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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캔버스 위에 파도가 덮친 듯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가까이 가서 보면 세밀하게 붓을 움직여 만든 사람들의 형상이 보인다. 어린 시절을 미국 알래스카주 해안에서 보내고, 학비를 벌기 위해 500t급 선박 항해사 면허를 따 선원으로 일했던 작가 카일리 매닝(41)은 자신이 나고 자란 바다와 그에 얽힌 기억을 그림으로 남긴다. 그의 국내 첫 개인전 ‘황해’가 9일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 서울에서 개막했다.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바닷가에서 자랐고, 가족들이 서핑을 즐기며, 어업에 종사하면서 학비를 댔기 때문에 바다는 나에게 아주 친밀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오고 가며 남는 본질적인 것을 작품에서 다루고자 하는데, 서해의 조수 간만의 차가 9m에 달한다는 사실이 인상 깊어 전시 제목을 ‘황해’라고 정했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전시장에서는 최근 작품 20여 점을 볼 수 있다. 특히 얇은 실크에 그려 전시장 한가운데 매단 대형 회화 3점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부모님이 예술 교사여서 어릴 때부터 미술 작품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한국인 관객과도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며 “눈을 감고 실크 천 사이를 오고 가며 자연스럽게 감각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크 회화들은 폭이 5.5m인데, 그 사이를 잘라 그림의 한가운데를 관객이 걸어서 지나갈 수 있다. 그는 “그림의 높이가 7m인데 나무가 태양으로 뻗어 나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고 싶었다”며 “그림을 매다는 구조물은 미술관 천장의 아치형 벽과 어울리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이즈는 매우 커서 시끄러운 것 같지만 얇은 실크 천으로 돼 있기에 하늘거리고 고요한 느낌도 난다”며 “서로 다른 감각이 어우러지도록 연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림 속 인물들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는 구체적인 상황을 생각하지만 그것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하려고 노력한다”며 “보는 관객이 자유롭게 감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림 속 인물들이 편안한 자세에 있는 것처럼 보이려 표현한다는 설명은 덧붙였다. 작가는 “내가 현실에서 보는 여러 사람은 훨씬 더 다양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며 “여러 인물이 한 가족처럼 바다에 함께 머무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11월 1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전투 헬기와 탱크, 총성이 오가는 전장이지만 야자수 나무가 울창한 숲과 꽃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었던 1972년 정부는 화가 10명을 선발해 베트남으로 보내 전장을 기록하도록 했다. 그중 한 명이자 유일한 여성 작가였던 천경자(1924∼2015·사진)가 남긴 그림 ‘꽃과 병사와 포성’(1972년)이다. 국방부가 소장하고 있었던 이 작품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3층에서 8일 개막한 전시 ‘격변의 시대, 여성 삶 예술’을 통해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정부 의뢰로 베트남전 기록화 그려 ‘꽃과 병사와 포성’은 폭 185cm, 높이 284cm로 천경자 작품 중에서 손꼽히는 대작이다. 독특한 것은 다소 낭만적으로 보이는 그림의 내용이다. 전시장에서 함께 볼 수 있는 ‘헬기 수송작전’ ‘매복작전’ 등의 스케치는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캔버스 회화는 풍경의 존재감이 더 크다. 한희진 학예연구사는 “작가가 전쟁 현장보다 ‘꽃’이라는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더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천경자가 베트남전쟁 현장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문화공보부가 1972년 6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이마동을 단장으로 김기창 등 10명에게 전쟁 기록화를 의뢰했기 때문이었다. 화가들은 약 20일간 베트남에 머물며 스케치했고 돌아온 뒤 전쟁을 기록한 작품을 남겼다. 천경자는 ‘꽃과 병사와 포성’과 ‘목적’ 등 두 점을 그려 200만 원을 받았다. 덕분에 당시 좋지 않았던 경제 사정이 나아져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이 전시된 ‘격변의 시대, 여성 삶 예술’전은 천경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여성 동양화가 23인의 작품 세계를 함께 조명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작품과 작가의 삶에 녹아 있는 한국 근현대사를 함께 짚는다. 천경자가 1950년대에 옷감집을 구경하는 자신을 그린 ‘옷감집 나들이’도 이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개인 소장가가 갖고 있던 작품으로 여러 옷감을 구경하는 작가의 옆모습이 보이고, 옆 검은 우산을 쓴 인물은 함께 나들이를 갔던 작가의 어머니라고 한다. 11월 17일까지.● 중남미 등 풍경 담은 ‘기행 회화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에서는 천경자 컬렉션 상설전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가 6일 개막했다. 이곳에서는 1998년 천경자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을 2002년부터 선보여 왔다. ‘천경자의 혼’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에 이어 10년 만에 재단장한 전시로 회화, 드로잉 등 30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천경자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남긴 ‘기행 회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채색화와 여인상으로 구성한 ‘환상과 정한의 세계’, 기행 회화를 담은 ‘꿈과 바람의 여로’, 해외 문학과 공연 등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 ‘예술과 낭만’, 작가가 저술한 수필집을 정리한 ‘자유로운 여자’ 등 4개 부문으로 이뤄졌다. 중남미를 여행하며 잉카문명의 발상지인 쿠스코를 방문해서 라마를 그린 ‘구스코’(1979년), 1989년 카리브해 연안으로 스케치 여행을 떠났을 때 그린 ‘자마이카의 고약한 여인’(1989년) 등 이국적인 지역을 방문한 작품부터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배경인 ‘폭풍의 언덕’,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저자 마거릿 미첼 생가에 직접 가서 그린 문학적 작품들도 볼 수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겨우 말을 가리면 글을 가르치며, 사모하는 것은 과거 급제요 바라는 것은 부귀입니다. 학문하는 도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떼 지어 웃고 헐뜯습니다.” 조기교육, 선행학습 등 현대 사회의 사교육 세태를 떠올리게 하는 이 글은 16세기 조선 시대 인종에게 과도한 교육열을 고발한 내용이다. 교육은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지기에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실에서는 부와 명예, 권력을 갖기 위한 수단으로의 존재감이 더 클 때가 있다. 500년 전인 조선 시대에도 ‘입시 지옥’의 천태만상이 펼쳐졌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공식 기록부터 퇴계 이황의 편지, 다산 정약용 문집 등 여러 사료를 토대로 한 책은 조선 시대 교육관과 과거 제도부터 설명한다. 조선 시대는 신분제 사회였지만 양반이라도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얻지 못하면 존중은 물론이고 먹고살 길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를 위해 1000권 이상의 책을 암기하고, 글 실력과 필체까지 가다듬어야 했으니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20∼30년이 걸렸다. 이런 바탕에서 사교육 열풍이 불었고, 교육 과정 또한 부정행위 및 입시 비리로 문란해지기 일쑤였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들의 학업 성취도를 묻고 공부를 재촉하는 편지를 보냈고, 제자들에겐 진정한 학문의 길을 걸으라 설교했던 이황도 아들에겐 어떻게든 과거에 급제하라 성화를 부렸다. 사도세자를 미치게 만든 영조처럼 욕심 때문에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도 있었다. 이들은 ‘싹을 뽑는 사람’이라는 뜻의 ‘알묘’라 불렸다. 조선 중기를 넘어 당쟁이 치열해졌을 땐 당파마다 세력을 불리기 위한 입시 비리가 만연했다. 숙종 때는 시험장에서 남인 유력자의 아들을 찾는 시험관에게 서인 아무개가 손을 들어 급제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숙종 때는 성균관 안과 밖을 연결하는 40m 대나무 관이 발견됐다. 문제지와 답안지를 남몰래 교환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증거가 없어 미제 사건으로 남기도 했다. 이런 권력형 입시 비리는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 아니 불공정한 입시경쟁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에서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목이 잘린 채 등장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를 콩코르드 광장 단두대에서 처형한 프랑스 혁명. 200여 년 전인 1789년 일어난 일임에도 그 반응엔 여전히 온도 차가 남아 있는 급진적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왕과 왕비가 멀쩡히 살아 있었던 18세기 다른 국가에선 어땠을까요? 화가 난 시민들이 왕을 죽였다는 흉흉한 소식이 유럽으로 퍼지며 불안과 혼란을 조성했던 1800년, 스페인의 궁정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는 왕과 왕비 가족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 대해 프라도 미술관 큐레이터 구드룬 마우레르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합니다.풍자로 오해받은 그림 “로또 당첨된 졸부의 초상 같다.” 고야가 그린 ‘카를로스 4세 가족’에 관해 가장 유명한 한 줄 평입니다. 프랑스 시인 테오필 고티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이 평을 인용했는데, 대부분이 고티에처럼 19세기 프랑스의 문화 예술인입니다. 마우레르는 이런 평가가 “지극히 프랑스 관점의 단편적 감상”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때 고야는 그가 젊은 시절부터 꿈꿨던 직책인 최고 궁정 화가가 됩니다. 이 직책을 받은 것은 벨라스케스 이후로 고야가 처음이었죠. 그만큼 최고의 실력을 갖췄음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고야가 궁정 화가가 된 뒤 ‘고용주’인 왕과 그의 가족을 그린 첫 그림입니다. 그들을 풍자할 이유가 희박하죠. 또 연구에 따르면 초상화 속 가운데 서 있는 왕비는 실제로는 자녀 20여 명을 출산하며 건강이 나빠져 치아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림에서는 건강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죠. 그림을 직접 보면 첫인상에 ‘풍자는 아니다’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인물들이 실제 크기로 그려진 데다 기울어진 태양 빛에 반사되는 각종 장신구가 반짝이도록 묘사된, 크고 아름다운 그림이기 때문입니다.완벽한 조화와 그렇지 않은 배경 그러나 단순히 왕족을 아름답게 그렸다고 이 작품이 프라도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우레르는 “가족의 중심에 선 왕비가 구심점으로서 왕족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면서도 “배경의 그림들은 왕비가 이루는 중심점과 한 박자 어긋나게 배치되어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배경이 어긋나며 묘하게 불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이 그림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비교하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림의 왼쪽 캔버스 뒤에 서 있는 인물이 고야인데, 이는 ‘시녀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시녀들’에서는 마르가리타 공주를 가운데에 두고 다른 인물부터 뒷배경까지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안정적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안정적인 ‘시녀들’의 구도를 고야는 과감히 버렸습니다. ‘카를로스 4세’에서는 인물 그룹의 구도는 안정적이지만 엇박자를 내는 배경의 그림, 햇빛이 만들어낸 그림자와 캔버스의 기울어진 선이 무언가 아스라이 사라질 것 같은, 황혼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마우레르는 더 나아가 ‘가족들이 서 있는 공간의 옆 벽이 없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림 속 왕족들은 커다란 그림 두 점이 있는 벽 앞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이러한 모든 표현이 “왕족은 완벽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그렇지 않음을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영원한 군주 아닌 ‘지금’을 그리다 안정적이었던 왕족을 둘러싼 불안한 환경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습니다. 마우레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프랑스 왕을 시민들이 죽였다는 소식은 허리케인과도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대처럼 왕을 그릴 수는 없었죠. 왕과 왕비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 의해 폐위될 수 있는 존재임을 세계가 깨달았으니까요. 고야 역시 이 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고야의 예술 세계를 보면 궁정 화가로서 공식적인 시각은 지키되 언제나 그 이면에 있는 다른 의미도 마음속 깊은 곳에 지켜 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식 초상화는 의뢰인의 마음에 쏙 들도록 그리면서,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던 스페인의 지식인, 계몽주의자들과도 가까이 지냈고 함께 책을 읽기도 했죠. 그 결과 왕족이 바라보는 세상과 도도한 시대의 흐름,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표현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마우레르는 이것을 “영원한 군주가 아닌 ‘지금’을 그린 것, 그림 속에 근대적 개념인 ‘시간’을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림 속 얼굴을 돌린 여자는 왕의 아들과 결혼하기로 예정된 마리아 안토니아입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릴 시점엔 아직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고개를 돌린 모습으로 표현했죠. 어딘지 알 수 없는 그림 속 배경은 왕의 가족이 몇 시간 뒤면 어디 있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증폭시킵니다. 즉, 고야는 이 그림이 지금에만 유효하다는 일시적인 감정을 시각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완곡하지만 더 복잡하고 단단하게 남긴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 유럽의 분위기. 아름다운 환상 같은 왕족의 초상화에서 한번 감상해 보세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검은 기둥과 조약돌 모양의 벤치가 진지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리움미술관 로비 한쪽 벽면에는 대형 스크린이 있다. 이 스크린에서 2021년부터 영상 작품을 전시하는 ‘월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이 공간을 위해 미술관 의뢰로 제작한 작품이 지난달 18일 공개됐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듀오 폴린 부드리, 레나테 로렌츠의 작품 ‘초상’이다. 영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미술관 내부 인테리어에 맞춰 검은 인조 가죽 커튼이 드리워진 공간을 무대로 한다. 여기에 작가들과 가깝게 교류해 온 안무가, 미술가, 음악가 등 8명이 한 명씩 차례로 등장해 카메라를 말없이 응시한다. 멈춰 있는 그림이 아니라 움직이는 모습을 담은 초상으로, 큰 화면에서 사람들의 얼굴 표정, 몸짓 등이 강렬하게 드러난다. 관객은 스크린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이들과 ‘아이 컨택’을 하게 된다. 등장인물들은 입고 있는 옷을 벗어 던지거나, 밝은 전구를 온몸에 두르고, 또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각자의 개성을 표현한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제스처나 옷차림이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걸 말해줄 때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두 작가는 “섣부른 말로 누군가를 규정하려는 움직임에 저항하는 가능성을 모색했다”고 전했다. 두 작가는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스위스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는데, 이때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거꾸로 재생한 장면을 큰 화면에 담아 주목을 받았다. 리움미술관 관계자는 “두 작가는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을 제작해 왔고, 이런 배경에서 다양한 관객이 오고 가는 미술관 로비에 어울리는 작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1월 23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폭풍 전야.’ 한여름 더위를 피해 쉬어가는 휴가철이지만 미술계는 9월을 앞두고 조금씩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프리즈 서울 아트페어 기간(9월 4∼7일)을 전후로 국내외 미술인들이 서울로 몰려들 예정이기 때문이다. 프리즈 서울은 올해로 3회차에 불과하지만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한 해 가장 신경 써서 만든 전시를 9월에 개막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 마크 로스코 같은 20세기 거장, 프랑수아앙리 피노 케링 창업자의 소장품부터 핫한 동시대 미술가 개인전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를 정리했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걸작들 9월 4일 송은에서 개막하는 ‘소장품의 초상: 피노 컬렉션 선별작’ 전시는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해외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이 한 번에 소개돼 기대된다. 마를렌 뒤마(남아공)처럼 유명 미술관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작가부터 피터 도이그(영국), 미리암 칸(스위스), 얀보(베트남) 등 흥미로운 예술 세계를 가진 작가들의 회화, 설치, 드로잉,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60여 점을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프랑스 재벌인 피노 케링 창업자의 소장품을 한국에 13년 만에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피노 창업자의 소장품은 2021년 프랑스 파리 옛 상업거래소를 안도 다다오가 미술관으로 새롭게 단장한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도 전시되고 있다. 이 미술관의 개관전 ‘우베르튀르’에 소개됐던 작품 일부도 한국을 찾는다. 또한 20세기 미국 미술 거장인 마크 로스코는 한국 작가 이우환과 함께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2인전을 연다. 4일 개막하는 ‘조응: 이우환과 마크 로스코’전은 갤러리 2, 3층 공간에서 열린다. 2018∼2023년 제작한 이우환의 회화와 1950∼1960년대 로스코의 대표적 색면 추상이 각 층에서 전시된다. 이우환이 로스코의 유족과 협업해 직접 전시를 큐레이팅해 눈길을 끈다.● 국제 미술계 뜨는 작가들 고미술을 주로 전시해 온 호암미술관에서는 처음으로 현대미술가의 개인전이 9월 3일부터 열린다. 스위스 출신 미술가로 미술 시장에서 사랑받는 니콜라스 파티가 회화, 조각 등을 고미술 소장품과 함께 전시할 예정이다. 파티는 특히 감각적인 색채가 돋보이는 정물, 풍경 등 파스텔화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파스텔을 이용해 미술관 내부 벽면에 대형 벽화를 공개할 예정이다. 작가가 이미 한국에 와서 한창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 글로벌 메가 갤러리인 가고시안(거고지언)도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연다. 3일 개막하는 데릭 애덤스 개인전 ‘더 스트립’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캐비닛에서 개최된다. 애덤스는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인 ‘수영장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로, 전시장 규모는 작지만 새로운 연작을 이번 전시에서 발표한다. 신작은 전 세계 화장품 매장의 쇼윈도 디스플레이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국의 대표적 현대미술관인 테이트모던 터빈 홀에서 선보인 해파리 모양 드론 작품처럼 생물학과 기술을 융합하는 실험적 작품으로 주목받는 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는 리움미술관 M2에서 5일부터 개인전을 연다. 작가의 아시아 첫 미술관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박수근 미술상 수상자인 홍이현숙, 인도네시아 작가 아라마이아니 등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활동하는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을 몸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을 3일부터 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정원을 가진 사람은 소나무를 심고 싶어 하지만 소나무는 너무 비싸다. 비싼 소나무 정원에 내 몸을 슬쩍 끼워 넣어 정원을 도둑질한다.’ ‘(작업실 동료들이)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면 즐겁다. 영만이가 해준 것이니 맛없다고 말할 수 없을 수 있지만 젓가락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뭐….’ 만화가 허영만은 널리 알려진 작품 외에도 일상 속 느낀 단상을 ‘만화 일기’로 남기고 있다. 짧은 문장과 그림 한두 점으로 쓴 기록들은 캠핑, 요리 등 일상 속 감상부터 건강에 대한 염려까지 솔직히 담는다. 허영만의 50년 만화 인생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 ‘종이의 영웅, 칸ㅁ의 서사’(사진)가 6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개막한다. 허영만은 1974년 한국일보 신인 만화 공모전에 ‘집을 찾아서’가 당선되며 만화의 길로 들어섰다. 5일 기자간담회에서 허영만은 “매일 놀러 다니는 사람 같지만 만화를 다 그리고 나갔기 때문에 펑크를 낸 적이 없다”며 “그동안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루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를 저도 조명해 볼 기회”라고 말했다. 전시는 1부 ‘만화가 허영만’, 2부 ‘시대를 품은 만화’, 3부 ‘매스미디어 속 만화’, 4부 ‘일상이 된 만화’ 등 총 4부로 구성됐으며 연대기 순으로 대표 작품의 원화와 관련된 기록을 조명한다. 특히 ‘각시탈’ ‘날아라 슈퍼보드’ ‘비트’ ‘타짜’ 등 영상물로도 제작돼 대중에 익숙한 작품이 눈길을 끈다. 허영만은 “제 만화에는 슈퍼스타가 없고 동네에서 보는 어린아이나 어른이 주인공”이라며 “그렇기에 영화나 드라마로도 쉽게 다가온 것 같다”고 말했다. 1945년 광복부터 1968년 6·29 민주화선언까지 격동의 근현대사를 풀어낸 ‘오! 한강’의 원화에서는 탱크가 웅장하게 등장하는 모습이나, 주인공이 고문을 당하는 모습 등이 박진감 있게 펼쳐지는 그림체를 볼 수 있다. ‘비트’에서는 1990년대 청년들의 패션과 낭만이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비트’와 함께 작가가 잡지나 신문에서 수집한 당시 패션 스타일에 관한 자료도 방대하다. ‘타짜’를 위해 노름꾼을 만나 속임수를 기록한 노트, ‘식객’을 위해 음식을 직접 찾아다니며 남긴 메모 등은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거친 치밀한 취재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허영만은 “저는 1등 해본 적이 없다. 제가 처음 만화를 그렸을 땐 이상구가, 그다음엔 이현세가 1등이었다”며 “밥 먹다 냅킨에 고추장으로 메모하며 항상 소재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 때문에 오래도록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웹툰 시장의 성장에 대해 종이 만화가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는 “지금 웹툰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보고 싶은 욕심은 있다. 다른 필명으로 도전해 보면 어떨까 싶다”며 “서너 달 정도 연재할 수 있는 분량을 만들어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광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화가 김선두가 종이에 먹으로 그린 유튜버 침착맨(이말년)의 초상화를 개인전 ‘푸르른 날’에서 공개했다. 영화 ‘취화선’에 등장하는 장승업의 그림을 그린 것으로도 유명한 김선두는 화려한 색채와 다양한 구도를 활용해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그리는 방법을 고민하는 작가다. 전시가 개막한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그는 “한국화의 중심이 되는 수묵과 붓을 제대로 탐구해야 한다”며 “낡은 방식으로 새롭게 이야기하기를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그린 침착맨 초상화는 ‘아름다운 시절’ 연작 중 하나다. 시인 김수영, 야구 선수 선동열 등 유명 인물의 얼굴을 작가가 그리고 그 아래 달력처럼 칸을 마련했다. 이 칸에는 초상화 주인공이 그날마다 소화한 일정을 적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정이 차오르며 흰 여백은 검은 얼룩이 된다. 침착맨의 초상화에서는 굿즈 미팅, 가래떡 먹방, 여권 발급, 지인 집들이 등 바쁜 일상을 볼 수 있다. 시인 곽효환의 초상도 있는데, 일정을 적었다가 전시에 나온다고 하니 곽 시인이 부끄럽다고 지웠다고 한다. 김선두는 “너무 깨끗이 지워서 아쉽다”며 웃었다. 이 밖에 종이(장지)에 물감을 여러 번 칠해 한국화 특유의 투명하고 짙은 색을 담은 작품들도 볼 수 있다. 가로 8m 대작 ‘싱그러운 폭죽’ ‘낮별’ 연작 등이다. 전시는 1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개봉 전부터 대규모 유료 시사회를 열어 ‘변칙 개봉’ 논란이 된 영화 ‘슈퍼배드 4’(사진)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가 경고에 나섰다. 영진위 공정환경조성특별위원회는 2일 입장문을 내고 “영화 상영시장의 공정 질서를 해친 변칙 개봉에 대해 강력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영진위에 따르면 ‘슈퍼배드 4’는 공식 개봉을 앞둔 주말인 지난달 20, 21일 이틀간 유료 시사회 명목으로 총 5090회를 영화관에서 상영해 76만8009석을 선점했다. 이 기간 ‘슈퍼배드 4’의 유료 시사회 상영 횟수는 국내 전체 극장의 12.1%를 차지했다. 단, 평균 좌석 판매율은 13.5%(관객 10만3528명)에 그쳤다. 영진위는 “변칙 개봉으로 빈 좌석 수가 66만4481개나 발생하는 결과를 초래해 20일 147편, 21일 144편의 영화 상영 기회와 좌석을 빼앗아 공정한 시장질서를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영진위는 이어 “지난해 정부와 영진위 및 상영 투자 배급 업계는 ‘한국 영화 재도약 정책실무협의체’, ‘한국 영화산업 위기극복 정책협의회’를 결성하며 팬데믹 이후 영화산업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했다”며 “유료 시사회 명목으로 진행된 변칙 개봉은 이 같은 정부와 영화계의 공동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결과”라고 비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전쟁과 혼란으로 왕이 세 번이나 바뀌는 가운데 4명의 왕과 함께 일했던 궁정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프랑스 혁명이 있었던 18세기 말을 지나 19세기가 되고, 70대가 된 그는 세상과 연을 끊고 마드리드 인근 농가에서 칩거합니다.이 집에서 화가는 정체불명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궁정 화가였을 땐 초상화, 역사화, 풍속화를 주로 다뤘던 그가 홀로 그린 이 그림들이 누구를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낯선 사람의 눈에는 어둡고 공포스러운 이 집의 벽화에 사람들은 ‘검은 그림’(Black Painting)이라는 별명을 붙였죠. 나이 든 화가가 정신 이상을 겪고 그린 그림이라는 흉흉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그러나 ‘검은 그림’은 지금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 컬렉션이자, 인간 내면을 표현해 근대의 문을 연 걸작으로 평가를 받습니다.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를 연구하는 큐레이터 마우러 구드룬과 ‘검은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아들과 손자를 위해 매입한 집,화가는 ‘검은 그림’을 남겼다- 고야는 평생 의뢰 받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검은 그림’은 말년에 오로지 자신을 위해 그린 것이죠. 고야가 미래를 비관적으로 봐서 이런 그림을 그린 걸까요?고야가 검은 그림을 자기만을 위해 그렸는지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그림이 있는 집은 고야가 아들과 손자에게 물려주기 위해 매입한 것이에요. 그러니 그곳의 그림도 자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겠죠.이 집 옆에는 밭이 있었고, 고야는 자식과 손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기를 바랐어요. 실제로 그들은 농부가 되었습니다.- 농가에 이런 그림을 그린 건가요? 왜요?그러게요 도대체 왜 그렸을까 라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 같습니다만, 그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여서 하나로 답하기는 어렵습니다.분명한 건 고야가 이 집을 매입하는 과정에 아주 철저한 계획을 했다는 점이 문서로 뒷받침됩니다. 그러니까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정신 이상을 겪지 않았다는 건 확실합니다.- 마녀, 악마,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Saturn),… 그림들의 내용은 뭐라고 생각하세요?고야는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인간의 내면을 깊이 관찰하고 드러내려 했습니다. 인간은 때로 거짓말하고, 장난을 치고, 이성적이지 않은 행동을 저지르기도 하죠. 이성의 반대편에 있는 열정, 불안, 공포를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표현했어요.검은 그림에서 사투르누스가 자식을 잡아먹는 이유는, 그중 한 명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죠. 또 ‘Reading’에서는 무언가를 읽고 있지만 허공을 응시하는 사람은 공포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이에요.이 무렵 스페인에서는 종교 재판이 성행하고 마녀와 같은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계몽주의자들이 이런 세태를 비판하는 글을 싣기도 했어요. 그런데 고야는 이런 모습을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 현상 속에서 드러나는 공포와 불안을 표현했어요. 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감정이죠.-검은 그림의 한 가지 키워드를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또 다른 유명한 그림인 ‘개’(The Drowning Dog)는 정말 복잡한 그림이에요. 그림 속 개는 허공을 보고 있으니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일까? 싶지만 앞에 아무것도 없어요. 헐떡이며 올라온 언덕과 그 위의 노란 하늘뿐이죠.-앞으로 무엇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공포와 불안인가요?그럴 수도 있죠.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에요. 사람들은 마녀나 악마를 두려워하고, 또 불안감으로 미신을 믿지만 사실 그 뒤에는 막막한 하늘처럼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에요.그러니까 무서워하는 무언가, 그 대상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 자체가 우리를 움직이는 힘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은 손자 마리아노에게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 수도 있어요.-그렇지만 고야가 그림 외에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아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는 거군요.네 아무것도 없어요. 작품 제목도 연구자가 임의로 붙인 겁니다.‘개’는 고독, 혹은 자아 성찰로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게다가 거대한 바위 앞에서 개가 한없이 작아 보이죠. 그러니까 대자연 앞에서 먼지처럼 작은 인간 존재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어요.또 고야는 사냥을 즐겨 했는데요. 이 시대 사람들이 사냥할 때 개를 데리고 다녔으니, 고야는 개의 습성에 대해서도 잘 알았죠. 여기서 개는 사람과 달리 자기 의견을 표시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인간이 아닌 순진한 동물이라는 차원에서 말인가요?그렇죠. 그런데 인간도 결국 삶의 막바지에 가서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잖아요. 이 그림에서 개는 주인을 잃고 혼자 헤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것을 19세기 인간에게 대입해 생각해 볼 수도 있죠. (시민혁명, 전쟁 등으로 오랫동안 내려온 신념을 잃고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는 의미)혁명, 전쟁과 혼란의 시대.변하지 않는 건 무엇일까?-프라도미술관에 가면 3층에는 고야가 젊은 화가일 때 그린 태피스트리 밑그림이 있고, 1층에는 검은 그림이 있잖아요. 두 공간을 오가며 그림을 비교해 보았을 때 차이점이 극명해서 충격적이었어요.젊은 시절의 그림에서는 (고야 특유의 어두움이 있긴 하지만) 즐거움과 야망이 주된 분위기였다면, 말년의 그림에서는 그 어두움이 완전히 폭발해서 그림을 지배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야망으로 가득했던 그가 말년에 이르러 죽음을 앞둔 모습이 슬프기도 했고요.두 그림의 대조가 강렬한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검은 그림’이 어두운 데에는 시대적 분위기도 작용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그러니까 고야가 말년에 희망을 잃었다기보다는, 나폴레옹 전쟁, 종교 재판 같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겪었기에 예전처럼 밝은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던 것이죠. 또 요즘 영화나 게임 같은 콘텐츠가 점점 더 직접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하듯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의 그림도 더 과감해진 경향이 있어요.-그렇다면 젊은 시절보다 자기의 개인적인 의견을 더 대담하게 드러내는 걸 수도 있겠네요. 태피스트리 밑그림은 주문한 사람이 있었고, 검은 그림은 고야가 자발적으로 자신과 가족을 위해 그린 것이니까요. 그래서 더 마음을 열고 인생에 관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거고요.맞아요. 검은 그림은 고야가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보기 위해서 그린 것이므로, 자신의 의견을 마음대로 펼칠 수가 있었죠. 또 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담겨 있고요.-고야의 판화 ‘카프리초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도 검은 그림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어요.그렇죠. 검은 그림은 그렇게 이성이 잠들 때 꿈에서 볼 법한 것들을 그리고 있어요. 그런데 그 꿈은 아주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생겨나죠.또 재밌는 건 고야가 막연한 꿈속의 공포나 불안을 표현해서 일종의 치유 효과를 준다는 점이에요. 지금은 심리학을 통해 그런 효과들이 익숙하지만, 고야는 당시 지식인들이 공포나 불안을 숨기라고 한 것과 달리 그것을 드러내고 보여줬다는 것도 너무나 흥미롭죠.-20세기 철학자인 미셸 푸코가 인간의 어둡고 억압된 면을 드러낸 사실이 생각나네요. 그런 점에서 고야는 예민한 감각으로 철학보다 빨리 근대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거고요.정확합니다. 고야가 모더니즘의 문을 열었죠.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끄집어냈다는 점에서요.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그랬던 것처럼요. 물론 검은 그림은 공개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지만, ‘카프리초스’ 같은 판화는 시중에 보급했어요.-그런데 검은 그림에 관해 남겨진 글이 전혀 없다는 점이 아쉽네요. 물론 시각적으로 보았을 때 그 의미와 새로움이 강렬하게 다가오긴 하지만, 그걸 글로 옮기긴 어려워서요.그렇죠. 그런데 ‘카프리초스’에는 고야가 제목이나 짧은 코멘트를 남겼어요. 덕분에 판화들의 복잡한 의미를 알 수 있는 건 물론 고야가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지도 유추해 볼 수 있어요. 그걸 보면 고야가 ‘변하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본질에 관심을 가졌던 거군요맞아요. 저는 1990년대에 ‘검은 그림’을 처음 봤는데, 그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프라도 미술관에 검은 그림 전시실을 ‘충격의 방’이라고도 한답니다.그 이전에도 저는 고야에 관한 글을 읽곤 했지만, ‘검은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고 엄청난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리고 여러 자료를 연구하며 이것은 늙은 화가의 정신 이상이 아니라 아주 명석한 마음에서 그린 것임을 확인하게 됐어요. 또 그가 제시한 주제들은 지금에도 유효하다는 사실도요.-그렇죠. 한 가지 주제가 ‘두려움’이라고 하셨는데, 인터넷이 열리면서 종교 재판의 시대가 다시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사람들은 다르고 낯선 생각에 두려움을 느끼니까요. 또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세계가 지금도 불안한 상황이기도 하고요.가짜 뉴스도 마찬가지죠. 19세기에도 서로 다른 신념과 생각들이 부딪쳤고 그때는 더 폭력적이었지만 양상은 비슷해요. 그런 맥락에서 ‘검은 그림’은 불안과 공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운데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생각도 듭니다.-그런 본질적 메시지를 담았기에 ‘검은 그림’이 고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전 문학이 인간 본성에 대해 다뤘기에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읽히고 그 의미를 잃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정확한 지적이에요. 검은 그림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요. 고야가 ‘카프리초스’ 판화를 위해 만든 드로잉 중에 ‘보편적 언어(Ydioma Universal, Universal Language)’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 아시나요?-몰랐어요. 놀랍네요.드로잉에서도 고야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다루죠. 전염병에 대한 공포, 그로 인한 불안, 여기에서 퍼져 나가는 미신과 같은 것들이요. 그러니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마련이고, 여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고야는 보여주려고 한 것이죠. 제 의견으로 고야는 글로벌한 사상가였습니다.-고야가 직접 ‘보편적 언어’라고 제목을 붙이고, 그런 주제로 작품을 남기려 했다는 것이 놀라워요. 그가 감각에만 의존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인간의 본질적 요소를 찾아 표현하려 했다는 이야기니까요.그럼요. 고야가 궁정화가로 일할 때 왕실 컬렉션에서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작품을 보았을 거예요. 그런 작품들에서도 영향을 받았을 거고, 또 고야는 계몽주의자들과도 아주 가깝게 지내며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어요. 많은 책을 읽기도 했고요.그런 가운데 프랑스 혁명과 그 이후 스페인에서 펼쳐진 너무나 혼란한 상황. 군주제가 무너지는 듯하지만,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소용돌이와 같은 상황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수십 년 동안 고야의 작품을 연구했지만 이건 끝이 없는 작업이에요. 한 부분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부분이 보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어요. 고야를 연구하게 된 것이 저의 커리어에서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예술가가 손으로 펼쳐 놓은 세계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최근 발간된 도록들에 더 많은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또 카프리초스 전 작품과 그가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도 읽어보세요. 고전 문학만큼 깊고 넓은 세계를 꼭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년마다 열리는 현대 미술 전시인 ‘비엔날레’가 하반기 국내 여러지역에서 개막을 앞두고 있다. 작품 거래를 목적으로 여러 갤러리가 부스를 차리는 아트페어와 달리 비엔날레는 전시 감독이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작품을 선별한다. 작품을 주어진 공간에 어떻게 배치하는지, 즉 ‘큐레이션’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다. 국내외 큐레이터들이 선보이는 각 비엔날레의 관전 포인트를 꼽아봤다.》16일 개막하는 2024 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는 뉴질랜드와 벨기에 출신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두 큐레이터 베라 메이, 필리프 피로트가 감독을 맡았다. 두 감독은 미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1961∼2020)가 쓴 책 ‘해적 계몽주의’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책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가 평화와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는 통념과 달리 해적 사회에서 그런 실천이 먼저 이뤄졌음을 밝혀 주목받았다. 두 감독은 해적 공동체가 태풍과 같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선원이 그때마다 리더가 되었다는 유연성에 주목했다. 그 결과 참여 작가 중에는 통도사성보박물관장을 지냈고 ‘한국의 불화’ 40권을 집대성한 송천 스님,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인도와 파키스탄 등을 다니며 현지에서 구한 소재로 작업하는 이두원, 가정주부로 살다 40세에 미술가가 된 윤석남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미술가가 되는 정해진 과정을 따른 게 아니라 ‘해적처럼’ 작가가 된 이들이다. 박수지 협력 큐레이터는 “참여 작가 명단을 보고 일부러 유명 작가는 제외한 것이냐는 반응도 있었다”며 “작품으로 자기만의 해방 공간을 구축하는 작가를 일일이 발굴해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9월 7일 개막하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은 비평서 ‘관계의 미학’으로 유명한 스타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가 감독을 맡았다. 관객이 불을 쬘 수 있는 난로, 앉을 수 있는 의자부터 각자의 집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작품 등 관객 참여로 완성되는 작품으로 구성한 1999년 전시 ‘Traffic’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 부리오는 ‘판소리’를 주제로 했지만, 그 내용은 한국의 전통극인 판소리보다 ‘판’(공간)과 소리라는 단어의 의미에 더 집중했다. 언론 간담회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부리오는 그간 미술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았던 감각인 ‘소리’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할 예정이다. 거대한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소리를 테마로 어떻게 채울지, 또 광주와 한국의 지역성과 어떤 연관을 맺을지가 미술계의 관심사다. 9월 27일 개막하는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 없이’는 ‘시청각’을 비롯한 대안 공간들을 10여 년간 운영해 온 독립 기획자 현시원이 전시 감독을 맡았다. ‘시청각’은 한옥을 개조한 공간으로 2013∼2019년 운영되다 용산으로 이전했으며,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여 왔다. 조각 중심으로 진행됐던 지역 비엔날레가 서울 대안 공간의 문법과 어떻게 어우러질지가 관전 포인트다. 현 감독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수직으로 서 있는 조각을 수평으로 눕혀서 보고 싶다”고 은유적으로 전시 주제를 밝혔다. 중요한 장소에 기념비처럼 홀로 서 있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 주변 지역과 공생하고 어우러지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 이에 따라 창원의 역사나 산업사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한 김익현의 신작, 김정숙의 작품 등을 선보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년마다 열리는 현대 미술 전시인 ‘비엔날레’가 하반기 국내 여러 지역에서 개막을 앞두고 있다. 작품 거래를 목적으로 여러 갤러리가 부스를 차리는 아트페어와 달리 비엔날레는 전시 감독이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작품을 선별한다. 작품을 주어진 공간에 어떻게 배치하는지, 즉 ‘큐레이션’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다. 국내외 큐레이터들이 선보이는 각 비엔날레의 관전 포인트를 꼽아봤다.‘해적 같은 작가’ 모았다, 부산비엔날레16일 개막하는 2024 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는 뉴질랜드와 벨기에 출신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두 큐레이터 베라 메이, 필립 피로트가 감독을 맡았다. 두 감독은 미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1961~2020)가 쓴 책 ‘해적 계몽주의’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책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가 평화와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는 통념과 달리 해적 사회에서 그런 실천이 먼저 이뤄졌음을 밝혀 주목받았다.두 감독은 해적 공동체가 태풍과 같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선원이 그때마다 리더가 되었다는 유연성에 주목했다. 그 결과 참여 작가 중에는 통도사성보박물관장을 역임했고 ‘한국의 불화’ 40권을 집대성한 송천 스님,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인도와 파키스탄 등을 다니며 현지에서 구한 소재로 작업하는 이두원, 가정주부로 살다 40세에 미술가가 된 윤석남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미술가가 되는 정해진 과정을 따른 게 아니라 ‘해적처럼’ 작가가 된 이들이다.박수지 협력 큐레이터는 “참여 작가 명단을 보고 일부러 유명 작가는 제외한 것이냐는 반응도 있었다”며 “작품으로 자기 만의 해방공간을 구축하는 작가를 일일이 발굴해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스타 큐레이터’ 등판한 광주비엔날레9월 7일 개막하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은 비평서 ‘관계의 미학’으로 유명한 스타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가 감독을 맡았다. 관객이 불을 쬘 수 있는 난로, 앉을 수 있는 의자부터 각자의 집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작품 등 관객 참여로 완성되는 작품으로 구성한 1999년 전시 ‘Traffic’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이번 전시에서 부리오는 ‘판소리’를 주제로 했지만, 그 내용은 한국의 전통극인 판소리보다 ‘판’(공간)과 소리라는 단어의 의미에 더 집중했다. 언론 간담회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부리오는 그간 미술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았던 감각인 ‘소리’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할 예정이다. 거대한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소리를 테마로 어떻게 채울지, 또 광주와 한국의 지역성과 어떤 연관을 맺을지가 미술계의 관심사다.대안공간 운영 기획자의 조각비엔날레9월 27일 개막하는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는 ‘시청각’을 비롯한 대안 공간들을 10여년간 운영해 온 독립 기획자 현시원이 전시 감독을 맡았다. ‘시청각’은 한옥을 개조한 공간으로 2013~2019년 운영되다 용산으로 이전했으며, 동시대 젊은 작가들이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여왔다. 조각 중심으로 진행됐던 지역 비엔날레가 서울 대안 공간의 문법과 어떻게 어우러질지가 관전 포인트다.현 감독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수직으로 서 있는 조각을 수평으로 눕혀서 보고 싶다”고 은유적으로 전시 주제를 밝혔다. 중요한 장소에 기념비처럼 홀로 서 있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 주변 지역과 공생하고 어우러지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 이에 따라 창원의 역사나 산업사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한 김익현의 신작, 김정숙의 작품 등을 선보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90년대 말 영국의 젊은 미술가(yBa·young British Artists)들이 죽은 상어, 침대, 피로 만든 두상 등을 작품이라고 주장하며 전시할 때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은 미술가가 아니다”라고 반박한 화가들이 있다. 이들 중 한 사람이었던 빌리 차일디시(본명 스티븐 햄퍼·65·사진)는 그림에 집착(stuck)한다는 연인 트레이시 에민의 핀잔을 그대로 가져와 ‘스터키즘’(회화를 고집하는 미술 운동)을 선언했다. 영국 미술사가 가장 뜨거웠던 시절 한가운데 있었던 화가 차일디시의 최근 작품이 리만머핀 서울에서 공개됐다. 4일 개막한 차일디시의 개인전 ‘now protected, I step forth(보호받았으니, 나는 이제 나아간다)’는 작가의 자화상으로 시작한다. 여러 색의 유화 물감으로 붓 터치를 하고, 목탄으로 윤곽을 잡은 그림은 배경의 리넨이 훤히 보인다. 여러 번 고민하고 고친 게 아니라 즉흥적으로 그려 나간 느낌이 역력하다. 차일디시는 이렇게 틀에 묶이지 않는 요동치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해 왔다. 그가 쓴 시나 음악에서는 마약 딜러로 감옥을 드나든 아버지 등 굴곡진 가정사나 트라우마에 대한 적나라한 고백이 등장한다. 16세에 중학교를 그만두고 미술학교 진학에 실패하자 지역 조선소의 견습 석공으로 일했고, 홀로 그린 그림 수백 점을 제출해 런던 세인트 마틴 예술학교에 입학했지만 2년 만에 퇴학을 당하고 오랜 기간 직업 없이 살기도 했다. 그런 중에도 소설과 시 40여 권, LP 170여 장을 발매하며 창작 활동을 한 그는 자신을 ‘아웃사이더 예술가’로 규정한다. 2012년 한국 첫 개인전에서는 이런 예술가들의 ‘기이한 용기’를 주제로 연작을 공개하며 한국의 문학가인 이광수와 이상의 초상을 그리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그런 뜨거웠던 시간은 뒤로하고 고요하고 신비로운 자연 풍경을 주로 담았다. 보랏빛 구름이 일렁이는 하늘 가운데 떠 있는 달, 눈밭 위에 서 있는 나무, 숲을 헤치며 어슬렁거리는 늑대가 등장한다. 리만머핀 서울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아름다움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숭고함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8월 1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대형 미술관, 갤러리뿐만 아니라 젊은 기획자, 작가가 운영하는 을지로, 합정 일대 대안 공간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를 직접 찾아 사진으로 남기고 영어 글로 소개하는 플랫폼 ‘서울 아트 프렌드’를 운영하는 기자 겸 비평가 앤디 세인트루이스가 최근 한국의 밀레니얼 예술가를 영어로 소개하는 책 ‘Future Present: Contemporary Korea Art’를 펴냈다.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세인트루이스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는 지금,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현대 미술가도 국제적으로 발돋움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인인 그는 2010년부터 한국 미술 현장을 다니며 전시 리뷰, 비평을 영어 매체에 소개했다. 2013년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2018년 다시 한국에 온 후 인스타그램 계정 ‘서울 아트 프렌드’를 만들어 지금까지 서울의 전시 정보를 해외 구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책은 강서경, 김아영, 박가희, 백정기, 이은새 등 1970년대 후반 이후 출생한 작가 25명에게 집중한다. 젊은 작가에게 초점을 둔 이유를 그는 “나 역시 밀레니얼 세대이기에 친밀감을 느끼고, 그들이 이전 세대보다 국제적 문화 이슈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느낀다”며 “역사와 전통을 재해석하고, 사회 문화적 규범을 뒤집어 보거나 개인의 정체성을 적극 주장하는 태도 등이 해외 문화 담론과 접점이 있다고 봤다”고 했다. 이탈리아 미술 전문 출판사인 스키라에서 책을 펴내며 우여곡절도 많았다. 우선 많은 작가를 한번에 소개하는 만큼 수록된 작품 사진만 200장이 넘는다. 그는 “한국의 디자인 스튜디오인 워크룸과 논의한 끝에 책 페이지마다 전화번호부나 백과사전처럼 얇은 가로선을 넣어 찾아보기 쉽도록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출판사가 요구하는 인쇄 수준에 맞추려니 많은 비용이 필요했는데 마침 송은문화재단에서 신진, 중진 한국 작가에 관한 영어 출간물 후원을 시작해 책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 미술 현장을 10여 년간 지켜본 그는 “해외 갤러리가 서울에 진출하고, 프리즈 아트페어까지 열리면서 국내 미술 시장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며 “특히 새롭게 갤러리들이 생겨난 한남, 이태원, 경리단 지역이 미술 현장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밀레니얼 예술가들이 국제 미술 현장에 관심을 갖는 것과 동시에,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갈고닦고 있다”며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이 한국 미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현장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신난다”고 덧붙였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교통과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개방적인 세상을 맞았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다른 문화, 종교, 욕망이 충돌하며 국경을 걸어 잠그거나 교역을 제한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국가주의, 고립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책은 수백 년 전 세계의 상품이 모여들던 포르투갈 리스본에 살던 두 남자를 조명해 지금을 되돌아보게 한다. 첫 번째 인물은 16세기 후반 포르투갈 왕립 기록물 소장이던 다미앙 드 고이스(1502∼1574)다. 책은 그가 벽난로 옆에서 반쯤 타다 만 문서 조각을 쥔 채 사망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은 엇갈린다. 시신에 폭력의 흔적은 남았지만 불에 타 죽은 것인지, 교살당했는지, 그 범인은 누구인지 밝혀진 바가 없다. 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두 번째 인물 루이스 드 카몽이스( ?∼1580)가 나타난다. 카몽이스는 세계를 방랑하며 겪은 경험을 서사시로 담아냈다. 이 서사시는 라틴어,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돼 그는 포르투갈 국민 시인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그가 남긴 편지를 비롯해 다미앙 사망의 진범을 파헤칠 단서들이 드러나게 된다. 다미앙은 기록 보관소에서 종이 더미에 파묻혀 살았지만, 세계에서 모여든 기록을 탐독하며 넓은 시야로 변화하는 세상을 봤다. 반면 세계를 떠돌아다닌 카몽이스는 서사시를 통해 유럽인을 세계의 중심으로 내세우며 오히려 편협한 시각을 고집했다. 이 두 이야기를 교차하며 책은 어쩌면 인간은 낯선 사람과 문화를 접할수록 불안해하고 공격적으로 되며, 그러한 편협함이 본능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물리적 연결보다도 열린 태도로 세상을 볼 줄 알았던 다미앙의 시각과 상상력이 지금 더 필요한 자세임을 강조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책, 도서관, 여행을 연구하고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치는 저자의 꼼꼼한 연구와 이를 토대로 추리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서술이 인상적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폭격기, 탱크 등 전쟁에 관한 이미지를 흑백의 거친 드로잉으로 보여 온 작가 최대진이 ‘꽃 그림’을 그렸다. 10일부터 서울 종로구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내가 (살아)본 모든 살인들(Tous les meurtes que j’ai v(ec)us)’에서 작가는 처음 그려 본 꽃 그림을 공개했다. 전시장에는 흑백 드로잉 10여 점이 걸려 있다. 여기엔 서울의 풍경을 넓게 펼친 ‘두 개의 달’부터 작가가 대학생 시절 집회에 나섰다가 경찰에게 둘러싸여 얻어맞는 모습을 담은 작품, 걸그룹 에스파까지 다양한 장면을 그린 작품이 소개된다. 그리고 이 그림들 사이사이로 마치 칸막이를 치듯 장미꽃을 그린 작품 ‘오웰의 장미’ 연작이 배치되어 있다. 작가는 “꽃 그림은 미술 시장에서 팔기 위해 그린 쉬운 작품이라는 독특한 의미가 있다”며 “그럼에도 리베카 솔닛이 쓴 ‘오웰의 장미’를 읽으며 꽃이 주는 다른 감정에 공감하게 돼 그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웰의 장미’는 문학가 조지 오웰이 일반인의 인식과 달리 정원 가꾸기를 즐겼음을 밝히며,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사사로운 욕망도 사회 변화의 중요한 요인임을 드러낸 책이다. 최 작가는 “‘오웰의 장미’처럼 사소하지만, 개인의 일상에선 커다란 기쁨이 되는 감성에 집중한 결과물이 꽃 그림 연작”이라고 설명했다. 8월 4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버려진 비닐봉지를 오리고 붙인 뒤 그 위에 환경에 관한 관심을 드로잉과 메시지로 담아 공중에 띄우는 ‘무세오 에어로솔라’가 서울 하늘에도 등장한다. 리움미술관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작가 토마스 사라세노와 함께 공공 참여 프로그램 ‘에어로센 서울’을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에어로센’은 사라세노가 2007년부터 시작해 예술가, 활동가, 과학자 등과 협업해 ‘생태 사회 정의’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하는 공동체로, 전 세계 126개 도시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하나로 열리는 ‘무세오 에어로솔라’는 서울 용산구 내 단체들과 협업해 비닐봉지 약 5000개를 수집하고 이를 태양열을 이용해 다음 달에 띄운다. 또 에어로솔라 조형물을 오직 태양열만 이용해 띄우는 비행 키트인 ‘에어로센 백팩’을 제작하는 워크숍도 광주, 경기, 대구, 대전, 부산 등의 지역 미술관과 함께 개최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순신의 얼굴을 어떠한 어른으로 꾸밀지 한참 생각하였다. 용감한 무장으로 그리면 족할까, 아니 아니 춘원(이광수)의 말씀을 들으면 지, 덕, 용을 갖춘 어른의 얼굴로 그려야 할 것이다.” 한국적 산수의 전형을 만든 청전 이상범(1897∼1972)은 삽화를 그리는 신문사 미술기자로도 오랫동안 활동했다. 그는 1931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광수 소설 ‘이순신’의 삽화를 그릴 때 고민을 글로 남겼다. 청전은 “무장, 도덕 군자, 선비의 얼굴을 혼합했다”며 “순전히 내 머리에서 빚어낸 얼굴을 후세가 어떻게 비평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그 후 청전은 현충사 중건 과정에서 필요하게 된 이순신 영정도 제작한다. 청전처럼 20세기 신문사에서 기자 또는 사원 직함을 달고 전속 화가로 활동한 ‘미술기자’를 조명하는 전시 ‘아담한 필촉: 기자가 그려낸 신문 삽화 미장센’이 12일 서울 종로구 신문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삽화 미술의 시작 전시는 1910년대 신문 삽화 미술의 태동부터 1920년대 전성기를 미술기자의 행적을 중심으로 선보인다. 한국에서 최초의 만화가로 알려진 이는 이도영(1884∼1933)이다. ‘대한민보’의 1909년 창간호 1면에 목판 인쇄로 시사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이도영은 당대 최고 도화서 화원 출신 조석진과 안중식에게 전통 회화를 배웠다. 이도영이 그린 최초의 만화를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문사에 소속돼 활동한 최초의 미술기자는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도 불리는 고희동이다. 동아일보 창간 동인으로 참여한 고희동은 안석주, 이마동, 이승만 등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도 대거 신문사로 영입해 미술기자 시대를 열었다.● 미술기자 전성시대 전시의 중심은 전성기 활약한 미술기자들이 남긴 자료다. 1920년대 여러 일간지가 창간되면서 각 신문은 화가를 미술기자로 채용했다. 이들은 일반 기자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으면서 신문에 필요한 도안, 삽화, 만화 등을 제작했다. 전시장에 비치된 대형 리플릿을 통해 청전을 비롯한 당대 미술기자들이 고민했던 흔적을 글로 볼 수 있다. 청전은 이순신은 물론 이광수의 ‘단종애사’ 삽화 제작도 가장 어려웠던 일로 꼽았다. 등장인물인 단종, 수양대군, 평안대군의 얼굴에 관해 남겨진 기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 건축부터 의복, 의관, 악기까지 어떠했는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했기에 이광수와 부지런히 대화해야 했다. 당시 신문 소설은 지금의 영상 콘텐츠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는 오락의 수단이기도 했다. 신문사들은 소설을 비롯한 문예 지면이 상업성과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전문 미술인을 채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체계적인 미술 교육을 받거나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 능력을 인정받은 화가들이 삽화 제작에 활발히 참여했다. 당시 동아일보의 이상범, 조선일보 노수현, 매일신보 이승만은 ‘삽화계 삼대 천왕’으로 불리며 당대 신문 삽화 미술의 부흥을 이끌었다. 전시 후반부는 1930년대 이후 신문사를 떠난 미술기자들이 영화감독, 미술가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에 종사하는 과정을 그린다. 안석주(1901∼1950)는 삽화가로 기른 재능을 영화 연출에 활용했는데, 그가 남긴 흑백 유성영화 ‘심청’이 상영된다. 한국화가 천경자와 ‘고바우 영감’의 작가 김성환의 1960, 70년대 소설 삽화와 만평도 전시된다. 9월 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멕시코에서 전시를 열었지만 한국에서는 이번이 처음인 아침 김조은의 개인전 ‘최소침습’에는 두 겹으로 된 비단 그림이 있다. ‘Unshoved(빼내다, 내 목에서 뼈를 꺼내는 엄마 위 생선요리)’라는 제목의 그림 위 겹에는 생선 요리가, 아래 겹에는 딸의 목에 걸린 생선 가시를 빼주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11일 전시가 열리는 서울 강남구 글래드스톤에서 만난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밥을 먹는데 목에 피가 날 정도로 생선 가시가 박혔어요. 아빠는 ‘밥을 꿀떡 삼켜’라고만 하는데, 엄마가 망설임 없이 제 입에 손을 넣고 가시를 뺐고 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어요. 딸에게 엄마는 경계 없는 사랑을 베풀지만 그게 때로 괴로운, 미묘한 관계잖아요.” 이 작품의 아래 겹 그림은 202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개인전에서 선보인 ‘사자굴’ 연작의 일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가족의 고통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고, 빚쟁이가 아버지를 찾겠다고 우유 구멍으로 손을 집어넣는 극한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는 “가족이 터부시하던 시절이었는데 응어리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집 문고리가 어떻게 생겼더라?’ 하고 작은 이야기로 가족과 대화를 시작했다”고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관객들은 작가는 물론 부모님까지 붙잡고 저마다의 어려웠던 시절을 털어놓았고, 신진 작가임에도 LA카운티뮤지엄(LACMA)의 큐레이터와 아티스트 토크를 열었다. 그는 “비디오 가게, 우유 구멍, 피아노 같은 한국인만 알 수 있는 상징이 많은 작품이어서 한국 미술관에서도 꼭 전시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내며 파티나 개막식에도 잘 가지 않는 ‘내향인’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과 섬세함이 묻은 전시에 대한 입소문으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치렀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 소감을 묻자 그는 “지금도 한국에 오면 꼭 고속터미널역에 있는 한가람문고를 가는데, 어릴 때는 주저하며 샀던 비싼 전문가용 붓을 한 꾸러미 사는 순간에야 실감이 났다”며 웃었다. 이번 전시 제목은 ‘최소한으로 자신을 드러내길 바라며 누군가의 기억엔 강렬하게 남고 싶어 하는’ 아이러니한 사람들의 인생 철학을 담았다. 최근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사자굴’ 연작처럼 개인사를 직접 이야기하기보다 느낌과 감정을 담은 것이 많다. 전시장에서는 액자를 벽에서 살짝 띄우거나, 다른 느낌의 천을 겹치고, 왼쪽 오른쪽을 함께 그리는 등 어느 쪽으로도 결정 짓지 않으려는 연출이 돋보인다. 이에 대해 그는 “작품과 전시를 ‘초고’ 상태로 두기를 좋아한다”며 “오늘의 나보다 미래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일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 달 3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주 전 발송한 프라도 미술관 큐레이터 하비에르 포르투스 페레스 인터뷰의 이어지는 내용입니다.지난 뉴스레터 보기 ☞ 서양 미술사의 가장 미스터리한 그림, ‘시녀들’ 이탈리아 고전 미술의 영향- 벨라스케스가 초상, 역사화 등 전통적인 구분을 깼지만 그 바탕에는 고전 미술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있었다고요.맞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이탈리아를 두 번 여행했는데, 30세에 떠난 첫 번째 여행에서 시스틴 채플, 바티칸 벽화, 고대 로마 조각 등을 그렸습니다. 그러한 고전 예술에서 벨라스케스가 많은 배움을 얻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예를 들어 이 그림은 이탈리아로 여행하기 직전에 그린 것입니다. 훌륭하지만 공간의 관점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죠. 인물이 모두 전경에 나열되어 있어서 공간이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그리고 몇 달 뒤 고대 조각,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연구한 뒤 공간 문제를 해결했음이 다음 작품에서 드러나죠.여기서 공간은 매우 작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죠. 또 인물을 보면 고대 조각을 연구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모든 인물들이 일상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벨라스케스만의 특징도 살아 있습니다.- 벨라스케스 그림 속 사람들은 늘 움직이는 듯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간을 포착한 것 같아요. 네. 인물의 얼굴은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을 연상케 하지만, 벨라스케스는 늘 다르게 보이는 것을 추구했어요.처음부터 남들과 달라야 함을 생각했다는 것이 벨라스케스의 주요한 특징이죠.이탈리아 로마에 가서도 고대 예술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늘 ‘다름’을 고민했어요.- 고대 예술을 해석해서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네요. 벨라스케스를 이해하려면 그가 유럽 전역에서 가장 중요한 회화 컬렉션과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스페인 펠리페 4세 왕은 그 시절 가장 중요한 컬렉터였어요. 또 궁에는 티치아노, 루벤스의 최상급 작품들이 있었죠. 벨라스케스는 루벤스, 티치아노, 틴토레토, 반 다이크 그림에 둘러싸여 있었어요.‘스페인 미술’ 아닌 ‘유럽 미술 네트워크’를 조명하는 미술관의 전략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19세기까지 스페인 미술을 연구하던 역사가들은 우리 미술이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스페인에 고유한 특징을 강조하는 데 몰두했어요.그런데 그 후 이어진 연구에서 스페인이 그렇게 고립되어 있지 않았고, 오히려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의 좋은 작품들을 갖고 있음을 주목했죠.지난 50년간 스페인 미술사는 벨라스케스, 무리요, 주르바란을 고립된 화가가 아니라 유럽과 교류하고 이해하는 화가라는 관점에서 조명하려 노력했습니다.벨라스케스의 경우 티치아노, 루벤스, 반 다이크의 작품을 매우 잘 알고 있었죠. 또 이탈리아 화가도요. 이들을 아주 잘 알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갖고 싶어 했어요.- 맞아요. 어제 프라도의 컬렉션 전시를 보면서 그런 맥락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벨라스케스와 고야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상설전을 순서대로 따라가 보니 티치아노, 루벤스의 영향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현재 미술관 상설전의 배열이 정확히 그 점을 강조하려 했습니다.예를 들어, 메인 갤러리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색채 화가인 베네치아 화가들을 볼 수 있어요.그다음으로 루벤스가 있어요. 루벤스는 비록 플랑드르 사람이었지만, 베네치아 화가들의 진정한 후계자였죠. 당시에는 국가별 작가 개념이 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죠.18세기부터 미술사는 주로 국가의 관점에서 쓰여 졌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피카소가 해석한 ‘시녀들’‘시녀들’을 미술 내 장르, 국제적 미술의 관점뿐 아니라 다른 것과도 연결 지어 볼 수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연결 고리는 연극입니다.당시 스페인에선 연극은 왕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즐겼어요. 작가들은 한 작품 속에 다양한 의미를 넣어 누구나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죠.‘시녀들’에도 비슷한 속성이 있어요. 연극처럼 여러 가지 의미를 복합적으로 넣은 것이 그렇죠. 그리고 이를 정확히 이해한 예술가 중 한 명이 바로 파블로 피카소예요.- 피카소가 ‘시녀들’을 리메이크 한 연작 58점을 만들었죠?네. 그런데 마지막 작품이 무엇인지 기억하시나요? 이 작품이에요. 마치 연극 무대에서 관객에게 배우가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죠. 피카소는 ‘시녀들’ 연작을 막이 내린 연극처럼 표현했어요.-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거네요.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와 경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재밌는 건 이 연작에서 피카소가 처음엔 벨라스케스를 거인 같은 존재로 그렸는데, 뒤로 갈수록 벨라스케스가 점점 사라진다는 점이에요. - 피카소의 작품에선 늘 야망이 느껴져요. 가끔은 너무 강해서 부담스러울 정도로…그렇죠. 뜨거운 사람이었어요. 피카소는 벨라스케스보다 고야와 더 닮았어요. 두 예술가는 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어요.벨라스케스의 작품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찾기는 쉽지 않죠. 고야의 시대부터 예술들이 주관적인 생각, 정치에 대한 관점, 시대에 관한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예술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개인적으로 벨라스케스보다 고야에 더 공감할 때가 많아요. 벨라스케스는 그림과 보는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는데, 이 시대 예술가들에겐 일반적인 일이에요.- 그렇지만 벨라스케스와 고야 모두 19세기 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요. 스페인의 어떤 속성이 이런 예술을 가능하게 했는지도 궁금합니다.스페인적 요소가 전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것과 예술가가 하고 싶은 것 사이 교차점을 찾으려고 했던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스페인 예술가들은 ‘현실적인 것’을 좋아했고 이는 스페인 사회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합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