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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휩쓴 2020년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비롯해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최악의 한 해였다. 미국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만 명에 육박했던 2020년 4월 초엔 7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실업수당을 신청했다는 고용지표가 발표됐다. 전형적인 불경기 때라도 2~3년에 걸쳐야 나올만한 실직자 규모다. 반면 미 월스트리트에서 헤지펀드 트레이더로 일하는 저자에게는 최고의 시절이었다. 저자는 “지금이야말로 트레이더로서 주어진 룰을 최대한 이용해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순간”이라고 자백한다. 이 책은 시타델과 숀펠드 등 세계적인 헤지펀드 회사에서 2000년부터 일한 저자가 2019년 10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쓴 일기를 재구성했다. 경제 불황에 직면한 각국 정부가 초저금리로 양적완화를 하는 임시방편을 내놓은 결과, 한꺼번에 풀린 돈이 주식 시장으로 몰렸다. “돈이 복사 된다”는 말이 유행하던 시기. 저자의 일기에는 내부자 시선으로 본 날카롭고 솔직한 분석이 담겼다. 저자는 빚으로 쌓아올린 주식 호황기에 가장 큰 이득을 본 이들에 속한다. 실제 그는 2020년 가장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시장을 낙관적으로 전망하거나 정부 정책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적으로 50조 달러의 적자가 날 것 같다. 부채 거품을 더 키워나가는 꼴”이라며 양적완화 정책을 비판한다. 정부가 금리를 인하해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받고, 더 많은 기업이 빚으로 빚을 막는 상황도 마찬가지. “지금 같은 경기에서 은행의 실적보고를 듣는 건 마치 자동차 사고를 목격하는 것 같다. 결국 사고가 날 것을 알면서도 최대한 속도를 줄이면서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보고만 있는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저자의 일터는 당시 호황의 최전선이자 불황의 최전선이기도 했다. 호황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지만, 언젠가는 이 거품이 꺼질 거라는 걸 모두가 예감했기 때문이다. 대폭락이라는 운명의 날이 다가올수록 저자 주변에는 정리해고자가 늘어났다. 저자는 2020년 4월 5일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에게 직접 해고 통보를 하기도 한다. 마치 상대의 사정은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우리 이제 각자의 길을 가자”고 말하던 스스로에 대해 “나는 그냥 로봇이고 명령을 실행할 뿐”이라고 되뇐다. 감정 없는 로봇처럼 미 경제를 진단한 저자는 매우 냉소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독자를 기만하진 않는다. 저자는 ‘최악은 지났다’는 헤드라인을 뽑으며 경제를 낙관하던 미 언론에 대해서도 “그들이 틀렸다. 새로운 부익부 빈익빈 시대에 진입했다”고 반박한다. 결과론적이지만 저자의 진단은 맞았다. 빚으로 쌓아올린 거품이 꺼지고 있다. 그게 미국뿐인가. 초저금리 시대에 ‘빚투(빚내 투자)’에 나섰던 개미들은 주식시장이 차갑게 식으면서 막대한 빚을 떠안고 있다. 책에는 부를 창출할 비법 같은 건 마지막까지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에서 들려오는 각종 마이너스 경제 지표는 저자의 예측을 뒷받침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여전히 잘 나가는 헤지펀드 트레이더. 끝을 알 수 없는 불황에도 여전히 어디선가 VIP고객과 샴페인 파티라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냉정한 선구안을 전달하지만 읽은 뒤 밀려오는 씁쓸함을 피하기 어렵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서서히 중앙 깃대를 올라가는 일장기, 그리고 귓속을 파고드는 기미가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일본을 위해 뛴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 고통받는 조선 동포를 위해 뛴 것이다.” 스무네 살 청년은 나는 듯이 달렸다. 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 올림픽스타디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세계 27개국 선수 55명 가운데 깡마른 동양 선수가 제일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2시간29분19초2. 당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엄청난 질주에 10만 관중은 함성을 내질렀다.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야 할 순간. 하지만 청년은 월계관에 금메달까지 받고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가슴을 짓누르는 일장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이 영원히 기억해야 할 마라토너 고 손기정 선생(1912∼2002). 그의 탄생 110주년을 맞아 9일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휴머니스트)이 다시 출간된다. 1983년 처음 나온 뒤 절판됐다가 2012년 모교인 서울 양정고 동문회에서 재출간한 지 10년 만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손 선생에게 달리기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운동이야말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남은 마지막 숨통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몸으로 뛰고 달리는 운동마저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일본 국적으로 세계대회에 나갔을 때도 언제나 팬들에게 한글로 사인을 건네며 자신의 국적은 ‘코리아’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자서전에는 선생이 1976년 동아일보에 직접 쓴 칼럼 23편이 모두 실렸고, 이후 쓴 글도 담겼다. 그와 동아일보의 인연은 특별하다. 동아일보는 1936년 8월 25일 선생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게재했다가 이듬해 6월까지 정간 처분을 받았다. 선생이 마라톤 우승 기념으로 받아야 했던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가 독일에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도 동아일보였다. 당시 그리스 정부가 선생에게 투구를 선물하기로 했지만 일제가 이를 알리지 않았던 것. 1986년 투구를 되찾은 선생은 “이 투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 1987년 보물로 지정됐다. 자서전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폐회식으로 끝을 맺는다. 선생은 4년 뒤 열리는 서울 올림픽을 소개할 대표자로 무대에 올랐을 때를 평생 잊지 못했다. “손기정, 코리아”라는 소개에 “이날이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비로소 나의 길고 긴 싸움은 끝났다”라며 감격했다. 재출간된 책에는 선생의 외손자인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55)의 글이 새로 실렸다. 선생이 별세하기 전까지를 회고 형식으로 정리했다. 선생은 마지막까지도 나라 사랑이 뜨거웠다. 1997년 외환위기 땐 출연료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금 모으기 운동’ 공익 광고에 출연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기억하게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어요.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게 아니라 ‘코리아’라는 세 글자가 당연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남긴 당부가 아니었을까요.”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대회가 열린 스타디움. 마지막 100m를 남겨두고 열광하는 10만 관중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2시간 20여분 전 이곳 스타디움 출발선 앞에 나란히 섰던 27개국 출신 마라토너 55명을 모두 제치고 24세 조선 청년 손기정이 나는 듯이 달려들어 결승 테이프를 가슴에 감았다. 결승 테이프를 끊은데 걸린 시간은 2시간 29분 19초 2. 올림픽신기록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시상대에 올라 금빛 메달을 목에 걸고 월계관을 쓰고도 그는 고개를 숙였다. ‘서서히 중앙 깃대를 올라가는 일장기, 그리고 귓속을 파고드는 기미가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결코 일본 사람일 수가 없다. 나는 일본을 위해 뛴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 고통 받는 조선 동포를 위해 뛴 것이다.’ 대한민국의 마라토너 손기정(1912~2002) 탄생 110주년을 맞아 그가 1983년 출간했던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휴머니스트)이 9일 다시 출간된다. 그가 마라토너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가 되기까지 일생을 담은 자서전은 1976년 1월 1일부터 29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그의 칼럼 23편과 이후 1984년까지 기록한 에세이를 엮었다. 앞서 2012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모교인 서울 양정고등학교동문회에서 한 차례 자서전을 재출간한 뒤 1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왔다. 1912년 망국에서 태어난 손기정에게 달리기는 유일하게 허락된 자유였다. 그는 자서전에 ‘운동이야말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남은 마지막 숨통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몸으로 뛰고 달리는 운동마저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조선의 젊은이가 운동을 통해 일본을 누르고 쾌재를 부르며 조선 민족의 생존을 자각하게 됐는지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고 썼다. 비록 일장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뛰었지만 그는 세계 대회에서 마주한 팬들에게 ‘손긔졍’이라는 한글 이름과 함께 ‘KOREAN’이라는 국적을 명확히 새긴 사인을 선물하곤 했다. 하지만 나라를 잃은 그에게는 올림픽 우승을 기뻐할 기회조차 없었다. 일제가 축하행사를 일절 금지시킨 탓이다. 그를 위한 축하행사는 광복 후인 1945년 12월 27일에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다. 그는 4000여 명의 선수단을 이끌고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을 떠올리며 ‘태극기를 든 손이 떨려왔다.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일장기 아래 울분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오욕의 날을 떠올렸다’는 기록을 남겼다. 손기정의 이야기는 1984년 로스엔젤레스올림픽 폐회식에서 끝난다. 1988년 열릴 서울올림픽을 소개하는 대표자로 폐회식 무대에 선 그의 귓가에 “손기정, 코리아!”라는 함성이 울려퍼졌다. 1936년 마라토너로 베를린올림픽에 참여한 이래 초청연사로 여덟 차례 올림픽에 참석했지만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그의 국적이 불린 건 처음이었다. 그가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 이뤄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비로소 나의 길고 긴 싸움은 끝났구나. 나라를 가진 민족은 행복하다. 조국 땅 위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들을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책에는 그와 영욕의 역사를 함께 한 동아일보와의 인연도 나온다. 1936년 8월 25일 동아일보는 베를린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른 그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웠다는 이유로 이듬해 6월까지 정간 처분을 받았다. 1946년 8월 17일에는 ‘그리스 정부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를 위해 기증하기로 한 고대 그리스 투구를 빼앗겼다’는 내용의 단독 보도를 통해 훗날 투구를 되찾을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그리스 정부가 브리디니 신문사를 통해 손기정에게 그리스 투구를 선물하기로 했으나, 일제가 이 사실을 선수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독일 베를린 살로텐부르크 박물관이 소장하던 유물은 베를린올림픽 개최 50주년을 맞은 1986년 마침내 그의 품에 돌아온다. 손기정은 “이 투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고, 이 투구는 1987년 서구 유물 최초로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됐다. 손기정의 기록은 1984년 멈췄지만, 그의 이야기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다. 손기정의 외손자인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55)은 이 책에 1985년부터 2002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고인의 이야기를 채웠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그가 금 모으기 운동 공익광고 캠페인에 출연하며 “출연료를 단 한 푼도 받지 않는다는 전제로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사무총장은 “할아버지는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가장 선두에서 달려온 분”이라고 회상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기억하게 해 달라’는 유언을 제게 남겼어요. 어쩌면 이 유언은 ‘코리아’라는 세 글자가 너무도 당연해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남긴 당부가 아니었을까요. 코리아라는 이름을 되찾기 위해 달려왔던 이들이 있었음을 기억해달라고요.”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어린 시절 그에게 교과서의 모퉁이 여백은 놀이터였다. 선생님은 낙서만 해대는 그를 혼내기 일쑤였다. 한데 아버지는 달랐다. 주눅 들고 마음 졸이던 그를 언제나 다독였다. 훗날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할 당시에도 쓰레기통에 버린 습작을 아버지는 다시 책상 위에 올려뒀다. “버리기 아깝네. 잘 간직해 둬.” 아이를 격려했던 아버지는 한국의 1세대 자동차 디자이너인 박종서 전 국민대 산업디자인과 교수(75). 아들은 페라리와 벤츠 등 유명 자동차 내부 디자인을 맡으며 명성을 쌓은 박찬휘 독일 니오유럽디자인센터 수석디자이너(45)다. 박 디자이너는 “남들은 쓸데없다던 생각을 아버지는 언제나 귀하게 여겨 주셨다. 그 덕에 지금까지 남과 다른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박 디자이너는 딴생각하기를 글로 정리한 에세이집 ‘딴생각’(싱긋)을 지난달 27일 출간했다. 독일 뮌헨에 있는 그를 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아버지를 비롯해 신차 발표회에 참석한 고객, 자녀가 던지는 일상의 모든 질문들이 딴생각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책에는 2005년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인 회사인 이탈리아 ‘피닌파리나’의 디자이너로 첫발을 내디딘 뒤 16년 동안 유럽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빼곡히 담겼다. “작은 것도 지나치지 않으려고 해요. 엉뚱한 생각은 평범한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나오거든요. 그냥 지나쳐 버릴 게 아니라 곱씹어 생각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로 확장시킬 수 있는 거죠.” 몇 년 전 스위스에서 있었던 우연한 만남도 그랬다. VIP 신차 공개장에서 윌리엄이란 한 남성은 “전기차는 밑바닥에 배터리팩이 생겨 버렸으니 앞으로 차 밑에 들어갈 일이 없겠다”며 아쉬워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자동차 아래에서 부품을 수리했던 추억을 아이와 나누지 못할까 봐 아쉽다는 토로였다. 별거 아닌 푸념일 수도 있지만 박 디자이너는 수첩에 메모했다. “전기차라도 운전자들이 차 아래에서 ‘뚱땅거릴’ 뭔가를 만들면 어떨까.” 이런 습관은 실제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박 디자이너는 ‘왜 차에서 물병을 꽂아두는 자리는 운전석 아래에만 있을까. 눈앞에 손 뻗으면 닿는 자리에 있으면 안 될까’ 고민했다. 결국 아우디 신차 내부 디자인을 담당할 때 운전석 문손잡이 쪽에 물병을 놔두는 자리를 배치했다. 기존 엔지니어들은 “어색하다”며 대다수가 반대했지만, 아우디 임원진은 “별 다섯 개짜리 발상이다. 운전자를 배려한 혁신”이라며 극찬했다. 지난해 내놓은 아우디 전기차 Q4 e트론에는 이런 박 디자이너의 딴생각이 그대로 적용됐다. “결국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맞았어요. ‘관성적인 사고는 의심하고, 별것 아닌 일도 하찮게 여기지 마라.’ 제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 쏟아지는 세상이라도 가장 기본적인 가치는 영원불멸한 게 아닐까요.”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돌잡이로 연필을 잡았다. 모두들 판검사가 될 거라 기뻐했지만, 그는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연필로 주구장창 낙서를 했다. 교과서 모퉁이, 버려진 달력의 뒷면이 그의 놀이터였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왼손잡이에다 교과서에 낙서만 하는 그를 혼내기 일쑤였다. 누가 내 낙서를 발견할까 언제나 마음 졸이던 아이. 유일하게 아버지 앞에서만큼은 당당히 낙서를 꺼내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의 1세대 자동차 디자이너인 박종서 전 국민대 산업디자인과 교수(75). 아버지는 아들이 달력 뒷면에 끼적인 두서없는 낙서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훗날 아버지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아들이 분리수거함에 버려둔 습작을 다시 책상 앞에 올려두며 “이 아이디어는 버리기 아깝다. 잘 간직해 둬”라고 말하곤 했다. “남들은 쓸데없다고 여겼던 딴 생각을 아버지는 늘 귀하게 여겨주셨어요. 어쩌면 아버지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남들과 다른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살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매일 낙서만 하니 뭐해서 밥 벌어 먹고 살 것이냐’는 지적이 무색하게, 이제 그는 그 낙서로 엄청난 밥벌이를 한다. 그의 조그마한 그림 한 장이 3, 4년 동안 2만 명가량의 엔지니어를 움직인다. 페라리와 벤츠, 아우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최고의 차량들 내부 디자인을 맡아온 박찬휘 디자이너(45)가 지난달 27일 에세이 ‘딴생각’(싱긋)을 펴냈다. 그는 2005년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인회사 이탈리아 피닌파리나(Pininfarina)의 신입 디자이너로 첫 발을 내딛은 뒤 현재 독일의 전기차 회사 니오유럽디자인센터의 수석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박 디자이너는 2일(현지 시간) 전화 인터뷰에서 “이 책에는 내게 딴 생각을 선물해준 은인들이 나온다. 아버지를 비롯해 신차 발표회에 참석한 VIP 고객, 13세가 된 내 아이가 던지는 모든 질문들이 딴 생각의 원천”이라며 웃었다. 책 속에는 16년 동안 유럽 자동차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해온 그가 일상 속에서 떠올린 딴 생각들이 빼곡하다. 그는 사소한 질문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몇 해 전 스위스에서 열린 VIP 고객 대상 전기차 공개회에서 윌리엄이라는 한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이제 전기차 밑바닥에 배터리 팩이 생겨버렸으니 내가 차 밑에 들어가서 아이와 무슨 추억을 만들겠느냐”고 불평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하던 추억을 이제는 아이와 나눌 수 없다는 불만이었다. 전기차에 옛 부품이 사라지는 건 당연하다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얘기였지만 박 디자이너는 달랐다. 윌리엄의 말을 곱씹어보다 수첩에 이런 메모를 남겨뒀다. ‘전기차를 만들더라도 차 아래에 뭔가 뚱땅거릴 수 있는 부분을 만들 수는 없을까.’ “실현 가능성과 관계없이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동차를 타고 그곳에서 추억을 쌓아나갈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볼 수 있어요. 다른 생각이라는 건 결국 내 주변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나와요. 사소하고 이상하다고 지나쳐버릴 게 아니라 기록하고 곱씹어 생각해봐야죠.” 박 디자이너가 던진 사소한 질문은 언제나 자동차에 변화를 불러왔다. 왜 물병을 꽂아두는 보관함은 운전석 아래 놓여 있을까. 손 뻗으면 닿는 편한 자리에 놓일 수는 없을까. 고민 끝에 그는 아우디 신차 내부 디자인을 맡으면서 물병 보관함 자리를 운전석 손잡이 쪽에 제작했다. 자동차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엔지니어들은 다시 원래 자리에 물병 보관함을 두자고 고집했다. 이렇게 그의 아이디어가 빛을 보지 못하고 폐기되려던 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신차 시승 테스트에 참여했던 고위급 간부단이 그의 시도에 별 다섯 개 만점을 준 것. 2021년 출시된 아우디 전기차 Q4 e-트론에는 그가 바꾼 사소한 변화가 녹아들어있다. 이 차를 타는 운전자들은 허리를 숙일 필요 없이 손을 뻗어 물병을 꺼낼 수 있다. “16년차 디자이너가 되고 보니 결국에는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다 맞았어요. ‘상식을 의심하고 보편에 충실 하라.’ 제아무리 수백, 수천 가지 기술과 디자인이 쏟아지는 세상이라도 가장 기본적인 가치는 영원불멸해요.”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6년 만에 정규앨범을 발표한 미국 팝스타 비욘세(사진)가 신곡 가사를 둘러싼 장애 비하 논란에 노래를 수정해 다시 녹음하기로 했다. 미 타임지 등에 따르면 비욘세 측은 최근 7집 앨범 ‘르네상스’에 수록된 ‘히티드’가 뇌성마비 장애인을 비하했다는 지적이 일자 “악의적 의도는 없었다. 즉각 가사를 수정해 재녹음하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가 된 건 히티드 가사에 나오는 ‘스패즈(spaz)’라는 단어였다. ‘뇌성마비의(spastic)’란 형용사에서 유래해 발작을 뜻하는 은어로 사용한다. 현지에선 뇌성마비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악용돼왔다. 비욘세의 신곡이 공개된 뒤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이를 두고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6월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 각본에는 “사랑해”라는 대사가 딱 한 번 나온다. 형사 해준(박해일)이 살인사건 용의자 서래(탕웨이)와 사랑하는 내용이지만, 정작 그 대사를 뱉는 인물은 서래의 남편 임호신(박용우). 하지만 말만 사랑일 뿐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 반면 해준과 서래는 단 한 번도 사랑을 입에 담지 않지만 서로 지독히도 사랑했다. 이들의 애절한 사랑이 긴 여운을 남겨서일까. ‘헤어질 결심 각본’(을유문화사)은 지난달 18일 사전예약 판매 직후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2주 연속 전체 1위에 올랐다. 박찬욱 감독과 각본을 공동 집필한 정서경 작가(47)는 “사랑이라는 말 없이도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헤어질 결심’을 비롯해 ‘친절한 금자씨’(2005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년), ‘박쥐’(2009년), ‘아가씨’(2016년)까지 모두 5개 작품을 박 감독과 함께 썼다. 지난달 27일 정 작가를 서울 용산구 작업실에서 만났다. (※아래 기사에는 ‘헤어질 결심’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작품에서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대사를 꼽는다면…. “해준의 ‘나는 붕괴됐다’는 한마디다. 서래는 원래 해준을 범죄에 이용할 남자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 말이 서래에게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어떤 사람이 무너지면서까지 자신을 지켜줬다는 뜻이니까.” ―해준은 서래의 범죄 혐의를 감춰준다. “사랑이란 나의 가장 중요한 걸 버리더라도 상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지켜주는 게 아닐까. 형사인 해준에게 제일 중요한 건 윤리의식이었다. ‘나는 붕괴됐다’는 건 ‘당신을 위해 내가 무너진 채로 살겠다’는 고백 아닌 고백이다.” ―그런 고백을 받았는데도 서래는 왜 해준과 헤어질 생각을 하나. “붕괴의 깊이는 무너져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서래는 중국에서 어머니를 잃고 국경을 넘으며 완전히 무너졌다. 그 아픔을 알기에 ‘나 때문에 저 사람이 무너져도 되나’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되묻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울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서래는 범죄 증거 자체인 자신이 사라져야 해준이 예전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서래가 사라지기로 결심하면서 사건은 미제로 남는다. 해준은 서래를 계속 찾을까. “비극적이게도 그러지 않을까. 이건 한 남자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 길을 잃고 무너진다. 바로 발밑에 사랑이, 혹은 진실이 묻혀 있는데도 바보처럼 평생을 찾아 헤매지 않나.” ―영화에서 그 사랑이 가장 완벽하게 녹아든 장면을 꼽는다면…. “처음 경찰서에 간 서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여느 부인처럼 어깨를 움츠린 채 등이 굽어 있다. 하지만 용의자인 서래에게 해준이 수사 용어를 하나하나 풀이하며 존중해 주자, 서래는 조금씩 허리를 펴기 시작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해준을 만나 존엄성을 회복하는 서래처럼 서로를 꼿꼿하게 세워주는 마음이 아닐까.”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6월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 각본에는 “사랑해”라는 대사가 단 한 번 나온다. 형사인 해준(박해일)이 살인사건 용의자 서래(탕웨이)를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인데,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서로에게 “사랑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정작 그 대사를 뱉는 인물은 서래의 남편 임호신(박용우).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 반대로 해준과 서래는 단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음을 깨닫는다. 영화 속에는 두 사람만 아는 사랑의 언어로 빼곡하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들의 사랑이 시작됐는지, 어떤 대사가 사랑 고백이었는지를 재확인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지난달 18일 사전 예약판매를 시작한 ‘헤어질 결심 각본’(을유문화사)은 교보문고 인터넷 판매량 순위에서 ‘파친코’ 개정판을 제치고 깜짝 1위에 올랐다. 서울 용산구 작업실에서 지난달 27일 만난 정서경 작가(47)는 “사랑이라는 말없이 가장 근본적이고도 원초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 작가의 답변에는 서래와 해준이 남긴 사랑의 단서가 담겨 있다.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붕괴됐어요’라고 고백하는 해준의 대사가 아닐까. 그전까지 서래와 해준이 느꼈던 감정은 설렘과 끌림이었다. 하지만 이 대사 이후 서래는 해준이 자신에게 느꼈던 감정의 깊이를 그제야 제대로 깨닫게 된다. 서래는 이전까지 해준을 범죄에 이용할 수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 대사가 서래에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을 처음으로 느끼게 했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완전히 무너지면서까지 자신을 지켜준 거다.” ―형사인 해준은 서래의 범죄 혐의를 밝히면 형사로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도 있었는데도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어째서 해준은 붕괴될 결심을 한 걸까. “이번 작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에 관해 쓰고 싶었다. 결국 사랑이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버리면서까지 상대방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지켜주는 게 아닐까. 형사인 해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직업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이다. 그런 해준이 서래를 만나고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을 존엄한 인간으로 만들어줬던 그 직업정신을 버린다. 서래가 살인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서래는 생존을 위협받는다. ‘나는 붕괴됐다’는 말은 곧 당신의 생존을 위해서 내가 무너지겠다는 고백이다. 자기 자신이 무너진 이후의 삶이 아득할 텐데도 그마저 감수하는 사랑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해준은 서래의 범죄 사실을 알고도 수갑을 채우지 않는다. 대신 서래에게 “아무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바다에 던져버리라”고 말한다. “그 대사에서는 ‘아무도 모르게’라는 말이 중요하다. 두 사람에게 바다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의 사랑이 존재하는 곳이다. 가루가 되어 사라진 게 아니라 (이들의 사랑은) 바다에 있다. 결국 그 대사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우리의 사랑이 존재하게 해요’라는 뜻이다.” ―대사뿐 아니라 해준와 서래의 행동에도 사랑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영화 속에 드러나지 않지만 해준이 직접 서래의 범죄 증거를 인멸해주는 대목을 뽑고 싶다. 형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던 해준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그런 자기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해냈을 일이다. 마찬가지로 서래는 해준이 살인사건 현장에서 죽은 사람의 피를 견디기 어려워 한다는 걸 알고 자신이 직접 살인사건 현장의 핏물을 치운다. 코를 막아가면서.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사랑 고백을 주고받았는데 서래는 왜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한 건가. “무너져 본 적 있는 사람만이 붕괴의 깊이를 상상할 수 있다. 붕괴라는 말을 서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그 단어가 사랑을 뜻하는 줄 몰랐을 거다. 서래는 중국에서 어머니를 잃고 국경을 넘으면서 완전히 무너져 내린 적 있는 사람이다. 무너지고 부서서지는 아픔을 알게 된 순간 서래의 사랑이 시작됐을 것 같다. 진정 나 때문에 어떤 사람이 무너져도 되나,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이런 생각에 도달하면 마침내 내가 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다시 살게 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서래는 모든 범죄 증거 그 자체인 자신이 사라져야 해준을 붕괴 이전으로 되돌릴 거라고 믿었다.” ―서래는 해준에게 “미결사건이 되고 싶다”고 한다. 이 말은 어떤 의미인가. “해준의 집 벽에는 미결사건 사진들이 걸려 있다. 잠도 못 자고 매일 미결사건을 찾아 헤맨다. 서래는 해준의 집에서 그 사진들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무섭거나 두려워하기보다 기뻐한다. 아무도 없이 홀로 남겨진 서래에게 누군가에게 어떤 의심의 시선이라도 받는 것이 오히려 충만한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 ―마침내 서래는 해준 곁에서 사라지기로 결심하면서 영원히 미결사건으로 남는다. 해준은 서래를 찾으러 다시 바다에 올까. “해준은 미결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처럼 영원히 서래를 찾아 헤매지 않을까.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마치 신화처럼 느껴졌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헤매는 한 남자, 가만 생각해 보니 오르페우스더라. 마지막 장면을 본 뒤에야 이 영화가 그저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길을 잃고 무너진다. 바로 발밑에 진실이, 사랑이 묻혀 있는데 바보처럼 그걸 모르고 평생을 찾아 헤매지 않나.”―실제로 해준은 “당신이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서래의 말에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말했냐”고 되묻는다. 자신이 사랑한다고 말했는데도 끝까지 바보처럼 모른다. “해준은 행동하는 사람이지,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은 아니다. 자기가 붕괴됐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그 말이 사랑한다는 의미로 서래에게 닿았다는 걸 몰랐을 거다. 서래가 ‘붕괴’라는 말의 의미를 사랑으로 받아들여서 이런 일을 벌일지 상상도 못했다. 그런 해준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붕괴됐어요“라고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미소를 짓는다. 어쩌면 그 미소는 사랑을 발견하는 표정이 아닐까. 해준은 내가 서래를 이토록 사랑했다는 것도, 서래도 내게 그 사랑을 똑같이 답하려고 했다는 것도 그제야 깨닫게 된 거다.” ―배우들의 호연이 사랑한다는 말없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완성시켰다. 가장 완벽하게 완성된 장면을 꼽자면. “처음 경찰서에 들어서는 서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여느 부인의 모습처럼 황망해 보인다. 등이 굽어 있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 하지만 해준이 살인사건 용의자인 서래에게 어려운 수사 용어를 하나하나 번역해주며 인간적으로 대해주자, 서래가 점점 허리를 펴고 꼿꼿해지기 시작한다. 침묵했던 서래가 이 사람에게는 나의 이야기를 꺼내도 될 거라고 확신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사랑에서 핵심적인 한 단어를 꼽자면 ‘존엄성’이다.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해준을 만나 존엄성을 회복한 서래처럼 꼿꼿한 형태이지 않을까.” ―박찬욱 감독과 이번이 다섯 번째 함께 각본을 썼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이 될까. “모르겠다. 감독님은 내게 ‘(다음 작품을) 생각해야 된다’는 말씀을 남기고 떠났다(웃음). 감독님이 어느 날 너무 힘이 들 때 내게 메일을 보내면 어쩔 수 없이 써내려가지 않을까. 감독님이 쓰지 못하는 대사를 내가 쓰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디테일을 감독님이 채워줬다. 함께 각본을 쓰면서 그렇게 서로의 한계를 뛰어넘어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누군가에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일본 심리상담가 기무라 하루코와 5년 넘게 상담한 자폐아 Y 군도 말보다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걸 쉬워했다. 기무라는 아이에게 억지로 말을 건네는 대신 작은 모래상자를 건넸다. 상자 안을 건물과 나무, 자동차 등 미니어처로 꾸미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래놀이 치료법’의 일환이었다. 언제나 모래 위에 똑같이 2개의 산과 바다를 배치하던 Y 군에게 느리지만 변화가 찾아왔다. 산과 산을 잇는 도로를 만들고 철도를 놓기 시작했다. 기무라는 이 사소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작은 마을이 다른 도시로 연결되듯 아이의 마음 역시 열리고 있는 게 아닐까. 기무라의 믿음대로 치료를 마친 Y 군은 고교 학생회장에 뽑혔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도 진학했다. 상담가가 답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이런 과정들이 신기했다. 어떻게 아무런 말도 없이 그림을 그리거나 모래놀이를 하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이 회복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2008년부터 5년 동안 기무라를 포함한 정신건강의학계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고 실제 치료 현장을 꼼꼼히 취재했다. 직접 임상심리사 자격 취득 과정을 밟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놀라운 사실을 접한다. 비언어 치료법은 1929년 영국 소아과 의사인 마거릿 로언펠드가 말이 서툰 어린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개발한 것. 하지만 이 치료법이 마음에 상처를 지닌 어른들에게도 무척 효과적이란 걸 배웠다. 30대 여성 우울증 환자인 이토 에쓰코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서른두 살에 시각세포가 손상되는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고 결국 실명한 그는 일자리를 잃고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남겨졌다.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던 이토에게 모래놀이 치료는 놀라운 변화를 안겨줬다. 이토는 텅 빈 모래상자에 조금씩 나무숲과 마을을 채워나갔다. 특히 마지막 치료에서는 높은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성인 여성의 미니어처를 놓았다고 한다. 마치 한발 한발 내딛은 자신을 상징하듯이. 1년가량 이어진 치료 뒤에 이토는 ‘조각가’라는 새로운 인생의 꿈을 가지게 됐다. “상담사가 그에게 생의 의지를 찾아준 것이 아니라 빈 상자를 채워나가며 그녀 스스로 꿈과 의지를 되찾은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현대인에게 논리적인 언어보다 비언어를 통한 심리 치료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다수의 정신건강의학계 전문가는 “상담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이른바 ‘주체의 부재’ 현상이라 부른다. 현대사회는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나와 타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이로 인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어떤지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가 만난 한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죽고 싶다”고 괴로워하면서도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것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막막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뻔해 보여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한 상담가는 언제나 상담 치료에 앞서 환자에게 “방법은 반드시 찾아질 테니 함께 고민해 보자”는 말을 건넨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자생력을 몸속에 지니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몇 년째 이어지면서 심리적 번아웃(소진)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에서 회복하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게 뭔지는 깨닫기 어렵다. 어쩌면 그런 이들에게는 현재의 상태를 낱낱이 파헤쳐 해답을 얻으려는 분석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께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가며 어깨를 두드려줄 주변의 도움이 절실한 것 아닐까. 진득하게 현장을 살핀 저자의 노력 덕인지 오래도록 잔향이 남는 책이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누군가에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일본 심리상담가 기무라 하루코와 5년 넘게 상담한 자폐아 Y군도 말보다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걸 쉬워했다. 기무라는 아이에게 억지로 말을 건네는 대신 작은 모래상자를 건넸다. 상자 안을 건물과 나무, 자동차 등 미니어처로 꾸미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래놀이치료법’의 일환이었다. 언제나 모래 위에 똑같이 2개의 산과 바다를 배치하던 Y군에게 느리지만 변화가 찾아왔다. 산과 산을 잇는 도로를 만들고 철도를 놓기 시작했다. 기무라는 이 사소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작은 마을이 다른 도시로 연결되듯 아이의 마음 역시 열리고 있는 게 아닐까. 기무라의 믿음대로 치료를 마친 Y군은 고교 학생회장에 뽑혔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도 진학했다. 상담가가 답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 논픽션 작가이자 신간 ‘아주 조용한 치료’의 저자인 사이쇼 하즈키는 이런 과정들이 신기했다. 어떻게 아무런 말도 없이 그림을 그리거나 모래놀이를 하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이 회복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2008년부터 5년 동안 기무라를 포함한 정신건강의학계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고 실제 치료 현장을 꼼꼼히 취재했다. 직접 임상심리사 자격 취득 과정을 밟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놀라운 사실을 접한다. 비언어치료법은 1929년 영국 소아과 의사인 마거릿 로언펠드가 말이 서툰 어린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개발한 것. 하지만 이 치료법이 마음에 상처를 지닌 어른들에게도 무척 효과적이란 걸 배웠다. 30대 여성 우울증 환자인 이토 에쓰코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서른두 살에 시각세포가 손상되는 ‘망막색소변성증’이란 진단을 받고 결국 실명한 그는 일자리를 잃고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남겨졌다.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던 이토에게 모래놀이치료는 놀라운 변화를 안겨줬다. 이토는 텅 빈 그의 모래상자에 조금씩 나무숲과 마을을 채워나갔다. 특히 마지막 치료에서는 높은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성인 여성의 미니어처를 놓았다고 한다. 마치 한발 한발 내딛은 자신을 상징하듯이. 1년가량 이어진 치료 뒤에 이토는 ‘조각가’라는 새로운 인생의 꿈을 가지게 됐다. “상담사가 그에게 생의 의지를 찾아준 것이 아니라 빈 상자를 채워나가며 그녀 스스로 꿈과 의지를 되찾은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현대인에게 논리적인 언어보다 비언어를 통한 심리치료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다수의 정신건강의학계 전문가는 “상담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이른바 ‘주체의 부재’ 현상이라 부른다. 현대사회는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나와 타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이로 인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어떤지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가 만난 한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죽고 싶다”고 괴로워하면서도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것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막막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뻔해보여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한 상담가는 언제나 상담 치료에 앞서 환자에게 “방법은 반드시 찾아질 테니 함께 고민해보자”는 말을 건넨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자생력을 몸속에 지니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몇 년째 이어지면서 심리적 번아웃(소진)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게 뭔지는 깨닫기 어렵다. 어쩌면 그런 이들에게는 현재의 상태를 낱낱이 파헤쳐 해답을 얻으려는 분석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께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가며 어깨를 두드려줄 주변의 도움이 아닐까. 진득하게 현장을 살핀 저자의 노력 덕인지 오래토록 잔향이 남는 책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 2017년 말 동네 식당 입구에 삐뚤빼뚤 손 글씨로 쓴 안내문 앞에서 소설가 조경란(53)은 발길을 멈췄다. 어째서 ‘개인 사정’이 아니라 ‘가정 사정’이라고 썼을까. 어쩌면 식당 주인에게 개인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나보다 더 커서 나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긴다면 우리는 어떻게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다시 식당 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식당 앞을 서성였다. 하지만 끝내 식당은 다시 문을 열지 않았다. “그 안내문이 계속 제 마음에 남아 있었어요.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상실의 아픔을 겪는 어떤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죠.” 그는 14일 표제작 ‘가정 사정’을 포함한 여덟 편의 연작소설을 엮은 ‘가정 사정’(문학동네)을 펴냈다.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25일 만난 그는 “가족이라는 기둥을 지탱해주던 일부가 사라지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라며 “상실을 겪은 사람들을 이 세상에 홀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서 그들 곁을 지켜주는 주변 인물들을 빚었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마지막까지 집필한 ‘개인 사정’은 어릴 적 아이들을 죽이고 자살하려던 부모에게서 살아남은 두 남매가 한 아이를 돌보는 이야기다. 백화점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인주는 알코올의존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오빠의 부탁으로 일곱 살 규이를 돌보게 된다. 오빠와 함께 살던 아이 엄마마저 집을 떠나 집에 홀로 남겨진 규이를 거두는 건 인주에게 분명 과분한 일. 하지만 인주는 홀로 남겨지는 아픔을 알기에 규이 곁을 지켜준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던 오빠의 말을 떠올리며. “홀로 남겨진 사람은 상실이 한 인간을 얼마나 훼손시키는지 알고 있어요. 그 아픔을 알기에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을 버리지 않고 곁에 머물죠. 누군가를 먹이고 거두는 것은 분명 고단한 일이지만 결국 그 일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표제작 ‘가정 사정’은 2017년 말 그의 마음에 남았던 안내 문구로 끝맺는다. 양장점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정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어머니와 남동생을 잃고 아버지와 단둘이 남겨진다. 가족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던 살가운 남동생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말없는 부녀 사이에는 적막만 흐른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 이들은 서로의 곁을 지킨다. 경비 근무를 서다 다리를 다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정미는 양장점 문을 닫고 병원으로 향하며 안내문을 붙인다.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 “생업을 접어두고 아버지에게 향하는 정미처럼, 당신에게도 당신 곁을 지켜줄 분명한 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어요.”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광복 77주년을 맞아 다음달 13일 밤 청와대에서 뮤지컬과 국악밴드의 특별 공연이 펼쳐진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은 “다음달 13일 오후 7시 10분경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에서 문화유산 방문캠페인 특별공연 ‘600년의 길이 열리다’를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공연은 광복 77주년과 올해 청와대가 국민의 문화유산으로 되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행사다. 이날 청와대 본관과 상춘재에서는 뮤지컬 공연과 대중가수, 유명 국악밴드의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다. 한국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출연진은 다음주 중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공연은 KBS 1TV를 통해 생방송으로 볼 수 있다. 이번 공연은 총 3000명이 현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관람 희망자는 다음달 1일부터 3일까지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홈페이지(www.chf.or.kr/visit)를 통해 1인당 최대 2매씩 신청할 수 있다. 참석자는 추첨을 통해 선정한다. 무료.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 2017년 말 동네 식당 입구에 삐뚤빼뚤 손 글씨로 쓰인 안내문 앞에서 소설가 조경란(53)은 발길을 멈춰 세웠다. 어째서 ‘개인 사정’이 아니라 ‘가정 사정’이라고 썼을까. 어쩌면 식당 주인에게 개인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나보다 더 커서 나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긴다면 우리는 어떻게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들이 이어졌다. 동네를 산책할 때마다 일부러 그 식당 앞을 지나갔다. 식당 문이 다시 열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식당은 끝내 다시 문을 열지 않았다. “그 안내문이 계속 제 마음에 남아 있었어요.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상실의 아픔을 겪는 어떤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죠.” 2018년 2월 시작한 글쓰기는 올해 3월 끝났다. 그는 14일 여덟 편의 연작소설을 엮은 신간 ‘가정 사정’(문학동네)을 펴냈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가족이라는 기둥을 지탱해주던 일부가 사라지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라며 “상실을 겪은 사람들을 이 세상에 홀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서 그들 곁을 지켜주는 주변 인물들을 빚었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마지막까지 집필한 ‘개인 사정’은 어릴 적 자녀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려던 부모에게서 살아남은 두 남매가 한 아이를 돌보는 이야기다. 백화점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인주는 알콜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한 오빠의 부탁으로 일곱 살 규이를 돌보게 된다. 오빠와 함께 살던 아이 엄마마저 집을 떠나 집에 홀로 남겨진 규이를 먹이고 거두는 건 인주에게 분명 과분한 일이다. 하지만 인주는 홀로 남겨지는 아픔을 알기에 규이 곁을 지켜준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던 오빠의 말을 떠올리며. “홀로 남겨진 사람은 상실이 한 인간을 얼마나 훼손시키는지 알고 있어요. 그 아픔을 알기에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을 버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거죠. 누군가를 먹이고 거두는 것은 분명 고단한 일이지만 결국 그 일이 나를 살게 하고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표제작 ‘가정 사정’은 2017년 말 그의 마음에 남았던 안내 문구로 끝맺는다. 양장점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정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어머니와 남동생을 잃고 아버지와 단 둘이 남겨진다. 가족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던 살가운 남동생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말없는 부녀 사이에는 적막만 흐른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 이들은 서로의 곁을 지킨다. 경비 근무를 서다 다리를 다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정미는 양장점 문을 닫고 병원으로 향하며 안내문을 붙인다.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 그는 “생업을 접어두고 아버지에게 향하는 정미처럼, 당신에게도 당신 곁을 지켜줄 분명한 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 작품으로 ‘이웃 사정’을 쓰고 싶어졌어요. 여덟 번째 소설집을 쓰고 난 뒤에야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벗어나 이웃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됐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문 닫은 그 가게 주인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이제는 나보다 더 큰 이웃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이역만리에 머물던 조선의 ‘왕실 보물함’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조선시대 왕실의 어보를 보관하는 상자인 보록(寶~)이 7개월가량의 지난한 설득 끝에 영국에서 한국으로 환수됐다. 문화재청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영국의 한 법인으로부터 구입한 보록을 처음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날 선보인 보록은 가로세로 23×23cm, 높이 27.5cm의 나무로 만든 목함. 네 모서리를 금속으로 감싼 ‘모싸개’ 장식이 눈에 띈다. 보록은 임진왜란 직후인 1600년대부터 주로 제작돼온 왕실 공예품으로, 조선시대 왕이나 왕비의 인장을 담아두는 용도로 쓰였다. 해당 보록은 모싸개 장식 등을 미뤄볼 때 19세기 무렵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은 보록과 인록(印~·왕세손의 도장을 담은 상자) 312점을 소장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보록은 왕실 유물의 성격상 원래 종묘 정전에 봉안돼 오다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번에 되찾은 보록 역시 종묘에서 불법 반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이 보록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지난해 12월경이었다. 영국 고미술상에서 유통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접촉에 나섰으나, 보록을 소장한 법인이 벌써 가격까지 합의한 뒤 판매 계약을 앞뒀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이번에 놓치면 영영 찾을 수 없을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재단 측은 해당 법인에 “종묘에 있어야 할 왕실 문화재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게 해 달라”며 설득에 나섰다. 다행히 영국 법인 측은 보록이 가진 의미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오래 걸렸지만 보록의 한국행에 동의했으며, 이후 “예산 마련 문제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기꺼이 받아줬다고 한다. 보록의 환수는 게임업체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이 큰 역할을 했다. 라이엇게임즈는 2012년부터 문화재청과 협약을 맺고 지금까지 68억7000만 원을 지원해 왔다. 2014년 조선불화 ‘석가삼존도’와 2018년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등 6건을 환수했다. 구기향 라이엇게임즈 사회환원사업총괄은 “문화재 보호에 ‘이 정도면 됐다’는 제한이 있을 수 없다. 앞으로도 우리 문화재가 제자리를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이 보록이 누구의 어보를 담고 있었는지, 어떤 경로로 해외에 반출됐는지 등을 연구할 방침이다. 문화재청은 “현재 고궁박물관에서 환수문화재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이 열리고 있다. 다음 달부터 해당 보록을 특별전에서 시민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라고 전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생의 마지막 순간 집에서 홀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릴 겁니다. 가족이 없는 제게 장례식이나 무덤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살아가는 동안 내가 사랑한 이들에게 그간 고마웠다고 작별 인사를 미리 나누려 해요.” 일본 사회학자인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74)는 언제나 생의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꿈꾼다. 홀몸노인이라면 무조건 “불쌍하다”고 여기는 세상의 인식을 단호히 거부한다. 우에노 교수는 19일 e메일 인터뷰에서 “혼자 사는 노인이 혼자 죽는 게 당연하지, 뭐 어때. 오히려 가족에게 돌봄의 짐을 지우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간 삶이라 여길 수도 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 가구 추계에 따르면 2050년 국내 65세 이상 1인 가구는 467만 가구에 이른다. 일본은 한국보다 그 속도가 더 빨라 2025년 홀몸노인 751만 명 시대를 맞는다고 한다. 홀몸노인의 고독사(孤獨死)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 지난달 28일 국내 출간된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동양북스)에서 우에노 교수는 “살아가는 동안 고립되지 않는다면 고독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겁만 낼 게 아니라 혼자라도 행복한 죽음을 준비해 보자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 고독사 예방을 위한 24시간 방문 의료 체계를 갖췄다. 2000년 간병보험을 도입해 노인 인구의 80%가 일주일에 두 차례 전문 간병인의 돌봄을 받는다. 간병인이 홀몸노인의 상황을 수시로 확인하고, 노인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를 집마다 설치해 확인한다. 한국도 이와 유사한 장기요양보호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대중화되진 않았다. 치매를 앓는 노인이 실수로 불을 내거나 사고가 나 다칠 위험은 없을까. 우에노 교수는 “심장박동 등 생체 신호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기를 노인이 착용하고 전문 기관에서 이 신호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면 사고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에노 교수는 “사망 직후 조기 발견할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고독사 비율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뜻에서 그는 ‘재택사(在宅死)’란 표현을 즐겨 쓴다. 홀몸노인 비중이 높아지는 미래에는 의료기관이 그 많은 인원의 사망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는 “수명이 늘어나면서 갑작스러운 질병을 앓다 병원에서 숨지기보다 만성질환을 앓으며 서서히 집에서 노쇠해 세상을 떠나는 노인이 늘고 있다”며 “일본 수명 조사에 따르면 임종 전에 남성은 약 8년, 여성은 약 12년 동안 ‘허약 기간’을 지낸다. 재택사는 막대한 의료비용을 줄이고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를 위해선 먼저 해결될 과제가 있다. 집에서 생을 마무리하려면 우선 집이 있어야 한다. 우에노 교수는 1인 노인 가구에 빈집을 대여하면 된다고 봤다. 현재 일본의 빈집 비율은 13%. 그는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4인 가족 위주로 설계된 공공주택에 1인 가구가 입주하고 홀로 사는 노인을 위한 공용주택도 늘었다”며 “주거가 불안정한 노인에게 빈집 대여제가 마련되면 재택사를 위한 사회적 기반이 갖춰질 것”이라고 했다. “노인이 안심하고 죽을 수 있는 사회는 단지 나이 든 이들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그런 세상이야말로 청년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어요. 부모를 간병하는 데 구속받지 않으니까요. 혼자 당당히 살아가는 부모를 보며 홀로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겁니다. 노인은 머잖아 다가올 청년의 미래이니까요.”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생의 마지막 순간 집에서 홀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릴 겁니다. 가족이 없는 제게 장례식이나 무덤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살아가는 동안 내가 사랑한 이들에게 그간 고마웠다고 작별 인사를 미리 나누려 해요.”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74)가 꿈꾸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다. 그는 독거노인이라는 말만 나오면 ‘불쌍하다’는 부정적인 인식부터 튀어나오는 세상에 반기를 든다. 혼자 사는 노인이 혼자 죽는 게 당연하지, 뭐 어때. 오히려 가족에게 돌봄의 짐을 지우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삶이라고. 2025년 일본은 독거노인 751만 명 시대를 맞는다. 머잖아 한국사회가 맞이할 미래다.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 가구 추계에 따르면 2050년 65세 이상 1인 가구 수는 467만 가구로 예상된다. 모두가 독거노인 ‘고독사(孤獨死)’를 우려하는 세상에서 우에노 교수는 최근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동양북스)라는 도발적인 책을 국내 출간했다. 19일 진행한 e메일 서면 인터뷰로 만난 그는 “살아가는 동안 고립되지 않는다면 고독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혼자 사는 인구가 느는 만큼 혼자 죽는 게 당연한 시대가 온다면 마냥 고독사를 두려워할 게 아니라, 혼자이면서 행복한 죽음을 준비해보자는 것이다. 집에서 혼자 죽는다고 반드시 고독사는 아니다. 이미 일본 사회는 고독사를 예방할 수 있는 24시간 방문 의료 체계를 갖췄다. 2000년 간병보험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는 노인 인구의 80%가 일주일에 두 차례 전문 간병인의 돌봄을 받는다. 간병인이 1인 노인 가구의 동향을 수시로 확인할 뿐 아니라 노인 가구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를 집집마다 설치해 24시간 이상 노인이 움직이지 않을 때 응급의료에 자동으로 연락하는 식이다. 한국도 일본의 간병보험 제도와 유사한 장기요양보호서비스를 운영중이다. 우에노 교수는 “사망 직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고독사 비율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그는 ‘재택사(在宅死)’를 권장한다. 고령화를 넘어 다사(多死) 사회로 진입할 미래에는 의료기관이 그 많은 노인의 죽음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전망이다. 우에노 교수는 “2018년 일본인 사망 원인 1위는 암, 2위는 심혈관 질환, 3위는 노쇠였다”며 “장수사회로 진입하면서 갑작스러운 질병을 앓다 병원에서 죽는 노인들보다 만성질환을 앓으며 서서히 내 집에서 노쇠해 죽는 노인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6년 일본 노인의 수명 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약 8년, 여성은 약 12년 동안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허약 기간’을 지난다. 이 기간 내내 의료기관에 머문다면 막대한 의료 비용이 들 터. 재택사가 경제적이면서 편안한 이유다. 단, 집에서 죽기 위해서는 우선 집이 있어야 한다. 우에노 교수는 1인 노인 가구에 빈 집을 대여해준다면 주거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현재 일본의 빈 집 비율은 13%. 그는 “1인 가구가 급증하고 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주택 정책도 바뀌는 추세”라며 “4인 가족 위주로 설계된 공공주택에 1인 가구가 입주할 수 있게 됐고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한 공용주택도 늘었다. 주거가 불안정한 노인에게 빈 집을 빌려주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재택사를 위한 사회적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인이 안심하고 죽을 수 있는 세상에서는 청년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어요. 부모 간병에 구속받지 않으니까요. 혼자 당당히 살아가는 부모를 보며 홀로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겁니다. 노인은 머잖아 다가올 청년의 미래이니까요.”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은 22일부터 2024년 1월 28일까지 상설전시관 3층에서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를 연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쐐기 문자가 새겨진 점토판(사진)과 인장, 회화 등 유물 66점을 소개한다. 인류 최초로 상형문자를 사용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남긴 문자 점토판 13점에는 당대 생활상이 빼곡하게 담겼다. 가로 6.85cm, 세로 4.5cm 크기의 작은 점토판은 기원전 3100년경 메소포타미아 도시 행정을 맡았던 신전에서 기록한 장부다. 점토판에는 ‘맥주 제조업자에게 보리와 맥아 등 곡식을 빌려줬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맥주가 고대부터 이어져 온 인류의 문화유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곱셈을 익히는 학습지, 환자를 위한 약 처방전 등 메소포타미아의 기록 유물을 통해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류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무료.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이게 다 좀비 탓이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초기 ‘노 마스크’를 고수하며 방역에 불복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좀비에 비유한다. 저자에게 좀비란 문제 해결 능력은 없으면서 정치적 이념 대립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나쁜’ 정책과 이론을 뜻한다. 방역 불복 정책은 얼핏 무모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정치적 셈법에 따른 전략이었다. 2020년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정권에 코로나19가 불러올 경제 불황은 지지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위협이었다.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 코로나19 그딴 거 없고 미국 경제는 다시 살아날 거라는 맹목이다. 생사가 걸린 문제에 정치적 셈법이 끼어든 결과 방역 골든타임을 놓쳐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폴 크루그먼이 15년간 집필해온 경제칼럼을 수록한 책에는 각종 좀비들이 즐비하다. 부자 감세 정책, 사회보장제도 민영화 정책, 긴축 정책…. 그중에서도 부자 감세 정책은 저자가 꼽은 ‘최강 좀비’다. 1980년대 레이건 정권, 2000년대 부시 정권, 2017년 트럼프 정권까지 죽지 않고 살아났다. 저자가 보기에 이 정책은 경제 성장은커녕 경제 불평등을 불러왔다. 그런데도 선거철만 되면 부유층의 표를 집결하는 논리로 목숨을 부지한다. 기후변화 부정론도 마찬가지. 기후변화를 예견한 과학적 지표가 수두룩한데도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기만이라고 지적한다. 다만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좀비라고 단언하는 건 독단일 수 있다. 좀비는 제거 대상일 뿐 대화 상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긴축정책파와 사회보장제도 반대파를 좀비라 명명하지만, 이는 기후변화나 코로나19 위기와는 다른 정치적인 문제다.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세금을 거둬 어떤 이에게 재분배할 것인지. 정부가 얼마만큼의 지출을 감당할 수 있으며 만약 정부의 재정을 긴축해야 한다면 어떤 이들이 희생을 감내할 것인지. 다른 생각들이 치열하게 맞붙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하는 대화의 영역이다. 어쩌면 반대파를 좀비라고 규정짓는 행위 역시 사라져야 하는 이 시대의 좀비일지 모른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이미경 CJ그룹 부회장(64·사진)이 11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2022년 국제 에미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는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텔레비전예술과학아카데미(ATAS)는 19일(현지 시간) “이미경 부회장은 25년 이상 한류를 이끌어온 선봉장으로서 사업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과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리더”라며 선정 소식을 밝혔다. 1973년 제정된 국제 에미상 공로상은 방송 산업 부문에서 세계적으로 큰 기여를 한 단체나 개인에게 수여한다. 지금까지 그레그 다이크 전 영국 BBC 사장 등 국제 방송계 유력인사들이 받아왔다. 아카데미 측도 “K콘텐츠의 역사적 이정표가 된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을 통해 세계는 한국 문화와 미디어 산업에 대한 이 부회장의 헌신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휩쓴 영화 ‘기생충’의 총괄프로듀서였다. 올해 칸 영화제 감독상(박찬욱)을 받은 ‘헤어질 결심’과 남우주연상(송강호)을 수상한 ‘브로커’도 총괄프로듀서를 맡았다. 미 매체 버라이어티는 올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 부회장을 ‘국제미디어산업 분야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19일 더위가 가시지 않은 채 어둠이 내려앉은 밤. 별빛을 기대하긴 어려웠지만 그만큼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첼로와 가야금 소리. 전통 한옥 너머 솟구친 도심의 빌딩들이 빽빽한 숲처럼 포근하게 감싸는 기분마저 자아내는 곳. 얼마 전까지 일반인은 들여다볼 엄두도 못 내던 청와대가 이렇게 바뀔 줄 뉘라서 짐작했을까.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과 한국문화재재단이 마련한 야간탐방행사 ‘청와대 한여름 밤의 산책’이 20일부터 국민을 찾아간다. 공식 개장을 앞두고 전날 모니터링에 나선 일반시민 27명에게 먼저 공개된 행사는 프랑스영화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1990년)가 떠올랐다. 청와대 깊숙한 관저 앞마당에서 첼리스트 김 솔 다니엘과 가야금 연주자 윤다영이 합주한 퓨전 국악 듀오 ‘첼로가야금’의 연주는 국악이나 클래식에 딱히 조예가 없어도 상쾌하고 감미로웠다. 야간탐방은 단지 연주회로 멈추지 않는다. 해설사가 동행한 여정에는 은은하게 역사가 흘렀다. 이날 해설사로 나선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은 청와대 본관을 두고 “노태우 정부 때 지은 본관은 강력한 근대국가의 이미지를 드러내려고 푸른 기와에 콘크리트 양식을 혼합해 지었다”고 설명했다. 늦은 밤 출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라면을 끓여먹었다는 관저 부엌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조깅을 했던 녹지원까지. ‘이야기’가 담긴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은 각자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중 녹지원에서 선보인 ‘반딧불 조명 쇼’는 야간탐방의 하이라이트 격. 형형색색 빛을 내는 레이저 조명이 수백 그루의 나뭇잎 사이사이를 반딧불처럼 부유했다. 심 소장은 “녹지원 마당 한가운데 선 나무는 대한제국 때부터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함께 견뎌왔다”고도 했다. 부인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 박준흥 씨(75)는 “5월 10일 청와대 개방 첫날 오고 두 번째 방문이다. 불빛이 길을 밝혀줘 더 근사하다”고 말했다. 한 외국인도 연신 “브라보!”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번 야간탐방은 다음 달 1일까지 하루 두 차례(오후 7시 반, 오후 8시 10분) 선보인다. 회당 50명씩 1시간 30분 동안 연주회를 감상하고 산책하는 일정. 문화재청은 11일까지 사전 신청한 시민 가운데 1200명을 이미 추첨으로 선정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반응이 뜨거워 가을 야간탐방행사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란 문화유산을 시민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