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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그룹 스트레이키즈(사진)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여섯 번째 정상에 올랐다. 이는 앞서 빌보드200 정상을 여섯 차례 밟은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같은 기록이다. 미국 빌보드는 21일(현지 시간) 차트 예고 기사에서 스트레이 키즈의 새 앨범 ‘합(合·HOP)’이 음반 판매량 18만7000장을 기록하며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스트레이 키즈는 이로써 2022년 발매한 ‘ODDINARY(오디너리)’와 ‘MAXIDENT(맥시던트)’ 등에 이어 이번 ‘합’까지 여섯 번째 빌보드200 1위를 차지했다. 빌보드에 따르면 빌보드200에 첫 진입한 이후 앨범 여섯 개가 연속으로 1위를 기록한 사례는 차트 69년 역사상 스트레이키즈가 처음이다. 스트레이 키즈는 새 앨범에서 스트레이 키즈의 약자 ‘SKZ’에 힙합을 합성한 ‘SKZHOP HIPTAPE(스키즈합 힙테이프)’라는 형식과 장르를 내세웠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Walkin On Water(워킨 온 워터)’를 비롯해 여덟 멤버의 솔로곡까지 총 12곡이 수록됐다. 지금까지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한 K팝 가수는방탄소년단과 스트레이 키즈(각 6회)를 비롯해 에이티즈(2회), 슈퍼엠, 블랙핑크,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뉴진스, 트와이스 등 여덟 팀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1783년 파리 조약을 통해 미국의 독립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메리카 대륙의 혼란은 이어졌다. 독립이라는 기쁨은 잠시, 당시 13개 주가 수도 유치를 위해 치열한 내부 경쟁을 벌인 것. 결국 무역 중심지였던 뉴욕에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업무를 보기 시작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 수도’였다. 뉴욕엔 각종 연방 기관이 들어설 부지가 부족했다. 대통령조차 타인의 사저를 빌려 사용했고, 심지어 호텔에 머물기도 했다. 그러던 1890년 11월 미국 의회와 존 애덤스 대통령이 포토맥 강변에 정착했고, 워싱턴DC가 미합중국의 수도로 공표된다. 미국이 독립한 지 7년 만이었다. 세로로 길게 늘어선 당시 13개 주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어느 곳에도 접근하기 좋다는 이점 등이 고려된 결과였다. 각 나라의 수도가 정해진 배경을 살펴보며 그 나라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책.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처럼 고대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역뿐 아니라 캐나다처럼 토론토와 몬트리올 같은 대도시가 아닌 오타와에 수도를 정한 ‘의외’의 배경도 짚어본다. 세계사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수도들은 서쪽으로 옮겨가는 중이라는 것이 저자의 시각. 중동 지방에서 그리스, 로마로, 다시 파리에서 런던으로 이동한 힘의 중심은 이제 워싱턴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면 태평양 넘어 동아시아 수도의 시대가 올 것인가. 수도의 역사로 세계사를 꿰뚫을 수 있다는 점이 새삼 흥미롭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깜깜한 새벽 사이렌 소리. 갑작스러운 폭격으로 동네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아이들은 영문도 제대로 모른 채 엄마와 피란길에 오릅니다. 아빠는 빼고요. ‘다음 기차로 온다’던 아빠는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엄마와 아이들은 보호소를 옮겨 다니며 더 멀리, 더 낯선 곳으로 이동합니다. 어느덧 크리스마스. 엄마가 작은 트리를 구해 왔습니다. 아이는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빠를 만나게 해주세요.”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은 그 일상이 깨지거나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되기 마련이다. 온 가족이 트리 앞에 둘러앉아 케이크를 먹고, 수십 번은 봤을 듯한 ‘나 홀로 집에’를 다시 보며 미소 짓는 것.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일상이 사실 그토록 소중한 것일 수 있다. 전쟁으로 뿔뿔이 흩어진 곰돌이 가족의 위기는 사실 어느 누군가의 현실이다. 아이와 함께 우리 가족, 그리고 멀리 전쟁의 포화 속에 있을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책.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달그락 달그락.” 13일 오후 8시경 서울 중구 한국의집 민속극장. 고요한 극장 안에 설치된 23개의 스피커를 통해 나무와 나무가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국가무형유산 매듭장 전승교육사인 박선경 씨(60)가 가는 실을 꼬아 끈목(여러 올의 실로 짠 끈)을 만드는 ‘다회치기’를 하며 낸 소리였다. 관객들은 8개의 실패와 다회틀이 부딪히면서 나는 맑은 소리는 물론이고 현대 무용을 하듯 리드미컬하게 실을 꼬는 박 씨의 몸짓에 빠져들었다. 반복되는 소리와 몸짓으로 심리적 쾌감과 안정을 주는 자율감각쾌락반응(ASMR)이 공연으로 구현된 것이다.국가유산진흥원은 13, 14일 ‘국가유산 ASMR 콘서트―소리로 담아낸 국가유산’이란 콘서트를 처음 선보였다. 매듭장 전승교육사인 박 씨를 비롯해 경기무형유산 지화장 보유자인 석용 스님(57), 충북무형유산 증평 필장 보유자인 유필무 씨(63) 등 세 명이 작업 과정에서 내는 소리를 ‘감상’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 생소한 ‘국가무형유산 ASMR 공연’이 가능했던 것은 온라인의 열기 때문이었다. 2019년부터 시작된 유튜브 국가유산채널의 ‘K-ASMR’ 시리즈의 누적 조회수는 현재까지 약 2913만 회. 특별한 대사 없이 소리에 집중한 작업 시연과 어우러진 영상미가 ASMR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오프라인 공연까지 이루진 것. 이번 공연에선 지화장(37만 회), 매듭장(43만 회), 필장(70만 회) 등 조회수가 높은 무형 유산들이 먼저 무대에 올랐다.오로지 ‘소리’에 집중된 공연이었다. 석용 스님은 종이를 가위로 사각사각 자르는 소리와 종이 주름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잘 들리게 하기 위해 무대 위 마이크에 종이를 바짝 갖다 댔다. 유필무 필장 보유자가 체로 붓털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쓱쓱 싹싹’ 소리는 관객들의 귀를 간지럽혔다. 주최 측은 무엇보다도 듣는 사람을 중심으로 360도 방향으로 소리를 전달하는 ‘공간 음향’을 적용해 관객들이 ASMR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집중도를 높이려 관객 수도 회당 50명으로 제한했다. 고요한 가운데 특정 소리가 반복되자 눈을 감는 사람들이 늘었다. 간혹 꾸벅꾸벅 조는 관객들도 보였다. 공연은 90분간 진행됐는데, 소리 시연과 대담, K-ASMR 영상 시청 등으로 구성됐다. 관객 정로라 씨(33)는 “매듭장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보게 됐는데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소리라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었다”며 “공연으로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집중도 더 잘됐다”고 말했다. 장인들도 색다른 공연이 신선하다고 입을 모았다. 매듭장 전승교육사 박 씨는 “그동안 했던 전시나 체험 교육과 달리 관객들 앞에서 작업 과정을 선보이려니 떨렸다”면서도 “좋은 공연을 보고 단 몇 명이라도 전통공예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석용 스님도 “공연을 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무형유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며 “무형유산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 씨는 “국가유산의 명맥이 끊기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고 했다. 국가유산진흥원은 추가 공연 여부를 검토 중이다. 김한태 국가유산진흥원 헤리티지미디어팀장은 “ASMR을 국가유산에 다양하게 접목해 젊은 세대들이 유산을 더욱 친숙하게 여길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노벨 문학상 수상자 초청 낭독회에 참석한 소설가 한강이 국내 비상 계엄 사태에 대해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12일(현지 시간)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연극극장에서 열린 ‘노벨 낭독의 밤’ 행사에 참석한 한강은 현지 번역가 유키코 듀크가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출국해야 했으니 얼마나 끔찍했느냐”고 묻자 “그렇게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답했다. 한강은 비상계엄 사태 이틀 만인 5일 노벨 문학상 시상식 등 노벨위크 참여를 위해 스웨덴으로 출국했다. 그는 “노벨 기간에 너무 많은 일들을 해야 하고 제대로 뉴스를 보지 못해서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면서도 “이번 일로 시민들이 보여준 진심과 용기 때문에 많이 감동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강은 또 “광주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는 제 또래나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시위 현장에) 많이 가셨다”며 “그대로 두면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알기에 모두가 걱정과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위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제 책을 읽고 있는 분들의 사진을 봤다.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고도 했다. 한강은 이날 낭독회를 끝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 관련 스톡홀름에서의 공식 일정을 모두 마쳤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학계도 역사도 텍스트, 예술, 문학 담론의 중심에 흑인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1993년 비백인 여성으로 처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흑인 작가 토니 모리슨(1931∼2019)은 1990년 미국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문단에서 ‘유령’ 같은 존재였던 흑인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흑인들은 이름 없이 늘 ‘깜둥이’, ‘노예’, ‘흑인’이라고 설명돼야 했다. 언제나 수식어가 필요했던 것”이라며 미국 문학에서 흑인에 대한 이해가 빈곤했음을 지적했다. 신간은 저자가 미국 랜덤하우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할 당시인 1973년부터 타계 1년 전인 2018년까지 총 8건의 인터뷰를 묶은 것이다. 저자는 생전에 ‘가장 푸른 눈’, ‘술라’, ‘솔로몬의 노래’, ‘빌러비드(Beloved)’ 등의 작품을 통해 폭력과 약탈에 시달려온 흑인의 역사를 독창적 상상력과 시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인터뷰집에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가장이던 모리슨의 내밀한 삶이 담겨 있다. 평소 모리슨의 소설을 즐겨 읽는 팬이라면 신간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데뷔작 ‘가장 푸른 눈’의 주인공 피콜라 브리드러브에 대해 저자는 “이른바 백인 남성의 ‘주인 서사(Master Narrative)’에 굴복당했다”고 말한다. 자기 외모를 부정하는 흑인 소녀 피콜라가 금발 머리, 푸른 눈이라는 백인의 미적 기준에 자신을 가두며 파멸하기 때문이다. 노예가 되는 걸 막기 위해 딸을 살해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빌러비드’는 극심한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룬다. ‘소중한 내 아이들이 나처럼 노예로 살도록 둘 것인가, 아니면 보내줄 것인가.’ 1988년 작가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이 소설은 미국 켄터키주에서 탈주한 여성 노예 마거릿 가너의 실화를 기반으로 쓰였다. 모리슨은 가너의 기사를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완성했다. “엄마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유일한 사람은 죽은 자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살해당한 딸 ‘빌러비드’가 유령으로 소설에 등장한 배경이다. 저자가 랜덤하우스에서 편집한 책 ‘더 블랙 북(The Black Book)’의 제작 과정도 흥미롭다. 이 책은 ‘검둥이 공개 매매’를 알리는 광고 포스터부터 옥수수 가루로 만드는 19세기 요리 ‘턴 머시’ 레시피까지 다양한 흑인의 역사를 다룬 스크랩북이다. 흑인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인종차별을 고발하겠다는 모리슨의 철학이 담겼다. “같은 흑인만이 흑인의 분노와 답답함, 끈질긴 희망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아시아 여성 중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은 최근 강연에서 자기 문학의 근원이 ‘사랑’임을 강조했다. “사랑은 삶을 당당한 것, 당당한 사건으로 만든다”는 저자의 메시지와도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둘 다 폭력에 희생된 개인의 내면을 다뤘다는 공통점도 있다. 흑인 공동체가 겪어야 했던 참혹함을 마주하며 이들의 연대에 담긴 사랑을 포착한 저자의 목소리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소설가 한강이 12일(현지시간)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연극극장에서 열린 ‘노벨 낭독의 밤’ 행사에서 국내 비상 계엄 사태에 대해 “그렇게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 진행을 맡은 현지 번역가 유키코 듀크가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노벨상 수상을 위해) 출국해야 했으니 얼마나 끔찍(awful)했느냐”고 질문한 데 대한 답이다. 한강은 비상계엄 사태 이틀 만인 5일 출국한 이후 “노벨 기간에 너무 많은 일들을 해야 하고 제대로 뉴스를 보지 못해서 상황을 정확하기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이번 일로 시민들이 보여준 진심과 용기 때문에 많이 감동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통역사가 그의 발언을 영어로 통역해 전달하자 청중들 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강은 또 “광주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는 제 또래나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시위현장에) 많이 가셨다”며 “그대로 두면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알기에 모두가 걱정과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한국인들이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은 ‘덕분’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젊은 세대 분들에게 광주로 가는 진입로 역할을 조금은 해줬을 순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과장”이라고 답했다. 다만 “시위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제 책을 읽고 있는 분들의 사진을 보긴 했다”면서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다. 한강은 이날 ‘소년이 온다’를 쓸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가 된 것과 같은 배경이 영향을 줬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러자 그는 “이 책을 쓴 데는 여러가지 동기가 있는데 지금 말씀하신 것도 하나의 동기가 될 수 있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하나는 저의 내면적인 원인도 있었다. 당시 ‘희랍어 시간’을 다 써서 출간했는데 그 다음 책을 쓰려고 했을 때 내면에서 저항이 느껴졌다”고 설명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국가유산청은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한 영화 ‘낙동강’, ‘돈’, ‘하녀’, ‘성춘향’ 등 4편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12일 밝혔다. 6·25전쟁 중인 1952년 제작된 전창근 감독의 ‘낙동강’은 대학 졸업 후 낙동강 유역으로 귀향한 주인공이 마을 주민들을 계몽하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낙동강 전투 장면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담고 있는 영화로, 전시 상황에서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은 당대 문화예술인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1958년 개봉한 김소동 감독의 ‘돈’은 순박한 농사꾼인 주인공을 통해 농촌 고리대와 사기꾼 성행 등 당대의 농촌 문제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의 열악한 농촌의 현실을 고발한 한국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영화다. 이 밖에도 중산층 가족과 신분 상승을 꿈꾸는 하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억압을 드러냈다는 평을 받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년), 한국 최초의 컬러 시네마스코프(와이드 스크린 방식) 영화인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1961년)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이로써 영화 12편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앞서 영화 양주남 감독의 ‘미몽’(1936년),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1946년) 등 영화 8편이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재된 바 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유약이 발리지 않은 백자 조각의 바닥 부분에 ‘용왕(龍王)’이라는 한자가 쓰여 있다. 주술을 거는 듯한 구불거리는 글씨체가 독특하다. 이 자기 편은 1975∼1976년 경북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뒤 약 50년간 박물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었다. 통일신라의 왕궁 유적인 동궁과 월지에서 금속과 목간 등 귀한 신라 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부서진 조선백자 조각들은 주목받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국립경주박물관이 지난해 수장고 속 동궁과 월지 관련 유물 전량을 재조사하는 ‘월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립경주박물관은 9일 언론공개회를 열고 “동궁과 월지 유물을 재조사하면서 발견한 조선 시대 백자 조각 8000여 점 가운데 용왕 등의 묵서(墨書·먹으로 쓴 글씨)가 적힌 조각 130여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백자 편 130여 점은 대부분 조선 전기인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용왕’이라는 한자가 쓰인 자기 조각들. 이날 취재진에게 공개된 백자 파편 곳곳에는 ‘용왕’, ‘왕’, ‘용’ 등의 한자가 확인됐다. 앞서 월지에서 ‘신심용왕(辛審龍王)’이라고 적힌 신라 토기가 출토됐는데, 학계에서 이 토기들은 용왕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기로 여겨져 왔다. 또 역사책 ‘삼국사기’에도 “월지를 관장한 동궁관(東宮官) 밑에 용왕전(龍王典)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월지에서 용왕 제사가 거행됐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신라가 멸망한 뒤 월지가 폐허로 변하면서 월지의 용왕 제사도 사라진 것으로 봤지만, 이번 용왕 자기 출토로 인해 최소 16세기까지도 월지가 용왕과 관련한 제사 또는 의례 공간으로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또 경주 일대에서 발굴된 조선 전기의 자기 중 처음으로 한글 묵서도 확인됐다. 자기 편에 ‘졔쥬’, ‘산디’라고 쓰인 한글이 발견된 것이다. 박물관 측은 “학계에 자문을 한 결과 졔쥬는 제사의 주재자를 의미하는 제주(祭主)로 해석된다. 산디는 인명(人名)일 가능성도 있는데, 그렇다면 자기의 사용자일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설명했다. 자문을 받아 유물을 직접 조사한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졔쥬라는 글자가 적힌 토기를 월지 인근에서 찍어서 사용했다는 사실은 기우제와 같은 일종의 용왕제가 계속해서 변형돼 이뤄졌음을 의미한다”며 “자기 조각들은 우리 문화가 오랜 생명력을 갖고 이어져 내려왔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라고 말했다.동궁과 월지의 창건 또는 중수 시 공사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명도 처음 확인됐다. 처마의 서까래 또는 난간 마구리 장식으로 추정되는 금동판에서 발견된 ‘의일사지(義壹舍知)’라는 명문(銘文·비석이나 기물에 새긴 글)이다. 이 학예사는 “‘사지(舍知)’는 신라의 17관등 가운데 13관등이고, ‘의일(義壹)’은 인명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의일사지 명문은 원래 원로 미술사학자인 고 황수영 박사의 책 ‘한국금석유문’(1978년)에 ‘의일금지(義壹金知)’로 보고됐으나, 이번에 기존 월지관에 전시하던 금동판을 X선 촬영하면서 의일사지임이 새롭게 드러났다. 황 박사의 책에 명문의 존재가 언급된 후 여러 사람들이 박물관 측에 소재 확인을 요청했으나 파악이 되지 않았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유물까지 재조사하면서 실물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월지 프로젝트 성과를 내년에 재개관할 박물관 내 월지관 전시에 반영할 계획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거시적인 사회적 주제보다는 팍팍한 현실을 반영한 개인적 서사에 집중한 작품들이 많았다.” 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25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은 올해 응모작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올해 9개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총 7384편으로 지난해(7337편)보다 47편 늘었다. 부문별로는 중편소설 358편, 단편소설 684편, 시 5404편, 시조 452편, 희곡 75편, 동화 258편, 시나리오 66편, 문학평론 26편, 영화평론 61편이었다. 예심 심사위원은 △중편소설 손홍규 정한아 소설가, 정여울 문학평론가 △단편소설 김성중 손보미 안보윤 소설가, 강동호 문학평론가 △시 김상혁 서효인 시인 △시나리오 정윤수 영화감독,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가 맡았다. 중편소설 응모작은 세태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외롭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드게임’ 같은 독특한 취미에 의존하는 작품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재가 재미있는 반면에 문학 작품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작품들도 있어서 아쉬웠다”고 했다. 손홍규 소설가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보다 다양한 문학적 재능과 열정을 가진 이들이 더 많이 응모한 것 같다”고 했다. 정한아 소설가는 “인공지능(AI)이나 마약처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을 다룬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단편소설에선 간병이나 반려동물 등 ‘돌봄’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았다. 김성중 소설가는 “자신이나 가족의 병을 돌보는 이야기는 물론이고 노인이 화자로 등장하는 작품도 많았다”고 했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지난해에 이어 반려동물이 등장한 작품이 꽤 있었다. 힘든 현실을 잊고 다정하고 무해한 존재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심정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보윤 소설가는 “조손 가정에서 자라 자신의 부모를 적대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등 ‘가족의 해체’를 전제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고 했다. 손보미 소설가는 “전체적으로 거대 담론보다는 개인에 기반한 볼륨이 작은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고 전했다. 시 부문에도 예년과 달리 ‘나’의 존재를 고찰한 응모작이 많았다. 서효인 시인은 “최근에는 젠더 의식이나 보편적 윤리 등 사회 문제를 시로 표현한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올해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 시들이 더 많았다. 삶이 어려워질수록 ‘나’라는 존재에 대해 본질적 고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상혁 시인은 “화분을 의인화하는 등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설정을 적용해 쓴 시도 돋보였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부문에서는 공상과학(SF)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정윤수 영화감독은 “예전의 SF 시나리오가 외계인의 침입 같은 뻔한 소재가 주를 이뤘다면, 이번에는 ‘안티 에이징’, AI와 인간의 공존 등 구체적 고민을 담은 작품들이 많았다”고 했다.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는 “재벌과의 관계가 배경이 되는 등 발칙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고 했다. 이날 예심 결과 △중편소설 10편(10명) △단편소설 13편(13명) △시 60편(12명) △시나리오 10편(10명)이 본심에 올랐다. 시조, 희곡, 동화, 문학평론, 영화평론은 예심 없이 본심에서 당선작을 정한다. 당선자에게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며, 당선작은 동아일보 내년 1월 1일자 지면에 소개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I’ll never forgive you for one thing my dear, You wasted my prettiest years.(자기야, 절대 용서 못할 한 가지는 네가 내 가장 예쁜 시절을 낭비했다는 거야)”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6일 발매한 정규 앨범 ‘Rosie’의 타이틀곡 ‘Toxic Till The End’의 가사 일부다. 전 연인과 해로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겪은 감정 소모를 표현한 곡이다. 슬픈 가사와 반대되는 경쾌한 멜로디가 로제의 애절한 목소리와 어우러져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로제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미국 드라마 ‘가십걸’에 나온 배우 에번 모크와 함께 연인을 연기해 화제가 됐다.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만든 싱글 ‘APT.(아파트)’로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로제가 정규 앨범을 선보였다. 이번 앨범은 ‘아파트’를 비롯해 선공개곡 ‘Number One Girl’ ‘Toxic Till The End’ 등 전곡(12곡)이 로제가 작사·작곡에 참여한 곡들로 구성돼 있다. 로제의 경험에 기반해 20대가 겪을 법한 진솔한 고민을 담아낸 게 특징. 로제는 “앨범명 ‘Rosie’는 가까운 지인들이 나를 부르는 애칭”이라며 “이번 앨범을 통해 많은 이들이 나를 가깝게 느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술게임에서 착안해 K팝만의 독특한 감성을 담은 ‘아파트’를 제외한 나머지 앨범 수록곡들은 일반적인 팝 느낌을 물씬 풍긴다. 가사도 대부분 영어로 쓰여 글로벌 팬들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자신과의 연애를 게임처럼 여겨 상처받은 심정을 노래한 ‘Gameboy’는 어쿠스틱 기타와 얼어붙은 심정을 표현하는 듯한 어두운 멜로디가 잘 조화된다. 새벽에 느껴지는 연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호소한 ‘3am’은 강렬한 그루브가 느껴지는 반주와 알앤비 감성이 돋보인다. 추상적인 사랑이나 우정보단 진솔한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은 가사가 마음을 울린다. 다만 차분한 멜로디로 이뤄진 곡들이 대부분이라 아파트만큼 강렬한 느낌을 받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로제는 이번 앨범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을 노리고 있다. 앞서 블랙핑크와 뉴진스 등이 빌보드 200에서 1위에 오른 바 있다. 로제는 ‘아파트’로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100’에서 역대 K팝 여가수 중 최고인 8위에 올랐다. 단순한 핑크색 세트장에서 촬영해 “B급 감성으로 키치하다”는 평을 받은 ‘아파트’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조회수 5억2000만 회(8일 기준)를 넘겼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영국 소설가 메리 셸리의 SF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부제목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파하려다가 제우스에게 들켜 독수리에게 매일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게 된다. 소설 주인공 프랑켄슈타인도 과학으로 생명체를 만들려 하다가 괴물을 낳게 되고, 평생을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SF 문학의 효시로 불리는 소설을 낳은 것처럼, 현 시대의 예술 작품들 다수가 그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한다. 신간은 영국의 저명한 신화학자인 저자가 그리스 신화 속 인물 8명을 골라 집중적으로 다룬다. 프로메테우스, 메데이아,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아마조네스, 오이디푸스, 파리스의 심판,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모두 독특한 캐릭터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신화 속 인물들이다. 저자는 캐릭터 집중 분석을 통해 고대, 중세,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까지 신화가 사회·문화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력을 끼쳤는지 짚어본다.“비즈니스 프로젝트와 광고, 마케팅에 있어서 그리스 신화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보물상자”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 실제로 책에는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신화 속 인물들의 흥미로운 사례가 여럿 등장한다. 추리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단편집 ‘헤라클레스의 모험’에서는 전설적 탐정 에르퀼 푸아로의 사건에도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이 차용된다. 마초적 전사의 모습을 상징하는 헤라클레스의 흔적은 ‘어벤저스’ 같은 히어로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리라 연주자 오르페우스가 연인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지옥에 내려갔다가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는 매혹적이면서도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로맨스의 원형이다. 특유의 음악성 때문에 산문 형식으로 기록된 다른 신화와 달리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시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제였다. 작사가 시모니데스를 비롯해 많은 고대 그리스 시인들이 연인 에우리디케를 잃은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달콤한 시로 읊었다. 그런데 2∼3세기 신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오르페우스를 ‘사기꾼’으로 여기는 등, 중세로 갈수록 보다 다양한 캐릭터 해석이 등장한다.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나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를 판단해야 했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이야기는 후대에 보다 심오하게 해석된다. 북아프리카 태생으로 추정되는 작가 파비우스 플란시아데스 풀젠티우스는 5세기 후반 저술한 ‘신화론’에서 세 여신의 욕망을 평가했다. 아테나는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 명상하는 우아한 욕망을 드러내지만, 헤라는 탐욕스럽게 소유물에 집착하는 삶이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욕망으로 가득 찬 쾌락적 삶은 이 중 최하위다. 이 평가에는 의견이 갈릴 수 있겠으나, 신화에 투영되는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신간은 고대인들의 삶에 뿌리내린 신화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여전히 유효한지 알려준다. 풍부한 지식이 녹아 있지만, 현대인들의 관심사와 엮어 어렵지 않게 설명하는 점이 매력적. 또 현대뿐 아니라 고대, 중세 등 신화 속 인물들의 변천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한 점도 흥미롭다. 가족, 다름의 개념, 기원, 정치 등 인간의 근원적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를 풍성히 다뤄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킨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콩을 발효해 된장, 간장 등을 담가 먹는 우리의 ‘장(醬)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는 3일 오후(현지 시간)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제19차 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Knowledge, beliefs and practices related to jang-making in the Republic of Korea)’를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올렸다. 위원회는 “한국의 장 담그기는 주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성별과 연령, 각기 다른 사회 계층의 가족 구성원에 의해 수행된다”며 “이는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의 연대를 촉진한다”고 등재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의 장 담그기’는 발효된 콩으로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을 담가 먹는 문화로, 음식뿐 아니라 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과 신념, 기술을 모두 포함한다. 장 담그기는 2018년 한국의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뒤 2019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신청대상으로 선정됐다. 지난달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가 사전 심사 결과 ‘등재 권고’ 판정을 내리면서 등재가 확실시됐다. 장 문화의 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년) 때 왕비를 맞으면서 보내는 폐백 품목에 ‘장’과 ‘시(䜻·장의 일종)’가 포함돼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는 장을 보관하는 창고인 장고(醬庫)를 관리하는 상궁인 ‘장고마마’를 따로 둘 정도로 장을 중시했다. 장 만들기는 콩 재배와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와 가르기, 숙성, 발효의 과정을 아우른다. 특히 메주를 띄운 후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한 해 전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한국의 전통 방식은 중국, 일본과 다른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이날 위원회에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5호(진장) 기순도 명인이 참석해 10대째 지켜온 370년 된 씨간장으로 담근 고추장과 된장을 참석자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번 등재 결정에 따라 한국이 보유한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총 23건이 됐다. 앞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년)이 처음 등재된 후 ‘탈춤’(2022년)까지 모두 22건이 등재된 데 이어 하나를 추가하게 된 것. 한국은 2026년에 ‘한지 제작의 전통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의 등재도 시도할 예정이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장은 한국인의 음식 문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음에도 보편적 일상 음식이란 인식 때문에 그 가치가 소홀히 여겨져 왔다”며 “이번 등재를 통해 국민들이 우리 음식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길 바란다”고 밝혔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여성영화인모임은 4일 배우 라미란(사진)을 올해 여성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여성영화인모임 측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 범죄와 싸우고 스스로를 지키는 영화 ‘시민덕희’의 ‘덕희’ 역할을 통해 한국 영화의 한 자리를 굳건히 지켜낸 공을 인정한다”고 시상 배경을 밝혔다. 공로상은 주진숙 중앙대 명예교수(첨단영상대학원), 강수연상은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에 각각 돌아갔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발효된 콩으로 각종 양념류를 담가먹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 됐다. 이로써 한국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23건을 보유하게 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는 3일 오후(현지 시간)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제19차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는 발효된 콩으로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을 담가 먹는 문화로, 장 담그는 과정의 지식과 신념, 기술을 모두 포함한다. 장 담그기는 2018년 한국의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뒤 2019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신청대상으로 선정됐다. 2022년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한 뒤 지난달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가 사전 심사 결과 ‘등재 권고’ 판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등재가 확실시돼왔다. 위원회는 장 담그기가 공동체 평화 조성에 기여한다고 봤다. 위원회는 “한국의 장 담그기는 주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성별과 연령, 각기 다른 사회 계층의 가족 구성원에 의해 수행된다”며 “이는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의 연대를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게기로 보편적이라 오히려 간과될 수 있는 생활 관습 분야의 무형유산이 지닌 사회적, 공동체적, 문화적 기능과 중요성을 환기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헀다. 기본 양념인 장은 오랜 기간 한민족의 밥상을 책임져 왔다. 그 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삼국사기에는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년) 때 왕비를 맞으면서 보내는 폐백 품목에 ‘장’과 ‘시(䜻·장의 일종)’가 포함돼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는 장을 보관하는 창고인 장고(醬庫)를 관리하는 상궁인 ‘장고마마’를 따로 둘 정도로 장을 중시했다. 한국의 장 만들기는 콩 재배와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와 가르기, 숙성, 발효의 과정을 아우른다. 특히 메주를 띄운 후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한 해 전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한국의 전통 방식은 중국, 일본과도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평가받아 왔다. 또 장은 낮은 온도에서 발효를 시작해 점차 온도가 올라가는데, 이 과정에서 재료들이 가진 맛이 서로 어우러져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을 모두 갖추게 된다. 이번 등재 결정에 따라 한국이 보유한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총 23건이 됐다. 우리나라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년)이 처음 등재된 후 △판소리 △강릉 단오제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 △가곡 △대목장 △매사냥(여러 나라 공동 등재) △택견 △줄타기 △한산모시짜기 △아리랑 △김장문화 △농악 △줄다리기(여러 나라 공동 등재) △제주해녀문화 △씨름(남북 공동 등재) △연등회 △탈춤 등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장 담그기는 가족 내에서 전승되어온 집안의 역사와 전통을 담고 있으며, 한국인의 일상 문화에 뿌리를 이루고 있다”며 “이번 등재를 통해 국민들이 우리 음식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소중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젊은 나이의 다산은 대단했습니다. ‘돌격대장’이었고 다혈질이었지요.”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64·사진)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 같은 모습의 다산과 젊은 시절의 그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2006년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처음 출간한 뒤 20년 가까이 다산 연구에 매달린 한국의 대표적 인문학자 중 한 명. 신간 ‘다산의 일기장’(김영사)을 펴낸 그가 3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나섰다. 이번에는 ‘30대의 다산’을 재조명했다고 한다. ‘다산의 일기장’은 다산이 33∼35세이던 1795∼1797년 작성한 일기 4종을 다룬다. ‘금정일록(金井日錄)’ ‘죽란일기(竹欄日記)’ ‘규영일기(奎瀛日記)’ ‘함주일록(含珠日錄)’을 국내 최초로 한글 번역한 것을 담았다. 다산이 청나라 출신 천주교 신부인 주문모 검거 실패 사건에 연루돼 ‘사학삼흉(三凶)’으로 몰려 충청도 금정찰방으로 좌천됐다 간신히 한양으로 상경했지만, 다시 외직으로 밀려난 ‘고초의 시기’다. 신간에는 온화한 실학자로만 알고 있던 다산의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 이야기가 담겼다. 1795년 다산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채제공(1720∼1799)은 천주교와 계속해서 연관되는 다산 등에게 벌주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기 위해 초고를 써뒀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다산이 채제공의 아들 채홍원을 찾아가 “자네는 사람을 물에 빠뜨릴 때 빠지는 사람이 반드시 손으로 끌어당겨 함께 들어간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던가?”라고 따진다. 아들로부터 다산의 ‘협박’을 전해 들은 채제공은 불쾌해하면서도 초고를 태워버린다. 공식적으로는 천주교 ‘배교’를 택했지만 끝까지 종교를 버리지 못한 다산의 이중적인 면모도 잘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천주교 지도자인 이존창 검거 사건이다. 다산은 금정찰방으로 좌천된 후 정조의 명령으로 포졸과 장교 한 명을 대동해 충청도 관찰사도 못 잡던 이존창을 잡는 데 성공한다. 당시 다산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수년 동안 잡으려 해도 잡지 못한 천주교 지도자를 아무 저항 없이 붙잡아 온 것은 이미 다산이 천주교 쪽과 사전 교감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다산은 이후 이존창에게 천주교 활동을 안 하겠다는 ‘다짐장’을 받고 풀어줬다.” 정 교수는 그러면서 “국학계는 다산이 천주교에 미쳤지만 자기 손으로 털고 나왔으니 더 연관시키면 불순하다고 하고, 천주교계에서는 다산이 ‘배교자’이니 관심 없어 한다”고 덧붙였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기 부담스러웠던 다산이 ‘중간자적인 입장’을 취하며 어려운 상황을 넘겼다는 것이다. 책은 정 교수가 다산일기를 번역하면서 든 궁금증 100가지에 대한 자문자답 형식으로 구성됐다. 일기와 기존 다산의 시문집과 다른 역사서들의 기록을 대조해 길지 않은 다산의 일기를 자세히 해설한 점이 눈에 띈다. 정 교수는 “일기 자체는 무미건조한 팩트만 나열했지만, 행간을 면밀히 읽어야 다산의 진심에 다가갈 수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 연구에 집중해 왔다. 최근에도 다산이 특정 집안에 보낸 편지 24통을 새로 입수했다고 한다. 정 교수는 간담회에서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연암 박지원”이란 농담을 던지면서도 “다산과 불교의 관련성 등 앞으로도 다산의 다양한 면모를 다뤄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만일 제가 다산을 만난다면 (그가) 묘한 표정을 지을 것 같아요. ‘내가 너 때문에 참 성가셨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네가 내 속을 좀 알아주니 고맙다’라는 두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1950년 6·25전쟁은 2차 세계대전과 비슷한 전략과 전술에 맞춰 작전이 진행됐지만, 장비는 새로웠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도입된 제트기가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주력 항공기가 됐던 것이다. 또 1945년 이전에는 걸음마 단계로 사용됐던 헬기가 6·25전쟁에서 부상자들을 후송하기 위해 적극 사용됐다. 이후 헬기는 대규모 병력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운송하는 전쟁술의 핵심 요소가 됐다. 신간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가자 전쟁까지 약 80년에 이르는 현대전 28개를 분석한 책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미 중부사령관을 지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와 영국의 군사사학자 앤드루 로버츠가 함께 썼다. 퍼트레이어스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 주도의 연합군을 지휘한 스타 장군이기도 하다. 책은 전장에서 어떤 전략이 성공하고 실패하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새로운 군사 기술과 무기의 등장, 군사 훈련 등 ‘전쟁의 진화’를 가져온 요소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모든 전쟁에 대한 포괄적 역사를 다룬 책은 아니다. 대전차 무기의 정확도가 높아진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욤키푸르 전쟁, 대규모 탱크 공격 전술을 사용한 미국과 이라크 간의 걸프 전쟁 등은 다뤄도, 동일한 교훈을 주는 전쟁이나 소규모 게릴라전은 다루지 않았다. 책은 전쟁의 경과와 평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을 함께 제시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중국 국공내전은 마오쩌둥의 소규모 게릴라 부대가 서방이 지원하는 정부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도시에 병력을 집중시키고 철로를 따라 분산 배치하는 장제스의 전략은 기동성이 뛰어난 공산당 게릴라의 공격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또 6·25전쟁은 핵무기 개발 후 ‘상호 확증파괴’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제한전이 수행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 전쟁이라고 평가한다. 필사의 의지를 가진 시민군이 5개국의 연합군을 이긴 이스라엘 독립전쟁, 고전적 기습 전쟁인 6일 전쟁 등이 등장한다.저자들은 2022년 2월 이후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푸틴의 오판’이라고 비판한다. 우크라이나를 열흘에 걸쳐 침공해 6개월 만에 완전히 합병하려는 계획을 세울 정도로 우크라이나를 우습게 본 것이 ‘전술적 실패’였다는 것. 러시아는 키이우 점령을 위해 군사력을 집중하지 않고, 7개 이상의 축선으로 분산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대전차 유도 미사일 체계, 자살 드론 등 정밀 화력을 집요하게 투입해 러시아의 보급선을 파괴했다. 또 생각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에 기반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저항도 강했다. 절대적으로 물자와 군사력이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경제·문화적 제재 등 비폭력적 전쟁의 중요성도 커졌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이를 “20세기식 침공이 21세기식 방어로 저지됐다”고 평가했다. 전쟁의 성공과 실패 사례에서 군사 전략가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 또 사이버 전쟁과 드론 등 최신 전쟁 전술에 대한 지식도 풍부히 들어 있어 흥미롭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올해 4~10월 전북 군산시 선유도 해역에서 실시한 수중 발굴조사에서 유물 220여점을 새로 발견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유물에는 청자 등 도자기 유물 190여 점과 청동숟가락, 상평통보 등 금속 유물 20여 점이 포함돼 있다. 특히 분청사기, 백자, 곰방대 같은 조선시대 유물이 같은 형태로 여러 점 나왔다. 이는 선원들이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 배로 운반했던 화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그동안 충남 태안군에서 발굴된 조선 전기 조운선(세곡과 공물을 운반하던 화물선)인 ‘마도4호선’을 제외하고 발견된 조선시대 유물 대부분이 선원들이 사용했거니 유실된 유물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발견은 주목할 만하다”고 했다. 또 발굴 해역에서는 목제 닻가지(닻이 고정되도록 해저에 박히는 갈고리 부분) 몇 점이 개흙에 묻힌 채 확인됐다. 연구소 측은 “조선시대 말기 그려진 ‘만경현 고군산진 지도’에 군산 해역을 ‘조운선을 비롯해 바람을 피하거나 바람을 기다리는 선박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기록된 점을 실증하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선유도 해역 조사는 해저에서 유물을 목격한 잠수사의 신고를 계기로 2021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선사시대 간돌검을 비롯해 고려청자,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등 유물 660여 점을 발굴했다. 현재까지 고선박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연구소 측은 화물로 실렸던 청자다발과 선박에서 사용한 노, 닻도 확인된 점을 볼 때 이곳에 난파선이 매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연구소는 지금까지 진행된 선유도 해역의 발굴조사 결과를 정리해 내년에 발굴조사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이례적인 11월 폭설이 한반도를 강타한 가운데 쌓인 눈의 무게를 못 이기고 지붕 등이 무너지면서 5명이 사망하는 등 피해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수증기를 많이 포함해 무거운 ‘습설’이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가 높아 올겨울에는 습설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28일 경찰과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경 경기 용인시의 단독주택 앞 도로에서 가로수가 60대 남성을 덮쳤다. 머리를 다친 남성은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이날 오전 9시경에는 강원 횡성군의 축사 비닐하우스 지붕이 무너져 안에 있던 주민(78)이 깔려 숨졌고, 오전 11시 59분경에는 경기 안성시의 자동차부품 제조 공장에서 캐노피(지붕 덮개)가 무너지며 70대 근로자를 덮치는 사망 사고가 났다. 전날에도 경기 평택시와 양평군에서 지붕 등이 무너지며 30대, 80대 남성이 사망했다. 그 밖에도 수도권에선 전통시장 지붕이 무너지는 등 붕괴 사고가 이어졌고, 눈 무게 때문에 쓰러진 나무로 고압전선이 끊어지며 정전도 발생했다. 장은철 공주대 대기학과 교수는 “습설의 무게는 가벼운 건설의 3배가량이고 5배 이상 잘 쌓인다. 아래에 깔린 눈이 압축되면서 무게가 더해지는 형태여서 매우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날에 이어 밤사이 눈폭탄이 쏟아져 28일 오전 경기 수원시에는 역대 가장 많은 43cm의 눈이 쌓였다. 서울은 종로구 기상관측소 기준 28.6cm로 역대 3번째 적설량을 기록했다.습설 무게 못이겨 지붕 붕괴… 쓰러진 나무, 고압선 덮쳐 곳곳 정전‘눈 참사’ 일으키는 습설100㎡에 5㎝ 쌓이면 무게 600㎏… 습기 많아 잘 뭉쳐져 피해 키워“올 겨울 습설 대비하세요”‘이상고온-한파’ 폭설 반복 예고… 시설물 미리 보강-수시로 제설을27, 28일 폭설로 인한 사망자는 총 5명 발생했다. 모두 습설의 무게를 못 이긴 지붕이나 캐노피(지붕 덮개), 나무 등이 무너지거나 쓰러지는 바람에 사고를 당했다. 그 밖에도 경기 안양시에서 농수산물도매시장 지붕이 무너졌고, 의왕시에서 전통시장 천장이 내려앉는 등 구조물 붕괴 사고가 이어졌다.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 쓰러지면서 고압전선을 덮쳐 정전도 곳곳에서 발생했다● 지붕 무너지고, 나무 쓰러지며 피해28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에만 3명이 습설로 인해 지붕 등이 무너지며 목숨을 잃었다.경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59분경 경기 안성시의 자동차부품 제조 공장에서 눈이 쌓인 캐노피가 붕괴되며 인근을 지나던 70대 근로자를 덮쳤다. 이 근로자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캐노피가 무너진 것으로 보고 있다. 강원소방본부에 따르면 같은 날 오전 9시경 강원 횡성군에선 비닐하우스형 축사 지붕이 폭설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70대 농민이 깔려 숨졌다. 오전 5시경에도 경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 쓰러진 나무에 60대 남성이 깔려 숨졌다.건물 붕괴 사고도 속출했다. 이날 오전 6시 38분경 경기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의 공장 내 인테리어필름 보관 창고 천장(4900㎡)이 폭설로 무너졌다. 이날 오전 3시경에는 경기 의왕시 의왕도깨비시장 지붕이 무너졌고, 낮 12시 5분경에는 안양시 동안구 농수산물도매시장 청과동 지붕이 붕괴하며 60대 1명이 다쳤다.정전과 단수 피해도 잇따랐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52분경 서울 마포구에서 습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 쓰러지며 고압전선을 끊어 750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27일 밤에도 충남 천안시에서 같은 원인으로 정전이 발생해 3000여 가구가 불편을 겪었다.국가유산도 피해를 입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담장 내 천연기념물 ‘재동 백송’ 가지 5개가 눈의 무게를 못 견디고 부러졌다.● 더 무겁고, 잘 쌓이는 습설수증기를 머금은 습설은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을 때, 그리고 바다에서 눈구름이 형성될 때 잘 만들어진다. 이번 폭설의 경우 평년보다 온도가 2도가량 높은 서해상에서 눈구름대가 발달하면서 습설의 형태를 띠게 됐다.내부에 수증기를 함유한 습설은 무게가 가벼운 건설의 2, 3배가량이다. 100㎡에 5cm가량 눈이 쌓일 경우 습설은 무게가 약 600kg이지만 건설은 200, 300kg에 불과하다. 또 물기가 적어 잘 흩어지는 건설과 달리 습기가 많아 잘 뭉쳐지는 탓에 더 잘 쌓인다는 특징이 있다.습설로 인한 피해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4년 2월 10명이 숨진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때 전문가들은 부실공사와 함께 습설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당시 동해안에서 발달한 습설이 7일 연속 내리면서 적설량 34.8cm를 기록했는데 조립식 건물 지붕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며 참사가 발생했다.문제는 올겨울 습설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라니냐가 발달하면 해수면 온도를 낮출 수 있을 텐데 아직 미약한 상태”라며 “해수면 온도가 높은 상태로 유지되면서 수증기를 계속 공급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반복되는 습설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올겨울은 이상 고온과 극한 한파가 반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습 폭설도 자주 내릴 것”이라고도 했다.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과 전문가에 따르면 습설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선 비닐하우스 등에 미리 보강조치를 하고 30cm 이상 눈이 내릴 것으로 보일 경우 수시로 눈을 치우는 게 좋다. 다만 눈을 치운다고 지붕 위로 올라가면 붕괴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넉가래 등 눈을 제거할 도구를 미리 마련해 놓는 게 좋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용인=이경진 기자 lkj@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횡성=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먹과 붓을 사용해 한글로 글을 쓰는 ‘한글 서예’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다. 국가유산청은 한글서예를 국가무형유산 신규 종목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26일 밝혔다. 한글서예는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을 먹과 붓을 사용해 글로 쓰는 행위와 그에 담긴 전통지식’으로 규정했다. 한글서예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15세기부터 한지, 금석(金石), 섬유 등 다양한 재질에 구현돼 왔다. 조선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한글 문학작품의 필사본이나 편지글에서도 활용됐다. 국가유산청은 “한글서예는 우리 고유 문자 체계인 한글을 표현하면서도 특유의 서체와 필법 등이 한국 전통문화로서의 대표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지정 가치로 △한글 창제 이후 오랜 역사 △다양한 기록물에 사용돼 민속사, 국어사 등의 연구에 기여한 점 △이웃 나라와 구별되는 독특한 필법과 정제미 △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예술 분야로 확장 등을 들었다. 다만 한글 서예는 특정 보유자나 보유 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된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판소리나 가야금처럼 도제식 교육에 의해 전달되는 무형유산은 보유자와 단체를 지정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경우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2015년 ‘아리랑’을 시작으로 씨름, 해녀 등을 국가무형유산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해 왔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