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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이 임박했다는 공포가 연일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일본의 주가 수준은 사상 최대의 금융완화를 실시하기 직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코스피도 7개월 만에 1,900 선이 무너졌다. 13일 일본 도쿄(東京) 주식시장에서 닛케이평균주가는 전날보다 6.35% 폭락한 12,445.38엔으로 마감했다. 지난달 23일(―7.32%)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큰 하락폭이다. 달러당 엔화 환율은 94.2엔으로 전날보다 약 2엔 하락(엔화 가치는 상승)했다. 중국 등 다른 아시아 주요 증시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미국이 지난해 9월부터 단행한 제3차 양적완화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외국인 자금이 아시아 증시를 대거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단오절 연휴(10∼12일) 이후 처음 장이 열린 중국 상하이증시의 종합지수는 전날보다 2.83% 떨어진 2,148.36에 마감했다. 한국의 코스피는 전날보다 1.42% 내린 1,882.73에 장을 마치면서 지난해 11월 19일(1,878.10)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로 떨어졌다. 미국의 양적완화 중단에 대한 우려와 외국인의 매도세가 겹친 탓이었다. 특히 갤럭시S4의 판매 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도 2.02% 하락해 7일 이후 하락폭이 11%에 이르렀다. 이날 외국인은 9523억 원어치를 팔아 2011년 8월 10일 1조2759억 원을 순매도한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가장 큰 매도세를 보였다. 외국인은 7일부터 이날까지 3조2000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전문가들은 18, 19일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출구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방침을 밝혀야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날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증시는 일제히 1%를 넘는 하락세로 시작했지만 차츰 낙폭을 줄였다. 13일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고용과 소비 지표 호조에도 전날보다 17.73포인트(0.12%) 떨어진 하락세로 출발했다.황형준 기자·도쿄=박형준 특파원·문병기 기자 constant25@donga.com}

일본 아사히신문이 독도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의 영유권 문제를 다룬 한글 e북(전자책) ‘영토마찰은 이렇게 일어났다’(사진)를 출간했다. 영토마찰의 역사적 배경, 각 국가의 주장, 지식인의 분석 등을 담았다. 주요 인물들의 발언록, 각국이 맺은 조약의 내용, 연표 등도 부록으로 수록했다. 전체 4부, 126쪽. 정가는 9000원이지만 7월 말까지 50% 할인 행사를 한다. 아사히신문은 지난해부터 ‘일본 원전폭발 비극의 진상을 밝힌다-아사히신문이 전하는 동일본 대지진의 진실’, ‘후쿠시마를 바라보며-동일본 대지진·원전사고 그 후’ 등 한글 e북 2권을 발간했다.}

한국에서 전력대란 우려가 커진다는 소식을 들으면 떠오르는 일본인이 있다. 아즈마 가나코(東奏子·33·여) 씨. 평범한 중소기업 회사원 남편(38)을 둔 가정주부인 그는 약 1년 전 “4인 가족의 한 달 전기료 500엔(약 5600원)”이라는 경험담을 일본 언론에 투고해 화제가 됐다. 지난해 6월 도쿄 특파원으로 단신 부임해 가전이라곤 TV 하나밖에 없던 첫 달에 전기료가 3100엔이었다. 일본 가정의 월평균 전기료는 약 1만 엔이다. 그런데 어떻게 500엔어치 전기로 생활이 가능할까. 지난해 7월 말 그의 투고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 직접 아즈마 씨를 만나러 갔다. ‘시골에서 무척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말이다. 시골은 맞았다. 도쿄(東京)역에서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아키루노(あきる野) 시 무사시이쓰카이치(武藏五日市)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려 아즈마 씨 집까지 가는 동안 3층 이상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정 형편은 빈곤과는 거리가 멀었다. 2층짜리 목조 주택은 연면적이 165m²(약 50평)나 됐다. 놀라운 것은 그의 전기 절약법. 방 7개 가운데 전등이 달린 곳은 욕실 부엌 거실 등 단 3곳뿐. 전등도 밤에 오래 켜두는 게 아니다. 집안일은 해가 있을 때 끝내고 여섯 살과 세 살짜리 두 아이는 오후 7시면 재운다. 밤에 화장실을 갈 때는 태양광 충전 랜턴을 사용한다. 노랑이도 이만한 ‘전기 노랑이’가 있을까 싶다. “냉장고가 없다”는 말에 기자가 깜짝 놀라자 그는 부엌으로 가 간장에 절여 놓은 오이와 마늘이 담겨 있는 항아리를 보여줬다. 절인 음식은 오랜 기간 상온에 놔둬도 된단다. 생선이나 육류는 가게에서 그날 먹을 만큼만 사온다. 그는 “냉장고를 없애니 전기료가 500엔대로 떨어졌다. 5분 거리에 있는 슈퍼마켓이 우리 집 ‘슈퍼 냉장고’”라고 말했다. 둘째 아들이 천기저귀를 사용하지 않게 된 2011년 봄부터는 세탁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매일 저녁 목욕을 한 후 그 물을 양동이에 받아놓고 빨래할 때 사용한다. 세탁기를 쓸 때에 비해 물 사용량이 10분의 1로 준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절약하는 전기료는 월 1300엔. 모두 집을 살 때 빌렸던 은행 대출금 상환에 사용한다. 기자가 방문한 오후 2시 아즈마 씨 집에서 전기를 쓰고 있는 것들은 전화기 선풍기 전등 1개가 다였다. 그것도 선풍기와 전등은 기자가 손님으로 방문했다고 켠 것이라고 했다. 밤에 전등을 끄고 전화 콘센트까지 뽑으면 이 집의 순간 사용 전력은 ‘제로’가 된다. 미안한 마음에 기자는 선풍기를 슬그머니 껐다. “이런 삶이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조금만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했다. 남편도 냉장고와 일부 전등을 없애겠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단다. 애들도 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 잘 견딘다고 했다. 잔병치레도 안 한단다. “남이 시켜서 절전하면 절대 오래가지 못합니다. ‘옛날 전기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궁리하고 이웃집 할머니들에게 옛날 생활을 물어봤어요. 하나하나 절전에 성공할 때마다 큰 성취감을 느낍니다.” 아즈마 씨는 마치 ‘노랑이 전기 생활’을 즐기는 것 같았다. ‘손빨래가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오히려 아들과 하는 놀이가 하나 더 생겼다. 세탁기 버튼만 누를 때는 모르던 즐거움”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취재를 다녀온 뒤 약 1년 만에 최근 아즈마 씨에게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여전히 전기료는 500엔 내외지만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낸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아즈마 씨처럼 생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국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 아즈마 씨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면 전력 대란 우려도 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가 경영난 타개를 위해 12일부터 인터넷 유료화에 들어간다. WP는 독자에게 매달 인터넷판에 게재된 20건의 기사와 멀티미디어를 무료로 제공하고 초과분에 대해 구독료를 부과하는 ‘계량형 유료화’ 방식을 채택했다. 개인 PC 구독료는 매달 9.99달러(약 1만1000원), 모바일 구독료는 14.99달러이다. 뉴욕타임스는 2011년 3월부터 온라인 유료화를 시행하고 있다.}
남북 당국자 간 회담 재개 전망에 대해 세계 주요국과 언론도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연례 기자회견에서 남북 당국 간 대화 재개 움직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쌍방이 접촉과 대화를 회복하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훙 대변인은 “우리는 줄곧 남북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것을 지지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각국은 어렵게 찾아온 대화 분위기를 소중히 여겨 정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잘 알지 못하지만 양측 사이에 그런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지금의 대립 상태보다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CNN은 “북한이 베이징(北京)에 특사를 보낸 뒤 이번 회담 제의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회담 제의를 지난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과 연결해 해석했다. 일본 NHK 방송은 “북한이 지난달 중순 이후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총리자문역)의 방북을 받아들이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를 중국에 파견하는 등 대화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열자는 북한의 제의로) 장기간 정체된 남북 대화도 가까운 시일 내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베이징=이헌진·도쿄=박형준 특파원 mungchii@donga.com}
일본 연간 신생아가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5일 발표한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신생아는 103만7101명으로 그동안 통계 중 연간 신생아 수가 가장 적었다. 일본 총무성이 4월 발표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일 기준으로 총인구는 1억2751만5000명. 2011년 같은 시점에 비해 28만4000명(0.22%) 줄어든 것으로 감소한 수와 감소율 모두 인구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50년 이래 가장 컸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이 7월 참의원 선거 공약에 이른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를 중앙 정부가 주최한다는 항목을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고 교도통신이 5일 보도했다. 통신은 이날 당 관계자를 인용해 아베 신조 정권이 2월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중앙정부 행사로 승격시키지 않은 만큼 7월 참의원 선거 공약에도 포함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자민당은 지난해 12월 총선을 앞두고 시마네(島根) 현이 2006년부터 매년 2월 22일 지방 행사로 개최해온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중앙정부 차원의 행사로 치르겠다고 공약했지만 정작 2월 22일에는 ‘한일 관계를 고려한다’며 승격을 미룬 채 정무관(차관급)을 보내는 식으로 대응했다. 또 자민당은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를 기념해 ‘주권 회복의 날 행사’를 치른 것과 관련해 7월 참의원 선거 공약에 ‘앞으로도 (70주년 등) 계기가 있을 때 개최한다’는 내용을 포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를 이끌어냈던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67·사진) 주오대 교수는 “군 시설로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만든 나라는 (일본 외에) 없다”고 말했다. 위안부 제도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4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요시미 교수는 이날 오사카 시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소를 군 시설의 일부로 설치했으며 내무성과 총감부(식민지 점령지를 통치하기 위해 만든 관청)도 깊이 관여했다”며 “하시모토 시장은 국가가 위안소를 조직적으로 만들었다는 인식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일본군 또는 관헌(관청)의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가 없다’는 하시모토 시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민간업자가 사기와 감언이설, 인신매매로 여성을 연행한 것을 군이 인식했다면 여성을 풀어줘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관헌이 (여성을) 데려갔다는 증언도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거주, 외출의 자유, (성관계를) 거부할 자유가 없는 성노예였다”고 강조했다. 앞서 하시모토 시장은 지난달 27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제도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며 “2차 대전 때 미국군과 영국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에도 전쟁터에서의 성 문제는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4일 기자회견은 요시미 교수가 “하시모토 시장의 발언으로 명예가 손상됐다”며 발언 철회와 사죄를 요구하는 공개질의서를 이날 오사카 시청에 제출하면서 이뤄졌다. 지난해 8월 하시모토 시장이 기자단과의 질의에서 “요시미 교수가 말한 위안부 강제연행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데 대한 반박을 공개질의서에 담았다. 요시미 교수는 질의서에서 “나는 일관되게 위안소에서 강제가 일어났다고 주장해 왔고 (위안부 모집의) 위법성을 지적해 왔다. 그런 나의 연구 근간을 부정하고 사회적 평가를 현저하게 손상시켰다”고 하시모토 시장을 비판했다. 요시미 교수는 1992년 1월 일본 방위청(현 방위성)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문제에 직접 관여한 사실이 담긴 공문서 6점을 발견해 아사히신문에 제보했다. 그 후 일본 정부는 진상조사를 벌였고, 1993년 8월 ‘일본군이 강제로 위안부를 모집하는 데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아베노믹스 효과’ 등으로 순풍에 돛을 단 듯 나아가던 일본 경제가 주춤하고 있다. 주가 환율 금리가 모두 일본 정부의 의도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야당은 아베노믹스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미국 양적완화가 조기에 축소될 것이라는 관측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4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환율은 장중 한때 99.4엔까지 하락(엔화 가치 상승)했다. 미국 금융완화가 조기에 축소될 수 있다는 관측이 금융계에서 나오자 투자가들이 달러를 팔고 비교적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엔화를 대거 사들인 것이다. 지난달 10일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엔을 넘어선 이후 25일 만에 다시 두 자릿수로 일시 되돌아왔다. 엔화 강세 움직임은 곧바로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 앞서 4월 4일 일본은행이 시중 화폐 공급량을 2년 안에 2배로 늘리겠다는 내용의 파격적 금융완화 조치를 발표하자 닛케이평균주가는 15,627.26엔(5월 22일 종가 기준)까지 지속적으로 올랐지만 5월 말부터 큰 폭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4일 주가는 13,533.76엔. 하루 전보다는 271.94엔 올랐지만 전체 기조는 하락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금리도 정부의 기대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행이 시중에 대규모로 돈을 풀면 금리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개인 소비를 늘려 디플레이션의 덫을 벗어나고 경제를 선순환으로 되돌린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었다. 실제 장기금리의 지표인 10년 만기 국채 금리(수익률)는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계획 발표 직후인 4월 5일 0.315%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4월 5일 이후 장기금리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시중 자금이 주식시장에 한꺼번에 쏠리면서 10년 만기 국채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게 직접적 원인이었다. 4일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0.860%까지 치솟았다. 장기금리가 뛰면 주택 및 가계대출 금리도 덩달아 뛰면서 가계 소비가 위축된다. 기업 투자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일본 정부는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제지표를 애써 무시했다.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경제재생담당상은 4일 기자회견에서 최근 주가 하락과 엔화 가치 급등에 대해 “그동안 엔화 가치 하락이나 주가 상승이 급격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조정은 당연히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에노 야스나리(上野泰也) 미즈호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기간 일본 경제가 금융완화의 온탕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과민하게 반응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내년에는 소비세 인상이라는 악재가 있기 때문에 일본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며 “결국 일본 정부가 얼마나 탄탄한 신성장전략을 내놓느냐에 따라 일본 경제의 상승 혹은 하락이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노믹스 인기에 기를 펴지 못하던 제1야당인 민주당은 모처럼의 기회를 잡았다. 가이에다 반리(海江田萬里) 민주당 대표는 3일 기자회견에서 “아베노믹스의 독은 국채가격 폭락과 장기금리 상승”이라며 “현재의 주식, 채권시장 상황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아베노믹스가 물가를 상승시키고 금리를 급등락시켜 서민 생활을 힘들게 할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는데 최근 그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3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고 진단하면서 독일의 올해 경제 성장률 예상치를 종전의 0.6%에서 0.3%로 0.3%포인트 낮췄다. 미국의 5월 제조업지수도 49.0을 보여 2009년 6월 이후 가장 낮았다. 이에 따라 일본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조정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에서 만 28세 무소속 후보가 집권 자민당이 후원한 전직 시의회 부의장을 꺾고 최연소 시장에 당선됐다. 고용 확대를 내세워 20대 젊은이들로부터 많은 표를 얻은 것이 승리의 주요 요인이었다. 2일 치러진 인구 5만5000여 명의 기후(岐阜) 현 미노카모(美濃加茂) 시 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후지이 히로토(藤井浩人) 후보(사진)는 자민당의 후원을 받은 무소속 모리 유미코(森弓子·58) 후보를 꺾었다. 자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후지이 시장은 1994년 만 27세로 당선돼 일본에서 역대 최연소 시장으로 이름을 남긴 도쿄(東京) 도 무사시무라야마(武藏村山) 시의 시시다 고타로(志志田浩太郞) 전 시장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나이가 어리다. 1984년 7월생인 후지이 시장은 2007년에 나고야(名古屋)공대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정치가의 꿈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원 시절 약 3개월 동안의 동남아시아 도보 여행. 그의 블로그에 따르면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생기 넘치는 동남아 주민들과 정치를 이야기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활력 없는 일본을 되살리는 정치가를 목표로 삼았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스위스 계열 UBS은행 홍콩지점으로 빼돌린 돈 일부가 일본 부동산 매입을 위한 차명 법인을 만드는 데 쓰인 단서를 검찰이 포착해 수사 중인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차명 재산 및 비자금의 해외 세탁과 자산 증식이 동시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윤대진)는 CJ그룹 계열사 일본 법인장 배모 씨가 2006년 12월 4일 일본 도쿄의 부동산 매입을 위해 부동산관리회사 팬재팬을 설립한 자금이 스위스 UBS은행 홍콩 지점의 이 회장 계좌에서 유입된 단서를 포착해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다. 30일 본보가 도쿄 법무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팬재팬 설립자금은 3537만 엔(약 3억9000만 원)이다. 배 씨가 대주주인 팬재팬은 2007년 1월 도쿄 소재 CJ재팬 빌딩을 담보로 신한은행 도쿄지점에서 240억 원을 대출받아 도쿄 아카사카(赤坂)의 빌딩을 사들여 임대사업을 벌여 왔다. 팬재팬이 보유한 아카사카 빌딩이 결국 이 회장 소유 아니냐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배 씨는 이 회장의 차명회사에 회사 자산을 담보로 제공해 배임과 횡령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CJ그룹 전 재무2팀장 이모 씨가 2007년 5월 이 회장에게 보낸 협박성 편지에서 UBS은행 홍콩지점에서 빠져나간 팬재팬 설립자금 3537만 엔을 이 회장 돈으로 볼 만한 단서를 포착했다. 이 씨는 편지에서 ‘홍콩의 회장님 돈을 일본에서 (부동산 매입을 위한 법인설립) 자금으로 사용하고…’라는 취지의 표현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미 팬재팬 설립자금이 UBS은행의 이 회장 계좌에서 나갔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홍콩과 싱가포르에 계좌 추적 공조도 요청했다. ▼ “홍콩의 회장님 돈 日에서 사용하고…” CJ 前재무팀장 편지가 결정적 단서 ▼檢, 홍콩-싱가포르에 계좌추적 요청… 차명 의심 수백개 계좌 금융사 5곳금감원, 다음주 특별감사 나서기로또 검찰은 대출금 240억 원 중 현재까지 확인된 변제액 25억 원의 출처도 조사 중이다. 25억 원 중 일부는 아카사카 빌딩 임대 소득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다만 UBS은행의 예금 일부가 세탁 과정을 거쳐 대출금을 갚는 데 쓰였다는 의혹도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이 씨가 편지에서 ‘회장님 결재’라고 표현한 부분을 확인하고 이 회장의 지시 및 공모 여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특히 이 씨는 ‘제가 말씀드린 대로 일본에서 돈 몇 푼 안 들이고 임대사업을 해서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라며 자신의 업무 성과를 자랑하는 내용도 편지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자신이 일본 현지 차명법인 설립, 부동산 매입과 임대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당시 그룹 고위 임원 A 씨와 함께 일본 출장을 다녀온 사실을 편지에서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수백 개로 추정되는 CJ그룹의 차명 의심 계좌가 개설된 금융기관들에 대해 금융감독원에 특별검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차명 의심 계좌들이 개설된 금융기관은 은행과 증권사 등 5곳 안팎이다. CJ그룹 주거래은행인 우리은행, 그리고 CJ그룹 일본법인장 배 씨의 팬재팬에 대출해 준 신한은행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만약 금융기관들이 CJ그룹에 대해 다수의 차명계좌를 개설, 관리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줬다면 중대한 일이라 판단돼 그 실태를 검사하도록 의뢰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다음 주 중 해당 금융회사에 대한 특별검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30일 “CJ그룹 관련 계좌가 개설된 은행뿐 아니라 차명계좌를 통한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되는 증권사에 대한 조사를 통해 시세조종이 있었는지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해외 차명계좌를 통해 CJ그룹의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의혹이 커진 만큼 그룹 관련 외환거래의 적법성과 금융실명제법 위반 여부를 강도 높게 조사할 계획이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이날 충남 아산시 순천향대에서 열린 ‘캠퍼스 금융토크’ 행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필요하다면 CJ그룹과 금융권의 거래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그게 금감원의 책무”라고 말했다.전지성 기자·도쿄=박형준 특파원·홍수용 기자 verso@donga.com}
‘위안부 정당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 오사카(大阪) 시장 겸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에 대한 오사카 시의회의 문책결의안이 부결됐다. 하시모토 시장이 “결의안이 통과되면 시장 직을 사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기 때문이다. 30일 지지통신에 따르면 오사카 시의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하시모토 시장이 오사카 시정을 크게 혼란시켰다”며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는 문책결의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문책결의안이 통과되면 하시모토 시장이 시장 직을 사퇴하고 재선거를 실시할 것”이라는 마쓰이 이치로(松井一郞) 일본유신회 간사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문책결의안 찬성’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시의회 의원 중 일부가 “시장이 사퇴하면 시정 혼란을 피할 수 없다”며 문책 반대로 돌아서면서 결국 결의안은 부결됐다.}
일본이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같은 첩보조직 창설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만들면서 내각정보조사실에 인적 정보 수집을 전문으로 하는 ‘휴민트(Humint)’ 전담 조직 설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휴민트는 영화 ‘007’의 제임스 본드처럼 사람이 활동해 수집한 인적 정보를 뜻한다. 사람과 접촉해서 정보를 알아내기 때문에 상대의 내밀한 의도까지 파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일본은 이 같은 첩보 기능이 없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정보 기능을 담당해 온 조직은 내각정보조사실이었다. 국내, 국제, 경제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왔다. 2008년부터는 북한 중국 및 테러를 전담하는 6명의 정보분석관도 배치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공개된 정보로 정세를 평가하는 데 주력했다.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는 신문에 “폐쇄적인 북한이나 국제 테러조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일본판 첩보원 조직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28일 열린 전문가 간담회에서 NSC 설치 법안과 내각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총리와 관방장관, 외무상, 방위상이 정기적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하고 내각관방 산하에 ‘국가안전보장국’이라는 상설 사무국을 설치할 예정이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검찰이 29일 신한은행을 압수수색한 배경이 관심을 모은다. 검찰은 신한은행 도쿄지점이 2007년 부동산관리회사 ‘팬(PAN) 재팬’ 주식회사에 240억 원을 대출해 준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2002∼2011년 CJ그룹 일본법인장을 지낸 배모 씨(56)가 운영해 온 것으로 알려진 ‘팬 재팬’은 2006년 12월 4일 설립됐다. 이 회사는 CJ그룹의 계열사가 아니라 배 씨가 대주주인 별도 법인이다. 검찰은 CJ그룹의 계열사가 아닌 이 회사가 CJ일본법인이 소유한 도쿄(東京) 미나토(港) 구 니시신바시(西新橋)에 있는 CJ재팬 빌딩을 담보로 신한은행 도쿄지점에서 240억 원을 대출받은 뒤 아카사카(赤坂) 지역에 또 다른 빌딩을 샀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팬 재팬은 대출금을 매년 분할해서 납입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25억 원가량을 갚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CJ 측이 해외에 빼돌린 돈으로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는 방식을 통해 돈을 세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현재는 CJ의 다른 계열사의 일본 법인장을 맡고 있는 배 씨에게 소환을 통보했지만 도쿄에 거주 중인 배 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응하지 않고 있다. 본보 취재팀이 29일 도쿄 법무국 증명서에 나와 있는 배 씨 거주지를 찾았지만 배 씨가 살고 있지 않았다. 취재팀이 도쿄 법무국에서 발급받은 증명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처음엔 아카사카에 있는 팬 재팬 빌딩에 주소지를 뒀지만 불과 열흘 뒤에 니시신바시에 있는 CJ재팬 빌딩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취재팀이 CJ재팬빌딩 본사를 찾아 1층의 입점 안내표를 살펴봤지만 팬 재팬이라는 회사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이름은 있지만 사무실이 없는 ‘페이퍼컴퍼니’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증명서를 살펴보면 이 회사는 사탕과 감미료, 보석류를 판매하는 동시에 영화와 음악을 거래하고, 부동산 매매·임대·중개를 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취급하는 곳으로 돼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 회사의 부동산 관리업무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사가 각종 부동산을 차명으로 사들여 수익을 내고 이를 통해 비자금을 세탁하는 등 이 회장의 비자금 창구로 이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도쿄=박형준 특파원·장선희 기자 lovesong@donga.com}

하시모토 도루(橋下徹·사진) 일본 오사카(大阪) 시장 겸 일본유신회 공동대표가 27일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한 피해자들의 증언은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며 또다시 망언을 이어갔다. 일본의 위안부제도에 대해 수차례 사과하면서도 “일본 정부나 군이 조직적으로 여성을 납치하거나 인신매매한 증거는 없다”며 기존 주장을 꺾지 않았다. 이 같은 그의 발언에 대해 해외 언론뿐 아니라 일본 언론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기자회견은 하시모토 시장이 앞서 13일 “전쟁 중에 위안부제도는 필요했다” “주일 미군이 풍속업(향락업)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말해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은 데 대해 “진의를 밝히겠다”고 해 이뤄졌다. 먼저 하시모토 시장은 “언론이 나의 말을 오해했다”는 주장부터 펼쳤다. 그는 “2차 대전 때 주요 국가들이 위안부제도를 운영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에서도 성(性) 문제는 존재했다. 그 맥락에서 (위안부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며 “하지만 위안부를 모집한 일본은 반성하고 위안부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게 나의 진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회견에서 ‘반성’과 ‘사과’라는 용어를 각각 다섯 번이나 써가며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과거사를 부정하는 본심을 숨기지는 못했다. 그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한 고노담화에 대해 “증언은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 고노담화는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고 규정했다. 이어 고노담화의 대부분 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정부나 군이 조직적으로 관여한 것은 명확하지 않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에 고노담화가 좀더 명확하게 그 문제를 기술해야 한다”고 수차례 반복했다. 하시모토는 또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발표문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법적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측에서 이견이 있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 문제를 포함해 국제사법재판소 등에서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시장이 “반성한다”고 하면서도 과거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이어가자 기자들 사이에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기자가 “다시 태어난다면 남성으로 태어나겠느냐, 여성으로 태어나겠느냐”라고 묻자 하시모토 시장이 답을 하기 전에 좌석에서 “위안부로 태어나라”고 조롱했다. 다음 달 미국 방문을 앞두고 있는 하시모토 시장은 주일미군 지휘관에게 “병사들의 욕구 해소를 위해 풍속업을 더 활용하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자회견에서 풍속업에 대한 질문은 전혀 없었다. 회견이 끝난 후 한 일본 기자는 “하시모토 시장이 ‘국가의 직접적 관여’에 집착하고 문제를 축소하고 있다. 그럼 국가가 직접 관여하지 않으면 일본의 위안부제도가 문제없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이날 공개질의를 한 20명 가까운 기자 중 하시모토 시장의 발언에 공감을 표시하는 기자는 한 명도 없었고 모두 비판적으로 질문했다. 한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7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취임 후 첫 내외신 합동기자회견에서 최근 일본 정치인들의 잇단 과거사 망언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외교수장으로서 이례적으로 높은 강도라고 느껴질 정도로 작심한 듯한 발언을 내놨다. 그는 “연이은 일본의 역사 퇴행적 행동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의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했고 “(일본에서 나오는) 여러 말은 국제사회의 상식에 어긋나는 민망하고 창피스러운 언급”이라고도 했다. 또 “일본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정상급은 물론이고 여타 고위급 교류도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박형준 특파원·이정은 기자 lovesong@donga.com}
동북아시아의 정치 외교적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 독일 총리처럼 진정성 있는 사과를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의 외교안보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의 조너선 테퍼먼 편집장은 25일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 기고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731 훈련기 탑승’은 사고로 보이지만 주변국들은 매우 격하게 반응했다고 평가했다. 아베 정권이 헌법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위상을 바꾸려 하는 것 역시 군사적으로 ‘작은 움직임’에 불과하지만 주변국들을 오싹하게 했다고 테퍼먼 편집장은 분석했다. 그는 이 두 가지 사안의 중심에 야만적인 일제 침략의 역사가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나치 만행에 무릎 꿇고 사과한 사례 등을 거론하며 “70년 이상 묵은 갈등의 실타래를 끊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분명하고 포괄적인 사과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1997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내각 당시에도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직접 보여주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국회답변서를 각료회의에서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아사히신문이 26일 보도했다. 1993년 8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가 발표된 이후 각 정권은 고노담화를 답습했다. 하지만 2007년 1차 아베 내각이 “군과 관헌(관청)의 강제연행을 보여주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각료회의에서 결정했고 그 후 많은 우익들이 고노담화를 부정할 때 군의 강제연행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다만 하시모토 내각은 답변서에서 “고노담화는 (위안부 피해자 등에 대한) 증언 청취 등도 참고해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라고 밝혀 담화의 의미를 평가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총리의 거주 공간인 공저(公邸)가 ‘유령’ 소동에 휘말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뚜렷한 설명 없이 취임 이후 5개월이 지나도록 입주하지 않자 ‘유령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 급기야 가가야 겐(加賀谷健) 민주당 의원이 최근 “총리 공저에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진짜인가”라고 질의했고 일본 정부는 24일 “알지 못한다”고 공식 답변했다. 총리 집무실로 사용되는 공저는 1929년 지어졌다.}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공동대표 겸 오사카(大阪) 시장의 위안부 망언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여성 각료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합법이었다고 주장했다. 24일로 예정됐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하시모토 대표의 면담은 취소됐다.24일 교도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국제사면위원회(국제앰네스티) 등 전 세계 비정부기구(NGO) 68개 단체는 23일 하시모토 시장의 위안부 정당화 발언을 비난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조치를 강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23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알렉산드르 루카셰비치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최근 일본 정치권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국수주의적 수사가 점점 더 높아지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행정개혁담당상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위안부 제도라는 것 자체가 슬픈 것이지만 전시 중엔 합법이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에는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하시모토 대표의 망언과 맥락을 같이하는 발언이다.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7), 길원옥 할머니(84)는 이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통해 “하시모토 시장의 잘 짜인 사죄 퍼포먼스 시나리오에 들러리를 설 수 없다”고 밝히고 면담을 거부했다.하시모토 대표는 오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일본이 국가 의지로서 여성을 납치하거나 인신매매한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는 현재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한편 외교부는 24일 이나다 행정개혁담당상의 ‘위안부 제도가 전시 중엔 합법’이라고 말한 데 대해 “여성 존엄과 인권을 중대히 모독하고 반인도적 범죄를 옹호하는 상식 이하의 발언이다.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사카=배극인·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오키나와(沖繩) 중부 요미탄(讀谷) 촌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지바나 쇼이치(知花昌一·64) 씨. 그는 미군기지 철폐를 주장하며 각종 집회에 참석해왔다. 일장기인 히노마루(日の丸)를 불태워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다. 하지만 ‘오키나와 독립’을 주장한 적은 없었다. 피를 흘려 투쟁해야 독립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그건 무리라고 봤기 때문이다. 비가 오던 21일 지바나 씨의 집을 방문한 기자에게 그는 “올해부터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키나와 주민이 어떤 주장을 해도 중앙정부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정부에 항의하는 최후 수단이 바로 독립”이라고 말했다. 최근 오키나와에서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었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 모임과 단체도 생겼다. 왜 지바나 씨 같은 사람이 늘고 있을까.○ 잊을 수 없는 분노 22일 오키나와 기노완(宜野灣) 시의 사키마(佐喜眞)미술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그림 앞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멈췄다. 가로 8.5m, 세로 4m 크기의 오키나와전도(戰圖).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상 전투가 벌어졌던 오키나와 전쟁을 그린 것이다. 가장 섬뜩한 장면은 언니와 여동생이 상대방 목에 매단 줄을 당겨 서로 죽이는 것이다. 바로 옆에는 형이 동생의 가슴에 죽창을 찌르는 장면도 있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집단 자살을 묘사한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출판된 ‘고등학교 류큐·오키나와사’를 보면 1000명 가까운 주민이 “집단 자결하라”는 군부의 명령을 받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일본군은 수류탄을 나눠줬다. 가족끼리 원을 그리고 모여 수류탄을 터뜨렸다. 간혹 불발도 있었다. 그 경우 사랑하는 형제자매를 죽이고 자신도 자결했다. 당시 미군에 붙잡히면 잔혹 행위를 당한다는 유언비어가 만연했다. 가족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끊는 게 마지막 애정 표현이었다. 섬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2만 명이 오키나와 전쟁에서 사망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본 군부가 미군의 본토 공격을 막기 위해 오키나와에서 총력전을 벌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또 민간인에게 집단 자결을 명령한 일본군은 미군에 투항해 살아있는 모습을 봤다. 그때부터 오키나와 주민들은 본토에 대해 지울 수 없는 적개심을 가지게 됐다. 오키나와 제1의 도시인 나하(那覇) 시내의 해군사령부 지하 터널에는 오키나와 전쟁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옛 류큐 왕국의 왕이 살던 슈리 성 아래에는 군부가 피신했던 터널이 아직도 있다.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과거 일본군의 만행을 떠올린다. ○ 차별과 무시는 아직 현재진행형 “지금 헬기 한 대가 학교 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소음 속에 우리 아이들이 편히 공부할 수 있겠습니까.” 21일 오후 기노완 시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출입문.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아카미네 가즈노부(赤嶺和伸·59) 씨는 “오스프리(미군 수직이착륙기) 배치 반대, 미군 철수”를 외쳤다. 그는 기자에게 “미군이 주둔하면서 오키나와 주민의 인권은 사라졌다. 범죄를 저지른 미군이 부대로 도망가면 경찰이 제대로 처벌할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일본 전체의 미군기지 중 74%(면적 기준)가 오키나와에 몰려 있다 보니 각종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오키나와 현에 따르면 1972년부터 2010년까지 미군의 범죄 건수는 5705건으로 월평균 약 13건이다. 성폭행도 수시로 일어난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에서는 어린이용 ‘방범 부저(벨)’를 판매하고 있다. 주된 구매자는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 여성이다. 미군기지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귀머거리’다. 오키나와 주민 약 10만 명이 지난해 말 ‘오스프리 결사반대’를 외치며 데모를 벌였지만 결국 후텐마 기지에 오스프리가 배치됐다. 기노완 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후텐마 기지를 현 밖으로 이전해 달라는 요청도 수년째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현 북부 나고(名護) 시 헤노코(邊野古)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오타 마사히데(大田昌秀·88) 전 오키나와 지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오키나와 주민들 중에 ‘독립하자’는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지금처럼 강하지는 않았다”며 “만약 일본 정부가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로 이전한다면 사상 최악의 충돌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높아지는 ‘독립 쟁취’ 목소리 최근 오키나와 주민들은 본토로부터 이중, 삼중으로 배신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28일 오키나와가 미군 지배 아래 들어간 굴욕의 날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정부 행사로 ‘주권회복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당시 일왕에 대해 만세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상당수 오키나와 주민은 전쟁 당시의 아픔을 떠올렸다고 한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방문해 “풍속업(매춘업)을 더 활용하라”고 말했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의 발언도 자존심을 건드렸다. ‘오키나와 여성들은 매춘업에 종사해도 괜찮다’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하 시내에서 ‘쓰치(土)’라는 상호의 바를 운영하는 고모 씨(64)는 “차별당하며 살 바에야 독립하는 게 낫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오사카에서 11년 전에 이주해 온 본토인인데도 오키나와 원주민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 이달 15일 ‘류큐 민족독립종합연구학회’라는 단체도 만들어졌다. 학계가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창립 멤버인 도모치 마사키(友知政樹) 류큐국제대 교수는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은 아직 소수지만 본토로부터의 차별을 느끼는 주민은 늘고 있다”며 “앞으로 다른 단체와 연계해 독립 후 문제들을 논의하면 반드시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오키나와=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오키나와(沖繩)와 관련해 다양한 책을 펴낸 작가 나카무라 기요시(仲村淸司·55·사진) 씨는 20일 “지금까지의 독립 논의와 달리 최근의 주장엔 진심과 절박함이 담겼다”며 “독립 주장은 앞으로도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하(那覇) 시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약 2시간 동안 기자와 얘기를 나눈 뒤 “한국 기자가 오키나와 독립에 관심을 가져준 것에 감사한다”며 현지 취재도 기꺼이 동행해 주었다. ―독립을 주장하는 오키나와 주민은 어느 정도 되나. “류큐대가 1996년 조사했을 때는 3%에 불과했으나 2007년에는 20.6%로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류큐신보 조사에서는 다시 4.7%로 내려갔다.” 이 같은 큰 편차가 나는 조사 결과로 오키나와 주민들의 복잡한 심경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비율이 낮은 것 같다. “독립을 생각하다가도 ‘독립 후 어떻게 먹고살지’를 생각하면 그만 포기해버린다. 제대로 된 독립국을 수립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게다가 1972년 미군 통치를 끝내고 일본에 복귀된 후 각종 사회 인프라가 정비된 점을 높이 평가해 독립을 전혀 생각지 않는 주민도 많다.” ―일부 지식인만의 주장에 그치는 것인가. “아니다. 야마토(일본 본토의 옛 이름)로부터 받는 차별에 대해 폭넓은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 오키나와타임스가 최근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의 헤노코(邊野古) 이전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75%가 반대했다. 향후 독립을 주장할 수 있는 잠재적인 주민이다.” ―미군기지 덕분에 먹고사는 사람들은 독립을 반대할 것 같은데…. “오키나와 현이 2009년 공식적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의 전체 소득 중 미군 관련 소득은 5.2%에 불과했다. 미군에 의존하는 오키나와 주민은 소수다.” ―최근 중국에서 ‘오키나와 귀속 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피식 웃으며) 일종의 퍼포먼스다. 과거 독립국이었던 류큐왕국이 중국에 조공을 보내며 깊은 관계를 맺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이유로 중국이 오키나와를 강제로 편입할 수는 없다. 독립을 외치는 오키나와 주민도 ‘독립 후 중국에 편입되자’고 말하지는 않는다.”오키나와=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