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명

박재명 기자

동아일보 산업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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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재명 기자입니다.

jmpark@donga.com

취재분야

2026-05-18~20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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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십년 응어리 진 억울함 이제라도 풀리기를…

    불법 연행과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장기간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우철 이철 형제간첩 사건’ 당사자들이 35년 만에, 그것도 둘 다 세상을 등진 뒤 이뤄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광주고법 제3형사부(부장판사 장병우)는 28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김 씨 형제의 유족이 청구한 재심에서 “간첩 혐의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김 씨 형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75년 당시 경찰수사관들이 김 씨 형제를 영장도 없이 강제연행한 뒤 16일간 불법감금 상태에서 수사했을 뿐만 아니라 고문과 폭행,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한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원심은 증거능력 또는 신빙성 없는 증거를 기초로 유죄를 인정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지난해 3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 조사 결과 등에 따라 불법 연행과 고문, 가혹행위를 통해 간첩죄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김우철 형제간첩 사건은 1947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재일동포 김우철 씨(당시 58세)가 1975년 2월 동생 김이철 씨(당시 51세)와 함께 경찰에 끌려가 고문과 협박 끝에 허위자백해 간첩으로 몰린 사건이다. 김 씨 형제는 당시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고 항변했지만 1심에서 징역 12년과 징역 4년을 각각 선고받은 뒤 항소해 징역 10년과 징역 3년 6개월의 형이 확정돼 만기복역 후 출소했다. 이후 두 사람은 고문 후유증으로 병원을 전전하다 김우철 씨는 1999년에, 동생 김이철 씨는 2002년에 각각 숨졌다.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 진실화해위 “1983년 납북어부 사건도 조작”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군사정부 시절 납북됐다가 귀환한 어부들이 간첩으로 처벌된 2건의 사건을 조사한 결과 정부의 왜곡과 조작이 확인됐다고 28일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이들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와 확정판결 재심을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1983년 수감된 ‘이상철 씨 간첩조작 사건’이 대표적인 왜곡사건이라고 밝혔다. 위원회에 따르면 어부였던 이 씨는 1971년 울릉도 근해에서 풍랑을 만나 북한까지 올라갔다.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 직후 귀환했지만 1970년대 내내 경찰의 관리를 받았다. 경찰 수사관이 신원을 보증해 거제도의 한 조선소에 취직했지만 그게 오히려 화근이 됐다. 1983년 국가보안사령부는 이 씨를 연행해 잠을 재우지 않거나 성기에 전기고문을 하는 등 가혹행위를 하여 “고정간첩으로 활동했다”는 진술을 얻어내 14년형을 받게 했다. 조선소와 같은 특수시설에 침투했다는 혐의였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당시 수사관도 가혹행위 사실을 인정했다”며 “이 씨는 2006년 출소한 직후부터 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지만 2007년 별세했다”고 말했다. 또 진실화해위는 최만춘 씨 등 전북지역 어부 9명이 1969년 경찰에 구속영장 없이 무단 억류돼 구타와 고문을 당한 사건 역시 정부 당국의 ‘각본 수사’로 보고 국가 사과를 권고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당시에는 정부가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납북어부들을 간첩으로 몰았다”며 “현재까지 위원회가 접수한 납북어부 간첩사건 9건 모두가 국가 조작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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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 93.8도… 사랑의 온도계 펄펄 끓여주세요 外

    물이 끓는 온도는 100도다. 그렇다면 ‘사랑’이 끓기 시작하는 온도는 몇 도일까? 국내의 대표적인 이웃사랑 지표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온도계’가 도입 11년 만에 처음으로 100도에 못 미칠 위기에 처했다. 그 내막을 알아봤다.[관련기사] ■ “김정일, 당뇨 합병증으로 정기 인공투석”최근 왕성하게 대외활동을 하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당뇨 합병증에 따른 신부전증으로 정기적인 인공투석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의 회담 일정이 늦어진 것도 투석 일정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관련기사] ■ 18세기 조선의 민얼굴은 어땠을까‘중인은 높고 양반은 낮다’는 의미의 동요가 유행하고 친구끼리도 당쟁으로 원수가 되던 시대…. 당대의 문인부터 기생과 칼 만드는 장인까지, 18세기 조선을 살핀 책 ‘송천필담’이 완역됐다. 당시 조선의 민얼굴을 들여다본다.[관련기사] ■ 중장년층 ‘스마트폰 스트레스’젊은층에선 스마트폰 열풍이 불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만만찮은 스마트폰 ‘진입 장벽’에 가로막힌 어른들도 있다.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더라도 일반 휴대전화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까지 있다. 스마트폰을 안 쓰면 ‘뒤처진 사람’ 취급을 받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데….[관련기사]}

    • 201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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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부사장은 왜 자살을 택했나

    삼성전자 현직 부사장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 동기에 궁금증이 일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6일 오전 10시 30분경 삼성전자 이모 부사장(51)이 자택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 모 아파트에서 투신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이 발견해 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은 유족 증언과 사체 검안 등을 통해 이 씨가 자살한 것으로 보고 이날 부검 없이 유가족에게 시신을 인도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부사장은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투신하기 전 자택에 부서 이동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한 유서를 A4용지에 써서 남겼다. 이 부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KAIST 전자공학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박사를 거쳐 1992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개발 및 공정 분야에서 주로 근무했으며 2006년에는 그룹 내 최고의 엔지니어에게 주는 ‘삼성 펠로’에도 선정됐다. 그가 지난해 3분기(7∼9월) 금융감독원에 등록한 삼성전자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주식은 9400여 주로 27일 삼성전자 주가(주당 80만 원)로 환산하면 75억 원이 넘는다. 남부럽지 않은 ‘부’와 엔지니어로서의 ‘명예’ 모두를 가졌지만 한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지인 사이에서는 ‘끊임없는 압박감’이 이 부사장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부사장은 2009년 초 기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새로운 분야인 시스템 비메모리(LSI) 개발실장에 임명됐지만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사장의 한 지인은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인 메모리 분야를 맡다가 새로 개척해야 하는 시스템 LSI를 맡게 돼 그동안 심적 압박이 컸다”고 전했다. 그는 “평생 좌절을 모르다 최근 맛본 좌절에 성급한 결정을 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고속 승진을 계속했는데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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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교통과태료 상습체납자…오늘부터 방문 재산 압류

    서울지방경찰청이 26일부터 상습적인 교통과태료 고액체납자를 직접 찾아가 재산을 압류한다. 서울경찰청은 “현재 서울에서 체납된 교통 과태료가 3050억 원에 이른다”며 “상습적인 체납자의 경우 부동산은 물론이고 고가 미술품이나 전자제품, 가구 등도 모두 강제 징수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서울경찰청의 재산 압류 우선 대상자는 체납액 500만 원 이상인 2700여 명으로 서울경찰청 산하 징수전담반이 직접 이들의 가정 등을 찾아 스티커인 ‘압류봉표’를 붙여 재산을 압류하게 된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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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라도 다함께]“한국어 배우며 매운 시집살이 고충도 나눠요”

    사재 털어 5년간 봉사 정병용 이사장이주민 문제 방치할 땐 美처럼 인종갈등 우려개인 돈으로 운영 한계… 국가가 두팔 걷어야“우리 서로 사랑했는데, 우리 이제 헤어지네요. 같은 하늘 다른 곳에 있어도, 부디 나를 잊지 말아요.” 22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 세종한글교육센터의 한 강의실. 다문화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이라 ‘가갸거겨’ 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았지만, 뜻밖에 수강생들은 가수 백지영의 최신곡 ‘잊지 말아요’를 합창하고 있었다. 강의 집중도는 자연스레 높았다. 40여 명이 모인 강의실에서 서툰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질문하는 학생도 많았다. 한국어를 배운 지 5개월 된 베트남 출신 응우옌티투이티엔 씨(38·여)는 “노래로 한국어를 배우니 쉽고 재미있어 빨리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여성들을 위해 5년째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세종한글교육센터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개인 사재로 운영되는 곳이다. 이 학교의 설립자인 정병용 이사장(63)은 2006년 자신이 운영하는 광진구의 한 주유소 뒤에서 교실 한 칸으로 한국어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이제는 교사 6명에, 학생 수도 세계 각국에서 온 이주여성을 포함해 130명으로 늘었다. 정 이사장이 외국인 한국어 교육에 나선 데는 개인적인 체험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버스 정류장에서 ‘수색 가는 버스를 태워 주세요’라고 적힌 쪽지를 들고 있는 20대 여성을 본 적이 있다”며 “외모는 한국인과 차이가 없었지만 알고 보니 동남아 출신 이주여성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색’이라는 한글도 읽을 수 없는 이주여성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가 한글을 모르는데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시킬지 걱정되더군요.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면 장차 한국도 미국처럼 ‘인종 갈등’에 휩싸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정 이사장은 개인적으로 ‘한글 봉사’에 나섰다. 처음에는 한국어로 교육을 시키려 했지만 효과가 없자 영어와 중국어를 할 수 있는 교사를 채용했다. 1년에 5000만 원 들던 운영비는 지난해 1억5000만 원까지 늘었다. 교사 월급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교재비나 점심 식사까지 센터에서 부담하고 있기 때문. “사람이 너무 늘어나면 우리가 데리고 있을 수 없어 ‘강제 졸업’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어 실력이 늘지 않아도 다음 사람을 받아야 해 졸업시킬 때는 정말 안타까워요.” 설립한 지 몇 년이 지나면서 세종한글교육센터는 이제 ‘학교’이기 이전에 광진구 결혼이주여성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좀처럼 한꺼번에 모이기 힘든 이들이 이곳에서 한국어도 배우고 서로의 애로사항도 토로한다. 정 이사장은 “시어머니 생신날에 중국 풍습대로 길게 썬 국수를 내놨다 매를 맞고 온 한 중국 출신 며느리처럼 문화 차이 때문에 갈등을 빚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한국 문화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순수하게 개인 자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정 이사장은 “이런 상황으로 학교를 계속하면 나도 몇 년 후 손을 들지 않을까 싶다”며 “이제는 국가가 이주여성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광진구에만 다문화가정이 1200여 가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이들을 모두 가르칠 수 있는 큰 건물을 세워서 구청 등에 기부하는 것이 꿈”이라고 웃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심현경 인턴기자 부산대 행정학과 3학년}

    • 201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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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다문화 학생 몰리는 무료 한글교육센터 外

    ■ 다문화 학생 몰리는 무료 한글교육센터“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한국말이 쑥쑥 느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매년 1억 원이 넘는 사재를 털어 다문화 이주여성을 위한 한글 교육에 나선 사람이 있다. ‘세종 한글교육센터’를 운영하는 정병용 이사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2006년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주유소 한쪽에서 한글교육을 시작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하고 있는 정 이사장을 만나봤다. ■ 정몽준-친이계 ‘세종시 대연대’정부의 세종시 입법 예고를 앞두고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친이(친이명박)계가 강하게 결속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반대 수위를 높여가는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서 연대의 필요성이 절박해졌다는 관측이 나돈다. ‘정몽준+친이’ 연대를 둘러싼 물밑 움직임과 향후 전망을 점검해본다. ■ 대법,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수술대 올린다대법원이 형사단독 판사 제도와 법관 임용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혁하는 데 이어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승진 제도까지 수술대에 올렸다. 판결 시비와 검찰과의 갈등, 여권의 개혁 압박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대법원. 야심 차게 준비한 개혁안으로 신뢰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 공항서 금괴 30kg 밀반출 도운 ‘투 캅스’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나. 인천국제공항에 근무하는 현직 경찰관 2명이 금괴 30kg을 일본으로 밀반출하려던 40대 남자를 돕다가 적발됐다. 금괴를 복대에 차고 출국장 보안 검색대를 통과한 뒤 넘겨준 혐의다. 신발까지 벗게 해 일반인들에게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검색대를 이들은 어떻게 무사히 통과했을까. ■ 기업들 금연운동 점점 독해지네담배를 피우면 승진이 힘들어진다. 입사할 때는 금연 서약도 해야 한다. 금연 서약을 했다가 소변검사를 해서 다시 피운 것이 들통 나면 벌금을 내거나 봉사활동을 가는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 ‘녹색 경영’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업의 금연운동 강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문답풀이올해 1학기부터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가 도입된다. ‘제때 갚지 않으면 과태료를 얼마나 물어야 하는지’ ‘졸업 후 전업주부가 되면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 등 궁금한 점도 많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시행령안을 토대로 궁금증을 풀어봤다.■ 펀드 가입자, 마음대로 판매사 옮긴다 펀드를 팔고 나면 수익률엔 관심 없고, 판매수수료만 꼬박꼬박 챙겨 가고…. 펀드판매사의 무신경에 속이 쓰렸던 고객에게 강력한 무기가 생겼다. 휴대전화 통신업체처럼 펀드 판매회사를 바꿀 수 있는 펀드판매사 이동제가 25일부터 시작된다. 펀드시장에 불어 닥칠 ‘바꿔’ 열풍에 금융회사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 201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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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화해委 활동 2개월 늘리기로

    올해 4월 끝날 예정이었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 기간이 2개월 연장된다. 진실화해위는 22일 오후 전원위원회를 열고 위원회 활동을 기존 4월 24일에서 6월 30일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 측은 “아직 조사를 끝내지 못한 사건이 전체 1만1044건 중 23%인 2531건에 이른다”며 “원활한 조사 종료를 위해 2개월간 조사기간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법률에 따라 자체 의결로 활동 기간을 최대 2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영조 위원장은 최근 “한시조직이기 때문에 기간 안에 활동을 만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등 ‘기간 내 종료’를 강조해 왔다. 진실화해위의 2개월 연장안은 ‘기간 내 만료’와 ‘업무 마무리’의 절충점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상임위원은 “아직 사건이 많아 6개월 정도 연장했으면 했지만 다른 위원회와의 형평성 등도 고려해 2개월 연장안으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의 이 같은 조사기간 연장 결정 이후 다른 과거사 위원회들의 업무 연장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잇달아 설치한 위원회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5개. 이 중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위원회 등은 10곳은 조사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다. 조사기간이 명시된 5개 위원회 중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예정대로 7월 활동을 끝낼 계획이다. 10·27법난피해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와 태평양전쟁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 지원위원회는 각각 2013년까지 활동을 연장하거나 다른 위원회에 통합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이번 진실화해위의 조사활동 연장 결정은 4건의 조사 연장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의 결정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현재 전체 조사건수 22만7000건 중 53% 정도만 결과물이 나온 상태”라며 “행정안전부 측과도 조사 기간 연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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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 루머 ‘조폭 여대생’ 만들다

    성탄절 분위기가 한창인 지난해 12월 24일. 한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 ‘억울한 사연’이 올라왔다. ‘정말 억울해서 미치다가 죽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은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소개한 한 남성이 쓴 것이다.그는 짝사랑하는 여성에 대해 “자신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조직폭력배인 남자친구를 시켜 벽돌과 담뱃불로 (나를) 마구 폭행했다”며 “이러면 안 된다고 항의하자 모 대학 분교 주제에 어디서 법을 운운하느냐며 장애인인 나를 비아냥댔다”고 적었다.그는 자신을 폭행한 이 여성의 대학, 학과와 성(姓)까지 공개했다. 엉성하고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 글에 누리꾼들은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작성한 글 말미에 “조만간 그 여자의 실명을 밝힌 탄원서를 작성해 A대 앞에 뿌리고 자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보름 가까이 지난 9일. A대 지하철역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고교생 지모 군(18)이 역으로 들어오는 전동차에 투신자살한 것이다. 유가족은 자살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당시 이 사건을 취재한 일부 언론은 “20대 후반 남성이 A대 지하철역에서 투신자살했다”고 자살자의 연령을 잘못 보도했다.언론의 잘못된 보도가 나온 후 엉뚱하게 ‘A대 지하철역 20대 자살’과 ‘장애인 폭행’이 서로 연결됐다. 눈치 빠른 누리꾼들이 A대 앞에서 죽을 것으로 공언했던 ‘장애인’이 실제로 이날 자살한 20대 남성이라고 여긴 것이다.자살 사건이 발생한 9일 이후, 이 글이 처음 게시된 12월 24일자 게시판에는 방문자들이 들끓었다. 누리꾼들은 댓글로 ‘A대 앞 지하철 자살사건’ 기사를 링크해 놓고 원본 글과 상황을 정리해 ‘○대 ○학과 ○○학번 ○ 양’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퍼뜨렸다. 자살 사건 이후 이 글은 조회수가 1만 건을 넘는 등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실제로 남자가 자살했다고 믿은 몇몇 누리꾼은 ‘자살한 남성의 명복을 빈다’거나 ‘○ 양을 도축하자’ 등의 험악한 댓글을 달았다. 누리꾼의 엉뚱한 오해와 보도 때문에 ○ 양은 졸지에 가련한 한 남성의 자살을 유도한 ‘살인자’가 된 셈이다. 이 사건의 당사자 ○ 양은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해당 글은 1년 전부터 나를 따라다닌 한 남성이 올렸으며 그는 죽지 않았다”며 “장애인, 폭행 등 그가 올린 글 내용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 양은 “최근 나 때문에 장애인 남성이 자살했다는 인터넷 루머가 퍼지며 학교와 전공, 성까지 노출돼 억울한 심정”이라고 울먹였다. 하지만 ○ 양과 가족은 해당 남성의 가족으로부터 앞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후 경찰에 이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이 글을 올린 남성은 문제가 커진 12일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고 죗값을 치르겠다”는 글을 새로 올렸다. ○ 양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주변 사람들의 댓글도 여기에 붙었지만 한번 시작된 루머는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학교의 한 학생은 “이 글을 작성한 남자는 9월부터 똑같은 글을 올렸다”며 “사실이 아닌 것을 너무 퍼뜨리지 말라”고 말했지만 누리꾼들은 “학교 바깥의 일이니 아직 확인할 수 없다”거나 “신상 정보를 공개해서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의 루머는 말 그대로 ‘근거 없는 이야기’여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없어졌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된 후 루머가 스스로 파괴력을 가지기 시작했다”며 “몇 년 전 떠돌던 루머도 그대로 기록돼 있어 잊을 만하면 다시 떠오르는 등 폐해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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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파일]경실련 “18대국회 방문외교 절반 외유성”

    18대 국회 들어서도 의원들의 ‘외유성 출장’ 관행이 여전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8대 국회가 시작된 2008년 6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이뤄진 42건의 국회 방문 외교를 분석한 결과 전체 방문 외교 활동 1768시간 가운데 47%인 838시간이 ‘비목적성’ 일정이었다”고 20일 밝혔다. 비목적성 일정이란 방문 목적과 관계없이 누락된 일정으로 ‘외유성 일정’일 개연성이 높다. 경실련은 전체 방문 외교 중 이 같은 비목적성 일정이 50% 이상인 경우가 17건(40.4%)에 이른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문제가 있는 방문 외교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일부 의원들이 터키와 이탈리아를 방문한 건을 지적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이 방문 보고서에 나타난 전체 일정 중 94%가 비목적성 일정이었으며 정부 인사 면담 등 방문 외교 취지의 일정은 6%에 불과했다. 또 지난해 3월 법제사법위원회 해외시찰도 8박 9일의 일정 중 이틀을 제외하면 일정 자체가 보고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실련은 “의원들의 방문 일정 중 절반 가까이가 보고서에 기록되지 않았다”며 “이 기간 방문 외교에 26억6900만 원을 사용한 만큼 예산 명세와 구체적 일정 위주의 보고서 작성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201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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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위, 北인권 관련 진정은 3건 모두 기각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취임 후 처음으로 신청한 북한 인권 관련 진정 요청이 모두 기각됐다. 인권위는 20일 국가 기관 중 처음으로 북한 정치범 수용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실제 북한 인권과 관련된 조사와 권고에는 응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지난해 8월 인권위에 냈던 ‘박왕자 씨 금강산 피격 사망사건’과 ‘국군 포로 공동조사’등 3건의 북한 관련 인권 진정 사항이 최근 모두 기각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20일 밝혔다. 최 대표 등 납북자가족모임은 지난해 8월 금강산에서 피격당한 박 씨와 개성공단에서 감금당한 유성진 씨 등에 대한 북측의 사과를 촉구하며 북한 인권 진정을 냈다. 이와 함께 남북 정부가 함께 국군 포로의 생사를 조사해 달라는 진정도 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북한을 조사해야 하는 등 법적, 현실적 한계를 고려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며 “다만 인권위가 북한 인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 표명을 해 달라는 요청은 향후 참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대표는 “북한 문제에 있어서 국민의 인권이 너무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진정을 냈다”며 “이번에 기각된 진정은 바로 다시 낼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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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위 “北정치범수용소 20만명 수감”… 실태 첫 공개

    북한 내에는 총 6곳의 정치범 수용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약 20만 명(추산)의 정치범이 고문, 강제노동, 구타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확인했다. 정부기관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실태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인권위는 북한인권정보센터에 의뢰해 정치범 수용소를 체험한 탈북자 17명과 2006년 이후 북한으로 강제송환된 탈북자 32명을 심층면접 조사한 결과를 20일 발표했다. 인권위는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인권침해의 백화점’이라고 표현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치범에 대해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위 관계자는 “국가보위부 등 상부 기관의 통제를 받기보다는 관리소장을 중심으로 한 간부들이 수용소를 운영한다”며 “수용소 간부들이 일부 수감자를 소대장, 중대장 등에 임명한 후 다른 수감자를 감시하도록 해 내부에서 고문과 구타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말했다. 면접 조사에 응한 한 탈북자는 “매일 저녁 정치범을 때리고 아우성치는 소리 때문에 귀가 아플 정도”라며 “폭행을 하다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잡혀 북한으로 넘어간 ‘강제송환자’들의 처벌 수위도 크게 강화됐다. 인권위 측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는 단순히 ‘배가 고파’ 탈북한 사례가 많았지만 2006년 이후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형기도 늘어났다”고 밝혔다. 강제송환자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의 강제노동과 구타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성 수용자에 대한 성희롱과 성폭행, 강제낙태 등도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1980년대 말 이후 폐쇄와 통합을 거쳐 6개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수용자 규모는 평남 개천(14호)과 함남 요덕(15호) 수용소의 5만 명을 비롯해 최대 20만 명에 이른다. 요덕(15호), 북창(18호) 수용소 외 다른 곳은 평생 밖으로 출감할 수 없는 종신 수용소다. 인권위는 이번 실태조사 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해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사회에 공개할 계획이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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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위 북한정치범수용소 조사 결과

    북한 내에는 총 6곳의 정치범 수용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약 20만 명(추산)의 정치범이 고문, 강제노동, 구타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의해 확인됐다. 정부기관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실태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인권위는 북한인권정보센터에 의뢰해 정치범 수용소를 체험한 탈북자 17명과 2006년 이후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탈북자 32명을 심층면접 조사한 결과를 20일 발표했다. 인권위는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인권침해의 백화점'이라고 표현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치범에 대해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위 관계자는 "국가보위부 등 상부 기관의 통제를 받기보다는 관리소장을 중심으로 한 간부들이 수용소를 운영한다"며 "수용소 간부들이 일부 수감자를 소대장, 중대장 등에 임명한 후 다른 수감자를 감시하도록 해 내부적인 고문과 구타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말했다. 면접 조사에 응한 한 탈북자는 "매일 저녁 정치범을 때리고 아우성치는 소리 때문에 귀가 아플 정도"라며 "폭행을 하다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잡혀 북한으로 넘어간 '강제송환자'들의 처벌 수위도 크게 강화됐다. 인권위 측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는 단순히 '배가 고파' 탈북한 사례가 많았지만 2006년 이후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가 늘어나며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형기도 늘어났다"고 밝혔다. 강제송환자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의 강제노동과 구타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성 수용자에 대한 성희롱과 성폭행, 강제낙태 등도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1980년대 말 이후 폐쇄와 통합을 거쳐 6개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수용자 규모는 평남 개천(14호)과 함남 요덕 수용소(15호)의 5만 명을 비롯해 최대 20만 명에 이르며 요덕(15호), 북창(18호) 수용소를 제외하면 평생 밖으로 출감할 수 없는 종신 수용소다. 인권위는 이번 실태조사 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해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사회에 공개할 계획이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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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아-차인표 신애라 부부, 아이티 돕기에 1억씩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20)가 아이티 지진피해 돕기에 동참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김 선수가 아이티 긴급구호기금 1억 원을 위원회에 전달했다고 19일 밝혔다. 김 선수는 “아이티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며 “고통받는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어린이 구호기관인 유니세프에 성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13일부터 아이티 모금을 시작해 18일 50만 달러를 아이티 현지에 송금했으며 19일 현재 3만여 명이 동참해 7억5000만 원의 기금을 모았다. 차인표-신애라 부부도 아이티 지진 참사 긴급모금에 참여해 성금 1억 원을 기부했다고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이 19일 밝혔다. 차인표-신애라 부부는 5년 전부터 아이티의 웨스터라인 테오도르 양(10)과 부모 결연을 하고 후원해 오고 있었으나 참사 이후 테오도르 양의 생사를 알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편 최경주 선수도 지난주 PGA투어 소니오픈에서 받은 상금 2600만 원을 기탁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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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상명 언론인상’ 수상자, 허건우 이종철 김남덕 씨 선정

    상명대는 2010년 ‘상명 언론인상’ 수상자로 허건우 MBC 영상미술국 부장, 이종철 한국일보 사진부 전문기자(부장), 김남덕 강원일보 사진부장 등 3명을 선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 달 3일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개최되는 ‘2010 상명 언론인의 밤’ 행사와 함께 열린다.}

    • 201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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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정부 차원 해외희생자 추모비 처음 세운다

    일제강점기 때 해외에서 희생당한 한국인을 위한 추모비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정부 차원에서 건립한다. 국무총리 직속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는 “1945년 이전에 일본군이나 일본 군속으로 끌려가 희생당한 한국인들을 위해 2월 중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 한국인 추모비를 세운다”고 18일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필리핀 마닐라와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두 곳에 2월 중 추모비 건립 공사를 끝내고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진상규명위 측은 “이 두 곳은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과 일본군이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지역”이라며 “현지에 해외 동포가 많이 살고 있어 추모비를 관리하기 좋을 것으로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위는 태평양전쟁 당시 필리핀에서 사망한 한국인이 2597명, 인도네시아에서 사망한 사람이 2280명으로 해외 사망자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민간 시민단체나 기업 등이 사할린이나 사이판 등 한국인이 다수 희생된 지역에 추모비를 세운 적은 있지만 정부 차원의 추모비 건립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태평양전쟁 당사자인 일본은 정부 차원의 전몰자 위령비 35개를 포함해 총 60여 개의 위령 시설을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곳곳에 세웠다. 이 중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이었던 미국령 괌과 사이판, 러시아 하바롭스크도 포함돼 있다. 진상규명위는 향후 이 같은 해외 한국인 희생자 추모비를 조금씩 늘려 나갈 계획이지만 재원 문제로 실제 추진은 어려운 형편이다.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외에 올해 계획한 두 곳의 추가 추모비 건립이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추모비는 현지 정부가 한국과의 우호를 위해 토지를 영구 무상으로 빌려줘 건립이 가능했다. 정부가 부담하는 추모비 건립비용은 3억2000만 원이다. 박판수 진상규명위 진상조사단장은 “그동안 해외에서 희생된 국민들을 배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에 만드는 추모비는 현지 한국대사관 및 한인회와 연계해 적극적인 시설 관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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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라도 다함께]“이주여성 ‘언어장벽’ 넘게 해 정착 도왔죠”

    “새로 한국에 온 사람들을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10년 전 제 모습 같아요. 조금만 일찍 시작했다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도 있었을 텐데….” 15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동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난 돈나벨 카시퐁 씨(39·여·사진)는 지난해 3월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서 서울과 경기 지역으로 시집온 필리핀 여성들을 위해 통번역 업무를 맡고 있다. 그가 돕는 필리핀 출신 여성은 하루에 3, 4명. 9개월 사이에 벌써 1000명이 넘는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이 그의 도움을 받았다. 카시퐁 씨 역시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 여성으로 1999년 12월 한국에 왔다. 그가 이주여성을 위한 통번역 활동에 나선 것은 힘들었던 초기 한국 생활의 기억 때문이다. “처음 1년 동안은 거의 집에만 있었어요. 한국어를 배울 곳도 없고 누가 한국 생활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죠. 혼자서 영어 TV만 보고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때라 타국 생활의 어려움을 하소연할 다른 필리핀 여성도 없었다. 혼자서 주한미군 방송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국어를 익혔다. 하지만 이젠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카시퐁 씨가 하는 일은 영역이 넓다. 관공서 서류 처리에서 병원 진료, 자녀 학습상담, 거기에다 부부싸움 중재까지 의뢰가 들어온다. 이혼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법원에 동행해 달라는 결혼 3개월 차 부부가 찾아 왔을 때 남편에게는 한국어로, 부인에게는 필리핀 말인 타갈로그어로 아침부터 하루 종일 설득해 겨우 이혼을 막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도 이젠 다문화가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필리핀 신부에게는 김치찌개 같은 한국음식을 잘 만들라고 하지만 부인이 임신해 필리핀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하면 ‘난 그런 음식 안 먹는다’며 못 먹게 하는 남자들이 있어요. 그게 다문화가정일까요?” 카시퐁 씨는 “음식 관습 등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다문화가정에 진정한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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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악 그랜드슬램’ 박영석 씨, 동국대 석좌교수 임명

    동국대는 산악인 박영석 대장(사진)을 석좌교수에 임명한다고 15일 밝혔다. 박 대장은 동국대 체육교육과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85년부터 산악인으로 활동해 왔다. 박 대장은 2005년 8000m 이상 히말라야 14좌(座)와 7대륙 최고봉, 세계 3극점을 모두 등반하는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또 2006년에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남서벽을 등반하며 ‘코리아 루트’를 개척했다. 동국대 측은 “박영석 대장의 끝없는 도전 정신이 후배들에게 모범이 돼 석좌교수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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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잊었지만… ‘조선인 징용자’ 찾아나선 日마을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 히가시카와(東川) 정(町). 한국으로 치면 군(郡) 단위에 속한다. 경기 고양시와 비슷한 247km²의 땅에 8000명이 모여 산다. 이 작은 마을은 지난해 7월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징용자 찾기에 나서는 용기를 냈다. 한국에서조차 잊혀진 ‘강제 징용자’들을 일본 지자체가 찾기 시작한 것이다.히가시카와에는 1940년대 초반 수력발전소인 에오로시(江사) 발전소와 수온 상승을 위한 유수지(遊水池) 3곳이 들어섰다. 발전소는 태평양전쟁 뒤 해체돼 다른 자리에 복원됐지만 유수지는 지금도 마을 주변의 기온을 온화하게 만들어 농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당시 이 발전소와 유수지 건설에 동원된 인력은 총 2200여 명.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이들 중 한국에서 강제로 끌려온 징용자가 18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일본 중앙정부도 아닌 작은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강제 징용자 조사에 나서기까지는 한 시민의 ‘작지만 강한’ 목소리가 큰 역할을 했다. 이 지역 변호사인 곤도 노부오(近藤伸生·54) 씨는 2008년 지역 역사를 조사하던 중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 징용자들이 지역 발전소와 유수지 건설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 곤도 씨는 “나이 든 동네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조선인 강제 징용 현황을 물었지만, 한결같이 ‘나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알 것’이라며 언급을 피했다”며 “그럴수록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곤도 씨는 곧바로 전문가 8명과 함께 ‘에오로시 발전소 및 주베쓰(忠別) 강 유수지 조선인 강제연행의 역사를 발굴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자비를 들여 지역 사료를 조사하고 작업 현장을 발굴하는가 하면,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진술 조사도 했다. 더 늦어 모든 생존자가 사라지기 전에 조사해야 한다는 다급함에 회원들은 조사를 서둘렀다. 이 모임은 지난해 3월 진상규명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경북 안동에 있던 히가시카와 징용 생존자 2명을 찾았다.“배가 고파서, 혹은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일본에 갔다는 할아버지들의 증언을 7월 마을 정청(町廳)에서 보고했. 그제야 관청도 협력하기 시작하더군요.” “1940년대 초 유수지 건설 징용자에 감사” 관청도 동참시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이 알려지면서 마쓰오카 이치로(松岡市郞) 히가시카와 정장은 “마을 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된 유수지 건설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며 지난해 7월 지역 강제 징용자 찾기에 동참했다. 석 달 뒤인 10월에는 담당 직원과 의회의원 5명이 부산과 경남 하동의 징용 생존자 4명을 만나 징용 당시의 상황을 조사했다.마쓰오카 정장은 12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역사를 정확히 기록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사명”이라며 “향후 발간되는 마을 역사 기록인 정사(町史)에 정확한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조선인 징용 사실을 반드시 조사하겠다”고 말했다.히가시카와 정의 이번 조치는 일본 관청에서 광복 65년 만에 처음으로 강제 징용 책임을 인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징용 노무자는 개별 기업의 책임으로 돌려 왔다. 김용봉 진상규명위원장은 “히가시카와처럼 일본의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의 조선인 강제동원 사례를 조사하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며 “앞으로 이와 같은 일본 지자체의 조사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히가시카와 측은 최근 조선인 강제 징용자를 위한 위령비 건립도 검토하고 있다.지역 공사에 동원된 강제 징용자의 대부분은 조선인이었지만 유수지와 발전소 터에는 중국인 징용자 위령비만 있다.곤도 씨는 2년째 징용자 조사활동을 하면서 한국어를 몰라 어려움이 많다고 판단해 지난해 11월부터 성균관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그는 “중국 정부는 중-일 국교수립 당시 일본에 강제 징용 사과 요구와 함께 위령비 건립을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의 요구는 없었다”며 “일본에 있는 조선인 위령비는 대부분 민간단체가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간접적으로 한국 정부의 무관심을 꼬집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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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사죄 그날까지 수천 번이라도 올거야”

    “내가 저놈들 사과하기 전까진 죽으면 안 돼. 그때까진 안 아프고 건강하게 살 거야.”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주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촉구를 위한 900번째 수요집회 도중 강일출 할머니(82)가 결연하게 말했다.강 할머니는 “이 집회가 900번째 열렸다고 떠들썩하지만 난 기쁠 것도 없어. 1000회, 2000회가 열리더라도 사죄하기 전까지는 수요일마다 올 거야”라고 말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경기 광주시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 주거시설인 ‘나눔의 집’ 근처에서 40분 정도 산책을 하는 강 할머니는 이날도 운동을 끝내고 동료 할머니 두 명과 함께 서울로 왔다. 한파가 몰아쳤지만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에 항의하는 수요집회에는 900회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평소 50여 명보다 많은 200여 명이 모였다. 시민단체 등에서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강일출, 박옥선(86) 길원옥(82) 이옥선 씨(82) 등 4명의 할머니를 둘러싸고 피켓 시위에 나섰다. ‘나는 일본 정부로부터 공개 사과를 원한다’고 쓰인 문구도 보였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박웅서 씨(27·대학생)는 “오늘 처음 왔는데 벌써 900회가 됐다고 들었다”며 “일본 정부의 아무런 반응 없이 이 집회가 900회까지 계속된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집회 횟수가 늘어나면서 가장 큰 걱정은 역시 ‘살아있는 역사’인 할머니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세상을 떠나고 있는 점이다. 김동희 정대협 사무국장은 “한국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234명 중 이제 88명만 살아 계신다”며 “그나마 지난해에는 돌아가신 분이 근래 들어 가장 적은 5명에 불과해 다행”이라고 말했다.요즘에는 워낙 날씨가 추워 할머니들의 집회 참석도 여의치 않다. 할머니 9명이 함께 살고 있는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동절기라 의사 소견에 따라 수요 집회 참석을 대체로 막고 있다”며 “이제는 젊은이들이 대신 집회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이날 참석한 박옥선 할머니는 작은 체구에 분홍색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할머니는 구호를 외칠 때 누구보다 높이 손을 들었고, 자원봉사자들이 “사랑해요”라고 외치자 웃으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박 할머니는 18세 때 친구가 “중국 바느질 공장에 같이 가자”고 제안해 따라갔다가 군위안부가 됐다. 광복되고 나서도 차마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2000년에야 국적을 회복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그 후로 매주 수요일마다 여기 나와. 이제 다른 건 필요 없으니 사과만 받아낼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어.” 박 할머니는 오히려 함께 집회에 나선 사람들을 걱정했다. “900회 한다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들 와서 도와주니 고맙지만 추운데 나와서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1시간 동안 계속된 집회가 끝나갈 무렵 참석자들은 ‘희망은 있다’는 노래를 불렀다. ‘밤새 헤맬지라도 숲 사이로 아침은 온다’는 가사를 부르며 할머니들은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다. 하지만 900회 수요집회가 끝날 때까지 일본대사관의 문은 이날도 끝내 열리지 않았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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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은 잊었지만… 위안부 할머니들 ‘900번째 눈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열어온 ‘수요집회’가 13일로 900회를 맞았다.이날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900회 집회에는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 할머니 4명을 비롯해 관련 시민단체 회원들과 대학생 등 200여 명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라”고 외쳤다.연단에 나선 강제동원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82)는 “여러분들이 힘을 보태줘 하루하루 살 수 있었다”며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수요집회 900회를 맞아 도쿄와 후쿠오카, 오사카, 나고야, 교토 등 일본 5개 도시에서도 연대집회가 열렸다.독일 베를린에서는 14일 연대집회가 개최된다. 정대협 측은 “국제 앰네스티를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단체들도 연대 성명에 나설 예정”이라며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올해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원년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하지만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답변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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