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를 깨는 힘… 다시, 공동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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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업스윙/로버트 D 퍼트넘 외 지음·이종인 옮김/684쪽·2만2000원·페이퍼로드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남긴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행진 당시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몰에 모인 군중. 저자는 미국의 1960년대 초가 공동체의식과 민권 신장, 경제적 평등의 정점을 이룬 시기였다고 설명한다. 동아일보DB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남긴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행진 당시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몰에 모인 군중. 저자는 미국의 1960년대 초가 공동체의식과 민권 신장, 경제적 평등의 정점을 이룬 시기였다고 설명한다. 동아일보DB
“기업들은 경제적 권력을 바탕으로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신문은 고위층의 스캔들로 채워졌다. 정당들의 강령은 양극단으로 달렸고 타협은 실종됐다.”

첫 장에서 미국 사회의 부정적 모습들을 열거한 뒤 저자는 카드를 뒤집는다. “이것은 1870, 1890년대의 모습이다.” 당시 미국은 이른바 도금(鍍金·gilded)시대였다. 번쩍이는 풍요 뒤엔 그림자도 더 짙었다.

저자의 의도는 파악하기 쉽다. 오래전 지나간 도금시대가 오싹할 정도로 오늘날 미국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책에 의하면 19세기 말에서 오늘날까지 미국 경제, 정치, 사회, 문화는 큰 산봉우리 모양의 그래프를 그렸다. 그 정점은 대략 1960년이었다. 부모보다 많이 버는 자녀의 수는 1965년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내려갔다. 미국 소득 하위 99%의 소득 점유율은 1960∼80년 가장 높았고 그 뒤 꾸준히 하락했다. 소득세의 누진성(상위 소득자가 세금을 더 내는 비율)도 1960년대 이후 떨어졌다.

미국 의회 내의 초당적 협력 비율은 대공황 시대에서 1960년대까지 가장 높았고 1970년대 당파주의가 득세하면서 추락했다. 오바마와 트럼프 시대에 여섯 개 주요 법안에 대한 투표에서 행정부는 여당으로부터 95%의 지지를 받았으나 야당으로부터는 3%의 지지만을 받았다. 대중이 사안에 따라 양 정당을 바꿔 지지하는 비율도 극적으로 추락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경향이 공동체의식의 쇠퇴와 평행선을 달렸다는 점이다. 클럽 활동 같은 사회적 모임의 수와 회원 수, 참석률도 1960년대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떨어졌다. 결혼율과 출산율도 196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 정점을 찍은 뒤 내려갔다. 개인주의가 공동체주의보다 존중받게 된 것이다. 1970년이 되자 비틀스는 ‘온통 들리는 소리는 나’라고, 존 레넌은 ‘그저 나를 믿을 뿐’이라고 노래했다.

저자가 마음에 맞는 정보만을 취합해 1960년대를 이상화했을까. 부의 집중이나 사회적 보호망의 해체가 1980년 공화당 소속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 이후 가속됐다는 점에서 미국 민주당을 대변하는 시각으로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의 추락은 레이건 이전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하버드대 공공정책 분야 교수인 저자가 클린턴과 오바마뿐 아니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 자문도 맡았다는 점 역시 한결 당파적 시각으로부터 자유롭게 이 책을 볼 수 있게 한다.

‘제2의 도금시대’를 막고 ‘업스윙’(상승)을 이룰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에게 분명한 것은 공동체적 가치의 중요성이다. 개인을 해방한 1960년대의 운동은 예기치 않게 이기주의를 증가시켰고 소외를 불러왔다는 시각이다. 월터 리프먼의 1914년 저서 ‘표류와 통제’를 인용해 저자는 “‘나’를 강조하는 파괴적이고 냉소적인 추락을 멈추고 공동체주의의 잠재력과 약속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권한다.

책 말미의 ‘옮긴이 후기’에서 역자는 책의 개요를 요약한 뒤 이렇게 글을 닫는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1960∼80년대에 공동체주의를 강조하면서 엄청난 업스윙을 달성했다. (…) 최근의 우리 사회는 재벌과 노조의 힘겨루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개인주의가 득세하여 미국과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사회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두 기둥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움직여 가야 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업스윙#양극화#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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