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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프랑스 파리에서 연수할 때다. 동네 극장에 ‘미녀와 야수-일요일 오전 11시 특별 관람료 4유로(약 5240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평소보다 절반 이하의 관람료라 눈이 번쩍 뜨였다. 극장 앞에서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소책자를 나눠 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영화보기(Cin´ema diff´erence)’라는 제목이었다. 이것은 무슨 상황이람. 상영관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 ‘다름’의 의미를 알았다. 장애인 관람객들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속속 입장하는 것이었다. 상영 중엔 조용하지만은 않았다. 지적장애인이 내는 소리인지, 영화 속 소리인지 분간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즐기는 특별한 경험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웠다. 한편으론 우리나라에서 이런 행사가 열리면 환영받을까, 외면당할까 궁금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 것. 다름을 포용할 것. 그날 내가 본 ‘미녀와 야수’는 그랬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원로 전위예술가 김구림 씨(81·사진)가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미술 전시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용호성 한국문화원장과 관련 큐레이터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작가는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27일 영국 런던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개막한 ‘리허설 프롬 더 코리안 아방가르드 퍼포먼스 아카이브’(8월 19일까지)에 전시된 내 작품 ‘1/24초의 의미’가 다른 사람들의 작품인 것처럼 소개돼 내 명예가 크게 실추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와 사이가 나빴던 고 김미경 미술평론가가 ‘1/24초의 의미’에 대해 썼던 해설이 이 전시 리플릿에 검증 없이 소개됐다”고 말했다. 이 리플릿에는 ‘다른 예술가들이 참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재 김구림이 저작권을 갖고 있다. 가장 늦게 합류한 참가자가 김구림’ 등으로 적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영 한국문화원 측은 “김미경 평론가의 글은 지난해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발표된 내용”이라며 “김 작가의 문제 제기 이후 배포를 중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작가는 “1/24초의 의미를 소장하고 있는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과 한국 국가 이미지가 이미 모독됐다”고 주장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11일 저녁 수십 명의 남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옷으로 차려입고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고속터미널역에서 나와 잠수교로 향하는 행렬이었다. 드레스를 입은 여자, 한복을 입고 레이스 양산을 쓴 여자, 중절모를 쓰고 트렁크를 끄는 남자…. 의상과 소품까지 온통 흰색이었다. 역시 흰 드레스를 입고 머리엔 커다란 흰 꽃 장식을 한 나를 보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물었다.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었다. “오늘 무슨 일 있나요?” “네, 오늘 세빛둥둥섬 앞에 사람들이 흰색 옷 입고 모여 저녁 먹어요.” 이날 열린 행사는 제1회 ‘디네앙블랑 서울’이다. 1988년 프랑스인 프랑수아 파스키에 씨가 친구들과 연 디너파티 ‘디네앙블랑(Le D^iner en Blanc·흰색 차림으로 저녁 먹기)’에서 비롯됐다. 파스키에 씨는 많은 친구들을 초대해 드넓은 불로뉴 숲에서 파티를 열면서 서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흰색 옷을 입도록 했다. 손님들은 이 색다른 경험에 흡족해했고, 이후에도 이런 파티가 열리기를 원했다. 여기에서 콘셉트가 탄생한 디네앙블랑은 프랑스 궁정문화를 재현한다는 취지로 음식, 패션, 공연을 즐기는 야외 복합문화 행사로 발전했다. 그동안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앞 등 파리 주요 명소 주변에서 열려 왔다. 매번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장관을 이뤘다. 8일(현지 시간)엔 올해로 28주년을 맞은 이 행사가 파리 방돔 광장에서 열렸다. 또 세계적으로 상표등록을 한 ‘디네앙블랑’은 미국 뉴욕, 호주 시드니 등 25개국 60여 개 도시에서도 열리는 국제적 행사가 됐다. 그제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열린 첫 서울 행사에는 12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흰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참석한 파비앵 페논 주한 프랑스 대사는 “디네앙블랑이 한국적으로 재해석된 모습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왜 사람들은 ‘순백의 만찬’에 모였을까. 세 가지로 이유를 정리해 봤다.① 자발적 참여의 즐거움 이 행사는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참가비(두 명에 90달러)를 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모든 참가자는 ‘우아한 흰색 옷차림’을 하고 테이블과 그릇, 음식을 직접 준비한다. 서울시내 네 군데 집결지를 미리 공지하고 만찬 장소는 행사 시작 2시간 전에 집결지에서 알려줬다. 고속터미널역은 그 집결지 중 하나였다. 간호사라는 한 30대 여성은 친구들과 순백의 테이블을 꾸몄다. 화이트와인과 테이블 꽃 장식도 트렁크에 챙겨 왔다. 왜 여기에 왔느냐고 묻자 “내 인생에 이런 드라마틱한 경험을 언제 또 해 보겠느냐”고 말했다. 스스로 모인 사람들은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옆 테이블의 모르는 사람들과 나눠 먹기도 했다.②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축제 야외 행사장에 어둠이 내려앉자 재즈 공연 등이 오후 11시까지 이어졌다. 사회자도, 진행자도 없지만 다들 무대 앞에 나가 음악과 춤을 즐겼다. 행사에서 만난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요즘 젊은 세대는 삶을 즐길 줄 안다. 판을 벌여주면 언제든 놀 준비가 돼 있다. 기성세대처럼 쭈뼛거리지 않는다. 갑갑한 미래를 괴로워하는 대신 이렇게 욕구를 분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간 지인은 호모 페스티부스(Homo Festivus), 즉 ‘축제하는 인간’의 시대를 절감한다고 말했다.③ 나만의 SNS 콘텐츠를 찾아서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디네앙블랑 서울’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사진 게시물이 주렁주렁 올라왔다. 해시태그는 SNS에서 검색이 편리하도록 만든 일종의 메타데이터로, 누구나 SNS에서 ‘#’ 뒤에 단어를 넣으면 원하는 정보를 모아 볼 수 있다. 1200명이 흰색 옷을 입고 만찬을 즐기는 모습은 반포 한강공원을 지나는 시민들에게도 흥밋거리였다. 흰 백합과 화이트와인, 흰 풍선과 화사한 미소들….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한 참가자는 “오래 추억에 남을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리게 돼 기쁘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전날인 10일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연 1.25%로 낮추면서 사상 최저 금리의 역사를 새로 썼다. 온 나라가 가계 소비를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소비는 합리적 계산 말고도 감성적 요인의 영향을 꽤 받는다. 요즘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소비하고 싶은 인간에게 어떻게 즐거운 소비의 장(場)을 펼칠 것인가. 소비자의 감성 취향을 저격할 ‘무기’가 있는가. ‘순백의 만찬’에 모인 인파를 보면서 정부와 기업들이 작은 실마리라도 얻었으면 한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 어렵게 외국에 나가 유명 상표의 셔츠를 사왔는데 뒤늦게 상표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표시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1970, 80년대에 있었다. 근면성을 바탕으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펴던 당시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던 일화다. 그런데 21세기 뷰티업계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랑콤, 이브생로랑, 슈에무라, 에스티로더, 맥…. 하이테크와 최신 마케팅의 집약체인 글로벌 유명 화장품 중 상당수가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고객 회사의 주문에 따라 생산만 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 아니라 자체 기술로 화장품 ‘레시피’를 개발해 생산 및 납품하는 제조자개발생산(ODM)이다. 이 ODM 부문에서 한국의 ‘코스맥스’가 최근 매출 세계 1위에 올랐다. 2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코스맥스 본사에서 이경수 회장(70)을 만났다. 》“‘뜨거운 사람’ 뽑는다”인터뷰를 하던 날엔 마침 코스맥스 경력사원 면접이 있었다. ―수시로 직원을 뽑나 봅니다. “저와 관련 임원 네댓 명이 필요할 때 뽑습니다. 면접장에서는 저도 한 표, 다른 임원도 한 표입니다. ‘채용하자’ ‘반대 안 한다’ ‘반대한다’ 이렇게 세 가지 입장을 각각 냅니다. 누군가가 반대하면 이유를 들어보고 일리가 있으면 선발하지 않습니다.” ―면접 때 주로 뭘 보나요. “밝은 인상을 중요하게 봅니다. 단정한 복장과 정직함, 말의 논리성을 보고요. 스펙을 위한 스펙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학교나 학점은 봅니다. 열심히 노력한 걸 왜 인정하지 않나요. 단, 학점이 나쁘다면 묻습니다. 공부 안 하고 뭐에 미쳐 봤느냐고. 연극이나 그림, 사회봉사에 미쳐 봤다면 회사 일에도 뜨겁게 미칠 수 있으니까요. 밴드 활동에 미쳤던 지원자를 뽑은 적이 있는데 지금 영업 부문장으로 잘하고 있어요. 바둑이나 당구도 어느 수준에 올라가려면 미쳐야 하잖아요. 한 단계 더 오르려고 전념한 사람은 대충 한 사람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황해도 출신의 이 회장은 서울대 약대(66학번)를 나와 동아제약 영업사원, 오리콤 광고기획자(AE), 대웅제약 임원 등으로 20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가 46세 때 코스맥스를 창업했다. 내년 창립 25주년을 앞두고 코스맥스는 ODM업계 세계 1위(지난해 실적 기준)에 올라서는 개가를 올렸다. 최근 공개된 실적에 따르면 코스맥스의 지난해 매출은 5333억 원으로 그동안 1위였던 이탈리아 회사 인터코스의 매출(5045억 원)보다 288억 원 많았다. 2004년 프랑스 로레알사(社)에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하고 그해 중국에 진출한 지 12년 만의 일이다. ―놀랄 만한 성장입니다. “올해 코스맥스그룹 전체 매출이 1조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1992년 창업할 때엔 OEM과 ODM을 같이 했는데 이젠 거의 다 ODM이고 일부 온라인 화장품에 대해서는 브랜드 개발과 제품 생산, 마케팅까지 모두 해주는 자가브랜드생산(OBM)도 합니다. 최근 9년간 회사가 연평균 20%씩 성장했는데 앞으로 3년은 이런 추세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만의 공(功)이 아니죠. K뷰티 덕분입니다.”“수도권大에 화장품학과 생겨야” 이 회장 사무실 책상 뒤쪽 벽면에는 도성욱 작가의 큰 소나무 그림이 걸려 있다. 창가 너머로는 냇물이 보였다. “저기 검은색 물고기가 보이죠? 얼마나 물이 맑아요.” 헤엄치는 물고기가 4층에서도 보였다. 그가 말했다. “오늘 만나면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K뷰티에 대해서요.” “아, 좋습니다.” 나는 의자를 바짝 당겨 앉고 귀를 열었다. “K뷰티, 즉 코리아 뷰티잖아요. 그런데 나라 이름에 뷰티란 말이 붙어 어울리는 나라가 몇 곳이나 있을까요?” 질문을 듣고 생각해보니 많지 않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세 가지가 아름다워야 나라 이름에 뷰티를 붙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는 나라.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아름다워 산천(山川)을 다니면 좋은 정원을 산책하는 것 같잖아요. 둘째는 그 나라에 사는 사람. 글 그림 춤 노래,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재능이 많아요. 셋째는 그 사람들이 만든 제품. 이렇게 셋 다 아름다운 나라는 별로 없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조원이 코스맥스란 사실을 밝히길 꺼리던 화장품 회사들은 요즘엔 이를 오히려 내세운다. 프랑스 로레알그룹은 4월 파리에서 열린 글로벌 전략회의에서 코스맥스를 ‘로레알의 판타스틱 파트너’로 칭하며 유럽에 와서 화장품 공장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또 일본의 유명 화장품 회사는 올해부터 코스맥스와 함께 제품 개발에 나섰다. ―그런데 대형서점에 가서 화장품 산업 관련 책을 찾았더니 그런 카테고리는 없더군요. 국내 화장품 산업의 현주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잘 보셨어요. 화장품 산업이 이토록 커졌는데 수도권 대학교에 화장품 대학이 없어요. 화장품은 종합예술이라 젊을 때부터 소양을 가르쳐야 하는데 말이에요. 글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화학자, 물리학자가 한데 모여 연구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직접 교육기관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까. “제가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습니다. 제 나이가 50만 됐어도(웃음). 최근 2년간 서울대 약대 동창회장을 지내면서 대학 분들 만나면 관련 학과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화장품학과 신설에 관심을 보이는 학교가 있어요. 설립되면 우리 연구진이 그 학교에 가서 가르치거나 학생들이 코스맥스 연구소를 찾아와 실습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습니다.” “한 사람이 다 하는 건 불가능해”이 회장은 2014년 코스맥스를 인적 분할했다. 코스맥스를 화장품 ODM 사업 전담 법인으로 만들고 코스맥스BTI를 그룹의 지주회사로 세웠다. 일진제약을 인수해 사명을 바꾼 ‘코스맥스바이오’와 또 다른 인수 기업 ‘뉴트리바이오텍’은 코스맥스BTI 내 건강기능식품 ODM 계열사들로 편입시켰다.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양대 사업을 별도로 떼어 내니 미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화장품 생산법인 간 횡적 유대도 공고해졌다고 한다. 코스맥스는 현재 100여 개국 600여 개 화장품 회사에 연간 4억2000만 개의 화장품을 생산 공급한다. 세계 인구 18명 중 한 명은 코스맥스 화장품을 쓰는 셈이다. 특히 외환위기 때 공급 가격을 동결하고 최소 주문물량제한을 없애 협력사들의 신뢰를 얻었다. ―화장품 제국의 황제 같습니다. 자체 브랜드를 가질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나요. “과한 말씀입니다. 독자 브랜드를 가질 생각이야 많이 해 봤죠. 지금도 가끔 해 보고…. 하지만 우리는 화장품 제조 생산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제 다음 세대에 시장 환경이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요. 사람도 회사도 각각의 역할이 있잖아요. 한 사람이 다 하는 건 불가능해요. 우리는 화장품을 잘 만들고 디자인, 용기, 유통 등 각 분야의 우수한 회사들이 모여 힘을 합치면 곧 제품이 경쟁력을 갖죠. 화장품은 종류가 많고 계절을 타서 기계를 1년 내내 가동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여러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지금의 40대 중반에게도 창업을 권하겠습니까. “저도 늦게 시작한 거라 돌이켜보면 아찔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이에 대한 제한은 그때보다 지금은 더 줄었어요. 건강이 뒷받침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여러 도구도 생겨났고요. 전 우연찮은 기회에 창업했는데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 건 과거 직장생활 때의 경험과 그때 만난 사람들이었어요. 동아제약 영업사원을 하면서는 소극적 성격을 적극적으로 바꾸고 사람을 만나 신뢰를 쌓는 것을 배웠습니다. 당시 광고사관학교로 통하던 오리콤에서는 제품을 철저하게 잘 아는 것이 판매의 기본이란 걸 알게 됐고요. 대웅제약 임원을 하면서는 오너가 일의 경중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혹독하게 배웠습니다. 샐러리맨 때 경험과 사람을 많이 만든 사람은 회사를 옮겨도, 창업을 해도 빛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K뷰티는 따뜻한 마음” 이날 코스맥스 본사에서 이 회장의 부인인 서성석 코스맥스BTI 회장과 잠깐 마주쳐 인사를 나눴다. 이 회장이 동아제약 영업사원이었을 때 서울 종로구 명륜동 같은 하숙집에 지내던 당시 숙명여대 학생이 지금의 서 회장이다. 이 회장은 “집사람은 코스맥스 공장 부지부터 같이 보러 다녔다. 초기에는 작업라인에서 현장반장도 했는데 그 누구보다 작업능률이 높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바쁜 자신 때문에 부인이 지금껏 거의 혼자 저녁식사를 하게 한 걸 미안해한다. 6년 전부터 자연이나 노부부 등의 사진을 찍고 카카오스토리에 짧은 글을 썼더니 부인은 이것들로 사진첩을 만들어 남편에게 선물했다. 이 회장은 복지(Welfare)와 생태(Ecology)에 투자(Invest)하는 ‘코스맥스 WE & I’라는 법인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K뷰티의 미래를 어떻게 봅니까. “K뷰티는 결코 한류 스타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에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 자연,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어우러져 있으니까요. 또 빠르면 5년 이내에 국내에서 화장품 시장과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매출 비중이 같아질 겁니다. 피부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그날 상태에 맞는 맞춤형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을 드론으로 배달받는 시대가 곧 옵니다. 우리도 이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과거 광고회사에 다닐 때 ‘인생은 60부터’라는 카피를 써봤다가 채택되지 않은 적이 있다고 했다. 세계를 누비며 K뷰티를 전하는 그를 보니 ‘인생은 70부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권수완 삼성물산 리조트사업부 동물원장(56)을 최근 만나고 나서 ‘동물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미래의 동물원은 어떤 형태로 남을 것인가’란 질문들이 뇌리에 내내 머물고 있다. 지난달 29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판다월드. 수컷 판다 ‘러바오’(樂寶·‘즐거움을 주는 보물’이라는 뜻)는 봄 햇살이 내리쬐는 야외에서 대나무를 먹고 있었다. 기다란 대나무 줄기를 손과 이로 뚝 끊은 뒤 입안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가며 씹었다. 무성한 대나무 잎도 샐러드 먹듯 삼켰다. 판다가 노는 2단 높이의 나무 평상은 키즈 카페의 놀이시설과 흡사했다. “러바오”라고 목청껏 불러보았다. 미리 다녀간 후배가 “귀여운 판다를 보니 힐링이 되더라”고 말한 게 생각났다. 그곳에서 권 원장을 만났다. 》“동물사육의 최고 정점은 판다” ―판다가 대나무 줄기도 먹는 게 신기하다. “대나무의 뿌리 빼고는 다 먹는다. 경남 하동에서 냉장차로 운송해 오는 대나무를 매일 15kg 정도 먹는다. 하루 24시간 중 먹는 시간이 14시간쯤이고 나머지 시간은 잔다. 먹는 양의 90%는 대나무이지만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쌀, 콩, 밀가루로 만든 빵도 먹인다.” 중국의 국보급 동물 판다가 한국에 온 건 이번이 두 번째다. 한중 수교(1992년)를 기념해 1994년 판다 한 쌍(밍밍, 리리)이 왔다가 1999년 돌아갔다. 외환위기 후 매년 100만 달러(약 11억 원)의 판다보호기금을 중국에 내는 게 과도하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용인 자연농원(에버랜드의 전신) 동물개발팀 과장이었던 권 원장은 당시 판다 관련 실무를 맡았다. ―밍밍, 리리와 정이 많이 들었겠다. “난 정서적 교감이 있었는데 걔들(판다들)은 모르겠다(웃음).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자연농원이 세계적 동물원이 되려면 판다를 키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꿈을 가졌다. ‘동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동물 사육의 최고 정점은 판다라고 생각한다. 희귀해서 아무나 못 해보지 않나. 당시 한중 수교로 꿈이 이뤄졌다.” 중국이 자국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나라에 판다를 선물하는 이른바 ‘판다 외교’는 1941년 국민당 장제스(蔣介石)가 중일전쟁 때 중국을 지원한 미국에 감사의 표시로 판다 한 쌍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1983년 워싱턴조약 발효로 희귀동물을 다른 나라에 팔거나 기증할 수 없게 되자 중국은 돈을 받고 장기 임대하는 형식으로 판다 외교를 이어가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판다는 중국에 몇 마리나 사나. “2014년 중국 정부는 1864마리의 판다가 중국 자연에서 살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밖에 사람이 사육하는 게 425마리, 외국에 나가 있는 게 52마리. 이번에 한국에 올 수 있는 40∼50마리의 후보를 서류로 받은 후 쓰촨(四川) 성 판다 기지에 가서 최종적으로 데려온 게 러바오와 아이바오(愛寶·‘사랑스러운 보물’이란 이름의 암컷 판다)다.” 판다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1972년 중국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일본 도쿄 우에노 동물원에 기증했던 판다 ‘란란’이 1979년 심장병으로 죽었을 때엔 수만 명의 조문객이 검은 띠를 팔에 두르고 눈물을 흘리며 동물원을 찾았다. ―왜 사람들이 판다를 좋아할까. “구르기도 하고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는 등 행동이 귀엽다. 뒤뚱거리는 판다의 걸음새는 아기가 처음 일어나 걸을 때의 모습과 닮았다. 작은 눈이 커 보이는 건 눈 부위의 검은 털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옛날 한복 같은 판다의 흑백 색상에도 매력을 느꼈다.” 1994년 11월 중국 리펑(李鵬) 총리가 방한해 자연농원 판다월드(올해 연 에버랜드 판다월드의 전신) 개관식에 참석했다.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판다월드(330m²·약 100평)를 방문해 딱 한마디 했다고 한다. “왜 이렇게 작게 지었나.” 에버랜드는 이번에 7000m²(약 2100평) 부지에 200억 원을 들여 최첨단 정보기술(IT)이 융합된 판다월드를 만들었다. “사육사가 실수하지 않도록” 경북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권 원장은 1987년 중앙개발(자연농원의 모회사)에 입사해 2003년부터 동물원장을 맡고 있다. ―동물을 좋아했나 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축산학과를 다니는 형의 권유로 별 생각 없이 수의학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가보니 의외로 재미있었다. 동물의 한 곳이 아프면 다음에는 어디가 아파질 수 있다는 논리가 수학 같았다. 동물의 배설물 냄새도 싫지 않았다.” 그는 수의학과 출신을 뽑는 제일제당에 가겠거니 생각하며 삼성그룹 공채에 원서를 냈다. 그런데 중앙개발로 발령을 내더니 자연농원 동물부에 배치됐다. ―그때부터 동물 진료를 했나. “수의사들은 입사하면 한 달 동안 사육사들과 함께 실습받는 전통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동물원장이 무슨 이유인지 그 실습을 6개월이나 시켰다. ‘본업이 아닌 나에게 왜 시키나,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하나’ 싶었는데 그 실습을 통해 동물과 사육사의 패턴을 잘 알게 됐다. 그래서 나도 지금 수의사들에게 6개월 실습을 시킨다. 1994년 중국에서 판다가 올 때부터 동물개발과 기획 일을 하게 됐다.”에버랜드 직원들은 권 원장에 대해 “사육사들에게 엄한 상남자(진짜 남자)”라고 말했다. 과연 그런지 물었다. “동물원에서는 동물이 죽는 게 가장 큰 일이다. 직원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 게 나의 역할이다. 실수해서 나쁜 일이 발생하면 그걸로 끝인 거다. 원리원칙을 따르지 않는 일이 반복되는 직원이 있다면 자리를 바꾼다.” ―칭찬에 인색할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제목의 책이 있지만 나는 ‘칭찬으로 고래가 춤추다 망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다. 내 역할은 잘못된 점을 찾아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다. 그러니 칭찬할 일이 많겠나.” ―동물은 칭찬하면 어떤가. “효과가 있다. 인상 쓰며 말할 때와 부드럽게 말할 때 동물의 반응이 다르다. 가령 사육사가 ‘야, (실내로) 들어가’라고 크게 소리 지르면 동물이 움찔한다. 사람들이 오랜 시간 대하는 태도와 시선, 말소리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되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동물을 치료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개가 전염병에 걸려 한 달간 같은 방에서 먹고 자면서 치료한 적이 있다. 살릴 수 있는 병이 아니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이렇게 동물이 고생하는데 끝까지 살리려고 노력하는 게 맞는가, 동물도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지 않나 하고. 그런데 그 개가 살았다. ‘너하고 나하고 재수가 좋다’고 개에게 말했다.” ―정성이 통했나 보다. “제일 싫은 말이 ‘정성’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정성이 부족하면 동물이 죽는다’고 한다. 죽으면 정성이 부족하고 살면 정성이 안 부족하다는 말인가. 사육사들은 끝까지 동물을 포기하지 않는다.”“동물 접하면 배려하는 마음 생겨” 에버랜드는 2013년 ‘로스트 밸리’라는 생태형 사파리를 열었다. 수륙양용차로 이동하면서 사자, 코끼리, 기린, 치타, 얼룩말 등 인기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창이 없는 버스나 지붕 뚫린 지프에 탄 관람객들은 동물들에게 직접 먹이를 줄 수 있다. ―지프 위로 기린이 긴 목을 내밀었을 때엔 신기하면서도 솔직히 무서웠다. “동물원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동물 보호, 크게 보면 지구 보호다. 동물과 인간이 서로 교감하는 지구가 되도록 동물원의 형태도 바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래의 동물원은 야생에 가까운 체험과 가상현실(VR)이 서로 보완하는 형태가 될 것 같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VR에서 펼쳐지는 동물 체험과 익숙해지면 동물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지 않을까.” 이번에 문을 연 판다월드는 첨단 IT 장비의 향연장이다. 방사장의 콘셉트는 ‘판다의 숲’. 실내 방사장은 유리벽을 없애고 자동으로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도록 했다. 판다에게 해로운 적외선, 자외선은 차단하고 가시광선만 투과하는 자연 채광을 구현했다. 실외에는 대나무와 천연잔디를 심어 판다가 쓰촨 성 고향에 있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 동물 복지 개념에 따르면 동물원에 사는 동물은 배고픔, 불편함, 질병, 공포로부터의 자유, 정상적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필요로 한다. 문득 에버랜드의 말하는 코끼리인 ‘코식이’의 안부가 궁금했다. 올해로 26세가 된 코식이는 10년 전 ‘좋아’ ‘안돼’ ‘앉아’ 등 일곱 단어를 말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2012년에는 세계 저명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관련 논문이 등재되기도 했다. ―코식이가 추가로 말하는 단어는 없는가. ‘사랑해’란 말을 반복적으로 들려주면 어떨까. “동물은 인간의 욕심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 당시 사육사는 어린 코식이가 외로울까 봐 여섯 달 동안 같이 자며 돌봤다. 코식이는 사육사를 아빠처럼 따르면서 말을 터득한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사랑해’란 말을 가르쳐 보려 했는데 의도적인 교육은 안 되더라. 동물에게 녹음을 틀어줘서 말을 가르칠 수 있다면 이미 많은 동물이 사람의 말을 했을 거다. 요즘엔 코식이가 너무 커져 발정기에 위험할 수 있어 사육사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다.”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동물들과 29년을 지내온 그에게 우문(愚問)을 던져봤다. ―동물이 인간을 한심하게 여긴다고 느낄 때가 있는가. “많다. 하지만 예를 들지는 않겠다. ‘동물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말은 누구라도 듣기 싫어할 테니.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동물은 사람과 달리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린이는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지적장애를 지닌 아이가 거의 매일 동물원에 와서 동물과 시선을 맞추며 그림을 그리더니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또 어린이 대상 동물체험 프로그램인 ‘동물사랑단’은 인터넷 접수 10분 이내에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다. 단체생활에 적응을 못했던 한 아이는 동물을 접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아이로 바뀌었다. 동물원은 우리 안의 친절과 배려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동물은 무한정으로 베풀어야 가까워질 수 있다.” ―직업적 꿈이 뭔가. “동물들이 잘살고 새끼를 잘 낳는 것!” ―용인에서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도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 스스로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 사진작가 김우영 씨(56)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서, 이후 김 씨를 만나고서 이 질문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그는 1990년대 중반 가장 잘나가는 국내 광고 사진가 중 한 명이었다. 이영애가 모델로 나온 화장품 ‘헤라’, 송승헌이 나왔던 ‘스톰’ 청바지 등 당시 유명 광고 사진은 그의 카메라에서 탄생했다. 국내에 라이선스 패션잡지들이 생겨나면서 그의 ‘시장’은 더욱 넓어졌다. ‘하나, 둘, 셋’ 하고 어색하게 찍는 게 싫어 무조건 패션모델들을 뛰게 하고 자신도 카메라 들고 뛰었던 남자. 그는 2000년대 들어 ‘돈 잘 벌지만 내가 없는 인생’이 싫어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도시 풍경을 오묘한 색감의 그림처럼 찍어낸 사진들을 들고 이번에 한국에 왔다. 28일부터 다음 달 20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Along the Boulevard’라는 이름의 전시를 여는 그를 19일 만났다. 그는 그동안 데스 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라고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남동부 지역과 디트로이트 등을 거점으로 도시의 풍경을 찍어왔다고 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분홍과 초록의 대비 등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기도 하고 몬드리안의 추상화와도 닮았다. “이게 정말 사진이라고요?” “이게 정말 건물이라고요?” 몇 번을 그에게 되물었는지 모른다. 그가 만들어내는 깊고 오묘한 색(色)의 비밀은 사진을 찍는 시간대에 있었다. “이른 새벽에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차를 몰고 나서요. 그러면 그런 색이 나와요. 그렇게 도시를 찍고 나서 카페에 들어가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는 게 행복이더라고요. 인적이 드문 동네에 혼자 사니까 책 읽을 시간도, 생각할 시간도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는 홍익대 도시계획과를 졸업(1984년)하고 뒤늦게 미국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사진학과 대학원(1994년)을 나왔다. 떠들썩한 광고업계가 싫어 떠났던 그이기에 유학생활 중 비에 축축하게 젖은 뉴욕 브루클린의 풍경이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나중에는 미국 디트로이트 공업지대와 캐나다 몬트리올 일대를 찍으면서 도심 재개발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됐다. 다음번 전시는 도시의 건물을 그의 작품으로 래핑(wrapping·싸는 것)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그의 사진들을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어디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의 사진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결합한다면 럭셔리 패션의 미래는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겐 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 “올해 하반기 서울 홍익대 앞에 여는 MCM 매장은 디지털기술 기반의 고객참여형으로 꾸며 아시아의 르네상스를 이끌겠습니다.”(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K패션을 대표하는 두 최고경영자(CEO)가 한국 패션산업의 가능성에 대해 설파했다. 이 사장과 김 회장은 20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회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콘퍼런스’에 각각 기조 연설자와 패널 진행자로 나섰다. 이 콘퍼런스는 글로벌미디어그룹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이 작년부터 열고 있으며 2회째인 이번 서울 행사에는 30여 개국의 패션 전문가 500여 명이 참석했다. ○ 이서현 사장 “VR기술 등 새로운 기술 가진 기업이 업계 리드” 지난해 12월 삼성물산 경영기획담당 사장에서 패션부문장(사장)이 된 이서현 사장이 공식 무대에서 연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30분간 영어로 이야기했다. 이 사장이 무대에 오르자 스크린에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진이 떴다. 그는 “왜 삼성 사람이 패션행사에 나왔나 의아하실 텐데 저는 스마트폰을 홍보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며 “삼성은 전자부문(1969년)보다 15년 앞서 방직부문(1954년)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패션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삼성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디자인 경영을 강조하면서 산업계가 원하는 디자인 인재를 기르기 위해 1995년 삼성디자인학교(SADI)를 세웠다. 2005년에는 삼성디자인펀드(SFDF)를 만들어 지금까지 19개 팀 디자이너들에게 270만 달러를 지원해왔다. 이 사장은 이런 사례들을 소개하며 “제가 10대 딸을 두고 있어 젊은 세대의 모바일 메신저 문화를 잘 안다”며 “요즘 인스타그램을 보면 패션쇼를 하지 않더라도 재미있는 작업을 하는 젊은 디자이너가 많아 이들을 돕는 ‘제2의 삼성디자인펀드’를 올해 안에 만들겠다”고 밝혔다. 패션과 테크놀로지의 만남도 강조했다. 그는 “가상현실(VR) 등 새로운 기술을 가진 기업이 결국 업계를 리드할 것”이라며 “다만 기술이 사람의 창의성을 대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인재를 길러내면서 패션산업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말했다. ○ 김성주 회장 “K패션이 아시아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 김성주 회장은 ‘멈출 수 없는 코리아 파워’라는 이름의 토론 세션을 진행했다. 토론에는 이번 행사를 기획한 수지 멩키스 보그인터내셔널 에디터를 비롯해 AOMG 소속 가수 박재범, 이지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부장, 배상민 KAIST 교수가 참여했다. 김 회장은 “이제 럭셔리는 일부 계층을 위한 ‘익스클루시브(exclusive·단독형)’가 아니라 ‘인클루시브(inclusive·참여형)’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MCM은 이날 새로운 사회공헌활동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10년간 1000만 달러(약 113억 원)를 레드 재단(red.org)에 기부해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에 앞장선다는 내용이다. 레드 재단은 아일랜드 록그룹 U2의 가수 보노와 보비 슈라이버가 에이즈 퇴치를 위해 2006년 설립했다. 김 회장은 “평소 존경해 오던 보노를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갔을 때 만나 이번 사회공헌을 결정하게 됐다”며 “이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럭셔리 기업만이 정통성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콘퍼런스에는 맥킨지컨설팅의 에이미 김 파트너가 “세계 면세시장의 허브인 한국 면세시장의 가치는 약 80억 달러에 이른다”라고 발표했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는 듯 국내 유통업계 2세들이 현재 한국을 방문 중인 프랑스 명품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진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가운데 앞머리를 한껏 올려 세운 헤어스타일은 그의 오래된 트레이드마크다. 반세기를 패션기자로 일해 온 그가 패션쇼에 나타나면 세계적 디자이너들은 늘 긴장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콧대 높고 감성적인 패션업계에서 날카로운 분석기사로 ‘패션 평론’이라는 영역을 쌓아 올렸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엔 대영제국훈장과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수지 멩키스 ‘보그’ 인터내셔널 에디터(73·사진) 얘기다. 그가 20, 21일 서울 중구 동호로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제2회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콘퍼런스’의 주관을 맡아 서울을 찾았다. 19일 신라호텔에서 미리 만난 그는 서울에서 이 행사를 여는 이유를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에 마음이 열려 있는 한국이야말로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핫(hot)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프랑스 에스모드 파리 졸업 후 1966년 영국 더 타임스 패션기자로 출발해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1988∼2013년)에서 일한 그는 그간의 경험을 총결집해 지난해 이 행사를 기획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제1회 행사에는 악셀 뒤마 에르메스 회장과 카를 라거펠트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 패션 거물들이 참석했다. 올해 제2회 행사에는 김성주 MCM그룹 회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이 기조 연설자로 나선다. 이날 멩키스 씨는 민속적 문양의 보라색 옷과 연보라색 매니큐어, 애플 시계 차림이었다. 그에게 럭셔리의 정의를 묻자 “럭셔리는 로고가 큰 핸드백이 아니라 나의 오감을 자극해 즐거움을 주는 비밀스러운 영역”이라며 “최근 크리스털 회사인 스와로브스키가 중국에서 크리스털처럼 깨끗한 물 공급 사업을 사회공헌 활동으로 펼치는 것처럼 럭셔리에 대한 시각을 열고 지식을 공유하는 게 콘퍼런스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그룹은 ‘보그’와 ‘GQ’ 등 30개 국가에서 143종의 잡지를 발행하며 독자가 3억 명에 이르는 글로벌 미디어그룹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누군가 외식업을 시작한다고 해보자. 매장 디자인, 식자재 구매, 타깃 소비자 설정….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럴 때 감각 있는 전문가가 조언해 준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서른아홉 살 김아린 씨는 20대 후반부터 국내 식당들의 매장 콘셉트와 상품, 메뉴 등을 개발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 왔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여전히 생소한 ‘식음료(F&B) 컨설턴트’라는 직업이다. 그가 2004년 세운 ‘비 마이 게스트(BE MY GUEST)’라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는 그해 서울 강남의 한 신생 식당에서 뉴욕식 ‘아점(아침 겸 점심)’을 팔자는 컨설팅을 하면서 국내에 브런치 열풍을 몰고 왔다. 이 시대 여성들의 식료품 장보기를 고급스러운 소비행위로 탈바꿈시킨 신세계그룹의 SSG마켓(2012년)에서는 우리 농부들의 생산과정을 하나하나 이야기로 만들었다. 지난달 문을 연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자주(JAJU) 테이블’은 ‘백화점에서 파는 가구와 식기를 체험하고 구입할 수 있는 식당’으로 콘셉트를 잡은 뒤 멋 내지 않고 제대로 된 볼로네세 파스타와 버거 등을 메뉴로 구성했다. 》 12년 전 브런치카페 대중화 1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2층 단독주택을 개조한 ‘비 마이 게스트’를 찾아갔을 때는 김 대표와 직원 넷이 봄 햇빛 좋은 테라스에서 막 점심식사를 마칠 무렵이었다. 그는 테라스에서 키우는 허브들을 가리키며 “얘들이 곧 정글처럼 우거져요. 요리에 넣어 먹기 좋아요”라고 말했다. 이날 메뉴는 아보카도, 구운 마늘과 오렌지, 비트, 직접 키운 허브 등을 넣은 샐러드와 파스타 그리고 화이트와인. 평소에도 그의 페이스북에서 이 회사의 직원 식사를 본 적이 있다. 꽃 모양 백색 사발 안에 담긴 라면 위에는 그가 기른 루콜라와 차이브 꽃이 듬뿍 얹혀 있었다. 자연친화적이면서 단아한 느낌. 요즘 잘나가는 ‘김아린 표’ 감각이다. ―‘회사 밥’이라기엔 너무 예쁘네요. “회사라기보다는 스튜디오 규모죠.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동료들이니 행복한 팀워크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종종 밥도 같이 해 먹어요. 평소 집중해 일하는 대신 빨간날(공휴일)은 무조건 쉬고 칼퇴근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는 일이 여전히 생소합니다. “처음 시작했던 12년 전에는 정말 희귀했죠. 우연히 지인의 지인이 식당(‘텔 미 어바웃 잇’)을 차리면서 초기 방향을 잡을 사람을 필요로 했어요. 그때 함께 잡은 콘셉트가 브런치 카페예요. 지금은 거의 모든 국민이 브런치를 알지만 당시만 해도 일간지에서 브런치의 사전적 의미를 설명할 때였거든요.” ―그러다가 신세계,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 일을 했네요. “네. 그런데 저희는 건축가도 디자이너도 아니에요. 브랜드 탄생을 돕는 사람, 브랜드를 반짝이게 하는 사람이랄까요. 예전에 제주 오설록 티스톤(차 박물관)과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화장품숍과 카페를 겸한 공간)의 매장 구성과 메뉴를 컨설팅했던 걸 계기로 올해엔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브랜드 특성을 극대화한 대표 매장)의 서비스 구성도 맡게 됐어요. 기존 고객이 다시 일을 맡기거나, 저희 프로젝트를 본 새로운 고객이 일감을 맡겨요.” 그는 행여 남의 공(功)이 자신의 공으로 둔갑하면 안 된다며 ‘이 부분은 누가 했고, 이 부분은 내가 했다’는 식의 설명을 조목조목 했다. 그는 대전 성심당 케이크 부티크(2013년), 코엑스 메가박스 부티크 M시네마(2013년), 남양유업의 ‘1964 백미당’ 디저트카페(2014년), SPC그룹 ‘배스킨라빈스 31’의 프리미엄 버전(2014년) 등의 메뉴 개발에도 참여했다. 보자기포장, 제주의 자연을 상품화 그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이날 오전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했더니 외국인 남녀가 1층 ‘헤리티지(heritage·유산) 룸’에 있는 옛날 경대와 한방화장품 재료 등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다가가 물어보니 프랑스 유명 화장품기업 로레알 본사에서 시장 조사를 온 임원들이었다. 재무담당이라는 프레데리크 씨는 “한국의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둘러본 소감을 말했다. 보고 들은 바를 김 대표에게 전하며 물었다.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한 일은 무엇인가요. “아모레퍼시픽은 세계적 듀오 디자이너 ‘네리앤드후’를 건축가로 정한 후 그 안의 프로그램과 층별 세부 기획을 제게 의뢰했어요. 1층에 서점도 낼 수 있고, 숍도 낼 수 있지만 전 브랜드 전통을 강조하자고 했죠. 사랑받는 브랜드들은 이미 충분한 내공이 있기에 오히려 저 같은 외부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 같아요.” ―‘지함보(智函褓·지혜를 담는 함과 보자기)’라는 이름의 보자기 포장이 품격 있었어요. 직접 작명도 했나요. “네. 한국적 포장은 지나치게 멋 부리지 않으면서 모든 걸 다 감싸는 지혜를 갖고 있더라고요.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차(茶)는 박경미 무형문화재 전수자가 만들고, 담는 다기(茶器)는 김선미 도예작가와 정소영 식기장과 함께 작업해 제작했어요.” ―메뉴나 서비스는 어떻게 개발합니까. “제주 이니스프리 하우스를 예로 들어볼게요. 고객이 이니스프리라는 멋진 브랜드를 느끼려면 1초가 아니라 적어도 15분은 머물러야 하는데 카페가 그런 기능을 자연스럽게 하죠. ‘제주 것’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니까 감귤 빵 만드는 아저씨, 동백꽃을 줍는 아주머니처럼 제주 로컬과의 공생도 생각하고요. 깔끔하고 여성적이면서도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그래서 고객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싶은 것. 그런 것들을 전략적으로 녹여 나가다 보면 제주 감귤 주스와 유채꿀 오름 빙수 같은 이니스프리 하우스의 메뉴 방향이 정해집니다.” ―함께 일했던 회사 중 인상적인 곳이 있나요. “10여 년 이 일을 하고 뒤돌아보니 철학이 뒷받침된 회사들을 우러러보게 돼요. 대전 성심당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이념 아래 빵 만드는 직원 한 명 한 명이 가족처럼 움직여요. 신세계는 장방(醬房), 술방, 떡방이란 이름으로 ‘지금 이 순간 한국인이 먹는 장, 술, 떡’을 사명감으로 소개하고요. 바이어들이 좋은 콩을 사서 장 만드는 장인에게 전달해가며 메주의 품질 관리를 해줄 정도예요.” 브랜드, 사람처럼 오래가는 매력 있어야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프랑스 문학자이자 번역가인 김화영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와 국내 1세대 설치작가 양주혜 씨의 1남 2녀 중 장녀로, 고 홍윤숙 원로시인의 손녀다. 부모의 프랑스 유학시절 태어나 이화여대 조소과를 나온 뒤 프랑스로 가 요리와 컨설팅을 배웠다. ―어머니(홍익대 조소과 출신)를 따라 조소를 전공했나요. “아니에요. 대학을 정할 당시에 아버지가 ‘조각이란 360도 입체를 보는 거라 의미 있다, 조소 전공이 의미가 있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했어요. 그 말에 성적에 맞춰 지원했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있을까요. “부모님은 ‘난 불문학자, 난 그림 그리는 사람’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화가 할까, 요리 할까’ 고민할 때 이해하기 어려우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공부를 하고, 어머니는 손가락에 관절염 왔다고 파스 붙여가면서 그림을 그려요. 깊이 있게 한 길을 걸어온 부모님의 무거운 엉덩이를 제가 배운 것 같긴 해요.” 바쁜 워킹맘인 그는 가족과 자주 여행을 하려 한다. 취향과 안목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만들어지는 ‘마음의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7세 아들의 그림들을 모아 두 차례 작은 전시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그의 사무실은 프랑스에서 사온 빈티지 스위치, 고급 향초와 책 등이 가득해 취향의 박물관 같다. 그런데 가장 눈길을 잡아끄는 건 테이블 위에 놓인 인주와 숯, 고무 지우개였다. “60년간 가업(家業)을 이어온 매표화학은 우리 쑥을 달여 발효시킨 인주를 70대 할아버지가 손으로 일일이 용기에 담아요. 제주 해풍을 맞으며 오래 버틴 삼나무와 숯은 공기 정화에 좋고요. 2년 전 가까운 전문가들과 의기투합해 ‘낙낙’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묵묵히 외길을 걸어온 우리 장수기업들의 제품을 큐레이팅해 상품화하고 있어요. 200개 한정으로 만들어 지인들 위주로 판매하는데, 언젠가 우리나라 면세점에서 팔아 한국의 미(美)를 알리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은 처음부터 묻고 싶었던 교과서적인 질문이었다. ―당신에게 브랜드란 어떤 의미인가요. “브랜드는 사람과 같다고 생각해요. 보면 볼수록 끌리는 매력과 생명을 갖게 하는 것, 소비자에게 지불한 가격 이상의 판타지를 선사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 해외를 다니면 유명한 과일 잼이나 기름 생산자가 많잖아요. 우리는 브랜딩 개념이 안 돼 있을 뿐이에요. 얼레빗은 머리카락에 정전기를 안 일으키면서 카드지갑에 쏙 들어가 얼마나 좋은데요. 우리 기업들이 점점 멋있어지는 요즘엔 한국 것을 제대로 볼 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스위스 바젤아트페어 때 백미당 아이스크림을 가져가 팔 수 있다면, 중국 상하이(上海)에 신세계 떡방이 생긴다면 얼마나 근사할까요. K푸드와 K스타일의 인기를 유지하려면 일단 한국 것들이 반짝이는 매력 덩어리가 돼야겠죠. 겸손한 가운데 트렌디하게 국내 역량 있는 브랜드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싶어요.” 아직도 남은 인주와 숯이 있는지 물어 사들고 그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이것들을 선물할 고마운 얼굴들이 달 항아리처럼 떠올라 행복했다. 그가 말한 ‘한국 것들의 매력’에 빠진 것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생각해 보니 당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어요. 오래전부터 줄곧…. 저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엔 아파트 경비아저씨들과 함께 슬퍼하셨죠. 제 손을 붙잡고 동네를 걷는 딸에겐 “엄마랑 오늘 좋은 시간 보내 좋겠다”고 활짝 웃어주시죠. 가끔 출근길에 마주치면 전날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던 제 아들의 표정을 알려주기도 하시고요. 그래요. 미처 깨닫고 살지 못했을 뿐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어요. 최근에야 전해 들었습니다. 저희 아파트에 사는 30대 후반 이웃이 꼬마 때부터, 그러니까 32년째 당신이 지금 그 자리에 계심을. 이 글을 쓰겠다고 당신의 이름도 나이도 며칠 전에야 여쭤 보았어요. 어떻게 당신을 불러야 할까요. 항상 우렁차고 따뜻하게 저희를 챙겨주시는 아주머니가 어느덧 61세라니. ‘신희숙 씨’, ‘신희숙 아주머니’, ‘신희숙 선생님’…. 이제야 알게 된 당신의 성함이 죄다 입안에서 어색하게 맴돌아요. 당신은 우리 동네의 오랜, 정다운 ‘야쿠르트 아주머니’이신 걸요. 흐드러진 동네 벚꽃 아래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어보았습니다. “1979년에 결혼한 이후 남편의 사업이 줄줄이 망했어요.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 동네 아주머니가 ‘애기 엄마, 그러면 야쿠르트 해봐’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1984년부터 야쿠르트 배달 일을 시작했어요. 창피해서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조금 떨어진 동네로 와서요. 엄마가 밖에 나가 일하면 아이들이 행여 비뚤어질까 봐 일찍부터 아들은 운동을 시켰어요. 중학교 때부터 럭비 팀 주장을 하더니 연세대, 상무 나와 대기업에 다녀요. ‘죽을 마음이면 뭘 못 하겠느냐’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다 보니 아이들 다 가르치고 시집 장가 보내고 좋은 고객들을 만났네요. 이젠 노후를 위해 신나게 일해요. 오전 6시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1시쯤 정기 고객들에게 배달을 마치고 그 이후 시간에는 꽃집 앞에서 남은 제품을 팔죠.” 한 달에 250만 원 정도를 버신다고요. 존경심이 듭니다. 고등학교 나와 경리일 하셨다는 당신은 고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동네 외국인 주민들과는 영어와 일본어로 대화하시잖아요. 어떻게 단골 고객을 확보하고 관리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신뢰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저 아줌마는 제대로 된 제품만 팔고 약속을 지킨다’는…. 길 가다가 야쿠르트 사 드시는 분들에게는 ‘일정한 시간 집으로 배달해 드릴 테니 드셔 보시라’고 하죠. 제품이 밀릴 것 같다고 하면 ‘그럼 주 3회 배달은 어떨까요’라고 제안하고요. 일하다가 실수한 점이 있다면 곧바로 인정합니다. 고객을 이기려고 하는 순간 고객은 떨어져 나가니까요.” 오랫동안 지켜본 당신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길에서 우는 꼬마들에게 캐러멜을 쥐여주시는 당신, 혼자 사시는 할머니 고객이 아팠을 때 손수 죽을 끓여다 드리던 당신, 차비가 없다는 동네 학생에게 1000원짜리 두 장을 꺼내주시던 당신…. 설령 가까운 미래에 드론과 로봇이 야쿠르트 배달을 대체한다 해도 당신이 건네준 따뜻한 마음까지 그들이 배달할 수 있을까요. 기술도 필요하지만 당신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먼저이겠죠. 흥미로운 건 당신이 얼마 전부터 최신식 신형 전동 냉장카트를 몰고 다니는 겁니다. 한국야쿠르트가 전국 1만3000명의 야쿠르트 아주머니들이 보다 편하게 일하도록 공급한 카트입니다. 냉장전문회사 오텍캐리어, 전기카트회사 대창모터스 등과 함께 개발했고 르노자동차에 공급되는 LG화학의 2차전지가 장착됐다고 하죠. 한국야쿠르트는 내년까지 800억 원을 투자해 지금 보급된 3800대(대당 800만 원)를 1만 대까지 늘리겠다고 합니다. 이달 4일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야쿠르트의 ‘새로운 배달 전동차 문화’를 1, 2면에 대서특필하면서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485파운드의 냉장고를 부착한 세그웨이(1인용 이동식 전동기기)처럼 보이는 첨단기계 위에 서 있다’고 묘사했습니다. 당신은 “위생적이고 신선한 제품을 배달할 수 있게 돼 고객 앞에서 자랑스럽다”며 “나중에 무릎이 아프더라도 전동카트 덕분에 계속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한국야쿠르트에 물어보니, 조만간 당신의 전동차에는 사물인터넷 기술도 접목돼 고객들에게 맞춤형 위치기반 서비스도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의 마음을 읽고 채워 주는 것의 의미를 당신이 오래오래 가르쳐 주셨어요. ‘신용이 비결’이라는 말이 성공한 사업가의 전유물이 아님을, ‘알파고와 드론 시대’이지만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당신을 만난 동네 골목길에도, 제 마음에도 연분홍 벚꽃 잎이 예쁘게 내려앉았습니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 냄비에 보라색 샬롯(미니양파)과 버섯, 사과 브랜디 등이 담겨 불 위에서 졸여지고 있다. 프랑스 노르망디 소스다. 옆 프라이팬에서는 삶은 감자를 으깨 생크림을 섞은 감자전이 익는다. 노르망디 소스와 제주 흑돈구이, 감자전과 쇠고기 등심 고명 샐러드의 만남. 한국과 프랑스 음식의 마리아주(mariage·프랑스어로 ‘음식 간 결합’)다. 프랑스는 연말까지 이어질 ‘한국에서의 프랑스의 해’를 지난주 시작하며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 12명을 초대한 미식(美食) 축제 ‘소 프렌치 델리스(So French Delices)’를 열었다. 그중에는 두 달 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티에리 샤리에 프랑스 외교국제개발부 수석 셰프(48)가 있었다. 그는 24일 서울의 한식당 ‘콩두’에서 그곳 요리사들에게 노르망디 소스와 감자전 등 자신의 요리법을 시연하고 있었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는 어떻게 음식 외교를 하는가. 프랑스 외교부 식탁을 책임지는 그로부터 듣고 싶었다. 》하루 147國 정상에게 만찬 제공프랑스의 명문 요리학교인 에콜 페랑디를 나온 샤리에 셰프는 파리의 르 로얄 몽소와 리츠 호텔 등을 거쳐 22세부터 외교부 조리팀에서 일했다. 수석 셰프는 2007년에 됐다. ―외교부 셰프가 되는 건 영예로운 일인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그가 받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1802년 전장에서 공훈을 세운 자에게 수여하면서 시작돼 지금은 각 분야에서 프랑스에 기여한 사람에게 준다. 요리사로는 근대 요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1846∼1935)가 1920년 처음 받았다. ―프랑스 외교부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사는 엘리제궁과 가깝나. “센 강을 가운데 두고 가까이 있어 차로 10분이 채 안 걸린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외교부에서 주방은 지하에, 식당은 1층에 있다. 식당은 크기별로 10개의 방이 있다. 그가 이끄는 외교부 조리팀은 20명. 전 세계에서 오는 대통령, 총리, 장관 등 연간 6만 명에게 식사를 만들어 대접한다고 한다. ―최근 치른 기억에 남는 대형 만찬은…. “지난해 11월 파리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열렸을 때 하루 저녁에 147개국 정상의 요리를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 총출동한 행사였다.” ―어떤 요리였나. “네 가지 코스였다. 가리비 전채(앙트레), 양배추로 감싼 닭고기, 치즈, 귤로 만든 디저트.” ―식전주(아페리티프)와 애피타이저(앙트레 전에 나오는 오르되브르)가 없었단 말인가. “그렇다. 각국 정상들은 항상 바쁘다. 200명이 식사해도 45분 안에 만찬이 끝난다.” ―이날 쟁쟁한 프랑스 민간 셰프들과 함께 요리했다던데…. “알렉상드르 고티에, 야니크 알레노, 프레데리크 앙통, 니콜라 마스, 마르크 베라와 함께했다.” 세계적 이름들이다. 일례로 프랑스 분자요리(음식의 질감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재창조)의 대가인 베라는 자신의 식당 두 곳 모두 미슐랭 가이드의 최고 영예인 별 3개를 받았다. 프랑스 미식을 알릴 기회라 한데 모인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도 이날 요리사들을 만나 격려했다.대화를 살리는 美食외교 프랑스는 최근 미식 외교에 각별한 정성을 쏟고 있다. 로랑 파비위스 전 외교장관은 2014년 파리 근교의 고성(古城)에 주프랑스 외국대사 100여 명을 초청해 프랑스 일품요리들을 대접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프랑스 음식과 와인이 앞으로 프랑스 경제와 관광산업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외교부는 세계적 요리사인 알랭 뒤카스와 함께 지난해부터 전 세계에 있는 프랑스 맛집을 선정해 홍보하고 있다. ―외교부가 보유하고 있는 와인은 몇 병인가. 대부분 프랑스 와인인가. “약 1만5000병. 물론 전부 프랑스 와인이다. 귀빈들에게 거의 항상 프랑스 음식을 접대하기 때문에 프랑스 와인을 구비한다.” ―외교부 저장고 속 와인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와인은…. “부르고뉴 지방 와인을 좋아한다. 화이트와인은 ‘뫼르소’, 레드와인은 ‘클로 드 부조’.” ―요리는 어떤 식기에 담는가. “세브르국립도자기제작소가 만드는 고급 도자기에 음식을 담는다. 와인잔은 프랑스 명품 ‘바카라’ 등을 쓴다. 외교부에 식기 담당자들이 있어 클래식한 식기, 특히 빈티지 접시를 많이 구입해 온다.” ―엘리제궁은 바게트를 만들지 않고 매년 빵 경연대회에서 수상한 빵집에서 공수한다던데…. “그렇다. 외교부도 초콜릿까지는 직접 만드는데 바게트는 외부에서 사 온다. 요즘에는 파리 1구에 있는 유명 빵집 ‘고슬랭(Gosselin)’에서 사 온다.” ―음식이 외교에 중요하다는 걸 경험한 적이 있나. “누구나 프랑스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좋은 음식을 내놓으면 대화의 분위기가 좋아진다. 그것이 곧 음식 외교라고 생각한다.” 그는 평소 주프랑스 대사관들로부터 귀빈의 식성을 파악한다. 이달 프랑스 외교부를 방문했던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브로콜리를 먹지 않는다기에 내놓지 않았다. 케리 장관은 외교부에서의 식사를 매우 흡족해했다고 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귀빈은…. “고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생전에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우리 요리사들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했다. 그분이 큰 사람인 걸 느꼈다.” 그는 프랑스 외교부 조리팀의 연간 예산을 묻는 질문에는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경제 여건이 나빠지면 예산이 줄어드는지 묻자 “세금이 덜 걷히면 줄어든다”고 말했다. ―각국 정상들이 몸매와 건강을 관리할 텐데 끼니별 칼로리를 계산하나. “그렇지는 않다. 다만 저녁에는 고기 대신 생선을 내놓을 때가 많다.” ―‘프랑스다운’ 요리는 뭘까. “풍부한 제철 식재료에 맞는 조리 기법을 적용한 요리.” ―그 프랑스다움을 표현한 요리가 있다면…. “넙치 수플레(souffl´e·거품 낸 달걀흰자에 원하는 재료를 섞어 오븐에서 구운 음식)다.” 수플레는 잘못하면 부풀린 모양이 꺼지기 때문에 예술과 과학이 동시에 필요한 요리로 꼽힌다.요리사의 미각, 외교관의 감각 그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난다. 주 1회 유럽 최대 식자재 도매시장인 파리 랭지스(Rungis) 시장에서 장을 본다. 오전 6시 반 출근, 저녁에 큰 행사가 있으면 오후 9시 반쯤 퇴근하고 별일 없으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메뉴를 정할 때 장관의 식성에 따르는가. “아니다. 메뉴는 제철에 난 식재료를 최우선으로 활용해 짠다. 지금 같은 3월 말에는 아스파라거스가 특히 좋다.” ―요리하다 보면 정작 본인은 식사를 놓칠 것 같다. “일하느라 대개 점심은 건너뛴다. 조금씩 맛볼 일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허기지지 않는다. 집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요리한다. 스테이크와 생선처럼 조리가 간단한 음식이다. 낮에 많이 먹은 날엔 저녁은 수프만 먹는다.” ―평소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요리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새로운 음식을 많이 만들어 보는 게 스트레스를 줄인다.” ―한국 음식에 대한 느낌은…. “파리의 한식당에서 먹어 볼 때 두부와 김치에 관심이 있었다. 이번에 한국을 처음 방문해 보니 한국 음식은 매운맛이 강하고 짠맛이 적었다. 맛의 균형이 필요할 것 같다.” 그와 세 시간을 함께했다. 한 시간 반 동안은 주방에서 그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나머지 한 시간 반 동안 인터뷰했다. 그는 여러 음식을 동시에 만들면서도 결코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자신의 주방이 아닌데도 어느 선반에 어떤 양념이 있는지 꿰뚫고 있었으며, 각 요리가 끝날 때마다 쓰던 칼들을 말끔하게 정리해 도마 오른쪽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그의 정교한 칼질이 신기해 물었다. “당신이 지금껏 칼질한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1만 시간?” 그는 “글쎄. 몇 년은 되겠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랬다. 외교부 주방에서부터만 따져도 하루 5시간씩 주 5일 26년을 칼질했으면 거의 4년이다. 나중에 전해 들어보니, 그는 정부 관련 질문을 많이 받아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의 손님을 위해 요리하는 프랑스 외교부 셰프는 인터뷰 내내 그런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공효진: “영어 좀 하죠? (‘SSG’라고 쓰여 있는 화면을 가리키며) 이거 읽어봐요.” 공유: (힐끗 쳐다보고) “쓱.”공효진: (무표정하게) “잘하네.”히트 광고가 나왔다. 지난해 12월부터 방송된 후 지금까지 유튜브 동영상 조회 건수가 250만 건. 신세계그룹의 통합 온라인몰인 SSG닷컴의 일명 ‘쓱 광고’ 시리즈다. 남녀 모델은 ‘SSG’를 ‘ㅅㅅㄱ’이라 쓰고 ‘쓱’이라고 불렀다. MLB(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므르브’라고 부르는 요즘 젊은이들의 화법을 반영한 것이다. ‘에스에스지’에서 ‘쓱’으로 발음을 바꾼 건 소비자 인지도를 높인 신의 한 수였다. 신세계 측은 “SSG닷컴의 1, 2월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32% 오른 데엔 ‘쓱 광고’ 인기의 영향이 컸다”라고 귀띔했다. 광고의 색(色)도 다르다. 모던하다. 광고제작 프로덕션인 ‘617’의 백종열 감독(46)은 ‘그림처럼 보이는 광고’를 만들어냈다. 그는 유명 CF감독이자 영화감독, 캘리그래퍼(글씨 예술가), 안경과 문구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21세기형 멀티아티스트인 그를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617’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감각을 ‘쓱’ 하고 싶어서…. 》생각은 만질 수 있는 것그의 공간은 철제 책꽂이가 사방에 놓여 있는 오픈형 복층 구조였다. 아래층 테이블 위에는 국내 신문들과 함께 미국 디자인잡지 ‘월페이퍼’가 놓여 있었다. 위층엔 백 씨가 지난해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받은 영화 ‘뷰티 인사이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뷰티 인사이드는 매일 아침 외모가 바뀌는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영화다. 도시바와 인텔이 동명(同名)의 제목으로 만들었던 6부작 웹 드라마 시리즈를 원작으로 했다. ―영화는 원작에 비해 광고의 느낌이 강했다. 남자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 욕실 수납장 문을 열 때 ‘나스’와 ‘이솝’ 화장품이 눈에 띄었다. 감독의 취향인 듯했다. “맞다. 나스는 제품 패키지의 영문 서체가 감각적이라서, 이솝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마음에 들어 골랐다.” ―가구 디자이너인 남자 주인공이 여자에게 준 반지도 인상적이었다. 나무 반지 가운데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디자인…. “남자는 나무로 특화된 캐릭터였기 때문에 프러포즈 반지도 자작나무로 만들었다. 그 반지는 여주인공이었던 한효주 씨에게 선물로 줬다. 효주 씨 손가락에 맞춘 반지니까.” ―감독이 여주인공에게 사심(私心)이 있나 싶을 정도로 한효주 씨가 예쁘게 나왔다. “효주 씨를 캐스팅한 가장 큰 이유는 대립 각을 쉽게 세우지 않는 선한 눈빛 때문이었다. 그런데 효주 씨는 너무 착하게 생겼다. ―영화든 광고든 모든 장면을 철저하게 계산하는 것 같다. “후회하는 걸 싫어한다.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생각나는 게 있으면 그 생각을 만질 수 있게끔 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얼렁뚱땅” 영상의 세계에 입문했다. “서울 중경고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에 가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넉넉지 않은 집에서 굉장히 이상한 허세를 부린 거라서 결국엔 버텨내지 못하고 2년 만에 돌아왔다.” ―어느 블로그에서 백 감독이 뉴욕주립대 산하 디자인학교(FIT)를 나왔다던데…. “아니다.” ―결국 대학은 졸업하지 못한 건가. “그렇다. ‘일단 살아야 하는데’라고 고민할 때 친구가 사진가 김용호 선생님의 스튜디오인 ‘도프앤컴퍼니’에 면접을 간대서 동행했다가 그곳에서 막내로 일하게 됐다. 1990년대 중반 엘칸토, 무크 등 패션브랜드 광고 사진을 찍었다. 이후 독립해 서울 용산의 할머니 집 거실에 테이블, PC만 놓고 만든 닉스, 스톰 등의 패션광고가 히트했다. 영상광고는 2000년에 ‘에뛰드’ 화장품 측에서 지면 광고 느낌으로 TV 광고도 만들 수 있겠냐고 해서 얼렁뚱땅 ‘하겠다’고 답하며 입문했다. 그래서 이제까지 조감독 생활을 단 한 시간도 한 적이 없다.” ―지면 광고와 영상 광고는 많이 다를 텐데…. “초반에 집중해 공부한 시간이 길었다. 장비는 뭔지, 업계 용어는 뭔지 몸으로 부딪치며 배웠다.” ―어떻게…. “아르바이트 막내, 나이 많은 스태프…. 가리지 않고 보이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었다.” ―그간 히트작들은…. “광고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박웅현 TBWA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와 일을 많이 했다. SK텔레콤의 ‘현대생활백서’, 네이버 ‘세상의 모든 지식’ 등등.” 호퍼의 우울함, 쇼핑을 만나다 ―쓱 광고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매우 만족해했다고 한다. “광고대행사 HS애드가 미국 작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그림을 활용하기로 하는 등 아이디어 세팅을 끝내놓은 상태였다. 광고제작 프로덕션인 우리는 그 후에 투입됐다.” ―그렇다면 ‘백종열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어떻게 화면을 구성할 것인가’였다. 호퍼의 어떤 그림을 쓸지,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배치할지. 호퍼 그림은 우울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쇼핑과 어울리지 않는다. 명도, 채도 올리며 색감들을 리터치하면서도 호퍼 고유의 색채 톤을 유지하는 게 과제였다.” 색감이 뛰어난 그는 검은색 차와 자전거를 타고 투명한 뿔테 안경을 낀다. 색끼리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다. 사무실 건물 밖에는 그의 ‘갤로퍼’가 주차돼 있었다. 외관은 검은색 무광(無光)인데 내부 계기판 주변 대시보드와 시트, 바닥은 나무 소재로 싹 개조한 차였다. 사무실 안에 들여놓은 미국산 ‘캐논데일’ 자전거도 검은색 무광 프레임이었다. ―기혼자의 무거운 짐이 느껴지지 않는다. “(웃음) 싱글이다.” ―지금 입고 있는 검은색 점퍼에는 ‘구조대원들(SAPEURS POMPIERS)’이라는 빨간색 프랑스어 라벨이 붙어 있다. 처음 보는 브랜드인데…. “상표가 아니다. 일본 도쿄의 한 가게에서 이런 라벨들을 판다. 마음에 드는 걸 사다가 옷에 달아 입는다.” ―왜 회사 이름이 ‘617’인가. “기념할 날짜. 기념 이유를 공개할 수는 없고….” ―돈을 많이 벌었겠다. 성공한 것인가. “오래 살아남았다는 게 답변이 될 수 있겠다. 워낙 생겼다가 사라진 프로덕션이 많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많다.” ―617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공책도, 속옷도 만들어 판다. “명절 때 지인들에게 사과 같은 뻔한 선물을 보내기보다 내가 만든 공책을 선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필요가 발명을 만드는 것 같다. 사진가 홍장현 씨와 ‘그래픽 플라스틱’이란 안경 브랜드를 만든 것도 그런 맥락인가. 요즘 연예인들이 많이 썼던데…. “각국 도시들을 다녀 봐도 마음에 쏙 드는 안경을 만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내 얼굴에 맞는 안경을 직접 만들게 됐다. 안경은 묘한 장르다. 의학, 광학적인 기능을 하면서도 사람들의 관심이 얼굴 위에서 집중되는 ‘또 다른 옷’이다.” 그의 책상 위에는 온갖 종류의 필기도구들이 있다. 그는 유명 캘리그래퍼이기도 하다. SK텔레콤의 ‘생각대로 해, 그게 답이야’, 더페이스샵의 ‘내 어깨에서 영화보기/길에서 안아주거나 기대서 잠이 들거나/내 뒤에서 날 감싸거나’ 등의 광고 필체가 그의 손글씨였다. 폰트 회사인 산돌커뮤니케이션은 ‘백종열체’도 선보이고 있다. 세밀한 연출력에 카리스마까지 ―아날로그 성향이 강한 것 같다. 그런데 정보통신기술(ICT)로 광고 환경도 많이 바뀌지 않았나. “이젠 모바일 시장이다. 고객들의 검색의 흐름을 찾아 광고를 내보내기 때문에 침투력과 파괴력이 엄청나다. 나도 광고하는 사람이지만 광고에 낚이고 설득당한다. 광고는 더 세분된 고객을 타깃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소통에 대한 정의는…. “쓱 광고에도, 영화에도 넣고 싶었던 건 사람의 온도다. 아무리 디지털화해도 체온은 배제될 수 없으니까. 쓱 광고에도 화면의 일정 부분은 포커스를 일부러 날렸다. 1억 화소 카메라가 곧 나온다는데, 너무 다 잘 보이는 기술이 굳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의도적으로 포커스를 살짝 죽이면 푸근해진다. 거기에 사람의 온도, 소통이 있다.” ―지금, 행복한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행복하다, 만족스럽고. 어떤 것들은 더 해야지 싶지만 그 자체를 바라보고 끌고 가고 즐기는 그런 관점이 필요한 것 같다.” 동아일보 독자들을 위한 캘리그래피를 부탁해봤다. 그는 종이로 심을 까는 소박한 검정 색연필을 꺼내 들고 백지에 예의 그 힘찬 필체로 썼다. ‘행복뿐입니다. 행복하세요.’ 그와 쓱 광고 작업을 했던 HS애드 주은숙 부장에게 나중에 물어봤다. 함께 일해 본 백 감독은 어땠는지. “백 감독은 경기 양평에 5개의 세트장을 온통 하얗게 제작한 뒤 촬영 후반부에 색을 따로 입혔는데, 하얀 세트장마저 감각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디렉션(지시)이 정확했다. 남녀 모델이 눈을 마주치는 장면까지 디테일하게 연출했다. 그림 같은 광고를 원하는 광고주의 세련된 요구에 맞추려면 감독의 예술 감각이 1순위로 필요했다. 현장에서 유명 모델들을 장악할 수 있는 카리스마도 있어야 했다. 그게 백 감독이었다.” 그는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기성 시장과 제도에 반하는 모습을 트위터에서 드러내기도 한다. 예술적 스펙트럼만큼 캐릭터가 다면적이었다. 참, 그의 한쪽 귀에는 1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커다란 구멍이 쓱 뚫려 있었다. 그 구멍이 너무 커서 놀라웠다. ― 안 아픈가. “안 아프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세계 4대 패션위크가 있다.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적 패션쇼다. 이 패션쇼들을 몇 차례 취재한 적이 있다. 패션 바이어, 미디어 관계자, 유명 인사 등 ‘초대받은 자’들이 패션쇼장에 입장하면 통상 30분∼1시간 후에 쇼가 시작됐다. 시간이 금쪽같은 사람들이지만 큰 불평은 나오지 않았다. 10여 년 전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적 쇼와 디자이너와 옷들을 ‘직접’ ‘미리’ 보는 것만으로도 패션 선구자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 옷들은 약 6개월이 지나서야 전 세계 매장에 깔렸다. 그런데 이달 5일 영국 명품 ‘버버리’는 글로벌 패션업계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될 만한 혁명적 선언을 했다. 내용은 이렇다. ‘버버리는 올해 9월부터 향후 패션쇼 일정 및 매장 판매방식을 기존 업계 방식과 다르게 운영할 예정이다. 그동안 매년 네 차례(1, 2, 6, 9월) 선보였던 남성복과 여성복 쇼를 통합해 연 2회(2월과 9월) 열 것이다. 패션쇼 명칭은 기존의 봄·여름 컬렉션과 가을·겨울 컬렉션이 아닌 버버리 컬렉션으로 부르겠다. 쇼에 나온 옷들은 쇼가 끝나자마자 즉시 매장과 온라인을 통해 팔 것이다. 시즌의 경계를 없애고 보다 즉각적이며 개인화된 방식으로 고객을 만날 것이다.’ 이것은 버버리가 글로벌 패션업계의 오랜 전통을 무너뜨리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탈퇴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요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9월에 팔 옷은 9월 패션쇼에서 선보인 뒤 곧바로 팔겠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 같지만 패션업계는 그동안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글로벌 명품들이 참여하는 세계 4대 패션위크는 매년 2, 3월에는 그해 가을과 겨울의 옷을, 8, 9월에는 이듬해 봄과 여름의 옷을 선보인다. 판매 시점까지 몇 달 동안 바이어는 옷을 구매하고, 언론매체는 관련 기사를 준비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소비자가 소외돼 있다. 봄옷을 장만할 시기에 패션쇼에서는 겨울옷이라니…. 쇼와 현실 사이에는 ‘불편한 계절의 간극’이 있었다. 버버리는 이런 불합리함을 한방에 날려 버렸다.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총괄책임자 겸 최고경영자인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버버리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며 버버리를 명품업계 지도 위에 특별하게 포지셔닝해왔다. 2009년 명품 브랜드로는 최초로 온라인에서 패션쇼를 생중계한 이래 페이스북, 카카오톡, 라인, 구글, 애플 등과 다양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패션쇼 음악을 애플 뮤직에서, 패션쇼 메이크업 제품을 카카오톡에서 만나는 고객은 버버리와 공고한 친밀감을 쌓게 된다. 버버리의 혁명적 선언에 즈음해 ‘톰포드’ ‘베트망’ ‘타쿤’ 등 다른 브랜드들도 같은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톰포드는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변하는 세상에서 전통적 방식의 패션쇼와 시스템은 예전처럼 통하지 않는다. 고객들이 ‘입고 싶을 때’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패션업계의 진짜 임무”라고 발표했다. 1943년 시작돼 73년 역사를 지닌 올해 미국 뉴욕패션위크(이달 11∼18일)도 이 같은 변화를 드러냈다. 온라인에서 50∼135달러짜리 입장표를 구입한 1만8000명의 일반 대중에게 패션쇼가 공개된 것이다. 패션쇼 모습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퍼졌다. 오죽하면 뉴욕패션위크 협회장인 디자이너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11일자 ‘스마트폰은 어떻게 패션쇼를 죽이고 있나’)에서 “지금은 완전한 혼돈의 순간이다. 모두들 새로운 규칙을 배워야 한다”고 했을까. 명품 패션업계는 지금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선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홍콩에서의 반(反)중국 시위, 파리 테러 등으로 소비심리가 크게 악화됐다. 자라, H&M 등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한 옷들도 넘쳐난다. 게다가 스마트폰은 수십 년간 지속된 패션의 생산, 유통, 소비 방식을 통째로 바꾸고 있다. 과거 명품의 자존심은 희소성 있는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충성스러운 기다림’을 기반으로 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의 소비자는 ‘원할 때 원하는 것’을 곧바로 얻어야 만족한다. 일부 명품 브랜드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오만함을 내려놓은 이유다. 명품은 과거처럼 계속 콧대 높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소비자가 그 오만함을 예전처럼 받아줄지…. 버버리는 명품업계가 처한 혼돈의 시대에 남들이 하던 관행을 깼다. 버버리의 ‘콜럼버스의 달걀’식 시도가 업계에 가져올 변화를 주목한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5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대사관저 응접실에 들어서자 그랜드피아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벽면엔 대형 그림 두 점이 걸려 있었다. 대사관 측에 물어보니 불사조(不死鳥)를 그린 오른쪽 직물화는 살바도르 달리, 왼쪽 추상화는 프랑스에서 활동한 한국인 1세대 화가인 이세득(1921∼2001)의 작품이다. 프랑스 가구와 한국의 추상화가 잘 어울렸다. 파비앵 페논 대사에게 “피아노를 친다면 연주를 부탁한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친다”며 손사래 쳤다. “아이가 몇 명인가요?” “14, 12, 9, 2세. 네 명이에요. 아들 하나, 딸 셋.(웃음)” 파비앵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48)가 한국에 부임한 지 다섯 달 됐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전날인 4일에는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페논 대사는 지난해 9월 14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며칠 후 바로 파리로 가서 샤요 국립극장에서 열린 ‘2015∼2016 한-프랑스 상호교류의 해’ 개막행사(현지 시간 9월 18일)에 참석했다. 양국 간 수교 130주년인 올해는 ‘한-프랑스 상호 교류의 해’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는 ‘프랑스 내 한국의 해’, 올해 3월부터 12월까지는 ‘한국 내 프랑스의 해’로 양국에서 각각 150여 개의 사업이 펼쳐진다. 그 중대한 책임이 페논 대사의 어깨 위에 있다.양국에서 韓-佛 유학박람회 ―지난해 저도 ‘한-프랑스 상호교류의 해’ 개막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파랑 하양 빨강으로 빛나던 에펠탑이 인상적이었어요. 곧 한국의 태극기이자, 프랑스의 삼색기더군요. “‘프랑스 내 한국의 해’는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요즘 프랑스에서는 한국의 케이팝, 웹툰, 드라마, 영화, 패션이 워낙 인기라 한국에 와서 공부하거나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또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엘리제궁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를 만나 내년부터 한국어를 바칼로레아(프랑스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 제2외국어로 격상시키기로 했습니다. 양국 간 교류가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국 유학생 수는 얼마나 되나요. “현재 한국에서 공부하는 프랑스 학생이 1000여 명,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이 6500여 명입니다. 2013년 준비에브 피오라조 고등교육장관의 이름을 딴 ‘피오라조 법’이 시행되면서 프랑스 대학들이 영어 수업을 대폭 늘리고 있습니다.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유학생이 많은 프랑스는 지난 2년간 외국인 유학생이 21% 늘었습니다. 올해 프랑스에서는 한국 유학박람회가, 한국에서는 프랑스 유학박람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자국어에 대한 애정이 큰 프랑스에서 영어를 장려하다니 의외입니다. “언어가 장벽이 돼서는 안 되니까요. 영어 수업을 보고 프랑스에 왔다가 프랑스어를 배우는 외국 학생이 많습니다. 학생 유치에 힘쓰는 건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프랑스는 체류 허가를 얻는 게 까다로운 것으로 악명이 높지 않던가요. “프랑스가 달라졌습니다. 장기 체류하는 유학생을 위해 1년마다 갱신해야 했던 체류증을 학업 기간 중 한 번만 발급받으면 지낼 수 있도록 최근 법이 바뀌었습니다.”신세대 스타트업 육성에 승부 ―청년실업이 고민입니다. 프랑스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합니까. “프랑스는 지금 정부, 기업, 학교가 협력해 스타트업 인재를 키우는 데 모든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우수한 인재를 키워 신바람 나는 일자리를 갖게 하면 저출산과 실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대표적인 것이 스타트업을 세워 해외 진출을 목표로 삼는 신세대 기업가들의 네트워크인 ‘라 프렌치 테크(La French Tech)’입니다. 정부 산하 공공투자은행인 BPI프랑스가 참여해 해외 스타트업 인재 유치를 지원하는 ‘프렌치 테크 티켓’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당선된 창업가에게는 연간 2만5000유로(약 3400만 원)의 보조금을 주고 사무공간과 컨설팅 등을 지원합니다.” ―프랑스어와 영어의 조합으로 ‘라 프렌치 테크’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가 있습니까. “프랑스가 디지털 강국 지도에서 굳건히 자리 잡기 위해 국제적 가시성을 갖추는 게 목표였습니다.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으니 꽤 괜찮은 이름 같습니다.” 페논 대사는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쇼인 국제가전전시회(CES) 얘기도 했다. 프랑스는 이 쇼에 190개 업체가 참가해 미국(193개 업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기업이 참여한 국가였다. 세 번째인 이스라엘의 참가 업체 수는 17개였다. 특히 스타트업 전시장인 ‘유레카 파크’는 프랑스 상징인 수탉 그림으로 뒤덮였다. 프랑스 스타트업들이 수탉이 그려 있는 ‘라 프렌치 테크’ 로고를 각 부스에 달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최근 스타트업이 활기를 띠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최근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가 18∼24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절반이 직접 회사를 차리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프랑스는 창조와 혁신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교육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교육이 인재들의 재능을 발굴해 키웁니다. 연구개발(R&D) 관련 감세(減稅)와 크라우드 펀딩 등 스타트업을 위한 정책이 40여 개에 이릅니다. 프랑스는 유럽 2위의 벤처캐피털 시장이기도 합니다. 올해 말엔 프랑스 ‘일리아드’ 통신사의 그자비에 니엘 대표가 파리 도심에 세계 최대 규모(3만4000m²)의 창업 인큐베이팅 센터를 열어 1000개의 스타트업을 입주시킬 계획입니다. 한국의 스타트업도 환영합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스타트업을 소개해 주시죠. “크리테오(빅데이터 기반 광고회사), 시그폭스(대표적 사물인터넷 기업), 방트프리베(명품 인터넷 쇼핑몰), 블라블라카(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등이 유명합니다. 프랑스는 빅데이터, 핀테크, 사물인터넷, 비디오게임 분야에서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 스타트업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요. “기술력과 미적 감각을 조화시키는 창조적 노하우. 곧 창조경제입니다.” ―대사님이 관심을 갖는 한국의 스타트업이 있습니까. “그동안 만났던 스타트업 중에는 ‘마이뮤직테이스트’가 있습니다. 해외에서 한국 콘서트를 열어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곳입니다.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개인 맞춤형 수학교육 스타트업 ‘노리(KnowRe)’도 관심을 끕니다. ―한국에서 펼쳐질 스타트업 교류는 무엇입니까. “3월 말 서울에 스타트업 지원기관인 ‘프렌치 테크 허브’가 문을 엽니다. 의료기술과 핀테크 포럼(5월), 로봇박람회(10월) 등도 예정돼 있습니다.” ―‘한국 내 프랑스의 해’ 개막행사는 무엇인가요. “조세 몽탈보 파리 샤요 국립극장 무용감독과 한국 국립무용단의 공동제작 공연이 3월 23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립니다. 이에 앞서 3월 21일에는 아따블르(서울 종로구 삼청동), 메르씨엘(부산 해운대구 중동) 등 한국 내 프랑스 식당 11곳에서 ‘구 드 프랑스(Go^ut de France·프랑스의 맛)’가 열립니다. 세계적 요리사 알랭 뒤카스 등이 전 세계 프랑스 식당 1000여 곳을 선정해 현지 재료로 프랑스 음식을 선보이는 행사입니다.” 대사관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3분의 1이 ‘프랑스를 방문하게 된 이유’로 미식과 와인을 꼽는다. 이에 프랑스 외교국제개발부는 ‘와이너리 관광’을 세계적으로 키우기 위해 이달 초 와인 관광 사이트(visitfrenchwine.com)도 새롭게 선보였다.파리 테러 때 한국인 위로에 감사 ―몇 년 전 프랑스 와이너리들을 취재하면서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과의 문화 교류 가능성을 봤습니다. 프랑스 와인 저장고에서 한국의 공연을 펼치는 식으로요. “맞습니다. 양국 간 지역별 공통분모를 찾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양식기로 유명한 프랑스 중서부 리모주는 한국의 도예도시 경기 이천과 기술 교류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부산, 강원 평창, 경남 거제를 방문했는데, 다른 지역도 부지런히 다녀 이 협력을 늘리겠습니다.” 인터뷰에 배석한 미리암 생피에르 주한 프랑스대사관 공보관은 “혹시 읽어봤느냐”면서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의 ‘발효음식을 먹는다면’ 기사(1월 26일자)를 소개해 주었다. 미슐랭 가이드 별 세 개를 받은 프랑스 스타 요리사 야니크 알레노가 반해있을 만큼 한국의 김치가 프랑스에서 세련된 건강음식으로 통한다는 내용이다.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있습니까. “불고기와 비빔밥이요.” ―한국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프랑스 음식이 있나요. “프랑스어로 ‘삶의 예술(art de vivre)’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생을 즐기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3500여 종의 치즈와 다양한 와인을 맛보면서 그 예술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프렌치 스타일’을 정의한다면…. “역사와 전통, 끊임없는 혁신의 조합.” ―지난 5개월의 한국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하나만 고르기는 어렵습니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이후 한국 국민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을 때, 두 살짜리 막내딸이 한국 어린이집을 즐겁게 다니며 한국어를 조금씩 말하는 걸 볼 때, 부산의 해변과 철원의 독수리 등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을 감상할 때….”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안녕하세요. 중국인 관광객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여러분은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계세요? 한국엔 싱그러운 감귤나무도 있고, 고즈넉한 북카페도 있고, 반짝반짝 빛나는 케이팝 스타들도 있지요.이번에 한국 관광을 온 여러분을 위해 다양한 정보를 준비했습니다. 특히 롯데는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종합관광안내서비스 앱인 ‘天天樂添(톈톈웨톈·매일 더해지는 즐거움)’을 내놓았습니다.롯데면세점, 롯데백화점, 롯데월드, 롯데호텔 등 유통 관광 서비스 관련 15개 계열사의 쇼핑, 이벤트 정보와 모바일 쿠폰 등 다양한 혜택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개별 자유여행객이 가장 크게 곤란을 겪는 명소의 길 찾기, 번역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어 지도 서비스와 번역 기능을 준비했습니다. 애플 스토어,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함께 360, 바이두 등 중국 주요 앱마켓과 www.365lotte.com을 통해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사진 롯데면세점 제공}

오래된 공장-버려진 창고 이용해 박물관-빈티지 카페 등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는 사업 ‘인기’ 최근 서유럽에서는 낡은 공장 건물이나 버려진 창고를 창조적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도시 재생 사업은 생태 예술과 지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중이다. 지은 지 100여 년 된 양조장이 프라다 재단으로 프라다 창업자의 손녀이자 수석 디자이너, 미우차 프라다는 최근 사회공헌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패션 회사의 한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그 중추적 역할은 1993년 발족한 프라다 재단이 맡고 있다.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이자 밀라노 엑스포 예술 감독을 맡았던 첼란트를 영입해 지난해 5월 프라다 재단의 새 건물을 세웠다. 이를 위해 프라다는 세계적 건축가 램 쿨하스에게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 밀라노 남부의 버려진 철로변 터를 창조의 땅으로 변신시켰다. 100여 년 된 양조장이 있던 1만9000m²가 환골탈태했다. 쿨하스는 1890년대에 세워진 건물의 역사성을 유지하면서도 모던함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냈다. 재단 내 건물로는 다큐멘터리 전문 영화관, 유리와 알루미늄이 주로 쓰인 단기 전시관, 유리를 통해 내리쬐는 빛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계된 상설 전시관, 카페 등이 있다. 모든 건물은 하나의 세계처럼 연결되었다. 여기에서 고전주의 조각상부터 루이즈 부르주아, 댄 플래빈, 로버트 고버, 로리 앤더슨과 같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다양한 미술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클래식과 레트로의 이미지로 노스탤지어를 떠올리게 하는 카페 ‘더 바 루체’는 프라다 재단을 더욱 빛나게 하는 장소다. 2014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웨스 앤더슨에게 디자인을 맡기기 위해 미우치아 여사가 많은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앤더슨은 1950년대 밀라노 분위기를 재현한 인테리어부터 메뉴 선정과 플레이팅 방식에 이르기까지 직접 관여해 영화 속 세트장을 방문한 듯한 신선한 경험을 느낄 수 있게 했다.버려진 탄광 도시에 들어선 루브르 분관 벨기에, 영국, 독일의 국경에 있으며 파리에서 북쪽으로 200여 km 떨어진 도시, 랑스(Lens)에 들어선 루브르 분관은 폐허로 전락한 도시에 활력소다. 프랑스 문화재 지방분산 정책에 따라 메스에 문을 연 퐁피두 분관과도 맥을 같이한다. 랑스 박물관 건립을 위해 투자된 비용은 11억7000만 유로로 재정의 60%는 랑스가 속한 노르파드칼레 지방에서, 20%는 유럽 문화 기금이, 나머지 20%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했다. 이 도시는 세계 제1차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2차 대전 당시에는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다는 이유로 연합군의 폭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 광산 산업으로 활기를 되찾았지만 석탄 이용의 감소로 1960년대부터 탄광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1986년에는 마지막 탄광이 문을 닫았다. 그 결과, 주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났고 남은 사람들 다수가 실업자가 됐다. 그 무렵 루브르 분관에 대한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다른 네 도시와의 경합을 물리치기 위해 랑스의 시장과 시민들이 똘똘 뭉쳐 박물관 건립을 이끌어냈다. 이곳의 설계는 프리츠상 수상자인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참여한 일본의 건축 설계업체 ‘SANAA’가 맡았다. 프리츠상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상이다. 조경 작업에는 유명 조경가인 미쉘 데빈느가 참여했다. SANAA는 루브르랑스의 설계를 마친 이듬해인 2014년에 일본 가나자와 시에 혁신적인 미술관을 세우기도 했다. 루브르랑스는 투명성과 개방성을 통해 주변 환경 및 공간들과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루브르 궁전의 권위적인 위계를 허물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낮은 건물(1층과 지하)을 지향한다. 7000평의 땅 위에 세워진 다섯 부분의 건물 중 하이라이트는 ‘시간의 갤러리’. 300m가 넘는 유리 벽면을 통해 밖에서 안이 투영되도록 설계됐다. 고대부터 19세기까지의 작품을 시대 순으로 전시하는데,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달리 조각과 회화 작품을 한 공간에 전시한다. 칸막이 없이 탁 트인 공간 자체가 스펙터클한 미술의 역사와 관람객의 소통을 이끌어낸다. 개관 첫해에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여기로 옮겨와 관광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현재는 렘브란트, 푸생, 루벤스와 같은 유명 작가들의 회화 작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매년 70여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면서 이 지역 교육과 문화 그리고 경제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는 루브르랑스는 예술 공간을 넘어 버려진 공간의 새로운 탄생을 보여주고 있다.선로변에 버려진 건물이 가장 시크한 장소로 유로스타와 탈리스 등 국제선 주요 철도 노선의 기착지인 파리 북역 아래쪽에 있는 메트로 마르카데-푸아소니에 역 근처에 위치한 그라운드 컨트롤(Paris Ground Control)은 세상과 단절된 또 하나의 세계다. 가드가 서 있는 정문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마주하게 되는 이 공간은 2009년 이후 버려져 있던 파리 철도청 소유의 기관차 정비소와 창고 등이 3㏊(헥타르·1㏊는 1만 ㎡)의 면적에 들어서 있다. 카페, 바, 레스토랑, 빈티지 가게 등이 한데 모인 하이브리드 공간을 지향한다. 선로변에서는 프랑스 어른들의 쇠구슬치기인 페탕크와 핀란드식 놀이인 몰키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관상용 닭이 사는 생태 공간과 바이오 농작물을 키우는 작은 농장도 볼 수 있다. 이웃한 창고 건물 안에는 친환경적인 가구와 중고 옷가지 등을 파는 빈티지 숍, 이탈리안 피자가게 등이 있다. 파리지앵들은 주말에 가족과 함께 브런치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일렉트로 음악 콘서트, 전시, 요가와 댄스, 뜨개질, 수염 손질 등의 강의에 사람들이 몰린다.글·사진 밀라노·랑스·파리=정기범 여행작가}

《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노신영 전 국무총리(86)는 인터뷰하는 3시간 내내 말을 아꼈다. 그러니까 ‘노신영’이지 싶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 외무부 장관(1980∼1982년), 국가안전기획부장(1982∼1985년), 국무총리(1985∼1987년)를 역임했다. 하나같이 알고도 말 못할 게 많은 자리들이다. 마침 그를 만난 날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렸다.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죄,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 지원 재단에 일본이 정부예산 10억 엔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알려진 직후였다. 노 전 총리는 “그만하면 잘됐어”라고 말했다. 재단 설립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을지 묻자 “글쎄. 그 이상은 하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해”라고 했다. 그를 찾은 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4)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롯데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면서 고령인 신 총괄회장의 건강과 판단력이 진행 중인 9건의 관련 소송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노 전 총리는 1994년부터 2013년까지 롯데복지재단과 롯데장학재단의 이사장을 맡는 등 신 총괄회장과 친밀하게 지내왔다. 현재는 롯데그룹 총괄고문이다. 》장남 집무실 들어오자… “너, 나가”―최근에 신 총괄회장을 언제 만나셨습니까. “한 달 됐나. 신 회장과 식사를 같이했어.” 그는 신격호 총괄회장을 시종일관 ‘신 회장’으로 불렀다. 2011년 차남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회장에 오르면서 신격호 회장은 총괄회장이 됐다. 20년 넘게 신격호 회장과 인연을 맺어온 노 전 총리로서는 ‘신 회장’이란 호칭이 입에 붙었을 것이다. 40년 이상 나이가 적은 기자에 대한 반말 화법과 신 회장이란 호칭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하려 한다. ―롯데 임원들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이 요즘 같은 말을 자주 반복한다던데요. “나하곤 오랜 인연이 있어 그런가. 그렇지 않았어. 특별한 내용 없이 그냥 음식 얘기를 해서 그런가. 다만 한 가지, 귀가 잘 안 들리시더구먼.” ―어디에서 무슨 음식을 드셨나요. “롯데호텔서울 34층 신 회장 집무실 식당에서 양식을 먹었어. 프랑스식이지. 그전에 나하고 식사도 여러 번 했거든. 이탈리아식 프랑스식 중국식. 물론 한국식도 하고…. 지금도 신 회장이 어느 요리를 제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어. 여태껏 일본 요리는 없었던 것 같아.” 이때 우리가 만난 식당에서도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노 전 총리는 “레이디부터 주문해야지”라며 기자를 가리키더니 “난 한참 긴장해서 식욕이 없어졌어. 노신영이 누구 편들었다고 신문에 나면 신 회장이 뭐라 할까 걱정돼”라고 했다. ―한 달 전, 신 총괄회장과 둘이서만 식사하신 거죠. “그럼. 가면 참 반가워해. 아 참, 우리가 식사하는데 큰아들(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들어오더라고. 신 회장이 아들에게 ‘넌 왜 왔니’ 그러기에 이게 뭐 잘못됐나 했더니 다시 ‘너 나가’ 그러더라고. 안 나가니까 또 ‘너 나가’. 그제야 큰아들이 식당에서 나갔어.” ―지난해 여름 거동이 불편한 신 총괄회장이 장남과 일본엔 왜 간 걸까요. “나도 그건 자세히 묻지 않았어. 두 아들 사이가 좋지 않다, 서로 후계자라고 주장한다는 건 신 회장이 알고 있지.” ―그동안 일본은 장남, 한국은 차남으로 후계 구도가 정해져 있던 것 아니었나요. “내가 롯데에 몸담은 지난 20여 년 동안 신 회장이 차남(신동빈 롯데회장)을 상당히 선호했던 건 사실이야. ‘둘째가 우수하다’ ‘사업가로서 훌륭하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거든.” ―경영능력은 차남이 우수하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형이 완전히 못났다 그건 아니야.” 신격호, 그동안 장남 언급 별로 안해 ―그동안 장남에 대해서는 무슨 말이 없었나요. “별 얘기가 없었어.” 노 전 총리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참 부지런하다고 자찬(自讚)하는 사람이거든. 나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을 못 봤는데 딱 한 사람 정부에 있었어. ‘저 사람은 잠도 안 자고 쉬지도 않나’ 한 게 반기문(72·유엔 사무총장)이야. 참 부지런하거든. 급한 일이 있어 ‘반기문’ 하고 부르면 언제고 달려오거든. 그런데 롯데에 와서 20년간 신 회장이 일하는 걸 보니 새벽이든 밤이든 어찌나 부지런한지. 저러니까 혼자서 큰 기업을 일궜구나 싶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이 둘 있구나. 관직에선 반기문, 민간에선 신격호. 그 신 회장이 요즘 치매다 뭐다 얘기가 있다니 어찌된 영문인가 말이야. 신 회장 건강이 만약 정말로 예전 같지 않다면 부인인 시게미쓰 하쓰코(重光初子) 여사라도 나서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걸까요. “사람의 본성에 관한 것인데…. (한숨을 내쉬며) 와카라네에(일본어로 ‘모르겠네’). 세상이 뭐라 해도 집안은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신 회장의 ‘아버지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봐. 부인도 틀림없이 그럴 거 아니야. 그렇다면 부모가 아들들을 불러 ‘넌 그만해. 너는 해’ 이렇게 정리해야 하지 않겠나.” ―롯데와의 첫 인연은 무엇이었나요. “총리 그만두고 여러 해 흘렀는데 어느 날 밤 집으로 전화가 왔어. 받아 보니 ‘저 신격호입니다’ 하더라고. 그래서 ‘신격호가 누구요?’ 물었더니 ‘롯데…’ 이러더라고. 언제 식사를 같이하고 싶다면서. 시간이 없다고 전화를 끊었더니 3일 후 또 전화를 걸어서는 ‘롯데재단을 만들려고 하니 맡아 달라’더라고. 그래서 ‘정 필요하면 뒤에서 도와드리겠다’고 했어.” ―프러포즈 같습니다. “내가 집사람이랑 하와이에 여행을 갔는데 그리로 또 신 회장이 전화를 한 거야. ‘내 큰아이(신동주 전 부회장)가 장가를 가는데 주례를 좀 서 달라’고. 거절했더니 남덕우 전 총리에게 부탁했더라고. 돌아와 신 회장과 점심을 먹은 게 첫 만남이었어.” 신동주 전 부회장은 1992년 고(故) 남덕우 전 총리의 주례로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 씨의 차녀인 조은주 씨와 결혼했다. 세상에 거의 안 알려져 있지만 이 결혼은 신 전 부회장의 두 번째 결혼이었다. 그는 이에 앞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1남 1녀를 뒀으나 이혼했다. ―20여 년간 신 총괄회장이 후계 구도나 훗날 계획에 대해 말한 적이 없나요. “신 회장은 본인이 백살까진 문제없게 산다고 생각했어. 신 회장은 항상 수첩에 깨알같이 적어. 나도 그런 신 회장이 오래 살겠지 했지. 신 회장이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나중에 떠나고, 아들들이 싸움질하지 않기를 내 마음이 간절히 원해.” 새해 1월 2일 아침 노 전 총리의 집을 방문해 다시 만났다. 부인과 함께 장미 90여 종을 키우던 장미 전문가였지만 부인이 2009년 세상을 뜬 후 장미 키우기를 관뒀다는 닷새 전 그의 말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소설 ‘장미도둑’을 선물로 가져갔다. 반기문 대망론, 본인이 판단할 문제 ―반기문 사무총장이 새해 인사를 해왔나요. “그럼. 어제(신정) 오후 5시쯤 전화가 왔더라고. 곧 서울 온다기에 다시 만나자고 했지.” ―두 분 인연이 오래되셨지요. “(외무부) 맨 밑에서부터 나랑 같이 일했어. 똑똑하고 하여튼 부지런해서 어느 나라든 갈 수 있었는데 첫 해외 부임지로 내가 대사였던 주 인도대사관에 지원해 왔지. 내가 총리 할 때도 따라오겠다고 해서 국무총리비서실 의전비서관으로 일했어.” ―신 총괄회장과 반 총장을 가까이에서 오래 봐 오셨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신격호는 비즈니스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에 맞는 사람.” ―유엔 사무총장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우선 상대방 얘기를 잘 듣고, 타협을 시키는 재주가 있어야지. 자기 고집 피우지 말고.” ―그건 대통령에게도 요구되는 덕목 아닐까요. “약간 비슷하겠지. (웃음)” ―최근 정치권에서 ‘반기문 대망론’이 만만치 않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기가 판단해서 할 문제이지. 내가 옆에서 나오라고 할 문제도 아니고. 반 총장이 이제 70대잖아. 앞으로 한창 남은 인생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마치면 좋겠어. 그걸로 내 답이 되지 않겠어?” ―장관, 안기부장, 총리…. 그동안 어떤 자리가 가장 마음에 드셨습니까. “그때는 남북이 대결할 때였거든. 어떻게든 북한을 이겨야 흡수통일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어. 난 좋은 건 하나도 없어. 통일이나 돼야 좋지.” 평안남도가 고향인 그는 총리시절인 1985년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의해 경기 파주 임진각에 망배단(望拜壇)을 만들었다. 명절이면 실향민들이 이곳에서 고향을 향해 절한다.‘아웅산’때 항로 바꿔 대통령테러 면해 ―1983년 아웅산 테러 때 안기부장이셨죠. “당시 리처드 워커 주한 미대사,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 두 사람과 상의했지. 그랬더니 원래 잡았던 순방 항로(航路)는 적성국(敵性國)인 중국에 너무 가깝다며 말레이시아 쪽으로 돌아서 올라가는 항로를 권하더라고. 전 대통령도 장세동 당시 대통령경호실장에게 의견을 묻더니 ‘잘 모르면 미국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라’고 했고. 그렇게 하니 당초보다 한 시간 반이 더 걸리는 바람에 도착했을 때엔 날이 어두워져서 공항에서 아웅산 묘소로 바로 못 가고 다음 날 오전에 참배해야 했지. 예정대로 갔으면 북한 공작원들의 테러가 그날 벌어져 대통령까지 위험하지 않았을까. 결국 다음 날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에 묘소에서 기다리던 일행들이 테러를 당했지.” ―왜 당초 예정에 없던 미얀마에 갔습니까. “그건 나도 궁금했지만 대통령에게 안 물어봤어.” 노 전 총리는 나와의 두 차례 만남에서 헤어질 때 각각 식당과 집 문 앞에까지 나와 ‘솔∼파∼’의 음정으로 “땡∼큐∼”라고 말했다. 평생 말을 아껴야 했기 때문일까. 그 음색이 왠지 ‘다 말해주지 못해 미안해’로 들렸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장소: 고려대 화정체육관.’ 신선했다. 에르메스다웠다. 에르메스는 17일 밤 한국에서 첫 패션쇼를 열면서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화정체육관을 패션쇼 장소로 정했다. 에르메스 측에 왜 ‘체육관 쇼’인가 이유를 물었다. “고객들에게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흰색 천과 가림막으로 장식된 체육관은 이미 체육관이 아니었다. 높은 천장이 무대의 느낌을 절제의 미학으로 창조해냈다. 이날 에르메스가 초대한 고객 700여 명 중 절반 이상은 에르메스 고객이었다. 초대된 극소수 연예인보다 이 고객들이 훨씬 더 우아하고 예뻤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재계 유명인사가 나타나도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무대에 불이 켜지자 흰색 옷을 입은 남자 모델들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아, 이렇게 조용하게 쇼가 시작되나’. 알고 보니 손님을 맞기 위해 깔아둔 흰색 천을 걷으러 나온 모델들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가벼운 날씨 얘기를 나누듯, 쇼를 기다리는 손님과 쇼는 그렇게 유머러스하게 만났다. 쇼가 시작됐다. 흰색 브래지어 톱 위에 검은색 조끼와 바지를 입은 여자 모델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군더더기 없는 검은색 민소매 원피스, 검은색 가죽 민소매 톱에 흰색의 통 넓은 바지를 입고 흰색 스니커즈를 매치한 차림. 한없이 여성스러운 푸른색 실크 드레스는 푸른 나비를 연상케 했다. 에르메스는 억지로 드러내지 않는다. 가죽을 마치 얇은 종이처럼 주름잡아 만든 옷들로 담담하고 편안하게 에르메스의 품위를 말한다. 그래서 에르메스다.글·사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지난 토요일 서울 예술의전당 내 한 카페에 갔다. 빈자리에 앉고 보니 바로 옆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손 글씨로 쓴 하트 모양 분홍색 포스트잇이 수백 장 붙은, 이른바 ‘소원 트리’였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소원 트리. 2016년 소원을 적어 보세요. 꼭 이루어질 거예요.’ 물끄러미 각각의 사연을 읽어보았다. ‘지금보다 좋은 직장에서 대우 받고 다닐 수 있게 해 주세요. 비정규직, 일용직 말고요.’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우리 엄마 일을 줄여 주세요.’ ‘아빠랑 같이 살게 해 주세요.’ 눈물이 날 뻔했다. 그것은 내 이야기, 내 가족과 친구, 이웃의 이야기였다. 가슴이 먹먹해져서인지 주문한 카페라테의 하트 거품이 왠지 홀쭉해 보였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사상 최고로 올렸지만 외환위기 때만큼이나 칼바람이 분다. 청년층도 희망퇴직에 내몰린다. ‘부동산 띄우기’를 믿고 빚냈던 가계들은 마이너스 통장 한도까지 꽉 찼다. 빚 부담이 큰 고령층과 자영업자는 더 힘겹다. 소비를 안 하는 게 문제라는데 소비를 할 흥이, 힘이, 돈이 없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지역상의 회장단에게 ‘2016년 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었더니 저성장 뉴 노멀 시대의 혁신 압박, 위험관리, 무한 경쟁이란 답들과 함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신뢰 구축이 나왔다. 신뢰를 생각해본다. 나의 초등학생 딸은 이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매일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아뢰는’ 편지를 쓴다. 그러면서 요즘 집안일도 곧잘 돕는다. 착한 일을 하면 산타 할아버지가 꼭 선물을 가져다준다고 굳게 믿는다. 노력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희망이 있어야 소원도 품는 법이다. 공정 경쟁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경쟁을 포기하게 된다. 공정하지 않다고 믿어 버리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진실이 되고 만다. 남 탓을 정당화한다. 소원도 무의미해진다. 우리는 주로 높은 곳을 올려보면서 소원을 빈다. 달을 볼 때도, 타워를 볼 때도 있다. 오늘 마침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123층 상량식이 열린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평생 염원이 담긴, 건국 이래 가장 높은 건물(555m)이다. 올해 롯데의 경영권 분쟁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지만,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특허를 정부가 최근 재승인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재승인하지 않은 이유라도 알려줘야 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동안 도쿄 롯폰기힐스(2003년 개장한 복합문화단지)에는 관광객이 꾸준히 몰렸다. 우리는 123층 제2롯데월드 몰을 짓고 있으면서 스스로 ‘면세 쇼핑’이라는 관광 상품성을 버렸다. 동시에 1200명의 일자리도 날렸다. 이들에게 재취업이라는 소원만 남긴 채. 면세점을 둘러싼 규제는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여기는 해외 명품의 콧대만 더 높였다. 정치가 경제를 이긴 걸까. 글쎄. 역사는 결국 잘한 정치보다 잘한 경제를 기억해 왔다. 한국 경제는 경쟁 상대를 아직도 나라 안에서만 찾는 ‘우물 안 개구리’인가. 고도성장에 따른 불균형은 손쉬운 규제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촌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소원 열매를 다는 걸 보면 여전히 ‘살 만한 세상’이라는 희망을, 최소한 ‘살아보자’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어제 경제부총리를 포함한 일부 장관이 새로 지명됐다. 그들이 이 애절한 마음들을 살펴보기를. 새해엔 정부가 국민을 향해 ‘소원을 말해봐’라고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그렇게 내 소원을 빈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국내에 팔린 에르메스 ‘버킨’ 백은 총출동한 듯했다. 손님들이 들고 온 핸드백뿐만이 아니었다. 국내 재계의 젊은 ‘별’들도 한곳에 모였다. 17일 오후 8시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국내 첫 패션쇼에서였다. 에르메스는 올해 10월 프랑스 파리패션위크에서 선보였던 ‘2016년 봄여름 컬렉션’을 이날 무대에 올렸다. 얇은 가죽을 주름 잡은 원피스, 베이지색과 빨간색 스니커즈 등이 에르메스 특유의 고급스러움을 보여 줬다는 평가다. 창업자인 티에리 에르메스의 6대손(孫)인 악셀 뒤마 에르메스 최고경영자(CEO·사진)도 참석했다. 에르메스는 왜 이번에 한국에서 첫 패션쇼를 열었을까. 뒤마 CEO는 쇼 시작 두 시간 전부터 행사장에 서서 손님들을 맞았다. 에르메스 측은 본보 기자를 만나 “한국은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의 트렌드를 이끄는 나라여서 발전 가능성이 많은 훌륭한 명품 시장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패션쇼 장소로는 다소 의외인 화정체육관에서 행사를 연 이유에 대해서는 “고객들에게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쇼는 국내뿐 아니라 중국과 말레이시아에서 온 에르메스 고객 등 700여 명이 관람했다.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 부사장은 5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샤넬 크루즈 쇼에 참석한 데 이어 이번 에르메스 쇼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황용득 한화갤러리아 대표도 참석했다. 이달 말과 내년 상반기에 문을 여는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을 이끄는 인물들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명품 중의 명품인 에르메스를 유치하는 것이 면세점의 격(格)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르메스는 현재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몰에서 명품관 매장과 면세점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한 건물에 에르메스 매장 두 곳이 들어선 것은 전 세계에서 제2롯데월드몰이 유일하다. 그런데 최근 관세청이 올해 말 특허가 만료되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을 재승인하지 않으면서 이 면세점 내 에르메스 매장의 향후 행방이 초미의 관심사다. 에르메스 측은 이에 대해 “일단 매장을 잠정적으로 닫겠지만 여러 불확실한 경영 요인이 있는 것 같아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