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이진영 논설위원

논설위원실

구독 197

추천

안녕하세요. 이진영 논설위원입니다.

ecolee@donga.com

취재분야

2025-11-22~2025-12-22
칼럼100%
  • ‘아프리카’ 안보이는 아프리카展

    전시 주제를 모르고 봤다면 ‘아프리카’를 떠올릴 수 있었을까. 전시장을 둘러봐도 서구 예술사조 야수파에 영감을 준 아프리카 가면이나 토속적인 공예품 같은 건 없다. 사자와 얼룩말이 뛰어다니는 아프리카 풍경도 없다. 그럼에도 전시 제목이 ‘아프리카 나우’, 지금의 아프리카이다. 내년 2월 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나우’전은 국내 최초의 아프리카 현대미술 전시다. 아프리카라는 제목의 알리바이는 참여 작가 20여 명이 본인, 혹은 조상이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사실에 있다. 존 아캄프라, 케힌데 와일리, 티에스터 게이츠를 비롯해 참여 작가 대부분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하고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 파리 퐁피두센터 같은 주류 미술계에서 전시하며 주목받는 작가다. 그래서 전시 작품 100여 점은 ‘때’묻지 않은 원시성이나 소수자의 억눌린 한보다는, 멀쩡한 그림에 코끼리 똥칠을 하는 실험정신(크리스 오필리)과 인종 문제마저 한발 떨어져 보는 여유를 담고 있다.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건 퍼포먼스 작가 닉 케이브의 비디오 작품이다. 알록달록한 털옷을 뒤집어쓰고 한바탕 탈놀이를 펼치는 영상이다. 한 겹 외피만 둘러도 인종 성별 계층 따위는 가려지지 않느냐는 메시지를 유쾌하게 전한다. 사진작가 논시케렐로 벨레코가 남아프리카공화국 거리의 패셔니스타를 찍은 사진들은 무거운 과거에서 자유로운 아프리카 젊은이들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모잠비크 작가 곤살로 마분다의 두툼한 입술과 커다란 눈이 익살스러운 설치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오싹함을 느끼게 된다. 모국의 내전 후 남겨진 AK47 소총, 로켓포, 권총들의 잔해를 재료로 썼다. 총과 총탄으로 장식한 왕좌는 모잠비크만의 이야기일까. 직설적인 풍자만화가 안톤 카네마이어조차 ‘남아공은 무지개 나라’라는 주장에 ‘무지개엔 검은색이 없네’라는 대꾸를 집어넣는 유머를 잊지 않는다. 흑인과 백인 남자들을 팬티만 입혀 찍은 사진작가 조디 비버는 벗은 여자들 그림만 지겹도록 그려온 서구 미술계를 시원하게 한 방 먹인다. 영국 작가 잉카 쇼니바레의 설치작 ‘Earth(지구)’에 이르면 전시장에서 왜 아프리카를 느낄 수 없었는지 깨닫게 된다. 주먹을 쥐고 한 발을 내디딘 마네킹은 남자인데 치마까지 입었다. 머리 대신 지구의를 달아 놓아 인종도, 국적도 알 수 없다. 마네킹의 옷은 인도네시아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네덜란드에서 대량생산해 서아프리카 식민지에 판매한 천으로 만든 것이다. 글로벌한 현대미술에선 서구적인 것도 아프리카적인 것도 없다. 잔인한 노예제도에 따른 흑인 디아스포라(이산)는 서구 근대국가를 살찌웠을 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의 DNA에도 녹아들었다. 그래서 전시는 다문화 사회로 변해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한국적인 것은 무엇이냐고.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2-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채널A ‘탈북’ 아시안TV 어워즈 최우수상

    채널A 다큐멘터리 ‘특별취재 탈북’이 제19회 아시안 TV 어워즈 베스트 다큐멘터리 시리즈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탈북’은 11일 오후(현지 시간)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에서 열린 아시안 TV 어워즈 시상식에서 종합편성채널로는 처음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 부문 대상은 CNN 홍콩지부의 인권침해 고발 프로그램 ‘프리덤 프로젝트’가 받았다. 연출자인 채널A 양승원 PD는 “북한 인권 보호의 필요성을 국제적으로 알리게 돼 뿌듯하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탈북’은 올 4월 북미 3대 국제 미디어상으로 꼽히는 미국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도 종편 최초로 다큐멘터리 부문 최고상인 대상을 차지해 해외 수상만 두 번째다. 이 프로그램은 일곱 살 꽃제비 김신혁 군을 포함해 북한 주민 15명이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는 과정을 동행 취재하고 이후 김 군의 한국 정착 과정을 추적한 다큐다. 지난해 1월 첫 방송 때 드라마를 제외한 전체 종편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같은 해 3월에는 일본 니혼TV가 방영해 11.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탈북’은 지난해 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은 데 이어 6월에는 종편 최초로 ‘2014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뉴미디어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2-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채널A 다큐 ‘탈북’, 종편 최초 ‘아시안 TV 어워즈’ 최우수상 수상

    채널A 다큐멘터리 '특별취재 탈북'이 제19회 아시안 TV 어워즈 베스트 다큐멘터리 시리즈 부문 2등상인 최우수상을 받았다.'탈북'은 11일(현지시간)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에서 열린 아시안 TV 어워즈 시상식에서 종합편성채널로는 처음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 부문 1등상은 CNN 홍콩지부의 '프리덤 프로젝트'가 받았다.연출자인 채널A 양승원 PD는 "북한 인권 보호의 필요성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기회가 돼 뿌듯하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탈북은 올 4월 북미 3대 국제 미디어상으로 꼽히는 미국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도 종편 최초로 다큐멘터리 부문 최고상인 대상을 차지해 해외 수상만 두 번째다. 이 프로그램은 일곱 살 꽃제비 김신혁 군을 포함해 북한 주민 15명이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는 과정을 동행 취재하고 이후 신혁 군의 한국 정착 과정을 추적해 제작한 다큐다.지난해 1월 첫 방송 때 드라마를 제외한 전체 종편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같은 해 3월에는 일본 니혼TV가 방영해 11.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탈북은 지난해 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은데 이어 7월에는 종편 최초로 '2014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뉴미디어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2-12
    • 좋아요
    • 코멘트
  • 3분의 1을 공유하라

    3분의 1을 공유하라. 대안적인 주거문화를 모색해 온 정림건축문화재단은 건축가 9개 팀에 이런 주문을 했다. 100m²(약 30평) 규모의 집을 기준으로 3분의 1을 이웃과 공유하는 방안을 설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한 주거문화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 비율은 26%. 2인 가구까지 합친 비율은 올해 이미 절반(52.7%)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설계한 아파트가 헐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집의 일정 부분을 공유하면 공동체 회복도 기대할 수 있다.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3층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는 9개 팀의 아이디어를 모아 놓은 전시다. 지난해부터 공동 주거를 공부해 온 건축가 김경란 이진오 김수영의 프로젝트그룹 QJK는 한국 옛집의 안채와 바깥채(혹은 사랑채) 개념을 계단형 아파트 구조에 접목했다. ‘현관+현관쪽 방+이 방에 딸린 화장실’을 합쳐 바깥채로, 나머지 공간을 사생활이 보장되는 안채로 쓰자는 내용이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는 두 집이 이 바깥채를 합쳐 운동실이나 놀이방으로 함께 쓸 수도 있다. QJK는 아파트 주민들이 예약제로 쓸 수 있는 스파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스파의 운영은 아파트 자치회가 맡고, 수익금은 자치회와 양쪽 가구가 절반씩 나눠 갖자는 것이다. 건축가 조남호는 아파트를 입주민들이 직접 짓는 방안을 제시했다. 100가구 정도가 모여 아파트를 직접 지으면 건설사가 주도할 때보다 금융비용과 개발이익이 빠져 주변 시세의 60% 선에서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공유하는 공간에선 입주민들이 인테리어업체, 반찬가게, 어린이방 등을 운영하며 마을화폐가 통용되는 작은 경제 공동체를 만든다. 건축가 황두진은 아파트에서 남아도는 공간을 외부화해 도시농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거실을 텃밭으로 만들어 단지 내 주민에게 임대하고, 수확물을 주민들에게 판매하자는 것이다.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 13일 오후 2시 미술관 지하 1층 세마홀에서는 사회학자와 건축가들이 모여 대안적인 주거 문화를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린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2-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투쟁의 도구에서 예술의 본질에 눈 맞추다

    소담스레 눈이 쌓인 시골 마을, 서늘한 새벽 공기를 내뿜는 숲 속 정경, 분홍 꽃잎이 흐드러진 봄날의 꽃나무…. 김준권 작가(58·사진)의 서정적인 풍경화를 보면 두 번 놀란다. 먹빛이 부드러운 수묵화 같은데 뾰족한 칼로 파낸 판화다. 평화로운 풍경을 그려내는 작가는 청년 시절엔 민족해방(NL) 계열로 정치 투쟁의 선봉에 섰던 투사였다. 1980년대 미술계의 주류였던 민중 화가들은 민주화 이후 각자의 길을 걸었다. 목판화가 오윤(1946∼1986)은 40세에 요절해 전설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으로 논란을 일으킨 홍성담 작가(59)는 여전히 직설적 화법으로 시대와 불화한다. 투쟁의 도구가 아닌 예술의 본질로 돌아가 미학적 고민을 하는 이들도 있다. 김 작가가 그런 경우다. 10일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그의 회고전 ‘나무에 새긴 30년’은 미술 운동가에서 서정적 목판화가로 선회한 작가의 예술 여정을 시기별로 보여준다. 홍익대 미대 졸업 후 미술교사에서 해직 교사로, 민족미술협의회의 사무국장과 상임집행위원장으로 바쁘게 활동하며 억센 선묘 위주의 선동적 작품을 선보였던 작가는 민중미술운동이 동력을 잃자 다른 고민을 해야 했다. “커다란 이념이 아니라 동네 고샅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감동을 표현할 기술이 없더군요.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선에 투입됐던 거예요. 내가 옳다며 떠들던 것들이 실은 무지의 발로가 아닐까 회의했습니다.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떠들썩한 세상 한가운데 서 있던 그는 30대 중반이던 1991년 충북 진천군 백곡면 산골짜기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자발적인 유배 생활을 시작했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에서 전통적인 수묵인화기법을 익히고, 목판화의 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 다색목판화 우키요에와 중국의 수인판화를 배웠다. 한중일 3국의 목판화 문화를 섭렵한 결과물이 채묵 목판화다. 젊은 시절 여느 목판화가들처럼 서양 종이에 유성물감으로 찍어냈던 그는 지금은 한지에 먹을 안료로 쓴다. 유성판화는 누가 찍든 같은 결과물이 나오지만 수묵판화는 먹의 농도, 목판과 한지의 수분 함량에 따라 작품들이 다 다르다. 그만큼 표현 영역이 넓지만 수분 조절이 어려워 정교한 기술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소재도 바뀌었다. 머릿속 이념을 담아내던 작가는 평범한 이들이 발 디디고 사는 이 땅의 질박한 풍경들을 눈으로, 발로 사생하고 작업실에 앉아 되새김질하며 목판에 새겨낸다. 그가 30년간 그리고, 파고, 찍은 작품은 550여 점. 작품마다 5, 6개의 판을 새겼으니 3000개가 넘고, 작품당 20점 미만의 에디션을 찍었으니 6만 장이 넘는 판화를 내놓은 셈이다. 이번 전시에는 연도별로 7, 8점씩 250여 점을 전시한다. 작업실에 ‘한국목판문화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건 작가는 “목판화란 죽은 나무를 살려내는 일”이라며 “내가 살려낸 것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묻는다”고 했다. 29일까지. 02-733-1981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2-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어렵게 배울수록 오래 기억”

    크게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 뾰족한 수를 알려주진 않는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안 하니까 못하는 것일 뿐. 인지심리학자인 저자들은 과학적인 연구에서 효과가 검증된 학습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건 △힘들여 배울수록 오래 남는다 △교재를 반복해서 읽는 것보다 시험 한 번 보는 게 낫다 △벼락치기보다 시간 간격을 두고 공부하라 △여러 주제를 한꺼번에 공부하라 △답 보기 전에 우선 풀어보라는 것이다. 대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 효과를 입증하는 실험 결과들, 그리고 그 학습법에 따라 고득점을 받은 성공담들은 흥미롭다. 먼저 시험의 중요성. 어느 중학교의 학생들은 교재의 일정 부분은 한 학기에 세 번 시험을 보고, 나머지 부분은 시험 보는 대신 세 번씩 복습했다. 한 달 후 치른 시험에서 학생들은 시험을 봤던 범위에선 평균 A―를, 복습만 했던 범위에선 C+를 받았다. 몇 달 후 치른 재시험에서도 결과는 유지됐다. 시험을 통해 배운 것을 기억에서 꺼내 보는 연습을 함으로써 기억이 단단해지고, 기존 지식과의 연관성도 강화되며, 망각도 막아주기 때문이다. 집중적인 학습법은 비효율적이다. 책에는 외과 수련의들의 미세혈관 수술법 수업 사례가 나온다. 이들 중 절반은 하루에 몰아서, 나머지 절반은 일주일에 1회씩 4주간 배웠다. 평가 결과는 몰아서 배운 그룹이 훨씬 못했다는 것이다. 벼락치기 공부는 단기기억을 이용한다. 배운 걸 오래 기억하려면 사전 지식과의 통합이 일어날 시간이 필요하다. 또 약간의 망각 후엔 지식을 꺼내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기억도 강화된다. 어렵게 배울수록 오래 남는다는 말이다. 가장 새롭다 싶은 학습법은 두 가지 주제 이상을 한꺼번에 공부하는 ‘교차 연습’이다. 체육 수업의 사례는 놀랍다. 8세 꼬마들이 90cm 거리에서 바구니에 주머니 던져 넣기 시험을 치렀다. 절반은 90cm 떨어진 곳에서, 나머지 절반은 60cm와 120cm 거리에서 연습했다. 결과는? 90cm 거리에선 한 번도 연습하지 않은 아이들의 성적이 월등했다. 여러 가지 상황에 적응하는 유연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여러 화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배운 학생들이 특정 화가의 작품 공부를 끝낸 뒤 다음 화가로 넘어간 학생보다 화가와 그림을 연결짓는 시험 성적이 좋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림을 어떤 화가가 그렸는지도 더 잘 맞혔다. 저자들은 자기주도적 학습의 비효율성도 경고한다. 특히 공부를 못하는 학생일수록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객관적인 피드백은 필수적이다. 책을 읽다 보면 묻게 된다. 부담을 줄여준다며 시험을 없애는 것이 교육적인가. 3년에 걸쳐 배울 내용을 한 학기에 몰아서 배우는 방식은 효율적인가. 새로운 교육 제도를 내놓을 때 그 효과를 입증할 만한 연구들은 충분히 검토한 걸까. 미국에서 올 4월 출간됐다. 원제는 배운 게 머리에 꼭 들러붙게 하라는 뜻에서 ‘Make it stick’, 부제는 ‘The science of successful learning(성공적인 학습과학)’.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2-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구상과 추상, 이분법을 거부하다

    어느 별에서 왔을까. 그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나 보다. 김환기(1913∼1974) 유영국(1916∼2002) 이중섭(1916∼1956)과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함께 쓰고, 정상화(82) 최만린(79) 윤명로(78) 같은 원로 화가들을 길러낸 재미화가 김병기 화백(98)이 개인전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시차’ 때문에 잠시 어지러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내년 3월 1일까지 과천관에서 개최하는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올해의 마지막 전시 ‘김병기: 감각의 분할’전이다. 그는 최고령 현역 작가다. 60년 넘게 일궈온 화업을 압축하는 회화 70여 점과 드로잉 30여 점이 걸려 있는 전시장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마운틴의 풍광이 내다보이는 작업실에서 그려낸 신작들도 있다. 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 생긴 가느다란 선과 굵은 붓질이 거칠게 지나간 사이로 앙상한 인체가 숨어있고(‘방랑자’·2012년), 캔버스를 채운 붉은 물감에선 몬드리안과 단청의 색감이 공존한다(‘연대기’·2013년).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현대의 이분법을 넘어보려 그는 여전히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1+1은 2일까요?” 개막일인 2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 화백은 대뜸 물었다. “예술에서 이런 절충주의는 타격의 대상입니다. 1+1이 3이나 4 혹은 0이나 9가 돼야 창조적인 제3의 것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어요.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사고가 있을 뿐이지요.” 1916년 평양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난 불발탄 같았다”고 했다. 화가이자 문인, 고미술 수집가이자 한국 최초의 미국 영화 배급업자였던 아버지의 부재가 오래도록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능을 물려준 건 아버지 김찬영이었다. 한국에서 세 번째로 도쿄에서 서양화를 배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김환기 이중섭과 추상을 배우고 돌아와 한국 추상미술 정립을 주도했다. 화가이자 비평가, 교육 및 행정가로 한국 현대미술의 토대를 닦던 그는 49세 때 미국으로 떠나 그림에 집중했다. “한국을 떠난 지 49년이 지났네요. 한국에선 서양만 생각했는데, 서양에선 동양만 바라봤어요. 이런 멋진 나라를 두고 어디에 살았나 싶습니다.” 그의 신작들도 동양으로 기울어가는 듯하다. 색이 빠지고, 안료의 두께도 얇다. 칠하기보단 긋는다. 그만큼 투명하고 여백이 많다. 김 화백은 “요즘은 자꾸 지우게 된다”고 했다. “(스위스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막대기 같은 조각상처럼 나도 맘에 안 들어 떼어내게 돼요. 다 떼어내고 나면 공간이 생깁니다. 무와 비움의 세계죠.” 김 화백은 “이젠 여생(餘生)이랄 것도 없다”고 했는데, 영상에서 본 작업실 속 그의 붓질은 힘찼다. 후학들에겐 “선배를 따라 해선 제대로 계승을 못한다. 부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시장을 돌며 그림을 설명하던 김 화백이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제 작품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과정적일 뿐이지요.”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2-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예술에 결론이란 없다” 98세에 개인전 여는 화가 김병기

    어느 별에서 왔을까. 그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나보다. 김환기(1913~1974) 유영국(1916~2002) 이중섭(1916~1956)과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함께 쓰고, 정상화(82) 최만린(79) 윤명로(78) 같은 원로 화가들을 길러낸 재미화가 김병기(98)가 개인전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시차' 때문에 잠시 어지러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내년 3월1일까지 과천관에서 개최하는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올해의 마지막 전시 '김병기: 감각의 분할'전이다. 그는 최고령 현역 작가다. 60년 넘게 일궈온 화업을 압축하는 회화 70여점과 드로잉 30여점이 걸려있는 전시장엔 미국 LA 할리우드 마운틴의 풍광이 내다보이는 작업실에서 그려낸 신작들도 있다. 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 생긴 가느다란 선과 굵은 붓질이 거칠게 지나간 사이로 앙상한 인체가 숨어있고('방랑자', 2012년), 캔버스를 채운 붉은 물감에선 몬드리안과 단청의 색감이 공존한다('연대기', 2013년).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현대의 이분법을 넘어보려 그는 여전히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1+1은 2일까요? 예술에서 이런 절충주의는 타격의 대상입니다. 1+1이 3이나 4, 혹은 0이나 9가 돼야 창조적인 제3의 것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어요.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사고가 있을 뿐이지요." 1916년 평양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난 불발탄 같았다"고 했다. 화가이자 문인, 고미술 수집가이자 한국 최초의 미국 영화 배급업자였던 아버지의 부재가 오래도록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능을 물려준 건 아버지 김찬영이었다. 한국에서 세 번째로 도쿄에서 서양화를 배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김환기 이중섭과 추상을 배우고 돌아와 한국 추상미술 정립을 주도했다. 화가이자 비평가, 교육 및 행정가로 한국 현대미술의 토대를 닦던 그는 49세에 미국으로 떠나 그림에 집중했다. "한국을 떠난 지 49년이 지났네요. 한국에선 서양만 생각했는데, 서양에선 동양만 바라봤어요. 이런 멋진 나라를 두고 어디에 살았나 싶습니다." 그의 신작들도 동양으로 기울어가는 듯하다. 색이 빠지고, 안료의 두께도 얇다. 칠하기보단 긋는다. 그만큼 투명하고 여백이 많다. 김 화백은 "요즘은 자꾸 지우게 된다"고 했다. "(스위스의 조각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막대기 같은 조각상처럼 나도 맘에 안 들어 떼어내게 돼요. 다 떼어내고 나면 공간이 생깁니다. 무와 비움의 세계. 물리적인 공간을 초월한 세계이죠." 김 화백은 "이젠 여생(餘生)이랄 것도 없다"고 했는데, 영상으로 만나 본 작업실 속 그의 붓질은 힘찼다. 후학들에겐 "선배를 따라해선 제대로 계승을 못한다. 부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예술엔 결론이란 없습니다. 과정이 있을 뿐이지요."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 2014-12-03
    • 좋아요
    • 코멘트
  • 미셸 더부르 “GI에는 전통과 미래 함께 담아야”

    “정부 상징은 국민들에게 ‘나의 정부’라는 소속감을 심어주고, 대외적으로는 상업 브랜드처럼 국가를 효율적으로 팔아야 한다.” 네덜란드 디자인 회사인 MdB 어소시에이츠의 미셸 더부르 대표(60)는 네덜란드의 정부 이미지 통합 작업(Government Identity·GI)을 맡았던 디자이너다. 그는 한국 정부 부처별 이미지(Ministry Identity·MI)를 하나의 GI로 통합하는 작업을 추진 중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자문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문체부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와 국가 상징체계 개발 예산 40억 원은 내년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예산심사소위를 통과한 상태다. 최근 문체부 주최로 열린 ‘2014 공공디자인 국제심포지엄’ 참석을 위해 서울을 찾은 더부르 대표를 만나 네덜란드의 GI 경험담을 들었다. 네덜란드는 2007년 당시 17개 정부 부처 200여 개 공공기관의 상징을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을 시작해 2010년부터 모든 정부 기관이 새로 만든 GI를 사용하고 있다.―네덜란드 하면 오렌지색이 떠오르는데 GI는 파란색이다.“오렌지색은 왕실의 색이다. 왕실에 대해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정치적인 논쟁을 피해가고 싶었다. 네덜란드는 물이 중요한 나라다. 지평선이 발달해 하늘도 잘 보인다. 그런 이미지로 파란색을 택했다.”―파란색 안의 심벌은 무엇인가.“네덜란드의 오래된 문장(紋章)이다. 사자가 방패를 들고 있는 모양인데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GI는 한 나라의 전통뿐만 아니라 미래도 담고 있어야 한다.” 세계 각국의 국가 상징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네덜란드, 독일, 캐나다처럼 모든 부처가 같은 GI를 쓰는 방식이 통합형이고, 미국과 영국처럼 GI를 쓰되 필요할 경우 부처별로 이를 변형하는 방식이 혼합형이다. 프랑스처럼 MI에 GI가 공통적으로 들어간 형태가 보증형, 일본과 한국처럼 부처별로 MI가 따로 있는 유형이 개별형이다.―통합형의 장점은….“정부가 제작하는 모든 문서와 명함, 넥타이나 스카프, 건물에 GI가 쓰인다. 하나의 이미지로 의사소통을 하니 효율적이다. 조직 개편이 이뤄질 때마다 MI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에 비한다면 예산도 절약할 수 있다. 통합형이라고 똑같은 GI를 쓰는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파란색을 6개 종류로, 서체도 여러 개로 개발했다. 통일성이 있으면서도 정부 기관별로 국민과 소통하기에 적절한 파란색과 서체를 골라 쓸 수 있다.”―개발비는 얼마나 들었나.“1650만 유로(약 227억 원)다. 매년 MI에 쓰이는 예산이 500만 유로였음을 감안하면 예산 절감 효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부르 대표는 지난 30여 년간 유럽중앙은행, 나이키, 애플, 알리안츠, 한국 웅진그룹과 경기 파주시 운정지구 등의 공공 및 상업 디자인을 해왔다. 그는 한국 정부의 슬로건인 ‘다이내믹 코리아’ ‘스파클링 코리아’에 대해 “명확한 이미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많은 도시들이 ‘지속 가능한 도시’ ‘그린 시티’처럼 추상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데 그 지역만의 고유성이 드러나는 브랜딩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곳에 누가 살고, 전통과 역사는 무엇이며, 뭘 해먹고 사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난 디자인 전문가로서 한국 정부에 조언은 해줄 수 있어도 GI를 직접 할 수는 없다. 그건 한국 디자이너의 몫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2-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장그래만 미생? 살아가는 모두는 完生을 꿈꾸는 未生”

    “샐러리맨들이 왜 스트레스 받고 술 마시며 상사 욕 하겠나. 이 안엔 분명 드라마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윤태호 작가) “좀 다른 드라마를 하고 싶었다. 대기업의 한복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려고 조연 배역들을 다 키웠다.”(이재문 PD) 웹툰 ‘미생’의 윤태호 작가(45)와 드라마 ‘미생’을 기획한 이재문 CJ E&M PD(37). ‘대중의 공감을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2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전시홀에서 열린 두 사람의 좌담회는 ‘2014 창조경제박람회’가 한창인 코엑스홀에서 가장 뜨거운 현장이었다. 작업실에서 그대로 빠져나온 듯 허름한 가죽점퍼 차림의 윤 작가는, 승진에 유리한 일감보다 꽂히는 사업에 몰두하는 미생의 오 차장 같았다. 말쑥한 양복을 차려입은 훤칠한 이 PD는 영업3팀에 막 합류한 천 과장과 비슷했다. 진행을 맡은 방송인 김태훈 씨(45)는 ‘미생’의 뜻부터 물었다. △윤=출판사에서 바둑을 소재로 한 만화를 제안하면서 제목을 ‘고수’로 해달라고 했다. 난 고수들의 정신세계를 모른다. 그래서 ‘미생’으로 정했는데 어려워들 해서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라는 부제가 들어갔다. 고졸 출신의 비정규직 장그래는 미생이다. 그렇다면 정규직은 완생인가? 사장은? 살아가는 모두는 미생이며 완생을 지향한다. ―김=단행본도 200만 부 넘게 팔렸다. △윤=(경제적) 여유가 생겨 연재 중인 ‘파안’을 위해 헬리캠을 띄워 촬영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경계심도 생긴다. 만화란 가내수공업처럼 소박해야 하는데. 드라마로 영화로 된다고 해서 절대 내 일 자체의 성격이 변해선 안 되겠구나 조심하게 됐다. △이=회사문화가 우리와 비슷한 일본에서 반응이 올 줄 알았는데 중국중앙(CC)TV가 ‘미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14분간 방영했다. 미국에선 리메이크 얘기를 한다. 뉴욕 월스트리트에 워커홀릭이 많아 회사가 배경인 드라마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드라마가 웹툰으로 제작된 경우도 있나. △이=드라마 ‘갑동이’가 방영 시작 전 웹툰으로 기획됐고 ‘이웃집 꽃미남’은 방송 후 웹툰으로 나왔다. 작품이 좋다면 어떤 장르로 변환되든 수용자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윤=(윤 작가의 인기 웹툰인) ‘이끼’가 강우석 감독의 영화로 제작됐을 때 시나리오를 웹툰으로 그려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원작이라는 형식을 빌려 (개봉 전 영화의) 붐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작품에 대한 반응을 봐가며 영상화하려는 것이다. ―(방청객이) ‘미생’은 창조경제의 아이콘이다. △윤=경제적인 효과를 생각하고 작품을 그리진 않는다. 하지만 2차 저작물로 확대되는 것을 터부시할 필요는 없다. 이끼는 5년, 미생은 4년 7개월 걸렸다. 작가 인생에서 4, 5년을 바친 작품이 (드라마나 영화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작가들이 자극적인 걸 만들어내려 하기보다 좀더 예민해졌으면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얘기를 동어반복하지 말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개성적인 인간형을 어떻게 그려낼지 고민해야 한다. ―(방청객이) 지상파 드라마가 위기라는 얘기가 나온다. 웹툰이 드라마 시장에 변화를 가져올까. △이=시청자들의 기호를 알 수 없으니 웹툰으로 검증된 콘텐츠를 찾게 된다. 작가의 시대가 아니라 기획자의 시대로 가고 있다. 리메이크 붐이 일어난 지도 오래됐다. 기존에 고수했던 시청률 공식, 빠른 시간에 만들어내는 제작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가보려는 시도들을 받아들이는 환경이 됐으면 한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1-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포털 검색광고 중 뉴스 기여비중 19.4%… 관련 영업이익 55~60%는 신문사에 줘야”

    네이버 다음 구글 등 포털 사이트의 검색 광고에서 뉴스가 기여하는 비중이 19.4%로 추산됐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남찬기 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발표한 ‘N-스크린 환경에서 뉴스 콘텐츠 유통 전략 및 디지털 뉴스 생태계 개선 방안 연구’(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포털에 헐값에 팔리는 뉴스의 적정 가격 산출을 위한 모델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포털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이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 포털 이용 동기 중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6.1%였다. 이 중 절반 가까이는 경제나 연예 및 스포츠 뉴스보다는 종합뉴스를 보기 위해 포털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털의 검색 광고에 뉴스가 기여하는 정도는 19.4%로 추산됐다. 이는 △뉴스 검색을 위해 검색 서비스를 이용하다 검색 광고를 클릭하는 경우(14.0%) △포털 내에서 뉴스 콘텐츠를 이용하고 뉴스와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다가 검색 광고를 클릭한 경우(3.0%) 등을 합한 수이다. 연구팀은 네이버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5240억 원이고 이 중 뉴스로 인해 발생한 영업 이익은 755억 원으로 추산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뉴스 기여도를 감안해 포털의 영업이익을 배분할 때 신문사의 평균 비용이 높고 뉴스 생태계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을 감안해 플랫폼 제공자인 포털과 콘텐츠 제공자인 신문사가 45 대 55, 혹은 40 대 60으로 나눠 가지는 방안을 제안했다. 남 교수는 “이번 연구는 뉴스 콘텐츠가 포털에 기여하는 정도를 처음으로 추산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이를 토대로 포털이 신문사에 적정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도록 좀 더 정교한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1-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학습장애… 길치… 뇌를 리셋하세요

    저자(63)는 기억력이 비상했다. 그런데 두 자릿수 덧셈을 할 땐 왼쪽 오른쪽 숫자를 아무거나 골라 더했다. ‘아빠의 남동생’과 ‘남동생의 아빠’가 왜 다른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성적표에 따르면 그는 “천재적”인 동시에 “학습능력이 부족한” 학생이었다. 타고난 기억력에 기대어 대학원까지 간 그는 자료를 뒤지다 자신이 좌뇌에 문제가 있어 보고 들은 것을 연결해 이해하지 못하는 학습장애를 겪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뇌가 일정한 자극에 반응하다 보면 물리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쥐 실험 결과도 읽었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뇌가소성’이다. 가소성(plasticity)이란 외부에서 힘을 가하면 물체의 형태가 변하고, 주어진 힘을 제거하더라도 변형된 형태가 유지되는 성질을 말한다. 그는 26세에 스스로를 실험 쥐 삼아 문제의 뇌 기능을 활성화하는 훈련을 했고 27세에 읽거나 들은 것을 하나로 합쳐 ‘아하!’ 하고 이해하기 시작해 기적처럼 학습장애를 극복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지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모국인 캐나다와 미국에서 애로우스미스 학교 35개를 운영하고 있다. 책에는 이 학교에서 학습장애를 치료한 이들의 ‘간증’이 줄줄이 이어진다. 똑똑한데도 말의 뉘앙스를 몰라 친구가 없는 유치원생부터 지독한 ‘길치’에다 연구 보고서 같은 구조적인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던 보건 전문의, 상징이나 은유를 이해하지 못해 직장과 가정생활이 모두 엉망이 된 변호사까지 다양한 사례가 소개된다. 저자가 스스로를 치유한 훈련법은 시계의 시침과 분침 이해하기였다. 플래시카드에 적힌 시간을 보고 시곗바늘을 돌려 맞추는 훈련을 매일 12시간씩 했다.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훈련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계를 볼 줄 알게 되고 글의 논리적 전개가 숨어있던 그림처럼 눈에 들어오더란다. 하지만 모든 환자를 일으켜 세우는 명약이 없듯 이 학교가 모든 학습장애를 고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다. 우리는 뇌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원제는 ‘The woman who changed her brain(자기 뇌를 바꿔버린 여자)’.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1-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광현 교수 “비움의 미학 버려야 건축이 산다”

    서울대 건축학과 71학번들은 그해 이공계열 대학입시에서 건축과의 커트라인이 가장 높았다고 기억한다. 한국 건축계의 좌장격인 승효상 서울시 총괄건축가(62)와 여성 건축가 김진애 전 국회의원(61)이 71학번이다. 학과의 커트라인은 업계의 위상과 비례하는 법. 개발 시대가 끝나고 건설경기마저 여의치 않은 지금은 건축학과의 인기도 시들하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61)가 국내 건축계의 구석구석을 살핀 책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공간서가·사진)이 쓴소리로 가득한 이유도 이런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15일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요즘 제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커트라인이 의대보다 높았다던 서울대 건축학과 71학번이다. ―책 제목에서 공동성이란 무엇인가. “집을 짓는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타고 났다. 고대 그리스 아고라도 전에 있던 걸 보고 만든 게 아니다. 자유롭게 모이는 광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했던 거다. 사람과 사회에 내재한 공통의 건축적 감각, 이것이 공동성이고 건축의 본질이다.” ―책에는 한국 건축계를 질타하는 내용이 많다. 특히 승효상 씨의 ‘비움의 미학’에 대해 “가장 먼저 회피해야 할 자세”라고 했다. “특정인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건축의 본질을 흐리고 허상을 양산하는 슬로건이 난무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싶었다. 메가시티면 어떻고, 메타시티면 어떤가. 건축가는 실속 없는 슬로건을 내걸기보다 복잡해진 도시에 뛰어들어 충돌하는 사회적 요구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메타시티(성찰적 도시)’는 승 씨가 ‘성장과 확장의 메가시티 시대와의 결별을 다짐’하며 새롭게 꺼내든 화두. ‘비움의 미학’이란 ‘채우려 말고 비워 그 공간을 시민들에게 내 주자’는 뜻에서 그가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건축관이다. 김 교수는 책에서 “모든 건축에는 비움이 있다. 보편적인 형식을 미학이라고 미화하는 이유는 건축가들의 허세가 한몫했기 때문”이라며 “건축적으로 무익하다”고 적었다. 김 교수는 지난해 건축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김수근의 공간사옥 매각에 대해서도 “일그러진 우리 건축계의 단면을 보았다”고 했다. 승 씨를 포함해 문화계 인사들은 공간그룹이 부도나 사옥이 매물로 나오자 성명을 내고 공공 재원으로 사들여 보존하자고 주장했다. 잠재적 인수자를 죄악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공간그룹은 건축가들에게 월급도 못 주는 형편임에도 결국 공간사옥을 제값 못 받고 팔았다. 당시 성명서 제목이 ‘공간사옥은 부동산이 아니다. 문화다’였다. 김 교수는 “내가 하는 건축은 문화고, 너희들이 하는 건축은 부동산이라는 배타적인 엘리트적 자세”라고 비판했다. 이 밖에 △공공 건축 설계 심사위원 선정의 공정성을 위해 ‘심사일에 임박해 아무데나 전화 걸어 되는 대로 심사위원회 꾸리는’ 공공기관 △심사위원 정보를 빼내 로비전을 벌이는 건축가들 △설계비가 제자리걸음임에도 제값 받기 노력을 않는 건축계를 질타했다. ―프랑스 철학자 에밀 오귀스트 샤르티에의 말을 인용해 건축가는 ‘상인형’ 인간이 돼야 한다고 했는데…. “칠흑 같은 밤에 별자리에 의지해 항해하는 ‘선원’처럼 건축을 정신의 산물이라 말하지도, 자기 소출만 신경 쓰는 ‘농부’도 되지 말라는 뜻이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상인’처럼 외연을 넓혀 다른 영역과도 널리 소통해야 한다. 지금은 일을 골라서 할 때가 아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1-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결을 거슬러 도시를 솔질하기

    옛 공장지대였던 서울 금천구의 지역성을 살린 기획 전시 ‘2014 금천예술공장 커뮤니티&리서치 프로젝트’가 20일 개막한다. 5회째인 올해 주제는 ‘결을 거슬러 도시를 솔질하기’. 잊힌 역사에 주목했던 발터 베냐민이 얘기한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기’에서 따온 제목으로, 금천지역에 머물며 미시사를 발굴해온 국내외 작가 6팀의 작품이 전시된다. 금천구에 사는 주부 9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금천미세스’는 지역 주민이 기억하는 장소에 담긴 이야기를 소재로 한 ‘야(夜)한외출-달빛 금천’을 선보인다. 다음 달 10일까지.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1-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獨서 고향 잊을까봐, 1960년대 무월리만 그렸어요”

    구부정한 횃대에 감긴 듯 걸린 명주 천, 고무신, 그리고 등 굽은 쪽진 머리 여인. 한국에선 보기 힘들어진 옛 모습이 그의 그림 속에 있다. 비행기로 10시간을 넘게 날아가야 닿는 독일 함부르크 교외 작업실에서 새벽까지 씨름하며 그려낸 작품들이다. “제 몸이 기억하는 고향은 1972년 독일로 떠나기 전에 머물러 있어요. 전남 담양의 대숲으로 둘러싸인 고향 무월리에선 어머니가 할머니와 길쌈하며 옷을 지어 주셨지요.”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개인전(다음 달 31일까지)을 갖는 재독 화가 송현숙 씨(62)는 그림도, 사투리도 1960년대 무월리 시절에 멈춰 있다. 그는 서독 간호보조사 모집 광고를 보고 나이 스물에 함부르크로 떠나 독일인 남편(요헨 힐트만 전 함부르크 미대 교수)과 지금껏 살고 있다. 그래서 호남 사람보다 더 진한 사투리를 쓰고, 한국에 살았다면 못 그렸을 토속적인 작품을 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8남매의 넷째로 태어난 송 작가는 “고교 졸업 후 그 이상의 뒷바라지는 기대하기 어려워 스스로 기회를 잡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고 했다. 당시 파독 간호사들은 계약기간이 끝난 뒤 절반은 귀국하고 절반은 남았는데, 송 작가는 독일에 남아 제2의 인생을 개척한 쪽이었다. “4년간의 간호사 생활 중 마지막 1년은 정신병동에서 약물중독자들을 돌봤어요. 그림 그리기와 도자기 굽기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보며 ‘성인이 돼서도 미술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그는 1977년 늦깎이 대학생으로 함부르크 미대에 진학해 그림을 배웠다. 지금의 한국적인 화풍은 1984년 독일 학술교류처의 장학금을 받아 전남대 미대로 연수를 와서 한국 미술사와 서예를 배우며 형성된 것이다.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 고향의 이미지가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듯했어요.” 송 작가는 서예가가 그러하듯 단숨에 획을 긋고, 10획을 넘지 않는 붓질로 그림을 완성한다. 도배할 때 쓰는 한국의 귀얄 붓에 서양 물감인 템페라를 묻혀 그린다. 작품 제목 ‘5획’은 5획으로 완성한 그림, ‘7획 뒤에 인물’은 7획으로 완성한 그림 저편에 숨겨진 인물이 있다는 뜻이다. 10가지 정도의 소재를 최소한의 붓놀림으로 반복해 그려내는 그의 작풍에선 구도자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막대기는 “정착할 때 쓰는 말뚝의 의미도 있고, 고향과 제2의 고향, 현재와 과거를 뜻하기도 한다”고 했다. 말뚝을 이어주는 명주 천은 삶과 죽음을 모두 아우르는 이미지여서 즐겨 쓴다. “집 앞 텃밭에서 키운 푸성귀로 저녁을 해 먹고 나면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작업실에 스스로를 감금해 새벽까지 그립니다. 그림의 바탕색에선 푸른 기운이 감도는데 고향 담양의 대숲 같기도 하고, 40년을 살아온 함부르크의 사시사철 푸른 잔디 같기도 해요.”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1-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토요일에 만난 사람]‘화제만발 컬렉터’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

    그에겐 ‘촉’이 있다. 주식을 사면 주가가 뛴다. 시름시름 앓던 기업도 그가 손보면 황금알을 낳는다. 충남 천안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해 백화점 멀티플렉스 갤러리까지 연매출 3500억 원의 중견기업인 아라리오그룹을 일궈낸 김창일 회장(63). 사람들은 그의 촉을 부러워하고 타고난 사업가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그가 사업적 촉을 점잖은 미술계로 뻗치자 부러움과 인정은 시기, 비판과 섞이기 시작했다. 1978년부터 36년간 약 3700점의 미술품을 모아 세계적인 컬렉터가 되는 동안 “천안 졸부가 미술 시장을 흔든다”는 말이 나왔다. 컬렉터라면 간송 전형필은 못 되어도 비슷하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씨킴(CI Kim)’이라는 예명으로 2003년 첫 개인전까지 열자 쑥덕거림은 커졌다. 지난해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물로 꼽히는 김수근(1931∼1986)의 공간 사옥을 인수했을 땐 “장사꾼에게 넘어갈 물건이 아닌데…”라는 우려가 나왔다. 올가을 그는 서울과 제주에 현대미술관을 4개나 개관하면서 다시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올해 9월엔 공간 사옥을 리모델링한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를, 지난달엔 제주시 탑동로의 극장과 자전거 상가, 산지로의 모텔을 새로 단장한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 ‘…탑동바이크샵’ ‘…동문모텔’을 개관했다. 내년 3월엔 산지로에 미술관이 하나 더 문을 연다. 천안과 서울, 중국 상하이에는 아라리오 갤러리가 있다. 백남준, 앤디 워홀, 데이미언 허스트, 마크 퀸, 키스 해링, 신디 셔먼 등 미술관을 가득 채운 그의 컬렉션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전시에 졸가리가 없다”는 냉정한 비판보다는 “좋은 작품 정말 많이 모았네”라는 놀라움이 앞선다. 천안의 집과 제주 작업실에서 지내다 모처럼 서울에 온 김 회장을 서울 종로구 율곡로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만났다. 청바지와 후드티, 카키색 사파리를 무심한 듯 걸쳤지만, 복숭아뼈가 보이도록 맨발에 신은 로퍼가 “실은 신경 좀 썼어”라고 말해주었다.“주식 부동산 말고 그림만 산다” ―컬렉션도 대단하지만 기가 센 현대미술에 밀리지 않고 어울려주는 건물이 걸작임을 절감한다. 건물 곳곳의 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은 작품보다 더 아름답다. “10년 전 이상림 공간건축 대표의 제의로 이곳에서 특강을 하면서 처음 와 봤다. (지난해 공간건축이 부도나 사옥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난 300억 원 정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공매 최저가가 150억 원이었다. 공매가 유찰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이 대표를 만나 ‘150억 원에 달라’고 했다. 유찰되면 할인해주는데 이런 건 깎는 게 아니다.” ―미술관 옆 유리 건물인 신관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선 창덕궁이 내려다보인다. 이곳을 사무실로 썼던 공간건축 사람들은 ‘유리 건물이라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며 불편해했는데, 일반인도 드나들 수 있는 상업시설이 되니 건물이 더 좋은 쓰임새를 만난 듯하다. “신관이 없었으면 구관(미술관)도 죽었을 것이다. 설계자인 공간건축의 2대 대표인 장세양 선생(1947∼1996)에 관한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미술관 개관하면서 레스토랑에 신경을 많이 썼다. 미술관은 식당이 포함된 개념이다. 좋은 작품 보고 충격받은 뒤 레스토랑서 커피 마시며 음미하는 거다. 지하 빵 공장에서 빵도 직접 굽는다. 식당은 내 주 전공이다. 그동안 식당 25개를 직영해 봤다.” ―제주에만 미술관이 4개다. 작업실도 제주에 있다. 왜 제주인가. “제주는 거리의 야생화까지 모든 게 예술이니까. 앞으로 5년 안에 제주에 미술관을 9개 개관한다. 제주는 사람들이 마음먹고 가는 곳이어서 계획을 세워 집중적으로 돌아다닌다. 미술관 근처에 카페와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해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거다.” ―서울과 제주에 최근 개관한 미술관 모두 신축이 아니라 리모델링한 것들이다. “신축할 경우 설계는 멋진데 전시엔 나쁜 공간이 나오기 쉽다. 버려진 건물을 내 컬렉션으로 재생하는 데 관심이 있다. 탑동시네마는 2005년 폐관했는데 2006년 경매 때 23억 원에 응찰했다 떨어졌다. 2012년에 19억 원에 샀다.” ―제주에 미술관과 레스토랑을 위해 건물을 여러 채 샀다고 들었다. 부동산 투자에도 ‘촉’이 있는가. “난 내가 쓸 건물만 산다. 투자용으로는 안 산다. 군 제대 후 대학 재학 시절 주식으로 수천만 원을 벌었다. 그 돈으로 술 마시고 흥청망청 살았는데 그때 생활이 악몽 같았다. 증권이나 부동산에서 나오는 공돈은 인생을 망친다. 마음 자세 하나하나가 씨가 돼 자라는 것인데…. 그래서 주식이나 부동산은 안 한다.”“나쁜 그림은 빨리 팔고, 좋은 그림은 산삼 만들라” 그는 천안 갑부로 알려져 있지만 서울이 고향이다. 서울서 휘문고와 경희대 경영학과를 다녔다. 대학 졸업 후 어머니가 빚 대신 받은 천안 고속버스터미널의 운영을 맡으면서 천안 사람이 됐다. “당시 터미널 사업은 사양 업종이었다. KTX가 생기고 자가용 시대가 올 테니 터미널은 전망이 어두웠다. 나는 매점 직영이라는 카드로 적자 터미널 사업에서 억대를 벌기 시작했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사업하느라 힘들지 않았나. “세상을 넓게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도시가 작으니 시청의 고위직 공무원이나 국회의원과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고, 많이 배웠다.” ―예전에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날로그 시대엔 금과 부동산을 사들였지만 디지털 시대엔 미술작품이 금이다’라고 했다. “매년 20억∼30억 원 들여 작품을 산다. 한때 회사 운영이 어려웠을 때 직원들이 팔자는 제의를 했지만 구입한 미술품의 98%는 안 팔았다.” ―실패한 컬렉션은…. “다섯 중 하나꼴.” ―컬렉션은 어디에…. “천안 목천읍에 지하 1층, 지상 3층 약 1만 m²(약 3000평) 규모로 수장고를 지었다. 매년 유지비로 5억 원이 든다.” 김 회장은 미국의 유명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선정하는 세계 200대 컬렉터 명단에 올해까지 7년째 이름을 올렸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다. 그에게 ‘미술품 컬렉션을 하려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말이 빨라졌다. “첫째, 최고의 작품을 사야 한다. 그러면 손해 보는 일이 없다. 같은 작가의 작품도 다 다르다. 작가를 선택했으면 그의 최고작을 골라야 한다. 100에 99는 작가가 아니라 작품을 잘못 고른 것이다. 둘째, 깎지 말고 사라. 제주 동문모텔 미술관에 전시된 디노스와 제이크 채프먼 형제의 독일병정들(‘자본이 고장났다!예스?노!바보!’)은 홍콩아트페어 화이트큐브에서 100만 달러(약 11억 원) 주고 샀는데 나중에 800만 달러까지 갔다. 제이크에게 ‘사겠다’고 했더니 ‘다른 사람이 먼저 15% 디스카운트(할인) 조건으로 샀다’고 했다. 난 ‘노 디스카운트’를 불렀고 5분 만에 샀다. 세월이 지나면 이때 할인율은 아무 의미가 없다. 셋째, 나쁜 작품은 ‘사주세요’ 하지만 좋은 그림이란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가 기다려야 한다. 공간 사옥 살 때 모두 반대했지만 난 ‘지금 안 사면 평생 후회한다’며 질렀다. 기회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넷째, 나쁜 그림은 빨리 팔고, 좋은 그림은 홍삼에서 산삼으로 만들어야 한다. 홍삼은 몇십만 원이지만 산삼은 억대 이상을 받을 수 있다. 장미셸 바스키아 작품을 50만 달러에 샀는데 1년 반 만에 80만 달러가 되고, 다시 1년 후 500만 달러가 됐다. 탑동시네마 미술관에 전시한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는 10년 전 20만 달러에 팔았는데, 미술관에 꼭 필요해서 지난해 크리스티 경매에서 240만 달러 주고 샀다. 결국 그림이건 부동산이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긴다.”“그림에 빠지면서 내 삶은 윤택해졌다” 그는 현대미술 작가다. 2년에 한 번씩 여름마다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아라리오 미술관에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본인의 작업들도 전시했다. 개관 기념 기자회견에서는 “자기 미술관에 자기 작품을 전시?” “그것도 대가들 작품과 나란히?”라는 질문이 나왔고 그는 “논란이 된다는 점은 알지만, 그(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지금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학교에서 배우진 않았지만 수많은 레스토랑을 부수고 만들고 하면서 예술을 배웠다. 해외 레스토랑 다니며 조사 연구하는데 사진을 못 찍게 하니 대신 드로잉을 수없이 했다. 현대미술은 라이선스가 필요하지 않다. 미술가가 학교에서 탄생하는 시대가 아니다. 아티스트는 돌연변이 식으로 생기는 것이다. 내가 도둑질하는 것도 아닌데 욕한다. 오히려 격려해야 하는데….” ―본인 작품도 팔아 봤나. “국내외 몇 곳에서 구매 제안을 해왔지만 거절했다. 내가 내 작품 팔면 ‘작전일 거다’라며 수군댈 것이다. 내 가까운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게 싫다. 행복이란 내가 행복한 게 아니라 내 가까운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보는 것이다. 확실한 건 그림 그리고 미술에 빠지면서 내 삶은 윤택해졌다는 거다.” 소더비를 세계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로 키운 피터 윌슨 회장은 “소유하고 싶은 마음 없이 작품을 감상하기란 어렵다. 인간의 탐욕이 없다면 미술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컬렉터가 미술 발전에 중요하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언젠가는 재단을 만들 것이다. 그러면 내 컬렉션은 공공의 것이 된다”라고 했다. 그렇게 된다면 “씨킴이 한국 미술계 발전에 기여한 게 무엇이냐”는 목소리도 쑥 들어갈 것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1-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토요일에 만난 사람]아라리오 미술관 영구전시 작품들

    ‘픽셀 디어 패밀리#2’ 일본 고헤이 나와(39)제주 탑동시네마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사슴 박제에 다양한 크기의 크리스털이나 투명 플라스틱을 뒤덮어 디지털 픽셀 덩어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투명 플라스틱이나 크리스털로 뒤덮인 사슴은 원래 형태와 색과 질감이 해체된 채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작가는 사람이 사슴으로 인식하는 것이 실은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서울 미술관에 ‘픽셀 더블 디어#7’이 전시돼 있다. ‘셀프(Self)’영국 마크 퀸(50) 작가의 머리 모양대로 뜬 거푸집에 작가의 피를 채운 뒤 응고시켜 떼어낸 핏덩어리다. 퀸은 1991년 처음 ‘셀프’를 선보여 ‘영국 젊은 예술가들 그룹(yBa)’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두상을 채우는 피는 모두 4.5L로 인체의 혈액총량이다. 작가는 조금씩 피를 뽑아두었다 5년마다 한 작품을 만든다. 냉동장비가 없으면 핏덩어리가 녹아버린다. 1996년 두 번째 ‘셀프’는 영국의 슈퍼 컬렉터 찰스 사치가 소장했으나, 청소부가 실수로 냉동장비의 전원 코드를 뽑는 바람에 사라졌다. 서울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2001년 작. ‘모든 게 안에 있다’ 인도 수보드 굽타(50) 서울 미술관 전시작품. 택시 상판을 떼어낸 뒤 인도인들이 많이 쓰는 짐꾸러미를 붙들어 맸다. 가파른 경제성장과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도시로 향하는 인도인들을 표현했다. 굽타는 일상의 재료를 이용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인도의 다양한 사회 문제를 작품에 반영해 왔다. 탑동시네마 미술관 2층엔 작품 ‘배가 싣고 있는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가 설치돼 있다. 길이 20m가 넘는 배 안에 책상 의자 침대 그물 자전거 등을 잔뜩 실은 작품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1-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마음을 산 편지… 마음을 찬 편지

    “오늘자 신문에서 메추라기 통구이 앞에 서 계시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약속드렸던 팬케이크 조리법을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급히 조리법을 보내드립니다.” 소박하니 정감 있는 편지글이다. 그런데 받는 이가 대통령, 보내는 이는 엘리자베스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필체를 담고 있는 편지지 위쪽엔 ‘버킹엄궁’이라고 인쇄돼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60년 1월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쓴 편지다. 편지는 이 맛이다. 편지지를 고르고, 문구를 다듬어, 세상 유일의 필체로 마음을 전하는. 파워블로거인 엮은이도 아날로그 손편지로 먹고산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편지와 통신문을 수집해 온라인 편지박물관 ‘레터스 오브 노트(Letters of Note·이 책의 원제)’를 운영한다. 주간 방문자 수가 약 150만 명이다. 이 중 손으로 쓰거나 낡은 타자기를 두드린 편지와 전보 125통을 추려 원본 이미지와 엮은 게 이 책이다. 미국 대통령은 단골 수신자다. 1958년 3월 엘비스 프레슬리가 입대하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제발 엘비스에게 미군 헤어스타일은 시키지 마세요”라는 팬들의 편지를 받았다. 1860년 10월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11세 소녀에게서 “구레나룻을 기르면 훨씬 나아 보일 것”이라는 편지를 받았다. 링컨은 답장도 하고, 구레나룻도 길렀고 대선에서 이겼다. 예술가들의 편지는 줄긋기 할 곳이 많다. 오스카 와일드는 1891년 독자에게 쓴 답장에서 “예술작품은 꽃이 쓸모없듯이 쓸모없다. 꽃은 그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피어난다”고 했다. 호주 가수 닉 케이브는 1996년 MTV 어워드 최고 남자가수 부문 후보로 오르자 MTV에 정중하게 수상을 거절하는 편지를 보냈다. “제 뮤즈는 말이 아니고, 저도 경마를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인기 작가여서인지 스콧 피츠제럴드가 주고받은 편지가 많다. 1934년 5월 그가 네 번째 소설 ‘밤은 부드러워’에 대한 의견을 묻자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잔인하게 답했다. “실제로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을 꾸며서는 안 되지.… 정말 진짜처럼 꾸며내서 나중에 실제로 일이 그런 식으로 일어나도록 해야지.… 모든 게 보고 듣는 것에서 나와. 자넨 보는 건 잘해. 하지만 듣지를 않지.” 아내 젤다와 불화했던 피츠제럴드. 11세 딸에게 보낸 편지엔 애정을 듬뿍 담았다. “용기에 대해, 청결에 대해, 효율성에 대해 걱정해라.… 대중의 의견에 대해, 과거에 대해, 미래에 대해, 실패에 대해, 남자아이들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추신: 노안이 온 독자라면 돋보기를 준비하자. 글자가 깨알이다. 넓은 지면 텅텅 비워놓고 뭔 일이냐고 출판사에 따졌더니 “공동 제작자인 저작권자가 원서의 글자 크기와 디자인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해명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1-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21세기 한국의 진경은 자본주의 소비물 둥둥 뜬 호수

    미키마우스, 메릴린 먼로, 맥도날드 햄버거. 일상이 돼버려 새로울 것 없는 이미지들이 한국 산수화에 등장했다. ‘일상에 잠복한 기이한 낯섦’을 수묵으로 포착해온 유근택 성신여대 동양화과 교수(49)는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를 그릴 때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중국의 관념적 산수 대신 ‘지금’ ‘여기’의 실경에 주목한 정선처럼 그도 21세기 한국의 진경에 충실했다는 뜻이다. 다음 달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OCI미술관에서 열리는 ‘끝없는 내일’전에 나온 그의 ‘산수’ 연작 10점은 동양화의 현대화, 좀 더 정확히는 ‘현실화’라는 스스로 출제한 문제에 대해 가로 2.7m, 세로 1m 크기의 한지에 수묵으로 써낸 답들이다. 천혜의 절경을 마다하고 충북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 충주호의 풍광을 소재로 택한 것부터 진경을 그리겠다는 태도가 확실하다. 뭉개진 윤곽이 그려내는 물 빠진 돌산은 “이런 데 오고 싶지?” 하고 유혹하는 모양새가 아니다. 데칼코마니처럼 수면에 비친 산세는 더욱 흉흉하다. 작가가 수학여행 길에 들른 충주호가 꼭 이랬다. 물이 빠져 흉측해진 풍경 아래에서 사람들은 자연에서 치유받겠다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며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산수, 어떤 유령들’에선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와 황금빛 맥도날드 로고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같은 서구 문명의 아이콘들이 홍수처럼 밀려온다. ‘산수, 떠내려온’에는 고전적 산수화 속 호젓한 고깃배 대신 가구와 변기와 빨래 건조대 같은 온갖 집기들이 가득 실려 있다. 이것이 작가가 바라본 한국 사회의 ‘진경’이다. 386세대인 작가는 “걸개그림이 아니면 미술로 쳐주지도 않던” 민중미술의 시대에 ‘개인’과 ‘일상’에 주목해 파란을 일으켰다. 할머니의 얼굴이나 어린애 장난감으로 어질러진 거실, 샤워하는 모습 등 집안 풍경을 주로 그려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시선을 바깥 사회로 돌렸다. 서울 경복궁 근처 옛 미국대사관저를 보호하던 키 높은 돌담장을 그린 ‘말하는 벽’ 연작도 그렇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돌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재잘재잘 수군수군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담장 아래엔 게임기를 들여다보는지 아이들이 책가방 메고 신발주머니 든 채로 어깨를 맞대고 열중해 있다. 모두가 말하지만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끼리끼리 모여 견고한 벽을 쌓는 지금 이곳의 소통 방식과 겹쳐진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집중한다면서 왜 동양화여야 할까. “화선지와 먹이 아니면 시간성과 공간성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이 작가의 대답이다. 지난 2년간 강의하는 틈틈이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가리지 않고 그려낸 작품 90여 점 가운데 60여 점을 추렸다. “시간은 고무줄 같아서” 짬을 내는 게 어렵지 않았단다. 전시 제목 ‘끝없는 내일’은 희망을 습관처럼 내일로 미룬 채 남루한 일상을 사는 우리네 모습을 요약한 것이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1-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北 이해하는데 가장 큰 도움”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사진)가 탈북자들이 나오는 종합편성TV 프로그램 가운데 선호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명준 임종섭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연구팀이 최근 종편 4개 채널의 탈북자 관련 프로그램을 시청한 4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만갑’을 가장 좋아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185명(38.6%)으로 제일 많았다(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보고서 ‘미디어에 나타난 탈북자 연구’). 탈북 여성들이 나오는 토크쇼 ‘이만갑’은 시청자 만족도 조사에서도 4.96점(1∼7점·높을수록 만족도 높음)을 받아 1위를 차지했다. 2위도 채널A의 ‘특별취재 탈북’(4.86점)이었다. 일곱 살 꽃제비 소년 진혁이를 포함해 북한 주민 15명의 탈북 과정을 동행 취재한 다큐멘터리다. 사실 전달을 가장 잘하는 프로그램에도 ‘특별취재 탈북’(5.31점)과 ‘이만갑’(5.15점)이 각각 1, 2위로 꼽혔다. 정보에 대한 신뢰도 평가에서도 ‘특별취재 탈북’이 5.05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북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는지를 평가하는 항목에서는 ‘특별취재 탈북’(5.19점)과 ‘이만갑’(5.11점)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남북한의 사회 통합 기여도 평가에서도 ‘특별취재 탈북’(4.95)과 ‘이만갑’(4.72)이 1, 2위를 차지했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종편 4개 방송사는 기존 지상파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실험을 시도함으로써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며 “특히 북한과 탈북자 관련 프로의 소재와 형식의 다양화는 여러 측면에서 의미 있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4-11-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