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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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2-24~2026-03-26
연극25%
미술18%
무용15%
문화 일반15%
문학/출판10%
인사일반8%
음악5%
칼럼3%
역사1%
  • 밥 먹으러 갔다가 눈 호강까지

    오래된 한옥 건물 지하를 와인 저장고로 개조하고, 일본인 셰프를 모셔 와 한국에 정착하게 만드는가 하면,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 셰프가 운영하던 레스토랑도 인수한다. 보고 느끼는 예술 작품뿐 아니라 맛과 감각으로 무장한 ‘미식’에도 신경 쓰는 갤러리스트들 이야기다. 이들은 갤러리 내외부에서 레스토랑과 카페를 직접 운영한다.● 1·2대의 다른 취향, 두가헌과 에밀리오 갤러리현대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 옆 두가헌과 강남구 청담동 에밀리오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두가헌은 1910년대 만들어진 한옥을 개조해 2004년 문을 연 곳으로 지하 공간에는 300여 종의 와인 3000여 병이 보관돼 있다. 도형태 부회장은 “처음 아버지와 이 한옥을 발견했을 때 지하는 와인 셀러로 완벽하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청전 이상범의 수묵화와 김창열의 물방울 작품이 걸려 있는 두가헌은 파스타, 스테이크 등 코스 메뉴를 판매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것이 특징이다. 오래전부터 갤러리현대를 찾은 전통적 컬렉터, 원로 작가 취향에 맞춰 대부분 요리를 저염으로 부드럽게 조리한다. 대표 메뉴는 한우 스테이크와 전복구이다. 이에 반해 도 부회장이 올해 초 인수한 에밀리오는 이탈리아식으로 더 과감히 밀고 나간다. 시칠리아 셰프가 운영하던 메뉴를 살려 버섯 크림에 비벼 먹는 파케리 파스타, 카포나타, 아란치니, 포카치아, 올리브를 곁들여 먹는 시칠리아 스타일 애피타이저, 양갈비구이가 대표 메뉴다. 레스토랑 내에는 이반 나바로의 발광다이오드(LED) 작품, 라이언 갠더의 풍선 설치 작품 등 국내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식 양식 일식 중에 골라”, 국제갤러리 카페 국제갤러리는 삼청동 K1 건물 1, 2층에 각각 ‘카페@더 레스토랑’과 ‘더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애플 포타주’를 비롯한 정통 프렌치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더 레스토랑에는 양혜규의 벽지 작업이 설치돼 있다. 카페 벽면에는 김영나, 냅킨에는 홍승혜의 디자인 문양이 그려져 있는 등 갤러리 전속 작가들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다. 메뉴는 일본 도쿄 럭셔리 호텔과 현지 대형 외식 그룹 총괄 셰프를 지낸 아베 고이치가 1999년부터 총괄 담당하고 있다. 독특한 것은 카페 메뉴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다’는 듯 연어 스테이크, 해장 짬뽕, 매운 해산물 떡볶이와 사누키 우동 등 한식 일식 양식이 공존한다. 초기에는 파스타, 샌드위치, 샐러드 위주의 종이 1장짜리였던 메뉴판이 지금은 얇은 책 한 권이 됐다. 여기에는 2세 경영자인 김찰스창한 사장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갤러리 레스토랑은 전시 관람의 경험이 미식으로도 이어지는 곳”이라며 “이런 점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대중적인 메뉴도 함께 준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해장 짬뽕은 아베 셰프가 가끔 갤러리 직원들과 나눠 먹던 음식이 김 사장의 추천으로 정식 메뉴가 됐다. 이 관계자는 “김 사장이 지금은 갤러리 운영 전반에 참여하지만 처음에는 레스토랑, 카페를 경영했다”며 “지금도 새로운 메뉴 개발은 물론이고 테이스팅까지 관여한다”고 했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과 연계해 갤러리들이 야간에 문을 연 ‘삼청 나잇’ 행사 때도 VIP뿐 아니라 일반인에게 개방한 데는 김 사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미술인들, 미식에도 진심 국제갤러리의 더 레스토랑이 처음 문을 연 1999년에는 ‘갤러리에서 무슨 식당이냐’며 비판을 받았다. 당시 이현숙 회장은 갤러리 비즈니스에 식사와 미팅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임에도 과감하게 레스토랑 오픈을 결정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시 관람 문화가 확산되면서 미술관에서도 식음료 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기고, 소셜미디어에서도 주목받는다. 전시를 관람하는 큐레이터, 작가 등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전시와 함께 인근 맛집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우뚜기(@oottoogi)가 인기다. 6만7000명이 팔로하는 이 계정을 운영하는 A 씨는 “비엔날레와 대형 전시처럼 실제로 많이 움직이며 보는 전시도 있고, 작은 전시라도 보는 데 마음과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며 “그러면 허기가 지기에 자연스레 먹을 만한 곳을 찾게 된다”고 했다. 호암미술관은 불교 미술 기획전이 열리는 3월부터 6월까지 태극당과 협업해 팝업 카페를 열었다. 팝업 카페를 기획한 이정진 삼성문화재단 대외협력실장은 “고미술 전시에 맞춰 나름의 역사와 창의적인 정체성을 갖춘 곳을 중심으로 물색했고 ‘극락 라떼’ ‘연꽃 에이드’ 등 한정 메뉴 반응이 좋았다”며 “전시 관람객의 30%가 카페를 함께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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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지 갤러리, 8월 17일까지 ‘그 다양한 시선’ 전시

    산지 갤러리가 8월 17일까지 ‘그 다양한 시선’이라는 주제로 현대미술의 다채로운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몇 개의 선과 모양만으로 현대인의 익명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경쾌하고 친숙하게 인물 형상을 완성시킨 팝아티스트 줄리안 오피(Julian Opie)를 선두로 자연, 동식물, 인간의 공존과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화풍으로 표현하는 일본 작가 유이치 히라코, 1993년 ‘아톰’과 ‘미키마우스’의 결합으로 탄생한 캐릭터 ‘아토마우스’로 유명한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 이동기를 비롯한 총 8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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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에도 진심인 미술인들… 갤러리 레스토랑의 세계

    오래된 한옥 건물 지하를 와인 저장고로 개조하고, 일본인 셰프를 모셔 와 한국에 정착하게 만드는가 하면,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 셰프가 운영하던 레스토랑도 인수한다. 보고 느끼는 예술 작품뿐 아니라 맛과 감각으로 무장한 ‘미식’에도 신경 쓰는 갤러리스트들 이야기다. 이들은 갤러리 내외부에서 레스토랑과 카페를 직접 운영한다.1∙2대의 다른 취향, 두가헌과 에밀리오갤러리현대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 옆 두가헌과 강남구 청담동 에밀리오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두가헌은 1910년대 만들어진 한옥을 개조해 2004년 문을 연 곳으로 지하 공간에는 300여 종의 와인 3000여 병이 보관되어 있다. 도형태 부회장은 “처음 아버지와 이 한옥을 발견했을 때 지하는 와인 셀러로 완벽하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청전 이상범의 수묵화와 김창열의 물방울 작품이 걸려 있는 두가헌은 파스타, 스테이크 등 코스 메뉴를 판매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것이 특징이다. 오래전부터 갤러리현대를 찾은 전통적 컬렉터, 원로 작가 취향에 맞춰 대부분 요리를 저염으로 부드럽게 조리한다. 대표 메뉴는 한우 스테이크와 전복구이다.이에 반해 도 부회장이 올해 초 인수한 에밀리오는 이탈리아식으로 더 과감히 밀고 나간다. 시칠리아 셰프가 운영하던 메뉴를 살려 버섯 크림에 비벼 먹는 파케리 파스타, 카포나타, 아란치니, 포카치아, 올리브를 곁들여 먹는 시칠리아 스타일 애피타이저, 양갈비구이가 대표 메뉴다. 레스토랑 내에는 이반 나바로의 LED 작품, 라이언 갠더의 풍선 설치 작품 등 국내외 현대 미술가 작품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했다.“한식 양식 일식 중에 골라”, 국제갤러리 카페국제갤러리는 삼청동 K1 건물 1, 2층에 각각 ‘카페@더 레스토랑(카페)’와 ‘더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애플 포타주’를 비롯한 정통 프렌치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더 레스토랑에는 양혜규의 벽지 작업이 설치되어 있다. 카페 벽면에는 김영나, 냅킨에는 홍승혜의 디자인 문양이 그려지는 등 갤러리 전속 작가들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있다. 메뉴는 일본 도쿄 럭셔리 호텔과 현지 대형 외식 그룹 총괄 셰프를 지낸 아베 고이치가 1999년부터 지금까지 총괄하고 있다.독특한 것은 카페 메뉴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 했다’는 듯 연어 스테이크, 해장 짬뽕, 매운 해산물 떡볶이와 사누끼 우동 등 한식 일식 양식이 공존한다. 초기에는 파스타, 샌드위치, 샐러드 위주의 종이 1장짜리였던 메뉴판이 지금은 책 한 권이 됐다.여기에는 2세 경영자인 김찰스창한 사장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국제 갤러리 관계자는 “갤러리 레스토랑은 전시 관람의 경험이 미식으로도 이어지는 곳”이라며 “이런 점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대중적인 메뉴도 함께 준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해장 짬뽕은 아베 셰프가 가끔 갤러리 직원들과 나눠 먹던 음식이 김 사장의 추천으로 정식 메뉴가 됐다.이 관계자는 “김 사장이 지금은 갤러리 운영 전반에 관여하지만, 처음에는 레스토랑, 카페 경영부터 참여했다”며 “지금도 새로운 메뉴 개발은 물론 테이스팅까지 관여한다”고 했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과 연계해 갤러리들이 야간에 문을 연 ‘삼청 나잇’ 행사 때도 VIP뿐 아니라 일반인에 개방한 데 김 사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미술인들, 미식에도 진심국제갤러리의 더 레스토랑이 처음 문을 연 1999년에는 ‘갤러리에서 무슨 식당이냐’며 비판을 받았다. 당시 이현숙 회장은 갤러리 비즈니스에 식사와 미팅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IMF 직후임에도 과감하게 레스토랑 오픈을 결정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시 관람 문화가 확산하면서 미술관에서도 식음료 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기고, 소셜 미디어에서도 주목받는다.전시를 관람하는 큐레이터, 작가 등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전시와 함께 인근 맛집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우뚜기(@oottoogi)가 인기다. 6만7000명이 팔로우하는 이 계정을 운영하는 A씨는 “비엔날레와 대형 전시처럼 실제로 많이 움직이며 보는 전시도 있고, 작은 전시라도 보는 데 마음과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며 “그러면 허기가 지기에 자연스레 먹을 만한 곳을 찾게 된다”고 했다.호암미술관은 불교 미술 기획전이 열리는 3월부터 6월까지 태극당과 협업해 팝업 카페를 열었다. 팝업 카페를 기획한 이정진 삼성문화재단 대외협력실장은 “고미술 전시에 맞춰 나름의 역사와 창의적인 정체성을 갖춘 곳을 중심으로 물색했고 ‘극락 라떼’, ‘연꽃 에이드’ 등 한정 메뉴 반응이 좋았다”며 “전시 관람객의 30%가 카페를 함께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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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두 갤러리, 젊은 작가 소개 힘 모았다

    “글로벌 아트페어와 여러 파티가 열리는 한국 미술 현장이 일본보다 더 활기차다고 느꼈어요. 또 일본에서 K팝 등 한국에 관심이 많아 한국 작가와 디자이너도 소개할 생각입니다.” 13일 서울 용산구 갤러리 상히읗에서 만난 야노 앤 캄&펑크 갤러리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캄&펑크 갤러리는 이날 상히읗에서 일본 작가 나리타 히카루, 오카다 슌의 2인전 ‘대안적 존재: 내 이웃이 보는 풍경’을 열었다. 19일에는 캄&펑크 갤러리에서 한국 작가 이승희, 추수의 2인전 ‘대안적 존재: 모자만 아는 일’이 개막한다. 두 갤러리는 각 나라의 작가를 상대 갤러리에 소개하는 교환 프로그램을 열기로 했다. 지혜진 상히읗 대표는 “지난해 야노 씨가 프리즈 서울을 찾아 만나게 됐고 젊은 작가를 서로 소개하자는 공감대가 있어 교류 전시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야노 프로듀서는 “한국의 여러 갤러리에서 일본 작가 개인전이 열리고, 오카자키 겐지로 같은 원로 작가도 소개돼 놀랐다”고 했다. 상히읗에서 전시되는 두 일본 작가는 애니메이션이나 장난감의 캐릭터, 컴퓨터의 오류 화면에서 이미지를 가져와 작품을 만든다. 나리타는 인공 대리석 위에 조각으로, 오카다는 캔버스에 두껍게 올린 물감으로 표현한다. 이미지는 온라인에서 가져왔지만 결과물은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손맛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승희는 동물을 신비로운 존재로 표현한 회화와 ‘개도사’ 조각 연작을 선보인다. 추수는 2021년 인공지능 음악 회사의 제안으로 만든 버추얼 인플루언서 ‘에이미’를 소재로 한 연작을 소개한다. 20일에는 일본의 유명 가상 인플루언서인 ‘이마’를 만든 제작사 Aww의 프로듀서 사라 주스토와 추수 작가의 아티스트 토크도 연다. 두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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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들려서 단단한 예술가의 일상 [영감 한 스푼]

    미술관을 자주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곳에 걸린 작품은 어딘가 움츠러들고 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작품의 작가를 직접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조심스럽고,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죠. 그런 예술가들의 솔직한 일상은 어떨까요?취재 현장에서 작가 본인은 물론 큐레이터, 혹은 과거 작가와 일했던 스튜디오 관계자나 지인을 만나면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곤 합니다.다른 모든 사람처럼 고군분투하며 때론 초라하기까지 한 일상을 알면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꿋꿋하게 버틴다사실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동시대에는 소수의 사람만 가치를 알아봅니다. 이에 예술가는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직감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야할 때가 있는데요.한국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팝아트 화가 제임스 로젠퀴스트(1933~2017)의 친구이자 재단 이사인 존 코벳을 만났습니다.로젠퀴스트는 앤디 워홀과 달리 빌보드 화가 출신으로 그림에 집중하고 상징과 은유를 활용해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표현이 없어 덜 주목받았습니다.이런 가운데 최근 ‘팝아트’라는 타이틀보다 회화 자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는데요. 코벳은 그런 시대 변화에 관한 로젠퀴스트의이야기를 전했습니다.“어느 날 제임스가 1950, 1960년대 미술 잡지 한 더미를 가져와 책상에 턱 놓았어요. 그 잡지들을 한 장씩 넘기며 보이는 예술가마다 손가락으로 가리켰죠.그러면서 “처음 보는 작가”, “이 사람도 몰라”, “피카소는 알지”, “이 작가도 처음”, “모르는 작가”라며 몇 권을 계속 넘기더군요.미디어에는 수많은 작가가 언급되지만 그중 살아남는 건 일부라는 이야기죠.”로젠퀴스트는 끊임없이 변하는 동시대의 반응에 흔들리지 말고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충실하면 언젠가는 때를 만나 빛을 볼 날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그의 말대로 최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대형 작품이 새롭게 소장되며 미국의 중요한 작가로 재평가를 받습니다.● 생각만큼 화려하지 않다‘노마디즘 예술가’로 불리는 김주영 작가는 최근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월요살롱’에서 1980년대에 교수직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났을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운동화와 가방만 들고 떠난 김 작가는 파리 대학에 등록하고, 그곳에서 그림 그리기 방법론을 떠나 자유로운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의에 감명받습니다.포스트모더니즘을 공부하고 싶어 무작정 찾아가 수업을 듣게 해달라 졸랐던 조그마한 철학 교수는 질 들뢰즈.동양에서 온 학생이 간절해 보였는지 들뢰즈는 그를 받아주었고,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 했던 작가는 들리는 단어를 받아 적고 나중에 책에서 관련내용을 찾아보며 적응해 나갔습니다.작업실은 재건축으로 철거가 예정된 빈 건물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나누어 썼죠. 그래도 한국에선 검은색을 즐겨 쓰는 그녀의 작품을 ‘어둡고 부정적’이라고만 했는데, 프랑스 미술계의 사뭇 다른 반응과 수상, 레지던시 입주 등 성과에 공부와 작업을 이어갔습니다.그러다 귀국하니 너무나 캐주얼한 자신의 복장과 달리 프랑스 유학 간 친구를 만난다고 귀부인처럼 꾸미고 온 친구들 앞에서 ‘예술가의 현실과 일반적 삶의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라는 고민이 들었다고 합니다.● 초라할만큼 파고든다우리의 상상보다 예술가의 삶은 덜 우아하고 때로는 초라하기까지 합니다.한국을 찾은 프랜시스 모리스 테이트 모던 명예관장은 루이스 부르주아가 “함께 일하기에는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들지 않는 말을 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가 잠시 뒤엔 한없이 다정한,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었다고요.그런 부르주아는 언제나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트라우마와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작업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모리스는 “부르주아가 예술 작업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하려 했지만, (좋은 작품을 위해서) 그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고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집중하며 보통 사람이라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워서 외면할 문제들을 훌륭한 작가들은 깊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죠.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앤디 워홀 다이어리’에도 워홀의 초라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동유럽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던 워홀은 늘 앵글로색슨백인(WASP)처럼 될 수 없다는 데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습니다.“나는 너무 이상하게 생겨서 어디에 낄 수 없고 이를 바꿀 수도 없다”는 내용이 일기에도 자주 나옵니다.자본주의 사회가 주는 콤플렉스와 판타지를 깊이 파고든 결과물이 워홀의 예술인 것이죠. 그런 워홀도 자신이 좋아하고 아꼈던 젊은 작가 장미셸바스키아가 흑인으로서 받는 차별의 시선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습니다.이렇게 예술가들은 저마다 가진 현실의 문제와 그것이 주는 불안을 끌어안고 거기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초라함, 불안, 허무를 정면으로 파고들어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좋은 예술 작품이 관객을 위로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여기에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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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가벼운 듯 뼈 있는 삶의 단상

    옳고 그름, 내 편과 네 편, 흑과 백을 분명히 가르면 세상사는 편해질 것 같지만 그 경계는 언제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면 그 사이의 무언가가 삐져나와 ‘정말 그게 맞아?’라고 물으며 판을 흔들곤 하는데, 저자는 이런 판을 흔드는 말을 ‘드립’이라고 규정한다. 드립은 인터넷에서 흔히 헛소리나 딴소리 같지만, 뼈가 있는 말을 의미하는 데 사용됐던 용어다. 저자는 이런 드립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인생이 농담은 아니다. 누구나 넘어지면 아프고, 살갗이 찢어지면 피가 난다.…생존에 관한 한 인간은 맷돌처럼 진지하다. 그러나 인간은 끝내 진지하기만 할 수는 없다.…삶은 종종 부조리와 경이를 간직한 모호한 현상이므로, 때로는 구름을 술잔에 담듯 삶을 담아야 한다. 드립은 바로 언어로 된 그 술잔이다.” 서문이 끝나면 저자가 일기, 메모, 웹사이트를 통해 남겼던 짧은 글들이 펼쳐진다. 약 1500개가 넘는 문장을 365편으로 추리고 1부 ‘마음이 머문 곳’, 2부 ‘머리가 머문 곳’, 3부 ‘감각이 머문 곳’으로 나눴다. 각각 인생, 배움, 예술에 대한 문장들이다. 그 문장들은 “잘 먹고 플랭크를 하니 배로 가던 살들이 길을 잃고 온몸에서 방황하는 것 같다”며 피식 웃음을 짓게 하다가도, “인간은 필멸자다. 인생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우아한 패배다”라며 삶의 깊은 곳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어릴 적 글짓기 숙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던 아끼던 제자가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며 마지막 연락을 전해 온 이야기, 북토크를 하며 느낀 감정 등 일상 속 단상도 있다. 만화 ‘슬램덩크’, 영화 ‘패터슨’이나 살바도르 달리, 카라바조,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생각도 담았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문장들은 맷돌 같은 진지함과 구름 같은 허무함을 오가는 기술인 듯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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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 영향에 추상화가로… 그의 눈에 비친 전쟁은

    “아버지와 시골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바닥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곤 하셨어요. 제겐 일상이었는데 돌이켜 보니 그렇게 하는 사람은 우리 아버지뿐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올리비에 드브레(1920∼1999)의 아들 파트리스의 기억이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드브레의 개인전 ‘올리비에 드브레: 마인드스케이프’ 개막을 맞아 9일 미술관을 찾았다. 전시에선 프랑스 투르의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CCC OD) 소장품과 드브레의 자녀들이 소장한 회화, 드로잉 등 70여 점을 선보인다. 드브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추상 회화가 많이 그려졌을 때 서정적인 추상으로 사랑받은 작가다. 17세에는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서 건축 공부를 했는데, 파블로 피카소와 친분을 쌓게 되며 회화에 집중했다. 전시장에서는 초기부터 1990년대까지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전시장에서 보이는 1940년대 흑백 드로잉들은 감각적인 선과 초현실주의적 표현에서 피카소의 영향이 드러난다. 특히 이 시기 드브레는 전쟁 때문에 투렌 지방에서 홀로 지냈다. ‘살인자, 죽은 자와 그의 영혼’(1946년), ‘거울 속의 검은 추상화’(1946년) 같은 작품은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잔인함, 그로 인한 공포를 고발한다. 드브레의 형 미셸 드브레는 이 무렵 샤를 드골과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는데, 이후 드골 정부 총리로 임명된다. 파트리스는 “저의 증조부도 19세기 풍경화와 인물을 그린 화가였고, 할아버지는 국내외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였다”며 “저도 의사지만 늘 그림을 열심히 그렸던 아버지 덕분에 회화에 심취했다”고 회고했다. 전쟁이 끝나고 드브레는 서예처럼 선으로 인간을 표현한 ‘기호 인물’ 연작부터 풍경에서 느낀 감정을 담은 ‘폭풍우 치는 루아르강의 진보라와 흰색’(1981년) 등 추상 회화로 더 나아간다. 특히 프랑스 투르 지역 루아르 강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 유명하다. 길이가 3m에 달하는 대형 회화 작품 3점은 완전히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천장에 매달려 전시돼 눈길을 끈다. 드브레가 무대 미술과 의상 디자인을 맡아 1997년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초연한 공연 ‘사인’ 영상도 마지막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한 작가는 한국도 여러 번 찾았으며, 에콜 데 보자르 교수를 지내 파리로 유학 온 한국인 제자도 여럿 있었다. 파트리스는 “아버지가 한국의 푸른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풍경과 한글, 기호에 흥미를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10월 20일까지. 수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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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경과 환상’ 사이를 가로지른 균형

    칠레 출신으로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예술가 파토 보시치의 개인전 ‘마술적 균형: 표면 아래에 존재하는 것, 꿈의 풍경과 영혼의 상징적 지형을 가로질러’가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18세에 고향 칠레를 떠나 혼자 스위스 독일 헝가리 등 유럽 전역을 여행하던 작가는 런던에 정착하고 내셔널갤러리와 영국박물관을 오가며 다양한 시대와 지역의 그림과 유물을 관찰하고 그렸다. 그 결과 그의 그림에서는 대도시 런던의 풍경과 환상 속 세계가 결합한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그린 회화 19점, 드로잉 40점이 소개된다. 1층 전시실에서는 북런던 화가의 작업실에서 만들어진 ‘탑의 마법’ ‘마법적 균형’을 볼 수 있는데 붉은 테이블 위로 솟아난 탑, 그 위에 가지런히 놓인 굴 껍데기,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가 작가의 상상 속 세계를 가늠하게 한다. 작가가 미술관에서 아시리아, 그리스,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유물 소장품과 고전 회화를 감상하며 영감을 얻은 과정은 3층에 전시된 드로잉을 통해 볼 수 있다. 작가는 유물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 마모되거나 부서진 흔적에 매료돼 그것을 연필, 잉크, 와인 등의 재료를 사용해 드로잉으로 표현했다. 8월 3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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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들려서 단단한 예술가의 일상[김민의 영감 한 스푼]

    미술관을 자주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곳에 걸린 작품은 어딘가 움츠러들고 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작품의 작가를 직접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조심스럽고,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죠. 그런 예술가들의 솔직한 일상은 어떨까요? 취재 현장에서 작가 본인은 물론 큐레이터, 혹은 과거 작가와 일했던 스튜디오 관계자나 지인을 만나면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곤 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고군분투하며 때론 초라하기까지 한 일상을 알면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꿋꿋하게 버틴다 사실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동시대에는 소수의 사람만 가치를 알아봅니다. 이에 예술가는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직감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있는데요. 한국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팝아트 화가 제임스 로젠퀴스트(1933∼2017)의 친구이자 재단 이사인 존 코벳을 만났습니다. 로젠퀴스트는 앤디 워홀과 달리 빌보드 화가 출신으로 그림에 집중하고 상징과 은유를 활용해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표현이 없어 덜 주목받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팝아트’라는 타이틀보다 회화 자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는데요. 코벳은 그런 시대 변화에 관한 로젠퀴스트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어느 날 제임스가 1950, 1960년대 미술 잡지 한 더미를 가져와 책상에 턱 놓았어요. 그 잡지들을 한 장씩 넘기며 보이는 예술가마다 손가락으로 가리켰죠. 그러면서 “처음 보는 작가”, “이 사람도 몰라”, “피카소는 알지”, “이 작가도 처음”, “모르는 작가”라며 몇 권을 계속 넘기더군요. 미디어에는 수많은 작가가 언급되지만 그중 살아남는 건 일부라는 이야기죠.” 로젠퀴스트는 끊임없이 변하는 동시대의 반응에 흔들리지 말고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충실하면 언젠가는 때를 만나 빛을 볼 날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최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대형 작품이 새롭게 소장되며 미국의 중요한 작가로 재평가를 받습니다.생각만큼 화려하지 않다 ‘노마디즘 예술가’로 불리는 김주영 작가는 최근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월요살롱’에서 1980년대에 교수직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났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운동화와 가방만 들고 떠난 김 작가는 파리 대학에 등록하고, 그곳에서 그림 그리기 방법론을 떠나 자유로운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의에 감명받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공부하고 싶어 무작정 찾아가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졸랐던 조그마한 철학 교수는 질 들뢰즈. 동양에서 온 학생이 간절해 보였는지 들뢰즈는 그를 받아주었고,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 했던 작가는 들리는 단어를 받아 적고 나중에 책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며 적응해 나갔습니다. 작업실은 재건축으로 철거가 예정된 빈 건물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나누어 썼죠. 그래도 한국에선 검은색을 즐겨 쓰는 그녀의 작품을 ‘어둡고 부정적’이라고만 했는데, 프랑스 미술계의 사뭇 다른 반응과 수상, 레지던시 입주 등 성과에 공부와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귀국하니 너무나 캐주얼한 자신의 복장과 달리 프랑스 유학 간 친구를 만난다고 귀부인처럼 꾸미고 온 친구들 앞에서 ‘예술가의 현실과 일반적 삶의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라는 고민이 들었다고 합니다.초라할 만큼 파고든다 우리의 상상보다 예술가의 삶은 덜 우아하고 때로는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한국을 찾은 프랜시스 모리스 테이트 모던 명예관장은 루이스 부르주아가 “함께 일하기에는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들지 않는 말을 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가 잠시 뒤엔 한없이 다정한,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었다고요. 그런 부르주아는 언제나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트라우마와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작업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모리스는 “부르주아가 예술 작업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하려 했지만, (좋은 작품을 위해서) 그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집중하며 보통 사람이라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워서 외면할 문제들을 훌륭한 작가들은 깊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앤디 워홀 다이어리’에도 워홀의 초라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동유럽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던 워홀은 늘 앵글로색슨 백인(WASP)처럼 될 수 없다는 데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 이상하게 생겨서 어디에 낄 수 없고 이를 바꿀 수도 없다”는 내용이 일기에도 자주 나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주는 콤플렉스와 판타지를 깊이 파고든 결과물이 워홀의 예술인 것이죠. 그런 워홀도 자신이 좋아하고 아꼈던 젊은 작가 장미셸 바스키아가 흑인으로서 받는 차별의 시선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이렇게 예술가들은 저마다 가진 현실의 문제와 그것이 주는 불안을 끌어안고 거기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초라함, 불안, 허무를 정면으로 파고들어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좋은 예술 작품이 관객을 위로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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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어지고 균열된 일상의 조각들을 작품으로

    가전제품, 파이프 등 일상 속 오브제를 조각 작품으로 변형하거나, 도심 한복판의 흙을 가져다 굽고, 살덩어리 같은 실리콘 조각으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서울 강남구 지갤러리는 문이삭, 최고은, 현정윤 등 조각가 3명이 참여하는 그룹전 ‘엉뚱한 여백(Whimsical Whitespace·사진)’을 열고 있다. 이 전시는 프랑스의 문학가인 조르주 페레크의 ‘공간의 종류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페레크는 삶의 공간에는 늘 어딘가 부서지고 휘어지는 균열과 여백이 있는데 우리는 이런 부분을 막연하게만 느낀다고 쓴다. 전시는 이렇게 일상에서 쉽게 간과하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물과 그 주변의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모았다. 문이삭은 인왕산이나 한강 등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공간의 흙을 가마에 구워 조각을 만들었다. 윤슬의 느낌을 담고 싶어 강변의 흙을 구웠는데, 그 속에 보이지 않던 유리가 녹아 반짝이는 효과를 낸다. 최고은은 건물에 사용되는 규격화된 파이프를 자르고 구부려 벽면에 걸었다. 사냥한 동물의 머리를 전시하는 ‘헌팅 트로피’를 닮았다. 현정윤의 실리콘 조각은 선베드와 목욕탕 의자 위에 놓여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생물체처럼 보인다. 최고은은 프리즈 서울 제2회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돼 9월 열리는 프리즈 서울에서 신작을 공개할 예정이다. 전시는 2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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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적과 실’로 엮은… 亞 여성작가 12인

    “스스로에게 정직할 것. 그리고 그 결과물을 지지해 줄 사람들을 찾아 나서며 실험과 소통을 계속할 것.” 세라 스즈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부관장은 올 4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작가들에게 조언해 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세계 미술 최전선의 큐레이터들은 과거 백인 남성 중심의 미술사를 넘어 여성, 유색인, 비서구권 작가들의 독창적인 표현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런 흐름과 맞물려 독일계 갤러리 쾨닉 서울이 아시아 여성 12인의 단체전 ‘흔적과 실’을 연다. 전시는 일본 출신 아야코 로카쿠, 지하루 시오타 같은 국내 미술 시장의 인기 작가부터 시야오 왕(중국), 하디에 샤피(이란), 리나 바네르지(인도), 오돈치메그 다바도르지(몽골) 등 여러 국적과 연령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목탄, 아크릴, 캔버스, 종이 등 표현 매체도 다양하다. 최근 부산현대미술관, 북서울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등 여러 그룹전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신민 작가의 조각도 소개된다. 맥도널드에서 쓰는 냉동 감자튀김 포대를 재료로 만들어 화가 난 듯, 익살스러운 듯 표정을 짓는 조각 ‘세미(世美)’ 연작과 드로잉이 전시됐다. 작가가 서비스 업계에서 일하며 느낀 희로애락을 정직하고 단단하게 그려내 눈길을 끈다. 한국계 멕시코 작가인 모니카 킴 가르자의 여러 회화는 시선의 대상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먹고 마시고 취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린다. 리나 바네르지의 종이 콜라주 작품 ‘수많은 목소리’(2021년)는 인도의 전통적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시각 언어를 사용했다. 하디에 샤피 작가의 ‘흰 스파이크’는 손으로 직접 쓰고 인쇄한 페르시아어 글귀를 주름진 종이 속에 숨겨 두었다. 전시는 2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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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원-덜크-빌스… 세계적 그라피티 작가들 신안 섬을 색칠한다

    “저는 부모님을 따라 미술관에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대신 길에서 예술을 발견했고, 덕분에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보는 예술은 제 인생을 바꿨죠.” 5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그라피티 작가 존원은 “바쁜 도심이 아닌 자연과 여유가 있는 신안에서 작품이 어떻게 보일지 기대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를 비롯해 스페인 작가 덜크, 포르투갈 작가 빌스 등이 전남 신안군 압해도의 ‘그라피티 아일랜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덜크는 압해읍사무소 벽면에 달랑게, 저어새 등 신안 갯벌의 동물을 담은 그라피티를 이날 공개했으며, 존원은 6일부터 지역 공공임대 주택 벽면에 작업을 시작했다.● 곰리, 터렐 참여 ‘1도 1뮤지엄’ ‘그라피티 아일랜드’는 신안군에서 추진하는 ‘1도 1뮤지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신안군에는 섬 1025개(유인도 76개, 무인도 959개)가 있는데, 이 중 15개 섬에 미술관 26곳을 건립한다. 15곳은 오래된 미술관을 활용하거나 건립을 완료했고, 11곳은 추진 중이다. 압해도는 육지에서 신안의 여러 섬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이곳에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라피티를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1도 1뮤지엄’에는 앤터니 곰리,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등 해외 유명 작가가 참여한다. 터렐은 노대도에, 엘리아손은 도초도 대지의 미술관 야외공간에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신안군에 따르면 엘리아손의 작품은 지면 아래로 반원형 모양의 굴을 파고 바닥 면에 빛을 반사하는 1100여 개의 조각을 채워 태양 빛에 따라 지면 위로 다른 반영이 보이는 형태다. 엘리아손은 과학기술을 활용한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선보인 인공 태양이 가장 유명하다. 비금도 해변에는 곰리의 작품이 들어선다. 그는 인체 형태를 단순화한 조각을 야외 공간에 놓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비금도에 설치될 작품은 가로 110m, 높이 25m, 폭 35m에 달해 아시아 최대 규모다. 완성된 프로젝트로는 암태도의 서용선 미술관이 눈길을 끈다. 일제강점기 친일 지주에 맞선 암태도 소작쟁의 운동을 작가가 연구하고 그 결과를 오래된 농협 창고 벽면에 그렸다. 이곳 전시는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후속 전시로 이어졌다.● 인구소멸 위험 지역의 승부수 신안군이 다양한 예술 작품을 끌어들이는 데 적극적인 건 사정이 있다. 신안군은 올 3월 기준 인구 3만8191명 중 고령자가 40%로,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이다. 재정 자립도는 전국 226개 지자체 중 221위(2023년). 박우량 신안군수는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려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며 “섬에서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자긍심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예술을 통한 관광 활성화로 젊은 세대의 유입을 늘리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것. 다만, 지역 관광지 수준을 넘어서려면 해외 유명 미술가의 알려진 작품을 설치하는 것뿐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독자적인 문화 생태계를 갖추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암태도 소작쟁의 프로젝트’를 맡았던 이승미 행촌문화재단 대표는 “해외 작가 작품은 유럽에서 더 좋은 것을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좋은 작품은 여기서만 볼 수 있다”며 “작가 레지던시 건립, 지역 맥락을 담은 작품 전시 등 한국과 지역 미술계를 활성화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안=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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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구소멸 위험지역의 승부수 ‘1도 1뮤지엄 프로젝트’…지역 관광지 넘어설 수 있을까

    “저는 부모님을 따라 미술관에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대신 길에서 예술을 발견했고, 덕분에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보는 예술은 제 인생을 바꿨죠.”5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그라피티 작가 존원은 “바쁜 도심이 아닌 자연과 여유가 있는 신안에서 작품이 어떻게 보일지 기대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를 비롯해 스페인 작가 덜크, 포르투갈 작가 빌스 등이 전남 신안군 압해도의 ‘그라피티 아일랜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덜크는 압해읍사무소 벽면에 달랑게, 저어새 등 신안 갯벌의 동물을 담은 그라피티를 이날 공개했으며, 존원은 6일부터 지역 공공임대 주택 벽면에 작업을 시작했다.● 곰리, 터렐 참여 ‘1섬 1뮤지엄’‘그라피티 아일랜드’는 신안군에서 추진하는 ‘1도 1뮤지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신안군에는 섬 1025개(유인도 76개, 무인도 959개)가 있는데, 이 중 15개 섬에 미술관 26곳을 건립한다. 15곳은 오래된 미술관을 활용하거나 건립을 완료했고, 11곳은 추진 중이다. 압해도는 육지에서 신안의 여러 섬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이곳에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라피티를 설치한다는 구상이다.‘1도 1뮤지엄’에는 앤터니 곰리,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등 해외 유명 작가가 참여한다. 터렐은 노대도에, 엘리아손은 도초도 대지의 미술관 야외공간에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신안군에 따르면 엘리아손의 작품은 지면 아래로 반원형 모양의 굴을 파고 바닥 면에 빛을 반사하는 1100여 개의 조각을 채워 태양 빛에 따라 지면 위로 다른 반영이 보이는 형태다. 엘리아손은 과학기술을 활용한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선보인 인공 태양이 가장 유명하다.비금도 해변에는 곰리의 작품이 들어선다. 그는 인체 형태를 단순화한 조각을 야외 공간에 놓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비금도에 설치될 작품은 가로 110m, 높이 25m, 폭 35m에 달해 아시아 최대 규모다.완성된 프로젝트로는 암태도의 서용선 미술관이 눈길을 끈다. 일제강점기 친일 지주에 맞선 암태도 소작쟁의 운동을 작가가 연구하고 그 결과를 오래된 농협 창고 벽면에 그렸다. 이곳 전시는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후속 전시로 이어졌다.● 인구소멸 위험 지역의 승부수신안군이 다양한 예술 작품을 끌어들이는 데 적극적인 건 사정이 있다. 신안군은 올 3월 기준 인구 3만8191명 중 고령자가 40%로,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이다. 재정 자립도는 전국 226개 지자체 중 221위(2023년). 박우량 신안군수는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려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며 “섬에서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자긍심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예술을 통한 관광 활성화로 젊은 세대의 유입을 늘리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것. 다만, 지역 관광지 수준을 넘어서려면 해외 유명 미술가의 알려진 작품을 설치하는 것뿐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독자적인 문화 생태계를 갖추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암태도 소작쟁의 프로젝트’를 맡았던 이승미 행촌문화재단 대표는 “해외 작가 작품은 유럽에서 더 좋은 것을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좋은 작품은 여기서만 볼 수 있다”며 “작가 레지던시 건립, 지역 맥락을 담은 작품 전시 등 한국과 지역 미술계를 활성화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신안=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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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모두 삶의 일부이기에

    밀리언셀러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저자로, 에세이 ‘사는 게 뭐라고’와 ‘죽는 게 뭐라고’를 쓴 사노 요코의 글들을 사후에 모았다. 그의 작고 10주기를 맞아 잡지에 실렸거나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원고 등을 담았다. 짧은 동화부터 대학 재학이나 유학 시절 이야기를 쓴 에세이,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 주고받은 연애 편지까지 다양하다. 표제작인 ‘언덕 위의 아줌마’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희곡 작품이다. 1999년 극단 ‘엔’의 어린이 무대에서 상연된 이 작품은 매 순간 기분이 날씨처럼 변덕스럽게 바뀌는 거대한 아줌마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줌마가 장을 보러 등장하면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두려움에 벌벌 떤다. 아줌마가 분노하면 궂은 날씨로 마을이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어서다. 사람들은 그녀를 ‘기분 괴물’이라고 부른다. 주인공인 루루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주며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았다. “오래 산다고 뭔가를 잘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 자신의 마음을 가장 모를 것”이라고 쓴 사노는 “많은 기쁨과 슬픔과 분노를 아이들이 충분히 받아들이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후기에 썼다. 어린이 희곡 ‘언덕 위의 아줌마’와 더불어 동화 ‘제멋대로 곰’ ‘지금이나 내일이나 아까나 옛날이나’ 같은 작품에서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것을 과감히 드러낼 줄 알았던 사노의 매력이 물씬 드러난다. 에세이가 아닌 이야기의 형식을 취해 좀 더 신비로운 감성이 더해졌다. 사노가 1938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중일전쟁을 겪고 가난한 시절을 지나온 삶을, 옷을 매개로 담담히 그린 ‘나의 복장 변천사’는 특유의 문체와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다. 다니카와가 그녀에게 보낸 33가지 질문에 답한 편지는 연인에 대한 애정에 재치를 듬뿍 담은 글이 웃음을 머금게 한다. “원고를 청탁받으면 마구 써대고 인쇄물로 나오면 내던져 두었다”던 사노의 원고는 매장된 금처럼 계속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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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미술사의 가장 미스터리한 그림, ‘시녀들’ [영감 한 스푼]

    최근 몇 년 동안 저는 들라크루아, 티치아노, 틴토레토 같은 작가들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라파엘로나 다빈치의 수학적 그림은 마음의 안정을 주는 반면, 이 작가들은 캔버스 속에 휘몰아치는 움직임이 느껴지거든요.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몸으로 터득한 감각이 펼쳐지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이런 맥락에서 올해 상반기 프라도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뛰어난 색채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화가들부터 루벤스, 안토니 반 다이크 등 감각적 플랑드르 예술, 여기에 아카데미 화풍을 과감하게 깨고 새로운 미술의 문을 연 인상파 화가들의 스승인 스페인 예술가들까지….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을 연구하고 전시하는 큐레이터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먼저 대표작,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관해 프라도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해 온 큐레이터 하비에르 포르투스 페레스와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페레스는 프라도미술관의 중요한 컬렉션 중 하나인 17세기 스페인 미술의 보존과 연구를 담당하는 수석 큐레이터입니다.인상파 화가들의 스승, 벨라스케스19세기의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들은 벨라스케스, 무리요를 현대적 작가라고 느꼈죠. 사실주의 화가인 구스타브 쿠르베는 프라도 미술관을 보려고 스페인으로 여행할 정도였거든요.바르비종 화가인 장 프랑수아 밀레, 영국 스코틀랜드의 화가 데이비드 윌키, 인상파 거장 에두아르 마네도 벨라스케스를 존경했어요.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보기 위해 1846년 프라도를 찾았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서양 미술이라고 하면 보통 르네상스나 인상주의를 많이 떠올리는데 두 시대 사이에도 엄청나게 다양한 미술이 있습니다. 17~18세기 스페인 예술도 그중 하나죠.19세기 프랑스, 미국, 영국의 인상파 화가들은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스승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럽에서 보면 벨라스케스는 19세기에 발견된 화가예요. 그 이전에는 스페인에서만 알려졌습니다.- 19세기에 알려진 계기는 무엇인가요?결정적인 것은 나폴레옹 전쟁(1808)입니다. 이때 많은 프랑스, 영국군을 통해 스페인 예술이 알려졌죠. 전리품으로 일부 작품을 프랑스와 영국으로 가져가기도 했고요.여기에 1819년 프라도 미술관이 개관하며 유럽에서 여행 온 사람들이 벨라스케스, 무리요 등 스페인 거장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전쟁과 미술관 덕분에 스페인 작가들이 유럽에 알려지게 됐군요. 그런데 인상파처럼 일부 예술가들은 스페인 예술에서 ‘여기엔 새로운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으니, 변화하게 된 것이잖아요. 그들은 무엇을 느낀 것일까요?19세기 유럽 예술과 문학은 ‘사실주의’를 주목했는데 이는 17세기 스페인 회화가 이미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19세기의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들은 벨라스케스, 무리요 등을 현대적인 작가라고 느꼈죠.사실주의 화가인 구스타브 쿠르베는 프라도 미술관을 보려고 스페인으로 여행할 정도였거든요. 그는 벨라스케스와 리비에라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바르비종 화가인 장 프랑수아 밀레도 마찬가지였죠.영국 스코틀랜드의 화가 데이비드 윌키, 인상파 거장 에두아르 마네도 벨라스케스를 존경했어요.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보기 위해 1846년 프라도를 찾았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움직임을 포착한 마무리의 대가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은 절대 멈춰 있지 않아요.전부 끊임없이 움직이고 인간의 시각 역시 한 시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이런 눈에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바로 미완성처럼 보이는 터치에요.-벨라스케스의 붓질과 손동작을 직접 보고 감명받은 것이네요?네. 루브르에도 벨라스케스 작품 몇 점은 있었지만, 최고의 작품은 프라도에 있었죠. 마네가 본 것은 대가의 마무리(finishing)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가까이서 보면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선명해지죠.-맞아요. 가까이에서 보면 선과 터치만 있는 것 같아요.이런 표현은 움직임을 묘사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은 절대 멈춰 있지 않아요.전부 끊임없이 움직이고 인간의 시각 역시 한 시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이런 눈에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바로 미완성처럼 보이는 터치에요.-그러니까 선 원근법의 그림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멈춰 있는, 얼어붙은 순간처럼 보이는데 벨라스케스는 대상을 끝까지 그리지 않고 여지를 남겨 두어서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한 스냅숏처럼 보이게 만든 거네요.‘시녀들’은 그런 점에서 그림과 실재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그림이에요. 우선 그림 속 모든 인물이 실제 크기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바닥에서 가까운 낮은 위치에 걸려 있었는데요. 그래서 방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어요.또 하나는 정확한 공간 구성이에요. 르네상스 시대 선 원근법뿐 아니라 공기 원근법, 빛을 사용하고 또 인물들이 저마다의 공간을 점유하면서 깊이감을 만들고 있습니다.-인물을 통해 공간을 만드는 것은 그림 속 인물들의 배치를 통해 여러 겹의 레이어를 만든다는 이야기인 거죠?네. 모든 인물이 같은 선상이 있지 않아요. 또 커다란 치마를 이용해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어요. 또 인물들이 하고 있는 일도 각각 달라서 동작을 통해 생동감을 불어 넣고 있어요.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그림을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진정한 대가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고, 이 때문에 19세기 화가들이 그를 존경했던 것입니다.무엇을 그린 걸까? 수많은 해석을 낳은 미스터리의 그림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에서 손으로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동원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유럽 전역에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당시 벨라스케스뿐이었어요. 과거엔 없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었거든요.-관람객으로서 이 그림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캔버스의 반대편에 있다는 점이에요. 그림 왼쪽에 벨라스케스가 캔버스를 보고 초상화를 그리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진행 중인 그림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에요.그렇죠. 그런데 벨라스케스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초상화라고 하기에는 캔버스가 너무 커요.연구를 통해 확실하게 밝혀진 건 캔버스 맞은편에 왕과 왕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림 속 인물들이 모두 왕과 왕비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이것만이 이 그림에서 드러나는 사건이에요. 나머지는 모두 물음표입니다.‘시녀들’과 같은 그림은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봐야 해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림을 보고 ‘이건 ㅇㅇ를 그린 거다’라고 답을 찾으려고 하죠. 그런데 ‘시녀들’에서 답을 찾는 것은 무의미합니다.이 그림은 여러 가지 질문과 답이 교차하는 아주 복잡한 작품이에요.‘시녀들’을 두고 규칙이나 표현에 대한 얘기를 할 수도 있고, 마르가리타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혹은 공주를 둘러싼 하인들에 대해 집중할 수도 있고요. 또 그런 하인, 즉 궁전 직원의 일원으로서 벨라스케스를 볼 수도 있습니다.-이 그림이 신비로운 또 다른 이유는 엄청난 사이즈에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그렇죠. 벨라스케스가 이 작품을 그릴 때 57세로. 자신이 후대에 기억될 예술가임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그런 역사적 의식을 갖고 후대에 남을 걸작을 만든 것이죠. 또 34년 동안 자신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를 왕이 믿고 후원해 준 결과물이기도 합니다.-이 그림으로 후세에 기억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군요.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에서 손으로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동원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유럽 전역에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당시 벨라스케스뿐이었어요. 과거엔 없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었거든요.-장르나 주제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인가요?주제 면에서 아주 모호한 그림입니다. 초상화 같지만 르네상스 시대 미술 관점으로 보면 역사화로 보이기도 합니다.역사화에서는 작가가 다양한 인물을 배치하며 각 인물의 다른 행동을 보여주는 능력을 증명해야 하거든요.여기서는 해부학뿐 아니라 표현 규칙, 공간 구성을 모두 잘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에서 그 모든 것을 완벽히 보여주고 있어요.초상화는 인물을 보고 모방하는 능력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아카데미 미술에서는 역사화보다는 덜 중요한 장르로 여겨졌어요.그런데 이 그림은 초상화와 역사화 두 가지를 혼합하고 있어요. 이 점에 ‘시녀들’을 이 시대 독보적인 그림으로 만드는 요소입니다.(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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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갤러리에 구멍 뚫어… 빛을 가져오고 싶었죠”

    “갤러리에 구멍을 뚫어 빛을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구멍을 뚫으니 ‘쿵’ 하고 소리가 나서 그 소리를 현판에 담았고요.” 속담이나 ‘트집 잡다’ ‘미주알고주알’ 등 우리말의 뉘앙스를 추상화해 이를 누비 이불에 새긴 작품으로 주목받은 이슬기가 새로운 연작 ‘현판 프로젝트’로 개인전 ‘삼삼’을 연다. 전시가 개막한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이슬기는 가상의 구멍을 통해 전시장에 빛이 스며드는 장면을 상상하며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우선 갤러리 3개 층 벽면에 격자무늬를 그렸다. 전통 기법의 ‘긋기 단청’ 장인과 협업한 것으로 가로세로 선이 모시천의 씨실, 날실을 닮은 ‘모시 단청’이다. 사이사이로는 살구색을 칠해 기울어진 노을이 비추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쿵쿵’ ‘스르륵’ 같은 의성어나 의태어를 새긴 ‘현판 프로젝트’가 걸려 있다. 덕수궁 대한문 현판이 사람만큼 커다랗다는 점을 신기하게 여겨 탄생한 연작이다. 중요한 장소에 상징적 의미를 담는 전통 현판과 달리 작품은 엉뚱한 위치에 의미 없는 글귀를 새겨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밖에 ‘이불 프로젝트’의 신작, 고대 유물 속 여성 신체의 표현에서 영감을 얻은 ‘쿤다리’ 연작 등 30여 점을 볼 수 있다. 다음 달 4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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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 광고판 화가서 팝아트 거장으로… 상징-은유 신세계 창조

    폭이 26m에 달하는 거대한 그림 위에 전투기, 금발 소녀, 핵폭발, 스파게티가 함께 그려졌다. 베트남 전쟁과 소비문화가 폭발한 1960년대 미국을 그린 제임스 로젠퀴스트(1933∼2017·사진)의 대표작 ‘F-111’. 1965년 공개되고 세계적 주목을 받은 이 작품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3개 벽면에 걸쳐 전시 중이다. 팝 아트 대표 작가에서 최근 은유와 상징으로 재조명 받는 로젠퀴스트의 회고전 ‘유니버스’가 서울 종로구 세화미술관에서 5일 개막한다. 한국을 찾은 로젠퀴스트 재단 관계자 존 코벳을 지난달 26일 미술관에서 만났다.● 빌보드 화가에서 팝 아티스트로 생전에 로젠퀴스트는 “브루클린 사탕 가게의 거의 모든 광고판을 내가 그렸다. 자다가도 일어나 위스키병 라벨을 그릴 수 있었다”고 회고록에 썼다. 늘 그림을 그렸던 그는 생계를 위해 빌보드 화가가 됐고 괜찮은 수입을 벌었다. 코벳은 로젠퀴스트가 이 무렵 ‘나머지 그림(leftover painting)’을 그렸다고 했다. “화가는 늘 물감 살 돈이 부족한데, 로젠퀴스트는 거대한 광고판을 그리고 남은 물감으로 자기 작업을 했어요. 빌보드를 그릴 때처럼 분필로 가이드 선을 그리고 광고판의 이미지도 차용했죠.” 그러다 1960년 동료 화가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사망해 충격을 받고 전업 화가가 됐다. 미디어 이미지를 차용한 그의 회화는 곧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셴버그 등과 함께 ‘팝 아트’로 알려졌다. 코벳은 “요즘 K팝처럼 순식간에 주목받았다”고 했다. “하룻밤 사이 무명 화가에서 세계적 작가가 됐죠. 1965, 1966년을 기점으로 일본에서도 팝 아트 전시가 열렸어요. 잭슨 폴록과 윌럼 데 쿠닝의 후대 작가들이 독특한 그림을 그린다는 스토리부터 워홀이 가진 스타성까지 한몫했죠.”● 은유와 상징으로 재조명 그러나 “어느 예술가도 그룹으로 묶이는 걸 좋아하진 않을 것”이라고 코벳은 말했다. 생전 로젠퀴스트도 “워홀은 1964년에 처음 만났고, 리히텐슈타인과도 잘 알지 못했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작업을 했다”고 언급했는데, 최근 그의 작품들은 회화적인 표현이나 은유 상징 등으로 재조명받는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시계 중앙의 공백’ 같은 작품은 상단에는 뜨겁게 녹아내리는 듯한 시계와, 하단에 단단한 연필이 배치된 차가운 이미지가 대조를 이룬다. 상반된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식이다. 코벳은 “로젠퀴스트의 파리 전시를 본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이건 그림이 아니고 시’라고 했는데 정말 멋진 표현”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에 대한 강경 발언으로 논란을 샀던 시카고 시장을 풍자한 작품, 말년 ‘다중 우주’에 관심을 갖고 그린 대형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코벳은 “로젠퀴스트가 80대 할아버지가 되어 ‘다중 우주’ 얘기를 자꾸 했을 땐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가까운 친구였던 양쯔충(양자경)이 얼마 전 다중 우주에 관한 영화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카데미상을 받아 놀랐다”며 웃었다. 전쟁, 정치, 우주까지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밀고 나간’ 것이 로젠퀴스트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는 코벳은 “분필과 사다리를 갖고 르네상스 화가처럼 그렸던 로젠퀴스트의 기법에도 주목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컴퓨터 등 다양한 도구가 있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며 “무엇보다 한국의 젊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9월 29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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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쓰듯 화려한 색채를 겹겹이 나열… “아프고 나니 걱정서 자유로워졌죠”

    캔버스 위로 색색의 물감이 커다란 점으로 찍혀 있다. 배경이 불투명하게 비치는 물감은 붓이 움직인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관람객은 캔버스 앞에 서 있었을 작가의 모습을 그려본다. 붉은 물감은 위에서 아래로, 푸른 물감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초록 물감은 아주 가볍게 터치하고…. 일본의 미술가이자 비평가, 건축가인 오카자키 겐지로(68·사진)의 신작 회화가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전시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개막한 오카자키의 개인전 제목은 ‘형태의 지금과 이후(이금이후·而今而後)’. 회화 및 조각 작품 20여 점을 페이스갤러리 서울 2, 3층 공간에 걸쳐 볼 수 있다. 이 중 시를 쓰듯 화려한 색채를 겹겹이 나열한 추상 회화에 대해 오카자키는 “뇌경색 투병 후 스스로에게 더 자유로워진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2년 전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었을 때 저는 ‘운이 좋게도’ 뇌경색에 걸렸습니다. 오른쪽 팔다리를 못 쓰게 됐지만, 이때 논어의 ‘이금이후’를 생각했지요. 평생 몸을 다칠까 전전긍긍하며 살았는데 죽을 때가 되니 그간 다치지 않음을 깨닫고 오히려 자유로워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재활 치료를 받고 이제는 이전의 15배 속도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생각하면 걱정이 생겨난다’고 한 그는 캔버스 위에 각기 다른 자신만의 시간을 펼쳐 놓는다. 한 작품은 여러 개의 패널로 나뉘고, 그 안의 형태들도 그려진 시간이 모두 다르다. 어떤 구역은 몇 주 만에, 다른 구역은 몇 달 만에 그렸다. 그렇게 캔버스와 맞닿은 순간 자체에 집중한 물감 흔적들이 있는 각 패널을 나중에는 작가가 원하는 순서로 조합한다. 작가는 “패널마다 그 크기에 맞는 길이의 글이 있다”고 했다. 패널과 연관된 글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제목이다. ‘완전히 그려진 원은 시작점으로 돌아가고 곡선은 멈춘다. 노을을 맞으며 새들은 날개를 접고, 인간은 할 말을 잃는다. 지구를 밝힌 태양은 사라지지만(…)’처럼 4개의 패널로 구성된 대형 캔버스 회화는 9개의 문장으로 구성된다. 작품의 제목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붙여진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오카자키는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재구성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이는 작품 활동뿐 아니라 ‘임팩트로서의 추상’(Abstract Art as Impact) 같은 평론과 미술사 연구 활동에도 바탕을 두고 있다. 2018년 출간한 ‘임팩트로서의 추상’은 2019년 일본 문부과학상을 받았으며, 나와 고헤이 등 일본 인기 작가가 스승으로 꼽았다. 다음 달 1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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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바늘로 수놓은 자수의 매혹… “반복노동 고통만큼 큰 만족감”

    물감과 붓으로 그린 회화부터 통조림 수프, 바나나와 덕트 테이프는 물론 인공지능(AI)이 만든 이미지까지. ‘이것도 미술관에 넣을 수 있을까?’ 싶은 것들이 현대 미술관의 문턱을 넘나드는 가운데 최근에는 실과 바늘로 만든 자수와 태피스트리를 조명하는 움직임이 국내외로 일고 있다. 미국 워싱턴 내셔널갤러리는 20세기 초반부터 현대까지 돌아보는 ‘짜인(Woven) 역사: 직물과 모던 추상’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안데스 문명과 현대 미국 작가를 조명하는 ‘고대와 모더니즘 예술의 직조 추상’전을 열고 있다. 영국 런던 공공미술관인 바비컨센터도 ‘풀기: 예술에서 텍스타일의 파워와 정치’전을 선보인다. 현대미술관은 왜 실과 바늘에 주목할까?● 잊힌 역사의 재조명 섬유를 소재로 한 예술은 여성 예술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졌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순수 예술 대접을 받지 못했던 텍스타일을 20세기 초 여성 예술가들이 적극 활용했고, 1960, 70년대에는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이 저항의 표현으로 생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도 여성 예술가 재조명 과정에서 탄생했다.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2017년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를 준비하며 일제강점기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조시비)에 자수를 배우러 간 한국 여성이 많았음을 알게 됐고 여기서 연구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는 학생, 장인이 만든 자수는 물론 추상 등 새로운 표현을 시도한 흔적을 만날 수 있다. 1992년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미술계에서 자취를 감춘 송정인 작가가 그중 하나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권복혜를 사사한 그는 철망, 마대, 그물 등 낯선 재료와 파격적 기법을 사용해 눈길을 끈다. 1967년 ‘새 시대’에 기고한 글에서는 “미술과 자수는 사용하는 재료가 다를 뿐 뚜렷한 주제 의식과 시공에 대한 감각, 테크닉을 지닌다면 예술품이 될 수 있다”고 썼다. 서울 강남구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에서 개인전 ‘착륙’을 여는 셰일라 힉스도 1960년대부터 활동했지만 최근에야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착륙’전은 커다란 섬유 덩어리를 쌓거나 다채로운 색감의 덩굴이 흘러내리는 모습 등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힉스의 ‘착륙’(2014년)과 ‘벽 속의 또 다른 틈’(2016년) 등을 전시한다.● ‘반복 노동’의 매혹 실과 천이 주는 따뜻한 느낌, 만져보고 싶은 질감, 독특한 작업 방식 등은 현대 미술가들에게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 근현대 자수’전에 삼베에 금실로 자수를 놓은 작품 ‘무제’ 등을 전시한 이강승 작가는 “처음에 소외된 장르이자 반복적 노동을 한다는 자수의 개념적 의미를 가져오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다 ‘반복 노동’의 매혹에 빠졌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자수를 놓는) 노동의 고통만큼 작업이 완성됐을 때 만족감도 크다”며 “취미로 십자수를 해본 분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복적 바느질을 하는 동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이 중요했다”며 “(반복 노동 속에서 깊은 생각이 나온다는 점에서) 개념 미술과 공예는 상반된 개념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자수에서 사용되는 모양을 회화로 그린 써니 킴의 ‘Underworld’(1999년), 자수를 재료로 ‘자아 탐구’를 그린 최환성의 ‘불가분의 유동’(2023년) 등도 선보인다. ‘한국 근현대 자수’전은 8월 4일까지. ‘착륙’전은 9월 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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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그래픽노블로 만나는 ‘인간 김정은’

    만화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미국 하비상을 수상한 그래픽노블 작가가 이번엔 ‘인간 김정은’을 소재로 삼았다. 프랑스인 남편과 인천 강화도에 살고 있는 작가의 일상에서 책은 시작한다. 전쟁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오랜 시간 분단이 이어졌기에 무감각한 한국인들과 달리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했던 작가는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을 느낀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관련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나눈 대화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북한 전문기자부터 연구원은 물론 김정은의 배다른 형인 김정남의 프랑스 친구,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작가는 만난다. 그 과정에서 듣게 된 김정은의 어린 시절부터 유학 시절, 김정일의 사망과 숙청까지 인터뷰의 형태로 전한다. 책의 제목이 ‘내 친구 김정은’인 것은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시절 친구 JM이라는 인물이 그를 그렇게 부른 것에서 따왔다. 김정은이 스위스에서는 때로 경호원 없이 김여정과 함께 학교를 다니기도 했으며, 농구를 좋아했다는 전언.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이 주인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인물로 쓰는 ‘영화감독’ 같은 스타일이라면, 김정은은 그때그때 맞는 선수를 교체하며 활용하는 농구 감독 같은 스타일이라는 비유도 나온다. 김정은에 관한 이야기 외에도 작가가 살고 있는 집과 주변 자연환경의 모습, 도시 풍경에 대한 묘사가 제3자의 시각에서 한국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런 연장선에서 김정은도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추는 모습으로 그려지거나, 탈북민의 시선에서 북한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담담하게 묘사한다. 김정은이 권력을 공고히 하려고 친인척을 숙청하고 이복형을 암살하는 과정도 그렸다. 또 북한 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감시와 처벌이 일상화되어 있는지도 북한에 직접 살았던 사람들의 경험으로 전한다. 막바지에는 6·25전쟁 난민인 ‘페피노’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전쟁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 제시하며 경각심을 일깨운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풀’, 이산가족을 그린 ‘기다림’에 이어 분단 문제와 평화를 다루고자 한 것이 작가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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