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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경찰이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등 전국 16곳에서 벌인 압수수색은 LH 직원들이 신도시 개발 관련 내부 정보를 입수해 투기에 활용했는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두고 진행됐다. LH 본사에서 압수한 기밀 문건 등 각종 전산 자료와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LH 직원 13명의 휴대전화, 노트북 등을 분석해 불법적 ‘연결 고리’를 찾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들 직원 13명 외에도 공무상 얻은 정보로 투기에 나선 직원들이 추가로 나올 것으로 보고 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직원 자택에서 토지개발 관련 지도 발견 경기남부경찰청의 이날 압수수색은 LH 직원 13명이 부패방지법상 ‘공직자의 업무상 비밀 이용 금지 조항’을 위반했는지를 따져보기 위한 첫 번째 강제 수사 절차다. 경찰은 3기 신도시 검토부터 선정까지 각종 내부 문건을 생산해 각 지역본부와 실무 부서 등에 전파한 LH 본사를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시켰다. 특히 개발 사업 관련 각종 전자문서와 직원들이 사내망으로 주고받은 e메일과 메신저, 전자결재 내역 등을 관리하는 본사 IT기획운영처를 집중적으로 압수수색했다. 내부에서 검토된 개발 관련 정보에 누가 접근했고 이 같은 기밀 정보가 어떤 경로를 거쳐 공유됐는지 등을 샅샅이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광명·시흥신도시 조성과 보상 계획 등을 실무적으로 검토한 광명시흥사업본부와 과천의왕사업본부도 압수수색해 투기 의혹을 받는 직원 13명이 사용했던 PC 등을 확보했다. 서울 강남구, 경기 성남시 등 이 13명의 거주지에서도 개인 휴대전화와 노트북 등을 압수했다. 수사관들은 이들 직원의 거주지에서 토지의 위치와 지목 등 개발 관련 세부 정보가 담긴 지도를 발견하기도 했다. LH 직원이 투기 대상 지역을 가족과 공유하려는 등의 목적으로 특수 지도를 집에 보관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경찰은 직원들이 사내 기밀 정보를 입수해 공유한 뒤 해당 지역 지도를 토대로 구체적으로 투자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이 같은 의혹 등을 확인하기 위해 본사에서 확보한 기밀 문건 등 전산 기록과 이들의 휴대전화, PC 분석 결과를 정밀 대조할 계획이다.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현재 13명 외에 추가로 연루된 직원들이 파악될 가능성도 있다. 이날 압수수색 대상이었던 과천의왕사업본부는 투기 의혹으로 직무에서 배제된 직원 13명 중 8명이 근무했던 곳이다. 경기 시흥시 과림동, 광명시 옥길동 등 5개동 10개 필지를 사들인 3급 직원 A 씨 등 5명은 과천의왕본부의 한 부서에서 지난달까지 함께 근무했다. 이들이 개발 관련 내부 정보를 공유하는 등 투기 관련 모의를 한 정황이 있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경찰 관계자는 “투기 의혹에 연루된 전직 LH 직원 등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7일 만에 압수수색… 영장 발부에 3일 걸려 LH 직원들의 광명·시흥신도시 투기 의혹은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2일 처음 제기했다. 경찰은 5일 LH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3일 뒤인 8일 오후에야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은 다음 날인 9일 오전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경찰의 압수수색이 다소 지연되면서 LH 측이 자료를 은폐할 시간을 벌어준 셈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8일 오후 8시 40분경 LH 본사 사옥 15개 층의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는 사진이 올라와 “증거를 인멸하려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이 사진을 올린 박모 씨(35)는 “LH 본사를 지나 매일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평소에 이렇게 불이 켜진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지민구 warum@donga.com·권기범 / 광명=김윤이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가 8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현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설치된 특별수사단을 국세청과 금융위원회 등도 참여하는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합수본)’로 확대 개편할 것을 지시했다. 정부합동조사단(합조단)은 1차로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등 2만3000여 명에 대해 2013년 12월부터의 거래 내용을 조사한 뒤 이번 주 중 국수본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합조단장을 맡은 최창원 국무조정실 1차장은 이날 “3기 신도시 1차 발표를 한 것이 2018년 12월”이라며 “지구 지정 전부터 (땅 투기) 검토가 이뤄졌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에 (발표) 5년 전을 조사 시점 범위로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거래까지 포함하겠다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는 “폭넓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라는 정 총리 지시에 따라 이르면 이번 주 중 합수본이 출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법무부·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국가가 가진 모든 행정력, 모든 수사력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LH 투기 의혹 사건은 검경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한 첫 사건이다. 검경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이 전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권기범 기자}

5일 낮 12시 반 경기 하남 교산신도시 인근의 한 중개업소. 이 지역에 땅을 갖고 있는 주민 5, 6명이 상담 중이었다. 이들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향후 신도시 사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 중개업자와 논의하고 있었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하남 교산은 3기 신도시 중 토지 보상 속도가 가장 빠를 정도로 정부에 협조적이었지만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분노한 주민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 주민들 “LH에 배신감 느낀다” 하남 교산신도시는 토지 보상률이 현재 약 60%로 3기 신도시 6곳 중에서 보상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달 12일부터 창고나 비닐하우스 등에 대한 보상 절차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LH 직원의 투기 의혹이 불거진 뒤 주민들이 3기 신도시에 대한 전수 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보상 절차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남에서 농사를 짓는 장모 씨(63)는 LH와의 토지 보상 협의에 응하려다 LH 직원의 투기 의혹이 나온 뒤 마음을 바꿨다. 장 씨는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LH가 제시한 보상 가격을 받아들일 순 없었다”고 했다. 토지 보상 과정에서 LH에 협조적이었던 주민들은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하남시 천현동에 사는 김모 씨(38)는 최근 LH가 제시한 보상 가격인 3.3m²당 1600만 원대에 땅을 팔기로 했다. 그는 “시세보다 낮았지만 나중에 추가 보상을 해주겠다는 LH 직원의 말을 믿었다”고 했다. 그는 “‘싼값에 동의해준 우리가 얼마나 바보 같았겠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보상 절차가 원칙에 따라 진행된다는 믿음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지역도 비슷한 분위기다. 인천 계양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LH 직원들이 내부 정보로 땅을 투기하는 게 말이 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 고양 창릉 통합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도 “100평을 보상받아도 인근에서 땅 10평도 못 산다”며 “우리 동네에서도 LH나 공무원이 투기한 게 드러난다면 주민들이 들고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2·4공급대책 차질 빚어질 우려 이날 경기 시흥시 하수처리장 공터에서 ‘시흥·광명 신도시 대책위원회’가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한 주민 설명회에서도 LH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C중개업소 대표는 “진상 조사와 후속 조치가 철저히 이뤄지지 않으면 신도시 개발의 추후 일정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임채관 공공주택지구 대책협의회 의장은 “그간 주민 요구는 이런저런 규정을 대며 거절하더니 정작 LH 직원들은 내부 정보로 땅을 산 것 아니냐”며 “정부가 전수 조사를 맡는 것도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3일 MBC 기자와의 문자메시지에서 “(LH 임직원들이) 개발 정보를 알고 토지를 미리 구입했다기보다는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걸로 알고 취득했는데, 갑자기 지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썼다. LH를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여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LH에 대한 불신이 공급 차질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7월에는 3기 신도시 사전 청약이 시작된다. 국토부는 “토지 보상을 마쳐야 사전 청약을 할 수 있는 건 아닌 만큼 청약을 당초 일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토지 보상이 지연되면 결국 실제 입주 시기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2·4공급대책의 핵심인 도심 공급과 관련해 민간 참여를 유도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당초 정부는 민간이 LH에 토지를 넘기면 공공주도 개발을 통해 수도권과 5개 광역시에 33만2000채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이는 2·4공급대책 전체 목표치(83만6000채)의 약 40%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누가 LH에 사업을 맡기겠냐”며 “정부가 목표한 공급량을 달성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말했다.하남=정순구 soon9@donga.com / 김호경·권기범 기자}

“지난해 봄에 나무를 심었죠. 심어만 놓고 두세 달에 한 번쯤 잠깐씩 왔다 갔어요.” 3일 경기 시흥시 과림동에 있는 한 농지. 검은색 비닐이 씌워진 땅에 성인 허리쯤 오는 어린 묘목이 빼곡히 심겨 있었다. 인근 작업장 직원들은 “원래 농사를 짓던 평범한 논이었다”고 했다. 1200평이 조금 넘는 이 농지는 2일 참여연대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지난달 24일 정부의 광명·시흥 신도시 조성 발표 전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들이 전체 100억 원대의 토지를 매입했다고 공개한 필지 10곳 중 하나다. 2019년 6월 이곳을 사들인 4명 중 3명은 3일 국토교통부가 직위를 해제하기 직전까지 LH 과천의왕사업단의 같은 부서에서 보상 담당으로 근무했다. 이들은 이 토지를 매입하며 각자 은행에서 2억3000만 원에서 4억5000만 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바로 옆엔 같은 날 당시 LH의 한 사업단장으로 알려진 인물이 매입한 농지도 있다. 두 필지는 경계가 없어 눈으로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농지에 묘목 심어 추가 보상 노린 듯” LH 직원들이 묘목을 심어둔 건 개발제한구역의 농지를 매입할 경우 영농계획서를 제출하고 실제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만약 지방자치단체의 단속에서 실제 영농 활동을 하지 않았거나 허위 영농계획서를 제출한 사실이 적발되면 과태료를 물거나 고발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신도시 조성을 위해 토지를 매입할 때 추가 보상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한 감정평가사는 “토지에 심어진 수목 등은 이전비나 취득까지 보상받을 수 있어 투기꾼들이 애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보통 단가가 싸고 크게 관리할 필요가 없는 묘목을 많이 심는다”고 설명했다. 무지내동에 있는 농지 5905m²에도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인근 주민은 “2018년 매입한 뒤 바로 심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땅을 공동 소유한 LH 직원 A 씨는 과림동에 있는 또 다른 농지의 공동 소유자이기도 하다. 과림동 토지는 4개 필지를 합쳐 총 5025m²에 이른다. 한 주민은 “지난달 에메랄드그린 품종을 2000그루 정도 심었다”고 했다. 한 조경업체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묘목을 심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토지는 LH 직원을 비롯한 7명이 지난해 2월 22억5000만 원에 매입해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2억6000만∼5억4000만 원을 농협에서 빌렸다. 민변 관계자는 “LH 내부 보상 규정 기준을 알고 행동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라고 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농지를 사서 토지로 보상을 받으면 더 가치가 높은 주거용 토지로 받을 수 있어 추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LH 직원, 건물 사서 이사 오려 했다” 에메랄드그린 묘목이 심어진 농지를 공동 소유한 40대 LH 직원 B 씨는 이 땅에서 약 250m 떨어진 한 건물의 공동 소유자이기도 하다. B 씨는 토지 330m²와 연면적 273.5m²의 2층 건물을 2019년 9월 4일 매입했다. 농지를 매입하며 약 4억 원을 대출받은 B 씨는 해당 건물을 살 때도 약 5억 원을 은행에서 빌렸다. 주민들은 “동네에서는 B 씨가 부동산 쪽 일을 하는 업자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이 건물의 1층은 현재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2층은 숙소로 이용됐으나 지금은 비워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에 따르면 B 씨 쪽에서 “직접 살겠다”며 2층을 비워달라고 했고, 현재 이들의 이삿짐 일부도 들어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업계는 B 씨 등이 매입한 토지에 실거주할 경우 토지 보상에 유리하다는 걸 알고 이사를 들어오려고 한 것으로 추정했다. 농지에서 농사만 짓는 것보다 실제로 해당 토지의 거주자로 인정받으면 이주대책 대상이 돼 이주정착금까지 받을 수 있다. 또 각종 기반시설 설치비용을 면제받아 토지보상액을 산정할 때 유리하다. 이런 혜택을 받으려면 해당 지역에서 1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신도시 지정 발표 뒤 이사했다면 이미 전입신고를 한 상태로 거주를 입증하려 이사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국토부는 다음 주까지 기초 조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이 같은 투기 의혹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지 대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신규택지 개발과 관련된 국토부와 LH, 지방 공기업의 직원은 원칙적으로 거주 목적이 아닌 토지 거래를 금지하겠다. 불가피할 경우엔 미리 신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경찰 수사로 넘어가 LH 직원들이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토지 등을 매입한 것이 확인되면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죄나 공공주택특별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업무 처리 중 정보를 취득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관건이다.권기범 kaki@donga.com·이새샘 / 시흥=김윤이 기자}

“거래 금액이 굉장히 크고 (의혹 당사자들이) 상당 부분을 대출받았습니다. 확신이 없었다면 감행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가 2일 연 기자회견에서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변호사)은 이렇게 말했다. 이 위원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경기 광명·시흥지구 투기 의혹을 제기하며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한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특히 이들 단체는 의혹이 제기된 10개 필지에 대해 “제보를 받아 하루 동안 조사한 내용”이라며 “(보다 광범위한 투기가) 더 있을 수밖에 없다. 전수조사를 하면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대출 받아가며 농지 대거 사들여” 지난달 24일 정부는 2·4공급대책에 따라 광명·시흥지구(1271만 m²)를 ‘3기 신도시’로 추가 선정했다. 광명시의 광명동 옥길동과 시흥시의 과림동 등에 아파트 7만 채가 들어설 예정이다. 3기 신도시로 발표된 지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주목받은 지역이다. 사실 광명·시흥지구는 2018년 첫 번째 3기 신도시 지정 당시엔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지역사회가 신도시 지정을 반대하는 등 협의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후 지역 여론이 바뀌면서 지정 대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시흥시는 지난해 4월 해당 지구를 통합 개발해 달라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민변 등이 밝힌 LH 전·현직 임직원 등의 토지 매입 시기도 이때쯤이라고 한다. 2019, 2020년 등은 지역사회 여론이 움직일 때여서 직원들이 이 같은 지역사회 기류나 정부 방침 등을 미리 파악하고 땅을 매입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민변 등은 “약 58억 원을 대출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건당 6억∼22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댔다”며 “가능성만으로 농지를 사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LH 임직원 등이 사들인 토지가 대부분 농지라는 점도 석연치 않다고 봤다. 농지법에 따르면 농지를 사려면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LH 직원이 계획서를 과장되게 제출하는 방식으로 땅을 사들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인 이강훈 변호사는 “정보 유출인지는 향후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라면서도 “금액 단위가 개인이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신뢰 훼손” 다만 광명·시흥지구는 첫 3기 신도시 발표 때에도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돼 내부 정보가 아니라도 장기 투자 목적으로 매입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 때문에 LH 임직원 등이 토지 매입 과정에서 사전에 파악한 내부 정보를 활용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투기 여부를 가릴 핵심으로 지적되고 있다. 민변 등은 투기 의혹이 제기된 임직원뿐만 아니라 LH와 국토교통부의 관리 감독에 대한 직무 유기에 대해서도 감사를 청구했다. 이들이 땅을 사들인 시기는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과 일부 겹치기도 한다. 감사 결과에 따라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의뢰를 통해 경찰 수사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르면 국토부 또는 관계 기관의 전·현직 직원이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정보를 목적 외에 사용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LH가 자체 조사를 통해 직무에서 배제시킨 현직 직원의 상당수는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지역 소속으로 토지 보상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현재 광명·시흥지구 토지 소유자 전체를 LH 직원 명단과 대조하는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변 장관은 이날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 간담회에서 “광명·시흥지구에서 임직원들이 사전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됐다”며 “올해 강도 높은 청렴대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권기범 kaki@donga.com·이새샘·이기욱 기자}

3·1절을 맞아 서울에서 경찰에 신고됐거나 기자회견 등의 형식으로 열릴 예정인 집회가 1670여 건에 이르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비슷한 성향의 단체들이 ‘쪼개기 집회’로 신고한 경우가 있어 당일 대규모 집회로 번질 우려도 있다. 서울시와 경찰에 따르면 1일 서울에서 9인 이하 참석이거나 금지구역이 아닌 지역 개최를 신고한 집회는 1500건이 넘는다. 여기에 기자회견이나 1인 시위 등의 형식으로 열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집회도 170건 안팎이다. 10인 이상이거나 금지구역에 해당돼 경찰이 금지 통고했던 집회 102건 가운데 3건은 법원의 허가로 열릴 수 있게 됐다. 통고를 받았던 집회 가운데 10건은 주최 측이 금지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내자, 법원이 3건에 대해서 방역지침 준수 등을 조건으로 집회를 허용해줬다. 차량 집회를 포함한 이 3건은 모두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신고했던 집회다.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집회는 대규모 집회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공화당은 1일 오후 1시 ‘국민 총력 투쟁 집회’를 독려하며 종로나 을지로 등 150여 곳에 9인 이하 집회를 신고했다. 경찰은 서울 도심에 110여 개 중대를 투입해 방역수칙이나 집회시위법 위반을 면밀히 살필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문제점이 적발되면 곧장 해산 명령을 내리는 등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3·1절 쪼개기집회 대규모 번지면… ‘광복절 집단감염’ 재연 우려대한호국단 등 집행정지 3건 인용1600건 쪼개기집회등과 합쳐지면 수천명 집결 대규모 불법집회 우려경찰, 광화문광장등 안전펜스 설치 “서울 도심엔 5000여명 인원 투입”3·1절을 하루 앞둔 2월 28일 경찰은 일찌감치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일대에 ‘안전 펜스’ 설치 준비를 시작했다. 두 곳 모두 집회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있으나 만일의 경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경찰 등은 현재 서울에서 개최를 신고했거나 기자회견 등으로 형식을 갖춘 집회 1670건이 모두 예정대로 열리진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통상 집회를 신고했더라도 실제로는 개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9일 ‘한글날 집회’처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거나, 9인 이하로 신고했던 집회가 합쳐지며 대규모 불법 집회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이달 초 청와대 인근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쪼개기 집회를 열다가 250여 명이 모여들었던 사례가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단 소수 집회로 신고해놓은 다음 장소를 바꾸거나 행진 등을 통해 한곳에서 합세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집회’와 같은 상황은 가장 우려되는 경우다. 당시 광화문광장은 소규모 집회만 허용됐으나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고, 결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법원이 일부 인용해 광화문광장 주변에서 개최가 가능해진 집회 3건 가운데 2건은 사실상 같은 단체에서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인근에서 인원 30명으로 허용된 ‘경제활동 보장촉구 집회’의 신고자인 A 씨는 광화문광장 북쪽에서 집회를 여는 자유대한호국단 회원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집회 금지 통고를 받은 다른 단체들도 “비대면 방식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집회를 열겠다”는 입장이다.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 등은 청와대 사랑채 인근과 광화문광장 등에 모두 1400여 명이 참석하는 집회를 신고했다가 경찰로부터 금지 통고를 받았다. 우리공화당은 정오경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오후 1시경엔 서울 150여 곳에서 동시 소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최소 1500여 명이 동시에 같은 목적의 집회를 개최하는 셈이다. 서울경찰청은 1일 서울 도심에 110여 개 중대, 5000여 명의 인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현재 ‘차벽’ 설치는 검토하고 있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대응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건 기자회견이건 참여 인원을 초과하는 등 불법적인 면이 드러나면 즉각적으로 강력 대처하겠다”고 설명했다.권기범 kaki@donga.com·김태성·지민구·신희철 기자}

2월 3일 오전 10시경 인천 부평구 삼산동의 한 사거리. 70대 여성 A 씨는 자신의 차를 몰고 우회전하다 파란불에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B 씨(41)를 들이받았다. B 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아픔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인근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현직 경찰이던 B 씨는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다. 3일 뒤, B 씨의 자택에선 부인과 두 자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부인이 남긴 유서가 발견됐다. 교통사고특례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A 씨는 “당시 사고 과정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구체적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70대인 A 씨의 실수가 안타까운 비극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고령운전자에 대한 제도적 관리가 필요하단 목소리는 몇 년 사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분위기다. 연로한 어르신들은 순간적인 장애물 대처나 정보처리 능력이 아무래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28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는 더 분명해진다. 최근 5년간 경찰청 교통사고 통계를 분석한 결과, 만 6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2015년 2만3063건에서 2019년 3만3239건으로 44%나 늘었다. 반면 만 64세 이하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같은 기간 20만8972건에서 19만6361건으로 6% 줄었다. 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를 뜻하는 치사율은 65세 이상 운전자는 2.9명으로, 64세 이하 운전자의 1.7명보다 크게 높다. 연구소가 제안하는 대책은 ‘조건부 운전면허의 도입’이다. 고령운전자는 낮 시간에만 운전을 허용하는 등 시간과 장소, 도로 등을 제한하는 운전면허를 일컫는다. 연구소 관계자는 “특정 연령의 운전면허를 일괄 취소하는 것보다 교통안전과 이동 권리를 동시에 보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가 운전면허증 소지자 2184명에게 설문조사했더니 74.9%가 도입이 필요하다고 찬성했다고 한다. 물론 다수가 찬성했다고 해서 도입을 급히 서둘러선 안 된다. 분명 거부감을 느끼는 고령운전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로 선을 긋는 게 타당한가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사회관계장관회의 안건에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가 상정된 뒤 비난 의견이 커지자, 경찰청은 “면허 일괄 취소가 아니다”라며 해명하기도 했다. 경찰은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의 도입 기한을 2024년까지로 제시했다.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이해를 구하고 협력을 얻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고령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자발적 면허 반납 제도’는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아무리 취지가 좋은 제도라도 소통 없이 추진하면 나쁜 제도로 전락한다. 권기범 사회부 기자 kaki@donga.com}

중앙대 언론동문회는 ‘2021년 중앙언론동문상’ 수상자로 김봉열 EBS 심의위원과 김승중 메트로신문 편집국장, 송광림 한국경제신문 광고국장(상무), 조범 MBC플러스 경영센터장(이상 가나다순)을 선정했다고 23일 밝혔다. 1983년 제정된 중앙언론동문상은 신문·방송·광고·출판 등 4개 부문에서 공로가 큰 동문을 수상자로 선정한다.권기범기자 kaki@donga.com}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4000명 이하로 떨어진지 3년 만에 ‘3000명대의 벽’ 문턱까지 내려왔다. 통계 수집을 시작한 1973년 이래로 두 번째 낮은 기록이다. 24일 경찰청이 공개한 2020년 교통사고 사망자 집계 결과를 보면 지난해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모두 3079명이었다. 2019년 3349명과 비교하면 270명(8.1%)이 감소한 것이다.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5.9명으로 관련 통계 종합이 시작된 2001년 이래 가장 낮았다. 2017년과 비교하면 보행 사망자가 582명으로 가장 많이 줄었다. 노인 사망자도 425명 감소했다.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8년 처음으로 4000명 이하인 3781명을 기록한 뒤 해마다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2019년에는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율이 11.4%로 17년 만에 두 자릿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흐름이 유지된다면 2021년에는 3000명 이하로 내려갈 것으로 기대된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2000명대를 기록하면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73년(3049명) 이후 역대 최저치가 된다. 경찰은 도심 제한속도와 주택가 등 이면도로의 제한속도를 각각 시속 50, 30㎞로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정책’과 횡단보도 신호 자동 연장 시스템 도입 등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분석했다. 경찰청 교통국 관계자는 “자치경찰제 시행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의 교통안전 수준 평가 지표를 개발하고, 빅데이터 분석도 추진하는 등 예방 대책을 계속 추진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권기범기자 kaki@donga.com}

‘백신을 맞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달 8일 인천 남동구에 있는 A동 일대. 평소 광고전단이 붙어 있던 동네 가로등과 전봇대에 이상한 벽보가 붙기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민감한 시기인지라 조잡한 벽보였지만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용은 이랬다. “이제 곧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하지만 절대 맞으면 안 된다. 백신엔 마이크로 칩이 숨겨져 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주민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자 경찰은 심각성을 고려해 수사에 나섰다. 이후 붙잡힌 용의자는 평범한 60대 여성이었다. 인천경찰청은 “A동 일대에 코로나19 백신과 관련된 허위 정보를 담은 벽보를 무단으로 부착한 B 씨를 15일 붙잡아 옥외광고물 등에 대한 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23일 밝혔다. 경찰 조사에서 B 씨는 “대전에 있는 한 교회에서 벽보를 받아 와 붙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 사람의 일탈행위가 아닌 조직적인 움직임의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는 26일을 앞두고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백신 관련 가짜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주로 소셜미디어와 모바일 메신저에서 떠돌던 낭설들이 이젠 벽보 등으로도 등장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보면 접종 시작 뒤에 가짜 뉴스가 더 거세지는 경향이 있어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짜 뉴스 유포는 이미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 부산경찰청도 22일 “맘카페와 커뮤니티, 온라인 방송 등에서 백신 관련 가짜 뉴스를 생산, 유포하는 행위를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백신을 맞으면 치매에 걸린다’ ‘백신을 낙태아의 폐 조직으로 만든다’는 허위 정보를 유포한 게시물 3건에 대해선 이미 내사에 착수했다. 한 백신 관련 가짜 뉴스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가 약 1만2000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백신은 일반 백신과 달리 푸린이란 효소가 있어 치매를 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노년층들이 이 영상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유사한 허위 정보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 가짜 뉴스가 더 활개 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 접종을 개시한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선 백신을 처음 접종받은 어르신이 목숨을 잃었다는 잘못된 정보가 급격히 퍼졌다. 미국 역시 지난해 12월 백신을 맞은 테네시주의 간호사 티퍼니 도버 씨가 숨졌다는 거짓 정보가 유포됐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국내에서도 유튜브 의존도가 높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노년층 등이 조작된 정보를 편향적으로 받아들일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백신 접종을 앞두고 관련 가짜 뉴스를 신속하게 차단하기 위해 상시 대응 체계를 갖추기로 했다. 관련 불법행위도 엄단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접종 관련 가짜 뉴스를 생산하거나 유포할 경우 정보통신망법 등에 따라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등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김탁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 백신이 치매를 유발한다거나 유전자를 변형시킨다는 보고는 현재 없으며, 그럴 가능성도 거의 없다. 마이크로 칩도 명백한 가짜 뉴스”라며 “통상적인 기존 백신보다 더 많은 이상 반응을 일으킨다는 증거 역시 없다. 코로나19 백신의 이득이 위험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고 했다.김태성 kts5710@donga.com·권기범·전남혁 기자}
“딱 1분만 기다려 주시면 돼요. 도망 안 가요. 빨리 갔다 올게요.” 21일 인천의 한 아파트 앞. 택시 안에서 승객이 운전사에게 계속 사정했다. 수중에 현금이 없으니 집에서 얼른 가져와 요금을 치르겠다는 호소였다. 결국 운전사는 이 남성을 믿고 택시에서 내리게 해줬으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라졌던 승객의 얼굴은 2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됐다. 자신을 택시운전사의 아들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택시요금 안 내고 튄 거지’라는 제목으로 남성이 택시에서 내리기 직전의 상황이 담겨있는 블랙박스 영상을 온라인에 띄워 버렸다.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아 남성의 얼굴은 그대로 노출됐다. 글쓴이는 “2만 원도 안 되는 돈을 아끼려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뻔뻔하게 말을 바꾸면서 전화도 꺼놓거나 받지 않았다”며 “돈이 문제가 아니라 온 가족이 상처를 입었기에 얼굴을 올렸다”고 했다. 온라인에선 운전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승객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자칫 글쓴이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변호사는 “승객이 잘못했더라도 개인 신상을 함부로 유포하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거나 초상권 침해로 금전적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23일 경찰청을 방문해 김창용 경찰청장과 면담했다. 김 처장은 ‘미공개 주식거래 의혹’으로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김 처장은 이날 오후 3시경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방문해 김창용 경찰청장과 약 1시간 동안 만나 공수처와 경찰의 업무 협조에 대해 논의했다. 김 처장은 “국가수사본부 출범에 따라 여러 면에서 협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고, 저도 전반적인 협력 관계에 대해 말씀드렸다”며 “서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견제할 것은 견제하는 관계를 유지하자는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 처장의 경찰청 방문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한 시민단체가 김 처장에 대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나노바이오시스’라는 업체 주식을 사들인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로 고발한 건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김 처장은 김 청장과의 면담 후 기자들에게 “(경찰청 방문은) 예정됐던 예방 일정 중 마지막 일정으로 늦출 사정으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이날 공수처 검사를 선발하기 위해 5개 평가항목을 만들었다고도 밝혔다. 5가지 기준은 △공무원으로서의 정신 자세 △전문지식과 응용 능력 △창의력·의지력 및 발전 가능성 △의사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 △예의·품행 및 성실성 등이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백신을 맞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달 초 인천 남동구에 있는 A동 일대. 평소 광고전단지가 붙어있던 동네 가로등이나 전봇대들에 이상한 벽보들이 붙기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민감한 시기인지라, 조잡한 벽보였지만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용은 이랬다. “이제 곧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하지만 절대 맞으면 안 된다. 백신엔 마이크로 칩이 숨겨져 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주민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자, 경찰은 심각성을 고려해 수사에 나섰다. 이후 붙잡힌 용의자는 평범한 60대 여성이었다. 인천경찰청은 “A동 일대에 코로나19 백신과 관련된 허위 정보 벽보를 무단으로 부착한 6 씨를 옥외광고물 등에 대한 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23일 밝혔다. 경찰 조사에서 B 씨는 “대전에 있는 한 교회에서 벽보를 받아와 붙였다”고 진술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 사람의 일탈행위가 아닌 조직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단 뜻이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는 26일을 앞두고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백신 관련 가짜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주로 소셜미디어와 모바일메신저에서 떠돌던 낭설들이 이젠 벽보 등으로도 등장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보면 접종 시작 뒤에 가짜뉴스가 더 거세지는 경향이 있어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짜뉴스 유포는 이미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 부산경찰청도 22일 “맘 카페와 커뮤니티, 온라인 방송 등에서 백신 관련 가짜뉴스를 생산 유포하는 행위를 집중 단속 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백신을 맞으면 치매에 걸린다’ ‘백신을 낙태아의 폐 조직으로 만든다’는 허위 정보를 유포한 게시물 3건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 한 백신 관련 가짜뉴스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약 1만2000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백신은 일반 백신과 달리 퓨린이란 효소가 있어 치매를 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노년층들이 이 영상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유사한 허위 정보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 가짜뉴스가 더 활개 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접종을 개시한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선 백신을 처음 접종한 어르신이 목숨을 잃었다는 정보가 급격히 퍼졌다. 미국 역시 지난해 12월 백신을 맞은 테네시 주의 간호사 티파니 도버가 숨졌다는 거짓 정보가 유포됐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국내에서도 유튜브 의존도가 높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노년층 등이 조작된 정보를 편향적으로 받아들일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백신 접종을 앞두고 관련 가짜뉴스를 신속하게 차단하기 위해 상시 대응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관련 불법행위도 엄단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접종 관련 가짜뉴스를 생산하거나 유포할 경우 정보통신망법 등에 따라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등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김탁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 백신이 치매를 유발한다거나 유전자를 변형시킨다는 보고는 현재 없으며, 그럴 가능성도 거의 없다. 마이크로 칩도 명백한 가짜뉴스”라며 “통상적인 기존 백신보다 더 많은 이상반응을 일으킨다는 증거 역시 없다”고 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경찰의 수사 전담기구인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초대 본부장으로 남구준 경남경찰청장(54·경찰대 5기·사진)이 22일 단수 추천됐다. 경찰청은 “임용후보자 종합심사위원회에서 종합 심사를 진행한 뒤 개정된 경찰법(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과 위원회 의견 등을 검토한 결과, 남 청장을 추천자로 낙점했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청은 19일 외부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한 종합심사위원회를 열고 심층 면접과 서류 심사 등을 실시했다. 위원회는 심사 뒤 “초대 국수본부장의 상징성과 중요성을 고려해 조직 내외부에서 폭넓게 최적임자를 선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김창룡 경찰청장에게 전달했다. 국수본부장은 지난달 공개 모집에 5명이 지원했으나, “내부 인사가 선택될 수 있다”는 관측이 경찰 내외부에서 흘러나왔다. 특히 수사 전문가로 꼽히는 남 청장은 꾸준히 본부장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남 청장은 경찰청 형사과장과 사이버안전국장 등을 지냈고, 2018∼2019년 대통령국정기획상황실에서 파견 근무를 했다. 김창룡 청장의 경찰대 1년 후배이며,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의 마산중앙고 후배이기도 하다. 국수본부장은 치안정감급으로 임기는 2년 단임이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최근 ‘학폭(학교폭력) 미투’는 주로 10∼20년 전 겪었던 피해들이 많다. 오래된 피해라도 심리적 상처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학폭 발생 당시 ‘초기 대응’이 적절히 이뤄져야 극복도 수월하다”고 했다. 초기 대응은 성범죄 피해 회복과 마찬가지로 ‘피해자 중심주의’가 우선이다. 아동청소년인권센터를 운영하는 ‘탁틴내일’의 이현숙 상임대표는 “가해 학생의 징계로 사건이 끝나는 게 아니다. 피해 학생의 심리 회복 상황을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에 심리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피해 학생은 2차, 3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학교폭력피해자 전용기관 ‘해맑음센터’의 차용복 교사는 “피해자가 주변 관심을 충분히 받는 경우 학교로 돌아가 잘 적응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전문 심리상담과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등도 고려돼야 한다. 한림대성심병원의 전덕인 정신의학과 교수는 “1차적으로 주변 지인의 지원이 가장 중요하지만, 필요할 경우 심리상담이나 약물치료 등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의 접근성과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명지병원의 홍민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교사들은 판단과 수사를 하는 전문가가 아닌 만큼 교육청 등이 나서야 한다는 요청이 많다”며 “의사들이 참여하는 스쿨닥터 같은 기존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폭력예방법은 학생 선도에 목적이 있는데 현실에선 문제가 발생하면 학교 측이 시달리니 사건 종결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며 “적절한 치유 프로그램과 이를 뒷받침할 인력과 예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김수현 newsoo@donga.com·권기범 기자}

서울경찰청 진상조사단이 지난해 11월 6일 택시 운전사를 폭행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을 입건조차 하지 않고 내사종결한 서울 서초경찰서 A 경사를 직무유기 혐의의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 중인 것으로 15일 밝혀졌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진상조사단은 최근 A 경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특수직무유기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 특수직무유기는 범죄 수사의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특가법에 규정된 죄를 지은 사람을 인지하고도 직무를 유기한 경우에 적용된다. 이 차관이 택시 운전사의 멱살을 잡은 행동이 특가법상 운행 중 운전자에 대한 폭행에 해당할 수 있는데도 A 경사가 일반 형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특수직무유기는 유죄가 인정될 경우 1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해진다. 1년 이하의 징역 등으로 처벌되는 형법상 직무유기보다 형량이 무겁다. A 경사의 입건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개정 절차에 맞춰 이뤄진 것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올 1월 1일부터 시행 중인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 협력과 일반적 수사 준칙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혐의자가 수사기관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면 수사를 시작한 것으로 간주해 입건된다. A 경사는 경찰의 감찰부서와 수사부서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A 경사는 이 차관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경찰 수사와는 별도로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동언)의 수사를 받고 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감정인이 변사자였다면 ‘더 괴롭히지만 말고 제발 빨리 죽여 달라’고 오히려 빌었을 것이고….” 지난해 세상을 떠난 입양아 ‘정인이’의 양모를 지난달 살인죄로 기소하는 데는 아이의 부검 결과를 재감정한 결과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이는 국내 최고의 법의학자인 이정빈 가천대 석좌교수(75)다. 그런데 이 교수는 이번 정인이에 대한 보고서를 몇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고 한다. 바로 재감정 보고서에 담았다가 최종본에선 뺀 ‘감정인의 사적인 기록’이란 대목 때문이었다. 이 교수는 “각 분야 전문의 등을 직접 찾아가 의견을 나누고 양모가 (아이를) 발로 밟았단 사실을 확신했다”며 “재감정을 맡으며 느낀 사적인 소회를 감정서 마지막 단락에 써뒀지만 객관성을 고려해 제출 직전에 뺐다”고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이 교수는 당시 썼던 이 대목을 동아일보에 일부 공개했다. 사적인 기록이라고 표현했지만, 깊은 공력을 바탕으로 사건을 꿰뚫어본 통찰력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교수가 지운 대목을 보면 정인이가 생전에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말을 할 수 있는 나이였다면 정말 ‘차라리 죽여 달라’고 했을 법하다. “정인이 부검 사진을 보면, 가끔 TV 모금 광고에서 마주치는 아프리카 빈곤층 아이와 흡사합니다. 이렇게 어린아이를 어떻게 이리 아무 망설임 없이…. 정말 끔찍한 광경이에요. 아이는 어쩌면 숨진 뒤 구천에서 ‘(죽여줘서) 고맙다’고 했을 거예요.” 사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부검을 맡은 적이 수십 차례다. 서울시 아동학대 자문위원을 맡으며 아이들의 몸에 남겨진 학대 정황을 수도 없이 분석해 봤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이번처럼 감정이 요동쳤던 적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그가 떠올렸던 건 2014년 최종 판결이 내려진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살인 사건’이었다. 당시 이 교수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폐가 손상돼 호흡이 안 되는 데다 심낭 내 출혈까지 있었다”며 “계모가 ‘핏기가 없다’라고 진술했을 때는 이미 죽어가고 있던 상황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냈다. 이 사건은 국내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큰 이정표를 세웠다. 이 교수의 소견을 받아들인 재판부가 “가해자가 의학지식이 없더라도 피해자를 봤다면 생명에 심각한 지장이 초래됐음을 인식했을 것”이라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사건에 처음으로 살인죄가 적용된 사례였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서는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학대 부위가 처음엔 종아리 같은 곳이었다가 조금씩 엉덩이, 옆구리로 바뀐다. 이 교수는 “학대 정황을 숨기기 위해, 혹은 굳은살이 생겨 아이가 덜 아파하면 더 아픈 부위로 옮겨가는 것”이라며 “결국 가슴이나 머리까지 학대 부위가 옮겨가 아이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인이 역시 전신에 걸쳐 지속적이고 악랄한 학대가 가해졌을 겁니다. 이미 알려진 두개골 골절과 장간막 손상, 췌장 절단 외에도 허벅지와 옆구리 등 전신에 발등과 같은 넓은 부위로 걷어차인 흔적이 보였어요. 갑상샘(갑상선) 조직과 턱 아래쪽까지 출혈과 손상이 있었습니다. 이런 흔적은 기도가 있는 목 주변을 손날로 치거나 한 손으로 꽉 움켜쥐며 조를 때나 생길 수 있어요.” 이 교수는 법의학이란 “단순히 시신의 상흔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다. 사건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정인이 부검 보고서에 단순히 ‘둔력에 의한’으로 표현하지 않고 ‘발로 밟아 췌장이 손상됐을 것’이란 내용을 담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인이 겨드랑이 안쪽 뼈에 생긴 움푹 파인 ‘압박 골절’의 원인은, (양모가) 정인이가 방어하지 못하도록 팔을 들게 한 뒤 때렸기 때문일 겁니다. 이 부위를 맞은 정인이는 아마 팔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 거예요. 제가 이 부위의 고통 정도를 체험해 보려고 실제로 동료에게 부탁해 몽둥이로 맞아본 적이 있어서 아주 잘 압니다.” 이 교수는 이날 인터뷰 자리에 자신의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11년째 쓰고 있다는 낡은 노트북엔 사건 부검 등과 관련된 여러 자료와 사진이 가득했다. 인터뷰 중간에도 여러 차례 양해를 구하며 수사기관 관계자들과 통화했다. 이 교수는 지금도 또 다른 정인이를 위해 현장 일선에서 싸우고 있다.감정인의 사적인 기록피해자는 생후 16개월(2019. 6. 10.생) 여아로 체중은 3. 23.(9개월) 9㎏, 9. 23.(15개월) 8.5㎏, 사망 당일 9.5㎏(이대목동병원 기록은 9㎏)로, 부검사진을 보면 unicef TV 모금광고에 나오는 아이의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이런 아이를 어떻게 하면 아무 거리낌 없이 배를 밟아 죽일 수 있을까? 다시 상상해 보기도 싫은 끔찍한 광경이다.감정인이 변사자였다면 죽기 전에는 “이렇게 괴롭히지만 말고 어차피 죽일거 제발 빨리 죽여주세요”라고 빌었을 것이고, 죽은 후에라도 “밟아 죽여줘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표시 했을 것 같다.박종민 blick@donga.com·권기범 기자}

“6개월간 말 그대로 그냥 버텼어요. 일감이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그냥 수입이 영(0)이에요.” 1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삼일대로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 프리랜서 미싱사로 일하는 김순이 씨(55)는 마음이 급해 늦은 점심을 먹다 말고 뛰어왔다고 한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서다. 공연 의상을 제작해 납품해왔던 김 씨는 코로나19로 일감이 뚝 끊겼다. 생활비도 감당이 안 돼 최근 결국 보험사에서 약관대출까지 받았다. 김 씨는 “빚이 자꾸 늘어 가는 건 둘째 치고, 당장 먹고살 일이 걱정인 상황”이라며 접수대로 향했다. 이날 센터는 유독 사람들이 몰리며 북적거렸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3차 지원금의 현장 접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급 대상은 코로나19로 소득이 줄어든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프리랜서 가운데 1, 2차에 지원받지 못한 이들이다. 지원 금액은 1인당 100만 원이지만 누군가에겐 당장 오늘내일을 버틸 소중한 돈이다. 김 씨처럼 온라인 신청이 어려웠거나 촉박하게 서류를 준비한 신청자들이 대거 몰려들며 7개의 신청 접수창구는 쉴 틈이 없었다. 번호표를 뽑아들고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는 이들만 30명이 넘었다. 다음 순서를 알리는 ‘띵동’ 소리가 날 때마다 다들 고개를 번쩍 들었다. 겨우 접수창구에 앉았다가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힌 신청자도 있었다. 한모 씨(57)는 30분 가까이 기다려 순서가 됐는데 일부 서류가 누락됐다는 답에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 서류만 봐서 지원 요건이 안 맞는다니 어떻게 하죠. 1월에 수입이 90만 원밖에 안 되는데 그걸 챙겨오지 못했어요. 지난해 12월 소득 증빙 서류만 가져왔는데 ‘소득이 기존보다 25% 이상 줄었다’는 걸 증명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2017년 12월부터 보험설계사로 일해 온 한 씨에게 100만 원은 너무나 간절한 돈이다. 당장 집 월세가 몇 달째 밀려 있는 상황. 한 씨는 “코로나19 이후 보험 가입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당장 가서 어떻게든 서류를 발급받아 다시 와야 한다”며 센터를 나섰다. 센터에는 서류 미비로 자격이 안 되면서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찾은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에 따르면 사실 프리랜서 등은 일을 했어도 관련 서류를 떼기가 정말 어렵다고 한다. 일부 업체는 소득이 노출되는 걸 꺼려 거부하거나 차일피일 미루기가 일쑤다. 대리운전기사인 이호영 씨(58)가 그랬다. 업체에서 위탁계약서와 소득증명서 발급을 거부해 1, 2차 때도 지원을 하지 못했다. 이 씨는 “최근엔 신용카드 빚까지 계속 쌓여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서류가 부족한 걸 알지만 읍소라도 해볼까 싶어서…”라며 말을 흐렸다. 급여 명세가 찍힌 통장 사본만 들고 센터를 찾은 퀵서비스 기사 최모 씨도 “최근 의뢰가 없어 배달 횟수가 0건인 날이 부지기수”라며 “친구에게 빌린 생활비라도 갚아야 해서 왔는데 ‘접수는 받아주지만 지급될지는 모른다’고 하니 앞이 막막하다”면서 한숨지었다.유채연 ycy@donga.com·권기범 기자}

“6개월간 말 그대로 그냥 버텼어요. 일감이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그냥 수입이 영(0)이에요.” 1일 오후 1시 반 서울 중구 삼일대로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 프리랜서 봉재사로 일하는 김순이 씨(55)는 마음이 급해 점심도 먹다 말고 뛰어왔다고 한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서다. 공연 의상을 제작해 납품해왔던 김 씨는 코로나19로 일감이 뚝 끊겼다. 생활비도 감당이 안 돼 최근 결국 보험사에서 약관대출까지 받았다. 김 씨는 “빚이 자꾸 늘어 가는 건 둘째치고,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인 상황”이라며 접수대로 향했다. 이날 센터는 유독 사람들이 몰리며 북적거렸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3차 지원금의 현장 접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급 대상은 코로나19로 소득이 줄어든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프리랜서 가운데 1·2차에 지원받지 못한 이들이다. 지원 금액은 1인당 100만 원이지만 누군가에겐 당장 오늘내일을 버틸 소중한 돈이다. 김 씨처럼 온라인 신청이 어려웠거나 촉박하게 서류를 준비한 신청자들이 대거 몰려들며 7개의 신청 접수창구는 쉴 틈이 없었다. 번호표를 뽑아들고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는 이들만 30명이 넘었다. 다음 순서를 알리는 ‘띵동’ 소리가 날 때마다 다들 고개를 번쩍 들었다. 겨우 접수창구에 앉았다가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힌 신청자도 있었다. 한모 씨(57)는 30분 가까이 기다려 순서가 됐는데 일부 서류가 누락됐다는 답에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 서류만 봐서 지원 요건이 안 맞는다니 어떻게 하죠. 1월에 수입이 90만 원밖에 안되는데 그걸 챙겨오지 못 했어요. 지난해 12월 소득 증빙 서류만 가져왔는데 ‘소득이 기존보다 25% 이상 줄었다’는 걸 증명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2017년 12월부터 보험설계사로 일해 온 한 씨에게 100만 원은 너무나 간절한 돈이다. 당장 집 월세가 몇 달째 밀려 언제 쫓겨날지 모를 상황. 한 씨는 “코로나19 이후 보험 가입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당장 가서 어떻게든 서류를 발급받아 다시 와야 한다”며 센터를 나섰다. 센터에는 서류 미비로 자격이 안 되면서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찾은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에 따르면 사실 프리랜서 등은 일을 했어도 관련 서류를 떼기가 정말 어렵다고 한다. 일부 업체들은 소득이 노출되는 걸 꺼려 거부하거나 차일피일 미루기가 일쑤다. 대리운전기사인 이호영 씨(58)가 그랬다. 업체에서 위탁계약서와 소득증명서 발급을 거부해 1, 2차 때도 지원을 하지 못했다. 이 씨는 “최근엔 신용카드 빚까지 계속 쌓여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서류가 부족한 걸 알지만 읍소라도 해볼까 싶어서…”라며 말을 흐렸다. 급여 내역이 찍힌 통장 사본만 들고 센터를 찾은 퀵서비스 기사 최모 씨도 “최근 의뢰가 없어 배달 횟수가 0건인 날이 부지기수”라며 “친구에게 빌린 생활비라도 갚아야 해서 왔는데 ‘접수는 받아주지만 지급될지는 모른다’고 하니 앞이 막막하다”고 한숨지었다. 유채연기자 ycy@donga.com권기범기자 kaki@donga.com}

지난해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담당부서인 여성·청소년 분야에 우수 인력을 배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일선 현장에선 이전보다 더 기피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26일 전국 시·도 경찰청장 등이 참석한 화상회의에서 “(경찰청장이 가진 권한 내에서) 특별승진과 특별승급자의 30% 정도를 여성청소년 분야에 할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여성청소년 분야에서 성과를 내면 그 기여도를 인정해 특별승진과 승급자 수를 예년보다 높이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앞서 11일 기자간담회 등에서도 “실적이 우수하거나 장기 근무한 학대예방경찰관(APO)은 특별승진과 승급은 물론 관련 수당 등 인센티브를 확대해 우수 인력을 유입하는 효과를 내겠다”는 계획을 밝혀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들려오는 반응은 이와 정반대다. 오히려 인사를 앞두고 여성·청소년 관련 부서로 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A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의 한 경찰은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것은 물론, 현재 있는 팀원들도 대다수가 부서 이동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장 자리는 응모기간 동안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 기간을 추가 연장한 뒤에야 지원자가 나왔다. 일선에서 여청·청소년 분야를 꺼리는 이유는 엇비슷했다. 최근 아동학대 등에 사회적 고나심이 커지며 조금만 실수해도 징계 받는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B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경찰은 “자칫하면 옷 벗을 각오까지 해야 하는데 특진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당장 현장에서야 체감하기 어렵겠지만 제도가 정착화하면 서서히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