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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6곳에 있는 사전투표소와 개표소, 본투표소 등에 무차별적으로 불법 카메라가 설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9일 뒤늦게 전국 모든 투·개표소의 불법 시설물 특별 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부실한 사전 관리로 인해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선관위의 투표소 관련 체크리스트에는 불법 카메라 점검에 관한 항목 자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긴급체포된 주범 한모 씨(49)가 2년 전 대선과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당시에도 사전투표소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온라인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던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커지고 있다. ● “단독 범행” 진술… 공범 검거 경찰에 따르면 한 씨는 남동구 장수·서창동, 서창2동, 계산1·2·4동 등 인천 지역 사전투표소로 지정된 행정복지센터 9곳, 경남 양산시 덕계동, 양주동, 물금읍, 평산동, 삼성동 일대 6곳의 사전투표소와 개표소 예정 장소, 본투표소 등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양산 지역 설치 장소 6곳에서 지정된 강당 등 출입문 앞에 있는 콘센트에 멀티탭과 카메라를 결합시키는 동일한 수법으로 카메라를 설치하고, 각도는 투표소 내부를 비추도록 했다”고 밝혔다. 어댑터로 위장된 카메라에 통신사 라벨이 붙어 있어 일반인들이 카메라라고 쉽게 단정하기 어려웠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한 씨와 같은 차량을 타고 이동한 공범 1명도 이날 경남 양산에서 임의동행했다. 경찰 조사 결과 한 씨는 70대 남성 1명과 차량으로 양산 일대 6곳 중 4곳을 함께 다니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도 행정안전부가 전국 지자체 긴급 점검을 통해 파악한 결과 서울과 부산, 경기, 울산 등 전국 26곳에서 불법 카메라가 설치된 것으로 나타나 배후 세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데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한 씨는 체포 당일부터 이날까지 이어진 조사 내내 “단독 범행”이라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공범은 없고 본인 혼자 저지른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26곳 중 인천과 양산 지역 15곳은 한 씨의 범행으로 잠정 결론짓고 나머지 11곳에 대한 범행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수법 및 카메라 기종을 봤을 때 동일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 “민주주의 정통성 훼손한 범죄” 한 씨는 평소 개표기 조작과 대리 투표 등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 온 극우 성향 유튜버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 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전투표율 조작 등 부정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2022년 대선과 지난해 10월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한 사전투표소에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씨는 당시 촬영한 영상을 토대로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영상을 확인해 혐의 입증이 가능한지 추가로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은 사전투표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직장인 이민정 씨(27)는 “불법 카메라가 나왔는데 안심하고 비밀투표를 할 수 있겠느냐”며 “특정 통신사 기기를 위장한 수법이라니 투표 당일에 보이는 모든 기기나 비품을 미심쩍게 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 범죄가 벌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승복할 수 없는 선거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근거 없는 의혹과 불신을 퍼뜨리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우리 사회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암적인 행위”라며 “확증편향에 빠진 일부 극단적 세력이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선거 제도 등 근본을 흔드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양산·울산=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사전투표소. 동아일보 취재진이 이날 방문한 주민센터는 사전투표소로 공지된 2층 다목적회의실까지 올라가는 데 제지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2층 회의실의 철문 한쪽이 활짝 열려 있어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다음 달 5, 6일 치러지는 사전투표 당일에 쓰일 ‘2투표소’라고 적힌 종이 등 각종 선거 관련 문서가 놓여 있었다. 4·10총선 사전투표가 7일 앞으로 다가온 이날 서울과 인천, 부산, 경남 양산, 울산 등 전국 총 26곳의 사전투표소와 개표소, 본투표소 등에서 불법 카메라가 발견됐다. 하지만 이날도 여전히 사전투표소가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이 일었지만 투표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날 서울 서대문구, 마포구, 영등포구 일대 사전투표소 5곳을 점검한 결과 4곳은 사전투표소 입구까지 아무런 통제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신촌주민센터 1곳만 ‘사전투표소 장소’라고 안내문을 써 붙이고 외부 철문을 잠가 접근을 막고 있었다. 유권자들은 사전투표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영등포주민센터 앞에서 만난 주민 한모 씨(72)는 “사전투표소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전투표를 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주민센터 등 관공서가 있는 건물의 경우 투표설비가 설치되기 전에는 각 지자체에 관리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는 사전투표 전날 투표소를 설치할 때 건물의 관리자와 선관위가 함께 시설 전반을 살펴본다”고 했다. 반면 지자체는 “선관위에서 사전에 투표소를 어떻게 관리해야 한다는 명확한 지침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사전투표소에 대한 명확한 관리 책임이 현행법상 명시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사전투표소가 설치될 장소에 대해 관리 주체와 선관위가 미리 협의를 하고 일반에 공고를 하도록 돼 있을 뿐 관리 책임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없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전투표소 관리 부실이 선관위와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행정주의적 발상에서 빚어진 사태라고 지적했다. 전학선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거는 선관위 본연의 사무인데도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길 때가 많았다”며 “선거와 관련한 업무는 선관위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29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주민센터 3층 다목적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사전투표소 장소로 안내돼 있는 이곳엔 현장을 지키는 인원은 한 명도 없었다. 전날 선관위로부터 불법 카메라 점검 등 투표소 관리에 대한 지침이 내려왔지만, 외부인 출입에 대한 통제는 없었다. 사전투표소 내부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있었지만 건물 밖에서 문 앞까지 접근해 손잡이를 돌려봐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다음달 5, 6일 실시되는 4·10총선 사전투표가 8일 앞으로 다가온 이날 서울과 인천, 부산, 경남 양산, 울산 등 전국 총 18곳의 사전투표소와 개표소, 본투표소 등에서 불법 카메라가 발견됐다. 하지만 이날도 여전히 사전투표소가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이 일었지만 투표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 긴급 점검해 본 5곳 중 4곳 ‘뻥 뚫려’동아일보 취재팀이 이날 서울 서대문구, 마포구, 영등포구 일대 사전투표소 5곳을 점검한 결과 4곳은 사전투표소 입구까지 아무런 통제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신촌주민센터 1곳만 ‘사전투표소 장소’라고 안내문을 써붙이고 외부 철문을 잠가 접근을 막고 있었다. 사전투표소로 지정된 서울 마포구 대흥동주민센터 지하 1층에 있는 공간은 문이 잠겨있었지만 유리문 너머로 투표안내문과 선거공보 발송봉투 등 선거 관련 물품을 밖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유권자들은 사전투표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영등포주민센터 앞에서 만난 주민 한모 씨(72)는 “사전투표소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전투표를 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전투표소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하다 28일 경찰에 붙잡힌 극우 성향 유튜버 한모 씨(49)는 2020년 21대 총선부터 양산 지역 내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한 씨는 이달 11일 양산 주민센터 4곳에서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20일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인천 계양구 선관위에 방문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모습을 직접 올리기까지 했다. 그는 선관위 관계자에게 “투표소 안에 왜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며 안 되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 서로 책임 미루는 선관위·지자체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주민센터 등 관공서가 있는 건물의 경우 투표설비가 설치되기 전에는 각 지자체에 관리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는 사전투표 전날 투표소를 설치할 때 건물의 관리자와 선관위가 함께 시설 전반을 살펴본다”며 “이번 같은 경우는 지자체가 관리하는 건물에 불법 카메라가 발견이 돼서 전수조사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지자체는 “선관위에서 사전에 투표소를 어떻게 관리해야 한다는 명확한 지침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각 지자체와 지역선관위가 관리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도 정확한 상황을 언론 보도를 보고 파악하는 중”이라고 했다. 사전투표소에 대한 명확한 관리 책임이 현행법상 명시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사전투표소가 설치될 장소에 대해 관리주체와 선관위가 미리 협의를 하고 일반에 공고를 하도록 돼 있을 뿐 관리 책임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없다. 사전투표 관련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대선의 사전투표 당시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선거 사무원들이 소쿠리나 쇼핑백에 담아 옮겨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사전투표 부정선거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선관위는 뒤늦게 개표과정에 수검표 절차를 추가하고 사전·우편투표함 보관장소의 폐쇄회로(CC)TV를 시·도 선관위 청사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통해 24시간 공개해 신뢰성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전문가들은 “뒷북 대처를 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관위가 지금부터라도 주도적으로 사전투표소 주변을 24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게 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차라리 회사까지 뛰어갈까 고민 중이에요.” 28일 오전 8시경 서울 강남구 역삼역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황모 씨(38)는 “평소보다 20분 일찍 나왔는데도 소용이 없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오전 4시경부터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이 12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출근길 대혼란이 빚어졌다. 파업 시작 11시간 만에 노사 협상이 극적 타결되면서 오후 3시 10분경부터 전 노선이 정상운행에 들어가 퇴근길 대란은 막았지만 반나절 가까이 시민들의 불편이 이어졌다. ● “파업한 줄도 몰랐어요” 울상 전날 노사는 마라톤 회의를 벌였지만 임금 인상률 격차를 좁히지 못해 전체 시내버스 7382대 중 97.6%에 해당하는 7210대가 운행을 멈췄다. 2012년 부분 파업 당시엔 약 20분간 운행이 중단됐지만, 이번엔 11시간 동안 사실상 버스 운행이 모두 멈춰서면서 혼란이 커졌다. 특히 첫차 운행 시간에 임박해 파업에 돌입해 파업 사실을 몰랐던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병원 방문을 위해 역삼역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72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정모 씨(36)는 “시내버스 운행 안내판에 ‘차고지’에 있다고 표시돼 있어서 파업한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당장 30분 뒤 진료인데 택시가 잡히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일부 지하철역에서는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 출구마다 80∼90명이 길게 줄지어 서기도 했다. 9호선 당산역에서 만난 이모 씨(41)는 “평소 이 시간대는 여유로운 편이었는데 만원 열차에 발도 못 넣었다”며 “출근 시간이 빠듯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부터 낮 12시까지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이용객 수는 3만3292명을 기록해 전일(2만8139명) 대비 18.1% 증가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역삼역 이용객은 12만4250명으로 전일(11만5173명) 대비 7.6% 증가했다. 서울에 비까지 내리면서 택시를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역삼역 일대에서 영업 중이던 택시기사 심모 씨는 “기사 경력 10년 만에 이렇게 오전 콜을 많이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수십 초도 안 돼 택시 호출이 밀려와 감당하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광화문 도심 일대에선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출근하려는 직장인도 많았다. 파업 사실을 알지 못했던 미국인 관광객 샘 씨(21)는 “10분 넘게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누가 다가와 버스가 오지 않는다고 알려줬다”고 했다. 고등학교는 이날 3월 모의고사를 실시해 피해를 본 학생들도 있었다. 특히 경기·인천 등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시민의 불편이 컸다. 서울시 시내버스 파업 노선 중 경기도 진출입 노선은 서울 인접 고양시 등 13개 시 100개 노선으로, 버스 대수로는 2047대에 달한다. 9401번 버스로 경기 성남시 판교에서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박모 씨(32)는 “평소 3∼5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가 20분을 넘게 기다려도 오지 않아 의아해 알아보니 이 버스가 서울 시내 버스라는 걸 알게 돼 서둘러 택시로 출근했다”고 말했다. ● 임금 인상률 4.48% 극적 합의 서울 시내버스 노사는 이날 오후 3시 10분경 임금 인상률 4.48%, 명절 수당 65만 원에 합의했다.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면서 물밑 협상 끝에 노사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사 합의 직후 브리핑에서 “노사 간 합의를 이끌어낸 임금 인상안은 대구 등 다른 지역과 동일한 인상률 4.48%”라고 설명했다. 노사는 명절 수당 65만 원을 신설하는 내용도 합의했다. 이에 따라 버스준공영제를 실시하는 서울시가 민간 버스회사에 지원해야 하는 추가 예산은 연간 약 6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준공영제란 버스 운행은 각 운수회사가 맡되 운행계획, 운송원가 및 실적관리 등은 지자체가 관리하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민 여러분들께 불편을 드리게 돼서 죄송스럽다”며 “앞으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대중교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차라리 회사까지 뛰어갈까 고민 중이에요.”28일 오전 8시경 서울 강남구 역삼역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황모 씨(38)는 “평소보다 20분 일찍 나왔는데도 소용이 없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새벽 4시경부터 서울 시내버스 노동조합이 12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출근길 대혼란이 빚어졌다. 파업 시작 11시간 만에 노사 협상이 극적 타결되면서 오후 3시 10분경부터 전노선이 정상운행에 들어가 퇴근길 대란은 막았지만 반나절 가까이 시민들의 불편이 이어졌다. ● “파업한 줄도 몰랐어요” 울상전날 노사는 마라톤 회의를 벌였지만 임금 인상률 격차를 좁히지 못해 전체 시내버스 7382대 중 97.6%에 해당하는 7210대가 운행을 멈췄다. 2012년 부분 파업 당시엔 약 20분간 운행이 중단됐지만, 이번엔 11시간 동안 사실상 버스 운행이 모두 멈춰서면서 혼란이 커졌다. 특히 첫 차 운행 시간에 임박해 파업에 돌입해 파업 사실을 몰랐던 시민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날 병원 방문을 위해 역삼역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72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정모 씨(36)는 “시내버스 운행 안내판에 ‘차고지’에 있다고 표시돼 있어서 파업한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당장 30분 뒤 진료인데 택시가 잡히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일부 지하철 역에서는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 출구마다 80~90명이 길게 줄지어 서기도 했다. 9호선 당산역에서 만난 이모 씨(41)는 “평소 이 시간대는 여유로운 편이었는데 만원 열차에 발도 못 넣었다”며 “출근 시간이 빠듯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부터 낮 12시까지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이용객 수는 3만3292명을 기록해 전일(2만8139명) 대비 18.1% 증가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역삼역 이용객은 12만4250명으로 전일(11만 5173명) 대비 7.6% 증가했다.서울에 비까지 내리면서 택시를 잡는것도 쉽지 않았다. 역삼역 일대에서 영업 중이던 택시기사 심모 씨는 “기사 경력 10년 만에 이렇게 오전 콜을 많이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수십 초도 안돼 택시 호출이 밀려와 감당하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광화문 도심 일대에선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출근하려는 직장인들도 많았다. 파업 사실을 알지 못했던 미국인 관광객 샘 씨(21)는 “10분 넘게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누가 다가와 버스가 오지 않는다고 알려줬다”고 했다. 일부 고등학교는 이날 3월 모의고사를 실시해 피해를 본 학생들도 있었다. 특히 경기·인천 등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시민의 불편이 컸다. 서울시 시내버스 파업 노선 중 경기도 진출입 노선은 서울 인접 고양시 등 13개 시 100개 노선으로, 버스 대수로는 2047대에 달한다. 9401번 버스로 판교에서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박모 씨(32)는 “평소 3~5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가 20분을 넘게 기다려도 오지 않아 의아해 알아보니 이 버스가 서울 시내 버스라는 걸 알게 돼 서둘러 택시로 출근했다”고 말했다. ● 임금 인상률 4.48% 극적 합의서울 시내버스 노사는 이날 오후 3시 10분경 임금 인상률 4.48%, 명절수당 65만 원에 합의했다.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면서 물밑 협상 끝에 노사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사 합의 직후 브리핑에서 “지하철은 파업을 하더라도 일정 비율은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강제 조항이 있지만 버스는 달라 피해가 컸다”며 “노사 간 합의를 이끌어 낸 임금 인상안은 대구 등 다른 지역과 동일한 인상률 4.48%”라고 설명했다. 노사는 명절 수당 65만 원을 신설하는 내용도 합의했다. 이에 따라 버스준공영제를 실시하는 서울시가 민간 버스회사에 지원해야 하는 추가 예산은 연간 약 600억 원으로 추산된다.준공영제란 버스 운행은 각 운수회사가 맡되 운행계획, 운송원가 및 실적관리 등은 지자체가 관리하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민 여러분들께 불편을 드리게 돼서 죄송스럽다”며 “앞으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대중교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일부 4·10총선 출마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몇몇 후보는 지역구 내 오피스텔을 여러 채 보유한 채 월세를 받거나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로 퇴직한 지 닷새 만에 세종시 땅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취재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수도권(서울·인천·경기) 지역구 출마 후보 312명 가운데 10억 원 이상 재산을 신고한 후보 184명의 부동산을 분석한 결과다. 이 중 34명은 보유 재산이 50억 원 이상이었다.● “청년 주거 부담 줄이겠다”더니 월세 장사 더불어민주당 박민규 후보(서울 관악갑)는 출마 지역구인 봉천동에 오피스텔 11채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11채 중 9채는 전용면적이 26.6㎡였고, 나머지 2채는 각각 26.51㎡, 25.56㎡였다. 재산 신고서에 총 8억 원 상당의 임대보증금이 15건 채무로 기재된 점으로 미뤄 최근까지도 임대 사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26일 취재팀이 박 후보가 보유한 오피스텔을 방문해 보니 같은 건물의 비슷한 전용면적(26.45㎡)의 경우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85만 원, 관리비 13만 원에 계약이 이뤄지고 있었다. 주목할 점은 박 후보가 출마를 선언한 이후인 올 1월부터 거듭 20, 30대를 대상으로 한 사회적 주택 도입 등 맞춤형 주거 정책 도입을 약속했다는 점이다. 그는 26일 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관악 청년들을 만나 보니 월세 부담을 완화해 달라는 요청들이 있다”며 “단발성 정책보단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개발할 것에 대해 의견도 구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박 후보의 해명을 듣기 위해 이날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 기재부 퇴직 닷새 후 세종시 땅 매입 국민의힘 박수민 후보(서울 강남을)는 2018년 8월 31일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기재부 국장급)로 공직에서 퇴직했다. 박 후보는 퇴직 닷새 후인 2018년 9월 5일 세종시 장군면 대교리 일대 임야와 대지, 도로, 공원 등 토지 14건을 20여 명과 공동 매입했다. 총 9719.96㎡(약 2940평) 규모다. 박 후보가 매입한 땅은 정부세종청사로부터 약 4km 떨어진 곳이다. 박 후보는 “아는 공무원들과 함께 나중에 실거주할 목적으로 매입한 전원주택 용지이고, 실제로 몇 명은 현재 (그 땅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다”며 “이미 국정감사 등에서 지적됐지만 별문제가 없어서 넘어간 사안”이라고 말했다. 새로운미래 이기한 후보(경기 용인정)는 서울 서초구 아파트를 보유한 상태로 13억 원을 대출받아 강남구 아파트를 한 채 더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국대 법대 교수 시절인 2019년 5월 15일 강남구 소재 본인 소유 상가를 담보로 돈을 빌려 닷새 후인 같은 달 20일 강제경매를 통해 매물로 나온 압구정동 아파트를 사들인 것. 이 후보 측은 이날 다주택 보유 경위 등에 대한 본보의 질의에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후보자 직계존속은 신고 거부 가능” 제도적 허점 보완해야 국회의원의 부동산 투기 논란은 국회마다 반복되는 실정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투기 논란이 발생한 2021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여야 양당의 요청으로 각 당 의원에 대한 부동산 전수조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이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돼 사퇴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국회의원 출마자는 후보 등록 시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본인, 배우자는 물론이고 직계 존비속 가족에 대한 재산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국회의원과 다르게 피부양자가 아닐 경우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고지 거부가 가능하다. 신고한 내역에 대한 별도의 증빙자료도 요구되지 않는 등 기준이 느슨하다. 이에 재산 신고 과정을 일원화해 재산 미신고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명한 재산 공개를 위해 직계 존비속 재산 명세까지 다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후보와 의원 간) 제출 부서가 나뉘어 있고 소관 법령도 다르니, 일부러 누락한 정보를 당선 이후 싣는 경우도 발생한다”며 “후보가 제출한 재산 관련 자료를 선관위가 바로 국회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휴대전화와 작별한 지 30분. 쉴 새 없이 울려대던 업무 연락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도 잠시, 일종의 ‘금단 증상’이 찾아왔다. 분명히 휴대전화를 끄고 상자 깊숙한 곳에 넣어놨는데 어디선가 ‘카톡!’ 하는 알림이 온 듯한 환청이 느껴졌다. 진동이 울린 줄 알고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빼기도 했다. 18일 전자기기 사용을 중단하고 ‘도파민 단식’에 나선 기자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됐다. 도파민은 쾌락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문제는 ‘질 나쁜’ 도파민에 빠져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짧은 영상 위주의 쇼트폼 콘텐츠를 시청할 때가 대표적이다. 손쉽게 분노와 기쁨을 느끼며 도파민이 빠르게 분출되고, 이를 중단하면 우울과 불안이 밀려오면서 큰 자극을 찾게 되는 악순환이다. 휘발성 자극을 모두 끊고 그 시간을 독서나 산책으로 채우면 몸과 마음엔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본보 기자가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 동안 도파민 단식에 나선 건 이런 이유였다.스마트폰 끈 지 10분 만에 ‘카톡’ 환청… 익숙해지니 ‘물멍’도 즐거워 스마트폰-커피-술 멀리하기 도전… 무료함에 독서-청소 등 할일 찾아짧은 영상으로 얻는 ‘즉각 보상’… 우울-불안 쫓으려 더 큰 자극 불러중고생 32% “하루 8시간 스마트폰”… 최근 ‘전자기기 금지’ 카페 생기고중독 청소년 대상 캠프도 등장… “자극 멀리하기, 짧게 해도 효과” 18일 오전 7시. 기자는 휴대전화와 태블릿 PC, 노트북 등 모든 전자기기의 전원을 껐다. 커피와 술, 탄산음료, 패스트푸드 등 자극적인 식단도 멀리하기로 다짐했다. 특히 휴대전화의 ‘전원 끄기’ 버튼을 누를 때가 생경했다. 입사 이후 줄곧 언제 캡(사건팀장)이 전화할지 몰라 단 1초도 휴대전화를 꺼둔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체험 취재’라는 명분으로 휴대전화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으니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이날 오후 7시까지 12시간 이어질 기자의 ‘도파민 단식’은 이렇게 시작됐다.● 생경했던 고요, 익숙해지자 ‘벽돌 책’도 술술 오전 7시 10분. 자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강아지들 보고 싶네….’ 퇴근하고 나면 2시간씩 강아지가 뛰어노는 동영상을 보며 ‘동물 멍’을 때린 습관도 떠올랐다. 전원이 꺼진 휴대전화를 잠시 꺼내 손에 쥐어 보기도 했다. 한 유통업체에 따르면 올 1월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의 유튜브 사용 시간은 한 달 평균 40시간으로 5년 전보다 19시간 늘었다. 교육부의 ‘2022년 청소년 건강 행태 조사’에서 중고교생 31.6%는 주말에 하루 8시간 넘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고 답했다. 업무 연락이나 인터넷 강의를 위해서라며 우리는 그간 스마트폰에 너무 많은 곁을 내주고 살아온 건 아닐까. 오전 7시 40분. 허전함을 덜기 위해 자취방 안을 빙빙 돌며 걷자, 평소에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에 이렇게 얼룩이 많았나? 명함은 언제 이렇게 쌓여 있었지?’ 기자는 이곳 원룸에 입주한 지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손걸레를 빨아 창문을 청소했다. 또 수습기자 때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명함도 직종별로 분류했다. 총 132장이었다. 오전 9시 30분. 짧은 동영상에 밀려 손을 대지 않았던 일도 다시 시도할 수 있었다. 고전(古典) 읽기였다. 지난해 사놓고도 909쪽의 분량 탓에 포기했던 에밀 루트비히의 책 ‘나폴레옹’을 책장에서 꺼냈다. 평소 10쪽도 못 읽고 휴대전화로 시선이 옮겨가곤 했다. 이날 기자는 책을 펼친 지 2시간 만에 124쪽을 읽었다.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뿌듯함이 밀려왔다. 오전 11시. 출출해졌다. 전자기기만큼 끊기 힘든 게 ‘고자극’ 음식이었다. 평소 습관처럼 찾았던 과자와 탄산음료가 생각났다. 칼칼한 컵라면 국물도 간절했다. 하지만 신중하게 고른 이날의 점심 메뉴는 맨밥과 건더기 없는 레토르트 사골곰탕이었다. 유튜브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없이 ‘혼밥’을 하려니 어색했다. 하지만 곰탕 맛에 집중하니 뜻밖에 슴슴하니 깊은 맛이 느껴졌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에 따르면 TV를 보면서 식사하면 음식의 맛이나 양에 신경을 덜 쓰는 탓에 비만할 위험이 40% 증가한다고 한다. 식사 중 스마트폰 사용은 오죽할까. 얼마 전 등록한 피아노 교습소에서 받아 온 악보도 꺼내 봤다. 평소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던 음표가 어쩐지 더 생생하게 보였다. 악보 속 히사이시 조의 ‘언제나 몇 번이라도’가 스마트폰 음악 애플리케이션(앱) 없이도 재생되는 듯했다.● 멍하니 한강 바라보니 잊고 살았던 친구 떠올라 오후 2시 30분. 오랜만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한강공원으로 산책에 나섰다. 평소엔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다 보면 어느덧 잠잘 시간이 돼 외출을 포기할 때가 많았다. 휴대전화도, 이어폰도 없이 한강공원을 산책한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 산책하는 13명 중 9명은 노란 산수유나 새순이 올라온 나무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자취방에서 챙겨 간 캠핑 의자에 앉아 멍하니 강물을 바라봤다. 햇살이 부딪혀 반짝이는 강물을 하염없이 보고 있으려니 놓쳤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특히 취업 이후 ‘축하한다’며 저녁을 사준 고마운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잘 있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답례는커녕 연락도 제대로 못 했네.’ 기자는 도파민 단식 체험이 끝나면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오후 5시. 배달 앱을 열지 못하는 탓에 저녁도 직접 만들어 먹어야 했다. 마트에서 사 온 식재료로 간단한 요리를 해서 배를 채우고 설거지와 빨래 등 간단한 집안일도 마쳤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7시. 이제 도파민 단식을 마치고 휴대전화를 다시 꺼낼 시간이 됐다. 어쩐지 아쉬웠다. 의미 없는 습관과 유혹을 인내한 대가로 집 청소, 건강식, 산책까지 마친 하루와 작별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온전한 나를 마주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든 작은 휴대전화 화면에서 한 발짝 멀어지면 가능한 일이었다.● ‘디톡스 경험’ 찾는 현대인들 최근엔 1, 2시간이라도 도파민 단식을 체험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전자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공간도 인기를 얻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서울 강남구 ‘욕망의 북카페’다. 이곳은 지난해 5월부터 내부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도파민 단식을 통해 책 읽기나 각자 해야 할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19일 오후 2시경 이 카페에선 손님 5명이 책을 읽고 있었다. 누구도 휴대전화를 보거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고 있었다. 이들의 휴대전화는 모두 계산대 앞에 놓인 작은 철제 박스에 보관돼 있었다. 카페 안에 들어오기 전에 휴대전화를 맡겨 두는 것이 이 카페의 원칙이다. 초창기에는 항의나 반발도 컸다고 한다. 평일 기준 방문객 수가 하루 20명으로 대폭 감소하기도 했다. 디지털 디톡스(해독)가 유행하면서 지금은 방문객이 다시 느는 추세다. 평일에는 80명 넘게, 주말에는 그 두 배를 넘어 200명 가까이 방문하기도 한다. 손님들은 “짧은 시간이라도 온전히 집중하고 싶다”며 방문 이유를 밝혔다. 한 달에 한 번 이 카페를 방문한다는 김영수 씨(43)는 “다른 북카페는 주변 이용객이 전부 동영상을 보고 있어 덩달아 집중이 안 된다”며 “이곳에서는 책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권민경 씨(27)는 “2시간만이라도 집중해서 책을 읽기 위해 왔다”고 전했다. 3개월째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 중인 권 씨는 “짧은 길이의 자극적인 영상 등을 보면 시종 불안하고 마음이 복잡해 일부러 하루 7시간 이상 휴대전화를 보지 않고 있다”며 “그러고 나면 책이나 영화 등을 볼 때 집중력이 상당히 높아진 것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도파민 단식, 짧게라도 꾸준히 시도하면 효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지난해 3월 발표한 ‘2022년 스마트폰 실태 조사’에 따르면 만 3세∼69세 스마트폰 이용자 중 23.6%가 과의존 위험군이었다. 이 중 만 10세∼19세 청소년 이용자의 과의존 위험군 비율은 40.1%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최근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중독된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설립 청소년 기숙형 복합 치유 재활기관인 국립청소년디딤센터는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치유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과의존 청소년들은 캠프를 통해 정신의학 전문의와 전문 상담사가 함께하는 상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숲치료·놀이치료 등 자연과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외부활동도 제공된다. 전문가들은 영상 시청에 중독될 경우 우울 증세 등이 심각해질 수 있으며, 나이가 어릴수록 영향이 더 클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단기적인 디지털 디톡스도 안정감이나 우울감 해소에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중독 치료 전문가인 애나 렘키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기쁨을 느끼기 위해 스스로의 ‘보상’에 중독되면 뇌는 행복을 느낄 수 없어진다”며 “(도파민 단식을) 한 달은 꾸준히 시도하도록 환경과 규칙을 바꿔 보라”고 권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유튜브 ‘쇼츠’처럼 시선을 잡아 두기 위한 고자극 영상에 과잉 노출되면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단기적인 과잉 자극은 도파민 분비 체계 등 기분 조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쇼츠가 주는 자극이 100이라고 한다면, 자극이 사라질 경우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0’이 아닌 ‘―100’ 수준”이라며 “100만큼의 자극을 10개의 작은 자극으로 분산해 대체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도파민 단식일정 기간 전자기기나 커피, 술 등 자극적인 요소를 끊고 건강한 도파민 분비 패턴을 회복시키는 생활 양식. 쇼트폼 콘텐츠 등 자극을 끊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대체할 독서, 산책 등 건전한 자극을 충분히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국가 지정 문화재(사적 143호)인 서울 종로구 성균관 담장이 낙서로 훼손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2일 종로구는 성균관의 문묘 쪽 외곽 담장에서 올 1월 낙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종로구에 따르면 담장엔 알파벳 ‘A’와 ‘P’, ‘버리지 마세요’로 추정되는 흐릿한 글씨가 붉은색과 검은색 스프레이로 쓰여 있었다. 발견됐을 땐 낙서된 지 이미 수개월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였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10대 남녀가 경복궁 담장(사적 117호)을 스프레이로 훼손하는 사건 이후 관내 문화재 66건의 전수조사를 각 자치구에 요청했다. 종로구는 이 조사 과정에서 성균관 담장의 낙서를 발견했다. 종로구는 훼손 부위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인근 순찰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서울시에 복구 예산 배정을 신청한 상태다. 다만 범인을 쫓기는 어려워 보인다. 종로구 관계자는 “낙서의 상태로 봐서 오래전 사건으로 추정되고 인근에 폐쇄회로(CC)TV가 없어 누가 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선현들의 제사와 유학 교육을 담당하던 곳으로, 그중 문묘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었다.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짧은 동영상 등에 의존하는 ‘쇼트폼 중독’이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대두되면서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선 청소년의 쇼트폼 영상 시청을 제한하거나 교내 전자기기 사용을 규제하는 방안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 일부 주(州)는 쇼트폼 영상이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주요 소셜미디어를 대상으로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뉴욕주는 소셜미디어 기업이 만 18세 미만 사용자에게 강력한 중독성을 지닌 게시물을 알고리즘을 통해 노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뉴욕시는 지난달 14일(현지 시간) 청소년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틱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스냅챗 등 주요 소셜미디어 기업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시 측은 “담배나 총기처럼 소셜미디어 역시 공중보건 위험 요소에 해당된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영국 교육당국은 지난달 전국 학교에 ‘휴대전화 원천금지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학생이 휴대전화를 소지할 경우 교사는 처벌하거나 학생의 기기를 뺏을 수도 있다. 네덜란드 역시 올해부터 학교 내 휴대전화, 태블릿PC, 스마트워치 등 모바일 기기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핀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도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소셜미디어 자체에서 청소년 사용자의 시청 시간을 제한하는 경우도 등장했다. 소셜미디어 틱톡은 지난해 3월 만 18세 미만 사용자의 이용 시간을 하루 60분으로 제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모가 자체적으로 자녀의 이용 시간을 요일별로 설정할 수 있게 하는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라고 틱톡 측은 덧붙였다. 국내에서도 청소년 정신건강을 위해 관련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쇼트폼 영상에 과잉 노출된 청소년들에게는 집중력 저하나 상호 소통 능력 부족 등 사회성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국내 콘텐츠뿐 아니라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극적 콘텐츠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게 규제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권기종 동국대 불교학과 명예교수(84)가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712~770)의 시를 엮은 고서 ‘찬주분류두시(纂註分類杜詩)’ 10책을 모교인 동국대에 기증했다. 서울 중구 동국대에서 20일 열린 기증식에 부인과 함께 참석한 권 명예교수는 “가문 대대로 귀중히 보관해 온 고서”라며 “귀중한 것인 만큼 모교에 기증하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기증된 책은 1485년 국가출판기관인 교서관에서 금속활자 갑진자로 인쇄한 25권 10책의 금속활자본이다. 찬주분류두시 10권 모두 훼손되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권 명예교수의 기증본이 국내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감정평가액은 5억 원 정도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학문 간 경계를 넘은 융합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64)이 21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 SK미래관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경계를 넘어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연구와 교육 분야에서 ‘틀’을 깨는 방향으로 운영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고려대는 내년부터 ‘자유전공학부대학’을 신설해 이른바 ‘무전공 선발’을 415명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보건·의료 및 사범 계열 등을 제외하고 모든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유형1’(227명)과 단과대 등 광역단위 내에서 전공을 택하는 ‘유형2’(188명)로 선발한다. 김 총장은 “무전공 선발은 학생들이 여러 과목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장점과 비인기학과의 보존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며 “각 단과대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비인기 학과가 많은) 문과대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정부가 20일 의대 정원 증원 배분을 발표하면서 서울지역 대학은 1명도 배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지방 의대 중심으로 증원한 것은 일리 있는 결정”이라고 했다. 다만 “지방에선 10명 이상의 학생이 하나의 커대버(해부용 시신)를 두고 실습해야 한다”며 “지방 의대에 (증원된) 의사를 육성할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고려대는 올해 치러질 2025학년도 입시부터 학교폭력 징계 이력이 있는 지원자에겐 최대 20점 감점의 불이익을 줄 예정이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중 가장 낮은 수위인 1호부터 형사처벌 기록에 준하는 8, 9호까지 구간별로 감점 점수를 세분해 정시와 수시에 모두 적용한다. 김 총장은 “고려대는 이타심이 강한 인재들을 길러왔다”며 “학교폭력으로 심각한 징계를 받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재상과 다르다”고 말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서울에 사는 중학교 3학년 학부모들이 자녀를 부산대 의대에 보내고 싶다며 ‘부산 유학’에 대해 전화로 물어오기 시작했다.” 21일 부산의 한 학원장은 지역인재전형으로 부산 지역 의대에 가려는 서울 학생, 학부모의 문의가 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내년도부터 부산대 의대는 정원이 125명에서 200명으로, 동아대 의대는 49명에서 100명으로 늘어난다. 이 학원장은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이 한 권역으로 묶이기 때문에 울산의 전국단위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 서울 학생들의 지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번이 의대 적기” 지방 들썩 정부가 전날(20일) 2000명 늘어난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대학별 숫자를 발표하자 교육 현장이 술렁이고 있다. 특히 지방은 정원 200명의 ‘빅7 의대’(충북대, 충남대, 전북대, 전남대, 경북대, 부산대, 경상국립대)가 생겨난 영향으로 지역 사회까지 들썩였다. 지역 학생을 뽑는 지역인재선발 문의도 덩달아 늘고 있다. 이 전형은 해당 의대가 있는 지역에서 ‘고교 입학부터 고교 졸업까지’ 모두 마쳐야 지원 조건이 된다. 현 중3이 입시를 치르는 2028학년도부터는 조건이 강화돼 ‘중학교 졸업’까지 그 지역해서 해야 한다. 입시업체 유웨이는 전국 수능 등수로 치면 정시 기준으로 기존에는 1200등까지 의대 합격선이었는데 2025학년도에는 1700∼1900등까지 합격권에 들 것으로 내다봤다. 경북 문경시의 한 고교 교사는 “학부모들의 의대 진학 문의 전화가 들어오고 있다”며 “이과생은 수능 최저등급만 잘 맞추면 의대 입학이 어렵지 않겠다는 기대감이 있다”고 했다. 인천의 한 고3 교사는 “우리 학교는 2020년 이후 의대 합격자가 없었는데 이번에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공계 최상위권 입시를 준비하던 학생들이 의대로 틀었다”고 했다. 종로학원은 31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모든 권역에서 의대 설명회를 연다. 중학교, 초등학교에도 여파가 미쳤다. 경기의 한 중학교 교사는 “19일 학부모 총회에서 의대 관련 질문이 폭주했다”고 했다. 충북대 근처에 사는 이모 씨(51)는 “초5 큰아들의 장래 희망이 의사인데 충북대 의대 정원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지금부터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1일 한 온라인 입시 커뮤니티에는 본인을 반도체 업계에 종사하는 회사원이라면서 충남권 의대에 지원할 수 있을지 문의하는 글도 올라왔다.● 지방 상권은 “호재… 인구 늘 것” 지역 부동산과 상권도 의대 증원을 ‘호재’로 받아들였다. 충북대 인근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문모 씨(49)는 “의대 증원 발표 뒤 전화나 방문 상담이 늘었다”고 했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이번 증원 발표로 수도권에서 지방 유학을 원하는 부동산 실수요자들의 문의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이 76명에서 200명으로 늘어난 경상국립대 인근도 비슷한 분위기다. 경남 진주시 가좌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고태규 씨(33)는 “의대 정원이 늘어나 인구가 유입되면 대학 주변 상권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했다. 진주시 충무공동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장미 씨(34)는 “지방 유학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여 대학가 주변뿐 아니라 진주 지역 전체 부동산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진주=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집단 사직한 전공의에게 현장 복귀를 설득했다는 이유로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학병원 교수의 사진과 실명을 올리며 공개 저격하는 글이 올라와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최근 의사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 등에는 사직 전공의 중 일부가 현장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진 특정 대학병원의 소속 교수 사진과 실명을 담은 글이 게재됐다. 해당 게시글에는 이들 교수가 전공의들의 현장 복귀를 종용했다는 내용과 함께 “이들(교수)을 기억하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담겨 있었다고 한다. 다만 게시글에 나온 대학병원들에서 실제 사직 전공의 복귀가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해당 글을 인지한 보건복지부는 19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사실관계 확인 및 법리적 검토를 거쳐 조만간 정식 수사 전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명예훼손, 모욕 등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디스태프에는 앞서 전국 70여 개 수련병원별로 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들의 소속 과, 과별 잔류 전공의 수로 추정되는 정보가 상세히 적힌 글이 올라와 경찰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19일 오전 10시 40분경 서울 영등포구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 어르신 30여 명이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점심을 타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이들이 받아 간 5구 식판 중 채워진 칸은 떡국과 배추김치 등 두 칸뿐. 전날 한 후원 업체가 소비기한이 임박한 떡을 기부해 겨우 한 끼를 넘길 수 있었다. 급식소 냉장고 안에는 지난해 사둔 강낭콩과 김치만 덩그러니 들어 있었다. 박경옥 토마스의 집 총무는 “장 보러 갈 때마다 숨이 콱콱 막힐 정도로 물가가 무섭게 올라서 하루하루 마음을 졸인다”고 말했다. 강동구 무료급식소 ‘행복한세상복지센터’도 요즘 고기나 달걀 반찬은 거의 내지 못하고 있다. 추가 배식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센터 관계자는 “식용유와 김치 등 대체하기 어려운 식재료마저 값이 2배로 뛰었다”라며 “특히 올 1월 이후로 식판이 많이 휑해졌다”고 했다.● 물가 못 따라가는 무료급식 지원지난달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식료품 가격에 무료 급식소와 푸드뱅크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원이나 민간 후원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탓에 이용자 수를 제한하거나 식단을 축소하며 버티고 있지만, 이마저 한계에 다다랐다는 호소가 곳곳에서 나온다.광주에서 34년째 무료급식을 해온 ‘사랑의 식당’은 몰리는 이용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최근 들어 기초생활 수급 증명서를 확인하고 밥을 나눠주고 있다. 광주시가 관련 예산을 지난해 47억 원에서 올해 48억 원으로 늘렸지만, 하루 무료급식 인원은 4166명에서 4019명으로 줄었다. 김정숙 사랑의 식당 자원봉사팀장은 “고추 한 봉지가 1년 새 2000원에서 9000원으로 올랐다. 밥을 못 드린다는 말씀에 급식소 앞에서 눈물을 터뜨린 할머니도 있었다”고 했다.19일 17개 시도에 따르면 올해 저소득층 어르신 무료급식 사업 ‘경로식당’의 전국 평균 지원단가는 4070.6원이었다.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김밥 가격(3323원)보다 조금 높았다. 특히 서울과 광주, 경북(이상 4000원), 부산(3500원) 등 12개 시도는 경로식당 단가를 전년 수준으로 동결했다. 인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당시 한시적으로 단가를 4000원으로 올렸으나 지난해부터 3500원으로 다시 낮췄다. 2년 새 식품 생활 물가가 12.4%, 신선식품 물가가 24.1% 각각 오른 걸 고려하면 체감 지원단가는 삭감된 셈이다.이는 2005년 경로식당 사업에 국비 지원이 끊겨 각 시도의 재정에 의존하게 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3월 경로식당 지원 단가도 아동 급식처럼 물가와 연동하는 노인복지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주성 송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 인구 비율이 높고 재정 여건이 어려운 지역일수록 부실 급식에 따른 영양 악화는 의료비 등 더 큰 지출로 이어질 수 있다”며 “물가 상승률에 맞게 급식 단가를 조정하는 법적 근거를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푸드뱅크 이용자 늘었는데 식재료는 6% 줄어저소득층에게 식재료를 나눠주는 푸드뱅크와 푸드마켓에선 지역에 따라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1인당 지원 품목이 줄어드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사회복지협의회 푸드뱅크사업단에 따르면 지난해 푸드뱅크 모집액은 2022년 대비 3.3% 늘었지만 모집한 식재료의 수량은 6.1% 줄었다. 물가가 급등한 탓에 같은 후원액으로 갖출 수 있는 식재료 양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15일 오후 2시경 서울의 한 푸드마켓에는 1kg짜리 설탕이 진열돼 있고, 그 아래 ‘1인당 2봉지씩 가져갈 수 있다’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 지난해만 해도 이곳에선 1kg 설탕을 5봉지씩 가져갈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고물가 여파에 설탕이나 고추장, 과일 등 물가에 민감한 품목들이 모두 ‘구매 제한’이 더 엄격해진 셈이다.고물가와 더불어 저소득층이 증가해 실제 복지 시스템을 활용하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종로푸드뱅크 기준 올해 이용자 수는 1300명으로, 2년 전 1000명 대비 약 30% 증가했다. 신규 이용 신청자 역시 2022년 368명에서 지난해 609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푸드뱅크 사용 기한에도 제한이 생겼다. 이날 푸드뱅크에서 만난 한 90대 노인은 “다음 달 (푸드마켓) 카드를 반납하고 나면 그다음엔 2년을 기다리라고 한다”라며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미안해서 못 팔겠다” 상인도 한숨32년 5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과일 가격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뚝 끊기자 상인들은 밤늦게까지 가게 문을 열며 매출 회복 총력에 나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신선식품지수 ‘신선과실’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41.2% 상승했다.15일 오후 10시경 공식 영업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난 가운데도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한 과일가게가 외로이 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30년간 이곳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한 전태산 씨(65)는 “매출이 반 이상 줄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밤늦게까지 가게를 열어 놓고 있다”며 “과일값이 너무 올라 손님한테 미안해서 못 팔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도매시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명절 대목’이 한참 지나갔는데도 과일 가격이 더 올라 손님이 줄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오전 10시경 송파구 가락시장 과일가게는 손님이 없어 불이 반쯤 꺼진 채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10년째 과일가게를 운영 중인 과일 도매상인 김모 씨(52)는 “지난해 10kg에 4만 원 하던 사과 가격이 올해는 8만 원을 훌쩍 넘겼다”고 했다. 싼 가격을 찾아 도매시장에 온 소비자들도 예상과 달리 턱없이 높은 액수에 한숨지었다. 이날 이곳을 찾은 김옥라 씨(79)는 “집 앞 가게는 도저히 과일을 살 수가 없어 도매시장에 왔는데도 여전히 사기 두려운 수준”이라고 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77)가 운영하는 종교시설에 소속된 여신도 여러 명이 허 대표를 성추행 혐의로 집단 고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허 대표는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18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초 허 대표가 운영하는 종교시설 ‘하늘궁’의 여성 신도 22명은 “허 대표가 ‘에너지 치유’라는 의식을 명목으로 추행을 일삼았다”는 취지로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경기북부경찰청은 고소인들을 차례대로 불러 조사해 왔고, 조만간 허 대표를 성추행 혐의의 피고소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고소인들은 허 대표가 ‘아픈 곳이 낫고 일이 잘 풀린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여신도들의 신체를 접촉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의식을 받으려면 10만 원가량을 내야 하는데, 회당 50∼100명의 인원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 대표는 이날 본보 기자가 이번 고소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묻자 “나는 지금 (총선) 후보다. 지금 전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이후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전공의 집단행동 불참자 명단을 작성해 유포하라’는 지침이 담긴 대한의사협회(의협) 내부 문서로 추정되는 글이 온라인에서 확산돼 경찰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정부는 “인격적 폭력”이라며 해당 내용이 사실일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의협 측은 “조작된 문서로 명백한 허위”라며 게시자를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8일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 등에 따르면 전날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자신을 의협 관계자라고 밝힌 작성자는 “의협 내부 문서 폭로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해당 문건에는 의협 로고 및 대한의사협회장 직인과 함께 전공의 집단행동 불참 인원 명단을 작성 및 유포하라는 지침이 담겨 있다. ‘불참 인원들에 대한 압박이 목적’ ‘명단 작성과 유포에 대한 자세한 방법은 텔레그램을 통해 개별 고지’ 등의 구체적 내용도 문건에 포함돼 있었다.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현장에 돌아올 생각을 하기는커녕 동료들의 복귀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는 이런 행태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입장문을 내고 “문건에 사용된 의협 회장의 직인은 위조된 것임을 확인했다”며 “글 게시자를 사문서 위조, 허위사실 유포,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할 것”이라고 했다. 박명하 의협 비대위 조직강화위원장은 “진짜 (의협) 내부 문건에는 수신이나 결제 칸이 있는데, 유포된 문건에는 전혀 없다”며 조작된 문서라고 강조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고려대 재학생 박준배 씨(26·서어서문학과 4학년·사진)가 금융 투자 수익과 인턴 월급 등을 모아 모교에 1억 원을 기부했다. 재학생 기부론 고려대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이다. 6일 고려대는 전날 성북구 고려대 본관에서 ‘박준배 학생 인문관 건립 기금 기부식’을 열고 박 씨에게 기부증서를 전달했다. 2018년 입학한 박 씨는 “학교에서 많이 성장했다. 졸업 전에 재학생 신분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며 “미래의 후배들이 새로 지어질 인문관에서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 씨는 경제 공부를 하며 얻은 투자 수익금과 직장 월급을 모아 기부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는 입대 후 주식 등 금융 투자 공부를 시작했고, 제대 후엔 고려대 가치투자연구회에 들어가 동아리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학업과 회사 인턴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총장이기 이전에 고려대의 구성원으로서 재학생의 기부에 느끼는 바가 많다”며 “재학생과 미래 고려대생들이 쾌적한 공간에서 학업을 해 훌륭한 인재로 거듭나기 위해 고려대도 함께 노력하겠다”고 감사를 표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정부가 병원을 이탈한 후 복귀 시한까지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7000여 명을 대상으로 예고한 대로 4일 면허정지 및 고발 절차에 착수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에 따른 처분을 망설임 없이 이행할 것”이라며 “미복귀한 전공의는 개인의 진로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수련병원 221곳에 대해 순차적으로 현장점검을 진행한 후 미복귀 사실을 확인하는 즉시 면허정지 사전통보를 할 방침이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4일 먼저 주요 수련병원 50곳을 대상으로 현장점검을 한 후 5일 사전통보할 것”이라며 “면허정지 처분은 불가역적”이라고 했다. 다만 지금이라도 복귀한 경우에는 “정상을 참작하겠다”(조 장관)고 했다. 한편 연휴 기간이었던 3일까지 복귀한 전공의는 이탈한 전공의 8945명(지난달 29일 오전 11시 기준)의 10%가량인 1000여 명에 불과했다. 여기에 4일부터 임용될 예정이었던 인턴 대부분과 전임의(펠로) 상당수도 임용을 거부하고 병원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아일보 취재 결과 빅5 병원(서울아산, 서울대, 삼성서울, 세브란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전임의(1126명) 절반가량이 이탈한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지난주까지는 수술을 절반으로 줄였는데 이번 주부터는 그 이하로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4일 대구 경북대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대구를 비롯한 지방에서 의대 증원의 혜택을 더 확실히 누리도록 하겠다”며 지방 의대 정원 대폭 증원을 약속했다. 교육부는 이날 의대 40곳의 증원 희망 신청 접수를 마감했는데 대학들은 정원 2500명 안팎을 늘려 달라고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빅5 전임의도 절반 이탈 병원… “교수들도 버티기 이젠 한계” [의료공백 혼란]인턴예정자도 대부분 임용포기… 정부, 미복귀 전공의 현장조사 진행“면허 정지땐 전문의 취득 1년 지연”경찰, 의협 전현 간부 6, 7일 조사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집단으로 병원을 이탈한 가운데 이달 초부터 근무를 시작하기로 했던 전임의(펠로) 및 인턴 예정자까지 대거 임용을 포기하면서 ‘의료대란’이 가시화되고 있다. ● ‘빅5’ 전임의 절반 이탈 4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병원(삼성서울, 서울대, 서울성모, 서울아산, 세브란스병원)에서 4일부터 근무할 예정이었던 전임의 1126명 중 이날 정상 근무한 인원은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의는 전공의가 전문 자격을 취득한 후 근무하는 의사로 빅5 전체 의사의 16%가량을 차지한다. 숙련도가 높아 빅5 의사의 39%를 차지하는 전공의 대부분이 병원을 떠난 후 교수와 일선을 지탱해 왔다. 빅5 병원의 한 관계자는 “레지던트를 마치고 같은 병원에서 전임의로 근무하려던 의사들이 후배 전공의와 재학생 뒤를 따라 이탈한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비수도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충남 천안시에 있는 단국대병원에선 이달부터 일하기로 했던 전임의 10명 중 5명만 계약했다. 대전성모병원도 전임의 7명 중 절반 이상이 계약을 거부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남은 교수들과 일부 전임의만으로 버티기에는 이제 임계점에 이른 것 같다”고 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전임의) 재계약률이 저조한 건 사실”이라며 “거의 한 명도 재계약을 하지 않은 기관도 있어 전임의들이 계약하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연세대 “정원 150명인데 3명만 계약” 의대 졸업 후 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할 예정이었던 인턴 예정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윤동섭 연세대 총장은 4일 기자간담회에서 “세브란스병원 인턴 정원이 150명인데 이달 1일부로 계약서를 작성한 건 3명뿐”이라고 했다. 다른 빅5 병원도 사정은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대병원에선 56명, 충남대병원에선 60명의 인턴 예정자가 이날 병원으로 출근하지 않았다. 충남대병원 신규 인턴 60명, 건양대병원 30명, 을지대병원 27명, 대전성모병원 25명도 모두 임용을 포기했다.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와 인턴 이탈까지 이어지면서 빅5 병원들은 현재 절반가량 진행 중인 수술을 더 줄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또 중환자 진료마저 거절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응급실에서 내과계 중환자실(MICU) 환자를 더는 수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고, 세브란스병원은 심근경색과 뇌출혈 등 응급환자라도 부분적으로만 수용하고 있다. 칠곡경북대병원 응급실은 정형외과, 성형외과, 피부과 등의 응급진료가 중단됐다.● 정부 “의사 면허정지 땐 전문의 취득 1년 늦어져”현재까지 의료 현장에 복귀한 전공의는 1000명가량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근무지 이탈자(8945명)의 10% 남짓이다. 정부는 4∼6일 수련병원 221곳을 점검해 최종적으로 미복귀자를 파악한 후 면허정지 및 고발에 착수할 방침이다. 박 차관은 “3개월 이상 (의사) 면허정지를 받으면 전공의 수련 기간을 충족하지 못해 전문의 자격 취득이 1년 이상 늦춰지고, 향후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대한의사협회(의협) 전현직 회장 등 5명을 6, 7일 불러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기로 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3일 해외에서 귀국한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의 휴대전화와 차량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3일 열린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일부 의사들이 제약회사 영업사원에게 집회 참석을 강요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불법행위가 발견되면 즉시 수사할 것”이라고 했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영업사원 동원이) 사실이라면 의협이 먼저 나서 회원을 징계하고 당사자에게 사과할 것”이라고 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대전=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경찰은 전공의 집단 사직 등 의료 대란 사태를 주도한 혐의(의료법 위반 등)를 받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전·현직 간부 5명을 6, 7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김택우 의협 비상대책위원장 등 5명에게 6, 7일 출석해 조사받을 것을 통보했다. 해외 체류 중이던 노환규 전 의협 회장에 대해선 그가 3일 귀국하자마자 휴대전화와 차량 등을 압수수색했다.이번 수사는 지난달 27일 보건복지부가 김 위원장 등 5명을 경찰에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경찰은 이들이 전공의의 집단 사직과 관련해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배포하고 단체행동을 지지하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등 투쟁 의식을 고취시키는 방법으로 의료 대란을 초래하도록 방조했다고 보고 있다.경찰은 특히 의협 전·현직 간부들이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전공의의 집단 사직을 독려하는 취지의 글을 올린 부분도 업무방해 방조 등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SNS 글에 대한 수사는 과잉’이라는 의협 측 반발과 관련해 4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자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취지다.3일 진행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일부 의사가 제약회사 영업사원에게 집회 참석을 강요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경찰은 제보 등을 통해 불법행위가 발견될 경우 즉시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전했다. 우 본부장은 “아직까지 확인된 바는 없다”면서도 “리베이트 제공 등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첩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개별 전공의에 대해선 고발장 접수 이후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한편 한 의사 전용 커뮤니티에 전공의에게 사직 전 병원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글에 대해 수사 중인 경찰은 이날 “(작성자) e메일을 특정해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실제 작성자의 기본 인적 사항 등을 확인해 추적 중”이라고 전했다. 의사 단체행동 관련해 들어온 112 신고는 4일 기준 총 6건이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3일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 등 약 1만2000명(경찰 추산·주최 측 추산 약 4만 명)이 서울 도심 집회를 열고 ‘2000명 증원 백지화’를 요구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어떤 상황이 와도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 대응 기조를 밝혔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전국 시도 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상경했고 개원의와 전공의, 의대생 및 그 가족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의사를 영원한 의료노예로 만들기 위해 국민 눈을 속이고 있다”며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태워 공양한 ‘등신불’처럼 정부의 억압과 굴레에 항거해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 총리는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등돌리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며 “(전공의들이) 불법적으로 의료 현장을 비우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정부 의무를 망설임 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대부분은 연휴가 끝나는 3일까지도 복귀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4일부터 면허정지 및 고발 절차를 진행한다. 대형병원들은 전공의 이탈에 이어 전공의·전임의 예정자들이 4일부터 출근하지 않을 경우 의료대란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김 위원장 등 의협 현직 간부 4명을 출국금지 조치했다고 밝혔다.의협 “집회규모, 의약분업 때와 비슷”… 정부 “4일부터 선처 없다” 의협 “정부, 조건없는 대화 나서야”‘제약사 직원 참석 강요’ 글 논란엔, 의협 “요구 안해”… 경찰 “책임 물을것”정부 “법과 원칙 따라 절차 밟을 것”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옆 도로. 영등포역 방향 5개 차로를 메운 경찰 추산 약 1만2000명(주최 측 추산 약 4만 명)의 의사와 의대생 등은 ‘준비 안 된 의대증원 의학교육 훼손된다’ 등의 손팻말을 든 채 구호를 외쳤다. 전국 시도의사회 및 의대 깃발도 휘날렸다. 시위 행렬은 마포대교 방향으로 400m가량 이어졌다. 대한의사협회(의협) 관계자는 “역대 최대 집회였던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 여의도 시위와 비슷한 규모로 모였다”고 했다.● 역대급 의사 집회… 제약회사 직원 동원 의혹도 연단에 선 김택우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의 무모한 정책 추진이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며 “정부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를 포함한 비대위와 (2000명 증원을 포함해)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정부의 본심은 실질적 의료 개혁이 아니라 눈앞의 총선을 위한 것”이라며 “처우를 개선하고 소송 위험성을 줄여주면 전문의 수천 명이 자신의 (필수의료) 전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참석자 중에는 가족 단위 참석자도 적지 않았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대생과 전공의 학부모들이 많이 왔다”고 전했다. 집회에 앞서 ‘일부 의사들이 제약회사 영업사원에게 집회 참석을 강요했다’는 내용의 글이 여럿 온라인에 올라와 논란이 됐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전날 회원사에 “의대 증원 반대 집회에 제약회사 영업사원 참석을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3일 “(집회 참석 강요가 있었다면) 엄정하고 단호하게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형법상 강요죄와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국민 건강과 생명이 걸린 문제에서 어떤 불법적 행위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주 위원장은 “비대위나 시도의사회에서 제약회사 직원 동원을 요구한 적은 결코 없다”면서도 “일반 회원들의 일탈이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날 집회로 여의도 일대에선 극심한 교통 정체가 빚어졌다.● “3일까지 돌아오면 선처”… 복귀는 극소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일 방송에 출연해 “오늘(3일)까지 복귀하는 전공의에 대해 최대한 선처할 예정”이라며 “그러지 않으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도 “(2000명 증원 방침에 대해) 정부 스탠스가 변한 건 전혀 없다”며 “복귀하지 않은 분에 대해선 불가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전공의 대다수는 3일 밤까지 복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빅5 병원(서울아산 서울대 삼성서울 세브란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추가 복귀 전공의는 거의 없다”고 했다. 부산과 대전, 광주, 경남 등에서도 연휴 기간 돌아온 전공의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경기 안양시 한림대성심병원에선 사직서를 냈던 50명 중 일부가 복귀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병원들은 임용 포기 의사를 밝힌 전임의 예정자들이 4일부터 출근하지 않을 경우 의료대란이 벌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빅5 병원 의사의 16%가량이 전임의다. 대형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들에게 미안하다며 망설이면서도 본인들까지 빠지면 병원이 마비된다는 걸 알기에 마음을 돌리는 전임의도 일부 있다”고 전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