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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 작업을 지휘하던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 우옥영 검사(35·여·사진)에게 4월경 한 희생자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아이를 더 보고 싶다는 어머니의 부탁에 두 사람은 희생자가 안치된 곳으로 들어갔다. 차갑게 식은 자식의 얼굴을 한참 만지고 쓰다듬던 이 어머니는 “우리 아들 잘생겼죠. 진짜 마흔 넘어 하나 얻은 아들인데, 이렇게 만든 사람들 절대 용서하지 마세요”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 검사는 “결국 울고 말았다. 이분들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꼈던 그날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 검사를 비롯한 목포지청 검사들은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설치된 임시 시신안치소와 전남 목포시 소재 병원 등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검시(檢屍)를 진행했다. 검시는 죽은 사람의 사망 원인과 신원을 확인하는 업무로 검사가 담당한다. 우 검사는 “슬픔과 초조함으로 팽목항이 회색으로 보였다”고 회상했다. 밤새 이어진 업무와 강한 햇빛에 혼절해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3년 차 평검사인 우 검사는 일곱 살 아이를 둔 엄마이기에 희생자 가족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었다. 남성 법의관과 검사가 숨진 딸을 만지고 옷을 벗기는 걸 거부하던 가족에게 “여성인 제가 불미스러운 일 없도록 따님을 보겠다”며 여경 등과 즉석에서 팀을 꾸려 신원 확인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들의 시신 상태는 변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평생 마음에 남을 수 있는데 꼭 봐야겠느냐’고 물으면 한 분도 빠짐없이 보겠다고 하신다. 마음이 먹먹해져 입을 떼기 힘들다”고 했다. 우 검사를 비롯한 검사들은 10명의 실종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누구에게도 억울함이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목포=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세월호의 구조와 실종자가 남아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격실이 생생합니다.” 민간 잠수사 전광근 씨(38·사진)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스쳤다. 전 씨는 세월호 사고 발생 이튿날부터 이달 3일까지 약 80일간 세월호 내부 수색을 위해 바다에서 보냈다. 자신의 잠수방법(표면공급식)과 다른 방식을 쓰는 잠수팀이 수색 작업을 주도하게 되면서 전 씨는 맹골수도를 떠났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진도 앞바다에 있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때에도 민간 잠수사로 수중수색에 참여했던 전 씨는 “젊은 생명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밤을 새우고, 17일 아침 생업을 접고 진도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그가 시신을 수습한 희생자는 20여 명. 해군 해난구조대(SSU) 출신으로 산업잠수사인 전 씨는 잠수 경력 20년의 베테랑. 그럼에도 세월호 수중수색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4월 18일 입수했을 때는 해경 소형 함정에 연결된 잠수사의 생명줄인 가이드라인이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기도 했다. 전 씨는 4월 25일 진도체육관의 수색 현황 브리핑에 참여했던 그에게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꼭 찾아달라”던 희생자 가족을 잊지 못한다.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전 씨는 며칠 뒤 4층 식당칸에서 사진 속 아들을 발견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줬다. 전 씨는 잠수사 동료들과 15일 경기 안산시의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방명록에 “다 찾아와야 하는데 먼저 와서 미안하다”는 글을 남긴 전 씨는 “다시 불러주시면 언제든 찾으러 내려가겠다”며 고개를 숙였다.안산=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세월호 참사 100일(24일)을 앞두고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는 10명. 단원고 학생 5명, 교사 2명, 일반인 3명이다. 이들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이며, 누군가의 남편이자 선생님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전남 진도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을 찾아가 실종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천사 같은 우리 아이들 단원고 2학년 황지현 양(17)은 아버지 황인열 씨(51)와 어머니 신명섭 씨(49)가 결혼 7년 만에야 얻은 ‘보물’이다. 10일 진도체육관에서 만난 신 씨는 “7년 만에 와서, 17년 동안 행복하게 해주고 가버렸네”라고 읊조렸다. 외동딸로 애교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에는 노래나 춤을 선보여서 가족들을 웃게 만들어 주고는 했다. 지현이는 공포영화를 좋아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무섭다며 밤에 불도 못 끄고 잤지만 기회가 있을 때면 또 보고 오고는 했다. 그림 그리기를 즐겼던 지현이의 노트 한쪽에는 친구 얼굴과 만화 캐릭터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미술을 전공해 보라는 권유에 “돈도 많이 들고 부담드리기 싫다”고 했다. 최근에는 중국어로 진로를 찾겠다며 공부를 시작했지만 꿈을 펼쳐보지 못했다. 박영인 군(16)은 스포츠를 좋아했다. 야구경기를 시청하던 아버지 옆에는 늘 영인이가 있었다. 부자는 종종 경기장에 관전을 하러 가기도 했다. 또래 남학생과는 달리 둘째 영인이는 부모와 여행 다니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어머니 김선화 씨(44) 휴대전화의 사진첩에는 셋이 찍은 가족사진이 가득하다. 어머니는 영인이가 갖고 싶어 한 건 다 사줬지만 유독 축구화만큼은 사주지 못했다. 팽목항에 있는 영인이의 축구화는 어머니의 미안한 마음이다.희귀병인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둔 허다윤 양(17). 가정 형편을 알기에 용돈을 달라거나 무언가 사달라고 조르는 적 없었던 착한 딸이다. 예외가 있다면 허 양이 좋아했던 인기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음반과 포스터. “아빠, 미안해요”라고 조심스레 말하면 아버지 허홍환 씨(50)는 딸의 애교에 못 이겨 용돈을 꺼내 줬다.○ ‘또치쌤’ ‘단원고 지킴이’ 단원고 체육교사인 고창석 씨(40)는 출근할 때 반드시 정장에 넥타이를 했다. 머리도 왁스로 세웠다. “운동복을 입고 출근하지 그러냐”는 사람들에게 “체육도 학문이고 절대 가볍지 않다”고 힘줘 말했다. 제자들은 그를 고슴도치 머리의 ‘또치쌤’이라며 따랐다. 고 씨는 가족을 아꼈다. 쉬는 날이면 아내 민모 씨(36)와 두 아들을 데리고 캠핑을 다녔다. 아이들은 체육교사인 고 씨가 유치원 운동회 때 ‘뒤로 달리기’ 경주를 하던 중 넘어지고도 1등으로 들어온 걸 자랑스러워했다. 매년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에 사무실로 꽃바구니를 보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아빠 거”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15년 차 교사인 고 씨는 중학교에서만 교편을 잡다가 올해 처음 고등학생들을 맡았다. 줄곧 경기 안산에서만 근무했다. 강원 양양군 출신인 고 씨는 안산에 애착이 많았다. 아내는 남편이 대학생 때 바다에서 인명구조도 했고, 수영을 잘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에도 제자들을 구하느라 가장 늦게 나왔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 씨는 참사 당일 아내에게 전화나 문자 한 통 보내지 못했다. 단원고 인성생활부장 양승진 씨(57)의 부인 유백형 씨(53)는 “어휴, 웃는 표정이 하나도 없네요”라며 남편의 사진을 뒤적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정이 많은 남편이었다. 그는 학교 뒷산 주말농장에 사과나무도 심고, 천년초도 키웠다. 천년초가 수익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팔아 ‘천년초 장학금’을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을 도와주려고 했다. 오전 6시 40분이면 출근해 하얀 장갑을 끼고 호루라기를 불며 학생들을 지키던 ‘단원고 지킴이’이기도 했다.○ 아직 못 나눈 정이 많은데… “아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손주나 돌봐주며 살고 싶어.” 이영숙 씨(51)는 평소 외아들 박경태 씨(29)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남편이 16년 전 사망한 후 생계를 위해 아들을 시가에 맡기고 타지에서 일을 했다. 사춘기 아들은 그게 싫어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몇 년 전에야 박 씨는 이 씨를 향해 다시 “엄마”라고 불렀다. 이 씨는 지난해 여름 제주의 유명 호텔식당에서 일을 했고, 이후 아들과 같이 살 생각으로 서귀포에 방 두 개짜리 집을 얻었다. 부산의 해상풍력 회사에 취직한 아들에게 “아들, 제주도 언제 올 계획이니”라고 자주 전화를 했다. 박 씨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제주로 파견을 올 예정이었다. 아들과 함께 제주 올레길을 걸을 꿈을 꾸던 이 씨는 본가가 있는 인천에서 제주로 짐을 옮기기 위해 세월호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 권재근 씨(52)는 베트남 출신 아내 한윤지 씨(29), 아들 혁규 군(6), 딸 지연 양(5)과 함께 감귤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제주로 귀농하던 길이었다. 일가족 가운데 한 씨만 시신이 발견됐고 권 씨와 아들은 실종 상태다. 유일하게 생존한 지연 양은 친가에서 돌보고 있다. 《 실종자 10명 가운데 단원고 남현철 군(17)과 조은화 양(17)은 부모들이 자녀의 이야기를 게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해 본 기사에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 진도=이건혁 gun@donga.com진도=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태풍이 북상하던 9일 자원봉사자 김진무 씨(26·사진)는 진도 팽목항의 조립식 주택을 고정하고 구호물품에 방수포를 덮느라 분주했다. 저 멀리서 실종자 가족들이 김 씨를 불렀다. “진무야, 저녁 뭐 먹을래?” “전 어머니랑 같은 거요.” 김 씨가 팽목항에 온 지도 어느덧 석 달이 넘었다. 경희대 골프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경기 고양시에서 부모와 호프집을 운영하던 김 씨는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는 4월 17일부터 경기 안산시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4월 19일부터는 팽목항으로 내려와 짐 나르기, 천막 치기 등 잡히는 대로 일을 했다. 초기에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원했던 건 봉사자가 아닌 잠수사 같은 구조인력이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에 막막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김 씨는 일종의 책임감 때문에 지금껏 현장을 지켰다. 그는 “새로 온 봉사자들이 멀뚱멀뚱 할 일이 없거나 가족들에게 벽을 느껴 힘들어할 때, 먼저 온 나라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봉사를 하며 무엇을 얻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씨는 트레이드마크인 빡빡머리를 긁적이며 “6·25전쟁 참전용사인 할아버지 묘소를 국립묘지로 이장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함께 자원봉사를 하며 가까워진 천안함 유족들이 신청 방법을 알려줬다는 것이다. 그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내가 아직 젊고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배웠다. 공부해서 외교관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진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찾아갔잖아요, 저 사람들은….” 가족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르고 위로차 전남 진도체육관을 찾은 유가족들을 바라보던 단원고 교사 양승진 씨의 부인 유백형 씨가 17일 힘없이 중얼거렸다. 실종자 가족들은 유가족을 “(시신을) 찾아간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박영인 군의 아버지 박정순 씨(46)는 “이렇게 오래 기다릴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박 씨는 사고 다음 날 아들을 찾은 줄 알았으나 다른 아이로 신원이 확인된 뒤 아직도 진도에 머물고 있었다. 사고 발생 100일을 앞두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황지현 양의 어머니 신명섭 씨는 “아침 밥상을 차려줬더니 아이가 발견됐다”는 유가족의 말을 듣고는 9일부터 매일 밥 한 공기와 김 한 봉지, 찬거리를 싸들고 팽목항 방파제로 향한다. 어머니들은 ‘자리를 옮기면 나온다’ ‘화장을 곱게 하고 예쁘게 하면 발견된다’는 말을 그대로 따른다. 팽목항 스님들에게 “얼른 나오라고 기원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바지선에서 밤을 지새우는 건 일상이 됐다. 가족들은 번갈아 바지선에 올라 기름 냄새와 요동치는 파도를 견디며 실종자 발견 소식을 기다렸다. 11일 미국 잠수팀이 오자마자 “작업 환경이 너무 어렵다”며 철수하자 크게 실망했지만 새롭게 투입된 잠수팀이 18일 조리사 이묘희 씨(56·여)의 시신을 발견하자 다시 힘을 얻는 분위기였다.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약 20명. 생업을 다 포기한 이들의 건강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남현철 군의 아버지 남경원 씨(45)는 폐렴으로 8일간 입원했다. 지현 양의 어머니 신 씨는 불편한 잠자리에 무릎 관절 통증이 심해졌다. 위장병과 불면증은 아픈 것도 아니다. 오후 5시경 팽목항에서 수색작업 브리핑이 끝나면 가족들은 방파제로 향한다. 지난주 도보순례단이 놓고 간 노란 깃발에는 실종자 10명의 이름이 쓰여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아직도 진도에 있느냐는 주위 시선이 두렵다고 했다. 허다윤 양 아버지 허흥환 씨는 남경원 씨를 병문안하고 돌아오다 가슴 아픈 말을 들었다.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10명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라고 중얼거리던 허 씨를 향해 뒤에 있던 아주머니가 “다 잃어버렸을 것”이라고 툭 내뱉었다. “한 번도 속 안 썩이던 아이가 이렇게 속을 썩이네.”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44)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인터넷 댓글도 읽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해도 찾아야지요. 물속의 내 가족도 우리를 기다릴 테니까요.”진도=최혜령 herstory@donga.com·이건혁 기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우면산. 3년 전 산사태로 곳곳이 무너져 내려 황톳빛 상처가 드러났던 부분은 지금 초록빛 초목으로 가려져 있다.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상의 흔적은 복구공사가 끝난 뒤로는 겉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우면산을 찾는 시민들의 마음에는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등산객 김민성 씨(43)는 “가깝고 깨끗하게 정비해 놓아서 자주 찾기는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꺼림칙해서 우면산을 오르지는 않는다”고 했다. 우면산 인근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었다. 산사태 피해를 입었던 서초구 방배동 S아파트 주민 정모 씨는 “아직도 그때 목격했던 충격이 남아 있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2011년 7월 산사태 이후 서울시와 서초구는 피해 지역을 4개 공구로 나누어 복구공사를 진행했다. 서울시는 방배동 방면 1∼3공구를 맡아 2012년 6월 말 공사를 끝내고 안전점검을 거쳐 그해 10월과 12월에 걸쳐 준공인가를 받았다. 공사 비용은 약 194억 원이 들었다. 서초구는 전원마을을 포함한 4공구를 맡아 약 128억 원의 공사비가 소요됐으며, 서울시와 같은 기간에 공사가 끝났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는 우면산 복구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취재진은 지난달 19일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과)와 함께 현장 점검에 나섰다. 이 교수는 2012년 “장마철 이전에 공사를 끝내기 위해 복구가 날림으로 진행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이 교수는 우면산 북쪽 사면인 서울 남부순환로 방면 계곡에 설치된 인공 배수로를 가리키며 “복원에만 치중한 공사로 산사태 예방 기능이 담보됐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취재진은 등산로를 벗어나 배수로를 따라 올라갔다. 배수로 주변은 성인 허리보다 낮은 키의 풀들만 있고 주변 땅은 단단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쌓아놓은 흙이 자리 잡지 않아 큰비가 내리면 또 쓸려 내려갈 수 있다”고 했다. 토사가 쓸려 내려간 곳에 다시 흙을 채워 넣었으니, 3년 전처럼 큰비가 내리면 다시 토사가 무너져 산사태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우면산은 해발 293m이며, 평균 경사는 30도다.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산이다. 정상 근처 공군부대 철조망에서 산 아래를 바라보면 나무가 없는 곳이 산사태 발생 장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산사태 이전에는 계곡을 따라 나무 3000여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나무가 없기 때문에 지금은 마치 알파인 스키장의 활강면처럼 남부순환로와 방배동 아파트단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제2의 우면산 산사태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진한 고려대 교수(지구환경과학과)는 “사고 당시 예술의전당 뒤편은 상대적으로 작은 산사태가 일어나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때 무너지지 못한 부분이 큰비가 내리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서울시는 수많은 전문가가 참여해 복구대책을 검토하고 관리해 문제없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도 “모든 천재지변을 다 막으려고 하면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 공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예산 범위에서 최적화된 공사가 진행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산사태는 자연 현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예방과 예측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종원 국토연구원 국가도시방재연구센터장은 “현재 기술력으로는 산사태 예측 확률이 50% 수준밖에 안 된다”고 했다. 636만여 ha에 이르는 우리나라 산지 전체를 모니터링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 이창우 연구원은 “방재 공사도 중요하지만 국지성 기상변화가 많아진 요즘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산사태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는 재난대응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제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여러분들 슬픔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3일 경기 안산시의 세월호 희생자 가족대책위원회 앞으로 특별한 편지가 도착했다. 일본 히로시마에 거주하는 익명의 일본인 할머니가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작성한 손편지 250통이다. 그는 자신의 나이를 70세라고 적었다. 편지에는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고, 슬픔 속에서 다시 일어나도록 손 잡아주고 싶고…”라는 위로의 글이 한글을 아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13세 ‘마사미(MASAMI)’ 양이 그린 그림이 편지의 글귀 주변을 장식했다. 1장짜리 똑같은 내용이 적혀 있는 250통의 편지는 역시 손으로 만든 형형색색의 장미 모양 수세미 250개와 함께 투명 비닐로 정성스레 포장돼 있었다. 상자와 함께 들어있던 외교부의 안내문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지난달 16일 주히로시마총영사관을 찾아 상자들을 건네줬다. 편지를 쓴 할머니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대책위에 도착한 편지들은 유가족들에게 순차적으로 배달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할머니와 이 작업을 함께한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극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전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편지와 선물을 전해 받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다른 나라에서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선물을 전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현상금 사냥꾼.’ 그들은 이 말을 싫어한다. 그 대신 스스로를 ‘사설탐정’이라고 부른다. 지난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은신처로 알려진 전남 순천시 송치재 일대에 모습을 드러낸 ‘수상한 외지인’의 이야기다. “경찰이나 검찰 직원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유 전 회장에 대해 자꾸 물어요.” 지역 주민들 입장에선 이런 외지인은 귀찮은 존재다. 송치재 맞은편에서 휴게소를 운영하는 유모 씨(68·여)는 “우리 가게가 한때 유 전 회장의 은신처로 잘못 알려졌다”면서 “그때 이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꼬치꼬치 묻는 바람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등산복 차림으로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는 동네를 이 잡듯 탐색하는 외지인들. 실종된 사람을 추적하거나, 남의 뒤를 밟는 일을 주업으로 삼아 온 사설탐정이다. 국내에선 불법인 미행, 개인정보 수집 등을 통해 일하다 보니 음지에 숨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는 “현재 전국적으로는 약 3000개 업소에서 5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며 “월 수익은 업소당 500만∼1000만 원 선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송치재에서 만난 사설탐정 이모 씨(70). 그는 전직 경찰이다. 미제 사건이나 신속한 해결을 요하는 사건 현장에서 일도 많이 했다. 이 씨는 “물론 현상금이 탐난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묘한 도전의식도 생긴다”고 말했다. 순천 출신 사설탐정 김모 씨(54)는 같은 지역에 사는 지인들을 통해 유 전 회장의 뒤를 쫓고 있다. 김 씨는 유 전 회장이 순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수사기관이 이 동네 사정을 나보다 잘 알겠느냐”며 “지인을 활용해 구원파와 유 전 회장에 대한 정보를 모은 뒤 결정적 제보를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 “20년전 헤어진 엄마 찾아주세요” 하루만에 모녀상봉 ▼ [한국판 셜록 홈스 나오나]사설탐정 합법화의 ‘빛’도마에 오른 ‘민간 조사업’ 사설탐정들의 활동이 실제 수사에 도움이 될까. 유병언 전 회장의 ‘현상금 사냥꾼’들이 나타나면서 민간 조사업 합법화에 관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민간 조사업은 개인 또는 기업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사사로운 사건·사고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말한다. 일반인에게 알려진 사설탐정은 개인의 의뢰를 받아 대상자를 미행·추적하는 사람으로 엄밀히 말해 ‘민간 조사원’의 부분집합일 뿐 동의어로 보긴 힘들다. 현행법상 남의 정보를 수집하거나, 미행을 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유병언 추적 사건을 맡은 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사설탐정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한다는 건 곧 수사기관이 무능하다는 말과 같다”며 “수사 권한이 없는 사설탐정의 일과 경찰의 일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일부 경찰들은 “사설탐정이 합법화되면 은퇴한 경찰들에게 재취업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바라 보기도 했다. 민간 조사업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1990년대 말부터 나왔다. 이후 2005년 이상배 전 국회의원의 ‘민간 조사업법’ 발의를 시작으로 여러 의원들이 민간 조사원의 업무 범위를 변경해 법률안을 발의했고, 현재는 윤재옥, 송영근 의원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안에 따르면 민간 조사원은 △(보험 관련) 사고의 원인과 피해 사실에 관한 조사 △소재가 불명한 물건(분실물, 도피자산 등)의 위치 확인 △미아, 가출인, 실종자, 불법 행위자에 대한 소재 파악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에 관한 자료 수집 등을 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초 ‘신직업 육성 추진 계획’에 민간 조사업 육성 및 지원을 포함시켰다. 선진국에서는 이것이 중요한 서비스업으로 자리매김했고, 음지에서 운영되는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막기 위해서도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데다 아직 이를 관리할 감독 주체도 명확하지 않아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불법인 것 알지만” “키는 6피트(180cm). 하지만 너무 깡말라서 남들은 더 크게 본다. 각지고 돌출된 턱은 강한 인상을 준다. 살집 하나 없는 얼굴엔 중간 부분이 툭 튀어나와 기민하고 단호한 분위기를 풍기는 매부리코가 자리잡고 있다.” 아서 코넌 도일의 작품 ‘셜록 홈스’에 등장하는 세계 최초 민간 자문탐정인 ‘홈스’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취재진이 만난 한국 탐정 A 씨의 외모는 날렵한 홈스와 전혀 딴판이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티셔츠 위로 근육이 드러날 정도로 풍채가 좋아 흡사 ‘조폭’과 같은 느낌이었다. 취재팀의 연락을 받은 그는 이름도, 나이도 숨긴 채 “경기 여주터미널로 오라”는 말만 남겼다. 약속장소에 도착한 취재팀을 알아본 A 씨가 먼저 다가왔다. 손에는 스마트폰과 피처폰(일반 휴대전화)이 각각 한 대씩 들려 있었다. “자잘한 심부름이나 할 생각으로 창업을 했는데, 이 바닥에서 10년을 굴렀습니다.” A 씨가 이 업계에 뛰어든 건 10년 전. TV에서 ‘강남에서는 자잘한 심부름이나 배달을 대행해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말만 듣고 창업을 알아봤다. 인터넷 검색창에 ‘심부름 업체’라고 쳐보니 연관검색어로 ‘흥신소’가 나왔다. 돈을 떼였다든지, 부인이 바람을 피운다든지 하는 사연을 나열하며 흥신소를 찾는 글들이 쏟아졌다. 관련된 정보들을 찾아보며 ‘장사가 꽤 되는구나’ 하고 생각한 게 시작이었다. 그는 무작정 흥신소 업체 한 군데에 전화를 걸어 “일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엔 경계하던 업체 사장도 성실한 그를 직원으로 받아들였다. A 씨는 이곳에서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법’ ‘미행하는 법’ 등 탐정으로서의 노하우를 차근차근 배웠다. 또 A 씨는 미행, 신상 털기, 증거 수집 등을 전문적으로 하는 중간업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중간업자와 인맥을 쌓고, 일도 손에 익자 독립해서 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윤창중 찾아달라” “별의별 부탁을 다 받아봤지만 ‘윤창중을 찾아달라’는 건 정말 황당했어요.” 그가 꼽는 가장 황당한 손님은 바로 ‘기자’였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미국 방문 중 성추문에 연루되자 기자들은 일제히 윤 전 대변인 찾기에 나섰다. 한국에 돌아와 거취를 밝히고 칩거에 들어간 그를 만나 먼저 인터뷰를 하면 특종, 반대의 경우 낙종이 되는 상황. 마음이 답답해진 한 기자가 A 씨에게 의뢰를 한 것이다. A 씨는 “워낙 알려진 인물을 찾아달라고 하니 작업하다가 내가 적발될까 봐 덜컥 겁이 났다”며 “추적 방법들만 적당히 알려주고 거절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들어오는 문의는 실종자 찾기와 불륜 현장 적발이다. 불륜 현장 적발은 300만∼500만 원 정도 받는다. 일단 의뢰가 들어오면 의심하게 된 정황을 자세히 듣는다. 상황을 최대한 잘 파악해야 동선이나 인력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남편이 전화기를 무음으로 해놓았는데, 저녁에 깜빡거리는 불빛이 너무 많이 비친다면 불륜일 확률이 크죠. 화장실 갈 때 안 가져가던 전화기를 챙긴다든지 행동의 변화가 반드시 있어요. 평소에 안 늦던 사람이 일 때문에 늦는다고 하면 우선 불륜 상대가 직장 동료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작업에 들어갑니다.” 불륜 의뢰의 경우 A 씨는 2명이 한 조를 이뤄 2개조를 투입한다. 매일 미행하는 것은 옛날 방식이고, 지금은 의뢰가 들어오면 차에 위치추적기를 달아 추적한다. 며칠간 이렇게 위치추적기가 보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동선을 파악한 뒤 현장에 뛰어든다. 이때 여직원 한 명을 반드시 투입하는 게 A 씨의 노하우. 연인으로 가장해 가까운 거리에서 미행하기 위해서다. 때론 불법도 저지른다. 국내에선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수집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다. A 씨는 “전화번호 하나만 알면 그 사람 사는 곳, 실제 나이, 하는 일 등을 알 수 있다”며 “이렇게 기본정보를 캐내는 건 하루도 안 걸리는데 건당 50만 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파악하면 4대보험 가입 여부, 출신 학교 등 다양한 개인정보를 알 수 있다. 의뢰 목적이 불순한 경우도 많다. 이날 취재팀과의 인터뷰 중에도 한 의뢰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부인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든 사업가였다. 집과 주식, 적금 등 재산 일부를 부인과 부인 동생 명의로 해두었는데, 부인이 불륜에 빠진 것 같다며 미행을 의뢰한 것이다. 이 의뢰인은 “불륜 현장을 적발하면 달려가서 때려죽이고 싶다”며 “상대 남성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는데 납치·감금도 해달라”고 주문했다. A 씨는 “옛날이면 몰라도 요즘처럼 단속이 심한 때는 이런 부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최근에는 경찰의 단속 움직임이 보여 나도 몸을 사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년 정도 일하다 보니 ‘이때쯤 단속반이 뜨겠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지만, 업계에서 단속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어려운 상황을 넘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손놓은 실종자 찾기는 민간 몫” 하지만 불륜 추적을 전문으로 하는 A 씨도 순기능을 할 때가 있다. 오래전 헤어진 가족이나 지인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경우다. A 씨는 지난해 “15년 전까지 같이 일했던 직장 선배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기술이 좋아 업계에선 소문이 자자했는데, 개인사업을 하겠다고 직장을 그만둔 뒤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소리만 들었다는 것이다. 의뢰인은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그 선배를 찾아 일을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A 씨는 우선 당시 그가 다닌 회사를 통해 취업 때 낸 주민등록등본을 찾아냈고, 가족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확인했다. 그것을 토대로 추적해 선배 부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냈다. 15년 전 헤어진 선배는 소문처럼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살면서 여전히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준 후배를 반가워했다. 또 다른 민간 조사원 B 씨는 올해 초 한 여성의 부탁을 받아 수임료 200만 원을 받고 어머니를 찾아줬다. 의뢰인은 20년 전 가정불화로 사춘기를 겪다가 집을 나갔다. 이후 홀로 성장해 결혼한 뒤 이민을 갔다. 호주에서 자리 잡은 그녀는 어린 시절 홧김에 부모 자식의 인연을 끊었던 게 후회돼 어머니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생년월일과 이름만 기억난다”고 말했다. B 씨는 그녀에게 선금 100만 원을 요구했다. 이 중 30만 원을 떼 전화번호 찾아내기 전문가인 중간업자를 섭외했다. 작업에 들어간 지 하루 만에 여성의 어머니 전화번호를 찾았다. B 씨는 의뢰인에게 어머니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나머지 100만 원을 받았다. 일이 끝난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의뢰인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울면서 “죽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묻었던 딸을 찾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현재 법률상 이 같은 업무는 목적이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불법이다. 실종된 가족을 찾는 것을 제3자에게 부탁할 경우, 무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허용되지만 돈을 받고 찾아주는 것은 금지사항이다. 당사자의 허락 없이 소재를 파악하거나, 미행을 하는 행위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나주봉 회장은 23년간 647명의 실종자를 가족의 품에 돌려보냈다. 실종 초기에는 경찰에 신고돼 수사가 진행됐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 경찰도 손을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회장은 협회에 의뢰한 이들에 한해 무상으로 실종가족 찾기를 하고 있다. ▼ “아내 불륜남을 잡아서 감금해주시오” 무서운 의뢰도 ▼[한국판 셜록 홈스 나오나]사설탐정 합법화의 ‘그림자’나 회장은 “협회를 통해 파악된 실종가족의 수요는 어림잡아 계산해도 몇십만 명에 이른다”며 “민간 조사업을 합법화한다면 실종자 가족들의 수요가 많을 텐데 지금은 불법이라 어둠의 경로를 통해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신직업 창출” 대 “사생활 침해” 민간 조사업의 영역은 실종자 찾기, 기업정보 수집,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모조품 적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이 때문에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역기능을 하는 불법 흥신업과 민간 조사업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전승훈 힐앤어쏘시에이츠(H&A) 기업 리스크매니지먼트 한국지부장은 “민간 조사업이 합법화되면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인재채용을 앞두고 기업, 사람에 대한 정보 수집을 대신해주는 고급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며 “이런 분야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전체 민간 조사업 시장에서 건당 몇백만 원 하는 불륜 뒷조사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지부장이 일하는 H&A사는 기업의 위기관리를 위한 업계 평판조사 등 정보 수집을 주로 하는 홍콩계 기업이다. 그가 예로 드는 또 다른 민간 조사원의 활동 영역은 ‘지식재산권 보호’다. 실제로 H&A사는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로부터 의뢰를 받아 자동차 부품의 짝퉁(모조품)이 태국 내에서 불법 수입·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이 과정에서 H&A사는 샘플을 구매하고 업체 관계자를 미행하며 증거를 수집했고, 단속기관에 고발해 압수수색에 동참했다. 전 지부장은 “지식재산권 보호, 보험사기 조사 등은 일반 국민은 잘 알지 못하는 민간 조사원의 활동 영역”이라며 “단순 불륜 뒷조사에 비해 시장도 훨씬 크고 수요도 많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인탐정 강효흔 씨 역시 한국의 민간 조사업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해외로 도피한 경제사범을 색출해 송환을 돕는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강 씨는 1990년대 대성그룹 해외사업부 염모 계장이 사장의 이름을 도용해 은행에서 50억 원을 대출받아 도주한 사건을 해결하며 이름을 날렸다. 그는 염 계장의 항공기록과 전화기록을 일일이 추적하고, 현지 친척들을 탐문수사한 끝에 9개월 만에 은신해 있는 범인을 찾아냈다. 강 씨는 “미국은 전문직 면허국에 징계위원회를 설치해 민간 조사원에 대한 소비자 고발을 접수하고, 심사를 통해 면허 정지나 취소 처벌을 내린다”며 “제도가 오래된 미국도 여전히 사생활 침해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민간 조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며 부작용을 줄여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민간 조사업에 관한 논의는 초보 단계에 불과해 민간 조사업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말도 나온다. 사생활 침해 위험을 관리감독할 중앙부처조차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은 “개인정보 유출이 계속 문제가 되는 상황인데 제3자에게 정보의 권한을 준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냐”면서 “정보의 단계를 나눠 필요한 정보만 준다고 하지만 사실상 줄 필요가 없는 정보까지 유출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민간 조사업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장점으로 꼽는 ‘은퇴 후 양질의 일자리 제공’ 역시 “오히려 역기능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 조사업과 관련된 직업능력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한민간조사협회의 하금석 협회장에 따르면 매 학기 교육생 중 전·현직 경찰의 비율은 약 20%다. 그만큼 개인정보 및 경호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재취업 직종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 은행원 등은 다른 직업에 비해 개인정보 수집이 용이한 직업”이라면서 “은퇴 후 민간 조사원을 할 계획이 있다면 현직에 있을 때 정보를 빼돌리겠다는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수연 sykim@donga.com·임현석·이건혁 기자}

“중국에 세워진 외국인 3명의 기념관 가운데 ‘의사(義士)’라는 공식 명칭이 붙여진 곳은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유일합니다.”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 김주용 박사(48)의 설명에 4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 역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방문한 40명의 역사학도들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100여 m² 규모의 전시관을 지나 통유리 밖으로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표지석이 눈에 들어오자 곳곳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김 박사는 “바로 이곳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이 시작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들은 지난달 29일부터 5박 6일 일정으로 독립기념관이 주관한 ‘항일독립운동유적지 답사’에 참여한 전국 19개 대학 역사학과 역사교육학과 학생들이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이번 답사에서 학생들은 중국의 동북 3성을 모두 방문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되짚었다. 답사단은 중국 랴오닝(遼寧) 성 뤼순(旅順)의 안중근 의사 순국지인 뤼순감옥을 시작으로 단둥(丹東), 지린(吉林) 성 허룽(和龍) 시의 청산리대첩 유적지, 하얼빈 시 등지를 방문했다. 답사단은 진지한 분위기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웠다. 유적의 의미를 설명한 김 박사는 “만주, 간도 곳곳에는 우리 역사가 남아 있지만 그 공간의 의미를 잃어버리면서 동시에 역사도 잊어버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안중근 의사가 숨진 뤼순감옥과 청산리대첩 기념비 등에서 헌화하고 묵념을 하며 감사의 의미를 되새겼다. 지린 성 룽징(龍井) 시에 위치한 ‘3·13 반일의사릉’을 관리해 온 최근갑 씨(89)가 “만주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건 바로 우리 민족”이라고 강조하자 학생들은 박수를 쳤다. 답사단은 중국 곳곳에 퍼진 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부족한 현실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3500여 명의 독립군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 터는 아무 표시도 없이 밭으로 쓰이고 있었다. 봉오동전투 기념비, 청산리대첩 기념비도 전투가 벌어진 장소와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김 박사는 “제대로 연구된 역사는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우리나라와 중국처럼 세계 각국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답사를 마친 학생들은 이번 답사를 통해 독립운동사 연구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정태석 씨(20·인천대 2년)는 “근현대사가 어렵고 슬픈 역사라 인기가 없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반인 만큼 꾸준히 배워야겠다”고 말했다.하얼빈=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5일 실종자 가족들에게 실종자 유실 가능성과 잠수사들의 피로 누적을 언급한 해군 장교를 불러 “해군 나가라”며 크게 질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7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수색을 담당하는 해군 장교가 실종자 가족대표에게 실종자 유실 가능성과 수색 장기화로 인한 해군 잠수요원들의 피로 심화 등 개인적인 의견을 털어놨다. 이를 전해들은 이 장관이 해당 장교를 진도 팽목항의 상황실로 불러 개인 의견이 정부의 의지 부족으로 잘못 알려질 수 있다며 크게 화를 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장관은 “해군이 (수색 현장에서) 나가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팽목항에서 머물고 있는 해경 관계자는 “이 장관이 화를 내며 큰 소리를 쳐 모두가 놀라고 당황스러웠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6일 전남 진도군 산림조합 추모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지원업무를 하던 중 투신해 사망한 진도경찰서 정보계장 김태호 경위(51)의 빈소에는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명의의 조화가 놓여 있었다. 김 경위의 시신이 발견된 직후인 5일 오후 1시부터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세월호 침몰로 실종된 양승진 교사의 부인은 “사고 이후 가족같이 지내며 위로해준 분인데 마음이 아프다. 더이상 추가 희생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경위는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직후 유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그들의 입장을 해경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5월 26일 오후 9시 26분 진도대교에서 투신했고, 이달 5일 오전 9시 58분 진도군 군내면 해상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김 경위는 세월호 참사 이후 72일 동안 차로 30분 거리인 전남 해남의 자택에 딱 세 번 갔다. 갈아입을 옷을 챙기기 위한 것이었다. 2남 2녀 중 장남인 그는 세월호 참사를 챙기느라 4월 조부모 산소를 이장하는 데 참석하지 못했다. 투신하기 약 1시간 전 지인과 휴대전화 통화를 하며 “어린 딸(8세)이 보고 싶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김 경위의 여동생(47)은 “세월호 참사 이후 오빠가 너무 바빠 통화도 못했다. 그런데 한번은 전화를 먼저 걸어와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게 너무 괴롭다.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오빠가 승진 심사에서 떨어진 적이 있지만 웃어넘기곤 했다. 일부에서 승진 탈락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너무 컸던 게 이유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세월호 업무를 맡았던 경찰관에 대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진단·치료는 희망자에 한해 이뤄지고 있다. 김 경위는 이 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 경위를 경감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하고 순직 처리하기로 했다. 영결식은 7일 진도경찰서에서 전남지방경찰청장(葬)으로 치러진다. 한편 장마철을 맞아 기상이 악화되면서 세월호 사고 해역 수색은 중단된 상태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제8호 태풍 ‘너구리’의 북상과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사고 지점에 정박했던 바지선 두 척과 소형·중형 함정들을 모두 목포 내항으로 피항시켰다고 밝혔다. 진도=이형주 peneye09@donga.com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세월호 침몰사고로 숨진 일반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관 건립이 추진된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가족대책위원회는 희생자 가족들의 의견을 수렴해 인천 부평시립승화원 내에 추모관을 세우기로 하고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일반인 가족대책위 관계자는 “현재 승화원 내 3곳의 용지 중 1곳을 선정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으며 용지 선정을 끝낸 뒤 추모관 건립에 필요한 비용 지원 방안과 절차를 인천시와 안전행정부 등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한국 시간으로 18일 오전 7시에 열리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 1차전 한국-러시아전을 맞아 서울을 비롯한 전국 27곳에서 응원전이 펼쳐진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18일 0시부터 국가대표 응원단 ‘붉은 악마’가 응원을 주도한다. 강남 영동대로에서는 삼성역에서 영동대교 방면 7개 차로를 막고 오전 4시부터 9시까지 축구 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각종 행사가 펼쳐진다. 인천, 부산 등 전국 주요 도시에도 응원전이 열린다. 경기 시간이 출근 시간과 겹쳐 출근길 교통 혼잡도 예상된다. 경찰은 광화문광장에 모여든 시민이 예상을 초과할 경우 차로까지 시민들에게 개방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버스와 지하철을 증편하고 택시 부제를 경기 당일 해제하기로 했다. 서울시 대중교통 및 도로 통제 여부는 다산콜센터(120)로 확인하면 된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세월호 참사의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 이주영 장관(사진)은 13일 유임됐다. 관가에서는 이 장관이 세월호 사고 이후 두 달 가까이 사고 현장에 머물며 희생자 가족들의 신뢰를 얻어 이번에 유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세월호 사고 초기만 해도 이 장관에 대한 국민의 비난이 거셌고 그의 경질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전남 진도군 팽목항 사고 현장을 찾았을 때 격앙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여기 계신 이주영 장관은 어떻게 하실 것이냐”며 경질을 요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장관이 59일째 진도 현장을 지키며 매일 수색 결과를 직접 브리핑하고 유족들을 보살피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 장관이 유임된 이날 실종자 가족 허모 씨(50)는 “장관이 새로 바뀌면 구조작업을 인수인계하는 등 시간 낭비가 있었을 텐데, 유임으로 그런 걱정을 덜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이 장관이 이런 큰 사고를 겪은 만큼 이 장관 이상 해수부 개혁의 적임자가 없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경질에서 유임으로 결과가 바뀌었다. 하지만 이 장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사고 수습이 마무리되면 져야 할 책임에 따라 합당한 처신을 할 것”이라며 여전히 사퇴 의사를 굽히지 않아 추후 교체 가능성도 거론된다.세종=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진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느낌이 이상한 날이었어요. 진도에 와서 한 번도 배고픈 적이 없었는데 나와 아내가 모두 점심때부터 허기가 져서 이상하다 했어요.” 세월호 실종자였던 단원고 2학년 7반 안중근 군(17)의 아버지 안모 씨(46)는 8일 아들을 찾을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안 씨는 이날 오후 실종자 심야 수색을 보기 위해 사고 해역에서 작업 중인 바지선 ‘언딘 리베로호’로 향했다. 잠수사들은 8일 오후 11시 20분경 세월호 4층 선수 좌현 객실에서 키 175∼180cm의 남성 시신을 수습해 바지선 위로 올려보냈다. 아버지는 한눈에 아들을 알아봤다. 자신이 중학교 졸업선물로 사준 멋쟁이 벨트와 치아교정기를 하고 있었다. 9일 오전 안 군 가족이 머물던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에는 ‘21번 안중근’이 새겨진 프로야구단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안 군이 두산 베어스의 열혈 팬인 것을 알고 있던 안 씨의 회사 동료들이 두산 베어스에 연락해 선수들의 사인을 받은 뒤 지난달 13일 보내온 것이다. 등번호 21번은 2학년 7반 21번인 안 군을 의미한다. 동시에 21번을 달고 뛰었던 두산 베어스의 야구스타 ‘불사조 박철순’처럼 영원히 살아 있으라는 뜻이 담겼다. 어머니 김모 씨(45)는 유니폼과 함께 보내온 야구 모자와 포수용 글러브를 쓰다듬으며 김 씨는 “야구하다 어깨도 다치고, 공부에 방해될까 봐 좋아하던 야구 못 하게 했는데, 이걸 보면 참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중근 의사의 이름에 걸맞게 반 친구들 다 올려보내고 나오느라 늦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해경이 촬영한 구조 동영상과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보유한 교신기록을 증거보전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진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세월호 참사 54일째인 8일 2명의 시신이 추가로 수습됐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10시 35분 세월호 3층 식당을 수색하던 중 단원고 2학년 1반 담임교사인 유니나 씨(28·여·사진)의 시신을 수습했으며 유전자(DNA) 검사를 거쳐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이날 오후 11시 20분경 세월호 4층 선수 좌현 객실에서 신원미상의 남성 시신 1구를 추가로 발견해 인양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세월호 사망자는 292명으로, 실종자는 12명으로 바뀌었다. 유 씨는 세월호 사고로 학생 243명과 교사 9명이 희생된 경기 안산시 단원고의 2학년 1반 담임을 맡고 있었다. 사고 당시 1반 학생 37명 중 19명이 세월호에서 탈출해 10개 학급 중 가장 많은 수의 학생이 생존했다. 1반 학생들은 4층 다인실에 머물고 있었다. 이날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만난 유 씨의 부모는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어머니 김모 씨(56)는 “니나가 학생들을 4층에 모아서 탈출시키려고 하던 중, 한 학생이 딸에게 전화를 해서 3층에 다친 학생이 있다고 했대요. 그대로 달려갔다고 들었는데, 결국 3층에서 발견됐네요”라고 말했다. 전화를 건 학생과 다친 학생은 구조됐다. “살아남은 학생들이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딸이 아끼던 제자들이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유 씨의 아버지 유모 씨(58)는 마지막에 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게 여전히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버지 유 씨는 “사고 마지막까지 애들 구하겠다고 뛰어다녔을 니나 모습이 선합니다. 교사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이었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문자나 전화라도 한번 해줬으면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 씨는 사고 당일 학생들을 구하느라 가족과 남자친구에게 마지막 문자 하나 남기지 못했다. 니나 씨는 부모에게 친구 같은 딸이었다. 고향인 경남 진주에 올 때면 꼭 영화를 함께 보거나 밤새 이야기를 했다. 유 씨는 학업에도 열심이었다. 유 씨의 어머니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 다닐 때 장학금도 많이 받았고, 그걸로 일본 유학을 갔다오는 등 모범생 딸이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유 씨는 4년 전 임용된 뒤 첫 발령지인 단원고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다. 유 씨는 안산에서 오빠 유건우 씨(30)와 자취를 하며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자주 표현했다고 한다. 유 씨의 장례식장은 안산 고려대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한편 가로 4.8m, 세로 1.5m 크기의 세월호 선체 외벽 절단 작업이 7일 오후 마무리돼 실종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세월호 4층 선미의 수색 작업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진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항상 고민을 들어주던 자상한 아빠였는데,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요. 당장이라도 돌아올 것만 같은데….” “아빠가 만들어준 탕수육, 깐풍기, 제육볶음이 그리워요.” 다 말라버린 것만 같았던 눈물이 자매의 눈에서 다시 흘렀다.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52일 만에 사랑하는 아버지 김문익 씨(61)의 시신을 찾은 두 딸 민희 씨(30)와 민경 씨(29)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다. 사고 당시 세월호 식당에서 요리를 담당했던 승무원 김 씨의 시신은 6일 오전 8시경 세월호 3층 선미 좌측 선원 침실에서 발견됐다. 그의 다리에는 기름에 화상을 입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로써 세월호 참사의 290번째 희생자가 발견됐고 남은 실종자는 14명으로 줄었다(6일 오후 11시 현재). 두 자매는 아버지를 찾기까지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 지난달 초 아버지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다른 사람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중순에는 세월호에서 탈출에 성공한 기관실 선원들이 검경합동수사본부 조사에서 “부상당한 김 씨 등을 목격하고도 그냥 빠져나왔다”는 진술 내용이 알려지면서 억장이 무너지기도 했다. 자매는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진도로 내려오지 못했다. 사고 당시 세월호 일부 승무원이 먼저 탈출한 것을 두고 비난을 쏟아지면서 친척들이 “당분간 집에 있으라”고 말렸기 때문이다. 민희 씨는 “큰아버지 등은 (희생자 가족들이) 세월호 승무원들을 욕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상할 거라며 진도행을 만류했다. 사고 열흘 뒤에야 진도체육관에 왔다”고 말했다. 병원에 입원했던 어머니는 이틀 전 퇴원해 진도로 내려갈 준비를 하던 중 남편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민희 씨는 “어머니가 고생하지 않게 아버지가 도와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어렵게 아버지의 시신을 찾은 자매는 다른 실종자 가족과 해경 등에 고마움을 전했다. 민경 씨는 “여자 둘이 체육관에 지내다 보니 많은 분이 신경을 써 주셨다. 이렇게 먼저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며 미안해했다. 한편 세월호 선체 외벽 절단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유압 그라인더를 사용한 작업 속도가 느려 이날 오후 늦게 절단을 끝내고 떼어낸 부분을 바다 위로 건져낼 계획이다. 대책본부는 절단작업이 끝나면 실종자 수색작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진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지난달 21일 288번째 세월호 참사 희생자가 발견된 지 보름 만에 289번째 사망자가 발견됐다. 세월호 사고 지점으로부터 약 40km 떨어진 곳에서 시신이 수습되자 시신 유실 가능성에 대한 실종자 가족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5일 오전 6시 39분경 세월호 실종자인 조충환 씨(44)의 시신이 전남 신안군 흑산면의 무인도인 매물도 북동쪽 1.8km 지점 해상에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세월호 침몰 지점으로부터 북서쪽으로 40.7km 떨어진 곳이다. 조 씨의 시신은 매물도 인근에서 작업을 하던 어민 이모 씨(65)가 발견했다. 신안군 도초면의 작은 섬 화도에 사는 이 씨는 이날 오전 어선 유성호(5.89t)를 몰고 흑산면 매물도로 조업을 나가 우럭, 장어를 잡기 위한 그물을 설치하다가 유성호의 2, 3m 옆으로 검은색 바지를 입은 시신이 떠내려가는 것을 발견하고 목포해경에 신고했다. 대책본부는 오후 2시경 진도 팽목항에서 1차로 지문을 확인했으며 정확한 확인을 위해 DNA 검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로써 5일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은 세월호 실종자는 15명으로 줄었다. 이날 발견된 조 씨는 세월호 생존자인 조모 군(7)의 아버지다. 조 씨는 제주도 출장 겸 가족여행을 위해 큰아들 조모 군(11), 아내 지혜진 씨(44)와 세월호에 탑승했으나 둘째 아들 조 군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은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조 씨 가족 중 유일하게 구조된 둘째 아들은 현재 외할머니와 지내고 있다. 조 군의 외삼촌 지모 씨(43)는 “조카는 엄마와 아빠, 형이 하늘나라로 여행을 가 거기에서 잘 살고 있는 줄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 둘째 아들이 아침을 먹고 “놀러가겠다”며 혼자 선실을 나선 지 20여 분 뒤 갑자기 배가 기울었고 조 씨 부부는 둘째 아들을 찾으러 여객선을 헤매고 다녔지만 모두 숨졌다. 큰아들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아빠는 ○○이 찾으러 나갔다. 지금 배가 자꾸 기울고 있는데 할머니가 기도해 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조 씨의 큰아들과 아내는 4월 18일과 22일 각각 세월호 선내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조 군의 외삼촌 지 씨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가는 길도 함께하라고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며 “매형이 사랑하는 아들, 아내가 더이상 병원 영안실에서 추워하지 말라고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씨의 아내 지 씨는 사고 당시 기울어진 배 안에서 잃어버린 자식이 오면 주려고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승객이 촬영한 휴대전화 영상으로 공개돼 많은 사람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사고 지점 반경 11km 해역에 쌍끌이 어선 수색, 닻자망 그물 등으로 시신 유실 방지선을 설치했지만 조 씨의 시신은 사고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40.7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이처럼 시신 유실 방지선에 구멍이 뚫린 원인에는 여러 가능성이 있다. 먼저 사고 초기 세월호 밖으로 유실됐을 가능성이다. 대책본부는 사고 3일째인 18일에야 저인망 어선을 투입했고 4일째에 주변 해역에 그물망을 쳤다. 기상 악화로 수색이 중단된 1일부터 3일 사이에 시신이 선체 밖으로 유실돼 멀리까지 흘러갔을 수도 있다. 조 씨의 시신을 발견한 유성호 선장 이 씨는 “맹골수도에서 매물도까지는 물길이 통해 평소에도 조류가 강할 때는 2, 3일이면 매물도까지 유류물이 떠내려간다”고 말했다. 현재 사고 지점에서 20km 이상 떨어진 해역의 수색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진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신안=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찾아왔다고 생색내는 겁니까. 여러분들은 실종자 가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5일 오후 6시부터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 및 유가족 50여 명과 간담회를 가진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소속 여야 국회의원 17명은 진땀을 흘렸다. 시신 유실의 원인 규명, 구조와 수색 부실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가족들의 목소리에 의원들은 전력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조사를 해야 한다”며 진도체육관에 의원들이 상주할 것을 국조특위에 요구했다. 이에 새누리당 간사 조원진 의원은 “현장에 상황실이나 비대위를 만들어 국조특위에 문서로 보고하도록 하는 채널을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야당 간사 김현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실무를 도와줄 전문가를 파견해 현장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잠수사 안전 확보와 지원 대책을 요청했다. 단원고 학생 남현철 군의 아버지는 “잠수사밖에 믿을 수 없으니 이들의 사기를 진작할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또한 실종자 가족들은 국조특위가 정부와 해경의 잘못을 명확히 밝혀내고, 피해자에 대한 명확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진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기상 악화로 사흘 동안 중단됐던 세월호 실종자 수중수색 작업이 재개됐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악천후로 피항했던 바지선 ‘언딘리베로호’와 ‘88 128호’가 4일 사고 해역에 다시 도착해 수색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우선 3층과 4층 선수 격실, 5층 중앙부 수색을 재개했다. 4층 선미 부분은 절단하기로 한 다인실 창문 주위 가로 4.8m, 세로 1.5m 가운데 남아있는 가로 90cm를 마저 절단할 예정이다. 절단에는 잠수사 이민섭 씨(44) 사망사고를 일으킨 ‘산소아크 절단’ 대신에 금속 날이 있는 유압 그라인더를 사용한다. 지난달 30일 도착한 미국 업체의 원격수중탐색장비(ROV)도 투입된다. 투입 장소를 결정한 뒤 잠수사가 수색할 수 없는 시간을 활용해 선체 내부를 살피게 된다. 실종자 가족들은 세월호 수색 재개 계획을 확인한 뒤 진도 팽목항으로 이동해 수색 현황을 확인하는 등 실종자 발견을 애타게 바라고 있다. 세월호 실종자 수는 지난달 21일 288번째 사망자가 발견된 뒤 2주째 16명에 머물러 있다.진도=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