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점 부끄럼 없게”… ‘윤동주 시비’ 추진 日교수, 후원금 반환 방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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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시비’ 주도 니시오카 교수
8년전 ‘尹 70주기’에 시비건립 시작… 구청 불허로 무산되자 ‘마지막 정리’
3박4일간 서울-인천-대구 등 돌며… 韓 후원자 일일이 만나 전액 반환
“윤동주 시비, 이젠 일본 후대의 몫”

니시오카 겐지 후쿠오카현립대 명예교수(위쪽 사진 오른쪽)와 신원한 순천향대 의대 명예교수가 12일 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이날 
니시오카 교수는 8년 전 신 교수가 윤동주 시비 건립을 위해 보낸 후원금 100만 원을 담은 봉투와 편지(아래쪽 사진)를 건넸다.
 총 3장의 편지에는 “저의 부덕의 소치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며 사과하고 감사를 전하는 내용과 함께 시비 건립 추진 과정을 
연도 및 월별로 상세하게 기록한 내용이 담겼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니시오카 겐지 후쿠오카현립대 명예교수(위쪽 사진 오른쪽)와 신원한 순천향대 의대 명예교수가 12일 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이날 니시오카 교수는 8년 전 신 교수가 윤동주 시비 건립을 위해 보낸 후원금 100만 원을 담은 봉투와 편지(아래쪽 사진)를 건넸다. 총 3장의 편지에는 “저의 부덕의 소치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며 사과하고 감사를 전하는 내용과 함께 시비 건립 추진 과정을 연도 및 월별로 상세하게 기록한 내용이 담겼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제 인생의 마지막 시간과 힘을 모두 다 바쳤습니다만…. 윤동주 시인의 시비(詩碑)를 끝내 세우지 못했습니다. 면목 없고 부끄럽습니다.”

12일 오후 7시 반 서울 마포구 한 호텔의 로비. 윤동주 시인(1917∼1945·사진)의 시비 건립을 추진해 온 니시오카 겐지(西岡健治·78) 후쿠오카현립대 명예교수가 이를 후원한 신원한 순천향대 의대 명예교수(74)에게 말했다. 니시오카 교수는 윤 시인이 세상을 떠난 일본 규슈 옛 후쿠오카 형무소 주변에 시비를 건립하는 운동을 2015년부터 해 왔지만 관할 구청의 반대로 건립이 결국 무산되자 후원금을 돌려주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날 니시오카 교수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신 교수에게 흰 봉투 하나를 건넸다. 한글로 ‘신원한 교수님께’라고 적힌 봉투에는 우리 돈 1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2015년 신 교수가 니시오카 교수에게 보낸 후원금이었다. 신 교수가 “그동안 활동비도 많이 썼을 텐데, 이 돈은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자, 니시오카 교수는 다시 한번 두 손으로 봉투를 건네며 우리말로 말했다.

“저는 ‘윤동주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저승에 가서 ‘한 점 부끄럼 없는 마음으로’ 윤동주를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디 받아주세요.”

니시오카 교수는 전날 ‘후쿠오카에 윤동주 시비를 세우는 협의회’의 해산을 선언하고 한국 후원자들에게 후원금을 되돌려주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가 협의회를 꾸린 건 윤동주 타계 70주기였던 2015년 2월. “식민지배 가해자인 일본인들이 윤동주를 기려야만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후원금 반환 소식을 듣고 이날 찾아간 기자에게 니시오카 교수가 말했다.

“후쿠오카는 윤동주의 마지막 숨결이 머문 곳인데도 그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윤 시인이 이곳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까 안타까운 마음에 시비 건립 추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연세대 국문과에서 한국 판소리를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윤동주의 ‘서시’에 매료돼 1994년 후쿠오카에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을 결성했다. 30년 가까이 매달 이어져 온 이 모임은 윤 시인의 기일(2월 16일)마다 옛 후쿠오카 형무소 터와 담을 맞댄 공원에서 위령제를 지내왔다.

니시오카 교수는 “한국에서 나를 지지해준 많은 분들 덕분에 지난 8년이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협의회가 후쿠오카에 윤동주 시비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대구문인협회를 포함한 단체와 개인 등 한국인 30여 명이 약 1000만 원을 후원했다.

하지만 장벽을 넘기는 어려웠다. 8년간 줄기차게 옛 후쿠오카 형무소 자리 인근 모모치니시(百道西) 공원에 시비 건립을 타진했지만 관할 지자체인 사와라(早良)구의 반대로 끝내 무산된 것. 니시오카 교수는 “시의원과 담당 공무원들을 수십 차례 만났지만 A4용지 2쪽짜리 거절통지서만 돌아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통지서에는 ‘(윤동주 시비가) 시민의 교양에 기여하는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인근 대학이나 학교 주변에 시비를 세우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한일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인지 벽이 너무 높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 나이 곧 여든입니다. 이제는 힘이 없어요. 마지막 남은 힘으로 나를 지지해준 한국의 후원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후원금을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인사는 온라인으로 하고, 후원금은 계좌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니시오카 교수는 3박 4일간 서울과 인천 강화도, 대구 등을 다니며 후원자들을 일일이 만났다. 후원자 상당수가 70, 80대여서 어쩌면 이번 만남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21년 3월 선종한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1935∼2021)의 묘역도 찾겠다고 했다. 이 대주교는 2016년 자비 100만 원에 단체 후원금을 더해 총 400만 원을 보냈다. 니시오카 교수는 “이 대주교는 별세하기 1년 전에도 후쿠오카에 있는 나를 찾아와 격려하셨을 정도로 믿고 도와주신 분”이라며 “경북 군위군 가톨릭군위묘원에 계신 이 대주교의 묘역을 찾아가 ‘그동안 감사했다’는 마지막 해산 보고를 올리겠다”고 했다. 그는 다음 날 대구 계산성당을 방문해 후원금 400만 원을 돌려줬다.

수필가 장호병 씨(71)도 니시오카 교수가 이날 대구에서 만난 후원자 중 한 명이다. 장 씨는 대구문인협회장이던 2017년, 협회 소속 문인 10여 명과 돈을 모아 총 410만 원을 니시오카 교수에게 전했다. 장 씨는 15일 전화에서 “여든을 바라보는 노교수가 손수 후원금을 되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 돈을 허투루 써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했다. 문인들은 돌려받은 후원금으로 8년간의 시비 건립 운동 기록을 담은 책을 내기로 했다.

장 씨는 “비록 실패의 기록이지만 이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남겨야 한일 양국의 젊은 세대가 우리의 뒤를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니시오카 교수 역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중간에 다리를 놓은 사람입니다. 후쿠오카에 윤동주 시비를 건립하는 일은 이제 일본의 후대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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