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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재즈 디바’ 나윤선(사진)은 1월 새 정규앨범 12집 ‘Elles’를 전 세계에 동시 발매했다. 에디트 피아프부터 비외르크까지…. 자신의 음악 인생에 영향을 준 여성 음악가들의 10곡을 재해석했다. 발매 직후 ‘Elles’는 아이튠스 프랑스 앨범 차트 종합 3위, 독일 재즈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1, 2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룩셈부르크 등 유럽 투어를 마친 그가 한국을 찾았다. 다음 달 17일에는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도 연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나윤선은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하고 등장했다. “팬데믹 이후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확 바꾸자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의 조언으로 한 스타일”이라며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지만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는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 로버타 플랙의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에디트 피아프의 ‘La Foule’ 등이 수록됐다. “좋아하는 음악 300곡을 고르고 추리다 보니 전설 같은 여성 가수들의 노래가 남았다”는 설명이다. 6번 트랙에 실린 빌리 홀리데이의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는 2일 별세한 부친 나영수 한양대 성악과 명예교수가 합창곡으로 편곡할 때 처음 들은 음악이다. 나윤선은 “아버지는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자 나의 열렬한 팬”이라고 회고했다. “앨범을 내는 건 공연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나윤선은 무언가를 기록하고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재즈라는 음악이 할 때마다 달라지는 것”이기에 그는 늘 무대와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소감에 대해 물었을 때도 그는 “숫자에 민감하지 않아 (올해) 30주년이 된 지도 몰랐다”며 “이렇게 음악에만 전념해서 살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라고 했다. 오직 노래하는 순간에만 집중하려는 그에게 스타일을 바꾸고, 앨범 표지를 화려하게 꾸미는 등 무언가를 포장하는 일은 어색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겸손한 말과 달리 새 앨범은 ‘재즈 가창의 세계에서 독보적인 정교함과 섬세함’(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 ‘엄밀함, 마력, 친밀감으로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다’(영국 ‘더 재즈 맨’) 등의 찬사를 받았다. 나윤선은 다음 달 열리는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새 앨범 전곡과 자신의 대표곡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노랗게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해바라기와 귀를 자르는 기행, 그리고 평생 한 점의 작품밖에 팔지 못했던 비운의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를 생각할 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고흐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를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받게 하는 것은 광기와 좌절 같은 극적인 스토리만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오늘은 고흐가 그린 정물화 두 점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 두 정물은 유명한 해바라기도, 아름다운 꽃도 아닌 바로 책을 그린 작품입니다. 하나는 고흐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린 ‘성경이 있는 정물’(1885년), 또 하나는 ‘프랑스 소설책 더미’(1887년)입니다.묵직한 성경책과 노란 소설책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흐의 작품을 소장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그의 대표작들이 걸린 전시장에서 ‘성경이 있는 정물’을 만났습니다. 두꺼운 책이 테이블 한가운데에 사다리꼴 모양으로 펼쳐져 묵직한 무게감을 뽐내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 무거운 책 오른쪽 아래를 가벼운 노란 책이 경쾌하게 받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 고흐는 이 그림에 대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갈색빛 배경 위에 가죽 장정을 한 성경책이 펼쳐져 있고, 레몬빛 노란색이 들어간 정물화를 보낸다. 이 그림은 하루 만에, 단숨에 완성한 거야.” 편지 내용을 보면 고흐는 어두운 배경, 펼쳐진 성경책의 흰색, 그리고 작은 책의 노란빛까지 색채의 조합에 집중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림 속 책들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면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펼쳐진 책은 이 그림이 완성되기 직전 세상을 떠난 고흐의 아버지가 갖고 있던 성경책입니다. 아버지가 동생 테오에게 주라고 했던 책이기도 하죠. 그리고 그 책보다 작지만 색채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책은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입니다. 고흐가 즐겨 읽었던 책입니다. 성경책 옆에는 촛불 꺼진 촛대가 그려져 있어 마치 죽음과 삶을 대비시키는 것 같습니다. 고흐는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요?“아버지는 이 시대를 이해 못 한다” 고흐는 집을 떠났다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이 무렵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이때 불편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편지에서 “모든 것이 갖춰진 집보다 저 먼 습지에 있는 것이 덜 외로울 것 같다”거나 “아버지는 나의 자유를 향한 갈망, 벌거벗은 진실을 향한 갈망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괴로움을 토로했죠. 여기서 고흐가 언급한 ‘벌거벗은 진실을 향한 갈망’은 그가 그린 또 다른 정물 ‘프랑스 소설책 더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정물화에는 졸라, 기 드 모파상 등 당대 지식인들이 즐겨 읽었던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색채가 아주 밝고 경쾌한 톤으로 표현된 것이 인상 깊죠. 고흐는 이 프랑스 문학가들이 “우리가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진실하게 그린다”고 칭찬했습니다. 즉, 성경책과 졸라 소설의 대비는 종교와 관념이 지배했던 과거의 사상과 개개인이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인정하는 새로운 예술과 문학을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사였던 고흐의 아버지는 졸라를 비롯한 당대 문학이 신을 부정한다고 생각해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고흐는 “아버지가 이 시대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며 답답하게 여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 불 꺼진 촛대 옆 성경은 저물어가는 시대를, 레몬빛 작은 ‘삶의 기쁨’은 밝아오는 새 시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고전이 열어주는 마음의 세계 그렇다고 고흐가 이 그림에서 성경이나 아버지를 부정한 것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엑스레이로 그림을 보면 성경책을 더 반듯한 사각형으로 고쳐 그린 흔적이 나타나는데, 이는 성경을 더 크고 비중 있게 그리려고 했던 의도입니다. 또 펼쳐진 구절은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과 수난을 겪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이사야 53장’으로 고흐가 평소 좋아했던 구절입니다. 오히려 그림에서는 ‘벌거벗은 진실’을 갈망한다는 말처럼, 과거든 현재든 자신이 마주한 삶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려고 했던 태도가 보입니다. 고흐는 성경 속 구절을 실천하려 선교사 시절 교회에서 내준 집을 노숙자에게 주었다가 쫓겨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에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전기를 읽고 감동받아 시골 농부와 가난한 사람들을 그렸죠. 또 고흐가 평생 쓴 편지에는 저자 150명, 책 800여 권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많은 책을 읽고 가까운 이들에게 추천했고, 말년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릴 때도 ‘엉클 톰스 캐빈’과 찰스 디킨스를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프랑스 문학뿐 아니라 토머스 칼라일의 철학서, 셰익스피어와 디킨스의 문학도 즐겨 읽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흐는 “책과 현실과 예술은 나에게 모두 같은 것”이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사회와 타협을 거부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았던 그를 버티게 해준 한 가지는 바로 세상을 깊고 넓은 눈으로 담은 고전 문학임을, 두 그림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 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를 통해 암울한 감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던 1984년 1월 1일.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를 인공위성으로 실시간 연결한 생방송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전파를 타고 미국, 프랑스, 독일, 한국의 텔레비전으로 방송됐다. 비디오 아트 선구자 백남준(1932∼2006)이 기획해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는 시대를 낙관한 ‘굿모닝…’은 전 세계 2500만 명이 실시간으로 시청했고 그의 대표작이 됐다. ‘굿모닝…’ 4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일어나 2024년이야!’가 경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21일 개막했다.● 케이지부터 몽탕까지, 화려한 출연진 ‘굿모닝…’은 유명한 작품이지만 1시간 가까운 분량의 영상 전체를 큰 화면에서 감상할 기회는 흔치 않다. 전시장에 가면 이 작품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총 22개 시퀀스 중 8개 시퀀스를 작은 모니터를 통해 골라 볼 수 있다. 동료 예술가 샬럿 무어먼의 ‘TV 첼로’ 연주 장면을 비롯해 존 케이지의 사운드 퍼포먼스와 현대미술 거장 요제프 보이스의 ‘오웰의 다리-21세기를 위한 바지’ 퍼포먼스가 교차 상영되는 시퀀스, 머스 커닝햄이 ‘스페이스 요들’ 춤을 추는 장면 등이 전시됐다. 전시장 입구 터치스크린을 통해 장면별 설명과 등장인물 소개도 볼 수 있다. 케이지, 보이스, 커닝햄 등 당대 예술을 이끌었던 아티스트들과 함께 이브 몽탕, 오잉고 보잉고, 사포 등 대중 음악가들의 영상이 포함된 것도 눈길을 끈다. 백남준이 유럽, 미국, 아시아 등 대륙은 물론 순수 예술과 대중문화 간 경계를 허물고 연결하고자 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백남준이 ‘굿모닝…’ 제작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앨런 긴즈버그, 케이지, 보이스와 함께 만들었던 판화도 전시됐다. 김윤서 학예연구사는 “백남준은 1984년이 오는 것을 대비해 1983년 초부터 시나리오를 만들고 방송국 관계자를 만나 기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했다”며 “그가 시대 흐름을 읽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예술가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오웰에게 보내는 긍정의 새해 인사 백남준은 왜 ‘굿모닝…’을 기획했을까? 그는 1993년 9월 26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TV를 통해 재미만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부처의 모습과 달, 물고기, 컴퓨터 그래픽을 넣어 재미를 방해했다”면서도 “매스미디어가 독재자의 수중에 장악돼 민중의 눈을 가려 세상이 망하게 될 것이라는 오웰의 생각에 도전장을 냈다”고 썼다. 즉 ‘TV 부처’ 같은 작품이 사람들의 집중력을 빼앗고 세뇌하는 매스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다룬 것이라면, ‘굿모닝…’은 그 기술을 잘 활용해 세계를 연결하고 소통하는 미디어의 긍정적인 면모를 부각한 것이다. 백남준은 이어 “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해주는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이며 정보 단절의 시대에 대중의 눈을 일깨우는 이른바 ‘전자 고속도로’라며 그런 의미에서 ‘굿모닝…’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1984년 정월에 방영된 이 프로는 망하지 않고 건강하게 생존했던 우리들이 오웰에게 보내는 새해 인사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기술이 새로운 소통과 평화를 열어줄 것이라 믿었던 백남준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김 학예연구사는 “1984년 이후 기술은 더욱 극적으로 발전했지만 우리는 그만한 세계 평화에 도달했는지 전시를 통해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년 2월 23일까지. 무료. 용인=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오늘 뉴스레터는 지난주에 이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레익스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란스 할스’ 회고전 큐레이터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지난주 뉴스레터가 할스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한국의 관객에게 익숙한 페르메이르와 비교해 할스는 어떤 작가인지, 또 그가 제임스 휘슬러, 빈센트 반 고흐 등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인상파 화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다룹니다.고요함의 페르메이르, 움직임의 할스사실 레익스미술관은 렘브란트의 ‘야경’과 페르메이르의 작품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라메르처에게 한국인에게 익숙한 페르메이르와 비교해 할스의 특징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할스와 페르메이르를 비교한다면 어떻게 다른가요?“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는 벽이 사람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예요. 또 그림 속 인물들은 아주 이상적인, 고요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그림 속 모든 것이 얼어붙어서 순식간에 멈춘 듯한 느낌. 이런 미학이 지금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할스의 그림은 이와는 정반대로 큰 움직임과 반응을 그리려고 해요. 할스가 만든 기적은 카메라가 발명되기 200년 전에 일종의 ‘스냅숏’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그림 속 어떤 사람은 완전히 측면으로 관객을 보지 않게 묘사되어 있는데, 1초 뒤엔 꼭 나를 쳐다볼 것처럼 표현되어 있어요.이런 것들은 요즘에는 사진이나 영화 같은 매체가 흔해서 새로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생동감 있는 표현을 매일 신문이나 광고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할스의 새로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합니다.인상파, 반 고흐, 우키요에 같은 종류의 미학이 지금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고 페르메이르의 작품도 같은 결에 놓여 있죠. 여러 가지 요소를 결합하면 이런 인기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거예요.그런데 저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레익스미술관장을 맡았던 슈미트 데헤너의 말을 인용하고 싶어요. 데헤너는 페르메이르가 “2급 작가 중에서는 가장 잘 그린다”고 했거든요. 불과 80년 전에 말이에요! 아주 흥미롭죠? 지금은 누구도 그렇게 말할 수 없잖아요.”- 놀랍네요. 지금은 어쩌면 렘브란트보다도 더 인기가 있잖아요.“슈미트 데헤너는 미술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어요. 그는 고야, 엘 그레코, 렘브란트처럼 사람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예술가를 거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페르메이르는 최고의 화가는 아닐 수 있죠.페르메이르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미학적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또 변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할 때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 무엇이 나의 취향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계의 일부분이고, 전 세계가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다는 것도 특별하고 재밌는 현상이죠.”반 고흐, 휘슬러가 반한 일상과 붓 터치- 그런 가운데 왜 지금 미술관에서 할스를 보여주고 싶었나요?“물론 네덜란드에서는 19세기부터 렘브란트, 할스, 페르메이르가 17세기 예술의 3대 거장이었어요. 렘브란트는 항상 유명한 화가였고, 페르메이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랑받기 시작했죠.이에 반해 할스는 조금씩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어요. 특히 해외에서 그랬어요. 네덜란드에서도 할스를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금 길거리에 나가 ‘할스를 아느냐’고 젊은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화가가 아니라 “길 이름에서 들어봤다”고 할 거에요.그러니까 취향이 변하면서 인기는 예전만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매우 독창적인 화가이자 중요한 예술가이기 때문에 조명할 필요가 있죠. 할스가 받아 마땅한 관심을 사람들이 갖게 해주자. 그의 독창성을 최대한 널리 알리자는 생각에서 이 전시를 베를린과 런던에서도 개최합니다.”- 그의 독창성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느슨한 붓터치죠. 이러한 붓터치는 인상파 덕분에 현대인에게는 아주 익숙한 것이지만, 당대에는 혁신적인 것이었어요.”- 인상파 화가들이 할스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을 전시에서도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궁금했던 건 할스의 페인팅 스타일이 영향을 미쳤는지, 아니면 평범한 일상의 장면 같은 주제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였습니다.“둘 다예요. 이것도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예요.(할스를 발굴한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겸 기자였던) 테오필 토레뷔르거나 구스타브 쿠르베는 프랑스가 17세기 네덜란드 공화국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아주 강하게 주장했어요. 또 빈센트 반 고흐는 할스가 ‘길거리의 사람들을 이상화하거나 종교적으로 만들지 않고 본 그대로 그리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고 쓴 기록이 있습니다. 할스는 무엇을 더 꾸미고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죠.다른 포인트는 느슨한 붓터치에요. 휘슬러가 할스의 그림을 보기 위해 할렘에 가서, 펜스를 넘어 그림을 직접 만져봤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할스가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를 아주 가까이서 보고 싶었던 거예요. 휘슬러는 그림이 만들어내는 환영이 아니라 붓터치를 어떻게 했는지 자세히 알고 싶었던 거죠.”(다음 뉴스레터로 이어집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중견 작가들의 초기 작품을 다시 꺼내 재조명하는 프로젝트 ‘에디션R’을 갤러리현대가 선보인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13일 개막한 ‘풍경’전은 김민정(62), 도윤희(63), 정주영(55) 등 세 작가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자연과 우리가 맺는 관계를 형상화한 김민정, 내면의 풍경을 담은 도윤희, 풍경화라는 개념에 도전하는 정주영의 예술 작품이 형성된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김민정의 작품은 작가가 이탈리아에 머물며 완성한 것들이다. 한지를 재료로 수채 물감과 먹이 서로를 밀어내는 성질을 활용하거나, 끝을 불로 태운 한지를 재료로 사용하는 등 여러 실험 과정이 드러난다. 도윤희의 작품은 흑연으로 드로잉을 한 뒤 그 위에 바니시(광택제)를 칠해 번지는 효과를 활용했다. 화려한 색채를 드러내는 최근 작품들에 비해 극도로 절제된 색조가 보인다. ‘산의 작가’로 불리는 정주영은 1990년대 작품에서 김홍도와 정선의 회화 일부를 확대해 대형 캔버스에 그렸다. 작가는 “풍경화란 눈으로 본 장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심리가 개입해 창조하는 세계임을 이 과정을 통해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세 작가의 다른 ‘풍경’들은 각자 다른 길로 펼쳐지게 되는 예술 세계의 시작점을 보여준다. 4월 14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제 평생 이렇게 많은 기자와 만난 것이 처음이에요. 처음이면서 끝일 수도 있습니다. 90년 가까이 살며 화랑과 계약을 하고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처음이라 얼떨떨합니다.” 지난해 서울 관악구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던 김윤신 작가(89)의 말이다. 국내에서 조각가로 활동하다 198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남미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그는 지난해 국내 국공립미술관 첫 개인전 이후 국제갤러리, 리만머핀갤러리와 공동 전속 계약을 맺고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도 초청받았다. 베니스비엔날레를 약 한 달 앞둔 1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김윤신의 개인전이 개막했다.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 평소 즐겨 입던 항공 점퍼와 청바지 대신 검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타난 그는 수십 년간 가족처럼 함께해 온 제자 김란 김윤신미술관장(아르헨티나)의 도움을 받아 차분하게 작품 설명을 이어갔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연작 ‘합이합일 분이분일’과 초기 작품 ‘기원 쌓기’부터 최근 제작한 회화 작품까지 51점을 선보인다. K1 전시장에서는 알가로보, 라파초, 올리브 등 다양한 나무의 속성을 활용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나무는 말없이 서 있으니 사람이 잘 모르지만, 나무는 살아 있다”며 “나무를 좋아하면 나무가 풍기는 향, 근육의 질, 나무가 숨을 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나무와 우리는 형태만 다른 것이지 결국 존재하는 생명이라는 점은 같다”는 말에서 생명으로서 나무에 감정을 이입하며 그 형태를 드러내려는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K2 전시장에서는 지난해 미술관 개인전에서 볼 수 없었던 회화 작품을 대거 만날 수 있다. ‘진동’, ‘내 영혼의 노래’, ‘원초적 생명력’ 등 제목의 작품들은 나이프로 물감을 긁거나 물감을 묻힌 나무 조각을 찍어내는 기법을 활용해 제작했다. 이 때문에 직선의 강렬한 에너지가 두드러지는데, 여기에 국내 작가와는 사뭇 다른 색채를 활용해 한국적이지만 이국적인 감성을 자아낸다. 작가는 멕시코 여행을 계기로 아스테카 문명에서 영감을 받거나, 파타고니아 원주민 마푸체족의 예술에서 한국의 전통 오방색과 유사한 부분을 차용했다. 일부 조각 작품에는 못이 박혀 있는데 이에 대해 작가는 “솔직히 말하면 내 힘으로 뽑을 수 없어 채색만 했다”며 “내 힘으로 뭔가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자연의 재료를 작가 개인의 의지대로 가공하거나 억지로 변형하기보다 그 결을 살리고자 하는 태도가 드러났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도 참석해 작가가 발언할 때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는 등 애정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지난해 남서울미술관 전시 소식을 언론을 통해 보았고, 1세대 여성 예술가인데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직접 전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술관을 찾아가 작가님과도 만나고 그때부터 전시를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국제갤러리 K3관에서는 강서경의 개인전 ‘마치’가 개막했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창안한 악보 ‘정간보’의 기호를 토대로 한 ‘정’ 연작과 회화 속에 시간을 담고자 한 회화 연작 ‘모라’ 등을 선보인다. 브론즈를 구부리고 표면을 두드려 제작한 새로운 조각 연작 ‘산’도 볼 수 있다. 두 전시는 모두 4월 28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봄의 화가’ 오용길 화백(78·이화여대 명예교수)이 해바라기 가득한 풍경을 선보인다.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은 수묵담채 화가 오 화백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장에는 벚꽃, 산수유, 진달래 등 봄꽃이 곳곳에 피어 있는 기존 스타일의 풍경화도 있지만 늦여름 해바라기가 만발한 풍경화처럼 새롭게 시도한 작품도 있다. 오 화백은 “2년 전 경기 안성시 팜랜드에 나들이를 갔다가 해바라기가 가득한 풍경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해 두었다가 화면에 맞게 재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에선 해바라기가 가까운 곳에 아주 크게 그려진 가운데 갑자기 먼 풍경이 펼쳐지는 구도를 볼 수 있다. 김윤섭 숙명여대 겸임교수는 “세필(細筆)로 짧은 터치와 선묘를 무수히 반복한 후 수채화 물감으로 담채 처리해 동서양의 회화 정신을 효과적으로 혼합했다”며 “해바라기를 초근경에 구륵법(윤곽을 선으로 그린 후 채색하는 것)으로 그린 그림에서 대담한 필치가 보인다”고 했다. 1973년 스물일곱 살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은 오 화백은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선미술상 등을 수상하며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에서 은퇴한 후 예술의전당 아카데미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동양화 수업을 하고 있다. 전시는 20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한국 최초 여성 대법관 김영란의 ‘판결’ 시리즈 세 번째 책이 출간됐다. 전작 ‘판결과 정의’,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평하며 우리 사회의 쟁점을 짚어 왔다. 이번 책 역시 판결 비평이라는 결은 유지한 가운데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그 해석의 토대로 삼는다. 책은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소설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전짓불’(손전등의 불빛)을 들이대며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광경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본다. 특히 뉴 미디어의 시대가 온 지금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은 누구 편이냐?’며 전짓불을 들이대는 것 같다”면서 말이다. 우리 사회는 유교 등 전통적 사상을 토대로 하는 공동체적 관념이 강하게 남아 ‘전짓불’의 공포가 그대로 있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다원사회이니 자기의 목소리를 내라는 시대적 요구도 강해지고 있다고 저자는 본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조율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도구로 저자는 (유교 사상과 같은) 철학적·도덕적 견해와 독립된 상태에서 사회가 구축한 ‘공적 이성’을 통해 ‘중첩적 합의’에 이르는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답으로 제시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서론에서는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해설을, 1·2부는 각각 롤스의 ‘중첩적 합의’와 ‘기본적 자유의 우선성’을 테마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분석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양심적 병역거부, 성전환자 성별 정정, 미성년자 상속 등 우리 사회의 첨예한 쟁점이 된 사건들이 사례로 제시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법원이 ‘중첩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책은 말미에서 ‘땅콩 회항’ 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사건을 예로 들면서, 사법 제도 역시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며 사회와 함께 끊임없이 발전하고 공백을 메워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법관이 ‘법을 말하는 입’에 불과하다는 수동적 위치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법원’으로 남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레익스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이 미술관은 지난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회고전을 열어 전 세계 미술 애호가를 설레게 만들었던 곳인데요. 이번엔 렘브란트, 페르메이르와 함께 ‘네덜란드 미술 3대 거장’으로 불리는 프란스 할스 회고전이 열립니다. 전시 개막 2주 만에 14만 명이 관람하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저 역시 할스는 프랑스 루브르나 영국 내셔널갤러리에서 지나치듯 보고 ‘흥미롭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세히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술에 취한 사람, 활짝 웃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처럼 익살스럽고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이었는데요.전시장에서 그런 그림들을 만나며, 권위와 허세를 내려 놓은 아주 인간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기분에 묘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전시의 큐레이터인 프리소 라메르처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할스는 어떤 예술가였는지, 또 그의 작품이 왜 중요한지 그와 나눈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친근하고 호탕한 할스의 사람들어떤 초상화들은 그것을 의뢰한 사람의 부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할스의 초상에서는 플랑드르 지역 특유의 현실주의와 섬세함이 돋보였습니다.자신의 가장 멋진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포즈도 취하고 환하게 웃는 그림 속 사람들을 보며… 할스가 비록 수백년 전 인물이지만 ‘실제로 만나면 어떤 사람이었을까?’가 가장 먼저 궁금했습니다.- 큐레이터님은 그의 작품과 자료를 거의 다 보셨잖아요. 그걸 토대로 볼 때 ‘인간 할스’는 어떤 사람이었을 것 같나요?“사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아요. 할스의 첫 전기는 그가 죽고 50년이 지난 뒤에야 나오거든요. 그렇지만 할스가 성격 좋은 애주가였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다만 당대 사람들은 할스의 느슨한 붓터치를 보고, 그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붓도 휘갈긴다고 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할스는 인간적으론 친근했지만 예술가로서는 야망이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17세기 초반 네덜란드가 아니라 전유럽의 레벨에서 그림의 다른 방식을 찾으려 했던 극소수의 예술가 중 한 명이죠.이 때 이전 그림이 아주 깔끔하고 붓터치가 보이지 않는 매끈한 그림이 주를 이뤘다면, 안토니 반 다이크, 벨라스케스, 렘브란트가 다른 시도를 했고 할스도 이들과 같은 결에 있어요. 아주 빠른 시기에 느슨한 붓터치를 급격하게 밀고 나갔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작가입니다.”- 할스의 느슨한 붓터치를 전시에서도 강조했어요. 유럽 미술사의 맥락에서 이러한 붓터치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느슨한 붓터치는 회화가 결국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물질성을 완전히 드러내거든요. 지금도 화가의 손짓이 그대로 드러나기에 이런 그림들은 모던하게 느껴집니다. 할스도 자신이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렸다는 걸 숨기지 않아요.옷의 단추 하나하나가 다 보이지도 않고 디테일을 다 그리지도 않지만 그림 속 사람들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죠. 이렇게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은 붓터치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인데, 그 붓터치가 ‘그림은 그림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 점이 아주 흥미롭고, 할스도 이런 생각을 했을 거라고 봅니다.”- 할스의 이런 스타일을 그의 주문자나 후원자들이 새롭고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여 좋아했나요? 아니면 할스에게는 리스크가 있는 비즈니스였나요?“1620~30년대 할스는 아주 인기 작가였어요. 그가 리스크를 감수하고 붓터치를 밀고 나갔기 보다는 상대방에 따라 스타일을 바꿨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한 가지 제가 추측하는 건 할스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그릴 때는 좀 더 느슨한 붓터치를 과감하게 시도했다는 점이에요.예를 들어 마사르 부부의 초상을 보면 초기에 그린 것임에도 과감한 붓터치를 볼 수가 있어요. 그리고 마사르 부부와 할스가 친한 사이였다는 것은 확인되는 사실입니다.요즘도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예술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를 과감함으로 드러내려 하잖아요. 마사르 부부 역시 이런 관점에서 할스의 아방가르드한 붓터치를 받아들이고 시도해보려 했을 수 있어요.그게 아니라 그냥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얻고만 싶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스타일이 나타나지 않아요. 할스는 두 고객 층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었던 사람이에요.”- 할스가 술에 취해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겠지만, 붓터치에서 흥겨운 성격이 어느 정도 보이는 것은 아닌가요?“맞아요. 그의 그림에는 아주 과감한 무언가가 있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성격도 작용했을 거에요. 할스는 절대 소심한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렇게 그릴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자기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하죠.그러나 할스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 확신하기는 어려워요. 물론 동시대 사람이나 화가들이 할스에 대해 뭐라고 얘기했는지 약간의 기록이 남아 있긴 합니다. 거기서 할스가 밖으로 다니기를 좋아하고 외향적인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는 나와요.또 이렇게 그림을 그려 놓고 정작 자기가 할 말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도 어렵죠. 그가 그리는 인물들 역시 호탕하게 웃거나 활발한 모습이니. 그런 점이 할스 성격의 일부임은 틀림없습니다.”(다음 뉴스레터로 이어집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전 세계 한류 팬(한국문화 동호회 가입자) 수가 2억 명을 넘어섰다고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밝혔다. KF는 외교부와 함께 발간한 ‘2023 지구촌 한류 현황’에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14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세계 한류 동호회(온·오프라인) 수는 1748개로 회원 수는 2억2500만 명이다. ‘지구촌 한류 현황’이 처음 발간된 2012년 926만 명보다 약 24배 급증한 수치다. 지난해에 비해선 25.8%(4600만 명) 늘었다. 한류 동호회 규모가 큰 지역은 아시아·대양주로 이 중 중국(1억 명)의 회원 수가 가장 많았고, 동호회 수 기준으로는 태국(123개)이 가장 많았다. 동호회원 수 증가율이 높았던 곳은 미주 지역(80%)이었다. 한류 동호회 중 약 68%는 K팝, 10%는 K드라마 동호회인 것으로 조사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일상에서 떠오르는 감각을 선으로 옮긴다는 점에서는 그라피티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거리에서 실시간으로 그려지는 그라피티 특유의 날것의 감각보다는 다소 깔끔하고 정돈된 색과 선이다. 또 정치·사회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최전선의 현대미술 작품들과 달리 불편한 문제를 피해 보기에 가볍고 경쾌하다. 미술 시장에서 사랑받은 미국 작가 에디 마티네즈(47)의 개인전이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 서울’에서 14일 개막했다. 2005년부터 최근 작품까지 시기·주제별 작품 3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의 제목은 ‘투 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 마티네즈 작품의 중심이 되는 드로잉과 ‘만다라’ ‘화이트아웃’ 등의 주요 시리즈를 소개한다. 본격적인 전시를 관람하기 전 매표소와 카페가 있는 공간 벽면에 마티네즈의 드로잉이 장식된 것을 볼 수 있다. 작가는 항상 펜과 종이를 들고 다니며 드로잉을 하는데, 이 드로잉에서 일부나 전체를 차용해 회화를 제작한다. 이 때문에 작품의 출발점이 되는 드로잉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장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나비 꽃병 테니스공 등 일상에서 작가의 관심을 사로잡은 여러 형태가 변형된 대형 회화 작품들이 보인다. 드로잉에서와 마찬가지로 선이 중심이 되는데,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신작인 ‘이엠아트유한회사 No.4’(2023년) 같은 작품은 작은 드로잉을 확대해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다음 색칠 공부를 하듯 채색했다. 높이 3m, 폭 6.7m로 가장 큰 작품인 ‘은하계 같은 풍경―로지아(Loggia)에서 바라보다’(2023년)는 그림을 그린 뒤 흰색을 덧칠한 ‘화이트아웃’ 연작의 하나다. 13일 한국을 찾은 작가는 ‘화이트아웃’ 연작에 대해 “처음에는 그렸던 그림을 지우고 새로 그리기 위해 흰색을 칠했다”며 “그러다 선 위에 흰색이 칠해졌을 때 색다른 효과가 난다는 걸 발견하고 시작된 시리즈”라고 설명했다. ‘만다라’ 연작은 3∼4주 동안 모래로 만다라를 만든 다음 완성되면 지워 버리는 티베트 불교 수행 방식에 흥미를 느껴 그 도상을 차용한 작품이다. 작가는 그러나 만다라의 상징이나 의미보다는 그 형태만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탁자나 나비 시리즈처럼 만다라도 일종의 수단”이라며 “여러 가지 모양과 색을 넣을 수 있는 구조물 같은 형태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이 밖에 카드놀이 테니스공 등이 등장하는 ‘더 딜(The Deal)’ 시리즈와 드로잉을 만날 수 있다. 6월 16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보이 그룹 세븐틴이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서 6관왕에 올랐다. 13일 일본 레코드협회가 발표한 ‘제38회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 따르면 세븐틴은 ‘베스트 아티스트’ 아시아 부문상을 수상했다. 또한 미니 10집 ‘FML’과 일본 베스트 앨범 ‘올웨이스 유어스(ALWAYS YOURS)’, 미니 11집 ‘세븐틴스 헤븐(SEVENTEENTH HEAVEN)’으로 각각 아시아 부문 ‘베스트 3앨범’을 차지했다. ‘FML’은 아시아 부문 ‘앨범 오브 더 이어’에도 올랐다. 세븐틴의 콘서트 실황을 담은 ‘세븐틴 월드 투어 비 더 선 저팬’은 아시아 부문 ‘뮤직비디오 오브 더 이어’를 받았다. 소속사 플레디스는 “아시아 부문 ‘베스트 3앨범’을 한 아티스트가 독식한 건 골드디스크 시상식 역사상 처음”이라고 밝혔다.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은 1987년부터 일본 레코드협회가 개최했으며 1년 동안 발매된 음반, 비디오 판매 실적에 따라 수상자를 정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랑스 파리에서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주목받은 뒤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하며 활동 영역을 넓힌 작가 시릴 콩고(54)의 국내 첫 개인전 ‘그래피티의 연금술사, 시릴 콩고’가 14일 서울 성북구 뮤지엄웨이브에서 개막한다. 3개 층에서 선보이는 전시는 작가의 영상, 회화, 조각, 네온아트, 협업 작품 등 45점을 선보인다. 우선 작가의 거리 활동상은 1층 전시실에서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다. 2층 전시실에서는 거리의 작업을 캔버스로 옮긴 회화 작업이 전시되는데 앤디 워홀, 구사마 야요이 등 유명 예술가들의 초상화도 그렸다. 3층에서는 샤넬·에르메스 등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한 스카프, 가방, 옷 등을 선보인다. 프랑스인 어머니와 베트남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1986년 처음 그라피티 작업을 시작한 뒤 프랑스 파리, 중국 홍콩, 멕시코 과달루페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했다. 홍콩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다 에르메스 관계자의 눈에 띄어 2011년 에르메스와 협업해 실크 스카프를 만들었다. 이후 시계 브랜드 리처드 밀, 샤넬 등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과도 협업했다. 작가는 프랑스 바뇰레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그라피티 축제인 ‘코스모폴리트(Kosmopolite)’의 창립자로 세계 그라피티 아트의 주요 인물이기도 하다. 6월 1일까지. 6000∼1만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30대의 아이유는 ‘좋은 날’의 열일곱 아이유를 넘어설 수 있을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 영화 ‘브로커’ 등의 작품으로 배우 이지은으로 영역을 넓히며 고군분투해 온 아이유가 본업인 ‘가수’로 돌아왔다. 신보 ‘더 위닝’을 발표하고 월드투어에 나서며 승부수를 던진 것. 새 앨범 무대가 처음으로 소개된 ‘아이유 H.E.R. 월드투어 콘서트’ 공연이 10일 언론에 공개됐다. 서울 송파구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진행된 이번 콘서트는 아이유가 2022년 한국 여성 가수 최초로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가진 뒤 1년 6개월 만에 연 공연이었다. 콘서트명 ‘H.E.R’에 맞춰 1부 힙노틱(Hypnotic·최면에 걸린), 2부 에너제틱(Energetic·활기찬), 3부 로맨틱(Romantic·낭만적인) 그리고 4부 엑스테틱(Ecstatic·황홀한)으로 구성된 공연은 “꽃으로 피려고 생각했다 홀씨가 되기로 한” 아이유의 서사를 보여줬다. ‘홀씨’로 시작한 1부 공연은 마지막 곡 ‘오블리비아테(Obliviate)’가 인상적이었다. 기억을 지운다는 의미의 가사를 담은 이 노래를 부르기 전 아이유는 “제가 주문을 외우면 모두 기억을 지워 달라”고 했다. 곡을 재치 있게 소개하는 멘트였지만, 대표곡 ‘좋은 날’과 ‘팔레트’로 기억되던 자신을 잊어달라는 의미로도 읽혔다. 10년 전부터 아이유의 콘서트를 관람해 온 이재욱 씨(25)는 “2022년 콘서트에서 예고한 대로 ‘좋은 날’과 ‘팔레트’가 빠졌다”며 “특히 ‘좋은 날’은 콘서트 2부의 마지막, 즉 클라이맥스를 담당했던 곡이었기에 그간 ‘좋은 날’을 위해 달려가는 구성이 약간 정형화된 느낌이 있었다면, 이번엔 공연에선 좀처럼 보지 못했던 색다른 곡이 나와 돋보였다”고 덧붙였다. 또 4부에서는 빨간 가죽 재킷과 검은 부츠를 착용하고 등장해 ‘Shopper’와 ‘Love Wins All’ 등 새 앨범 수록곡을 불렀다. 새 앨범을 내며 “남들이 괴짜라 평가하거나 별로라고 해도 나만의 승리를 이루겠다”고 한 것처럼 조심스러움을 조금 버리고 가창도 더 과감하게 지르면서 30대의 자신만만한 느낌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아이유가 가장 잘하고 능숙해 보이는 것은 팬들과의 끈끈한 관계였다. 아이유는 공연 중 시종일관 관객에게 노래를 따라 불러 달라거나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며 자신을 내세우기보단 ‘함께’의 의미를 강조했다. ‘밤 편지’를 부를 때는 “관객의 목소리와 섞어 부를 때 나쁜 게 걸러지고 정화되는 곡”이라며 “일흔한 살까지 체조(경기장)를 채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다. 팬들 역시 각 노래에 맞춰 준비된 응원 구호와 ‘떼창’으로 화답했다. 아이유는 이날 30여 곡의 노래를 열창했다. 아이유는 일본 요코하마, 대만 타이베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북미 지역(6곳) 등에서 투어를 이어간다. 또 9월 21, 22일에는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앙코르 콘서트를 개최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여는 건 K팝 여성 솔로 가수 중 아이유가 처음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작업실 밖을 나가지 않는 작가가 야외에서 자연 풍경을 그린 ‘외광파’ 스타일의 회화를 그릴 수 있을까. 벨기에 출신 작가 리뉘스 판 더 펠더(리너스 반 데 벨데·사진)는 상상의 힘을 빌리면 안락의자에 가만히 앉아서도 다른 시대와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와 서초구 스페이스 이수에서 8일 개막하는 개인전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를 통해서다.● 종이와 물감으로 만든 세계 아트선재센터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 ‘하루의 삶’ 속에는 작가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를 쓴 남자가 등장한다. 작가의 도플갱어인 이 인물은 갤러리에서 외광파 작가들의 드로잉이 담긴 가방을 건네받는다. 그 다음 은행의 비밀 금고처럼 조성된 공간으로 이동해 이 드로잉들을 자신만의 버전으로 해석해 작품으로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영상 속 모든 공간이 나무 합판이나 골판지 위에 물감을 색칠해 제작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관객은 영상 속 세계가 기계나 컴퓨터가 아니라 작가가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낸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화려하고 거창한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상상력을 발휘하면 현실을 넘어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무엇을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며 “상상력은 인간에게 주어진 재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상은 강력한 도구이고 우리가 현실을 성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판 더 펠더는 웬만하면 작업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상 작품도 거대한 스튜디오 내에서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전부 촬영됐다. 문지윤 아트선재센터 프로젝트디렉터는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 오기로 결심하고 모든 것을 계획했는데, 홍해 후티 반군 도발로 물류 운송 등 일정이 틀어지면서 작업실 밖을 나오기를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미술사 속 작가들과 상상의 만남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전시의 중심이 되는 두 영상 작품 ‘라 루타 나투랄(내추럴)’과 ‘하루의 삶’을 만날 수 있다. 또 영상 작품에 사용되었던 골판지 자동차, 과일 판매점이나 나무와 식물, 건물의 미니어처가 함께 전시된다. 전시 제목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는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마티스는 그림을 그리기 가장 좋은 빛을 찾기 위해 프랑스 남부로 여행을 떠난다. 그때 “해와 달과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 작가는 이 글귀를 자신의 추상 작품 아래에 적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남쪽으로 떠나지 않고도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이국적인 세상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영상뿐 아니라 회화를 통해 그는 마티스, 에밀 놀데(1867∼1956), 피터르 몬드리안(1872∼1944) 같은 미술의 역사에 남았지만 작고해 마주할 수 없는 작가를 소재로 삼는다. 작가는 외출을 잘 하지 않는 자신과 정반대인 외광파 화가를 주요 소재로 다루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꿈꾸고 욕망하면 내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음을 역설한다. 스페이스 이수에서는 영화 세트이자 조각인 ‘소품, 터널’과 목탄 드로잉, 탐험가나 예술가 등 실존 인물의 전기를 바탕으로 한 오일 파스텔화를 볼 수 있다. 5월 12일까지. 아트선재센터 5000∼1만 원, 스페이스 이수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 작품 앞에서 대체 뭘 그린 건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당황하고 난처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막연히 잘 모르겠고 어렵다는 이유로 미술을 싫어하는 건 안타깝다는 생각에 시작된 칼럼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이 책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으로 출간됐다.저자는 한국경제 미술 기자로 미술사 속 작품들에 얽힌 작가의 삶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매주 연재했다. 칼럼은 네이버 문화 분야 구독자 1위, 포털 누적 조회수 4000만 회를 넘어서며 화제의 코너로 자리 잡았는데, 기존에 연재했던 내용은 물론 미연재분도 추가했다.에두아르 마네, 윌리엄 터너 등 대가는 물론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빈센트 반 고흐 등 인기 작가와 제임스 앙소르,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같은 비교적 새로운 작가까지, 서양 미술사 속 화가 27인의 삶과 그림 이야기를 전한다.책은 그림의 주재료인 작가의 관점과 삶을 작품과 엮어 설명한다. 작가의 삶을 풍부하게 전하기 위해 미번역 최신 문헌을 최대한 참고했다. 저자는 “많이 읽고, 조금 판단하고, 있는 그대로 전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회고전을 기억하시나요? 사전 예약에만 20만 명이 몰리며 세계적 관심을 받았죠. 그 전시가 열렸던 레익스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네덜란드 작가인 프란스 할스 회고전이 개막 2주 만에 12만 명이 관람하며 화제였습니다. 할스는 렘브란트, 페르메이르와 함께 네덜란드 17세기 미술의 3대 거장으로 꼽힙니다. 할스의 전시를 보고 레익스미술관 큐레이터인 프리소 라메르처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사진 이전에 ‘움직임’을 담다전시를 여는 작품은 ‘즐거운 술꾼’입니다. 술에 취해 얼굴이 달아오른 남자가 술잔을 앞으로 쑥 내밀며 ‘너도 한잔해’ 하고 말을 거는 듯합니다. 주인공의 권위를 과시하려 애쓰는 어떤 초상화들과 달리, 할스의 작품은 이렇게 친근함이 돋보입니다. 할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메르처는 페르메이르가 ‘고요함’의 화가라면 할스는 ‘움직임’의 화가라고 말합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는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다면 할스는 정반대로 역동성이 돋보입니다. 이를테면 할스의 그림에서 측면으로 고개를 돌린 인물은 1초 뒤에 우리를 쳐다볼 것만 같죠. 이런 그림이 얼마나 새로웠는지를 요즘처럼 사진이나 영상이 흔한 시대에는 느끼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정반대인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세계적 사랑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20세기 초반 레익스미술관장이었던 프레데리크 슈미트데헤너르가 페르메이르를 ‘2급 작가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했던 걸 생각하면, 시대에 따라 취향이 변한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취향도 바뀔 수 있겠죠. 어쨌든 할스의 놀라운 점은 사진이 발명되기 전 이미 그가 ‘스냅숏’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알기 위해 우리는 17세기의 맥락에서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죠.” 그렇다면 할스의 이런 그림들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이것은 당시 네덜란드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연관됩니다.가장 진보했던 네덜란드 미술보통 미술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아카데미’ 미술에서는 역사화나 종교화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17세기를 전후한 네덜란드 미술에서는 이보다 상인들이 주문한 초상화나 바다와 자연을 그린 풍경화, 또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과일을 담은 정물화가 유행했습니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할스의 여러 초상은 보통 결혼 등의 이벤트를 기념하기 위해 의뢰로 그려진 것입니다. 카메라가 지금처럼 흔해지기 전에는 현대인들도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처럼 말이죠.할스의 초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부유한 상인입니다. 왕이나 성직자, 귀족이 아닌데도 그림을 주문할 수 있었던 데에는 플랑드르 지역의 발달한 상업과 종교개혁 이후 종교화를 그리지 않게 된 시대적 배경이 작용합니다. 덕분에 네덜란드 일대에서는 ‘미술 시장’이 빨리 발달했고, 화가들은 주문받지 않고도 정물화나 풍경화 등 인기 있는 주제를 그려 시장에 팔았습니다. 이런 진보한 미술의 가치는 19세기 인상파 화가와 평론가에게 재발견됩니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라메르처는 할스가 인상파 화가에게 미친 영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할스의 그림을 재발견한) 프랑스의 19세기 평론가 겸 기자 테오필 토레뷔르거(1807∼1869)는 17세기 네덜란드가 프랑스 공화국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또 빈센트 반 고흐는 할스의 그림이 ‘길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을 이상화하거나 종교적으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그려 더욱 아름답다’고 칭송했습니다.” 즉, 할스의 그림이 보여준 현실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공화국이 탄생하는 19세기 말 프랑스가 갈망했던 것입니다. 인상파 작가들은 신화나 종교적 상징을 담은 아카데미 미술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 할스와 네덜란드 그림이 훨씬 아름답다고 여겼죠. 라메르처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유모와 함께 있는 카타리나 호프트’를 꼽았는데요. 그는 “아기가 입은 굉장히 화려한 옷에서 할스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지만,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건 아기의 생생한 손짓”이라고 했습니다. “아기와 유모의 부드러운 미소와 시선은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아기가 뻗은 손은 유모를 밀어내는 것처럼 보여요. 아기들은 실제로 저런 행동을 하잖아요. 아기의 옷은 오래전인 17세기 것이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손짓은 지금도 이어지는 것이기에 감동을 줍니다.” 그와의 대화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은 사람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단체 초상화에서 남성들이 뽐내는 모습까지도 모든 것이 너무나 인간적”이라며 “이런 요소로 우리는 오래전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백 수천 년 전 작품 앞에 서면 처음엔 내가 작아지는 걸 느낍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에도 변하지 않은 인간의 마음이 있고, 내가 죽은 뒤에도 그게 이어질 거라 생각하면 나 역시 그 위대한 흐름에 속한 큰 존재임을 느낍니다. 미술사의 아름다움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 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페로탕 서울은 2016년 서울에 진출한 후 두 번째 한국 작가 전시로 1월 25일부터 이상남 작가의 개인전 ‘마음의 형태(Forme d’esprit)’를 열고 있다. 전시는 1981년 작가가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후 1990년대부터 2023년까지 작업해 온 회화 13점을 선보인다. 이전 한국 작가 전시는 2019년 박가희의 ‘We Used to be Fish’였다. 전시장 입구엔 단색 화면에 검은 선으로 기호를 그려 넣은 1990년대 작품 4점이 자리한다. 이들 그림은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여러 가지 기호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점차 복잡해지고 색채도 다채로워진다. 다만 작가는 그림 속 기호들이 특정한 의미로 고정되기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특히 아크릴 물감이 재료인 그림인데도 시트지를 붙인 것 같은 매끄러운 표면이 독특하다. 이는 컴퓨터그래픽으로 밑그림을 만든 뒤 물감을 칠하고 옻을 입히며 사포로 문지르는 여러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정연심 홍익대 교수는 “물질 그 자체와 내가 하나가 되어 수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가한 이상남의 작업은 단색화와 달리 뉴욕과 같은 대도시의 다양한 컬러와 기계적인 매끈한 표면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3월 16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22년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열었던 미국 작가 이안 쳉(40)이 신작 ‘사우전드 라이브스’로 한국을 찾았다. 작품은 서울 강남구 글래드스톤 갤러리 서울에서 23일 개막한 동명의 개인전에서 공개됐다. 이번 작품은 전작 ‘BOB 이후의 삶’의 주인공인 챌리스가 키우는 거북이 ‘사우전드’의 일상을 보여준다. 역시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영상 작업인데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AI) 모델을 이용해 만든 가상현실 속 거북이의 삶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영상 속 거북이는 집 안 사물들과 부딪치며 자신에게 해가 되는 물건과 득이 되는 것을 일종의 ‘딥 러닝’으로 배우며 진화한다. 그러다 거북이가 죽기도 하는데 이 경우 이전에 배운 지식의 20%를 갖고 다시 태어나 배움을 반복한다. 이렇게 무한대로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사우전드 라이브스(천 개의 삶)’라는 제목을 달았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이전 작업에서도 비디오 게임 설계, 인지 과학 등 여러 기술을 활용했던 작가는 “기술로 현실보다 더 강한 버전의 ‘나’를 만남으로써 관객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감성을 불어넣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는 ‘사우전드 라이브스’와 전작 ‘BOB 이후의 삶’ 등 영상 작품 2점을 볼 수 있다. 4월 13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여권 사진 같은 인물 초상 연작, 인터넷 데이터를 편집한 이미지, 우주의 별까지…. 사진을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 온 독일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사진)가 이번엔 16세 청소년 때의 기억으로 돌아갔다. 21일 서울 종로구 PKM 갤러리에서 그가 발표한 ‘d.o.pe.’ 시리즈가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d.o.pe.’ 연작은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만들어 낸 프랙털(fractal·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되풀이되는 구조) 패턴을 변형해 만든 그래픽 이미지를 담고 있다. 독특한 것은 이 이미지를 인화지가 아닌 벨루어 카펫에 프린트했다는 점이다. 이날 갤러리에서 만난 토마스 루프는 “프랙털 구조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느낌이 종이에서는 살아나지 않아 고민하다 벨기에의 카펫 회사에 의뢰해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최장 290㎝ 길이의 카펫에 펼쳐지는 패턴들은 섬유의 부드러운 느낌에 화려한 색감을 더해 보는 즐거움이 충분하다. 제목 ‘d.o.pe.’는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지각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에서 따온 것으로, 인간이 화학적 촉매제를 통해 의식의 지평을 넓히고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는 뜻을 담았다. 이는 그가 16세 때 친구들과 소파에 앉아 핑크 플로이드 등의 음악을 들으면서 사이키델릭(환각적인)한 이미지를 보고 공상에 빠졌던 경험에서 출발했다. 그는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관”이라고 말했다. 전날 한국에 도착해 시차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음에도 스스로는 잠을 잔다고 믿었기에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음을 예로 들었다. 이처럼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인간의 상상과 인식으로는 한계 없이 가능한 현상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 그는 “만약 우리가 뇌의 주어진 기능의 100%를 쓴다면 하늘을 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부드러운 카펫 위에 깊은 황홀경처럼 펼쳐지는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현실 너머 다른 차원의 세계로 뛰어들어 보라고 권한다. 루프는 독일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거장 베른트 베허(1931∼2007)로부터 사진을 배운 뒤 1980년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칸디다 회퍼와 함께 ‘뒤셀도르프 사진학파’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다. 한국에서는 2004년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 후 20년 만에 첫 개인전이다. 4월 13일까지. 무료.김민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