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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 보문사에 봉안돼 있다가 도난당해 미국에 건너갔던 불화 ‘신중도’(사진)가 3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대한불교조계종은 21일 미국 시카고대 스마트 미술관이 보유 중인 신중도를 돌려받기로 미술관 측과 합의했다고 21일 밝혔다. 신중도는 1767년 혜잠 스님이 그린 불화로, 화면 좌우에 제석천과 위태천을 크게 배치한 매우 독창적인 구성으로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신중도는 보문사 극락보전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아미타불회도, 삼장보살도와 함께 1989년 6월 5일 도난당했다. 이후 신중도를 제외한 두 점은 2014년 국내에 환수됐고, 이번에 신중도까지 보문사로 돌아오게 된 것. 이번 반환은 조계종이 도난품이라는 것을 미술관 측에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반환을 요청한 끝에 이뤄졌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앞으로 10년 후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정치만 잘하면 1등 국가가 될 텐데….”대표적인 국내 보수 개신교계 원로인 김장환 목사(90·극동방송 이사장)는 15일 서울 마포구 극동방송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녹록지 않은 외부 상황을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 머리 위에 검은 먹구름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며 “여야가 국익을 위해서라면 도울 건 도와야 하는데 극단으로만 치닫는 것 같아 큰일”이라고 말했다.김 목사는 6·25전쟁 중 미군 잔심부름을 해주는 ‘하우스 보이’로 시작해 미국 유학을 거쳐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장을 지내는 등 세계적인 목회자가 됐다. 미국 개신교계와 정계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그는 한미 관계가 껄끄러울 때마다 양국 간 물밑 채널 역할을 해 왔다. 또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부터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에게 조언과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우리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이라니요. “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를 맞아 엄청난 파도가 닥칠 거라 누구나 예상하지 않습니까. 이미 우리를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부르며 방위비 대폭 증액도 예고하고 있고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대외 여건이 정말 녹녹지 않습니다. 북한은 러시아를 위해 파병까지 했지요. 그런데 우리 내부를 보면… 정말 정치를 이렇게 해도 되나, 경제도 이 상태로 괜찮은가 하는 걱정이 많아요. 물론 교회도 많이 자성해야 하고요.”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이 만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지요. 처가(그의 아내인 트루디 여사는 미국인이다)도 그렇고, 제가 미국 쪽에 좀 인맥이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용산에서 페루와 브라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14∼21일) 이후 윤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인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해 백방으로 뛰었습니다만, 당장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비서실장 지명자(수지 와일스)에게까지는 우리 요청이 전달됐는데, 쉽지 않아요. 워낙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있으니까요.”※김 목사는 미국 내 인맥을 통해 2017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성사되는데 힘을 보탠 바 있다. 그는 1973년 방한한 세계적인 전도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통역을 맡은 뒤 두터운 친분을 쌓았는데, 그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와는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트럼프 1기 캠프의 핵심 참모였다. ―트럼프 측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굉장히 급한가 봐요. 벌써 세 번이나 회동을 요청했다고 하더군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급하기는 마찬가지고요. 트럼프 쪽에서는 만나줘야 할 사람은 워낙 많은데 한번 물꼬가 터지면 누구는 만나고 누구는 안 만나고 하기가 힘드니까 신중한 것 같습니다.” ―트럼프 2기는 어떨 것 같습니까. “내각을 전부 강성 중의 강성으로 임명하고 있어서…. 제가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것만큼 미국에도 신세를 많이 진 사람인데, 저렇게 가면 안 되지 않나 싶어요. 그래도 상원 원내대표에 완전한 ‘트럼프 충성파’는 아닌 듯한 인물(존 순)이 당선돼 다행 아닌가 싶습니다. 설사 트럼프 대통령이 원한다 해도 모든 걸 다 통과시켜 주지는 않을 사람으로 보여요. 삼권 분립이 이뤄지도록 어느 정도의 견제는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2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직접 설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안일하게 지내도 괜찮은지, 모두가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장이 됐으면 합니다. 모든 분야가 다 각성해야겠지만… 정치도 이렇게 해서는 안 돼요.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상태가 지금 이렇게 가면 안 된다, 그런 얘기를 하려고 하지요.” ―협치와 소통이 사라진 지 오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 감옥에 갔지요. 그런데 저는,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보다 그 사람들이 과연 정말 죄가 더 많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수라고 해서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면 안 되지요.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 위험한 일입니다.” ―윤 대통령과도 자주 연락하신다고요. “검찰총장을 사퇴한 뒤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찾아오고 싶다고, 한번 뵙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전에는 서로 본 적은 없어요. 그래서 ‘기자들 안 따라오면 만나겠습니다’라고 했지요. 하하하. 그때가 윤 대통령이 워낙 주목받던 때였잖아요. 혼자 오더군요. 목사가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성경 한 권 주고 로마서 12장 15, 16절을 읽어줬지요. 혹시 앞으로 정치를 하려고 생각한다면, 이 말대로만 하면 성공할 거라고 했지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그 뒤로도 종종 만나 성경 구절도 읽고, 함께 기도도 드리고 합니다.” ―외람되지만 성경 말씀을 혹 잊으신 건 아닐까요. “음… 그런 것 같아요. 얼마 전에도 용산에 갔어요. 거기서 똑같은 구절을 다시 읽어드렸지요. 처음 만났을 때 읽어 드렸던 말이 이건데 잊어버리지 말라고. 그래서 오늘 다시 한번 읽어드린다고….” ―대통령 앞에서도 쓴소리를 하시는군요.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밥이나 같이 먹으면서 기도도 좀 해주고 할 얘기가 있으면 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그래서 고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와 함께 청와대에 들어갔지요. 그때가 아들 현철 씨 문제로 정국이 요동을 칠 때였는데, 구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었어요. 점심을 먹고 여담을 하는데 조 목사가 말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본 YS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시라고 하더군요.” ―뭐라고 하셨던가요. “비유를 하나 들었는데… 중국에서 밀밭을 짓밟아 농사를 망치게 하는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황제가 범인을 잡으면 두 눈을 파내도록 했어요. 그런데 잡고 보니 범인이 황제의 아들이었던 거죠. 신하들이 어떻게 처리할 수 없어서 황제에게 데려왔더니, 황제가 고민 끝에 아들 눈 하나, 그리고 자신의 눈 하나를 파냈다고…. 그러면서 ‘지금 여론이 아드님 구속하라는 겁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분이 말에 거침이 없는 분이라….” ―YS 반응은 어땠습니까. “아, 그 소리를 들은 YS가 아무 말 없이 창밖으로 그냥 먼 산만 바라보더군요. 한참 동안 답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어색하게 청와대를 나왔는데, 나중에 안기부장이 전화해서 ‘목사님들이 성경이나 읽고, 기도나 하지 왜 그런 얘기를 하느냐’라고 해요. 그리고 얼마 후 현철 씨가 구속됐지요. YS는 참 품이 큰 인물이에요.” ―목사님은 어떤 얘기를 해주셨습니까. “조 목사가 그렇게 세게 얘기하다 보니 저는 좀 우회적으로 다윗 왕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꾀했다가 정부군의 창에 찔려 죽자, 아버지인 다윗 왕은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해 죽었더라면… 하고 상심에 빠졌지요. 하지만 다윗왕은 곧 심기일전해 나라를 잘 이끌었습니다’라고요.” ―한국 교회도 변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비대해지다 보니 베풀고 나누려는 초심을 잃은 건 아닌지…. 목사가 최고급 대형차를 타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요. 옛날에 한 독지가가 미제 캐딜락을 사준 적이 있습니다. 사준 사람 면이 있어서 한두 번 타기는 했는데, 내릴 때 부끄러워서 더는 못 타겠더군요. 그래서 해외에서 손님들 오면 모시는 의전용으로 돌렸습니다. 한국 교회가 여유가 있고 풍족해지면 그것을 더 없는 이웃, 더 작은 교회와 나누고 베푸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인터뷰 도중 전화가 왔는데, 그의 휴대전화는 폴더폰이었다. ―이제 연말인데, 올해도 참 다사다난했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 모두 자신부터 생각을 바꾸는 개혁을 했으면 합니다. 그게 덕담이라고 생각하지요. 정치인, 경제인들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리도 자기 모습을 돌아봤으면 합니다. 장애인 등 신체적으로 불편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를 더 배려하고,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고, 누가 보든 안 보든 질서를 지키는….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김장환 목사△ 1934년 경기 수원 출생△ 1958년 미국 밥 존스 신학대 졸업△ 1960년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1970년 아세아방송 설립 준비위원장△ 1975년 미국 트리니티대 명예 신학박사△ 1977년 극동방송 사장△ 1992년 아시아침례교연맹 회장△ 2000년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장△ 2024년 현재 극동방송 이사장.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 목사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이사야서 두루마리, 파피루스 52, 구텐베르크 성서….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개교 127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에 흩어진 희귀 기독교 유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독교 유물 특별전 ‘영감(Inspiration), 흔적(Traces), 숭실(Soongsil)’을 다음 달 30일까지 개최한다. 미국 비영리 기독교 문화전시재단인 인스파이어드 전시회 측과 함께한 이번 특별전은 1, 2부는 해외 희귀 기독교 유물 130여 점을, 3부는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 80여 점이 선보인다.‘대이사야서’ 두루마리와 파피루스 52는 성서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유물. 대이사야서 두루마리는 사해 사본 중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단어의 순서, 철자 등을 제외하면 현대 히브리어본과 99%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피루스 52는 신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파편으로 알려졌으며, 예수가 빌라도와 나눈 진리에 관한 대화가 기록돼 있다. 구텐베르크가 1455년 인쇄한 성경 중 일부와 헨델의 메시아 악보(1767년 초판)도 볼 수 있다. 전시된 구텐베르크 성서는 이사야서 중 한 페이지를 고품질의 면화지에 인쇄한 것인데, 상단 제목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각 문장의 첫 글자는 빨간색으로 돼 있다. 메시아 악보를 편집한 찰스 제넨스는 할렐루야 합창곡을 보고 “나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 밖에 최초의 한글 신약성서인 ‘예수셩교전서’, 숭실대 설립자인 미국 선교사 윌리엄 마틴 베어드(한국 이름 배위량)가 사용한 ‘베어드 갓’ 등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과 전파 과정이 담긴 유물이 전시된다. 관람은 매일 오전 10시∼오후 4시 반(공휴일 및 주말 개관, 화요일 휴관).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이사야서 두루마리, 파피루스 52, 구텐베르크 성서….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개교 127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에 흩어진 희귀 기독교 유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독교 유물 특별전 ‘영감(Inspiration), 흔적(Traces), 숭실(Soongsil)’을 다음 달 30일까지 개최한다. 미국 비영리 기독교 문화전시재단인 인스파이어드 전시회 측과 함께 한 이번 특별전은 1, 2부는 해외 희귀 기독교 유물 130여 점을, 3부는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 80여 점이 선보인다. ‘대이사야서’ 두루마리와 파피루스 52는 성서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유물. 대이사야서 두루마리는 사해 사본 중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단어의 순서, 철자 등을 제외하면 현대 히브리어본과 99%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피루스 52는 신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파편으로 알려졌으며, 예수가 빌라도와 나눈 진리에 관한 대화가 기록돼 있다. 구텐베르크가 1455년 인쇄한 성경 중 일부와 헨델의 메시아 악보(1767년 초판)도 볼 수 있다. 전시된 구텐베르크 성서는 이사야서 중 한 페이지를 고품질의 면화지에 인쇄한 것인데, 상단 제목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각 문장의 첫 글자는 빨간색으로 돼 있다. 메시아 악보를 편집한 찰스 제넨스는 할렐루야 합창곡을 보고 “나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밖에 최초의 한글 신약성서인 ‘예수셩교전서’, 숭실대 설립자인 미국 선교사 윌리엄 마틴 베어드(한국 이름 배위량)가 사용한 ‘베어드 갓’ 등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과 전파 과정이 담긴 유물이 전시된다. 관람은 매일 오전 10~오후 4시 반(공휴일 및 주말 개관, 화요일 휴관).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반려동물 1500만 시대. 그만큼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추모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사람도 점차 늘고 있다.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강릉 현덕사(주지 현종 스님)에서 열린 ‘동식물 천도재’에서 ‘개도 불성(佛性·중생이 본래 가진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이 있는가’란 주제로 법문을 한 원철 스님(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사진)은 “반려동물의 명복을 빌며 49재 천도재를 지내는 곳이 과거보다 확실히 더 많아진 것 같다”며 “참석자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일상에 복귀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법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덕사는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한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국내 최초로 2000년부터 매년 10월 둘째 주 토요일 ‘동식물 천도재’를 열고 있다. 현덕사처럼 정기적으로는 아니지만 반려동물을 위한 천도재를 지내는 사찰도 점차 느는 추세다. 14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만난 원철 스님은 “사람처럼 개도 불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불성이 ‘없다’라고도 하고, ‘있다’라고도 한다”고 선문답처럼 말했다. “천도재를 치르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 것을 자식을 잃은 것처럼 느껴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심하는 분도 많지요. 이런 자리에서 반려동물을 사람과 같은 존재로 동일시하면 슬픔과 아픔이 더 커지기에 동물과 사람 사이에 분별을 갖고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뜻에서 불성이 없다고 말해줍니다.” 상심에 빠져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별할 수 있게 마음 정리를 하는 게 천도재인데, 그 자리에서 마치 사람처럼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동물을 학대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며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를 소중히 다뤄 달라고 당부한다고 했다. 그는 “당나라 때 유명한 선승인 조주(趙州) 스님(778∼897)이 ‘개도 불성이 있는가’란 화두에 때론 ‘있다’, 때론 ‘없다’라고 한 건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분별심을 가지라는 뜻”이라며 “그래서 조주 스님도 개만 끼고 사는 사람에게는 불성이 ‘없다’라고, 반대 경우에는 ‘있다’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동물에게 정말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분별심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철 스님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다는 것은 너무 큰 아픔이기에 적절한 위로의 말을 해주기가 쉽지 않다”며 “단지 떠난 이도 사랑하는 사람이 계속 슬픔에 빠져 있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기에 쉽지는 않지만 가능한 한 슬픔을 최소화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얘기해주고 있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40여년간 선(禪)의 세계를 그려온 한국 선서화(禪書畫)의 대가 성각 스님 특별초대전 ‘희망을 품고 꿈을 현실로’가 부산교육청 주최로 19~12월 21일까지 부산 학생문화예술회관 갤러리 예문에서 열린다. 성각 스님은 국내에서 유일한 선서화 부문 무형문화재(부산시 무형유산 선화 제작 기능보유자). 이번 전시는 전통 회화를 깊이 이해하고, 다원성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 및 소통, 공감의 공동체 문화 조성을 위해 마련됐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따뜻한 시선을 담아 다채로운 색상으로 확장되고 있는 선화 40여 점이 선보인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개인적으로 우리 교육에서 이것만큼은 꼭 바뀌었으면 좋겠다. 시, 음악, 그림 등 예술 분야를 시험 문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문제를 내고 풀기 위해 정육점에서 고기를 해체하듯 시를 이리저리 뜯고 분석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난도질이 따로 없다. 갈가리 찢어진 소와 양의 살과 피를 다시 붙여 놓고, “전원의 아름다움을 그려보라”라고 한다면 느낌이 날까. 더 큰 문제는 시험문제가 됨으로써 ‘다양한 감상과 해석’이 아닌 교육부, 교육청이 정한 ‘정답 해석’이 강요된다는 점이다. 다양성이 생명인 예술을 10년 넘게 획일적으로 가르쳐 놓고, 창조적 인재 양성을 외치는 것은 코미디가 아닐지. 20대 신진부터 80대 원로까지 시인 30명이 각자 자신만의 해석과 감상으로 미당 서정주의 시 30편을 이야기했다. 거인의 작품에서 누구는 오래 헤어졌던 그리운 사람을, 누구는 어머니를, 또 어떤 사람은 내용보다 제목을 더 아끼고 좋아한다고 솔직히 말한다. 황야를 헤매던 봉두난발의 ‘리어왕’이 연상된다는 사람도 있고, 가수 송창식의 ‘푸르른 날’을 말하는 이도 있다. 단지 어떤 시인들이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미당의 시를 말하고 있을 뿐인데, 왠지 답답한 속에 활명수를 마신 듯한 느낌이다. ‘학교에서 배웠던 대로 느끼고 감상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해서….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서정주 ‘푸르른 날’ 중) 한 시인은 “이 작품이 왜 절창인지 한마디 해야겠다”라며 “우리가 모두 ‘푸르른 날’ 느끼는 감정과 욕망을, 그리움의 밀도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이라고 그 이상 더 잘 쓸 수 없게 노래해서 사람을 까무러치게 한다”라고 말한다. 시인의 해석과 ‘나는 그런 날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상상해 보며 읽으면 미당의 시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스님만 의지해서는 불교에 미래가 없어요. 그 스님이 세상을 떠나면 의지처가 사라지기 때문이지요.”12일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만난 이중표 전남대 명예교수(71·철학)는 16년이나 걸려 최초의 한글 불경인 ‘불경(佛經·SUTTA·사진)’을 출간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불경’은 수많은 불교 경전 중 붓다가 직접 설법한 가르침이 담긴 ‘니까야’와 ‘아함경’을 한글로 편역한 것. 그는 “대부분 종교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경전을 갖고 있는데, 불교는 불경 없이 불상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금강경, 화엄경 등 많은 경전이 있는데 ‘불경이 없다’라고 한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붓다의 말씀 또는 가르침을 적은 경장(經藏), 계율을 담은 율장(律藏), 붓다의 제자들이 경장과 율장에 대해 논한 논장(論藏)을 삼장(三藏)이라 말하지요. 붓다 열반 후 논장을 체계화, 이론화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논서들이 많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불교의 참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대승불교 운동이 생겨나지요. 그로 인해 수많은 해석과 설명, 주석이 담긴 책이 또 나왔는데, 금강경 등 우리가 이름을 아는 경전이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그 모든 것을 모두 모은 것이 팔만대장경이라고요. “앞서 말한 그 모든 것, 심지어 중국에서 만들어진 관련 문헌까지 집대성한 게 바로 팔만대장경이지요. 그러다 보니 서로 중복된 것이 너무 많고, 같은 내용을 다르게 해석한 것도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평생을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입니다. 그걸 사람들, 특히 일반 신자들이 읽는 경전으로 삼을 수는 없지요.” ―많은 경전 중에 ‘니까야’와 ‘아함경’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붓다는 제자들에게 항상 ‘가르침(法)을 등불과 귀의처로 삼을 뿐,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붓다 사후 그의 가르침은 제자들에 의해 구전되다가 후세에 기록됐지요. 그런데 불교 교단이 분열하면서 남방에서 팔리어로 기록된 것은 니까야, 북부에서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것이 한자로 번역돼 남겨진 것을 아함경이라고 불렀습니다. 문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 내용은 거의 같지요. 붓다 열반 이후 만들어진 대승 경전은 붓다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아니기에 모두에게 공통의 불경이 되기는 어렵다고 봤지요.” ―한국불교는 선종 영향으로 깨달음을 강조하는 면이 더 많은데요. “한국불교가 당나라 때 선승인 육조 혜능의 법을 잇다 보니 깨달음의 신비적인 모습만 너무 주목받은 면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경전 공부는 선을 하기 위한 일종의 전 단계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요. 더욱이 우리 불교가 대승불교라 아함경은 소승불교라고 공부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요. 저는 공부 없이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요. 육조 혜능도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한 분인데 그런 부분은 잘 언급되지 않는 게 안타깝지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한자 경전을 읊는다고 무슨 수행이 되겠습니까.” ―올 1월 다시 출가했습니다. “19세 때 출가했는데, 불교를 학문적으로 더 공부하고 싶어서 20대 후반에 환속했지요. 절에 있으면 공부만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이번에 책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이 ‘불경’을 활용한 법회를 열고, 신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여러 일을 할 계획인데, 승려로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해 다시 출가하고 ‘중각’이란 법명을 받았습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거죠. 하하하.”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스님만 의지해서는 불교에 미래가 없어요. 그 스님이 세상을 떠나면 의지처가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12일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만난 이중표 전남대 명예교수(71·철학)는 16년이나 걸려 최초의 한글 불경인 ‘불경(佛經·SUTTA)’을 출간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불경’은 수많은 불교 경전 중 붓다가 직접 설법한 가르침이 담긴 ‘니까야’와 ‘아함경’을 한글로 편역한 것. 그는 “대부분 종교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경전을 갖고 있는데, 불교는 불경 없이 불상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금강경, 화엄경 등 많은 경전이 있는데 ‘불경이 없다’라고 한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붓다의 말씀 또는 가르침을 적은 경장(經藏), 계율을 담은 율장(律藏), 붓다의 제자들이 경장과 율장에 대해 논한 논장(論藏)을 삼장(三藏)이라 말하지요. 붓다 열반 후 논장을 체계화, 이론화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논서들이 많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불교의 참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대승불교 운동이 생겨나지요. 그로 인해 수많은 해석과 설명, 주석이 담긴 책이 또 나왔는데, 금강경 등 우리가 이름을 아는 경전이 그렇게 생겨났습니다.”―그 모든 것을 모두 모은 것이 팔만대장경이라고요.“앞서 말한 그 모든 것, 심지어 중국에서 만들어진 관련 문헌까지 집대성한 게 바로 팔만대장경이지요. 그러다 보니 서로 중복된 것이 너무 많고, 같은 내용을 다르게 해석한 것도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평생을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입니다. 그걸 사람들, 특히 일반 신자들이 읽는 경전으로 삼을 수는 없지요.”―많은 경전 중에 ‘니까야’와 ‘아함경’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붓다는 제자들에게 항상 ‘가르침(法)을 등불과 귀의처로 삼을 뿐,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붓다 사후 그의 가르침은 제자들에 의해 구전되다가 후세에 기록됐지요. 그런데 불교 교단이 분열하면서 남방에서 팔리어로 기록된 것은 니까야, 북부에서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것이 한자로 번역돼 남겨진 것을 아함경이라고 불렀습니다. 문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 내용은 거의 같지요. 붓다 열반 이후 만들어진 대승 경전은 붓다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아니기에 모두에게 공통의 불경이 되기는 어렵다고 봤지요.”―한국불교는 선종 영향으로 깨달음을 강조하는 면이 더 많은데요.“한국불교가 당나라 때 선승인 육조 혜능의 법을 잇다 보니 깨달음의 신비적인 모습만 너무 주목받은 면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경전 공부는 선을 하기 위한 일종의 전 단계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요. 더욱이 우리 불교가 대승불교라 아함경은 소승불교라고 공부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요. 저는 공부 없이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요. 육조 혜능도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한 분인데 그런 부분은 잘 언급되지 않는 게 안타깝지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한자 경전을 읊는다고 무슨 수행이 되겠습니까.”―올 1월 다시 출가했습니다.“19살 때 출가했는데, 불교를 학문적으로 더 공부하고 싶어서 20대 후반에 환속했지요. 절에 있으면 공부만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이번에 책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이 ‘불경’을 활용한 법회를 열고, 신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여러 일을 할 계획인데, 승려로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해 다시 출가하고 ‘중각’이란 법명을 받았습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거죠. 하하하.”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법보종찰 해인사(주지 혜일 스님)가 150여 년 만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팔만대장경)’의 직접 인경(印經)에 나섰다. 인경은 인쇄경(印刷經)의 준말로 경판에 먹을 입혀 한지에 인쇄하는 전통 기술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연구원(연구원장 경암 스님)에 따르면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년) 간행된 이후 여러 차례 인경돼 전국 사찰 등에 봉안됐다. 하지만 많은 인경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1383년 본’(고려 우왕 9년 인경·일본 교토 오타니대 소장) ‘1458년 본’(조선 세조) ‘1865년 본’(해인사 인경) ‘1899년 본’ ‘1915년 본’ ‘1968년 본’ 등 6종만 남아있다. 이 중 국가나 왕실의 후원 없이 해인사가 직접 인경한 것은 159년 전인 고종 2년 해명장웅 스님 주도로 간행한 ‘1865년 본’뿐이다. 그나마 6종 모두 일부 경전이 없거나, 경전 중 권 또는 장이 없는 등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는 상태다. 인경이 중요한 것은 경판 상태를 확인하는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 하지만 팔만대장경 인경은 비용과 인력, 기술 등에서 막대한 공력이 필요한 대불사다. 연구원은 “팔만대장경 인경은 현대의 일반 종이가 아닌 특수제작한 한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지 값만 20억 원이 넘게 드는 대불사”라며 “이 때문에 고려, 조선 시대에 인경을 해도 대량으로 만들기 힘들었고, 왕실이 후원한 ‘세조 본’도 50질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인경에 필요한 인쇄술을 가르치고 마렵(馬鬣) 등 인경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마렵은 조선 시대 사용한 말갈기로 만든 인쇄용 솔로, 먹을 바른 경판에 종이를 올려놓고 먹이 묻어나도록 문지르는 도구다. 연구원은 “경판 인경 작업은 대부분 스님들이 맡았는데, 현대에 들어 새로운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전통 방식의 인경 기술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며 “150여 년 만의 해인사 직접 인경을 위해 사찰 내에 인경 학교를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 조성과 인경은 역사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뤄져 왔다”며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 지금 팔만대장경 인경을 통해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기원할 것”이라고 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법보종찰 해인사(주지 혜일 스님)가 150여 년 만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팔만대장경)’의 직접 인경(印經)에 나섰다. 인경은 인쇄경(印刷經)의 준말로 경판에 먹을 입혀 한지에 인쇄하는 전통 기술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연구원(연구원장 경암 스님)에 따르면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 간행된 이후 여러 차례 인경돼 전국 사찰 등에 봉안됐다. 하지만 많은 인경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1383년 본(고려 우왕 9년 인경·일본 교토 오타니대 소장)’ ‘1458년 본(조선 세조)’ ‘1865년 본(해인사 인경)’ ‘1899년 본’ ‘1915년 본’ ‘1968년 본’ 등 6종만 남아있다. 이 중 국가나 왕실의 후원 없이 해인사가 직접 인경한 것은 159년 전인 고종 2년 해명장웅 스님 주도로 간행한 ‘1865년 본’뿐이다. 그나마 6종 모두 일부 경전이 없거나, 경전 중 권 또는 장이 없는 등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없는 상태다. 인경이 중요한 것은 경판 상태를 확인하는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 하지만 팔만대장경 인경은 비용과 인력, 기술 등에서 막대한 공력이 필요한 대불사다. 연구원은 “팔만대장경 인경은 현대의 일반 종이가 아닌 특수제작한 한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지 값만 20억여 원이 넘게 드는 대불사”라며 “이 때문에 고려, 조선 시대에 인경을 해도 대량으로 만들기 힘들었고, 왕실이 후원한‘세조 본’도 50질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인경에 필요한 인쇄술을 가르치고 마렵(馬鬣) 등 인경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마렵은 조선 시대 사용한 말갈기로 만든 인쇄용 솔로, 먹을 바른 경판에 종이를 올려놓고 먹이 묻어나도록 문지르는 도구다. 연구원은 “경판 인경 작업은 대부분 스님들이 맡았는데, 현대에 들어 새로운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전통 방식의 인경 기술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며 “150여 년 만의 해인사 직접 인경을 위해 사찰 내에 인경 학교를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 조성과 인경은 역사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뤄져 왔다”며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 지금 팔만대장경 인경을 통해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기원할 것”이라고 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어찌 ‘때로는’일 뿐일까. 내가 잘났건 못났건, 성격이 좋든 나쁘든, 돈을 잘 벌든 못 벌든 아무런 상관없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를 보면 말이다. 일도 잘 안 풀리고, 사람에게 상처받아 한없이 우울할 때 반려동물을 껴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은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어느 틈엔가 ‘애완동물’이란 말 대신 ‘반려동물’이 완전히 자리 잡은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지금처럼 반려동물 1500만 시대는 아니지만 수백 년 전 조상들도 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국문학 교수인 저자가 옛 선인들의 저작을 통해 옛사람들의 개에 관한 생각을 들여다봤다. 개의 품성을 빗대 인간을 꾸짖은 대목이 많지만, 오늘날 우리가 반려동물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도 상당수. 저자는 반려동물이란 개념이 아직 없었고, 또 글을 남길 수 있는 지식층이 소수였음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개를 단순한 동물로 치부하지 않고 정과 사랑을 공유하는 대상으로 여겼을 거라고 말한다. ‘경성 진고개 불복장리에 눈먼 아이가 있었는데, 부모가 모두 역병에 걸려 죽고 아이만 흰 개 한 마리와 같이 살았다. 아이가 개 꼬리를 잡고 길에 나가면 사람들이 밥을 주었는데 개는 먼저 혀를 대지 않았다. 아이가 목마르다고 하면 개가 인도하여 우물에 가서 물을 마시게 하고 다시 인도하여 돌아왔다.’(5장 ‘눈먼 아이의 반려견’ 중) 고려사에 소개된 작자 미상의 글에 나오는 이 개는 마치 지금의 장애인 안내견을 연상시킨다. 저자는 자신은 개를 좋아하지 않지만, 사람보다 나은 개를 위해 한 권의 책은 남길 필요는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개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사람답지 못한 처신이 없는지 돌아보길 권한다. 그 옛날 선조들이 글을 남긴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개를 대했을까’ 하는 호기심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갈등 조정자가 돼야 할 교회가 오히려 조장자, 유발자가 되면 되겠습니까.” 5일 경기 고양 드림하우스에서 만난 ‘나부터 캠페인’ 대표 류영모 목사(전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한소망교회 담임목사)는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나부터’ 국민 운동을 시작한 이유를 묻자 먼저 이 말부터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이념, 지역, 사회, 세대, 성별 등으로 갈려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나부터 캠페인’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2017년 한국 교회의 캠페인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초기 준비 부족과 코로나19 등으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다가 올해 류 목사가 대표로 취임하면서 두 차례의 세미나를 열며 새출발을 시작했다. 류 목사는 “남에게만 자성을 요구한다면 그건 ‘너부터 캠페인’”이라며 “국민 운동을 제안한 교계가 먼저 자성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했다. 캠페인에는 이영훈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대표총회장, 손달익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전 총회장, 고명진 기독교한국침례회 전 총회장, 이철 기독교대한감리회 전 감독회장, 배광식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전 총회장 등 대표적인 교계 지도자들과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류 목사는 “한국 교회가 으리으리한 교회와 수십, 수백만 신도를 추구하는 과거 성장 패러다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종교 시대에 신규 유입은 물론이고,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신자’(‘안나가’ 신자란 뜻의 조어)가 급증하는데도 현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성장 패러다임의 문제 중 하나는 이것이 세 과시로 이어져 또 하나의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 “주장을 대규모 집회란 세 과시로 표현하면 또 다른 갈등만 낳는다고 봐요. 집회 참석자들이 반대편을 마귀로 몰면 반대편도 마찬가지겠지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갈라치기의 장이 되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교회가 이해관계 때문에 정치와 공생하고, 교단은 지역 정치 성향에 편승하며, 교회 세습 등으로 오히려 사회에서 손가락질받는 현실도 안타까워했다. 류 목사는 “현실적인 문제, 또는 자신들의 성향 때문에 교회가 정권과 결탁하는 것은 타락”이라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비판할 때 비판하지 못하면 죽은 교회가 된다”고 말했다. 12월 은퇴를 앞둔 그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목사인 사위에게 물려주지 않고 위원회를 구성해 20여 명의 후보를 추린 뒤 논의와 투표를 거쳐 지난해 3월 일찌감치 후임을 정했다. 류 목사는 “우리 사회에는 교회라면 일반 기업과는 좀 달라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고, 저는 교회가 설립자의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캠페인의 취지는 좋지만, 실제로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과거 ‘내 탓이오’ 운동처럼 반짝하고 마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교회가 무슨 능력이 있어 그 많은 사회적 갈등을 다 치료하고 감당하겠습니까. 하지만 교회와 목사는 소리칠 힘은 있지요. 사회가 위기에 빠졌을 때 책임 있는 집단이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조장하면 메시지를 분명히 내야 합니다. 그 소리에 힘이 실리려면 우리 목자들부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만나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야 하겠지요. 그렇게 노력하면 반드시 되지 않겠습니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갈등 조정자가 돼야 할 교회가 오히려 조장자, 유발자가 되면 되겠습니까.” 5일 경기 고양 드림하우스에서 만난 ‘나부터 캠페인’ 대표 류영모 목사(전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한소망교회 담임목사)는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나부터’ 국민 운동을 시작한 이유를 묻자 먼저 이 말부터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이념, 지역, 사회, 세대, 성별 등으로 갈려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나부터 캠페인’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2017년 한국 교회의 캠페인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초기 준비 부족과 코로나19 등으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다가 올해 류 목사가 대표로 취임하면서 두 차례의 세미나를 열며 새출발을 시작했다. 류 목사는 “남에게만 자성을 요구한다면 그건 ‘너부터 캠페인’”이라며 “국민 운동을 제안한 교계가 먼저 자성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라고 했다. 캠페인에는 이영훈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대표총회장, 손달익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전 총회장, 고명진 기독교한국침례회 전 총회장, 이철 기독교대한감리회 전 감독회장, 배광식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전 총회장 등 대표적인 교계 지도자들과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류 목사는 “한국 교회가 으리으리한 교회와 수십, 수백만 신도를 추구하는 과거 성장 패러다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탈종교 시대에 신규 유입은 물론이고,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신자(안나가 신자란 뜻의 조어)’가 급증하는데도 현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성장 패러다임의 문제 중 하나는 이것이 세 과시로 이어져 또 하나의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 “주장을 대규모 집회란 세 과시로 표현하면 또 다른 갈등만 낳는다고 봐요. 집회 참석자들이 반대편을 마귀로 몰면 반대편도 마찬가지겠지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갈라치기의 장이 되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교회가 이해관계 때문에 정치와 공생하고, 교단은 지역 정치 성향에 편승하며, 교회 세습 등으로 오히려 사회에서 손가락질받는 현실도 안타까워했다. 류 목사는 “현실적인, 또는 자신들의 성향 때문에 교회가 정권과 결탁하는 것은 타락”이라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비판할 때 비판하지 못하면 죽은 교회가 된다”라고 말했다. 12월 은퇴를 앞둔 그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목사인 사위에게 물려주지 않고 위원회를 구성해 20여 명의 후보를 추린 뒤 논의와 투표를 거쳐 지난해 3월 일찌감치 후임을 정했다. 류 목사는 “우리 사회에는 교회라면 일반 기업과는 좀 달라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고, 저는 교회가 설립자의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캠페인의 취지는 좋지만, 실제로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과거 ‘내 탓이요’ 운동처럼 반짝하고 마는 것 아니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교회가 무슨 능력이 있어 그 많은 사회적 갈등을 다 치료하고 감당하겠습니까. 하지만 교회와 목사는 소리칠 힘은 있지요. 사회가 위기에 빠졌을 때 책임 있는 집단이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조장하면 메시지를 분명히 내야 합니다. 그 소리에 힘이 실리려면 우리 목자들부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만나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야 하겠지요. 그렇게 노력하면 반드시 되지 않겠습니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증조할아버지 아펜젤러 선교사(1858∼1902)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굉장히 유머러스한 분이었던 것 같아요. 올 7월에 와이오밍주에 있는 사촌 집에서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증조할아버지의 편지와 글이 많이 발견됐는데, 한국 기독교와 근대사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내년은 1885년 4월 아펜젤러 선교사(미국 북감리회)와 언더우드 선교사(1859∼1916·미국 북장로회)가 국내(인천항)에 처음 발을 디딘 지 꼭 140주년 되는 해. 이를 기념해 한국교회미래재단(이사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은 지난달 27일∼이달 2일 미 동부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등에 있는 아펜젤러, 언더우드, 알렌(Allen·1858∼1932), 마펫(Moffett·1864∼1939), 전킨(Junkin·1865∼1908) 등 한국에 기독교를 알리고 개척한 선교사들의 고향과 학교, 생가 및 자료가 보관 중인 선교유적지 탐방에 나섰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미 뉴저지주 매디슨에 있는 ‘드루 신학교’에서 만난 실라 플랫(76) 여사는 기자단에게 아펜젤러의 미공개 자료들이 최근 발견된 사실을 알리며 “나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아펜젤러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펜젤러 선교사 장남(헨리 도지 아펜젤러)의 막내딸이 플랫 여사의 어머니. 아펜젤러 선교사는 드루 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조선 선교를 결심했다. 드루 신학교 연합감리회 역사 고문서실은 아펜젤러 선교사가 보낸 보고서와 편지, 자료 등을 포함해 감리교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서 보낸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보관·연구 중이다.교정을 온통 뒤덮은 노란 단풍이 인상적인 뉴저지주 ‘뉴브런즈윅 신학교’는 뉴욕대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던 언더우드가 1881년 이곳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선교사의 꿈을 키운 곳. 매크리어리 총장은 “학생들이 ‘우리 학교 출신 선교사는 언더우드밖에 없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며 “훌륭한 선교사가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조선에서 그가 보인 역할과 모습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도서관에는 그의 흉상과 함께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언더우드 컬렉션’이 있다. 학교가 배출한 수많은 선교사 중 개인 컬렉션 홀은 언더우드가 유일하다고 한다. 언더우드의 묘지는 28일 방문한 뉴저지주 노스버겐 ‘그로브 개혁교회’에 있었지만, 그의 유지에 따라 묘비만 남기고 유해는 1999년 서울 양화진으로 이장했다.“와, 끝이 보이지 않는데?” 지난달 30일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교역사협회(PHS)’ 지하 자료보관소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방문자들을 압도시켰다. 빼곡히 늘어선 양측 서가 사이로 난 좁은 복도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 이곳은 1852년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단 기록보관소로 전 세계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이 보내온 편지, 보고서, 사진 등 각종 자료를 담은 함만 3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교과서나 인터넷에서 ‘선교사들의 눈으로 본 조선’ 등의 제목으로 보았던 사진 상당수의 출처가 바로 이곳이다. 자료가 너무 방대해 아직도 연구·조사하지 못한 게 더 많다고 한다. 소강석 한국교회미래재단 이사장은 “주요한 몇몇 분의 활동과 업적은 잘 알려졌지만, 다른 많은 선교사와 가족들의 활동은 조사·연구가 아직 부족한 상태”라며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의 근대화와 독립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만큼 이들의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뉴저지·펜실베이니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증조할아버지 아펜젤러(1858~1902) 선교사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굉장히 유머러스한 분이었던 것 같아요. 올 7월에 와이오밍주에 있는 사촌 집에서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증조할아버지의 편지와 글이 많이 발견됐는데, 한국 기독교와 근대사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은 1885년 4월 아펜젤러 선교사(미국 북감리회)와 언더우드 선교사(미국 북장로회)가 국내(인천항)에 처음 발을 디딘 지 꼭 140주년 되는 해. 이를 기념해 한국교회미래재단(이사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은 지난달 27일~2일 미 동부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등에 있는 아펜젤러, 언더우드(1859~1916), 알렌(Allen·1858~1932), 마펫(Moffett·1864~1939), 전킨(Junkin·1865~1908) 등 한국에 기독교를 알리고 개척한 선교사들의 고향과 학교, 생가 및 자료가 보관 중인 선교유적지 탐방에 나섰다.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미 뉴저지주 메디슨에 있는 ‘드류 신학교’(Drew Theological School)에서 만난 쉴라 플랫(Sheila Platt·76) 여사는 기자단에게 아펜젤러의 미공개 자료들이 최근 발견된 사실을 알리며 “나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아펜젤러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펜젤러 선교사 장남(헨리 도지 아펜젤러)의 막내딸이 플랫 여사의 어머니. 아펜젤러 선교사는 드류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조선 선교를 결심했다. 드류신학교 연합감리회 역사 고문서실에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보낸 보고서와 편지, 자료 등을 포함해 감리교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서 보낸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보관·연구 중이다. 교정을 온통 뒤덮은 노란 단풍이 인상적인 뉴저지주 ‘뉴브런즈윅 신학교(New Brunswick Theological Seminary)’는 뉴욕대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던 언더우드가 1881년 이곳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선교사의 꿈을 키운 곳. 맥크리어리(McCreary) 총장은 “학생들이 ‘우리 학교 출신 선교사는 언더우드밖에 없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라며 “훌륭한 선교사가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조선에서 그가 보인 역할과 모습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도서관에는 그의 흉상과 함께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언더우드 컬렉션’이 있다. 학교가 배출한 수많은 선교사 중 개인 컬렉션 홀은 언더우드가 유일하다고 한다. 언더우드의 묘지는 28일 방문한 뉴저지주 노스버겐 ‘그로브 개혁교회’에 있었지만, 그의 유지에 따라 묘비만 남기고 유해는 1999년 서울 양화진으로 이장했다. “와, 끝이 보이지 않는데?” 30일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교역사협회(PHS)’ 지하 자료보관소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방문자들을 압도시켰다. 빼곡히 늘어선 양측 서가 사이로 난 좁은 복도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 이곳은 1852년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단 기록보관소로 전 세계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이 보내온 편지, 보고서, 사진 등 각종 자료를 담은 함만 3만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교과서나 인터넷에서 ‘선교사들의 눈으로 본 조선’ 등의 제목으로 보았던 사진 상당수의 출처가 바로 이곳이다. 자료가 너무 방대해 아직도 연구·조사하지 못 한 게 더 많다고 한다.소강석 한국교회미래재단 이사장은 “주요한 몇몇 분의 활동과 업적은 잘 알려졌지만, 다른 많은 선교사와 가족들의 활동은 조사·연구가 아직 부족한 상태”라며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의 근대화와 독립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만큼 이들의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라고 말했다.뉴저지·펜실베니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기자님이 보육원에서만 살다가 열여덟 살에 사회에 나왔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요?” 21일 서울 광진구 화평교회에서 만난 유제중 목사(46·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사진)는 10년이 넘게 ‘자립 준비 청년’들을 돕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반문했다. 자립 준비 청년은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 청소년 쉼터 등에 있다가 보호가 종료되는 18세에 사회로 나오는 청소년들. 그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약간의 자립 지원금과 생활비, 숙소 등의 지원을 받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들이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가족 같은 공동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부목사로 10여 년간 사역하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사임한 뒤 2019년 화평교회를 개척했다. 유 목사는 “어릴 적부터 보육시설에 살았다고 하면 자립심, 독립심, 자기 의지 등이 강할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반 가정에서는 아이가 늦잠을 자거나 학교에 가기 싫어 투정을 부리면 부모가 달래고 야단도 쳐서 억지로라도 보내니까 ‘힘들어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의식이 형성되지만 보육시설에서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 10년 넘게 하기 싫고 힘든 것은 아예 시도하지 않거나 중도에 그만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시간을 살다 보니 의지를 갖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유 목사는 “그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가도 중간에 그만두거나 취업을 해도 한 달도 안 돼 나오기도 한다”며 “회사 면접에 보내기 위해 전날 함께 잔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워낙 오랜 세월을 의지력이 약하게 살다 보니 면접 날 아침에 ‘가기 싫어’란 생각이 들면 안 가는 거죠. ‘내가 되겠어?’란 생각도 있고요. 몇 번을 그러기에 아예 전날 함께 자고 아침에 깨워서 보냈어요. 그 친구는 다행히 자립에 성공했는데, 한번 성취감을 느껴보더니 지금은 다른 자립 준비 청년들을 돕는 게 꿈이 됐습니다.” 유 목사는 광진구 화평교회(반석 성전)를 포함해 서울, 경기 등에 12곳의 교회를 개척했고 2곳을 더 준비 중이다. 신자는 교회마다 40∼50명인데, 이 중 자립 준비 청년은 7∼10명 정도씩이라고 한다. 그는 “자립 준비 청년들뿐만 아니라 노숙자 등 소외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는 가족 같은 공동체”라며 “신자가 더 많으면 도움이 되는 면도 있겠지만 가족처럼 지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작은 교회를 늘리는 방향으로 사역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목사는 성인이 됐는데도 자립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의지 부족 탓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20kg 역기를 들라고 하면 주저앉겠지요. 일반 가정에서는 부모와 형제가 함께 들어주고 격려하며 드는 힘을 키워 가지만 이 아이들은 그런 기회가 거의 없어요. 주저앉은 기억만 갖고 사회에 나온 아이들에게 ‘성인이 왜 그렇게 의지력이 없냐’고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유 목사는 “홀로서기가 쉽지 않다 보니 이들 중에는 고시원 등에서 은둔하거나 나쁜 길로 빠지는 청년들이 많다”며 “물질적 지원 외에도 자립하면서 부닥치는 삶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회적 프로그램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기자님이 보육원에서만 살다가 18살에 사회에 나왔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요?” 21일 서울 광진구 화평교회에서 만난 유제중 목사(46·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는 10여 년이 넘게 ‘자립 준비 청년’들을 돕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반문했다. 자립 준비 청년은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 청소년 쉼터 등에 있다가 보호가 종료되는 18세에 사회로 나오는 청소년들. 그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약간의 자립 지원금과 생활비, 숙소 등의 지원을 받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들이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가족 같은 공동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부목사로 10여 년간 사역하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사임한 뒤 2019년 화평교회를 개척했다. 유 목사는 “어릴 적부터 보육시설에 살았다고 하면 자립심, 독립심, 자기 의지 등이 강할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반 가정에서는 아이가 늦잠을 자거나 학교에 가기 싫어 투정을 부리면 부모가 달래고 야단도 쳐서 억지로라도 보내면서 ‘힘들어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의식이 형성되지만 보육시설에서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 10여 년 넘게 하기 싫고 힘든 것은 아예 시도하지 않거나 중도에 그만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시간을 살다 보니 의지를 갖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유 목사는 “그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가도 중간에 그만두거나 취업을 해도 한 달도 안 돼 나오기도 한다”며 “회사 면접에 보내기 위해 전날 함께 잔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워낙 오랜 세월을 의지력이 약하게 살다 보니 면접 날 아침에 ‘가기 싫어’란 생각이 들면 안 가는 거죠. ‘내가 되겠어’란 생각도 있고요. 몇 번을 그러기에 아예 전날 함께 자고 아침에 깨워서 보냈어요. 그 친구는 다행히 자립에 성공했는데, 한 번 성취감을 느껴보더니 지금은 다른 자립 준비 청년들을 돕는 게 꿈이 됐습니다.” 유 목사는 광진구 화평교회(반석 성전)를 포함해 서울, 경기 등에 12곳의 교회를 개척했고 2곳을 더 준비 중이다. 신자는 교회마다 약 40~50여 명인데, 이 중 자립 준비 청년은 7~10명 정도씩이라고 한다. 그는 “자립 준비 청년들뿐만 아니라 노숙자 등 소외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는 가족 같은 공동체”라며 “신자가 더 많으면 도움이 되는 면도 있겠지만 가족처럼 지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작은 교회를 늘리는 방향으로 사역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목사는 성인이 됐음에도 자립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의지 부족 탓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20kg 역기를 들라고 하면 주저앉겠지요. 일반 가정에서는 부모와 형제가 함께 들어주고 격려하며 드는 힘을 키워 가지만 이 아이들은 그런 기회가 거의 없어요. 주저앉은 기억만 갖고 사회에 나온 아이들에게 ‘성인이 왜 그렇게 의지력이 없냐’고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유 목사는 “홀로서기가 쉽지 않다 보니 이들 중에는 고시원 등에서 은둔하거나 나쁜 길로 빠지는 청년들이 많다”며 “물질적 지원 외에도 자립하면서 부닥치는 삶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회적 프로그램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금은 사라진 학교 풍경이 됐지만 1970, 80년대 초중고교생들에게 채변봉투는 참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직접 자신의 변을 채취하는 것도 낯선 경험인 데다 등교 시간은 다가오는데 ‘신호’가 없으면 더욱 초조해지기 마련. 더 난처한 것은 며칠 뒤다. 선생님이 몇몇 아이를 직접 호명해 약을 나눠준 것. 따로 몰래 줘도 됐을 텐데 당시 선생님들은 왜 그러셨을까. 여하튼 기생충 하면 안 좋은 기억부터 떠오르는 것은 이런 유년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이런 관점을 조금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해만 끼치는 존재’라는 우리의 인식과 달리 생물학 교수이자 기생충학자인 저자들은 기생충이 숙주에게 심각한 피해를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죽기 때문에 기생충과 숙주는 운명공동체이고, 오히려 환경 변화로 혼란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 숙주가 적응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기생충은 숙주의 면역계를 자극해 낯선 미생물을 물리치거나, 숙주가 먹은 낯선 먹이가 에너지로 전환되도록 돕는 등 숙주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자들은 오늘날의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로 연구는 물론이고 식별도 되지 않는 수많은 기생충 종이 멸종되고 있는데, 이는 제목과 내용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책이 가득한 도서관에 불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기생충은 사실상 지구를 지배하는 생물인데 아쉽게도 그들의 다양성과 진화, 생태 등에 대해서는 연구된 것이 적기 때문. 인간 등 숙주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기생충에 관한 연구는 곧 지구상의 모든 자연 생태계에서 생물군집이 더불어 사는 방법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가혹한 환경 변화에 우리가 적응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준다고 말한다. 원제 Parasites: The Inside Stroy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수행 자체가 일이자 놀이인 성파의 선예에는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고정된 실체나 형상이 없습니다. 물성(物性·물질이 가진 성질) 그 자체가 원하는 대로 붓이 갈 뿐이죠. 급기야 성파 자신마저도 없는 대자유의 물(物)의 유희만 남습니다.”(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전 예술의전당 수석 큐레이터)내달 17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사진)의 ‘성파 선예(禪藝) 특별전―COSMOS’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그의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국제 학술대회가 1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성파 대종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정신적 지도자. 또 예술가로서 불교미술과 서예, 한국화, 도자, 염색,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화업을 펼쳐온 불교예술의 대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태초(太初), 유동(流動), 꿈(夢), 조물(造物), 궤적(軌跡), 물속의 달 등 6개 부문으로 구성된 이번 특별전은 그가 1980년대 선보였던 금니사경과 최신 작품은 물론이고 옻칠 회화와 설치 작품을 중심으로 평생의 화업을 총망라한 120여 점이 전시됐다. 기조 발제를 한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지금까지 옻은 공예의 도구이자 재료였지만, 성파는 옻이라는 물질을 객체가 아닌 주체와 목적으로, 동시에 옻의 물성을 자신의 본성과 일체화시키면서 예술로 도약시켜 내고 있다”며 “이 때문에 성파의 예술에서 ‘옻’이라는 물성의 통찰을 빼놓고는 그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고 말했다. 버지니아 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카운티 미술관 큐레이터는 “옻칠을 겹겹이 하면 쉽게 구조적인 형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성파 스님의 옻칠 회화는 일종의 ‘회화 위의 회화’”라며 “성파 스님은 옻칠을 통해 불교적 기원을 상징하고 이를 불교미술에 다시 연결함으로써 옻칠이 불교에서 지닌 중요성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성파의 생과 미술을 연계한 분석도 나왔다. 마엘 벨레크 프랑스 체르누스키 미술관 중국 및 한국 미술 큐레이터는 “미술가의 생애와 승려로서의 생애가 얽힌 성파 스님의 작품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지혜의 통달과 선수행(禪修行)의 득도 경지, 그 직관이 함축된 자비심의 발로가 있다”고 했다. 정종미 전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교수(한국화가)는 “성파의 예술은 전통, 현대, 첨단 미술 등 거의 전역에 걸쳐 광범위하고 어떤 틀이나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데, 이는 그의 예술이 자연과 생명주의 불교,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출발한 수행일 따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