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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퀴리 부인, 베토벤, 랭보…. 연말 공연계에서 역사적 인물의 인간적 역정에 초점을 맞춘 국내 창작뮤지컬이 연이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극적 상상력을 더한 ‘팩션 뮤지컬’은 최근 창작 뮤지컬계에서 많이 선보이고 있다. 팩션 뮤지컬은 제목만 들어도 익숙한 인물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고 남녀노소 다양한 관객층을 공략하기도 좋다. 다음 달까지 공연하는 ‘1446’은 같은 해 한글을 반포한 세종대왕이 주인공이다. 세종의 잘 알려진 업적보다는 위대함에 가려진 인간으로서의 갈등과 고뇌에 초점을 맞췄다. 고흐나 라흐마니노프 등 유명 예술가의 삶을 창작뮤지컬로 제작해 일본, 중국 등에도 라이선스를 수출해 온 HJ컬처가 제작을 맡았다. 한승원 HJ컬처 대표는 “국내외 관객들의 문화적 차이를 넘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를 찾다 보니 역사적 인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1446’은 한국 전통미를 살린 의상과 무대 덕분에 외국인 관객이 많은 것도 특징. 초연 전 트라이아웃 공연과 영국 웨스트엔드 현지 크리에이터, 배우들과의 워크숍 등을 거치며 완성도를 높였다. 다음 달 선보일 ‘마리퀴리’ 역시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프랑스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1867∼1934)의 삶을 그린 창작뮤지컬이다. 과학자로서의 정체성보다 자신의 연구가 초래한 비극과 정면으로 맞서는 한 인간의 고뇌에 방점을 뒀다. 1930년대 경성 문인들의 예술과 사랑을 그려내 대만 진출에 성공한 뮤지컬 ‘팬레터’의 제작사 라이브가 제작했다. 라이브 강병원 대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을 다룬 작품은 해외 공연 때도 현지 관객이 진입장벽 없이 받아들이기 좋다”고 말했다. 시인 아르튀르 랭보(1854∼1891)의 삶을 주변 인물의 기억을 통해 재구성한 창작뮤지컬 ‘랭보’도 마찬가지다. 랭보는 해외, 특히 중국에서 마니아층이 두껍기로 유명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공동제작지원 사업의 하나로 다음 달부터 상하이 등 중국 주요 도시에서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마리퀴리’를 제작한 라이브가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와 공동 제작한다.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이달 말부터 악성(樂聖)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을 시대를 앞서간 자유인으로 묘사한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가 무대에 오른다. 또 국내 창작 작품은 아니지만,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엘리자벳’도 팩션 뮤지컬.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마지막 황후의 이야기를 소재로 해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다. 역사 소재 창작물이 연말에 집중적으로 늘어난 배경에는 방학 등으로 청소년과 20대의 문화 소비가 늘어나는 시즌이기 때문인 점도 한몫했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교육적 가치도 있지만 실제로 이런 작품들은 역사적 사실의 극적 재현을 통해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낸다”며 “익숙한 스토리라도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기 쉬워 뮤지컬 소재로도 꾸준히 각광받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12일 찾은 경기 부천시 부천문화원에서는 아름다운 화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40여 명의 어르신이 고운 목소리로 ‘장산곶타령’ ‘목련꽃’ 등을 합창했다. 이들은 부천문화원이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따르릉어르신별빛합창단’ 단원들. 매년 자체 공연뿐 아니라 여러 문화제, 봉사활동을 통해 무대에 서고 있다. 어르신들의 만족도는 무척 높다. 최성희 씨(69)는 “65세를 넘기면 참여할 단체가 마땅치 않은데 건강만 허락하면 언제까지나 활동할 수 있는 이런 합창단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고 말했다. 5년째 활동 중인 김성희 씨(72)도 “노래를 부르니 건강에도 좋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 스트레스 해소에도 최고다”며 웃었다. 지휘자 박지연 씨(47)는 “동요 외에 가곡, 뮤지컬, 오페라곡도 하는데 처음에는 못할 것 같다고 어려워하셔도 결국은 다 해내신다”며 “전공자보다 더 열정이 많은 어르신들 덕분에 감동과 자극을 함께 받는다”고 말했다. 이 합창단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의 ‘문화로 청춘’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사업은 어르신들에게 문화예술을 접하고 활동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어르신 문화예술 교육 지원 △어르신 문화예술 동아리 지원 △어르신-청년 협력 프로젝트 △작은 공연을 하는 ‘찾아가는 문화로 청춘’ △마을 축제를 개최하는 ‘동네방네 문화로 청춘’ △어르신과 어린이가 함께 어울리는 쉼터 만들기 등 6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모두 298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서울금천한내어르신복지센터의 ‘손울림’도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지난해부터 60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핸드벨 연주법을 알려주고 공연 연습도 하고 있다. 반장 서인석 씨(70)는 “핸드벨이란 악기가 생소했는데 화음이 아름다워 배우는 것이 즐겁다”며 “다른 이들과 함께 연주하니 집중력도 좋아지고 활기차게 지내는 모습에 가족도 적극 지지해 준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강사보다 먼저 와 수업 준비를 하고, 배우는 속도가 조금 느린 동료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며 열심이다. 실력이 무르익으면 정기 발표회를 열고 장기자랑 대회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문화원연합회 측은 “어르신들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해 사회와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성취감도 많이 느낄 수 있도록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부천=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12일 찾은 경기 부천시 부천문화원에서는 아름다운 화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40여 명의 어르신들이 고운 목소리로 ‘장산곶타령’ ‘목련꽃’ 등을 합창했다. 이들은 부천문화원이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따르릉어르신별빛합창단’ 단원들. 매년 자체공연 뿐 아니라 여러 문화제, 봉사활동을 통해 무대에 서고 있다. 어르신들의 만족도는 무척 높다. 최성희 씨(69)는 “65세를 넘기면 참여할 단체가 마땅치 않은데 건강만 허락하면 언제까지나 활동할 수 있는 이런 합창단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고 말했다. 5년째 활동 중인 김성희 씨(72)도 “노래를 부르니 건강에도 좋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 스트레스 해소에도 최고다”며 웃었다. 지휘자 박지연 씨(47)는 “동요 외에도 가곡, 뮤지컬, 오페라곡도 하는데 처음에는 못할 것 같다고 어려워하셔도 결국은 다 해 내신다”며 “전공자보다 더 열정이 많은 어르신들 덕분에 감동과 자극을 함께 받는다”고 말했다. 이 합창단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의 ‘문화로 청춘’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사업은 어르신들에게 문화예술을 접하고 활동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어르신문화예술교육 지원 △어르신문화예술동아리 지원 △어르신·청년 협력프로젝트 △작은 공연을 하는 ‘찾아가는 문화로 청춘’ △마을 축제를 개최하는 ‘동네방네 문화로 청춘’ △어르신과 어린이가 함께 어울리는 쉼터 만들기 등 6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모두 298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서울금천한내어르신복지센터의 ‘손울림’도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지난해부터 60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핸드벨 연주법을 알려주고 공연 연습도 하고 있다. 반장 서인석 씨(70)는 “핸드벨이란 악기가 생소했는데 화음이 아름다워 배우는 것이 즐겁다”며 “다른 이들과 함께 연주하니 집중력도 좋아지고 활기차게 지내는 모습에 가족도 적극 지지해준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강사보다 먼저 와 수업 준비를 하고, 배우는 속도가 조금 느린 동료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며 열심이다. 실력이 무르익으면 정기 발표회를 열고 장기자랑 대회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문화원연합회 측은 “어르신들이 문화예술활동에 참여해 사회와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성취감도 많이 느낄 수 있도록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하겠다”고 밝혔다.부천=박선희 기자teller@donga.com}

수복 할아버지는 벽장에서 오래된 무명 실타래를 꺼내든다. 할아버지가 아기였을 때 돌상에서 잡았던 실타래다. 그 실타래 속에는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할아버지는 사실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고약한 저승 할망의 훼방 때문에 약한 몸으로 태어나게 됐지만, 삼신 할망은 수복 할아버지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곳곳에서 지켜줬기 때문이다. 생명이 태어나 어엿한 어른으로 자라기까지 필요한 수많은 정성을 우리의 전통 신화 속 삼신 할망과 저승 할망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통해 재미있게 풀어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부자라서 선생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 같은 장군이가 미운 동호. 심술이 나 장군이네 감자밭을 파헤치고 된통 혼만 났다. 하필 그때 학교로 가는 길을 물어오는 웬 할아버지. 동호는 엉뚱한 길을 알려주는데 알고 보니, 그 할아버지는 학교에 작은 도서관을 선물해준 고마운 분이다. 한참 뒤 학교에 도착한 할아버지를 보고 동호는 주눅이 들지만, 할아버지는 따뜻한 시선으로 동호를 바라봐준다. 동아일보와 함께 전국에 도서관을 지어주는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 김수연 목사(할아버지)의 실화를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9일 서울 성동구 소월아트홀. 초등학교 3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의 학생으로 구성된 ‘성동구립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피아노 트리오, 에델바이스 등에 이어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연주를 선보였다. 성동구청과 성동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제7회 성동구립 꿈의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 자리였다. 단원들이 선보이는 수준급 연주에 객석을 채운 관객 400여 명의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입단 때만 해도 음악이 뭔지, 어떤 악기가 있는지도 몰랐던 학생들이었다. 6년 전 창단 때부터 오케스트라를 이끈 윤용운 지휘자(55)는 “음악 교육이 생경했던 아이들이 악기를 택하고 무대 경험을 쌓으며 차츰 음악적 성장을 이뤄가는 과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라며 “오케스트라라는 단체활동을 통해 사회성을 배우며 의젓해지는 모습에서도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성동구립 꿈의 오케스트라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문화사업인 ‘꿈의 오케스트라’의 일환으로 처음 출발했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청소년 음악 교육을 위한 오케스트라 시스템) 한국판이라 할 수 있다. 지역사회 청소년들이 음악적 감수성 함양을 통해 성장하도록 돕는 문화예술교육사업이다. 2011년 처음 시작한 ‘꿈의 오케스트라’는 8년 동안 전국에서 1만4500여 명이 참여했다. 현재는 전국 43개 기관에서 아동 및 청소년 2700여 명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통 해마다 3, 4월경 신규 단원을 충원하고 전문 강사진이 주 2, 3회 수준 높은 음악 교육을 제공한다. 단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학생들은 정기 연주회, 합동공연 등 다양한 무대 경험을 통해 그동안 갈고 닦은 연주 실력을 선보인다. 특히 올해 7년 차에 접어드는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은 전국에서 최초로 ‘구립 오케스트라’로 전환되면서 ‘성동구립 꿈의 오케스트라’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거듭났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성동구처럼 안정적이고 투명한 운영을 지속해 전문적인 ‘엘시스테마’형 오케스트라 교육을 실행할 역량을 갖춘 곳을 자립 거점 기관으로 지정한다. 자립 거점 기관은 엘시스테마 사업의 지역사회 안착과 지속 가능한 운영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중장기 발전 전략을 추진한다. 정기 교육과 연주회, 특별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교육 행정 제반을 관리한다. 또 지역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문화 나눔 활동으로 지역 네트워크의 구심점 역할까지 수행하길 기대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각 지역의 ‘꿈의 오케스트라’가 지역 특성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자발적인 학습을 지원하고 있다”며 “최초의 ‘구립 오케스트라’로 전환이 된 ‘성동구립 꿈의 오케스트라’처럼 자생력을 갖춘 자립 거점 기관을 늘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비좁고 어두운 방 안. 아픈 남편을 위해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 몰래 돈을 빌린 사건을 고백하는 노라(정운선)의 독백으로 극은 시작된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이 1879년 발표했던 ‘인형의 집’에서 이 사건은 극 내내 주된 갈등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독백이 끝나자 무대가 넓어지고 천장이 높아지더니 위에서 거대한 달 같은 조명이 천천히 내려온다. 다섯 명의 배우는 둥근 조명 아래서 원시의 느낌이 물씬한 격정적인 춤을 춘다. 입센 작품 중에서도 여성 해방과 성평등 문제를 환기시킨 것으로 유명한 ‘인형의 집’이 6일부터 최근 어느 때보다 젠더 이슈로 뜨거운 국내 무대에 올랐다. 줄거리는 원작을 그대로 따라간다. 주인공 노라는 남편을 요양시키려 몰래 급전을 얻었다. 건강을 되찾은 뒤 그 사실을 안 남편은 돌변한다. 자신이 남편의 ‘인형’일 뿐이었음을 깨달은 노라는 자신의 삶을 찾아 가족을 떠난다. 하지만 강렬한 오프닝에서 보듯 이번 공연은 러시아 최고 권위의 연극상인 ‘황금마스크상’을 수상한 유리 부투소프(57)의 파격적인 연출이 두드러진다. 극의 줄기 외에는 대부분 전위적 변형이 가해졌다. 예컨대 원작에는 지문이 없지만 이번 무대는 랑크 박사(홍승균)가 극의 해설자처럼 지문을 읽어준다. 그는 “그, 그녀, 그게 뭐 중요한가요? 우리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라는 대사를 반복적으로 던지며 추상적으로 재구성한 장면의 문제의식을 분명히 한다. 어둡고 텅 빈 무대에서 무대 장치와 조명, 소품도 의미심장하다. 천장 높이가 달라지고 위압적인 기둥이 내려왔다 올라가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등장인물들이 그 공간에 억눌려 있거나 갇혀 있다는 인상을 준다. 노라가 인형으로 장식된 병원용 침상이나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앉는 책상, 헬메르가 얼굴과 머리를 씻는 얼음물 등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139년 전만 해도 가정을 버린 노라의 가출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파격적으로 와 닿지 않는 오늘날,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 여성의 자기선언을 넘어 더 깊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부투소프 연출은 “후퇴와 진전을 반복하는 여성 문제뿐 아니라 이기심과 선택,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파격적인 재해석이 오히려 고전의 가장 충실한 번역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일깨운다. 2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3만∼7만 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는 골목길 의자에 앉아 쭈글쭈글한 얼굴로 늘 천둥처럼 고함만 친다. “이놈, 인사 안 하냐?” 학교를 마치고 올 때마다 나는 겁에 질린다. 저 할아버지 좀 안 만날 수는 없을까. 그런데 오늘은 할아버지가 늘 앉아 있던 의자가 비어 있다. 웬일인가 싶어 봤더니, 아이들에게 딱지를 접어주며 함께 놀고 있다. 할아버지가 딱지놀이를? 무섭기만 한 옆집 할아버지도 이런 놀이를 할 수 있었다니. 설마 할아버지에게도 나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던 것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자 무섭기만 하던 할아버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아이도 한 뼘 더 자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세상은 맨 처음 어떻게 시작됐을까. 어느 날 아주 커다란 소리가 난다. 우주 대폭발 사건. 우주의 모든 것은 이렇게 시작됐다. 작지만 무거운 덩어리가 폭발하며 빅뱅이 일어난 것이다. 폭발로 흩어졌던 작은 원소들이 서서히 뭉치며 태양계가 생기고, 우리가 사는 이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도 수많은 생물이 진화를 거듭하며 만들어진다. 인간도 그중 하나. 이리저리 떠돌다가 농사를 짓고 마을과 도시를 만들었고 그들의 후손이 바로 우리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 명료한 그림으로 우주의 시작과 생물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진화론을 설명하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사양의 길을 걷고 있던 서커스란 장르를 화려하고 현란한 최신의 무대 예술로 탈바꿈시킨 ‘태양의 서커스’. 이 작품의 저력은 3년 만에 국내에서 새롭게 선보인 공연 ‘쿠자’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재치 넘치는 연극적 구성, 화려한 무대 의상, 수준급의 라이브 음악과 연출 등 모든 것이 환상의 세계 속으로 편입된 것처럼 세련됐다. 하지만 뭣보다 인상적인 건 역시나 아티스트들의 놀라운 묘기들이다. 7.6m 상공 외줄에서 4명이 동시에 자전거를 타는 ‘더블 하이 와이어’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360도로 회전하는 거대한 바퀴 두 개를 중심으로 활공하듯이 박력 넘치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휠 오브 데스’도 거센 함성을 끌어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배우들의 고난도 묘기는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넘어서 예술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태양의 서커스 전용 극장인 ‘빅탑(빅톱) 시어터’의 무대는 270도로 개방된 시야를 제공하는 원형 관람석 형태를 갖추고 있다. 낮고 넓게 퍼진 관람석은 뜨거운 열기, 기묘하고 환상적인 묘기를 즐기기에 최적화된 형태로 즐거움을 더해줬다. 모든 관객이 한마음으로 관람했던 아슬아슬한 묘기가 끝나고 무대가 교체될 때마다 공연 시작 전부터 바람잡이 역할을 했던 배우들이 등장해 분위기를 띄워준다. 관람만 하는 공연이 아니라 객석 사이를 구석구석 비집고 들어와 휘저어놓는 배우들 덕분에 공연장 전체가 무대가 되고 관객들 역시 일부가 된다. 다가오는 연말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찾고 있다면 명불허전.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공연 하이라이트에 비해 다소 서정적인 마무리는 ‘마지막 또 한 방’을 내심 기대하던 관객에겐 살짝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12월 30일까지.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빅탑시어터. 7만∼26만 원. ★★★☆(★ 5개 만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케이팝 한류는 방탄소년단 이후 새 전기를 맞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세대 케이팝은 현지화를 추구했다. ‘아시아의 별’ 보아는 2002년 한국 가수 최초로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해 당시 충격을 줬다. 그러나 1위를 차지한 ‘Listen to My Heart’는 일본어로 노래한 앨범이었고 고무로 데쓰야 등 일본 작곡가들이 지은 곡으로 채워져 있었다. 2009년 빌보드 싱글 차트 76위에 오르며 화제가 된 원더걸스의 ‘Nobody’ 역시 현지 언어인 영어 버전이었다. 보아가 그랬듯 현지화에 주력했다. 당시 원더걸스는 미국 인기 그룹 ‘조너스 브러더스’의 투어에 오프닝 가수로 들어가 미국 전역을 돌며 홍보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세계가 케이팝에 주목하는 방식을 바꿨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 가사 그대로 해외에서 인기를 얻었다. 현지화 전략을 펼치지 않고도 해외에서 먼저 찾는 가수가 됐다. 현재는 국내와 해외를 자연스레 동시에 공략하는 ‘유비쿼터스형’ 케이팝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그동안 해외 각국에 다져진 케이팝 팬덤의 씨앗에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동시적 전파력이 합쳐지면서 시너지를 낸다. 방탄소년단(BTS)의 후예도 자연스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BTS를 선점한 스티브 아오키는 최근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남성그룹 몬스타엑스와 작업해보고 싶다”고 했다. JYP 소속 남성그룹 갓세븐(사진)은 이미 2016년 MTV 유럽 어워드에서 ‘월드와이드 액트’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팬덤을 일구고 있다. 최근엔 SM 소속 NCT127의 상승세도 주목할 만하다. 세계적인 음원 플랫폼인 ‘애플뮤직’에서 주목할 신인으로 조명했고 지난달 빌보드 앨범 차트에 86위로 진입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유명해지는 그룹도 생기고 있다. 남성그룹 엔티비는 2016년 일본에서 먼저 데뷔해 현지 투어를 도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5년 데뷔한 남성그룹 스누퍼 역시 일본, 영국, 베트남, 러시아 등에서 활동해 국내보다 해외 팬들에게 친숙하다. 혼성그룹 카드는 중남미 투어를 돌며 한국어 가사 제창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팀이다. 박선희 teller@donga.com·임희윤 기자}

눈처럼 새하얀 털을 가진 귀여운 생쥐. 생쥐는 털이 더럽혀질까 봐 외출도 잘 하지 않는다. 어느 날, 바람에 날리는 씨앗을 쫓아가다 그만 의도치 않게 먼 여행을 떠나게 된다. 바람, 불의 집을 거치면서 생쥐는 시커멓게 때가 타지만, 그 사이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강해지고 성장한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물의 집을 거쳐 새하얀 몸을 되찾고 집으로 돌아온 생쥐. 이제는 자신감 있게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둔다. 마음의 빗장을 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지구를 떠나 우주의 한 가족에게 입양된 소녀. 처음에는 모든 것이 이상하고 낯설기만 하다. 새 가족들의 피부는 초록색. 팔은 네 개에 귀는 뾰족하고 키도 무척 크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소녀는 조금씩 알아간다. 새 가족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가족에게 마음을 여는 소녀는 피보다 진한 정으로 뭉친 가족과 새롭고 행복한 삶을 산다. 혈연관계를 넘어선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의미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요즘은 ‘리뷰(후기)’ 없이는 되는 게 없다. 영화나 책을 선택하는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소비, 교육 등 중대사에 이르기까지 다들 리뷰 검색부터 한다. 남들 경험담을 열심히 찾는 만큼, 자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소소한 후기를 올리는 이도 많다. 비슷한 이유에서 개인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얼마 전 한 게시물을 포털사이트가 강제로 내려버렸다. 제법 규모 있는 유아용품업체 서비스에 실망한 경험을 썼더니 해당 회사가 문제를 삼아서였다. 해명 기회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한 게 황당했다. 찾아보니 비슷한 일을 당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았다. 실제 명예훼손의 성립 여부는 업체에서 소송을 걸 경우 비방 목적이 있었는지 등을 따져 법적으로 다퉈야 한다. 하지만 일단 업체에서 포털에 피해신청을 하기만 하면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30일 동안 온라인 게시물 중단이란 ‘임시조치’가 실행돼 버린다. 물론 임시조치는 인터넷 게시글 때문에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등을 당한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필요한 제도다. 하지만 피해 접수와 실행은 이처럼 즉각적이고 간단한 데 비해 반론 절차는 별도로 규정돼 있지 않아 복잡하다. 부당하다고 생각해 이의신청을 하려면 사유 해명 등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후 이어질 수 있는 법적 공방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엄포도 받는다. 이처럼 과정이 번거롭고 부담스럽다 보니 그저 일상 경험담을 나누려던 평범한 시민들은 게시물을 일방적으로 내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참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포털 임시조치는 최근 5년간 200만 건을 넘어섰지만, 이의 제기는 7.5%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추후 분쟁 가능성까지 감수하면서 이의신청을 해도 실제 게시물이 복원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명예훼손 요건이 성립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일단 자기들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입막음하려 이 제도를 악용하는 업체들이 나오기 쉽다는 뜻이다. 자유로운 인터넷 바다에서 왜 그렇게 ‘좋은 후기’들만 넘치는지 짐작이 가는 이유다. 정보통신 시대에 음식점, 온라인 쇼핑몰, 소비재 기업에 대한 생활밀착형 경험조차 솔직하게 나누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포털의 임시조치는 법 취지와는 달리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위축시킨다는 지적으로 개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자본, 규모 면에서 우위인 기업이 소비자를 압박해 입맛에 맞는 후기나 평가만 유통되도록 만드는 꼼수로 사용해선 곤란하다.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많지만 개정안은 계속 계류 중이다.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으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동일한 관점에서 표현의 자유와 이의 제기를 형평성 있게 보장해주는 것 역시 소중하지 않을까.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세계적인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39)의 ‘라 바야데르’와 국내에서 첫선을 보이는 ‘마타 하리’. 유니버설발레단(UBC)과 국립발레단이 화려한 라인업과 이채로운 대작을 나란히 무대에 올려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세기의 발레리나’로 칭송받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자하로바는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UBC의 인기 레퍼토리 ‘라 바야데르’의 주인공인 무희 니키아를 연기한다. 자하로바가 발레 전막 공연으로 내한한 것은 2005년 볼쇼이발레단의 ‘지젤’ 이후 13년 만이며 한국 발레단과 호흡을 맞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하로바는 지난달 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배울 게 무궁무진해 나 자신을 학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용계 최고의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무용수상을 두 차례(2005, 2015년)나 수상했고 러시아 인민예술가 칭호까지 받았지만 스스로를 여전히 채찍질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러시아 볼쇼이발레단과 이탈리아 라 스칼라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를 함께 맡고 있다. 우리 나이로 불혹이지만 그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므로 은퇴 시점은 신만이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의 무희’란 뜻의 ‘라 바야데르’는 프랑스 출신 안무가이자 고전발레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가 러시아 황실 발레단을 위해 인도 황금제국을 배경으로 만들었다.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를 중심으로 사랑과 복수, 용서를 압도적인 규모로 담아냈다. 자하로바는 “니키아는 순수함과 열정적 사랑뿐 아니라 배신으로 인한 고통 등 여러 색깔의 모습을 보여줘야 해 어렵지만 고전발레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프티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세종문화회관과 UBC가 공동으로 마련했다. 지난해 이 작품의 솔로르 역으로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남성무용수상을 받은 데니스 로드킨이 다시 솔로르를 연기한다. 1만∼12만 원. 국립발레단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4일까지 ‘마타 하리’를 선보인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1993년 당시 몸담았던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안무가 레나토 차넬라가 25년 만에 국립발레단을 위해 새롭게 안무를 짰다. 이중스파이로 몰려 삶을 마감한 마타 하리가 무용수로서의 성공을 꿈꾼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1막에서는 신비롭고 이국적인 춤으로 대중의 열광과 부(富)를 동시에 거머쥔 마타 하리의 화려한 과거가 펼쳐진다. 2막에서는 인기와 명성, 무용수로서의 인생이 좌초되고 연인에게 배신당하며 이중스파이 혐의로 최후를 맞는 모습을 그렸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행했던 관능적 무용을 재해석한 안무와 11벌에 이르는 마타 하리의 무대의상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과 박슬기, 신승원이 마타 하리 역을 맡았다. 5000∼10만 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국내 창작무용 명인들의 공연과 대중에게 친숙한 스타 커플들의 공연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제39회 서울무용제가 다음 달 22일부터 12월 4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다. 서울무용제는 창작무용 공연을 통한 무용예술 진흥을 목표로 1979년 대한민국무용제로 시작된 이래 매년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등 전 장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평생 춤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국내 창작무용의 터를 닦아온 각 장르 명인들의 무대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한국 현대무용의 대가로 불리는 무용가 육완순, 현대무용과 불교를 접목시킨 이선옥, 창작 춤의 대가 김매자, 국내 최초 민간 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 창단 멤버인 제임스 전 등 4인의 춤 명인들이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예술인 커플들의 무대도 마련돼 눈길을 끈다. 배우 손병호와 안무가 최지연 부부, 유니버설발레단(UBC) 주역 무용수 강미선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부부, 엠넷 ‘댄싱 9’에 출연했던 현대무용가 최수진과 비보이 하휘동 부부, 현대무용가 정석순과 국악인 김나니 부부가 출연해 개성 넘치는 색다른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무용협회 조남규 이사장은 “대중이 함께 즐기고 감동할 수 있는 춤의 가치를 강조하고 싶어서 스타 커플들을 초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발레·현대무용·한국무용 협동조합의 초청 공연과 대학교 무용학과 25개 단체의 공연이 펼쳐지는 ‘대학무용축제’, 시민들이 상금을 걸고 춤 대결을 펼치는 ‘4마리 백조 페스티벌’ 등 다양한 부대 행사와 이벤트가 열린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1918∼2013·사진)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단국대 난파음악관에서 31일 오후 4시 반 기념음악회가 열린다. 국내에서 만델라 탄생을 기념한 음악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평화, 통합, 용서와 화해의 삶을 실천한 만델라의 삶을 재조명하자는 취지에서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를 공연한다. 김덕기 전 서울대 교수가 지휘를 맡았고 단국대 음대 오케스트라, 합창단이 무대에 오른다. 노주코 글로리아 밤 주한 남아공대사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한국어로 부를 예정이다. 장호성 단국대 총장은 “비슷한 식민통치의 고통을 공유한 국가로서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고 만델라의 정신적 유산을 기리는 마음에서 음악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26)은 빈 국립발레단과의 공연을 마치고 잠시 귀국했다. 동양인 최초 마린스키발레단 입단, 무용계 최고 영예의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그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영국 로열발레단 등 최정상 발레단의 초청을 받아 주역으로 세계를 누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연습실에서 최근 만난 그는 “365일 공연을 쉬지 않는 러시아에서 활동한 덕분에 작품 숙지는 물론 컨디션 난조나 파트너의 부상 같은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쌓였다”며 웃었다. 한번은 공연 날 아침 파트너가 부상을 당해 급히 다른 무용수로 바꿨다. 한데 공연 한 시간 전에 교체한 무용수까지 다쳤다. “결국 한 번도 호흡을 맞춰본 적이 없는 발레리나와 5분간 몸만 푼 뒤 공연했어요. 자칫 사고가 날 수 있었지만 복화술로 ‘두 번 돌아’ ‘오른쪽으로’ 식으로 대화하며 잘 마쳤어요.(웃음)” 그는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점프 등 화려한 테크닉을 가졌지만 감정의 흐름을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실수가 두려워 테크닉이 감정을 방해하게 하지 않아요. 객석 4층 맨 끝자리 관객에게까지 감정이 전달되도록 더 크게 표현하죠.” 공연이 끝나면 집에서 쉰다. 어학 공부와 게임을 즐기고 클래식 음악을 특히 좋아한다. 차이콥스키,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등 러시아 음악가에 대한 애정이 깊다. 쉴 새 없이 뛰고 연기하다 편안하게 음악을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그는 6년 만에 내한하는 마린스키발레단 본진과 다음 달 ‘돈키호테’를 선보인다. 주연인 이발사 바질 역을 맡아 사랑하는 키트리와 결혼하기 위해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둘의 결혼을 돈키호테가 돕는다. 국내 무대에 처음 오르는 마린스키 ‘돈키호테’의 특색으로 그는 초창기 안무와 철학이 그대로 담긴 정통성에 캐릭터 댄스가 더해진 화려함을 꼽았다. “러시아 무용수들은 바가노바 발레학교에서부터 헝가리, 스페인 등 ‘캐릭터 댄스’라 불리는 각국 춤을 체계적으로 배우는데, 그 내공이 진가를 발휘합니다. 강렬한 스페인 군무를 함께 즐기는 묘미가 있을 겁니다.” 11월 15∼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만∼28만 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세계 최정상 무용단인 네덜란드 댄스시어터1(NDT)가 16년 만에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내한 공연을 연다.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작으로 준비된 이번 무대는 올해 무용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연 중 하나로 손꼽힌다. 네덜란드 댄스시어터는 1959년 창립된 이후 반항적이고도 선구적인 작업으로 현대무용계의 흐름을 주도해왔다. 특히 1975년부터 25년간 예술감독을 맡은 이리 킬리안은 기교적인 발레와 자유로운 현대무용, 음악을 조화한 안무 스타일을 구축하며 NDT를 세계 최정상 반열에 올렸다. 이번 공연에서는 킬리안이 은퇴한 2011년부터 각각 예술감독, 예술고문으로 NDT를 이끌고 있는 폴 라이트풋과 솔 레옹의 작품인 ‘세이프 애즈 하우지즈’(Safe as Houses·2001년)와 ‘스톱모션’(Stop-Motion·2014년)이 공연될 예정이다. 이미 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호평받고 있는 유명 작품들이다. ‘세이프 애즈 하우지즈’는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역경’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미니멀한 무대에 바흐 음악, 세련된 안무가 결합됐다. ‘스톱 모션’은 막스 리히터의 음악에 이별과 변화를 주제로 비극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신작도 선보인다. 슈투트가르트 발레 상주 안무가이자 NDT 협력 안무가인 마르코 괴케가 지난달 말 네덜란드에서 처음 선보였던 ‘워크 더 데몬(Walk the Demon·2018년)’이다. 움직임 이면에 있는 ‘목소리’로서의 무용의 개념과 감사, 만남, 이별을 표현했다. 이번 내한을 통해 아시아 초연으로 국내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19∼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4만∼12만 원.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빨강이와 초록이. 빨강이는 낯선 곳에 가면 우물쭈물하고, 반찬투정도 많이 하고 엄마 화장대를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초록이는 덤벙대다 잘 넘어지고, 친구와 몸싸움을 벌이다 울기도 한다. 아빠 엄마는 말썽쟁이 빨강이와 초록이 때문에 괴롭다. “이 말썽쟁이들!” 하지만 빨강이와 초록이가 정말 말썽쟁이기만 할까? 조금만 다르게 보면, 조심성 많은 빨강이는 관찰력이 좋고 덤벙대는 초록이는 씩씩하고 용감하다. 아이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자존감을 키워 줄 수 있도록 돕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