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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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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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백→ 88만원 세대→ 이생망… 사회불만 표현 수위 높아져

    “방학이 되면 국내파와 해외파 오렌지족이 어울려 사치 퇴폐 행각을 일삼는다. (중략) 종전엔 식당이나 록카페에서 파트너를 물색했는데, 요즘엔 그랜저 승용차 등을 몰고 가다 길가는 여학생 옆에 세워놓고 ‘야, 타라’ 하며….”(동아일보 1994년 1월 22일자) 한국 대중음악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1992년.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신인류(新人類)’가 출현하는 광경을 목도했다. 바로 ‘오렌지족(族)’의 등장이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1990년대 초반 오렌지족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녔던 이유는 당시 급격한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비추는 ‘사회적 거울’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오렌지족 이후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거울은 어떤 게 있었을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사람·세대를 지칭하는 신어만도 한 해에 수백 개 쏟아진다. 1992∼2016년 동안 산술적으로 수만 개에 이른다. 동아일보는 이 가운데 △포털사이트 시사용어집이나 오픈사전에 등재됐고 △언론 매체에서 최소 10회 이상 사용했던 단어들로 추려봤다. 모두 211개가 기준에 부합했다. 당대 혹은 지금까지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말들을 중심으로 25년 동안 시대를 따라 흐른 신어들을 정리했다.○ 1990년대=‘응답하라 1992’ 한국 사회의 지각변동 1992년 한 일간지가 명명한 오렌지족은 당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부유한 부모 덕에 분에 넘치는 유흥을 즐기는 20대를 두고 한 언론은 “사회적 치욕”이라고까지 비난했다. 이후 오렌지족의 변형인 ‘야타족’ ‘낑깡족’에 지금의 흙수저와 비슷한 개념인 ‘뚜벅이족’까지 나왔다. 2년 뒤인 1994년 국내에 등장한 ‘X세대’도 빼놓을 수 없다. 원래 X제너레이션은 1991년 캐나다 작가 더글러스 커플런드의 동명소설에서 “삶의 의욕을 상실한 젊은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한 화려한 TV 광고에서 세련된 이미지로 포장된 X세대는 통통 튀는 ‘신세대’를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정착했다. 쓰임새는 사뭇 달랐지만 오렌지족과 X세대의 출현은 당대를 1980년대와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가난 탈출이나 군사독재가 시대적 화두였던 이전과 달리 1990년대는 경제적 안정과 민주화가 함께 발흥한 시기”라며 “본격적으로 소비문화가 발흥한 시점에 두 신어가 유행한 건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신인류라 할 ‘386세대’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1960년대 출생해 80년대 대학을 다닌 90년대의 30대’를 일컫는 386세대란 용어는 1997년 전후 언론 매체들이 정치판을 분석하며 즐겨 쓰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후 ‘486세대’와 함께, 앞선 4·19세대나 6·3세대와 구분되는 새로운 정치적 시대상이 반영된 신어였다. 신어들을 보면 1990년대는 낙관과 비관이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던 시기였다. 긍정 혹은 가치중립적 신어(15개)와 부정적 신어(16개)의 비율이 거의 동일했다. 오렌지족조차도 지금 보자면 낭만적 뉘앙스가 짙었다. 하지만 이후 한국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신어도 탄생했다. 1997년경 등장한 ‘왕따’였다. 일본의 이지메(イジメ·집단 괴롭힘)가 건너와 최고를 뜻하는 ‘왕∼’과 따돌림이 결합한 이 신어는 점차 과열돼 가던 경쟁사회의 우울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00년대=희망과 절망을 양손에 부여잡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은 한국 사회는 21세기 초반 신어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월드컵 세대’가 확산됐고,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추구하는 ‘웰빙족’이 인기를 끌었다. 반면 1997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외환위기의 여파도 여전했다. 구조조정 광풍이 불며 ‘사오정’(45세면 정년) ‘오륙도’(56세에 회사 다니면 도둑) ‘이태백’(20세 태반이 백수) 등 우울한 세태를 반영한 신어도 많았다. 인터넷·모바일 문화가 급속하게 팽창하던 분위기를 담은 신어도 나타났다. 영상채팅의 유행이 만든 ‘얼짱’과 일본 오타쿠(オタク)에서 변형된 ‘(오)덕후’였다. 덕후는 처음엔 ‘사소한 취미에 집착하고 사교성이 부족하다’는 조롱의 뜻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엔 하나의 분야에 정통하다는 뉘앙스로 바뀌며 위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2001년경 본격적으로 쓰인 얼짱은 한국적 외모지상주의의 ‘시조’ 격인 신어다. 초기엔 그저 미남미녀를 지칭하는 단순한 말이었지만, 이후 ‘몸짱’ ‘꿀벅지’ ‘베이글녀’ 등 수많은 유사용어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외모 중시 풍조는 오랜 인간의 본성과 연결되지만 21세기 들어 외모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력한 경쟁력으로 대접받으며 더욱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는 남녀 성역할과 관련된 신어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진 시기이기도 했다. 초중반엔 능력이 출중한 여성들을 일컫는 ‘알파걸’ ‘줌마렐라’ ‘골드미스’ 등 높아진 여성의 지위를 반영한 긍정적 키워드가 많았다. 그러다 2006년 등장한 ‘된장녀’는 이 모든 걸 ‘한 방’에 뒤흔든 신어였다. 허영심을 지닌 일부 여성을 비하하는 이 말은 한국 사회의 격렬한 ‘젠더(사회적 의미의 성) 논쟁’을 불러일으킨 시발점이었다. 이후 ‘쩍벌남’ ‘김치녀’ 등 관련 신어가 쏟아지며 현재의 극단적 남성·여성 혐오로까지 번졌다.○ 2010년대=사회적 불안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최근 신어들은 갈수록 파괴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같은 의미라도 ‘성형미녀’가 아닌 ‘성괴’(성형괴물)로 더 파괴적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신세를 지는 젊은이들을 부른 ‘캥거루족’(1990년대 후반) ‘연어족’도 마찬가지. 다소 조롱의 의미는 있을지언정 평범한 뉘앙스였으나 이 시기엔 ‘빨대족’ ‘등쳐족’(부모 등쳐먹는 족속) 등 공격적으로 변모했다. 계층·계급적 불만을 드러내는 신어들이 쏟아진 것도 눈에 띈다. 물론 이전에도 ‘이태백’과 같은 신어가 존재했다. 그러나 2007년 우석훈 박권일의 책 ‘88만원 세대’ 이후 2010년대엔 ‘n포세대’ ‘헬조선 세대’ 등으로 점점 거세졌다. 지난해 ‘흙수저’ 논쟁이나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과 같은 푸념은 이런 분위기가 더욱 심화됐음을 드러낸다. 권상희 성균관대 교수는 “극심한 청년실업과 더불어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사회적 경직성이 청년세대에게 좌절과 자기비하를 체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진단했다. 된장녀에 이어진 젠더 혐오 논쟁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한남충’(한국 남성은 벌레)이나 ‘아몰랑’(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성) ‘김 여사’(중년여성 비하) ‘개저씨’(개+아저씨) 등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할퀴고 있다. 이런 극단적 충돌은 계층 혐오 등으로 번지며 갈수록 거칠어졌다. 사람을 짐승이나 벌레만도 못한 부류로 비하하는 ‘맘충’(아기 엄마 비하) ‘틀딱충’(노년 비하) 등도 나왔다. 이 시기라고 비관적 신어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외모지상주의에 반발한 ‘훈남(녀)’ ‘뇌섹남(녀)’이나 시대적 아픔과 정치사회적 성숙을 담은 ‘촛불 세대’ ‘세월호 세대’도 등장했다. 하지만 그 비율은 10개 가운데 7, 8개가 부정적일 정도로 극심하게 기울었다. 남길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신어는 당대의 사회 구성원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와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며 “한국 사회에서 부정의 가치가 점점 노골적으로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이지훈 기자}

    •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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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글]5년전 ‘티아라 왕따 논란’ 재점화

    최근 논란이 재점화됐던 ‘티아라 왕따 사건’이 13일 방영된 채널A 연예정보 프로그램 ‘풍문으로 들었쇼’에서 다뤄지며 또 한 번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이번 논란은 이날 ‘풍문…’에 출연한 스타일리스트 김우리 씨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사건 당시 티아라 스타일리스트였던 그는 “폭로전에 대해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티아라 (기존 멤버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당시 논란이 됐던 멤버 화영에 대해 “헤어숍 직원을 ‘샴푸’라 부르는 (무례한) 태도로 스태프 사이에 안 좋은 소문이 퍼졌었다”고 밝혔다. 방송 직후인 14일 당사자인 화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즉각 반박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김우리 선생님, 효민 언니(티아라 멤버)랑 친한 거 아는데요. 없는 이야기 지어내지 마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걸그룹 티아라는 2012년 SNS로 노출된 멤버들의 감정적 갈등이 ‘왕따 논란’으로 번지며 당시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시간이 지나면서 논란이 잠잠해졌지만 화영이 쌍둥이 언니인 효영과 tvN 토크쇼 ‘택시’에 출연해 다시 언급하며 불씨를 지폈다. 이후 티아라 전 매니저가 화영과 효영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며 논란이 가열됐다. 인터넷 댓글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지나간 일을 자꾸 들추는 게 지겹다”는 측과 “이제라도 명확히 진상을 밝혀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한 누리꾼은 “싸우든 말든 지들 맘이지만 그럴수록 맘이 식는 것도 팬들 마음”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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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가족극, 시청자 마음 녹였다

    《 “시청률 20% 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최근 KBS 주말연속극 ‘아버지가 이상해’에 달린 인터넷 댓글 가운데 하나다. 4일 시작한 이 드라마는 1회부터 22.9%(닐슨코리아)란 높은 시청률(당일 종합 1위)을 거뒀다. 그런데 호평만큼이나 ‘그 정도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상당했다. 언제부터인가 KBS 주말연속극은 ‘흥행보증 수표’로 통한다. 시청률이 40% 안팎은 찍어줘야 성공이라 부른다. 2013년 ‘최고다 이순신’은 최고 시청률이 30.8%(48회)인데도 ‘기대에 못 미쳤다’는 반응이 쏟아졌을 정도. “누워서 만들어도 20%는 넘는다”는 KBS 주말연속극이란 맛집의 ‘필승 레시피’를 들여다봤다. 》 ○ 주말 8시, 가족드라마의 전형을 완성하다 오후 8시대에 방송하는 KBS 주말연속극은 1980년 TBC가 KBS에 합병된 뒤 줄곧 자리를 지켜온 전통의 노포(老鋪·대를 이어 내려오는 점포). 하지만 1990년대까진 ‘드라마왕국’ MBC에 다소 밀리는 형국이었다. 물론 역대 드라마 시청률 1위(65.8%)인 ‘첫사랑’(1996년)을 비롯해 ‘야망의 세월’(1990년) ‘목욕탕 집 남자들’(1995년) 등 굵직한 작품도 많았지만, ‘사랑과 야망’(1987년) ‘사랑이 뭐길래’(1991년) ‘아들과 딸’(1992년) 등 MBC 드라마가 워낙 강세를 떨쳤다. 두 방송사의 주말극 경쟁은 2000년대 초반까진 팽팽했다. 그러나 KBS는 ‘부모님전상서’(2004년) ‘소문난 칠공주’(2006년) ‘엄마가 뿔났다’(2008년) 등을 내놓으며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특히 당대 최고의 흥행 카드인 김수현 작가 작품을 연달아 선보인 게 컸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전까진 시대극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던 KBS 주말연속극이 현재의 ‘가족 드라마’ 이미지를 구축한 때도 이즈음”이라고 말했다. 이후 KBS 8시 주말드라마는 두 차례 큰 전기를 맞는다. 오랜 라이벌인 MBC가 2010년 9시대로 드라마를 옮기며 동시간대 유일한 강자로 올라섰다. 게다가 2012년 시청률 45.3%를 기록한 ‘넝쿨째 굴러온 당신’(넝쿨당·2012년)의 사회적 파장도 거셌다. 김 평론가는 “넝쿨당은 ‘따뜻한 코믹 가족극’이란 21세기형 주말극의 본보기를 세운 작품”이라며 “이후 ‘내 딸 서영이’(2012년)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이 공식을 따르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전통적 가치를 지킨 게 성공 비결…현실 반영은 아쉬워 두 사건은 KBS 주말극이 지금까지 성공적인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원동력이 됐다. 사실 2010년 전만 해도 KBS 역시 ‘막장 논란’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8시대 기존 시청자층이 두꺼운 상황에서 라이벌마저 사라지니 과열 경쟁을 펼칠 이유가 없어졌다. 한 드라마PD는 “심지어 타사에서 막장으로 유명했던 작가조차 KBS 주말극에선 그런 색채를 빼고 가더라”며 “피 터지듯 경쟁 중인 MBC와 SBS 9시 드라마가 여전히 막장 코드가 범람하는 상황과 비교된다”고 말했다. ‘가족의 유대나 윗세대 경험의 소중함’이란 가족극의 코드는 주시청자인 중장년층이 바라는 전통적 가치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심지어 시청률이 안정적인 데다 건강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배우 섭외도 수월하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최근엔 아이돌을 포함한 젊은 연기자들도 KBS 주말극 출연에 매우 적극적이다”라고 귀띔했다. 다만 검증된 공식이긴 하나 지속적인 패턴 반복은 언젠가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 종영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높은 시청률과는 별개로 현실과 동떨어진 전개라는 비난을 받았다. 김 평론가는 “취업난이나 생계 문제와 같은 가족이 지닌 현실적 고민도 적절히 짚어줄 수 있어야 가족극의 생명력 또한 길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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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다른 ‘영웅전설’이 찾아왔다

    “스타워즈가 왕좌의 게임(미국 HBO 드라마)을 만났다.”(MTV) 미국도 참 과하다. 괜찮다 싶으면 칭찬이 블록버스터다. 좀 재밌기로서니 SF(공상과학)와 판타지 최고봉을 다 갖다 붙이다니. 이게 끝도 아니다. “반지의 제왕 우주 버전.”(AICN) “SF로 탄생한 로미오와 줄리엣.”(iFanboy) 도대체 뭐기에. 모두 올해 초 국내에 1, 2권이 출간된 그래픽노블 ‘사가(Saga·시공사)’를 두고 나온 얘기다. 살짝 배알도 꼴린다. 뭐 대단하다고 이리 난리냐. 몇 장 넘기다 보니 입이 삐죽거려진다. ‘젠장’ 시샘이 불끈 솟구쳤다. 이것들, 또 물건 하나 내놓았구나. 차마 저만한 호평까진 아니더라도. 그래, 끝내주는 ‘영웅전설(saga)’이 다시 한번 우리 곁을 찾아왔다. 머나먼 우주 어딘가에 ‘랜드폴’과 ‘리스’란 별이 있다. 천사와 악마만큼 생김새가 다른 두 별 종족은 철천지원수. 서로 증오하며 끝없이 싸워왔다. 아, 근데 이를 어쩌나. 군인과 포로로 만난 마르코와 알라나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어렵사리 함께 도망쳤지만 양국 정부의 끈질긴 추격을 받게 되는데…. 딸 ‘헤이즐’까지 출산한 두 사람의 여정은 어디까지 다다를까. 줄거리만 따지면 ‘사가’는 의외로 심플하다. 허나 빼곡히 속을 채운 설정과 캐릭터가 거침없다. 뿔이나 날개 달린 모양새는 딱히 놀랍지도 않다. ‘스파이더우먼’ 살인청부업자는 진짜 다리만 8개인 거미 여인.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랜드폴 왕족은 몸은 사람이나 머리가 TV(혹은 컴퓨터)다. 광선총과 유령, 마법과 최첨단이 뒤섞여 우주를 수놓는다. 잠깐 갓길로 새자면, 이토록 광활한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인종 성별 같은 ‘선긋기’는 참 부질없다. 현지에선 2012년 선보인 ‘사가’는 출간 전부터 만화 팬들의 기대가 무척 컸다. 글쓴이가 다름 아닌 브라이언 K 본이기 때문이었다. 국내엔 배우 김윤진이 출연해 화제였던 드라마 ‘로스트’ 시즌 3∼5의 각본가인 그는 2002년 만화 ‘Y: 더 라스트 맨’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어느 날 남성 1명과 원숭이 1마리만 빼고 모든 남성과 수컷이 멸종한 세상을 다룬 이 작품은 소설가 스티븐 킹이 최고의 그래픽노블로 꼽기도 했다. ‘사가’는 평단의 상찬만큼 상복도 엄청났다. ‘만화의 아카데미상’ 아이스너상의 최고상 격인 ‘베스트 연재 만화상’을 2013∼2015년 3년 연속 받았다. 이는 1991∼1993년 ‘샌드맨’에 이은 역대 두 번째. 이 밖에 ‘SF계의 노벨상’ 휴고상 그래픽노블 부문상(2013년)도 거머쥐었다. 물론 이 작품은 워낙 강해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듯하다. 욕설과 외설이 차고 넘친다. 미국에서도 2014년 전미도서관협회(ALA)는 “가족주의적 가치관에 반하며 성적으로 문란해 (청소년이나 노년) 특정 연령에 맞지 않는다”며 ‘가장 논란이 큰 문제작 10’ 리스트에 올렸다. 실제로도 어린이나 점잖은 분들이 보기엔 다소 상스럽긴 하다. 허나 품위만 따지고 들기엔 ‘사가’는 너무 매력적이다. 생각해보라. 걸작인 건 분명하지만 루크 스카이워커나 프로도 배긴스가 지금 나왔다면 그런 인기가 가당키나 했을까. 21세기엔 줄리엣도 걸쭉한 입담 정도는 갖춰 줘야지. 어차피 볼 사람만 볼 만화. 시원하게 질러주고 통쾌하게 뻗어나가길. 그놈의 우주는 넓디넓으니까. ★★★★☆(다섯 개 만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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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 인 컬처]연하남은 펫? 이제는 당당한 사랑의 동반자

    《 “열 살은 어려 보인다는 얘기를 들으셔야 해요. (아니면) 모성애밖에 없어요. 다 받아주세요.”(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뭣이라? 4일 방송에서 모델 이소라 말을 듣고 에이전트2(정양환)는 한참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게 ‘연하남 사귀는 팁’이라니. 그럼 연하녀도 마찬가진가. 동안 아니면 부성애가 답이란 말이지. 요원은 잠깐 애 딸린 신분은 망각하고 한동안 늘어진 뺨을 조몰락거렸다. “에휴, 선배 같은 이들 땜에 예능이 힘든 거예요.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니.” 뭣이라. 어느새 나타나 뒤통수를 때리는 에이전트26(유원모)의 목소리. 이 자식이… 내 속을 다 알아채다니. 요즘 연하남을 다룬 예능이 화제긴 하다. tvN ‘신혼일기’에는 실제 연상연하 부부인 안재현 구혜선이 나오고, ‘10살 차이’는 여성 연예인이 위아래로 10세 차이인 남성을 번갈아 만나는 내용을 다룬다. 과연 대한민국 TV 예능은 연하남이란 소재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 걸까.》 ○ ‘연하남은 애완동물?’…TV 예능의 연하남 10년사(史) 21세기 들어 대중문화에서 연하남은 심심찮은 단골 소재였다. 이승기의 데뷔곡 ‘내 여자라니까’(2004년)나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2008년)는 대놓고 연상녀의 맘을 흔드는 노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는지, 딱 10년 전인 2007년 방송도 본격적인 연하남 예능이 등장했다. 코미디TV의 ‘애완남 키우기―나는 펫’이었다. 2009년 시즌7까지 이어진 펫 시리즈는 제목만큼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외모에 경제력까지 갖춘 싱글 여성이 귀여운 연하 남성을 ‘분양(?)’ 받아 한집에서 같이 산다는 콘셉트. 목줄을 매단 남성을 끌고 있는 여성이 나오는 포스터는 지금 봐도 ‘세다’. 이는 당시 연상연하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만큼 틀에 갇혀 있었단 걸 반증한다. 연상녀가 어린 남자를 만나려면 돈이건 지위건 뭔가 있어야 하며, 연하남은 ‘토이 러버(toy lover)’로서 진부한 종속관계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때만 해도 남녀 성역할을 구분하는 전통적 연애상이 우세했던 시절”이라며 “낯설고 익숙지 않다 보니 더 자극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2008년 MBC ‘우리 결혼했어요’(우결)의 첫 연상연하 커플인 황보-김현중 편에서 김현중 별명이 ‘꼬마신랑’이었던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같은 우결의 가상 부부로 2009∼11년 출연한 조권과 가인은 그간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주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다소 유약하고 까불거리는 이미지이긴 했으나 둘은 동갑내기처럼 동등한 눈높이에서 로맨스를 펼쳤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구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사고는 물론이고 생활방식도 변화했기 때문”이라며 “결국은 TV 예능도 보편적인 시청자의 인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결국 문제는 나이가 아니건만… 재밌는 건 이후 연하남에게 초점을 맞춘 예능이 TV에서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우결이나 여타 파일럿 프로그램에 연상연하 커플이 나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나이 자체가 주목을 받진 않았다. TV 속에서도 밖에서도 ‘평범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7년 새롭게 등장한 연예 프로그램은 연상연하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사실 평가는 극과 극이다. 최고 시청률 5.6%(닐슨코리아)까지 기록한 ‘신혼일기’는 예능이 연상연하를 다루는 최종 버전이다. 진짜 부부가 나오니깐. 어떤 로망을 극화시킨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현실을 다룬다. 그저 남편이 나이가 어릴 뿐이다. 실제 4세 연상연하인 이재천 이현주 부부는 이 작품의 미덕을 ‘공감’이라고 짚었다. “보면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살림에 대한 고민 같은 우리가 겪었던 일이 그대로 나올 때가 많아요. 남편이 사근사근하고, 아내가 거침없는 점도 닮았습니다. 확실히 연상연하는 뭔가 좀 다른 점이 있거든요. 다만 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린 연상연하라서 좋아한 게 아니에요. 편하고 대화가 통하고 사랑했기 때문이죠. 나이는 상관없잖아요.” 반면 ‘10살 차이’는 시청률 0.8%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형적이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극단적이진 않아도 출연 남성은 예상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연상남은 안정적이고 의젓하며, 연하남은 활발하고 장난기 가득하다. 설 교수는 “요즘 시골에서 국제결혼을 색안경 끼고 보면 욕먹을 것”이라며 “이미 자연스러워진 패턴을 오히려 도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에이전트2는 묘한 혼란을 느꼈다. 우주에서 한국인만큼 나이 따지는 이들이 있을까. 놀이터에 가면 애들조차 서로 “몇 살이냐”고 묻는다. 진짜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면 연상연하 커플이란 말은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그때 에이전트26이 조용히 어깨를 다독거렸다. “그럼, 우리 앞으로 말 놓을까?” 아, 이 ××…. 고맙다, 여기선 나이가 계급인 걸 일깨워줘서.(다음 회에 계속) 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 기자}

    • 2017-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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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사이다를 부탁해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올 초부터 ‘2017 사이다를 부탁해(사진)’란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독자의 억울했던 사연을 만화로 그려낸다. 그 대신 작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답답했던 현실을 ‘사이다’ 마신 듯 속 시원한 결과로 반전시켜 주는 게 포인트. 6일엔 병원에서 일하는 아빠가 이사장 아들에게 부당 대우를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딸의 얘기를 소개했다. 작가는 사실을 알게 된 이사장이 아들을 혼내주는 걸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댓글은 마냥 통쾌하단 반응이 아니다. “저랬다간 아빠가 더 난처해질 것” “이사장이 아들을 감쌀 듯”이란 의견도 적지 않다. 실은 모든 에피소드마다 이런 ‘현실론’이 꽤 쏟아진다. 맞다. 삶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 잘 풀렸다면 화병(火病)은 있지도 않았을 터. 다만 한 가지. 혹 상대를 예단해 뭔가 해볼 생각조차 안 한 건 아닐까.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지. 그래도 시도라도 해보는 게 청량음료 100병보다 훨씬 나을 텐데. 적어도 스스로에게라도. 사이다, 너무 마시면 속 버린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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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번째는 유승민… 5일 저녁 8시10분에 만나요

    미래의 주역인 ‘청년’들과 차기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진솔한 만남을 주선하는 채널A ‘청년, 대선 주자에게 길을 묻다’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을 초대했다. 1일 첫 방송에서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청년, 대선 주자에게 길을 묻다’는 5일 오후 8시 10분 두 번째 주자로 유 의원 편을 방영한다. 김승련 채널A 정치부장이 사회를 맡고 동아일보의 정성희 송평인 논설위원과 박용 경제부 차장, 홍성규 채널A 정치부 차장이 패널로 참여한 방송은 2일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녹화가 진행됐다. 이날 현장엔 대학생 60여 명이 방청객으로 참여해 뜨거운 열기를 더했다. 유 의원의 정치 소신과 공약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들이 화끈하게 쏟아졌고, 녹화가 끝난 뒤엔 유 의원과 청년 방청객들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모두가 유 의원과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상당한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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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소한 일상의 감동에 생기발랄함 더했다면…

    그토록 기다리던 이를 이제야 만났는데 왜 이리 허전할까. 지난달 20일 방영을 시작한 SBS 드라마 ‘초인가족 2017’을 마주한 심정이 딱 이렇다. 솔직히 요즘 한국 드라마는 다소 극단적이었다. 아침·주말극은 여전히 불륜과 출생의 비밀이 가득하다. 미니시리즈는 만화 같은 퓨전사극과 판타지로맨스만 판을 쳤다. 소소하지만 소중한 웃음과 감동을 담은 작품은 쉽게 만나기 힘들었다. 그런데 드디어, 평범한 가족의 하루하루를 담은 작품이라니. 기대감이 컸다. 딱히 나쁘다는 건 아니다. 만년 과장인 아빠 나천일(박혁권)과 전업주부 엄마 맹라연(박선영), ‘중2병’에 걸린 딸 나익희(김지민)를 중심으로 가족과 직장, 학교에서 벌어질 듯한 에피소드가 물 흐르듯 펼쳐진다. 딸과 소통하려 열심히 신조어를 익히려는 아빠(3화)나 5자매 사이에 낀 셋째라서 서러운 엄마(1화)의 정서는 공감이 간다. 배우들 연기 역시 넘치지 않고 안정감을 준다. 한데 얘기가 일직선으로 단출하다. 국이랑 밥이랑 있을 건 다 있는데 딱히 손이 가질 않는 상차림이랄까. 물론 이건 그간 너무 ‘단짠단짠’(달고 짠맛) 드라마에 길들여진 우리 입맛이 문제일 수 있다. 그래도 일주일 내내 된장찌개만 먹는다면 좀…. 게다가 매번 끝자락에 굳이 감동 코드를 넣어 마무리하는 건 강박관념 아닌가. 가족이라고 항상 따뜻할 필요는 없는데. 장르가 다르긴 해도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년)과 ‘지붕 뚫고 하이킥’(2009∼2010년)이 뿜어내던 생기발랄함까지 바라면 욕심이 큰 건가. 오히려 ‘초인가족…’은 의외의 지점에서 던져주는 시사점이 많다. 등교를 앞둔 딸의 성화에 체육복을 찾아나서는 엄마, 술 취해 잠든 아빠의 양말을 벗겨주는 딸. 20세기의 전형적 도덕 기준은 21세기 드라마에서도 여전히 ‘일상’이란 이름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다. 그게 ‘보통’ 아빠와 엄마와 자식이란 굴레 속에서. 하긴 이래서 그들을 초인가족이라 부르나 보다. 세월이 흘러도 바뀌질 않아서. 정말 엄청난 능력이긴 하다. ★★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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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답률 저조 ARS-당일치기식 여론조사, 民心 반영에 한계

    “더 이상 선거 여론조사는 순위 발표에 그치는 ‘경마보도’에 치중해선 안 됩니다. 앞으로 열릴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가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로 함께 하는 여론조사 보도가 이뤄져야 합니다.”(정일권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한국언론학회(회장 문철수)가 주최한 세미나 ‘대선 여론조사 보도의 새로운 방향 제시’가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언론학계와 여론조사기관이 다수 참여해 그간 효용성이 지적돼 왔던 선거 여론조사의 쟁점을 짚어보고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첫 발제를 맡은 송인덕 중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여론조사보도의 문제점에 대해 진단했다. 먼저 송 교수는 소위 ‘떴다방’처럼 조사업체가 난립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지난해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모두 186개 업체가 참여했는데 82.8%(154개)가 한국조사협회나 한국정치조사협회에 미가입한 곳이었다. 전문성이나 윤리의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단 지적이다. 속보 경쟁에 매몰된 언론 환경 탓에 제대로 된 여론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점도 거론됐다. 20대 총선 당시 이뤄진 여론조사는 기간이 겨우 1, 2일에 그치는 것이 61.6%였다. 자동응답시스템(ARS) 조사가 전체의 75%나 차지하고 있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 ARS는 응답률이 떨어지고 편향성이 커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송 교수는 “비용이 저렴하단 효율성만 고려한 이런 ‘당일치기’식 여론조사는 실제 여론을 반영하기 어렵다”며 “2012년 미국 갤럽은 대선을 포함한 여론조사에서 더 이상 ARS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고 설명했다. 정일권 교수는 두 번째 발제 ‘대선 여론조사 보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언론이 여론조사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책임 있는 보도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여론조사 선진국인 미국을 봐도 1948년 해리 트루먼 vs 토머스 듀이 대선 때부터 지난해 대선까지 언제나 여론조사는 틀릴 가능성이 존재해 왔다. 정 교수는 “현재처럼 여론조사 결과가 중심이 되는 보도를 지양하고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대선 주자 정책에 유권자가 참여할 수 있게 여론조사를 통해 깊이 있는 해석을 전하는 언론보도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토론 패널인 박종선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부 수석부장은 “심도 있는 여론조사 분석은 국민이 재미없어 할 거란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며 “학계와 언론, 조사기관이 유기적으로 공조한 연구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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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장-허구라도 좋다, 직장인 속이 뻥 뚫린다면…

    이토록 극적인 전개가 또 있을까. 드라마를 두고 드라마틱하다니 ‘아재 개그’스럽긴 하다. 그런데 KBS2 ‘김과장’은 이런 수식어가 어울린다. 솔직히 방영 전엔 수목 경쟁작인 SBS ‘사임당 빛의 일기’나 MBC ‘미씽나인’보다 약체로 꼽혔다. 허나 막상 달리기가 시작되니 멀찍이 앞서 나간다. 22일 시청률이 17.8%(닐슨코리아)로 사임당(9.8%)과 실종자(4.1%)를 합쳐도 게임이 안 된다. 내용이나 전개도 그렇다. 조직폭력배의 부정회계를 돕던 사기꾼 김성룡(남궁민)이 우연한 기회에 한탕을 노리며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런데 자꾸 묘한 사건에 휘말리며 의인(義人)으로 등극하더니 거대 악과 맞서는 정의의 사도로 바뀐다. 드라마를 넘어 만화에 가까운 ‘오피스 판타지’랄까. 그럼 ‘김과장’이 진짜 직장인 눈엔 어떻게 보일까. 40대 남성으로 유통회사에 다니는 ‘김 부장’과 금융계에 종사하는 30대 여성 ‘이 대리’에게 드라마 시청을 부탁했다. 둘 다 소시민이라며 가명을 요구했다. ▽김 부장=일단 김 과장의 활극이 속 시원하긴 했다. 하지만 실제 그런 인물이 존재할 가능성은 제로다. 솔직히 우리 조직이 위계질서가 엄하다. 상사한테 대든다는 건 상상도 못해봤다. 하물며 임원 앞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어? 미치지 않고서야. ▽이 대리=경리부장(김원해)처럼 매사에 벌벌 떨거나 회계부장(김민상)처럼 치사하게 구는 것도 리얼하진 않다. 100% 없다곤 말 못해도, 일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대처한다. 상사 말이면 무조건 ‘오케이’ 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김 부장=드라마 설정이 극단적인 건 맞다. 허나 본질은 잘 건드렸다. 결국 대기업은 오너나 핵심 간부들 결정대로 간다. 드라마도 결국 대표이사(이일화)가 회장(박영규)에게 맞서 편을 들어주니까 김 과장과 동료들이 싸울 수 있지 않나. ▽이 대리=진짜 말 안 되는 건 김 과장 입사과정이긴 했다. 그런 스펙으론 아무리 이사 ‘빽’이라도 안 된다. 게다가 사내에서 2번이나 경찰한테 체포되고도 버젓이 회사를 다닌다? 뭐, 김 과장이 엄청 멋있단 건 인정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부장=진짜 능글능글하니 연기는 차지더라. 근데 만약 우리 부서에 그런 과장이 있었다면 정말 골치 아팠을 것 같다. 말도 안 듣고, 계속 일 벌이고. 대체로 그런 부류는 수습은 고스란히 주위 사람들 몫이다. ▽이 대리=요즘 20, 30대는 회사 일에 그리 목숨 걸진 않는다. 정의를 세우겠노라 흥분하지도 않는다. 물론 출세 지향적 인간도 있지만 대부분 자기 인생 찾을 ‘기회’만 엿본다. 주위에 회사 몰래 열심히 목공예를 배우는 친구도 있다. ▽김 부장=그런데도 묘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더라. 대기발령 떨어진 총무부장(홍성덕)이 ‘나 정말 열심히 살았다’며 우는 장면. 술에 취한 경리부장이 ‘딸 졸업하려면 5, 6년은 더 버텨야 해’라고 읊조리는 모습은 짠했다. ▽이 대리=아마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가겠지? 김 과장이 통쾌하게 악당을 물리치고 근사하게 떠나지 않을까. 사실 회사보단 현 시국에 더 감정이입이 됐다. 누가 영웅인진 모르겠지만, 지들밖에 모르는 추잡한 인간들 누가 확 치워주면 좋겠다. ▽김 부장=회사건 나라건 결국은 시스템이 문제다. 조직이 원활하고 합리적이면 그런 꼼수도 활극도 통하지 않는다. 진짜 김 과장이 후배라면 소주 한잔하며 다독이고 싶다. 영웅이 되지 말고 동료가 되어달라고. 그게 말처럼 쉬울 진 모르겠지만. ★★★☆(★5개 만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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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 인 컬처]‘오빠’들 줄줄이 가는 경찰홍보단… 왠지 씁쓸하네

    “난 제대했단 말이야. 왜, 왜 군대를 두 번 가야 해?” 아, 꿈이었구나. 에이전트26(유원모)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아직 낯선 환경이라 그럴까. 과거 행성 HD189733b 인근에서 복무하던 시절이 꿈에 자꾸 나왔다. 쉽사리 다시 잠들지 못하던 그는 TV를 켰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저 어색한 경례 동작은 뭐람. 이름이 김준수(JYJ) 탑(빅뱅·경찰악대 복무 예정)…. 저들은 한국 유명 연예인인데 군대를 간다고? 그런데 의무경찰 ‘경찰홍보단’은 뭐야. 분명 이 나라 연예병사는 폐지됐다 들었건만. 갑자기 나타난 에이전트2(정양환)는 26의 무릎을 탁 쳤다. “자넨 사상 최고의 행정병 출신이잖나. 꼼꼼히 조사해 보도록!” 그래, 드디어 실력을 보여줄 때가 왔군.○ 경찰홍보단은 제2의 연예병사? 경찰홍보단이란 곳엔 이미 슈퍼스타가 즐비했다. 전국 17개 지방경찰청 중 경찰홍보단을 운영하는 곳은 서울 경기남부 전남 등 총 3곳. 특히 2000년 처음 만들어진 서울청 경찰홍보단(구 호루라기 연극단)은 현재 심창민(동방신기 최강창민) 이동해(슈퍼주니어 동해) 최시원(슈퍼주니어 시원) 등이 있다. 몸값만 수백억 원이 넘는 한류스타 집합소란다. 사실 홍보단은 출범 당시엔 연예인이 한 명도 없었다. 직업경찰관 3명이 치안 홍보 활동을 하는 소탈한(?) 조직이었다. 허나 어느 순간 연기·마술·노래·춤 등의 특기를 가진 전·의경을 뽑기 시작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1차 오디션과 2차 의경 적성시험 등을 통해 단원을 선발한다”며 “우수한 자원을 뽑기 위해 연극영화과나 뮤지컬 전공 학과 등에 공문을 보내 오디션에 응해 주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런 홍보단이 군미필 연예인의 사랑을 독차지한 시점은 2013년 전후였다. 한때 솔로 남성가수의 쌍두마차였던 비와 세븐의 ‘공’이 컸다. 지난달 배우 김태희와 결혼한 비는 당시 군인 신분임에도 ‘밤마실’을 즐기다 만인의 지탄을 받았다. 세븐은 안마시술소에 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를 계기로 도입 16년 만에 연예병사 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언뜻 연예병사 ‘필’이 물씬한 홍보단에 연예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특혜 의혹 벗어나야 신뢰 얻어 그렇다면 홍보단은 과연 ‘꿀보직’일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일단 휴가나 외박은 일반 의경과 똑같이 적용한다는 게 서울청의 설명. 서울청 관계자는 “어떤 특혜도 없이 2개월에 3박 4일의 정기외박, 주 1일 외출 등이 주어진다”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논란이 불거지지 않은 이유”라고 했다. 허나 일반 의경만큼 고되지 않은 것도 분명하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4년간 경찰홍보단 활동 내역을 보자. 한 해 최소 103회에서 최대 136회의 공연을 진행했다. ‘범죄피해 가족 위로 공연’ 등 치안 홍보 활동이 70%였고, 나머지는 경찰 내부 행사였다. 사흘에 한 번꼴로 공연하기 바빴다는 얘기. 이러니 당연히 의경의 주 업무인 시위 진압이나 시설 경비 등에선 제외된다. 지난해 의경을 제대한 김모 씨(23)는 “솔직히 열받는다. 연예인이라고 힘든 업무에서 빠지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의 시각도 그리 곱지 않다. 본보가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과 함께 17∼20일 남녀 240명에게 모바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76.7%가 연예인의 홍보단 입대를 ‘특혜’라고 인식했다. 그렇지 않단 의견은 11.2%에 그쳤다. 심지어 홍보단을 폐지해야 한단 응답도 64.6%로 반대(8.8%)를 압도했다. 이런 부정적 시선 탓인지 배우 주원, 최진혁 등은 홍보단 오디션에 합격하고도 포기했다. 물론 홍보단 존폐는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서울청 관계자는 “홍보단은 위문보단 치안활동 홍보가 설립 명분”이라며 “국방부 연예병사와 생긴 배경이 달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에이전트26은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그래, 연예인 적성 살려주고 홍보도 좋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특혜라 여기는지 군과 경찰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단지 그들이 부러워서가 아니다. 군대에서마저 차별받는 기분이 드는 게 서러운 거다. (다음 회에 계속) 유원모 onemore@donga.com·정양환 기자}

    • 20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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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 간 탈북미녀 “속고 산 게 너무 억울하네요”

    “내 평생에 ‘여행’이란 걸 가 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것도 (북한 살 때) 세상에서 제일 나쁜 나라라 배웠던 미국에 가다니 얼떨떨하고 꿈만 같아요.”(한송이) 채널A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잘 살아보세’가 방송 100회를 맞아 미국으로 첫 해외 촬영을 떠났다. 새터민의 귀염둥이 막내 한송이가 배우 최수종, 가수 이상민과 함께 왁자지껄한 뉴욕 여행에 나선 것. 18일 100회부터 스페셜 방송 4부작으로 ‘잘 살아보세 in 뉴욕’ 편이 시청자를 찾아간다. 방송을 앞두고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한 씨는 “북한에서 배웠던 게 얼마나 허망한 거짓말이었는지 직접 눈으로 본 ‘충격’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말했다. 18일 선보이는 ‘…뉴욕’은 송이가 탈북한 뒤 미국에 정착한 조지프 킴의 초청으로 뉴욕으로 가는 준비 과정부터 보여 준다. 여행이라곤 탈북 뒤 한국에 왔던 여정밖에 없던 송이는 비자 신청은 물론 짐 싸는 법까지 하나하나 최수종과 이상민의 도움을 받는다. 최 씨는 “생존을 위해 떠나는 게 아닌 진짜 자신을 위해 세상을 즐기는 여행을 떠나자”고 송이를 따뜻하게 위로한다. 하나 송이의 여행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친다. 경유지로 들른 디트로이트에서 입국 심사를 받다가 문제가 생겼기 때문. 미국 측은 북한에서 태어난 송이가 남한 국적인 점을 이상하게 여겨 몇 시간에 걸쳐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다행히 함께 간 오빠들과 스태프의 도움을 얻어 풀려났지만 마음엔 생채기가 났다. 한 씨는 “무섭기도 했지만 내가 살던 북한을 세상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뼈저리게 느껴 서글프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눈물도 났지만 어렵사리 당도한 송이의 눈앞에 펼쳐진 뉴욕은 처음 겪는 ‘별천지’였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모여든 맨해튼은 황홀하다 못해 어지러웠다. 하지만 타임스스퀘어가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호텔 방에서 송이는 우두커니 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데…. 그 설움의 이유는 방송에서 밝혀진다. ‘…뉴욕’은 예능이라기엔 뭔가 뭉클하고 짠한 인생 드라마에 가깝다. 그간 야무지고 쾌활했던 송이가 또 한 뼘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다. 10대부터 밀수로 끼니를 마련하는 극한의 삶을 살았지만 그는 이제 겨우 20대 초반. 살아가야 할 시간이 훨씬 많은 송이는 미국 여행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얻어 왔을까. 한 씨는 “북한이건 남한이건 지금까진 ‘생존’ 자체가 목표였다면 이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타인을 위한 봉사가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깨닫는 기회였다”고 귀띔했다. 2015년 3월 12일 첫 방송을 시작한 ‘잘 살아보세’는 채널A 토크쇼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인기를 얻은 새터민 미녀들이 남성 연예인들과 함께 남북한의 실생활을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 최수종 이상민은 물론 가수 김종민과 아나운서 김일중 등이 출연해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해 왔다. 새터민 출연자들이 선보인 북한식 ‘인조 고기’ 등은 방송 바깥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박세진 PD는 “단순히 낯선 남북한 생활 방식을 체험하는 수준을 넘어서 서로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는 ‘가족’으로 정서적 공감대를 넓혀 나간 점을 시청자들이 좋게 봐 주신 것 같다”고 자평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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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몰랐다” 외치는 국정농단 주역들 “Get away”

    미국 드라마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사진)을 봤다. 2005년 짐 캐리 주연 영화로도 국내에 선보였는데, 드라마가 훨씬 낫다. 부모를 잃은 보들레어가(家) 삼남매와 유산을 뺏으려는 올라프 백작의 공방이 얼개인데 찰떡처럼 쫄깃하다. 원작소설이 지닌 독특한 환상동화 기운이 한껏 넘실댄다. 이 작품엔 ‘은행가 포’란 캐릭터가 나온다. 보들레어가 유산관리자인데 답답하기 그지없다. 나쁜 놈은 아닌데, 애들도 안 믿는 올라프의 뻔한 속임수에 줄곧 당한다. 극단적 무능력의 화신. 심지어 삼남매조차 “심성은 착하지 않냐”며 자위한다. 그를 보노라면 국정 농단 관련자들이 떠오른다. 주야장천 “몰랐다”만 되뇌던 이들. 범죄를 감추려 뻔뻔스레 미숙자를 자처했다. 포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자기 안위와 권세에 몰두하느라 타인의 고초는 관심 밖이었겠지. 능력 없으면서 책임도 안 지는 건 최악의 탐욕이다. 이 드라마의 주제가는 ‘Look away(눈길을 돌려요).’ 그걸로 되겠나. ‘Get away(꺼져)’라 외치련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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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널A]‘착한 식당’ 넘어 이젠 ‘착한 농부’다

    “이젠 ‘착한 식당’을 넘어 ‘착한 농부’다.” 맛있고 건강한 식문화를 위해 달려온 채널A ‘먹거리 X파일’이 5주년을 맞아 또 한 번 도전에 뛰어든다. 이번엔 좋은 음식 재료를 생산하는 ‘착한 농부’ 편을 방송한다. 지금까지 ‘먹거리 X파일’이 엄선한 ‘착한 식당’은 별 다섯 개를 받은 곳이 73곳. 별 네 개를 받은 ‘준(準)착한 식당’(25곳)을 합쳐도 5년 동안 100곳이 안 된다. 그만큼 신중히 뽑았다. 그런 프로그램이 왜 ‘착한 농부’까지 영역을 넓히려는 걸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순서였습니다. 착한 식당은 다들 최고의 신선한 재료를 쓰려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그게 음식의 기본이니까요. 착한 농작물이란 무엇일까. 몇 해 전부터 고민하고 연구한 결실을 이제야 선보이는 겁니다.”(MC 김진 기자) 허나 목표가 높을수록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특히 농작물은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과정이 길어 시간과 비용이 몇 배로 투입됐다. 남상효 PD는 “단순히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다고 ‘착한 농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자신만의 철학을 가졌는지, 토종 종자를 지키려 노력하고 소비자까지 생각하는지 등 엄격한 기준으로 보니 더 품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12일 방영하는 ‘착한 농부’의 첫 번째 주제는 ‘착한 사과’다. 사과는 병충해에 워낙 약해 대부분의 농가에서 살균제 살충제 제초제 등을 많게는 1년에 20번가량 살포한다. ‘때깔’이 좋게 만들려고 착색제와 반사필름까지 사용한다. 백정현 작가는 “사과는 소비자가 색깔과 모양새를 워낙 중시해 농부들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강하다”며 “그래서 착한 사과 농장을 찾는 데 4개월 이상 걸렸다”고 전했다. 첫 ‘착한 농부’는 충북 단양군의 권구희 농부. 소백산 산골짜기에서 사과를 키우는 권 씨 일가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제초작업도 닭을 풀어 자연적으로 해결한다. 10여 년 전 귀농한 부모님에 이어 권 씨가 사과밭을 땀 흘려 가꾼 끝에 지난해부터 질 좋은 사과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권 씨는 “사과나무도 하나의 생명체다. 즐겁고 행복해야 좋은 열매도 맺지 않겠느냐”며 “누군가 믿어준다는 자체가 고맙고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다음 주엔 ‘착한 귤’을 선보인다. 남상효 PD는 “착한 농부를 뽑는다고 다른 농부는 나쁘단 뜻이 아니라 소비자도 다 함께 생각할 기회를 갖자는 취지”라며 “농작물 성격상 매주 방송하긴 어렵겠지만 제작진 모두 사명감을 갖고 뚝심 있게 밀고 가겠다”고 밝혔다. 착한 식당이 착한 농부를 지나 착한 세상으로 나아갈 때까지 그 맘 변치 않길. ‘먹거리 X파일’은 매주 일요일 오후 9시 40분 시청자를 찾아간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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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 인 컬처]“남친과 단둘이 있지 마라? 이게 성폭력 대처법이라니…”

    《 “으음, 여기가 어디지?” 에이전트26(유원모)은 겨우 실눈을 떴다. 오늘은 MIC(맨 인 컬처) 지령 아래 지구에 온 첫날. 우연히 요상한 책 ‘우리가 만드는 피임사전’을 발견한 뒤 조사에 나서려던 참인데. 뭔가 뒤통수가 찌릿하더니 깡그리 기억을 잃었다. 막 정신 차린 지금, 일단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야 깼군. 당신 정체가 뭐지? 왜 우리 ‘말씀자료’를 뒤적였나.” 갑작스레 들려오는 서늘한 목소리. 흐릿한 실루엣에 요원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성이라 부르는 종족 같은데. 지구방위군 같은 건가?’ “우린 결사조직 ‘연건대’다. 염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삐뚤어진 성(性)인식을 지닌 남성염색체가 틀림없군.” “무, 무슨 소리냐? 난 자웅동체라서….” 아차, 1급 기밀을 누설하다니. 잠깐. 아까 보던 책 집필진이 분명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줄여서 연건대? 아니 이 ‘노잼’ 작명은 뭐람. 근데 이들, 왜 점점 신문하는 척하며 강의를 하는 거지. 다단계 신종 수법인가. 요원은 점점 빠져드는 자신을 멈출 수가 없었다. 》 ○ 이성 친구와 단둘이 있지 마라? 지난해 말 출간한 ‘…피임사전’은 원래 서울시 여성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비매품으로 500부만 세상에 나올 예정이었다. 허나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으로 1000부를 늘려 찍었다. 그래도 주문이 쇄도해 곧 2쇄 발간을 검토 중이다. 이 수상한 사전은 왜 이리 인기일까. 연건대 조직원인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선진국은커녕 세계 꼴찌 수준인 한국 사회의 피임 인식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자평했다. “대표적 사례가 콘돔이지. 대다수 국내 남성, 심지어 일부 여성도 콘돔을 착용하면 성감이 떨어진다고 믿어. 벌써 그렇지 않단 조사 결과(2009년 미국 내셔널서베이)가 수두룩하게 나왔는데. 해외에선 꼬마도 아는 상식인데 말이야.” 요원은 발끈했다. 지구에 첨 왔다고 바보로 아나. 애들이 그걸 어떻게 아나. “당신, 어느 별에서 온 거지? 독일이나 네덜란드는 5세부터 성교육을 시켜. 당연히 콘돔·피임약 사용법도 가르치지. 물론 한국도 초등학교부터 교육과정은 있어. 그런데 내용이 ‘성폭력 대처법―이성 친구와 집에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2015년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 수준이거든. 캐나다에선 이런 비과학적인 시각을 가르치는 교사는 해임은 물론이고 법정에 서게 돼.”(이유림·인류학 전공) 뭐, 그렇다 치자. 그래도 ‘한국적 상황’이란 게 있으니까. 피임도 알아서들 잘하잖나. “진짜 외계인 맞나 본데? 해부를 할까 보다. 현재까지 나온 가장 안전한 피임법 가운데 하나가 경구피임약 복용이야. 헌데 한국은 이용률이 2.9%밖에 안 돼. 대다수가 약 먹다 영영 불임되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 하아, 복용을 중단한 뒤 1년 안에 79.4%가 임신해. 아무 상관 없단 소리야.”(윤 전문의)  ○ 21세기에 비닐봉지 콘돔 찾는 10대들 도대체 한국은 왜 이렇게 성교육 후진국이 됐을까. 실제로 포털사이트 검색어를 찾아보면 ‘랩 콘돔’ ‘비닐봉지 콘돔’이란 말까지 나온다. 콘돔 구매가 제한적인 청소년이 나름 찾아낸, 정말 웃음도 안 나오는 ‘자구책’이다. “이런 얘길 하면 ‘그럼 청소년 성생활을 권장하잔 소리냐’는 반발이 나와. 이런 편견이 문제를 키우는 건 인정하질 않고. 미국은 청소년에게 무료로 콘돔을 나눠주고, 성상담도 자유롭게 받게 해줘. 덕분에 낙태율이 역사상 최저로 떨어졌어. 한국은 높은 양반이 점잔 빼고 있는 동안 어린 여성들만 온몸으로 피해를 입고 있단 소리야.”(윤 전문의) 그때 갑자기, 우당탕 소리와 함께 뒷문을 박차고 들어온 에이전트2(정양환). “잠깐, 모두 손들어! 무기를 버리고 투항….” ‘몹시 난감하군.’(tvN ‘도깨비’ 대사) 구금된 줄 알았던 에이전트26이 함께 둘러앉아 다정히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는 이미 계면쩍은 웃음과 함께 가입신청서에 날인을 마친 상태였다. “아, 또 다른 포획감이군. 그럼 첨부터 다시 설명해 볼까. 당신, 정관수술 하면 정력이 약해질까 아닐까.” 젠장,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마취는 아파요.’ 이러다 MIC가 연건대 산하기관이 되는 건 아닌지. 하긴, 좋은 취지라면 뭔들 못 하겠냐만.(다음 회에 계속) 유원모 onemore@donga.com·정양환 기자}

    •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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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리엣, 건강 빨리 되찾아 꼭 무대로 돌아와요”

      ‘급성구획증후군’으로 응급수술을 받아 주변을 놀라게 했던 배우 문근영이 4일 추가 수술을 받은 뒤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문근영은 1일 갑작스러운 오른팔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급성구획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았다. 근육과 신경조직의 혈류가 급속하게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질환으로 주로 골절이나 근육 타박으로 인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응급수술 뒤에도 1, 2차례 추가 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근영이 주연을 맡았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4, 5일 대전 공연은 모두 취소됐다. 대구(18, 19일)와 안동(25, 26일) 등 지방 일정도 소화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소속사 나무엑터스는 “어떻게든 무대에 서겠다는 배우의 의지가 강하지만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관객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밝혔다.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쾌유를 비는 글이 많았다. “아프지 말고 얼른 퇴원해 웃는 모습을 보여 달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길 꼭 기다리겠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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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판 ‘로스트’ 기대감… 산만한 전개 아쉬움

     MBC 수목드라마 ‘미씽나인’은 여러모로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많은 작품이었다. 한국판 ‘로스트’(미국 ABC·2004∼2010년)라고나 할까. 비행기 추락사고로 무인도에 살아남은 이들의 숨겨진 진실. 누가 봐도 절박함이 넘치는 설정은 한국 드라마에선 찾아보기 힘든 도전이지 않나. 시청자로서 기대가 컸다. 허나 현재 흥행스코어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시청률이 4∼6%를 맴돌고 있다. 심지어 점점 떨어지는 추세. 동시간대 경쟁작인 SBS ‘사임당 빛의 일기’야 이영애 컴백이란 화제성에서 다소 밀린다 치자. KBS2 ‘김과장’마저 입소문을 타며 시청률이 12%대까지 치솟았다.  이 드라마가 ‘미씽(missing·행방불명된)’한 건 도대체 뭐였을까. 한마디로 시점이 너무 널뛰고 있다. 일단 여주인공 라봉희(백진희)가 살아 돌아온 현재와 생존자들의 무인도 생활이란 과거, 여기에 비행기 사고 이전의 관계와 봉희가 최면 등으로 보는 환상까지. 꽤나 정교하게 엮었지만 몹시도 분주하게 이야기 공간이 바뀌며 오히려 산만해져 버렸다. 더 아쉬운 건 분위기도 널뛰었단 점. 이런 미스터리 장르라면 대개 기대하는 건 긴장감 아닐까. 근데 초반에 콩트나 로맨스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러다 보니 점점 궁금증이 쌓이며 집중도를 키우는 게 아니라 갈수록 흐름이 늘어지고 짐작 가능해졌다.  물론 아직 기회는 있다. 다행히 ‘미씽나인’은 5회부터 그 나름대로 곁다리를 많이 쳐내고 강약 조절도 명확해졌다. 최약체로 내려앉았지만 그래서 더 시원하게 질러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미드 ‘로스트’처럼 뒤로 갈수록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길. 이래저래 무인도는 참 생존하기 어렵나 보다. ★★☆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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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엽 “좀 덜 닮은들 어때요… ‘닮았네 안 닮았네’ 수다 떠는 재미지”

    《“설날에 온갖 화제가 밥상머리에 오르내렸을 겁니다. 근데 어떨 땐 별 ‘시답지’ 않은 얘기에 폭소가 터지곤 하잖아요. 채널A ‘도플갱어쇼―별을 닮은 그대’는 그런 공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예능입니다. 얼마나 닮았나를 따지는 게 아니라 ‘닮았네, 안 닮았네’ 수다 떨며 시청자와 살가운 스킨십을 나누는 거죠.” 무협지 속 절대 고수가 이럴까. 24일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도플갱어쇼’ MC 신동엽은 마주할수록 우유에 젖은 카스텔라가 된 기분이었다. 장시간 녹화 뒤인지라 그의 목소리도 한참 갈라졌을 정도. 한데 슬금슬금 풀어내는 대화에 나도 모르게 스르륵 무장해제 당했다. 게다가 가벼운 농담으로 휩쓸린 상대의 맥을 탁탁 잡아주기까지. 역시 그는 괜히 ‘진행지왕(進行之王)’이 아니었다.》  ―‘연예인 닮은꼴 찾기’ 식상하지 않나. “뻔하다 여겼으면 MC를 맡지 않았을 거다. 방송은 편안함과 새로움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성공한다. 결국 닮은꼴 찾기란 익숙한 소재를 얼마나 재밌게 뒤틀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뜻에서 ‘도플갱어쇼’는 첫 삽을 잘 떴다.” ―치열한 경쟁(토요일 밤 11시)에도 시청률(2% 안팎)이 괜찮아 자평도 좋은 건가.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그게 평가 기준은 아니다. 방송은 현장의 ‘감’이란 게 있다. 특히 ‘도플갱어쇼’처럼 방청객 많은 예능은 더 중요하다. 솔직히 그리 닮지 않은 출연자도 상당했다. 그런데 그게 더 웃기고 분위기도 좋았다.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아서랄까. 이상하면 타박하고 놀리기도 하고. 원래 친구끼리도 면박 주며 웃고 떠드는 게 재밌지 않나.” ―현장에서 방청객도 하나하나 잘 챙기더라. “세상사가 그렇다. 사소한 친절도 언젠간 복으로 돌아온다. 내 입장에선 수많은 청중이지만 그들에겐 ‘신동엽’ 1인과의 특별한 경험이다. 어느 날 피곤해서 누군가에게 좀 냉랭했다 치자. 그 사람에겐 오랫동안 나쁜 기억으로 남는다. 게다가 방청객 분위기가 안 좋으면 TV 화면에 티가 난다.” ―다작인데 활기가 넘친다. 체력은 괜찮나. “요샌 몸 ‘걱정’ 좀 한다. 30대엔 숙취가 뭔 말인지 몰랐다. 몸이 회사 직원이라면 악덕 사장이었다고나 할까. 힘든 신호를 보내도 ‘불만 갖지 말고 일해’ 윽박질렀다. 지금은 직원 얘기에 귀 기울인다. 일주일에 두세 번 운동도 한다. 게다가 이렇게 녹화가 잘되면 몸은 지쳐도 마음이 개운하다.”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 “제작진이 안쓰러울 때가 있다. 고생하는 게 눈에 보이는 경우다. 스튜디오 촬영은 물론 출연자 섭외, 야외촬영, 몰래카메라까지…. 이렇게 공이 많이 들어가는 예능도 흔치 않다. 방송이 ‘때깔 좋게’ 나오니 기쁘면서도 한없이 미안하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이 정성껏 차려진 밥상을 행복하고 맛있게 먹는 게 아닐까.” ―PD가 보고 있어 너무 칭찬하는 거 아닌가. “그럼 시원하게 욕을 해줄까, 하하. 근데 진심으로 즐겁다. 어릴 땐 솔직히 돈 벌려 방송했다. 얼른 목돈 모아 딴 일 하고 싶었다. 지금은 ‘재밌어서’ 한다. 새로운 예능에 대한 목마름이 끊이지 않는다. ‘도플갱어쇼’에서도 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드디어 불만이 나오나. 뭔가. “불만이 아니라 기대하는 바다. 출연자 영역을 넓히고 싶다. 요즘 같은 시국이라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이들 닮은꼴이 나오면 어떨까. 시청자가 보며 분노도 할 수 있는…. 정치 이슈도 그렇게 풀어내면 훨씬 다채롭지 않겠나. 다만 아직 국내 정서상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긴 하다.” ―확실히 개그맨들은 ‘정치 코미디’ 욕구가 있나 보다. “어떤 의식이나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만큼 흥미로운 소재가 어디 있을까. 조선시대 광대가 왜 양반이나 임금 흉을 봤겠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농담만큼 통렬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도플갱어쇼’는 보여주고 개척할 땅이 무궁무진하다.”정양환기자 ray@donga.com}

    • 201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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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플갱어쇼’ MC 신동엽 “세상 시끄럽게 만든 주범들 닮은꼴은 어떨까”

    "설날에 가족이 모여 온갖 화제가 밥상머리에 오르내렸을 겁니다. 그런데 어떨 땐 예상치 못했던, 별 시답지 않은 꺼리에 폭소가 터지곤 하잖아요. 채널A '도플갱어쇼, 별을 닮은 그대'는 그런 공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예능입니다. 누구랑 얼마나 닮았나를 따지는 게 아니라 '닮았네 안 닮았네' 수다를 떨며 시청자와 살가운 스킨십을 나누는 거죠." 무협지 속 절대고수가 이럴까. 24일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도플갱어쇼' MC 신동엽은 마주할수록 자꾸 우유에 젖은 카스텔라가 된 기분이었다. 장시간 녹화에 모든 걸 쏟아낸 그는 목소리도 한참 갈라졌을 정도. 헌데 슬금슬금 풀어내는 대화에 빠져 저도 모르게 스르륵 무장해제 당해버렸다. 게다가 그때마다 가벼운 농담으로 휩쓸린 상대의 맥을 탁탁 잡아주기까지. 역시 신동엽은 괜히 '진행지왕(進行之王)'이 아니었다. ―채널A지만 좀 따져 묻겠다. '연예인 닮은꼴 찾기' 식상하지 않나. "뻔하다 여겼으면 아예 MC를 맡지 않았을 거다. 제작진도 기존 포맷의 답습은 원치 않았다. 방송은 편안함과 새로움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성패가 갈린다. 결국 닮은꼴 찾기란 익숙한 소재를 얼마나 재밌게 뒤틀 수 있느냐가 관권인 셈이다. 그런 뜻에서 '도플갱어쇼'는 첫 삽을 잘 떴다고 본다." ―치열한 경쟁시간대(토요일 밤 11시)에 괜찮은 시청률(2% 안팎)로 출발했기에 내리는 자평인가.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그게 평가의 기준은 절대 아니다. 오래 방송하다보면 현장의 '감'이란 게 있다. 특히 '도플갱어쇼'처럼 연예인패널에 방청객까지 많은 예능은 그게 중요하다. 솔직히 누가 봐도 그리 닮지 않은 출연자도 상당했다. 그런데 그게 더 웃음이 많이 터지고 분위기는 살았다.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면 타박도 하고 놀리기도 하고. 원래 친구들끼리도 '쟤 좀 이상하지 않니' 이러며 웃고 떠드는 게 재밌지 않나." ―실제로도 녹화현장에서 출연자는 물론 방청객까지 하나하나 잘 챙기더라. "세상사가 다 그렇겠지만 사소한 친절도 언젠간 다 복으로 돌아오더라. 내 입장에선 수많은 방청객이지만 그들에겐 '신동엽' 1명과의 특별한 경험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피곤해서 누군가에게 좀 냉랭하게 대했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은 오랫동안 그 기억이 나쁘게 남지 않겠나. 연예인이라 힘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누리는 것도 많으니까. 게다가 방청객 분위기 안 좋으면 그거 TV화면에도 다 티가 난다. 시청자들의 '감'도 굉장히 수준이 높다." ―엄청 다작인데도 활기가 넘친다. 체력은 괜찮나. "그래도 요샌 몸 '걱정'도 좀 한다. 30대엔 숙취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몸이 한 회사의 직원이라면 악덕사장이었다고나 할까. 뭔가 힘들다 호소해도 '불만 갖지 말고 일해' 윽박질렀다. 요즘은 직원 얘기에도 귀 기울이고 달래주려 노력한다. 일주일에 2,3번 운동도 하고. 나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 이렇게 녹화가 잘 되면 몸은 지쳐도 마음이 가뿐하다." ―MC가 방송이 즐겁다니 다행이다. 그래도 아쉬운 점도 있지 않겠나. "방송을 하다보면 제작진이 안쓰러울 때가 있다. 너무 고생하는 게 눈에 보이는 경우다. '도플갱어쇼'가 그렇다. 스튜디오촬영은 물론 출연자 섭외, 야외촬영, 몰래카메라에…. 이렇게 공이 많이 들어가는 예능은 흔치 않다. MC입장에선 방송이 '때깔 좋게' 나오니 기쁘지만 (제작진에) 한없이 미안하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이 정성껏 차려진 밥상을 최고로 행복하고 맛있게 먹는 게 아닐까." ―저쪽에서 PD가 보고 있다고 너무 칭찬하는 거 아닌가. "그럼 한번 시원하게 욕을 해줄까, 하하. 근데 진심으로 너무 즐겁다. 어릴 땐 솔직히 방송을 돈 벌려고 했다. 얼른 많이 벌어서 딴 일하고 싶었다. 근데 지금은 '재밌어서' 한다. 계속 새로운 예능에 대한 목마름이 끊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젠 재미없으면 안 한다. 다만 '도플갱어 쇼'에서도 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드디어 불만이 나오나. 뭔가, 뭔가. "불만이 아니라 기대하는 점이다. 닮은꼴 찾기 범주를 연예인에서 벗어나고 싶다. 예를 들어 요즘 같은 시국이라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주범들 닮은꼴이 나오면 어떨까. 시청자들이 보며 분노도 할 수 있는. 오히려 정치적인 이슈도 그렇게 풀어내면 훨씬 재밌지 않겠나. 다만 아직 정서상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지 걱정이긴 하다." ―확실히 개그맨들은 '정치 코미디'에 대한 갈증이 있나보다. "그게 무슨 의식이나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그만큼 재밌는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광대가 저작거리에서 왜 양반이나 임금 흉내를 내며 우스갯소리를 했겠나. 기존 권위에 얽매지 않는 농담만큼 통렬한 게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도플갱어 쇼'는 여전히 보여주고 개척할 소재가 무궁무진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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