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이소연 기자

동아일보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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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소연 기자입니다.

always99@donga.com

취재분야

2025-11-07~2025-12-07
문화 일반37%
문학/출판37%
미술10%
역사7%
사건·범죄7%
사회일반2%
  • 같은 기법, 다른 얘기… 사제의 작품 한자리에

    스승과 제자의 작품은 닮은 듯 달랐다. 이스라엘의 국립 베짤렐예술디자인학교에서 사제로 연을 맺은 현대미술 작가 데이비드 걸스타인(78)과 한국 설치미술 작가 에덴 박(52)의 2인 기획전 ‘커팅 에지(CUTTING-EDGE)’가 14일 서울 광진구 프린트베이커리 워커힐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개막했다. 전시에서는 올해 작품부터 2000년대 대표작까지 총 54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같은 기법으로 제작된 사제의 작품이 한데 전시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벽면에 나란히 소개된 걸스타인의 ‘공존’(2014년)과 에덴 박의 ‘혼돈’(2022년)이 대표적이다. 에덴 박이 “스승에게서 ‘컷 아웃’ 기법을 유전자처럼 물려받았다”고 밝히듯 이들의 작품은 외형적으로 닮았다. 종이 위에 그린 드로잉대로 철재나 나무를 오려내 그 위에 형형색색의 패턴을 칠한 뒤 겹겹이 쌓아올린 형태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르다. 걸스타인은 수십 마리의 나비가 뒤엉킨 모습을 겹겹의 철재 위에 그려 조화로운 자연을 형상화했다. 에덴 박은 타원형 패턴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뒤 ‘혼돈’이라고 이름 붙였다. 스승이 나비, 새, 자동차 등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는 사물과 동물을 주로 다룬다면 제자는 추상적인 감정을 담아낸 것. 에덴 박이 2019년부터 최근까지 선보이고 있는 ‘Secret Prayer’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기저귀 천을 수백 개 조각으로 잘라 염색한 뒤 격자로 된 나무틀에 겹겹의 매듭을 지어 완성한 이 시리즈는 무한히 연결되는 매듭처럼 끝없이 자식을 걱정하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상징한다. 11월 15일까지. 무료.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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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RM “나라밖 문화재 보존” 2년 연속 1억씩 기부

    “나라 밖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위해 써주시면 좋겠어요.” 지난해 7월 서울 마포구에 있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남성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문화예술 종사자”라고만 소개한 그는 “한국 바깥에 있는 문화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다가 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써 달라”고 했다. 약 3개월 뒤 기부 확약을 맺으며 재단이 알게 된 남성의 본명은 김남준(28). 방탄소년단(BTS)의 리더인 RM(사진)이었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BTS의 RM이 지난해 1억 원을 기부한 데 이어 올해도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 보존 및 복원에 써 달라’며 추가로 1억 원을 기부했다”고 15일 밝혔다. 지난해는 RM이 기부 사실을 공개하길 바라지 않아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재단 측은 “지난해 RM이 기부한 1억 원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활옷’을 보존할 길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활옷은 조선 왕실의 공주나 옹주가 가례(嘉禮) 때 입던 궁중 공식 의복이었으나, 점차 민간으로 널리 퍼지며 신부가 혼례 때 입는 예복으로 자리 잡은 전통 옷이다. 현재 조선 활옷은 국내에 30여 점, 국외에 10여 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돼 그 가치가 크다. 그중 RM이 복원에 힘을 보탠 LACMA 소장 활옷은 20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장은 “이달 말 LACMA에서 해당 활옷을 들여와 보존 처리 작업을 진행한다”며 “예정대로 6개월 작업을 마치면 다시 소장 미술관으로 돌아가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 의복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기부한 1억 원은 “세계에 한국 회화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던 RM의 바람대로 사용된다. 문화재청과 재단은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 회화 도록을 제작하는 데 기부금을 쓸 계획이다. RM은 2020년부터 매년 자신의 생일(9월 12일)에 맞춰 9월에 문화 예술 분야에 1억 원씩을 기부해왔다. 2020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단에 기부했다. 미술관 측은 “미술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한 도록을 만들어 달라는 RM의 뜻을 존중해 근현대 한국 작가의 작품을 담은 도록을 제작해 전국 도서관 등에 전달했다”고 밝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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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리남 정부 “넷플릭스 ‘수리남’서 마약국 묘사… 법적대응”

    남미 국가 수리남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수리남’으로 인해 마약 국가로 비친다며 제작사인 넷플릭스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14일 수리남헤럴드에 따르면 알베르트 람딘 수리남 외교·국제협력장관은 12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수리남은 수년간 마약 운송 국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이젠 아니다.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넷플릭스의 ‘수리남’으로 인해 불리한 상황이 됐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넷플릭스는 “별도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수리남을 겸임하고 있는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은 13일 ‘수리남 한인 사회 대상 안전공지’를 통해 “드라마 여파로 많이 곤혹스러울 것”이라며 “안전에 주의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즉시 연락하라”고 당부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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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한국사 연표서 고구려-발해 빼… 韓 “사과를”

    중국이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행사에서 한국 고대사를 소개하며 고구려와 발해를 삭제한 것으로 드러나 한국이 즉각적인 수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중국 정부는 오히려 “고구려 문제는 토론이 가능한 학술 문제”라고 맞받았다. 양국 우호협력을 증진하자는 행사에서 중국이 고구려 발해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한중 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베이징 중국 국가박물관은 한중 수교 30주년, 중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7월부터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展)’을 열고 있다.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전시회에 한국 고대사 연표와 여러 유물을 제공했다. 문제는 13일 현재 전시장에 게시된 ‘한국고대역사연표’에 고조선부터 조선까지 건국·멸망 연도를 표기하면서 고구려와 발해를 아예 뺐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연표 하단부에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했다’고 표기했다. 한국이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로 인정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었다. 중앙박물관 측은 이날 “중국 측에 제공한 연표에 고구려와 발해 건국 연도가 포함돼 있었다. 중국 측이 임의로 편집했다”며 “즉각 수정과 함께 사과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통상 전시 때 제공 기관의 자료를 성실히 반영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라고 비판했다. 한국 외교부는 “역사 문제는 우리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역사 왜곡 동향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브리핑에서 “고구려 문제는 학술 문제”라며 “학술 영역에서 전문적인 토론과 소통을 할 수 있으며 정치 이슈화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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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국사-마곡사 단청 속 미지의 색 ‘동록’ 비밀 풀었다

    경북 경주 불국사 대웅전, 충남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등 고건물의 단청을 칠하는 데 쓰였던 전통 안료 ‘동록(銅綠·동으로 만든 녹색안료)’은 연잎처럼 짙은 녹색을 띠어 하엽(荷葉·연꽃의 잎)이라 불렸다. 하지만 19세기 말 근대로 접어들면서 잃어버린 색이 되고 말았다. 화학 안료 시장이 커지면서 비싸고 오랜 공정 과정을 거치는 전통 안료는 전수의 맥이 끊겨버렸기 때문이다. 동록은 한중일 전통 안료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에서조차 복원하지 못한 ‘미지의 색’으로 남았다.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동록을 지난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복원해냈다. 2019년부터 한중일 고문헌을 토대로 제조법을 찾아내 전통 안료 강국인 일본과 중국보다 먼저 동록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것. 7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복원기술연구실에서 만난 이선명 학예연구사(40)는 “한중일 고문헌에 단 두 줄로 설명된 동록의 제조법을 알아내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하며 웃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동록 제조법은 659년 당나라 의학서인 ‘신수본초(新修本草)’에 나오는 “동 분말과 광명염(光明鹽·염화나트륨), 요사(B砂·염화암모늄) 등을 이용해 제조한다”는 기록이 대표적이다. 옛 선조들은 녹슬어 부식된 동 그릇 표면이 녹색을 띤다는 데서 착안해 동이 부식됐을 때 나오는 물질을 이용해 녹색 안료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문헌 속에는 재료에 대한 힌트만 나와 있을 뿐 정확한 성분 비율이 전해지지 않아 제조법은 미궁 속에 있었다. 복원기술연구실 소속 강영석 연구원(44)은 “수수께끼를 풀듯 원료인 구리와 부식제인 염화나트륨과 염화암모늄의 비율을 조금씩 조정하며 수백 번이 넘는 실험 과정을 거쳤다”며 “2년간의 실험 끝에 동 분말과 부식제의 비율이 1 대 2일 때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동록을 갈아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무 표면에 채색해 보니 고르게 발리지 않았다. 게다가 빛에 노출될 경우 3년 안에 녹색이 어둡게 변색될 거라는 예측 결과도 나왔다. “‘아, 이제 됐다’고 끝내려는데 다시 난관에 봉착한 거예요. 알고 보니 동록 속에 남아 있는 염 성분 때문에 변색된 거였죠. 동록에서 염 성분을 완전히 제거하기까지 6개월이 더 걸렸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전통을 복원하는 일에는 끝이 없다는 걸 말이죠.”(강 연구원) 어렵사리 얻어낸 동록의 빛깔은 화학 안료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 학예연구사는 “천연안료로 색칠한 표면은 알갱이가 살아 있는 듯 입체적으로 느껴진 반면 화학 안료가 칠해진 표면은 평면적이었다. 이게 바로 전통 안료를 복원하는 이유”라며 웃었다. 옛 단청을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복원할 길도 열렸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전통고건축문화재 44곳에서 녹색 안료로 칠해진 668곳의 성분 분석을 실시한 결과 226곳에 동록이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갈아 만든 천연 녹색 안료 ‘석록(石綠)’이나 ‘뇌록(磊綠)’보다도 동록의 사용 비중이 더 높은 셈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앞으로 단청을 칠하는 장인에게 동록이 가진 특성을 전수해 전통 안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계획이다. “우리는 시간을 거스르는 자들입니다. 하나의 전통 안료가 복원되고 세상에 쓰이기까지 10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지 몰라요. 구닥다리 같아 보여도 우리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에는 원칙을 지켜야죠.”(이 학예연구사) 대전=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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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굴암-불국사도 피해… 기와 깨지고 시설 파손

    국보인 경주 석굴암과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불국사가 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었다. 문화재청이 7일 발표한 ‘힌남노 문화재 피해 현황 보고’에 따르면 국보, 보물 등 문화재 32건이 태풍 피해를 입었다. 지역별로는 △경북 16건 △경남 8건 △경기 4건 △서울 2건 △제주 2건으로 경북 지역 문화재가 입은 타격이 가장 컸다. 그중에서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국보인 경주 석굴암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석굴암으로 진입하는 길목과 마당, 화장실 건물 주변으로 무너져 내린 토사가 덮치면서 탐방로가 전면 통제된 상태다. 마찬가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불국사는 태풍으로 인한 집중호우로 극락전의 기와 일부가 떨어졌고 주변 수목이 뿌리째 뽑혔다. 보물인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은 주변 석축(石築·돌로 쌓아 만든 옹벽)과 인근 도로 일부가 유실됐다. 원성왕릉, 흥덕왕릉, 지마왕릉을 비롯한 경주 지역의 왕릉도 주변 소나무가 비바람에 뿌리째 뽑히거나 축대(築臺·높이 쌓아 올린 대) 일부가 훼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문화재청은 태풍 피해를 본 문화재 인근에 탐방객의 출입을 통제하고 긴급 현장 복구에 나섰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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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잃어버린 색’…단청에 쓰인, 연잎처럼 짙은 녹색을 되찾았다

    연잎처럼 짙은 녹색을 띠어 하엽(荷葉·연꽃의 잎)이라 불렸다. 경북 경주 불국사 대웅전, 충남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논산 쌍계사 대웅전 등 고건물의 단청을 칠하는 데 쓰였던 전통 무기안료 ‘동록(銅綠·동 기물로 만든 녹색 안료)’은 19세기 말 근대로 접어들면서 잃어버린 색이 되고 말았다. 화학 안료 시장이 커지면서 값비싸고 오랜 공정 과정을 거치는 전통 안료는 제법 전수의 맥이 끊겨버린 탓이다. 동록은 한·중·일 전통 안료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조차 복원하지 못한 ‘미지의 색’으로 남았다. 그렇게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우리의 전통 색 동록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복원해냈다. 2019년부터 한·중·일 고문헌을 토대로 동록의 제법을 찾아내 전통 안료 강국인 일본과 중국보다 먼저 동록의 수수께끼를 푼 것. 7일 오후 1시경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복원기술연구실에서 만난 이선명 학예연구사(40)는 “한·중·일 고문헌에 단 두 줄로 설명된 동록의 제법을 알아내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며 웃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동록 제법은 659년 당나라 의학서인 ‘신수본초(新修本草)’에 나오는 “동 분말과 광명염(光明鹽·염화나트륨), 뇨사(硇砂·염화암모늄) 등을 이용해 제조한다”는 기록이 대표적이다. 옛 선조들은 녹슬어 부식된 동 기물의 표면이 녹색을 띤다는 데서 착안해 동 부식 재료로 녹색 안료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문헌 속에는 재료에 대한 힌트만 나와 있을 뿐 정확한 성분 비율이 전해지지 않아 제조 비법은 미궁 속에 있었다. 강영석 연구원(44)은 “수수께끼를 풀듯 원료인 구리와 부식제인 염화나트륨과 염화암모늄의 비율을 조금씩 조정하며 수백 번이 넘는 실험 과정을 거쳤다”며 “2년간의 실험 끝에 동 분말과 부식제의 비율이 1대 2일 때 가장 효율적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부식물로 얻어진 동록을 갈아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무 표면에 채색해 보니 고르게 발리지 않았다. 게다가 빛에 노출될 경우 3년 안에 녹색이 어둡게 변색될 거라는 예측 결과도 나왔다. “‘아, 이제 됐다’고 끝내려는데 또 다시 난관에 봉착한 거예요. 알고 보니 부식물 속에 남아 있는 부식제인 염 성분 때문에 변색된 거였죠. 부식물에서 염 성분을 완전히 제거하기까지 6개월이 더 걸렸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전통을 복원하는 일에는 끝이 없다는 걸.” (강 연구원) 동록을 복원하기까지 2년이면 충분할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무려 4년이 걸렸다. 하지만 어렵사리 얻어낸 동록의 빛깔은 화학 안료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 학예연구사는 “천연안료로 색칠한 표면은 알갱이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반면 화학 안료가 칠해진 표면은 평면적”이라며 “이게 바로 전통 안료를 복원해야 하는 이유다. 아직까지는 문화재 복원에 화학 안료가 많이 쓰이지만 앞으로 전통 안료를 계속 복원해낸다면 자라나는 아이들은 전통의 색이 뿜어내는 입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4년이라는 시행착오를 거쳐 동록이 복원된 덕분에 옛 단청을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복원할 길이 열렸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경주 불국사, 공주 마곡사 등 전통고건축문화재 44곳에서 녹색 안료로 칠해진 668곳의 성분 분석을 실시한 결과 전체 녹색 안료 가운데 39.8%(266곳)에 동록이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작석(孔雀石)을 갈아 만든 천연 녹색 안료 ‘석록(石彩)’이나 ‘뇌록(磊綠)’보다도 동록의 사용 비중이 더 높은 셈이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실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 단청을 칠하는 장인에게 재료의 특성을 전수해 전통 안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일까지 이들의 몫이다. 더 나아가 동록을 포함한 천연 안료의 제법을 국유 특허로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2014년부터 현재까지 동록, 뇌록을 비롯해 총 8가지 전통 안료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민간 기업에 천연 안료 제법 기술을 이전하면 국립문화재연구원이 직접 개발한 전통 안료를 중국과 일본에 수출할 길이 열린다. “우리는 시간을 거스르는 자들입니다. 하나의 전통 안료가 복원되고 이 세상에 쓰이기까지 10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지 몰라요. 세상에 빠르고 값싸고 편리한 것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100년 넘게 단절된 전통을 복원하는 일을 합니다. 구닥다리 같아 보여도 국가지정문화재를 보존할 때만큼은 원칙을 지켜야죠.” (이 학예연구사)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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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시대, 상반된 삶… 20세기 韓中日 청년 6인의 시대정신 조명

    질풍노도나 다름없던 20세기 초 동북아시아의 ‘어떤 청년들’을 상상해 보자.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들은 동시대를 살았지만 각각 다른 길을 걸었고, 훗날 역사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어떤 이는 평화와 인권을 지킨 지사로, 누군가는 침략전쟁을 옹호한 전범으로, 그리고 또 다른 이는 나라와 동포를 배신한 변절자로…. 1일 출간된 ‘혁명과 배신의 시대’(21세기북스)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삶의 궤적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당대 청년 6명을 조명했다. 모두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 청년기를 맞이한 인물들. 독립운동가 조소앙(1887∼1958)과 소설가 춘원 이광수(1892∼1950), 일제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와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布施辰治·1880∼1953), 사상가이자 작가인 루쉰(魯迅·1881∼1936)과 친일정부 주석을 지낸 왕징웨이(汪精衛·1883∼1944)다. 책을 쓴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64·사진)는 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 시대 청년들이 불과 100년 전 동북아시아 청년들의 정신과 생애를 들여다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 보길 원했다”고 말했다. “동시대를 살아간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제국의 침략에 동조하며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지배 권력에 저항하며 평화와 인권의 시대를 열고자 노력했습니다. 당대 청년들의 상반된 삶을 통해 ‘시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않는 이는 몰지성의 시대에 휩쓸린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어요.” 정 교수는 “특히 한국 독립지사들을 대변해 법정에 서길 두려워하지 않았던 후세 변호사의 삶에서 ‘근대가 남긴 희망’을 봤다”고 했다. 그는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한국인 유학생 9명을 변호했다. 한일병합조약에 대해서도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침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교수는 “국가와 민족, 젠더, 인종을 초월해 오직 인권을 변호한 후세의 시대정신은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혁명과 배신의 시대’는 21세기북스가 인문교양총서 시리즈 ‘역사의 시그니처’로 내놓은 첫 번째 책. 기원전부터 근대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사상적으로 대척점에 선 인물들을 통해 그 시대를 조명하는 기획이다. 21세기북스는 “2027년까지 모두 18권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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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찰 없는 자는 몰지성의 시대에 휩쓸린다는 교훈 얻길”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880년대생 청년들은 어떤 세상에서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았을까.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20세기 한·중·일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청년 6인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다른’ 선택으로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남겼다. 누군가는 평화와 인권을 지켜낸 혁명가로, 또 다른 누군가는 제국주의의 침략을 옹호하는 전범이자 배신자로.21세기북스가 기원전부터 19세기에 이르는 각 세기의 시대정신을 돌아보는 인문 교양 총서 ‘역사의 시그니처’의 첫 책 ‘혁명과 배신의 시대’(21세기북스)를 1일 선보였다. 동·서양을 아울러 각 9권씩 총 18권 시리즈로 기획된 시리즈는 시대를 대표하는 여러 인물의 생애를 통해 당대 지배적이었던 시대상과 가치관을 담아내려는 시도다. 총서의 첫 문을 연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64·사진)는 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불과 1세기 전 동아시아를 대표했던 6인의 생애를 반추하며 어떤 선택을 하며 매일의 삶을 살아가야 할지 사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20세기 동아시아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은 6인은 모두 19세기 말에 태어나 침략전쟁이 벌어진 동아시아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내선일체(內鮮一體·일본과 조선은 하나다)’를 옹호하며 변절자로 전락한 춘원 이광수(1892~1950)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외무부장 등을 지낸 독립지사 조소앙(1887~1958),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와 식민지 한국 독립지사를 위해 법정에 선 인권 변호사 후세 다쓰지(布施辰治·1880∼1953), 중화민족을 배신하고 친일정부 주석을 지낸 중국의 정치가 왕징웨이(汪精衛·1883~1944)와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중국의 사상가 루쉰(魯迅·1881~1936). 정 교수는 “이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이들이 남긴 시대 정신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잔존한다”고 설명했다. “책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는 A급 전범 도조 히데키가 1978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사실로 끝맺었습니다. 일본 사회는 아직까지 근대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도조 히데키를 영웅으로 기억합니다. 근대의 그림자는 아직도 동아시아에 드리워져 있어요.” 근대가 그림자만 남긴 것은 아니다. 정 교수는 침략국가 일본에서 도조 히데키와는 다른 인권 변호사의 길을 선택한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의 삶에서 근대가 남긴 희망을 봤다. 그는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된 한국인 유학생 9명을 변호하고 한일병합조약에 대해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침략’이라고 비판한 지성인이었다. 정 교수는 “시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않는 자는 결국 몰지성의 시대에 휩쓸린다”며 ”국가는 물론 민족, 젠더, 인종을 초월해 오직 인권을 변호한 후세 다쓰지가 남긴 시대정신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가 지켜가야 할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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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난당한 불화 ‘독성도’ ‘신중도’ 제자리로

    19세기 조선 불화 ‘독성도(獨聖圖·사진)’와 ‘신중도(神衆圖)’가 도난당한 지 수십 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8월 시도지정문화재 현장 감정 과정에서 과거 도난 신고가 접수돼 있던 독성도와 신중도의 존재를 확인하고 대한불교조계종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고 5일 밝혔다. 독성도는 대구 달성군 용연사 극락전에 봉안돼 있던 문화재이며, 신중도는 전남 구례군 천은사에서 모시던 불화다. 1987년부터 행방이 묘연했던 독성도는 지난해 8월 부산 백운사가 지정문화재로 신청하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해당 불화는 부산에서 화랑을 운영하던 스님이 2018년 입적 전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1871년 제작된 독성도는 홀로 깨친 성인을 형상화한 불화다. 신중도 역시 지난해 8월 경남 거제시 대원사가 지정문화재로 신청하며 존재가 드러났다. 천은사에서 2000년 사라진 뒤 21년 만이었다. 1897년 제작된 신중도는 2019년 서울 종로구 명인박물관이 대원사에 기증했다고 한다. 백운사와 대원사는 사정을 알게 된 뒤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게 옳다”며 불화 2점을 흔쾌히 내놓았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는 6일 환수 고불식(告佛式)이 열린다. 이와 별개로 문화재청은 두 불화의 도난 경위 파악에 나섰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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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립니다]제36회 인촌상 수상자 발표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6일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36회를 맞은 올해 인촌상은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등 4개 부문과 특별 부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기관 및 인물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가 4명씩 참여해 6∼8월 3개월간 진행했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2022년 제36회 인촌상 수상자를 다음과 같이 선정했습니다. ▽교육=민족사관고등학교 ▽언론·문화=이수지 그림책 작가 ▽인문·사회=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 ▽과학·기술=권성훈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특별상=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 인촌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김도연)는 올해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부문에 대해 5월 1일부터 후보자를 접수해 8월 말까지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들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특별상을 포함한 5개 부문 수상자를 선정했습니다.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동아일보와 경성방직을 설립하고 중앙학교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를 통해 인재를 양성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1987년부터 인촌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습니다. 시상식은 10월 1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여 치를 예정입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억 원과 메달을 각각 수여합니다. 제36회 인촌상영광의 수상자들민족정신 교육 앞장… “사회와 세계에 공헌하는 인재 육성”교육 민족사관고등학교 “인촌 김성수 선생이 우리 민족을 지키기 위해 교육을 강조하고 학교를 설립했다면 민사고는 그 후손들이 민족정신을 잃지 않고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도록 교육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2일 강원 횡성군 민사고에서 만난 한만위 민사고 교장(62)은 인촌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한 교장은 민사고의 교육 철학을 “개인적 성취만 좇는 영재가 아니라 민족과 사회, 세계에 공헌하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인촌이 강조한 ‘공선사후(公先私後·공적인 일을 우선시하고 개인적인 일은 미룬다)’ 정신과도 맞닿는다. 민사고는 이를 위해 ‘민족’이라는 토대 위에 ‘자율’과 ‘융합’을 더했다. 민사고 교실에는 학년과 반 표시가 없다. 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 과목의 교사 연구실을 찾아가 수업을 듣는다. 2008년 도입한 ‘무학년·무계열’ 교육도 민사고만의 특징이다. 선(先)이수 과목을 수강하면 학년에 상관없이 다양한 선택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 3년 전에 시작한 ‘융합영재교육’은 민사고가 국내에서 처음 도입한 교육 실험이다. 학생들은 입학 첫 학기부터 ‘융합 독서’, ‘융합 상상력’, ‘융합 프로젝트’ 코스를 5학기에 걸쳐 이수해야 한다. 관심 분야의 책을 실컷 읽고, 이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설정해 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런 민사고의 도전과 실험은 국내외 영재학교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태국,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도 커리큘럼을 소개해 달라는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민사고에서의 3년은 ‘무엇을, 왜 공부하는지’ 스스로가 깨치는 과정입니다. 여기에 민족과 공동체에 대한 개념을 더했을 때 좋은 리더가 탄생할 것입니다. 인촌상은 이런 학교의 노력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한 교장) 공적 민족사관고는 ‘민족정신으로 무장한 세계적 지도자 양성’이라는 건학 이념 아래 1996년 설립됐다. 올 6월 작고한 최명재 파스퇴르유업 창업주가 사재 1000억 원을 들여 학교를 세우고 키웠다. 2012년에는 세계 명문 사립고 단체인 ‘G20 하이스쿨’(현재는 G30 하이스쿨)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학교 역량을 인정받았다. 매년 고교생 50명을 선발하는 ‘대한민국 인재상’에도 최근 5년 동안 1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입시 위주가 아닌 자율에 기반한 교육을 추구하면서도 다수의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졸업생의 약 37%인 986명이 해외 주요 대학에 진학했다. 그림책 불모지서 문학-미학적 혁신… “아이들 삶에 스며들 것” 언론·문화 이수지 그림책 작가 “그림책은 문학도 미술도 아닌 ‘경계’에 선 장르다 보니 주목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인촌상이 그림책도 엄연한 예술이라 인정해주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인촌상 언론·문화 부문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48)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는 올해 3월 한국인 최초로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그림 작가 부문을 수상했다. 이 작가는 그림책 작가 최초의 인촌상 수상자다. 국내에는 그림책 작가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이 없다. 그는 “문화의 기반을 다지고 저변을 확대해 온 인촌 선생의 정신이 담긴 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며 “아이들을 위한 예술을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고 인정해주신 덕분에 예술의 저변이 한 차원 더 확장됐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는 어린이를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인촌상 수상을 통해 그 책임과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고 밝혔다. 인촌상 심사위원들은 그림책 불모지에서 그가 걸어온 길이 “문학적이며 미학적인 혁신”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어린이가 생애 처음 만져보는 책이라는 물성(物性)에 매료돼 그림책 작가가 됐다. 제본선을 활용한 경계 그림책 3부작인 ‘거울속으로’(2009년)과 ‘파도야 놀자’(2008년), ‘그림자 놀이’(2010년)는 현실과 거울, 해변과 바다, 실체와 그림자라는 경계를 시각화하고 책의 물성을 예술로 확장했다. 그는 2002년부터 최근까지 그림책 21권, 독립출판물 7권, 외국 작가와 협업한 그림책 5권 등 모두 33권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림책은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미술관이에요. 자유롭게 상상하며 내면이 튼튼해진 아이들은 시련을 만나도 잘 견뎌낼 거라고 믿어요. 먼 훗날 어른이 된 아이들이 제 그림책을 떠올리며 세상은 아름답고 살 만하다고 여길 수 있도록 아이들의 삶에 스며들겠습니다.” 공적 1996년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영국 런던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석사 과정 졸업 작품으로 처음 선보인 그림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그해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상을 받았다. 경계 3부작 ‘거울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 놀이’는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13개 상을 휩쓸었다. 지난해와 올해 연속으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대상인 ‘라가치상’ 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올해 3월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그림 작가 부문)을 받았다. 문학연구-평론 대가… “극기복례로 仁村 공선사후 계승”인문·사회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 “문학의 기본정신은 타인과 함께하는 ‘극기복례(克己復禮·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감)’의 마음입니다. 극기복례는 인촌 선생의 ‘공선사후(公先私後)’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라 봅니다.” 인촌상 인문·사회 부문 수상자인 김인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76)는 “인촌 선생의 얘기를 들으며 학문을 시작했는데 인촌상을 받게 되니 과분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1982년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문학 연구 및 문학 평론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는다. 김 교수는 기존 문학이론에 기대지 않고 한국 문학 작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문학의 4가지 개념인 운율과 비유, 구성, 문체를 정립했다. 김 교수는 그의 스승이었던 ‘청록파 시인’ 조지훈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1920∼1968)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다. 김 교수는 국어학과 국문학,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결합뿐 아니라 철학과 한학, 정신분석학 등 서로 다른 영역의 학문을 아우르는 융합 연구에 힘써 왔다. 1982년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논문을 발표해 정신분석학적 문학비평에도 기여하는 등 선구적인 통섭 연구를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교수의 통합적 연구는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김 교수는 조선 말기 한시에 나타난 개화와 쇄국 논리를 통해 당시 자생적인 문호 개방의 가능성을 분석하는 논문을 집필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의 ‘시경 강의’를 분석하고 현대 시인의 평전도 출간할 계획이다. 그는 “학문 연구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고 여겼는데 인촌상을 받게 되니 더 힘을 내 연구에 매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한국 문학 전반을 관통하는 이론 체계를 정립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공적 한국 문학 평론은 물론이고 문학의 이론 정립에도 혁혁한 공을 세운 학자로 손꼽힌다. 국문학을 비롯해 철학과 한학 등 다방면의 학문을 연구해 전공분야를 뛰어넘어 학문적 통섭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9∼2011년 고려대 교수로 강단에 섰으며, ‘언어학과 문학’(1999년) ‘새 한국문학사’(2021년) 등 저서 30여 권과 논문 100여 편을 발표했다. 한국문학교육학회장과 민족어문학회장을 지냈다. 김환태평론문학상(2001년)과 팔봉비평문학상(2003년), 대산문학상(2008년), 김준오시학상(2012년) 등을 수상했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의학-전자공학 융합 선도… “훌륭한 선배들과 같은 상 영광” 과학·기술 권성훈 서울대 교수 “2006년부터 연구실을 운영 중인데 그간 함께 연구했던 학생들의 노고가 있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노력을 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학·기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권성훈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47)는 “역대 수상자 목록에 훌륭한 선배 과학자들이 많은데 같은 상을 받을 수 있어 놀랐고 영광”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권 교수는 대학 3학년 때 병원에 40일 넘게 입원할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그는 “병원에서 쓰는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들도 전자공학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고 의공학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의공학에 대한 관심은 현재의 연구 주제로 이어졌다. 권 교수는 직접 개발한 맞춤의학용 진단 기술을 바탕으로 퀀타매트릭스, 셀레믹스 등 기술벤처기업을 창업했다. 퀀타매트릭스는 패혈증 환자들에게 최적의 항생제를 처방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는 “항암제의 경우 약효는 25%에 불과하다”며 “개인에게 최적화된 약을 추천해 의료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권 교수의 진단 기술은 당일 오후에 검사 결과가 나오도록 했다. 권 교수는 “패혈증 환자는 1시간이 지날 때마다 생존율이 7∼9% 떨어질 정도로 촌각을 다툰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분야를 넘나드는 연구자다. 그가 만든 패혈증 진단 장비에 유전체 진단,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반도체 칩 등의 기술이 녹아 있다. 그는 “한 분야에 통용된 방식을 다른 문제에 적용했을 때 혁신적인 것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인촌상 심사위원들은 “권 교수는 융합 연구로 혁신적인 진단 기술을 개발해 실제 임상적 가치를 창출하고, 임상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학문적 사실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학자”라고 평가했다. 공적 권성훈 교수는 개인별 맞춤의학용 진단 기술을 개발해 온 선구자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 등에 100여 편의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을 발표했다. 대표 논문 10편의 피인용 횟수가 8600회를 넘어설 정도로 영향력 있는 연구자로 평가받는다. 2004년 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2011년에는 직접 개발한 패혈증 항생제 처방 시스템을 실용화하기 위해 ㈜퀀타매트릭스를 설립했다. 2018년 한국공학한림원의 젊은공학인상,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가연구개발성과 유공 포상 등을 받았다.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성공 주역… “우주 과학자 격려로 받아들여” 특별상 항우연 한국형발사체본부 “연구원들이 인촌상 수상 소식을 듣고 다들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상을 통해 이 순간에도 연구에 몰두 중인 우주 과학자들을 격려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리호 발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의 고정환 본부장은 5일 대전 유성구 사무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렇게 권위 있는 상을 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고 본부장은 수상 소식을 듣고 녹록지 않았던 누리호 개발 및 발사 과정을 떠올렸다. 그는 “세계 각국이 발사체 기술을 극도의 보안 속에 관리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며 “개발 초기 예산 지원이 늦어져 설비 및 장비 구축이 늦어졌고, 독자 기술 개발에 난관이 적지 않았던 탓에 일정이 늦어지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학계에서도 ‘왜 막대한 예산을 들여 발사체를 개발해야 하느냐’ ‘한국 과학자들이 우수한 발사체를 만들어낼 능력은 되느냐’ 등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고 본부장은 ‘누리호 발사 성공이 과학기술과 관련 산업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고 본부장은 “누리호 발사는 발사체를 우리 손으로 설계하고 제작, 시험한 후 발사까지 성공한 쾌거”라며 “앞으로 원할 때 우리 위성을 우주에 보낼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16∼18세기는 해양 강국이, 20세기엔 정보산업 강국이 패권을 쥐었지만 21세기는 우주 강국이 세계의 리더가 될 것”이라며 “우주 강국의 열망을 품은 과학자들에게 가장 큰 버팀목은 국민의 격려와 성원”이라고 강조했다.공적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는 올 6월 누리호 발사를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다. 개발에 착수한 지 12년여 만에 엔진은 물론 지상시험설비, 발사대, 발사운용체계 등 우주발사체 발사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명실상부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발사 성공으로 대한민국은 1t 이상의 위성을 우주궤도에 올릴 수 있는 세계 일곱 번째 국가가 됐다. 또 독자적 우주개발 역량과 우주 운송 능력을 온전히 갖출 수 있게 됐다. 항우연은 이제 2031년 누리호 후속으로 개발될 차세대 발사체에 달착륙선을 실어 달로 보내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제36회 인촌상 심사위원▽교육 △위원장 김경성 푸른나무재단 이사장·전 서울교대 총장 △위원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 신종호 서울대교수▽언론·문화 △위원장 양승목 서울대 명예교수 △위원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문학평론가, 이주향 수원대 교수, 최맹호 전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인문·사회 △위원장 김용학 연세대 명예교수·전 총장 △위원 구범진 서울대 교수, 김영민 서울대 교수,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과학·기술 및 특별상 △위원장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한양대 석학교수 △위원 이긍원 고려대 교수, 천진우 연세대 교수,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위원횡성=박성민 기자 min@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이영애 동아사이언스 기자 yalee@donga.com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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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한 유물인 토기, 당대 변화를 가장 잘 담고 있어”

    “신라 토기를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에게 디딤돌 같은 책을 남기고 싶었어요.” 신라시대 토기의 역사를 총망라한 학술서 ‘신라토기연구’(사회평론아카데미)가 최근 출간됐다. 신라 토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서적은 1981년 고 김원룡 서울대 명예교수(1922∼1993)가 출간한 ‘신라 토기’(열화당) 이후 처음이다. 책을 펴낸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74·사진)는 5일 전화 인터뷰에서 “토기는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됐기 때문에 가장 흔히 발굴되는 유물이면서 당대 변화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강조했다. 최 명예교수가 신라 토기에 대한 연구서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오래됐다. ‘평생의 숙원사업’이었다. 1973년 경북 경주에서 천마총 유적을 발굴할 때, 대학을 갓 졸업하고 발굴 현장에 참여한 그는 “참고할 만한 국내 서적이 없어서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때 현장에서 도움을 받은 게 김원룡 교수가 미국 뉴욕대에서 쓴 박사 논문이다. 이 논문이 이후 ‘신라 토기’의 기초가 됐다. “그게 1960년 김 교수님이 발표한 ‘Studies on Silla Pottery(신라 토기에 대한 연구)’였어요. 우리나라 말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토기 명칭과 설명을 영어로 익히려니 힘들었습니다. 언젠가 실력이 쌓이면 후학을 위한 신라 토기 연구서를 쓰겠다고 다짐했죠.” 최 명예교수는 신라 토기를 정리하면서 새로운 과제도 생겼다고 한다. 신라 토기가 영남지방에서 널리 퍼져나가는 과정을 두루 살피면서 가야 토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고 한다. 최 명예교수는 “가야에서 만들어진 토기와 신라에서 만들어진 토기가 어떤 시점에 어디까지 분포됐는지를 살펴본다면 신라와 가야의 상호관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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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MZ는 쉽게 이직? 문제의 본질 못보는 세대론의 함정

    “가만히 머물면 몸이 으깨질 거란 생각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개구리.” 2017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밀레니얼 세대와 충성심의 종말’이란 기사에서 밀레니얼 세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이전 세대들에 비해 언제든 회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다는 비아냥거림이 묻어난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정말 그럴까. 이는 겉만 봐선 맞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틀렸다. 요즘 청년세대가 이전보다 한 직장에 머무는 기간이 평균 3년 정도 짧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정책연구소 소장이자 공공정책학과 교수인 저자는 MZ세대의 이직은 자의라기보다 타의에 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2017년 영국의 한 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X세대나 베이비부머 세대보다 자발적으로 직장을 옮길 가능성이 25%가량 낮았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단기 계약이 일반화되다 보니,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셈이다. 저자는 이처럼 세대에 대한 기존 통념을 과감히 무너뜨린다. 여러 나라에서 모두 300만 명을 인터뷰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런 잘못된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 탐구한다. 저자가 반박의 근거로 제시한 각종 통계에는 현실적인 메시지도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흔히 저성장 시대에는 고용이 불안정한 20대가 가장 불행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인 현재, 실제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세대는 20대가 아니라 40대였다. 영국의 경우 최근 1년간 스스로 세상을 등진 젊은이는 10만 명 가운데 7명꼴이고, 45∼49세는 10만 명 가운데 18명이다. 처음부터 이런 시대에 나고 자란 MZ세대보다 급변하는 세상에 40대가 느끼는 실망과 박탈감이 훨씬 크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고정관념이 굳어지면 세대 간의 불신도 점점 쌓여 간다는 것이다. 이는 소통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로 작용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60세 이상 미국인이 최근 6개월 동안 중요한 문제를 함께 논의한 사람들 가운데 35세 이하는 25%에 그쳤다. 친척을 빼면 그 수치는 6%로 뚝 떨어진다. “진짜 문제는 젊은이와 나이 든 이들 사이의 분리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해결책은 간명하다. 서로 이해하려면 일단 만나야 한다. 2010년에 출범한 영국의 공동체 프로그램 ‘케어스 패밀리(Cares Family)’가 대표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지역사회에서 노인과 청년을 잇는 해당 프로그램에 지금까지 2만2000명 정도가 참여했다. 90세 할머니 매기는 같은 동네에 사는 32세 청년 루이스와 대화한 뒤 이런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나는 나보다 어린 그를 존경하게 됐습니다.” 저자는 이런 작은 만남이 사회 이슈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바꿀 힘을 지녔다고 강조한다. 청년 세대의 고용 불안, 중·장년층의 높은 자살률, 노인 빈곤…. 이런 사회 문제가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가족과 주변에서도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갈등을 줄이고 해법까지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국가 차원에서도 아랍에미리트는 ‘내각 미래부’, 헝가리는 ‘미래 세대를 위한 고충처리국’을 만들어 여러 세대가 미래를 위한 정책을 이미 함께 고민하고 있다. “고작 10년에 불과한 세대 단위가 아니라 최소 100년 시대 단위로 사회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다소 진부하긴 하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여러 첨예한 갈등을 넘어설 수 있다면 지겹게 반복하더라도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일단 서로를 향해 쓰고 있는 색안경을 벗을 때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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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청년들은 참을성이 없다고?…잘못된 ‘세대 감각’ 고치려면

    “가만히 머물면 몸이 으깨질 거란 생각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개구리.” 2017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밀레니얼 세대와 충성심의 종말’이란 기사에서 밀레니얼 세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이전 세대들에 비해 언제든 회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다는 비아냥거림이 묻어난다.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는 정말 그럴까. 이는 겉만 봐선 맞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틀렸다. 요즘 청년세대가 이전보다 한 직장에 머무는 기간이 평균 3년 정도 짧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정책연구소 소장이자 공공정책학과 교수인 바비 더피는 ‘세대 감각’(어크로스)을 통해 MZ세대의 이직은 자의라기보다 타의에 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2017년 영국의 한 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X세대나 베이비부머 세대보다 자발적으로 직장을 옮길 가능성이 25%가량 낮았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단기 계약이 일반화되다보니,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셈이다. 저자는 이처럼 세대에 대한 기존 통념을 과감히 무너뜨린다. 여러 나라에서 모두 300만 명을 인터뷰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런 잘못된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 탐구한다. 저자가 반박의 근거로 제시한 각종 통계에는 현실적인 메시지도 담겨있다. 예를 들어, 흔히 저성장시대에는 고용이 불안정한 20대가 가장 불행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저성장시대인 현재, 실제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세대는 20대가 아니라 40대였다. 영국의 경우 최근 1년간 스스로 세상을 등진 젊은이는 10만 명 가운데 7명꼴이고, 45~49세는 10만 명 가운데 18명이다. 처음부터 이런 시대에 나고 자란 MZ세대보다 급변하는 세상에 40대가 느끼는 실망과 박탈감이 훨씬 크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고정관념이 굳어지면 세대 간의 불신도 점점 쌓여간다는 것이다. 이는 소통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로 작용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60세 이상 미국인이 최근 6개월 동안 중요한 문제를 함께 논의한 사람들 가운데 35세 이하는 25%에 그쳤다. 친척을 빼면 그 수치는 6%로 뚝 떨어진다. “진짜 문제는 젊은이와 나이 든 이들 사이의 분리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해결책은 간명하다. 서로 이해하려면 일단 만나야 한다. 2010년에 출범한 영국의 공동체 프로그램 ‘케어스 패밀리(Cares Family)’가 대표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지역사회에서 노인과 청년을 잇는 해당 프로그램에 지금까지 2만2000명 정도가 참여했다. 90세 할머니 매기는 같은 동네에 사는 32세 청년 루이스와 대화한 뒤 이런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나는 나보다 어린 그를 존경하게 됐습니다.” 저자는 이런 작은 만남이 사회 이슈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바꿀 힘을 지녔다고 강조한다. 청년 세대의 고용 불안, 중·장년층의 높은 자살률, 노인 빈곤…. 이런 사회 문제가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가족과 주변에서도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갈등을 줄이고 해법까지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국가차원에서도 아랍에미리트는 ‘내각 미래부’, 헝가리는 ‘미래 세대를 위한 고충처리국’을 만들어 여러 세대가 미래를 위한 정책을 이미 함께 고민하고 있다. “고작 10년에 불과한 세대 단위가 아니라 최소 100년 시대 단위로 사회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다소 진부하긴 하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여러 첨예한 갈등을 넘어설 수 있다면 지겹게 반복하더라도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일단 서로를 향해 쓰고 있는 색안경을 벗을 때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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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년만에… 한국 과학문명사 30권 모두 엮어

    “드디어 우리나라의 과학문명 전체를 담아낸 총서를 갖게 돼 자긍심을 느낍니다.”(신동원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장) 2010년부터 전북대가 기획하고 출판사 들녘이 출간한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시리즈가 12년 만에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1권 ‘동의보감과 동아시아 의학사’를 시작으로 31일 출간된 ‘한국의 술수과학과 문명’을 마지막 권으로 모두 30권의 시리즈가 완간됐다. 31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선 한국의 과학문명사를 집대성했다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해당 학술 연구를 지원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양영균 한국학진흥사업단장은 “한류가 전례 없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는 한국학의 저력을 과학기술에서 찾아낸 크나큰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총서 필진으로는 권오영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와 박윤재 경희대 사학과 교수, 전용훈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교수 등 60명이 넘게 참여했다. ‘한국 과학기술 연구체제의 진화’를 집필한 문만용 전북대 교수는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을 추동해 온 제도의 발전사까지 담았다”고 전했다. 해외에서도 총서 완간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크리스토퍼 컬른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니덤연구소장은 “중국과학사로 명성을 얻은 영국 역사학자 조지프 니덤(1900∼1995)이 1954년 출간한 명저 ‘중국의 과학과 문명’ 시리즈에 비견된다”고 극찬했다. 총서 가운데 5권은 케임브리지대 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맺어 조만간 출간을 앞두고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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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정공 민영환 동상, 65년만에 충정로 제자리로

    순국지사 충정공 민영환 선생(1861∼1905)의 동상(사진)이 그의 시호를 딴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세워졌다. 1957년 처음 종로구에 자리 잡은 뒤 두 차례 다른 곳을 떠돌았던 충정공의 동상이 65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서대문구는 30일 오후 3시 충정로사거리 교통섬에서 충정공 동상 이전 제막식을 열었다.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하며 자결했던 충정공의 동상은 1957년 종로구 안국동사거리에 처음 세워졌다. 1970년대 도로 확장 공사 과정에서 창덕궁 돈화문 앞으로 자리를 옮긴 뒤 궁궐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며 설 자리를 잃었다. 결국 2003년 민 선생의 생가 터인 종로구 우정총국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시민공원 구석에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날 제막식에 참석한 민 선생의 후손인 민홍기 씨는 “충정로사거리에 세워진 동상을 보니 모든 마음의 짐이 날아가는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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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노래자랑’ 새 MC 김신영 발탁, 故송해 후임… 여성단독으론 처음

    방송인 김신영(39·사진)이 올 6월 별세한 송해에 이어 KBS 1TV ‘전국노래자랑’ 새 MC로 발탁됐다. 1980년 11월 처음 방송된 전국노래자랑에서 여성이 단독 MC를 맡는 건 김신영이 처음이다. KBS는 29일 “송해 선생님을 잇는 전국노래자랑 후임 MC로 김신영을 선정했다”며 “김신영은 10월 16일 방송을 시작으로 전국노래자랑을 이끌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전국노래자랑은 34년 만에 새 MC 체제를 맞게 됐다. 김신영은 “전국노래자랑과 함께 자라온 제가 후임 진행자로 선정되어 가문의 영광”이라며 “앞으로 전국 팔도의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 열심히 배우겠다. 전통에 누가 되지 않게 정말 열심히 즐겁게 진행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2003년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김신영은 올해 데뷔 20년 차 베테랑 방송인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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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이드&인사이트]매장문화재보호법 몰랐다는 지자체… 김해 고인돌처럼 훼손 345건

    《문화재를 둘러싼 안타까운 참변이 또다시 벌어졌다. 최근 훼손된 ‘세계 최대 규모 고인돌’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고인돌) 얘기다.2006년 땅속 10m 지점에서 발견된 구산동 고인돌은 윗돌 무게 350t, 길이 10m, 묘역 규모 1615m²로 세계 최대 규모의 고인돌로 평가받는다. 유적지에서 발굴된 토기는 기원전 1세기 사용된 것으로 가락국 건국 시기로 알려진 서기 42년보다 앞선다.하지만 김해시는 2020년 6월부터 이달 초까지 정비 사업을 진행하다 유적지 문화층(특정 시대 문화 양상을 알려주는 지층)을 훼손한 사실이 드러났다. 많은 이들이 즐기는 문화유산으로 만들려 했던 의도의 정비사업이 어쩌다 문화재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았을까.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단체가 큰 예산을 들인 정비사업이라도 문화재 보존이란 핵심 가치를 놓치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지자체로서도 침통하긴 마찬가지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명백한 과오로 벌어졌지만, 빠듯한 예산과 인력으로 여러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문화재보존 전문가 현장에 없어 학계에서는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정비사업 전반에 걸친 의사결정 과정에서 “매장문화재에 정통한 전문 학예연구사가 빠진 구조”를 문제 삼았다. 2020년 6월부터 고인돌 정비사업을 맡아온 부처는 김해시 문화관광사업소 산하 가야복원과. 소속 직원 21명에 학예연구사 4명이 포함돼 있지만, 이들 중 정규직은 문헌사 전공자 1명뿐이다. 나머지 3명은 최근 1, 2년 사이 고용한 기간제 직원. 게다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신과 결재 등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된 문화재보존 전문가가 없었다. 애초에 매장문화재를 보존하겠다는 인식 자체가 부족해 ‘문화재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매장문화재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김해시 가야복원과는 2021년 10월 경상남도에 김해 구산동 지석묘를 정비하겠다는 ‘현상변경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땅 위에 있는 문화재 위치를 바꾸는 현상 변경이 발생할 경우에 시·도지정문화재는 각 지자체로부터, 국가지정문화재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김해시는 2021년 11월 경남도로부터 착공 허가를 받았다. 문제는 땅 밑에 묻혀있는 문화재를 보호하는 법인 매장문화재보호법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현행 매장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에서 △지하 땅 파기를 수반하거나 △수몰을 수반하는 개발사업 등을 진행할 때 반드시 문화재청과 사전 협의해야 한다. 경남도로부터 허가를 받았더라도, 지층(地層) 굴착 공사를 하려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김해시는 구산동 지석묘 유적지 내 상석(上石) 주변부 문화층 20cm가량을 중장비로 파헤치고 굴착 공사를 진행하면서도 문화재청 허가를 받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매장문화재보호법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정비 사업을 2년 동안 진행하며 문화재 전문가가 없다 보니 기본적인 프로세스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10년간 전국 문화재 유존지역 훼손 345건 더 심각한 건 이런 훼손이 일부 지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28일 문화재청이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현재까지(28일 기준) 전국 매장문화재 발굴 허가 누락 및 훼손 건수는 345건에 이른다.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에서 지하 땅을 굴착하는 공사는 지자체는 물론 민간기관과 개인 모두 문화재청과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다. 유존지역이란 지표 조사 결과 매장문화재가 땅 밑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곳을 일컫는다. 지층은 한번 훼손되면 다시 복구가 불가능해 공사 전 사전 발굴 조사를 선행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매장문화재법에 대한 인식 자체가 허술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현재까지(28일 기준) 지자체가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을 훼손해 지자체장이 고발당한 사례도 5건에 이른다. 지난해 1월 강원 영월군이 영월읍 하송리 일대 도로 확·포장 공사를 진행하면서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을 훼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당 지역에는 고려시대 절터로 추정되는 문화재가 매장돼 있어, 굴착 공사를 시행할 경우 문화재청과 협의해야 하나 지자체 담당자가 이를 누락했다. 그 결과 1000m²에 이르는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이 파헤쳐졌고, 절터에 남아 있던 기둥 등이 상당 부분 망가졌다. 이종훈 문화재청 보존정책과장은 “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와 문화재를 담당하는 부서 간 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도로공사는 영월군 도시교통과가 담당했다. 담당자들은 “해당 지역이 문화재 매장지역인 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영월군의 문화재 담당자들은 해당 지역이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더 이상 전문인력 양성 미뤄선 안 돼 지자체가 매장문화재를 관리할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가장 확실한 해법이 있다.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에 대한 모든 인허가 권한을 문화재청으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재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땅 위 문화재 관련 공사는 문화재보호법, 땅 밑 공사는 매장문화재보호법을 따른다. 당초 매장문화재보호법은 하나의 법체계에 속해 있었으나 2011년 따로 제정해 관리 주체를 나눴다. 문화재청에 집중된 업무를 지자체로 분산해 부담을 줄이고, 지역문화재의 관리 권한을 지자체로 넘기기 위해서였다. 지자체가 유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관리하는 학예 연구 인력을 확충하지 않으면 문화재 훼손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현행법에는 지자체가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 등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학예인력을 배치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이 없다. 올해 기준으로 전국 지자체에 고용된 학예직이 1000여 명에 이르지만 정규직은 몇몇에 불과하다. 임기제 학예직이 ‘개발’과 ‘문화재보존’이라는 상반되는 이익이 맞부딪칠 때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박윤정 문화재청 발굴제도과장은 “임기제 직원 입장에선 자신의 고용 유지가 달려 있다 보니 쉽게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국회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6∼10월 지자체의 지정문화재 수와 매장문화재 면적에 비례해 학예인력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하는 ‘문화재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3건이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현재까지 법안 통과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도와 현장 환경 개선, 동시에 이뤄져야” 학계에서는 해당 법의 통과만 기다릴 게 아니라 전문 학예 인력이 문화재 정비사업 과정에 반드시 관여하도록 지자체 내부 규정을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한상 교수는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학예 인력을 업무에서 배제하면 언제든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적 보존은 한번 어긋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 이 교수는 “문화재 보존을 토지 개발이나 사업을 막는 존재로 여기기보다 지역 문화산업을 발전시키는 매개체로 여기는 인식의 변환이 필요하다”며 “제도를 고침과 동시에 현장에서 관련 업무 환경을 개선해야 고질적인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소연 문화부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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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진정한 치료의 시작은 아픔의 내력을 들여다보는 일

    만성통증은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미국인 하워드 해리스는 6·25전쟁에 참전해 훈장까지 받은 참전용사. 용맹했던 그를 바꾼 건 찰나의 사고였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허리가 툭 하고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의사는 단순 근육경련이라 진단했지만, 이후 순간순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해리스를 진짜 힘들게 한 건 통증 자체보다 이를 용인해 주지 않는 세상이었다. 수시로 병가를 내는 직원을 참아줄 직장은 없었다. 가족마저 가계에 보탬이 안 되는 그를 가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디 가서 아픔을 토로할 수조차 없었다. “이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제 통증을 볼 수 없으니까요. 가끔은 사람들이 제 말을 안 믿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이게 저를 정말 미치게 합니다.” 미 하버드대 의과대학 교수로 30년간 2000명이 넘는 환자를 만나온 저자는 해리스처럼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환자들에게 천착했다. 현지에서 1988년 처음 출간됐는데, 만성질환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가 환자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 명저로 꼽힌다.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이 책은 2020년 개정판 버전. 만성통증증후군이나 만성피로, 우울증 등 오래된 질환을 앓는 환자 20여 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의 속내를 읽다 보면, 통증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에 무감한 세상의 시선이 환자들을 더 고립시킨다는 걸 깨닫는다.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앓는 중국인 여성 옌. 그의 병을 이해하려면 그가 살아온 생애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엘리트 계급에 속했던 옌의 가정은 문화혁명을 거치며 ‘냄새나는 지식인’이라 지탄받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집 밖을 나서면 누군가 손가락질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만성두통과 피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교육 과정도 제대로 마칠 수 없었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자포자기했다. 옌의 사례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한 사람의 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질병에는 한 사람의 생애가 녹아 있기에 진통제 한 알로 치유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마주한 첫 번째 환자가 그랬다. 의대에 재학할 당시 응급실로 실려 온 전신화상을 입은 일곱 살 아이였다. 그 어린애가 화상 부위의 살갗을 벗겨내는 끔찍한 치료를 매일매일 견뎌야 했다. 풋내기 의대생이던 저자는 온몸으로 토해내는 비명을 들으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아이의 손을 붙잡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 수밖에.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아이에게 “어떻게 이 고통을 견디는지, 치료를 겪는 느낌이 어떤지”를 물어봤다. 그 순간, 변화가 찾아왔다. 고작 일곱 살배기 아이가 자기만의 어휘를 이용해 정확하게 통증을 설명했다. 이후부터 치료실에 들어서는 아이는 전보다 훨씬 씩씩하게 고통을 견뎌냈다. “환자는 누구나 자신의 질병에 대해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그걸 해내는 순간 자기 자신에게 그 고통을 감내할 힘도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물론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이 옳다고 하긴 어렵다. 플라세보 효과도 있다지만, 어쨌든 치료는 과학의 영역이니까. 하지만 그 최전선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저자 말마따나, 어쩌면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지지해주는 사회적 공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치료법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이 책은 미국과 일본 등에서 여전히 ‘의료인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출간된 지 34년이 지났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메시지가 많기 때문이다. 치료는 상처가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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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청, 영주 부석사 안양루-범종각 보물 지정예고

    문화재청은 26일 경북 영주시 부석사에 있는 안양루(安養樓·사진), 범종각(梵鐘閣)과 함께 경북 봉화군의 청암정(靑巖亭) 등 문화재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부석사 안양루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부석사에 자리하고 있는 문루(門樓·문 위에 세운 높은 다락)다. 범종각은 팔작지붕 형식을 띤 18세기 종각(큰 종을 달아 두는 누각) 건축물로, 과거 범종각 내부에 쇠종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19세기 이후 범종의 소재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청암정은 안동 권씨 충재고택(충齋古宅) 내에 자리 잡은 정자다. 16세기 관직에서 물러난 사대부들이 명당에 지은 정자 형태 건축물로, 인근 석천계곡의 석천정(石泉亭)과 함께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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