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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Question & Change’를 신문 지면에 연재하고 있다. 하지만 창업가가 걸어온 길을 한정된 지면에 싣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대화 내용을 추가로 싣는다.▶지면기사 보기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24/112031438/13차원(3D) 프린팅 안경 브랜드 ‘브리즘’의 서울시청점 매장에 들어서면 여느 안경점과는 다른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장 한 쪽에 성인 남성 키보다 큰 열십자(十) 모양의 기계가 있다. 바로 3D 스캐너다. 직원 안내에 따라 스캐너 앞에 서자 기계 중심부를 비롯해 열십자 방향으로 달려있는 카메라가 기자의 얼굴을 3초간 스캔했다. 이어 30초 뒤 카메라 바로 아래에 놓인 태블릿PC 화면에 3D 스캐닝된 기자 얼굴이 나타났고, ‘결과보기’ 버튼을 누르자 얼굴 너비와 눈동자 사이 너비, 콧등 높이 등 18개 항목의 측정결과가 나왔다. 이에 맞는 안경 사이즈와 모델도 추천됐다. 브리즘은 3D 프린팅 기술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안경을 제작한다. 브리즘 운영사 ㈜콥틱의 박형진(48)·성우석(43) 대표는 이 아이디어로 창업하기 위해 1년 넘게 3D 안경 공부 모임을 했다고 한다. 안경과 제조업에 대한 질문을 갖고 창업에 뛰어든 두 대표의 창업기(記)를 동아일보가 들어봤다. 우선 박 대표 이야기다.▽박형진 ㈜콥틱 공동대표(48)―동업이라는 게 쉽지 않을텐데. 두 분은 잘 맞나? 다퉜던 적은 없나. 일로 엮이지 않았으면 안 친해졌을 것 같다(웃음). 관심사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싸운 적이 없다. 평생 안 싸우고 살았다는 부부가 있던데, 가만 보면 이런 관계라면 그게 가능하겠구나 싶다. 의견이 다른 경우는 이슈마다 너무 많다. 하지만 성 대표와 역할 구분이 확실하고, ‘저 분야는 저 사람이 전문가다’라고 인정한다. 또 내가 반응하는 지점과 성 대표가 반응하는 지점이 다르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인 반면 성 대표는 차분하다보니 짧게 짧게 섭섭할 수는 있었겠지만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나와 성대표는 이미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상태에서 40대 이후에 만났기 때문에 처음부터 욕심을 많이 내려놨다. 나는 예전에 사업할 때는 ‘사업의 중심은 나고,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야한다’는 생각에 목적을 갖고 사람을 선택했다. 그렇다보니 뜻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끌고 갔고, 문제가 생겼던 경험이 있었다. 사업이라는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만났기에 처음에는 ‘사업을 같이하자’라는 말은 안 했다. 좋은 아이템을 갖고 만났지만 사업이라는 건 시기가 있고, 기술 수준의 성장과 시장성에 대한 확신이 없던 상태여서 1년간 매주 수요일에 만나 스터디를 했다.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았나보다. 대학 졸업 후 P&G코리아에서 마케팅을 하다가 디즈니코리아에서 ‘비즈니스 플래너’라는 직함으로 2년간 서울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해당 프로젝트가 중국 상해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진로를 고민하게 됐다. 고민 중 일본 여행을 하다가 봤던 안경점이 생각났다. ‘안경 소비자들이 안경을 구매할 때 잘 맞지 않는 문제 등으로 고충을 겪는데, 왜 일본 안경점은 잘 되지’ 라는 질문을 갖게 됐다. 디즈니 안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고 ‘알로(ALO)’라는 이름으로 안경사업을 시작하게 됐다.―‘알로’가 설립 후 꽤 알려졌는데. 알로는 2006년에 설립해 2012년에 매각했다. 순조로운 매각이 아니었고, 엑싯하면서 거의 창업자인 나는 정작 돈을 벌지 못했다. 당시 업(業)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던 상태에서 ‘내가 마케팅을 한 사람인데 저거보단 잘하겠다’라는 과도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시작하다보니 3~4년간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헤맸다. 요즘 같은 스타트업 지원 생태계가 있고, 기관들이 관심을 가졌다면 좋은 자금을 받아서 잘 성장시켰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자금을 개인들에게 의존해야하는 상황이었고, 그러다보니 이해관계 충돌 등의 문제가 생겼다.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잘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준비도 안 돼 있었다. 내부 관리가 잘 안 되는 상황에서 밖으로 확장을 하는 데에 몰두했던 것도 실패 요인 중 하나다. 알로는 내게 매우 아픈 스토리다. ―‘알로’를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면. 나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유능한 스타트업 대표나 기업을 일군 사람 중에서는 다양한 역량을 골고루 갖춘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로를 계기로 나라는 사람을 가만히 봤더니 한쪽으로 치우쳐있더라. 그걸 자각하지 못했었다.―매각 후에는 뭘 했나. ‘알로’로 너무 큰 상처를 받았고, 갈데가 없어서 모교인 연세대 도서관에서 6개월을 숨어 지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다. 3개월은 ‘출근한다’고 말하고 도서관으로 갔다. 아내가 그 시기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난 후 더 이상 속일 수 없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아내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많이 힘들었겠네’라는 한 마디만 했다. 아직도 그 순간이 고맙고 기억에 남는다.―퇴사가 쉽지 않은데 용기의 근원은 어디서 나왔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업이 직장생활보다 더 힘들거나 덜 힘든 문제는 아니다. 이보다는 각자 라이프스타일과 기질에 따라 이 길이 더 편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사업은 죽을 수도 있는 싸움이기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뒤에서 누군가 관리한다는 느낌 때문에 큰 조직에 있을 때 더 힘들었다. ―창업은 뭐라고 생각하나. 사업이라는 과정 자체가 인간이 진정으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창조의 영역’인 것 같다. 사업에 대해서 보통 ‘내가 아이템이 없으니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라고 많이 말하는데, 아이템과 아이디어는 마치 정자와 같다. 수억 마리가 떠돌아다니는 가운데 상황, 돈, 조직이라는 난자를 만나야 수정된다. 수정됐다고 해서 아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착상이 되고,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그게 스타트업이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온다고 해서 끝나는것도 아니다. 사업의 과정이 이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 살면서 이런 과정을 해보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 같다. 결과가 잘되면 제일 좋겠지만, 무엇보다 과정이 즐겁다. ―CES 2022에는 왜 가게 됐나. 지난해 온라인으로 열린 CES에 참여했었는데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했다. 전시회라는게 아무생각 없이 돌아다니다가 우연하게 이뤄지는 만남이 중요한건데, 온라인은 그런 게 안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둔 상황에서 CES는 가장 좋은 창구라고 생각했다. 올해는 오프라인으로 열렸는데,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라 가기 전에는 걱정이 컸다. 콥틱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CES에서 서울관에 부스를 설치했는데, 제일 안쪽에 위치해있어 흥행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서울관의 공간 기획을 잘 해 밖에서 봤을 때 들어가고싶게끔 만들었고, 사람들도 많이 보러왔다. 게다가 안경은 인구의 절반이 관심을 갖는 분야고, 방문객이 콥틱 부스에서 직접 체험도 할 수 있다보니 콥틱 부스 자체가 흥행에 성공했다. ―CES 참석으로 미국 시장에 대한 확신은 생겼나? 미국은 안경이 비싸지만 양질의 서비스를 찾기 힘들다. 다인종 사회인데 반해 안경 시장은 보통 백인 얼굴에 맞춰져있다보니 소비자들의 불만도 많다. CES 2022 전시 현장에서 개인적으로 안경을 구매하고싶다는 문의도 꽤 있었고, 실리콘밸리 베이스의 벤처투자자(VC)가 투자하고싶다는 경우도 있었다. ―콥틱 내부 분위기가 궁금하다. ‘대표님’과 같은 직급 호칭을 쓰지 않고 닉네임을 부른다. 나의 경우 직원들이 ‘젠마’라고 부르고, 성 대표는 ‘윌’이라 칭한다. 팀장 중에 40대가 한 명 더 있긴 한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가장 많다. 예전에 20대 직원들이 일을 할 때 ‘박 대표님께서 성 대표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라고 호칭을 쓰다가 시간이 다 가더라. 그래서 호칭을 붙이지 말자고 정했다. ―직원은 어떤 기준으로 뽑나. 콥틱 직원들은 다양하다. 안경 디자이너의 경우, 조용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친구가 일하고 있다. 반면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은 파이팅이 넘치는 스타일이고, 브랜딩을 맡은 직원은 아티스트 출신이다. 나는 팀플레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넓은 시야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작은 것에 목을 매거나 ‘나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고객 경험은 여러 가지 요소가 연결돼 완성되는데, 이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안경 시장은 8%씩 성장중인데 반해 한국 시장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이것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콥틱의 경쟁력은? ‘맞춤형 안경’이라는 개념은 옛날부터 소규모로 안경을 만드는 장인들 사이에서 있긴 했다. 하지만 편안함이 아니라 개성을 위한 맞춤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한국에서 착용감에 초점을 맞춘 안경은 브리즘밖에 없다고 자신한다. ―안경산업의 미래는.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내에 스마트폰이 안경으로 들어온다고 본다. 수많은 IT기업, 광학기업이 여기에 엄청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안경에 칩과 배터리가 들어가면 안경은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안경 착용감에 대한 이슈도 더 커질 것이다. ―앞으로의 꿈은. 사업적으로는 존경받고 사랑받는 글로벌 기업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외형이 얼마가 되는지보다는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고 ‘이 기업을 통해 내 삶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 개인적으로, 단기적으로는 좋은 팀과 함께 과정을 즐겁게 이어가는 것이 목표다.박형진 ㈜콥틱 공동대표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2002~2004년 P&G 코리아 마케팅 본부 △2005~2006년 월트디즈니코리아 디즈니랜드 개발 담당 △2006~2012년 ALO 대표이사 △2014년~현재 어반딜라이트 대표이사 △2017년~현재 콥틱 대표이사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1. 사람마다 얼굴 모양과 크기가 다른데 왜 안경은 미리 만들어 놓은 걸 그냥 쓸까. 우연히 간 일본 여행에서 사람들의 안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보다 더 다양한 취향을 보여주는 안경이 많았다. #2. 금형을 만들 필요 없는 3차원(3D) 프린팅을 활용하면 제조업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 생산하기 전에 금형을 만들 필요도 없고, 생산량이 딱 한 개인 제품도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 공동대표가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 각기 다른 질문을 품고 안경 전문가와 3D 프린팅 전문가로 방향을 튼 박형진(48), 성우석(43) 두 사람은 2015년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2017년 공동 대표로 콥틱을 창업한 뒤 얼굴 형태에 맞춰 디자인해주는 3D 커스텀 안경 브랜드 ‘브리즘’으로 각자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P&G코리아에서 마케팅을, 월트디즈니코리아에서 디즈니랜드 개발 담당 일을 했던 박 대표는 일본 여행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2006년 안경 회사 ‘알로(ALO)’를 창업했다가 회사를 매각했다. 과도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문제였다. “스토리를 얘기하려면 소주 10병은 필요하다”고 한다. 박 대표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려 모교인 연세대 도서관에서 6개월을 숨어 지내듯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성 대표를 만났다. 당시 성 대표는 ‘롱테일 경제학’의 창시자인 크리스 앤더슨의 ‘메이커스’를 읽고 3D 프린팅에 푹 빠져 있었다. 회계사, 컨설턴트로 일했지만 엔지니어 출신으로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 공장을 많이 다녀서인지 제조업이 익숙했다. 컨설팅 맡은 회사의 공장에서 지내며 답을 찾는 ‘현장파’였다. 제조업의 미래를 바꾸는 ‘메이커’(만드는 사람)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성 대표는 자신이 직접 만든 3D 안경을 쓰고 나왔다. 3D 프린팅 안경 제조라인을 찍은 동영상을 몇천 번 돌려본 뒤 중소 제조업체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생산라인을 갖춰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모은 돈과 기술보증기금에서 받은 3억 원으로 장만한 3D 프린터를 사용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라 박 대표는 ‘앞으로 함께 일할 운명’을 느꼈다. 하지만 둘은 서두르지 않았다. ‘안경 전문가’와 ‘3D 전문가’는 1년 넘게 3D 안경 공부 모임을 한 뒤 창업에 나섰다. ○ “10년 안에 스마트폰이 안경으로 들어올 것”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22에서 콥틱 부스는 문전성시였다.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그룹의 기술담당 임원이 찾아와 안경을 가상 착용해 보며 관심을 보였다. 브리즘은 3D스캐너로 얼굴을 측정해 1만 명 이상 누적된 빅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 추천 서비스로 안경의 크기와 모양을 추천한다. 열흘 정도 제작을 거치면 ‘나만의 맞춤 안경’이 완성된다. 디지털 기기를 많이 쓰면서 젊은층의 고도 근시가 늘고 평균수명 연장으로 노안 인구도 증가하면서 우리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안경을 쓴다. 카카오벤처스 등이 2019년 콥틱에 시드 투자할 때 가장 주목한 점도 “이 사업이 충분히 큰 시장을 가졌느냐”였다. 콥틱의 포부는 전 세계 안경시장의 27%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미국은 다인종 사회인데도 안경이 백인 얼굴에 맞춰져 고객 불만이 많다고 봤다. 국내에서 금지된 안경의 온라인 판매도 미국에서는 가능하다. 아이폰용 브리즘 앱을 활용하면 고객이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스캔하고 인공지능(AI)이 추천한 안경을 주문할 수도 있다. 박 대표와 성 대표는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이내에 스마트폰 기능이 안경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증강현실 기술로 안경과 스마트폰의 경계가 무너지는 방향으로 안경이 진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공동대표의 회사 내 호칭: 10년 넘게 명상으로 스트레스를 다스려 온 박 대표는 ‘젠마’(젠 마스터), 성 대표는 영어 이름 윌리엄의 앞 글자를 딴 ‘윌’로 불린다. 20대 직원들이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는데”라고 길게 말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영어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 #콥틱의 목표: “브리즘 안경으로 내 삶이 좋아졌다”는 평을 듣고 싶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동아일보는 14일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Question & Change’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창업가가 걸어온 길을 한정된 지면에 싣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대화 내용을 추가로 싣는다.▶지면기사 보기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16/111845153/1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이 받은 CES2022 ‘최고 혁신상’을 펫나우라는 스타트업이 받았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 말로만 스타트업이지 규모가 꽤 큰 회사는 아닐까. 서울 서초구 AI양재허브에 위치한 펫나우 사무실에 들어서자 의구심이 무색하게 직원 규모도, 사무실 규모도 단출했다. 설립된 지 만 4년이 채 안 된, 직원 12명의 스타트업이었다. 사무실 내에선 인터뷰를 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AI양재허브에 입주한 회사들과 함께 쓰는 공용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임준호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CES에 전시부스를 설치하려면 수 천만 원이 들기 때문에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갈 엄두를 못 냈습니다. 직원들과 ‘상 받게 되면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이번에 상을 받게 됐지 뭐예요. 그냥 혁신상이면 모르겠는데 최고 혁신상이어서 바로 미국 가는 항공권을 끊었습니다. 최고 혁신상은 주로 세계적인 기업들이 휩쓸기 때문에 사실 꿈도 안 꿨습니다.” CES에 갔을 때의 상황과 펫나우를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담겨있었다. ―어떤 점을 인정받아 CES2022 최고 혁신상을 받게 된건가. 미국은 반려동물 천국이다보니, 반려동물 관련 회사들이 상을 제법 받는다. 하지만 그동안 대부분 목걸이 등을 착용하는 방식으로 나왔고, ‘비문(鼻紋·코의 무늬)’과 같은 생체인식은 굉장히 혁신적이라고 느낄 만큼 없었던 기술이었다. ―CES에 가서 어떤 점을 부각시켰나. 미국에 가기 전에 미국의 반려인을 인터뷰해 한국 반려인과 어떤 점이 다른지 살펴봤다. 대체로 비슷했지만 미국이 한국보다 좀 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았다. 동물의 신원확인을 위해 마이크로칩을 삽입하는 방식에 대해 미국의 많은 반려인들은 “우리 강아지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이라며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미국은 유기동물이 1년에 1000만 마리씩 나오기 때문에 마이크로칩 삽입은 대부분 유기동물보호소에서 관리 차원에서 쓰이고 있었다. 일반 반려인이 펫나우의 비문 인식 기술에 대해 듣더니 깜짝 놀라며 ‘이렇게 간편하고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 (미국) 정부는 뭐하고 있는 거냐’고 하더라. 이런 반응을 듣고 ‘아이(반려견)에게 피해주지 않고, 집에서 편안하게 등록할 수 있고 조회할 수 있다’는 점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사실 마이크로칩의 단점은 명확하다. 반려견 몸 속에 삽입하는 것을 반려인이 굉장히 싫어하고, 침습행위라 수의사에게 가야해서 번거로운데다 비용도 10만 원가량 든다. 일반인은 마이크로칩을 인식하는 스캐너를 갖고있지 않기 때문에 길가다 길 잃은 강아지를 만났을 때 바로 주인을 찾아줄 방법이 없다. 결국 스캐너가 있는 동물병원이나 보호소로 데려가야 하는데, 거기로 데려갈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반면 펫나우의 앱은 비용도 안 들고, 아무데서나 등록할 수 있다. 신고도 바로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장점이 훨씬 많다보니 미국인들도 쉽게 이해하더라. ―동물 신원인증 수단으로 왜 하필 비문을 선택했나. 사람의 경우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지문, 홍채, 귀의 정맥무늬 등 7가지가 있다. 하지만 접근성과 보편성, 편리성 등을 따졌을 때 지문이나 안면을 많이 쓴다. 강아지도 홍채로 구분할 수 있지만 (사람만큼 계속) 눈을 뜨지 않는다. 또 미용 전후로 얼굴의 윤곽선이 달라져 안면인식도 어렵다. 그래서 비문을 선택하게 됐다. ―비문 아이디어는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 반려동물이 워낙 많은 미국에서는 수십년 전부터 비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코에 잉크를 묻혀서 도장을 찍는 방법이 나왔는데 불편해서 더 이상 발전하진 않았다. 그러다 5년 전쯤 휴대전화에 안면인식 기술이 탑재되면서 이 기술을 동물 신원확인에 활용해보자는 니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10여 개의 회사가 이 아이디어로 창업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이 인식율을 높이지 못해 사업을 접었다. ―초기 비문 데이터는 어떻게 확보했나. AI는 데이터가 있어야 학습을 할 수 있다. 사람 안면인식 관련 데이터는 전세계적으로 몇십억 장이 있다. 하지만 강아지는 쉴 새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선명한 코 사진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결국 나랑 CTO 등이 DSLR카메라를 들고 5개월 동안 전국의 반려견 카페, 유기동물 보호소, 애견미용학원 등을 찾아다니며 직접 강아지 비문사진을 찍었다. 갈만한 곳은 다 다녀보니 2만 장의 비문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더 남았다. 펫나우의 비문 인식 관련 논문이 SCI급 해외 저널인 IEEE의 심사를 통과해 게재됐는데, 당시 약 10만 개의 데이터로 AI가 학습한 결과 인식률이 98.97%로 나왔다. 하지만 이건 실험실의 데이터고, 실제 환경에서는 조명과 거리 상황 등에 따라 인식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려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반려견의 코 사진을 찍어서 앱에 올려주면 AI가 더 똑똑해져 인식율이 높아지게 된다. 데이터를 많이 올릴수록 그 자체만으로 유기동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가깝게 간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펫나우 기술의 차별화된 점은 무엇인가 비문 인식은 물론, 비문 사진 촬영에도 AI를 도입한 것이다. 강아지가 휴대전화 카메라를 보고만 있으면 아무리 움직여도 3개의 AI가 강아지 모습을 끊임없이 추적하면서 코에 초점을 맞춰 선명한 사진을 찍는다. 이 AI는 촬영한 사진이 선명한지 여부까지 판단하고, 만에하나 흐릿하면 사진을 버린다. 이 모든 과정이 0.08초 안에 일어난다. ―펫나우의 수익 모델은 뭔가. 보험사와 연계해 펫보험 상품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다. 펫보험에 가입하거나 반려견이 진료를 받고 보험료를 청구할 때 펫나우로 신원인증을 하면 인증 수수료를 받는 구조를 생각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신원이 확인되면 펫보험의 가격은 내려간다. 견종마다 잘 걸리는 질환이 무엇인지 통계가 하나씩 쌓여가면서 보험사에서 수가도 정할 수 있게 된다. 펫보험이 비싼 이유 중 하나는 동물의 신원확인이 어렵다는 데 있다. A 강아지로 펫보험에 가입을 했는데, B 강아지가 치료받은 뒤 A 강아지가 치료받은 것처럼 속여 보혐료를 청구해도 보험사가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펫나우의 원래 창업자는 따로 있다던데. 펫나우는 내가 칩스앤미디어에서 대표이사로 있었을 때 직원으로 고용했던 후배가 2018년 8월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그런데 창업 1년 뒤인 2019년 여름, 후배가 ‘창업을 했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 미래를 어떻게 그려야할지 모르겠다’면서 나에게 컨설팅을 의뢰했다. 문제를 진단한 뒤 나오려 했는데, 후배가 ‘회사를 맡아달라’고 해서 펫나우의 대표를 맡게 됐다. 펫나우는 본래 강아지 비문을 이용하는 아이디어로 플랫폼 사업을 하려 했다. 하지만 비문의 인식율이 잘 나오지 않아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비문 인식율을 높이려면 기술기반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고, 딥테크 회사로 피버팅(pivoting·사업방향 전환)했다. 자금 유치도 시작하고, 사업모델도 새로 만들고, 연세대에서 AI 영상처리를 전공한 박대현 박사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 ―좋은 기술을 갖고 있어도 회사 규모가 작으면 인정받기 쉽지 않을텐데. 아무리 공익적인 목표가 있어도 반려인 입장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회사에 자신의 반려견 비문을 등록하는 것은 꺼림칙할 수 있다. 그래서 대기업의 인정도 받고, 학계로부터 기술적인 공인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삼성전자의 ‘C랩 아웃사이드’ 프로그램과 포스코의 벤처플랫폼 지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각각 30대 1,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SCI급 해외 저널인 IEEE에도 논문을 제출했고, 두달동안 검증을 받은 후 심사를 통과해 공식적으로 게재됐다. 최고의 학회로 꼽히는 미국 전자공학계로부터 기술적으로 공인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신뢰를 하나씩 쌓아나갔고, CES로 향할 자신감도 얻게 됐다. ―펫나우 이전에 창업한 경험이 있나. 펫나우는 내게 세 번째 창업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창업은 2003년 반도체 설계회사 ‘칩스앤미디어’였다. 당시에 혁신적인 기술을 갖고 있었고 운도 좀 따라서 잘 성장했다. 하지만 회사가 궤도에 오르니 재미가 없었다. 내 전공이 반도체를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보니 반도체 설계가 욕심이 났다. 칩스앤미디어를 매각하고 첫 창업 성공에 힘입어 2008년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를 따로 차렸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감당하기에는 막대한 자금이 드는 사업이었고, 금융위기 등이 겹쳐 고생을 많이 하다가 결국 사업을 접었다. 성공과 실패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니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 경험이 있다보니 쉬는 동안 컨설팅 의뢰가 들어왔다. 작은회사들의 미래전략 등을 세워주거나 특허전략을 세우는 등 경영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2000년대 초반의 제1 벤처붐 시기에 이어 현재의 제2 벤처붐 시기에도 창업을 하신건데, 첫 벤처붐과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벤처버블이라고 불렸던 제1 벤처붐 때는 창업이 비교적 용이했지만 성장시킬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했다. 대부분 공학자 출신이다보니 창업을 한 뒤에 비즈니스 모델과 마케팅 전략은 어떻게 세울지, 자금은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는지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는 창업투자회사가 많지도 않았고. 망한 회사도 정말 많았다. 요즘도 내 눈높이로는 아직 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굉장히 좋아졌다.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은. ‘유기동물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펫나우의 모토다. 이 모토를 추구하다보면 펫보험 비용도 저렴해져 펫보험의 대중화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당장 올 여름에는 고양이 비문 인식 베타서비스를 시작하고, 내년 CES에서 고양이 비문 인식 서비스를 정식으로 내놓을 예정이다.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국내 1500만 명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대다. 반려동물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어두운 그늘도 있다. 몰래 버려지는 유기 반려동물이 연간 13만 마리나 된다. 임준호 펫나우 대표(55)는 생각했다. 유기동물 없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휴대전화로 동물의 비문(鼻紋·코의 무늬)을 찍어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길거리에 버려진 동물도, 행여 주인을 잃은 동물도 주인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동물 신원확인에 뛰어든 반도체 전문가펫나우는 2018년 8월 설립됐다. 임 대표는 이 회사의 설립자는 아니다. 서울대 전자공학 박사인 그는 2003년 칩스앤미디어라는 반도체 설계회사를 창업해 매각한 적이 있다. 이 성공에 힘입어 2008년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를 따로 차렸다. 막대한 자금이 드는 사업이라 결국 사업을 접었다. 창업에서 1승 1패를 기록한 셈이다. “성공과 실패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니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스타트업 창업을 돕는 컨설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2019년 8월 펫나우에 합류했다. 당초 펫나우라는 회사를 만든 사람은 임 대표가 칩스앤미디어에서 뽑았던 직원이다. 동물 신원확인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긴 했지만 촬영의 낮은 인식률을 해결하지 못해 사업을 접고 싶어 임 대표에게 컨설팅을 받으러 찾아왔다. 이 문제를 인공지능(AI)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임 대표에게 창업자는 부탁했다. “그럼 이 회사를 맡아 주세요.” 임 대표는 기술 기반의 딥테크 회사로 피버팅(pivoting·사업방향 전환)했다. 연세대에서 AI 영상처리를 전공한 박대현 박사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하고 개발자들을 모았다. “한 번씩의 성공과 실패를 겪었더니 어디에 어느 분야의 고수가 있는지 알게 되더라고요.”○ 움직이는 강아지를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회사 방향을 정하고 인재를 영입했지만 근본적인 과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AI는 반복적 학습을 통해 데이터가 쌓여야 정확도가 높아진다. 문제는 AI가 학습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초기 데이터가 마땅하지 않았다. 강아지의 선명한 코 사진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쉴 새 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임 대표와 박 CTO는 직접 비문 사진 촬영에 나섰다. DSLR 카메라를 들고 반려견 카페, 유기동물 보호소, 애견미용학원 등을 찾아다녔다. 5개월 동안 갈 만한 곳은 다 다녀보니 약 2만 장의 개 비문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유기동물을 찾기 위해서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이 비문 인식도 잘해야 하지만 누구나 손쉽게 비문 촬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펫나우는 강아지가 휴대전화 카메라를 보고만 있으면 아무리 움직여도 초점이 맞는 사진이 촬영되는 AI 시스템을 개발했다. 앱을 켜서 반려견을 향해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하기만 하면 3개의 AI가 끊임없이 강아지 모습을 추적하면서 선명한 이미지를 도출해 낸다. “사진이 앱에 입력되면 AI가 이미 확보된 기존 데이터들과 비교해 강아지의 신원을 확인해주는 원리입니다. 촬영에 AI를 도입한 회사는 지금껏 없었습니다.” 펫나우 앱 정식 서비스는 올해 6월경 나올 예정이다. 현재의 베타서비스로도 등록과 조회, 잃어버렸거나 길 잃은 동물의 신고가 가능하다. ○ “반려동물과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임 대표가 마주친 또 다른 과제는 펫나우 회사와 기술력의 인지도를 높이는 일이었다. 직원이 12명에 불과한 스타트업이 개발한 기술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래서 두드린 게 삼성전자의 ‘C랩 아웃사이드’ 프로그램이었다. 3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됐다. 5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포스코의 벤처플랫폼 지원도 받게 됐다. 학계도 공략했다. 그 결과 펫나우의 비문 인식 관련 논문은 SCI급 해외 저널인 IEEE의 심사를 통과해 게재됐다.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22에서 국내 스타트업으로는 유일하게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펫나우의 다음 단계 목표는 보험사와 연계해 펫보험 상품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다. 유기동물을 없애자는 취지로 아무리 공익을 추구해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기업은 버틸 수 없다. 펫보험에 가입하거나 반려견이 진료를 받고 보험료를 청구할 때 펫나우로 신원인증을 하면 인증 수수료를 받는 구조를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펫보험 가입률이 0.3%에 불과합니다. 반려동물의 신원확인이 어려워 보험료가 비싸기 때문이에요. 이 신원확인이 가능해지면 보험료를 낮출 수 있습니다.” #펫나우의 사명: 전 세계 사람들이 동물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앞으로의 계획: 조만간 고양이 비문 인증 서비스도 내놓을 예정.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동아일보는 14일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Question & Change’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창업가가 걸어온 길을 한정된 지면에 싣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대화 내용을 추가로 싣는다.▶지면기사 보기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13/111761814/1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는 2018년 이 회사를 차리고 2019년 3월 비대면 모바일 세탁서비스인 ‘런드리고’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받은 투자금액은 750억 원. 최근엔 국내 최대 규모의 호텔 세탁 사업을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B2B 세탁시장에 진출했다. 워커힐 노보텔앰베서더 등 국내 5성급 특급호텔 등 30여 개 호텔의 침구와 유니폼 등을 세탁하게 됐다. 런드리고가 대체 어떤 서비스기에. 그리고 그가 꿈꾸는 미래는. ―‘런드리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인구학적 분석을 해 봤나. 1인 가구 이용자가 월등히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최근 조사를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1인가구가 40%, 2인가구가 30%, 나머지가 30%정도였다. 가구를 구성하는 인원수보다 가구 구성원의 성격이 중요하다. 3인가구라 해도 남편이 스타트업에 다녀 셔츠를 자주 입지 않는다면 드라이클리닝보다는 물빨래를 많이 해야 한다. 런드리고 서비스는 돈을 내고 세탁을 외부에 맡긴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소득이 높을수록 이용이 많다. 그래서 국내 1000대 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흥미롭게도 부동산 집값과 런드리고 이용 빈도가 거의 일치한다. 서울 강남지역의 이용이 월등히 높고 서초 송파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 순이다. 그 중에서도 한남더힐이나 나인원한남 등 초고가 아파트는 열 채 중 한 채가 런드리고를 이용한다. ―세탁시장의 어떤 부분을 노려 진출했나. 드라이클리닝은 이미 대안적인 성격이 많이 있다. 세탁소도 많고 프랜차이즈 형태도 있다. 현재 드라이클리닝 시장은 크지만, 결국에는 세탁이라는 단어가 재정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세탁의 절반은 물빨래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생에서 세탁이라는 주제가 절반밖에 해결되지 않는 거다. 빨래에 대한 주도권과 경쟁력을 누가 미래에 가져가는가가 중요하다. ―런드리고는 어떻게 이용하면 되는가. 필요한 때에만 이용할 수도 있고 월정액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런드리고’라는 앱을 휴대전화에 깔아 세탁을 신청하면 ‘런드렛’이라는 이름의 세탁수거함을 보내드린다. 그 수거함에 세탁물을 넣어 오후 11시까지 문 밖에 내놓으면 하루 만에 세탁을 완성해 가져다드린다. 물빨래 30L 3번, 와이셔츠 20벌, 드라이클리닝 3벌, 수거 및 배송 3회 기준으로 현재 한 달에 6만 원대(할인 적용 중)부터 이용할 수 있다. 국내 7만 가구가 월정액으로 이용 중이다. 세탁수거함인 런드렛은 현재 120cm 높이의 천 소재 박스에 자물쇠가 달린 형태인데 소비자들이 집 안에서 보관하기 편하도록 올해 상반기 내로 완전히 접히는 형태의 ‘런드렛 2.0’ 버전을 선보이려고 한다. ―런드리고는 회사 입장에서도 비용이 많이 들텐데. 그렇긴 하다. 그걸 ‘규모의 경제’로 해결하려고 한다. 기계화 자동화를 통해 스마트팩토리를 만들었으니까 그걸로 수익성을 만들어가려는 거다. ―빨래가 덜 말라왔거나 얼룩이 안 지워졌다는 등의 고객 불만도 있더라. 세탁 비즈니스가 그래서 어려운 거다. 워낙 이용하는 분들이 많기도 하고 세탁에 대한 만족도가 까다롭기도 하다. 고객 눈높이에는 100점에 못 미칠 수도 있지만 90점 이상의 서비스는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더 완성도를 높이려 한다. ―세탁을 재정의하고 혁신해 이루려는 것이 뭔가. 세탁이 혁신되면 주거 공간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집 안에 세탁기가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요즘 이삿짐을 보면 세탁기 대신 런드렛이 실려 있는 경우를 본다. 세탁기의 점유율을 우리가 빼앗아 온 셈이다. 1인 가구 증가로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다. TV보다는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고 냉장고에서 냉동고 이용을 많이 한다. 얼마 전 LG전자에 가서 우리 서비스에 대해 강의했다. ‘가전의 LG’도 이런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긴장하고 있었다. ―런드렛을 훔쳐가는 경우는 없나. 한국은 굉장히 안전한 나라다. 아직까지는 이걸 들고 훔쳐간 사건이 없다. ―앞으로 세탁산업의 모바일화가 가속화할 것인가. 배민프레시 대표로 일할 때 모바일로 신선식품을 사는 비율은 미약했다. 불과 5년 사이에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생활의 패러다임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세탁도 그런 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아직도 세탁산업은 98%가 오프라인 기반이다. 신선식품도, 대부분의 모든 산업도 모바일화 온라인화 됐는데 유독 세탁만큼은 안됐다. 물류적 성격 때문에 안 됐던 것이다. 현재 세탁소가 연간 1500개씩 없어지고 있다. 모바일과 경쟁하다 없어진 게 아니라 이미 2012년부터 줄어들고 있다. 노령화가 원인이다. 세탁업주들이 고령화했는데 세탁 종사하는 분들 중에서 이 사업을 꼭 내 자식에게 물려줘야겠다는 분은 드물다. 그래서 이 분들이 은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탁업계의 ‘대사직 시대’인가. 정말로 세탁산업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이미 선진국은 이미 이런 형태를 지나 미국과 일본은 동네세탁소가 많이 사라졌다. 코로나가 이 경향을 가속화하고 있다. 65세 이상 분들이 경제활동을 길게 이어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기존 세탁업주들과 상생할 수 있는 ‘실버 서포트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이 분들이 힘들어하는 세탁 부분이나 배송을 우리가 돕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업계에 뛰어들지 않았어도 10년 뒤면 동네 세탁소의 70%는 사라질 추세다. ―고객 입장에서는 그동안 동네 세탁소 말고도 프랜차이즈 세탁소라는 대안이 있었다. 30년 전 나온 프랜차이즈 세탁 서비스는 2세대 세탁서비스로 한 시대를 장악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바일이다. 프랜차이즈 세탁소에는 여전히 고객이 직접 가서 빨래를 맡기고 2, 3일 걸려 찾아야 한다. 직장인은 밤늦게 퇴근해 세탁소를 찾아갈 수 없어 주말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고객이 배달을 원할 경우에는 프랜차이즈 사장들이 본인 또는 고객의 비용으로 배달해야 한다. ―그래서 ‘모바일 비대면 세탁’을 생각한 건가. 모바일을 대주제로 삼고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지 비대면이 나왔다. 모바일로 버튼만 눌러 서비스를 신청해도 세탁 수거와 회수 등 사람을 만나는 건 답이 없다. 세탁은 원가가 핵심이기 때문에 더 자동화 기계화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세탁업은 일본문화가 많이 반영돼 도제식 장인문화가 심하다. 곁다리에서 보면서 배워야하고 지식의 전파가 안 된다. 사람이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사람이 해야 높여주는 그런 특이한 문화가 있다. 사람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은 기계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런드렛을 쓰면 세탁소 비닐을 안 사용해도 되겠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깨야 한다. 런드렛은 일반 세탁소에서 쓰는 흰 옷걸이도 안 쓴다. 돈 좀 더 주고 만들어서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게 했다. ESG가 별건가. ―올해 매출 목표는. 올해 500억 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직원 300명인데 모바일 서비스와 인사 등 여러 분야에서 직원도 계속 뽑고 있다. 저희는 인프라를 많이 깔아야하고 소프트웨어 기술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스마트 팩토리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가. 공장 1층에서 세탁이 마쳐져 2층으로 올라오면 개별 고객의 옷이 분류돼 포장된다. 최근 B2B 세탁서비스를 하기 위해 아워홈에서 운영해 온 국내에서 가장 큰 세탁공장을 인수했다. 호텔 레스토랑 미용실 등 자영업자들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 ―작년부터 수선 서비스도 하던데. 수선도 산업과 관련이 있다. 소비자들이 이젠 해외직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입어보고 사지 않는다. 각 브랜드마다 ‘라지’ ‘38’ 등이라고 해도 사이즈가 미묘하게 다르다. 온라인 패션이 성장을 계속 하면 수선의 니즈가 같이 따라간다. 이걸 모바일 비대면 서비스로 제공했더니 잘 된다. ―감각파 패션 디자이너 오유경 씨가 ‘라이프고즈온’(Lifegoeson) 타월을 만들었더라. 호텔 어메티니처럼 고급스러워 보였다. 지난해 12월 ‘라이프고즈온’ 제품을 내놓았다. 샴푸 타월 치약 목욕 가운 등의 라이프스타일 제품이다. 세탁수거함 ‘런드렛’은 집 안팎을 드나드는 신기한 물류구조를 갖고 있다. 세탁물을 런드렛에 넣어 보낼 때 제품을 집 안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는 거다. 고객 입장에서는 정기적으로 필요한 걸 자연스럽게 구매할 수 있고, 배송비가 세탁 서비스에 이미 포함돼 있기 때문에 추가 배송비를 낼 필요가 없다. 일단 시작은 정기적으로 집에서 사용하는 제품으로 삼고 욕실 주방 제품을 만들었고 제품군을 더 확장해나갈 것이다. ―결국 의식주 완성을 이루는가. 결국 주거다. 의식주를 플랫폼에서 올인원 해결하게 해주고 싶다. ―Lifegoeson은 누가 작명했나. 제가 직접 했다. 상표권도 제가 갖고 있고. 의식주컴퍼니의 영어 사명이다. 세탁으로 글로벌 1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만큼 깊은 고민을 하면서 세탁하는 곳은 다른 나라 어디에도 없다고 자부한다. 내년에는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에 진출하려고 한다. ―만약에 누가 나서 이 업체를 팔라고 한다면. 생각을 안 하고 있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진짜 좋은 서비스를 해서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게 저한테는 행복인거 같다. 첫 번째 차렸던 덤앤더머스를 엑싯(투자 회수)하면서 돈은 동년배에 비해서는 많이 번 편이다. 돈은 적정하게 있으면 된다. 욕심은 부리다보면 끝이 없다. ―직원 뽑을 땐 뭘 보고 뽑나 ‘우리와 잘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결국에는 스타트업이니까 비정상적인 에너지를 써야 할 일도 있고, 어려운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중요하다. 대기업에서는 조직이 천천히 해결할 일을 스타트업에서는 빠르게 풀어야 한다. 스타트업은 그래야 성장한다. 기본적으로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삶을 바꾸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디에서 사업의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나.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다. 요즘 다시 읽는 게 헤지펀드의 대부 레이달리오가 쓴 ‘원칙’이다. 그 책에는 ‘극단적 진실과 극단적 투명성을 믿어라’는 구절이 있다.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을 보면 모두가 진실을 투명하게 제대로 보지 못하면 인류 멸망까지도 이를 수 있다. 다소 섬뜩한 내용이지만 회사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한국의 일하는 문화는 진실을 투명하게 적극적으로 나누는 것을 불편해 하고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면 진짜 근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공급자 중심의 불투명한 세탁산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극단적으로 투명해져야 한다. 그래야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 ―당신의 사명은. 일상의 변화가 각 가정에서부터 사회로 전염돼 삶이 윤택해졌으면 한다.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서 벗어나 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더 소중한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의 생각“창업은 다시 혼자가 되는 과정.”“창업가는 망각의 동물. 성취의 기쁨만 생각나.”“돈이 목적이면 문제가 생길 때 무너진다.”“창업은 비정상적 에너지를 써야 결과가 나오는 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동아일보는 14일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Question & Change’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창업가가 걸어온 길을 한정된 지면에 싣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대화 내용을 추가로 싣는다.▶지면기사 보기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13/111761814/1서울 용산 센트럴파크타워에 있는 ㈜의식주컴퍼니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카페 같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노란색과 초록색이 배합된 냉장고, 시내 전망이 확 트인 창가를 따라 놓인 책상, 안마의자가 놓인 1평 남짓의 Rest Room과 식물들. 이 곳은 세탁 서비스를 하는 회사 맞는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통유리 문에 새겨진 각 회의실의 명칭이었다. ‘Dryclean Room’ ‘Wash Room’ ‘Spot Room’….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조성우 대표에게 회의실 이름을 그렇게 붙인 이유를 물었다. “재미나 브랜딩 차원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면 사무실 직원들도 현장 중심적 사고를 할 것일지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저희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고객 경험과 직결되기 때문에 현장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창업을 고민하게 된 시점은 언제부터인가.현대중공업 홍보실에서 근무한 지 5년이 넘어갈 무렵이다. 당시 모시고 있던 고위직의 인사이동으로 갑자기 부서가 해체됐다. ‘정말 열심히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이별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회사 생활에 한계를 느꼈다. 당시 같이 일했던 선배와 술 한 잔 했는데, 그 선배가 “회사 다니는 건 홀로 서는 거다. 너도 이제 앞으로 혼자 서는 길을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현대중공업에서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에 대해 홍보하는 역할을 했는데, 정작 나는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는 것 같아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퇴사는 2011년에 했다. 퇴사일이 내 생일이라 날짜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다시 태어난다는 마음으로 사표를 던져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날 냈다.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당시에는 대기업에 입사하는게 ‘가장 잘됐다’라고 얘기하던 때였다. 부모님도 현대중공업에 다니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하지만 아들의 인생을 부모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님과 상의 없이 퇴사했고, 퇴사를 한 후에 “회사를 그만 뒀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앓아누우셨다. 당시 ‘벤처’는 어감이 좋지 않았다. 겉멋 든 사람들이 하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잘 나가던 대기업 관두고 창업한다고 하니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현대중공업을 퇴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창업을 했더라. 퇴사할 무렵 티몬, 위메프, 쿠팡 등이 막 등장하면서 소셜커머스가 ‘뜨고’ 있었다. 이걸 보면서 나도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인받은 금액만큼 카페나 레스토랑 이용권을 붙여 덤으로 주고, 사람들끼리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그래서 회사 이름을 ‘덤앤더머스’라고 붙였다. 매출의 1%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델도 넣었다. 하지만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수익이 나지 않으니 사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사업하면 무조건 몇 달 안에 대박날거라고 생각했다. 대학 친구와 후배 등 나까지 포함해 5명이 함께 창업했다. 5년 6개월가량 회사를 다니며 모았던 돈을 포함해 내 모든 걸 창업에 넣었다. 인턴은 27명이나 뽑았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당시 포털 배너 광고비가 1시간에 3500만 원이었다. 자본금의 5분의 1을 거기에 썼다. 배너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서버가 다운됐고, 기술력이 부족하다보니 2주 동안 복구를 못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던 모든 것들이 와장창 깨지기 시작했다. 회식 한 번만 해도 100만 원씩 없어졌다. ‘30명 가까운 사람들의 소중한 미래와 인생을 너무 무책임하게 생각하고 사업을 시작했구나’라는 반성이 들었다. 무서웠다. 결국 6개월가량 버틴 뒤 울면서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이별했다. ―첫 창업이 망한 것인데. 그 뒤로는 어떤 과정을 겪었나. 함께 창업했던 5명이 모여 굉장히 깊은 토론을 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해보자’라고 생각해 남성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종합 서비스로 피봇팅(Pivoting·방향전환)을 했다. 처음엔 ‘대동회식도’라는 이름의 회식장소 추천 서비스였다. 이용자가 예산과 인원 수, 지역 등의 조건을 입력하면 식당을 추천받고 예약까지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 발전된 아이디어가 ‘구독’이었다. 이 자체가 큰 개념이다보니 정기성을 갖는 아이템들을 배달해주는 방향으로 다시 한 번 피봇팅을 했다. 샐러드 도시락이 가장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신선식품에 집중했다. 직장인들이 회사에 있을 때 신선식품 배송이 집으로 오면 불안하니, 출근하기 전에 배달되는 콘셉트를 착안했다. 국내 새벽배송의 효시 격이다. 하지만 3번의 피봇팅이 1년 안에 일어나는 혼란이 있다보니 그 과정에서 초기 멤버들이 하나둘씩 떠났다.이때부터 암흑의 시간이 펼쳐졌다. 나와 후배 한 명만 남아 새벽배송을 만들었다. 밤에 잠도 못자고 직접 새벽배송을 했다. 개인의 생존 자체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덤앤더머스 창업 후 초기 1년 반에 대한 기억이 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 새벽배송이 조금씩 잘 되기 시작했다. ―이 회사를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이 인수했던데. 콜드체인을 만들면서 2014년도에 약 20억 원의 매출이 났다. 그 전까지는 엔젤 투자만 받았는데, VC(벤처캐피털)투자도 한 번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한 VC에서 우아한형제들을 만나보라고 조언해줬다. 당시 이 회사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했다가 성과가 잘 안 나는 상황이어서 우리 서비스를 긍정적으로 봤다고 들었다. 만나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날 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회사를 방문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 때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도 같이 왔다. 김 대표는 그 자리에서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인수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서 덤앤더머스를 팔거나 M&A를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고민이 됐다. 우리 힘으로 여기까지 잘 왔고, 더 잘 되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더 큰 회사, 더 좋은 회사의 힘을 받아 더 많이 잘 성장해야겠다. 더 이상 일개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대표인 후배에게 의사를 물어봤고, 부대표는 내게 “형님 뜻대로 하세요. 저는 (매각)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인수 후 서비스는 ‘배민프레시’로 이름이 바뀌고, 초기에 굉장히 잘 됐다. 하지만 배달의민족에는 배민프레시뿐 아니라 배민라이더스라는 또 다른 크고 중요한 사업도 있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프레시 산업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분위기도 있었다. 2년 6개월가량 배민프레시 대표를 지내다가 ‘충분히 내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해 퇴사하게 됐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을 그만두고 나서 어땠나. 스타트업 창업자로서 창업부터 M&A까지 한 번의 사이클을 7년에 걸쳐 끝내고 자유의 몸이 된 것이었다. 기쁨의 눈물이 나와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무리를 짓고 집에 딱 들어간 순간 주변이 하얘지는듯한 느낌을 받았고, 눈물이 쏟아졌다. ‘창업이라는 게 다시 혼자가 되는 과정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사업 중간 중간 창업자들은 다 떠났고, 부모님은 힘들어하셨다.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허무했다. 우울증이 오고 몸도 아팠다. 독감시즌도 아닌데 독감에 걸리고 대상포진도 걸렸다. 한 달 동안 집밖을 안 나가다가, 7년 동안 나를 위해 한 번도 투자한 적이 없다는 생각에 대학시절 교환학생을 다녀온 미국 서부지역으로 여행에 나섰다. ―미국 여행에서 지금의 ‘런드리고’(비대면 모바일 세탁 서비스) 아이디어를 얻어왔다는데. 친구와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던 중 도둑이 렌터카 뒷 유리창을 깨고 짐을 다 가져가는 도난 사건을 겪었다. 그런데 도둑이 유일하게 안 가져간 게 있었다. ‘아마존프레시’ 가방에 담아놨던 빨래다. ‘그 가방에 좋은 옷도 많았는데, 왜 안 가져갔을까’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다닐 때 경험도 문득 생각났다. 오전 7시에 정장을 입고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면 빨래가 늘 스트레스였다. 뭔가 느낌이 왔다. 미국 동부에 있는 필라델피아로 지인을 만날 겸 놀러갔다. 그리고 지인으로부터 주변에 세탁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미국 한인사회의 ‘세탁왕’ 같은 분이었다. 그 분을 통해 중국인이 운영하는 세탁 공장도 가 보게 됐다. 셔츠를 기계들이 다림질하고 있었다. 식품과 달리 세탁은 기계화·자동화가 많이 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필라델피아에 갈 때까지만 해도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다. 일단 ‘알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공장 방문을 계기로 진지하게 어떤 직감이 확 왔다. 그때부터 일본, 한국의 공장을 다니며 3개월을 고민했다. ‘창업이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창업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변화와 혁신이 없는 세탁시장을 바꿔볼 수 있겠다, 청결하게 잘 세탁해주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면 세계적으로도 충분히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느낌이 왔다고 곧바로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날아가다니. “이게 설명이 잘 안 되는 부분이다. 뉴욕에서도 세탁왕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서울 강남에서 김포까지 가는 거리였다. 그 분의 연락처를 받고 연락을 안 했을 수도 있고 여행길에 굳이 먼 길을 찾아가 만나지 않아도 됐던 상황이었다. 창업가는 망각의 동물인 것 같다. 막상 창업하면 왜 또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마약과 같다고나 할까. 성취를 했을 때의 즐거움과 기쁨, 좋은 것만 생각난다.” <TO Be Continued…>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창업 열기가 뜨겁다. 크고 작은 스타트업에서 고용과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동아일보는 ‘Question & Change’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길을 만들면서 변화와 혁신을 이뤄내는 창업가들을 소개한다.》 요즘 서울 마포의 오피스텔에도, 용산구의 나인원한남 등 초고가 아파트에도 문 앞에 자주 보이는 물체가 있다. 자물쇠가 달린 120cm 높이의 직사각형 박스. 이름은 ‘런드렛’이다. ㈜의식주컴퍼니의 조성우 대표(41)는 당연하게 생각돼 왔던 것들에 질문을 던진다. 집 안에 세탁기는 꼭 필요한가. ○ 집 안에 세탁기가 없다면 서울 용산 센트럴파크타워에 있는 의식주컴퍼니 사무실은 둥근 조명과 식물들이 카페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그곳에도 런드렛이 있었다. 오후 11시까지 모바일로 세탁을 신청하고 여기에 빨랫감을 넣어 문 밖에 내놓으면 하루 만에 완성돼 온다. 조 대표는 “고객의 집 안과 밖을 드나드는 신기한 물류 구조를 갖춘 세탁수거함”이라고 설명했다. “세탁이라는 단어를 재정의해야 합니다. 동네 세탁소는 주로 드라이클리닝을 하지만 우리 삶에서 세탁의 절반은 물빨래예요. 세탁을 통합적으로, 그것도 비대면으로 하루 만에 해결해주는 서비스(런드리고)가 있다면 소비자들은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겠죠.” 조 대표의 신념은 ‘세탁 혁신은 주거공간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집 안에 세탁기, 건조기, 스타일러를 두려면 두 평은 필요합니다. 평당 1억 원인 서울 반포자이 아파트라면 세탁공간에 2억 원이 드는 셈이에요.” 그의 집에는 세탁기가 없다. 그는 빨래를 인생의 ‘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을 구성하는 중요한 ‘소재’일 뿐이다. 하지만 누가 빨래를 할 것인가로 부부가 싸우다 보면 소재가 주제로 둔갑할 수 있다. 빨래로 싸우다 이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하는 사업인데도 ‘내가 직접 빨래하는 게 속 편하다’던 어머니가 맞벌이인 저희 부부의 아기를 돌봐주시면서 석 달 전 런드리고를 ‘영접’하셨어요.” ○ ‘성취의 기쁨만 기억한다’는 창업 DNA 현대중공업 홍보실에서 일하던 그는 30세 생일 때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사직서를 냈다. “각지게 신문 스크랩하는 쳇바퀴 직장생활에 ‘현타’(현실 자각타임)가 와서”였다. 하지만 그 시절 창업 씨앗이 마음속에서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홍보 업무를 위해 정독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는 물었다. “임자, 해 보긴 해 봤어?” 처음 차린 소셜커머스 스타트업 ‘덤앤더머스’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곧 대박 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인턴을 27명이나 뽑았다. 자본금 1억5000만 원 중 3500만 원을 한 시간짜리 배너 광고에 썼다가 서버가 다운됐다. 6개월 만에 울면서 사과하고 이별했다. 남성 직장인 대상 와이셔츠 배송으로 사업을 틀었다가 신선식품 새벽 정기배송 사업에서 답을 찾았다.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간 투자회사에서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을 만나 보라고 했고 김봉진 대표가 직접 찾아와 그 자리에서 “인수하겠다”고 했다. 업계 용어로 ‘엑시트(exit·투자 회수)’에 성공했다. 좀 쉴 만도 한데 조 대표는 ‘런드리고’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창업가는 망각의 동물이에요. 성취했을 때의 기쁨만 생각나는 거예요. 그게 창업의 DNA인가 봐요.”○ “투명하게 일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는 영세하고 고령화된 국내 세탁업을 미래 산업으로 접근했다. 지금까지 750억 원을 투자받아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팩토리들을 지었다. “유독 세탁업만큼은 모바일로 진행되지 않았고 도제식 문화가 강해 지식의 공유도 이뤄지지 않아요. 세탁에서도 일하는 방식을 극단적으로 투명하게 바꿔야 고객이 원하는 것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는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의 말을 늘 되새긴다고 한다. ‘트렌드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체 불가능한 사명을 찾는 것이 미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는 새로운 시장을 계속 읽어낸다. 사람들은 점점 더 몸과 정신이 편안한 방향으로 지갑을 열고 있다. 얼마 전 비대면 옷 수선 서비스를 시작했다. 온라인 쇼핑으로 입어 보지 않고 옷을 사니 수선할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엔 샴푸와 수건 등 호텔급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협업해 팔기 시작했다. 런드렛을 통하면 별도 배송비가 들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포장재도 필요 없다. 그는 의(와이셔츠 배송), 식(신선식품 배송), 주(세탁 등 라이프스타일)의 순서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해 왔다. 그는 그것이 그의 대체 불가능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창업의 순간: 첫 번째 회사를 매각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눈물이 쏟아졌다. 뭘 위해 달려왔는지 허무했다. 한 달 후 ‘나를 찾아 떠난’ 미국 여행에서 도둑이 렌터카 창문을 깨고 죄다 훔쳐갔다. 차에 세탁물만 남아 있었다. 그때 비대면 세탁 서비스를 생각했다. #회사 이름의 의미: 의식주컴퍼니의 영어 사명(社名)은 ‘Lifegoeson’이다. 의식주는 계속 존재하고, 풍요로운 삶에 대한 사람들의 니즈는 커질 수밖에 없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아침 해가 희미하게 장밋빛 망토를 걸치고, 동쪽 높은 언덕의 이슬을 밟고 오는구나.”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의 친구인 호레이쇼가 근위장교 마셀러스에게 한 말이다. 해가 뜨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지난해 말 세상을 뜬 사회생물학의 대가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저서 ‘창의성의 기원’에서 이 대사를 언급하며 인류 진화의 탁월한 성취로 ‘은유’를 꼽는다. 생생한 이미지를 찾도록 상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은유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야만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과학 저서 ‘인간 본성에 대하여’와 ‘개미’로 두 차례 퓰리처상을 받은 윌슨은 과학적 창의성이 인문학과 예술의 시야를 넓힌다고 봤다. 그가 1984년 내놓은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을 향한 인간의 사랑) 가설’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요즘 과학계와 예술계에서 각광받는 학설 중 하나다. 인간 유전자 속에 자연에 대한 애착이 내재돼 새소리를 듣거나 식물의 잎을 만지면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는 것이다. 자연은 다중감각이 가능한 환경이다. 오랫동안 시각에 밀려나 있던 촉각과 후각 등 정서적 감각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진행된 ‘No Limits in 서울’이라는 제목의 온라인 심포지엄은 참신하고 인상 깊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주최한 무장애 예술주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우리의 감각이 어떻게 전이되고 확장될 수 있는지 탐색하는 자리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란 주제로 강연한 이토 아사 도쿄공업대 교수(미학)는 각 존재가 지닌 고유의 세계 인식, 즉 ‘움벨트(Umwelt)’ 개념을 강조했다. 일례로 시력을 잃은 50대 남성은 눈이 아닌 다른 감각을 통해 역에서부터 집까지 간다. 길을 건너 100m 정도 직진하면 오른쪽에서 장어구이 식당 냄새가 나고 계속 가면 두부 냄새가 난다. 시각장애인은 ‘시각이 결여된 비장애인’이 아니라 ‘다른 감각들로 보는’ 사람들이다. 이토 교수는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팀을 이뤄 작품을 감상하는 ‘음성 이미지 미술관 여행’이란 프로젝트도 진행한 적이 있다. 비장애인은 작품의 크기와 색상 등 객관적 정보뿐 아니라 작품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시각장애인에게 들려줬다. 이런 주관적 의미를 나누자 대화는 은유로 가득 채워지고 서로 다른 관점이 만나 공동의 해석이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눈이 보인다는 게 항상 우월하지만은 않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국내 SF소설계를 이끌고 있는 김초엽 작가의 강연 주제는 ‘아름다움을 감각하는 다른 방법들’이었다. 10대 때 3급 청각장애 판정을 받은 포스텍 생화학 석사 출신의 김 작가는 인간의 오감을 넘어 갯지렁이나 로봇의 감각을 상상하며 감정을 이입한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겨왔던 인간의 감각이 사실은 얼마나 협소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한다. 장애까지는 아니어도 노화는 시각과 청각을 약화시키게 마련이다. 침침해지는 감각을 슬퍼하지 말고 다른 풍성한 감각들을 찾는 즐거운 탐험에 나서면 좋겠다.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을 10분 이내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을 통해 개발됐다. 접촉 정보는 휴대전화 앱을 통해 방역당국과 접촉자에게 통보되기 때문에 방역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안전증강융합연구단 이택진 책임연구원팀은 “관련 앱을 깔은 휴대전화가 실내 곳곳에 설치된 무선주파수 신호 발생장치(비컨)로부터 받은 신호의 특성을 분석해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을 찾아내는 디지털 접촉자 관리시스템(CTS·Contact Tracing System)을 개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연구진에 따르면 비컨이 송신하는 전파 신호는 공간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패턴을 보인다. 비컨의 신호를 받은 CTS 앱은 이 특성을 분석해 확진자와 접촉자가 같은 장소에 있었는지 추정할 수 있다. 연구진은 “30만 개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측정한 결과 CTS가 92%의 정확도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현재 방역당국은 폐쇄회로(CC)TV,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QR코드 등을 토대로 확진자와 접촉자 동선을 추적한다. 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밀접 접촉자를 추려내기 힘든 측면이 있다. CTS는 개인정보보호 문제를 해결한 것도 장점이다. 사용자를 구분하는 모든 정보는 암호화된 ID를 이용하기 때문에 특정 개인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이 시스템은 20일부터 열리고 있는 배드민턴 코리아리그 경기장에 도입된 데 이어 현대자동차 양재사옥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도 도입을 잠정 확정했다. 연구진은 “백신 접종률이 낮은 학교나 집단감염 위험도가 높은 요양병원에서 이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수동아사이언스기자 reborn@donga.com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지난해 ‘제2의 벤처붐’이 일면서 벤처펀드 결성액이 사상 처음으로 9조 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스타트업에 실제 집행된 투자금도 11조 원을 돌파해 역대 최대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벤처펀드 조성금액이 9조2171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17일 밝혔다. 이는 전년보다 34% 증가한 수준으로 벤처펀드 조성액이 9조 원을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민간 투자가 활발해진 영향이 크다. 지난해 벤처펀드 결성액 중 민간 부문 출자가 70.2%에 이를 정도로 급증하며 관(官) 주도의 펀드(모태펀드·정부 부처에서 출자받아 구성한 펀드) 등 정책금융 부문의 출자 비중은 줄어들게 됐다. 지난해 모태펀드 비중은 17.3%로 2017년 (25.2%)보다 7.9%포인트 낮아졌다. 소규모 펀드 비중도 늘었다. 지난해 신규 결성된 벤처펀드의 절반 가까이(42.6%)는 100억 원 미만이었다. 신생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나 창업기획자가 결성한 펀드 등이 58.1%를 차지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창투사의 자본금 요건이 완화되고 창업기획자의 벤처펀드 결성이 허용되는 등 규제가 완화되면서 벤처투자자 저변이 확대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국내 스타트업 지원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 투자금액은 11조7287억 원으로 2020년(3조4520억 원)의 3.3배로 증가했다. 총 투자건수는 1186건으로 2020년 774건에서 1.5배로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영향으로 헬스케어와 콘텐트&소셜, 이커머스 등의 신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가 활발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미국 미니애폴리스 공항에는 담요와 베개가 흩어져 있었다. 항공편이 줄줄이 결항되면서 크리스마스 여행객들이 공항에서 밤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지난해 봉쇄 조치로 우울한 성탄절을 보냈던 미국인들은 올해만큼은 일상에 가까운 성탄절을 보내게 될 줄 알았지만 기대는 빗나갔다. 전염 속도가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오미크론 때문이었다. ▷미국은 오미크론이 기승을 부리면서 요즘 하루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20만 명에 육박한다. 미 델타 항공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예정됐던 3100편의 항공편 중 158편을 취소했다. 델타 측은 악천후에 더해 오미크론이 결항 이유가 됐다고 설명했다. 30년 전 나온 미국 할리우드 영화 ‘나 홀로 집에’는 올해 성탄절 상황에는 맞지 않는다. 가족들이 소년을 집에 두고 크리스마스 여행에 나섰어도 항공기가 뜨지 않아 집으로 되돌아오는 상황이 됐을 것이다. ▷23일부터 26일까지 전 세계에서 무려 7000여 편의 항공이 결항됐다. 조종사와 승무원이 감염되거나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근무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하늘길만 막힌 게 아니다. 프랑스는 철도회사 직원들의 감염이 급증하면서 버스로 열차 운행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SNCF는 페르피냥, 님 지역 등의 열차 운행을 1월까지 중단했다. 고속철도와 항공편을 연결해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나는 유럽인의 일상도 오미크론에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성탄절을 앞두고 국내에서는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핫플’로 떴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LED 조명이 펼치는 영상 쇼를 보러 연일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런데 지난 주말 이틀 동안 오미크론 감염자가 114명이나 늘었다. 오미크론은 발생 초기에는 해외 입국자 중심으로 퍼지더니 이제는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조용한 전파’로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나 영국보다 자연면역 인구수가 적기 때문에 감염됐을 때 상태가 나빠지는 비율이 더 높아질 수 있어 걱정이다. ▷오미크론의 맹위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새해맞이 행사들도 취소되고 있다. 하루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긴 프랑스는 파리 샹젤리제에서 매년 해오던 새해 전야 불꽃놀이를 취소했다. 그나마 나은 성탄절을 보낸 우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신년 해맞이를 보러 한라산도 지리산도 못 가고 보신각 타종 행사도 2년 연속 온라인으로 봐야 한다.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깨닫게 된다. 이 겨울은 힘들게 보내지만 다음 겨울에는 함께 만나 코로나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것을 자축했으면 좋겠다.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이제는 고인이 된 아버지는 크리스마스에 내게 책을 선물했다. 책 안쪽에는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아빠가.’ 그런데 어릴 때 받았던 책 한 권이 요즘 보이지 않는다. 집 안의 책을 대거 처분할 때 버려진 것 같다. 1984년 나왔던 찰스 M 슐츠의 ‘사랑이란 손을 잡고 걷는 것’ 초판이다. 오래된 책을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헌책방 기담 수집가’란 제목의 신간을 인상 깊게 읽어서다. 14년째 헌책방을 운영하는 저자는 헌책을 찾아주는 비용을 받지 않는 대신 의뢰인들에게 책을 찾는 사연을 들려 달라고 한다. 그중 일부를 묶은 게 이 책이다. 저마다 인생극장 같은 이야기들을 읽다가 나도 그 책방에 가고 싶어졌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빛이 부드러운 다락방 같았다. 주인이자 저자인 윤성근 씨가 푸얼(普이)차를 건네며 물었다. “어떤 책을 찾나요.” 책 표지가 빨간색이었다고, 살아보니 사랑은 책의 구절들처럼 매 순간에 있더라고 답했다. 아버지 생일인 크리스마스에 맞춰 책을 찾을 수 있다면 크리스마스의 선물이 될 것 같다고도 했다. 그가 말했다. “책을 찾는 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못 찾아도 괜찮다. 친절한 탐정 같은 주인의 질문을 따라 추억 속의 아버지를 이미 만났다. 작은 책방에서는 이런저런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책방이 작으면 방문객의 숨소리도 감정도 전해진다. 그래서 떠오른 곳이 서울 종로구 혜화동 동양서림 2층에 있는 ‘위트앤시니컬’이다. 유희경 시인이 5년째 운영하는 12평짜리 시집 전문 책방이다. 이 책방 자체도 사연이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동양서림(1953년 개업)과 이곳을 연결시켜 준 이는 황인숙 시인이다. “고민 많은 두 주인이 칼국수 함께 먹으면서 돌파구를 찾아보라”고. 온라인 공세로 위기를 맞던 환갑 넘은 책방과 신촌에서 이전해야 했던 젊은 책방은 그날의 만남 이후 1, 2층 이웃이 되어 서로를 보완하는 사이가 됐다. 유 시인이 말했다. “한 여성분이 찾아와 시집을 추천해달라고 했어요. 병원에서 코로나19 관련 일을 하는데 마음이 힘들다면서요. 김소연 시인의 시집 ‘i에게’를 골라줬더니 읽다가 울더라고요.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시인의 시가 위로가 됐나 봐요.” 그 말을 듣고 나도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책을 참 좋아하는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다고. 그는 루쉰의 시집 ‘죽은 불’을 건넸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책방은 서울 용산구 후암동, 흔히 해방촌으로 불리는 동네에 있는 ‘스토리지북앤필름’이다. 올 한 해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러 자주 찾던 남산 부근이다. 그곳에서는 대형서점에서는 볼 수 없던 책이 잘 팔린다. 1985∼1988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쓴 연애편지를 2년 전 딸이 묶어 펴낸 ‘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라는 제목의 책이다. ‘달빛 아래 가만히’라는 손바닥만 한 단상집도 좋았다. 은행원을 하다가 책방 주인이 된 강영규 씨는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책들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작은 책방들에는 작은 사연들이 큰 울림을 내고 있었다. 다시 위트앤시니컬에 가면 시집을 사서 바로 옆 81년 된 중식당 금문에서 군만두를 먹으며 읽고 싶다.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는 틀어놓은 음악의 곡명이 무엇인지 꼭 물어야겠다.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찾아가면 주인이 말없이 차와 귤을 내밀 것 같은 곳들에서, 다정하게 인사하련다. 메리 크리스마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지금 프랑스는 ‘장미셸 트로뇌’라는 인물로 뜨겁다. 트위터에는 ‘#JeanMichelTrogneux’라는 해시태그를 단 글이 6만여 개 올라와 퍼지고 있다. 난데없이 등장한 이 인물 관련 게시물들에는 브리지트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들은 주장한다. “프랑스 영부인의 본명은 장미셸 트로뇌다. 실은 남성으로 태어난 트랜스젠더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의 팩트체크 기사인 ‘체크뉴스’는 어제 ‘#JeanMichelTrogneux: 브리지트 마크롱을 겨냥한 트랜스 혐오 가짜뉴스의 기원은 무엇인가’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가짜뉴스는 언론매체를 표방하는 한 극우주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서 시작돼 주로 백신접종 반대주의자와 반정부 성격의 노란조끼 시위 지지자들이 퍼뜨리고 있다. 영부인 측은 이에 법적으로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대선 후보로 나왔을 때에도 “에마뉘엘 마크롱은 동성애자”라는 허위정보가 나돌았다. 자신의 동성애를 숨기려고 24세 연상의 스승(브리지트 마크롱)과 결혼했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대개의 프랑스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요즘엔 위기의식이 감돈다. SNS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허위정보도, 이를 믿는 사람들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 의견과 다른 사람들의 글은 보여주지 않는 SNS의 알고리즘이 진짜와 가짜를 헛갈리게 만든다. ▷SNS 허위정보는 코로나19가 심화시키는 불평등 사회의 허점을 파고든다. 이번 영부인 가짜뉴스는 여성 혐오와 트랜스 차별의 민낯을 드러냈다. 영부인을 가리켜 ‘외계인 ET’나 ‘성형수술의 폐해’라고 모욕하는 증오의 말들도 난무했다. 가짜뉴스는 언론인인 척하는 사람이 시작해 인플루언서들이 퍼뜨릴 때가 많다. 리베라시옹 체크뉴스는 기사 말미에 이렇게 썼다. “우리 체크뉴스가 나간 후 해당 매체에서 연락해왔다. 최초의 영부인 관련 글을 쓴 사람은 정식 기자가 아니라 단순히 트랜스 혐오 중독 글의 한 부분을 쓴 사람이다.” ▷올해 노벨 평화상을 받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는 “소셜미디어는 독성 쓰레기의 홍수”라고 말했다. SNS가 거짓말 바이러스를 퍼뜨려 우리의 두려움과 분노, 혐오를 끌어내 사회를 분열시키고 과격하게 만든다고 했다. SNS에 뜨는 허위정보는 똑같은 글자체와 크기라서 신문에서처럼 비중을 분간하기 어려운 데다 콘텐츠 출처도 묘연할 때가 많다. 코로나로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SNS의 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허위정보가 더욱더 극성을 부릴 것이란 이야기다.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김달봉 씨가 올해에도 찾아왔다. 사실 김달봉이란 그의 이름은 실명인지 가명인지 알 수가 없다. 2016년부터 이 이름으로 전북 부안군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러 오는 남성이 “김달봉 씨의 대리인”이라며 돈다발을 놓고 갈 뿐이다. 3일에도 찾아온 그는 종이 쇼핑백에 1억2000만 원의 성금을 넣어 왔다. ▷김달봉 씨는 대리인을 통해 2016년 5000만 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2019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1억2000만 원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마스크 20만 장(5800만 원어치)도 기부했다. 김달봉 씨의 기부와는 별개로 부안군청에는 2016년 이후 지금까지 매년 누적돼 온 익명의 기부가 2억3000만 원에 이른다. 부안군 측은 “이전까지 익명의 기부가 없었기 때문에 이 기부도 김달봉 씨가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이것까지 합하면 그의 기부액은 지금까지 6억9800만 원”이라고 했다. ▷김달봉 씨는 왜 기부를 하는 걸까. 2016년 모금회에 처음 기부할 때의 당부는 “저소득 아이들을 위해 돈을 써 달라”는 것이었다. 올해 1월 1억2000만 원을 기부할 때에는 “다문화가정을 돕고 싶다”고 했다. 그 결과 올해 전북 전주와 완주의 다문화가정 100곳이 매달 10만 원씩 생계비 지원을 받고 있다. ‘김달봉 다문화 장학금’인 셈이다. ▷그동안 대리인을 통해 부안군에 기부하던 김달봉 씨는 올해 1월에는 모금회 사무실에 직접 나타났다. 2016년 5000만 원에 이은 두 번째 기부액이 1억2000만 원이라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조건이 됐다. 모금회 측이 가입을 안내하자 그는 관련 서류를 작성했지만 주소와 연락처를 적지 않았다. 서명란에도 김달봉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그러니 회원 대상의 안내를 보낼 수가 없다. 그가 “내년에 뵐게요”라고 했기 때문에 다음 방문을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그가 김달봉 씨인지, 평소 찾아오던 그의 대리인인지 알 수가 없다. 모금회 직원 중 둘 다를 만나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김달봉 씨가 과연 한 명인지, 여러 명인지이다. 2016년 인천의 구청 3곳에 각각 5000만 원을 놓고 사라졌던 기부자의 이름도 김달봉이었다. 구호단체들에도 정체를 숨긴 김달봉이란 이름의 후원이 잇따른다.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익명의 기부는 타인의 인정에 굶주린 우리 사회를 성숙시킬 수 있다고 한다. 제 돈 아닌 돈으로 생색내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김달봉 씨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버틸 수 있는 기부의 힘을 알려준다. 그가 누구든,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참 감사하다.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몇 년 전 국내에서도 출간된 일본 소설 ‘끝난 사람’은 한국의 중장년층 독자들에게서 큰 공감을 받았다. 대형 은행의 임원 승진을 앞두고 자회사로 좌천돼 정년을 맞이한 주인공은 끝난 사람 취급하는 주변 분위기에 침울하다. 정년퇴직은 생전에 치르는 장례식이라나. 소득이 소비보다 적어지면 사회에서 쓸모가 다했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 나이가 한국에서는 60세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국민이전계정’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태어나서 27세까지는 적자인생을 살다가 28세부터 흑자를 낸 뒤 60세부터 다시 적자 사이클에 들어선다. 60세부터 월급과 사업 등으로 버는 노동소득이 쓰는 돈보다 적어지는 것이다. 2010년엔 적자인생 진입연령이 56세였는데 2016∼2018년 59세가 됐다가 2019년에 60세가 됐다. ▷우리 국민은 17세 때 최대 생애주기 적자를 낸다. 버는 돈은 거의 없는데 교육비 등으로 소비가 많기 때문이다. 1인당 노동소득은 41세 때 정점을 찍은 후 하향곡선이다. 노동소득에서 소비를 뺀 생애주기 흑자는 44세 때 최대가 된 후 내내 줄어들다가 60세부터 적자로 돌아선다. 어릴 때에는 대개 부모에게 의존해 살다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제 몫을 한 뒤 60세 이후 삶이 쪼그라드는 흐름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예전처럼 나이 들었다고 자식의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한다는 의식이 흐릿해진 지 오래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두 개 부문에서 1위다. 인구 대비 취업자 수인 고용률이 OECD 회원국 평균(14.7%)의 두 배를 넘는 1위이고, 급격한 고령화 속에 노후 소득원이 마땅치 않아 노인 빈곤율도 1위다. 집 장만하느라 자녀 교육시키느라 노후 준비가 뒷전이었기에 긴긴 날을 살아가려면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노후 설계의 발목을 잡는 흔한 착각은 자신에게 80세 이후 삶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온다는 것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미래를 위해 절약하고 아무리 화려한 젊은 날을 보냈다 하더라도 눈높이와 자세를 낮춰 일자리를 구하라고 한다. 적자인생에 들어서기 전에 자녀에게 ‘올인’하는 걸 관두고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3층 연금구조를 마련해 노후 고정수입을 최대한 확보하라고 한다. 무엇보다 호기심을 포기하지 말고 도전을 멈추지 않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하면 일상에서 삶의 기적을 발견할 수 있다니 인생, 참 심오하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영국 일간 가디언은 어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K드라마 ‘지옥’을 새로운 ‘오징어게임’이라고 부르는 일이다. 폭력적 죽음을 다룬 K드라마라는 공통점으로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신문은 지옥이 오징어게임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오징어게임이 의상 등의 장치로 부모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면, 지옥은 보다 어둡고 복잡해 앞으로 10년 동안 회자될 수작이라는 것이다. ▷개봉 하루 만인 20일에 넷플릭스 드라마 1위에 오른 이후 21일 하루 빼고 줄곧 정상을 지키고 있는 지옥은 지옥 앞에 선 인간의 선택을 다룬다. 갑자기 “너는 몇 날 몇 시에 죽는다”는 ‘고지’를 받는 것은 납득하기 억울한 불행이다. 다른 사람들이 고지대로 죽는 것을 보면서 우주적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종교의 권위를 빌려 강요하는 장면은 섬뜩하다. ▷지옥에는 오징어게임과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예고된 지옥행의 시간에 괴물에게 희생당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VIP들이 가면을 쓰고 지켜보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에서도 가면을 쓴 VIP들이 게임 참여자들의 죽음을 희희낙락하며 관전했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평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지 인간들은 필요에 따라 신(神)을 소환한다. 오징어게임의 한 참여자는 자신이 유리한 상황에서만 “신이 준 기회”라 했고, 지옥의 교주는 “신의 의도는 명확하기 때문에 너희(인간)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지옥의 특징은 ‘하이브리드’다. 연상호 감독은 2000년대 초반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두 개의 삶’을 바탕으로 2019∼2020년 같은 이름의 웹툰을 연재하더니 이걸로 다시 드라마 지옥을 탄생시켰다. 지옥 시즌2도 만화부터 선보이겠다고 한다. B급 감성(CG로 나타낸 지옥사자)과 철학적 대사의 만남도 독특하다. 공권력이 약하게 처벌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죽여도 되는지, 공포가 아니면 무엇이 인간을 참회하게 하는지 묻는다. 권선징악은커녕 선악의 구별에서 벗어난 세계관이 희망 없는 미래를 부각시킨다. ▷지옥에서는 사람의 목숨 값을 30억 원으로 매기고 저승사자로부터 죽어가는 과정을 지상파 방송들이 생중계한다. 코로나19, 가짜뉴스와 유튜버가 선동하는 확증편향과 갈등 조장 등 인류를 고통과 불안에 빠뜨리는 지금의 상황이 어쩌면 잿빛 ‘지옥’이다. “뜯겨 죽을까 봐 무서워서 선하게 사는 걸 정의라고 할 수 있나요? 죄인들이 무책임한 안락을 누릴 때 선한 자들만 죄의 무게를 떠안아요.” K드라마 ‘지옥’이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이 더 드라마 같다.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휴대전화에 음식 배달원 전용 앱을 내려받으면 지도 위에 주문이 빼곡하게 표시되면서 실시간 배달 수수료가 뜬다. 낮 시간 기준 한 건당 서울 종로 일대는 4000원대, 강남 일대는 6000원대. 배달 허용 버튼을 누르면 쉴 새 없이 알림이 울린다. 이 앱을 깔아놓고 등교나 귀가 도중에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도 많다. 국내에서 배달앱 등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받는 종사자는 66만 명, 플랫폼을 통한 구직자까지 포함하면 220만 명이다. ▷코로나19는 국내 노동시장 지형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 폐업한 자영업자, 미취업 청년들을 플랫폼이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본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달원 등 좁은 의미의 플랫폼 종사자 66만 명 중 절반 가까이가 이 일을 주업으로 삼는다. 한 달에 21.9일을 하루 평균 8.9시간 일하면 월 192만3000원을 번다고 한다. ▷반대로 오프라인에서는 구인난이 심각하다. 그동안 영업시간 제한으로 직원을 내보냈던 식당들은 ‘위드 코로나’를 맞아 다시 채용하려 해도 아르바이트생조차 구하기 힘들다.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야근과 특근 수당이 줄어든 중소기업의 숙련 인력들도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택시 업계는 거의 재앙 수준이다. 코로나 장기화로 사입금 채우기도 어렵던 기사들이 배달원으로 변신하면서 밤마다 택시 잡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법인 택시회사들은 택시 기사 면허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합격자들을 붙잡고 취업을 권하고 있을 정도다. ▷지금 인력 대탈출이 벌어지는 곳은 저임금 업종이다. 플랫폼 일자리는 일하는 대로 곧바로 통장에 돈이 꽂히기 때문에 형편 어려운 중소기업에서처럼 임금 떼일 걱정 없어 좋다고 한다. 근무 시간과 장소를 상황에 맞게 고를 수 있고 다른 일과 병행할 수도 있어 최저임금에 못 미치게 벌어도 마음은 편하다고 한다.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차선’, 미래를 향한 도전보다는 대안 없는 현실에서의 체념이 이 일자리에 깃든 측면이 있다.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발 대량 실직 사태를 떠올리면 지금의 플랫폼 일자리는 코로나발 고용 충격을 줄여주는 건 사실이다. 한 플랫폼 종사자는 “실직 후 절망 상태에서 배달원 전용 앱을 켰을 때 수없이 떠 있던 배달 주문 표시가 암흑 속의 등대처럼 반가웠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기업들이 정규직을 뽑지 않고 필요한 때에만 플랫폼에서 인력을 조달한다면, 배달 일을 조만간 로봇이 대체하게 된다면…. 플랫폼 일자리의 진입장벽은 낮지만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섬뜩할 수도 있다.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1호 공약이 최저임금 인상이다. 시간당 7.2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2025년 15달러로 올리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요즘은 15달러를 넘게 줘도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애태우는 고용주들이 많다. 코로나19로 폐쇄했던 영업장들이 다시 문을 열고 있지만 돌아오려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코로나가 회복세를 보이며 미국의 월간 채용 공고 건수가 7월부터 1000만 건을 넘어섰다. 그런데 자발적 퇴사자 수도 매월 400만 명으로 증가 추세다. 스쿨버스 운전사를 구하지 못해 재택수업을 하고, 환경미화원이 없어 쓰레기가 쌓이고 있다. 기업에선 신규 채용과 고용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화장품 업체 세포라는 직원들에게 전 제품을 30% 할인해준다.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는 식료품 체인점도 있다. 직원이 부족해 일부 매장이 수, 목요일 휴업 중인 스타벅스는 내년부터 시간당 임금을 17달러로 3달러 올리기로 했다. ▷이 모든 게 코로나 때문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지난달 일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465만 명이 “코로나 감염 후 회복이 덜 돼서” “코로나에 걸린 가족을 돌봐야 해서”라고 답했다. 코로나로 건강염려증이 생긴 베이비붐 세대가 조기 은퇴한 영향도 크다. 코로나 이후 올 8월까지 ‘초과 은퇴자’가 300만 명이 넘는다. 업종별로는 감염 위험이 덜한 제조업과 금융업은 퇴사율이 낮아진 데 비해 대면 업무가 많은 헬스케어와 코로나로 업무량이 폭증한 기술 분야는 퇴사율이 높아졌다. 30∼45세 퇴사율이 특히 높다. 코로나로 신입사원 직무교육이 어려워진 기업들 간에 경력사원 스카우트전이 치열하기 때문이다(하버드비즈니스리뷰). ▷두둑한 실업수당이 근로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 정부는 코로나 이후 지난달까지 실직자들에게 주당 300달러를 추가 지급했다. 주 정부가 매주 지급하는 270∼570달러 실업수당에 300달러를 더하면 일하지 않고도 매월 2280∼3480달러(약 266만∼407만 원)를 챙길 수 있다. 특히 팬데믹 기간에 교외 지역으로 이사한 사람들에겐 매일 아침 고생스러운 출근을 선택할 유인이 적어진 셈이다. ▷코로나가 끝나도 구인난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팬데믹으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갑자기 해고되고, 번아웃 상태로 내몰리면서 인생관과 직업윤리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사직(Great Resignation)’ 시대로 불리는 미국의 구인전쟁이 미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궁금하다.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1.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첫날. 전시장에서 만난 김태호 화가(73)는 말했다. “50년 넘게 그림을 그려왔지만 이렇게 미술시장이 달아오른 적이 없어요. 얼마 전에는 모르는 젊은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을 좀 벌어 미술시장에 뛰어들고 싶은데 검색해 보니 선생님 작품에 투자하면 좋다고 한다’고. 작품도 안 보고 아무거나 달라면서 9500만 원을 송금했기에 50호 그림을 보내줬어요.” #2. KIAF 현장에서 BTS(방탄소년단)의 ‘뷔’,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부인인 이운경 고문, 홍정욱 전 국회의원 부부 등과 마주쳤다. 노란 마스크 차림으로 휠체어를 타고 온 박서보 화백(90)은 함께 사진을 찍자는 젊은층에 연신 둘러싸였다. BTS의 RM, 전지현 등 미술에 관심 많은 연예인이 대거 방문하면서 아트페어는 ‘인싸’들의 놀이터가 됐다.》 한국화랑협회 주최로 13∼17일 열린 제20회 KIAF에서는 미술품이 650억 원어치 팔려 2019년 매출액(310억 원)의 두 배를 넘겼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한 KIAF의 올해 입장객은 8만8000여 명.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작품이 팔렸다는 표시인 빨간 딱지가 곳곳에 붙었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68)과 인터뷰할 동안 그의 휴대전화는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으로 쉴 새 없이 울렸다. 황 회장은 카카오톡의 클립드롭스 플랫폼에서 열리는 쿤(KUN·본명 강연석) 작가의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 경매 현황을 틈틈이 들여다봤다.MZ세대도 투자 열기 ―국내 미술시장이 달아올랐나. “올봄부터다. 3월 화랑미술제 때 꽤 많이 팔리더니 5월 아트부산이 사상 최대 실적이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옥죄니 여러 채이던 집을 팔고 양도세 없는 미술시장으로 흘러온 돈이 많다.” ―그런데 미술시장 분위기가 젊어진 것 같다. “저변이 상당히 확대됐다. 지금 MZ세대가 난리다. 미리 작품 가격을 검색해 보고 아트페어에 와서 500만∼1000만 원짜리 미술품을 그 자리에서 신용카드로 산다. 작품 값을 깎지도 않는다. 정보기술(IT) 쪽 전문 직업인들은 몇천만 원도 쉽게 쓴다.” ―왜 젊은층이 미술에 관심을 갖나. “세 가지 이유다. 첫째는 ‘이건희 컬렉션’의 영향이다. 젊은 직장인들이 미술품을 사 모아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게 됐다. 둘째는 코로나로 인해 외국으로 못 나간 데 대한 보복 소비다. 셋째는 RM 같은 인플루언서들이 SNS를 통해 ‘K아트’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MZ세대가 좋아하는 경향이 있나. “나라 요시토모처럼 ‘무섭고 귀여운’ 작품이 유행하다가 지금은 가볍고 유쾌한 게 트렌드다. 롯카쿠 아야코, 호소카와 마키처럼 일본 만화 같은 그림이 한동안 유행할 것 같다.” ―기성세대는 어떤가. “KIAF 시작 전에 ‘온라인 뷰잉’ 룸을 열었더니 55∼65세가 의외로 모바일을 통해 많이 봤다. 한 60대 경제 관료는 이번에 왔다가 생애 첫 컬렉터가 됐다. 파워 유튜버 밀라논나의 아들인 민준홍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샀다.” ―NFT 시장의 가능성은. “쿤과 한승구 작가가 30개 한정으로 NFT 에디션을 내놓은 지 3분 만에 다 팔렸다. 10, 20대가 100만 원 미만 가격에 투자 개념으로 산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과거 싸이월드 시절 도토리와 아이템을 사서 ‘나만의 공간’을 꾸미던 유행이 메타버스 세계에서 NFT 미술품 수집으로 조만간 확장될 수 있겠다 싶었다. “경매에 휘둘리면 오래 못 가” 국내 유명 화랑인 가나아트는 첫날 KIAF 부스에서 일부 고객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김선우 화가의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30만 원짜리 VVIP 입장권을 사서 ‘오픈 런’했는데도 작품을 살 수 없었다는 불만이다. “김선우가 워낙 핫해서” 사전에 팔렸다는 게 화랑 측의 설명이었지만 고객들은 “그럴 거면 왜 VVIP 티켓을 팔았느냐”고 따졌다. 김선우는 가나아트의 계열사인 서울옥션이 미술 대중화 브랜드로 만든 ‘프린트 베이커리’의 전속작가다. ―요즘 인기 작가 작품은 “없어서 못 판다”고 들었다. “최근 기이하게 작품 값이 오르는 건 우국원 화가(46)다. 올해 봄에 1000만 원대에 갤러리에 나왔던 그의 작품들이 요즘 거의 ‘억 대’다. 투기 세력이 들어온 건지 의심될 정도다.” 지난달 우 화가의 50호 작품은 서울옥션 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인 1억7000만 원에 낙찰됐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 2009년 656억 원 규모이던 국내 미술 경매시장은 2393억 원 규모(올해 1∼9월)로 커졌다. NFT 사업을 확대하는 서울옥션이 주가 상승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K옥션은 상장을 추진 중이다. ―경매시장이 과열을 부추기는가. “아는 고객이 넉 달 전 화랑에서 9600만 원에 샀던 작품이 최근 경매에서 4억 원에 낙찰됐다. 시중에 돈이 풀렸던 2005∼2007년 상황과 판박이다. 그런데 당시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 이상으로 작품이 팔렸던 한국 작가들이 요즘 아트페어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작품 가격이 너무 오르면 거래가 형성되기 어렵다.” ―막을 방법이 있는가. “화랑협회 차원에서 양대 경매회사에 경고문을 보냈다. 화랑을 통하지 않고 경매회사가 작가로부터 직접 작품을 받아다 팔면 ‘시장의 룰’이 깨진다. 경매에 휘둘리면 시장이 오래 못 간다. 160개 회원 화랑끼리 작품을 수수료 없이 거래하는 경매를 새로 만들겠다.”“K아트 성장시킬 기회로” 이번 KIAF에서는 투기성이 의심돼 한 번에 한 작가의 작품을 두 점까지만 살 수 있게 한 화랑도 생겨났다. “경매에서 비싸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그냥 ‘지르는’ 젊은 세대를 보면 어떤 작품이 살아남을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보여 걱정된다”는 화랑 대표들도 많다.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미술시장이 ‘폭망’했던 전례를 이야기하며 지금의 호황이 버블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지금이 기회’라는 의견도 있다. “한국 미술시장이 중요해져 올해 처음으로 독일에서 파독 간호사 출신의 송현숙 화가를 소개한다”(오시내 독일 슈프뤼트 마거스 갤러리 시니어 디렉터), “BTS와 오징어게임 등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순수문화로 이어진다”(최진희 독일 초이앤라거 갤러리 공동대표), “최근 아트파리 페어에서 브리지트 마크롱 영부인이 이건용 화가의 작품을 극찬했다”(이미금 313아트프로젝트 대표). 황 회장에게 K아트가 가야 할 길을 물었다. “박서보, 이배, 이건용 등 국내 정상급 화가들이 해외 유명 화랑들에서 전시하면서 K아트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물건도 백화점에서 파느냐, 시장에서 파느냐에 따라 가치가 다르게 매겨지지 않나. 옥석을 가리는 일이 중요해졌다. 작품 감정을 제대로 해내면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키워야 한다. 돈의 노예가 되면 미술품을 통해 절대로 좋은 에너지와 위안을 얻을 수 없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기습적인 한파가 10월에 찾아왔다. 어제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1.3도로 64년 만에 가장 낮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 반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무더웠기 때문에 지난 주말 부리나케 옷장 정리에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날은 추워도 가는 계절을 붙잡겠다며 코스모스와 억새가 핀 들판으로 나들이 행렬도 이어졌다. 다들 한 일은 달라도 마음은 비슷했을 것이다. ‘가을아, 너무 빨리 가지 말아주렴.’ ▷이번 가을 한파의 원인은 한반도 상공에서 세력을 유지하던 아열대 고기압이 축소되고 그 빈 대기공간을 중국 북동부와 몽골에서 온 대륙 고기압이 채웠기 때문이다. 필리핀 동쪽 해상에서 발생한 태풍 곤파스가 베트남으로 이동하면서 밀어 올렸던 덥고 습한 기운이 태풍 소멸 이후 급격히 약화되면서 찬 공기 덩어리가 내려온 것이다. 기상청 관계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바람도 숨을 쉰다”고 한다. ▷가을은 꽃을 피운 나무가 열매를 맺는 수확의 시기인 동시에 여름과 겨울 사이에 숨을 쉬는 계절이다. 하지만 전날보다 어제 아침 최저기온이 무려 11.6도가 떨어지자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뛰어 가을이 사라졌다”는 한탄 섞인 얘기들이 나온다. 한 번 북쪽에서 내려온 추위는 일주일 정도 지속되기 때문에 수요일인 20일에 2차 한파가 몰려왔다가 24일에야 평년 기온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을은 대개 9∼11월로 정의되지만, 기상청은 가을의 시작을 ‘하루 평균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내려간 후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가을의 첫날이 점점 늦춰지고 있다. 최근 30년 동안 가을의 첫날은 9월 26일로 거의 10월이 다 돼서야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기간 가을은 총 69일로 한국의 사계절 중 가장 짧았다. 그런데 올해는 10월에 이례적으로 아열대 고기압이 발달해 남부 일부 지역에서 최고기온이 30도를 넘더니 가을 한파까지 닥쳤다. 가을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져 역대 최고로 짧은 가을로 기록될 가능성마저 있다.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이 좋았던 건 각자의 색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워지면서 가을의 선물인 단풍도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가수 아이유는 ‘파란 하늘 바라보며 커다란 숨을 쉬니 드높은 하늘처럼 내 마음 편해지는’ 가을 아침이 커다란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노래 불렀다. 사람도 계절도 극단으로 치닫지 않아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갈 길을 헤아려볼 수 있다. 얄미운 가을 한파를 감내하며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올 가을을 소중하게 맞자. 시월의 어느 멋진 가을날을….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