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경제-유가 동반추락… 정권까지 휘청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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低유가의 공습

국제유가가 7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7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전일 대비 5.8% 떨어진 배럴당 37.65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2009년 2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유가가 20달러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산유국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물론이고 국제 질서까지 흔들 기세다. 산유국 정정 불안이 지정학적 긴장을 높여 전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블룸버그 등이 7일 보도했다. 산유국 정정 불안에 이웃 국가들은 안보 동맹이나 경제 블록에서 하나둘씩 등을 돌리고 있다.

유가 하락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나라는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으로 중동에서 ‘맏형’ 역할을 해 오던 사우디아라비아다. 올해 사우디의 재정적자는 1300억 달러(약 152조 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9.5%에 달한다. 이를 막기 위해 최근 1년간 외환보유액에서 915억 달러를 빼냈고 올해 7월에는 국채도 발행했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예멘 내전 개입, 이슬람국가(IS) 공습 등으로 지난해 GDP의 10%였던 국방 예산 비중을 올해 17%로 늘려 국민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이달 12일 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이 부여된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것도 국민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세계 7위 경제 대국 브라질에서는 저유가로 인한 경제난이 대통령 탄핵 위기로 번졌다. 이 나라는 올해 3분기 성장률이 ―4.5%로 1996년 통계 집계 후 사상 최저치였다. 브라질 의회는 이달 3일 불법 선거 자금 문제 등의 혐의로 좌파 정부를 이끄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에 돌입했다. 집권당 대표인 호세프 대통령이 당장 탄핵될 가능성은 낮지만 남미 대륙에서 대국으로서의 지도력을 잃어 가고 있다. 중남미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도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했고 역시 석유 수출국인 아르헨티나에는 이미 우파 정권이 들어섰다.

수출의 68%를 에너지 산업에 의존하는 러시아도 저유가 직격탄을 맞았다. 7일 러시아의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94.14bp(베이시스포인트·1bp는 0.01%)로 약 2주 만에 무려 40bp 가까이 올랐다. 이 나라 의회는 내년 유가를 배럴당 50달러로 예상하고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지만, 유가가 떠받쳐 주지 못할 경우 1998년처럼 디폴트 상황까지 몰릴 수 있다.

러시아의 경제난은 옛 소련의 형제국이던 독립국가연합(CIS)의 결속력도 흔들어 놓았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의 내전 개입으로 이미 등을 돌렸고, ‘러시아의 동생’으로 불리던 벨라루스도 시리아 내전 대처 등에서 러시아의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다. 러시아에서 일하던 우즈베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 출신 노동자들도 루블화 급락에 따라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번 유가 하락은 선진국까지 전염시키고 있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선진국은 저유가로 인한 물가 하락이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번질까 고민하고 있다. 이미 마이너스 금리 상태지만 지난주 또 금리를 낮춘 유로존은 ‘저물가→침체 가속’이라는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 등 주요 수출국은 산유국에서 진행되던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중단하거나 재검토하고 있다. 재정적자와 환율 하락이 겹친 터키 인도 등도 저유가의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국제유가#유가#저유가#산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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