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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농구를 즐겼고 가톨릭대 의대 1학년 때인 1982년부터는 선배들과 스키를 탔다. 스키를 즐기면서 스포츠 의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2002년부터는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2020년 초 확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덕택’에 이젠 최애 스포츠에 사이클도 추가됐다. 은승표 은승표코리아정형외과 원장(59)은 내로라하는 스포츠광이다. 평소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기초체력도 키우는 그는 “평생 건강을 위해 운동은 필수이며 100세 시대에 맞는 운동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솔직히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나서 실내 링크를 닫는 바람에 운동 못 해 쌓인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겨울 스키 시즌이 지난 뒤엔 할 운동이 별로 없었어요. 그때 실외 스포츠인 사이클이 다가왔어요. 사이클은 신세계였습니다. 2020년 한 해 사이클 타고 전국을 정말 많이 돌아다녔어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키경기 의무 책임자였던 은 원장은 함께했던 의사들과 올림픽 이후에도 같이 운동하며 봉사활동을 계속하기로 하면서 2019년 ‘오싸디’란 모임을 결성했다. 올림픽 스키 경기 의무지원팀 사이클 디비전이란 뜻으로 겨울엔 스키를 타고 그 외의 계절엔 사이클을 탄다. 은 원장은 첫해엔 초보자인 데다 시간도 없어 제대로 탈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그에게 큰 기회를 줬다. “코로나19 여파로 힘겨웠던 의사들도 있지만 정형외과 의사들은 일이 많이 줄었어요. 수술 환자가 반으로 줄었고, 해외 학회에 나갈 일도 없어졌죠. 남는 게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사이클을 탔어요. 사이클은 실외 스포츠이고 타는 것 자체로도 사실상 거리두기가 돼 안전했죠.” 업힐(언덕 오르기)에 빠져 서울 남산과 북악 스카이웨이를 올랐다. 새벽이나 저녁, 주말 시간만 나면 페달을 밟았다. 한 달에 한 번은 전국 투어에 나섰다. 그는 “보통 새벽에 수술을 하는데 수술이 잡히지 않으면 오전 6시 30분쯤 사이클을 타고 집을 나서 남산 정상까지 두 바퀴 돌고 집에 오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그럼 엄청난 에너지를 얻는다. 하루가 활기차진다”고 했다. 저녁에도 오후 8시부터 밤 12시가 넘더라도 시간 나면 오른다. 그는 “오후 9시 30분 이후엔 버스도 없어 자전거 타기가 더 좋다. 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페달을 밟고 남산을 오른다”고 했다. 더 짜릿한 라이딩을 하려면 속칭 ‘동부 5고개’로 간다. 경의중앙선 양수역에서 출발해 벗고개∼서후고개∼명달리∼다락재∼유명산을 넘어 다시 양수역으로 돌아오는 70km 코스. 3시간 넘게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느끼는 ‘오르가슴’과 ‘내리가슴’을 통해 허벅지와 복근, 등배 등 코어 근육이 강화되고 심폐 지구력까지 좋아진다. 극한 신체활동이지만 몸은 오히려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라고. 전국 투어는 강원 춘천, 평창, 충북 충주호와 대청호, 전남 영암과 해남, 보성까지 간다. 물론 서울에서부터 사이클을 타고 출발하는 게 아니라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서 그 지역 명소를 달린다. 회원이 많으면 버스를 대절해 가기도 한다. 은 원장은 “여유롭고 즐겁게 타는 코스는 북한강길 남한강길이 좋다. 경기도 팔당이 거점이다. 팔당에서 북한강길로 쭉 가면 강원 춘천까지 간다. 남한강길로 가면 경기 여주까지 간다. 이 코스는 사람들이 없어 한적하다. 스피드도 낼 수 있다”고 했다. 은 원장은 자전거가 최고의 건강 스포츠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전거는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체력 수준에 맞춰서 탈 수 있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기어로 조정도 가능하다. 자전거는 타고 나가는 순간부터 운동이 시작된다”고 했다. 은 원장은 자전거 타기가 100세 시대 최고의 건강법이라고도 했다. “나이 들면 신체 능력이 떨어지고 관절도 마모되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면 효과가 좋아야 하고 신체에 해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체력별로 강도 조절이 되고 부상이 적은 운동으로 자전거 타기가 좋습니다. 안장에 앉기 때문에 체중을 분산시켜 바른 자세로 타면 무릎에도 큰 부담을 주지 않아요. 사고의 위험성은 있지만 안전수칙을 준수한다면 나이 들어 운동 효과와 여행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입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2019년 6월 6일자 동아일보 25면에 ‘젊음을 되찾아주는 회춘약(回春藥) 근육을 키우라’는 칼럼을 썼다. 52세 아들에 26세 큰 손녀를 둔 ‘할머니’ 임종소 씨 스토리를 시작으로 근육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칼럼이었다. 동시에 donga.com에 당시 75세였던 임 씨가 1년 여 넘게 근육운동을 해서 몸에 생긴 변화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한마디로 ‘대박’이 났다. 단 하루만에 100만 명에 가까운 독자들이 읽었다. 이후 각 방송에서 임 씨 스토리를 보도했다. 여러 방송에서 임 씨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간이 지난 뒤 영국 공영방송인 BBC에서도 근육을 키운 임 씨 스토리를 자세하게 보도했다. 독일 방송에도 나갔다. 75세의 ‘할머니’도 근육을 키우면 몸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이런 큰 관심의 핵심 포인트였다. 평범한 ‘할머니’였던 임 씨는 지금 실버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가 2018년 8월 4일부터 dongA.com과 동아일보 지면에 ‘양종구 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을 쓰면서 150명에 가까운 운동 마니아를 소개했다. 100세 시대 건강법은 운동을 통해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을 소개하며 어떻게 하면 운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코너다. 이 기사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도 따라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통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획이다. 필자가 100세 시대 건강법을 쓰도록 고민을 던져준 책이 있다. 린타 그래튼(Lynda Gratton)과 앤드루 스콧(Andrew Scott)이 쓴 ‘100세 인생(The 100-Year Life)’이다. 그 책은 “제대로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면 장수는 저주가 아닌 선물이다. 그것은 기회로 가득하고, 시간이라는 선물이 있는 인생이다”고 했다. 100세 시대. 준비하지 않으면 고통스런 삶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100세 시대를 맞아 건강이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 100세까지 사는 시대에 건강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삶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좋아하고 스포츠기자로 25년 넘게 살아온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운동으로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을 소개해서 다른 사람들도 따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후 4년 가까이 운동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개했고 스포츠 과학적으로 운동하는 방법도 소개했다.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만큼 국민들이 ‘올바른 운동 정보’에 목말라 있었다. ‘스포츠는 사회를 바꾼다’는 말이 있다. 땀과 노력을 쏟아 붓고 규칙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스포츠를 생활화하면 개인적으로 조직적으로 국가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은 사회를 바꿀 순 없지만 개인의 삶은 바꿀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통해 삶을 바꾸면 결국 사회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올 1월 27일자에 “평생 즐긴 탁구, 은퇴 후 지도자로 ‘인생 2막’ 열어줘”라는 칼럼을 썼다. 대학 때부터 즐기던 탁구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새로운 길을 제시해줬다. 2020년 말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서 은퇴한 전인상 씨(62)는 그해 말 삼다도 제주도에 터를 잡고 탁구 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다. 정년을 앞두고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였다. “100세 시대지만 현실은 60세쯤이면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 그래서 평생 좋아했던 탁구로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했다. 2014년 탁구 2급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지난해엔 노인체육지도자 자격증도 획득했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방과후 지도자로 활동한다.” 중고교 시절 대전시내 탁구장에서 좀 놀았던 전 씨는 대학 1학년 때 탁구서클(현 동아리)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탁구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했다. 실력이래야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넘기는 수준이었지만 책을 보고 거울 앞에서 자세를 익혔다. 그렇게 2년을 활동하다 군에 입대하고 복학한 뒤 취업 준비를 하면서 한동안 탁구를 잊고 지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대한육상연맹에 입사했다.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해 1988년 서울 올림픽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육상연맹 사무실이 서울 을지로에서 잠실로 옮겨졌고 1990년대 초반 청담동에 있는 대원탁구장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다시 탁구와 연을 맺게 됐다.” 탁구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선수 출신 코치가 직접 레슨을 해주고 있었다. 과거엔 상상도 못 하던 일. 선수 출신에게 조련받아 실력이 향상된 마니아들이 모여 있는 탁구장들도 소문이 났다. 전 씨는 대한항공 선수 출신 권영랑 관장에게 원포인트레슨도 받으면서 탁구 실력을 닦았다. 일을 마치면 어김없이 탁구장으로 달려가 한두 시간 땀을 흘렸다. 실력이 비슷하고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대원탁구동호회를 만들어 대회에도 출전했다. 1997년 서울 강남구 생활체육 탁구대회에 출전해 복식 우승, 단식 3위를 하는 등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탁구는 직장생활의 해방구였다. 일하며 얻는 모든 스트레스를 탁구공에 실어 날렸다. 탁구를 치면 한두 시간은 잡생각 없이 탁구에 집중할 수 있다. 내 삶의 큰 활력소였다.” 실력이 늘자 어딜 가든 대접도 받았다. 탁구 좀 치자 육상연맹에서 일한다고 하니 ‘육상선수 출신이라 역시 발이 빠르다’고 엉뚱한 칭찬을 하기도 했다. 어떨 땐 ‘체육과 출신이어서 잘 친다’고까지 했다. 그는 운동과 전혀 상관없는 영문과 출신이다. 각종 육상대회가 전국에서 열리기 때문에 출장이 잦았던 그는 항상 탁구 라켓을 가지고 다녔다. “난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일 끝나면 바로 탁구장으로 달려갔다. 몸이 찌뿌드드해도 탁구 한두 시간 치면 바로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했다. 탁구를 너무 많이 쳐 ‘엘보’가 오긴 했지만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은 없다. 2007년 KADA로 옮겨서도 탁구는 멈추지 않았고 각종 대회에서도 성과를 냈다. 2014년도 도닉배전국오픈탁구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했다. 2016년 강동구의회의회장배 탁구대회 복식에서도 1위를 했다. 2019년 제2회 에리사랑시니어탁구대회 단식에서도 우승했다. “서울 사는 사람들의 로망이라고 할까? 꽉 막힌 빌딩 숲을 떠나 탁 트인 곳에서 살고 싶었다. 강원도 원주, 강릉 등도 생각했지만 제주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에 친구가 살고 있어 쉽게 결정했다. 은퇴하고 바로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에서의 삶도 자연스럽게 탁구가 주가 됐다. 제주탁구클럽에 가입해 활동했다. 외지인으로 제주에서 정붙이고 잘 살 수 있게 된 원동력에는 매일 만나는 회원들과의 교류가 있었다. 전 씨는 지난해 말 열린 제주도탁구협회장기 탁구대회 백두부 복식에서 우승했고, 4부 단식에서 준우승하는 등 실력을 과시했다. 올해부터 초등학생들 지도자로 나서지만 향후 시니어를 대상으로도 지도할 계획이다. “탁구는 사계절 언제든 칠 수 있다. 자기 몸만 지탱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 제주도 장애인복지관에서 레슨을 해준 적이 잇다. 휠체어 타고, 목발 짚고도 칠 수 있다. 탁구는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아 최고의 실버스포츠로도 알려져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탁구로 희망을 전하고, 어르신들께는 건강과 행복을 전하고 싶다.” 이런 사례는 많다. 2020년 11월 19일 자엔 다음과 같은 칼럼을 썼다. #1. 권영채 씨(65)는 정년퇴직을 하기 전부터 만든 ‘버킷 리스트’를 하나하나 실행하다가 시니어 모델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6년 전 은퇴하고 가족을 위해 요리를 배우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 지난해부터는 모델에 도전해 기회를 잡은 것이다. 권 씨는 지난해 9월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이하 남예종) 시니어 모델 2기에 등록했다. 이때 열린 ‘미시즈 앤 시니어 모델 세계대회’에 출전해 골드부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모델로서 자질을 더 키우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권 씨는 “모델은 몸이 재산이다”라며 “몸을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만난 임종소 씨(76)의 조언으로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헬스장(메카헬스짐)에 등록했다. 임 씨는 dongA.com ‘양종구 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19년 6월 6일자에 소개돼 화제를 모았던 인물. 국내는 물론이고 영국 BBC 방송, 독일 ARD 방송에까지 소개됐고 지금은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임 씨는 “척추협착 탓에 휠체어를 타고 여생을 보낼 위기를 근육운동으로 벗어나게 됐다”며 헬스장 이용을 적극 추천했다. 권 씨는 주 2회 헬스장에서 체계적인 근육훈련을 하고, 평소에는 집에서 홈 트레이닝을 했다. 그는 올 4월 열린 ‘WNC 시그니처 피지크 대회’ 시니어 부문에서 2위를 했고, 10월 열린 ‘WBC 피트니스 대회’ 시니어 부문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시니어 모델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올해 남예종 연극영화과 모델과에 입학해 이론과 실기를 공부하기 시작한 그는 올 5월 열린 대회(GOLD CLASS By Queen of the Asia 2020)에서 대상을 받았다. 9월엔 전통시장 모델 대회에서도 입상했다. 몸이 달라지고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으니 광고주의 러브콜도 이어졌고, 광고도 몇 편 찍었다. 그는 “은퇴를 하고 다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은퇴 전에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설계했고 내 몸을 잘 만들고 차분히 시니어 모델을 준비하다 보니 돈도 따라 왔다”고 말했다. #2. 어수영 씨(62)는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와 시작한 운동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47세쯤 병원에서 건강 악화에 대한 경고를 여러 차례 받은 뒤 체중 감량을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운동 마니아를 넘어 전문가로 변신했다. 177cm의 키에 체중이 93kg까지 나갔던 어 씨는 매일 1시간씩 수영을 한 뒤 출근했다. 출퇴근 때엔 자전거를 이용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안양까지 편도 52km를 주 2회 정도 왕복했다. 자전거로 출근했다가 외근을 하게 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다음 날 자전거로 퇴근했다. 그렇게 3년을 이어가자 체중이 75kg으로 20kg이 줄었다. 살이 빠지니까 보기는 좋았는데 힘이 없었다. 그래서 50세 때부터는 웨이트트레이닝을 병행했다. 6년간 꾸준히 수영과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수영지도자 자격증에 도전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개인혼영 100m(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각 25m)를 1분 30초에 완주하는 조건이 발목을 잡았다. 매번 7초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실격했다. 그래서 돌파구로 신체능력을 향상시켜 줄 운동을 찾다가 크로스핏을 접했다. 크로스핏은 여러 종목의 운동을 섞어서 훈련한다는 뜻의 크로스 트레이닝(Cross-training)과 신체 단련을 뜻하는 피트니스(Fitness)를 합친 운동이다. 소방관이나 군인이 주로 애용하는 거친 운동이다. 어 씨는 크로스핏 체육관에 등록한 뒤 꼬박 2년을 쏟아 부었고, 마침내 수영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어 씨는 3년 전 은퇴 후 ‘건강 전도사’로 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남대 운동생리학 석사과정에 등록했다. 그가 이렇게 운동에 매진하게 된 배경에는 긴 시간 병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그는 “100세 시대로 수명은 길어졌는데 내 건강이 좋지 않으면 가족도 고생할 것 같아 열심히 운동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일도 찾았다”고 말했다. 4선 국회의원 출신인 유준상 대한요트협회 회장(78)은 2007년 마라톤에 입문한 게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20회 넘게 달리는 등 세월을 거꾸로 살고 있는 그는 “건강을 잃으면 마음도 잃는다.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건강하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00세 시대, 건강해야 새로운 도전도 할 수 있다. dongA.com에 헬스동아 플랫폼을 개설한다. 헬스동아는 독자들에게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포함해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개인의 삶이 바뀌면 사회도 바뀔 수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여보 이젠 건강이 중요해요. 우리 함께 운동 합시다.” “그래요. 저도 늘 고민하고 있었어요.” 부부가 함께 살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함께 백년해로하기 위해선 건강이 최우선일 것이다. 2014년 예진희 용인예술과학대 항공서비스과 교수(59)는 남편이 “부부가 함께 건강해야 오래 즐겁게 살 수 있다”며 운동을 권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운동을 싫어해 체육 점수가 늘 바닥이었고, 결혼한 뒤엔 사회생활에 육아까지 하면서 운동은 생각도 못했었던 그였다. 하지만 건강해야 생을 마칠 때까지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2005년이었을 겁니다. 무더운 여름날 통역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집중하지 못하기에 ‘너희들은 꿈이 뭐니’라며 잠깐 샛길로 샌 적이 있어요. 그 때 제가 아이들에게 무심결에 ‘마라톤 풀코스 완주가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야’라고 했어요. 막연하게, 결심한 것도 아니었는데….” 꼭 지켜야할 약속은 아니었지만 그 때부터 달리기와 마라톤 등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혼자 동네 뒷산을 오르기도 하고 걷고 달리는 등 체계적인 운동은 아니지만 학생들과의 약속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했다. 남편의 권유 뒤 주위를 살펴보니 바로 함께 달릴 사람들이 보였다. 가장 먼저 다가온 게 모교 서울 여의도고 선배들. 그는 “선후배 모임 때 이런 고민을 얘기했더니 바로 ‘너마클(여의도고 마라톤클럽)’이 있으니 나오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바로 너마클에 가입했다. “그 때부터 선배님들 지도를 받으며 체계적으로 함께 달리기 시작했어요. 모임은 주로 서울 반포한강시민공원에서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집(경기 성남 분당)근처 탄천도 달리고 불곡산도 올랐어요.” 천주교 신자인 그는 분당성마태오성당마라톤동호회(마마동)에도 가입해 토요일엔 마마동에서, 일요일엔 너마클에서 달렸다. 더 잘 달리려고 주중에도 2일 10km씩 달렸다. 주당 30~40km를 달렸다. 2014년 가을 중앙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4시간37분. 그는 “해냈다는 성취감에 날듯 기뻤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했다. “달리니 세상이 달라졌어요. 체력이 좋아지면서 삶이 활기 차 졌어요. 모든 일에 자신감도 넘쳤죠. 운동하고 출근하면 에너지 넘친 하루가 돼요. 사실 교수란 직업이 좀 점잖은 측면이 있는데 풀코스를 완주한 뒤엔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근성이 나왔어요. 과거 같으면 학생들을 지도할 때 어렵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기도 했는데 이젠 끝까지 함께 가고 길을 찾아주려고 노력합니다.” 예 교수는 동아 춘천 등 메이저대회를 달리다 2017년 말 중앙마라톤을 끝으로 풀코스를 접었다. 풀코스 총 5회 완주. 기록을 단축하겠다는 욕심에 훈련도 열심히 했고 마지막 레이스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4시간 32분이란 개인 최고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예 교수는 “내 한계를 알았다. 기록 욕심에 빨리 달렸는데 그 다음날 왼쪽 발목 심줄과 인대가 늘어났다. 그 때 사람마다 역량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고 운동에 대한 궤도를 수정했다”고 했다. 그동안의 목표가 풀코스 기록 단축이었다면 즐겁게 오래 달리기로 바꾼 것이다. 이후 대회는 10km와 하프코스 등 단축마라톤에만 나갔다. 물론 평소대로 주당 3~4회, 30~40km는 꾸준히 달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한때 기록, 완주 횟수 등에 집착했는데 즐기며 꾸준히 달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친 뒤 오래 달리기 위해선 보조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웨이트트레이닝과 요가, 필라테스 등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다보면 몸이 틀어진다거나 이상이 생겼다는 느낌이 있어요. 필라테스는 그것을 잘 잡아줘요. 근육운동을 하면 근육 세포가 쫀득쫀득하게 세워지는 듯한 힘이 느껴져요.” 웨이트트레이닝 주 3회, 필라테스 주 2회를 한다. 골프 연습도 주 3회 한다. 여러 가지 운동을 병행하면서 운동에서도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운동을 하다보니 특정 종목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예를 들면 골프는 한쪽만 쓰잖아요. 그래서 골프 선수들이 몸에 균형을 찾아주는 밸런스 운동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달리기도 오래하다 보면 한쪽 발목, 무릎 등에 이상이 오면 반대쪽에도 영향을 주더라고요.” 예 교수는 2018년 승마에도 입문했었다. 주위 권위로 시작했는데 속도감에 자칫 떨어지면 다칠 수 있어 1년 반 정도 하고 그만 뒀다. 그는 “다치면 다른 운동을 못할 수 있어 그만 뒀다”고 했다. 예 교수는 “어느 순간 운동은 하루 세끼 먹고 잠을 자야 하듯 안 하면 안 되는 삶의 일부가 됐다”고 했다. 요즘엔 부정기적이지만 사실상 전국을 돌아다니며 달린다. 너마클, 마마동 회원들의 권유에 따라 경기 파주 감악산, 수원 광교, 성남 분당 율동공원, 과천 관문운동장 등에서 만나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원정을 가기도 한다. 그는 “그 지역에 사는 회원들이 추천해주면 가서 달리는 식이다”고 했다. 남편도 함께 달릴까? 예 교수는 “솔직히 나 보다는 운동을 열심히 하진 않는다”고 했다. 피트니스센터에 다니면서 운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예 교수보다는 열정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자주 함께 운동할 계획이라고 했다. “제가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당일치기로 한라산을 다녀왔어요. 눈 덮인 한라산이 너무 아름다워 자랑을 했더니 남편이 부러워하더라고요. 그래서 5월에 함께 한라산에 가기로 했어요. 이제 자주 함께 운동할 겁니다.” 예 교수는 ‘달리기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직접 말하고,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달리기가 주는 유익함을 홍보하고 있다. 마마동에선 신자가 아니더라도 회원으로 받아주는데 함께 달리다 보면 신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가족 및 제자들에게도 달리기를 권한다. “솔직히 우리 아이들은 운동엔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딸은 운동하는 엄마 아빠를 보며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는 하다고 하더라고요. 제자들에게도 얘기는 하는데…. 아직 어려서인지 별로 관심이 없어요. 수업 시간에 ‘마라톤 풀코스가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 너희들이 서울 양재동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는 거리를 달리는 것이다’고 하면 놀라기는 하지만 정작 달릴 생각은 하지 않더라고요.” 예 교수는 4월 16~17일 열리는 2022서울마라톤 비대면 버추얼 마라톤에도 참가신청을 했다. 그는 “매년 첫 메이저 마라톤대회에서 너마클 후배들이 첫 풀코스에 도전한다. 선배들이 응원하며 함께 달리는 게 전통이다. 하프코스를 달릴지, 풀코스를 달릴지 결정은 하지 않았다. 컨디션 봐서 후배들을 위해서 풀코스를 달릴 수도 있다. 정 안 되면 2일에 걸쳐 풀코스를 달려도 되니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달리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중요성도 다시 알았다. 예 교수는 “함께 응원하며 달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해본 사람은 안다. 인생은 혼자 살 수 없다.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기쁨이 돼주면 얼마나 좋은가”라고 했다. 달리면서 평생 함께 할 ‘건강한 취미’를 얻었다고 하는 예 교수는 “한 살 더 먹으면 몸이 달라진다는데 난 아직도 몇 년 전과 똑같은 거리를 매주 달리고 있다. 그럼 실제론 더 젊어진 것 아니냐”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예진희 용인예술과학대 항공서비스과 교수(59)는 8년 전 남편이 갑자기 “부부가 함께 건강해야 한다”며 운동을 권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운동을 싫어했고 결혼한 뒤엔 사회생활에 육아까지 하면서 운동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건강해야 생을 마칠 때까지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2005년이었을 겁니다. 무더운 여름날 통역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집중하지 못하기에 ‘너희는 꿈이 뭐니’라며 잠깐 샛길로 샌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아이들에게 무심결에 ‘마라톤 풀코스 완주가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야’라고 했어요.” 꼭 지켜야 할 약속은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달리기와 마라톤 등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혼자 동네 뒷산을 오르기도 하고 걷고 달리는 등 체계적인 운동은 아니지만 학생들과의 약속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했다. 남편의 권유 뒤 주위를 살펴보니 바로 함께 달릴 사람들이 보였다. 예 교수는 모교 출신 동호회인 ‘너마클’(서울 여의도고 마라톤클럽)에 가입했다. “그때부터 선배님들 지도를 받으며 체계적으로 함께 달리기 시작했어요. 정기 모임은 주로 서울 반포한강시민공원에서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집(경기 성남시 분당구) 근처 탄천도 달리고 불곡산도 올랐어요.” 천주교 신자인 그는 분당성마태오성당마라톤동호회(마마동)에도 가입해 토요일엔 마마동에서, 일요일엔 너마클에서 달렸다. 주중에도 2일 10km씩 달렸다. 거리로 따지면 주당 30∼40km를 달렸다. 2014년 가을 중앙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4시간 37분. 그는 “해냈다는 성취감에 날 듯이 기뻤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했다. “달리니 세상이 달라졌어요. 체력이 좋아지면서 삶이 활기차졌죠. 모든 일에 자신감도 넘쳤죠. 운동하고 출근하면 에너지 넘치는 하루가 돼요. 사실 교수란 직업이 좀 점잖은 측면이 있는데 풀코스를 완주한 뒤엔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근성이 나왔어요. 과거 같으면 학생들을 지도할 때 어렵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기도 했는데 이젠 끝까지 함께 가고 길을 찾아주려고 노력합니다.” 예 교수는 동아, 춘천 등 메이저 대회를 달리다 2017년 말 중앙을 끝으로 풀코스를 접었다. 풀코스 총 5회 완주. 기록을 단축하겠다는 욕심에 훈련도 열심히 했고 마지막 레이스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4시간 32분이란 개인 최고 기록도 세웠다. 예 교수는 “내 한계를 알았다. 기록 욕심에 빨리 달렸는데 그다음 날 왼쪽 발목 심줄과 인대가 늘어났다. 그때 사람마다 역량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고 운동에 대한 궤도를 수정했다”고 했다. 그동안의 목표가 풀코스 기록 단축이었다면 즐겁게 오래 달리기로 바꾼 것이다. 이후 대회는 10km와 하프코스 등 단축마라톤에만 나갔다. 물론 평소대로 주당 3∼4회, 30∼40km는 꾸준히 달리고 있다. “한때 기록, 완주 횟수 등에 집착했는데 즐기며 꾸준하게 달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친 뒤 오래 달리기 위해선 보조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웨이트트레이닝과 요가, 필라테스 등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다 보면 몸이 틀어진다거나 이상이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필라테스는 그것을 잘 잡아줘요. 근육운동을 하면 근육 세포가 쫀득쫀득하게 세워지는 듯한 힘이 느껴져요.” 웨이트트레이닝은 주 3회, 필라테스는 주 2회를 한다. 여러가지 운동을 병행하면서 운동에서도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예 교수는 “어느 순간 운동은 하루 세끼 먹고 잠을 자야 하듯 안 하면 안 되는 삶의 일부가 됐다”고 했다. 달리면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예 교수는 “함께 응원하며 달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해본 사람은 안다. 인생은 혼자 살 수 없다.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기쁨이 돼주면 얼마나 좋은가”라고 했다. 달리면서 평생 함께할 ‘건강한 취미’를 얻었다는 예 교수는 “한 살 더 먹으면 몸이 달라진다는데 난 아직도 몇 년 전과 똑같은 거리를 매주 달리고 있다. 그럼 실제론 더 젊어진 것 아니냐”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춥던 겨울이 어느새 가고 달리기 좋은 계절 봄이 왔다. 이번엔 4월16, 17일 양일간 열리는 2022서울마라톤 겸 제92회 동아마라톤대회가 열리는 것에 맞춰 달리기 초보자를 위한 정보를 제공 하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오미크론 확산으로 마스터스 부문은 비대면 버추얼 대회로 열린다. 버추얼 레이스는 달리는 거리와 시간을 체크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각자 원하는 장소에서 달리면 된다. 서울마라톤 마스터스 참가자 2만 명이 모집 시작 5일 만에 다 찼다. 비대면 활동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사람들은 생활 스포츠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실내를 피하고 야외, 특히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전거를 타고 집 주변 공원을 걷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그런데 달리는 사람은 예상 외로 크게 늘지는 않았다.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일명 ‘동마(동아마라톤)’에 마스터스마라토너들에게 공식적으로 소개한 ‘워크 브레이크(Walk Break)’ 주법을 소개한다. 2006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77회 동아마라톤에서 당시 50세이던 마라톤 마니아 임용진 씨(66)가 국내 최초로 워크 브레이크 주법으로 페이스메이커를 맡아서 화제가 됐다.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은 모두가 자신의 최고기록을 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마라톤이라는 게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 터. 초반에 과욕을 부려 중반 이후 지쳐 완주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고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미국 및 유럽 등 마라톤 선진국의 마스터스들 사이에선 일찌감치 유행했던 워크 브레이크는 ‘걷다’→ ‘뛰다’를 체계적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으로 미국의 유명 마라토너 제프 갤러웨이가 개발한 달리기 방식이다. 마라톤을 하면서 걷는다고? 쉬지 않고 달려도 될까 말까 하는데 중간 중간 걸어서 좋은 기록이 과연 나올까. 갤러웨이는 어떻게 해야 좀 더 쉽게, 잘 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달리다→걷다’를 체계적으로 반복하는 워크 브레이크주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워크 브레이크 주법으로 여러 차례 완주했던 임 씨는 “오히려 워크 브레이크로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고 말했었다. 임 씨는 “처음 5km까지는 30분(시속 10km)에 나머지 구간은 5km당 29분 30초(10.2km)에 달린다”며 “초반 20km까지는 9분 30초 뛰고 30초 걷기, 나머지는 9분 뛰고 1분 걷기를 반복한다”고 설명한다. 또 32km의 ‘마라톤 벽’을 통과한 뒤에 힘이 남은 주자는 워크 브레이크 없이 계속 뛰어 기록을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임 씨는 “워크 브레이크는 3시간 30분대에서 5시간대까지의 초·중급 마라토너에게 도움이 많이 된다. 특히 40, 50대 장년층,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분들, 막판에 힘이 떨어져 매번 기록 단축에 실패한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 임 씨를 따라 뛴 마스터스마라토너들 대부분이 기록이 더 좋아졌다며 만족해했다. 당시엔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에게 주는 정보였고 페이스메이킹이었다. 이번엔 이제 막 달리고 싶은 초보자들에게 맞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워크 브레이크를 우리말로 풀면 ‘걸으면서 휴식 취하기’다. 그런데 이제 걷기 시작한 사람이 달리다 걷기로 휴식을 취할 순 없을 터. 역 발상으로 걷다가 짧은 시간의 ‘조깅 브레이크(Jogging Break)’를 가져보자. 여기서의 조깅 브레이크는 ‘조깅하며 휴식 취하기’라는 의미가 아니라 ‘조깅하는 구간(Break)’으로 생각하면 된다. 갤러웨이도 달리기 입문자에게 조깅 브레이크를 권한다. 가장 일반적인 게 5분 걷고 1분 조깅하며 달리는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지금부터 5분 걷고 1분 달리기를 하루 30분씩 해보자. 달리는 것은 걷는 것 보다 조금만 빠르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해도 심장 등 신체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면 4분 걷고 1분 조깅, 3분 걷고 1분 조깅을 하다가 1분 걷고 2분 조깅, 1분 걷고 1분 조깅으로 걷은 시간을 줄여나가면 된다. 이게 익숙해지면 시간을 더 늘리면 된다. 시간을 늘릴 때가 언제인지는 자신이 안다. 이 과정을 30분 간 해도 전혀 힘들지 않다면 시간을 늘려도 된다. 시간을 늘렸을 때 힘이 든다면 다시 줄이면 된다. 운동은 ‘기분 좋게 하는 게’ 가장 좋다. 달리기는 걷기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융통성이 있는 운동으로 꼭 야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트레드밀을 사용해 실내에서도 할 수 있다. 초보자들은 올바른 동작에 집중해 강도와 거리를 천천히 늘려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달리기는 신체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는 운동으로 무릎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해서는 안 된다. 걷기나 수영 등으로 무릎을 강화한 다음 하는 게 순서다.다음은 올바른 달리기 방법이다. ①달리기의 개념 달리기는 걷기와 거의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인간은 맹수들을 피하는 등 생존을 위해 달릴 수밖에 없었다. 달리기와 걷기의 차이는 속도다. 시속 7km이상이면 달리기, 이하면 걷기다. 학술적으론 두 발 중 한 발이 항상 땅에 닿아 있으면 걷기, 그렇지 않으면 달리기다. 처음 달리는 사람이라면 걷듯이 달리면 된다. 무슨 뜻이냐면 걷는 자세를 좀 더 빨리 하며 발동작과 팔 동작을 좀 더 크게 하면 된다. ②올바른 자세 앞서 설명했듯이 달리기는 높은 강도에 강한 충격을 수반하는 운동으로 올바른 기술과 동작을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 훌륭한 유산소운동인 달리기로부터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는 것만큼이나 부상을 입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잘못된 동작으로 달리면 여지없이 등 아래쪽과 엉덩이에 통증이 온다. ③목과 어깨 걷기를 할 때 경험하는 가장 일반적인 문제 중 하나는 목, 어깨 그리고 등 위쪽이 뻐근해지는 것이다. 달리기를 할 때는 어깨를 들어 올리려는 경향이 생기는데 그 결과 걸을 때보다 목에 훨씬 더 심한 긴장이 생긴다. -목을 펴고 어깨의 힘을 빼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달리는 초반에 어깨를 낮추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세가 더 편안하다는 것을 느낀다. 본격적으로 달릴 때는 어깨를 들어 올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달리는 동안 목과 어깨는 뻣뻣하게 고정시키기보다는 힘을 뺀 편안한 상태로 쉽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목이 경직돼 불편함을 느끼면 간단한 목 스트레칭으로 풀어준다. ④몸통 달리기를 하면 등 아래쪽과 복부 근육을 중심으로 상당한 힘이 들어간다. 따라서 이 부위를 강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붙어 있는 체지방도 연소시킬 수 있다. -달리기를 할 때 몸통은 반듯한 자세로 유지하고 복부는 팽팽하게 당긴다. 전력질주 할 때처럼 몸이 앞으로 쏠린 자세로 뛰면 힘이 든다. 무릎과 발목에 더 큰 부담을 줘 부상을 당할 수 있다. 속보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달리기를 할 때도 반듯한 자세를 취해야 힘이 덜 들고 다리를 힘차게 움직일 수 있다. 달리기를 한 후에 복근이 긴장돼 있는 경우는 달릴 때 정확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복부에 힘을 줬기 때문이다. -복근과 등 근육을 강화하기 위한 운동을 하면 좋다. 상체가 강하면 강할수록 달리기를 하는 것이 쉬워지며 몸에 주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등을 반듯하게 세우고 상체와 어깨가 구부러지지 않도록 한다. 등을 반듯하게 세우면 상체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으며 편안한 자세로 쉽게 달릴 수 있다. ⑤엉덩이와 엉덩이 근육 복근과 등 아래쪽 근육이 흔들리지 않고 고정돼 있으면 엉덩이는 몸의 균형을 잡아주게 된다. 엉덩이 근육은 달리기에 필요한 힘을 제공한다. -달리기를 할 때 엉덩이 근육은 다리에 힘을 제공해 몸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일반적으로 생기는 문제는 사람들이 엉덩이 근육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허벅지 뒤쪽 근육인 대퇴이두근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퇴이두근이 긴장되고 등 아랫부분에 통증이 생기는 것이다. -달리기를 할 때는 엉덩이 근육이 다리를 조종하는 듯 한 느낌이 들어야 한다. 엉덩이 근육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달리기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⑥다리와 발 달리기를 시작할 때 명심할 것은 너무 심하게 자신을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무릎을 높이 들어 올리고 보폭을 크게 하면서 통통 뛰어가듯이 달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달리면 금방 맥이 빠지고 발목과 무릎 관절에 불필요한 부담이 간다. 속보기술을 모두 습득했다면 이와 유사한 달리기 기술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걷듯이 달리는 게’ 가장 편안한 달리기법이다. 그러나 어느 한쪽 발이 꼭 바닥에 닿아 있어야 하는 걷기와는 다르게 달리기는 두 발이 모두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발을 땅에 밀착시키고 힘 있고 바른 자세를 유지한다. -달리기를 할 때 몸이 위로 튀듯이 뛰지 않는다. -발꿈치로 착지해서 발을 땅에 굴리듯이 한 다음 발끝을 땅에서 뗀다. 엉덩이 근육과 대퇴이두근의 힘을 사용한다. -보폭을 작게 해서 달리는 것이 힘이 덜 든다. ⑦달리기 입문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달리기는 걷기로 체력을 키운 뒤 시작하는 게 좋다. 앞에서 설명했듯 처음엔 조깅 브레이크를 하듯 걷다 뛰다를 반복하다 나중에 뛰는 게 좋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운동의 강도 조절이다. 달리기는 고강도 유산소운동으로 심박수가 아주 빠르게 증가한다. 따라서 계속 해오던 달리기 방식이 쉽게 느껴질 때 강도를 높이는 게 좋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사막을 달리던 그의 도전은 산으로 바뀌었다. “사막은 다 가봤으니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로 한국나이 80세인 이무웅 씨의 도전은 끝이 없었다. 그는 “내 몸을 극한으로 치닫게 한 뒤 그것을 이겨내면 밀려오는 쾌감, 언젠가부터 그것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2018년 8월 고비사막마라톤을 완주하고 돌아온 뒤인 8월 18일 dongA.com에 소개했던 인물이다. 사막에서 산으로 바뀐 그의 도전 스토리를 전한다. “올 6월 유럽 조지아에서 6박7일간 250km를 달리는 트레일러닝 대회 참가신청을 마쳤습니다. 그 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좀 잠잠해지겠죠? 제가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 말립니다. 그 나이에 어떻게 하냐고. 그럼 ‘해봤어?’라고 하죠. 어느 순간 돌아가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께서 했던 말을 제가 쓰고 있어요.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씨는 코로나19 탓에 2년 넘게 해외로 나가지 못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바로 직전인 2020년 2월 초 서아프리카 기니만에 있는 상투메프린시페라는 조그만 섬나라에서 열린 5박6일간 200km를 달리는 트레일러닝이 마지막 도전이었다. 올해 다시 그 도전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 씨는 1990년대 중반 골프에 입문했다가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다른 운동을 찾다 달리기에 빠져들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2015년 작고)이 조깅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달릴 때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냅다 뛰었습니다. 그런데 150m인 운동장 트랙 절반도 못 돌고 숨이 막혔죠. 허허, ‘한바퀴도 못 도내’하며 한탄하고 돌아섰어요. 다음 날 또 달렸어요. 또 한바퀴도 돌지 못했죠. 그 때 알았습니다. 내가 너무 욕심을 냈다는 것을…. 천천히 달리면 되는 것을…. 천천히 달렸더니 한바퀴, 두 바퀴 계속 달릴 수 있었습니다. 많이 달리니 땀이 흘렀고 샤워를 하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운동장을 벗어나 아파트 단지 외곽을 달렸다. 매일 달리니 한번에 뛰는 거리도 늘었다. 공식대회에서 검증을 받고 싶었다. 1998년 10월 춘천마라톤 10km에 신청했다. “당시 내 나이가 55세였다. 속칭 중늙은이였다. 혹시나 달리다 변이 생길까봐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갔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엔 심각했다.” 56분45초. 첫 완주 치고는 좋은 기록이었다. 1999년 3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동아마라톤에서 하프마라톤을 완주했다. 1시간56분51초. “솔직히 마라톤대회를 잘 몰라 10km 다음엔 15km, 20km 등 차근차근 출전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바로 하프마라톤에 출전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아들 딸 대신 회사 직원들과 야유회를 함께 가는 식으로 경주로 갔죠. 역시 혹시나 잘못될까 두려웠어요.” 풀코스는 전문적인 훈련하는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꿈도 꾸지 못했다. 2000년 10월 춘천마라톤 하프코스를 달리려 했는데 그해부터 하프코스가 없어졌다. 낭패였다. 어쩔 수 없이 풀코스를 신청했다. “참가신청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하프인 21.0975km를 달렸으니 그 거리 이상으로만 달리자는 생각으로 출전했어요. 사실 미리 포기를 생각하고 갔어요. 25km를 넘기고 마의 35km에선 모든 관절이 아프고 근육 경련이 일어 포기하고 싶었죠. 하지만 달려온 게 아까웠습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해 결국 완주했습니다. 4시간56분48초. 그것도 제한시간인 5시간 이내 완주였죠. 세상이 다 내 것 같았습니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는 사람이 다 그렇듯 달린 땐 고통 속에서 ‘내가 다시 풀코스에 출전하면 바보다 바보’라고 하다가도 결승선만 통과하면 ‘내가 언제 그랬지’하며 다음 대회를 찾듯 이 씨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달렸다. 어느 순간 풀코스가 싱겁다고 느껴졌다. 좀 더 고통스러운 게 없나 찾았다. 100km 울트라마라톤이 보였다. 이 씨의 풀코스 개인 최고기록은 2004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49분 25초다. “전 이상하게도 늘 좀 더 힘든 것을 찾았어요. 하나에 만족하지 못했죠. 더 힘든 것을 몸으로 느끼고 싶었습니다. 2002년 서울울트라마라톤 100km를 13시간30분48초에 완주했습니다. 제한시간 14시간 이내 완주였어요. 마라톤 풀코스하고는 완주 감동이 달랐어요. ‘뭐 또 없나’하며 2003년 2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극한의 극한을 찾다 2004년 사막마라톤을 접했다. 당시 사막마라톤에 빠져 있던 극지마라톤 전문가 유지성 아웃도어스포츠코리아(OSK) 대표(51)와 함께 했다. 사막마라톤은 약 250km를 6박7일간 달리는 극한마라톤이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이루는 등 지금까지 지구촌 극지마라톤을 약 20차례나 다녀왔다. 2번 이상 간 곳도 있다. 사하라는 섭씨 50도가 넘는 모래 위를 달린다. 고비사막은 계곡과 산, 사막을 건넌다. 아카타마는 해발 4000m를 넘는 고지를 달려 ‘고산증’을 극복해야 한다. 남극은 추위를 이겨야 한다. 한마디로 극한과의 싸움이다. 솔직히 힘들다. 하지만 그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보면 목표로 하는 곳은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그는 달리면서 건강 하나는 자신한다. 어떤 질환 약을 아직 먹는 게 없다. “하루 세끼 다 잘 먹고 술도 잘 마신다”고. 체력이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부터 100km 울트라마라톤에 출전하지 않는다. 시속 8km로는 달려야 하는데 이제 7km로 밖에 못 달린다. 제한 시간 안에 들어오는 게 버겁다. 밥 먹듯이 완주했던 100km 인데…. 그는 “코로나19가 없어 평소대로 계속 대회에 출전했다면 혹시 달라졌을 수도 있다. 더 열심히 준비했을 테니까”라고 했다. 이 씨는 경기 김포 집 주변 문수산(해발 376m)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키우고 있다. 또 주당 3회 평균 12~16km를 달린다. 평일 혼자 2회 달리고 과거 함께 달렸던 마라톤회원들과 주 1회 달린다. 그의 모토는 ‘살면서 건강하자’다. 그는 “사람의 수명을 누가 장담할 수 있나. 환갑 때 고등학교 동창들 10명 넘게 풀코스 도전시켰는데 지금 달리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 하프, 10km로 계속 줄이더니 이젠 ‘다리에 힘이 없다’고 안 달린다. 난 달리는 게 좋다. 힘들어도 그 느낌이 좋다. 내가 아프면 가족들에게 부담이 된다. 그래서 달린다”고 했다. 이렇게 많이 달리는데 몸에 부작용은 없을까. 2014년 허리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는 “2010년부터 기록이 떨어지면서 달리는 게 힘들었다.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 물론 그 때도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다. 2014년 사막마라톤 입문 10주년을 기념해 모로코사하라사막 마라톤에 도전했는데 너무 힘들어 포기했다. 그리고 9월 수술 받았다”고 했다. 이 씨는 “나이 들어 10kg 이상 배낭을 메고 달린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나이 들면 키도 줄고 몸이 오그라드는데 10kg 이상을 메고 사막을 달렸으니 협착이 급격히 진행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척추 협착증 수술 이후 다시는 안 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놈의 ‘땀 맛’이 또 생각났다. 수술한 뒤 한달도 되기 전에 10km를 완주했다. 전혀 이상이 없었다. 하프, 풀, 100km 울트라…. 2015년 스리랑카 220km 울트라마라톤까지 완주했다. “완전히 내 몸이 과거로 되돌아갔어요. 너무 기뻤죠. 하지만 안 다치게 노력했습니다. 몸이 부드러워야 안 다칩니다. 몸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아침마다 요가를 했죠. 근육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눈 뜨자마자 합니다. 각 관절 및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죠. 그래야 오래 달릴 수 있습니다.” 그의 철칙은 몸에 맞게 달리는 것이다.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고. 그는 “대회에 출전해도 내 몸이 싫다고 하면 바로 멈춘다. 그래서 내 운동 수명이 긴 것 같다. 우리나라나 전 세계적으로 내가 울트라마라톤 하는 최고령에 속한다. 그 자부심을 오래 느끼려면 천천히 욕심을 버리고 달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250km 산악마라톤에 또 도전한다. 그는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결과는 그 누구도 모른다. 처음부터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면 도전은 불가능하다. 그냥 가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도전 그 자체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1990년대 중반 당시 김영삼 대통령(2015년 작고)이 조깅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달리기 시작했다. 올해로 한국 나이 80세인 이무웅 씨는 그냥 달리지 않는다. 사막과 산을 달린다. 그는 “내 몸을 극한으로 치닫게 한 뒤 그것을 이겨내면 밀려오는 쾌감, 언젠가부터 그것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처음 달릴 때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냅다 뛰었다. 그런데 150m인 운동장 트랙 절반도 못 돌고 숨이 막혔다. 허허, ‘한 바퀴도 못 도네’ 하며 한탄하고 돌아섰다. 다음 날 또 달렸다. 또 한 바퀴도 돌지 못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너무 욕심을 냈다는 것을…. 천천히 달리면 되는데…. 천천히 달렸더니 한 바퀴, 두 바퀴 계속 달릴 수 있었다. 많이 달리니 땀이 흘렀고 샤워를 하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2000년 10월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어느 순간 풀코스가 싱겁다고 느껴져 100km 울트라마라톤으로 갈아탔다. 그리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이루는 등 지금까지 지구촌 극지마라톤을 약 20차례나 다녀왔다. 2번 이상 간 곳도 있다. 사하라는 섭씨 50도가 넘는 모래 위를 달린다. 고비사막은 계곡과 산, 사막을 건넌다. 아타카마는 해발 4000m를 넘는 고지를 달려 ‘고산증’을 극복해야 한다. 남극은 추위를 이겨야 한다. 한마디로 모두 극한과의 싸움이다. 이제 그의 도전은 사막에서 산으로 바뀌었다. “사막은 다 가봤으니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2년 넘게 해외로 나가지 못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바로 직전인 2020년 2월 초 서아프리카 기니만에 있는 상투메프린시페라는 조그만 섬나라에서 열린 5박 6일간 200km를 달리는 트레일러닝이 마지막 도전이었다. “올 6월 유럽 조지아에서 6박 7일간 250km를 달리는 트레일러닝 대회 참가 신청을 마쳤다. 주위에서 그런다. 그 나이에 어떻게 하냐고. 그럼 ‘해봤어?’라고 한다. 어느 순간 돌아가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께서 했던 말을 내가 쓰고 있었다.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힘들다. 하지만 그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목표로 하는 곳은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그는 달리면서 건강 하나는 자신한다. 어떤 질환 약을 아직 먹는 게 없다. “하루 세 끼 다 잘 먹고 술도 잘 마신다”고. 체력이 예전만 못 한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부터 100km 울트라마라톤에 출전하지 않는다. 시속 8km로는 달려야 하는데 이제 7km로밖에 못 달린다. 제한 시간 안에 들어오는 게 버겁다. 밥 먹듯이 완주했던 100km인데…. 그는 “코로나19가 없어 평소대로 계속 대회에 출전했다면 혹시 달라졌을 수도 있다. 더 열심히 준비했을 테니까”라고 했다. 이 씨는 경기 김포 집 주변 문수산(해발 376m)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키우고 있다. 또 주당 3회 평균 12∼16km를 달린다. 평일 혼자 2회 달리고 과거 함께 달렸던 마라톤 회원들과 주 1회 달린다. 그의 모토는 ‘살면서 건강하자’다. 그는 “사람의 수명을 누가 장담할 수 있나. 환갑 때 고등학교 동창들 10명 넘게 풀코스 도전시켰는데 지금 달리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 하프, 10km로 계속 줄이더니 이젠 ‘다리에 힘이 없다’고 안 달린다. 난 달리는 게 좋다. 힘들어도 그 느낌이 좋다. 내가 아프면 가족들에게 부담이 된다. 그래서 달린다”고 했다. 그의 철칙은 몸에 맞게 달리는 것이다.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그는 “대회에 출전해도 내 몸이 싫다고 하면 바로 멈춘다. 그래서 내 운동 수명이 긴 것 같다. 우리나라나 세계적으로 내가 울트라마라톤 하는 사람 중에 최고령에 속한다. 그 자부심을 오래 느끼려면 천천히 욕심을 버리고 달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250km 산악마라톤에 또 도전한다. 그는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결과는 그 누구도 모른다. 처음부터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면 도전은 불가능하다. 그냥 가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도전 그 자체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한 때 국내 마스터스마라톤 여자 최강으로 군림했던 정순연 씨(48)도 마찬가지다. “2020년 3월 열리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제 개인 최고기록을 깰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트랙에서 1만m를 36분10초에 달리는 등 모든 훈련 기록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2월 코로나19가 터져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힘든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 이후 모든 마라톤대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기록을 깰 기회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정 씨는 2015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43분 13초의 국내 여자 마스터스 마라톤 풀코스 최고기록을 세웠다. 이후 이 기록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 “동아마라톤 코스가 가장 좋잖아요. 솔직히 2015년 동아 이후 더 몸이 좋은 때가 있었는데…. 코스도 다르고 계절도 다르고 기록 경신을 하지 못했죠. 2020년엔 달랐어요. 솔직히 2015년엔 준비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좋은 기록이 나왔다면 2020년엔 준비도 잘 했고 컨디션도 좋았어요. 동아마라톤만 열렸다면 2시간 43분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코로나19는 정 씨의 투쟁력도 감소 시켰다. 그는 “대회가 없어지니 체계적인 훈련도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가끔 군소 대회가 열리긴 했지만 기록을 내려면 동아마라톤 같은 메이저 대회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달리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알음알음으로 소규모로 달리다 네이버에 Running Mate란 카페를 개설하고 함께 달리고 있다. 회원이 130여명이나 된다. “정기모임은 주말에 주 1회하고 주중엔 마음에 맞는 회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달리고 있어요. 기본부터 지도도 하고, 자체 대회도 만들어 달리기도 하고.” 정 씨는 한 달에 300km는 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 4회 이상은 훈련을 하면서 인터벌트레이닝도 한다. 장거리는 15~20km를 달리고 있다. 장거리는 여럿이 함께 달리고 인터벌 트레이닝은 2~3명이 어우러져 한다. 마라톤동호회에는 나이 많은 회원들이 많은데 Running Mate엔 3040 비교적 젊은 회원들이 많단다. 대부분 직장을 다니며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라고. “재미나게 즐겁게 달리는 게 모토입니다. 건강을 위해 달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제든 대회가 열리면 기록에 도전하기 위해서 나름 체계적으로도 훈련하고 있어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소규모로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정 씨는 “산을 달리는 것은 좋아한다. 하지만 대회 출전했을 때 몇 번 넘어지다 보니 트레일러닝 대회에는 잘 참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학 1학년 때까지 육상 중장거리 선수생활을 했던 정 씨는 어느 순간 운동할 동력을 잃어버렸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진 운동을 안 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좀 느슨하게 살다보니 살이 쪘고 그러다 아예 운동을 놓았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육아에 전념하면서는 “운동이라는 개념 자체를 잊고 살았다”고 했다. “아이 좀 키웠더니 마라톤 붐이 일어났어요. 그래도 달릴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에어로빅을 함께 하는 사람들 끼리 2006년 9월 대구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나가자고 해서 10km를 달렸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 기분 처음이었습니다. 달리는 사람도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도 열광하고…. 제 맘에 딱 와 닿았죠. 그 때부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고통 뒤에 오는 짜릿한 쾌감이 그를 매료시켰다. 엘리트 선수였던 학창시절엔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었지만 이젠 자발적으로 즐기면서 하는 것이 달랐다. 역시 한 때 선수로 활약해서인지 바로 실력이 향상됐고 재미도 붙었다. 학창시절 10km를 33분20초에 달렸던 그는 바로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에게는 꿈의 기록인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에 도전했다. 몇 차례의 실패 끝에 2009년 3월 울산마라톤에서 2시간 58분06초 처음 서브스리를 달성했다. 이 때부턴 서브스리는 식은 죽 먹듯 했다. 그해 2주 뒤 열린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55분36초, 2010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51분20초로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한 뒤 2015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개인 최고기록이자 국내 마스터스마라톤 여자 풀코스 최고기록을 세운 것이다. 달리면서 자연스럽게 예전의 몸매를 돼 찾았다. “6kg이 빠졌다.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내겐 엄청 부담스러운 6kg이었다. 그게 빠지니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서울국제마라톤, 경주국제마라톤 여자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는 등 전국 대부분의 마라톤을 휩쓸었다. 마스터스마라톤 계에선 ‘달리는 얼짱 마라토너’로 이름을 날렸다. 정 씨는 2010년 ‘동아마라톤 올해의 선수상’ 20·30대 여자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해 동아마라톤에서 좋은 성적을 낸 마스터스 마라토너 중에서 선발해 주는 상이다. 정 씨는 그해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51분 20초, 10월 경주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55분 44초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마라톤은 그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친구였다. “달리면서 극한 상황을 경험해서인지 살면서 감정 컨트롤이 잘 됐어요. 가정은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스트레스가 생기는데 전 달리기로 다 풀었어요. 달리면 모든 것을 떨쳐내고 저 자신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제 50세를 눈앞에 뒀다. 100세 시대, 50년을 더 살아야 한다. 그 때까지 달릴 수 있을까? “안 가본 세상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달리는 게 즐겁고 아직 건강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기록보다는 즐겁게 달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즐겁게 달리다보면 평생 달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목표가 없진 않다. “제 최고기록은 이제 나이가 들어 깰 수 없겠죠. 하지만 제가 달릴 수 있을 정도의 기록을 목표로 설정하고 달릴 겁니다. 즐기되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달리면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기쁨도 아주 큽니다. 그게 달리는 재미죠. 코로나19가 사라지는 순간 전 다시 저만의 목표를 위해 달릴 겁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하이 서울(HI SEOUL), 하이 에너지(HI ENERGY). 잠들어 있던 러너들의 에너지를 깨운다.’ 4월 16∼17일 비대면 버추얼 레이스로 열리는 2022 서울마라톤 공식 후원사인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아디다스는 러닝에 대한 깊고 오래된 관심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서울마라톤을 통해 달림이들과 더욱 긴밀하게 소통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여성 달림이들을 위한 러닝화 신제품 ‘울트라부스트 22’와 함께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울트라부스트 22는 아디다스가 최근 발매한 제품으로 여성의 발에 최적화됐다. 뛰어난 에너지 리턴 쿠션 기능을 갖췄으면서 편안함도 추가된 것이 특징이다. 먼저 2022 서울마라톤 울트라부스트 에너지 패키지 이벤트다. 울트라부스트 22와 서울마라톤 참가권이 포함된 패키지다. 이 패키지는 7일부터 17일까지 아디다스 애플리케이션(앱)과 서울 강남·홍대 브랜드 센터에서 울트라부스트 22 이벤트 제품을 구매한 아디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선착순 450명에게 배번과 함께 아디다스 러닝 티셔츠 등이 포함된 서울마라톤 무료 참가권을 제공한다. 새롭게 출시된 아디다스 공식 앱을 통해 울트라부스트 22를 구매한 경우 앱 내 이벤트 페이지를 통해 참가권을 신청하면 된다. 아디다스 강남 브랜드 센터와 홍대 브랜드 센터에서는 패키지를 구매하면 참가권 코드가 포함된 쿠폰을 증정한다. AR(adidas Runners) 10K 준비반도 운영한다. 10K를 효과적으로 완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으로 AR서울 멤버라면 누구나 참가 신청이 가능하다. 4일부터 9일까지 AR서울 홈페이지(www.adidas.co.kr/adidasrunners/)에서 지원할 수 있다. 40명을 선발해 2022 서울마라톤 참가권을 주며, 12일부터 4월 16일까지 6주간 체계적인 10K 준비 트레이닝 기회도 제공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디다스의 공식 온라인 스토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2 서울마라톤 참가 접수는 14일부터 시작한다. 서울마라톤 홈페이지http://seoul-marathon.com, 카카오톡 친구에서 ‘서울국제마라톤’ 검색 후 일대일 채팅 또는 e메일(marathon@donga.com)로 문의하면 된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탁구 국제심판이 된 마영삼 전 주 덴마크 대사께서 ‘탁구가 아주 좋은 운동’이라고 강조하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60세 이후 정년퇴직한 뒤 평생 스포츠 하나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죠. 그래서 바로 집 근처 탁구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레슨도 받고 회원들하고 경기도 하고…. 삶에 큰 활력소가 됐습니다. 여러 운동 중 탁구가 100세 시대 건강관리에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찬우 외교부 국립외교원 명예교수(62)의 ‘탁구 사랑’은 이렇게 시작됐다. 주케냐 대사에서 돌아와 2014년 잠시 국립외교원 글로벌리더십과정에 파견 나갔을 때 다시 탁구를 만나게 됐다. 다른 여러 가지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대학시절 친구들과 심심풀이로 탁구를 쳤을 때와는 전혀 다른 탁구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그는 “업무 스트레스도 날려주지만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느는 재미가 쏠쏠했다”며 “평생 스포츠로 탁구가 최고”라고 강조했다. “서울 반포 집 근처 이상국탁구교실에서 주중에 1회 2시간 레슨 받고, 주말에는 2~3시간 회원들과 돌아가며 경기를 했습니다. 포핸드와 백핸드 스트로크, 커트냐 스핀이냐, 다양한 기술이 극복해야 할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배우고 훈련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이 재밌었습니다. 다른 회원들이 쓰는 기술을 받아내지 못하면 그 숙제를 풀기 위해 동영상을 찾아보고 연구했습니다.”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듯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늘었다. 회원들끼리의 경쟁이지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가 자극이 됐고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선순환이 이뤄진 것이다. 2016년엔 생활체육 탁구대회에도 2차례 출전해 6부 리그 복식에서 상위권에 입상하기도 했다.2018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주 브라질 대사로 나갔을 땐 탁구를 소통과 교류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대사관 직원이 30여명인데 업무 성과를 잘 내려면 결국 소통이 잘 돼야 합니다. 제가 가기 전부터 직원들끼리 탁구를 치고 있었는데 제가 가면서 더 활성화됐죠. 초코파이와 라면 등을 상품으로 걸고 탁구 대회를 연 2회 개최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상품이 중요한 게 아니라 탁구로 즐겁게 한바탕 어우러지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브라질 현지에 와 있는 말레이시아, 베트남, 튀니지, 알제리, 카메룬 등의 대사 및 직원들하고도 탁구 교류를 했다. 브라질-한국의원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는 루이스 미란다 하원의원 등 브라질 관계자들과도 탁구를 쳤다.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는데 전반적으로 운동을 좋아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아카데미가 우리와는 다른 의미인 ‘피트니스센터’로 쓰이고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아카데미에서 신체단련을 하고 있었고, 동네마다 탁구장도 있어 쉽게 탁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더 이상 탁구 교류를 이어갈 순 없었다. 하지만 운동으로서의 탁구는 멈추지 않았다. 8년 전 탁구를 시작할 때 강제로 함께 입문시킨 아내와 랠리를 하면서 땀을 뺐다. 1984년 외교부에 들어간 김 교수는 외교부 환경협력과장과 환경부 국제협력관, 정부 기후변화 대사 역임하는 등 외교관 생활의 대부분을 환경외교에 바쳤다. 그는 지난해 ‘사례를 통해 살펴본 한국의 환경외교’란 책도 썼다. 김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탁구는 주 2회 정도 친다. 처음 시작했듯 평일에 레슨 2시간을 받고 주말에 회원들과 어울려 경기하는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유산소 운동인 탁구만 쳤는데 이젠 근육을 키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조만간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탁구는 나이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실력이 비슷하면 누구나 함께 칠 수 있죠. 동작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 포핸드나 백핸드 랠리만으로도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부상 위험 없이 건강도 챙길 수 있습니다. 시간과 경비도 얼마 들지 않아요. 주변에 탁구장이 있으면 라켓에 신발, 운동복만 있으면 됩니다. 피트니스는 어떤 면에선 건강을 위해 억지로 해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탁구는 치면 칠수록 재미가 있습니다. 최고의 실버 스포츠라고 느낍니다.” 이상국탁구교실을 운영하는 이상국 전 한국탁구국가대표팀 감독(72)은 “탁구는 바쁜 현대인들이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좁은 공간에서 다양한 운동량에 맞게 탁구를 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에겐 움직임을 많게, 나이 든 분들에게는 적은 움직임으로도 활동량을 높여주는 등 남녀노소가 다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든 칠 수 있는 ‘전천후 스포츠’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반포 재개발로 집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주변에 탁구장이 없어 반포까지 오가며 탁구를 친다. 그는 “탁구는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 브라질에선 아내랑 쳤는데 집 주변에 탁구장이 없어 지금은 혼자 치고 있다. 하지만 혼자 건강해서 의미가 없다. 부부가 건강해야 한다.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도 탁구다. 조만간 아내랑 함께 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김 교수는 “조금 더 일찍 시작했다면 더 탁구를 심도 있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좀 더 젊었을 때 시작했으면 탁구 기술과 경기 운영 등에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설 수 있었을 것이란 뒤늦은 깨달음이다. “평생 운동으로 스포츠를 시작한다면 가급적 빨리 시작하길 권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실력을 쌓을 수 있고 깊이를 알아야 진정으로 그 스포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탁구를 치다보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사람과 겨룰 때도 있는데 상대의 공을 받아내지 못하면 실망하고 흥미를 잃을 수 있습니다. 어떤 스포츠든 더 도약하려면 어느 정도 기본 바탕은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100세 시대를 살아갈 때 스포츠는 ‘평생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특정 스포츠를 즐긴다면 노년에 늘어난 시간을 잘 활용하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특히 삶의 태도도 달라진다. 보다 나은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스포츠 심리학적으로 운동을 하는 내적 동기의 최고 수준인 감각체험까지 이를 수 있다. 몸을 움직이면서 수준 높은 기술을 발휘하면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스포츠를 즐기면서 기능이 향상되고 그런 발전 된 모습에 주변 사람들의 칭찬까지 받으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노력한다. 김 교수를 포함해 스포츠를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그 스포츠에 애착을 가지는 이유다. 스포츠의 긍정적 선순환 기능이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주케냐 대사에서 돌아와 2014년 잠시 국립외교원 글로벌리더십 과정에 파견 나갔을 때 다시 탁구를 만났다. 여러 가지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대학 시절 친구들과 심심풀이로 칠 때와는 전혀 다른 탁구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김찬우 외교부 국립외교원 명예교수(62)는 “업무 스트레스도 날려주지만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느는 재미가 쏠쏠했다”며 “평생 스포츠로 탁구가 최고”라고 강조했다. “그 무렵 탁구 국제심판이 된 마영삼 전 주덴마크 대사께서 ‘탁구가 아주 좋은 운동’이라고 강조하는 신문 기사를 접했다. 서울 반포 집 앞에 이상국탁구교실을 찾았다. 레슨도 받고 회원들하고 경기도 하고…. 삶에 활력소가 됐다. 60세 이후 정년한 뒤 평생 스포츠를 하나는 해야겠다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여러 운동 중 탁구가 가장 좋다고 판단했다.” 주중에 1회 2시간 레슨 받고 주말에는 2, 3시간 회원들과 돌아가며 경기를 했다. 포핸드와 백핸드 스트로크, 커트냐 스핀이냐, 다양한 기술이 도전이었지만 하나하나 극복해가는 게 재밌었다. 그는 “다른 회원들이 쓰는 기술을 받아내지 못하면 그 숙제를 풀기 위해 동영상을 찾아보고 연구했다”고 했다.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듯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늘었다. 회원들끼리의 경쟁이지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가 자극이 됐고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선순환이 이뤄진 것이다. 2016년엔 생활체육 탁구대회에도 2차례 출전해 6부 리그 복식에서 상위권에 입상하기도 했다. 2018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주브라질 대사로 나갔을 땐 탁구를 소통과 교류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는 “대사관 직원이 30여 명인데 업무 성과를 잘 내려면 결국 소통이 잘돼야 한다. 초코파이와 라면 등을 상품으로 걸고 탁구 대회를 연 2회 개최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브라질 현지에 와 있는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튀니지, 알제리, 카메룬 등의 대사 및 직원들과도 탁구 교류를 했다. 브라질-한국의원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는 루이스 미란다 하원의원 등 브라질 관계자들과도 탁구를 쳤다.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는데 전반적으로 운동을 좋아하는 문화가 있었다. 아카데미가 우리와는 다른 의미인 ‘피트니스센터’로 쓰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카데미에서 신체 단련을 하고 있었고, 동네마다 탁구장도 있어 쉽게 탁구를 접할 수 있었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더 이상 탁구 교류를 이어갈 순 없었다. 하지만 운동으로서의 탁구는 멈추지 않았다. 8년 전 탁구를 시작할 때 강제로 함께 입문시킨 아내와 랠리를 하면서 땀을 뺐다. 1984년 외교부에 들어간 김 교수는 외교부 환경협력과장과 환경부 국제협력관, 정부 기후변화 대사를 역임하는 등 외교관 생활의 대부분을 환경외교에 바쳤다. 그는 지난해 ‘사례를 통해 살펴본 한국의 환경외교’란 책도 썼다. 김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탁구는 주 2회 정도 친다. 처음 시작했듯 평일에 레슨을 2시간 받고 주말에 회원들과 어울려 경기하는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유산소 운동인 탁구만 쳤는데 이젠 근육을 키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조만간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탁구는 나이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 실력이 비슷하면 누구나 함께 칠 수 있다. 동작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 포핸드나 백핸드 랠리만으로도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부상 위험 없이 건강도 챙길 수 있다. 최고의 실버 스포츠라고 느낀다.” 다만 김 교수는 “조금 더 일찍 시작했다면 탁구를 더 심도 있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좀 더 젊었을 때 시작했으면 탁구 기술과 경기 운영 등에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설 수 있었을 것이란 뒤늦은 깨달음이다. 그는 “평생 운동으로 스포츠를 시작한다면 가급적 빨리 시작하길 권한다. 그래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실력을 쌓을 수 있고 깊이를 알아야 진정으로 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탁구를 치다 보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사람과 겨룰 때도 있는데 상대의 공을 받아내지 못하면 실망하고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어떤 스포츠든 더 도약하려면 어느 정도 기본 바탕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100세 시대를 맞아 은퇴한 뒤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정년퇴직 제도에 따라 일을 더 할 수 있음에도 일자리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30~40년이나 남은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할 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일흔을 바라보는 마스터스마라토너 3인방이 펼치는 ‘노년 프로젝트’가 관심을 끈다. 지난해 말 경기도 분당검푸마라톤클럽(이하 검푸) 회원인 유병복(69) 강종수(68) 박동근 씨(68)씨는 망년회를 겸해 막걸리를 한잔 하다 서로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우리 한반도 한바퀴 돌까요?” “자전거로 말이죠.” “무슨 소리입니까…. 걸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약간의 의견 충돌은 있었지만 너도나도 한반도를 한바퀴 도는 것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결국 ‘두 발로 한반도 둘레길 완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건강과 우정을 다지며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 그리고 비무장지대(DMZ) 약 4000km를 4차례로 나눠 함께 걷겠다는 약속이다. 유 씨와 박 씨가 “어떻게 걷느냐 자전거를 타고 가자”고 했지만 강 씨가 “걸어야 대한민국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올 1월 9일 강원 고성으로 떠나 10일 7번 국도 종점을 출발해 16일간 걸어서 부산 해운대에 도착했다. 총 약 570km로 하루 많게는 45km, 적게는 21km를 걸었다. 하루 평균 36km를 걸었다. 강 씨는 “사실 남해안에서 섬을 다 돌면 총 길이가 4000km를 훌쩍 뛰어 넘는다. 중간 중간 잘라서 갈 것을 감안해 한반도 둘레길이 약 4000km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셋은 70세를 눈앞에 뒀지만 오랫동안 마라톤으로 단련된 체력이 바탕이 돼 거뜬히 첫 코스를 완보했다. 유 씨는 “어떻게 걸을까 고민했는데 막상 걸으니 자전거 타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자연을 제대로 느끼면서 걸었다”고 했다. 자전거 타고 돌자고 주장했던 유 씨는 “바다와 산, 들 등 대한민국 동해안을 그대로 보고 느꼈다. 자전거를 탔다면 못 느꼈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고 덧붙였다. 박 씨도 “안 해보면 모른다. 걸어서 건강도 챙겼지만 같은 뜻을 가진 동년배와 함께 했다는 데서 더 큰 의미를 찾았다. 누가 이렇게 함께 걸어주겠나?”고 했다. 강 씨는 “당초 하루 평균 30km 정도씩 여유 있게 걸었으면 더 즐길 수 있었는데 개인 일정 탓에 좀 무리하게 걸었는데 잘 따라줘 고마웠다”고 했다. 더운 여름을 피해 올해 안에 한반도 둘레길을 완보할 계획인 이들은 일찌감치 마라톤에 입문해 건강한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다. 강 씨는 체중감량을 위해 1999년 달리기 시작했다. “그해 9월 한 하프마라톤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그 대회 완주를 목표로 시작했어요. 체중이 84kg이나 나가서 살도 뺄 생각도 있었죠. 그런데 달리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달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러너스 하이(고통스러운 순간을 참고 운동을 계속하면 어느 순간 찾아오는 행복감)’를 마라톤 시작 몇 개월 만에 느꼈어요. 그러니 달리기가 더 재밌어졌고 어느 순간 일상이 됐습니다. 달리기는 무엇보다 시간 날 때 아무 때나 할 수 있어 좋아요.” 2000년 검푸에 가입했고 그해 4월 풀코스를 처음 완주한 뒤 지금까지 풀코스만 100회 넘게 완주했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013년 기록한 3시간11분. 마라톤 시작 1년여 만에 14kg을 감량했고 지금까지 70kg을 유지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철인3종을 병행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킹코스(철인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를 3회 완주했죠. 그 이후엔 올림픽코스를 완주하긴 했지만 킹코스는 참가하지 않았어요.” 킹코스 최고기록은 13시간 30분. 강 씨는 2003년 세계 최고로 불리는 보스턴마라톤에도 다녀왔다. 100km 울트라마라톤에도 여러 차례 참가한 철각이다. 요즘은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서울 둘레길(157km), 북한산 둘레길(65km),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산 종주…. 경기도 주변 수도권엔 광교산과 청계산 등 달릴 수 있는 산이 많이 있어요. 시간만 나면 검푸 회원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달리고 있습니다.” 강 씨는 “80세까지는 풀코스를 내가 정한 기록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강 씨는 지난해에도 3시간 20분에 풀코스를 완주했다. 유 씨는 친구 따라 2002년 마라톤에 입문했다. “평소 건강을 위해 조깅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동을 잘 못할 것이라고 여긴 친구가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하는 겁니다. 명문고 명문대 출신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였죠. 속으로 ‘쟤도 달리는데 내가…’ 하는 심정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좋았습니다.” 건강도 챙겼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 됐다. 검푸 회원들과 어울려 풀코스를 40회 이상 완주했다. 최고기록은 2006년 기록한 3시간19분. 유 씨는 2006년 6일간 250km를 달리는 사하라사막마라톤도 완주했다. “검푸 회원 2명과 함께 갔었죠. 한 명은 빨리 뛰어 나갔고 저하고 나머지 회원 한명은 걸었습니다. 그 회원 다리가 좋지 않아 뛸 수 없었습니다. 저도 굳이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론적으로 보니 걸은 게 너무 좋았습니다. 사막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곳곳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 때 찍은 사진이 400여장이었습니다. 빨리 달린 친구는 고생만 했고 사진도 별로 없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기억에 남는 레이스였습니다.” 유 씨는 철인3종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완주했다.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 약 42km)도 했고 불수사도북 오산종주도 하는 등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박 씨도 건강을 위해 마라톤에 입문했다. “술을 좋아해 체중이 많이 나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부터 혼자 연습하다 2003년 한 마라톤 대회 풀코스에 출전해 고생한 뒤 2004년 검푸에 가입해 회원들과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현재 체중은 10kg이 빠진 65kg. 2007년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47분이 개인 최고기록. 풀코스를 30회 넘게 달렸다. 그는 “330(3시간30분 이내기록)하려고 욕심 부리다 좀 무리했더니 고관절에 이상이 왔다. 그 다음부터는 건강마라톤으로 즐기면서 달리고 있다”고 했다. 박 씨는 환갑기념으로 풀코스를 달린 뒤에는 하프코스 등 짧은 코스를 즐겁게 달리고 있다. 지난해 1월 후두암 1기 판정을 받은 그는 수술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도 꾸준하게 운동하고 있다. 박 씨도 강 씨, 유 씨와 함께 수도권 인근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전 그동안 운동을 열심히 해 건강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술 다음날에도 동네 뒷산을 올랐습니다. 전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력이 아무리 강해도 육체가 버텨주지 못하면 버틸 수 없습니다.” 셋은 두 발로 한반도 둘레길 완보를 마치면 제주 둘레길도 돌 예정이다. 그리고 백두대간도 종주할 계획이다. 이들은 이미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도 다녀왔다. 백두대간 종주를 제안한 유 씨는 “우리는 산을 타고 집사람들은 중간 중간 우리에게 음식 등을 지원하게 하면서 일부 구간을 함께 걷는 ‘부부동반’ 종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입을 모았다. “우린 행운아입니다. 체력 되죠, 시간 되죠, 나이도 비슷합니다. 은퇴한 뒤 이렇게 어울려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 있나요? 100세 시대 이렇게 맘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이들 3인방은 100세 시대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매일 운동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 강 씨는 월 200~300km를 달린다.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을 포함한 거리다. 친구들과 등산도 월 한두 차례 한다. 유 씨도 매일 아내와 함께 10km를 걷거나 달리고 있다. 등산도 자주 한다. 박 씨는 매일 아침 10km를 달린다. 달리는 것을 포함해 하루 2만 보 이상 걸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몸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몸이 건강해야 100세 시대를 즐겁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사람들에게 통용 되는 말이 있다.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는다.’ ‘고인 물은 썩는다.’ ‘누죽달살(누우면 죽고 달리면 산다).’ …. ‘검푸 3인방’은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들었다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지 말라. 일단 걷거나 달려 보라. 그럼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우리 한반도 한 바퀴 돌까?” “자전거로?” “뭔 소리…. 걸어야 제맛이지.” 지난해 말 경기 성남시 분당검푸마라톤클럽(검푸) 회원인 유병복(69) 강종수(68) 박동근(68) 씨 3인방은 망년회를 하다 의기투합했다. ‘두 발로 한반도 둘레길 완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건강과 우정을 다지며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 그리고 비무장지대(DMZ) 약 4000km를 4차례로 나눠 함께 걷겠다는 약속이다. 유 씨와 박 씨가 “어떻게 걷느냐. 자전거를 타고 가자”고 했지만, 강 씨가 “걸어야 대한민국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올 1월 9일 강원 고성으로 떠나 10일 국도 7호선 종점을 출발해 16일간 걸어서 부산 해운대에 도착했다. 총 약 570km로 하루 많게는 45km, 적게는 21km를 걸었다. 하루 평균 36km를 걸었다. 셋은 70세를 눈앞에 뒀지만 오랫동안 마라톤으로 단련된 체력이 바탕이 돼 거뜬히 첫 코스를 완보했다. 유 씨는 “어떻게 걸을까 고민했는데 막상 걸으니 자전거 타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자연을 제대로 느끼면서 걸었다”고 했다. 박 씨도 “안 해보면 모른다. 걸어서 건강도 챙겼지만 같은 뜻을 가진 동년배와 함께했다는 데서 더 큰 의미를 찾았다. 누가 이렇게 함께 걸어주겠나?”라고 했다. 강 씨는 “하루 평균 30km 정도씩 여유 있게 걸었으면 더 즐길 수 있었는데 개인 일정 탓에 좀 무리하게 걸었음에도 잘 따라줘 고마웠다”고 했다. 더운 여름을 피해 올해 안에 한반도 둘레길을 완보할 계획인 이들은 일찌감치 마라톤에 입문해 건강한 노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강 씨는 체중 감량을 위해 1999년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해 9월 열린 한 하프마라톤대회 출전을 목표로 훈련을 시작했다. 2000년 검푸에 가입했고 그해 4월 풀코스를 처음 완주한 뒤 지금까지 풀코스만 100회 넘게 완주했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013년 기록한 3시간11분. 강 씨는 “달리니까 너무 좋았다. 몇 개월 안 돼 ‘러너스 하이’(고통스러운 순간을 참고 운동을 계속하면 어느 순간 찾아오는 행복감)를 경험했다. 살도 14kg이나 빠지고 건강해졌다. 무엇보다 시간 날 때 아무 때나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는 철인3종 철인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도 3회 완주했고, 100km 울트라마라톤도 수차례 완주한 ‘철각’이다.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유 씨는 친구 따라 2002년 마라톤에 입문했다. 그는 “평소 건강을 위해 조깅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운동을 잘 못할 것이라고 여긴 명문대 출신의 대기업 다니는 친구가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하기에 ‘너도 하는데…’ 하는 욕심에 도전했다. 그런데 너무 좋았다”고 했다. 건강도 챙겼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해졌다. 검푸 회원들과 어울려 풀코스를 40회 이상 완주했다. 최고기록은 2006년 기록한 3시간19분. 유 씨는 2006년 6일간 250km를 달리는 사하라사막 마라톤도 완주했다. 박 씨도 건강을 위해 마라톤에 입문했다. 잦은 음주 탓에 체중이 많이 나갔다. 2002년부터 혼자 달리다 2003년 한 마라톤 대회 풀코스에 출전해 고생한 뒤 2004년 검푸에 가입해 회원들과 함께 달리고 있다. 현재 체중은 10kg이 빠진 65kg. 2007년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47분이 개인 최고기록. 그는 “330(3시간30분 이내 기록)하려고 욕심 부리다 좀 무리했더니 고관절에 이상이 왔다. 그 다음부터는 건강 마라톤으로 즐기면서 달리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1월 후두암 1기 판정을 받은 그는 수술 후 치료를 받으면서도 꾸준하게 운동하고 있다. 그는 “수술 다음 날에도 동네 뒷산을 올랐다. 요즘 매일 10km를 달린다. 달리기가 내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 난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본다”고 했다. 셋은 한반도 둘레길 완보를 마치면 제주 둘레길도 돌 예정이다. 그리고 백두대간도 차근차근 종주할 계획이다. 이들은 입을 모았다. “우린 행운아다. 체력 되지, 시간 되지, 나이도 비슷하다. 은퇴한 뒤 이렇게 어울려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 있나? 100세 시대 이렇게 맘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어 즐겁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1979년 충남대에 들어갔는데 탁구서클(현 동아리)이 없었어요. 중고교시절 대전 시내에서 탁구 좀 쳤는데…. 그래서 친구와 탁구서클 ‘한우리’를 만들었어요. 다른 친구들이 ‘동그라미’란 탁구서클을 만들었죠. 한우리는 2년 정도 운영하다 제가 군대하면서 없어졌고, 동그라미는 아직 남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취미가 직업이 되는 시대가 됐다. 스포츠를 즐기다 ‘스포츠인’으로 전업한 사람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탁구광 전인상 씨(62)도 평생 즐기던 탁구 덕에 은퇴 후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2020년 말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서 은퇴한 전 씨는 그해 말 삼다도 제주도에 터를 잡고 탁구 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다. 정년을 앞두고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였다. “돌이켜보니 어려서 클 때까지 30년은 부모님 품에서 살았고, 또 30년은 직장을 잡고 가족들을 돌봤습니다. 이젠 나머지 30년 이상은 노년기로 이어집니다. 제가 이 시기를 잘 개척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0세 시대지만 현실은 60세쯤이면 정년퇴직을 해야 합니다. 정년 이후의 삶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죠. 그래서 전 평생 좋아했던 탁구로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했습니다. 2014년 탁구 2급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땄습니다. 지난해엔 노인체육지도자 자격증도 획득했어요. 올해부터 초등학교 방과후 지도자로 활동합니다.” 전 씨는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탁구의 이에리사 정현숙 등이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하며 일어난 탁구 붐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중고교 시절부터 대전 시내에 들어선 탁구장을 돌아다니며 친 것이다. 사실 대학에서도 서클을 만들어 탁구를 치기는 했지만 실력이래야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넘기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책을 보고 거울 앞에서 자세를 익히는 등 열정만큼은 프로급이었다. 그렇게 2년을 활동하다 군에 입대하고 복학한 뒤 취업준비하면서 한동안 탁구를 잊고 지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대한육상연맹에서 사람을 뽑아 지원했죠.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해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탁구 칠 엄두도 내지 못했죠. 육상연맹 사무실이 서울 을지로에서 잠실로 옮겼고 1990년대 초반 청담동에 있는 대원탁구장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다시 탁구와 연을 맺게 됐습니다.” 탁구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선수 출신 코치가 직접 레슨을 해주고 있었다. 과거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선수출신에게 조련 받아 실력이 향상된 마니아들이 모여 있는 탁구장들도 여러 곳 소문이 났다. 전 씨는 대한항공 선수 출신 권영랑 관장에게 원포인트레슨을 받기도 하는 등 탁구 실력을 닦았다. 일을 마치면 어김없이 탁구장으로 달려가 1,2시간 땀을 흘렸다. 실력이 비슷하고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대원탁구동호회를 만들어 대회에도 출전했다. 1997년 서울 강남구 생활체육 탁구대회에 출전해 복식 우승, 단식 3위를 하는 등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탁구는 직장생활의 해방구였어요. 일하며 얻는 모든 스트레스를 탁구공에 실어 날렸보냈습니다. 탁구를 치면 한두 시간은 잡생각 없이 탁구에 집중할 수 있었죠. 제 삶의 큰 활력소였습니다.” 실력이 늘자 탁구 치러 가면 어서든 대접도 받았다. 탁구 좀 치자 육상연맹에서 일한다고 하니 ‘육상선수 출신이라 역시 발이 빠르다’고 엉뚱한 칭찬을 하기도 했다. 어떨 땐 ‘체육과 출신이어서 잘 친다’고까지 했다. 그는 운동과 전혀 상관없는 영문과 출신이다. 각종 육상대회가 전국에서 열리기 때문에 출장이 잦았던 그는 항상 탁구 라켓을 가지고 다녔다. “난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일 끝나면 바로 탁구장으로 달려갔다. 몸이 찌뿌드드해도 탁구 한두 시간 치면 바로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했다. 탁구를 너무 많이 쳐 ‘엘보’가 오긴 했지만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은 없다. 전 씨는 탁구를 잘 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도 했다. 처음엔 펜홀더 라켓으로 시작했다. 속칭 ‘일펜(일본식 펜홀더)’다. 그는 “한 10년 일펜으로 쳤는데 백핸드 공격이 잘 안돼 중국식 펜홀더(중펜)로 바꿨다”고 했다. 2000년대 초 등장한 중국 탁구 스타 왕하오(39)가 기술을 완성한 것으로 펜홀더인데 뒷면에도 라바(고무판)를 붙인 라켓이다. 그는 “당시 중펜 사용법을 잘 몰라 왕하오가 치는 모습을 CD로 구워서 계속 보면서 탁구를 쳤다”고 회상했다. “당시는 PC통신이 유행할 때였죠.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전 유니텔 탁구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었죠. 온 오프라인 친교 모임이었습니다. 회원들과도 정보를 교류하며 탁구를 쳤습니다. 다음카페의 4050탁구동호회에서도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중펜이 손목에 무리를 줘 2010년 쯤 지금의 쉐이크핸드 라켓으로 바꿨습니다.” 서울 오금동 박현철탁구장에서 쉐이크핸드 라켓 기술을 배웠다. 박현철탁구장이 경기 성남 분당으로 옮겨 갔을 때도 원정까지 가서 탁구를 쳤다. 생활체육탁구에서 일펜으로 3부 리그 정상급까지 갔고, 중펜으로도 계속 정상급을 유지했다. 지금은 탁구인구가 많아져 4,5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7년 KADA로 옮겨서도 탁구는 멈추지 않았고 각종 대회에서도 성과를 냈다. 2014년도 도닉배전국오픈탁구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했다. 2016년 강동구의회의회장배 탁구대회 복식에서도 1위를 했다. 2019년 제2회 에리사랑시니어탁구대회 단식에서도 우승했다. “서울 사는 사람들의 로망이라고 할까요? 꽉 막힌 빌딩 숲을 떠나 탁 트인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강원도 원주, 강릉 등도 생각했지만 제주가 눈에 들어왔어요. 제주에 친구가 살고 있어 쉽게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은퇴하고 바로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제주에서의 삶은 자연스럽게 탁구가 주가 됐다. 제주탁구클럽에 가입해 활동했다. 외지인으로 제주에서 정붙이고 잘 살 수 있게 된 원동력에 매일 만나는 회원들과의 교류가 있었다. 전 씨는 지난해 말 열린 제주도탁구협회장기 탁구대회 백두부 복식에서 우승했고, 4부 단식에서 준우승하는 등 실력을 과시했다. 올해부터 초등학생을 지도로 나서지만 향후 시니어들에게도 지도할 계획이다. “탁구는 사계절 언제든 칠 수 있습니다. 자기 몸만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제가 제주도 장애인복지관에서 레슨해준 적이 있습니다. 휠체어 타고, 목발 짚고도 칠 수 있습니다. 탁구는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아 최고의 실버스포츠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전 제가 좋아하는 탁구를 치면서 지도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어린이들에게는 탁구로 희망을 전하고, 어르신들께는 건강과 행복을 전하고 싶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대학 때부터 즐기던 탁구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새로운 길을 제시해줬다. 2020년 말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서 은퇴한 전인상 씨(62)는 그해 말 삼다도 제주도에 터를 잡고 탁구 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다. 정년을 앞두고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였다. “100세 시대지만 현실은 60세쯤이면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 그래서 평생 좋아했던 탁구로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했다. 2014년 탁구 2급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지난해엔 노인체육지도자 자격증도 획득했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방과후 지도자로 활동한다.” 중고교 시절 대전시내 탁구장에서 좀 놀았던 전 씨는 대학 1학년 때 탁구서클(현 동아리)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탁구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했다. 실력이래야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넘기는 수준이었지만 책을 보고 거울 앞에서 자세를 익혔다. 그렇게 2년을 활동하다 군에 입대하고 복학한 뒤 취업 준비를 하면서 한동안 탁구를 잊고 지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대한육상연맹에 입사했다.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해 1988년 서울 올림픽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육상연맹 사무실이 서울 을지로에서 잠실로 옮겨졌고 1990년대 초반 청담동에 있는 대원탁구장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다시 탁구와 연을 맺게 됐다.” 탁구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선수 출신 코치가 직접 레슨을 해주고 있었다. 과거엔 상상도 못 하던 일. 선수 출신에게 조련받아 실력이 향상된 마니아들이 모여 있는 탁구장들도 소문이 났다. 전 씨는 대한항공 선수 출신 권영랑 관장에게 원포인트레슨도 받으면서 탁구 실력을 닦았다. 일을 마치면 어김없이 탁구장으로 달려가 한두 시간 땀을 흘렸다. 실력이 비슷하고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대원탁구동호회를 만들어 대회에도 출전했다. 1997년 서울 강남구 생활체육 탁구대회에 출전해 복식 우승, 단식 3위를 하는 등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탁구는 직장생활의 해방구였다. 일하며 얻는 모든 스트레스를 탁구공에 실어 날렸다. 탁구를 치면 한두 시간은 잡생각 없이 탁구에 집중할 수 있다. 내 삶의 큰 활력소였다.” 실력이 늘자 어딜 가든 대접도 받았다. 탁구 좀 치자 육상연맹에서 일한다고 하니 ‘육상선수 출신이라 역시 발이 빠르다’고 엉뚱한 칭찬을 하기도 했다. 어떨 땐 ‘체육과 출신이어서 잘 친다’고까지 했다. 그는 운동과 전혀 상관없는 영문과 출신이다. 각종 육상대회가 전국에서 열리기 때문에 출장이 잦았던 그는 항상 탁구 라켓을 가지고 다녔다. “난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일 끝나면 바로 탁구장으로 달려갔다. 몸이 찌뿌드드해도 탁구 한두 시간 치면 바로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했다. 탁구를 너무 많이 쳐 ‘엘보’가 오긴 했지만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은 없다. 2007년 KADA로 옮겨서도 탁구는 멈추지 않았고 각종 대회에서도 성과를 냈다. 2014년도 도닉배전국오픈탁구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했다. 2016년 강동구의회의회장배 탁구대회 복식에서도 1위를 했다. 2019년 제2회 에리사랑시니어탁구대회 단식에서도 우승했다. “서울 사는 사람들의 로망이라고 할까? 꽉 막힌 빌딩 숲을 떠나 탁 트인 곳에서 살고 싶었다. 강원도 원주, 강릉 등도 생각했지만 제주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에 친구가 살고 있어 쉽게 결정했다. 은퇴하고 바로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에서의 삶도 자연스럽게 탁구가 주가 됐다. 제주탁구클럽에 가입해 활동했다. 외지인으로 제주에서 정붙이고 잘 살 수 있게 된 원동력에는 매일 만나는 회원들과의 교류가 있었다. 전 씨는 지난해 말 열린 제주도탁구협회장기 탁구대회 백두부 복식에서 우승했고, 4부 단식에서 준우승하는 등 실력을 과시했다. 올해부터 초등학생들 지도자로 나서지만 향후 시니어를 대상으로도 지도할 계획이다. “탁구는 사계절 언제든 칠 수 있다. 자기 몸만 지탱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 제주도 장애인복지관에서 레슨을 해준 적이 잇다. 휠체어 타고, 목발 짚고도 칠 수 있다. 탁구는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아 최고의 실버스포츠로도 알려져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탁구로 희망을 전하고, 어르신들께는 건강과 행복을 전하고 싶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다양한 운동을 하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경험해보고자 도전했는데…. 지금은 일도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저를 긍정적으로 살게 만들어 줬습니다. 너무 즐겁고 행복합니다.” 오세진 작가(41)는 3차례의 교통사고로 무너진 몸을 운동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려 엄청나게 노력했다. 운동을 통해 몸이 건강해지자 더욱 다양한 운동에 빠져들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속칭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가 됐다. 운동으로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그를 2018년 11월 10일 dongA.com ‘양종구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에 소개했었다. 2020년 초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확산을 계기로 새롭게 변신한 오 작가를 다시 한번 조명한다. “저는 책을 통해 독자와 만나는 삶을 좋아했어요. 코로나 19가 터질 당시 4, 5번째 책을 냈는데 예정된 문화행사가 다 취소된 겁니다. 3,4개월 집에만 있다보니 저의 존재 가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코로나19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지 않게 된 세상이 원망스러웠어요.” 돌이켜보니 어느 순간부터 혼자서 주 3회 정도 산을 오르고 있었다. 코로나19 초반기 사회적 거리두기가 까다로워 피트니스센터 등 실내 운동을 못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산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오 작가는 “집에서 케틀 벨(Kettle Bell) 운동도 하고 혼자 달리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산을 타고 있는 나를 봤다”고 했다. “솔직히 유튜브는 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뜩 저의 이런 모습을 기록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죠. 산에 대한 정보라기보다는 일종의 영상 에세이죠. 자연을 걷고 느낀 것을 글과 말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에 빠지다’는 주제로 유트브 채널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응이 좋았다. ‘보고 힐링이 된다’ ‘마음에 와 닿았다’는 반응이 올라왔다. 오 작가는 댓글에 다시 답글을 달며 마음의 위안을 찾았다고 했다. 꼭 산에 국한된 게 아니라 바다와 마을 등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다닌다. 아름답고 힐링될 수 있는 곳, 걸을 수 있고 자연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면 다 간다. 그는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됐다. 그 명칭이 너무 무거웠는데…. 지금은 구독자가 5만6000명 가까이 된다. 서로 소통하는 장이다. 구독자는 내 영상을 보고 힐링하고, 난 구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했다. “우리 채널에서는 구독자를 마루라고 합니다. 산마루 할 때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하기도 하고, 제 채널에 와서 쉬고 전 그들을 통해 위로 받는 대청마루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구독자들이 지어준 것입니다. 마루들은 저를 ‘힐링진’으로 부릅니다.” 초반엔 주 2회, 지금은 주 1회 씩 올린다. 정기적이지 않고 부정기적으로 올린다. “숙제처럼 되면 내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준비 됐을 때 올린다”고 했다. 마루들도 이해해준다고. “지난해 9월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후유증이 와서 한 달 반 정도를 사실상 칩거해야 했어요. 심장 쪽에 영향을 줘 격한 운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마루들이 ‘천천히 해라. 무리하다 더 악화된다’는 등 응원 메시지를 줘서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강압이 아닌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영상을 올리고 그것을 보고 즐깁니다.” 2020년 중반부터 KBS TV ‘영상앨범 산’에 출연하고 있다. 작가 겸 트레일러너로 산을 탐방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전달한다. 등산 마니아인 아버지와 함께 할 때도 있고 혼자서 출연할 때도 있다. 다른 등산 마니아와 산을 탐방하며 그 느낌을 전하기도 한다. 1월 22일에도 영상앨범 산 촬영차 충북 제천의 가은산 탐방을 다녀왔다. “코로나19가 터진 뒤 속칭 MZ세대가 산에 많이 갔잖아요? 그 때 저에게 그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았어요.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들이 즐겨 놀던 ‘힙한’ 실내공간에 갈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산으로 간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까요? 저하고 비슷한 경우입니다.” 오 작가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의 좋은 면만 보이듯 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산도 자주 가다보면 아 이런 것도 있었네, 이렇게 아름다웠나? 아 이런 소리도 있었네. 이렇게 좋은 소리를 왜 나는 듣지 못했지? 이런 것을 영상에 담으며 표현하다보니 산을 더 찾게 됐죠. 아주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오 작가는 2020년 100번 넘게, 지난해 60번 넘게 산을 찾았다. 명산을 찾는 다는 개념이 아니라 마음을 끌어당기는 산을 올랐다. 지리산은 5번 이상 올랐다. 그만큼 좋았다. 오 작가는 산을 오르며 달리기 좋은 곳에선 달린다. 등산과 트레일러닝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전 산행을 동적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을 걸으면 우리 뇌가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지 않아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걷는 자기 모습을 보며 집중하다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모났던 감정도 유해지죠. 산은 힐링 그 자체입니다. 많은 분들이 산에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 작가는 2014년 중반부터 2015년 중반까지 1년여 동안 교통사고를 무려 3번이나 당해 몸이 말이 아니었다. 20대부터 웨이트트레이닝 등 운동을 즐겼지만 사고로 몸이 무너진 몸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아프면 삶의 중심이 아픈 곳에 집중된다. 아프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건강을 잃으면 돈이고 명예고 다 소용없다’는 말은 진리였다. 그래서 다시 운동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케틀 벨로 몸을 잡았다. 케틀 벨은 쇠로 만든 공에 손잡이를 붙인 중량 기구로 소의 목에 다는 벨과 모양이 유사해 붙여진 이름이다. 사고 나기 전부터 알고 있던 트레이너가 권유한 운동이었다. 허리 강화는 물론이고 몸의 올바른 기능을 회복시켜준다고 했다. 그는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하면 할수록 몸이 달라졌다”고 했다. “누가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할 겁니다. 운동을 지속하면서 몸이 좋아졌어요. 운동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목과 허리의 만성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웨이트트레이닝은 팔과 다리, 몸통 등 분할운동입니다. 케틀 벨은 몸의 협응력, 전반적인 밸런스를 잡아주는 운동이었습니다. 속칭 코어를 발달시키는 운동이었는데 정말 내 몸에 좋은 효과를 줬습니다.” 케틀 벨 운동은 수련하는 느낌을 줬다. 케틀 벨로 스윙 동작을 하면서 작은 성취감도 느꼈다. 8kg, 12kg으로도 힘겨워 했는데 나중엔 24kg으로도 가뿐하게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웨이트트레이닝처럼 팔 다리 따로 하지 않아도 온 몸이 균형이 잡혀갔다. 어느 순간 삶이 달라졌다. 짜증나고 골골한 삶은 사라졌고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삶이 찾아왔다. 사는 게 행복했다. 일도 잘 됐다. 아플 땐 잘 해결되지 않던 일들이 술술 잘 풀렸다. 역시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인생을 즐길 수 있었다. 몸이 좋아지면서 달리기에도 도전했다. 한국CEO연구소 강경태 소장의 권유였다. 오 작가는 “솔직히 달리는 것을 싫어했다. 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왜 달려야하지?’란 의문을 품었었다. 그런데 마라톤에 빠진 강 소장님의 악착같은 권유로 달려보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했다. “결승선을 통과해보지 않은 사람은 말해줘도 몰라요. 솔직히 TV를 보다 매주 10km를 완주한 4살짜리 아이가 한 말인데 정말 그래요. 달릴 때 기분, 완주한 뒤 느끼는 성취감, 해보지 않으면 정말 몰라요.” 10km 단축마라톤부터 시작해 결국 2018년 마라톤 42.195km 풀코스까지 완주했다. 산도 달렸다. ‘산악마라톤’으로 불리는 트레일러닝에도 입문한 것이다. “솔직히 산을 다녔지만 마니아 수준은 아니었어요. 어렸을 때 아빠 따라 산을 가서 익숙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산은 소통의 공간이 됐어요. 10년 전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간적이 있어요. 하루 많게는 14시간 씩 걸었죠. 그 때 휴대폰 등 모든 문명의 이기와 단절돼 초반엔 불안했었어요… 그런데 3,4일 걷기를 반복하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 때부터 같이 간 동료들의 얘기가 들리고 자연도 보였죠.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산을 달릴 때 그 추억이 떠오릅니다.”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던 오 작가는 2019년 8월엔 6박 7일간 250km를 달리는 고비사막마라톤도 완주하고 올 정도로 ‘강철 체력’을 과시했다. 이젠 달리지 않고 산에 오르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다. 오 작가는 ‘커뮤데이아’ ‘몸이 답이다’, ‘달리기가 나에게 알려준 것들’ 등 5권의 책을 냈고 지금 6번째 책을 쓰고 있다. 작가였던 그는 이젠 작가에 더해 유튜브 크리에이터, 방송인까지 ‘1인다역’을 하고 있다. 모두 운동이 준 혜택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운동을 즐기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2009년 1월 프로축구 성남 일화에서 방출당해 은퇴의 기로에 놓여 방황하고 있었던 이동국은 당시 최강희 전북 감독을 만나며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1998년 포항제철고를 졸업하고 프로에 데뷔한 이동국은 그해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해 ‘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방출 당시엔 대부분의 감독들이 “이동국의 시대는 갔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평소 이동국의 플레이를 눈여겨보던 최 감독은 달랐다. “넌 아직 은퇴할 때가 아니다”라며 용기를 주는 최 감독의 말에 자포자기하고 있었던 이동국은 강한 재기의 의지를 보여줬다. 최 감독은 이동국에게 “넌 골만 넣으면 된다”며 수비도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 여타 감독들과는 다른 주문을 했다. 최 감독은 골문 앞에서 흥분하지 않고 발과 머리로 골을 잡아내는 이동국의 특성을 잘 활용했다. 이동국은 2009년 당시까지 역대 개인 최다인 22골을 터뜨리며 전북의 K리그 우승을 주도했다. 2020년 말 은퇴할 때까지 이동국은 전북에만 10개의 우승컵을 안겼다. 2012년엔 한 시즌 국내 선수 최다인 26골을 기록했다. 이동국은 프로 인생 전반전인 1998년부터 2008년까지 64골 29도움을, 후반전인 2009년부터 2020년까지 무려 164골 48도움을 기록했다. 이동국은 선수론 ‘환갑’으로 불리는 41세까지 뛰었다. 최근 올해 37세인 박주영이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2005년 FC 서울로 데뷔한 박주영은 ‘축구 천재’로 불렸다.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68경기에서 24골을 넣고 3회 연속 월드컵(2006년 독일, 2010년 남아공, 2014년 브라질)에 출전했다. 6년 유럽 생활을 빼고 서울에서만 뛰어 ‘서울 맨’으로 불렸지만 지난 시즌을 마치고 최대 위기를 맞았다. 1년 동안 골과 도움인 공격포인트가 하나도 없었다. K리그에서 12시즌을 보내며 76골 23도움을 기록했던 박주영이 한 골도 넣지 못한 것은 지난해가 유일했다. 서울은 “이제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유소년 지도자를 하라”고 제안했지만 박주영은 “선수로 더 뛰겠다”고 버텼다. 결국 어느 팀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은 박주영에게 홍 감독이 손짓했다. 홍 감독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고려대 선후배 사이로 ‘으리’라는 비난을 받고서도 박주영을 와일드카드로 뽑아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했다. 홍 감독은 그때 지켜봤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후배들을 잘 다독이는 박주영의 리더십을. 지난해 K리그 사령탑을 처음 맡은 홍 감독으로선 어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 박주영 같은 고참이 필요했다. 박주영은 자신을 믿어주는 지도자 밑에서 제대로 한번 보여주고 은퇴하고 싶었다. 박주영이 이동국처럼 성공 스토리를 쓴다면 그 파급 효과는 클 것이다. ‘제2, 제3의 박주영’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 이제 선수 생명도 그만큼 길어져야 한다.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는 35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37세인데도 아직 세계 무대를 주름잡고 있다. 다른 스포츠에서도 노장들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우리나라에선 그 나이면 ‘뒷방 선수’로 낙인찍힌다. 박주영의 활약에 주목하는 이유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

엄마와 딸이 한 축구팀에서 공을 찬다. 요즘 모 방송에서 유명 여성 연예인들이 축구를 하는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이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함께 축구를 하고 있다. 모녀는 ‘골때녀’ 영향으로 축구에 관심을 가지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현상에 기뻐하지만 함께 건강하게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기에 더 행복하다. 서울 서대문구여성축구단에서 함께 공을 차며 모녀의 정을 쌓고 있는 김미순(58) 박단비 씨(32) 얘기다. 엄마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가 식지 않은 2003년 축구를 시작했다. 엄마는 초등학교 때 잠시 축구를 한 아들(34) 때문에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한일월드컵 때 열렬한 팬이 됐다. “아들을 데리고 축구장을 오갈 때 한일월드컵이 열렸어요. 그 때 호프집에 모여서, 혹은 길거리로 나가 응원했죠. 축구 하나로 온 국민이 열광하며 행복했어요. 그리고 1년여 뒤 서대문구청 소식지에 여성축구단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어떤 힘에 끌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축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다. 대부분 처음이라 개인차가 없었고 각종 패스와 트래핑, 드리블 등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게 재밌었다. 넓은 축구장을 뛰어다니는 맛도 새로웠다. 공을 차며 한껏 땀을 흘리고 나면 온갖 스트레스도 날아갔다. 김 씨는 “감독님이 말하는 축구 용어가 생소해 축구 교본을 사서 공부했고, 초반에는 훈련 일지까지 쓰면서 배웠다”고 했다. 그렇게 10년을 하고서야 축구를 조금 알겠다고 했다. “솔직히 처음엔 축구를 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죠. 공을 아무 데나 차고 승부욕만 넘쳐 몸싸움만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패스의 길이 보이더라고요. 패스를 잘 했을 때 즐거움도 알고, 골 어시스트하는 기쁨도 느끼기 시작했어요.” 축구 경기도 많이 봤다.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한 박지성 경기는 빼놓지 않고 봤다. 요즘은 토트넘 손흥민에 빠져 있다. 스타 선수들의 인상적인 플레이를 따라 해보기도 했다. 김 씨는 틈나는 대로 탁구도 친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돼 공공시설인 축구장과 실내 탁구장을 활용하지 못할 땐 야외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집 근처 안산을 돌며 체력을 관리했다. 딸은 직접 공을 차며 새벽에 박지성 경기까지 꼬박꼬박 지켜보는 엄마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가 축구를 시작한지 13년이 지나서 딸도 축구에 발을 들였다. 엄마를 지켜보면서도 축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딸은 2016년 어느 날 친구들을 축구단에 소개시켜주기 위해 나갔다가 축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엄마가 축구를 한다는 소문에 친구들도 하고 싶어 해 소개시켜주러 나갔죠. 감독님이 저도 한번 뛰어 보라고 했어요. 엄마와 2대1 패스를 했는데 잘 맞았어요. 게다가 연습경기에서 골도 넣었어요. 그 때 ‘축구가 이렇게 재밌나?’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까지 공을 차고 있습니다.” 박 씨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단거리 달리기와 수영, 속칭 심박수를 올려주는 운동이 좋았다. 커 가면서 피트니스센터에서 근육을 키우는 재미에도 빠졌다.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단국대 생활체육학과에 들어갔다. 축구를 접한 박 씨도 패스 등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게 재미있었다. 축구는 누가 더 잘할까. 박 씨는 “수비형미드필더로 포지션이 겹치는데 엄마가 주전이다. 난 우리 팀이 몇 골을 넣어 앞설 때나 들어간다”며 웃었다. 그는 “축구는 경력을 무시할 수 없다.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노련하게 플레이한다. 난 성급하게 플레이하다 실수를 자주 한다”고 했다. 그는 “주위에서 엄마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핀잔을 줘 부담이다. 그래서 엄마를 목표로 틈날 때 운동장도 달리고 있다”고 했다. 2018년 9월부터 서대문구체육회에서 일하는 박 씨는 엄마를 롤 모델 삼아 시간 날 때마다 근육운동으로 체력도 키우고 있다.“전 경로당 등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 운동을 지도하고 있어요. 제가 지도하는 분들 평균 연령이 80세인데 평소 운동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아주 건강해요. 근력과 유연성도 뛰어나요. 플랭크와 스쿼트도 거뜬히 하십니다. 우리 엄마도 꾸준히 운동하시니까 80세 넘어서도 건강하고 젊게 사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모녀는 매주 3회(월, 수, 금요일) 함께 공을 차고 있다. 서대문구청여성축구단은 전국 대회에서 자주 우승하는 등 강호로 통한다. 박 씨는 2019년 열린 제6회 만덕배 제주전국여성축구대회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뛴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는데 제주방송에서 중계까지 한 대회여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우승까지 했다”며 웃었다. 김 씨는 “언제인지는 기억이 않지만 강원도 횡성에서 우리팀이 골을 많이 터뜨려 우승한 게 기억난다. 1골당 1만 원 씩 걷어 회식을 했다”고 회상했다. 서대문구청여성축구단은 매년 4~5개 대회에 출전하는데 코로나 19 이후엔 제대로 훈련도 못하고 대회도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두 모녀는 축구훈련을 못할 땐 집 앞 공터에서 드리블과 패스를 함께하는 등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만큼 축구가 좋다. 김 씨는 서대문구청여성축구단에서 최고령이다. 그는 “이 나이에 지금도 축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스트레스도 날려주고 건강도 지켜주고…. 팀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힘닿을 때까지 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축구가 거칠기 때문에 100세 시대를 맞아 운동 플랜B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탁구와 배드민턴, 등산도 병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최근 ‘야구 메카’가 된 서울 고척돔야구장에서 분식코너를 운영하고 있어 야구도 자주 접하지만 축구만 한다. “축구가 더 좋기도 하지만 야구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고 했다. 박 씨는 직접 뛰는 축구 경기에 빠져 있다. “기술을 활용해 플레이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랄까? 특기 골을 넣었을 때, 우승했을 때는 날아 갈 것 같다”고 말했다. ‘골때녀’는 보고 있을까. 엄마는 “잠깐씩 봤는데 정말 축구를 잘하는 것 같다. 특히 국악 하는 송소희는 ‘여자 메시’ 같았다”고 말했다. 딸은 “경기는 많이 못 봤지만 골때녀 보고 축구를 시작한 여자들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다. 많은 여자들이 축구하며 인생을 즐겁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에 서대문구청여성축구단이 다시 서대문문화체육회관 축구장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엄마는 “딸과 함께 경기하면서 합작골을 넣고 싶다”고 했다. 딸은 “축구를 평생하며 엄마와 우리 아이들까지 3대가 함께 축구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공을 차는 모녀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엄마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가 식지 않은 2003년 축구를 시작했다. 딸은 직접 공까지 차며 새벽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박지성 경기를 꼬박꼬박 지켜보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엄마가 축구를 시작한 지 13년이 지나서 딸도 축구에 빠져들었다. 서울 서대문구여성축구단의 김미순(58) 박단비 씨(32)는 매주 3회(월, 수, 금요일) 함께 공을 차며 모녀의 정을 쌓고 있다. 엄마는 초등학교 때 잠시 축구를 한 아들(34) 때문에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한일 월드컵 때 열렬한 팬이 됐다. “아들을 데리고 축구장을 오갈 때 한일 월드컵이 열렸어요. 그때 호프집에 모이거나 길거리에서 응원했죠. 축구 하나로 온 국민이 열광하며 행복했어요. 그리고 1년여 뒤 서대문구청 소식지에 여성축구단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대부분 처음이라 개인차가 없었고 각종 패스와 트래핑, 드리블 등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게 재밌었다. 넓은 축구장을 뛰어다니는 맛도 새로웠다. 공을 차며 한껏 땀을 흘리고 나면 온갖 스트레스도 날아갔다. 김 씨는 “감독님이 말하는 축구 용어가 생소해 축구 교본을 사서 공부했고, 초반에는 훈련 일지까지 쓰면서 배웠다”고 했다. 그렇게 10년을 하고서야 축구를 조금 알겠다고 했다. “솔직히 처음엔 축구를 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죠. 공을 아무데나 차고 승부욕만 넘쳐 몸싸움만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패스의 길이 보이더라고요. 패스를 잘했을 때의 즐거움도 알고, 골 어시스트하는 기쁨도 느끼기 시작했어요.” 축구 경기도 많이 봤다. 특히 박지성 경기는 빼놓지 않고 봤다. 요즘은 토트넘 손흥민에게 빠져 있다. 스타 선수들의 인상적인 플레이를 따라해 보기도 했다. 김 씨는 틈나는 대로 탁구도 친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돼 공공시설인 축구장과 실내 탁구장을 활용하지 못할 땐 야외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집 근처 안산을 돌며 체력을 관리했다. 이런 엄마를 지켜보면서도 축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딸은 2016년 어느 날 친구들을 축구단에 소개해주기 위해 나갔다가 축구에 빠져들었다. “감독님이 저도 한번 뛰어 보라고 했어요. 엄마와 2 대 1 패스를 했는데 잘 맞았어요. 연습경기에서 골도 넣었어요. 그때 ‘축구가 이렇게 재밌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까지 공을 차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한 박 씨는 단국대 생활체육학과를 졸업했다. 박 씨도 패스 등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게 재미있었다. 축구는 누가 더 잘할까. 박 씨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이 겹치는데 엄마가 주전이다. 난 우리 팀이 몇 골을 넣어 앞설 때나 들어간다”며 웃었다. 그는 “축구는 경력을 무시할 수 없다.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노련하게 플레이한다. 난 성급하게 플레이하다 실수를 자주 한다”고 했다. 2018년 9월부터 서대문구체육회에서 일하는 박 씨는 엄마를 롤 모델 삼아 시간 날 때마다 근육운동으로 체력도 키우고 있다. “저는 경로당 등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 운동을 지도하고 있어요. 제가 지도하는 분들 평균 연령이 80세인데 평소 운동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아주 건강해요. 근력과 유연성도 뛰어나요. 제 엄마도 꾸준히 운동하시니까 80세 넘어서도 건강하고 젊게 사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서대문구청여성축구단은 전국에서 강호로 통한다. 매년 4, 5개 대회에 출전하는데 코로나19 이후엔 제대로 훈련도 못 하고 대회도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모녀는 축구훈련을 못 할 땐 집 앞 공터에서 드리블과 패스를 함께하는 등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는 “딸과 함께 경기하면서 합작골을 넣고 싶다”고 했다. 딸은 “축구를 평생 하며 엄마와 우리 아이들까지 3대가 함께 축구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공을 차는 모녀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시작은 마라톤이었다. 마라톤 문화에 지쳐 있을 때 트레일러닝이 다가왔다. 2017년 산을 달리는 경험을 한 뒤 새로운 세상에 빠져 들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산만 달리고 있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찰스’ 김찬수 씨(42)는 트레일러닝을 즐기며 전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0년 무렵부터 각 스포츠 브랜드가 개최하는 마라톤대회에 출전했어요. 평소 운동을 좋아해 처음엔 분위기에 휩쓸려 달렸죠. 기록을 잘 내려고 노력도 했어요. 사실 기록은 의미가 별로 없었는데 마스터스마라톤계에선 모든 것을 기록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죠. 기록이 좋은 사람이 대우받고, 좀 으스대는 문화가 있었죠. 하지만 너무 잘난 척하는 게 싫었고, 동호회나 크루 내에서 불화도 많았어요. 그런 게 싫었습니다. 그렇게 마라톤에 지쳐 있을 때 트레일러닝을 만났습니다.” 평소 산을 좋아했던 김 씨는 2017년 7월 경남 거제에서 열린 거제지맥 트레일러닝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40km를 7시간 50분에 달렸습니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산을 넘는 게 엄청 힘들 것 같았는데…. 나무와 꽃, 바위 등 자연과 함께 하다보니 그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도로는 평탄한 게 계속 이어져 지루하지만 산은 오르막 내리막에 바위, 나무 등을 피해서 가야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또 계속 긴장하지 않으면 다칠 수 도 있어요. 그게 산을 달리는 매력입니다.” 김 씨의 마라톤 풀코스 최고기록이 3시간 35분. 마스터스로선 좋은 기록이었지만 과감히 마라톤계를 떠나 트레일러닝으로 갈아탔다. 트레일러닝 문화가 그를 사로잡았다. “마라톤은 경쟁의식이 너무 심합니다. 동호회나 크루도 잘 달리는 사람들만 받아주고…. 산을 달리는 사람들은 겸손합니다. 진중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산을 50km 이상 달린다는 것은 엄청 힘든 일입니다. 산 50km 완주는 자랑이라기보다는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부심이 더 강합니다. 존경심으로 대합니다.” 2017년 11월 영남알프스 하이트레일에서 ‘오지마라토너’ 유지성 아웃도어스포츠(OSK) 대표(51)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산에 빠져 들었다. 유 대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 4대 사막마라톤(사하라, 고비, 아카타마, 남극)을 완주했던 인물. 지금은 국내에 트레일러닝 보급에 힘쓰고 있다. 코리아 50k, 화이트트레일인제 등 유 대표는 국내 트레일러닝 대회를 거의 다 기획해서 만들었다. 김 씨도 시간이 날 때마다 유 대표와 함께 트레일러닝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것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죠. 끼리끼리 몰려 다니며 힘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서로 인정하면서 즐길 수 있는 문화. 2017년 겨울부터 서울 남산에 ‘찰스런’를 만들었습니다. 제 닉네임이 찰스입니다. 제 개인 브랜드로 트레일러닝을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찰스런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만나 남산 오솔길을 7~9km 달린다. “우린 그냥 함께 달립니다. 가르쳐준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달리고 싶은 사람 아무나 오면 됩니다. 그냥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하는 개념이죠. 서울 중심의 남산에 올라 자연을 달리는 경험, 누가 해보겠습니까? 밤에 달리는 기분은 또 달라요. 저는 처음 온 사람, 초보자 도 환영합니다. 운영은 모든 게 초보자 위주입니다.” 혼자 시작해 지금은 찰스런에 참여하는 사람이 약 100명.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찰스런은 계속 된다. 2020년 몰아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탓에 어쩔 수 없이 진행을 잠시 멈춘 경우도 있지만 찰스런은 계속 되고 있다. 찰스런은 남산의 터줏대감이 됐다. 달리는 사람은 다 안다. 김 씨는 ‘트레일러닝 큐레이터’를 자처한다. 김 씨는 국내에서 열리는 트레일러닝 대회는 영남알프스 나인피크 등 다소 힘든 레이스를 빼곤 거의 다 참가했다. “전 그냥 산 달리는 것을 즐깁니다. 사실 제가 체력이 좋아요. 좀 열심히 달리면 대회에서 좋은 성적도 낼 수 있죠. 그런데 산에선 굳이 성적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자연과 하나가 돼 달리는 게 중요하죠. 또 달리는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것도 좋습니다. 힘들면 함께 천천히 걷기도 하고…. 산을 구경하면서 달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트레일러닝의 장점은 다시 가는 길이지만 한발 한발 새롭습니다. 나무, 바위, 돌… 매일 매일이 다릅니다.” 국내에선 하이원 스카이러닝과 스테이지제주 100km가 즐기기에 좋은 트레일러닝이라고 했다. “스테이지제주 100km는 2박 3일간 30km, 30km, 40km를 달리는 팀레이스입니다. 제주의 모든 것을 구경하면 달릴 수 있죠. 2019년 후배하고 즐기려고 참가했는데 2등을 했습니다.” 산을 달리면 무릎 등 관절 부상 위험이 높지 않을까? 김 씨는 주법을 잘 익히면 안전하다고 했다. “등산 할 때 산에서 천천히 내려오면 체중의 100% 훨씬 넘는 부하가 무릎이나 발목에 영향을 줍니다. 몸을 띄운 상태에서 발을 빨리해 달려서 내려오면 부하를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업다운 주법을 제대로 배우면 큰 문제없습니다. 나뭇가지나, 돌멩이 등을 조심하면서 넘어지지만 않는다면 관절에는 달리는 게 더 안전합니다.” 김 씨는 해외 트레일러닝도 많이 참가했다. 일본 우메노사토 33km, 스웨덴 발살로펫 45km, 홍콩 100km, 스페인 제가마 트레일러닝(43.195km), 울트라트레일 몽블랑(UTMB)…. “해외로는 트레일러닝 문화를 배우러 갑니다. 우리나라는 달리는 사람들을 다소 불편한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외국은 달리는 사람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함께 즐깁니다. 그런 문화를 배워 한국에도 퍼뜨리기 위해 갑니다.” 2019년 UTMB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때 두 팀으로 나눠서 갔습니다. 팀코리아와 서포터팀, 3명이 170km 참가하고 저희는 그들이 완주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갔죠. 저희(2명)는 56km 짧은 거리에 참가한 뒤 코스 중후반으로 차를 몰고 가서 170km를 완주하는 사람들을 보좌했습니다. 결국 2명이 완주했습니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달리는 기분,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된다면 다시 해외로 나갈 것이다. 올해 UTMB에 다시 갈 계획이다. UTMB에 가려면 각종 대회에 출전해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이미 다 쌓았다. 예정대로 열린다면 그는 9월 알프스산맥을 달리게 된다. 김 씨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거의 매일 산을 달린다. 서울 강남 회사에서 퇴근하면 남산으로 가서 달린 뒤 합정동 집으로 향한다. 달려야 사는 것 같다. 산을 달리기에 건강하고 즐겁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