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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체계가 현재처럼 유지되면 약 50년 뒤에는 한국의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배에 이를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 나왔다. IMF는 국민연금을 공무원연금을 비롯한 다른 직역연금과 통합하는 등 연금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일 IMF의 ‘2023년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연금 제도가 유지될 경우 2075년 한국의 중앙정부 채무는 GDP 대비 200%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2028년까지 40%로 낮추고 2033년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로 늦추는 방안까지 감안한 결과로, 정부가 국민연금의 적자를 메운다고 가정했다. 현재 50% 수준인 GDP 대비 중앙정부 채무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급격한 고령화다. 1990년 8명이었던 한국의 노년부양비는 2050년 8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연령인구(15∼64세) 100명이 부양해야 할 노인인구를 뜻하는 노년부양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아지는 만큼 연금 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의 GDP 대비 연금 지출은 2009년 1.8%에서 지난해 이미 4.0%로 높아졌다. IMF 집행이사회는 “재정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보호하기 위해 연금개혁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IMF는 연금 보험료를 높이고 퇴직연령을 늦추는 방법과 함께 국민연금을 다른 직역연금과 통합하는 장기적인 연금 개혁 방안도 제시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더 낮아진 출산율을 감안하면 연금적자 규모는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IMF는 또 고령화가 재정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을 고려해 세수 확충과 지출 합리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소득세와 관련한 각종 공제를 축소하거나 부가가치세 인상 등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을 비롯한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 건전성 문제를 짚으며 전기요금 등을 국제 원자재 가격과 연동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2021년 시작한 유류세 인하 조치 역시 더 이상 연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IMF는 재정준칙 등의 법률적 장치를 통해 공공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는 현재 재정적자 폭을 GDP의 3% 이내로 유지하도록 의무화하는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처리가 늦어지면서 정부 안팎에선 이번 21대 국회에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한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계약직 치위생사로 일하던 박모 씨(28)는 올 5월 일을 관두고 쉬고 있다. 격무에 시달리다 사표를 낼 때만 해도 조만간 더 좋은 직장을 구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몇 번의 면접에서 탈락한 후 서서히 취업 준비에서 손을 놨다. 현재는 딱히 일자리를 찾지도 않고 있다. 박 씨는 “첫 직장은 최저임금 수준의 초봉이 5년 넘게 제자리걸음이었다. 취준생이 돼보니 갈 수 있는 곳은 비슷한 처우의 회사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더 좋은 대학을 나왔어야 했나 싶어 내년에 수능을 다시 볼까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일을 하지도, 일자리를 찾지도 않으면서 쉬고 있는 청년이 올 들어 10월까지 41만 명을 넘어서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2년 넘게 쉬었다는 청년만 10만 명에 육박했다. 정부는 이들을 일터로 끌어들이겠다며 1조 원짜리 대책을 내놨지만 재탕이 많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체 청년의 4.9% “그냥 쉰다” 15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41만 명의 청년(15∼29세)이 특별한 이유 없이 무직으로 지내며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았다. 1∼10월 경제활동에 참가하지 않는 청년 중 ‘쉬었음’이라고 답한 이들을 평균 낸 값으로, 전체 청년의 4.9%에 이른다. 청년 ‘쉬었음’ 인구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44만8000명) 정점을 찍은 뒤 2년 연속 감소하며 지난해에는 30만 명대로 다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올해 다시 40만 명대를 넘어서며 증가세로 전환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쉬는 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2년 넘게 쉬었다는 청년은 올 5월 9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1만3000명 늘었다. 1년 넘게 쉬었다는 이들도 전체 청년 ‘쉬었음’ 인구의 44.2%를 차지했다. 3년 전보다 5.3%포인트 늘었다. 그냥 쉰 청년들이 늘어나는 건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이 이달 1일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을 하지도, 구하지도 않는 청년 10명 중 3명(32.5%)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 쉰다고 답했다. 전년보다 4.7%포인트 증가한 수준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근로자 사이의 임금, 고용 여건 격차가 크기 때문에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한 청년들이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문제는 쉰 기간이 길어질수록 질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가능성은 낮아지고 향후 기대소득도 줄어드는 등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핵심 인적 자본인 청년들의 쉬는 기간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낮아질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일자리 전반의 개혁 필요” 정부는 특별한 이유 없이 쉬는 청년들을 위해 이날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 방안’을 내놨다. 총 9900억 원이 투입되는 이번 대책에는 민간·공공 청년 인턴을 7만4000명으로 확대하고 초기 직장 적응을 돕는 ‘온보딩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사업장에 1인당 30만 원을 지원해 근로시간 단축을 유도하는 사업도 새로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이전 대책을 그대로 베낀 것들이 많아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20년 행정안전부는 청년 일 경험을 확대하겠다며 공공데이터 관련 청년 인턴십을 모집했다. 하지만 여기에 참여한 청년 25%가 중도에 이탈했다. 이후에도 청년 인턴을 채용하는 중소·중견기업에 지원금을 주거나 정부와 공공기관이 직접 인턴 일자리를 만드는 등 비슷한 대책이 쏟아졌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에 1663억 원 이상을 들여 비슷한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구직 단념을 예방하겠다며 새로 만든 ‘청년 성장 프로젝트’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청년 도전 지원 사업’과 유사하다. 2021년 만들어진 청년 도전 지원 사업은 지자체 청년센터를 활용해 구직 의욕 회복을 위한 상담을 제공하고 청년 정책과 연계해 주는 내용인데, 새로 생기는 청년 성장 프로젝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 성장 프로젝트에는 내년까지 281억 원이 투입된다. 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의 청년층 중 상당수는 충분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쉬는 것”이라며 “취업 지원을 넘어 일자리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지난해 부동산 등을 상속한 사람 중 상속세를 낸 이들의 비율이 5%에 육박하면서 23년째 그대로인 상속세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국회에 출석해 “상속세 체제를 한 번 건드릴 때가 됐다”고 말했던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국회 안에 정부가 안을 만들어서 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여당도 “상속세 개편 논의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그러나 해외에선 1, 2%만 부담하는 상속세가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중산층도 낼 수 있는 세금이 된 만큼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억 아파트 물려줘도 2억 부담 14일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 과세 인원은 1만5760명으로 2002년(1661명)보다 9배 이상으로 늘었다. 전체 피상속인 중 상속세를 낸 이들의 비율은 4.53%였다. 2002년 이 비율은 0.69%로 1%도 되지 않았다. ‘초부자’들만 내던 상속세가 20년 새 중산층도 낼 수 있는 세금이 된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자산 규모가 커지면서 상속세 납부 대상과 세액이 모두 늘어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세무업계에선 중산층의 상속세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세무업계 관계자는 “서울 강남 아파트의 경우 상속세가 수억 원에 이르기 때문에 ‘집 한 채 가진 것뿐인데 왜 상속세까지 내야 하냐’란 문의와 항의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배우자가 없는 피상속인이 15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물려준다고 할 때 상속인들이 내야 하는 상속세는 약 2억3135만 원이다. 현행 상속세법은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인 과세표준을 1억 원 이하부터 30억 원 초과까지 5단계로 설정하고 10∼50%의 세율을 적용한다. 여기에 대기업 최대주주 등이 보유한 주식은 20%가 할증돼 최고세율은 60%다. 상속세는 2000년 최고세율을 5%포인트 높인 뒤로는 큰 변화가 없었다. 가업상속공제를 수차례 확대하고 2015년 인적공제액을 소폭 상향하는 데 그쳤다. 양인준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상속세는 민감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손을 못 대면서 23년간 큰 변화가 없었다”며 “해외에선 국민 1∼2% 정도에 매기는 세금이라는 점 등을 감안한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부자 감세’ 논란이 걸림돌 정부는 지난해부터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현재 상속세는 고인이 남긴 전체 재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방식이다. 이를 상속인별로 상속받은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유산취득세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세금을 매기는 기준 자체가 줄어들면서 상속세 부담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올 7월 내년 세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그 같은 내용의 상속세 개편 방안은 담지 않았다. 상속세 이슈의 폭발력과 야당이 다수석을 차지한 국회 상황을 감안했을 때 통과 가능성이 낮다는 현실적인 이유 등을 고려한 결과였다. 32만5000파운드(약 5억3000만 원)를 초과하는 유산에 40%의 세율을 적용해 온 영국에서는 최근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논의가 본격화했다. 해외에선 상속세가 중산층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과 더불어 자본 유출 우려로 상속세를 완화 혹은 폐지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14개국에서 상속세를 폐지했고, 나머지 24개국도 최고세율이 평균 25% 수준이다. 한국의 최고세율은 60%로 24개국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소득과 자산이 23년 전보다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유산취득세 도입은 물론이고 세율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부자 감세’ 논란은 상속세 개편의 최대 걸림돌로 꼽힌다. 정부도 부의 대물림에 대한 국민 정서적 저항이 크다고 보고 있다. 추 부총리는 14일 기자들과 만나 “연말에 상속세 개편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는 이르다”며 “국회나 우리 사회가 준비가 덜 돼 있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상속세 완화 논의가 힘든 것은 부자들이 가진 부의 정당성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며 “유럽을 중심으로 상속세를 완화하는 최근 흐름을 감안하면서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올겨울 가스요금이 동결된 가운데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이 3개월 만에 1900억 원가량 더 늘었다. 한국전력은 3분기(7∼9월) 약 2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10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2021년부터 쌓인 적자는 여전히 약 45조 원에 달한다. 13일 가스공사가 발표한 올해 3분기 실적에 따르면 가스공사의 전체 미수금은 15조5432억 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보다 1870억 원 늘어난 규모다. 미수금은 천연가스 수입 대금 중 판매 요금으로 회수하지 못한 일종의 외상값으로 사실상 손실이다. 민수용 도시가스 미수금이 12조5202억 원으로 6월 말보다 2767억 원 늘어났고, 기타 도시가스 미수금도 7021억 원으로 1847억 원 증가했다. 발전용 미수금은 2744억 원 감소했다. 가스공사의 미수금이 계속 쌓이고 있는 건 가스공사가 원가에 못 미치는 가격에 가스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가스공사의 원가 보상률은 80% 수준이다. 앞서 정부는 올겨울 가스요금을 동결하면서 “미수금이나 재무구조를 면밀히 보면서 종합적으로 요금 인상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3분기 실적을 함께 발표한 한전은 영업이익이 1조996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조5309억 원 영업손실)과 비교해 흑자 전환했다고 밝혔다. 한전은 2021년 2분기(4∼6월)부터 올 2분기까지 계속 적자 행진을 이어왔다. 흑자 전환에도 불구하고 한전의 천문학적인 누적 적자를 해소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올 들어 3분기까지 한전의 누적 영업손실은 약 6조5000억 원으로 2021년 이후 누적 적자는 약 45조 원이다. 한전의 흑자 전환은 지난해부터 잇따른 전기요금 인상과 국제 에너지 가격 안정 효과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한전은 국제 유가가 5개월가량 지나 한전의 전기 구입 비용에 반영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올 상반기(1∼6월) 안정세를 보였던 국제 유가가 한전의 3분기 흑자 전환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전의 3분기 전기 판매단가는 kWh(킬로와트시)당 160.4원, 구입단가는 kWh당 145.9원으로 그동안의 역마진 구조를 벗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 관계자는 “지난해 4월 이후 5차례의 요금 조정과 연료 가격 안정화로 3분기 영업이익이 발생했지만 중동 전쟁 등에 따른 국제 유가와 환율 불확실성으로 흑자 지속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증권가는 올 하반기(7∼12월)에 다시 상승한 유가와 환율 때문에 올 4분기(10∼12월)에 한전이 다시 6000억 원대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흑자 전환에 힘입어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한전 주가는 전날보다 5.43% 오른 1만7870원에 거래를 마쳤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중소기업 A사는 10여 년 전 대기업 계열사인 B사로부터 증권거래소에서 사용할 시장감시 프로그램 개발 하청을 받았다. A사는 프로그램을 납품했고 두 회사의 계약은 2015년 끝났다. 그런데 B사는 계약 종료 한 달 뒤 다른 업체를 통해 A사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거래소에 납품하려 했다. 이를 인지한 A사는 법적 조치에 나섰고 B사와의 법적 분쟁은 지난해 대법원 판결(A사의 일부 승소)이 나올 때까지 약 7년간 이어졌다. A사 대표는 “대기업과의 법적 분쟁은 말 그대로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며 “현행 법체계는 중소기업의 기술 탈취 피해를 방지하는 데 한계가 있어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지엔 동의, 각론에 이견’으로 하세월 9일 국회와 정부 등에 따르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올 9월 해당 상임위에 회부됐지만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개정안은 대기업의 기술 도용 등으로 중소기업, 스타트업의 피해가 발생했을 때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피해액의 5배 이내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야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몇 배로 할지를 두고 입장이 엇갈리며 입법이 늦어지고 있다. 여당은 5배 이내도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야당 일부 의원은 10배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 탈취로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기업이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법원을 통해 행정기관에 요구할 수 있는 자료의 대상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법 개정안도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 역시 9월부터 상임위 심사 중이지만 다른 법에 밀려 뒷전이다. 규제 완화를 위해 신속한 국회 통과가 필요한 법안들 역시 지지부진하다. 드론이나 로봇이 택배 등을 운송할 수 있도록 하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약 7개월 전 법사위에 회부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드론·로봇 택배 자체에 대해서는 여야 이견이 없는데 정작 문제는 엉뚱한 데서 생겼다. 이 개정안에는 범죄 이력이 있으면 음식 배달 같은 배달종사자로 취직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이에 대한 여야 입장이 달라 전체 개정안 전부가 국회에 묶여 있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쟁점 사항이 없는 상당수 법안의 경우에도 의원들 관심도가 떨어져 논의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논의도 안 되는 민생 법안들 임금 체불, 채용 갑질 등을 막기 위한 민생 법안들도 연내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은 더 많은 임금 체불 사업자에게 더 센 제재를 부과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신용 제재, 명단 공개 등 경제적 불이익을 받는 ‘상습 체불 사업주’의 요건을 넓혔다. 정부 보조·지원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공공입찰 참여 시 감점하는 등 제재 수준도 높였다. 이 법은 당정 협의를 거쳐 올 6월 국회에 발의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회 논의는 한 번도 없었다. ‘노란봉투법’ 등 쟁점 법안에 밀려 환노위가 사실상 멈췄기 때문이다. 채용 갑질을 방지하기 위한 법안은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면접에서 혼인 여부나 결혼·출산 계획 같은 개인정보를 묻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여성 근로자가 결혼·출산 계획 등을 이유로 면접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현실을 반영했다. 그러나 이 또한 국회에서 6개월간 한 차례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와 경제계가 국회 통과를 최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킬러 규제’ 혁파 법안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화학물질 등록 기준을 0.1t에서 1t으로 완화하는 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은 발의 이후 국회에서 아직 한 번도 소관 상임위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해당 법안에 대한 여야 이견이 없는데도 왜 관련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
물가 오름 폭이 석 달 연속 확대된 가운데 각 정부 부처 차관이 각자 소관 품목의 가격 등을 점검해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농축수산물뿐만 아니라 빵, 라면 등까지 포함해 28개 주요 식품별로 전담자를 지정해 중점 관리한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9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수출입은행에서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물가 안정 방안을 논의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열린 첫 물가관계차관회의다. 우선 정부는 앞으로 모든 부처의 차관이 물가안정책임관의 역할을 맡아 각자 소관 품목의 가격과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품목별로 대응 방안을 마련하도록 할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등 소비 품목과 연관성이 큰 일부 부처를 중심으로 물가 잡기에 나섰던 기존 방식을 벗어나 현장 중심의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재부를 비롯한 각 부처는 신속한 물가 대응을 위한 현장대응반도 자율적으로 설치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날 농식품부는 한훈 차관이 물가안정책임관을 맡아 직접 농식품 수급상황실을 지휘하고 28개 주요 식품 품목별로 전담자를 지정해 중점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신선 농축산물 중심으로 품목별 담당자가 있었는데, 앞으로는 가공식품도 빵, 커피, 라면 등 물가 체감도가 높은 9개 품목을 중심으로 사무관급 담당자를 지정해 밀착 관리한다. 양주필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은 이날 동서식품 서울 본사와 롯데칠성음료 안성 공장을 방문해 물가 안정 동참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할당관세 및 수입 부가가치세 면세 등 세제 지원 효과를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가격 안정에 최대한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장철을 앞두고 정부가 집중적으로 가격 안정에 나섰던 배추는 7일 기준으로 가격이 지난달 초의 50% 수준까지 하락했다. 기재부는 6일 평균 김장 비용(배추 20포기 기준)도 21만8000원으로 지난해 11월 초보다 9.4%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김 차관은 “휘발유, 경유 가격이 4주 연속 하락하고 농산물 가격도 점차 안정화되는 등 물가 개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물가 안정 기조가 안착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2일 전남 광양시 포스코퓨처엠 양극재 광양공장의 자동화 창고에는 8층 높이의 선반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칸마다 올려진 대형 폴리에틸렌(PE) 자루에 든 건 양극재의 핵심 원료인 리튬. 5340m² 면적의 이 창고에는 리튬 등의 원료와 양극재 완제품이 최대 1만2000t까지 들어간다. 리튬이 없으면 공장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어 만일의 사태까지 대비해 창고에 리튬을 가득 채울 수밖에 없다. 2021년 요소수 대란에 이어 최근 중국의 잇따른 갈륨, 흑연 수출 통제를 경험한 기업들은 원자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실제로 포스코는 이 공장 바로 옆에 ‘포스코HY클린메탈’의 이차전지 재활용 공장을 세워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재추출하고 있다. 남미와 중국에서 매일 30∼40t의 리튬을 들여오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배터리 소재 생태계를 만들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정부가 공급망을 안정시켜 기업들을 돕겠다면서 마련한 법은 1년 넘게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새로 만들어지는 공급망안정화위원회를 어디 산하에 둘지 등을 놓고 여야가 이견을 보이면서 입법이 차일피일 미뤄진 결과다. 동아일보가 정부가 주요 입법 과제로 삼고 있는 경제·민생 법안들 가운데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들을 살펴본 결과 총 17건이 평균 13.7개월째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었다. 특히 국고 보조금에 대한 외부 회계검증 기준을 지금보다 대폭 강화해 보조금 부정 수급을 막겠다며 발의된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경우 국회 상임위에서 3년 6개월째 공전 중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엔 별다른 쟁점이 없는 법안은 우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 국회에선 정치적 공방 때문에 비쟁점 법안도 뒤로 밀리는 분위기”라며 “민생과 경제를 입으로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산업과 미래 먹거리 등을 위한 법안 처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리튬없인 공장 스톱” 기업 절박한데… ‘공급망법’ 1년 넘게 표류 17개 경제 법안 국회서 낮잠공급망 위기 관리 시스템 구축 법안여야 논란끝 상임위 문턱 겨우 넘어우주강국 도약 ‘우주청 설치 특별법’R&D 기능 놓고 충돌, 반년째 계류 “광양공장에선 1년에 전기차 100만 대 분량의 양극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핵심 원료인 리튬이 없으면 이 양극재 공장은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고, 이차전지 산업 전체도 큰 타격을 피하기 힘듭니다.” 2일 광양공장에서 만난 김상무 포스코퓨처엠 광양양극재2공장 공장장의 얘기다. 반도체의 뒤를 이어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이차전지 분야에서 LG에너지솔루션 등의 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 등이 안정적으로 생산되지 않으면 이차전지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입법 지연에 ‘공급망 사령탑’ 못 만드는 정부 최근 중국은 음극재의 핵심 원료인 흑연의 수출 통제에도 나선 상황. 전 세계적으로 ‘자원 무기화’가 이어지면서 공급망 교란 우려가 커진 가운데 정부 공급망 대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건 ‘경제 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이다.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소속으로 공급망안정화위원회를 신설하고 경제 안보 관점에서 위기 관리에 나서는 정부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위원회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위험 포착과 위험 예방, 위기 대응의 사이클을 체계화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운용하는 공급망안정화기금을 설치해 기업의 원자재 수입 국가 다변화와 비축 물량 확대를 돕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발의된 법안은 신설 위원회의 소속을 어떻게 할지와 안정화 기금 운영에 따른 재정 부실 우려를 놓고 여야 간에 논란을 빚은 끝에 올 8월에야 상임위 문턱을 넘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가 공급망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큰 틀을 갖추면서 기금을 활용해 각 기업이 공급망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시급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직접 개정 요청한 법도 하세월 지난달 31일 서울 강서구의 LG 인공지능(AI)연구원에선 LG그룹 각 계열사에서 온 수강생들이 AI 교육을 받고 있었다. AI연구원은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는 LG그룹의 사내 대학원으로, 경쟁률이 10 대 1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현재 법으로는 사내 대학원에서 정식으로 석·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김향미 AI아카데미팀장은 “열심히 공부한 직원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주는 차원에서 외부와 동등한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AI연구원에서 교육부 등에 직접 법 개정을 요청한 이유”라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들의 이런 목소리를 반영해 올 5월 직접 ‘첨단산업 인재혁신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이 법안 역시 상임위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다. 여야 간에 큰 이견은 없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정부 관계자는 “쟁점 법안이 아니더라도 국회의 관심에서 밀리면서 소외된 법안도 적지 않다”고 했다. 우주 강국 도약과 우주시대 개막을 목표로 새로 출범시키려던 우주항공청도 여전히 국회 논의 중이다. 올 4월 정부가 발의한 ‘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의 우주항공청을 새로 만들고 우주항공과 관련한 정책의 수립과 조정, 기술개발·산업육성 등을 총괄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주항공청이 직접 연구개발(R&D)을 수행할 수 있게 할 것인지를 놓고 여야가 충돌하면서 상임위 심사만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을 우주항공청 산하로 옮겨 이 논란을 해소하는 방안까지 제시됐지만 여전히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최근 달 탐사에 성공하면서 우리에게 충격을 준 인도의 경우 일찌감치 전담기관을 설립해 우주 개발에 나선 바 있다”며 “글로벌 우주 경쟁에서 미국 등 선도국을 따라잡기 위한 구심체라는 점을 내세워 국회를 설득 중”이라고 말했다.세종=김도형기자 dodo@donga.com광양=송혜미 기자 1am@donga.com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kWh(킬로와트시)당 평균 10원 넘게 오른다. 가정과 자영업자가 쓰는 주택용과 일반용은 동결됐다. 올겨울 가스요금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산업용 요금 인상으로 한국전력이 추가로 얻는 수익은 연간 3조 원도 안 돼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전기요금을 9일부터 kWh당 평균 10.6원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일반 가구, 자영업자 등에 대해선 인상 속도 조절을 위해 이번은 요금을 동결하고 앞으로 국제 연료 가격, 환율 추이 등을 살펴가며 요금 조정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전기요금은 현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겨울철에 소비가 집중되는 가스요금 역시 올리지 않기로 했다. 가스요금이 다섯 차례에 걸쳐 인상되며 지난해 초보다 45.8% 올라 부담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 등을 보면서 추후 요금 인상을 검토할 방침이다. 이번 요금 인상으로 한전이 추가로 거두게 되는 전기 판매 수익은 연간 2조8000억 원 수준이다. 한전의 누적 적자 규모는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1∼6월)까지 약 47조 원이다.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연 수익이 한전 누적 적자의 6%에 불과한 것이다. 이번 전기요금 조정이 한전의 근본적인 기업 정상화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한전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추가 자구책도 내놨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인재개발원 부지를 매각하고 자회사인 한전KDN 지분 20%를 팔기로 했다. 본사 조직을 20% 축소하고 인력 2000여 명도 감축한다.총선앞 기업 전기료만 올려… 200조 빚 한전, 3조 ‘찔끔’ 재무개선 가정용 동결… 대-중견기업만 인상대기업, kWh당 13.5원↑… 月3억 늘어한경협 “경영활동 크게 위축 우려”한전, 인재개발원 부지 등 매각나서“부채의 1.8% 수준 그쳐 생색내기” 정부가 전력을 상대적으로 많이 쓰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전기요금만 인상에 나선 건 한국전력의 적자를 일부 해소하면서도 내년 4월 총선에서 표를 잃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3개월 연속 물가 상승 폭이 확대된 상황에서 전기요금까지 올리면 서민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전기요금이 결정되면서 유가가 뛰면 전기요금도 오르는 ‘연료비 연동제’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사항인 ‘전기요금 원가주의’는 사실상 폐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 전기요금 한 달에 3억 원 상승 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이 kWh(킬로와트시)당 평균 10.6원 인상하기로 한 전기요금은 산업용 중에서도 ‘을’ 요금이다. 광업, 제조업 분야의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주로 사용하는 요금이다. 하지만 해당 요금 중에서도 송전 전압에 따라 인상 폭이 다르다. 중견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고압A’는 kWh당 6.7원, 대기업이 쓰는 ‘고압B’와 ‘고압C’는 kWh당 13.5원 오른다. 대기업 전기요금이 중견기업 대비 더 큰 폭으로 오른 셈이다. 한전은 이번 요금 인상으로 중견기업은 매월 200만 원, 대기업은 2억5000만∼3억 원의 전기요금이 추가될 것으로 추산했다.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커서 (전기요금 인상분을) 부담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기업들이 그동안 값싼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한 혜택을 누려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기를 많이 쓰는 철강, 반도체 업계 등은 원가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철강업계에선 전기요금이 kWh당 1원 오르면 원가 부담이 연간 200억 원 추가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날 “기업의 고통 분담도 필요하지만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 상황에 놓인 우리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크게 위축될까 우려된다”며 “중장기적으로 사회 전반의 에너지 효율이 개선될 수 있도록 원가주의에 입각한 가격체계를 정착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요금 인상으로 연료비 연동제와 전기요금의 원가주의가 유명무실해졌다고 지적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산업계에서 전기를 많이 쓰기 때문에 올린 건 이해가 되지만 가정과 자영업자가 쓰는 전기요금도 일부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가정용과 산업용의 전기 원가는 같기 때문에 이번 결정으로 전력 시장의 왜곡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커졌다”고 말했다.● “추가 전기요금 인상은 힘들 것”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과 함께 적자 해소를 위한 추가 자구책도 함께 내놨다. 특히 서울 노원구에 있는 64만 ㎡ 넓이의 인재개발원 부지를 매각하기로 했다. 해당 부지는 자산 가치 등을 고려해 그간 매각 대상에선 제외돼 왔다. 자회사인 한전KDN은 매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국내 증시에 상장한 뒤 지분 20%를 팔 방침이다. 필리핀 칼라타간 태양광 사업 보유 지분 38%도 전량 매각한다. 한전은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약 1조 원의 현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얻게 될 추가 수익(연간 약 2조8000억 원)까지 합하면 약 3조8000억 원이다. 올 상반기(1∼6월) 한전의 부채가 약 201조 원이기 때문에 부채의 1.8%에 불과한 수준이다. 전기요금 인상과 추가 자구책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밖에 한전은 본사의 본부장 직위 5개 중 2개를 없애는 등 본사 조직을 20% 줄이기로 했다. 창사 이래 두 번째로 희망퇴직도 실시한다. 공공기관 혁신계획에 따라 올 1월 감축한 정원보다 더 많은 488명은 올해 말까지 내보내고, 2026년까지 운영인력 약 700명을 추가로 감축한다. 내년 1분기(1∼3월) 전기요금은 현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요금 인상에 회의적인 상황에서 한전이 더 내놓을 자구책이 없으면 추가 요금 인상은 힘들 것”이라며 “조만간 1분기 요금 인상 논의에 들어가야 하지만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정치적 고려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세종=김도형기자 dodo@donga.com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알버트 비어만 현대자동차그룹 기술고문이 중국의 ‘전기차 굴기’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아직은 기술적으로 앞서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 우위를 지키려면 국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비어만 고문은 2018년 12월∼2021년 12월 3년간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을 맡아 현대차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현대차에서 7년간 근무한 그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 대해 “상사이면서 친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비어만 고문은 7일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최근 몇 년을 살펴보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 발전은 매우 인상적”이라며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스마트 모빌리티로 전환하는 국면에서 현대차그룹은 상황을 예측하고 민첩하게 행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중국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기차 원자재 공급과 제조 규모 확대 등의 장기 전략을 세웠다”며 “전기차 기술만 놓고 보면 현대차는 여전히 앞서 있지만, 이를 이어가려면 지속가능한 지역별 공급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한국은 현대차에 대한 산업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비어만 고문은 “중국의 경제 전략이 자국의 자동차 산업에 얼마나 우호적인지 비춰볼 때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전동화와 수소 기술 분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산업계와 정부 간의 강력한 파트너십을 계속 이어나갈 것을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글로벌화의 한계도 분명하기에 지역 기반의 시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세계적으로 보호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만큼 희토류 물질의 대체재를 찾는 등의 기술 개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5년 현대차에 합류한 독일 출신의 비어만 고문은 현대차의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고성능 차량을 개발하는 독일 BMW M연구소 소장을 맡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차에서도 고성능 차량을 만드는 N브랜드를 성장시켰다. 비어만 고문이 합류한 이후인 2017년에 N브랜드 첫 차인 ‘i30N’이 출시돼 현대차에서는 ‘N브랜드의 아버지’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그는 2021년 12월 기술고문으로 물러난 뒤에도 독일에 머물면서 올 9월 출시한 현대차 최초의 전동화 고성능 차량인 ‘아이오닉5N’ 개발에 관여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비어만 고문은 “아이오닉5N은 전기차의 주행 경험뿐 아니라 전통적인 고성능 차량의 놀라운 주행 경험을 모두 제공한다”며 “이것은 최초의 ‘소프트웨어 중심의 N브랜드’(SDN)다”라고 말했다. 7600만 원으로 책정돼 고성능 차량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이오닉5N의 가격과 관련해 “접근하기 쉬운 운전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운전의 가잼비(가격 대비 재미)’ 부분에서 우리가 명백하게 최고”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비어만 고문은 함께 일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해 친구 같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비어만 고문은 “정 회장은 항상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열려 있다”며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정 회장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 회장에게 늘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 회장은 상사이면서 동시에 친구”라고 덧붙였다.한재희 기자 hee@donga.com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주말에 직접 전시장을 찾아오거나 따로 차량 구입을 문의하는 고객이 요즘 들어 확 줄어든 분위기네요.” 수도권의 한 자동차 지점에서 일하는 영업부장의 얘기다. 올 상반기(1∼6월)까지만 해도 매끄러운 흐름을 보이던 자동차 내수 영업에 최근 먹구름이 끼면서 경기가 얼어붙었다는 것을 실감한다는 것이다. 고금리와 고물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승용차를 비롯한 내구재를 중심으로 소비가 위축되는 흐름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대표적인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액지수(계절조정)는 9월 102.9를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2.5% 하락하면서 7월(―1.9%), 8월(―5.1%)에 이어 석 달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낸 것이다. 소매판매액지수는 개인·소비용 상품을 판매하는 2700개 기업의 판매액을 조사한 결과로 경제주체들의 실질적인 재화 소비 수준을 보여준다. 올 3분기(7∼9월) 내내 이어지고 있는 소매 판매 위축은 내구재와 준내구재에서 두드러졌다. 승용차나 가구처럼 1년 이상 사용할 수 있으면서 비교적 고가품인 내구재 판매의 경우 8월에 1년 전보다 1.7% 감소한 데 이어 9월에는 ―3.7%로 감소 폭이 더 커졌다. 내구재 가운데 승용차 판매액지수는 지난해 8월부터 13개월 연속으로 1년 전보다 늘어나는 흐름을 보여왔지만 9월 들어 하락세로 돌아섰다. 국내 완성차 5개사의 내수 판매량도 8월에 1년 전보다 1.5%만 증가하면서 주춤한 모습을 보인 데 이어 9월에 6.2% 감소로 하락 전환한 바 있다. 완성차 판매는 10월에도 2.3% 감소했다. 9월 내구재 판매에서는 가전제품(―10.2%)과 가구(―13.1%) 판매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옷이나 신발, 가방처럼 1년 이상 쓸 수 있지만 비교적 저가인 준내구재 판매의 경우 이미 올 2분기(4∼6월)부터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4월 ―3.7%로 하락 전환한 준내구재 판매액지수는 5월(―2.5%), 6월(―2.6%), 7월(―6.4%), 8월(―7.5)에 이어 9월에는 ―8.5%로 하락 폭이 커지는 모습이다. 9월 준내구재 판매에서는 의복(―10.4%), 신발 및 가방(―8.0%) 등의 하락 폭이 컸다. 전문가들은 고금리 속에 가처분소득이 줄어든 가계가 소비를 줄이는 모습이 본격화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고금리로 이자 부담이 늘어난 데다 식료품 등 생필품 가격까지 오르면서 소비 여력이 제한되는 상황”이라며 “당장 필요하지 않은 내구재 구매 등에서 지갑을 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올 2분기 가계 소득에서 이자·세금 등을 뺀 처분가능소득은 월평균 383만1000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8%(11만2000원) 줄었다.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역대 최대 폭의 감소율이다. 이런 가운데 비내구재 가운데서는 생필품으로 볼 수 있는 음식료품과 차량연료 등은 9월에 각각 3.4%와 1.8%씩 소비가 늘어난 반면 화장품(―12.7%)과 의약품(―2.4%) 등의 소비가 줄기도 했다. 이날 한국금융연구원은 민간 소비 증가율이 올해 2.1%에서 내년 2.0%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계의 실질 소비 여력 제약이 지속되면서 소비 증가세가 꺾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수출은 다소 살아나는 모습이지만 고금리 때문에 하락한 실질소득으로 구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 앞으로의 경기 회복에 최대 걸림돌”이라고 말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대기업 집단의 투명한 지배구조 정착을 위해 도입된 지주회사 제도가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5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신영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일 ‘지주회사제도 25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주회사 제도 도입이 국내 기업집단 및 정책환경에 미친 영향’을 발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지주회사의 수는 174개로 2013년 127개와 비교하면 10년 만에 47개가 늘었다. 신 교수는 지주회사 체제가 선진적인 지배 구조로 여겨지면서 우호적인 정책이 지속됐고, 그 결과 기업집단들이 지주회사로 대거 전환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주회사 제도가 오너 일가 지배주주의 지배 체제 강화 또는 경영권 승계의 수단으로 빈번하게 이용되면서 이에 따른 우려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기업이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를 설립하면서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강화하는 등의 편법이 늘어난 상황 전반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신 교수는 일감 몰아주기나 사익 편취 등에 대한 사후 규제 수단이 이미 존재하는 만큼 이와 관련된 사전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사과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놨어요. 아무리 유기농이라지만 사과 3개에 2만 원이 훌쩍 넘더라고요.” 김모 씨(39)는 최근 마트를 찾았다가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좋아하는 사과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결국 나와 아내는 입도 못 대고 아이만 주고 있다”며 “물가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뛰었다”고 말했다. 3% 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올 들어 10월까지 식료품과 비(非)주류 음료 물가가 5% 넘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까지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이들 품목은 3년 연속으로 연간 5% 넘는 상승 폭을 보이게 된다. 먹거리 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구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곡물-원유 오르며 가공식품↑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 1∼10월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올랐다. 3년 연속으로 5%대 상승 폭을 보일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2019년 연간 0% 상승률을 보였던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물가는 2020년 4.4% 급등한 후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5.9% 올랐다. 이들 품목의 물가 상승률이 3년 연속으로 5%를 넘은 건 2009∼2011년 이후 처음이다.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물가의 오름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데는 원유(原乳)와 곡물을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가공식품 등의 가격이 오른 영향이 크다. 최근에는 이상기온까지 겹치면서 과일, 채소류 등의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달 사과 가격이 1년 전보다 최대 94% 넘게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유 가격 역시 14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달 우유 물가는 1년 전보다 14.3%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20.7%) 이후 14년 2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지난달 원유 가격이 인상된 탓이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지난달부터 1L짜리 흰 우유 출고가를 대형마트 기준으로 3%가량 올렸다. 국제 설탕 가격도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먹거리 물가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설탕 가격지수는 159.2로 집계됐다. 9월보다 2.2% 하락했지만 2014∼2016년 평균을 100으로 잡기 때문에 160에 육박하는 현재 지수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설탕값이 뛰면 과자,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 인상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위 20%는 소득 40%가 식비 먹거리 가격이 높은 수준을 보이면서 저소득층의 부담이 더욱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올 2분기(4∼6월) 기준으로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가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외식 등 식사비에 지출한 금액은 월평균 38만2208원이었다. 1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이 94만6969원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소득의 약 40%를 식비로 지출하는 것이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가 식비로 지출하는 금액은 처분가능소득의 15.6%에 불과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물가 관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라면, 빵, 과자, 커피, 아이스크림, 설탕, 원유 등 7개 품목에 대한 담당자를 각각 지정해 가격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서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제품의 가격을 정부가 별도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제품의 가격 오름세는 정부가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8% 오르며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국제유가가 다시 들썩이는 가운데 사과와 쌀, 상추 등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를 끌어올렸다. 정부가 각 부처 차관을 물가 안정 책임관으로 지정하고 물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지만 정부가 제시했던 연간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년 5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오른 농산물 2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10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8% 올랐다. 올 3월(4.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7월에 2.3%까지 떨어졌던 물가 상승률은 8월에 3%대로 올라선 뒤 3개월 연속 오름 폭이 커졌다. 특히 농산물 가격 상승이 가팔랐다. 사과(72.4%), 상추(40.7%), 파(24.6%), 쌀(19.1%) 등의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농산물 가격이 13.5% 상승했다. 2021년 5월 이후 2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 폭이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에서 농산물이 끌어올린 몫이 0.61%포인트였다. 지난달 초 이상저온으로 출하가 늦어진 탓이 컸다. 피부에 와닿는 체감 물가는 더욱 큰 폭으로 상승했다. 채소, 과일, 수산물 등 55개 품목으로 구성된 신선식품지수는 1년 전보다 12.1% 올랐다. 지난해 9월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신선과실지수는 26.2% 뛰면서 12년 9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아이스크림(15.2%)과 우유(14.3%), 빵(5.5%) 등을 포함한 가공식품 가격도 4.9% 상승했다. 여전히 배럴당 80달러를 웃돌고 있는 국제유가도 물가 오름세를 키웠다. 지난달 국내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는 1.3% 하락했지만 9월과 비교하면 1.4% 올랐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소비자물가가 하락하는 데 기여했던 석유류 가격 안정 효과가 점차 사라지면서 소비자물가가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품목별 담당 공무원” MB식 물가 관리 부활 10월부터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봤던 정부의 예상이 빗나가면서 연간 물가 상승률은 정부 전망치를 웃돌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올 6월 정부는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3%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10월까지 누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일교차가 큰 이상기온으로 출하 시기가 늦어지면서 채소류의 가격 하락이 예년보다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유가와 농산물 가격이 높아 물가가 예상보다 높은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본격적인 김장철인 이달 배추 도매가격(상품 기준)이 1년 전보다 44%가량 높을 것으로 전망한다. 조만간 전기요금이 인상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아주 높았던 물가 상승률에 비해서는 다소 진정된 모습일 수 있지만 임금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감안하면 물가 불안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물가 불안이 커지면서 정부는 담당자를 정해 물가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각 부처 차관이 물가 안정 책임관이 돼 소관 품목 물가 안정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오로 철저히 살피겠다”고 밝혔다. 또 서민 체감도가 높은 빵, 과자, 커피, 라면, 아이스크림, 설탕 등 주요 식품에 대해선 담당자를 지정할 방침이다. 이명박 정부가 2012년 품목별로 담당자를 정해 물가를 관리했던 ‘물가관리 책임실명제’가 11년 만에 부활하는 셈이다. 가격이 급등한 김장 재료와 관련해서는 배추와 소금 등의 공급을 확대하고 역대 최대 규모인 245억 원을 투입해 배추, 무 등 김장 재료 14종의 할인에 나선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우리는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빨리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한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그룹 기술고문의 얘기다. 독일 BMW 출신으로 2015년 현대차그룹에 영입된 그는 2018년부터 현대차그룹의 차량 개발을 총괄하는 연구개발본부장을 지내다 1년여 전 독일로 돌아갔다. 지금도 고성능 전기차 개발을 돕고 있는 비어만 고문은 현대차그룹의 친환경차 대응을 속도전으로 요약했다. 친환경차 대전환을 마주한 다른 기업들이 우선순위를 고민할 때 현대차그룹은 하이브리드차와 수소전기차, 전기차 모두를 최대한 빨리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우리가 해오던, 현대의 방식대로 말이죠”라고 덧붙였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에서 오래 고민하기보다는 빠른 행동으로 대응하는 전략.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삶이 압축된 두 단어 ‘이봐, 해봤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때 보여준 ‘현대속도’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비어만 고문은 미래차 준비로 남양연구소의 프로젝트가 두 배 이상 급증하자 연구개발 시스템을 효율화하는 작업에 나섰다고도 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비롯한 핵심 프로젝트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려는 노력이었다. 이처럼 새로운 도전에 즉각 응전한 한국과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나라는 바로 이웃 일본이다. 세계 판매량 1위의 자동차 기업 도요타를 최근까지 이끈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얼마 전 도쿄에서 열린 모터쇼에 참석해 “사람들이 마침내 현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의 가파른 성장세가 한풀 꺾이고 회의론까지 나오는 상황이 친환경차 대전환의 현실이라는 얘기였다. 도요타는 최근 최고경영자까지 교체하면서 전기차 전환에 나섰다. 얼마 전에는 10조 원에 이르는 미국 배터리 공장 추가 투자도 결정했다. 하지만 한국, 유럽, 미국은 물론 중국까지도 일찌감치 뛰어든 이 격전장에 일본은 두어 발 늦게 발 디뎠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탄소중립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도요다 회장의 이 말은 일본이 왜 전기차 대응에 늦었는지를 보여준다. 분산된 투자로 위험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 여기엔 전기차 시장 판도를 충분히 살펴보면서 준비해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세계 1위 기업의 자신감도 담겨 있겠다. 도요타는 충전 걱정이 없다는 장점을 앞세워 친환경차의 대안으로 새삼 각광받는 하이브리드차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도요다 회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질주하던 전기차가 과속방지턱 앞에 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 각국에선 중국 전기차를 막아내기 위해 장벽을 쌓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 보급이 자국의 차 산업에 과연 유리하냐는 문제까지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전기차의 미래는 더욱 안갯속이다. 과감한 도전과 신중한 준비. 한일을 대표하는 두 기업의 전기차 대응은 미래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과속방지턱과 안개를 통과한 뒤가 궁금하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지난달 수출이 5.1% 늘어나면서 13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무역수지도 5개월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550억9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5.1% 늘었다. 지난해 10월 감소세로 돌아선 뒤 계속 마이너스(―)를 보였던 수출이 13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선 것이다. 지난달 수입은 534억6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9.7% 줄었다. 가스(―54.3%) 등 에너지 수입액이 22.6% 감소한 결과다. 이에 따라 지난달 무역수지는 16억4000만 달러 흑자를 나타내 올 6월 이후 5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한국 경제가 수출 플러스와 무역수지 흑자를 함께 달성한 것은 지난해 2월 이후 20개월 만이다. 수출 반등은 반도체가 견인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89억4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1년 전에 비해 3.1% 감소했지만 감소 폭이 올해 최저 수준으로 줄었다. 반도체 수출 감소율이 올 1분기(1∼3월) 40.0%로 정점을 찍은 뒤 2분기(4∼6월) 34.8%, 3분기(7∼9월) 22.6%로 낮아진 바 있다. 지역별로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개선되는 흐름 속에 세계 9대 수출 시장 중 6개 시장에서 수출이 증가했다. 지난달 대(對)중국 수출은 110억 달러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9.5% 줄었지만 올해 가장 낮은 감소 폭이다. 대미국 수출은 101억 달러로 역대 10월 중 가장 높았다. 수출 반등이 현실화하면서 정부는 수출이 ‘상저하고’(상반기 경기 둔화, 하반기 반등)를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업황 개선 속에 자동차, 선박 등의 수출도 호조를 보이면서 내년 초까지 수출이 우상향하는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출 반등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얘기하기는 아직 힘든 단계”라며 “반도체 수출 동향을 지켜보면서 고물가와 중동전쟁 등 대외 리스크도 적극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올 9월 생산, 소비, 투자가 일제히 늘었다. 뚜렷한 반도체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4개월 만에 국내 경제의 세 축이 모두 증가하면서 연말 경기 회복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가 여전히 불안한 상황에서 고물가·고금리로 위축된 민간소비 등 악재가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수출 늘고, 재고는 감소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9월 전산업생산지수는 전달보다 1.1% 증가했다.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도 0.2% 증가했고, 설비투자도 전달보다 8.7% 늘었다. 이들 세 지표가 일제히 증가세를 보인 건 올 5월 이후 4개월 만이다. 전체 산업생산 증가를 이끈 것은 대표 수출 품목인 반도체였다. 올 7월 2.5% 감소했던 반도체 생산은 8월 13.5% 증가한 데 이어 9월에도 12.9% 늘었다. 반도체 생산이 두 달 연속으로 두 자릿수대 증가율을 보인 것은 2009년 1, 2월 이후 14년 7개월 만이다. 반도체 수출이 늘면서 재고는 감소했다. 반도체 재고는 9월에 6.7% 줄면서 6월(―12.3%)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 출하가 전달보다 69.4% 늘어나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을 보인 결과다. 전체 산업생산을 놓고 보면 반도체를 포함한 광공업(1.8%)과 더불어 서비스업(0.4%), 건설업(2.5%), 공공행정(2.3%)까지 생산 부문 4대 업종이 모두 2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2016년 2, 3월 이후 7년 6개월 만이다. 정부는 그동안 예상했던 ‘상저하고’(상반기 경기 둔화, 하반기 반등) 흐름이 가시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월 수출도 13개월 만에 플러스 전환이 예상되는 등 경기 개선 흐름이 4분기(10∼12월)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중국발 쇼크에 증시 출렁…“소비 회복 힘들어” 그러나 중국의 경기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중동전쟁 등의 대외 리스크가 여전해 경기 회복을 마냥 낙관하기도 어렵다. 이날 중국의 경기 지표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국내 증시는 다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10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달보다 0.7포인트 하락한 49.5로 집계됐다. 중국 PMI는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수축 국면을 의미한다. 9월에 6개월 만에 처음으로 50.2를 보였지만 10월 들어 다시 50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중국발 악재 속에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각각 1.41%와 2.78% 하락했다. 종가 기준으로 모두 올 1월 이후 최저치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테슬라 주가 하락이 2차전지주 급락의 빌미를 제공한 상황에서 중국발 PMI 쇼크도 투자 심리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와 국제유가 변동성 확대, 미국 등 주요국의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 등을 최대 위험 요인으로 보고 있다. 하반기 한국 경제가 대외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9월 소매판매가 상승 전환했다지만 그 폭이 미미하고 소비자 심리지수는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고물가 속에 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 경기에 대한 우려를 감안하면 소비 회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코로나 영향을 막 벗어난 지난해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선진 경제권 중 중하위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경제전망(WEO)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2.6%에 이어 올해 1.4%의 연간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2개년 합산 성장률은 4.1%로 IMF가 분류하는 41개 선진 경제권(홍콩, 마카오 등 포함) 가운데 미국(4.15%)에 이어 25위였다. 선진 경제권 중에서는 마카오(47.6%)가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아일랜드(11.4%) 등이 뒤를 이었다. 선진 경제권의 2개년 평균 성장률은 5.9%였다. 경제 규모가 큰 나라와 비교해도 한국의 성장세는 저조하다. 한국의 2개년 합산 성장률은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1조 달러 이상인 11개 선진 경제권 중 8위였다. 11개 선진 경제권 중에서는 스페인(8.2%) 호주(5.5%) 등이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독일(1.3%)은 최하위였다. 이들의 2개년 성장률 평균은 4.4%였다. 물가지표에서는 한국이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IMF는 한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5.1% 오른 데 이어 올해 3.4%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2개년 합산 물가상승률은 8.5%로 41개 선진 경제권 중 6번째로 낮았다. 41개 경제권의 평균 물가상승률은 13.6%였다. 명목 GDP 1조 달러 이상 11개 선진 경제권 중에서는 일본의 2개년 물가상승률이 5.7%로 가장 낮았다. 이어 한국(8.5%) 캐나다(10.4%) 프랑스(11.5%) 순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 회복이 더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정부가 튀어나오는 두더지 때리듯이 물가를 잡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요즘 물가과 사무관 같다.”윤석열 대통령이 민생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내놓고 지난 21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순방에 나선 직후부터 관가에서는 전방위적인 물가 방어전이 펼쳐졌습니다. 자연스레 관가 안팎에서는 정부의 물가 대응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는데요.편안한 민생에 필요한 것이 물가 안정만은 아니겠습니만, 어쨌든 한국 정부는 물가에 있어서만큼은 과거부터 ‘진심’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물가가 서민 생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가차 없이 행동에 나섰다는 것인데요.민간의 가격 결정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물가를 다잡는 행보에 나서는 것과 관련해 기획재정부에서는 ‘물가 연쇄 반응’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봐달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습니다.쉽게 말하면 물가에서는 옆 가게에서 가격을 올리면 주변 가게도 따라서 가격을 올리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있기 때문에 위험 요소가 보이는 지점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무총리부터 부처 실장들까지… 현장에서 물가잡기최근 물가 방어전의 하이라이트를 꼽아보자면 윤 대통령 순방 기간이던 24일이겠습니다. 순방에 동행하지 않은 주요 관료 상당수가 현장을 찾아 물가 행보를 보였는데요.우선,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날 서울 마포농수산물시장을 찾아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 등 식료품 물가 점검에 나섰습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했고 기획재정부에서는 순방에 동행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대신 김병환 1차관이 도봉구의 하나로마트를 찾았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강경성 2차관이 범정부 석유시장 점검단 운영 계획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습니다.정부의 물가 대책을 놓고 ‘두더지잡기’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이날 농림축산식품부의 움직임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요.CJ제일제당 인천1공장을 방문한 농식품부 권재한 농협혁신정책실장은 “제당 업계가 내년 초까지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세계적인 원당 가격 인상으로 ‘슈거플레이션(설탕+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국내 대표 설탕 기업을 찾아 당분간 가격 인상이 없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죠.같은 날 농식품부에서는 박수진 식량정책실장도 경기 평택시에 있는 계란유통센터를 방문해 장바구니 물가 부담 완화를 당부했는데요. 역시나 꿈틀거리는 계란 가격 동향에 따른 행보였습니다.농식품부에서는 다음날 권 실장이 이마트 세종점을 찾은데 이어 26일에도 한훈 차관이 소비자·외식 7개 단체장과 만나 물가안정 간담회를 열고 가격 인상 요인을 외식업계에서 최대한 흡수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물가 사령탑은 기재부…채소·과일은 비축·계약 물량 등 활용최근의 인플레이션은 사실 세계적인 현상인데요. 코로나19 사태 속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에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 높아진 석유·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를 잡아야 하는 힘든 과제를 풀어야 하는 현장 사령탑은 기재부라고 할 수 있는데요. 기재부에서는 핵심 부서로 꼽히는 경제정책국 안에 물가정책과가 있습니다.기재부 조직도에 명기된 물가정책과의 업무 영역을 살펴보면 ‘물가 동향 및 공공요금 관리’ ‘물가 대응’ ‘물가 대책’ ‘물가분석’ ‘농축수산물 물가 총괄’ ‘원자재·농산물 일일동향’ 등입니다. 농축수산물과 원자재 가격을 포함한 물가 관련 동향 전반을 살펴보면서 물가에 대응하고 물가 관리를 위해 전기와 가스를 포함한 공공요금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물가정책과는 정부 부처 중에 일 많기로 소문난 기재부 내에서도 격무로 유명합니다. 아무래도 업무 영역이 광범위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크겠습니다. 가을철인 최근 소비자 물가에서는 유독 채소류와 과일류의 가격이 높게 나타나는 모습인데요. 물가정책과에서는 왜 이런 것인지를 분석해서 구조적인 요인인지, 계절적인 요인인지를 판단하고 적절한 대응을 마련해야 합니다.그러다보니 최근 물가정책과에서는 경제 정책과는 큰 관련이 없어보이는 이상기후까지도 고민하는 모습입니다. 과일 대표 품목인 사과의 경우 올 봄에 있었던 이상기온이 사과 작황에 악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가공식품 소비 대신 소비자가 직접 구입하는 ‘상품(上品)’ 사과의 작황이 나쁘다는 내용까지 파악해야 하는 식입니다.재배 기간이 한달 반에 두 달 정도 길지 않은 채소류의 경우에는 무더운 여름이 지난 가을에 가격이 오르는 경향이 있는데 올 여름에는 폭염과 집중호우로 상황이 더 나빠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과일과 채소 등은 정부가 관리하는 비축, 계약 물량으로 수급을 조절하고 관세를 조정해 수입 물량을 조이고 푸는 방식으로 물가 조절에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제 못하는 국제유가… 유류세로 가격 조절물가정책과의 업무 중에는 ‘국제유가’도 있는데요. 산유국이 아닌 한국의 정부가 국제유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야 없을테고 국제유가에 따른 물가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역할이겠습니다. 기름값은 직접적인 휘발유, 경유 가격은 물론이고 물가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이런 가운데 정부의 물가 관리 노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유류세 인하 조치인데요. 2021년 11월에 시작된 유류세 인하는 올 연말까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심각한 세수 감소 속에 8월 말 종료 예정이던 인하 조치를 10월 말로 2개월 연장한데 이어 연말까지 추가로 연장한 것입니다.유류세를 이렇게 찔끔찔끔 연장하는 모양새가 썩 폼이 나지 않는다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가 좀 내려오면 유류세 인하 조치를 마무리 짓고 세수 확보에 나서려던 기재부의 계획을 여전히 불안정한 국제유가가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인데요. 세수도 중요하지만 물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정부의 스탠스임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물가는 연쇄 작용… 도미노 막으며 에너지·농산물 가격 안정 기다려야”해외에서는 물가 관리를 정부보다는 중앙은행의 역할로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앙은행 고유의 역할이 물가안정일뿐더러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민간의 가격을 정부가 관리 혹은 통제할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한데요.반면 한국에서는 정부가 물가 관리에 큰 힘을 쏟는 가운데 최근 추경호 부총리를 놓고 세종시 관가에서 ‘물가과 사무관’ 같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기재부 출신이면서 재선 국회의원인 추 부총리는 직원들을 적절하게 믿고 맡기면서 까다로운 국회 대응은 본인이 직접 나서는 리더십으로 내부 평가가 좋은 편인데요. 그럼에도 물가에 있어서만큼은 구체적인 품목까지 언급할 정도로 관심이 상당하다는 얘기겠습니다.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이어 국무총리와 부총리까지 직접 나서는 물가 방어전이 이어지면 민간에서는 자연스레 ‘가격 통제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정부의 ‘자제’ 당부에도 불구하고 최근 주요 업체가 맥주 가격 인상에 나서고 외식업계에서도 잇따라 가격을 올리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습니다.‘두더지잡기’나 ‘가격 통제’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실제 가격 인상을 다 막아내지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당분간 현장 물가 행보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데요. 기재부에서는 이같은 노력의 가장 큰 이유로 “물가는 상호 연쇄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꼽고 있습니다.원자재와 인건비, 에너지 등 여러 영역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특정 생산자가 가격을 올리면 이를 감안 혹은 반영해서 다른 생산자도 가격 인상에 나서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 있고 그 결과로 물가 레벨이 크게 올라갈 우려가 있다는 것인데요.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서로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상황을 최대한 유지하다보면 에너지나 농산물처럼 싸이클이 있는 품목의 가격이 다소 진정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겠습니다.이런 노력 덕택인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코로나19 사태 진정 이후 한국의 물가상승률(2021년 12월 대비 올 9월 물가지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4번째로 낮은 증가폭을 보이며 선방했다고 평가했는데요.그렇다고 하더라도 최근 국내에서도 예년보다 훨씬 높은 물가상승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내년 4월에 있을 총선까지 감안하면 정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민생과 물가가 중요한 화두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부의 물가 방어전은 앞으로 어떤 양상을 보이게 될까요.올해 남은 기간에도 정부 앞에는 전기와 가스 요금 추가 인상 등의 굵직한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올 3분기(7∼9월) 수출과 민간소비가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한국 경제가 0.6% 성장했다. 정부는 올해 연간 1.4% 성장이 가능하다고 내다봤지만 증권가에선 대외적인 불확실성과 고금리 부담으로 올해 성장률이 1.2%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분기(4∼6월)보다 0.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2분기에 0.9% 줄었던 수출이 3분기에는 3.5%로 늘어나면서 3개 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이끌었다. 전 분기에 0.1% 감소했던 민간소비도 0.3% 증가했다. 한은과 정부가 잡고 있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4%다. 앞서 한은은 올해 3분기와 4분기(10∼12월)에 성장률이 각각 0.7%는 돼야 1.4% 성장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4분기에 0.7% 성장하면 연간 1.4%의 성장률이 나온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불확실한 요인이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재 정부 전망 궤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가 예상했던 ‘상저하고’(상반기 경기 둔화, 하반기 반등) 흐름에 부합하는 수준”이라며 “최근 반도체 가격 반등과 수출 개선 등을 감안하면 1.4% 성장률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1.2%의 성장률 전망치도 내놓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이날 보고서에서 “3분기 GDP 성장률이 시장 예상치(전 분기 대비 0.5%)를 소폭 상회했지만 강한 경기 반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올해 연간 성장률 1.2% 전망과 L자형 경기 전망 기조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신한투자증권도 올해 성장률을 1.2%로 내다봤고, 삼성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은 1.3%로 예상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출산율이 오르지 않으면 2040년에는 14세 이하 유소년 인구가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국회예산정책처의 ‘최근 저출산 추이를 반영한 총인구 추계’ 보고서는 통계청이 저점으로 전망한 2024년 합계출산율(0.7명)이 계속 유지될 경우 0∼14세 유소년 인구는 2040년 318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2020년(632만 명)보다 49.6% 급감한 규모다. 특히 2040년 0∼6세 영유아 인구도 2020년(263만 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30만 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의 전체 인구는 2040년 4916만 명으로 2020년(5184만 명)보다 268만 명(5.17%) 줄어들 것으로 추계됐다. 예산정책처는 저출산 고착화로 통계청이 예상한 합계출산율 저점의 시기가 매번 늦춰진 점을 감안해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 상황을 가정하고 이번 분석에 나섰다. 통계청은 2016년 추계 당시 합계출산율이 그해 1.18명까지 내려간 뒤 이듬해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출산율은 오르지 못했다. 또 2019년에는 2021년 0.86명으로 바닥을 찍고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후에도 출산율 하락세는 계속되고 있다. 보고서는 최근의 사회경제적 여건을 고려하면 한국의 저출산 흐름이 단기간 내에 반등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혼인 건수가 2011년 32만9000건에서 2022년 19만2000건으로 41% 감소한 가운데 평균 초산 연령도 2010년 30.1세에서 지난해 33.0세로 높아지면서 기대자녀 수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이소연 예정처 경제분석관은 “저출산 현상이 지속될 경우 여러 방면에 미치는 영향이 기존의 통계청 전망보다 더 커질 수 있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통해 출산율 하락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영향을 검토하고 정책 대응에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