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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중정처럼 만들어진 야외공간 ‘전시마당’에 새로운 정원이 생겼다. 이 정원에는 미술관 근처 인왕산에서 영감을 얻어 언덕과 자연석이 배치됐고, 사이사이에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과 야생화 등 한국 고유의 자생식물을 심었다. 미술관 밖 자연풍경을 조그맣게 옮겨 온 이 정원은 1세대 조경가 정영선(83)의 작품(사진)이다. 그의 50여 년 조경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렸다. 1980년 여성 최초로 국토개발기술사(조경) 자격을 얻은 정영선은 예술의전당, 선유도공원, 서울식물원 등 공공 조경은 물론이고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남양성모성지 같은 사설공간 조경 설계까지 최근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60여 개 프로젝트에 대한 설계도면, 스케치, 모형 등 관련 기록 500여 점을 살펴볼 수 있다. 기록들은 주제와 성격에 따라 7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 선조로부터 향유된 우리 고유 식재와 공간 구성을 도입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정원의 재발견’ 부분이 흥미롭다. 호암미술관에 조성된 정원 ‘희원’에 관한 기록도 볼 수 있다. 희원에는 미술관이 소장한 신라시대 석탑, 불상 등이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사군자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희원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정영선은 전통 정원의 요소를 자신의 작업에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이 밖에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광화문광장’(2009년) ‘여의도샛강생태공원’(1997, 2007년) ‘남해 사우스케이프 암각 동산’(2018년)이 만들어진 과정도 볼 수 있다. 9월 22일까지. 2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뉴욕을 찾는 사람에게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클로드 모네의 ‘수련’ 등 근대 유럽, 북미의 명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MoMA의 화려한 전시실 뒤 큐레이터들의 집무실에서는 북미와 유럽을 벗어나 새로운 예술을 발굴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9일 한국을 찾은 세라 스즈키 MoMA 부관장은 동아일보를 만나 “MoMA는 다양한 이야기를 찾고 있다”며 “북미와 유럽 밖 전 세계 예술가들이 어떤 생각과 아이디어를 가졌는지, 그것을 어떤 새로운 형태로 표현하는지 발굴하고 서로 다른 작품들이 대화를 나누도록 미술관을 구성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MoMA가 이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국 미술을 연구할 큐레이터를 파견한다. 스즈키 부관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아트라이브러리에서 ‘큐레이터 교류 프로그램’ 등을 발표했다. MoMA의 큐레이터들이 한국에 2주∼3개월간 머물며 직접 한국 미술을 연구하고, 한국의 큐레이터도 MoMA에 가서 6개월∼1년간 연구 및 전시 기획에 참여한다. MoMA에서는 회화 건축 디자인 드로잉 프린트 사진 등 6개 분과의 큐레이터 중 지원자가 한국에 오게 되며, 이미 3월 사진 분과 큐레이터가 정연두 박찬경 문경원 노순택 오희근 성능경 등 국내 작가를 만났다. 스즈키 부관장은 “작업실 방문과 기록 열람,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예술 작품이 나오게 된 맥락을 밀착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MoMA는 한국에서 어떤 예술을 찾고 싶어 할까? 스즈키 부관장은 “우리 미술관에는 많은 큐레이터가 있고 각자 분야와 관심사가 달라 한 방향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MoMA 부관장이 아니라 큐레이터 개인으로 예술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해 달라 했다. “저는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하는 작품이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식은 지적이거나, 개념적이거나, 감성을 자극하거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눈으로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이죠. 결국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도록 관람객의 마음을 움직이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젊은 예술가들에게 “요즘 많은 유행이 예술을 좌우하지만 자신에게 정직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내가 가진 느낌, 내가 믿는 아이디어가 인기가 없거나 트렌드에 맞지 않는 것 같아도 그 느낌이 진짜라고 믿는다면 포기하지 마세요. 주변을 둘러보고 함께해 줄 사람을 찾으세요. 그러한 시행착오가 당신의 예술을 사회 속에 자리 잡게 해 줄 것입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시즌2 출신 가수 박보람 씨(사진)가 11일 사망했다. 향년 30세. 경기 남양주남부경찰서에 따르면 박 씨는 11일 오후 9시 55분경 남양주시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여성 지인 2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박 씨가 모임 도중 화장실을 가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뒤 계속 돌아오지 않자 지인들이 찾으러 나섰고, 이후 화장실 쪽에 쓰러져 있는 박 씨를 발견했다. 지인들은 즉시 119 신고와 함께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박 씨는 출동한 구급대원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박 씨와 지인 2명이 이날 마신 술은 소주 1병 안팎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폭행당한 흔적이나 혈흔 등 타살이 의심되는 범죄 혐의점이나 극단적 선택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박 씨에 대한 부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박 씨는 2010년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에 출연해 톱11 본선까지 진출하며 주목받았다. 2014년 ‘예뻐졌다’로 정식 데뷔했고, 이달 3일에는 발라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신곡 ‘보고 싶다 벌써’를 발표했고,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아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죽음과 더 가까운 나이에 이르렀다. … 무엇을 잊지 않고자 노력해야 하는가. 그건 아이들의 죽음이 아니라 사랑이다. 살고자 했던 삶이다.’ 은유 작가는 5월 16일 공개 예정인 에세이 ‘사랑이 안전한 세상을 위하여’에 이렇게 적었다. 2014년 4월 16일 비극적으로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 작가 뮤지션 배우 시인 정치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이에 대한 기억을 에세이로 함께 묶었다. 앞서 4·16재단에서 2020년부터 매월 16일 웹사이트에 올린 연재물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시인 서윤후가 2020년 6월 16일 공개한 ‘슬픔의 기억력으로’에서부터 이슬아, 황인찬, 김애란, 장혜영, 핫펠트(예은), 나희덕 등의 에세이로 이어진다. 올해 공개 예정인 2024년 10월 16일분까지, 50편의 글을 담았다. ‘4월 16일에 우린 같은 안경을 나누어 가진 것 같습니다. … 조금씩 어지럼을 걷어내고 조금씩 선명히 걷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성동혁), ‘4·16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기표로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나희덕), ‘그들이 우리에게 주고 간 것, 우리가 받은 것에 생각이 미치면 이내 숙연해진다’(김애란) 등.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4월 16일’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하며, 여전히 우리가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다고 전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시즌2 출신 가수 박보람 씨가 11일 사망했다. 향년 30세.경기 남양주남부경찰서에 따르면 박 씨는 11일 오후 9시 55분경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여성 지인 2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박 씨가 모임 도중 화장실을 가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뒤 계속 돌아오지 않자 지인들이 찾으러 나섰고, 이후 화장실 쪽에서 쓰러져 있는 박 씨를 발견했다. 지인들은 즉시 119 신고와 함께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박 씨는 출동한 구급대원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박 씨와 지인 2명이 이날 마신 술은 소주 1병 안팎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폭행당한 흔적이나 혈흔 등 타살이 의심되는 범죄 혐의점이나 극단적 선택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박 씨에 대한 부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박 씨의 소속사 제나두엔터테인먼트는 12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11일 늦은 밤 박보람이 갑작스럽게 우리의 곁을 떠났다”며 “장례 절차는 유가족과 상의 후 빈소를 마련해 치를 예정이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고 밝혔다.박 씨는 2010년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에 출연해 톱 11 본선까지 진출하며 주목받았다. 2014년 ‘예뻐졌다’로 정식 데뷔했고, 이달 3일에는 발라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신곡 ‘보고싶다 벌써’를 발표했고,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아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시를 만드는 것과, ‘팔기 위해’ 전시를 만드는 것은 다릅니다. 맥도날드와 훌륭한 맛집(good gastronomic restaurant)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맛집은 돈을 버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죠. 남들과 다른 음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죠.”올해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은 프랑스 출신 유명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를 만났습니다.‘관계의 미학’ 등 저서로 국내 미술인들에게도 익숙한 이론가이자 파리의 현대미술관 ‘팔레 드 도쿄’의 공동 설립자로 기관장을 지냈습니다.그가 2005년 감독한 리옹 비엔날레에는 관객이 50만 명이나 방문하면서 화제가 되었죠.최근 10년간은 이스탄불 비엔날레, 타이베이 비엔날레 등 유럽 밖 지역에서도 전시 감독을 맡으면서 ‘비엔날레 전문 큐레이터’라는 인상도 받곤 합니다.그런 그가 이번엔 광주까지 오게 되어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 참여 작가를 발표하면서 전시의 대략적 윤곽도 공개되었는데,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단어 자체에 주목한 주제, 판소리부리오는 앞서 광주비엔날레의 주제가 ‘판소리’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우선 그가 전시의 큰 틀로 생각했던 것이 ‘사운드스케이프(소리의 풍경, soundscape)’였는데, 이 단어의 의미가 마침 판(공간)과 소리가 결합한 ‘판소리’와 딱 맞아떨어진 것이 주제 선정에 가장 큰 요인으로 보입니다.부리오가 말하는 ‘사운드스케이프’는 소리가 열어주는 공간을 뜻합니다. 그는 이를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그 공간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경험에 빗대어 설명했는데요.즉 물리적인 틀이 아니라 우리가 귀로 듣는 여러 가지 소리도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기본 토대입니다.그에게 “전시를 기획할 때 판소리의 형식보다 이름 자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맞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 판(공간)과 소리가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이기 때문에 그렇게 제목을 정했다”고 답했습니다.여기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흔히 판소리라고 했을 때 우리는 북을 치는 고수와 함께 소리꾼이 노래하는 ‘극’의 풍경을 떠올립니다. 이런 극의 형태와 전시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부리오의 답입니다.“판소리는 고수와 소리꾼으로만 구성되는 아주 단순한 형태의 오페라라고 생각한다. 그 형태의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 목소리와 악기, 스토리텔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다르지 않다.”이 답변은 판소리도 결국엔 유럽의 오페라와 근본적인 개념에서는 같다는 뜻인데요.이는 결국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판소리의 독특한 양상이 전시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되었습니다.내용은? 기후 변화, 국경 분쟁,…그렇다면 전시의 내용은 어떻게 펼쳐질까? 전시 서문과 부리오가 밝힌 내용으로 유추하면 판소리보다는 인류세, 기후 변화 등 그간 국제 미술계가 주목해 온 주제가 더 주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우선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섹션, 1) 라르센 효과(Larsen Effect, 두 음향 기기가 너무 가까워서 나는 굉음) 2) 폴리포니(Polyphony, 다성음악) 3) 원초적 소리(Primordial Sound)로 구성됩니다.첫 번째 섹션에서는 마치 도시처럼 너무 많은 것들이 한 곳에 놓인 밀도 높은 공간을 제시하고, 그다음은 다층적 세계관에 주목하는 작가를, 그다음은 분자와 우주를 탐구합니다. 좁은 곳에서 시작해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는 구성인데요.첫 번째 영역을 고밀도의 공간으로 구성한 이유에 대해 부리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그것이 기후 변화의 가장 눈에 띄는 결과거든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는 숲이 사라지고, 또 야생 동물이 인간과 접촉하면서 신종 전염병이 생기기도 하죠.에베레스트산을 올라도 사람의 흔적이 있잖아요. 야생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지금의 현상을 반영하려고 했습니다.”이처럼 기후 변화가 일으킨 지구라는 공간의 변화, 또 국가 간 정치적 상황으로 발생하는 경계와 분쟁, 여기서 소외되는 다른 형태의 생명체들의 목소리 등이 전시의 주제가 될 듯합니다.“똑같이 손님 많아도 맥도날드와 맛집은 달라”그간 부리오가 여러 전시를 기획하며 주목받은 특징 중 하나는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자 했다는 것입니다.지금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는 필립 파레노나 미술관에서 함께 밥을 지어 먹는 프로젝트를 선보인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같은 작가처럼 참여 형태의 예술로 관객을 끌어들였고, 대표 저서인 ‘관계 미학’에서도 이런 예술을 모범적인 사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부리오는 “나는 항상 일반 대중(general public)을 위해 전시를 만든다”라며 자신이 기획했던 리옹 비엔날레를 찾은 50만 명도 전혀 미술계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그러면서 “글을 재료로 하는 신문 기사는 언어를 모르면 읽을 수 없지만, 작품은 시각 언어로 보면 되는 것이기에 더 보편적으로 퍼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작품은 눈으로 보는 것이기에 파급력이 더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각 언어’를 보는 것에도 타고난 감각이나 훈련이 필요하기도 합니다.부리오에게 “어떤 큐레이터들은 너무 일반 대중에 집중하다가 전시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시를 만드는 것과, ‘팔기 위해’ 전시를 만드는 것은 다릅니다.어떤 사람들은 가장 많은 티켓을 파는 데에 관심이 있기도 하죠. 맥도날드와 훌륭한 맛집(good gastronomic restaurant)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맛집도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들은 돈을 버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죠. 남들과는 다른 음식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그러니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올해 광주에서는 맥도날드가 아니라 훌륭한 맛집 같은 전시를 볼 수 있을까요? 30개국 73명 작가가 참여한 ‘판소리, 모두의 울림’. 9월 7일 개막하면 그 결과를 알 수 있겠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황석영 작가(81)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영문판 마터 2-10)’가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부커상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부커상 위원회는 9일(현지 시간) ‘철도원 삼대’를 비롯해 최종 후보작 6편을 공개했다. 2020년 출간된 ‘철도원 삼대’는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근현대 역사를 조망하는 소설이다. 앞서 1차 후보에 올랐던 황 작가는 5일 부커상 홈페이지에 공개된 인터뷰에서 “이 책은 해방 후 한국 문학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소외되었던 계층인 근대 산업 노동자들의 삶과 고난의 흔적을 복원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후보에 오른 것에 대해서는 “지난 20년간 국제 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고 이번에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을 느끼고, 팬데믹 동안 집필한 이 소설에 대한 애착 때문에 후보 선정 소식이 좀 더 기쁘다”고 했다. 이어 “준비하는 차기작 집필에 동력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황 작가가 올해 최종 후보에 오르며 2022년 정보라 ‘저주토끼’, 지난해 천명관 ‘고래’에 이어 한국 작가 작품이 3년 연속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게 됐다. 앞서 2016년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한국 작가 최초로 부커상을 받은 바 있다.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은 5월 21일 런던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최종 수상 작가와 번역가에게 모두 5만 파운드(약 85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 뉴진스가 속한 하이브가 자산 규모 5조 원을 넘기며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에서는 처음이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시 의무와 사익 편취 금지 등 각종 규제가 뒤따른다. 하이브는 여러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인수해가며 사업을 다각화하고 몸집을 키워왔지만, 앞으로 인수합병 속도가 더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0일 하이브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하이브의 자산은 지난해 기준 5조3457억 원으로 2022년(4조8704억 원) 대비 9.8% 증가했다. 자산 규모가 5조 원을 넘기면서 대기업집단 지정이 유력하게 됐다. 하이브는 사업을 크게 확대하며 자산 규모를 불려갔지만 2022년까지는 5조 원에 미치지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 5조 원 이상인 기업을 공시대상 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해 각종 의무를 지운다. 예를 들어 계열사 현황과 주식 소유 현황, 대규모 내부거래, 비상장사의 주요 사항 등을 반드시 공시하게 한다. 순환출자는 금지된다.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이런 규제를 적용받게 되는 것이다. 현재 하이브의 지분 31.57%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자 설립자인 방시혁 의장(사진)은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 방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면 사익 편취 금지 규제를 받아 방 의장 친족이 일정 수준 이상 지분을 가진 회사에는 일감 몰아주기 등이 금지된다. 대부분 기업은 이런 규제들 때문에 대기업집단 지정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대기업집단 지정이 하이브의 사업 다각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많은 자금이 투입되는 기업 인수에 좀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하이브는 이전에 이뤄졌던 인수에서도 규제를 위반하는 것이 없는지 검토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 설립된 하이브는 BTS가 2017년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하면서 중소 기획사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올라섰다. BTS 멤버가 모두 군에 입대했지만 뉴진스, 르세라핌 등 이른바 ‘4세대 걸그룹’이 성공을 거두면서 BTS의 공백을 메웠다. 올해에도 보이그룹 투어스와 걸그룹 아일릿을 데뷔와 동시에 잇따라 성공시키기도 했다. 다양한 인수합병으로 몸집도 키웠다. 하이브는 2019년 쏘스뮤직, 2020년 플레디스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인수했고, 2020년 10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다. 2021년에는 글로벌 팝스타 저스틴 비버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소속된 이타카 홀딩스를, 지난해에는 미국 유명 힙합 레이블인 QC미디어홀딩스 등을 사들이며 글로벌 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공정위는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과 관련해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매년 대기업집단을 발표하는 공정위는 올해 지정을 위해 각 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올해 지정 결과는 5월 1일 발표된다.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자연에서 쉽게 보기 힘든 강렬한 빨강, 노랑, 초록 원색으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서 있다. 겉모습만 보면 높은 곳에서 굴러떨어져 부서진 바위 같지만, 알고 보면 돌을 본떠 만든 청동 조각이다. 자연을 말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색과 재료로 소장가들을 매혹해 온 우고 론디노네(사진)의 작품이 강원 원주 뮤지엄 산에 전시됐다. 뮤지엄 산은 6일부터 스위스 출신 현대미술가 론디노네의 개인전 ‘번 투 샤인(BURN TO SHINE)’을 연다. 미술관의 전시관 3곳과 야외 스톤가든, 백남준관에서 작품 40여 점을 소개한다.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 설치돼 ‘인증샷’ 명소로 꼽혔던 ‘세븐 매직 마운틴’을 연상케 하는 돌 모양 조각 연작 ‘수녀와 수도승’부터 ‘매티턱(mattituck·미국 뉴욕주의 지역 이름)’ 회화 연작, 영상 작품 등이 소개된다. 로비에서 시작하는 전시는 시곗바늘이 없는 시계, 밖이 보이지 않는 창문 작품으로 관객을 맞는다. 시계와 창문 작품은 형광으로 빛나는데, 이 작품이 설치된 공간의 통창에도 색이 입혀져 있다. 8일 한국을 찾은 론디노네는 “오후 2∼4시에 이곳을 찾으면 색에 완전히 잠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계엔 바늘이 없어 시간을 모르고, 창문엔 내 모습만 비친다”며 “시간과 나에 대한 명상을 하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다음 전시장1에서는 작가가 본 일몰과 월출 풍경을 담은 수채화(매티턱), 바다를 상징하는 유리 말 조각 시리즈가 이어진다. 모두 자연의 기본적 요소를 표현한 것으로, 국내 아트페어와 갤러리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전시의 제목이 된 영상 작품 ‘번 투 샤인’(2022년)은 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전통 의식과 현대 무용을 결합한 퍼포먼스를 담았다. 론디노네는 이 영상에 3개의 ‘원’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원은 불, 두 번째는 불을 둘러싼 무용수 17명이 그리는 원, 세 번째는 드러머 12명의 원으로 이들은 시계처럼 움직이면서 해가 뜰 때까지 춤을 춥니다.” 10분 동안 이어지는 영상은 해가 뜨는 장면과 함께 막을 내렸다가 다시 어둠 속에서 불이 빛나고 그 주변에서 무용수들이 춤추는 장면으로 반복된다. 작가는 ‘빛나기 위해 타오르라’는 존 지오르노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제목을 붙였는데, 불에 탄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처럼 순환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러한 순환을 해와 달이 곳곳에 있는 전시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돌 모양 조각 작품은 그 안에서 명상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9월 18일까지. 5000∼2만3000원. 원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00년 영국 런던 동부 템스강 변 흉물로 방치된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미술관 ‘테이트 모던’이 문을 열었다. 거대한 중앙 공간 ‘터빈 홀’ 내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1)의 초대형 거미 작품을 비롯해 화력발전소의 기계 장치 대신 예술 작품이 곳곳에 채워졌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미술관은 낙후된 사우스뱅크 지역을 활기차게 바꾼 것은 물론이고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참고하는 모델이 됐다. 테이트 모던 개관을 주도하고 2016년부터 2022년까지 관장을 지낸 프랜시스 모리스(65)가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명예 석좌교수로 국내 강단에 선다. 첫 강의를 마친 3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만난 모리스는 “그간 서울에 오면 미술관이나 갤러리만 ‘찍고 떠나’야 했는데, 이번엔 길거리도 거닐고 지하철도 타면서 서울을 제대로 경험할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테이트 모던, MoMA와 퐁피두가 모델 모리스는 이화여대로부터 교수직 제안을 받고 “늘 궁금했던 서울에 오랜 시간 머물 수 있고 문경원처럼 활동 중인 작가로 구성된 교수진과 일한다는 점이 끌렸다”고 말했다. 그는 11일 ‘테이트 모던: 변혁의 생태학’을 주제로 공개 강연에 나서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대학원생에게 ‘현장 비평I: 예술과 비평’ 강의를 한다. 강의는 미술관 건축에서 시작해 공공 미술관의 역할, 사립 미술관과 미술 시장 등의 주제로 이어진다. 건축으로 시작하는 이유를 묻자 모리스는 “미술관 체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건축”이라며 “테이트 모던은 20세기 대표적 미술관 모델인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1970년대 급진적이고 독특한 문화를 담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의 요소가 섞여 있다”고 설명했다. 테이트 모던은 개관했을 때 소장품의 파격적 배치로도 논란을 빚었다. 통상 미술관은 시대별 사조를 시간 순서로 보여주는데, 테이트 모던은 이를 깨고 장르와 주제별로 작품을 배치했다. 개관 당시 디스플레이 총괄 큐레이터였던 모리스는 “어떤 작품도 한 가지 맥락으로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라며 “관객이 미술사를 다 아는 것도 아니므로 각자 방식대로 감상할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였다”고 했다.● 루이즈 부르주아, 거미 같은 여자 모리스는 테이트 모던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구사마 야요이 등 여성 작가를 조명한 회고전을 열고 이들을 ‘스타 작가’로 만든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특히 부르주아는 1995년 함께 첫 전시를 열고 2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부르주아에 대해 “늘 두려웠다”고 회고했다. “제 질문에 언제나 탐탁지 않은 반응이었어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제안이라도 하면 말없이 일어나 자리를 떠나기도 했죠. 그러다가도 제가 딸기잼을 사 가면 갑자기 조수를 불러 스푼을 가져오라 하고 그걸 셋이 작은 의자에 앉아 나눠 먹기도 했어요. 부르주아는 자기 엄마를 거미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거미 같은 신비로운 여자였습니다.” 여성 작가는 물론이고 유럽 밖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작가를 발굴해 온 그는 5월 4일 강원 강릉 솔올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추상 화가 아그네스 마틴의 국내 첫 개인전을 큐레이팅하고 9월 3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이화여대 국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이마프(EMAP)’의 좌장으로 참여한다. 모리스는 “마틴의 아름다운 작품을 백색 공간에 펼쳐 놓아 관객에 커다란 기쁨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61년 5월 28일 대한주택영단(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에 장동운 이사장이 취임한다. 그는 같은 해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의 주요 인물이었다. 취임과 동시에 장동운은 서울 안에 고층 단지식 아파트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운다. 군부는 2년 뒤 민정 이양을 약속했고, 선거에서 정권을 유지하려면 서울 시민들에게 새로운 정치 세력의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그렇게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한국 아파트단지의 원형이라 불리는 ‘마포주공아파트 체제’는 1970년대 후반에 완성됐고, 그 후 50년 넘게 한국의 주거 문화생활을 점령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마포주공아파트 체제의 생성 과정과 구조를 밝히고 있다. 마포주공아파트 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면 지금의 아파트 문화를 만드는 몇 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최종 준공이 이뤄진 1964년에는 임대주택이었던 마포주공아파트를 1967년 대한주택공사가 자금난을 겪으면서 분양하기로 결정된 순간이다. 이는 한국의 주택 공급과 아파트의 역사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다. 정부 주도의 집합 주택은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했는데, 19세기 말부터 예외 없이 모두 임대 주택이었다. 공공 주택을 통해 시장의 안정과 도시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정부가 주택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아파트는 ‘분양’ 방식이 도입되며 여러 기반 시설까지 입주자의 권리이자 책임으로 넘겨졌다. 단지 내 도로, 놀이터, 공원 등은 입주자가 부담하고 정부는 단지까지 이어지는 도로만 건설하면 됐다. 정부 예산은 없는데 주택이 압도적으로 부족해 단기간에 대량 공급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는 도시의 공공 기능, 개발 비용을 사적으로 부담하게 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낡은 체제로는 도시의 사유화와 계급화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진단한다. 책은 한국이 만든 현대성(modernity)에 주목하는 시리즈의 첫 책이다. 2021년 ‘한국주택 유전자’를 출간하고 학계와 출판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2023년 2월 세상을 떠난 박철수 교수의 유작이기도 하다. 와병 중 집필한 원고를 출판사가 인계받아 사후 편집을 거쳐 출간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노랗게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해바라기와 귀를 자르는 기행, 그리고 평생 한 점의 작품밖에 팔지 못했던 비운의 예술가.빈센트 반 고흐(1853∼1890)를 생각할 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야기들입니다.그러나 고흐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를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받게 하는 것은 광기와 좌절 같은 극적인 스토리만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오늘은 고흐가 그린 정물화 두 점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이 두 정물은 유명한 해바라기도, 아름다운 꽃도 아닌 바로 책을 그린 작품입니다.하나는 고흐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린 ‘성경이 있는 정물’(1885년), 또 하나는 ‘프랑스 소설책 더미’(1887년)입니다.묵직한 성경책과 노란 소설책그림 속 커다란 성경책 옆에는 촛불 꺼진 촛대가 그려져 있어 마치 죽음과 삶을 대비시키는 것 같습니다. 고흐는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요?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흐의 작품을 소장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그의 대표작들이 걸린 전시장에서 ‘성경이 있는 정물’을 만났습니다. 두꺼운 책이 테이블 한가운데에 사다리꼴 모양으로 펼쳐져 묵직한 무게감을 뽐내고 있는 그림입니다.그런데 이 무거운 책 오른쪽 아래를 가벼운 노란 책이 경쾌하게 받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고흐는 이 그림에 대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갈색빛 배경 위에 가죽 장정을 한 성경책이 펼쳐져 있고, 레몬빛 노란색이 들어간 정물화를 보낸다. 이 그림은 하루 만에, 단숨에 완성한 거야.”편지 내용을 보면 고흐는 어두운 배경, 펼쳐진 성경책의 흰색, 그리고 작은 책의 노란빛까지 색채의 조합에 집중한 것처럼 보입니다.그러나 그림 속 책들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면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펼쳐진 책은 이 그림이 완성되기 직전 세상을 떠난 고흐의 아버지가 갖고 있던 성경책입니다. 아버지가 동생 테오에게 주라고 했던 책이기도 하죠.그리고 그 책보다 작지만 색채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책은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으로 고흐가 즐겨 읽었던 책입니다.성경책 옆에는 촛불 꺼진 촛대가 그려져 있어 마치 죽음과 삶을 대비시키는 것 같습니다. 고흐는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요?“아버지는 이 시대를 이해 못 한다”프랑스 문학가들이 “우리가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진실하게 그린다”고흐는 집을 떠났다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이 무렵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이때 불편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편지에서 “모든 것이 갖춰진 집보다 저 먼 습지에 있는 것이 덜 외로울 것 같다”거나 “아버지는 나의 자유를 향한 갈망, 벌거벗은 진실을 향한 갈망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괴로움을 토로했죠.여기서 고흐가 언급한 ‘벌거벗은 진실을 향한 갈망’은 그가 그린 또 다른 정물 ‘프랑스 소설책 더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 정물화에는 졸라, 기 드 모파상 등 당대 지식인들이 즐겨 읽었던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들이 그려져 있습니다.게다가 색채가 아주 밝고 경쾌한 톤으로 표현된 것이 인상 깊죠. 고흐는 이 프랑스 문학가들이 “우리가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진실하게 그린다”고 칭찬했습니다.즉, 성경책과 졸라 소설의 대비는 종교와 관념이 지배했던 과거의 사상과 개개인이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인정하는 새로운 예술과 문학을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목사였던 고흐의 아버지는 졸라를 비롯한 당대 문학이 신을 부정한다고 생각해 좋아하지 않았습니다.고흐는 “아버지가 이 시대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며 답답하게 여긴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니 불 꺼진 촛대 옆 성경은 저물어가는 시대를, 레몬빛 작은 ‘삶의 기쁨’은 밝아오는 새 시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고전이 열어주는 마음의 세계고흐가 평생 쓴 편지에는 저자 150명, 책 800여 권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많은 책을 읽고 가까운 이들에게 추천했고, 말년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릴 때도 ‘엉클 톰스 캐빈’과 찰스 디킨스를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그렇다고 고흐가 이 그림에서 성경이나 아버지를 부정한 것으로 보기는 힘듭니다.엑스레이로 그림을 보면 성경책을 더 반듯한 사각형으로 고쳐 그린 흔적이 나타나는데, 이는 성경을 더 크고 비중 있게 그리려고 했던 의도입니다.또 펼쳐진 구절은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과 수난을 겪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이사야 53장’으로 고흐가 평소 좋아했던 구절입니다.오히려 그림에서는 ‘벌거벗은 진실’을 갈망한다는 말처럼, 과거든 현재든 자신이 마주한 삶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려고 했던 태도가 보입니다.고흐는 성경 속 구절을 실천하려 선교사 시절 교회에서 내준 집을 노숙자에게 주었다가 쫓겨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에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전기를 읽고 감동받아 시골 농부와 가난한 사람들을 그렸죠.또 고흐가 평생 쓴 편지에는 저자 150명, 책 800여 권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많은 책을 읽고 가까운 이들에게 추천했고, 말년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릴 때도 ‘엉클 톰스 캐빈’과 찰스 디킨스를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프랑스 문학뿐 아니라 토머스 칼라일의 철학서, 셰익스피어와 디킨스의 문학도 즐겨 읽은 것으로 전해집니다.고흐는 “책과 현실과 예술은 나에게 모두 같은 것”이라는 말도 남겼습니다.사회와 타협을 거부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았던 그를 버티게 해준 한 가지는 바로 세상을 깊고 넓은 눈으로 담은 고전 문학임을, 두 그림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박수근의 유족이자 저작재산권자인 박수근연구소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전시 중인 박수근의 작품에 위작 논란이 일자 “진품으로 확인되기 전까지 전시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화랑협회(회장 황달성)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식 질의서를 마이클 고반 LACMA 미술관장, 스티븐 리틀 아시아 미술 큐레이터 앞으로 다음 주 초 보낼 예정이라고 5일 밝혔다.문제가 되는 작품은 LACMA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한국의 보물들; 체스터와 카메론 장 컬렉션’에 출품된 이중섭의 ‘황소를 타는 소년’, ‘기어오르는 아이’와 박수근의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 ‘와이키키’ 등이다.앞서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022년 LACMA에서 열린 ‘사이의 공간’ 전시 개막식에 참여했을 때, 미술관 요청으로 수장고에서 해당 작품들을 보고 위작이라는 의견서를 써주었으나 미술관이 전시를 강행했다고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LACMA는 스티븐 리틀 큐레이터가 전시 준비 과정에서 3년간 모든 작품을 상세히 조사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작품을 직접 본 윤 전 관장의 의견을 중심으로 감정운영위원회, 박수근연구소(대표 박진흥)가 논의를 거친 결과 전시 경위와 진품을 판단하는 근거에 대해 답변을 요청하는 질의서를 전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질의서에는 “이중섭의 ‘황소를 타는 소년’은 작가 특유의 화풍과 큰 차이가 있고 ‘기어오르는 아이’처럼 타일에 작업한 사례도 없다”, “박수근의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는 박수근 특유의 질감과 구성 혹은 선묘와 무관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특히 박수근연구소는 “저작권자로서 박수근의 작품임을 인정할 수 없어 출품작에 대한 한국미술 전문가들의 감정과 정확한 근거 자료에 의해 진품으로 확인되기 전까지 전시를 중단해달라”고 썼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주름진 입술 위 빨간 립스틱과 그 사이로 보이는 금박을 씌운 치아. 손가락에는 입술과 같은 새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미국의 예술가 마릴린 민터(사진)가 그린 작품 속 주인공은 바로 미셸 라미(80). 프랑스의 디자이너, 퍼포머, 사업가로 짙은 화장과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프랑스 문화계 유명 인사다. 최근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 갤러리에서 만난 민터는 “성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이 든 얼굴을 찾고 싶어 그녀를 모델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민터가 여성의 입술을 클로즈업해 묘사한 신작 회화 ‘도금 시대(Gilded Age·2023년)’를 비롯해 주요 작품을 선보이는 개인전이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6점의 회화를 볼 수 있는데 라미를 모델로 한 작품은 ‘미셸 라미’(2014년), ‘스위트 투스(Sweet Tooth·2023년)’ 등 3점이다. 다른 신작 ‘흰 연꽃(White Lotus)’은 필리핀 출신 20대 여성의 주근깨를 도드라지게 그렸다. 민터는 “주근깨가 아름다워 그림에 넣었는데, 그림 속 여자가 뷰티 모델 일을 하며 주근깨를 다 지워버렸다”며 웃었다. 민터는 피부의 주름이나 주근깨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숨기고 싶은 몸의 부분을 크고 자세하게 묘사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전시장에서 그림을 직접 보면 물에 젖은 듯 촉촉한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이는 민터가 작업하는 고유의 방식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민터는 모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그 앞에 물을 뿌리거나 습기로 가득 찬 유리를 댄다. 그리고 이 유리 너머로 보이는 모델의 모습을 그린다. 여기에 라미의 초상 같은 작품은 투명한 젤을 거침없이 발라 유리 위로 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독특한 것은 대부분의 그림을 캔버스가 아닌 알루미늄 패널 위에 그렸다는 점이다. 금속판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묻자 민터는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1980년대에 캔버스 위에 에나멜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고 부서지는 것을 봤다”며 “내 그림은 그렇게 되지 않고 영원히 보존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민터의 회화들은 겉모습은 촉촉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배경은 금속처럼 단단하고 영원히 박제될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지금은 없어진 그림 속 여성의 주근깨가 그림 속에선 물감으로 영원히 간직되는 것처럼 말이다. 손엠마 리만머핀 서울 디렉터는 “민터의 회화는 실제로 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4월 27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1세에 왕이 된 아들 명종(1534∼1567) 대신 수렴청정했던 문정왕후(1501∼1565)는 1565년 아들의 건강과 후손 탄생을 기원하며 전국 사찰에 불화 400점을 나눠 준다. 조선 초기 문정왕후뿐 아니라 많은 왕실 여성이 불사에 나서자 사관과 유생들은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무너진다”고 비판했다. 왕실 여성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족의 건강과 평온을 바라며 불교를 후원했고, 이는 수준 높은 불교 미술품을 낳았다. 불교 미술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후원자이자 소비자였던 여성의 역할을 조명한 전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지난달 27일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문정왕후가 1565년 나누어 준 불화 400점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총 6점이다. 이 중 ‘석가여래삼존도’(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와 ‘약사여래삼존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가 전시됐다. 특히 ‘약사여래삼존도’는 금빛 물감으로 그렸는데, 16세기 이러한 순금화를 민간에서 따라 해 노란 선으로 그린 불화가 유행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이승혜 큐레이터는 “왕실 여성이 한 시대의 불화 양식을 선도한 독보적인 후원자였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 고려시대 1345년 검은 감지에 금니(금 물감)로 쓴 법화경 7권인 ‘감지금니 묘법연화경’(리움미술관 소장)의 후원자도 여성이다. 7권이 모두 남아 있는 ‘감지금니…’는 막대한 재원과 뛰어난 장인이 투입돼 제작된 고려 사경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일반에는 처음으로 공개됐다. 전시가 조명하는 것은 발원문이다. 여기에는 조성자인 ‘진한국대부인 김씨’가 “이전 겁의 불행으로 여자의 몸을 받았으니 참으로 한탄스러워 은 글자로 쓴 화엄경 1부와 금 글자로 쓴 법화경 1부를 만드는 정성스러운 소원을 간절히 내어 일을 끝마치었다”고 적었다. 고위층이었던 김씨가 여성임을 한탄한 이유는 불교에서 남성만이 성불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포기하지 않고 경전을 만들거나 불상 조성에 참여하며 성불을 꿈꿨다. 전시에선 약사여래에게 “남성이 되게 해달라”고 한 고려 금산군부인 전씨 여동생의 발원문, 아미타여래와 극락으로 향하길 바란 마음을 담은 불화들, 또 자신과 가족의 극락왕생을 빌며 머리카락을 넣어 수놓은 불화 등을 볼 수 있다. 전시의 2부 ‘여성의 행원’에선 불교미술품의 후원자와 제작자로 활약하며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려 했던 여성들의 역할을 조명한다. 1부 전시 ‘다시 나타나는 여성’은 불화나 조각상에서 여성이 어떻게 재현됐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관음보살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95년 만에 국내에 전시돼 화제가 된 7세기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젊은 청년으로 묘사된 관음보살이다. 이는 무릎에 아이를 안은 어머니의 모습(송자관음보살도), 반투명한 베일로 머리를 가린 채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어머니와 같은 모습(수월관음보살도) 등으로 변주된다. 6월 16일까지. 1만4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찌푸린 듯한 표정 속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오만상(五萬相)의 얼굴로 유명한 권순철 작가(80)는 선팅도 안 돼 속이 훤히 보이는 낡은 승용차를 탄다. 어떤 사람에게 차는 자신을 드러내는 척도지만 권 작가에겐 화구를 싣고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운송 수단일 뿐이다. 그런 그의 차가 봄이 되면 집도 작업실도 아닌 장소에 잠시 멈추는데, 바로 동네 곳곳 목련이 핀 곳이다. 권 작가는 “1년 중 목련은 (봄철) 아주 잠깐 피기에 그때마다 차를 끌고 가 창밖으로 꽃을 보고 그린다”고 했다. 권 작가는 사람은 기차역과 병원, 거리에서 보고 그리고, 산은 밝은 낮부터 어두운 밤까지 오랜 시간 관찰하며 그린다. 아름다운 꽃 역시 자연 속에 피었을 때 눈으로 보고 그리는 것이다. 그러니 봄이 되면 그의 낡은 차는 간이 작업실이 된다. 그렇게 그린 목련 작품 5점(사진)을 서울 종로구 창성동실험실에서 볼 수 있다. 창성동실험실은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가 낡은 한옥을 고쳐 운영하는 문화공간이다. 이 교수가 권 작가에게 개인전을 제안했는데, 권 작가가 다른 작가를 초청하며 그룹전 ‘이매진’이 됐다. 이 교수가 동아일보 칼럼을 통해 선보이기도 한 로봇 그림 작품을 비롯해 이순려 하전남 안성진 정혜나 등의 작품 50여 점을 볼 수 있다. 4월 7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오늘 뉴스레터는 ‘프란스 할스’ 회고전 큐레이터 인터뷰 마지막편입니다. 프리소 라메르처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달라고 했을 때 그는 위의 어린 아기가 그려진 그림을 이야기했습니다.그러면서 우리가 그림에서 기대하는 감동은 무엇인지, 또 수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화까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어 지난 2주간 자세한 내용을 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럼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초상화처럼 공들인 할스의 풍속화할스는 거리의 인물을 깊이 끌어당겨서 초상화처럼 그려요. 이 때문에 우리는 그림 속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작게 그리면 감정을 알기 어렵잖아요. 그러니 할스가 소년 어부 같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애정과 관심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술 취한 사람, 물고기 잡는 어부처럼 평범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그린 프란스 할스의 장르화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풍속화는 네덜란드 그림에 꽤 오래된 전통이기도 합니다.- 풍속화 같은 일상의 장면, 그러니까 ‘장르화’라고 하죠. 그런 주제는 네덜란드 황금기 회화의 특징이기도 하잖아요. 할스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요?“맞아요. 장르화는 16세기 네덜란드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스는 이런 장르화를 일종의 초상화처럼 그립니다. 이 장르화들은 주문 받은 게 아님에도 초상화처럼 공들여 그려요. 거기서 알 수 있는 건 ‘할스가 이런 평범한 사람들도 아주 진지하게 보고 있다’하는 점입니다.약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뉘앙스는 있지만 그것이 캐리커처의 수준까지 내려가진 않아요. 그러면서 인물들을 아주 깊이 끌어당겨서 초상화처럼 그리죠. 이 때문에 우리는 그림 속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공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작게 그리면 감정을 알기 어렵잖아요. 그러니 할스가 소년 어부 같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애정과 관심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럼 할스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그런 감각이 있어요. 소년 어부뿐 아니라 다른 그림에서도요. 하지만 21세기 관점에서 따뜻한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말레 바베’(할스가 살던 지역에서 유명했던 알콜중독자 혹은 정신이상자를 그린 그림)를 보면 할스는 그녀를 정말로 아름답게 그리지만, 어깨에 부엉이를 놓았어요. 이 부엉이는 그녀가 ‘바보’(fool)임을 상징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표현은 용납되지 않죠.그러니까 할스는 17세기 사람이었고, 이 시대에 바보는 바보라고 놀림 받았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 시대의 맥락에서 있는 따스한 감성은 느낄 수 있죠.‘북치는 남자’(the Rommel-Pot Player)의 주인공도 정신 장애가 있는 인물이거든요. 그를 둘러싼 아이들은 즐겁게 웃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바보를 에워싸고 놀리고 있는 거기도 해요. 그러니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죠.- 그러니까 장애인을 향한 짓궂은 농담도 담겨 있는 거군요.그렇죠. 그럼에도 인물들의 얼굴은 매우 아름답게, 공을 들여 그렸어요. 21세기의 관점을 할스가 알 수는 없었겠죠. 그럼에도 시대를 뛰어 넘는 가치나 휴머니티, 이런 것을 할스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오래 전 그림 앞에 서면 그것이 가진 수백 년 수천 년의 세월에 내가 작아지는 걸 느껴요.그런데 동시에 (아주 사소한 아기의 손짓처럼)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무언가가 있고, 나도 그걸 갖고 있으며, 내 뒤로도 그게 이어질 것임을 알면 다시 내가 큰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미술사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것이죠.- 전시된 모든 작품이 각자의 매력이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저한테 가장 감동을 준 작품은 ‘유모와 함께 있는 카타리나 호프트’에요. 할스가 아주 감각적인 사람임을 보여주는 그림이거든요. 또 인간적이고 친밀한 감성이 드러나는데, 결국 이런 것이 제 취향엔 맞는 것 같아요. 전시된 작품 중 하나를 집에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작품을 선택할 거에요.”- 아기가 입고 있는 옷의 디테일 표현이 인상적이었어요.그것도 있지만, 아기의 부드러운 미소와 손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에요. 아이와 유모가 서로 친하고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지만, 한편으로 아기는 유모를 손으로 밀어내고 있어요. 실제로 어린 아기들은 이런 행동을 하거든요.그러니까 아기가 입은 화려한 옷이나 장신구는 17세기의 것이지만, 두 사람의 눈길과 손짓은 인간이라면 수백 년이 지나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 감동적이죠.”- 맞아요. 아주 인간적인 모습이에요.“네 아주 인간적인. 이런 인간적인 모습들이 드러나기에 수백 년 전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미술사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것이죠.오래 전 그림 앞에 서면 그것이 가진 수백 년 수천 년의 세월에 내가 작아지는 걸 느껴요.그런데 동시에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고 지켜온 무언가가 있고, 나도 그걸 갖고 있으며, 이것이 내 뒤로도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면 내가 다시 커지는 걸 느끼니까요.결국엔 그런 인간적인 것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초상화들이 권력이나 부를 과시하려 노력했는데 결국 남는 건 소박해 보이는 인간성이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이것이 결국 인상파를 넘어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 주었잖아요.“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에요.할스는 왕이나 도시의 평범한 사람들이나 동등하게 바라보고 그렸어요. 왕이 얼마나 권력이 있는지를 과시하는 데 할스는 분명 관심이 없었고, 다른 무언가를 찾으려 했죠.그런 노력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또 감동까지 주고 있습니다.”- 2024년의 관객이 이 전시를 보고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요?“인류의 전통이요. 결국 우리 모두는 인간이잖아요.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은 결국 그림이다. 인간이 만든 것이다라는 걸 봤으면 좋겠어요.”- 그림들의 느슨한 붓터치는 ‘결국 나는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린 그림에 불과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담고 있고, 그런데 결국 그림은 그림일 뿐이고….“할스가 이런 역설을 즐긴다고 봐요. 예술의 핵심은 언제나 무언가 만들고 그것으로 감정을 촉발하는 거잖아요.느슨한 붓터치 때문에 우리는 이게 회화임을 알 수 있죠. 결국 그림은 사람이 만든 거예요. 그런데 그 안의 내용은 아주 인간적인 것들이고, 이것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와요.현대미술은 캔버스 말고도 엄청나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결국 그 작품들이 하고 싶은 것도 인간에 대해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듯…제가 미술사를 공부하며 갖게 된 관점이 있어요. 과학에서 누군가 연구로 새로운 변화를 만들 듯, 예술이라는 분야도 사람이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에요.이 전시에 깔린 저의 믿음은, ‘사람의 가능성이 얼마나 무한한가’입니다. 400년이 지나도 그림 속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처럼이요.“🔖프란스 할스 인터뷰 시리즈 다시보기※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전시장 한가운데 낡은 나무 문들이 벽처럼 나란히 줄지어 웅크리고 있다. 성인 한 명만 들어갈 정도로 열린 틈으로 다가서면 누군가가 누워 있었던 것 같은 침대가 쓸쓸히 놓여 있다. 그 옆으로는 유리병과 의료 도구가 수북이 쌓여 있어 침대의 주인이 아픈 사람이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가 1991년에 만든 ‘밀실 1’이다. 부르주아가 어린 시절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있었던 엄마에 대한 기억을 담은 작품 ‘밀실 1’이 제주도를 찾았다. 20일 제주 서귀포시 포도뮤지엄에서 개막한 기획전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은 부르주아와 로버트 테리엔, 시오타 지하루, 정연두, 강서경, 민예은 등 국내외 작가 10개 팀의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장 속 작품 대부분은 기억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미국 사진가 셰릴 세인트 온지의 ‘새들을 집으로 부르며’ 연작은 인지저하증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기록한 사진들이다. 따스한 햇볕 아래 엄마의 흰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모습, 농장의 말과 머리를 맞댄 모습 등 평화로운 일상을 담았다. 20일 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처음엔 아픈 엄마의 사진을 찍어도 되나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며 “미국에서는 제 작품이 너무 어둡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행복과 기쁨이 드러나 좋았다”고 말했다. 민예은 작가의 설치 작품 ‘기억이 어떤 형태를 이룰 때’는 오래된 방이 산산조각 나 흩어진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민 작가는 “각 조각들을 유심히 보면 아시겠지만, 천장과 벽으로만 이뤄지고 바닥이 없다”며 “조각을 합쳐도 닫히지 않는 직육면체가 되는데 이를 통해 완전히 잡히지 않는 부유하는 기억을 다루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민 작가의 작품 옆에는 거대한 방 안에 탬버린만 덩그러니 놓인 로버트 테리엔의 설치 작품 ‘무제(패널 룸)’가 함께 놓여 대조를 이룬다. 기억과 인지력이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을 음악으로 담은 ‘더 케어테이커’는 화가 이반 실과 함께 오디오 설치 작품 ‘텅 빈 환희의 끝 어디에나’를 전시했다. 11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43분 분량의 음악 앨범과, 이 음악을 토대로 이반 실이 그린 회화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 데이비스 벅스의 ‘재구성된 풍경’ 연작은 건축 현장에서 주운 나무 합판 위에 풍경을 그린 다음 합판을 부숴서 조각냈다. 부서진 조각을 다시 퍼즐을 맞추듯 모아서 벽에 걸었다. 작가는 “기억이 과거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서 재해석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오타 지하루의 신작 ‘끝없는 선’은 책상이 있는 공간 위로 알파벳이 달린 검은 실이 끝없이 늘어져 기억을 구성하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밖에 정연두의 ‘수공기억’, 천경우의 ‘가장 아름다운’과 포도뮤지엄이 기획한 테마공간 ‘Forget Me Not’ 등을 볼 수 있다. 내년 3월 20일까지. 1만 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저는 항상 일반 대중을 위해서 전시를 합니다. 제가 (2005년) 리옹 비엔날레 감독을 맡았을 때 50만 명이 방문했는데, 이들은 미술계 사람이 아니었어요.”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은 니콜라 부리오가 26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리오는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비엔날레 참여 작가 명단을 발표했다.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9월 7일 개막하는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30개국 73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부리오는 관객 참여로 완성되는 예술 작품을 전면에 내세워 여러 전시를 흥행시킨 스타 큐레이터다. 지난해 그가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선임됐을 때 국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부리오는 “시각 언어는 문자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보편적이고 파급 효과가 크다”며 “좋은 예술 작품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전시를 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부리오는 이번 전시를 한 편의 오페라 혹은 영화처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주제 ‘라르센 효과’, ‘폴리포니’, ‘원초적인 소리’로 이뤄진다. 라르센 효과는 두 음향기기 사이가 너무 가까울 때 기괴한 소리가 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말처럼 첫 번째 전시장은 좁은 공간 안에 많은 작품이 붐비는 형태로 조성된다. 이는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의 발달로 지구 속에 너무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이 공간을 지나가면 다음에는 다양한 곳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어우러지는 ‘폴리포니’, 그리고 미시적인 분자부터 광활한 우주까지 표현하는 ‘원초적인 소리’로 이어진다. 즉 좁은 공간에서 점점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는 구성이다. 부리오는 “이 전시를 영화 장르로 비유한다면 프랑스 영화감독 크리스 마르케르의 ‘시적 다큐멘터리’와 같을 것”이라고 했다. 부리오는 “비엔날레는 미술관 전시와 달리 지금의 현대미술을 보여 줘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생존 작가로만 구성했다”고 말했다. 참여 작가 중에는 필리프 파레노처럼 유명 예술가도 있지만, 1980∼1990년대에 출생한 신진 작가도 많다. 부리오는 “내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갖고 있는지,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요소를 가졌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 작가가 43명으로 절반 이상인데, 일부러 성비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현대미술에서 그만큼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그의 과거 전시는 미술관에서 요리를 해 음식을 나눠 먹는 등 관객 참여 프로그램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번에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앞 카페 마당에서 프랑스인 셰프가 광주의 전통 음식을 재해석해 관객이 먹어 볼 수 있는 예술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또 전시장 근처 양림동의 폐가나 버려진 파출소, 예술가의 작업실 등에 예술 작품을 설치할 예정이다. 그는 “판소리는 북과 사람의 목소리로만 이뤄지는 최소한의 오페라라는 점, 그리고 누구나 경계 없이 감상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되었다”며 “소리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리오는 1998년 비평서 ‘관계의 미학’을 출간하고 세계적 주목을 받은 뒤 1999년 프랑스 파리의 현대미술관 팔레 드 도쿄를 공동 설립하고 2006년까지 공동 디렉터를 맡았다. 또 영국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큐레이터, 프랑스 몽펠리에 현대미술관장 등을 지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재즈 디바’ 나윤선(사진)은 1월 새 정규앨범 12집 ‘Elles’를 전 세계에 동시 발매했다. 에디트 피아프부터 비외르크까지…. 자신의 음악 인생에 영향을 준 여성 음악가들의 10곡을 재해석했다. 발매 직후 ‘Elles’는 아이튠스 프랑스 앨범 차트 종합 3위, 독일 재즈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1, 2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룩셈부르크 등 유럽 투어를 마친 그가 한국을 찾았다. 다음 달 17일에는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도 연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나윤선은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하고 등장했다. “팬데믹 이후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확 바꾸자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의 조언으로 한 스타일”이라며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지만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는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 로버타 플랙의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에디트 피아프의 ‘La Foule’ 등이 수록됐다. “좋아하는 음악 300곡을 고르고 추리다 보니 전설 같은 여성 가수들의 노래가 남았다”는 설명이다. 6번 트랙에 실린 빌리 홀리데이의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는 2일 별세한 부친 나영수 한양대 성악과 명예교수가 합창곡으로 편곡할 때 처음 들은 음악이다. 나윤선은 “아버지는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자 나의 열렬한 팬”이라고 회고했다. “앨범을 내는 건 공연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나윤선은 무언가를 기록하고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재즈라는 음악이 할 때마다 달라지는 것”이기에 그는 늘 무대와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소감에 대해 물었을 때도 그는 “숫자에 민감하지 않아 (올해) 30주년이 된 지도 몰랐다”며 “이렇게 음악에만 전념해서 살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라고 했다. 오직 노래하는 순간에만 집중하려는 그에게 스타일을 바꾸고, 앨범 표지를 화려하게 꾸미는 등 무언가를 포장하는 일은 어색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겸손한 말과 달리 새 앨범은 ‘재즈 가창의 세계에서 독보적인 정교함과 섬세함’(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 ‘엄밀함, 마력, 친밀감으로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다’(영국 ‘더 재즈 맨’) 등의 찬사를 받았다. 나윤선은 다음 달 열리는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새 앨범 전곡과 자신의 대표곡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