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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모마)에 있던 세계적 미술작품 200여 점이 대서양을 건너 11일 프랑스 파리의 미술관에 걸렸다. 내년 3월 5일까지 ‘모마 인 파리’란 이름으로 모마의 위대한 작품들을 전시하게 된 미술관은 파리 서쪽 불로뉴 숲속에 있는 ‘루이뷔통재단 미술관’.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그룹 회장이 미술관 대표를 겸하고 있다. 아르노 회장은 2001년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와 처음 만나 미술관 건립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루이뷔통재단을 만들고 파리시와 공공부지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루이뷔통재단은 예술과 디자인을 장려하기 위해 2007년 1월 1일부터 1만여 m²의 땅을 55년간 장기 임차한다.’ 게리가 배 모양으로 설계한 루이뷔통재단 미술관은 그렇게 2014년 10월 문을 열었고 설립 3년 만에 관람객 350만 명이 다녀간 랜드마크 미술관이 됐다. 파리 본사의 집무실에 피아노를 두고 종종 피아니스트 수준의 연주 실력을 보이는 아르노 회장은 이 미술관 개관 때엔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을 초청해 기념 공연을 했다. 자신이 아끼는 미국 추상화가 엘즈워스 켈리의 캔버스 작품도 이때 함께 전시했다. 이후 이 미술관에서는 피아노 독주회부터 실내 관현악까지 매월 품격 있는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엔 프랑스 현대미술가 다니엘 뷔랑이 이 유리 미술관 건물에 한시적으로 형형색색 필터를 입혔다. 같은 시기 러시아 미술 컬렉터 세르게이 슈킨의 컬렉션을 전시할 때엔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이 다 모였다”는 세간의 평가도 나왔다. 이번 모마 인 파리에 나온 미술품도 쟁쟁하다. 후기 인상파의 막을 연 폴 세잔(1839∼1906)의 ‘목욕하는 사람’, 2012년 루이뷔통과 협업 제품을 내놓은 후 더욱 핫해진 구사마 야요이(88)의 ‘축적1’, 브루스 나우먼(76)의 비디오 아트 ‘인간/필요/욕구’, 마흔 개의 스피커 사이를 거닐면서 여러 화음을 느낄 수 있는 재닛 카디프(60)의 설치미술 ‘40성부 모테트’…. 록펠러 가문 여성 등 세 명의 컬렉터가 단 84점의 작품을 소장한 가운데 1929년 시작한 모마는 이제 15만 점을 소장한 ‘끝내주게 잘나가는’ 미술관으로 변신해 계속 공간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번에 작품 200점이 파리로 잠시 날아간 것도 그 때문이다. 두 미술관 측은 “예술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려 하는 우리는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협업하게 됐다”고 했다. 미술과 럭셔리의 컬래버레이션은 서로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날실과 씨실처럼 나눠 짜는 작업이다. 모마 인 파리를 통해 루이뷔통은 모마의 예술적 후광을 고스란히 얻었다. 모마도 유럽에서 아카이브 역사자료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프랭크 게리 캐나다 출신 미국 건축가(88).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1989년). 티타늄과 유리를 사용한 미래형 곡선 디자인이 특징. 주요 작품은 프랑스 파리 루이뷔통재단 미술관을 비롯해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미국 로스앤젤레스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등.}

초등학생 딸의 가을운동회에 갔다. 하늘은 파랗고 높았다. 공굴리기, 줄다리기도 있지만 운동회의 백미는 이어달리기다. 전교생이 둘러앉아 목청껏 응원을 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극적인 역전이 일어났다. 최선을 다한 계주 선수들, 어쩌면 더 최선을 다해 응원한 아이들….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진심의 응원’을 할까. 어른들의 인생 레이스에서 이긴다는 것은 뭘까, 이어 달리는 것의 의미는…. 집으로 오는 길에 딸이 자신의 ‘18번’ 동요인 ‘난 네가 좋아’를 흥얼거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너와 나의 마음속에 핀 우정이란 영원한 약속.” 왜 그때 피에르 베르제의 얼굴이 떠올랐을까. 운동회 무렵 있었던 그의 사망을 깊게 애도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베르제는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인 이브 생로랑(1936∼2008)의 동성 연인이자 50년 지기였다. 나는 9년 전 생로랑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떴을 때보다 이번 베르제의 소식에 솔직히 더 슬펐다. 베르제는 1958년 생로랑이 크리스티앙 디오르에서 첫 쇼를 할 때 그를 만났다. 서적 판매상이던 베르제는 그 쇼에 왔다가 생로랑과 마음이 통했다. 뛰어난 디자이너였지만 비즈니스엔 ‘젬병’인 생로랑에게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어 주고 평생 사업을 키워준 게 베르제였다. 친구가 술과 마약에 허우적댈 때마다 붙잡아준 것도, 생로랑 사후 둘이 수집했던 미술품들을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아 약 7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한 것도 그였다. 그들은 모로코 마라케시의 마조렐 정원도 사서 함께 가꿨다. 지난해 그곳에 가봤다. 파란 건물과 노란 화분, 빨간색 열대 꽃…. 생로랑의 옷이, 그들의 우정이 환생한 듯했다. 베르제는 오랫동안 파리 마르소가에 ‘이브 생로랑 박물관’ 건립을 준비했다. 친구가 30여 년간 디자인을 했던 그 장소에 이달 3일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앞서 세상을 뜬 베르제는 끝내 보지 못했지만 기나긴 행렬이 지금 그 박물관 앞에 늘어서고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폭이 넓은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찰스 왕세자는 갓 태어난 아기를 새하얀 포대기에 싸서 안고 있다. ‘윌리엄 왕자 전하 1982년 6월 21일’이라는 영어 문구가 쓰인 이 사진은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우표에 실린 것이다. 그러니까 북한이 영국 왕세손의 탄생을 기념해 우표를 발행했던 것이다. 세계적 예술서적 전문출판사인 영국 ‘파이돈’이 이달 초 펴낸 북한 디자인 책, ‘메이드 인 북한(Made in North Korea)’에 이 우표가 나온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고, 그곳에도 디자인이 있었다. 》 연간 2000여 명의 외국인을 북한으로 관광 보내는 중국 베이징의 ‘고려여행사’ 대표이자, 북한 다큐멘터리 영화 세 편을 찍은 영국인 니컬러스 보너 씨가 책의 저자다. 우표, 포장지, 엽서, 담배와 성냥, 맥주 상표, 기차표 등 저자가 20여 년에 걸쳐 수집한 북한의 생활용품 사진 500여 장이 240쪽 분량에 광범위하게 담겨 있다. 파이돈 출판사 측은 “지구상에서 가장 베일에 가려 있는 수수께끼 같은 북한의 디자인 자료를 묶어낸 데 의미가 있는 책”이라며 “북한 제품의 그래픽 디자인이 예상외로 아름답고 단순함 속에서 묘한 매력을 풍긴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국내에는 아직 번역, 출판되지 않았으며 아마존 등 해외 사이트를 통해 구할 수 있다. ‘그곳의 디자인’은 어떨까. 저자는 영어로 된 이 책에서 북한 디자인의 특징을 ‘내 나라 제일로 좋아’, ‘일심단결’, ‘머리단장을 사회주의 양식에 맞게 하자’의 한글 부제를 달아 설명했다. 플라스틱 장난감 권총에는 ‘일당백’이라고 쓰여 있는데, 저자는 이 표현이 ‘한 명이 백 명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권총 박스에는 북한 고슴도치가 미국(US) 모자를 쓴 늑대를 총 쏘아 쓰러뜨리는 만화가 그려져 있다. 한 제품 포장지에는 고려호텔과 만수대 예술극장 등 북한의 유명 건축물들이 프린트돼 있고, ‘은하수’ 사탕 상자에는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해변을 달리는 기차 그림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북한의 산업·제품 디자인은 주로 평양미술대 졸업생들이 예술창작소에 모여서 만들어낸다. 백두산과 금강산, 천리마 등을 모티브로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노골적으로 사실에 충실한 시각 디자인도 눈에 띈다. 돼지고기 통조림엔 돼지, 닭고기 통조림엔 닭, 쇠고기 통조림엔 소가 그려져 있다. 색상 배합은 환한 분홍과 빨강을 기반으로 초록, 파랑, 노랑을 곁들여 쓴 게 많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는 “책에 실린 북한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단조롭고 소박하며 사회주의적 감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박승호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는 이 책에 소개된 북한의 디자인을 ‘비무장지대(DMZ) 디자인’으로 해석했다. 접근이 통제된 생태공간에서 자생한 들국화와 같은 디자인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북한이 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조선의 전통적 색감과 형태미, 혁명적 형식미를 느리게 발전시킨 것 같다”며 “인쇄기술은 낙후됐으며, 컴퓨터 없이 손으로 그린 거친 사실주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Dear. 테리 보더 씨, 우린 지난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사비나미술관에서 만났죠. 그날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좀 더 환해진 것 같아요.사실 전 당신이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테리 보더?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죠.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라는 전시(12월 30일까지)? 먹고 기도하고사랑하라던 영화의 아류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당신의 흥미진진한 작품사진들이 펼쳐지는 게 아니겠어요?식빵, 계란, 달걀, 바나나, 손톱깎이…. 일상의 소재들에 철사로 만든 팔 다리가 달렸는데, 사람처럼 악수도 하고 축구공도 차고. 당신이 궁금해졌어요.》 당신을 만난 첫인상은 평범한 미국 아저씨였죠. ‘시카고에 사는 52세 남성.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뒤 14년을 광고 사진가로 살았으나 오직 광고주님 뜻만 받들어야 하는 직장생활에 환멸을 느껴 굿바이. 그래도 인생에 보험은 필요하겠다 싶어 제빵사 자격증 취득. 2006년 슈퍼마켓 빵집에서 일할 때 레몬을 사 와 자신의 첫 구부리는 철사 아트 시작.’ 아, 인간적 친밀감이 확 밀려왔어요. 당신의 첫 작업이라는 ‘우편주문 신부’, 그것도 참 기발하더군요. “슈퍼마켓 레몬 선반을 지나는데, 진짜 레몬도 있고 레몬주스가 담긴 레몬 모양 통도 있었어요. 진짜 레몬은 가짜 레몬과 있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외로운 진짜 레몬이 마치 섹스 로봇을 사듯 가짜 레몬을 우편으로 주문해 받는 장면을 상상해봤어요.(웃음)” 일상 소재에 철사로 팔과 다리를 달아 사진을 찍는 당신의 ‘비주얼 스토리텔링’은 유머러스하고 따뜻해요. 제목은 또 어쩜 그렇게 낭만적인가요. “컵케이크 유산지가 바람에 휘날려 위로 뒤집히는 걸 보다가 영화 ‘7년 만의 외출’의 메릴린 먼로를 떠올렸어요”(작품명 ‘메릴린 컵케이크’), “두 개의 과자가 포옹하는 순간을 담았어요”(‘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 무엇보다 당신으로부터 사랑을 배워요. 토스터 안에서 건배(영어로 toast)하는 두 식빵, 다 타서 꺼지는 순간까지 서로에게 온기가 돼 주는 두 촛불의 모습에서 말이에요.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같은 사랑에 관한 소설들을 꺼내 읽어봤다니깐요. 당신의 말이 귓가에 맴돈답니다. “아내는 처음에 경악했어요. ‘남편이 회사를 관두더니 과일과 장난감 모형을 갖고 논다’고. 그런데 지금 참 행복해요. 제 스스로가 즐겁고 이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일상의 사물을 열 번 정도 관찰해 보세요. 전혀 다르게 보일 거예요.” 보더 씨, 저는 며칠 전 가을 연시를 샀습니다. 네 개씩 두 줄로 직사각형 접시에 담아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한 친구가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레고 같다.” 그때 생각했어요. 보더 씨를 흉내 내 ‘레고 감’이라고 제목을 달아보면 어떨까 하고. 앞으로 사물을 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할 것 같아요. 위트 있는 당신 덕분이에요. 고마워요!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크리스틴 나이젤은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의 향기를 만드는 에르메스 유일의 전속 조향사다. 최근 서울 강남구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응접실에서 만난 그는 짙은 감색의 원피스와 하이힐 차림이었다. 그의 머릿결은 건강하게 찰랑였고, 원피스는 실루엣이 넉넉하면서도 몸매를 돋보이게 했다. 어딘가 고급스러운 ‘에르메스’ 느낌. ―이번에 새로운 향수를 만드셨다고요, 나이젤 씨. “네. ‘에르메스 트윌리’라는 향수예요. ‘에르메스 코드’를 즐기는 젊은 여성들을 상상하면서 향을 만들었죠. 젊은 여성들의 쾌활함과 밝음, 그들의 위트 말이에요.” 영미 소설 속 대사 같은 대답. 젊은 여성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 향수는 병목 부분에 에르메스의 미니 실크 스카프인 트윌리를 두른 디자인이다. ―에르메스 코드라고요. “에르메스를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요즘 젊은 여성들은 스카프를 목에만 두르지 않아요. 가슴에도 머리에도 두르죠. 그런 점에서 한국 여성들은 갈수록 스타일이 대담해지는 것 같아요.” 그는 2014년 에르메스에 영입됐다. 당시 향수 업계의 빅 뉴스였다. 그의 이름은 ‘관능적 향수’의 대명사와 같았다. 스위스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스위스 제네바대에서 화학을 전공해 조향사가 된 그는 그동안 랑콤, 카르티에, 크리스티앙 디오르, 조르조 아르마니, 조말론 등 쟁쟁한 브랜드들의 향수 100여 개를 만들어 히트시켰다. ―에르메스는 다른 브랜드와 다릅니까. “네! 확실히 달라요. 시장 테스트를 하지 않고, 그저 장인을 믿고 맡겨요. 그리고 브랜드를 익힐 시간을 충분히 주고 언제 제품을 만들어 내라고 독촉하지 않아요.” 그렇게 에르메스를 익히는 2년의 시간을 보낸 뒤 지난해 두 개의 제품을 만들고 올해엔 ‘오 데 메르베유 블뢰’에 이어 트윌리를 조향했다. 보조 스태프는 있지만 향을 결정하고 원료를 배합하는 건 오로지 그 혼자 한다. ―럭셔리 업계에 조향사는 몇 명이나 됩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우주비행사 수보다 적다는 거예요.(웃음)” ―다시 트윌리 이야기인데, 그래서 어떤 젊은 향기를 만들었습니까. “핵심 원료는 생강, 튜버로즈, 샌들우드예요. 생강은 본래 소량으로 캔버스 역할을 하지만 전 생강 자체의 향에 집중했어요. 튜버로즈는 팜 파탈의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주고요. 샌들우드는 부드러우면서도 매력적인 동물적 느낌이라 많이 넣었어요. 조향사의 작업은 영감을 나누는 일이라 즐거워요.” ―어떻게 영감을 얻습니까. “제게 향수를 만드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같아요.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을 떠올려 보세요. 에르메스 스카프의 여러 색을 섞어 향기로 구현하면 향수가 되거든요.” 나이젤은 파리에 오면 꼭 커피 한잔 같이 하자며 다정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에게서는 향이 나지 않았다. 수시로 자신의 몸에 향수를 뿌려 테스트해야 하기 때문이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강원 원주 한솔오크밸리에 2013년 들어선 ‘뮤지엄 산(SAN)’은 구도(求道)의 미술관으로 통한다.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해 간결한 건물을 짓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하고, 빛과 공간의 예술가인 미국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있는 곳. SAN은 공간(Space), 아트(Art), 자연(Nature)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그저 느린 걸음으로 마음을 따라 산책하기에도 좋은 이곳에 ‘종이 조형전―종이가 형태가 될 때’가 지난달 22일 시작돼 다녀왔다. 종이 회사인 한솔제지가 모기업이라 국내 최초 종이박물관인 페이퍼갤러리(1997년 생긴 한솔종이박물관이 전신)도 갖추고 있는 뮤지엄 산은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의 다양한 종이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내년 3월 4일까지 특별기획전을 진행한다. 종이는 과연 디지털 기기에 밀려 철 지난 존재일까. 최용준 뮤지엄 산 학예실장은 “종이의 다양한 소통 방법을 알리고 싶었는데, 정작 국내에 종이 작가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종이는 접거나 오리는 작업 형태가 보존, 판매로 이어지기에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어떻게 우리의 아름다운 종이로 형태를 만들어 냈을까. 전시는 공간, 소통, 사유와 물성의 세 가지 주제로 나뉘어 기획됐다. 26명의 작가들이 한지, 양지, 골판지, 신문지 등 다양한 종이를 사용했다. 김호득의 ‘겹과 사이’는 가로 2m, 세로와 폭이 1m인 3개의 구조물에 한지 100장을 반으로 접어 촘촘히 걸었다. 마주하는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면 한지에 시간대별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기도 한다. 천천히 음미하면 종이와 나, 작가와 종이, 그리고 작가와 내가 자연과 종이 속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최병소의 ‘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신문지를 소재로 삼았다. 인간 삶을 압축하고 있는 신문지를 까만 볼펜으로 색칠해 그 내용을 지우고 다시 연필로 덧칠했다. 작가는 ‘긋기와 지우기’를 반복함으로써 작업의 지속성과 무게를 시각화했다. 과연 이 종이는 과거에 신문지였나. 작가가 지운 우리의 일상은 어떤 의미였나. 석탄 또는 화석을 연상시키는 이 거친 까만 종이는 관람객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박혜수의 ‘굿바이 투 러브Ⅰ―환상의 빛’은 처음엔 거대한 스케일에 놀랐고, 다음엔 그 의미에 공감했다. 벽에 걸린 대형 금색 종이는 종이학 1만 마리를 접었다 편 정사각형 종이 1만 장을 이어 붙인 것이다. 간절한 사랑을 담았던 종이학은 다시 종이로 해체됐을 때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접었던 자국이 뚜렷한 것처럼 사랑의 흔적은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설령 사라졌다 해도 사랑했던 기억은 이 금박지처럼 언젠가는 찬란하게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단풍이 곱게 드는 이 계절, 종이를 그리고 사랑을 천천히 생각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뮤지엄 산의 이 전시를 추천한다. 033-730-9000원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간판이 없었다. 그 어떤 표지도 없었다. 꽤 큰 규모의 통유리 건물인데도 말이다. 안내를 맡은 샤넬 본사 홍보담당 프랑스 직원은 몸을 기울여 소곤대듯 말했다. “이곳의 주소를 노출시키면 안 돼요. 우리는 샤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불과 몇 달 전부터 일부 프레스에만 이곳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드넓은 정원을 거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굉장히 모던한 설계라 건축가가 누군지 물어봤으나 “이 건물에 대한 묘사는 하실 수 없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우리를 안내할 또 다른 프랑스 여성이 나타났다. 짧은 커트에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를 닮은 그는 검은색 진 바지와 검은색 샤넬 가죽 상의 차림이었다. “환영합니다.” 나는 프랑스 파리의 외곽에 있었다. 그날은 19일(현지 시간)이었다. 샤넬이 ‘문화유산 보관소’라고 일컫는 곳…. 이 정도는 밝혀도 될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서자 여러 방이 나왔다. 샤넬의 정책상 직원 이름을 밝힐 수 없으므로 그녀를 ‘비노슈’로 부르기로 한다. 패션 역사를 전공했다는 비노슈는 전자키로 방문을 열고 새하얀 장갑을 낀 뒤 수납장의 버튼을 눌렀다. 닫혀 있던 양 문이 스르르 열렸다.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샤넬 드레스들…. 샤넬의 트레이드마크인 순백의 동백꽃 장식이 가득한 드레스(2005년 가을겨울 오트쿠튀르)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쓰다듬을 뻔했다. 1921년 세상에 처음 나왔던 샤넬 N°5 향수, 럭셔리 경매에서 확보했다는 1930년대 샤넬 파우더, 6000여 점의 시대별 샤넬 액세서리, 2009년 봄여름 오트쿠튀르 때 일본 아티스트 가모 가쓰야가 디자인했던 흰색 종이로 만든 꽃 머리 장식…. “당신은 샤넬의 역사 속으로 다이빙한 거라니까요.” 방 내부 온도 20도, 습도 50∼55%, 조도(照度) 80럭스 이하…. 샤넬의 역사는 과학적 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이 비밀의 건물에 가기 전, 샤넬의 자수와 깃털 장식을 만드는 공방 두 곳을 방문했다.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이 만들고 카를 라거펠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84)가 1983년부터 합류해 이어가고 있는 샤넬 창의성의 원천! 흥미로운 점은 디지털 세상이 될수록 ‘샤넬 월드’에서는 장인의 ‘한 땀, 한 땀’이 늘어간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 자수가 대중화됐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시적(詩的)인 ‘손맛’을 만들기로 했어요. 조개와 나무로 자수를 하고, 3차원(3D) 프린팅도 도입했어요.”(위베르 바레르 ‘르사주’ 공방 디렉터) 이렇게 제작된 샤넬 제품들은 ‘컬처 샤넬’(2014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마드모아젤 프리베 서울’(올해 6, 7월 서울 디뮤지엄) 등의 아카이브 전시를 통해 ‘서울 나들이’를 했다. 안 이달고 프랑스 파리 시장은 올해 3월 이렇게 발표했다. “파리 의상 장식 박물관인 팔레 갈리에라에 프랑스 최초의 패션 상설 전시실이 2019년 개관합니다. 샤넬이 570만 유로(약 77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전시실의 명칭은 ‘가브리엘 샤넬 룸’이 될 것입니다. 샤넬 덕분에 파리가 패션의 고향이란 걸 증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파리=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샤넬 N°5 향수 ‘여성의 향기’를 만들어 달라는 가브리엘 샤넬의 의뢰로 유명 화학자 에르네스트 보가 1921년 탄생시켰다. 합성 향료인 알데히드와 장미, 재스민 에센스 등을 혼합했다. 이름에 대해서는 샤넬이 향수 샘플 중 다섯 번째를 골랐다는 설과 좋아한 숫자라는 설 등이 분분하다. 용기는 ‘20세기의 빛나는 제품디자인’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르사주 1958년 설립된 자수 공방으로 마들렌 비오네 등 최고 디자이너들의 옷 장식을 만들어 왔다. 노하우를 계승하기 위해 1992년엔 자수학교도 세웠다. 2002년 샤넬이 인수했다. 7만5000개의 샘플을 보유한 세계 최대 쿠튀르(고급 맞춤복) 장식 공방이다. ※콜라주(collage)는 본래 여러 이질적 요소를 함께 붙이는 미술 기법을 가리킵니다. 이 지면은 새로운 경향으로 떠오르고 있는 예술과 산업의 만남을 주제로 다룹니다.}

달리기 대회에 나가겠다고 하자, 친정 엄마가 손주들에게 말했다. “너희 엄마는 참 별 걸 다 해.” 아이들은 우려 반, 격려 반의 표정으로 “엄마, 꼴등 하지 마”라고 했다. 올봄 프랑스 파리에서 ‘런 마이 시티(Run my city)’란 달리기 대회(9km)에 출전했다. 한동안 달리지 않았고, 여러 다른 할 일도 많아 실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래도 뛰어야 했다. 내 심장이 간절히 원하고 있었기에. 몇 년 전 북한산 숲길 10km를 1시간 1분에 뛰었던 적이 있어 러닝머신 달리기가 아닌, 바깥 달리기의 묘미를 얼핏 깨달았던 터였다. 기록에 대한 욕심도 났다. 2분만 단축하면 59분이잖아? 달리기는 재밌다. 내가 좋아하고, 날 종종 구하기도 하는 반전이란 게 일어났다. 인생처럼. 그 반전은 달리기 코스가 ‘한 편의 예술’이었다는 것이다. 달리기가 시작되자 진행요원들은 러너들을 파리 도심의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안으로 안내했다. 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 ‘발레리나’에 나오는 바로 그곳! 평소엔 입장료 내고 줄 서서 들어가는 곳을 달리게 되다니…. 러너들은 재밌어 하며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계속되는 달리기 코스인 한 구립 여성스포츠센터 안에는 ‘헨젤과 그레텔’의 쿠키집 같은 알록달록한 암벽 체험시설이 있었다. 어느 유치원에서는 악단의 공연도 열렸다. 이방인은 물론이고 파리지앵들조차 “내가 사는 도시에 이런 게 있었나”라는 반응이었다. 다들 달리기에 따른 풍광과 공연 선물을 즐겼다. 그런데 나는 후반부가 되니 그 기록이란 게 의식됐다. ‘1시간 내에 달려야 해.’ 막 달렸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반전. 평생을 흠모해온 여류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미디어도서관이 마지막 코스였다. 그때 깨달았다. 목숨 걸고 빨리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렇게 둘러볼 게 많은데…. 15km 코스 참가자들은 몽마르트르도 달렸다. 결국 9km 달리기 기록은 1시간 9분 54초. 목표는 못 이뤘지만 상관없다. 신기록을 꿈꾸며 샀던 러닝화는 앞으로 두루두루 느끼며 친하게 지내는 걸로! 올가을에도 크고 작은 달리기 대회들이 있다. 서울 북촌의 한옥들을 방문할 수 있는 달리기 코스는 어떨까. 신라의 달밤 달리기는, 춘천의 마임극장 달리기는 또 어떨까.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일본의 그림 작가이자 수필가인 사노 요코(1938∼2010)와 최정호 전 연세대 교수(84)는 1967년 독일 유학시절 처음 만났다. 각각 기혼이던 둘은 이후 40여 년간 편지를 주고받았다. 최근 최 전 교수가 펴낸 ‘편지’(열화당)란 책에서 사노의 손편지(사진)를 볼 수 있었다. ‘웬일인지 당신이 정말로 가까운 장래에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난 유명한 사람이 싫기 때문에 낭패로군요.’(1967년·사노 29세 때) ‘도쿄에 도착하시면 절대로, 반드시 전화를 걸어주시기를.’(1978년·40세 때) ‘친애하는 미스터 최, 임플란트를 하고 배용준 씨처럼 이를 내보이며 웃음을 이어가면서 행복한 일생이 되시기를. 오래 살아주세요.’(2008년·70세 때) 그녀의 마음이 짐작됐다. 존경이 애정으로 발전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고인이 된 쉰다섯 분의 편지’를 실은 책이라 최 전 교수가 어떤 답신을 했을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다른 쉰네 명은 몰라도 그가 사노에게 보낸 편지 한 통쯤은 실었더라면. 그리고 ‘미스터 최’의 편지가 좀 더 애틋했기를…. 그것이 여자의 마음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닷새 동안 13개국 167개 갤러리 참여, 관람객 5만4000명, 작품 거래액 약 270억 원.’ 20∼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미술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2017’의 성적표다. 지난해 235억 원에서 늘어난 역대 최고 매출 성과다. 올해로 16회인 이번 페어는 전시 가벽 높이를 기존 3m에서 3.6m로 높여 다양한 전시 기획이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10개 국내외 갤러리를 엄선한 ‘하이라이트’ 섹션을 신설해 주목할 작가들의 신작과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전시했다. 전시 기간에 방문한 ‘하이라이트’ 섹션의 일본 스탠딩파인 갤러리 부스에서는 스기야마 겐지 작가의 입체설치 작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상자 안에 사람과 가구 등 미니어처 모형을 넣고 거울로 반사판 효과를 낸 작품이다.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씨도 자신의 숍 디자인에 활용하겠다며 관심을 보이고 갔다는 후문이다. 초이앤라거갤러리 부스에서는 영국의 30대 작가 매슈 스톤의 ‘몸 안으로 돌아가기’ 작품이 관심을 모았다. 유리판 위에 그린 그림을 사진 찍은 뒤 다른 디지털 이미지들과 합성해 캔버스에 찍어낸 작업이다. 가수 나얼(유나얼)의 작품도 일본 KAZE 갤러리를 통해 선보였다. ‘유년’이란 제목의 작품은 어린이 사진 등을 디지털 콜라주 작업한 것이다. 프랑스 마리아룬드 갤러리는 숯과 한지를 쇠 브러시로 긁어 작업하는 이진우의 작품을 내세웠다. 이번 페어에서는 다양한 기획전과 강의도 마련됐다. 미술평론가 윤진섭 씨는 ‘한국행위예술 50주년 기념 자료전’을 기획했다. 빨간색 ‘짝퉁’ 샤넬 백을 든 여자 분장 차림으로 전시장을 도는 퍼포먼스도 한 그는 “짝퉁, 성형, 물질만능주의를 꼬집고 싶었다”고 말했다. 올해 KIAF는 벨기에 보고시앙재단의 장 보고시앙 회장, 카타르 도하 현대미술관장 압델라 카룸 등 국제 미술시장의 ‘큰손’이 대거 방문해 화제를 모았다. 또 프랑스 갤러리 페로탱, 홍콩 10챈서리래인 등 유명 갤러리들도 처음 참가했다. 이화익 한국화랑협회장은 “이번에 전시 동선과 강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며 “해외와 국내 컬렉터 간 네트워킹을 보완해 최고 수준의 국제아트페어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응노 선생님은 붓을 든 저희들의 손을 잡고 ‘콤사(Comme ¤a·이렇게)’라면서 친절하게 그림을 가르쳐줬어요. 고국 걱정을 많이 하더니 이런 그림도 그리셨군요.” 20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 5층 전시실. 백발의 프랑스인 제자들이 고암 이응노 화백(1904∼1989·사진)의 1978년 작품 ‘구성’ 앞에 섰다. 그림 속 빨강 물결 속에는 ‘유신 타도’ 같은 글귀들이 써 있다. 이응노는 1958년 프랑스로 이주 후 1964년 파리 세르뉘시 미술관에 동양미술학교를 세워 3000여 명의 후학을 길러냈다. 동양화와 서양화, 전통과 현대의 결합을 시도해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기도 한 그는 간첩단 조작사건인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프랑스에서 망명객처럼 살다가 생을 마쳤다. 요즘 말로 치면 원조 ‘블랙리스트 작가’다. 그런 이응노를 프랑스 미술계가 다시 보기 시작했다. 올해 6월부터 11월 19일까지 세르뉘시 미술관에서 ‘군상(群像)의 남자, 이응노’ 전시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세계적 권위의 퐁피두센터가 20일 이 화백의 유족들로부터 17점의 작품을 기증받아 ‘이응노’ 전시에 나섰다. 퐁피두센터가 직접 기획한 이례적인 전시다. 20일 오후 6시 열린 전시 개막식에는 이응노의 부인 박인경 화백(91)과 아들 이융세 화백(61)을 비롯해 베르나르 블리스텐 퐁피두센터 관장, 에리크 르페브르 세르뉘시 미술관장, 프랑크 고트로 디종 현대미술관 설립자 등 프랑스 미술계의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블리스텐 퐁피두센터 관장은 “왜 퐁피두가 이응노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한국 미술, 특히 이응노는 동양과 서양 문화를 잇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며 “이응노는 모더니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주기 때문에 미술사적 의미가 재평가돼야 한다”고 답했다. 프랑스 관람객들은 “동양화 같은데도 프랑스 추상화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직접적 계기는 2년 전 디종 현대미술관이 연 이응노 전시였다. 블리스텐 관장은 이응노의 작품을 이때 처음 보고 푹 빠져들었다. 이후 파리 근교에 사는 이응노 유족을 찾아가 직접 전시할 작품을 추렸다. 박 화백은 “아무나 기증한다고 받아주지 않는 퐁피두센터가 기증을 받아줘 꿈을 꾸듯 기뻤다”고 말했다. 11월 27일까지 단독 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1950년대 수묵 산수화, 1960년대 한지 콜라주, 1970년대 문자 추상, 1980년대 5·18민주화운동의 영향을 받은 군상 등 이응노의 작품들이 연대기로 펼쳐진다. 특히 한지에 먹으로 수천 명까지 그린 군상 시리즈는 독재 권력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다. 이 전시가 끝나면 작품들은 퐁피두센터의 다른 작품들과 섞여 걸리게 된다. 이 전시엔 숨은 공신도 있다.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대전의 이응노미술관이다. 우선 이응노 관련 자료를 영어와 프랑스어로 만들어 국제전시를 가능케 하는 기초자료를 구축했다. 또 여러 전시를 통해 이응노를 독일의 한스 아르퉁(1904∼1989)과 중국의 자오우지(1920∼2013) 등 앵포르멜(제2차 세계대전 후 표현주의적 추상예술) 작가 군으로 편입시켰다. 이응노미술관의 이지호 관장은 “한국의 작가들이 세계적 지명도를 갖추려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미술관 전시 경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세르뉘시 미술관은 21일부터 유족인 박인경 이융세 화백의 작품도 전시하고 있다. 박 화백의 풍경 수묵화, 이 화백의 한지 추상화에 이응노의 화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응노가 파리에서 찬란하게 부활하고 있다.파리=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머릿속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이 12월 3일까지 여는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공동체 아카이브 전시’를 보고나서다. 우리 시대 미술의 역할 중 하나, 즉 사람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전시 작가 21명, 연구자 아카이브 8명, 퍼포먼스와 워크숍 10단체. 꽤 어려운 현대 미술인가 보다 생각하며 14일 오프닝 때 전시장에 들어섰다.》 1층 입구에는 이응노(1904∼1989)의 ‘군무’와 민중미술가 오윤(1946∼1986)의 춤추는 사람들 그림이 있었다. ‘몸으로 기억되는 공동체’다. 한국 전통의 공동체 모델인 두레에 대한 기록들이 펼쳐지고, 민요학자 이소라가 채집한 우리 민요의 악보와 가락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전시는 공동체에 관한 아카이브(문서 기록) 전시였다. 조주현 일민미술관 학예실장의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의 리토르넬로(후렴구) 개념을 중심으로 공동체 아카이브를 공감각적으로 구현해 봤어요. 국가기록원과 박물관 등 권위와 권력이 ‘위로부터 만들어 내는 역사’가 아니라 민중과 소수자들이 내는 목소리와 기억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역사 쓰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리토르넬로는 17, 18세기 교향곡에서 주로 사용된 악곡의 형식으로 후렴구를 특징으로 한다. 농민들이 다같이 부르는 노래의 후렴구, 예를 들어 ‘쾌지나 칭칭 나네’는 노동의 고됨을 잊게 한다. 민중이 일상에서 만들어 내는 반복성의 화음이다. 그런 점에서 이인규 작가(35)의 ‘안녕, 둔촌 주공아파트’ 프로젝트는 사라지는 마을 공동체를 향한 잔잔한 화음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 살아온, 내년 재건축을 앞둔 둔촌 주공아파트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 단행본으로 펴내고 페이스북으로 공유한다. 3단지의 명물, 기린 미끄럼틀이 철거되는 과정도 영상으로 담았다. 주민들의 집들을 방문해 공통의 질문들을 던지고 그 답들을 책으로 묶기도 했다. ‘둔촌 주공아파트에 어떤 기억이 있나요?’ ‘이 집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미디어아티스트 오재우가 가나아트센터의 지원을 받아 2011년 서울역 앞에서 진행한 국민체조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시간과 장소를 정해 주어진 행동을 하고 흩어지는 것) 영상도 흐른다. 그는 말했다. “1977년 모든 사람에게 같은 움직임을 주입한 이 체조야말로 우리의 몸에 공통된 기억과 경험 아닐까요.” ‘민중 엔터테이너’인 인디 음악가 ‘한받’이 작곡하고 단원들 각자가 작사한 ‘불만 합창단’의 공연도 주목을 끌었다. 일상과 사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 누구나 참여 가능한 합창단이다. 남녀노소가 섞여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으로 부르는 노래가 왜 그토록 카타르시스를 주는지. 이들은 일민미술관을 빠져나와 청계천로 행진도 했다. ‘왜 가게 종업원은 친절해야 하는지/왜 컴플레인 거는 건 손님만 가능한지/우리 사이 가로막는 갑질의 벽들을/우리 노래 부르면서 부숴 버리자’(노래 ‘불만종합선물세트’ 중에서) 기계적 결속이 강조됐던 농경 공동체, 토지에서 풀려나 도시로 온 개인이 만든 근대의 공동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21세기 지역 사회와 취미 공동체…. 공동체는 우리에게 뭘까. 빛바랜 오랜 기록들을 더듬으며 생각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들게 하는 학구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전시다. 02-2020-2050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이며 행위예술가. 성과 폭력을 향한 거침없는 비틀기로 ‘문제적 작가’ ‘악당’으로 통하는 세계 현대 미술의 흥행 보증수표 폴 매카시(72·사진). 그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10월 29일까지 진행되는 ‘컷 업, 실리콘, 여자 우상, 백설 공주’란 제목의 개인전으로 한국에 왔다. 이 갤러리가 열었던 ‘아홉 난쟁이들’ 이후 5년 만이다. 14일 국제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미국 유타주 출신으로 샌프란시스코 아트인스티튜트,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공부한 그는 1970년대부터 퍼포먼스와 영상작업을 통해 미국식 상업주의를 꼬집었다. 풍요 속에 감춰진 퇴폐와 금기, 폭력과 욕망 등을 다루며 세계적 거장이 됐다. 특히 그가 매달려온 소재 중 하나는 1937년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번에 그가 표현한 백설 공주는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는 순진무구한 공주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갤러리 바닥에 내팽개쳐진 백설 공주의 커다란 머리 조각상엔 실리콘이 용암처럼 흘러내려 있다. 목에 파이프를 박고 있는 공주는 그런데도 한껏 미소를 짓고 있다. 혹자들은 그 미소를 ‘성적 환희에 도달한 욕망의 미소’라고 본다. 이 조각상 옆쪽 벽면에는 프랑스 화가 프랑시스 피카비아(1879∼1953)의 ‘여인과 우상’이란 그림이 걸려 있어 야릇한 조화를 이뤄낸다. 가터벨트와 하이힐 차림의 여성이 이교도 우상을 안고 있는 뒷모습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나체를 본떠 만든 모형을 3차원 스캔해 고밀도 우레탄 레진으로 제작한 설치작품 ‘컷 업(Cut Up)’도 선보였다. 자신의 팔 다리 성기 등 조각상을 기형적으로 조립했다. “나이가 들면서 쇠약해진다. 1970년대 행위예술을 할 때부터 내 몸은 중요한 작업의 부분이었지만 요즘엔 좀 더 죽음을 생각하게 돼 이렇게 만들게 됐다.” 그에게 “신문 사진 촬영을 위해 작품 옆에 서 달라”고 부탁하자 예상 밖으로 “싫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유를 묻자 그는 말했다. “난 내 작품과 비교되고 싶지 않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샘터 사옥이 새 주인을 찾았다. 샘터사는 14일 “샘터 사옥을 매각하고 22일 혜화동 인근 건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5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인 샘터 사옥은 한국의 대표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설계해 1979년 지어진 건물로, 대학로의 랜드 마크로 사랑받아왔다. 샘터의 새 주인은 신생회사인 ‘공공그라운드’로 미래를 위한 교육과 미디어를 주제로 하는 실험공간을 이 곳에 조성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흰색 테 안경을 쓴 건축 노장 앞으로 긴 줄이 늘어섰다. 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건축연맹(UIA) 2017 서울세계건축대회’에서 금메달을 받은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伊東豊雄·76) 씨와 기념촬영을 하기 위한 행렬이었다. 이토 씨는 1세대 건축가를 대표하는 단게 겐조(1913∼2005), 마키 후미히코(89) 등 2세대를 잇는 일본의 3세대 건축가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프리츠커상(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2012년) 등을 받았다. 그를 본보가 단독 인터뷰했다.》 ―도쿄대 건축과 시절부터 건축에 큰 뜻을 품었나. “솔직히 대학 다닐 때엔 건축에 흥미를 못 느꼈다. 졸업 후 1965년 기요노리 기쿠다케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면서부터 ‘건축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 ―52년 동안 건축을 해 오면서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을 텐데…. “젊을 땐 새로운 걸 추구했지만 건축이 사람을 구한다는 걸 점차 깨닫게 됐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 내가 할 일은 뭘까 생각하니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일이었다.” 그는 파격적인 외형으로 주목받은 건축가였다. 요코하마의 ‘바람의 탑’(1986년)은 금속판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 기상 조건에 따라 각기 다른 빛이 난다. 도쿄 오모테산도의 ‘토즈’ 매장(2004년)은 주변 가로수 모양을 외벽 디자인으로 활용했다. 그랬던 그가 동일본 대지진 이후엔 구마 겐고 등 후배 건축가들과 ‘모두를 위한 집(Home for all)’이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모두를 위한 집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재해 지역에 남아 있는 재료들을 활용해 지역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식공간을 짓는 작업이다. 큰 테이블을 둬서 고독한 농어촌 어르신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게 했다. 이들은 자연을 두려워하고 존경한다.” ―건축은 기술로 자연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지 않나. “그것이 20세기 서양의 모더니즘이었다. 하지만 그 대표 소재인 철과 콘크리트도 대지진 앞에서는 버티지 못했다. 자연에 감사하고 경의를 표하는 아시아의 건축이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다. 건축의 혼은 곧 자연과의 공감이다.” 그는 일본 민나노모리 기후 미디어 코스모스(2015년)를 지을 땐 물푸레나무를 구부려 지붕을 물결치게 만들었다. 대만 국립대(2013년)는 나무 그늘을 형상화했다. 타이중 국립극장(2016년)은 곡선 디자인이 돋보여 시민들이 건축을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공간이 됐다. ―일본 건축가들은 왜 유명한가. “우리는 세대 간 전통을 계승해 창작하는 것 같다.” ―당신의 제자인 세지마 가즈요가 2010년 먼저 프리츠커상을 탔다. 둘은 어떻게 다른가. “(웃음). 그녀는 8년간 우리 회사에서 일했다. 나는 토지에 밀착된 건축을 하는 반면 그녀는 하얗고 투명한 소재로 알기 쉬운 건축을 추구한다.” ―요즘 일본 패션 브랜드 ‘무지(MUJI)’에서 조립식 집도 만든다. 집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대도시 젊은이들에게서 집, 자동차, 명품에 대한 소유욕이 사라지고 공유주택인 ‘셰어하우스’가 뜨는 현상을 안다. 그런 문화도 있지만 한편으론 장인의 손길이 깃든 집을 찾는 요구도 공존할 것이다.” ―젊은 건축 지망생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우리 때엔 마음을 열고 서로의 사상을 확인하는 자리가 많았다. 젊은이들이 동년배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으면 좋겠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아, 아디다스 스탠스미스!’ 미국 백악관 안주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의 차림을 보자마자 ‘아디다스 스탠스미스’ 흰색 운동화부터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텍사스주 허리케인 피해 현장을 방문하겠다며 킬힐을 신고 왔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급히 갈아 신은 운동화.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 남녀노소가 하도 즐겨 신기에 매장 직원에게 왜 이리 인기인지 물어본 적도 있다. “글쎄요, 어디에 신어도 ‘쿨’ 하잖아요.” 이 운동화는 미국의 유명한 테니스선수 스탠 스미스(72)의 이름을 따왔다. 그의 윔블던오픈 우승 직후인 1972년 만들어져 4000만 켤레 이상 판매됐다. 아디다스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새 카테고리를 만들고 3년 전 스탠스미스를 부활시켜 히트시켰다. 지난 몇 년간 많은 흰색 운동화가 유행했지만 스탠스미스는 그중 ‘지존’이었다. 그런데 어쩌나. 아디다스는 미국 나이키와 경쟁하는 독일 기업이니. ‘미국의 퍼스트레이디(FLOTUS)’란 문구의 모자를 쓴 멜라니아 여사(사진)에겐 보다 정교한 ‘패션 정치’가 필요해 보인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대학 시절 그의 문예사조론 교양과목을 수강했다. 당시 ‘연세대 스타 교수’였던 마광수 국문과 교수의 수업이 얼마나 대단한가 보자는 당돌한 심산이었다. 야한 여자가 좋다고? 사라는 즐겁다고? 그런데 놀랐다. 수백 명이 가득 찬 강의실에서 그는 얇은 버지니아 슬림 담배를 피우며 강의를 했다. 거의 항상 앞자리에 앉았던 나는 담배를 들고 있던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기억한다. 그 손가락이 담배 연기의 선(線)마저 미학적으로 그려내는 것 같았다. 마 교수는 “수업은 교수와 학생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면서 “원하는 학생은 강의실 뒤편에 앉아 담배를 피우라”고 했다. 학생들은 “와우” 하며 환호했다. 그러나 강의하는 스승을 강단에 두고 정작 뒤에서 흡연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이 수업의 백미는 ‘에로틱 판타지’였다. 그는 학기말에 시험을 치르지 않고 대신 과제를 냈다. “나를 흥분시키는 에로틱 판타지 소설을 써서 내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황당했다. 그러나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는 최대한 ‘야하게’ 써야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도전의식도 스멀스멀 생겨났다.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그가 쓴 책들을 탐독한 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단 교수가 사랑해 마지않는 ‘손톱을 길게 길러 정성껏 가꾸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왠지 동물이 소설에 나오면 야하지 않나 싶어 고양이도 등장시켰다. 사랑의 쾌감엔 시각만큼 후각도 중요할 것 같아 ‘샤넬 넘버5’ 향수를 복선의 장치로 사용했다. 학점에 후했던 그로부터 ‘A’를 받았다. 그런데 학점을 떠나 정작 내가 놀란 건 마 교수의 강의 내용이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등 세계 문예사조가 그의 한마디 한마디로 쏙쏙 정리되는 게 아닌가. 그때 생각했다. ‘아, 야한 여자가 마광수를 잡아먹는구나. 즐거운 사라가 교수로서의 면모를 가리는구나.’ 20여 년이 흘러 동네 빵집 앞에서 그와 마주쳤다. “선생님, 예전에 수업 참 좋았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자 활짝 웃으면서 반가워했다. 마 교수가 사는 아파트는 내가 다니는 목욕탕 근처에 있어 이후로도 이따금 보게 됐는데, 갈수록 가냘프고 왜소해 보였다. 5일 그가 세상과 작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집에 돌아와 그가 1995년에 펴냈던 ‘운명’(사회평론)이란 책을 다시 꺼내봤다. 실은 ‘즐거운 사라’를 찾았으나 행여 아이들 눈에 띌까 봐 서가 구석에 처박아 둔 탓에 찾기가 어려웠다. ‘운명’의 표지엔 동양고전 주역에 나오는 이런 글귀가 있다. ‘태양빛이 너무 뜨거워 우산을 쓰니까 비가 온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쪼이면 남 눈치 볼 것 없이 우선 우산이라도 써야 하고, 그러다 보면 한 줄기 시원한 비가 우연히 쏟아져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을 가져 책장이 닳도록 주역을 읽었다는 마 교수는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는 이열치열(以熱治熱) 식의 방법이 크게 효과를 본다고 이 책에서 썼다. 그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교수 마광수’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억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강의실에서의 그는 탈권위적이었고, 탄탄한 이론을 알기 쉽게 잘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는 1983년 쓴 ‘윤동주 연구’란 박사 논문을 통해 국문학 역사상 처음으로 윤동주 시인의 모든 시를 분석하기도 했다. 마 교수는 운명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운명은 야하다. 당당하게 야한 것처럼 좋은 운명 개척법은 없다.’ 무엇 때문인지 자신의 운명 개척법을 잊고 만 듯한 옛 스승의 명복을 빈다.김선미 문화부 차장 kimsunmi@donga.com}

도미니크 페로 스위스 로잔공대 교수(64)가 연단에 올랐다.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건축가연맹(UIA) 2017 서울세계건축대회’의 기조연설자인 그는 단테의 지옥 그림부터 무대 영상에 띄웠다. “흔히 지하 공간이라고 하면 숨 막히고 어두운 곳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많이 떠오릅니다. 이런 근거 없는 고정관념을 뛰어넘는다면, 지하 공간은 흥미진진한 곳이 될 겁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199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2003년) 등을 설계한 그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은 세계적 건축가다. 땅 밑을 ‘열린 공간’으로 보는 그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지을 땐 땅을 파내 지하 두 개 층에 고요한 열람실을 만들고 그 가운데 인공 정원을 꾸몄다. 인근 숲에서 가져온 나무들로 꾸민 지하 정원으로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철학자 볼테르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책을 모두 읽은 사람이 도서관의 마지막 책까지 읽고 나면 남은 건 무엇이겠는가. 그건 자연을 사색하는 것이다.’ 저는 지하 정원이 도서관의 심장부가 되길 원했습니다. 도서관 최후의 책, 제작할 수 없는 책, 그것은 정원….” 한 편의 시를 읊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고는 잔잔한 호숫가 영상을 보여줬다. “저는 요즘 이 스위스 제네바의 호수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 여러 상상을 해보고 있습니다. 만약 땅이 호수이고 도시가 그 위를 항해하는 배라면, 호수 속은 무한 가능성의 공간이니까요. 지하에 도시를 짓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을 지하로 확장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가 현재 주력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프랑스 파리 시테섬 리노베이션. 시테섬에는 사법부 청사 등 여러 행정기관이 있지만 공간의 활력과 주거 기능은 떨어진다. 150년 전 기존의 성(城)들을 철거하고 인위적으로 세운 건물이 많기 때문이다. “시테섬은 섬 자체가 유적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곳에 뭐가 있는지 정작 잘 몰라요. 그래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때인 2015년, 시테 섬을 어떻게 보존할지 고민하다가 ‘기념비적인 섬’으로 변모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그는 시테섬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고 건물들의 지하를 대중교통과 연결시키는 방안들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올해 초 파리에서 열었다. 마침 파리가 2024년에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면서 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고 한다. “관광에도 기여하고 시민들을 위한 행정서비스도 극대화해야겠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이를 발전시키는 ‘시즌 2’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습니다.” 페로 교수는 2008년 서울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ECC)를 지어 국내에서도 유명해졌다. 내년이면 10주년이 되는 이 건물을 어떻게 돌아볼까. “건물이 아니라 환경(landscape)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캠퍼스와 커뮤니티의 경계를 허물어 사람들이 교류하게 된 것 같아요.” 그는 최근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하로 파내 을지로까지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를 서울시 측에 전하기도 했다. 강연이 끝난 후 그를 만나 ‘왜 지하여야 하는가’를 재차 물었다. “굳이 땅을 깊게 파낼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도시와 건축물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는 죄다 수직적이잖아요. 지하로 내려가면 공간의 수평적 확장, 감각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어요.” 무지개 색상의 스카프를 두른 ‘건축의 거장’은 마치 비밀을 알려준 듯 윙크를 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페이스 서울’ 갤러리에 들어설 때 기대감이 있었다. 첫째는 갤러리, 둘째는 작가 때문이었다. 페이스 서울은 미국 뉴욕의 유명 현대미술 갤러리인 페이스 갤러리가 올해 3월 문을 연 서울지점이다. 1960년 설립돼 현대미술 시장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페이스 갤러리가 중국 베이징과 홍콩에 이어 아시아에선 세 번째로 서울을 지목한 것이다. 페이스 서울이 6일∼10월 22일 여는 첫 개인전의 주인공은 미국 뉴욕 현대미술의 스타인 타라 도노반(48·사진). 그의 아시아 첫 전시이기도 하다. 뉴욕 아이리시 펍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둔 그는 어린 시절 펍의 빨대를 자주 갖고 놀았다. 워싱턴DC 코코런 예술디자인대와 버지니아 코먼웰스대학원을 졸업한 후엔 뉴욕 소호의 사보이 레스토랑에서 6년간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이곳을 드나들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는 이쑤시개 수만 개를 접착제 없이 쌓기도 하고, 투명한 빨대를 여러 개 꽂아 고슴도치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페이스 갤러리는 일상적 소재를 갖고 노동으로 예술을 이루는 그를 알아보고 2005년 전속계약을 맺었다. 2008년 미국 맥아더재단은 분야를 막론하고 창의적인 사람에게 주는 ‘천재상’인 ‘맥아더 펠로십’을 그에게 수여했다. 이날 만난 도노반은 “천재상을 받은 후 나의 개념미술 작업에 좀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1월 뉴욕 페이스 갤러리에서 자신의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구성(카드)’이라는 작품은 흰색 합성수지 카드를 수천 장 세로로 꽂아 빛과 그림자로 조각적이고 건축적인 효과를 낸다. 당시 4만 달러(약 4480만 원)∼20만 달러(약 2억2400만 원)에 모두 팔렸던 그의 작품들이 이번 서울 전시에도 선보인다. 그는 “짧게는 닷새, 길게는 한 달가량 손으로 노동을 해야 하는데 이때 내 정신은 가장 맑고 평화롭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오치균 화백(61)을 만나기 며칠 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오치균 작품이 한창 때인 10년 전보다 가격이 꽤 떨어졌어요.” 그럴만했다. 한국의 슈퍼 인기 화가로 불려온 그의 그림은 구상화다. 고향인 충남 시골의 감나무,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미국 뉴욕과 강원 탄광촌의 풍경을 그린다. 그것도 유화물감과 모델링 페이스트를 혼합한 안료를 손가락에 묻혀서. 그러니 느낌이 ‘세다’. 몇 년간 인기였던 ‘구도(求道)의’ 단색화와는 대척점에 있으니 컬렉터들의 ‘러브콜’이 줄어든 거다. 그러던 중 ‘로드 무비―오치균’이라는 전시 도록이 배달돼 왔다. 때맞춰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화랑에서 전화도 왔다. “오 화백이 9월 말까지 저희 화랑에서 ‘비매(非賣)’ 전시를 합니다. 최재원 독립 큐레이터가 작품 여정을 따라 큐레이팅했어요.” 오치균, 상업화랑, 큐레이팅…. 흥미로운 조합이라 생각하며 도록을 넘겨봤다. 2005년 겨울 사북 그림 뒤로 2011년 감나무, 2005년 미 오하이오주 샌타페이 그림이 이어진다. 연대기적, 공간적 구성이 아니다. “내일 오 화백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노화랑에서 작가를 만났다. 정면에 걸린 120호 그림은 그가 올해 그린 뉴욕 센트럴파크였다. 초록 잎사귀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밝은 느낌으로 짐작건대, 그는 몇 년간 슬럼프로 생긴 공황장애에서 벗어난 듯했다. “제 그림은 뜨겁잖아요. 차갑고 이지적인 단색화 인기와 함께 손님이 뚝 끊겼어요. 한데 그게 전화위복이었죠. 제 그림 여정을 돌아보게 됐으니까요. 최근엔 질감을 더욱 강조하다보니 추상 느낌이 강해지네요.” 그의 첫인상은 탄탄한 몸매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인 세련, 그 자체였다. “정말 실례지만…”이라고 양해를 구한 뒤 브랜드를 물어봤다. 터키석과 송곳니 장식의 벨트는 발렌티노, 옆면에 줄무늬가 있는 바지는 돌체앤가바나, 발망 셔츠, 릭오웬스 부츠…. 자기만의 색깔이 ‘센’ 명품 브랜드들이었다. “패션에 관심이 많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개인 트레이닝을 받고요. 몸 관리가 자기 관리니까요.” 처음부터 자신을 가꿀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10남매 중 일곱째로 가난하게 자란 그는 서울대 회화과를 나와 미술학원을 3년간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미국 유학을 가기 직전 사기를 당해 뉴욕에서 힘겹게 살았다. 마침내 1990년대 국내 전시에서 호평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다 2006∼2007년 작품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경매에서 100호 그림이 6억 원대에 팔렸다. 그때부터 ‘블루칩 작가’ ‘상업 작가’란 호칭이 붙었다. 하지만 상업 작가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제 그림이 좋으니까 사람들이 비싸게 사는 거 아닙니까? 명품 옷 사는 것과 같은 심리겠죠. 그런데 한국 미술계는 상업성과 예술성을 무 자르듯 나눕니다. 다들 저를 ‘감나무 화가’ ‘경매 몇 억 원 화가’라고만 하지, 제 그림을 진지하게 봐주지 않았어요.” 전시 순서의 의미는 이랬다. “사북 가로등 불빛이 감나무와 샌타페이 사막의 붉은 색감으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이 작가의 ‘뉴욕 시대’ ‘감나무 시대’ 등 수사(修辭)에 갇히지 말고 오롯이 그의 그림만 봤으면 합니다.”(최 큐레이터) 일요일 저녁 늦게 오 화백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작업실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하루 12시간 이상 그림을 그려 돈을 벌어 왔다. “왜 예술가는 항상 남으로부터 받기만 해야 하나요?” 그는 모교인 서울대 미대에 10년째 ‘오치균 장학금’을 주고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