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양종구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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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yjongk@donga.com

취재분야

2026-02-25~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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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적 야심 채우다 건강 악화…달리고 난뒤 인생 제2막 열려”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제15대와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어요. 매번 2등에 그쳤습니다. 그 때까지 번 돈도 다 날렸지만 건강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갑상선과 전립선에 문제가 생겼고 체중도 늘어 각종 성인병 증세가 나타났죠.”최도열 국가발전정책연구원장(69)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한 뒤 2000년 중반쯤 김대중 대통령 주치의였던 허갑범 연세대 의대 교수(별세)를 찾아갔다. 1980년대 전국 청년대표로 고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최 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동교동계하고도 친했다. 그는 “허 교수께서 성인병엔 걸으면 좋고 달리면 더 좋다”고 했다. 그 때부터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무렵 1984년 제55회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국내 최초로 ‘마의 2시간 15분 벽’을 깬 이홍열 경희대 교수가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무료 마라톤 교실을 시작했다. “이홍열 교수가 마라톤 교실을 시작한 2000년 7월 12일 찾아가 달리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 태권도도 했고 특공무술도 했기 때문에 초급반이 아닌 중급반에 갔죠. 그런데 웬걸. 달리는 것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첫 훈련 때 300m도 못가서 쓰러질 뻔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민주화 운동 할 때부터 끈기와 집념엔 자신이 있었다. 천천히 거리를 늘려갔다. 500m, 700m, 1km, 5km…. 결국 10km도 넘어 하프코스까지 달렸다. 이 교수는 “최 원장님이 처음엔 자세가 엉망이었지만 끈기와 집념이 대단했다. 바른 자세로 달리는 법을 알려줬더니 꾸준하게 노력해 지금은 엘리트 선수들만큼 자세가 아주 좋다”고 했다. 최 원장은 2003년 11월 열린 중앙마라톤에서 처음으로 42.195km 풀코스를 완주했다. 3시간 53분 53초. 개인 최고기록이다. 지금까지 50회 넘게 풀코스를 완주했지만 이 기록을 넘어서진 못하고 있다. 첫 풀코스 완주 이후 즐기면서 달리기 때문에 기록에는 연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면서부터 그의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한다. 잠에서 깨자마자 그 자리에서 맨손체조로 몸을 일깨운다. 모든 관절을 돌려주고 스트레칭까지 마치고 발목 펌핑(아킬레스건을 톡톡 때려주는 동작)과 스쾃, 플랭크, 팔굽혀펴기까지 한다. 스쾃은 하루 100~200개, 팔굽혀펴기도 100개 넘게 한다. 그는 “발목 펌핑 양쪽 600개는 10km를 달리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렇게 22년을 관리하면서 달려서인지 아직 부상을 한번도 당하지 않았다. 그는 “건강을 위해 즐겁게 달리기 때문에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것도 부상 방지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그는 매일 하루 3000보 이상 걷는다. 그리고 평일 2~3회 10~12km, 주말엔 15~20km를 달리고 있다. 한 달 평균 300km를 걷거나 달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탓에 대회가 없어졌지만 마라톤 풀코스 대회를 앞두고는 한달에 400km를 넘게 달린다. 달리면서 건강도 얻고 자신감도 얻었다. 건강검진에서 어떤 이상 증세도 나오지 않았고 체중도 10kg이 넘게 빠졌다. 한 때 85kg까지 나갔지만 지금은 70~72kg을 유지하고 있다.“풀코스를 달리고 나니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 졌어요. 한 때 정치적인 야심도 있었지만 이젠 다 부질없다는 생각입니다. 있는 재산 다 날리고 건강까지 악화됐죠. 지금은 제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때인 것 같습니다. 이런 게 행복 아닌가요?” 최 원장은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도 오르고 있다. 그는 “한 달에 한 두 번은 친구들과 산행을 한다. 새벽 일찍 나서 산을 오르고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 아니면 전날 저녁 10시에 출발해 새벽 3, 4시에 산행을 하는 무박 등반도 한다. 건강을 되찾은 뒤 어떤 산도 쉽게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설악산, 치악산 등 5대 악산을 포함해 지금까지 50개 넘는 명산을 올랐다.“달리기로 건강을 되찾았지만 과거 시골에서 맘대로 뛰어 놀면서 키운 체력이 뒷받침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중고교 시절 경북 성주의 시골에서 하루 왕복 12km 걸어서 학교를 다녔죠. 지금은 아이들이 체육을 즐길 수 없는 환경 같아 안타깝습니다.” 최 원장은 국회의원 낙선한 뒤에는 공부에 전념했다. 민국당 사무총장도 역임한 그는 2005년 2월 숭실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박사학위를 받자 지상파 방송 뉴스에 나기도 했다. 이후 주로 학계에서 후진양성과 강연, 연구에 집중했다. 국가발전정책연구원은 국회 법인 1호로 국가 발전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교수 100여명이 비상근 근무하며 다양한 정책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사실 최 원장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국회 입법 보좌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고 김영삼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하지고 해서 청년 대표로 합류하게 됐다. “정치는 완전히 포기하고 교육에 관심이 있어 대학 총장에 도전하려고 했죠. 총장을 하려면 부총장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기회 2번 있었지만 못했어요. 한번은 취임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10달 정도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2010년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다시 망가졌다. 힘겨웠지만 그동안 열심히 운동한 덕택에 잘 버텼고 다시 달릴 수 있었다. 최 원장은 “몸이 사고로 망가지니 회복하기 쉽지 않았다. 처음 달리듯 초보자의 자세로 천천히 거리를 늘려 원상 복귀했다”고 했다. 그는 요즘은 풀코스를 4시간 30분 안팎에 달린다. 2019년 풀코스를 달린 뒤 공식 대회를 달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레이스를 멈추지 않고 있다. 울트라마라톤은 입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이홍열 교수가 42.195km 풀코스도 힘든데 울트라마라톤은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풀코스 완주도 힘든데 굳이 50km 100km를 달릴 필요는 없다. 최 원장은 만 80세까지는 풀코스를 완주할 계획이다. 그는 “100세 시대,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는 잡아야 80대에 하프, 90대에 10km를 달릴 수 있지 않겠나”며 웃었다. 그에게 이제 달리기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또 다른 목표가 있을까? 철인3종(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하고 싶다고 했다. 수영 초보라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제가 실제로 나이를 먹기도 했지만 아직은 젊습니다. 마라톤을 하는 이유도 제가 아직 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정치적으로나 학자로 열심히 살았는데 뭐 크게 이룬 것은 없어요. 하지만 1년에 몇 번 피는 꽃도 있고 10년, 100년에 한 번 피는 꽃도 있잖아요. 전 즐겁게 재밌게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습니다. 이러다 한번은 꽃이 피지 않을까요?” 그는 달리며 또 다른 꿈도 꾸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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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배지 욕심에 건강도 악화… 달리는 지금이 가장 행복”[양종구의 100세 건강]

    최도열 국가발전정책연구원장(69)은 제15대,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하면서 건강이 크게 악화됐다. 갑상샘과 전립샘에 문제가 생겼고 체중도 늘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주치의였던 허갑범 연세대 의대 교수(별세)를 찾아갔더니 “성인병엔 걸으면 좋고 달리면 더 좋다”는 얘기를 듣고 마라톤에 관심을 가졌다. 그 무렵 1984년 제55회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국내 최초로 ‘마의 2시간 15분 벽’을 깬 이홍열 경희대 교수가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무료 마라톤 교실을 시작했다. “2000년 7월 12일, 이홍열 교수가 마라톤 교실을 시작한 날 찾아가 달리기 시작했다. 어릴 때 태권도도 했고 이후 특공무술도 했기 때문에 초급반이 아닌 중급반에 갔다. 그런데 웬걸. 달리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첫 훈련 때 300m도 못 가서 쓰러질 뻔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천천히 거리를 늘려갔다. 500m, 700m, 1km, 5km…. 결국 10km도 넘어 하프코스까지 달렸다. 이 교수는 “최 원장님이 처음엔 자세가 엉망이었지만 끈기와 집념이 대단했다. 바른 자세로 달리는 법을 알려줬더니 꾸준하게 노력해 지금은 엘리트 선수들만큼 자세가 아주 좋다”고 했다. 최 원장은 2003년 11월 열린 중앙마라톤에서 처음으로 42.195km 풀코스를 완주했다. 3시간 53분 53초. 개인 최고기록이다. 지금까지 50회 넘게 풀코스를 완주했지만 이 기록을 넘어서진 못하고 있다. 첫 풀코스 완주 이후 즐기면서 달리기 때문에 기록에는 연연하지 않고 있다. 달리면서부터 그의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한다. 잠에서 깨자마자 그 자리에서 맨손체조로 몸을 일깨운다. 모든 관절을 돌려주고 스트레칭까지 마치고 발목 펌핑(아킬레스힘줄을 톡톡 때려주는 동작)과 스쾃, 플랭크, 팔굽혀펴기까지 한다. 스쾃은 하루 100∼200개, 팔굽혀펴기도 100개 넘게 한다. 출퇴근하며 매일 하루 3000보 이상 걷는다. 그리고 평일 2, 3회 10∼12km, 주말엔 15∼20km를 달리고 있다. 한 달 평균 300km를 걷거나 달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대회가 없어졌지만 마라톤 풀코스 대회를 앞두고는 한 달에 400km를 넘게 달린다. 달리면서 건강도 얻고 자신감도 얻었다. 건강검진에서 어떤 이상 증세도 나오지 않았고 체중도 10kg이 넘게 빠졌다. 한때 85kg까지 나갔지만 지금은 70∼72kg을 유지하고 있다. “풀코스를 달리고 나니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한때 정치적인 야심도 있었지만 다 부질없다. 있는 재산 다 날리고 건강까지 악화됐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건강하다. 이런 게 행복 아닌가.” 최 원장은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도 오르고 있다. 그는 “한 달에 한두 번은 친구들과 산행을 한다. 새벽 일찍 나서 산을 오르고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 아니면 전날 오후 10시에 출발해 새벽 3, 4시에 산행을 하는 무박 등반도 한다. 건강을 되찾은 뒤 어떤 산도 쉽게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설악산, 치악산 등 5대 악산을 포함해 지금까지 50개 넘는 명산을 올랐다. 1980년대 전국 청년대표로 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최 원장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에는 공부에 전념했다. 민주국민당 사무총장도 지낸 그는 2005년 2월 숭실대에서 행정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주로 학계에서 후진 양성과 강연, 연구에 집중했다. 최 원장은 2010년 교통사고로 10개월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역경에 처하기도 했다. 힘겨웠지만 그동안 열심히 운동한 덕택에 잘 버텼고 다시 달릴 수 있었다. 최 원장은 “몸이 사고로 망가지니 회복하기 쉽지 않았다. 처음 달리듯 초보자의 자세로 천천히 거리를 늘려 원상 복귀했다”고 했다. 그는 요즘은 풀코스를 4시간 30분 안팎에 달린다. 2019년 풀코스를 달린 뒤 공식 대회를 달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레이스를 멈추지 않고 있다. 최 원장은 만 80세까지는 풀코스를 완주할 계획이다. 그는 “100세 시대,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는 잡아야 80대에 하프, 90대에 10km를 달릴 수 있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그에게 이제 달리기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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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이렇게 달릴줄이야”…우울증 탈출한 ‘홍천러너’[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송혜경 씨(34)는 마라톤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강원도 홍천에 살며 달리고 있어 ‘홍천러너’로 불리는 그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살면서 찾아온 외로움과 우울증, 그리고 과다 체중을 달리기로 이겨냈고, 이젠 매일 산과 들, 도로를 달리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2017년 5월 나이키 우먼레이스에 무작정 참가했어요. 하프코스 대회였는데 그동안 달리기는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죠. 운 좋게 출발 지점 앞에서 총성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당시 권투 등 운동을 열심히 하는 배우 이시영 씨가 참가했어요. 그래서 이시영 씨만 보고 달렸어요.” 한 10km를 지났을까. 힘이 들어 걷다 뛰기를 반복했다. 눈물도 나왔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지?’라는 자책도 했다. 그 때쯤 제한시간 2시간 30분 안에 못 들어올 주자들을 태우는 회수차량이 나타났다. 송 씨는 “차에 타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뛰어 제한 시간 안에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니 내 체력이 이것 밖에 안 되나?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비교적 어린 나이인 24살에 결혼한 뒤 사업상 홍천에 살다보니 외로웠고, 다소 느긋하게 살다보니 체중도 급격히 늘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며 집 근처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해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며 식이요법으로 다이어트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하프마라톤이 열린다고 해 참가했던 것이다. “결혼해 홍천에 살다보니 친구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어요. 주변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 어울리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소 우울했고 그렇다보니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게 됐고 살도 많이 쪘어요. 다이어트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이렇게 달릴 것이라곤 생각 안했어요. 그런데 달리고 보니 완주했다는 자신감과 제 자신의 체력에 대한 실망감이 함께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여성으로 하프코스에 첫 출전해서 2시간 30분 안에 완주했다는 것은 기본적인 체력은 된다는 얘기다. 다이어트를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덕분이다. 당시까지 최고 체중에서 10kg 정도를 감량하고 있었다. “집 주변 홍천강을 달렸어요. 평일에 5~6km를 주당 2~3회, 주말엔 20km 이상을 달렸죠. 대회를 앞두곤 더 길게 달리기도 했죠. 풀코스를 완주하려면 장거리를 꼭 달려야 하거든요. 그리고 그해 10월 중앙일보jtbc마라톤에서 풀코스를 4시간 50분쯤에 완주했어요.” 어느 순간 달리기가 친구가 돼 있었다. 심신이 피곤해도 달리고 나면 너무 상쾌했다. 삶도 활기가 넘쳤다. 홍천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친구였다. 그 때부터 매년 42.195km 풀코스를 2~3차례 완주했다. 하프코스도 자주 참가했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019년 춘천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45분대. 지금까지 풀코스를 7번 완주했다. “달리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우울감이 사라진 것입니다. 달리고 나면 기분이 좋았어요. 외로움, 일하는 스트레스 등이 다 날아간 것입니다. 건강은 당연히 찾아왔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빼려고 했던 살이 다 빠진 것입니다. 달리면서 약 20kg이 더 빠졌고 제 최고 체중에서 약 30kg 감량했습니다. 지금은 매일 달리기 때문에 요요현상이 전혀 없이 똑같은 체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송 씨는 달리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없어졌다는 것을 다시 강조했다. 운동생리학적으로 운동이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선진국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우울증 환자에게 운동을 처방하기도 한다. 송 씨는 “제가 달리면서 활기차게 살자 남편도 적극 달리기를 지지해주고 있다”고 했다. 대회 출전하면서 사귄 친구들도 큰 도움이 됐다. 서로 ‘파이팅’을 외치고 응원하면서 달리는 게 너무 좋았다. 대회 때만 잠깐 스쳐가듯 보는 ‘달리기 친구들’이지만 기록보다는 서로 힘이 돼주면서 즐기면서 달리는 게 좋았다. 2019년 10월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인제 K100 국제트레일러닝 대회 때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입문했다. 당시 대회 주최 측인 OSK(아웃도어스포츠코리아)가 트레일러닝 여자 세계랭킹 1위였던 미라라이(네팔)와 달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해 지원했는데 당첨되면서 산을 달리게 된 것이다. “25km를 가볍게 함께 달리는 특별이벤트였는데 너무 좋았어요. 산도 달릴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제가 사는 홍천 주변엔 산이 많아요. 그리고 그동안 약 해발 400m인 홍천 남산에도 자주 올라가서 산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었어요. 제게 딱 맞은 운동이었습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발병해 모든 도로 레이스가 없어졌지만 소수 정예가 출전하는 트레일러닝은 계속 열렸다. 송 씨가 자연스럽게 산을 달리게 된 이유다. 그는 “산을 본격적으로 달리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어차피 도로 대회가 다 없어지다 보니 주말엔 주로 산만 타게 됐다”고 했다. 올 5월 서울도성길 26km 대회도 참가했다. 요즘엔 오후 7시부터 달린다. 일을 마친 뒤 홍천강을 최소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 달린다. 주 2~3회. 웨이트트레이닝도 주 2회 이상 한다. 상하체 근육을 고르게 잡아줘야 부상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매주 산을 달리지만 무릎 발 관절에 전혀 이상이 없다. 허리 디스크도 있었는데 달리면서 아직 통증이 없는 것을 보니 오히려 관절 주변 근육이 강화돼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주말엔 무조건 산으로 가 3~4시간을 달린다. 산을 10~15km를 달리는 셈이다. 주변 월악산, 치악산은 물론 설악산도 달린다. 멀리 지방 원정도 간다. 모두 혼자 달린다. “새벽에 차를 몰고 가 목표로 한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집에 돌아와도 하루면 다 해결됩니다. 뭐 어차피 산에서는 함께 달리는 것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좋아서 즐겁게 달리니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먼 지방을 갈 경우에는 지역 역사 탐험의 기회로 생각한단다. 경북 경주에 가서 대회에 출전하기도 하지만 경주 곳곳을 돌아보며 신라의 역사도 느끼고 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사는 게 아주 좋다. 멀리 깔 땐 남편도 함께 가준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짧은 거리를 달렸지만 이젠 50km 이상을 달리는 긴 트레일러닝에 도전할 계획이다. 송 씨는 10월 열리는 서울둘레길 100K에서 50km를 도전한 뒤 11월에 열리는 트렌스제주에서 다시 50km 트레일러닝에 참가할 예정이다. “솔직히 제가 아주 잘 달리지는 못하지만 입상권에는 들 정도입니다. 작은 대회에서 5~6위는 많이 했어요. 어차피 시작한 달리기니 큰 대회에서 꼭 5위 안에 들고 싶어요. 잘 달리는 사람들이 많아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달리면 동기부여도 돼서 더 열심히 달리게 됩니다.” 송 씨는 달리며 새 인생을 살고 있고 이렇게 계속 달리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이젠 달리기는 없어서는 안 될 ‘절친’이 됐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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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미루다간…” 위기의식에 시작한 근육운동, 자신감도 안겼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직업상 얻은 요추 경추 디스크에 고혈압 고지혈증까지 생겼어요. 더 이상 미루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한민국 1호 비뇨의학과 전문의’ 윤하나 이대서울병원 비뇨의학과 교수(51)는 지난해 3월 중대 결단을 내렸다. 체중 감량을 위해 근육을 키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15년 넘게 건강을 위해 필라테스를 해왔지만 나이 들면서 찐 살이 빠지지 않았다. 의사로서 각종 질병까지 얻어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그는 “의사도 사람이다 보니 나이가 들고 나잇살도 피할 수 없었다. 그동안 일한다고 살을 빼기 위해 강도 높은 운동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운동해야 했다. 그래서 병원근처 웨이트필라테스를 하는 루나짐을 찾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할 때 어깨를 올리고 근육이 긴장시키는 자세를 유지하다보니 어느 순간 거북목이 됐다. 비뇨의학과 수술은 수술 부위가 매우 좁고 로봇 수술이 많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모니터를 보는 것처럼 굽어지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목 디스크까지 발병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까지 이르렀다. 재활의학과 교수의 조언을 받아 2005년쯤부터 필라테스를 시작한 이유다. 건강은 유지됐지만 나이 들면서 늘어난 살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윤 교수는 웨이트트레이닝과 필라테스를 함께 해주는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으며 유산소 운동도 병행했다. 웨이트필라테스는 웨이트트레이닝과 필라테스를 병행하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하는 운동 방식이다. 박루나 루나짐 대표는 “원래 필라테스는 저항운동(근력운동) 이었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근막 이완운동, 속칭 스트레칭이 됐다. 발레 동작을 기본으로 필라테스와 웨이트트레이닝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전신의 근육을 발달시킨다”고 설명했다. 경추 요추 디스크 증세가 있는 윤 교수는 전체적인 코어 근육 향상뿐만 아니라 디스크 부분 근육을 강화시키는 다양한 동작도 병행했다. 디스크 증세가 있는 부분 근력이 강화돼야 뼈와 뼈를 제대로 잡아줘 통증이 사라진다. 주 3회 1시간 씩 PT를 받고 집에서는 고정식자전거를 타거나 트레드밀(러닝머신) 위를 달렸다. 근육을 키워 에너지 소비량을 높이고 유산소운동으로 지방을 태우는 게 다이어트에 가장 효과적인 운동법이다. 근육량이 늘고 지방이 감소하면 기초대사량 등 에너지 소비가 늘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그는 “공복상태에서 다이어트 효과가 좋아 아침 일찍 유산소 운동을 했다. 피곤해 하지 못하면 일을 마치고 저녁에도 했다”고 했다. 조금 빠지긴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나이가 들면 다이어트 할 때는 일정 강도 이상으로 운동을 해줘야 효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나이 들어 다이어트하기가 더 힘든 것이다. 윤 교수는 지인들과 얘기하다 ‘피트니스대회에 출전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회에 출전하려면 식단관리도 해야 하고 훈련도 체계적이고 강도 높게 해야 해 다이어트 효과가 좋을 것 같았다. 7월 말 열린 2021맥스큐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코리아챔피언십 대회를 위해 3개월 전부터 강도 높은 준비에 들어갔다. 주 4회 PT 1시간씩에 매일 유산소운동 1시간, 그리고 저탄수화물 고단백 음식조절까지…. 병원 업무와 대회 준비를 함께 하다보니 하루하루가 도전이었다. 대회 1주일 전엔 더 철저하게 음식을 조절하고 훈련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휴가까지 냈다. 효과는 대단했다. 근육이 붙고 살도 급속히 빠져 지난해 본격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한 뒤 11kg이나 체중이 감량됐다. 대회에서 스포츠모델 오픈 쇼트 4위, 시니어모델 4위 등 2개 분야에서 입상했다. 윤 교수는 사상 첫 머슬마니아 입상 여성 비뇨의학과 교수란 타이틀까지 얻었다. 윤 교수는 웨이트트레이닝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겨울이면 꼭 마사지를 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생활이 불편했다. 진료 보거나 수술할 때 목부터 어깨, 팔까지 테이핑을 했다. 테이핑은 근육을 잡아줘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게 도와준다. 살이 빠지고 근력이 좋아지면서는 안 한다.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에 나섰지만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더 잘 하기위한 측면도 강했다. 환자 치료를 잘 하려면 건강해야 한다. 그는 “과거 선배들이 의사는 자기 생명을 깎아서 환자를 살린다고 했다. 내 몸이 힘들어도 일단 환자를 치료하고 살려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들도 환자를 더 잘 보기 위해 건강을 위해 투자를 많이 한다. 하지만 지속적인 운동을 실천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의사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잘 안다. 문제는 실천이다. 일에 시달리다보면 짬을 내기 쉽지 않다. 윤 교수는 “모두가 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어 한다. 결국 실천의 문제다. 난 실천했다. 선후배들에게 일하면서도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기쁘다. 그래서인지 주위 사람들이 잘했다고 격려해줘 더 힘이 난다”고 했다. 윤 교수는 운동의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실천, 그리고 습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체육관이나 피트니스센터에 가는 게 중요합니다. 머리로는 절대 운동 못합니다. 움직여야 해요. 그리고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루는 습관이 익숙해지면 절대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힘들어도 운동을 실천해야 익숙해집니다. 운동하기 전까지 힘들어서 그렇지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지고 기분도 좋아집니다. 이런 쾌감을 느끼기까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윤 교수는 요즘 환자 보는 게 훨씬 편안하다. 그는 “진료가 즐거울 수는 없지만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는다. 과거엔 치료 경과 좋지 않거나 진상 환자를 만나면 짜증을 냈다. 이젠 자신감이 생겨 어떤 스트레스도 통제할 수 있다”고 했다. 사고방식도 달라졌다. 50세 넘어 머슬마니아 대회에 도전했고 성과를 내면서 뭐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됐다. 그는 “30대가 아닌 지금 이 나이에 도전했다는 게 중요하다. 솔직히 이 나이에 몸만들기 쉽지 않았는데 해냈다. 그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 못한다. 이젠 다른 어떤 것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했다. 이젠 환자들에게도 “규칙적으로 운동 하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직접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실 대회 출전해서 상까지 받는 바람에 이젠 요요현상이 오면 절대 안 됩니다. 다 저를 지켜보고 있잖아요. 잘 유지해야지요. 하지만 전 오래 살기 위해서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운동하고 있어요. 의사로서 일도 잘하고 제가 하고 싶은 것도 즐기면서 살기 위해서죠. 이렇게 살다보면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윤 교수는 학창 시절 겨울엔 스키를 타고 여름엔 수영을 즐길 정도로 몸 쓰는 것을 좋아했다. 한 때 취미로 발레를 하기도 했다. 골프도 즐겼다. 그는 “승마와 검도, 종합격투기 주짓수, 스쿠버다이빙 등을 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꼭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왜 비뇨의학과를 선택했을까? “전문의 과정을 선택할 때 교수님이 ‘우리나라에 비뇨의학과 여의사가 없는데 나온다면 이화여대에서 나와야 한다’고 했어요. 그 때까지 비뇨의학과는 피부과와 함께 성병이나 조루 등을 보는 것으로 알았죠. 그런데 직접 공부해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소변이 만들어져 내려가고 모여서 몸 밖으로 나가는 모든 기관, 신장, 부신, 요관, 방광 등을 관장해요. 성적인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어요. 외과적 치료와 내과적 치료를 다 해야 해요. 연구할 분야가 다양했어요. 그래서 선택했습니다.” 이화여대 출신 윤 교수는 대한민국 1호 비뇨의학과 전문의가 됐다. 지금은 50명에 가까운 여성 전문의가 활동하고 있다. 비뇨의학과를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윤 교수는 필라테스를 하면서 코어근육이 강화되자 자신의 환자들도 코어 근육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필라테스 방광 건강운동을 고안하기도 했다. 2019년 이대서울병원 개원과 함께 지역 주민을 위한 건강 강좌를 진행했다. 윤 교수는 “아직 목표치까지 다이어트를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회 출전이란 목표를 다시 잡았다. 그는 “내년에 한 번 더 대회에 출전하고, 55세 때 그리고 65세 때 다시 도전 할 계획이다. 은퇴하기 전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도전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윤 교수에게 피트니스 대회 출전은 즐거운 도전이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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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 빼려 시작한 근육운동, 수술 스트레스도 날려줬죠”[양종구의 100세 건강]

    윤하나 이대서울병원 비뇨의학과 교수(51)는 지난해 3월 중대 결단을 하고 실천에 들어갔다. 체중 감량을 위해 근육을 키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15년 넘게 건강을 위해 필라테스를 했지만 나이 들면서 찐 살이 빠지지 않았다. 직업상 얻은 요추 경추 디스크에 혈압도 높고 고지혈증까지 왔다. 의사로서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의사도 사람이다 보니 나이가 들고 나잇살도 피할 수 없었다. 그동안 살을 빼기 위해 강도 높은 운동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루다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병원 근처 웨이트필라테스를 하는 곳을 찾았다.”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을 할 때 어깨를 올리고 근육을 긴장시키는 자세가 되다 보니 어느 순간 거북목이 됐다. 비뇨의학과는 수술 부위가 매우 좁고 로봇 수술이 많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몸을 굽히고 있어야 한다. 목 디스크까지 발병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에 이르렀다. 재활의학과 교수의 조언을 받아 2005년쯤부터 필라테스를 시작한 이유다. 건강은 유지됐지만 나잇살은 빠지지 않았다. 윤 교수는 웨이트트레이닝과 필라테스를 함께 해주는 퍼스널 트레이닝(PT)을 받으며 유산소운동도 병행했다. 주 3회 1시간씩 PT를 받고 집에서는 고정식 자전거를 타거나 트레드밀(러닝머신) 위를 달렸다. 근육을 키워 에너지 소비량을 높이고 유산소운동으로 지방을 태우는 게 다이어트에 가장 효과적인 운동법이다. 그는 “공복이라서 다이어트 효과가 좋기 때문에 아침 일찍 유산소운동을 했다. 피곤해 하지 못하면 일을 마치고 저녁에도 했다”고 했다. 조금 빠지긴 했지만 미미했다. 지인들과 얘기하다 ‘피트니스대회에 출전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회에 출전하려면 식단 관리도 해야 하고 훈련도 체계적이고 강도 높게 해야 해 다이어트 효과가 좋을 것 같았다. 지난달 말 열린 한 머슬마니아 피트니스대회를 위해 3개월 전부터 강도 높은 준비에 들어갔다. 주 4회 PT 1시간씩에 매일 유산소운동 1시간, 그리고 저탄수화물 고단백질 음식 조절까지 했다. 병원 업무를 보면서 대회 준비를 함께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도전이었다. 대회 일주일 전엔 휴가까지 냈다. 효과는 컸다. 근육이 붙고 살도 급속히 빠져 지난해 본격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한 뒤 11kg이나 감량했다. 대회에서 스포츠모델 오픈 쇼트 4위, 시니어모델 4위 등 2개 분야에서 입상했다. 대한민국 여성 1호 비뇨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사상 첫 머슬마니아 입상 여성 비뇨의학과 교수란 타이틀까지 얻었다. 윤 교수는 웨이트트레이닝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까지 진료나 수술을 할 때 목부터 어깨, 팔까지 테이핑을 했다. 근력이 붙으면서는 안 한다.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에 나섰지만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측면도 강했다. 환자 치료를 잘하려면 건강해야 한다. 그는 “과거 선배들이 의사는 자기 생명을 깎아서 환자를 살린다고 했다. 내 몸이 힘들어도 일단 환자를 치료하고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들도 환자를 더 잘 보기 위해, 건강을 위해 투자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운동 효과를 보기 위해선 실천, 그리고 습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체육관이나 피트니스센터에 가야 한다. 머리로는 절대 운동 못 한다.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운동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미루는 습관이 익숙해지면 절대 건강해질 수 없다. 힘들어도 운동을 실천해야 익숙해진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요즘 환자 보는 게 훨씬 편안하다. 그는 “진료가 즐거울 수는 없지만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는다. 과거 치료 경과가 좋지 않거나 진상 환자를 만나면 짜증이 났다. 이젠 자신감이 생겨 어떤 스트레스도 통제할 수 있다”고 했다. 사고방식도 달라졌다. 50세 넘어 머슬마니아 대회에 도전했고 성과를 내면서 뭐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됐다. 환자들에게도 “규칙적으로 운동하라”고 자신 있게 권한다. 직접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오래 살기 위해서보다는 일이든 취미생활이든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운동한다. 이렇게 살다 보면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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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母 돌아가신 후 무작정 걷기 시작… 35kg 감량했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충북 청주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정용권 씨(52)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4년 전부터 시작한 걷기와 등산으로 35kg 넘게 감량했다. 그는 매일 걷고 주말엔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오르며 슬기로운 100세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4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지병으로 한달 고생하다 가셨어요. 사실 그 때까지는 죽음이라는 것을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머니를 지켜보며 죽음이라는 게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도 죽을 수 있다고 처음 생각했어요.” 당시 정 씨의 체중이 120kg 나갔다. 그는 “아 내가 무분별하게 살았구나. 정말 생각 없이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저녁 때 허기진다는 이유로 밥 3공기에 맥주 4캔을 마시고 바로 자는 게 생활이었다고 했다. “그런 생활이 나쁘다는 생각도 안했는데 어느 순간 몸이 불어나 있었어요. 제 몸 상태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어머니 돌아가신 것을 계기로 느낀 겁니다.” 돌이켜보니 몸이 좋지 않았다.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혈압도 높았다. 몸이 둔했고 움직일 때 숨이 가빴다. 늘 피곤했다. 머리도 무거웠다. 어쩔 땐 현기증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쉬운 게 걷기잖아요. 처음엔 아파트 한바퀴 도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 다음 공원도 가고 마트도 가고…. 조금씩 늘려갔어요. 어머니 돌아가신 게 저에겐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1km에서 2km, 2km에서 5km, 5km에서 10km. 걷는 거리가 늘었다. 자연스럽게 걷기가 생활화가 됐다. “자영업을 하다보니 특별하게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생활 속 운동을 실천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3km를 걷습니다. 동네 근처 해발 220m 목령산까지 2km를 다녀온 뒤 아파트 한바퀴 1km를 걷죠. 점심 땐 가게 문을 닫고 1시간 30분을 걷습니다. 한 5km 정도 걷게 되죠. 저년 땐 식사를 하고 3km를 걷습니다. 집사람이 뭐 살게 있다면 걸어서 마트를 다녀오고 아니면 그냥 걷습니다.” 정 씨는 어느 순간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몸이 더 많이 걸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운동량을 계속 늘렸다. 그러다보니 매일 10km 이상을 걷게 됐다”고 했다. 등산을 한 것도 몸이 반응해서란다. “제 고향은 전북 김제인데 주변에 산이 없었죠. 제가 산에 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런데 걷다 보니 더 많은 운동량이 필요해졌고 어느 순간 산에 올라가도 전혀 문제없는 몸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솔직히 평지를 걷기만 하면 재미가 없어서 산을 간 측면도 있습니다.” 산 오르는 것도 처음엔 집 주변 해발 200m 낮은 산부터 300m, 400m로 차근차근 올렸다. 어느 순간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 명산도 가게 됐다. 정 씨는 걷기 시작 1년째부터 운동 루틴이 현재 하고 있는 것으로 정해졌다고 했다. 매일 11km를 걷고 주말에는 산으로 가는 게 그의 운동 루틴이다. 2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해발 1000m 이상급 산을 오르게 됐다. “솔직히 그냥 살기 위해서 걷고 산에 올랐는데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정도 걸으니 천천히 신체적인 변화가 왔어요. 역시 걷는 양이 많아지니 살이 빠지더라고요. 1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빠져 2년째엔 현재 몸무게인 80kg초중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부터는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오르고 있다. “체력이 좋아지다 보니 한라산을 찾게 됐죠. 한라산 7개 코스를 다 돌아봤어요. 설악산도 12개 코스를 4, 5번에 걸쳐 훑었죠. 산이 너무 좋아졌어요. 온갖 나무와 꽃, 바위, 계곡, 능선 등 경관도 좋았죠. 산과 하나 되는 느낌도 좋았어요.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이라니…. 어느 순간 능선을 타는 맛을 알게 됐죠. 그러다 보니 산 전체의 맛까지 느꼈습니다. 그러다 산을 좀 체계적으로 타보자는 생각에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오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일요일(8월 1일)까지 51개의 명산을 올랐습니다.” 정 씨는 7월 28일부터 8월 1일까지 여름 휴가기간에만 100대 명산 7개를 올랐다. 수도권 도봉산과 수락산, 청계산, 경기 양평 유명산, 경남 함양 황석산과 산청의 황매산, 그리고 전남 영암의 월출산까지. 8월 7일엔 전북 장수 장안산, 8월 8일엔 경남 합천 가야산에 오를 예정이다. “한번 산에 오르면 3~4시간은 후딱 지나갑니다. 능선을 탈 경우엔 6~7시간 걸리죠. 이젠 산을 타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어집니다. 저에게 등산은 생활의 활력소입니다.” 이렇게 산을 많이 타면 무릎은 괜찮을까? “걷기 전에는 스키와 스노보드를 좋아했어요. 스노보드를 타다 넘어져 오른쪽 무릎을 다쳤었죠. 인대 등 주요 부분을 다친 것은 아니지만 평상시 절리는 증세가 있었는데 산을 타면서 없어졌어요. 전 등산하면서 무릎이 더 좋아졌어요.” 정 씨는 매일 걷고 산을 타다보니 매년 운동화 4, 5켤레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 등산화를 신었는데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더 편한 운동화를 신는다. 2~3개월에 한 켤레는 갈아 신고 있다”고 했다. 정 씨는 다이어트를 위해 산을 탄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솔직히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산을 탔으면 지금까지 못 왔을 겁니다. 일찌감치 포기했을 거예요.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걸었고 걷다보니 산을 올랐고, 산이 좋아 산을 타다보니 어느 순간 다이어트란 선물이 제게 와 있었습니다. 혹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걷은 것과 등산을 취미로 삼으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럼 시간이 지나면 살은 자연스럽게 빠집니다.” 정 씨는 요즘 옷 입는 맛이 난다고 한다. 2년 전부터 체중은 그대로지만 몸이 탄탄해져 옷맵시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정 씨가 이렇게 열심히 산을 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내 인필선 씨(50)였다고 했다. “처음부터 집사람이 함께 해줬어요. 함께 걷고 산에도 함께 갔죠. 제가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등산을 즐기고 있는 데는 아내의 도움이 컸습니다. 도시락과 과일 등 필요한 것도 잘 챙겨줬습니다. 산에 가면 먹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 씨는 걷고 산을 타다보니 살이 빠졌고 건강도 얻었다. 부부간의 정도 더 두터워졌다. 그는 “평생 아내와 함께 산을 타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겠다”고 했다. 정 씨 부부는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사는 대표적인 모범 사례이다. 스포츠심리학적으로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은 운동을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스포츠심리학에 ‘사회적 지지(지원)’라는 게 있다. 특정인이 어떤 행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요인으로 정서적, 정보적, 물질적, 동반자 등의 지지를 말한다. 이 중 동반자 지지가 가장 강력하다.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드는 요인으로서 동반자가 중요한데 그 동반자가 남편이나 아내라면 더 오래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부부가 함께 즐기면 서로 의지하며 운동을 지속할 가능성이 더 높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도 생겨 금슬도 좋아진다”고 말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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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양종구]도쿄 올림픽과 스포츠 선진국

    한국이 도쿄 올림픽에서 불모지라고 평가받던 기초종목에서 선전했다. 기계체조 뜀틀에서 남자 신재환이 금메달을, 여자 여서정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우상혁은 육상 남자 높이뛰기에서 사상 최고인 4위에 올랐다. 황선우는 수영 남자 자유형 100m에서 역시 역대 최고인 5위를 했다. 이런 성과에 일부에서는 “이젠 대한민국도 스포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것 아니냐”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스포츠 선진국은 기초종목인 육상과 수영, 체조의 저변이 넓다. 기초종목은 신체능력만으로 평가받는 스포츠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신체능력을 키울 수 있어 선진국은 어렸을 때부터 강조하고 있다. 미국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면 최소한 한 번씩은 경험한다. 기초종목뿐만 아니라 구기, 라켓 등 대부분 스포츠도 어릴 때부터 접한다. 기초종목을 잘하면 상위 학교로 올라가면서 미식축구, 농구, 야구 등 프로스포츠 종목으로 스카우트되기도 한다. 미국은 이런 선순환 구조로 ‘스포츠 강국’의 명성을 쌓았다. 가까운 일본도 미국 시스템과 거의 비슷하다. 선진국은 운동(스포츠)을 교육의 중요한 한 축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전통적으로 스포츠를 중시한다. 하버드대는 신입생을 뽑을 때 학업 성적 외에도 다양한 분야를 평가한다. 그중 중고교 시절 스포츠 선수로 활동하며 주장을 맡은 학생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리더로서 갖춰야 할 기본을 스포츠를 통해 습득했다는 판단에서다. 예일대 등 아이비리그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리더십과 협동심, 성실성, 사회성, 인내력 등을 스포츠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대학이 이렇다 보니 명문 고등학교도 스포츠를 강조한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선 일반 학생들도 스포츠는 기본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떨까. 1980년대만 해도 육상 등록선수가 2만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5000명대로 줄었다. 4분의 1 수준이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이 입시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 2학년 땐 아예 체육 수업이 없다. 중학교 때 주 3시간으로 좀 활성화되는 듯하다 고등학교에 가면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입시 점수를 위해 체육시간은 자율학습으로 대체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과 후 학교스포츠클럽제도 등을 도입해 스포츠 활동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입시란 현실에 밀려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결국 운동은 선수들만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학력고사에 체력장 점수(20점)가 포함돼 있을 때인 1970, 80년대 육상 등록선수가 가장 많았다. 군사정권 시절 강압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선 몸도 건강해야 했다. 체력장 하다 실력이 검증돼 육상선수가 된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체력장을 부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했다. ‘신은 인간이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 두 가지 수단을 전해줬다. 교육과 신체 활동. 교육은 정신을 위해, 신체 활동은 신체 건강을 위한 게 아니다.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함께 갈 때 인간은 완벽해질 수 있다.’ 운동과 공부가 따로 가는 교육 시스템을 바로잡지 않으면 한국은 올림픽 때 기초종목에서 선전해도 늘 ‘불모지에서 이룬 영광’이란 수식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일반 학생도 운동과 공부를 함께 해야 조화로운 인간이 된다. 땀 흘려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에게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기초종목이 반짝 성적을 냈다고 스포츠 선진국을 말할 때는 아니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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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양종구]체조 수영 육상의 영웅들

    신재환이 2일 열린 도쿄 올림픽 기계체조 남자 뜀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양학선이 정상에 오른 뒤 한국 체조 사상 두 번째 금메달이다. 신재환은 1차 시기에서 최고 난도의 ‘요네쿠라’(공중에서 3바퀴 반 비틀어 돈 뒤 착지)를 성공한 뒤 2차 시기에서 ‘여2’(공중에서 두 바퀴 반을 비틀어 돈 뒤 착지)까지 깔끔하게 성공했다. 여2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여홍철 경희대 교수의 기술이다. 여자 뜀틀에서는 여 교수의 딸 여서정이 ‘여서정’ 기술로 동메달을 따 한국 여자 체조 사상 첫 메달 획득 및 첫 부녀 메달리스트가 됐다. ▷체조와 수영, 육상은 기초 종목으로 불린다. 체중에 따른 체급도 없고 싸울 기구도 없다. 오직 훈련으로 쌓은 신체 능력이 유일한 경쟁 도구다. 육상 남녀 100m 대결에 지구촌이 주목하는 이유가 신체 능력만으로 지구에서 가장 빠른 남녀를 가리기 때문이다. ▷남자 수영 자유형 100m에서는 황선우가 5위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황선우의 100m 5위가 69년 만에 아시아인으론 최고 성적이라는 사실은 그동안 신체 능력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서구 선수들이 이 종목을 지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선우는 그 벽을 깼다. 육상 높이뛰기 남자 결선에서는 우상혁이 2m35까지 깔끔하게 넘어 개인 최고기록(2m31)보다 4cm를 더 뛰어 역대 육상 트랙과 필드 사상 최고인 4위에 올랐다. ▷기초 종목에서는 한계 상황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면 목표를 이루기 힘들다. 신재환은 허리에 철심을 박은 상태에서도 뜀틀을 수없이 뛰어넘어 요네쿠라와 여2를 완성했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돌 수 있는 수준까지 만들어 세계를 제패했다. 우상혁도 자신의 한계인 개인 최고기록 이상을 넘으려 줄기차게 시도했다. 우상혁은 8세 때 자동차 바퀴에 오른발이 깔려 왼발에 비해 1.5cm 작은 불리함도 극복했다. 달릴 때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았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밸런스를 맞췄고, 결국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들의 성취는 불모지에서 이룬 것이기에 더 빛난다. 대한체육회 등록 선수(2021년 상반기) 기준 육상은 남녀 총 5292명, 수영은 3155명, 체조는 1235명이다. 일본은 육상만 38만여 명이다. 인구를 감안해도 한국이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이들은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출했다. 양학선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마린보이’ 박태환도 그랬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특출한 천재 하나에만 기대는 게 한국 기초 종목의 현실이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기초 종목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커지길 기대한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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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 수련한 ‘태권도 전도사’ “올림픽 노골드? 중요한 건…”[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곽영훈 세계시민기구(WCO) 대표(78)는 글로벌 ‘태권도 전도사’다. 10대 초반부터 태권도를 배웠고 80세를 눈앞에 둔 지금도 도장에서 품세와 발차기, 주먹지르기, 격파로 심신을 수련하고 있다. 국제 활동을 많이 하는데 해외에 나갈 때 만나는 사람들에게 태권도가 심신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강조한다.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돼 있고 심신의 건강을 동시에 끌어올리기에는 태권도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집이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었는데 바로 옆이 대한민국 태권도의 한 축인 청도관이었어요. 친형이 먼저 수련을 시작했고 저도 자연스럽게 따라 배웠습니다. 우리 땐 특별하게 즐길 스포츠도 없었어요. 태권도는 운동도 됐지만 사범을 존경하고 체계적으로 무술을 익히는 등 진정한 도(道)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경기중고시절 잠깐 배구를 하기도 했지만 평생 태권도를 했습니다.” 당시는 경기차원이 아닌 개인 수양으로 태권도를 익혔다. 그는 “사범들은 내게 호국정신과 호연지기를 불어 넣었다. 누구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수양하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라고 했다. 그 정신이 좋았다”고 했다. 곽 대표는 무엇보다 태권도를 통해서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것을 배웠다. “태권도 품세든 발차기든 내 머릿속에서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에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순간적인 판단에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상대를 공격하거나 방어할 수 없죠. 세상 모든 게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먹어도 결국 몸으로 실행해야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생각만 가지고는 이뤄지는 게 없습니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합니다. 전 태권도를 통해 그것을 체득했습니다.” 평생 태권도 수련을 멈추지 않은 이유다. 미국 MIT공대(건축학 학사, 석사), 하버드대(정책학) 유학시절에는 체육관에 태권도 클럽을 만들어 세계적인 수재들을 직접 지도했다. 1960년대 초엔 한국 학생은 일본 혹은 중국 사람으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태권도로 한국을 알린 것이다. 당시 액션스타로 인기를 누렸던 브루스 리(이소룡)를 닮아 쉽게 태권도를 전파할 수 있었다고 했다. 태권도는 그에게 좋은 기회도 가져다 줬다. 1964년 우연한 기회에 미국 뉴욕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지켜봤는데 ‘아 이런 국제 행사로 나가가 발전 하는구나’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해 일본에서 열린 도쿄올림픽을 지켜보며 ‘한국도 올림픽을 개최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인프라를 잘 갖추는 게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1972년 뮌헨 올림픽을 직접 참관했다. 마음먹은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태권도 정신을 실천했다. MIT와 하버드에서 태권도를 지도하며 모아둔 돈이 있어 가능했다. 그는 그곳에서 “시내를 지하철로 연결하고, 쓸모없을 것 같은 공간도 공원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직접 보고 왔다”고 했다. 곽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홍익대 도시계획학과장으로 고 구자춘 서울시장에게 서울올림픽 개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서울 잠실 일대에 올림픽종합경기장 및 공원을 짓는 밑그림을 만들어 제시했다. 지하철 2호선도 그곳을 통과하게 조언했다. 1975년 사람과환경그룹을 만든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기간시설 건설플랜은 물론 1993년 대전엑스포 유치 마스터플랜 등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했다. 한강종합개발, 대학로, 영종도배후도시, 대전 테크노폴리스 등 굵직한 국가사업의 그림이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그는 “서울 수도권. 대전 중부권, 여수 남부권 등 대한민국을 전반적으로 발전시키는 큰 그림을 그리고 구체화 작업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부에서 잠실 몽촌토성을 개발하자고 했지만 역사를 잘 보전하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외부공간으로 조성했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를 없애자는 것도 막았다.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사람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개발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사람과환경그룹은 곽 대표가 1969년 미국 보스턴에 설립했던 회사를 한국으로 들여온 것이다. 한국의 발전을 위해 MIT와 하버드 출신 인재를 중심으로 만들었다. 당초 참여한 사람 이니셜을 따 KMR Associates라고 했다가 한국어 ‘아 좋다’느낌이 나는 ‘Adheotas KMR Associates’로 바꿨다. 인간 환경을 설계하는 국제모임(International designer‘s society for human environment on the basis of technology art and science)이다. WCO는 1987년 창설했다. “고문으로 박종철이 사망하고, 이를 규탄해 시위하던 이한열까지 사망하는 등 정국이 혼란스러웠죠. KAL기 폭파 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서울올림픽을 취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죠. 이래서 안 되겠다며 네트워크를 총 동원해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러시아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보이콧을 못하게 막으면서 발족시킨 국제 조직입니다.” WCO는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국제 네트워크로 지원했다. 지금은 실크로드 도시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친환경적 도시건설을 유도하고 있다. 그는 WCO 활동에 대해 “우리가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 살고 있지만 국가는 정치색이 강하고 국방·외교·경제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사람을 덩어리져서 딱딱하게 만든다. 딱딱하면 서로 부딪치게 된다. 국가간 충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도시를 중심으로 시민들이 교류, 연대하면 갈등을 풀고 충돌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WCO 실크로드 시장(市長) 포럼을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곽 대표가 이렇게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는 원동력에 태권도가 있었다. 태권도에서 배운 호국정신을 국가번영정신으로 발전시켰고, 미국유학시절부터 국가건설 프로젝트를 준비해 실행했다. 지금도 최소 주 1회는 WCO태권도장에서 수련하고 있다. 수련은 먼저 복식호흡과 명상으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본격적인 신체 단련에 들어간다. 정신수양이 먼저기 때문이다. 곽 대표는 태권도를 했다는 인연으로 1970년대 중반 한국초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을 맡기도 했다. 회장 시절 어린이 태권왕 대회를 만들었는데 1회 대회에서 탤런트 김혜수 씨가 서울미동초등학교 다닐 때 나와 태권왕이 됐다고 했다. 곽 대표는 평소엔 걷기와 주변 청소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집(서울 신당동) 근처 매봉산과 남산을 매일 오른다. 40여년 전부터 하고 있는 ’남산소나무 살리기‘도 그에겐 운동이다. 우연히 남산을 걷다 아카시아나무가 너무 빨리 자라며 소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보고 아카시아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매일 하는 집 주변 서울성곽 청소도 그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 가지치기와 청소의 운동량이 상당하다. 모두 태권도에서 배운 봉사정신에서 비롯됐다. 태권도 9단인 곽 대표는 “이제 뉴노멀시대다. 시시각각 바뀌는 시대변화에 잘 적응하려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심신을 단련시키는 태권도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속 ’운동‘과 태권도 덕택에 지금까지 이렇다 할 병없이 건강했고 , 노년에도 활기차게 일하고 있다. 그는 태권도 종주국 한국이 도쿄올림픽에서 사상 처음 노골드에 머문 것에 대해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태권도가 잃어가는 도(道)를 다시 되새길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과거엔 도를 배웠어요. 태권도를 통해 자신을 자각하고 무술을 익혀 더 좋은 목적을 위해 쓰려고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태권도는 전문 경기인들 빼면 아이들이 잠시 배우다 마는 스포츠가 됐습니다. 심신을 수양하는 도의 개념이 사라진 것입니다.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잘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태권도를 통해서 심신을 수양할 수 있도록 도를 다시 강조해야 합니다. 태권도는 운동 효과는 물론 정신수양에 큰 도움이 됩니다. 대한민국에서도 남녀노소가 태권도를 즐기는 시대가 오길 기대합니다. 저도 힘을 보내겠습니다.” 곽 대표는 국내는 물론해외에서 오는 손님들에게 태권도를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신당동에 WCO 태권도장을 만들었다. 그의 태권도 사랑은 끝이 없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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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양종구]‘발 펜싱’과 ‘고속 팔 젓기’

    한국 펜싱 사브르 선수들은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명 불빛터치 스텝 훈련을 줄기차게 반복했다. 1∼2m 전방 목표지점에서 불이 들어오면 잽싸게 펜싱 스텝으로 앞으로 나가 손으로 터치한 뒤 돌아오는 동작을 1회에 15초 동안 반복한다. 3개의 불 중 2개(빨간색, 주황색)가 들어오면 빨간색을 터치하는 훈련도 했다. 빠른 발과 순간적인 판단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이다. ▷도쿄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한국이 9년 만에 정상에 오르자 ‘발 펜싱’이 화제가 되고 있다. 키가 큰 것은 물론 팔도 긴 데다 손기술까지 좋은 유럽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한 한국식 펜싱이 우승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2012년 런던 때 펜싱 사브르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활약한 발 펜싱 1세대인 김정환 구본길 등으로 구성된 남자 대표팀이 다시 금메달을 걸며 그 진가를 보여준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체격의 열세를 극복하는 방법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기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체력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4강 신화의 원동력인 한국축구대표팀 파워 프로그램도 결국 유럽 선수들보다 더 많이 뛰게 만든 체력 프로그램이었다. 상대보다 빨리 움직이기 위해 한국 펜싱 대표팀은 강도 높은 체력훈련과 함께 스텝 훈련을 밥 먹듯이 했다. ▷수영 자유형 남자 100m에서 아시아선수로 69년 만에 최고인 5위에 오른 황선우는 빠른 팔 젓기로 세계적인 선수들과 대등한 레이스를 펼쳐 주목받았다. 역시 큰 키와 근육질 몸매의 서양 선수들이 파워를 과시하는 100m에서 체격적인 열세를 극복한 방법이 빠른 팔 젓기였다. 황선우는 이날 우승한 미국의 케일럽 드레슬보다 약 10회 더 팔을 회전시켰다. ▷황선우는 어려서부터 스피드 강화를 위해 자신만의 영법을 진화시켰다. 황선우는 오른쪽으로 숨을 쉰 다음 오른팔을 앞으로 더 길게 밀어 넣어 물을 세게 당겨 추진력을 얻는 ‘엇박자 영법’이란 리듬을 유지하며 팔 젓기를 빠르게 했다. 그를 지도한 이병호 서울체고 감독은 “리듬이 깨지지 않고 팔 스트로크를 빠르게 하는 게 선우만의 기술”이라고 했다. 리듬 없이 무작정 팔만 빨리 회전시킬 경우 오히려 추진력을 잃을 수 있다.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남이 흉내 내기 힘든 자신만의 강점이 있어야 한다. 남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은 한발 빠른 발로 세계를 정복했다. 황선우는 한 템포 빠른 팔 젓기로 가능성을 보였다. 고등학생 황선우는 아직 체력적으로도 미완성이다. 가능성이 많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황선우가 3년 뒤 파리에서 남자 펜싱 대표팀처럼 최정상에서 활짝 웃길 기대한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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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건강]“정신까지 건강하게 해준 태권도, 내 인생의 버팀목”

    곽영훈 세계시민기구(WCO) 대표(78)는 10대 초반부터 태권도를 배웠고 팔순을 눈앞에 둔 지금도 도장에서 품세와 발차기, 주먹지르기, 격파로 수련하고 있다. 그는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돼 있고 심신의 건강을 동시에 끌어올리기에는 태권도가 제격이라고 강조한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청도관 본관에서 처음 태권도를 접했다. 집 바로 옆이 청도관이었다. 형이 먼저 시작하자 따라 배웠다. 곽 대표는 “그땐 특별하게 즐길 스포츠가 없었다. 태권도는 운동이 되기도 했지만 사범을 존경하는 자세로 체계적으로 무술을 익히며 도(道)를 배웠다”고 말했다. 당시엔 개인 수양으로 태권도를 했다. 그는 “사범들은 내게 호국정신과 호연지기를 불어넣었다. 누구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수양하는 것이다. 그 정신이 좋았다”고 했다. 곽 대표는 무엇보다 태권도를 통해서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것도 배웠다. “태권도 품세든 발차기든 내 머릿속에서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에야 행동으로 나타난다. 순간적인 판단에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상대를 공격하거나 방어할 수 없다. 세상 모든 게 마찬가지다. 마음을 먹어도 결국 몸으로 실행해야 뭐든 할 수 있다. 생각만 가지고는 이뤄지는 게 없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하다. 태권도를 통해 그것을 체득했다.” 평생 태권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건축학), 하버드대(정책학) 유학 시절에는 체육관에 태권도 클럽을 만들어 세계적인 수재들을 직접 지도했다. 1960년대 초 한국 학생이 일본 혹은 중국 사람으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태권도로 한국을 알렸다. 태권도는 그에게 좋은 기회도 가져다줬다. 1964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지켜봤는데 ‘아, 이런 국제 행사로 나라가 발전하는구나’ 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해 일본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을 멀리서 지켜보며 ‘한국도 올림픽을 개최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인프라를 잘 갖추는 게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1972년 뮌헨 올림픽을 직접 참관했다. 마음먹은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태권도 정신을 실천했다. MIT와 하버드대에서 태권도를 지도하며 모아둔 돈이 있어 가능했다. 그는 그곳에서 “시내 곳곳을 지하철로 연결하고, 쓸모없을 것 같은 공간도 공원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직접 보고 왔다”고 했다. 곽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홍익대 도시계획학과 학과장으로서 고 구자춘 서울시장에게 서울 올림픽 개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서울 잠실 일대에 올림픽종합경기장 및 공원을 짓는 밑그림을 만들어 제시했다. 지하철 2호선도 그곳을 통과하도록 조언했다. 1975년 사람과환경그룹을 만든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기간시설 건설계획은 물론이고 1993년 대전 엑스포 유치 마스터플랜, 2012 여수 엑스포 기획 및 설계 등에 기여했다. WCO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국제 네트워크로 지원하기 위해 1987년 창설했고, 지금은 실크로드 도시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친환경적 도시 건설을 유도하고 있다. 곽 대표가 이렇게 활기차게 활동하는 원동력에 태권도가 있었다. 태권도에서 배운 호국정신을 국가번영정신으로 발전시켰고, 미국 유학 시절부터 국가 건설 프로젝트를 준비해 실행했다. 지금도 최소 주 1회는 WCO 태권도장에서 수련하고 있다. 먼저 복식호흡과 명상으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본격적인 신체 단련에 들어간다. 정신 수양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곽 대표는 평소엔 걷기와 주변 청소로 건강을 관리한다. 집(서울 신당동) 근처 매봉산과 남산을 매일 오른다. 40여 년 전부터 하고 있는 ‘남산소나무 살리기’도 그에겐 운동이다. 남산을 걷다 아카시아나무가 너무 빨리 자라며 소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보고 아카시아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매일 하는 집 주변 서울성곽 청소도 그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 가지치기와 청소의 운동량이 상당하다. 모두 태권도에서 배운 봉사정신에서 비롯됐다. 태권도 9단인 곽 대표는 “이제 뉴노멀 시대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시대 변화에 잘 적응하려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심신을 단련시키는 태권도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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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양종구]희망의 태권도

    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태권도 첫 금메달을 땄다. 태국의 파니팍 웡파타나낏이 여자 49kg급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울루그베크 라시토프가 남자 68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 시간) 이 소식들을 전하면서 태권도가 메달 획득이 어려웠던 스포츠 약소국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된 태권도는 12개국 이상 국가에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2016년 리우 대회에서 코트디부아르와 요르단은 국가 최초이자 유일한 금메달을 태권도에서 땄다. ▷태국의 태권도 첫 금메달은 한국 사범들이 1960년대 중후반 동남아시아 태권도 보급에 나선 지 50여 년 만에 일군 성과다. 웡파타나낏을 조련한 최영석 감독은 2002년부터 20년째 태국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태권도 강국으로 키우고 있다. 태국은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2016년 리우 대회까지 4회 연속 태권도에서 5개의 메달(은 2, 동 3)을 획득한 뒤 이번에 금메달까지 땄다. ▷올림픽 금메달의 효과는 크다. 공식 국가대항전인 올림픽에서 국기를 달고 최정상에 서는 순간 웡파타나낏은 물론 태국 국민은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리우에서 동메달에 그쳤던 웡파타나낏은 명실상부한 태국 최고 스타가 됐다. 최 감독까지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다. 태국 현지 언론들은 역사적인 금메달을 획득하게 해준 최 감독이 계속 태국을 지도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프리카의 튀니지 코트디부아르 니제르, 아시아의 태국 우즈베키스탄 요르단 네팔 등 스포츠 약소국들은 한국 사범들을 영입해 태권도를 국가 차원에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성과도 계속 나온다. 이번 대회에서 튀니지의 무함마드 칼릴 젠두비가 남자 58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역대 두 번째 태권도 메달이다. ▷현재 210개국이 세계태권도연맹(WT)에 가입했다. 태권도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스포츠다. 실력도 평준화되고 있다. 매 대회 돌풍을 일으키는 국가가 나오고 있고 이번에도 태국 우즈베키스탄 크로아티아 등이 새롭게 부상했다. 역으로 한국의 금메달 수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일부에선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이 흔들린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걱정해야 할 건 이뿐만이 아니다. 전자호구를 도입한 뒤 파워 넘치는 플레이보다는 센서를 터치하는 잔기술로 점수 따기에만 몰두하는 경기 방식이 태권도의 인기를 위협하고 있다. 박진감이 떨어져 팬들이 점점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선수들을 많이 키워 경기력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권도 자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종주국의 중요한 임무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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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양종구]“세계 양궁의 지배자”

    26일 열린 대만과의 도쿄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 결승. 한국 오진혁이 3세트 3번 사수로 나서자 먼저 쏜 김우진이 뒤에서 “7, 6, 5, 4…”라고 불러줬다. 오진혁은 자신 있게 시위를 당겨 10점을 명중했다. 3명이 60초 안에 각 한 발씩 쏘는 단체전에서 마지막 사수는 남은 시간을 모르면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수들끼리 남은 시간을 알려주게 한 것. ▷남자 단체전 우승으로 한국은 도쿄 올림픽에 걸린 총 5개의 양궁 금메달 중 벌써 3개를 획득했다. 앞서 한국이 여자 단체전에서 사상 첫 9연패를 하자 AP통신은 ‘이름이 바뀔 수 있겠지만, 한국 여자 양궁의 지배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타전했다. 여자 양궁의 9연패는 미국과 케냐가 각각 남자 수영 400m 혼계영과 육상 장거리 장애물 경기에서 보유한 특정 종목 최다 우승 기록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이다. 남자도 대회 2연패에 이은 6번째 정상이다. ▷한국 양궁의 비결은 남녀 모두 선발 과정의 공정한 경쟁과 준비 과정의 철저한 디테일이다. 한국에서는 ‘대표로 선발만 되면 금메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하게 실력을 검증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3차례의 평가전으로 남녀 각 8명을 뽑고, 선수촌에서 함께 합숙훈련하며 다시 2차례의 평가전으로 각 3명을 최종 선발했다. 과거 기존 대표 선수는 1, 2차전을 면제해 줬지만 이번엔 그런 특혜도 없앴다. 이렇게 살아남은 선수들은 치밀한 실전 훈련을 했다. ▷선수들은 5월부터 충북 진천선수촌에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하고 똑같이 만든 훈련장에서 활을 쐈다. 심지어 점수를 보여주는 전광판의 밝기까지 똑같았다. 밝기 차이가 선수들 시각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전 경기 때도 선수들끼리 격려하며 돕는 세세한 루틴이 있다. 혼성경기에서 김제덕이 먼저 쏜 뒤 바로 안산을 향해 “지금 바람 없으니 자신 있게 쏘면 돼요”라고 정보를 줬다. 초 알리기도 그 연장선이다. 한국만의 현장 전술이다. ▷남녀가 함께 훈련하는 환경도 양궁 발전에 도움이 됐다. 대표팀 중 유일하게 양궁만 남녀가 함께 훈련한다. 일부 종목은 남녀 합동 훈련을 터부시하기까지 하지만 양궁은 체력부터 기록 훈련까지 똑같이 한다. 여자 선수들은 한 수준 높은 남자 대표 선수들과 거칠게 경쟁하면서 실력은 물론이고 자신감까지 업그레이드됐다. 남자 선수들은 한국 여성의 섬세함과 적극성을 배웠다. 명품과 짝퉁의 차이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가 한국의 지도자를 스카우트해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지만, 한국 양궁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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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기만 했는데 확 빠져”…의사도 놀란 노르딕워킹 효과[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주연서 INWA 코리아 사무국장(49)은 모델 출신 노르딕워킹 전도사다. 어려서부터 모델 활동을 했고, 사업을 하다 몸 상태가 나빠졌다. 노르딕워킹을 알게 되면서 푹 빠져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7년 전이었어요. 모델 에이전시 사업을 하는데 한 노르딕워킹 브랜드에 모델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일하다 노르딕워킹을 접했어요. 30대 전후 직장인들을 포커스해서 마케팅 기획하는 것이었습니다. 후배 모델들을 소개해주고 빠지려고 하는데 저도 배워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배웠는데 너무 좋았어요. 저도 운동을 좋아했는데 활동량도 많고 야외를 걷는 것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배우자마자 강사로 나섰다. “제가 모델을 해서인지 저를 지도해주신 분이 바로 강의를 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전북 전주 공무원연수원에 가서 강의를 했습니다.” 배우며 강의하고를 반복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노르딕워킹을 생활화했다. 몸도 바뀌었다. “제가 당시까지 10년 넘게 사업상 출장을 많이 다니다보니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을 했는데도 몸이 자주 피곤했어요. 병원에 갔더니 갑상선항진증이라고 하더군요. 약을 먹었죠. 허리에 통증도 왔어요. 그런데 노르딕워킹을 하고 1년 뒤 병원에 갔더니 말끔하게 나았다는 겁니다. 저도 놀랐고 의사도 놀랐습니다. 자연 속에서 걷다보니 효과가 배가 된 것 같아요. 그 때부터 약을 끊었습니다.” 체력, 특히 심폐지구력도 좋아졌다. 평소 요가와 수영, 골프, 사이클, 배드민턴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던 주 국장은 사업을 하면서는 주로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건강관리를 하고 있었다. 노르딕워킹을 접한 뒤엔 노르딕워킹에 집중하고 있다. 2016년부턴 모든 사업을 접고 INWA 코리아에서 전문 강사로 활약하게 됐다. INWA(International Nordic Walking Federation)는 핀란드에 본부가 있는 국제노르딕워킹협회이다. INWA 코리아는 체계적인 INWA 교육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주 국장은 네덜란드와 핀란드에 가서 전문 강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주 국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을 계기로 새롭게 시도한 프로그램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실내 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체중이 느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속칭 ‘확찐자’라고…. 그래서 지난해 12월 말 자연 속을 걷고 싶은 사람들을 주축으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효과적이라 저도 놀랐습니다.” 주 4회 매회 2시간 정도 함께 노르딕워킹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2시간 함께 걸으면 10km를 넘게 걷는다. 나머지 요일엔 개인적으로 1만보 이상 노르딕워킹을 하면 된다. 노르딕워킹 1만보도 2시간가량 해야 한다. “104kg의 한 남자분은 이번 달로 7개월째 인데 25kg이 빠졌어요. 첫 3개월에 14kg 감량했죠. 79kg의 여자분은 이제 4개월 차인데 65kg으로 14kg이나 줄었어요.” 주 국장은 “회원들 모두 제대로 잘 먹고 뺀 것이라 더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주로 복부 내장지방, 그리고 피하 지방이 빠진다. 상체의 목, 등, 팔에도 지방이 많은데 노르딕워킹을 하면 그 부분 지방도 잘 빠진다”고 말했다. 25kg을 감량한 남자 회원의 경우 턱선이 두터워 귀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젠 보인다고 했다. “그동안은 노르딕워킹의 기본인 바르게 걷기에 집중했었어요. 이렇게 다이어트에 포커스를 두고 하진 않았는데 이번에 노르딕워킹의 다이어트 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노르딕워킹은 노르딕 스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걷기 방법으로 ‘폴 워킹(Pole walking)’이라고도 한다. ‘노르드(Nord)’는 ‘북방(北方)’을 뜻하는 말로서, 노르딕 스키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발달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산지는 알프스 산악지방의 가파른 지형과는 달리 대부분 낮은 언덕과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긴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인 지역을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스키가 발달했다. 노르딕 스키는 낮은 언덕과 평지가 대부분인 발원지의 지형 특성이 반영되어 평지와 언덕을 가로질러 긴 코스를 완주하는 거리 경기 등으로 나뉘는데 평지와 언덕을 걷는 것으로 발전시킨 것이 노르딕워킹이다. 노르딕워킹은 1990년대 중반 핀란드 등 북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도 2000년대 초중반 들어와 한 때 반짝 인기를 끌고 일부 마니아층에서 즐기는 운동이 됐다. 최근 바른 자세와 다이어트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노르딕워킹의 장점은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걷게 해준다는 겁니다. 폴을 활용해 걷기 위해서는 상체에서 어깨의 움직임이 중요합니다. 상체는 어깨가 운동의 시작입니다. 발이 나갈 때 어깨도 함께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땅에 짚은 뒤 폴을 끝까지 밀어줘야 보폭이 커지고 운동량도 배가 됩니다.” 주 국장은 INWA의 10단계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보행, 바른 폴 사용법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폴을 잡고 걸으려 하는 순간 가슴이 펴진다. 가슴을 펴지 않으면 폴을 잘 사용할 수 없다. 자세교정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거북목, 굽어진 등 등도 교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원들과 함께 걸으면서 지도한다. 북한산성 INWA 코리아 옥상이나 주변에서 기본 교육을 한 뒤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다. “우리 몸은 큰 근육을 잘 써야 에너지 소비가 잘 됩니다. 걸을 때 허벅지 장딴지가 가동되는데 폴을 잡고 밀면서 걸으면 팔과 어깨 근육은 물론 대흉근과 견갑근, 광배근, 척추기립근 등 상체의 큰 근육도 힘을 쓰게 됩니다. 몸 전체 근육의 90% 이상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에너지 소비가 극대화 됩니다. 다이어트에 좋은 이유입니다. 하지만 3주 이상해야 운동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한달 정도 하면 체중 변화는 크게 없지만 몸이 균형 있게 변합니다. 전체적으로 근육량이 늘고 지방이 없어집니다. 일종의 몸의 탈바꿈이라고 할까요. 3개월 이상 하면 다이어트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최소 하루 60~90분은 해야 합니다.” 주 국장은 노르딕워킹 3개월로 10kg을 감량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솔직히 젊은 사람들은 맘만 먹으면 바로 체중을 감량할 수 있지만 갱년기가 지난 여성들은 다이어트가 쉽지 않아요. 호르몬의 영향도 있고, 골격근을 유지하면서 체지방만 빼줘야 합니다. 노르딕워킹이 딱 좋습니다. 우리 회원 중에 교사로 정년퇴직을 한 60대 후반 여성의 경우 노르딕워킹 4개월째인데 63kg에서 56kg으로 7kg을 감량했어요.” 주 국장은 어떨까? 주 5일 이상, 많게는 하루 4시간 이상 노르딕워킹을 하고 있다. 그래도 체중 변화는 없다고 했다. “전 원래 체중이 많이 나가진 않았어요. 오히려 노르딕워킹을 한 뒤 1~2kg이 증가했죠. 체지방이 빠지고 코어 근육이 증가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노르딕워킹으로 몸매가 더 좋아졌다는 평을 받아요. 남자나 여자나 노르딕워킹으로 자세를 바르게 잡고 살이 빠지고 몸이 건강해지면 몸매가 정말 아름다워져요.” 주 국장은 어린이부터 대학생까지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노르딕워킹은 잘못된 자세로 몸이 틀어진 학생들을 잡아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자세를 잡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르신들이 노르딕워킹을 하면 통증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걸을 때 무릎, 허리, 고관절 등에 통증이 있는 분들이라면 폴을 집고 걸으면 통증을 완화 시킬 수 있습니다. 폴로 지면을 압박하기 때문에 무게를 분산시켜 줍니다. 자세 고정에 따른 통증완화도 됩니다. 특히 고관절이 틀어져 있는 분들에게 효과적입니다. 물론 아프지 않은 분들은 바른 자세로 쉽게 걸으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습니다.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사려면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운동효과를 높이는 노르딕워킹이 최고입니다.” 주 국장은 “유럽에서는 노르딕워킹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치매와 파킨슨병 등을 예방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주 국장은 국민대에서 운동처방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체형과 걷는 스타일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딱 맞는 정보를 주려면 더 공부가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모델과 패션사업은 접었지만 그는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즐겁게 살고 있어 삶의 만족도는 훨씬 크다”고 했다. 그는 “100세 시대 이렇게 자연 속에서 노르딕워킹하며 건강하게 살면 이보다 행복한 삶이 어디있나”라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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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 운동’으로 새로운 삶…오십견도 사라졌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태권도와 골프, 댄스스포츠, 등산…. 체육을 전공했고 다양한 스포츠와 운동을 즐겼지만 체계적인 근육운동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늘 마음속에 ‘언젠간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어야지’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사태가 그를 근육의 세계로 이끌었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김경래 전 연세대 미래캠퍼스 인문예술대학 교수(65) 이야기다. “골프 전문가이기 때문에 겨울이면 꼭 따뜻한 나라로 가서 골프를 쳤어요. 추우면 엘보가 와 국내에서는 못 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에는 코로나 19탓에 해외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생 버킷리스트로 간직했던 근육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로 몸을 단련했고 미국 유학시절 골프와 댄스스포츠를 배우며 다양한 운동을 즐긴 그는 몸매가 날씬했다. 키도 185cm로 컸다. 교양체육 교수로 재직할 때부터 주위에선 ‘근육을 키우면 진짜 보기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런 주위 평가도 있었지만 운동을 좋아하고 체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늘 “은퇴한 뒤 여유가 있을 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코로나19가 그를 근육의 세계로 인도한 셈이다. 김 전 교수는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배우기 위해 전문가를 찾았다. 경기도 용인 메카헬스짐 박용인 관장(59)이 눈에 들어왔다. ‘양종구 기자의 100세 건강’에 소개됐고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임종소 씨(77)와 권영채 씨(66)를 지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박 관장은 보디빌딩 국가대표 출신으로 PT계에서 잘 나가는 지도자다. 김 전 교수는 지난해 12월 말 박 관장을 찾아가 개인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기 시작했다. 주 2회 1시간씩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저를 보자마자 관장님이 그러는 거예요. ‘교수님은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고. 처음엔 그냥 근육운동이나 하겠다. 100세 시대 근육을 키워야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기 때문에 찾아 온 것이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럼 더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에 대회 출전을 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박 관장은 “교수님의 체형이 너무 좋아 조금만 근육을 만들면 바로 입상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대회 출전 같은 목표가 있어야 동기부여가 돼 열심히 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월 열릴 예정인 대회를 목표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데 3월 갑자기 대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김 전 교수로선 목표가 사라져 주춤한 데다 은퇴 후 2년간 준비한 사업상 바쁜 일도 겹쳤다. 한 달 반 정도 쉬고 있을 때 6월 27일 월드 내추럴 챔피언십 시그니처(WNC) 대회가 열린다고 해 5월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주 2회 PT 받는 것에 더해 집(경기도 의왕) 근처 피트니스센터에서 1, 2회 추가로 운동했다. 결과는 50세 이상부 스포츠모델과 피지크 부문에서 각각 2위를 차지했다. 최소 몇 년에서 수십 년 운동한 50세 초반 선수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이제 갓 시작한 60대 중반이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근육을 키우면서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먼저 골프 엘보와 오십견이 사라졌다. 그는 “골프 연습 때 왼쪽 팔꿈치가 아팠다. 오른쪽 어깨엔 오십견 증세가 있었다. 통증클리닉까지 갈 정도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팔꿈치와 어깨 주변 근육이 강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송준섭 강남제이에스병원 원장은 “통증 유발 원인이 근육 약화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통증의 원인이 관절이라면 의학적 치료가 우선이다”고 분석했다. 김 전 교수는 미국 퍼듀대 유학시절(스포츠심리학 전공)부터 술과 담배를 다 끊었고 골프와 댄스스포츠, 등산을 즐겼기 때문에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근육운동으로 달라진 것은 몸매가 더 탄력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힘이 좋아지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솟았다”고 했다. 김 전 교수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입시 당시 인기 있었던 기계공학과(인하대)에 들어갔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군대를 마치고 연세대 체육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했기 때문에 체육과에는 잘 적응했다. 체육인으로서도 특이함을 추구했다. 미국 유학 때 골프와 댄스스포츠를 접한 뒤 ‘향후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한 스포츠’라고 생각해 골프 레슨 프로 및 PGA 투어 프로 자격증을 획득했고, 볼룸댄스(현 댄스스포츠) 지도자 및 심판 자격증까지 땄다. 미국에선 자신의 특기인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태권도 5단 유단자인 그는 퍼듀대에 태권도 지도관 클럽을 만들어 유단자들을 배출했다. 인디애나주 티피카누 카운티 라피엣과 웨스트라피엣으로부터 명예시민증도 받았다. 태권도로 지역사회 보이스클럽 봉사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태권도시범과 활동이 미국 NBC 방송 스포츠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김 전 교수는 귀국한 뒤 연세대 신촌 및 원주, 송도국제캠퍼스에 골프와 댄스스포츠를 보급했다. 댄스스포츠 책도 썼다. 1998년 국내 처음 열린 제1회 슈퍼코리아컵 전국 댄스스포츠선수권대회에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향후 댄스스포츠의 스타로 군림할 박지은(43)-박지우(41) 남매와 함께 겨뤘다. 지은 지우 남매는 한국 댄스스포츠의 전설 박효 전 한국댄스스포츠연합회 회장의 자녀다. 박 회장은 1998년 한국댄스스포츠연합회를 설립해 각종 대회를 개최했다. 댄스스포츠 경력은 보디피트니스에도 도움이 됐다. 박 관장은 “김 전 교수님은 첫 대회부터 무대를 사로잡았다. 댄스스포츠를 해서 인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게 연기했다”고 평가했다. 김 전 교수는 9월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대회 출전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늦게 시작했지만 근육운동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았다. 마치 미국에서 골프와 댄스스포츠를 처음 배우는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요즘 나이든 분들은 근육운동과 단백질 섭취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한다. 100세 시대 장수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젊음을 되돌리는 회춘약 근육운동을 시작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도 시작했다. 머리를 잘 써야 치매가 안 걸린다고 판단해 학점은행제로 경영학과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올 초부터 각 18학점씩을 들었다. 경영학 학사 학위를 받아 나무 의사 자격증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2018년부터 나무 의사 자격증을 획득하면 나무병원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자격증을 따면 근육운동을 즐기면서 나무를 치료하며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그는 “자격증을 따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도전을 계속해야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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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 엘보-오십견 훌훌…근육운동 덕에 새 인생 훨훨”[양종구의 100세 건강]

    김경래 전 연세대 미래캠퍼스 인문예술대학 교수(65)는 뒤늦게 시작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새 인생을 살고 있다. 체육을 전공했고 골프와 댄스스포츠 등 다양한 스포츠와 운동을 즐기면서도 근육운동은 이번에 처음 체계적으로 했다. 근육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줬다. 그는 “겨울이면 꼭 따뜻한 나라로 가서 골프를 쳤다. 추우면 엘보 때문에 못 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탓에 해외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평생 버킷리스트로 간직했던 근육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키 185cm에 날씬한 체형의 그는 교수 시절부터 근육을 키우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은퇴한 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근육운동과 적절한 단백질 섭취가 100세 시대 장수의 가장 기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코로나19가 그를 근육의 세계로 본격 인도한 셈이다. 김 전 교수는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배우기 위해 전문가를 찾았다. 경기 용인시 메카헬스짐 박용인 관장(59)을 알게 됐다. 본 칼럼에 소개됐고 시니어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임종소 씨(77)와 권영채 씨(66)를 지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해 12월 말 찾아가 개인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기 시작했다. 주 2회 1시간씩 지도받았다. 김 전 교수는 근육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박 관장의 권유로 바로 대회 출전 준비를 했다. 박 관장은 “김 교수의 체형이 아주 좋아 조금만 근육을 만들면 바로 입상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대회 출전 같은 목표가 있으면 동기 부여가 돼 더 열심히 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초 4월 열릴 예정이던 대회가 3월 취소되는 바람에 한 달 반가량 공백이 생겼다. 갑자기 목표가 사라진 데다 은퇴 후 2년간 준비한 사업상 바쁜 일이 겹쳐 운동을 쉬었다. 6월 27일 월드 내추럴 챔피언십 시그니처(WNC) 보디피트니스 대회가 열린다고 해 5월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주 2회 PT 받는 것에 더해 집(경기 의왕시) 근처 피트니스센터에서 1, 2회 추가로 강도 높게 운동했다. 그 결과 50세 이상 부문 스포츠모델과 피지크 부문에서 각각 2위를 차지했다. 50세 초반 선수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60대 중반이 선전한 것이다. 근육을 키우면서 골프 엘보와 오십견이 사라졌다. 그는 “골프 칠 때 왼쪽 팔꿈치가 아팠고, 오른쪽 어깨엔 오십견 증세가 있었다. 심할 땐 통증클리닉까지 갈 정도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송준섭 강남제이에스병원 원장은 “통증 유발 원인이 근육 약화이기 때문에 팔꿈치와 어깨 주변 근육이 강화되면서 없어진 것이다. 통증의 원인이 관절이라면 의학적 치료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미국 퍼듀대 유학 시절(스포츠심리학 전공)부터 술과 담배를 다 끊고 다양한 운동을 즐겼기 때문에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근육운동으로 달라진 것은 몸매가 더 탄력적으로 바뀌었고 “힘이 세어지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았다”고 했다. 김 전 교수는 다소 이색적인 삶을 살았다. 입시 당시 인기 있었던 기계공학과(인하대)에 들어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군대를 마치고 연세대 체육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해서인지 체육과엔 잘 적응했다. 체육인으로서도 색다름을 추구했다. 미국 유학 때 골프와 댄스스포츠를 접한 뒤 ‘향후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한 스포츠’라고 생각해 골프 레슨 프로 및 PGA투어 프로 자격증을 획득했다. 볼룸댄스(현 댄스스포츠) 지도자 및 심판 자격증도 땄다. 귀국한 뒤 댄스스포츠 선수로도 활동하며 연세대 신촌 및 원주, 송도국제캠퍼스에서 골프와 댄스스포츠 등 레저스포츠를 보급했다. 댄스스포츠 경력은 보디피트니스에도 도움이 됐다. 박 관장은 “교수님은 첫 대회부터 무대를 사로잡았다. 댄스스포츠를 해서인지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여유 있게 연기했다”고 평가했다. 김 전 교수는 9월 국제대회 출전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근육운동을 통해 새 삶의 길을 찾았다. 마치 골프와 댄스스포츠를 처음 배우던 때 같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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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을 달리는 게 행복한 연구원 “마라톤 너무 힘들었는데…”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김진희 부산연구원 도시·환경연구실 연구원(38)은 11년 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달리기에 빠져 들었고,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마니아가 됐다. 이젠 달리기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다. “부산연구원에 입사하자마자 사내 마라톤동호회 회원인 대학 선배와 친구가 마라톤대회에 나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010년 4월 경주벚꽃마라톤대회에 출전해서 10km를 달렸습니다. 평소 등산을 하긴 했지만 처음 달린 것이라 너무 힘들었어요. 1시간 16분. 그래도 완주의 쾌감은 좋았어요. 그래서 바로 사내 동호회에 가입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달리기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16년. 사내 동호회에서 훈련도 하고 매년 2번씩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지만 늘 달리는 게 힘들었고, 실력도 늘지 않는다고 생각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김 연구원은 “제대로 달려보고 싶어 동네 주변 동호회를 찾아봤는데 런클럽부산이란 곳이 있어 바로 가입했다”고 했다. 런클럽부산에 가입하면서 트레일러닝도 접하게 됐다. “당시 부산에는 트레일러닝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동호회에 서울 한 마라톤클럽에서 매니저를 하던 오빠가 있었는데 트레일러닝이 재미있다며 참가해볼 것을 권유해 봉래산 등을 달리는 훈련을 한 뒤 2016년 여름 거제지맥 트레일러닝 13km에 출전했어요.” 트레일러닝은 그에서 딱 맞는 스포츠였다. 원래 산을 좋아해 등산을 즐겼는데 막 재미를 붙인 달리기를 산에서 하니 환상적이었다. 여전히 등산을 좋아하지만 가벼운 복장으로 더 먼 거리를 빠르게 즐길 수 있어 트레일러닝에 빠져들었다. “첫 출전 대회인 거제지맥에서 4등을 했어요. 3등까지 시상을 해 입상은 못했지만 학창시절부터 달리기로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열심히 하면 좋은 일도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달렸습니다.” 트레일러닝에 입문한 뒤 그의 생활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퇴근 후 시간이 달리기 위주로 변했어요. 예전에는 맛 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를 검색해 찾아가길 좋아했는데 산을 달리면서부터 달리기 좋은 코스, 일출 혹은 일몰이 좋은 코스를 검색해 달리러 다녔습니다.” 김 연구원은 단거리 전문이다. 마라톤은 10km에 주로 출전했고 트레일러닝도 10~15km 이내로 달렸다. 마라톤에 입문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풀코스는 단 한번도 달리지 않았다. 하프코스도 2018년 12월 타이완 타이페이마라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달렸다. 당시 1시간 47분 22초를 기록했다. 트레일러닝도 마찬가지. 지금까지 2019년 하이원 스카이러닝에서 20km를 달린 게 가장 길다. 산이나 도로는 친구들과 훈련할 때 긴 거리를 달린다. 부산 둘레길 47km도 달렸고 지리산 종주도 혼자 하기도 했다. “마라톤 풀코스는 기록에 대한 부담이 있어요. 훈련도 많이 해야 하고…. 무엇보다 대회 때는 짧고 굵게 달리는 게 훨씬 부담도 없고 상쾌해요.” 사실 산을 달리다보니 트레일러닝은 위험하다. 김 연구원도 트레일러닝을 시작한 뒤 얼마 안 돼 지리산을 달리는 릴레이 대회에 훈련 삼아 참가했다가 무릎을 다쳐 1년간 쉬어야 했다. “산을 달릴 때는 집중해야 합니다. 조금만 정신집중이 흐트러져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레일러닝은 오르막에는 좀 쉬어갈 수 있고 힘들어도 자연 경관을 보며 힘든 순간을 보상받을 수 있어 좋습니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감동도 산마다, 시간마다, 계절마다 달라요. 정신 바짝 차리고 즐긴다는 자세로 달리면 행복하게 달릴 수 있습니다.” 김 연구원은 부상에서 돌아온 뒤 도로 및 산악 마라톤 단거리의 강자로 올랐다. 2018년 5월 거제지맥 트레일런 14km 2위, 2019년 3월 진주남강마라톤 10km 3위, 5월 부산하프마라톤 10km 2위, 6월 하이원 스카이러닝 20km 4위, 9월 거제 100K 국제트레일러닝 13km 2위, 12월 진주마라톤 10km 1위…. 2년간 20여개 대회에서 입상했다. 마라톤 10km 최고기록은 2019년 11월 10일 열린 부산마라톤에서 세운 41분 02초다. 그는 지난해 초 교통사고로 오른쪽 발등을 다쳤다. 횡단보도에서 자동차가 발등 위로 지나갔다. 뼈가 으스러지지는 않았지만 근육과 인대 등이 손상 돼 달릴 때 통증이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됐고 대부분의 대회가 최소 되는 바람에 그나마 재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부상 전에는 평일 저녁 퇴근하고 야간 트레일러닝으로 집 근처 백양산 14km를 주 2회 친구들과 달렸다. 주말에는 전국 방방곡곡 대회에 참석해 ‘달리기 여행’을 즐겼다. 대회가 없을 땐 장거리 등산을 하거나 장거리 도로 달리기를 했다. 장거리 등산은 짧게는 20km에서 60km까지 한다. 도로도 30~40km를 달리고 많게는 80km도 달린다. 부상 후에는 퇴근 한 뒤 집에서 홈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우고 주말에 장거리 등산을 한다. 역시 등산은 20~60km까지 산을 탄다. 아직은 가급적 달리지는 않는다. 근육운동은 주로 하체 근육 강화다. 특히 발등을 다친 뒤 발목이 좋지 않아 양 발목 밸런스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다 나았다고 달려도 된다고 하는데 달리면 통증이 있어요. 재활 전문가는 당분간 쉬자고 합니다.” 그렇다고 안 달린 것은 아니다. 코로나 19가 확산돼 대회들이 취소되고 단체 집합도 금지되면서 평일에는 홈트를 하거나, 소수의 인원만 모여 야간트레일러닝을 했다. 주말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산으로 갔다. 대회가 없어 생긴 주말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일부 친구들끼리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만들어 진행했다. 그 중의 하나였던 ‘부산갈맷길 700리 프로젝트’가 있다. 그는 “매 주말 짧게는 36km, 길게는 50km를 달리거나 걸어 6번에 걸쳐 완주했다. 타지역 대회에 다니느라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부산 갈맷길을 온전히 걷고 뛰면서 나의 도시 부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하이원 스카이러닝 12km 부문에 출전해 5위에 올랐다. “솔직히 당시 발목이 좋지 않아 완주에 대한 자신이 없었지만 도전했다. 우려했던 대로 레이스 도중 다친 부분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기 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나 자신이 기특했다”고 했다. 환경단체가 만든 특별 이벤트 레이스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30일부터 11월 1까지 지리산 둘레길을 6명이 3팀으로 나눠서 238.6km를 릴레이로 달리는 이벤트에서 84.6km를 달렸다. 형제봉에 산악철도 건설을 반대하는 ‘지리산을 지키자(Save the Jiri)’ 특별 이벤트였다. 올 4월에는 ‘제주를 지키기 위해 달리자(Run to Save Jeju)’는 제2공항 건설 반대 80km마라톤 이벤트 대회에 참석해 완주했다. 환경정책을 연구하기 때문에 환경 이슈를 제기하는 특별 이벤트 마라톤이 열리면 적극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무리해서 달리진 않는다. 천천히 완주를 목표로 달린다. “달리기 초창기엔 다치면 쉬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별다른 정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좋아지면 다시 달렸는데 바로 역효과가 났습니다. 지금은 정보가 많아 테이핑도 하고 다양한 재활법이 있어서 조화롭게 근육을 키우면서 몸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시 산을 활기차게 달리기 위해 재충전 시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김 연구원은 코로나19가 사라지면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 대회인 울트라트레일 몽블랑(UTMB)에 출전할 계획이다. “전 유유자적 자유로운 달리기를 하며 살고 싶어요. 아직 가 보지 못한 산들도 정말 많아요. 삶에 좀 여유가 생겼을 때는 원하는 산 아래 한두 달 머물며 산을 오르고 산을 달리며 살고 싶습니다.” 트레일러닝은 그가 평생 건강을 챙기며 인생도 즐길 최고의 취미이자 스포츠가 됐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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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라톤에 빠진 ‘괴짜’… “계족산에선 대통령보다 유명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62)은 달리는 형님들을 따라 2001년부터 마라톤에 입문해 21년 째 달리고 있다. 마라톤은 그에게 심신의 건강을 가져다준 것은 물론 세상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도 충천시켜줬다. “우리 둘째 형님이 고향인 경남 함안에만 가면 아버지 산소 갈 때 소주병을 들고 뛰어 올라갔어요. 괴짜였죠. 일찍 마라톤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셋째 형님은 축구 국가대표까지 했는데 1998년 중풍으로 쓰러졌어요. 그 형님도 달리기 시작했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형님들 따라 달렸고 다양한 마라톤대회에 출전했습니다.” 그 때부터 달리는 것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 “달리면 몸과 마음에 쌓인 찌꺼기가 비워집니다. 비워야 채워지듯 달리고 나면 에너지가 충만해집니다. 전 기분이 안 좋으면 달립니다. 그러면 의욕이 없다가도 생기가 넘칩니다. 마라톤은 제 인생은 물론 사업에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달리면 생각도 바뀝니다.” 조 회장은 2005년 둘째 형 경래 씨(79), 셋째 형 갑래 씨(74)와 세계 최고의 보스턴마라톤에도 함께 출전했다. 지금도 가끔 함께 달리며 형제애를 쌓고 있다. 갑래 씨는 2005년 완전히 중풍을 떨쳐내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조 회장은 ‘괴짜’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일을 했다. 대전 계족산에 황토를 깔아 맨발 걷기 및 마라톤의 성지로 만든 게 대표적이다. 2004년 (주)선양주조를 인수한 조 회장은 2006년부터 계족산 14.5km 임도에 황토를 깔아 맨발로 걷고 달릴 수 있게 했다. 첫해 2만여 톤, 이후 매년 2000여 톤을 추가로 뿌리고 관리한다. 보수공사 및 비온 뒤 정비 등 연간 10억 원이 들어간다. 계족산은 연간 100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2006년 초 대전을 방문한 지인들과 계족산을 걷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에게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로 걸으며 맨발걷기의 효능을 체험했어요. 몸이 후끈 달아올랐어요. 잠을 잘 못 잤는데 숙면을 취했고, 머리도 맑아졌죠. 그 때부터 계족산을 맨발로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곳곳에 큰 모래와 자갈이 섞여 있어 발바닥이 아팠어요.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맨발로 걷게 하기 위해 황토를 깔았습니다.” 조 회장이 계족산에 나타나면 모든 사람이 알아본다. 그는 “계족산에선 제가 ‘대통령’보다 더 유명하다”고 했다. 그는 “시민들이 계족산을 찾아 즐겁게 걸으며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2006년부터 매년 5월 계족산을 맨발로 걷거나 달리는 마사이마라톤대회도 만들었다. 2011년부터는 문화예술까지 어우러진 계족산 맨발축제로 발전됐다. 자연 속에서 몸(맨발)과 마음(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치유하는 체험형 에코힐링 축제다. 맨발 걷기 혹은 달리기는 지압 및 접지(接地·Earthing) 효과가 있어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과학적 결과가 많다. 2007년부터 4월~10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계족산 숲속음악회인 ‘뻔뻔(funfun)한 클래식’도 연다. 클래식에 뮤지컬, 연극, 개그 요소를 섞어 관객과 함께 참여하는 공연이다. 조 회장은 2013년 (주)선양주조의 사명을 맥키스컴퍼니로 바꿨다. 맥(脈·이을 맥)과 KISS를 혼합해 만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18년 소주 ‘O2린’을 ‘이제우린’으로 바꾼 것도 단순히 술을 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의 의미를 담기 위해서였다. 조 회장은 2016년부터 1월 1일 오전 11시 11분 11초에 맨몸으로 대전 갑천변을 7km 달리는 대전맨몸마라톤도 개최하고 있다. “새해만 되면 해돋이를 보러 바닷가로 가는데 해가 안 뜨면 실망이 크다. 그래서 그럼 아예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뜻있는 마라톤 대회를 열면 어떨까 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2019년엔 참가한 5세에서 12세 어린이들에게 세뱃돈 3만 원씩을 주기도 했다. 그날만 세뱃돈으로 2100만 원을 썼다. “아이들이 달리니 너무 좋아서”라고 했다. 태안반도에서 열렸던 샌드비스타 맨발마라톤, 현재 인도양 세이셸공화국에서 열리고 있는 세이셸에코힐링마라톤 등 다양한 대회를 만들었다. 그는 “어, 이거 재미있겠네 하면 만들었다”고 했다. 고향 함안에도 에코씽씽뚝방마라톤 대회를 만들었는데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없어졌다고 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11월부터는 ‘괴짜왕 조웅래’라는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터지고 사람들 사는 게 힘들어져 뭔가 새로운 것으로 즐거움을 주고 싶어 시작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달리며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 명소를 가서 직접 달리면서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한국 나이 65세가 되면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달리는 ‘마라투어(마라톤+투어)’를 하겠다고 한다. 조 회장은 “살면서 가장 잘한 게 마라톤이란 한 가지 운동을 21년 째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한 가지 운동을 평생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훨씬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와 딸, 아들도 달리고 사위, 며느리에게도 달리게 하고 있다. “2018년 예비 사위가 찾아 와 딸하고 결혼하겠다고 하기에 그럼 하프코스를 달려야 한다고 조건을 제시했어요. 그해 9월 2일 예비 사위가 저랑 하프코스를 완주했고 9월 29일 결혼했습니다. 올 11월 아들이 결혼하는데 예비 며느리에게 10km를 완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 회장은 가족과 함께 하는 ‘말아먹는 여행’을 만들었다. 마라톤과 먹거리를 합친 조어다. “회사 일만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 순간 저 혼자만 외톨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와 딸, 아들 셋이선 잘 뭉치고…. 야, 이거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이 출가하기 전에 가족 전체가 함께 할 일을 찾았어요. 그래서 지역 명소를 방문해 맛있는 것도 먹고 마라톤도 달리는 여행을 만들었습니다.” 말아먹는 여행을 한 지 6년이 넘었다.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다. 사위도 함께 하고 있고 며느리도 당연히 함께 해야 한다. 2019년 환갑을 맞아선 미국 하와이를 ‘말아먹고’ 왔다. 그 때 아내와 사위가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맥키스컴퍼니에서는 정식 사원이 되려면 10km를 완주해야 한다. 조 회장은 2005년부터 일명 면수습 마라톤대회를 만들었다. 수습을 떼는 사원과 기존 선배 사원들이 함께 어우러져 10km를 달리는 행사다. 10km 완주한 수습사원에게 사령장을 준다. 지금까지 완주 못한 사원은 단 한명도 없다. 이렇게 마라톤을 강조하는 이유는 준비성을 키우기 위해서다. “인생은 마라톤에 비유합니다. 10km든 하프코스, 풀코스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완주를 못합니다. 인생도 준비 안하면 힘듭니다. 마라톤 완주를 준비하면서 심신이 건강해고 에너지도 얻습니다. 완주하고 나면 자신감도 생깁니다. 또 마라톤은 소통입니다. 함께 달리면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조 회장은 6월 27일 회사 임원들과 함께 울릉도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풀코스를 달렸다. 이번이 풀코스 80번째 완주다. 매주 토요일 새벽엔 임직원들과 계족산에서 함께 달린다. 일요일 새벽에도 뜻이 있는 직원들은 함께 달린다. 회사 임원인 아들은 토요일 함께 달린다. 코로나 19가 없을 땐 대회에 출전해 사위랑도 함께 달렸다. 지금은 서울 사는 사위가 대전에 내려올 때 함께 달리고 있다. 그는 “아들, 사위와 달리는 아버지가 있을까?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조 회장은 마라톤을 즐기지만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제가 마라톤 입문해 2003년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23분의 풀코스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고 지금도 3시간 30분 정도에 완주하지만 절대 무리하지는 않습니다. 주변에 매주 풀코스를 달리는 사람도 있는데…. 망가진 사람도 많죠.” 21년간 풀코스 80회 완주니 연간 4~5회만 풀코스를 달린 셈이다. 울트라마라톤 등 무리해야 하는 레이스는 아예 참가하지 않는다. 부상 방지 노력도 열심히 한다. “90살까지 풀코스를 달리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찾았더니 요가가 보였습니다. 요가는 몸을 유연하게 해주고 근력도 강화시켜줍니다. 요가 한지 5년 됐는데 키가 1cm 컸고 근육량도 4.2kg 늘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요가 한 뒤 부상이 없습니다.” 조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뜻 깊은 기부도 하고 있다. 1km를 달릴 때마다 1만 원을 적립해 대전 충청 지역 중증장애인시설에 체중계를 보내준다. 그는 “마라톤은 신이 내려준 최고의 보약이다. 난 달릴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장애로 달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시작했다”고 했다. 중증장애인은 한달에 2, 3번 체중을 체크해야 하는데 휠체어를 타고 젤 수 있는 전문 체중계가 없으면 힘들다는 한 시설 원장의 편지를 받고 시작했다. 체중계 하나에 152만 원. 조 회장은 한달 평균 150km 이상을 달리니 매월 한 개씩 기부하고 있는 셈이다. 5월에만 237km를 달렸다. 조 회장은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경영난에도 지난해와 올해 5억 2000여 만 원의 지역사랑 인재 육성 장학금을 마련해 지역민을 돕고 있다. ‘이제우린’ 소주 1병이 팔릴 때마다 5원을 장학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조 회장은 말한다. “제가 마라톤으로 심신이 건강하니 사업도 잘 하고 있습니다. 마라톤으로 얻은 혜택, 남들에게도 계속 전해주겠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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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건강]“재산보다 달리기 유산… 며느리와 사위도 함께 뛰어요”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62)은 형들의 영향을 받아 2001년 마라톤에 입문해 21년째 달리고 있다. 그는 “살면서 가장 잘한 게 마라톤이란 한 가지 운동을 꾸준하게 해 온 것”이라며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도’하고 있다. 조 회장은 대전 계족산에서는 ‘대통령’으로 통할 정도로 유명하다. 2004년 ㈜선양주조를 인수한 뒤 2006년부터 계족산 14.5km 임도에 황토를 깔아 맨발로 걷고 달릴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첫해 2만여 t, 이후 매년 2000여 t을 추가로 뿌리고 관리해 이젠 연간 100만 명이 넘게 찾는 지역 명소가 됐다. “2006년 초 대전을 방문한 지인들과 계족산을 걷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에게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로 걸으며 맨발걷기의 효능을 체험했다.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불면증이 있었는데 숙면을 했고 머리도 맑아졌다. 그때부터 맨발로 걸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맨발로 걷게 하기 위해 황토를 깔았다.” 연간 황톳길 유지비용은 10억 원. 조 회장은 “시민들이 즐겁게 걸으며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그해부터 매년 5월 계족산을 맨발로 걷거나 달리는 마사이마라톤대회도 만들었다. 2011년부터는 문화예술까지 어우러진 계족산 맨발축제로 발전됐다. 자연 속에서 몸(맨발)과 마음(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치유하는 체험형 에코힐링 축제다. 맨발 걷기 혹은 달리기는 지압 및 접지(接地·Earthing) 효과가 있어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조 회장은 2016년부터 1월 1일 오전 11시 11분 11초에 맨몸으로 대전 갑천변을 7km 달리는 대전맨몸마라톤도 개최하고 있다. 조 회장은 자신을 마라톤의 길로 인도한 둘째형 경래 씨(79), 셋째형 갑래 씨(74)와 지금도 함께 달리고 있으며 아내와 딸, 아들은 물론이고 사위, 며느리까지도 달리게 하고 있다. 그는 “2018년 예비사위가 찾아와 딸하고 결혼하겠다고 하자 하프코스를 달려야 한다고 조건을 제시했다. 그해 9월 2일 예비사위가 나와 하프코스를 완주했고 9월 29일 결혼했다”고 말했다. 올 11월 아들과 결혼할 예비며느리도 10km는 완주해야 한다. 조 회장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한 가지 운동을 평생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훨씬 의미가 있다. 다행히 아내와 우리 아이들 모두 즐겁게 함께 달려줘 너무 고맙다”고 했다. 맥키스컴퍼니에서는 정식 사원이 되려면 10km를 완주해야 한다. 조 회장은 2005년부터 일명 면수습 마라톤대회를 만들었다. 수습을 떼는 사원과 기존 선배 사원들이 함께 어우러져 10km를 달리는 행사다. 완주한 수습사원에게 사령장을 준다. 지금까지 완주 못한 사원은 없었다. 이렇게 마라톤을 강조하는 이유는 준비성을 키우기 위해서다. 조 회장은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했다. 10km, 하프, 풀 어느 코스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완주를 못 한다. 그 준비 과정에서 심신이 건강해지고 활기찬 에너지를 얻는다. 인생도 준비 안 하면 힘들다. 또 마라톤은 소통이다. 함께 달리면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난달 27일 회사 임원들과 함께 울릉도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풀코스를 달렸다. 풀코스 80번째 완주다. 매주 토요일 새벽엔 임직원들과 계족산에서 함께 달린다. 일요일 새벽에도 뜻이 있는 직원들은 함께 달린다. 조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뜻깊은 기부도 하고 있다. 1km를 달릴 때마다 1만 원을 적립해 대전 충청지역 중증장애인시설에 체중계를 보내준다. 그는 “마라톤은 신이 내려준 최고의 보약이다. 난 달릴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장애로 달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중증장애인은 한 달에 두세 번 체중을 체크해야 하는데 휠체어를 타고 잴 수 있는 전문 체중계가 없으면 힘들다는 한 시설 원장의 편지를 받고 기부를 시작했다. 체중계 하나에 152만 원. 조 회장은 한 달 평균 150km 이상을 달리고 있어 매월 하나씩 기부하고 있다. 5월에만 237km를 달렸다. 조 회장은 “마라톤으로 심신이 건강하니 사업도 잘하고 있다. 마라톤으로 얻은 혜택, 남들에게도 계속 전하겠다”고 며 웃었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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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kg→60kg’ 다이어트 성공 뒤 유지 비결은…[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체중이 100kg이었지만 뚱뚱한지 몰랐다. 키가 170cm로 커서 그런지 주위에서도 살쪘다는 소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비만인 것을 알고 강도 높은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이종민 대전 브레인요양병원 재활의학과 진료원장(35)은 철저한 운동과 관리로 40kg을 감량한 뒤 이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소아비만이었어요. 성인이 될 때까지 한번도 날씬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다니던 고등학교를 2학년 1학기 마치고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본 뒤 재수학원에 뛰어 들면서부터 제가 살이 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다닌 특목고는 다들 개성이 강해 제가 뚱뚱한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재수학원에서는 제가 비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또래보다 1년 먼저 재수를 시작해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태권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함께 헬스클럽에 등록해 하루 8시간씩 걸었다. “수능이 끝나면 다시 수업을 시작할 때까지 한 3개월이 비어요. 그 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오전에 4시간, 오후에 4시간 트레드밀을 걸으니 한 20kg 빠졌어요. 근데 다시 공부에 집중하다보니 90kg까지 늘었죠. 재수에서 3수로 넘어갈 때 독하게 마음먹고 빼 60kg까지 떨어뜨렸어요. 그 때부터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4수 끝에 의대에 합격한 뒤 공부에 집중하다보니 한 때 80kg까지 다시 올랐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다이어트라는 게 일시적으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얼마나 관리를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좀 관리 안하면 체중이 늘고, 관리하면 빠진다”고 말했다. 2018년 결혼을 앞두고 몸을 만들기 위해 피트니스센터에서 퍼스널트레이닝(PT)을 받으면서 근육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동안 아버지에게서 배워 일부 기구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전문적으로 배우긴 처음이다. “그 피트니스센터가 보디빌딩 선수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제게도 대회 출전을 권유했어요. 그래서 이왕 운동하는 김에 대회에 출전하려고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동안은 유산소운동 위주로 했는데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니 몸이 예뻐지더라고요.” 이 원장은 전공의 4년 차이던 2018년 2개 대회에 출전해 모두 입상했다. 10월 피트니스스타 광명 대회에서 피트니스모델 1위를 차지했고, 바로 이어진 피트니스스타 대전 대회에서 피트니스모델 1위, 비키니모델 톨 부분 1위, 그랑프리 2위를 차지했다. 유산소 운동으로 살을 뺀 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을 입힌 몸매가 빛을 발했다. 이 원장은 전공의 3년 차 때인 2017년에는 필라테스 자격증도 획득했다. “재활의학을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필라테스에 관심이 갔어요. 재활에서 필라테스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통증 환자들의 경우 제게 ‘필라테스 해도 되나요?’ ‘헬스 해도 되나요?’라고 물어보는데 제가 잘 알고 있어야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배웠습니다.” 이 원장은 전공을 정할 때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다이어트 관련 분야를 택하려고 했다. “다이어트 관련 과를 지켜봤는데 전반적인 건강을 관리하는 가정의학과, 지방 흡입하는 성형외과, 위 절제술하는 외과 등이 있었어요. 제가 전공을 고민할 무렵 가수 신해철 씨기 위절제술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 큰 이슈가 됐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위절제술을 해도 다시 많이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위는 커지고…. 수술 하고도 100kg 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방향하고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하는 재활의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이 원장은 다이어트를 위해 식욕억제제도 먹어봤다. 하지만 어차피 많이 먹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숟가락을 내려놓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었다. 운동으로 계속 관리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봤다. 이 원장은 다이어트 요요현상이란 표현을 싫어한다. “다이어트는 평생 지켜야 할 생활습관이 중요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본 결과 어느 기간 하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생활습관을 잘 지켜 관리가 되면 살이 빠지고, 관리가 안 되면 살이 찌는 것입니다. 평생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죠. 전 지금도 좀 관리 안하면 체중이 늘고 관리하면 빠집니다. 결국 본인 의지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원장은 다시 한번 개인적인 생활 습관에 따른 지속적인 관리를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움직이고 적당히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직업도 다르고 생활환경도 다르다보니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먹는 시간도 다 다릅니다. 결국 건강을 위해 먹는 시간과 운동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개인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개인의 의지 속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효율적으로 다이어트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원장은 워낙 오랫동안 비만으로 살아와 체중을 뺐어도 살 처짐 현상은 있다고 했다. 그는 “운동을 많이 해서 좋아지긴 했지만 특정 부위는 아직 살 처짐 현상이 있다. 그렇다고 수술할 정도는 아니다. 계속 운동으로 처짐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2018년 이후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전공의과정을 마치고 석사과정, 펠로우십까지 하다보니 시간이 없었고 지난해 터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탓에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전 브레인요양병원으로 갔는데 코로나가 터졌죠. 요양병원은 정부에서 특별 관리해 이동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백신 접종이 끝나 좀 여유로웠는데 3주 전까지만 해도 주 2회 코로나 검사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집에서 하는 홈 트레이닝을 하거나 병원 집무실에서 개인적으로 운동했죠. 지금은 피트니스센터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는 9월 대회 출전을 위해 이른바 ‘시즌(보디빌딩 운동선수들이 집중적으로 운동하는 기간)’에 들어갔다. 병원을 마친 뒤 오후 7시부터 운동을 시작해 12시가 돼서야 집으로 간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환자들을 위해서다. “대회 출전은 정확하게 운동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제가 몸을 잘 움직일 수 있어야 환자들에게 제대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전 고도 비만이었고 유산소 및 무산소 운동으로 살도 많이 뺐습니다. 대회 출전을 위해 강도 높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몸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운동하다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운동은 안전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허리 아픈 사람이 ‘어떤 운동을 해야 하냐’고 질문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운동 전, 운동 중간, 운동 후 통증이 있다면 운동을 멈춰야 합니다. 먼저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고 통증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해서 되는 동작, 안 되는 동작을 명확히 알고 운동을 해야 합니다. 물론 안 아프면 어떤 운동이든 해도 좋습니다. ‘운동하고 아프면 좋은 것이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운동하다 몸을 완전히 망치는 사람들이 많아요.” 최근 코로나 19 이후 젊은이들이 운동에 매진하며 보디프로필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게 인기다. “젊은이들이 밖에 나가 에너지를 분출할 기회가 없어 나타난 현상 같아요. 친구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젊음을 한껏 발산해야 하는데 못하니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에너지를 분출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일시적이지만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운동 경험은 평생 갑니다. 코로나 19가 잠잠해진다고 해도 운동하면서 느꼈던 좋은 경험을 다시 느끼고 싶어 할 겁니다. 저도 피트니스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면 다시 출전하려고 했을까요? 운동의 좋은 기억이 있다면 늦게라도 다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겁니다.” 이 원장도 운동을 통해 살도 뺐고, 좋은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는 좋은 기억 때문에 계속 운동하고 있고, 평생 운동을 할 마음을 먹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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