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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파리 테러 사망자 132명의 신원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가운데 희생자들의 지인 및 생존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잇달아 글을 올리면서 전 세계인이 이들의 사연에 가슴 아파하고 있다. 특히 테러 장소가 공연장, 식당, 카페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피해자도 변호사, 건축가 등 20∼40대 전문직이 많았다고 가디언 등이 15일 보도했다. 인명 피해가 가장 컸던 바타클랑 극장 테러에서 살아남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이소벨 보더리 씨(22)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생존자의 절절한 소회를 담은 글을 올렸다. 그는 “모두가 즐겁게 웃고 춤추고 있는데 갑자기 테러범들이 총을 난사했다. 바로 앞에서 10여 명이 총에 맞고 바닥은 피로 물들었다”며 “한 시간 넘게 시체더미 속에 누워 죽은 척했다. 숨을 참고 움직이지 않았으며 울지도 않았다. 테러범들이 원하는 공포를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고 긴박한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어 “22년간의 내 인생을 끝낼 총알을 기다리면서 내가 한 일은 사랑하는 모든 이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뿐이었다”고 덧붙였다. 보더리 씨는 악몽 같은 테러 속에서도 인류애의 위대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본인의 목숨을 걸고 내 머리를 감싸준 남자, 수백 명을 구한 경찰, 길에서 나를 위로해준 낯선 이들, 생존자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집 대문을 열어준 여성, 피로 얼룩진 내 옷을 보고 새 옷을 사다준 친구 등이 모두 영웅”이라며 “내가 사랑한 이들이 앞으로도 인간의 선함을 믿기를 바란다. 테러범이 승리하지 않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희생자들이 꿈꿨지만 그들이 더는 살 수 없는 삶을 우리가 대신 채워가야 한다”며 “숨진 천사들이여 저 세상에서 평안하길. 당신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생존자로서의 굳은 책임감을 드러냈다. 보더리 씨가 쓴 이 글은 ‘좋아요’를 230만 개 이상 받았고 약 70만 건 공유되며 지구촌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당시 바타클랑 극장에서 공연을 했던 미국 록밴드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의 매니저인 영국인 닉 알렉산더 씨(36)의 애인 폴리나 버클리 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도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15일 그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에는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의 행복한 때가 담겨 있다. 폴리나 씨는 “당신은 언제나 내 인생 최고의 사랑이며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글까지 덧붙여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아랍인 피해자도 있었다. 모로코 라바트 출신으로 파리 ENSA 건축학교를 졸업한 건축가 아미네 이브놀모바라크 씨(28)는 카리용 카페에 있다 변을 당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성지순례까지 다녀온 독실한 무슬림이었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범의 총에 희생돼 안타까움을 남겼다. 미국 여대생 노에미 곤잘러스 씨(23)는 파리 스트라테 디자인대에 교환학생으로 왔다 봉변을 당했다. 캄보디아 식당 프티 캉보주에서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다 총에 맞아 숨진 것. 스트라테대의 한 교수는 “곤잘러스는 별처럼 빛나는(shining star) 학생이었다”며 애통해했다. 런던정경대(LSE) 출신의 엘리트로 최근 파리 유명 로펌 호건 로벨에서 형사담당 변호사로 일하던 프랑스인 발랑탱 리베 씨(26)도 바타클랑 극장에서 숨졌다. 그의 동료는 “재능과 인격 모두 훌륭했다. 회사의 큰 손실”이라고 애도했다. 이 외에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의 앨범을 낸 유니버설 뮤직 직원 토머스 아야드 씨(32), 프랑스 음악 평론가 기욤 드셰르 씨(43)도 바타클랑 극장에서 희생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12일 인터넷을 통해 모스크바 등 러시아 주요 도시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는 동영상을 유포했다고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국제 테러감시단체 시테(SITE)에 따르면 IS의 홍보조직 알하야트 미디어가 러시아어로 제작한 이 5분짜리 동영상에는 참수 장면과 함께 “곧 러시아에 피가 바다처럼 흘러넘칠 것이다. 이교도의 목이 칼 앞에서 벌벌 떨리게 될 것이다”라는 음성이 담겨있다. IS는 또 “유럽은 흔들리고 러시아는 죽어가고 있다. 크렘린은 우리의 것”이라며 “러시아를 정복해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 주요 도시를 정복할 것이며 러시아 자치공화국인 타타르스탄도 이슬람 율법 샤리아로 다스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직 동영상을 보지 못했고 그 출처나 진위도 알 수 없다. 안보 당국이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IS는 올해 9월 30일 러시아가 시리아 공습을 개시하자 보복 공격을 선동해왔다. IS 이집트 지부인 시나 윌라야트는 10월 31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발생한 러시아 여객기 추락 사고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집트 홍해의 유명 휴양지 샤름엘셰이크를 출발해 러시아 2대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던 이 여객기는 이륙 후 약 23분 만에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224명 전원이 숨졌다. 이와 관련 폭스뉴스는 이날 사고 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소식통을 인용, 사고기 기내에 시한폭탄에 쓰이는 타이머가 설치됐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기내 폭탄 설치에 공항 관계자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1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시아파 밀집 지역에서 강력한 연쇄 자살폭탄 공격이 두 차례 일어나 24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알자지라 등 외신이 보도했다. 수니파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사고는 이날 저녁 베이루트 남부 외곽 부르즈 엘바라즈네 팔레스타인 난민촌 인근 아인엘 시케 지역의 쇼핑가에서 발생했다. 이 지역은 베이루트 공항과 주요 도로가 관통하는 상업·거주지로 시아파 주민이 다수 거주한다. 폭발물이 장착된 조끼를 입은 한 남성이 폭발물을 터뜨리면서 최소 43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다쳤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교통 요지로 늘 사람이 많은 지역인데다 퇴근 시간까지 겹쳐 인명 피해가 더 컸다고 덧붙였다. 현장의 목격자들은 “몇 분 간격을 두고 연속으로 폭발음이 들렸다”고 말했다. 와엘 아부 파우르 레바논 보건장관은 “부상자 중 중상자도 있다”고 밝혀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고 직후 IS는 트위터를 통해 “연쇄 폭탄 공격은 우리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IS는 “우리 대원이 폭발물이 실린 오토바이를 끌고 군중이 모인 장소에서 폭발물을 터뜨렸다”고 밝혔다. IS는 시아파의 한 분파인 알라위파 출신인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아사드 대통령의 집권을 지지해온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을 포함해 시아파 전체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겠다고 위협해왔다. IS는 최근 이집트 시나이반도에서의 러시아 여객기 추락 사건도 자신들의 소행이라 주장한 바 있다. 이번 테러까지 이들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IS의 테러 강도가 한층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중동 정세가 크게 우려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테러 하루 뒤인 13일 탐맘 살람 레바논 총리는 ‘애도의 날’을 선포하고 레바논 전역의 모든 학교에 하루 휴교령을 내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도 연쇄 폭탄 공격을 비판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대원 중 인질 참수를 맡고 있는 ‘지하디 존’으로 알려진 모함마드 엠와지(27)가 미국의 무인기(드론) 공격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이 12일 보도했다. 피터 쿡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미군이 12일 시리아 락까에서 ‘지하디 존’으로 알려진 엠와지를 목표로 공습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지하디 존의 사망 여부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폭스뉴스 등은 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지하디 존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폭스뉴스는 군 고위관계자가 “엠와지 사살을 99% 확신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ABC도 국방부 고위 관리가 “엠와지가 락까의 한 건물에서 나와 차에 타다가 드론 공격을 받았다. ‘깨끗한 타격(클린 히트)’이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엠와지와 함께 ‘비틀스’라는 별명으로 불린 또 다른 영국인 조직원도 함께 숨졌을 수 있다고 WP는 전했다. 쿠웨이트계 영국인인 엠와지는 1988년 쿠웨이트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6세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 런던에서 120만 파운드(약 20억 원)가 넘는 호화 주택에 살았고 고급 사립학교를 다녔다.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변모한 정확한 계기나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은 그가 영국 정부의 무슬림 차별에 분노했으며 대학 시절부터 소말리아 극단조직과 접촉하려 한 혐의로 당국에 구금돼 몇 차례 조사를 받은 적 있다고 보도했다. 2012년 시리아로 떠나 IS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잔혹성이 전 세계에 알려진 시점은 지난해 8월이다. 그는 검은색 옷과 복면 차림으로 미국인 스티븐 소트로프와 제임스 폴리, 영국인 데이비드 헤인즈와 앨런 헤닝, 일본인 고토 겐지 등 여러 인질들의 살해 영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간 미국과 영국 당국은 자국민 살해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지하디 존의 행방을 찾는 데 집중해왔다. 미국 정부는 이날 공습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영국 정부에 작전 계획을 통보했고 지하디 존에게 희생당한 인질들의 유족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한때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독일 스웨덴 덴마크 등 유럽 각국이 이제는 난민 유입 차단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고 뉴스위크 등 외신이 11일 보도했다. 특히 유럽 최대 경제대국으로 그간 시리아 난민을 무조건 수용했던 독일까지 문을 닫고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 난민정책을 관장하는 내무부는 10일 더블린 조약을 모든 난민에게 적용한다고 밝혔다. 1997년 발효된 이 조약은 ‘유럽연합(EU)에 온 난민들이 첫발을 디딘 EU 회원국에서 난민 등록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헝가리를 통해 독일로 가려는 난민은 우선 헝가리에서 난민 등록 절차를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데메지에르 독일 내무장관은 이날 “난민 신청이 거부된 사람 대부분은 강제 송환된다. 또 난민 자격을 받았다 해도 그 가족까지 데려오는 것은 제한한다”고 말했다. 난민 사태가 본격화한 올해 8월 21일부터 시리아 난민에 한해 더블린 조약 적용을 유보했던 독일이 결국 되돌아선 것이다. 경제사회적 부담 때문이다. 독일 Ifo경제연구소는 “독일이 난민 관리비용으로 올해만 211억 유로(약 26조3750억 원)를 써야 하며 이는 정부가 올해 예산으로 책정한 100억 유로의 2배가 넘는다”고 분석했다. 올해 독일에 유입될 난민도 정부 예상치 80만 명보다 더 많은 1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스웨덴도 달라졌다. AFP통신은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인 스웨덴이 12일부터 열흘간 국경에서 검문검색, 여권심사를 강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모딜리아니의 걸작 ‘누워 있는 누드(Nu Couch´e)’를 미술품 경매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가격에 낙찰받은 중국 억만장자 수집가 류이첸(劉益謙·52·사진) 씨가 10일 뉴욕타임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모딜리아니 작품이 훌륭한 가치를 지녔다는 확신을 갖고 큰돈을 투자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번 낙찰은 막대한 금액(약 1974억 원)도 화제였지만 그가 택시기사 출신의 자수성가 부호라는 점 때문에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9일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6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이 작품을 1억7040만 달러에 낙찰받았다. 올해 5월 1억7936만 달러(약 2081억 원)에 낙찰된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싸다. 1963년 상하이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류 씨는 14세 때 중학교를 중퇴했다. 문화혁명기로 혼란한 당시 중국에서 택시를 몰거나 거리에서 여성용 가방 및 기념품을 팔며 근근이 생계를 이었다. 하지만 중국 주식시장이 개설된 1990년 주식 투자에 눈을 떴고 이후 부동산, 금융, 제약업체 투자 등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블룸버그가 추정한 그의 재산은 15억 달러(약 1조7400억 원)로 중국 200위 부호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류 씨는 본인을 ‘문화적 소양이 뛰어나지 않은 졸부(투하오·土豪)’로 칭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지인들은 ‘미술품 수집 시장에서 가장 탁월한 안목을 지닌 수집가’로 칭찬한다고 덧붙였다. 류 씨는 “세계적 박물관들이 모딜리아니가 그린 누드화를 많이 소장하고 있어 나도 응찰했다”며 “상하이에 설립한 개인 미술관 개관 5주년을 맞아 이 작품을 전시하겠다. 중국 미술품 애호가들이 굳이 외국에 가지 않아도 중국 땅에서 훌륭한 예술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인 왕웨이 씨 역시 미술품 수집가로 두 사람은 2012년 말 상하이에 개인 미술관을 세우고 자신들이 사들인 각종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매년 1600억 원 이상을 미술품 수집에 투자하는 두 사람은 중국 도자기, 티베트 고미술품, 각종 서양 회화 등을 대거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퇴역 군인 출신인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70)이 아웅산 수지 여사(70)가 이끄는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에 총선 승리를 축하하며 평화적 권력 이양을 약속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NLD가 11일 성명을 통해 밝혔다. NLD는 이날 예 투 미얀마 공보장관이 테인 세인 대통령을 대신해 “선거관리위원회의 총선 결과 발표에 따라 총선에서 우세한 결과를 얻은 NLD에 축하를 보낸다”고 말했다고 공개했다. 또 그가 “법에 따른 일정에 따라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AFP통신은 수지 여사가 이날 테인 세인 대통령을 비롯해 민 아웅 흘라잉 육군참모총장, 슈웨 만 국회의장 등 현 정권 핵심 인사 3명에게 대화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수지 여사는 공개서한을 통해 “총선에서 미얀마 국민이 자신들의 뜻을 표현했다. 다음 주에 당신들이 편한 시간에 만나 민족 대화합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 투 공보장관은 이 같은 NLD 측 발표를 아직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고 미얀마 현지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예 투 장관은 앞서 “미얀마 정부는 미얀마의 화합 문제를 논의하자는 아웅산 수지 여사의 제안에 동의한다”고 밝혔지만 만나는 시기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개표를 포함해 선관위의 모든 활동이 종료된 후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한때 한국인 남성과 결혼설이 돌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둘째 딸 예카테리나(29)가 푸틴의 최측근인 러시아 금융재벌 니콜라이 샤말로프의 아들 키릴 샤말로프(33)와 약혼했다고 외신이 10일 보도했다. 예카테리나와 키릴은 올해 1월 스위스를 방문했다. 당시 예카테리나는 각종 서류에 자신을 샤말로프의 ‘배우자(spouse)’로 적었다. 2010년 몇몇 언론이 예카테리나가 2010년 모스크바 국제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다고 보도했지만 푸틴 측과 해당 남성 측 모두 부인한 바 있다. 키릴의 부친 니콜라이 샤말로프는 푸틴의 고향이기도 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전직 치과의사로, 세르게이 이바노프 대통령 행정실장과 함께 푸틴의 최측근으로 불린다. 그가 2대 주주인 로시야 은행은 러시아가 2014년 초 강제 합병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지점을 열어 유럽연합(EU)의 제재를 받았다. 로이터는 예카테리나와 키릴이 권력과 부를 거머쥔 부모를 둔 덕에 주식 자산만 최소 20억 달러(약2조3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대부분은 푸틴의 오랜 지인들이 인수한 가스와 석유회사 지분이다. 예카테리나와 키릴은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비아리츠에 고급 저택도 보유하고 있다. 저택 가치는 370만 달러(약 43억 원)에 이른다. 예카테리나는 신변 보호 등을 이유로 아버지의 성(姓)인 푸틴 대신 할머니의 처녀 시절 성인 ‘티호노바’라는 성을 사용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13년 이혼한 전 부인 류드밀라와의 사이에 마리아(30)와 예카테리나 두 딸을 두고 있는데, 둘의 어린 시절 모습만 알려졌을 뿐 자세한 신상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가장 최근에 푸틴이 자녀에 대해 언급한 시점은 2011년으로, 그는 당시 “두 딸이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고”만 말했다. 장녀 마리아의 현재 모습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예카테리나는 비교적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그는 2013년에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 아크로바틱록앤롤 댄싱 경연대회에 출전해 5위를 차지했고 당시 춤을 추는 모습이 서구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학생 수가 3만5000명에 달하는 미 중서부 미주리 주의 최대 대학 미주리대가 인종차별 및 이에 따른 취재방해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이 10일 보도했다. 미주리 주에는 2014년 8월 비무장 흑인 청년이 백인 경관의 총에 숨진 사건으로 한 달간 일종의 무정부 상태를 겪은 퍼거슨 시가 있는데다 미주리대 본부가 있는 컬럼비아 시와 퍼거슨 시가 불과 2시간 떨어져있어 이번 사태가 더 큰 흑백갈등을 낳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사건의 발단은 올해 4월. 지난해 9월 입학한 백인 신입생 브래들리 베커가 기숙사 복도에 나치 문양과 ‘히틀러 만세(하일 히틀러)’에서 만세를 뜻하는 ‘하일(Heil)’이란 단어를 써 놨다. 일부 학생이 반발했지만 베커는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았다. 올해 9월에는 일부 백인 학생들이 미주리대 최초 흑인 학생회장 페이턴 헤드를 향해 ‘검둥이(negro)’라고 조롱했고 한 달 후 교내에 들어온 술취한 백인 남성이 연극 연습을 하던 흑인 학생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일련의 사건이 소셜미디어 등을 타고 확산됐지만 2012년부터 재직 중인 팀 울프 총장(57)은 대책 마련에 소홀했다. 게다가 그는 지난달 10일 “이 문제에 관한 총장의 답변을 듣고 싶다”며 집무실 앞 건물에서 대기하던 학생들을 차로 뚫고 지나가버려 논란을 고조시켰다. 울프 총장에 분노한 흑인 대학원생 조너선 버틀러(25)는 이달 2일 단식 투쟁에 나섰다. 그는 “나도 여러 번 인종차별을 겪었다. 총장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수차례 알렸지만 답이 없다”며 퇴진을 외쳤다. 버틀러를 지지하는 학생들은 미주리대가 1950년 처음 흑인 학생의 입학을 허용했다는 점을 들어 ‘1950년을 걱정한다’는 의미의 해시태그(#ConcernedStudent1950)를 사용하고 동명의 학생단체까지 만들어 동참했다. 이달 7일 미주리대 미식축구팀까지 전면 파업을 선언했다. 당초 “사임은 말도 안 된다”고 버티던 울프 총장은 미식축구팀 파업이 시작되자 태도가 달라졌다. 미식축구팀이 타 대학 팀과의 한 경기만 취소해도 무려 100만 달러(11억6000만 원)의 위약금을 물어내야 하기 때문. 미 대학 미식축구리그는 한 경기 중계권료만 약 1000만 달러(116억 원)에 이르며 일부 대학은 전체 수입의 60%를 경기 수입으로 충당할 정도로 대학 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식축구팀의 경기 보이콧 소식이 알려진 후 제이 닉슨 주지사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총장 퇴진을 요구하고,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까지 사태를 언급하자 울프 총장은 결국 9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1980년 미주리대 졸업생으로 IBM 등을 거친 기업가 출신 총장인 그는 고교시절 자신의 풋볼팀을 미주리 주 고교 우승팀으로 이끈 스타 쿼터백이었지만 결국 미식축구 때문에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사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총장 퇴진 하루 뒤인 10일에는 재학생 겸 스포츠채널 ESPN의 비상근 통신원 팀 테이가 교내 광장에서 추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학생 모임 ‘1950년을 걱정한다’를 취재하려다 이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학생들은 “ESPN이 학생들의 편에 서서 보도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테이는 “언론과 집회의 자유 등을 규정한 수정헌법 1조에 따라 당신들은 시위를 벌일 권리가, 나는 취재할 권리가 있다”고 맞섰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1988년 이후 27년간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싸워 온 아웅산 수지 여사는 누가 뭐래도 미얀마 민주화를 이끈 최대 주인공이다. 그러나 비폭력 저항과 인권 투쟁의 상징인 수지 여사 앞의 정치적 역량에 대한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2012년 이후 정치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권력욕이 강한 정치인’이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 독립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인 수지 여사는 1988년 어머니 간호를 위해 영국에서 일시 귀국했다가 민주화 시위를 목도하고 출국을 포기한 채 민주 투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당시 500만 군중이 모인 민주화 집회에서 민주적인 정부 구성을 촉구한 것이 출발선이었다. 군부에 의해 1989년 처음 시작돼 3차례에 걸쳐 가택 연금을 당했다가 2010년 11월에야 풀려났다. 1999년 남편이 암으로 숨질 때도 미얀마를 출국하면 입국이 막힐 것을 우려해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 정신과 불교의 영향으로 평화적 저항을 주창한 그는 2011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2012년 국회에 입성해 정치 활동을 하면서 ‘야심에 사로잡힌 현실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얀마 현행 헌법이 직계 가족 중 외국인 가족이 있는 자의 대통령 출마를 금지함에 따라 대통령 출마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그가 “대통령 위에 있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을 공공연히 밝히는 것도 이런 평가와 무관치 않다. 비판의 큰 줄기는 수지 여사가 자신이 이끌고 있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정치적 입지 확대를 목적으로 군부와 협력하고 소수민족의 인권 등에는 애써 눈감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미얀마 인구의 90%가량을 차지하는 불교도가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과 충돌해 200여 명이 숨지고 14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한 사태에 대해 수지 여사는 “폭력이란 양쪽 모두로 인해 저질러진다”는 취지로 양비론을 펼쳤다. 로힝야족을 미얀마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수지 여사는 정부군이 다른 소수 민족인 카친족을 공격해 사상사가 발생했을 때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군사 정권에 협력하는 듯한 이런 행보에 대해 NLD 내부에서도 젊은 당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지 여사의 정치적 행보는 결국 집권과 개헌을 위한 의원 정족수 확보에 있다는 것이 외신들의 분석이다. 이번 총선에서 NLD가 과반을 넘긴 의석을 차지하는 것은 무난해 보인다. 그러나 개헌이 가능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미얀마 정국은 개헌 논의로 시끄러워질 공산이 크다. 군부가 이미 25%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현 여당은 8.3%의 의석만 차지해도 개헌 저지가 가능하다. 그동안 수지 여사에 대한 공개적 비판은 금기시돼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미얀마의 칼럼니스트인 우 시투 아웅 민 씨는 선거 전인 올해 8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녀의 독재적인 정치결정 스타일로 인해) 그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그는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고, 똑똑한 정치인 축에는 들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민주화의 꽃’과 ‘야심찬 현실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수지 여사에 대한 평가는 집권 후 로힝야족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수지 “장미는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장미” ▼‘대선 못나가도 실질적 대통령’ 선언… “집권땐 무슬림 로힝야족 보호”국명도 ‘버마’로 유턴 가능성… 美, 中견제 위해 협력강화 나설 듯 미얀마 총선 승리를 이끈 아웅산 수지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대표(70)가 10일 영국 BBC와 첫 언론 인터뷰를 하고 대통령직에 관계없이 국정을 주도할 뜻을 분명히 했다. 외국인 배우자나 자녀를 둔 사람이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다는 헌법 때문에 자신이 내년 초 대선에 출마할 수 없어도 개의치 않겠다는 의미다.○ “단독 집권 가능” 자신감 피력 수지 여사는 이날 양곤의 자택 정원에서 진행된 퍼걸 킨 BBC 기자(54)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대선 출마를 막는 헌법이 국정 운영에 큰 장벽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 ‘장미는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여전히 향기로운 존재(It‘s a name only, A rose by any other name)’를 인용하며 헌법의 대선 출마 제한 조항은 자신에게 장미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의 수렴청정인 이 조치가 헌법 위반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에는 “이 문제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취하고 국민과 소통하면 다 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만모한 싱 전 총리를 내세워 2004년부터 10년간 인도를 실질적으로 통치해 온 소냐 간디 전 인도 국민회의당 대표의 예에서 보듯 수지 여사가 내년 대선에서 자신의 대리인을 NLD 후보로 내세우는 방법이 유력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군 최고사령관 출신으로 수지 여사를 오랫동안 보좌해 온 틴 우 NLD 부의장(88), NLD 최고 전략가로 꼽히는 윈 흐테인 NLD 중앙집행위원(73) 등이 후보로 꼽힌다. 수지 여사는 자신이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 문제를 도외시해 왔다는 지적에 대해 “집권하면 무슬림 공동체를 보호할 것”이라며 “이들을 탄압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을 법으로 다스리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편견과 증오는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절대다수 국민은 평화를 원한다. 증오와 공포를 자양분 삼아 살기 원하는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수지 여사는 “NLD 단독 집권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하루 전 NLD 수뇌부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차분히 결과를 지켜보자. 상대편을 자극하지 말자”며 신중론을 편 것과 다르다. 이번 선거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공정한 선거가 치러졌다. 시대가 변했고 사람들도 달라져 과거처럼 부정선거를 자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 군부도 25년 전과 달라 뉴욕타임스(NYT)는 수지 여사의 말대로 군부가 1990년 총선처럼 선거 결과를 무효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10일 보도했다. 군부는 상하원 의석의 25%를 할당받고 내무부와 국방부 등 핵심 부처의 장관 임명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과 투자 이권을 차지하는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수지 여사가 향후 헌법 개정과 군부 개혁에 나선다면 군부의 태도가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할 목적을 지닌 미국은 친(親)서방 성향인 수지 여사의 승리를 미국의 승리로 받아들이며 양국 협력을 강화할 뜻을 보이고 있다. 미얀마는 과거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왔으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2년 11월 현직 미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미얀마를 방문하는 등 최근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 당시 20년 넘게 유지해 왔던 경제 제재를 풀어 줬던 미국이 이번 총선을 계기로 남아 있는 인권 및 무기 금수 제재를 해제할지도 관심사다. NLD가 집권하면 미얀마가 ‘버마’라는 과거 국명을 채택할 것이란 전망도 많다. 군부는 ‘8888 학살’ 1년 뒤인 1989년 버마라는 국명이 미얀마의 135개 민족 중 최대 민족인 버마족만 중시한다는 뜻으로 쓰인다며 이를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 바꿨다. 반면 수지 여사와 반독재 투쟁가들은 군부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독단으로 국명을 바꿨다며 줄곧 ‘버마’를 사용해 왔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하정민 dew@donga.com·이설 기자}
이번 미얀마 총선에서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군부가 과연 선거 결과에 승복할 것인가이다. 미얀마 군부는 1990년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선거에서 압승했을 때 결과에 불복하면서 정권을 내놓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이런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바 있다. 이번에도 군부가 불복하면 미얀마는 이전보다 더 큰 혼란에 빠져들 수 있다. 벌써부터 선거와 관련해 잡음도 일고 있다. 사전 투표함이 해당 지역으로 이송되지 않고 수도 네피도로 이유 없이 보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부도 이번만큼은 선거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만큼 1990년 사태가 재발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8일 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최대 정치 실세 중 한 사람인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은 “국민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는 정당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선거 결과는 국민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수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선거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NLD가 정권 교체에 성공한다 해도 군부의 영향력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반세기 넘게 미얀마를 지배한 미얀마 군부의 ‘힘’은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NLD가 정권 창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외교 국방 등 안보 관련 장관들을 독자적으로 임명할 수 없다. 추천권을 군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군부는 또 의회에서 25% 의석을 가진 파워그룹 중 하나다. NLD가 정권 창출에 성공해 단독 집권을 한다 해도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군부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외국인과 결혼하거나 외국인 자녀가 있는 사람은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없다는, 아웅산 수지 여사의 대선 출마 발목을 잡는 헌법 조항을 바꾸기 위해서도 3분의 2 의석이 필요한데 군부가 반대하면 불가능하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미얀마 민주화의 꽃’ 아웅산 수지 여사(70)는 25년 만의 자유총선 압승,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 등 민주주의 투사로서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개인사는 불행했다고 텔레그래프 등 주요 외신이 전했다. 미얀마 독립영웅이었던 그의 아버지 아웅 산 장군은 그가 불과 2살 때 정적의 손에 암살됐고 평생 그를 헌신적으로 내조한 남편은 1999년 암으로 숨졌다. 또 큰 아들은 어머니가 가족 대신 정치를 택한 것을 원망하며 아직도 수지 여사와 소원한 관계로 지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1964년 영국 옥스퍼드대에 입학한 수지 여사는 이 곳에서 1살 연하 동급생 마이클 아리스(1946~1999)를 만난다. 외교관 아버지를 둔 아리스는 옥스퍼드 입학 전 부탄에서 6년간 지낸 적이 있어 아시아 문화에 친숙했고 곧 수지와 사랑에 빠졌다. 결혼 전 수지 여사는 아리스에게 “언젠가 조국이 나를 원하면 돌아가야 한다. 이를 용납하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그는 흔쾌히 수락한다. 1972년 결혼한 둘은 두 아들 알렉산더(42)와 킴(37)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남편 아리스가 박사 학위를 받고 티벳 불교 전문가로 거듭나는 동안 수지 여사는 학자 남편을 내조하며 완전한 전업주부의 삶을 산다. 형편이 어렵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탁, 청소, 음식 등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직접 했으며 두 아들의 생일파티 또한 누구보다 성대하게 치르는 엄마로 유명했다. 행복했던 네 사람의 삶은 1988년 초 수지의 어머니 킨 치 여사의 뇌졸중으로 산산조각난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잠시 귀국한 수지는 1988년 8월 8일 수천 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숨진 소위 ‘8888’ 사태를 보고 영국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같은 해 12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에 입당한 그는 곧 미얀마의 핵심 인물로 부상한다. 1989년 6월 군부는 수지를 집에 가둔다. 이 때만 해도 그가 21년이 지난 2010년 11월에야 가택연금에서 풀려날 줄 안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미얀마를 떠나면 즉시 풀어주겠다”는 군부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독재 타도를 외친다. 1997년 그의 남편 아리스가 말기 전립샘 암 진단을 받는다. 부인이 없는 동안 두 아들을 돌보고, 부인의 글을 모아 여러 권의 책을 내며 미얀마 현실을 전 세계에 알렸던 그는 “죽기 전 한 번만 부인을 보고 싶다”며 미얀마 입국을 요청하지만 군부는 이를 거부한다. 군부는 수지에게 “영국으로 들어가 남편을 만나라”고 회유했지만 수지 여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번 미얀마를 떠나면 군부가 영원히 귀국을 막을까 우려했기 때문. 죽어가는 남편을 볼 수 없었던 수지 여사는 군부의 허락을 얻어 영국대사관으로 간 뒤 남편이 좋아하던 옷을 입고 머리에 장미를 꽃은 후 작별을 고하는 동영상을 찍는다. “이 힘든 가택연금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당신”이라며 절절한 사랑도 고백한다. 아리스는 자신의 53번째 생일이던 1999년 3월 27일 부인을 그리워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 동영상은 남편이 죽은 후 이틀 뒤에야 남은 두 아들에게 전해졌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두 아들의 삶도 무척 힘겨웠다. 어머니와 헤어졌던 1988년 둘은 겨우 15살, 11살 소년이었지만 모친과 생이별을 한데다 자신들을 돌봐주던 아버지가 죽었을 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를 만날 수 없었다. 특히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장남 알렉산더는 어머니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가택연금에 풀려난 뒤에도 모친을 자주 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차남 킴과의 관계는 무척 좋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킴은 2010년 어머니가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지 10일 만에 미얀마를 찾아 모친과 재회했다. 당시 수지 여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떨어져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매우 쉽고 자연스러웠다”고 성인이 된 아들을 만난 소감을 밝혔다. 현재 영국 옥스퍼드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현재도 종종 어머니와 만나고 연락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 조인에 참가한 마크 클라크 전 유엔군 총사령관(1896∼1984)의 아들이자 부친과 함께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윌리엄 도란 클라크 전 미 육군 소령(사진)이 올해 9월 28일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7일 보도했다. 향년 90세. 1925년 조지아 주에서 태어난 클라크 전 소령은 조부 및 부친과 마찬가지로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에 진학했다. 1945년 소위로 임관한 그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서 복무한 후 한국전에 참전했다. 클라크 전 소령은 1951년 중부전선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중대를 이끌고 용맹하게 싸워 고지를 차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유족으로는 부인 오드리 여사와 2남 1녀가 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1일 한일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과 일본이 회담 장소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고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이 2일 보도했다. 산케이에 따르면 양측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숙소인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과 리커창 중국 총리 숙소인 신라호텔 중 어느 쪽에서 정상회담을 할지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결국 예정한 시각이 점점 다가오고 의견을 좁히지 못하자 아베 총리가 리 총리의 숙소를 찾는 방식으로 마무리됐다.양국의 신경전은 회담을 마치고 한일중 3국 정상 만찬장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리 총리는 아베 총리와 달리 신라호텔 정문을 이용하지 않고 뒷문으로 나갔는데, 이는 중국 측이 자신들이 ‘초대한 사람’이고 일본 측이 ‘손님’임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차별화를 꾀한 것이라고 산케이는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중일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일본 측의 ‘요청에 응해’ 회담을 했다는 표현을 썼고, 아베 총리가 리 총리의 숙소로 찾아왔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두 나라 외교장관 또한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일 오전 일본 대표단 숙소에서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한 최종 조율에 착수했는데 회담을 몇 시간 남겨놓지 않은 가운데 각료급 협의를 해야 할 만큼 합의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일본 언론은 이날 회담이 기시다 일본 외상의 숙소로 왕 부장이 찾아가 만난 형식이라는 점, 왕 부장이 1분 늦게 도착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양국의 미묘한 신경전을 전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만들었던 스파이 지침서가 최근 뒤늦게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1일 보도했다. CIA가 1944년 1월 제작한 ‘손쉬운 방해공작 현장 매뉴얼(Simple Sabotage Field Manual: Strategic Services)’에는 적성국에 침투한 CIA 스파이가 일터에서 적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조직을 망칠 수 있는 다양한 행동들이 담겨있다. 이런 행동의 상당 부분은 21세기 직장인들이 일터에서 흔히 만나는 짜증나는 동료의 유형과 매우 유사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첫째, 바보같이 행동하라. 글씨를 불분명하게 쓰거나, 보고서의 한두 항목을 빠뜨려 보내거나, 상사의 지시를 못 알아들은 척하고 어물쩍 넘기는 것은 좋은 태도다. 둘째, 짜증나게 굴라. 회사가 위급한 상황인데도 갑자기 회의를 열자고 제안하거나, 회의에서 가능한 한 길게 말하거나,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적 경험이나 일화를 회의석상에서 줄줄 늘어놓는 일도 포함된다. 셋째, 끊임없이 불평하라. 업무 성과가 나쁠 때 자신의 능력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환경이나 도구 탓을 해야 한다. 자신의 책임을 요리조리 피하려는 태도 역시 미묘하지만 매우 파괴적인 방해 공작이라고 CIA는 분석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음료업체 스무디킹이 지난달 8일 한국 지사인 스무디킹코리아의 사업권을 180억 원에 신세계푸드에 매각했다. 2012년 7월 5000만 달러(약 570억 원)를 투자해 미국 본사를 역(逆)인수했던 스무디킹이 ‘꼬리’격인 한국 지사를 팔고 ‘몸통’인 미국 본사에 명운을 건 셈. “충성심, 스포츠 마케팅, 웰빙이란 3대 키워드로 미국 시장을 공략해 5년 안에 연매출을 현재의 3.3배인 1조 원까지 늘리겠다”는 김성완 스무디킹 대표(43)를 지난달 12일 만났다. ―왜 한국 지사를 매각했나. “임대료 급등 등으로 한국에서 사업하기 힘들었다. 스무디킹 본사가 있는 미 남부 뉴올리언스에서는 10만 달러(약 1억1400만 원)를 투자하면 매장을 짓는다. 반면 명동과 강남역 등에서는 세를 얻으려 해도 보증금 1억 원, 월 임차료 1000만 원이 기본이다. 전체 매출(약 3000억 원)의 70%를 차지하는 미국에 집중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봤다.” ―미국 본사를 인수한 지 3년이 지났는데…. “2012년 말 전체 매출이 약 2000억 원이었는데 현재 1000억 원이 늘었으니 외형 확장은 일단 만족한다. 특히 ‘지역사회에 충성하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 주효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의 80%가 침수되기 전 도시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3대 요식업체는 스무디킹, 패스트푸드업체 파파이스, 스테이크 체인 루스크리스였다. 카트리나 후 파파이스는 조지아 주 애틀랜타, 루스크리스는 플로리다 주 올랜도로 떠났다. 우리만 남아있는 덕에 많은 소비자가 ‘스무디킹=충성’으로 여긴다.” ―2014년 2월 미 프로농구(NBA)팀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의 홈 경기장 이름을 스무디킹센터로 부르는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10년간 2000만 달러(약 228억 원)에 맺었다. “미국인에게 스포츠는 공기와 같다. 미식축구 농구 야구 등을 모르고 미국인의 삶을 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스무디킹센터는 뉴올리언스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카트리나 때 피해자 대피소로 쓰인 메르세데스벤츠돔(미식축구팀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홈 경기장)과 맞닿아 있다. 벤츠돔은 뉴올리언스에 와보지 않은 미국인이 알 정도로 유명해 인접한 스무디킹센터의 인지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커피 전문업체와의 경쟁이 만만치 않을 텐데…. “다른 음료에 비해 칼로리가 낮고 무기질이 많은 스무디킹 음료는 건강 및 외모 관리를 중시하는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과 부합한다. 현재 스무디킹 미국 매장 600여 개의 대부분은 중남부에 있는데 앞으로 웰빙 성향이 높은 북동부 진출을 강화할 계획이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2년에 최소 8만 달러(약 9040만 원)인 비싼 학비 등에도 미국 경영학석사(MBA) 학위가 여전히 인기라고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보도했다. 세계 경기둔화로 각국 취업시장이 얼어붙자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젊은이들이 늘었고, MBA 출신이 취직 기회와 연봉 면에서 다른 구직자보다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재 매년 미국에서만 19만2000명이 MBA 학위를 받는다. 2014년에도 전 세계에서 69만 명이 경영대학원입학시험(GMAT)에 응시했다. 특히 하버드 등 1년 학비가 4만 달러 이상인 비싼 미국 학교는 지원자가 점점 느는 반면, 4만 달러보다 낮은 MBA 프로그램은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WSJ에 따르면 올해 9월 시작된 2015년 가을 학기의 미 주요대학 2년제 풀타임 MBA의 입학 지원자 수는 모두 한 해 전보다 대폭 늘었다. 3대 MBA 스쿨로 꼽히는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7.8%), 스탠퍼드대(7.4%), 하버드대(1.5%)는 물론 예일대(25.1%), 조지타운대(16.4%), 시카고대(15.6%) 등도 마찬가지였다. MBA 출신들은 졸업 후에도 인기가 많다.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미 MBA 졸업생의 89%가 졸업 후 석 달 안에 직업을 찾는다. 이들의 평균 초봉도 10만 달러(약 1억1300만 원)으로 MBA를 취득하기 전 평균 연봉보다 88% 많았다. 다트머스대 턱 MBA 스쿨의 맷 슬로터 학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면허를 취득한 나라에서만 취직할 수 있는 의사나 변호사와 달리 MBA 학위는 세계 어디에서도 통한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와 호주 MBA도 인기다. 현재 세계 GMAT 응시자 중 아시아와 호주 MBA 지원자는 8.1%로 2007년 4%에서 두 배 늘었다.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와 인시아드 싱가포르 캠퍼스 등 아시아 유명 MBA는 세계 20대 MBA 순위 안에 들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여성 지원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다트머스대 턱 MBA 스쿨, 시카고대 부스 MBA 스쿨,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MBA 스쿨, 듀크대 후쿠아 MBA 스쿨 등에서는 신입생의 40%가 여자다. 다만 엔론 회계부정, 리만브라더스 파산 등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문제 기업의 경영진이 대부분 천문학적인 고액 연봉을 받는 MBA 출신들이었다는 점 때문에 세계 대형 금융사들은 예전만큼 MBA를 찾지 않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23일 와인 주산지로 유명한 프랑스 남부 보르도 시 인근 퓌스갱 지방도로에서 나들이에 나선 노인 49명을 태운 관광버스와 대형트럭이 충돌해 최소 42명이 숨졌다고 BBC 등 외신이 보도했다. 1982년 52명이 숨진 차 사고 이후 33년 만에 프랑스에서 발생한 최악의 교통사고로 평가받고 있다. 이날 오전 7시 30분 경 노인 단체관광객들을 태운 버스가 도시 외곽의 곡선도로를 주행하다 대형버스와 부딪혔다. 두 차량이 충돌하면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고 이 와중에 버스에 있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빠져 나오지 못해 대규모 사망자가 속출했다. 버스 기사는 탈출에 성공해 목숨을 구했지만 트럭 운전자는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BBC는 전했다. 지역 언론 RTL은 현장에서 어린아이 시신 한 구가 발견됐으며 버스 기사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관광버스에 탔던 노인들은 인구 700여 명의 작은 마을 프티-팔레 마을에 사는 연금생활자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날 새벽 마을을 출발해 인근 랑드로 당일 나들이를 가다가 끔찍한 화를 당했다. BBC는 “사고가 난 도로는 심하게 굽어 있어 지역 주민들 사이에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사고 직후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연기를 봤다. 끔찍한 비극”이라고 덧붙였다.하정민기자 dew@donga.com}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이 23일 기준금리와 은행 지급준비율(지준율)을 동시 인하했다. 런민은행이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동시 인하한 것은 중국 증시가 폭락했던 올해 8월 25일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런민은행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1년 만기 위안화 대출 기준금리를 기존보다 0.25%포인트 내린 4.35%, 1년 만기 예금 기준금리는 0.25%포인트 내린 1.5%로 낮춘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이후 6번째 금리인하다. 런민은행은 시중은행에 대해 지급준비율도 종전보다 0.5%포인트 낮은 17.5%로 책정했다. 특히 농업 및 중소기업에 대출을 많이 하는 일부 은행에 대해서는 지준율을 1.0%포인트 낮추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거듭된 금리인하는 경기둔화 심화로 올해 정부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목표치인 7% 달성이 어려워진 데 따른 경기부양 조치로 풀이된다. 19일 발표된 중국의 올해 3분기 GDP 증가율은 2009년 1분기 이후 6년 반만의 최저치인 6.9%에 그쳤다.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43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는 등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던 중국 제조업 경기가 심상찮다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조지 매그너스 UBS그룹 선임 경제자문은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살아나고 있지 않은 가운데 디플레 압력이 여전하다”며 “런민은행의 경기부양책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하정민기자 dew@donga.com}
미국 민주당의 대선 경선 후보로 꼽혀왔던 조셉 바이든 미국 부통령(73)이 21일 201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양강 구도로 굳어지게 됐다.바이든 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깜짝 성명서를 발표하고 불출마를 공식으로 선언했다.바이든 부통령은 민주당의 유력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장관 재직 시절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것에 따른 논란으로 최근 몇 달간 지지율이 급락하자 출마를 심각하게 고려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3일 미 민주당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클린턴 전 장관이 승기를 잡고, 또다른 유력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꾸준한 강세를 보이자 출마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 언론은 분석했다.그의 가족사도 불출마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올해 5월 장남 보 바이든 전 델라웨어주 법무장관(46)을 뇌암으로 잃었다. 1972년 첫 번째 아내와 갓난아기였던 딸을 자동차 사고로 보낸 바이든 부통령은 이번에 장남까지 사망하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그간 출마설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가족들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을 피력해왔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