국 대중에게 이 그림을 소개하며 희망을 전파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 그림에서 착안한 ‘담대한 희망’을 자서전 제목으로 사용했다. 저자는 60점의 명화를 ‘발상의 방’ ‘행복의 방’ ‘관계의 방’ ‘욕망의 방’ ‘성찰의 방’ 등 다섯 개 범주로 나눠 소개한다. 동아일보 ‘이은화의 미술시간’ 등에 연재한 칼럼을 묶었다. 앞서 전한 와츠의 ‘희망’은 ‘성찰의 방’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그림이다. 덴마크 국립미술관에 가면 뒤집혀 걸려 뒷면만 보이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림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뒤집힌 게 아니라 액자의 뒷면을 정밀하게 그린 그림이다. 플랑드르 화가 헤이스브레흐츠가 1672년 그린 ‘그림의 뒷면’이다. 350년 전 화가의 의표를 뛰어넘는 발상이 21세기의 관람객을 놀라게 한다. 이 책의 ‘발상의 방’ 장에서 소개한 그림 중 하나다. “예술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창작자가 살던 시대를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림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 예술이 세상을 바꾸거나 구원하지는 못하겠지만 내 삶을 바꾸거나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74)와 한국 사이의 사랑은 쌍방향이다. 마이스키는 1988년 첫 내한 이후 스무 번 넘게 한국 무대에 섰고 그때마다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활 긋기에서 비브라토까지 더없이 자유롭고 낭만적인 그의 연주가 한국인의 감성에 딱 맞는다는 평도 있다. 한식을 즐기는 그는 서울 이태원에서 구입한 셔츠를 연주복으로 입고 한국 가곡을 녹음하며 한복을 입은 앨범 표지를 선보이는 등 꾸준한 한국 사랑을 표시해 왔다. 5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마이스키와 피아니스트인 그의 딸 릴리(35)가 5년 만에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오케스트라 협연을 포함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이후 처음 서는 한국 무대다. 마이스키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릴리와는 2013년 처음 한국 무대에 섰고 아들인 바이올리니스트 샤샤(33)와도 내한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음악을 함께 만드는 게 일생의 꿈이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죠. 17년째 릴리, 샤샤와 함께 연주했고 요즘엔 여섯 아이 중 셋째인 막시밀리안(18·피아니스트)과도 연주를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아이들과 더 많이 연주할 수 있도록 건강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만 2년이 조금 넘게 한국에 오지 않았을 뿐인데도 매우 길었던 느낌입니다. “가장 그리웠던 게 한국 관객입니다. 도시나 공연장보다 관객과의 소통이 제겐 가장 중요하거든요. 물론 한국 음식도 좋고요. 제가 사는 벨기에에도 한국 식당이 있지만 똑같지는 않아요.”(그는 답 뒤에 ‘Hahaha…’라 붙였다) ―구소련의 라트비아에서 성장했고 누이가 먼저 이스라엘로 망명한 뒤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문명사회에서 전쟁의 폭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이들이 배척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심지어 차이콥스키나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같은 위대한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금지한 곳까지 있죠. 분명히 어리석고 터무니없으며 잘못된 일입니다.” ―이번에 ‘비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첼로로 연주하는 점이 눈에 띕니다. 이외 다른 연주곡도 소개해 주시죠.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브람스 생전에 첼로 곡으로 편곡되었고 브람스가 직접 몇 군데 수정한 뒤에 승인했으니 그의 뜻과 부합합니다. 이 곡에 앞서 첫 곡으로 연주할 작품도 원곡이 바이올린곡인데, 슈만의 부인 클라라의 ‘3개의 로망스’입니다. 클라라가 경이로운 작곡가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작품이죠. 2부에서는 저의 가장 최근 앨범인 ‘20세기 클래식(2019년)에 실린 곡들을 연주합니다. 20세기 곡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브리튼의 첼로 소나타와 피아졸라의 ‘그랑 탱고’입니다.” ―앞으로의 계획도 듣고 싶습니다. “저도 믿기지 않지만 내년에 75세가 됩니다. 그리고 소련을 떠나 서방에 온 지 50주년이 되죠. 이 두 가지를 기념하는 여러 공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가을에는 제자인 장한나가 지휘하는 노르웨이 트론헤임 교향악단 협연으로 릴리, 샤샤와 함께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을 연주합니다. 매우 기대가 됩니다.” 5만∼13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봄의 절정부터 초여름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뭉근한 오페라의 선율로 끓어오른다. 제20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4월 23일∼5월 8일) 무대에 오르는 4개 작품과 제13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4월 28일∼6월 5일)이 선택한 전막 오페라 7편, 갈라콘서트가 성악 팬들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다. 1999년 시작한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일 여러 오페라를 번갈아가며 공연하는 레퍼토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창작오페라 두 편과 번안오페라 두 편을 모두 우리말로 노래해 자막을 보며 줄거리를 따라갈 필요가 없다. 평균 85분 남짓한 짧은 작품을 선택해 오페라 골수팬과 초보팬이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전 작품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내 자유소극장에서 열린다. 이 축제의 양진모 음악감독은 “올해 축제의 주제는 코믹 오페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두가 힘들었던 상황에서 웃음을 되찾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0년 시작된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대형 오페라 5편과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소극장 오페라 두 편을 라인업에 올렸다. 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 같은 기존의 대작에 김해문화재단의 김주원 ‘허왕후’ 같은 창작오페라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소극장 오페라인 정미선 ‘부채소녀’는 오페라에 부채춤 칼춤 등 전통무용과 국악을 접목한 시도로 눈길을 끈다. 반스 ‘요리사 랄프의 꿈’은 이 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이는 어린이 오페라로 중간중간 친근한 오페라 선율이 톡톡 튀어나온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2일 열린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기자간담회에서 조장남 대한민국오페라축제추진단장은 “한때 4개 작품에 10억 원이었던 이 축제의 정부 지원금이 8개 작품에 4억5000만 원으로 줄어드는 등 불리한 여건 속에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사회의 관심을 당부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2019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 우승자이자 이 콩쿠르 전 부문 대상(大賞)인 그랑프리를 수상한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25)가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1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차이콥스키 콩쿠르 이듬해인 2020년 첫 내한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취소된 아쉬움을 해소할 자리다. 프랑스인으로는 처음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우승을 거머쥔 캉토로프는 그랑프리 수상뿐 아니라 콩쿠르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내용으로도 관심을 끌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도록 규정된 결선 첫 협주곡 연주에서 그는 출연자 대부분이 선택하는 대중적인 1번 협주곡 대신 더 복잡하고 인기가 적은 2번 협주곡을 선택하면서 불리함을 정면 돌파했다. 두 번째 협주곡 연주에서도 참가자 대부분이 선택하는 러시아 작곡가 대신 독일 작곡가 브람스의 협주곡을 선택해 뚜렷한 색깔을 나타냈다. 첫 내한공연에서 그는 19세기 ‘피아노의 귀신’으로 불린 리스트의 작품을 중심으로 도전적인 프로그램을 펼친다. 리스트가 편곡한 바흐의 ‘울음, 탄식, 근심, 두려움’ 전주곡으로 시작해 리스트 ‘순례의 해’ 중 ‘두 번째 해 이탈리아’ 가운데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단테를 읽고’ 등 리스트 곡만 네 곡을 연주한다. 리스트의 동시대인이면서 더 섬세한 감정을 표출한 슈만의 소나타 1번,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러시아 신비주의 작곡가 스크랴빈의 ‘불꽃을 향하여’도 선보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준 음악가로 리스트를 꼽으며 “피아니스트로 시작해 작곡에 몰두한 다음 스스로를 가두며 종교인으로 거듭난 놀라운 삶을 살았다”고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캉토로프’의 이름으로 세계 음악계에서 먼저 명성을 떨친 사람은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장자크 캉토로프(77)다. 오베르뉴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알렉상드르는 그가 52세에 본 늦둥이 아들이다. 아버지 캉토로프는 올해 10월 바이올린 부문으로 열리는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 11명의 심사위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한다. 아버지가 핀란드 오케스트라 타피올라 신포니에타를 지휘하고 아들이 피아노를 연주한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3∼5번 음반은 음반전문지 ‘그라머폰’의 ‘편집자의 선택’과 ‘비평가의 선택’에 각각 오르며 인정을 받았다. 5월에는 같은 ‘부자(父子) 조합’으로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1, 2번 등을 담은 음반이 나올 예정이다. 4만∼9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2013년 성악 부문으로 열린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엔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 테너 프란시스코 아라이사가 심사위원으로 함께했다. 이 대회 준결선에선 이후 최종 우승자가 될 테너 김범진을 비롯해 여러 참가자가 도니체티 오페라 ‘라메르무어의 루치아’에 나오는 아리아 ‘머지않아 내가 쉴 자리를(Fra poco a me ricovero)’을 불렀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 아라이사 옆에 앉았다. 그를 즐겁게 하고 싶었다. “루치아에 나오는 테너 아리아는 슈베르트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중 ‘아침인사’와 닮지 않았나요?” 그는 약 2초간 생각해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군요! 재미있네!” “당신이 부르는 두 노래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미남으로 유명한 아라이사는 한층 멋진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도니체티의 아리아는 D플랫장조, 슈베르트 ‘아침인사’는 테너 악보로 C장조다. 음높이는 다르지만 모두 각각의 조에서 계이름으로 ‘솔솔 미레도 솔(시)라솔’의 멜로디를 갖는다. 리듬도 거의 같다. 도니체티의 오페라는 1835년, 슈베르트의 가곡집은 1823년 세상에 나왔다. 도니체티는 슈베르트의 곡을 모방했을까. 죽고 나서 7년 뒤인 1835년의 슈베르트는 이탈리아에서 알려진 작곡가가 아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린 것은 2022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9일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 KBS교향악단이 연주할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때문이었다. 낭만적(Romantisch)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곡은 호른의 신비로운 주제로 시작한다. 이 주제를 플루트가 받아 연주하기 시작하면 문득 다른 데서 들어본 느낌이 든다. 구노 ‘아베 마리아’의 ‘산타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부분과 비슷하다. 같은 음형을 음정을 높이면서 바꿔 가는 ‘시퀀스’ 기법이 더더욱 비슷한 느낌을 준다. 프랑스 작곡가 구노는 바흐 평균율 피아노곡집 1권에 나오는 음형을 반주삼아 선율을 붙인 ‘아베 마리아’를 1853년 발표했다. 오스트리아인인 브루크너는 21년 뒤인 1874년에 교향곡 4번을 썼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는 점이다. 브루크너도 자신만의 ‘아베 마리아’를 썼다. 브루크너는 구노의 ‘아베 마리아’를 듣고 자신의 교향곡에 성모의 상징으로 오마주했을까. 또는 그가 우연히 들은 구노의 곡이 의식 깊숙한 데 남아 있다가 교향곡을 쓰면서 떠오른 것일까. 아니면 두 곡의 유사성은 단지 우연의 결과일까. 이 사례들처럼 음악의 역사에는 수많은 닮은 곡들이 있다. 실제로 영향을 받은 결과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다. 오늘날 세계 대중음악계에서도 수많은 ‘모방·표절’ 시비와 법정 다툼이 일어난다. 몇 소절 동안 선율이 닮았다거나, 리듬이나 화음 진행이 닮았으면 표절이라는 여러 판례가 있지만 어느 것도 확고부동한 근거를 내세우지는 못한다. 세 곡 이상이 닮은 경우도 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방랑자 환상곡’(1822년) 2악장은 C샵(#)단조의 ‘미 미미 미파미’로 시작한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1892년) 3악장은 ‘미 미 미파미’로 시작한다. 이 곡은 D플랫(♭)단조이지만 C#과 D♭은 같은 음이므로 음높이도 같다. ‘느리게’라고 표시된 악장이어서 느낌도 비슷하다. 여기에 말러의 교향곡 8번 ‘천인(千人)교향곡’(1906년)이 가세한다. 2부 주요 주제인 ‘영원한 희열의 불꽃’ 주제는 음높이는 다르지만 계이름상 ‘미 미미 미파미’로 같다. 말러는 브루크너와 친했고 브루크너의 장대한 교향곡 구성을 이어받았으므로 브루크너 만년의 교향곡 8번을 몰랐을 리 없다. 공교롭게도 두 곡은 번호도 같은 ‘8번’이다. 베토벤과 함께 빈 고전파를 대표하는 작곡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도 닮은 곡들이 있다. 하이든 현악4중주 62번 ‘황제’ 2악장은 황제 찬가로 알려진 곡이며 오늘날 독일 국가로 쓰인다. 이 곡 주제선율의 네 악절 중 마지막 악절 시작 부분은 모차르트 성가곡 ‘환호하며 기뻐하라’의 ‘알렐루야’ 뒷부분과 빠르기만 다를 뿐 꼭 닮았다. 글만 읽어서는 알 수 없다. 들어보기를 권한다. 이 밖에 수많은 음악사 속의 닮은 곡들을 유튜브 채널 ‘유윤종튜브’에서 만날 수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께. 이번엔 LP 레코드 책을 내셨군요. 한국 독서시장의 반응도 뜨겁다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취향이 이미 브랜드’라는 선생의 클래식 사랑에 처음부터 호감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제 청춘의 시절, 선생의 단편들에 탐닉했고 많은 문장들을 핥아먹듯이 읽었습니다만 클래식 음악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뭐랄까, 음악이 상황에 흡수되기보다는 ‘뭔가 있는 듯이 보이기 위한’ 장식물처럼 생각되었었죠. 그러다 선생이 명지휘자와 나눈 대담을 정리한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를 읽었고, 제 선입견과 달리 내공이 깊으신 음악 팬이시란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쓸데없이 서설이 길었습니다. 선생께서 프롤로그 ‘왜 아날로그 레코드인가’에 적으신 것처럼 레코드는 물성(物性)에 충실한 물건입니다. 만드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정성을 들인 만큼 티가 나죠. 커버 디자인이나, 알판을 빼들었을 때 육안으로 느껴지는 상태에서 그 판이 들려주는 소리를 웬만큼 예상할 수 있고, 또 그 예상은 웬만큼 맞곤 했습니다. ‘LP판은 애정을 가지고 대하면 그만한 반응을 보여 준다’는 선생의 얘기는 마니아라면 공감할 겁니다. ‘레코드의 보은(報恩)’이라고 표현하셨죠. 선생의 감상 레퍼토리가 방대하다는 사실은 소개하신 작품 제목들에서도 알 만했습니다. 처음엔 아연했습니다. ‘왜 스트라빈스키 중에서도 불새나 봄의 제전이 아니라 페트루슈카야?’ ‘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 3번을 빼놓고 4번이야?’라는 식이었죠. 그러다 선생의 ‘선입견 없는 음악 듣기’를 느꼈습니다. 필수 레퍼토리 목록을 정해 놓고 시작한 게 아니라, 우연히 손에 걸린 음반을 듣다가 마음에 들면 다른 연주를 사 모으고 했던, 긴 시간과 애정이 들어간 과정이었을 겁니다. 오늘날 LP 레코드를 듣는다는 건 대개의 경우 연주 자체부터 빈티지 또는 구래식(舊來式)이라는 걸 뜻합니다. 피아니스트 하스킬, 바이올리니스트 그뤼미오, 지휘자 스토고프스키 등의 이름을 읽는 것은 제게도 아련한 과거를 떠올리게 합니다. 선생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소련이 무슨 우주선을 쏘아올린 해’ ‘무슨 팀이 고시엔 야구에서 우승한 해’ 같은 표현을 상기시키는 아련함입니다. 저도 평소 ‘듣는 귀가 스무 개면 들리는 감흥도 열 개’라고 주장해 온 만큼 각 연주에 대한 느낌이 똑같았을 수는 없습니다만, 무릎을 치며 공감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클렘페러는 정정당당한 인상의 브람스다. 그러나 따스함이라면…’ ‘브레인의 호른 연주가 퍼스널하다면 터크웰은 정조(正調)라고 할 만하다’ 등은 그 일부라고 하겠습니다. ‘볼트는 과연 ‘경(Sir)’ 칭호를 가진 지휘자답다. 한낮의 햇살이 흘러드는 살롱에서 홍차라도 마시면서 느긋하게 듣고 싶은 걸’ 같은 무라카미표 표현들에도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덧붙여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추억담들, ‘박하우스의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32번 구 녹음 모노럴반은 중고가게에서 무려 50엔에 샀다. 가격표를 볼 때마다 죄송해서 고개를 숙이게 된다’ 하하…. 선생의 ‘덕후’ 취미를 응원합니다. ‘왜 이 작가가 손을 대야만 눈길이 쏠려?’라는 시기 섞인 반응도 나오겠지만, 과거의 거장들이 남긴 위대한 정신의 유산들이 조명을 받을 수 있다면 무조건 환영입니다. 나아가 더욱 다채로운 취향들이 우리를 정신 못 차리게 매혹시키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합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께. 이번엔 LP 레코드 책(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을 내셨군요. 한국 독서시장의 반응도 뜨겁다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취향이 이미 브랜드’라는 선생의 클래식 사랑에 처음부터 호감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제 청춘의 시절, 선생의 단편들에 탐닉했고 많은 문장들을 핥아먹듯이 읽었습니다만 클래식 음악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뭐랄까, 음악이 상황에 흡수되기보다는 ‘뭔가 있는 듯이 보이기 위한’ 장식물처럼 생각되었었죠. 그러다 선생이 명지휘자와 나눈 대담을 정리한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를 읽었고, 제 선입견과 달리 내공이 깊으신 음악팬이시란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쓸데없이 서설이 길었습니다. 선생께서 프롤로그 ‘왜 아날로그 레코드인가’에 적으신 것처럼 레코드는 물성(物性)에 충실한 물건입니다. 만드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정성을 들인 만큼 티가 나죠. 커버 디자인이나, 알판을 빼들었을 때 육안으로 느껴지는 상태에서 그 판이 들려주는 소리를 웬만큼 예상할 수 있고, 또 그 예상은 웬만큼 맞곤 했습니다. ‘LP판은 애정을 가지고 대하면 그만한 반응을 보여 준다’는 선생의 얘기는 마니아라면 공감할 겁니다. ‘레코드의 보은(報恩)’이라고 표현하셨죠. 선생의 감상 레퍼토리가 방대하다는 사실은 소개하신 작품 제목들에서도 알 만했습니다. 처음엔 아연했습니다. ‘왜 스트라빈스키 중에서도 불새나 봄의 제전이 아니라 페트루슈카야?’ ‘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 3번을 빼놓고 4번이야?’라는 식이었죠. 그러다 선생의 ‘선입견 없는 음악듣기’를 느꼈습니다. 필수 레퍼토리 목록을 정해놓고 시작한 게 아니라, 우연히 손에 걸린 음반을 듣다가 마음에 들면 다른 연주를 사 모으고 했던, 긴 시간과 애정이 들어간 과정이었을 겁니다. 오늘날 LP 레코드를 듣는다는 건 대개의 경우 연주 자체부터 빈티지 또는 구래식(舊來式)이라는 걸 뜻합니다. 피아니스트 하스킬, 바이올리니스트 그뤼미오, 지휘자 스토콥스키 등의 이름을 읽는 것은 제게도 아련한 과거를 떠올리게 합니다. 선생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소련이 무슨 우주선을 쏘아올린 해’ ‘무슨 팀이 고시엔 야구에서 우승한 해’ 같은 표현을 상기시키는 아련함입니다. 저도 평소 ‘듣는 귀가 스무 개면 들리는 감흥도 열 개’라고 주장해 온 만큼 각 연주에 대한 느낌이 똑같았을 수는 없습니다만, 무릎을 치며 공감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클렘페러는 정정당당한 인상의 브람스다. 그러나 따스함이라면…’ ‘브레인의 호른 연주가 퍼스널하다면 터크웰은 정조(正調)라고 할 만하다’ 등은 그 일부라고 하겠습니다. ‘볼트는 과연 ’경(Sir)‘ 칭호를 가진 지휘자답다. 한낮의 햇살이 흘러드는 살롱에서 홍차라도 마시면서 느긋하게 듣고 싶은 걸’ 같은 무라카미표 표현들에도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덧붙여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추억담들, ‘박하우스의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32번 구 녹음 모노럴반은 중고가게에서 무려 50엔에 샀다. 가격표를 볼 때마다 죄송해서 고개를 숙이게 된다.’ 하하…. 선생의 ‘덕후’ 취미를 응원합니다. ‘왜 이 작가가 손을 대야만 눈길이 쏠려?’라는 시기 섞인 반응도 나오겠지만, 과거의 거장들이 남긴 위대한 정신의 유산들이 조명을 받을 수 있다면 무조건 환영입니다. 나아가 더욱 다채로운 취향들이 우리를 정신 못 차리게 매혹시키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합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오르간과 타악기. 쉽사리 머리에 떠오르는 조합은 아니다. 오르간은 한 음을 누르면 같은 음량이 지속되지만 대부분의 타악기는 탕 치면 바로 음량이 줄어든다. 오르간이 종교적이라면 타악기는 감각적이다. “그런 상반된 점이 매력이죠. 소리를 내는 원리부터 다르니까 멋진 대조를 이루고, 큰북이나 팀파니의 저음은 오르간의 소리를 더 웅장하게 만들어 줍니다.” 25일 전화로 만난 오르가니스트 김희성(이화여대 교수·사진)의 설명이다. 그는 4월 1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카로스 타악기앙상블과 함께하는 파이프오르간 독주회 ‘새로운 삶을 향하여’를 연다. 1989년 창립된 국내 대표 타악기앙상블인 카로스 타악기앙상블과는 2016년 이후 다섯 번째 함께하는 무대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바흐, 프랑크, 리스트의 오르간 독주곡을 솔로 연주한 뒤 카로스 타악기앙상블과 풀랑크의 오르간협주곡(1938년)을 협연한다. 원곡은 오르간과 현악앙상블, 팀파니가 등장한다. “풀랑크의 협주곡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죠. 마지막은 G음의 한 음으로 끝나는데 제게는 기도처럼 여겨집니다. 기독교의 고난주간에 열리는 이 연주가 제 기도가 될 겁니다.” 그는 뜻밖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남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습격을 받아 한 달째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그의 기도가 더 간절한 이유다. “음악회를 해도 될지 고민이 됐어요. 그렇지만 이번에 연주할 네 곡은 마치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라는 메시지처럼 다가왔습니다. 교육자로서 끝까지 본을 보여야 하는 것이 연주입니다.” 그는 카로스 타악기앙상블과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뒤프레 ‘수난 교향곡’ 등에서 호흡을 맞춰 왔다. “너무나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전해주는 팀이죠. 연습 때마다 늘 30분 먼저 악기를 세팅하고 기다릴 만큼 성실하고, 또 기가 막히게 맞춰줘요. 진심과 믿음을 바탕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2만∼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아틸라 전’도 아틸라 전막 공연은 처음입니다.” 베이스 전승현(49·서울대 교수)이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하는 베르디 오페라 ‘아틸라’에 출연한다. 그는 1997년 서울대 대학원 재학 당시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콩쿠르에 참가해 ‘아틸라’ 1막 아리아 ‘내 영혼이 벅차오르는구나’를 불렀고 2위에 올랐다. 전 교수는 4월 7∼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아틸라’에서 7, 9일 타이틀롤인 아틸라로 출연한다. 예술의전당에서 연습 중인 그를 24일 전화 인터뷰했다. “유럽에 진출해 여러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활동명도 ‘아틸라 전’으로 정했죠. 이 오페라 자체는 베르디의 작품 중에서도 매우 드물게 공연되는 편이라 출연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틸라는 5세기 훈족을 이끌고 서쪽으로 진출해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든 왕이다. 베르디는 ‘애국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던 33세 때 그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작곡해 발표했다. 아드리아해 연안의 아퀼레이아를 침공한 아틸라가 전쟁 중 죽은 영주의 딸 오다벨라와 결혼하려 하지만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오다벨라의 칼에 찔려 최후를 맞는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틸라는 누구나 두려워한 인물이었지만 베르디가 표현한 아틸라는 다릅니다. 전쟁을 앞두고 긴장하고 떨고, 결국 로마로 쳐들어갈 수 없을 거라며 자포자기하는 등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죠. 그렇게 인간적이고도 이중적인 모습이 아틸라 역의 매력입니다.” 전 교수는 갈등에 싸여 있다가도 다시 출정을 앞두고 강한 모습을 보이며 병사들을 독려하고 고무하는 1막 2장이 전곡의 하이라이트라고 소개했다. 그는 1950∼70년대 명테너 마리오 델모나코의 아들 잔카를로 델모나코가 맡은 이번 공연의 연출을 눈여겨보라고 권했다. 독일 카셀 오페라극장과 본 극장의 극장장을 지내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찬사를 받은 연출가다. “델모나코는 출연자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그 대신 무대와 조명을 위해 출연자와 합창단을 그림처럼 표현하죠. 때로는 움직임이 적은 게 더 강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8, 10일 공연에는 베이스 박준혁이 아틸라로 출연한다. 오다벨라 역에는 소프라노 임세경 이윤정, 로마 장군 에치오 역에는 바리톤 유동직 이승왕, 오다벨라의 연인 포레스토 역에는 테너 신상근 정의근이 번갈아 출연한다. 이탈리아 지휘자 발레리오 갈리가 지휘봉을 들고 국립합창단과 최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이름을 바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함께한다. 2만∼1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아틸라 전’도 아틸라 전막 공연은 처음입니다.” 베이스 전승현(49·서울대 교수)이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하는 베르디 오페라 ‘아틸라’에 출연한다. 그는 1997년 서울대 대학원 재학 당시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콩쿠르에 참가해 ‘아틸라’ 1막 아리아 ‘내 영혼이 벅차오르는구나’를 불렀고 2위에 올랐다. 전 교수는 4월 7~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아틸라’에서 7, 9일 타이틀롤인 아틸라로 출연한다. 예술의전당에서 연습 중인 그를 24일 전화 인터뷰했다. “유럽에 진출해 여러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활동명도 ‘아틸라 전’으로 정했죠. 이 오페라 자체는 베르디의 작품 중에서도 매우 드물게 공연되는 편이라 출연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틸라는 5세기 훈족을 이끌고 서쪽으로 진출해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든 왕이다. 베르디는 ‘애국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던 33세 때 그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작곡해 발표했다. 아드리아해 연안의 아퀼레이아를 침공한 아틸라가 전쟁 중 죽은 영주의 딸 오다벨라와 결혼하려 하지만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오다벨라의 칼에 찔려 최후를 맞는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틸라는 누구나 두려워한 인물이었지만 베르디가 표현한 아틸라는 다릅니다. 전쟁을 앞두고 긴장하고 떨고, 결국 로마로 쳐들어갈 수 없을 거라며 자포자기하는 등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죠. 그렇게 인간적이고도 이중적인 모습이 아틸라 역의 매력입니다.” 전 교수는 갈등에 싸여있다가도 다시 출정을 앞두고 강한 모습을 보이며 병사들을 독려하고 고무하는 1막 2장이 전곡의 하이라이트라고 소개했다. 그는 1950~70년대 명테너 마리오 델모나코의 아들 잔카를로 델모나코가 맡은 이번 공연의 연출을 눈여겨보라고 권했다. 독일 카셀 오페라극장과 본 극장의 극장장을 지내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찬사를 받은 연출가다. “델모나코는 출연자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대신 무대와 조명을 위해 출연자와 합창단을 그림처럼 표현하죠. 때로는 움직임이 적은 게 더 강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8일, 10일 공연에는 베이스 박준혁이 아틸라로 출연한다. 오다벨라 역에는 소프라노 임세경 이윤정, 로마 장군 에치오 역에는 바리톤 유동직 이승왕, 오다벨라의 연인 포레스토 역에는 테너 신상근 정의근이 번갈아 출연한다. 이탈리아 지휘자 발레리오 갈리가 지휘봉을 들고 국립합창단과 최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이름을 바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함께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조지아 출신의 피아노 스타 하티아 부니아티슈빌리(35)가 다음 달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2017년에 이어 두 번째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2016년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그리그 협주곡’을 협연하고, 2019년 KBS교향악단과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을 협연한 데 이은 네 번째 내한공연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눈에 띄는 대곡 없이 사티 짐노페디 1번으로 시작해 쇼팽, 바흐, 슈베르트, 리스트의 소품과 단악장 곡을 두루 섭렵한다. 부니아티슈빌리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수학하고 2008년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콩쿠르 3위에 입상한 뒤 2010년 소니 클래시컬 전속 아티스트가 됐다. 이듬해 데뷔앨범을 내놓으면서 국제적 지명도를 쌓기 시작했다. 2012, 2016년 두 차례 독일 클래식 음반상 ‘에코상’을 수상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프랑스 국적도 보유하고 있다. 그의 연주는 감각적이고 유연하면서 열정적이다. 다양한 색채로 많은 팬을 얻고 있지만 때로 ‘자신만의 감각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평도 받아왔다. 연주 중 고개를 기울이면서 먼 곳으로 몽롱한 시선을 보낼 때가 주로 그의 고유한 색채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의상과 화려한 무대 매너로 인해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 왕과도 비교된다. 두 사람은 종종 함께 무대에 서며 한 피아노에서 ‘포핸즈’ 무대를 갖기도 한다. 역시 피아니스트인 언니 그반차와의 공동 무대나 조지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리사 바티아슈빌리와의 듀오 무대도 많은 팬을 얻고 있다. 부니아티슈빌리는 유명 주얼리 브랜드 카르티에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이다. 그의 고국 조지아는 2008년 러시아군의 침공을 당했고 부니아티슈빌리는 데뷔 이후 러시아에서 연주를 거부해왔다. 사회적 발언에도 적극적이어서 2015년 유엔 창립 70주년 기념 시리아 난민을 위한 콘서트, 2016년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전쟁 부상자를 위한 키이우 자선 콘서트, 2018년 러시아 인권침해에 반대하는 ‘to Russia with Love’ 콘서트에 출연해왔다. 2003년 16세로 키이우에서 열린 호로비츠 콩쿠르 특별상을 수상해 우크라이나와의 인연도 깊은 편이다. 지난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그는 3월 8일 파리에서 열린 ‘우크라이나를 위한 연대’ 콘서트에서 쇼팽의 연습곡 12번 ‘혁명’을 연주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평화를 호소하는 발언이나 앙코르곡 연주로 이 전쟁에 대한 의견을 표명할지도 관심거리다. 5만∼13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첼리스트 박유신(32)의 데뷔앨범(사진) 메인 곡은 첼로곡이 아니다. 슈만의 가곡집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전 16곡을 음반 첫머리에, 슈만 가곡 ‘헌정’을 끝에 수록하고 앨범 제목도 ‘시인의 사랑’으로 붙였다. 목소리 대신 ‘목(木)소리’로 표현한 가곡인 셈이다. “어린 시절 미샤 마이스키가 연주하는 독일 가곡 앨범을 많이 들었고 마음에 와 닿았어요. 저는 아예 가곡집 전체를 해보려 마음먹었죠.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가 부르는 ‘시인의 사랑’을 좋아했고, 그의 노래 같은 서정과 순수함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슈만이 하이네 시에 곡을 붙인 ‘시인의 사랑’은 뚜렷한 줄거리 없이 사랑의 시작부터 파국과 망각까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쾰른 대성당과 하이델베르크의 옛 성 같은 독일의 랜드마크들이 등장한다. 박유신은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슈만이 6년 동안 살며 활동했던 곳이다. “독일어가 낯설지 않지만 마음으로 시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시는 가장 추상적인 문학 장르이기 때문이죠. 그 힘든 과정을 거치고 나니 재미있어졌어요. 성악곡의 느낌을 첼로로 옮기기 위해 단어와 문장의 강세를 일일이 연구했죠. 시 화자(話者)의 마음이 조금씩 더 깊이 느껴졌어요.” 그는 음반 반주를 맡은 ‘슈만 스페셜리스트’ 피아니스트 플로리안 울리히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원곡에서도 피아노가 분위기를 잡아나가는 역할이 커요. ‘이게 진짜 슈만이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어요. 울리히는 작곡가가 악보에 적은 지시를 해석하는 부분에도 여러 조언을 해주었죠.” 그는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앨범에 실린 곡들과 같은 레퍼토리로 리사이틀을 연다. ‘시인의 사랑’과 슈만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민요풍 소품’, 브람스 첼로소나타 1번을 거쳐 슈만 ‘헌정’으로 끝난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콥스키가 반주한다. 박유신은 “라시콥스키는 완벽주의자이고 곡에 대한 생각이 늘 너무 비슷하다. 기대를 넘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4만∼6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기업들은 경제적 권력을 바탕으로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신문은 고위층의 스캔들로 채워졌다. 정당들의 강령은 양극단으로 달렸고 타협은 실종됐다.” 첫 장에서 미국 사회의 부정적 모습들을 열거한 뒤 저자는 카드를 뒤집는다. “이것은 1870, 1890년대의 모습이다.” 당시 미국은 이른바 도금(鍍金·gilded)시대였다. 번쩍이는 풍요 뒤엔 그림자도 더 짙었다. 저자의 의도는 파악하기 쉽다. 오래전 지나간 도금시대가 오싹할 정도로 오늘날 미국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책에 의하면 19세기 말에서 오늘날까지 미국 경제, 정치, 사회, 문화는 큰 산봉우리 모양의 그래프를 그렸다. 그 정점은 대략 1960년이었다. 부모보다 많이 버는 자녀의 수는 1965년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내려갔다. 미국 소득 하위 99%의 소득 점유율은 1960∼80년 가장 높았고 그 뒤 꾸준히 하락했다. 소득세의 누진성(상위 소득자가 세금을 더 내는 비율)도 1960년대 이후 떨어졌다. 미국 의회 내의 초당적 협력 비율은 대공황 시대에서 1960년대까지 가장 높았고 1970년대 당파주의가 득세하면서 추락했다. 오바마와 트럼프 시대에 여섯 개 주요 법안에 대한 투표에서 행정부는 여당으로부터 95%의 지지를 받았으나 야당으로부터는 3%의 지지만을 받았다. 대중이 사안에 따라 양 정당을 바꿔 지지하는 비율도 극적으로 추락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경향이 공동체의식의 쇠퇴와 평행선을 달렸다는 점이다. 클럽 활동 같은 사회적 모임의 수와 회원 수, 참석률도 1960년대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떨어졌다. 결혼율과 출산율도 196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 정점을 찍은 뒤 내려갔다. 개인주의가 공동체주의보다 존중받게 된 것이다. 1970년이 되자 비틀스는 ‘온통 들리는 소리는 나’라고, 존 레넌은 ‘그저 나를 믿을 뿐’이라고 노래했다. 저자가 마음에 맞는 정보만을 취합해 1960년대를 이상화했을까. 부의 집중이나 사회적 보호망의 해체가 1980년 공화당 소속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 이후 가속됐다는 점에서 미국 민주당을 대변하는 시각으로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의 추락은 레이건 이전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하버드대 공공정책 분야 교수인 저자가 클린턴과 오바마뿐 아니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 자문도 맡았다는 점 역시 한결 당파적 시각으로부터 자유롭게 이 책을 볼 수 있게 한다. ‘제2의 도금시대’를 막고 ‘업스윙’(상승)을 이룰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에게 분명한 것은 공동체적 가치의 중요성이다. 개인을 해방한 1960년대의 운동은 예기치 않게 이기주의를 증가시켰고 소외를 불러왔다는 시각이다. 월터 리프먼의 1914년 저서 ‘표류와 통제’를 인용해 저자는 “‘나’를 강조하는 파괴적이고 냉소적인 추락을 멈추고 공동체주의의 잠재력과 약속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권한다. 책 말미의 ‘옮긴이 후기’에서 역자는 책의 개요를 요약한 뒤 이렇게 글을 닫는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1960∼80년대에 공동체주의를 강조하면서 엄청난 업스윙을 달성했다. (…) 최근의 우리 사회는 재벌과 노조의 힘겨루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개인주의가 득세하여 미국과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사회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두 기둥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움직여 가야 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한국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로 불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25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다. 작곡가 진은숙(61)이 처음 예술감독을 맡은 올해 음악제는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 메조소프라노 마그달레나 코제나, 소프라노 율리야 레즈네바, 중창단 ‘킹스 싱어스’ 등 화려한 면면들로 밀도 높은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노르웨이 첼리스트로 북유럽을 대표하는 뫼르크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25일 개막공연에 이어 27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진과 동문으로 구성된 케이아츠신포니에타와 쇼스타코비치 첼로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 예술감독으로 친숙한 크리스토프 포펜이 지휘를 맡는다. 29일엔 피아니스트 최희연과 협연하는 뫼르크 리사이틀이 열린다. 드뷔시와 프랑크의 소나타를 연주한다. 헝가리 피아노계의 대표 주자로 1970, 80년대 서방 팬들을 흥분시킨 ‘추억의 얼굴’ 데죄 란키는 31일 독주회에서 베토벤 소나타 15, 24번 등을 연주한다. 4월 3일 폐막연주회에서는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리스트 피아노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이날 메인 레퍼토리는 브루크너의 출세작이자 그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인 교향곡 7번. 메조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제나는 29일 브람스, 드보르자크의 가곡을 리사이틀 무대에 올린다. 또렷하고 맑은 공명과 주의 깊은 음성의 컨트롤로 인정받는 코제나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부인이기도 하다. 30일에는 바로크 오페라계 스타인 러시아의 율리야 레즈네바가 비발디, 헨델의 바로크 아리아를 노래한다. 남성 중창의 대명사인 영국의 ‘킹스 싱어스’는 26, 27일 공연을 갖는다. 국내 아티스트의 무대로는 26일 윤이상 현악4중주 5번과 브람스 현악4중주 1번을 무대에 올리는 노부스 콰르텟과 28일 피아니스트 박재홍, 4월 2일 베이스 연광철의 무대가 눈에 띈다. 4월 1일에는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연광철, 소프라노 박혜상과 함께하는 하이든 ‘넬슨 미사’ 공연이 열린다. 이 미사곡은 나폴레옹 침략기에 작곡돼 ‘불안한 시대를 위한 미사’라는 별명이 붙은 작품. 군사 강국의 인접국 침략을 마주한 오늘날의 세계에 메시지를 던지는 공연이기도 하다. 4월 1일 열리는 국악인 이희문의 공연 ‘프로젝트 날’도 주목할 만하다. 진은숙 예술감독은 “음악제 레퍼토리에 앞으로 매년 국악을 포함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쇼팽의 연습곡 12번은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곡 시작부터 쏟아지는 듯한, 파도치는 듯한 양손의 성난 질주가 듣는 사람을 압도한다. 쇼팽은 183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이 곡을 썼다. 그해 고향인 폴란드 바르샤바를 떠난 그는 세계 음악의 수도로 불리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할 예정이었다. 그때, 바르샤바를 지배하던 러시아에 저항하는 혁명이 일어났고 러시아군이 들어와 이를 진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쇼팽은 러시아의 말발굽에 짓밟힌 고향 소식에 분노하며 이 곡을 써내려갔다. 러시아, 프로이센과 함께 폴란드를 나눠 지배하고 있었던 오스트리아의 청중은 ‘반란의 땅’에서 온 쇼팽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쇼팽이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게 된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역사상 수많은 예술가들이 고국이 처한 슬픔과 수난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음악가들도 예외일 수 없었다. 1941년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이 러시아로 쏟아져 들어왔다. 옛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이름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에 포위됐다. 소련 정부의 지시로 레닌그라드를 빠져나온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7번을 써내려갔다. 이 곡은 이듬해 쿠이비셰프에서 초연되었고 8월에는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도 공연이 열렸다. 공연은 확성기로 시내 전역에 방송됐다. 식량 공급이 끊긴 시민들이 굶주려 죽어 가던 시기였다. 변주곡 형식인 1악장의 클라이맥스에선 타악기의 맹타 속에 기관총의 사격음과 전투기의 기총소사음이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 생전 지인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1악장은 나치군의 침공에 분노해 쓴 것이 아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나치 침공 이전 이미 이 악장을 써내려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악장은 나치의 침공에 대한 규탄이기에 앞서 나치와 스탈린의 억압통치를 아우르는 전체주의의 공포에 대한 규탄이 된다. 스탈린이 죽은 뒤 그의 지인들은 쇼스타코비치가 “레닌그라드는 스탈린이 이미 파괴했다. 히틀러는 마무리만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소련 시기 우크라이나의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우(85)는 마음속의 깊은 갈등에 빠져 있었다. 실베스트로우는 소련 당국이 강요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영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서방 작곡가들의 급진적인 작곡 방식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자 마음속 깊은 상처가 더욱 깊어진 실베스트로우는 작곡가 연맹을 탈퇴했다. 공산주의 체제의 예술가에게 연맹에서 탈퇴하는 것은 사회적 매장을 뜻했지만 그는 이를 기꺼이 감수하고 작품을 발표할 희망 없이 묵묵히 오선지를 채워 나갔다. 이 작품들이 빛을 본 것은 소련이 붕괴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이루고 난 뒤의 일이었다. 그의 작품은 처음 듣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다. 그는 “나는 이른바 신음악, 새로운 음악을 쓰지 않는다. 내 음악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응답이자 메아리다”라고 말한다. 2013년 우크라이나에서는 친러 독재자 야누코비치를 몰아낸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났다. 실베스트로우는 이 혁명에서 처음 총상을 입고 사망한 세르히 니고얀에게 합창곡 ‘두 폭의 제단 그림(Diptych)’을 헌정했다. 19세기 애국시인 <첸코의 시 ‘유언’에 곡을 붙인 이 곡의 가사는 이렇다.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우크라이나에 나를 묻어주오/넓게 펼쳐진 평원 한가운데, 언덕 위의 묘지에/들판과 끝없는 초원, 드니프로의 강기슭을/내 눈이 볼 수 있도록, 내 귀가/거대한 강의 포효를 들을 수 있도록….’ 지난달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이 우크라이나를 위한 콘서트에서 실베스트로우의 작품을 연주하며 이 용감한 나라에 대한 연대를 다짐했다. 실베스트로우는 9일 키이우에 안전한 상태로 있다는 안부가 전해졌다. 그러나 민간인 대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그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그는 이 거대한 비극을 소리의 서사시로 형상화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것을 들을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은 앞으로도 그의 음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을까.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10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전화를 받은 건반악기 연주가 안종도(36)는 “앞으로 서울에 오래 있게 됩니다. 이번 학기에 연세대 기악과 교수로 임용됐거든요”라고 소식을 전했다. 귀국이 늦춰진 것은 7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리사이틀홀에서 공연한 리사이틀 겸 모노드라마 ‘페드르’ 뒷정리 때문이다. 최근 공연기획사 ‘스튜디오필립안’을 함부르크에 설립한 안종도는 올해 이 공연을 비롯해 세 개의 장르융합 공연을 한국과 유럽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페드르’ 서울 공연은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프랑스 배우 라파엘 부샤르가 모노드라마를 펼친다. “처음엔 엘프필하모니에서 프랑스 작곡가 라모(1683∼1764)의 건반음악 리사이틀을 가질 예정이었죠. 그러다 우연히 부샤르가 타이틀롤(주인공)로 출연한 ‘페드르’를 보았고 그의 연기에 매혹됐어요. 리사이틀과 연극을 합친 공연을 제안했더니 부샤르가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습니다.” ‘페드르’는 17세기 프랑스 작가 장 라신의 작품으로, 프랑스 고전비극의 대표작이다. 아테네의 왕비 페드르는 의붓아들 이폴리트를 연모하며 괴로워하다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결국 이폴리트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지만 전사한 줄 알았던 왕은 살아 돌아오고, 주인공들은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치닫는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도 파격적인 내용이죠. 작곡가 라모는 이 스토리를 50세 때 작곡한 첫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에 담기도 했습니다. 라모의 음악도 라신의 극처럼 감정의 폭이 큽니다. 바흐를 통해 알려진 ‘종교적이고 거룩한’ 바로크 음악의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죠.” 이번 공연에서 그는 라모의 건반 모음곡 중 ‘프렐류드(전주곡)’ ‘암탉’ ‘이집트 여인’ 등을 연주하며 페드르의 심리를 표현한다. 부샤르는 특별한 장치 없는 무대에서 피아노 주변을 오가며 모노드라마를 펼친다. 연극평론가 조만수(충북대 교수)가 번역한 대사가 자막으로 투사된다. 부샤르가 소개한 프랑스 극작가 겸 드라마투르그(극작술사) 클레망 카마르메르시에가 각색과 연출에 많은 조언을 주었다. “음악과 대사가 동등한 위치에 있도록 하면서 둘 중 어느 한쪽이 주도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라모는 근대 화성학의 원조로 불리는 만큼 수많은 화성의 변화에 따라 곡을 구성했죠. 그 화성의 색깔이 수많은 감정을 표현합니다. 피아노는 때로는 페드르의 감정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를 비난하는 사람의 감정,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역할 등 수많은 역할을 맡게 됩니다.” 안종도는 이번 공연 이후 슈베르트 음악과 문학, 현대곡이 만나는 공연에 이어 음악과 현대 무용이 만나는 공연을 한국과 유럽에서 공연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부루벨코리아와 주한 프랑스대사관 문화과,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이 후원한다. 5만∼7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협동조합 형태의 오케스트라가 있다?” 국내 최초의 ‘협동조합 오케스트라’인 코리아쿱(Coop) 오케스트라(사진)에 ‘새집’이 생겼다. 올해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의 상주 오케스트라가 된 뒤 갖는 첫 연주회 ‘새봄’을 9일 오후 4시에 연다. 김덕기 지휘, 박규민의 바이올린 협연으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협주곡 1악장과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 4악장 등을 연주한다. 2014년 설립된 코리아쿱 오케스트라는 연주력을 인정받아왔다. 국립합창단과 국립오페라단의 정기공연에 함께해왔고 올해도 6월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 유니버설발레단(UBC) 차이콥스키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3개의 정기공연을 함께한다. 서울시오페라단과도 구노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1년 동안 90회 이상의 공연을 한다. 경남 창원시 3·15아트센터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연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 지원 프로젝트 ‘창작 칸타타 레볼루션’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단원들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애쓰며 책임지는 조직을 만들어갑니다. 운영의 모든 절차를 민주적으로 논의하죠.” 라성욱 대표(54)는 국내 한 시립교향악단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재직하다 민간 교향악단의 총무와 사무국장을 지낸 뒤 코리아쿱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기존의 민간 오케스트라는 주인이 따로 있고 음악인들은 행정에 무지하다 보니 연주자가 의도하지 않게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죠. 음악을 하는 사람끼리 머리를 맞대고 서로가 이익이 되는 악단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코리아쿱 오케스트라는 외부 공연장의 기획공연이나 오페라단, 발레단으로부터 의뢰받은 공연 반주와 독주자 섭외 등 운영에 관한 사항을 모여서 의논한다. 조합원은 수석급 위주로 다섯 명, 조합원이 아닌 정규직 단원은 20명 내외로 유지하며 연주 때마다 악단이 보유한 연주자 풀(Pool)에서 규모에 따라 필요한 인원을 섭외한다. 연주 참여 여부 등 단원들과 직접 관련된 문제는 정규직 단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논하고,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문제는 조합원들이 결정한다. 충무아트홀 상주 악단이 될 때도 단원 회의를 거쳤다. “처음 창단 당시 가졌던 ‘우리끼리 잘해보자’는 아이디어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상주 공간을 가지면서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가 크다’는 의견이 많아 결정했습니다.” 라 대표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예술단체가 기부금을 받으려면 비영리단체인 전문예술법인으로 등록해야 합니다. 왜 예술단체는 비영리여야 할까요. 국내에 있다면 베를린 필도 빈 필도, 기부를 받을 수 없습니다. 현실을 반영해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큰 감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밤새워 제 연주를 지켜봐주시고 유튜브 댓글로 응원해주셨던 고국 팬들께 이 공연을 바칩니다.” 한국의 열성 피아노 팬들에게 지난해 10월은 이혁(22)이라는 이름으로 뜨거웠다. 세계 최고 권위의 피아노콩쿠르로 꼽히는 바르샤바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그는 지원자 500여 명 중 12명이 겨루는 결선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어게인 2015 조성진’의 기대를 높였다.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그가 연주한 쇼팽 협주곡 2번은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12월에는 파리 아니마토 국제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 재학 중인 그가 1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모스크바를 떠나 고국에 온 그를 최근 전화로 인터뷰했다. ―리사이틀 전반부를 러시아 음악가들의 곡으로 꾸몄습니다. “열네 살 때 모스크바에 유학 간 것은 러시아 작곡가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1부 연주곡 중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듬뿍 담긴 작품입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인 페트루시카는 이와 달리 활발하고 해학과 광기까지 담긴 곡이죠.” ―후반부엔 쇼팽의 ‘돈조반니 주제 변주곡’과 소나타 3번을 준비했습니다. 쇼팽콩쿠르에서 경험한 것과 관련되나요. “지난해 쇼팽콩쿠르에서 연주한 작품들이죠. 이 대작곡가와 한층 가까워지는 기회였고, 청중과 전 세계에서 유튜브로 지켜본 음악 팬들에게 제가 준비한 모든 걸 들려드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 경험을 고국 청중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취미가 체스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입니다. ‘천재들의 취미’로 알려진 분야들인데요. “어릴 때 체스센터에서 체스를 배우며 즐기다 체스강국으로 알려진 러시아로 유학을 갔습니다. 공원에서도 노인들이 체스를 두는 나라죠. 주말에 여유가 있을 때마다 모스크바의 유명 체스 클럽에서 빠른 게임(속기전) 토너먼트를 합니다. 시간을 오래 쓰는 ‘클래식 토너먼트’는 9일간 아홉 게임을 치르게 돼 응하기가 쉽지 않고요. 열세 살 때 프로그래밍을 독학해서 애플리케이션 몇 개를 만들었는데 유학 온 뒤에는 거의 못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러시아의 한 은행에서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를 봤다. 우리와 일할 생각이 없느냐’는 연락을 하기도 했습니다.(웃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마음이 복잡하겠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의 미승인 공화국 두 개를 승인했을 때 러시아의 제 친구들은 ‘이것으로 끝일 거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전쟁이 나자 모두들 당황했죠. 제가 나온 게 개전 첫날이었는데, 시위로 교통이 통제된다는 소식에 일찍 공항으로 나왔습니다. 고국에 와서도 러시아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데, 물가와 환율이 뛰고 현금지급기에 돈이 남아 있지 않다며 당황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이런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안타깝습니다.” 3만5000∼5만5000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큰 감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밤새워 제 연주를 지켜봐주시고 유튜브 댓글로 응원해주셨던 고국 팬들께 이 공연을 드립니다.” 한국의 열성 피아노 팬들에게 지난해 10월은 이혁(22)이라는 이름으로 뜨거웠다. 세계 최고 권위의 피아노콩쿠르로 꼽히는 바르샤바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그는 500여 명 지원자 중 12명이 겨루는 결선에 한국인 중 유일하게 진출해 ‘어게인 2015 조성진’의 기대를 높였다. 입상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가 연주한 쇼팽 협주곡 2번은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12월에는 파리 아니마토 국제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 재학 중인 그가 1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모스크바를 떠나 고국에 온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전반부를 러시아 음악가들의 곡으로 꾸몄는데. “열네 살 때 모스크바에 유학을 간 것은 러시아 작곡가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1부 연주곡 중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듬뿍 담긴 작품입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인 페트루슈카는 이와 달리 활발하고 해학과 광기까지 담긴 곡이죠.” ―후반부엔 쇼팽의 ‘돈조반니 주제 변주곡’과 소나타 3번을 준비했습니다. 쇼팽콩쿠르에서 경험한 것과 관련되나요. “지난해 쇼팽콩쿠르에서 연주한 작품들이죠. 이 대작곡가와 한층 가까워지는 기회였고, 청중들과 전세계에서 유튜브로 지켜본 음악팬들에게 제가 준비한 모든 걸 들려드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 경험을 고국 청중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취미가 체스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천재들의 취미’로 알려진 분야들인데요. “어릴 때 체스센터에서 체스를 배우며 즐기다 체스강국으로 알려진 러시아로 유학을 갔습니다. 공원에서도 노인들이 체스를 두는 나라죠. 주말에 시간여유가 있을 때마다 모스크바의 유명 체스 클럽에서 빠른 게임(속기전) 토너먼트를 합니다. 시간을 오래 쓰는 ‘클래식 토너먼트’는 9일간 아홉 게임을 치르게 되어 응하기가 쉽지 않구요. 열세 살 때 프로그래밍을 독학해서 어플리케이션 몇 개 만들었는데 유학 온 뒤에는 거의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러시아의 은행에서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를 봤다. 우리와 일할 생각이 없느냐’는 연락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웃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마음이 복잡하겠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의 미승인 공화국 두 개를 승인했을 때 러시아의 제 친구들은 모두 ‘이것으로 끝일 거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전쟁이 나자 모두들 당황해했죠. 제가 나온 게 개전 첫날이었는데, 시위로 교통이 통제된다는 소식에 일찍 공항으로 나왔습니다. 고국에 와서도 러시아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데, 물가와 환율이 뛰고 현금지급기에 돈이 남아있지 않다며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세계에 이런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안타깝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