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양종구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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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yjongk@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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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만번 더 타도 기분 좋은 것 자전거’…“75세에도 산길 44km는 거뜬”[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제 집이 서울 양재동인데 지난주 토요일에는 경기도 구리, 일요일에는 행주산성까지 갔다 왔어요. 왕복 한 70~80km 정도 됩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중간에 쉬고 점심도 먹고…. 이 나이에 이렇게 즐겁고 건강하게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요?“ 한국나이 올해로 75세인 가수 김세환 씨는 자전거 얘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거린다. 자전거를 타게 된 스토리부터 장점이 무엇인지, 자전거를 꼭 타야 하는 이유, 평생 타면서 경험안 에피소드…. 그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 그의 자전거 얘기를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는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탄다. 산악자전거(MTB)와 사이클 가리지 않는다. 1986년 미국에 스키 타러 갔다 MTB를 사가지고 와서 자전거에 빠진 ‘MTB 1세대’인 그는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 자전거 타기”라고 강조한다. 친구들과의 약속, 라디오 방송할 때도 자전거를 타고 간다. 김 씨는 “양재동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로 45분이면 간다. 차타고 가면 막혀 짜증나는데 자전거는 확 트인 야외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즐겁게 갈 수 있다. TV 방송 출연 땐 복장과 머리, 얼굴 상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를 탄다”고 했다. 김 씨의 자전거 사랑은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1968년부터 스키를 탔던 그가 미국에 스키를 타러 갔다 MTB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어느 날 바람이 많이 불어 스키를 탈 수 없었다. 근처에 자전거 파는 곳이 있어 들렀더니 앞 기어 3단, 뒤 기어 7단으로 된 자전거가 있었다. 직원에게 무슨 자전거냐고 물었더니 ‘산에서 타는 자전거’라고 했다. 산을 내려오는 게 스키랑 비슷한 묘미가 있을 것 같아 바로 구매해 한국에 갖고 들어왔다”고 했다.“자전거를 그대로 비행기에 실을 수 없었죠. 그래서 나사를 하나씩 다 풀어 분리해서 트렁크에 나눠 실었죠. 혹시 나중에 조립을 못 할까 싶어 일일이 그림을 그려 위치를 파악해뒀죠. 붓대 속에 목화씨를 숨겨온 문익점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죠.” 김 씨는 그 자전거로 혼자 한강으로 산으로 타고 다녔다. 비슷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워 인사했다. 그렇게 만나서 조성 된 동호회가 ‘한시반’이다. 그는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됐다. 내가 교회를 다녀서 일요일 예배를 보고 점심 먹고 한강에 나가면 오후 1시30분쯤 됐다. 자연스럽게 그 시간에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 밑에서 만나 함께 자전거를 탔다. 한시반 회원들은 아직도 모인다”고 했다.“우리가 국내 최초로 우리나라를 가로지르기도 했죠. 1980년대 말 서울에서 속초까지 220km 당일 투어를 처음 시도했어요. 새벽 5시에 출발해 저녁 6시에 미시령 정상에 도착했죠.” 김 씨는 집 근처 우면산, 그리고 남한산성을 수시로 올랐다. 지금은 MTB 동호인들의 성지인 강원도 춘천 강촌챌린지코스도 개척하는 등 국내 MTB 코스를 다수 개발했다. 그는 “지리산 벽소령도 올랐다. 지금은 국립공원내 자전거 출입이 금지됐지만 2000년대 초반은 가능했다. 우리가 자전거 타고 올라가니 사람들이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며 난리가 났었다”고 말했다.“처음엔 MTB 정보를 얻을 데가 없어 미국 잡지를 많이 참고했어요. 이태원에 가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잡지를 사보다가 정기구독을 했죠. 지금도 그 때 보던 잡지들이 많이 남아 있죠.” 그의 집엔 MTB 잡지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마운틴바이크 액션‘를 비롯해 다양한 잡지가 1980년 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있다. 일본 책도 있다. MTB 타며 부상도 많이 당했다. 그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OB를 낸다”며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다칠 수 있다”고 했다. 넘어지며 무릎과 팔꿈치를 숱하게 다쳤다. 그래도 큰 부상은 없었다.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부러져 첫 마디가 조금 불편한 게 후유증으로 남았다. 다행히 기타 칠 때 그 손가락은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MTB에 집중하던 그는 2010년대 초반 사이클도 타기 시작했다. 4대강 사업으로 강주변 자전거길이 조성되면서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탄 것이다. 그는 “차에 비유하면 MTB가 오프로드를 달리는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라면 사이클은 세단이다. 그 맛이 완전히 달랐다”고 했다. 김 씨는 MTB를 탈 땐 평균시속 25km, 사이클을 탈 땐 평균시속 30km로 질주한다. 나이는 80세를 향해 가지만 그의 몸은 아직 ‘청춘’이다. 김 씨는 “최근 젊은 친구들과 강촌 산길 44km를 달리고 왔다. 숨을 헐떡이며 ‘야 이 나이에 내가 이렇게까지 달려야겠냐’라고 하소연했지만 아직 그 정도는 문제없다”며 웃었다.‘자전거 친구’인 구자열 대한자전거연맹 회장(69·(주)LS 의장)과도 자주 라이딩 한다. 구 회장과의 인연도 두 사람의 공통된 취미인 스키장에서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됐다. 김 씨는 국내에서도 겨울이면 스키장을 자주 다녔다. 그런데 보통 사람처럼 자동차가 아닌 MTB를 타고 스키장엘 갔다. 이미 자전거에 관심이 많던 구 회장은 스키장에서 만난 김 씨가 타고 온 MTB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이후 두 사람은 틈틈이 MTB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요즘은 사이클도 함께 탄다.“그거 알아요? 공기 좋은 산에서 자전거를 타다 보면 정말이지 산소가 씹히는 기분이 들어요. 어느 날 휘닉스 파크 스키장 뒤쪽으로 내려갔는데 공기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같이 간 친구들에게 산소가 씹히는 것 같다고 했죠. 그랬더니 나중에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인용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김 씨가 꼽은 ‘MTB 인생 자전거’길은 강원 양양 미천골이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사람이 거의 없을 때다. 여러 친구와 함께 미천골을 타고 내려오다 너무 아름다운 광경에 모두 넋을 잃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폭포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가수 조영남과 이문세, 김현철, 개그맨 박명수 씨에게도 자전거를 권해 ‘자전거 전도사’로 불린 그는 2007년 ‘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란 책을 썼다.“그 책에서 딱 두 가지를 강조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자전거 제일 잘 타는 사람은 부상 없이 오래 타는 사람이고, 자전거에서 가장 좋은 부품은 안장 위에 앉아 있는 인간이라고. 빨리 달리는 것, 비싼 자전거 의미 없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타는 게 최고죠.” 그는 안전하게 타기 위해선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자전거는 무조건 타는 게 아닙니다. 그냥 페달만 밟는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안전하게 탈 수 있습니다. 자전거에도 다양한 기술이 있어요. 급브레이크를 잡아도 안 되고…. 요즘 전국적으로 자전거타기 클래스가 많이 생겼으니 초보자들은 그런 곳을 찾아 기본 기술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김 씨에게 자전거는 ‘주치의’다. 그는 “자전거 타려고 나서면 내 몸 상태를 알 수 있다.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자전거 타고 병원을 지나다보면 내가 건강한 것에 다시 감사 한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건강하니 ‘아직 팔린다’며 웃었다. 그는 “충남 예산 사과축제에서도 오라고 하고 서울 성동구에서도 행사 있다고 출연을 부탁했다. 건강하니 아직 불러주는 데가 있다”고 했다. 그는 오후 10시에서 11시 취침해 새벽 4~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일어나서 먼저 신문을 다 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훤히 알 수 있죠. 그리고 제가 관심이 있는 유튜브 등을 봅니다. 요즘 정말 세상 좋아졌어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컴퓨터 하나도 다 볼 수 있어요. 이렇게 좋은 세상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세상 맘껏 즐기려면 건강해야죠. 모두 자전거 타세요.” 그는 자전거 얘기할 땐 노래 부를 때 보다 더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의 대표작 ‘사랑하는 마음’의 가사 중 “천만번 더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사랑해”를 “천만번 더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자전거”라고 바꿔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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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TB 36년 내공으로 지금도 산길 44km는 거뜬히 달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한국 나이로 올해 75세인 가수 김세환 씨는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탄다. 산악자전거(MTB)와 사이클을 가리지 않는다. 1986년 미국에 스키 타러 갔다가 MTB를 사가지고 와서 자전거에 빠진 ‘MTB 1세대’인 그는 “무릎에 무리 안 가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 자전거 타기”라고 강조한다. “제 집이 서울 양재동인데 지난주 토요일에는 경기 구리, 일요일에는 고양 행주산성까지 갔다 왔어요. 왕복 70∼80km 정도 됩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중간에 쉬고 점심도 먹고…. 이 나이에 이렇게 즐겁고 건강하게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요?” 친구들과의 약속, 라디오 방송을 할 때도 자전거를 타고 간다. 김 씨는 “양재동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로 45분이면 간다. 차를 타고 가면 길이 막혀 짜증나는데 자전거는 확 트인 야외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즐겁게 갈 수 있다. TV 방송 출연 땐 복장과 머리, 얼굴 상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를 탄다”고 했다. 김 씨의 자전거 사랑은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1968년부터 스키를 탔던 그가 미국에 스키를 타러 갔다 MTB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어느 날 바람이 많이 불어 스키를 탈 수 없었다. 근처에 자전거 파는 곳이 있어 들렀더니 앞기어 3단, 뒷기어 7단으로 된 자전거가 있었다. 직원에게 무슨 자전거냐고 물었더니 ‘산에서 타는 자전거’라고 했다. 산을 내려오는 게 스키와 비슷한 묘미가 있을 것 같아 바로 구매했다”고 했다. “자전거를 그대로 비행기에 실을 수 없었죠. 그래서 나사를 하나씩 다 풀어 분리해 트렁크에 나눠 실었어요. 혹시 나중에 조립을 못 할까 싶어 일일이 그림을 그려 위치를 파악해 뒀죠. 붓대 속에 목화씨를 숨겨온 문익점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김 씨는 그 자전거로 혼자 한강으로 산으로 타고 다녔다. 비슷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워서 인사했다. 그렇게 만나서 결성된 동호회가 ‘한시반’이다. 그는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게 됐다. 내가 교회를 다녀서 일요일 예배를 보고 점심 먹고 한강에 나가면 오후 1시 30분쯤 됐다. 자연스럽게 그 시간에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 밑에서 만나 함께 자전거를 탔다. 한시반 회원들은 아직도 모인다”고 했다. “우리나라를 가로지르기도 했죠. 1980년대 말 서울에서 강원 속초까지 220km 당일 투어를 처음 시도했어요. 새벽 5시에 출발해 저녁 6시에 미시령 정상에 도착했어요.” 김 씨는 집 근처 우면산, 그리고 남한산성을 수시로 올랐다. 지금은 MTB 동호인들의 성지인 강원 춘천 강촌챌린지코스도 개척하는 등 국내 MTB 코스를 다수 개발했다. 그는 “지리산 벽소령도 올랐다. 지금은 국립공원 내 자전거 출입이 금지됐지만 2000년대 초반엔 가능했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니 사람들이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며 난리가 났었다”고 말했다. MTB에 집중하던 그는 2010년대 초반 사이클도 타기 시작했다. 4대강 사업으로 강 주변 자전거길이 조성되면서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탄 것이다. 그는 “차에 비유하면 MTB가 오프로드를 달리는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라면 사이클은 세단이다. 그 맛이 완전히 달랐다”고 했다. 김 씨는 MTB를 탈 땐 평균 시속 25km, 사이클을 탈 땐 평균 시속 30km로 질주한다. 나이는 80세를 향해 가지만 그의 몸은 아직 ‘청춘’이다. 김 씨는 “최근 젊은 친구들과 강촌 산길 44km를 달리고 왔다. 과거와 달리 이젠 숨을 헐떡이며 ‘야, 이 나이에 내가 이렇게까지 달려야겠냐’라고 하소연했지만 아직 그 정도는 문제없다”며 웃었다. 가수 조영남과 이문세, 김현철, 개그맨 박명수 씨에게도 자전거를 권해 ‘자전거 전도사’로 불리는 그는 2007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란 책을 썼다. “그 책에서 딱 두 가지를 강조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자전거 제일 잘 타는 사람은 부상 없이 오래 타는 사람이고, 자전거에서 가장 좋은 부품은 안장 위에 앉아있는 인간이라고. 빨리 달리는 것, 비싼 자전거, 의미 없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타는 게 최고죠.” 자전거 얘기를 할 땐 노래 부를 때보다도 더 즐거운 표정이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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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어트로 무너진 몸, 운동으로 바로 세워… “근육 만들 때 가장 즐거워”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한때 몸무게가 90kg까지 나갔어요.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 마음 단단히 먹고 다이어트를 해 55kg까지 뺐어요. 그런데 몸 여기저기가 아팠죠. 그 때쯤 군인이셨던 아버지께서 근육운동을 제안했어요.”21일 경북 영주에서 열린 2022 국제보디빌딩연맹(IFBB) 세계피트니스여자선수권 마스터 여자 보디피트니스(45세 이상) 부문에서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우승한 김미소 씨(45·충북 황순철퍼스트피트니스)는 웨이트트레이닝 할 때가 가장 즐겁다.“이런 거 있죠. 사실 제가 엄마가 되면서 누구 엄마로 불려지고 제 이름으로 불려지는 때가 거의 없잖아요. 보디빌딩은 제 존재를 느끼게 해줍니다. 사람들은 힘들겠다고 걱정하지만 제가 살면서 저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딱 웨이트트레이닝 할 때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시간을 즐겼던 것 같아요.”7년 전이었다. 경기 용인시에 있는 에버랜드에 근무하다 남편이 있는 충북 청주로 내려오면서 삶이 바뀌었다.“7년 정도 주말부부로 지내다 저와 가족을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15개월 만에 35kg을 감량했는데 살을 너무 극단적으로 빼서인지 몸이 아팠어요. 그래서 일을 그만뒀습니다. 근육운동을 권하신 친정 아버지께서 대회 출전도 제안하셨죠. 자신이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적극 도와주셔서 대회 준비를 위해 몸을 만들었습니다. 마스터스 보디빌딩 선수로 각종 대회에 출전하게 됐습니다.”대회 출전은 5년 전부터 했다. 각종 지방 대회에서 입상했고 결국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김 씨는 2019년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IFBB 세계피트니스여자선수권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 땐 입상하지 못했다.“국내와 국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어요. 몸을 표현하는 포즈 자체가 완전히 달랐죠. 그래서 올해 국가대표가 된 뒤에는 외국선수들 포즈를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경쟁 상대가 국내 선수가 아니라 외국선수이잖아요. 그게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대회 끝난 뒤 대한보디빌딩협회 관계자들이 몸이 아주 좋아졌다고 칭찬 많이 받았습니다.”김 씨의 하루는 새벽 4시10분에 시작된다.“아이들을 키우다보니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운동을 마쳐야 합니다. 일어나서 공복에 달리거나 고정식 자전거를 타는 유산소 운동을 합니다. 지방을 빼는 데는 공복 유산소 운동이 최고이거든요. 그리고 아들 밥 챙기는 등 오전 집안일을 끝난 뒤 오전 오후 시간 날 때 운동을 하죠. 오전 오후 하루 6시간씩 운동합니다.”김 씨의 체중은 60kg. 근육운동을 하자 근육량이 많아지면서 체중이 늘었다. 운동을 계속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체중이 늘지는 않는다.“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음식을 조절하면서 바짝 운동해서 인지 54kg까지 빠졌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60kg 정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일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몸무게가 늘지는 않습니다.”김 씨는 근육운동을 하면서 보디빌딩 지도자 자격증도 땄다. 프리랜서 트레이너로 시간 날 땐 다른 사람들의 몸도 관리해주고 있다. 어느 순간 근육운동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상이 됐다.“저에게 목표가 뭐나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솔직히 전 특정한 목표는 없습니다. 다만 매일 운동하면서 제 몸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느끼는 그 자체가 좋습니다. 사실 전 태극마크를 목표로 운동하지 않았습니다. 몸만들기 위해 열심히 땀 흘리다 보니 국가대표가 됐고 결국 세계대회에서 우승까지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제 몸을 더 가다듬는데 집중하겠습니다. 근육을 만드는 것만으로 즐겁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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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PGA 프로에게 배운다고?” KSPO-KPGA 코리아 패밀리 골프 챌린지 참가자 모집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조현재, 이하 공단)이 한국프로골프협회(KPGA·회장 구자철)와 함께 개최하는 ‘KSPO-KPGA 코리아 패밀리 골프 챌린지’에 참여할 가족을 모집한다. 이번 대회는 KSPO와 KPGA가 골프 대중화 및 골프 저변 확대를 목표로, 가족 2명이 함께 팀을 이뤄 펼치는 포섬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KPGA 프로가 멘토로 나서 참가자들을 지도하는 기회도 갖는다.‘KSPO-KPGA 코리아 패밀리 골프 챌린지’는 공단의 친환경 골프장 에콜리안을 활용해 11월 5일 정선에서 개막전을 시작으로 6일 제천, 12일 영광, 20일 광산(광주)에서의 예선전을 거쳐 성적 상위 20가족이 27일 거창에서 열리는 결승전에 출전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우승팀에게는 KSPO 이사장 및 KPGA 회장 공동명의 트로피와 상장이 수여되며, 팀 니어리스트·롱기스트·메달리스트 등을 선정해 다양한 경품을 증정하고 참가자 전원에게 에콜리안 1인 무료이용권을 제공한다. 참가신청은 에콜리안 골프장 관내 지역 가족은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일반 가족은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신청이 가능하며, 골프장별 50가족씩 총 200가족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참가신청서 작성은 KSPO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며, 대회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대회 운영 사무국으로 문의하면 된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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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올림픽레거시포럼 18일 개막… 바흐 IOC 위원장 “88서울올림픽, 세계의 귀감”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조현재, 이하 공단)이 주최하는 서울올림픽레거시포럼이 18일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성대한 막을 올렸다. 서울올림픽레거시포럼은 미래세대에게 올림픽레거시를 통해 올림픽 가치를 넘어 스포츠를 통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Olympic legacy and the Next Generation’를 주제로 열렸으며, 국내외 올림픽레거시 관리주체 등 19개국 200여명이 참석했다.18일 열린 개막식에는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축사, 토마스 바흐(Tomas Bach)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의 기조연설이 있었으며, 대형 국제스포츠대회 레거시 보존과 발전을 위해 서울시, 부산시, 인천시, 강원도를 비롯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 대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 2018 평창기념재단,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조직위원회 간 업무협약 체결도 진행되었다. 이 밖에도 전 세계에서 참가한 올림픽레거시 관리기관들 간의 공동선언문 발표, 저개발국가 청소년을 위한 스페셜 프로그램 등 다양한 세션들이 진행된다.조현재 공단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이번 포럼은 올림픽레거시를 통해 미래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목표를 향한 역사적 첫걸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IOC와 올림픽레거시 관리주체들이 이번 포럼에서 환경, 사회문제, 거버넌스 등 ESG 관점에서 올림픽 레거시를 활용해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바흐 위원장은 스포츠를 통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올림픽 레거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이 귀감이 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바흐 위원장은 약 25분간의 기조연설에서 시민들이 스포츠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기는 공간인 올림픽공원을 “올림픽 레거시의 살아있는 위대한 사례”라고 콕 집어 말하고는 “스포츠와 문화를 한 데 아우르게 하는 것은 근대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의 염원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그러고는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21세기 올림픽 상설 시설의 92%가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라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 경기장은 93%가 아직도 활용되고 있으며 이는 평균치보다도 높다. 서울은 모든 올림픽 대회에 귀감이 된다”고 밝혔다. 바흐 위원장은 “올림픽 레거시의 궁극적 목표는 사람들과 지역 사회가 올림픽 개최 이후에도 몇 세대에 걸쳐서 계속 그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날 개회식에서는 국내의 올림픽 관리 주체 간 MOU를 체결하는 자리도 마련됐다.바흐 위원장은 이를 두고 “복수의 이해당사자 간 협력 자체가 하나의 올림픽 레거시다”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는 도시에 대해 조언도 했다. 당장 서울시는 2036년 여름올림픽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바흐 위원장은 “레거시를 만드는 데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면서 2024 파리 올림픽, 및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진행 중인 프로그램을 소개하기도 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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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20km, 주말엔 70km는 달려야…‘인생 3막’ 아내와 여행하며 질주”[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병원 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간다고 해서 10월 말로 폐업을 하기로 했어요. 다시 준비하고 재 개업하려면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그동안 일하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는데 이제 집사람하고 국내는 물론 세계를 여행하면서 인생을 즐길 생각입니다. 먼저 전국의 사찰,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달릴 생각입니다.” 올해로 만 70세인 이동윤 이동윤외과의원 원장은 부산 동래고 1학년 때부터 달리기 시작해 50년 넘게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새벽에 서울 서초구 잠원동 병원으로 출근할 때, 저녁 때 퇴근할 때 한강변을 달린다. 달리기는 공부에 찌든 학창시절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의 돌파구였고, 의사로 살면서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젠 지난 삶을 함께 돌아보는 좋은 ‘동반자’다. 대학시절 불교학생회 회장이었던 이 원장은 아내와 국내 사찰과 역사 유적지를 돌아볼 계획이다. 그는 “그 사찰이 왜 그 자리에 들어섰고, 어떤 분의 비석이 왜 그곳에 세워졌는지를 보면 옛 사람들의 삶이 보일 것이고 내 삶도 반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지역을 아내는 걷고 난 달리면서 자세히 돌아볼 것”이라고 했다. 이 원장에게 달리기는 삶 그 자체였다.“인문계고등학교의 특성이 다 그렇듯 새벽에 나가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오는 너무 재미없는 삶이었죠. 나만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고민을 했는데 운동이었고 선택은 달리기였어요. 우리 시대 때는 할 수 있는 운동이 제한 돼 있었어요. 기껏해야 달리고 자전거 타고 등산하는 것이었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으론 달리기가 최고였어요.” 매일 새벽 일어나 집 뒷동산을 뛰어 오르내렸다. 나중에는 토끼뜀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그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나만의 도전이었기에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다. 힘들면 걸어가면 됐다. 제약이 없었다. 나만 누리는 자유였다. 운동하고 아침 먹은 뒤 학교로 갔다. 아주 즐거웠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서도 틈나는 대로 달렸다. 단기간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데는 달리기가 최고였다. 의대를 졸업 한 뒤에도 달리기는 생활의 시작이었다. 바쁜 생활 속에서 아침 달리기는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행복이었다. 1990년 대 중반 동아마라톤을 시작으로 마라톤대회에서 일반인에게도 참가 기회를 주자 1997년 42.195km 풀코스에 도전했다.“친구가 ‘마라톤 대회에 한번 나가보자’고 해서 춘천마라톤에 출전했죠. 마라톤은 ‘신세계’였습니다. 풀코스를 한 번도 달려보지 않아 ‘마의 30km’ 이후엔 걷다 뛰다시피 해 3시간40분55초에 완주했죠. 풀코스 한 번 완주에 ‘해냈다’는 만족감과 희열에 몇 개월은 취해 있었죠. 그래서 계속 출전했어요. 달리기는 제가 내적으로 더욱 강인해질 수 있게 해준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달리기를 통해 내 인생과 성공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이 원장은 그냥 달리지 않았다. 남을 위해 달렸다. 2000년 달리는의사들이란 동호회를 만들었다. 그는 “달리면서 생기는 안전사고가 많았다. 그래서 의사들이 함께 달리면서 아픈 사람이 있으면 보살피는 레이스 패트롤(Race Patrol)을 2001년 동아마라톤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달리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무턱대고 달리다 사망하는 사고가 계고 일어났다. 그래서 달림이들 교육을 시키기로 했다. 분기에 한번씩 무료 워크숍을 했다. 당시 인터넷이 뜰 때라 서울마라톤클럽 게시판 등에 ‘안전하게 달리는 법’ ‘부상 예방법’ ‘마라톤 에티켓’ 등을 계속 올렸다. 현재 ‘달리는의사들’ 홈페이지에도 즐겁고 건강하게 달리는 법을 계속 올리고 있다.“달리는 사람 스스로가 어떤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알고만 있어도 무리를 안 하게 되죠. 본인이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데…. 마스터스마라톤 초창기에는 사망 사고가 잦았습니다. 참 안타까웠죠.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2002년부터는 소아암환우돕기 마라톤대회를 시작했다.“1998년 국제통화금융(IMF) 구제 금융위기가 터졌죠. 맞벌이 둘 중 하나는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문제는 소아암 환자의 부모가 젊다는 것입니다. 경제적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애가 아픈데 일자리까지 잃으면 가정이 제대로 유지될 수가 없죠. 이혼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런데 소아암환자는 회복률이 70~80%됩니다. 거의 다 낫는다고 보면 되죠. 환자가 완치 됐을 때 가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아이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죠.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고 마라톤대회를 통해 소액기부를 받아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 도와줄 수는 없었다.“젊은 사람들의 특징이 뭐든 쉽게 시작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아무리 큰 것이라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우리가 보고 있고 관심이 있다는 것만 보여줘도 이혼하려다 참고 가정을 유지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런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시작했어요. 효과도 좋았습니다.”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대회를 개최했다. 중간에 2년을 쉬었다. 모든 대회 운영비는 협찬을 받고 참가비는 환자를 돕는데 썼는데 경제 상황이 나빠지자 협찬을 받을 수 없었다. 주위에서 ‘왜 안 하느냐’는 성화와 ‘우리가 돕겠다’는 사람들이 있어 다시 시작했는데 빚만 2,3 억 원을 지는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3년째 열리지 않았다. 2010년부터는 산을 달리는 행복트레일런대회도 개최했다. 역시 자선 대회다. 매년 11월 셋째 주 일요일에 개최하는 행복트레일런대회는 코로나19에도 계속 열었다. 50년 넘게 달렸는데 그동안 부상은 없었을까.“전혀 없었어요. 다치는 사람은 테크니컬 에러 때문입니다. 먼저 몸을 만들고 그에 맞는 강도로 달려야 하는데 몸은 안 만들고 마음만 따라가니 무리를 하고 다치는 것입니다. 사망사고도 그래서 발생하죠.” 이 원장은 ‘운동 전도사’이기도 하다.“우리 몸 자체가 안 쓰면 퇴화됩니다. 도태되는 것이죠. 근육도 안 쓰면 몸 자체적으로 없애버립니다. 그게 우리 몸의 생존 본능입니다. 열심히 움직여야 합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마음도 살아 있지 않죠.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짜증을 내는데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몸에서 받아줄 자신이 없으니 짜증으로 회피하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면 어떤 스트레스도 받아 줄 수 있는 몸이 됩니다.” 이 원장은 풀코스를 200번 가까이 완주했지만 이젠 대회 출전은 거의 하지 않는다. 10여년 전 대한외과의사회 일을 보면서 시간을 내지 못하면서 출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젠 혼자서 달리는 게 더 좋다.“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막연하게 건강해야지라는 생각은 안 됩니다. 그럼 운동을 하지 않아요. 목표를 세우고 달려야 합니다. 호주 원주민들을 하루 20km를 걷고 달렸어요. 인간은 매일 아침저녁 합쳐서 20km는 달려야 한다고 봅니다. 주말엔 토요일 일요일 70km를 달리야 진정한 마라토너 아닐까요? 전 그 목표로 달리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이제 ‘인생 3막’이 시작됐다고 했다.“국방부 보건과장(예비역 대령)으로 국가에 봉사하며 1막을 살았고 외과의학발전을 위해 2막을 살았죠. 3막은 아내와 여생을 즐겁게 보내는 것입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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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20km-주말엔 70km… 달리면서 ‘나만의 자유’ 만끽”[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올해로 만 70세인 이동윤 이동윤외과의원 원장은 부산 동래고 1학년 때부터 달리기 시작해 50년 넘게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달리기는 공부에 찌든 학창시절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의 돌파구였고, 의사로 살면서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젠 지난 삶을 함께 돌아보는 좋은 ‘동반자’다. “병원 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간다고 해서 폐업을 하기로 했어요. 그동안 일하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는데 이제 집사람과 국내는 물론 세계를 여행하면서 인생을 즐길 생각입니다. 먼저 전국의 사찰,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달릴 생각입니다.” 대학 시절 불교학생회 회장이었던 이 원장은 아내와 국내 사찰과 역사 유적지를 돌아볼 계획이다. 그는 “그 사찰이 왜 그 자리에 들어섰고, 어떤 분의 비석이 왜 그곳에 세워졌는지를 보면 옛사람들의 삶이 보일 것이고 내 삶도 반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지역을 아내는 걷고 난 달리면서 자세히 돌아볼 것”이라고 했다. 이 원장에게 달리기는 삶 그 자체였다. “공부만 하던 고교 시절 너무 재미없었어요. 나만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고민을 했는데 운동이었고 선택은 달리기였죠. 우리 시대에는 할 수 있는 운동이 제한돼 있었어요. 기껏해야 달리고 자전거 타고 등산하는 것이었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으론 달리기가 최고였어요.” 매일 새벽 일어나 집 뒷동산을 뛰어 오르내렸다. 나중에는 토끼뜀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그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나만의 도전이었기에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다. 힘들면 걸어가면 됐다. 제약이 없었다. 나만 누리는 자유였다. 운동하고 아침 먹은 뒤 학교로 갔다. 아주 즐거운 시절이었다”고 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서도 틈나는 대로 달렸다. 단기간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데는 달리기가 최고였다. 의대를 졸업한 뒤에도 달리기는 생활의 시작이었다. 바쁜 생활 속에서 아침 달리기는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행복이었다. 1990년대 중반 동아마라톤을 시작으로 마라톤대회에서 일반인에게도 참가 기회를 주자 1997년 42.195km 풀코스에 도전했다. “친구가 ‘마라톤 대회에 한번 나가보자’고 해서 춘천마라톤에 출전했죠. 마라톤은 ‘신세계’였습니다. 풀코스를 한 번도 달려보지 않아 ‘마의 30km’ 이후엔 걷다 뛰다시피 해 3시간40분55초에 완주했죠. 풀코스 한 번 완주에 ‘해냈다’는 만족감과 희열에 몇 개월은 취해 있었죠. 그래서 계속 출전했어요. 달리기는 제가 내적으로 더욱 강인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달리기를 통해 내 인생과 성공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이 원장은 그냥 달리지 않았다. 남을 위해 달렸다. 2000년 ‘달리는의사들’이란 동호회를 만들었다. 그는 “달리면서 생기는 안전사고가 많았다. 그래서 의사들이 함께 달리면서 아픈 사람이 있으면 보살피는 레이스 패트롤(Race Patrol)을 2001년 동아마라톤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달리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무턱대고 달리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계속 일어났다. 그래서 달림이들 교육을 했다. 분기에 한 번씩 무료 워크숍을 했다. 당시 인터넷이 뜰 때라 서울마라톤클럽 게시판 등에 ‘안전하게 달리는 법’ ‘부상 예방법’ ‘마라톤 에티켓’ 등을 계속 올렸다. 현재 ‘달리는의사들’ 홈페이지에도 즐겁고 건강하게 달리는 법을 계속 올리고 있다. 2002년부터는 소아암환우돕기 마라톤대회를 시작했다.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3년째 열지 못했다. 2010년부터는 산을 달리는 행복트레일런대회도 개최했다. 역시 자선 대회다. 매년 11월 셋째 주 일요일에 개최하는 행복트레일런대회는 코로나19에도 계속 열었다. 이 원장은 풀코스를 200번 가까이 완주했지만 이젠 대회 출전은 거의 하지 않는다. 혼자서 달리는 게 더 좋다. “막연하게 건강해야지라는 생각은 안 됩니다. 그럼 운동을 하지 않아요. 목표를 세우고 달려야 합니다. 호주 원주민들은 하루 20km를 걷고 달렸어요. 인간은 매일 아침저녁 합쳐서 20km는 달려야 한다고 봅니다. 주말엔 토요일 일요일 70km를 달려야 진정한 마라토너 아닐까요? 전 그 목표로 달리고 있습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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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리-무릎 다쳐 의기소침…근육운동으로 자신감 찾고 ‘건강 노하우’ 전달”[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왼쪽 무릎 반월상 연골이 찢어졌다며 긁어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하지만 그럴 정도면 자칫 인공관절로 바꿔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술을 받지 않았습니다.” 문정화 서울 구로구청 건설관리팀장(50)은 9년여 전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계단을 아예 못 내려가고 1km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 어느 날 스커트를 입고 거울을 봤는데 왼쪽 허벅지가 가늘어져 있었다. 오른쪽에 비해 무려 둘레가 6cm 작았다. 정형외과에서 진단해보니 왼쪽 무릎 반월상 연골이 찢어져 있었다. 통증에 오른 다리에 의지하다보니 나타난 현상이었다. 왼쪽 무릎 주변 근육이 크게 퇴화돼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됐다. 문 팀장은 무릎 부상을 근육운동으로 극복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구민은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전해주는 ‘건강 전도사’가 됐다.“병원에서 찢어진 연골을 긁어내야 한다고 했는데 제가 거부하고 근육운동을 시작했어요. 2004년 허리에 통증이 왔을 때도 근육운동으로 극복한 적이 있어서 수술보다는 운동이 더 좋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사실 그 무렵 무릎이 좋지 않아 요가를 시작했었다. 그런데 요가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근육운동을 시작한 초기엔 무릎을 폈다 구부렸다 주변 근육을 천천히 키워주는 운동부터 시작했다. 통증이 있어 심하게 할 수 없었다. 적응이 된 뒤에는 집에서 매일 새벽 1시간씩 보디웨이트 트레이닝(몸으로 하는 근육운동)을 실시했다. 스쾃, 런지, 푸시업 등 다양한 근육운동을 2년 정도하자 양쪽 허벅지의 균형이 잡혔다. 물론 통증도 사라졌고 걷는데도 지장이 없었다. 지금은 맨몸 스쾃을 1000개는 거뜬하게 할 수 있다. 문 팀장은 2016년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에서 보디빌딩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했다.“무릎 통증을 해결하려고 운동을 하고 있는 때 결혼을 앞둔 여직원이 팔뚝 살을 빼고 싶다고 했죠. 2개월 함께 운동했는데 체중 변화는 없었지만 팔뚝은 2.5cm 가늘어졌어요. 그 직원이 결혼사진 잘 찍고 결혼식도 잘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문정화가 살을 빼준다’는 소문이 났고 함께 운동하자는 요청이 이어졌죠. 그래서 이왕 하는 김에 자격증을 따서 제대로 가르쳐 주자는 마음에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죠.” 허리 디스크가 파열 됐을 때 축구광인 남편이 근육운동을 권유해서 했던 게 자격증 획득에 큰 도움이 됐다. 당시 2년 정도를 피트니스센터에서 열심히 훈련했고 인체해부학, 운동생리학 등을 공부했다.“남편이 운동을 워낙 좋아해요. 축구광이에요. 제가 수영을 하다 허리가 좋지 않다고 하니 웨이트트레이닝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디스크 파열이라며 수술을 권유했었죠. 열심히 근육운동을 하자 허리가 아프지 않았어요.” 전남 장흥군청 홍보담당으로 일할 때인 2006년엔 지역 신문사 주최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넘게 달린 뒤 출근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하프마라톤에 출전해 1시간49분대로 여자부 8위에 오르기도 했다. 운동 마니아가 다 됐지만 2007년 장흥군청에서 구로구청으로 옮기면서 적응하느라 잠시 운동을 하지 못했고 결국 무릎에 탈이 났던 것이다. 문 팀장은 각종 지도자 자격증을 2016년부터 준비하면서 몸이 좋아지자 보디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탄탄한 몸을 사진으로 남긴 것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는 “잘 만들어진 몸은 성취감을 준다고 했다. 그는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생활스포츠지도사, 2017년 한국인재교육원 재활트레이너-운동처방사 자격증을 획득했고 올해 유소년스포츠지도사와 노인스포츠지도사 자격증까지 땄다.“자격증을 획득하면서 본격적으로 구청직원, 구민들을 대상으로 건강 클래스를 열었어요. 구로구청에서 운동지도를 매일 아침 하고 있고, 구로구평생학습건강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소문이 나서 지방공무원교육원, 전남, 전북 등까지 출강하고 있습니다.” 2013년 시작한 구로구청 운동지도는 매일 아침 7시에서 8시 구청 체력단련실에서 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명. 기구보다는 혼자서 몸으로 할 수 있는 보디웨이트 트레이닝 위주로 지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2년간 못할 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운동할 목표를 정해주고 피드백을 받는 식으로 했다. 올 7월 1일부터 다시 체력단련실에서 구청직원들 몸만들기를 시작했다.“지자체 강연 때는 ‘엉덩이 안녕하십니까?’ 등 건강학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거나 집이나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을 가르쳐줍니다. 직장인들 같은 경우는 목 디스크나 거북복이 많기 때문에 그런 증상을 없애주거나 막는 방법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는 “저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세상 사는데 건강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나. 힘닿는 데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건강 노하우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구로구청에서 5명 한 팀으로 지금까지 다이어트 8기까지 지도했다. 대부분 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문 팀장이 허리 디스크 수술을 막는 사례만 6명이나 된다. 모두 운동으로 허리를 강화시켜 통증을 없앴다. 그는 “의학적으로 수술밖에 없는 경우 빼고는 운동으로 통증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많다. 특히 보디웨이트 트레이닝은 몸에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모든 연령대에 효과적이다”고 했다. 문 팀장은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도 나온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긍정적인 사람도 몸이 아프면 소극적이 된다. 몸이 건강해야 하는 이유다. 저도 밝은 성격이었는데 허리 무릎 다친 뒤 의기소침하다 운동으로 극복하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100세 시대 근육운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주말엔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수도권 가까운 산으로 향한다. 나무와 꽃, 바위 등을 보면서 산을 오르내리다보면 헬스에서 느끼지 못하는 상쾌함과 성취감을 느낀다. “낮은 산이라도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면 모든 것을 다 얻은 느낌을 가진다”고 했다. 문 팀장은 몸을 더 만들어 각종 보디빌딩대회에도 출전할 계획이다. 보디프로필을 찍어 성취감을 느끼듯 대회를 준비하고 출전하면서 목표의식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어느 순간부터 몸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어졌어요. 조금씩 좋아지는 느낌…. 예를 들면 지금 몸이 2016년 때보다 더 좋습니다. 제 느낌이 그래요. 허리도 가늘어지고. 2016년과 몸무게는 같은데 볼륨감은 더 커졌다는 걸 느낍니다. 헬스는 과학이고 그것을 제 몸으로 체험하면서 치유되는 것을 느끼니 더 근육운동에 집중하게 됩니다. 여러분 100세 시대,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은 필수입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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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운동으로 허리-무릎 통증 싹… ‘노하우’ 알려드려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9년여 전이었다. 계단을 아예 못 내려가고 1km도 걷지 못했다. 어느 날 스커트를 입고 거울을 봤는데 왼쪽 허벅지가 가늘어져 있었다. 오른쪽에 비해 둘레가 6cm나 작았다. 정형외과에서 진단해보니 왼쪽 무릎 반월상 연골이 찢어져 있었다. 통증으로 오른 다리에 의지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었다. 문정화 서울 구로구청 건설관리팀장(50)은 무릎 부상을 근육운동으로 극복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구민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전달해주는 ‘건강 전도사’가 됐다. “병원에서 찢어진 연골을 긁어내야 한다고 했는데 제가 거부하고 근육운동을 시작했어요. 2004년 허리에 통증이 왔을 때도 근육운동으로 극복한 적이 있어 수술보다는 운동이 더 좋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집에서 매일 새벽 1시간씩 보디웨이트 트레이닝(몸으로 하는 근육운동)을 했다. 스쾃, 런지, 푸시업 등 다양한 근육운동을 2년 정도 하자 양쪽 허벅지의 균형이 잡혔다. 통증도 사라졌고 걷는 데도 지장이 없었다. 지금은 맨몸 스쾃 1000개는 거뜬하게 할 수 있다. 문 팀장은 2016년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에서 보디빌딩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무릎 통증을 해결하려고 운동하고 있을 때 결혼을 앞둔 여직원이 팔뚝 살을 빼고 싶다고 했죠. 2개월 함께 운동했는데 체중 변화는 없었지만 팔뚝은 2.5cm 가늘어졌어요. 그 직원이 결혼사진 잘 찍고 결혼식도 잘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문정화가 살을 빼준다’는 소문이 났고 함께 운동하자는 요청이 이어졌죠. 그래서 이왕 하는 김에 자격증을 따서 제대로 가르쳐 주자는 마음에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죠.” 허리 디스크가 파열됐을 때 축구광인 남편이 근육운동을 권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당시 2년 정도를 피트니스센터에서 열심히 훈련했다. 마라톤에도 빠져 하프코스를 1시간 49분에 달리는 등 운동 마니아로 변신했지만 2007년 전남 장흥군청에서 구로구청으로 옮기면서 적응하느라 잠시 운동을 못 하고 있을 때 무릎에 탈이 났던 것으로 보고 있다. 문 팀장은 2016년부터 각종 지도자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 몸이 좋아지자 보디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탄탄한 몸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노력의 결과물로 성취감도 느꼈다. 그는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생활스포츠지도사, 2017년 한국인재교육원 재활트레이너-운동처방사 자격증을 획득했고 올해 유소년스포츠지도사와 노인스포츠지도사 자격증까지 땄다. “자격증을 획득하면서 본격적으로 구청 직원, 구민들을 대상으로 건강 클래스를 열었어요. 매일 아침 구로구청에서 운동지도를 하고 있고, 구로구평생학습관에서 건강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소문이 나서 지방공무원교육원, 전남, 전북 등까지 출강하고 있습니다.” 2013년 시작한 구로구청 운동지도는 매일 아침 7시에서 8시 구청 체력단련실에서 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 기구보다는 혼자서 몸으로 할 수 있는 보디웨이트 트레이닝 위주로 지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체력단련실에서 지도하지 못한 2년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운동 목표를 정해주고 피드백을 받는 식으로 진행했다. 올 7월 1일부터 다시 체력단련실에서 구청 직원들의 몸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는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세상 사는 데 건강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나. 힘 닿는 데까지 사람들에게 건강 노하우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구로구청에서 5명 한 팀으로 지금까지 다이어트 8기까지 지도했다. 대부분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문 팀장이 허리디스크 수술을 막은 사례만 6명이나 된다. 모두 운동으로 허리 근육을 강화시켜 통증을 없앴다. 그는 “의학적으로 수술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빼고는 운동으로 통증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많다. 특히 보디웨이트 트레이닝은 몸에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모든 연령대에 효과적이다”고 했다. 문 팀장은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도 나온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긍정적인 사람도 몸이 아프면 소극적이 된다. 몸이 건강해야 하는 이유다. 나도 허리 무릎 다친 것을 운동으로 극복하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100세 시대인데 근육운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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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갑 넘어 보디빌딩대회 정상에…“나이 들수록 근육 키워야”[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회사 해외주재원→피트니스 트레이너→미스터코리아 마스터스 제패….’그의 변신은 어디까지인가? 회사 해외주재원에서 피트니스 트레이너로 변신한 조우순 서울 목동 에스짐 퍼스널트레이너(61)가 9월 17, 18일 열린 국내 최고의 보디빌딩 대회인 미스터&미즈 코리아 남자부 마스터스 부문에서 우승했다. 50세 이상이 출전하는 부문에서 지난해 3위를 했지만 올해는 쟁쟁한 ‘후배들’을 제치고 정상에 선 것이다. 조 트레이너는 2021년 9월 25일 환갑의 보디빌더 “근육 키우면 젊음도 돌아와…늦은 때는 없어”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으로 쓴 인물이다.그의 올해 활약은 정말 눈부시다. 5월 제41회 미스터서울선발대회 마스터스에서 우승했고, 서울 대표로 나온 미스터&미즈 코리아 대회에서도 정상에 선 것이다. 조 트레이너는 9월 24일 열린 서울시장배 보디빌딩대회 마스터스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우승하기 위해 노력 많이 했습니다. 평소대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체지방을 빼기 위해 공복 유산소 운동을 많이 했죠. 공복에 유산소 운동을 하면 다이어트 효과가 크거든요. 새벽에 1시간 씩 달리거나 고정식 자전거를 탔습니다.”조 트레이너는 대회 2개월 전부터 철저하게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근육의 선명도를 높였다. 그는 “닭 가슴살 위주로 식사를 했고 고구마, 잡곡 등을 먹으며 탄수화물 섭취를 최소화했다”고 했다. 수분관리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제가 평소에 하루 6리터의 물을 마십니다. 그러다 3일전 2리터, 하루 전날 1리터, 그리고 대회 전까지 24시간은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근육의 선명도가 훨씬 높아졌죠. 심사위원들이 근육의 질도 좋아졌다고 했습니다.”이렇게 무리해서 괜찮을까? 조 트레이너는 “전 1년 내내 지속적으로 몸을 관리한다. 절대 무리하지 않기 때문에 몸에 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조 트레이너는 “2023년 세계보디빌딩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는 게 다음 목표”라고 했다. 그가 환갑을 넘겨서도 이렇게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저같이 평범한 사람도 꿈을 꾸고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나이 때문에, 체격 조건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이루게 하는 게 제 인생 2막의 목표입니다.”항공사와 건설사, 정부기관 등 해외주재원으로만 20년 넘게 일한 조 트레이너는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진 뒤 해외생활을 정리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은퇴할 나이도 됐고 100세 시대를 맞아 향후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때 아들 현우 씨(27ㆍ연세대 체육과 대학원)가 보디빌딩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대회에도 출전하라는 조언을 했다. 미스터 연세 출신으로 각종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 우승까지 한 현우 씨는 “어렸을 때부터 지켜본 아버지는 매일 운동을 생활화 했어요. 몸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어요. 그래서 새로운 직업을 택한다면 보디빌딩 지도자를 권했죠”라고 했다.조 트레이너는 2020년 보디빌딩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필기와 실기, 현장 연수로 이뤄진 과정을 단번에 통과했다. 그리고 2021년 3월부터 몸을 제대로 만들기 시작해 그해 5월말 열린 고양시장배 보디빌딩대회 마스터스 60세 이상부와 피지크에서 우승했고, 마스터스 그랑프리까지 차지했다. 2021년 6월 말 열린 월드스포츠탑모델쇼(WSTMS) 미디엄(키 177cm 이하) 부분에서도 우승했다. 대회 출전을 위해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 땐 웨이트트레이닝을 주 6일 하루 1시간 30분 씩 한다. 3일 하고 하루 쉬는 일정으로 몸을 3분할로 나누어 한다. 하루씩 하체, 가슴과 어깨, 등과 코어로 나눠서 운동한다. 그동안 격일로 유산소운동(1시간 달리거나, 고정식 자전거 타기)을 해 지방도 태웠는데 이번엔 매일 유산소운동을 한 것이다. 식단관리도 중요하다.조 트레이너는 평소에는 ‘지속가능한 운동’을 강조하며 하루 3식을 4식으로 나눠 2식은 단백질과 채소 위주, 2식은 탄수화물 등이 포함 된 일반식을 한다. 그는 “근육을 만들 때 탄수화물을 안 먹어야 한다고 믿는데 그럼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일시적으론 가능하지만 평생 운동을 하려면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평소에도 운동을 즐겨 몸이 좋았지만 웨이트트레이닝을 집중적으로 하면서는 ‘조각’처럼 선명해졌다고 했다. 그는 “과거엔 근육의 볼륨만 있었다면 이젠 선명도가 높아져 사람들이 선호하는 몸이 됐다. 개인적으로도 달라진 몸에 만족한다”고 했다.70개국 이상을 돌아다닌 해외 전문가로 관광학 박사 학위까지 딴 조 트레이너는 요즘 사는 게 즐겁다. 그는 “은퇴하며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준비할까 고민이 많았다. 평생 내가 좋아했던 운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는 트레이너로 사는 게 행복하다. 즐기며 돈도 번다. 일석삼조의 직업이다”고 했다. 웨이트트레이닝 PT가 낮엔 띄엄띄엄 있다가 밤 10시에 끝나지만 하루가 즐겁다. PT가 없는 시간을 활용해 개인 운동을 한다.“나이가 들수록 근육이 중요합니다. 40세가 넘으면 매년 근육이 1%씩 빠집니다. 근육이 없으면 낙상 가능성이 높고 뼈도 쉽게 부러지게 됩니다. 근육을 키우면 젊음도 돌아옵니다. 근육=젊음이라고 보면 됩니다. 절대 늦었다는 때는 없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키우면 충분히 탄탄한 몸을 만들 수 있습니다.”조 트레이너는 100세 시대를 맞아 자신의 운동 노하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냥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시니어를 위한 전문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서울 목동 에스짐파리공원점과 인근 피트니스센터에서 프리랜서 PT(퍼스널 트레이닝)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20~60대 전 연령층을 지도한다. 어르신들에게는 자원봉사로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공부도 열심히 한다.“인체 해부학, 운동생리학 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 알아야 잘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체는 공부하면 할수록 재미있습니다. 지리탐구 하듯 인체를 탐구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조 트레이너는 운동은 지속가능해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나이 들면 운동을 싫든 좋든 해야 합니다.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이 운동에 가장 잘 들어맞습니다. 무슨 운동이든 의욕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자신의 몸이 적응할 수 있는 만큼만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의욕 넘친다고 하루에 너무 세게 하면 역효과만 납니다. 운동을 오래 지속하려면 즐겨야 합니다. 지나치게 욕심 부리다 골병 든 사람 많습니다. 천천히 꾸준하게 하면 우리 몸은 서서히 탄탄하게 바뀝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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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를 건강하게 해준 산, 평생 아내·친구들과 함께 탈 거예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제가 전주북중을 재수해서 갔어요. 그 땐 중학교 입시에 체력장이 있었는데 공 던지기하다 팔이 빠졌죠. 필기시험 1개 틀리면 체력장은 무조건 만점 받아야 하던 시절이었죠. 당연히 체력장에서 만점을 못 받았죠. 결국 전주북중은 물론 후기인 전주서중도 떨어졌어요. 그 이듬해 전주북중에 입학했어요.”20대 말부터 등산으로 평생 건강을 관리해온 이재희 국제영어대학원대(IGSE) 총장(67)에게 ‘학창시절 운동을 그렇게 못 했냐’고 질문하자 돌아온 답이었다. 이 총장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고 만났을 때 준비해온 간단 ‘서면 답변’ 제일 첫 머리에 ‘운동에 소질은 없는 것 같다’는 문구를 보고 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 총장은 교사와 교수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주기적인 등산으로 건강은 잘 챙기고 있었다. 일찌감치 운동이 건강의 비결이라는 것을 터득하고 있었다.“ROTC로 군대를 마친 뒤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맘에 맞지 않는 곳으로 발령 나면서 그만두고 교직에 몸담았어요. 제가 사범대 영어과를 나왔거든요. 그런데 저도 술을 잘 마시지만 다른 선생님들도 술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는 거예요. 이러다 죽겠다 싶어 살기위해 산에 다니기 시작했어요.”그렇다고 대한민국 명산을 돌아다니는 전문 등산가는 아니었다. 건강을 위해 집에서 가까운 산을 오르는 수준이었다. 척추협착증 판정을 받은 40대 초반부터 등산에 더욱 매진하게 됐다. 이 총장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경인교대에 부임해 초임 교수로 열심히 할 때 무리해서인지 척추협착증이 찾아왔다. 의사가 많이 걸으라고 해서 자가용을 버리다시피 하고 버스와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가급적 많이 걸었다. 산도 많이 찾았다. 2년 정도 지나서야 증세가 호전됐다. 하지만 척추협착증은 평생 걸어야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용히 공기 좋은 곳에 살려고 경기 안양시 인덕원 청계산 근처로 집을 옮겼는데 15분 정도 걸어야 전철에 닿는다. 걸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며 웃었다.이 총장은 1년 6개월여 전 정년퇴직한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생 즐기던 등산에 본격적으로 빠져 들었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싶었다. 대학 산악반 출신 친구들과는 4시간, 고교 친구들과는 3시간, 아내와는 2시간 산행을 했다. 주 2~3회 산에 오르는 즐거움으로 살고 있다.“하체가 튼튼해야 건강하다고 하잖아요. 허벅지가 20인치 이상만 되면 성인병이 없다죠. 전 아직 허벅지가 20인치가 넘어요. 지금까지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은 모르고 살았어요. 무엇보다 등산을 하면 잠을 잘 자고 쾌변을 보게 돼 좋습니다. 전 누우면 5분 안에 잠이 듭니다.”이 총장은 지난해 초 총장까지 지냈던 경인교대를 떠난 뒤 친구들과, 아내와의 산행을 시작했다. 그는 “산악반 친구들은 난이도가 높은 곳을 가자고 하는데 전 수도권 가까운 산을 고집 한다”고 했다. 집 근처 청계산과 관악산, 우면산 등 속칭 ‘대중교통’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을 탄다. 설악산, 한라산 등 명산들은 많이 가 봤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운동 차원에서 하는 등산은 가까운 곳이 더 좋기 때문이다.“이젠 높고 멋진 산보다는 안전한 산이 더 좋아요. 코스도 험하지 않은 곳을 고집하죠. 무엇보다 친구들과 사는 얘기하면서 오르기에는 수도권 산이 좋아요. 하산해 가볍게 막걸리 한잔하고 집에 가기에도 좋죠. 다들 은퇴한 친구들이라 서로의 고민도 얘기하면서 의지도 하고…. 간단하게 막걸리 마시고 한 끼 해결하고 가면 집사람에게도 수고를 덜어줘요. 굳이 다시 밥을 안 챙겨도 되잖아요. 하하….”이 총장은 지금은 출가한 두 딸에게도 운동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몸이 건강해야 뭐든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딸들을 꼭 산에 데리고 갔어요. 큰 딸에겐 이런 말도 했죠. ‘네가 커서 사회생활을 할 때 남자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려면 체력도 똑같아야 한다’고. 그래서 중학생이 됐을 때 수영을 가르쳤고, 방학 때는 테니스 레슨도 받게 했죠. 계양산과 관악산, 북한산을 오를 때도 데리고 다녔어요. 그런데 입시 때문에 다 중단하게 됐죠.”이 총장은 대한민국 아이들이 입시 때문에 학창시절 다양한 경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안타깝다고 했다. “체육을 비롯해 음악, 미술 등 예체능은 어릴 때 재능을 살려줘야 하는데 한국 교육시스템은 그렇지 못하다”고 아쉬워했다.서울대 사범대 시절 합창단으로 활약했던 이 총장은 사회생활 하면서도 합창단 출신들과 주기적으로 노래하는 모임을 가졌고, 최근엔 고교 친구들과 중창단을 구성해 매달 함께 노래 부르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는 “100세 시대를 즐겁게 살려면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시간만 보낼 수 있다.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며 함께 하는 시간도 즐겁다”고 했다.“노래 부르기 위해 발성하는 게 건강하고도 연결이 됩니다. 건강해야 목소리도 잘 나옵니다. 사람들 만나 노래 부르는 것 자체로도 즐겁잖아요. 제가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다니니 둘째 딸이 결혼할 때 저에게 축가를 불러달라고 했어요. 기뻤죠. 흔쾌히 불렀습니다.”이 총장은 아내 피순화 씨(64)와 함께 하는 시간도 늘렸다. 등산도 함께하지만 정년퇴직을 앞두고 본격 시작한 골프도 함께 치고 있다. 그는 “이제 제가 누굴 의지하며 살겠나. 친구도 좋지만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가급적 부부 동반으로 산행과 골프를 하고 있다. 여생을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사는 게 최고의 행복 아닌가”라고 말했다.이 총장은 이달 초부터 IGSE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산행 횟수는 줄었다. 그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많게는 주 3,4회 산에 올랐는데 이젠 주말에만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행히 학교 옆에 올림픽공원 몽촌토성이 있어 시간 날 때 머리도 식힐 겸 자주 걷는다. 짧지만 유익한 시간이다”고 했다.이 총장은 등산과 함께 테니스를 치며 건강을 다져왔다. “군대에서 매주 수요일은 전투체육의 날이었다. 광주 상무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전라남도 연식정구 여자선수들에게 정구를 배웠고 이후 제대한 뒤 테니스로 바꿔 정기적으로 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테니스를 사실상 포기했다. “최근 테니스 치고 나서 발바닥에 통증이 왔다. 이젠 힘이 달려 코트를 뛰어다니기도 힘들다. 조금 무리하면 몸 곳곳에서 이상 반응이 온다”고 했다. 그는 “과격한 운동보다는 즐겁게 사람들과 함께 산을 타는 게 최고의 운동”이라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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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에 시작한 등산 덕에 평생 성인병 모르고 살아”[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1년 6개월여 전 정년퇴직한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생 즐기던 등산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싶었다. 대학 산악반 출신 친구들과는 4시간, 고교 친구들과는 3시간, 아내와는 2시간 산행을 하고 있다. 이재희 국제영어대학원대(IGSE) 총장(67)은 20대 말부터 시작한 등산 덕분에 건강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 학창 시절 운동에는 소질이 없어 체력장 만점을 받지 못해 중학교 입시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주기적인 등산으로 건강은 평생 잘 지키고 있다. “ROTC로 군대를 마친 뒤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맘에 맞지 않는 곳으로 발령 나 그만두고 교직에 몸담았어요. 저도 술을 잘 마시지만 다른 선생님들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는 거예요. 이러다 죽겠다 싶어 살기 위해 산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대한민국 명산을 돌아다니는 전문 등산가는 아니었다. 건강을 위해 집에서 가까운 산을 오르는 수준이었다. 척추협착증 판정을 받은 40대 초반부터 더욱 등산에 매진하게 됐다. 이 총장은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경인교대에 부임해 초임 교수로 열심히 할 때 무리해서인지 척추협착증이 찾아왔다. 의사가 많이 걸으라고 해서 자가용을 버리다시피 하고 버스와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가급적 많이 걸었다. 산도 많이 찾았다. 2년 정도 지나서야 증세가 사라졌다. 하지만 척추협착증은 평생 걸어야 재발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하체가 튼튼해야 건강하다고 하잖아요. 허벅지가 20인치 이상만 되면 성인병이 없다죠. 전 아직 허벅지가 20인치가 넘어요. 지금까지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은 모르고 살았어요. 무엇보다 등산을 하면 잠을 잘 자고 쾌변을 보게 돼 좋습니다. 전 누우면 5분 안에 잠이 듭니다.” 이 총장은 지난해 초 총장까지 지냈던 경인교대를 떠난 뒤 친구들, 아내와의 산행을 시작했다. 그는 “산악반 친구들은 난도가 높은 곳을 가자고 하는데 전 수도권 가까운 산을 고집한다”고 했다. 경기 안양시 인덕원 집 근처 청계산과 관악산, 우면산 등 속칭 ‘대중교통’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을 탄다. 설악산, 한라산 등 명산들은 많이 가 봤기에 건강을 위해 운동 차원에서 하는 등산은 가까운 곳이 더 좋기 때문이다. “이젠 높고 멋진 산보다는 안전한 산이 더 좋아요. 코스도 험하지 않은 곳을 고집하죠. 무엇보다 친구들과 사는 얘기 하면서 오르기에는 수도권 산이 좋아요. 하산해 가볍게 막걸리 한잔하고 집에 가기에도 좋죠. 다들 은퇴한 친구들이라 서로의 고민도 얘기하면서 의지도 하고….” 서울대 사범대 시절 합창단으로 활약했던 이 총장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합창단 출신들과 주기적으로 노래하는 모임을 가졌고, 최근엔 고교 친구들과 중창단을 구성해 매달 함께 노래 부르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는 “100세 시대를 즐겁게 살려면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시간만 보낼 수 있다.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며 함께하는 시간도 즐겁다”고 했다. 이 총장은 아내 피순화 씨(64)와 함께하는 시간도 늘렸다. 등산도 함께하지만 정년퇴직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골프도 함께 치고 있다. 그는 “이제 제가 누굴 의지하며 살겠나. 친구도 좋지만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가급적 부부 동반으로 산행과 골프를 하고 있다. 여생을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사는 게 최고의 행복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이달 초부터 IGSE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산행 횟수는 줄었다. 그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많게는 주 3, 4회 산에 올랐는데 이젠 주말에만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행히 학교 옆에 올림픽공원 몽촌토성이 있어 시간 날 때 머리도 식힐 겸 자주 걷는다. 짧지만 유익한 시간이다”라고 했다. 이 총장은 ROTC로 임관해 배운 뒤 평생 주기적으로 치던 테니스도 사실상 포기했다. “최근 테니스 치고 나서 발바닥에 통증이 왔다. 이젠 힘이 달려 코트를 뛰어다니기도 힘들다. 조금 무리하면 몸 곳곳에서 이상 반응이 온다”고 했다. 그는 “과격한 운동보다는 즐겁게 사람들과 함께 산을 타는 게 최고의 운동”이라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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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발걷기 효과에 전국이 열풍…“이런 것은 조심해야”[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추석 연휴인 9월 10일 “말기암 판정 2개월 만에 완치… 맨발 걷기가 기적 만들어”란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과 9월 16일자 동아일보 A33면 “절망의 말기암 판정… 맨발 걷기로 두 달 뒤 건강 좋아져” 칼럼 여파로 전국에 맨발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9월 17일 오후 3시에 진행된 서울 대모산 맨발걷기숲길힐링스쿨엔 3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열리는 스쿨엔 평소 30~50여명이 참여하는데 이날은 경기 남양주 와부 금대산을 걷고 전립선 말기암을 극복했다는 박성태 씨(73) 스토리를 접하고 거의 10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찾은 것이다.2016년부터 맨발걷기숲길힐링캠프를 운영하고 있는 박동창 맨발걷기시민운동본부 회장(70)은 “추석 연휴부터 주말 산행에 맨발로 걷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서울 수도권 북한산과 관악산은 물론 영남알프스, 경남 창원 불모산, 제주도 한라산과 오름에서도 맨발로 걷는 인파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다.박 회장은 이런 맨발걷기 열풍에 “맨발걷기가 몸에 좋기는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도 있다”며 주의 사항을 강조했다.먼저 준비운동을 해야 한다. 걷기지만 맨발로 산을 오르는 운동이기 때문에 스트레칭과 각 관절을 돌려주는 준비운동을 해야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시선을 항상 1m 앞을 주시해야 한다. 맨발로 걷기 때문에 돌 조각이나 유리 조각 등 위험물을 피해서 걸어야 한다. 요즘 가을이라 밤송이가 떨어져 있어 밤 가시에 더 주의해야 한다. 셋째, 발을 질질 끌지 말고 또박 또박 걸어야 한다. 피부 손상을 막을 수 있다. 넷째, 사람들이 걷는 길만 걸어라. 옆길로 새면 가시 등 위험 물질을 밟아 다칠 수 있다. 다섯째, 파상풍예방접종을 맞아라. 혹 쇳조각 같은 것을 밟을 수 있으니 미리 조심하는 게 좋다. 파상풍예방접종은 10년에 한번만 맞으면 된다.맨발걷기의 효과를 직접 체험하고 관련 책을 다수 출간한 박 회장은 “맨발로 걸으면 지압효과와 접지효과(Earthing)로 면역력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맨발로 맨땅을 걸으면 지표면에 놓여 있는 돌멩이나 나무뿌리, 나뭇가지 등 다양한 물질이 발바닥의 각 부위와 상호마찰하고, 땅과 그 위에 놓인 각종 물질이 발바닥의 각 반사구를 눌러준다. 발바닥 자극은 오장육부 등 모든 신체기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고대 중국과 이집트에서부터 이어졌다.접지는 맨발로 땅을 밟는 행위다. 시멘트 아스팔트 등은 효과가 없다. 황톳길이 가장 좋다. 우리 몸에 30~60 밀리볼트의 양전하가 흐르는데 맨발로 땅을 만나는 순간 0볼트가 된다. 땅의 음전하와 만나 중성화되는데 이때 우리 몸에 쌓인 활성산소가 빠져나간다. 박 회장은 “원래 활성산소는 몸의 곪거나 상처 난 곳을 치유하라고 몸 자체에서 보내는 방위군이다. 치유하고 나면 활성산소는 몸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멀쩡한 세포를 공격해 악성 세포로 바뀌게 한다. 암 등 각종 질병이 활성산소의 역기능 탓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접지가 활성산소 제거에 효과적”이라며 “박 씨도 접지의 효과를 봤을 것”이라고 했다.일부에서는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반박하지만 박성태 씨를 비롯해 최근 맨발걷기로 건강을 되찾은 사례는 많다.박 씨는 1월말 전립선암 말기판정을 받고 맨발걷기로 2개월 만에 건강을 되찾았다. 박 씨 스토리다.“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정밀조사 결과 PSA(전립선 특이 항원) 수치가 935 ng/ml라는 겁니다. PSA 4 ng/ml 이하가 정상인데…. 전이가 돼 흉추 9, 10번이 시커멓게 썩었다고 하더군요. 의사가 더 치료가 불가능하니 그냥 집에서 운명대로 살다 가시라고 했어요.”청천벽력이었다. 포스코에서 오래 일했고 서울교통교사 연수원에서 교수로 일하면서도 건강을 위해 주기적으로 산을 찾았던 그였다. “대한민국에 내가 오르지 않은 산이 없다”고 할 정도로 등산에 열성적이었다. 충격에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딸 민정 씨(42)가 박동창 회장이 2021년 쓴 ‘맨발로 걸어라’란 책을 사다 줬다. ‘맨발로 걸으면 암도 이길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이었다. 박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고 집 근처 금대산을 찾아 맨발걷기를 시작했다.처음엔 맨발과 팔로 기어서 올랐다. “팔다리에 힘이 없어 한 100~200m 정도도 못 올랐다”고 했다. 그런데 한 일주일 기어오르니까 다리에 힘이 조금씩 생겼다. 그는“한달 정도 돼서는 왕복 4km를 걸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 2시간이면 다녀오는 길을 저는 4,5시간 걸었다. 그렇게 맨발로 걷고 2달여 만에 병원에 갔더니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4월 29일 검사에서 PSA 수치가 0.059ng/ml로 떨어져 있었다. 그는 “MRI(자기공명촬영) 결과 새까맣던 흉추도 하얗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말기암 판정 5개월여 뒤인 7월 29일 검사에선 PSA 수치가 0.008 ng/ml였다. 그는 “그 때 의사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고 했다. 박 씨가 말기암을 극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금대산은 맨발걷기 명소가 됐다. 박 씨가 걷는 새벽에 100여명, 하루 전체적으로는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대산을 맨발로 걷고 있다. 지역주민 외에 타지에서도 찾고 있다. 박 씨는 요즘엔 매일 금대산 황톳길 8km를 맨발로 4~5시간 걷고 있다.박 씨와 거의 동시에 금대산을 걷기 시작한 73세 남성은 뇌경색 수술 후유증으로 온 마비와 언어 장애가 개선됐다. 만성 습진으로 머리에서 진물까지 나던 정영신 씨(79)는 맨발걷기 5개월 만에 정상 피부를 되찾았다. 박 회장은 "요즘 안성기 씨가 앓고 있다는 혈액암 등 다양한 질병을 맨발로 걷고 극복한 사례가 맨발걷기시민운동본부 회원들에겐 많다"고 했다.2006부터 대전 계족산 황톳길을 거의 매일 맨발로 걷고 달리는 ‘마라톤 마니아’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63)은 “혈색이 좋아졌고 친구들로부터 젊어졌다는 소릴 듣는다”고 했다. 조 회장은 “술도 많이 마시는데 다음날 새벽 맨발로 달리고 나면 모든 피로가 날아간다”고 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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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세 교정, 체력증진 효과에 노르딕워킹 배우기 열풍 전국으로 확산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노르딕워킹이 강원도 인제까지 파고들었다. 다이어트와 자세 교정 등 노르딕워킹의 운동 효과가 알려지면서 지자체에서 지역민의 건강증진과 지역 알리기 차원에서 적극 배우기에 나선 것이다. 주연서 (사)국제노르딕워킹협회(INWA·International Nordic Walking Association) 한국지부(INWA KOREA) 사무국장(50)은 최근 “9월 5, 6일 강원도 인제에서 INWA 지도자과정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했다. 26, 27일에 2차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인제군(인제군청, 인제로컬투어사업단)이 수도권 관계 업체(서울도심권50플러스센터, (주)패스파인더 비콥 등)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인제 살리기’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주 국장은 “노령화 되는 지역민들에게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장기적으로 인제를 노르딕워킹 명소로 알려 사람들이 많이 찾게 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경기 부천성모병원 간호사회와 부천시 약사회, 부천지역 시민단체도 건강 증진을 위해 노르딕워킹을 시작했다. 3개 단체 동아리인 ‘워킹홀릭’은 INWA KOREA와 함께 ‘노르딕워킹 100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정옥 워킹홀릭 회장(중환자간호팀 응급의료센터 A Unit)은 “바른 자세와 바른 보행으로 몸의 통증은 없애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노르딕워킹 열풍이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노르딕워킹은 1990년대 중반 핀란드 등 북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도 2000년대 초중반 들어와 한 때 반짝 인기를 끌고 일부 마니아층에서만 즐기는 운동이었지만 최근 운동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 노르딕워킹은 노르딕 스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걷기 방법으로 ‘폴 워킹(Pole walking)’이라고도 한다. ‘노르드(Nord)’는 '북방(北方)'을 뜻하는 말로서, 노르딕 스키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발달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산지는 알프스 산악지방의 가파른 지형과는 달리 대부분 낮은 언덕과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긴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인 지역을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스키가 발달했다. 노르딕 스키는 낮은 언덕과 평지가 대부분인 발원지의 지형 특성이 반영되어 평지와 언덕을 가로질러 긴 코스를 완주하는 거리 경기 등으로 나뉘는데 평지와 언덕을 걷는 것으로 발전시킨 것이 노르딕워킹이다. 노르딕워킹이 주목받는 이유는 운동량과 자세교정이다. 하버드보건대학교 등 세계 유명대학 연구 결과 노르딕워킹의 운동효과는 다른 운동보다 뛰어 났다. 그 이유로 우리 몸 근육의 80~90%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주 사무국장은 노르딕워킹 효과를 체험하고 ‘노르딕워킹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주 국장은 2021년 7월 24일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에 ‘걷기만 했는데 확 빠져… 의사도 놀란 노르딕워킹 효과’로 쓴 인물이다. 그는 노르딕워킹으로 체력, 특히 심폐지구력이 좋아지는 효과를 직접 체득했다. 평소 요가와 수영, 골프, 사이클, 배드민턴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던 주 국장은 사업을 하면서는 주로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건강관리를 하고 있었다. 노르딕워킹을 접한 뒤엔 노르딕워킹에 집중하고 있다. 2016년부턴 모든 사업을 접고 지인을 통해 INWA KOREA에서 전문 강사로 활약하게 됐다. 주 국장은 체계적인 INWA 교육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주 국장은 네덜란드와 핀란드에 가서 전문 강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노르딕워킹의 장점은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걷게 해준다는 겁니다. 폴을 활용해 걷기 위해서는 상체에서 어깨의 움직임이 중요합니다. 상체는 어깨가 운동의 시작입니다. 발이 나갈 때 어깨도 함께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땅에 짚은 뒤 폴을 끝까지 밀어줘야 보폭이 커지고 운동량도 배가 됩니다.” 주 국장은 INWA의 10단계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보행, 바른 폴 사용법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폴을 잡고 걸으려 하는 순간 가슴이 펴진다. 가슴을 펴지 않으면 폴을 잘 사용할 수 없다. 자세교정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거북목, 굽어진 등도 교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우리 몸은 큰 근육을 잘 써야 에너지 소비가 잘 됩니다. 걸을 때 허벅다리 장딴지가 가동하는데 폴을 잡고 밀면서 걸으면 팔과 어깨 근육은 물론 대흉근과 견갑근, 광배근, 척추기립근 등 상체의 큰 근육도 힘을 쓰게 됩니다. 몸 전체 근육의 90% 이상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에너지 소비가 극대화 됩니다. 다이어트에 좋은 이유입니다. 하지만 최소 3주 이상해야 운동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한달 정도 하면 체중 변화는 크게 없지만 몸이 균형 있게 변합니다. 전체적으로 근육량이 늘고 지방이 없어집니다. 일종의 몸의 탈바꿈이라고 할까요. 3개월 이상 하면 다이어트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최소 하루 60~90분은 해야 합니다.” 주 국장은 노르딕워킹 3개월로 10kg을 감량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노르딕워킹은 잘못된 자세로 몸이 틀어진 학생들의 자세도 잡아줄 수 있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노르딕워킹을 하면 통증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걸을 때 무릎, 허리, 고관절 등에 통증이 있는 분들이라면 폴을 집고 걸으면 통증완화를 할 수 있습니다. 폴로 지면을 압박하기 때문에 무게를 분산시켜 줍니다. 자세 고정에 따른 통증완화도 됩니다. 특히 고관절이 틀어져 있는 분들에게 효과적입니다.” 노인 농업 인구가 많은 인제 등 인구집중 도시 외 지역에서 노르딕워킹을 보급하려고 하는 이유다. 힘든 농사일로 망가진 몸을 다시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운동이기 때문이다. 주 국장은 "걷기도 좋은 운동인데 제대로 걸으려면 노르딕워킹으로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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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절망의 말기암 판정… 맨발 걷기로 두 달 뒤 건강 좋아져”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금대산이 최근 맨발 걷기 명소가 됐다. 1월 말 전립샘암 말기 판정을 받고 맨발 걷기를 한 지 2개월 만에 나아졌다는 박성태 씨(73)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박 씨가 걷는 새벽에 100여 명, 하루 전체로는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대산을 맨발로 걷고 있다. 박 씨의 스토리가 그만큼 극적이었다.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정밀조사 결과 PSA(전립샘 특이 항원) 수치가 mL당 935ng(나노그램)이라는 겁니다. PSA 4ng 이하가 정상이라는데…. 전이가 돼 흉추 9, 10번이 시커멓게 썩었다고 하더군요. 의사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니 그냥 집에서 운명대로 살다 가라고 했어요.” 청천벽력이었다. 포스코에서 오래 일했고 서울교통공사 연수원에서 교수로 일하면서도 건강을 위해 주기적으로 산을 찾았던 그였다. “대한민국에 내가 오르지 않은 산이 없다”고 할 정도로 등산에 열성적이었다. 충격으로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딸 민정 씨(42)가 박동창 맨발걷기시민운동본부 회장(70)이 2021년 쓴 ‘맨발로 걸어라’란 책을 사다 줬다. ‘맨발로 걸으면 암도 이길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이었다. 박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고 집 근처 금대산을 찾아 맨발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맨발과 팔로 기어서 올랐다. “팔다리에 힘이 없어 100∼200m도 못 올랐다”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가량 기어오르니까 다리에 힘이 조금씩 생겼다. 그는 “한 달 정도 돼서는 왕복 4km를 걸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2시간이면 다녀오는 길을 나는 4, 5시간 걸었다. 그렇게 맨발로 걷고 두 달여 만에 병원에 갔더니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4월 29일 검사에서 PSA 수치가 mL당 0.059ng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는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 새까맣던 흉추도 하얗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말기암 판정 5개월여 뒤인 7월 29일 검사에선 PSA 수치가 0.008ng이었다. 그는 “그때 의사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고 했다. 맨발 걷기의 효과를 직접 체험하고 관련 책을 다수 출간한 박 회장은 “맨발로 걸으면 지압효과와 접지효과(Earthing)로 면역력이 좋아진다”고 했다. 맨발로 맨땅을 걸으면 지표면에 있는 돌멩이나 나무뿌리, 나뭇가지 등이 발바닥의 각 부위와 마찰하고, 지면 위 각종 물질이 발바닥의 각 반사구를 눌러 준다. 발바닥 자극은 오장육부 등 모든 신체기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고대 중국과 이집트에서부터 이어졌다. 접지는 맨발로 땅을 밟는 행위다. 시멘트 아스팔트 등은 효과가 없다. 황톳길이 가장 좋다. 우리 몸에 30∼60mV(밀리볼트)의 양전하가 흐르는데 맨발로 땅을 만나는 순간 0V가 된다. 땅의 음전하와 만나 중성화되는데 이때 우리 몸에 쌓인 활성산소가 빠져나간다. 박 회장은 “원래 활성산소는 몸의 곪거나 상처 난 곳을 치유하라고 몸 자체에서 보내는 방위군이다. 치유하고 나면 활성산소는 몸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멀쩡한 세포를 공격해 악성 세포로 바뀌게 한다. 암 등 각종 질병이 활성산소의 역기능 탓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접지가 활성산소 제거에 효과적”이라며 “박 씨도 접지의 효과를 봤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에서는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반박하지만 최근 맨발 걷기로 건강을 되찾은 사례가 많다. 박 씨와 거의 동시에 금대산을 걷기 시작한 73세 남성은 뇌경색 수술 후유증에 따른 마비와 언어장애가 개선됐다. 만성 습진으로 머리에 진물까지 나던 정영신 씨(79)는 맨발 걷기 5개월 만에 정상 피부를 되찾았다. 2006부터 대전 계족산 황톳길을 거의 매일 맨발로 걷고 달리는 ‘마라톤 마니아’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63)은 “잔병치레가 없고 친구들이 혈색이 좋아져 젊어졌다고 한다”고 했다. 박 씨는 요즘엔 매일 금대산 황톳길 8km를 맨발로 4∼5시간씩 걷고 있다. ‘맨발 걷기 전도사’가 된 그는 “다시 태어났는데 이젠 100세까지는 살아야겠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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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기암 판정 2개월 만에 완치…맨발 걷기가 기적 만들어”[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의사가 기적이라고 밖에 할말이 없다고 했어요. 정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등산 마니아 박성태 씨(73)는 1월말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는 “정밀검사 결과 의사가 더 치료가 불가능하니 그냥 집에서 운명대로 사시다 돌아가시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길어야 한두 달. 그런데 7개월여가 지난 지금도 그는 건강하게 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월 말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전립선암 말기라고 하더라고요. 전 베트남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라 중앙보훈병원에서 진단 받았습니다. PSA(Prostate Specific Antigen·전립선 특이항원·전립선암의 선별검사 및 치료 판정을 위한 종양지표지자 검사)가 935 ng/mL라는 겁니다. PSA 4 ng/Ml 이하가 정상이라는데…. 너무 놀라서 그동안 아무 증상이 없었다고 했더니 전립선암은 증상이 없다 갑자기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전이가 돼 흉추 9, 10번이 시커멓게 썩었다고 하더군요. 참 나…. 방법이 죽을 방법 밖에 없다니. 하느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한마디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포스코에서 오래 일했고 서울교통공사 연수원에서 교수로 일하면서도 건강을 위해 산을 찾았던 그였다. “대한민국에 내가 오르지 않은 산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말기 암이라니. 서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해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딸 민정 씨(42)가 박동창 맨발걷기시민운동본부 회장(70)이 2021년 쓴 ‘맨발로 걸어라’란 책을 사다 줬다. ‘맨발로 걸으면 암도 이길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책이었다. 박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책을 다 읽었고 맨발 걷기를 시작했다. “그 책을 읽고 맨발로 걸으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일어 설 수도 없었지만 벽을 잡고 섰고 걷는 연습을 했습니다. 한 보름 했더니 조금씩 걸을 수 있었죠. 그래서 집 근처 금대산을 찾았습니다.” 경기도 남양주 와부 금대산은 박 씨 집에서 10분정도 떨어진 곳이다. “처음엔 맨발과 팔로 기어서 올랐어요. 다리와 팔에 힘이 없어 걸을 수가 없었죠. 한 100~200m 정도도 못 올랐죠. 기어오르면서 진짜 많이 울었습니다. ‘왜 나만 이런 병이 걸렸을까’ 원망도 많이 했죠. 한 일주일 기어오르니까 다리에 힘이 조금씩 생기는 것을 느끼겠더라고요. 한달 정도 돼서는 왕복 4km를 걸을 수 있었죠. 다른 사람들 2시간이면 다녀오는 길을 저는 4,5시간 걸었어요. 그렇게 맨발로 걷고 2달여 만에 병원에 갔더니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4월 29일 검사에서 PSA 수치가 0.059ng/mL로 떨어진 것이다. 그는 “MRI(자기공명촬영) 결과 새까맣던 흉추도 하얗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말기암 판정 5개월여 뒤인 7월 29일 검사에선 PSA가 0.008 ng/mL로 떨어져 있었다. “그 때 의사 선생님이 기적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죠.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맨발걷기가 도대체 어떤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맨발걷기의 효과를 직접 체험하고 ‘맨발걷기의 즐거움(2006)’ ‘맨발걷기의 기적(2019)’ ‘맨발로 걸어라’ 등 책을 쓴 박동창 회장은 맨발걷기가 면역력을 높이는 이유에 대해 지압효과(Reflexology)에 더해 접지효과(Earthing)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압은 고대 중국과 이집트 등지에서 사용했고 1913년 윌리엄 피츠제럴드 박사가 몸의 특정 부위에 압력을 가하면 연관 부위에 마취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피츠제럴드 박사는 신체의 각 부위를 10개의 동등한 수직구역으로 구분하고 한 부위에 압력을 가하면 해당 부위의 모든 신체기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존 세러피(Zone Therapy)’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맨발로 맨땅을 걸으면 지표면에 놓여 있는 돌멩이나 나무뿌리, 나뭇가지 등 다양한 물질이 발바닥의 각 부위와 상호마찰하고, 땅과 그 위에 놓인 각종 물질이 발바닥의 각 반사구를 눌러준다. 자연 지압인 것이다. 한의학에서도 맨발걷기를 권장하고 있다. 지압 중에선 발바닥 아치가 주는 효과도 중요하다. 박 회장은 “인체공학적으로 아치가 탄력적으로 움직이면서 발밑에서부터 피를 잘 돌게 해야 하는데 신발을 신으면서 그런 효과가 사라졌다. 신발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설명했다. 신발 깔창 때문에 아치가 압축 이완이 덜되고 부도체인 고무가 접지도 막고 있다는 것이다. 박동창 회장은 “박성태 선생님이 산에 다니고도 암에 걸린 이유는 신발의 문제다. 신발을 신고 다니면 몸 안에서 활성산소가 계속 생성이 돼가지고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럼 병이 걸린다. 주기적으로 맨발로 흙길을 걸어야 몸속의 나쁜 물질이 다 빠져 나간다”고 했다. 접지는 맨발로 땅을 밟는 행위다. 시멘트 아스팔트 등은 효과가 없다. 박 회장은 “황톳길이 가장 좋다”고 했다. 우리 몸에 30~60 밀리볼트의 양전하가 흐르는데 땅과 맨발로 만나는 순간 0볼트가 된다. 땅의 음전하와 만나 중성화된다. 이때 우리 몸에 쌓인 활성산소(Oxygen Free Radical)가 빠져나간다. 박 회장은 이를 맨발걷기 접지의 항산화효과로 불렀다. 박 회장은 “활성산소는 양전하를 띤 상태에서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다. 몸속을 돌아다니며 전압을 올린다. 원래 활성산소는 몸의 곪거나 상처 난 곳을 치유하라고 몸 자체에서 보내는 방위군이다. 그러한 상처를 공격하여 치유하고 나면 활성산소는 맨발과 맨땅의 접지를 통해 몸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몸의 멀쩡한 세포를 공격해 악성 세포로 바뀌게 한다. 우리 몸에 암이나 심혈관 질환 등 각종 성인병이 발생하는 이유가 활성산소의 역기능에서 비롯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2010년 미국의 전기기술자인 클린트 오버가 접지 원리를 발표했고 심장전문의 스티븐 시나트라 박사 등 의사들과 공동작업해 그 치유효과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 결과를 ‘어싱(Earthing)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2013년 미국 ’대체 및 보완의학학회지‘에 발표된 ’접지는 혈액의 점성을 낮춰준다(스티븐 시나트라 등)‘는 논문에 따르면 끈적끈적한 점성이 있는 혈액이 맨발걷기 40분 뒤 깨끗해졌다. 또한 적혈구 제타전위(Zeta Potential·표면 세포간 밀어내는 힘)를 평균 2.7배 높여줘 혈류 속도가 2.7배로 빨라졌다. 박 회장은 이를 ’천연의 혈액희석효과‘로 불렀다. 박 회장은 “맨발걷기는 우리 몸의 중요한 에너지인 ATP(아데노신삼인산)생성에도 큰 도움이 된다. ATP가 활성화 되면 피부도 깨끗해지고 노화도 중단된다. 맨발걷기는 스트레스 받으면 올라가는 호르몬 코르티솔 분비도 안정시켜준다”고 말했다. 맨발걷기는 두뇌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 박 회장은 “머리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혈액 순환이 잘돼 머리가 깨끗해진다. 일본 토리야마유치원을 보자. 어릴 때 3살부터 6살까지 맨발로 뛰고 걷게 하는데 집중력이 엄청 좋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이들이 3년 동안 책을 2000권 씩 읽는다.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자신감도 상승한다”고 했다. 맨발걷기로 새 생명을 얻은 박성태 씨는 7월 이후 매일 금대산 황톳길 8km 맨발로 걷고 있다. 매일 하루 4~5시간을 맨발로 걷는다. 그는 “이제 제 직업이 맨발걷기가 됐다”고 했다. 박 씨가 맨발걷기로 암을 치유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금대산은 ‘맨발걷기 명소’가 됐다. 박 씨가 걷는 새벽에 60여명 전체적으로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대산을 맨발로 걷고 있다. 박 씨는 이제 ‘맨발걷기 전도사’가 됐다. 처음 책을 사다준 딸 민정 씨는 “정말 믿기지 않아요. 암을 극복할 수 있는 여러 책 중 ‘맨발로 걸어라’가 있었다. 맨발로 걷는 게 아빠 암 치료의 70~80% 역할을 했다면 먹는 것도 중요했다고 본다. 암을 극복하는 식습관도 중요해 엄마와 제가 아빠 음식 관리를 많이 했다”고 했다. 송홍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과학연구실장(52)은 "산을 4~5시간 씩 걸을 수 있다는 것은 50~60대의 체력은 된다는 의미다. 산의 오르막 내리막을 오가는 운동으로 체력도 좋아졌고 그로 인해 면역력도 좋아졌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박 씨는 말한다. “저를 보고 따라 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어요. 제가 ‘맨발로 걸어서 암이 완치됐다’고 얘기하면 안 믿을 것 같아서 ‘맨발로 걸어라’라는 책을 읽으라고 하죠. 그 책을 보고 따라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9월 6일 박 씨의 연락을 받은 박 회장도 금대산을 찾았다. 서로 전화 통화하다 처음 봤다고 했다. 박 씨와 박 회장은 주민 10여 명과 함께 이날 금대산을 맨발로 걸었다. 박 회장은 2020년 9월 24일자 동아일보 양종구 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에 ‘면역력 높이는 숲길 맨발걷기를 아시나요’, 9월 26일 dongA.com ‘간암 말기 환자 ’완치‘ 기적…맨발걷기의 놀라운 효과’로 소개 됐던 인물이다. 박 씨는 “박 회장님 때문에 제가 살았습니다. 새 생명을 얻었는데 이젠 100살까지는 살아야겠습니다”며 활짝 웃었다.※박동창 회장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 대모산에서 맨발걷기힐링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남양주=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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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끔 사돈 만나 테니스를…다양한 사람들 만날 수 있는 운동”[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20년 4월 결혼한 딸 상견례를 테니스 코트에서 했다면 믿겠어요? 테니스 치는 저와 남편을 따라다니던 딸도 테니스를 쳤고 그러다보니 테니스 치는 남자를 사귀었죠. 사위 아버지도 테니스를 친다고 해 아예 상견례를 테니스장에서 했습니다. 우리 아들도 테니스에 빠져 있습니다. 사돈댁 자녀들도 아버지의 영향으로 테니스를 쳤습니다.” 고미주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사무차장(55)은 남편 곽종배 인천연수구체육회 회장(60)의 권유로 연애시절인 22살 때 처음 라켓을 잡은 뒤 30년 넘게 코트를 누비고 있다.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친 것은 결혼하고 첫 애를 낳은 뒤인 1996년부터예요. 부부들끼리 모여 테니스 치는 모임이 있었는데 서로 애도 봐주며 테니스를 즐기는 재미가 너무 좋았어요. 운이 좋았죠. 선수 출신 부부도 있어서 잘 배울 수 있었어요. 전 잘 못 쳤는데 라인 그어주고 심판도 봐주면 선수 출신들이 포핸드 백핸드 난타를 쳐줬죠. 그러면서 실력이 쌓였어요.” 한국 동호인 테니스에서 고 사무차장은 유명인사다. 지금까지 동호인 대회에서 130회 가까이 우승을 차지했다. 여성부는 개나리부(초급)와 국화부(고급)가 있는데 국화부에서 랭킹 1위를 무려 12년 연속하기도 했다. 동호인 대회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도록 복식과 혼합복식만 열린다. A~E 등급이 있어 챔피언끼리는 한 조가 될 수 없는 규정도 있다. 고 사무차장은 30대 때 남편 곽 회장과 혼합복식에 출전해 2번 우승한 적도 있다. “처음엔 남편에게 배웠고 나중엔 개인 레슨을 받았어요. 아직 게임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29세 때 첫 대회에 나가서 개나리부 결승까지 올랐는데 30세 이상만 참가 가능하다고 해서 실격당한 적이 있죠. 30세 때 개나리부 우승했고 바로 국화부로 올라가서도 우승했죠. 국화부에서만 120번 넘게 우승했습니다.” 2019년엔 ‘테니스 스승’인 공기훈 코치와 짝을 이뤄 업스트림테니스 동호회 초청 국내 최강 프로암 혼합복식 인비테이셔날에서 우승해 상금 600만 원을 받기도 했다. 운동선수 출신은 아니었지만 ‘스포츠 본능’이 있었다. 그는 “대회 처음 나가면 대부분 떨지만 전 어떤 상황에서도 떨지 않았다. 그게 장점인 것 같다. 운동선수는 아니었지만 학창시절 달리기는 잘했다”고 했다. 테니스 입문 초창기엔 “코트에서 살았다”고 할 정도로 거의 매일 테니스를 친 것도 실력 향상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집 앞 테니스코트로 유모차 끌고 가서 하루 종일 있다 집에 왔다. 그 땐 정말 테니스에 미쳐 살았다”고 했다. “가끔 제가 테니스 선수를 했으면 어땠을까도 생각해봤어요. 주위에서 선수했으면 정말 잘했을 것 같다고 해서요. 운동신경 좋은 딸도 선수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봤죠. 하지만 이렇게 즐기고 있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동호인 최강으로 군림하며 얻은 혜택도 많다. 라켓부터 유니폼, 운동화까지 후원을 받았다. 윔블던, US오픈, 프랑스오픈, 호주오픈 등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도 현장에서 많이 봤다. KATA가 챔피언들에게 주는 기회였다. “윔블던에만 4번 갔는데 파란 잔디 위에서 흰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잘 꾸며진 코트에서 테니스 치는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윔블던은 유니폼과 운동화를 흰색으로 통일해야 합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코트에 들어가기 위해 티켓을 들고 2~3시간 여유 있게 기다리는 모습도 장관이었죠. 테니스를 제대로 즐기는 문화가 부러웠습니다.” 메이저대회 현장을 지켜보며 메이저 22승을 거둔 라파엘 나달(36·스페인)의 팬이 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볼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 투지가 너무 좋아요. 정말 열심히 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나달 플레이를 본 사람은 다 나달 사랑에 빠져요.” 테니스에 대한 열정이 넘친 그를 본 성기춘 KATA 회장(72)이 2000년 초반 사무차장으로 영입했다. 1987년 만들어진 여성테니스 동호회 풀잎클럽의 회장을 최근까지 맡기도 했다. 고 사무차장은 개인사업을 하면서도 20년 넘게 동호인 테니스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는 “언제 이런 상을 받아보겠냐?”며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다. “테니스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딸 결혼할 때였죠. 저와 남편이 한조, 사위와 사돈이 한조로 복식을 치기도 했어요. 지금도 가끔 사돈 만나서 테니스 칩니다. 또 테니스의 장점은 다양한 분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업가, 의사, 변호사, 정치인까지…. 테니스도 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고. 그 재미도 쏠쏠합니다.” 요즘은 테니스를 주 3~4회 치고 있다. 매주 화요일 모이는 풀잎클럽과 매주 화요일 목요일 일요일 치는 명문클럽을 나가고 있다. 동호인 남녀 최고수들이 모인 명문클럽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테니스를 친다. 그는 집이 있는 인천에서 경기 남양주체육문화센터 테니스코트까지 오가며 테니스를 치고 있다. 고 사무차장은 최근 열린 2022서울컵 동호인테니스대회에서 32강에서 졌다. “개나리부에서 우승하고 올라온 국화부 초보에게 경험 기회를 주기 위해서 함께 나갔는데 졌다”고 했다. 이젠 우승도 중요하지만 테니스 자체를 즐기고 있다. “이젠 제가 ‘언니’ 소리를 가장 많이 들어요. 그만큼 나이를 먹었단 얘기겠죠? 대회 우승하려면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그렇다보면 손목도 아프고. 이젠 즐기려고 합니다. 다른 것도 좀 하면서 살고 싶어요. 주 3~4회 치면서 이젠 인생을 건강하게 즐길 겁니다.” 고 사무차장은 최근 골프에도 입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테니스 코트는 한때 폐쇄됐지만 골프장은 폐쇄되지 않아 골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는 “테니스는 일정한 공간에서 다양한 기술을 발휘하며 격렬하게 뛰는 맛이 있다면 골프는 자연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즐길 수 있다”고 했다. 테니스와 골프가 주는 재미가 다르기 때문에 함께 즐길 생각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테니스가 더 좋다. “테니스는 생활이죠. 매일 밥 먹듯 안 하면 안 되는…. 가족보다 동호인들과 더 자주 만나요. 누가 안 나오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죠. 평생 이렇게 살다보니 이젠 테니스 없인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테니스 때문에 행복하고 건강합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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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 결혼 상견례도 코트서… ‘밥 먹듯 테니스’로 즐거운 인생”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결혼 전 남편의 권유로 테니스 라켓을 처음 잡았다.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친 것은 결혼하고 첫애를 낳은 뒤인 1996년부터. 부부들끼리 모여 테니스 치는 모임이 있었는데 서로 애도 봐주며 테니스를 즐기는 재미에 빠져 30년 넘게 코트를 누비고 있다.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던 딸과 아들도 테니스에 빠졌다. 고미주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사무차장(55)은 “테니스가 있어 행복하고 건강하다”고 했다. “운이 좋았어요. 부부끼리 테니스 치는 모임에 들어갔는데 너무 좋았어요. 선수 출신 부부도 있고. 부부는 테니스 치고 아이들은 놀고. 게임 안 하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돌봤죠.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어요. 전 잘 못 쳤는데 라인 그어주고 심판도 봐주면 선수 출신들이 포핸드 백핸드 난타를 쳐줬죠. 그러면서 실력이 쌓였어요.” 한국 동호인 테니스에서 고 사무차장은 유명인사다. 지금까지 동호인 대회에서 130회 가까이 우승을 차지했다. 여성부는 개나리부(초급)와 국화부(고급)가 있는데 국화부에서 랭킹 1위를 무려 12년 연속 하기도 했다. 동호인 대회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도록 복식과 혼합복식 경기만 열린다. A∼E등급이 있어 챔피언끼리는 한 조가 될 수 없는 규정도 있다. 고 사무차장은 30대 때 남편인 곽종배 인천연수구체육회 회장(60)과 혼합복식에 출전해 두 차례 우승하기도 했다. “처음엔 남편에게 배웠고 나중엔 개인 레슨을 받았어요. 아직 게임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29세 때 첫 대회에 나가서 개나리부 결승까지 올랐는데 30세 이상만 가능하다고 해서 실격당한 적이 있죠. 30세 때 개나리부 우승을 했고 바로 국화부로 올라가서도 우승했죠. 국화부에서만 120번 넘게 우승했습니다.” 동호인 최강으로 군림하며 얻은 혜택도 많다. 라켓부터 유니폼, 운동화까지 후원을 받았다. 윔블던, US오픈, 프랑스오픈, 호주오픈 등 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 참관도 많이 했다. KATA가 챔피언들에게 주는 기회였다. 그는 “윔블던에만 4번 갔는데 파란 잔디 위에서 선수들이 흰색 유니폼을 입고 테니스 치는 장면이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며 메이저 22승을 거둔 라파엘 나달(36·스페인)의 팬이 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볼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 투지가 너무 좋다”고 했다. 그의 플레이도 투지가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테니스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그를 본 성기춘 KATA 회장(72)이 2000년 초반 사무차장으로 영입했다. 1987년 만들어진 여성 테니스 동호회 풀잎클럽의 회장을 최근까지 맡기도 했다. 고 사무차장은 개인사업을 하면서도 20년 넘게 동호인 테니스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테니스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딸 결혼할 때였죠. 딸과 예비 사위도 테니스를 쳤고 사위 아버지도 테니스광이란 사실을 알았죠. 2020년 4월 결혼식을 앞두고 상견례를 인천 송도의 테니스코트에서 했죠. 저와 남편이 한 조, 사위와 사돈이 한 조로 복식을 치기도 했어요. 지금도 가끔 사돈 만나서 테니스 칩니다.” 테니스 초창기엔 “코트에서 살았다”고 할 정도로 거의 매일 테니스를 쳤다. 지금은 주 3∼4회 치고 있다. 매주 화요일에 모이는 풀잎클럽과 매주 화, 목, 일요일 치는 명문클럽을 나가고 있다. 동호인 남녀 최고수들이 모인 명문클럽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테니스를 친다. 그는 집이 있는 인천에서 경기 남양주체육문화센터 테니스코트까지 오가며 테니스를 치고 있다. 고 사무차장은 최근 골프에도 입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한때 테니스코트는 폐쇄됐지만 골프장은 폐쇄되지 않아 골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는 “테니스는 일정한 공간에서 다양한 기술을 발휘하며 격렬하게 뛰는 맛이 있다면 골프는 자연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즐길 수 있다”고 했다. 테니스와 골프가 주는 재미가 다르기 때문에 함께 즐길 생각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테니스가 더 좋다. “테니스는 생활이죠. 매일 밥 먹듯 안 하면 안 되는…. 가족보다 동호인들과 더 자주 만나요. 누가 안 나오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죠. 이렇게 살다 보니 이젠 테니스 없인 못 살 것 같아요.”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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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중대회 막자 학생선수 자퇴… 부작용 손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2의 신유빈과 조세혁’을 막기 위해 지난 정부의 체육정책을 손본다. 문체부는 29일 “학생선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시행한 지난 정부의 스포츠혁신위원회(혁신위) 권고에 대해 점검하고 현장 얘기를 들어본 결과 현실에 맞지 않다고 판단해 빠른 시간 안에 개선책을 내놓기로 했다”고 밝혔다. 혁신위는 2019년 6월 학생선수 관련 △출석 인정일수 축소 및 학기 중 주중 대회 금지(교육부) △학기 중 주중 대회의 주말 대회 전환(문체부) △소년체전 개편(문체부·교육부) 등을 해당 부처에 권고했고 단계적 시행에 들어갔다. 선수와 학부모, 지도자는 물론이고 스포츠 전문가들은 주말 및 방학에만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권고안이라고 반발했다. ‘탁구 신동’ 신유빈(18·대한항공)과 김나영(17·포스코에너지)이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실업팀에 직행했고, 올해 윔블던테니스 14세부 남자 단식 챔피언 조세혁도 중학교를 자퇴하는 등 역효과도 나타났다. 골프와 테니스, 탁구 등 개인 종목 선수들은 일찌감치 학교를 그만두고 방송통신중고교 등을 다니며 운동하고 있는 게 현실이 됐다. 문체부는 “혁신위 권고안이 취지와 달리 부작용이 많았다. 학습권과 운동권이 조화롭게 보장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기 어려워 진학을 포기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교육부와 협력해 학교체육 정책을 정상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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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 등산, 암벽등반, 사이클…몸치가 운동마니아 되기까지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판사→변호사→미국 골프대학 유학→스포츠 전문 변호사?→변호사….’ 심상치 않은 인생 역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운동을 못하는 ‘몸치’에서 운동 마니아로 변화하는 유익한 몸부림이었다. ‘공부벌레’였던 법무법인 원 신용락 변호사(62)가 골프를 시작으로 등산, 암벽등반, 사이클 등을 즐기며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가족력인 간 질환으로 고생했지만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다. “간 질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영향인지 B형 간염으로 고생했어요. 판사 시설 누적된 피로감에 힘겨워하다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오히려 매일 늦잠을 자는 등 다소 나태한 삶이 이어졌죠. 집사람이 아침마다 ‘제발 동네 한바퀴라도 돌고 오라’고 했지만 쉽지 않았죠. 그 때 친구들 성화에 새벽 골프를 치며 골프 맛을 알았습니다.” 신 변호사는 결국 미국 골프유학까지 다녀오면서 인생이 바뀌게 됐다. “1998년 초 변호사 개업해 일하다보니 고민이 많았어요. 정의로운 사람만 대리하는 것도 아니고…. 새천년인 2000년을 앞두고 세상이 확 바뀔 것 같은 희망적인 얘기들이 나오기에 ‘나도 새로운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미국 유학을 생각했죠. 그 때 선배 한분이 책을 보내줬습니다.” 신 변호사는 마크 매코맥의 ‘하버드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이란 책을 읽고 스포츠 전문 변호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매코맥은 예일대 법학대학원을 나온 변호사로 세계적인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인 IMG를 창설한 인물이다. 신 변호사는 “매코맥은 어떤 일을 하든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코맥은 학창시절 골프 선수로도 활약했고 골프의 전설 아놀드 파머와 친하게 지냈다. 결국 세계적인 스포츠에이전트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국내에 골프 전문 변호사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골프 산업에도 관심이 생겨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경희대 골프레저산업 최고위과정을 수료하며 유학준비를 한 뒤 2000년 여름 가족과 함께 미국 샌디에이고로 떠났다. 샌디에이고골프아카데미에서 2년간 골프에만 집중했다. 주 3회 라운드를 포함해 매일 골프를 치면서 골프 지도자자격과 매니지먼트 두 과정을 복수 전공했다. 그 때 운동이 인간에게 주는 가치를 체득하게 됐다. “몸을 움직이니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골프는 격한 신체운동은 아니지만 끝까지 공에만 집중하다보면 세상만사를 잊을 수 있죠. 물론 걸으면서 공을 치다보니 신체 건강도 따라왔죠.” 신 변호사는 골프는 자연친화적인 ‘게임’이라고 했다. “골프는 자연에 가서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게임을 하는 것으로 놀이에 가깝습니다. 격렬한 운동이라기보다는 정신 수양이죠. 온통 볼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마음을 비우는 게 중요하죠. 공 좀 친 골퍼들이 얘기하죠. ‘힘 빼는 데 3년’이라고.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려놓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부담 없이 즐기는 게 더 중요합니다.” 신 변호사는 골프 테크닉은 물론 골프 역사와 경영, 마케팅, 조직관리. 리조트 식음료 관리까지 골프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골프업계에서 하고 싶은 사업 구상도 많이 했지만 아직 한국의 스포츠마케팅시장이 그를 받아줄 여력이 되지 않았다. 레슨 프로로 활동하기도 했고 경기 이천의 뉴스프링빌CC 대표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변호사의 길을 다시 걸어야 했다. 사법연수원에서 ‘골프회원권 계약’ 등 골프를 강의를 했고, 골프 등 스포츠 관련 법률 대리를 하기도 한다.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친구가 제 사업 구상에 대해 ‘아직 국내에선 쉽지 않다’며 말렸죠. 사실 국내 스포츠마케팅 시장이 그리 크지 않았고,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현장이 달랐어요. 그래서 다시 변호사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일에 집중하다보니 몸 관리에 소홀하게 됐다. 그는 “친구가 도와달라고 해서 2005년부터 경기 의정부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함께 운영했는데 힘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운동을 등한시 하다보니 몸이 좋지 않았죠. 2006년 쯤 등산 마니아인 친구가 산에 가자고 해서 따라 다니기 시작했어요”고 했다. 인터넷 산악회 동호인인 친구를 따라 오른 산은 힘들었다. 늘 헐떡거리며 끝에서 맴돌았다. 그해 겨울 눈 쌓인 북한산을 오른 뒤 설산에 빠져 매일 산에 오르다보니 체력이 좋아졌다. “눈 쌓인 북한산의 장관이 절 사로잡았죠. 그래서 거의 매주, 그리고 시간만 나면 북한산에 올랐어요. 다음해 봄부턴 산 오르는 게 즐거웠고 전국의 명산은 거의 다 올랐죠. 무박이일 산행, 겨울 설산 야영, 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그 때쯤 암벽등반에도 빠졌고 인수봉에도 올랐다. 그는 “암벽등반은 버킷리스트에 있었는데 산을 오르다보니 암벽 고수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바로 암벽에 오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신 변호사는 “등산은 대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가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힘들지만 목표로 한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신 변호사는 2020년 사이클에 빠져들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과 환갑기념으로 전국 각지 여행을 할 계획이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 탓에 틀어지게 되면서 사이클을 타게 된 것이다. 그는 “재택근무하며 유튜브를 보다 자전거로 일본 여행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래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이클 전도사를 자청하는 친구 2명의 도움을 받아 타기 시작해 그해 인천에서 부산까지 국토종주 633km를 완주했다. 신 변호사는 “어릴 적 자전거 탄 경험이 있어서인지 쉽게 탈 수 있었다. 사이클이 이렇게 매력적인지 새롭게 다가왔다”고 했다. “저도 한 때 4대강 사업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이클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스포츠 시설 하나는 제대로 만들어놨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자전거길, 산책길은 물론 축구장 야구장 등 정말 많은 시설을 만들어 국민들이 언제든 스포츠와 운동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사이클은 시간 날 때 바로 탈 수 있어 좋았다. 새벽에 일어나 집 근처 50km, 주말에 100km. 친구들과 만나 경기도 강원도 맛 집을 정해놓고 달려갔다 와도 됐다. 그는 “차가 막힐 땐 사이클 타고 광화문, 서초동, 여의도를 오가며 일한 적도 있다”고 했다. 생활 속의 운동이 가능했다. ‘나이 들면 근력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위 권유에 피트니스센터에 등록을 하기도 했지만 코로나19 탓에 한 때 헬스클럽이 폐쇄되면서 가지 않게 됐다고 했다. 그는 “개인 PT까지 끊었는데 무용지물이 됐다. 아직은 등산 사이클로 충분하다. 필요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한 때 73타(핸디 1)를 쳤던 골프실력은 이제 보기플레이어(90대 타수)가 됐지만 사이클을 타는 게 더 즐겁다. 땀 흘린 만큼 심신이 달련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몸 쓰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건강해지면서 피로감도 사라졌다. “골프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사람도 모아야 되잖아요. 사이클은 혼자서도 탈 수 있어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운동이 시작되죠. 뜻 맞으면 여럿이 함께 할 수도 있죠. 이렇게 좋은 운동이 어디 있을까요?” 신 변호사는 어느 새 사이클 전도사가 돼 있었다. “사이클은 타다보면 갑자기 아이디어도 샘솟습니다. 그럼 잠시 세우고 메모를 해둡니다. 사이클 타다 SNS로 업무 지시도 하죠. ‘온 바이크’ 근무라고 할까? 심신 건강에 참 좋아요.” 그는 “이제 진짜 100살까지 사는 시대가 됐어요. 은퇴하고도 시간이 많이 남습니다. 뭐든 해야 합니다. 그럼 건강해야 하죠. 운동이 주는 즐거움도 있지만 운동으로 찾은 건강으로 새 인생도 개척할 수 있습니다”고 강조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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