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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음반회사 중역 등으로 일하던 저자는 1986년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길을 떠난 뒤 그 경험과 사색을 묶어 ‘순례자’와 ‘연금술사’를 펴냈다. 1989년 프랑스 피레네 산맥으로 두 번째 순례를 다녀온 뒤에는 ‘브리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썼다. 잠언적인 사색이 가득한 그의 책들은 전 세계 168개국 73개 언어로 번역돼 1억3500만여 부가 팔렸다. 한국에서도 200만 부가 넘게 나갔다. 저자는 2006년 ‘예루살렘의 길’이라 명명한 세 번째 순례길에 나섰다. 예루살렘을 간 것은 아니다. 넉 달 동안 집을 떠나 영국과 터키, 불가리아 등을 거쳐 러시아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두 주를 보낸 여정을 ‘예루살렘의 길’이라고 정한 것이다. 책의 대부분은 특히 저자가 오랫동안 염원했던 ‘순례길’인 횡단열차 여행 얘기로 꾸려졌다. 이야기는 단출하다. 횡단열차 안의 일상 그리고 중간중간 도시들에 내려 출판 관계자를 만나고, 출판 행사를 하는 얘기다. 물론 스물한 살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힐랄과 같이 여행하면서 애정을 쌓는 과정이 나오지만 그마저도 극적인 에피소드가 있지는 않다. 시종 잔잔하게 흘러가는 전작들처럼 이 작품도 평범한 일상이나 대화 속에서 끄집어내는 작은 깨달음들에 눈길이 간다. “안전하고자 한다면 평범해지면 되지요. 하지만 정말 원하는 일을 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해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잃지 않아요. 그들은 우리와 함께합니다. 그들은 우리 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다른 방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죠.” 삶을 기차여행에 비유해 언젠가 신이 기차를 멈추게 할 때까지 자아를 찾는 여행을 계속한다는 게 저자가 바라본 인생이다. “내가 항상 같은 곳에만 머물러 있다면 내가 원하는 곳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말. 기차에 훌쩍 몸을 싣고 가을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144회 아쿠타가와상이 발표된 1월 일본 문단은 발칵 뒤집혔다. 수상자가 중졸 학력에 날품팔이를 하는 일일노동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그가 열한 살 때 성범죄를 저질러 신문에 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였다. 학교와 사회의 따가운 시선에 외톨이가 된 그는 중학교 졸업 이후 엄마와 떨어져 살았고, 부두 하역 일이나 경비원, 주류판매점 배달원, 식당 종업원 등 육체노동으로 밥벌이를 하며 밑바닥 생활을 전전한 진정한 마이너리티였다.“수상은 글렀다 싶어서 풍속점(성매매업소)에 가려고 했었습니다. 축하해줄 친구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없습니다”라는 수상 소감도 화제였다. 저자는 스물세 살 때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1920년대 소설가 후지사와 세이조의 소설에 경도됐고, 일과 글쓰기를 병행했다. 습작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어 이름을 알리게 된 그의 소망은 이렇다. “작가로서 널리 인정받아, 비참한 꼬락서니로 원고를 들고 부탁하러 다닐 것 없이, 원고청탁이 당연하게 밀려드는 몸이 되고 싶다.” 올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이다. 열아홉 살 간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두에서 하역 일을 하며 받는 일당 5500엔에 매달려 살아가는 날품팔이 인생이다. 일당은 하루 이틀 치의 밥, 술, 담배를 사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저축이란 개념은 없다. 그날 번 돈은 다음 날 일터에 나갈 전철비만 남기고 홀랑 써버리고, 손바닥만 한 자취방에서 배를 곯다가 또 이튿날 돈을 벌기 위해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 지독한 패배주의와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간타에게 인생은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과도 같다. “생활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삶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너덜너덜해진 자아로 인생의 종착점까지 달려갈 생각을 하니, 간타는 이 세상이 숨이 턱 막힐 만큼 무미건조한 고역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의 매력은 나락으로 떨어진 한 인간의 구질구질한 삶을 매우 사실적으로 조명하는 데 있다. 지독한 열등감에 휩싸여 원만한 대인관계를 갖지 못하고 툭하면 욱하고 폭발해버리는 간타의 위태롭고,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사회적 냉대 속에 철저히 버려진 인간상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특별한 클라이맥스 없이 이어지는 밋밋한 일상이 왠지 팥소 빠진 찐빵처럼 허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에필로그처럼 붙은 또 다른 단편소설은 글을 쓰며 살아가는 저자의 현재를 너무 직설적으로 묘사했기에 앞선 열아홉 살 간타 이야기의 소설적 매력을 떨어뜨린다. 저자는 다음 주 국내 출간에 맞춰 한국에 온다. 그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아동 성폭행과 장애인 성폭행 문제, 그리고 특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권리 묵살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영화 ‘도가니’의 원작자인 소설가 공지영 씨(48·사진)는 2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영화가 개봉되면 의식 있는 사람들과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한 여론을 형성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초반부터 뜨거운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공 씨는 ‘도가니 열풍’의 이유에 대해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고, 가장 약한 아이들이 피해를 보아도 무관심 속에 잊혀져 가는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와 불만들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그는 “우리 사회가 성폭력에 대해 너무 관대하고, 여성과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하다. 성폭력처벌법, 사립학교법 등 영화 속에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집약돼 있다”며 “엄밀히 말하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서 광주 인화학교 사건은 끝난 사건이다. 중요한 것은 전문가들이 중지를 모아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에서도 관련 논의들이 오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펄펄 끓다가 얼마 뒤엔 차갑게 식어버리는 모습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약자보호 못하는 시스템에 영화 본 대중들 뜨겁게 반응” ▼“대중이 영화에 이렇게 뜨겁게 반응하는 데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큰 것 같습니다. 평소 사회에 가진 불만을 영화에서 보다 보니 반응이 뜨거운 듯합니다.”영화 ‘도가니’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40·사진)은 29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논란이 될 줄은 예상했지만 전 사회적인 이슈로 불거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도가니’를 통해 왜곡된 사회 시스템과 구조를 건드리고 싶었다는 황 감독은 이 사건이 또 다른 ‘마녀사냥’을 촉발할 것을 우려했다. 그는 “빨리 달아올랐다가 식을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나 판사, 검사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즉각적인 분노를 넘어, 장기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해 차분하게 시간을 두고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최근 국회 등에서 움직임이 있는데 그런 대안마저 너무 빨리 나오는 것 같아요.”입양아 출신 주한미군의 친부모 찾기 실화를 소재로 한 ‘마이 파더’(2007년)로 데뷔한 그는 “도가니를 제안받은 뒤 힘들었고 영화가 잘돼도 힘들다. 다음에도 실화영화를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

한국 시단의 원로인 김규동 시인(사진)이 28일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1925년 함경북도 종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성고보 2학년 때 영어교사이자 시인인 김기림을 만나 시인의 꿈을 키웠다. 병원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옌볜의대에 진학했지만 문학을 향한 열망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1948년 대학을 중퇴하고 자유를 찾아 월남했다. 고인은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51년 박인환 김경린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물질문명을 비판하는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을 발표했다. 당시 그는 김수영 박인환 천상병 시인 등과 함께 어울렸다. 1970년대부터는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해 현실비판적인 시를 주로 썼고 분단과 통일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시집 ‘나비와 광장’ ‘죽음 속의 영웅’ ‘오늘밤 기러기떼는’ ‘길은 멀어도’ ‘느릅나무에게’ 등을 비롯해 평론집 ‘새로운 시론’, 산문집 ‘지폐와 피아노’ 등을 냈다. 올 2월에는 자신의 문학을 집약한 ‘김규동 시선집’, 3월에는 문학적 삶을 정리한 자전에세이 ‘나는 시인이다’를 출간했다. 고인은 자서전에서 “소원이 있다면 세상 떠나기 전 꿈속에서처럼 고향 땅 종성에 한 번 다녀오고 싶습니다”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의 문학 인생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인 이시영 씨는 “시 쓰기와 민주화 운동에 오래 복무하며 후배들을 따뜻하게 챙겨 늘 존경받는 선배 시인”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등을 지냈으며 은관문화훈장과 만해문학상 등을 받았다. 올 6월에는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춘영 여사와 김윤(사무생산성센터 대표), 김현(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김준 씨(ISO 국제심사원) 등 3남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다음 달 1일 오전 8시. 장례는 문인장으로 치러진다. 02-3410-6916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해녀들은 제일 좋고 큰 전복들을 나중에 따려고 남겨놓죠. 은퇴를 앞둔 나도 너무 늦기 전에 아껴뒀던 얘기들을 하겠다는 거예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5월부터 매주 월요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생활 속의 인문학 이야기’ 강의를 하고 있다. 팔순을 맞는 내년을 은퇴 시점으로 잡은 이 전 장관이 50년 넘게 이어온 인문학 활동을 정리하는 자리다. 모든 강의는 동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문화게릴라처럼 활동해왔는데 내년 팔순을 앞두고 매듭을 짓고 싶습니다. 대학이나 학계에 알리지 않았던 것이 많은데 이 기록물이 후학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기록을 남기기 위한 강의이지만 청중 없이 하는 강의는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을 것을 염려해 적은 수의 청중만을 초청하고 있다. 26일 강의 주제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영인문학관 제1전시실에 출판사 관계자와 이 전 장관의 이화여대 제자 등 20여 명이 자리를 잡았다. 이 전 장관은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신체시로서 중화사상(대륙의식)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반도의식’을 갖고 바다를 바라본 시”라고 역사적 의미를 조명했다. “관념론자들이 너무 강해도 나라가 망하고, 빵과 서커스만 주는 실용론을 좇으면 로마 후기처럼 망한다” “우리나라는 끈질긴 선비 나라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이만큼 먹고살게 해주면 정치에 대해 그만하면 잘했다 소리도 나올 만한데, 그런 소리가 안 나온다. 한국에서는 정치하기 힘들고 내가 정치를 일찍 그만둔 이유도 거기 있다”라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85분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으며 쏟아낸 열강이었다. 한숨 돌린 이 전 장관과 집무실에서 대화를 나눴다. 그가 은퇴를 생각하며 ‘구술 기록’에 나선 까닭이 궁금했다. “오늘 파워포인트를 썼는데 사실 이게 남들 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보려고 하는 겁니다. ‘올드포인트’인 셈이죠. 이젠 강의 중에 헛말이 나오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요. 은퇴(해야)할 때 은퇴하는 게 좋은 겁니다.” 이 전 장관은 ‘80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업체와 방송사 등에서 그의 일생을 정리하자는 제안이 들어와 내년 공개를 목표로 작업 중이다. ‘생활 속의 인문학 이야기’ 강의도 이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빨리 조로합니다. 거의 100세까지 살지만 사회적 연령은 오륙도(50, 60대)로 끝이에요. 팔십이 돼서도 20대처럼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자신의 뒤늦은 연구 정리에 대해선 “우리 문화시스템의 불행”이라고 했다. “누가 내게 연구비를 1, 2년간 주며 문화적 투자를 했더라면 이렇게 부산떨지 않아도 상당한 학문적 업적이나 기여를 했을 텐데…, 사방에 끌려 다니고 인사만 하고, 중요하지 않은 자리에서 그 아까운 시간을 다 버렸어요.” 노태우 정부 때 문화부 장관(1990년 1월∼1991년 12월)을 지낸 그는 “문화전문가들이 정치, 경제를 기웃거리지 않고 평생 학문하는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초지일관하게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도 장관을 하기는 했지만 잘한 짓이 아닙니다. 행정가보다는 내 일을 더 했으면 더 좋은 글을 많이 썼을 것 같아요. 사회 참여가 반드시 정치 참여가 아니라 내가 잘하는 것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데 말입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손택수 시인(41·사진)이 임화문학예술상 운영위원회와 소명출판이 주최하는 제3회 임화문학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나무의 수사학’. 상금은 1000만 원이며 시상식은 10월 14일 오후 6시 반 서울 성동구 한양대 인문관에서 열린다.}

견고하게 돌아가는 세상도 작은 변화 하나에 큰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나사 하나가 빠져버리면 공룡같이 거대한 기계가 멈춰서는 것처럼. 이 소설집은 그런 일상의 변주를 끄집어낸다. 단편 ‘허공의 아이들’이 펼치는 상상력은 이렇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집이 살짝 떠오르고, 사람들은 점차 투명해지며 사라진다. 건물들은 날이 갈수록 하늘로 떠오르고 소년과 소녀 둘만 남긴 채 동네 사람들은 모두 증발한다. 마트에서 통조림과 생수를 가져와 집 안을 가득 채운 아이들은 하염없이 하늘로 떠오르는 집 안에서 공포심을 느끼고 서로 의지하지만 소녀는 먼저 세상을 떠난다. 단편 ‘그림자’는 또 어떤가. 개기일식을 계기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뒤바뀐다. 살인자의 그림자를 달고 다니게 된 평범한 남성은 해가 떠있는 동안 그림자의 지시를 받아 살인 행각을 벌이고, 그런 식으로 세상은 아수라장이 된다는 설정.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작가는 첫 소설집인 이 책을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가득한 에피소드들로 채웠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그의 단편들은 어둡고 우울한 시공간을 창조한다. 작가가 바라본, 가까운 미래로도 해석할 수 있는 세상은 지옥의 묵시록과도 같다. 단편 ‘버디’도 종말론적인 미래를 펼쳐낸다. 평균수명이 140세까지 늘어난 미래 사회. 생산력이 떨어지고 수명만 늘어난 노인들은 사회의 골칫거리다. 정부는 돈 없는 노인들에게 돌아가는 건강보험 혜택을 줄이려고 하고, 노인들은 테러리스트로 변신해 의약품을 구하기 위해 병원을 습격하는가 하면 노인들을 폄훼한 정치인들을 살해한다. 배경은 SF소설 같지만 작가는 노인들의 허무하고 무기력한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급격한 수명 연장이 축복이자 재앙일 수도 있다는 사회적 의제로 의미를 확장한다. 표제작인 ‘개그맨’은 웃을 수 없어 남을 웃기는 직업을 갖게 된 남성의 얘기를 그렸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독일 스릴러 소설 ‘사라진 소녀들’(뿔)의 인기가 뜨겁다. 지난달 12일 출간한 이 책은 한 달여 만에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4위, 소설 부문 2위(9월 둘째 주 집계)에 올랐다. 22일 현재 3만5000부가 판매되며 올 하반기 가장 눈에 띄는 외국 소설로 떠올랐다. ‘사라진 소녀들’은 저자 안드레아스 빙켈만(사진)의 국내 데뷔작. 실종된 시각장애인 소녀를 추적하는 여형사와 복싱 선수의 활약을 그렸다. 정신이상자인 범인의 심리 상태와 피해 소녀의 공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팽팽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며칠 전에야 제 소설이 한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떨떨하고 믿기지 않았지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빙켈만은 2007년 ‘가위갈이의 노래’로 데뷔해 2009년 ‘깊은 숲 속 그리고 땅 밑’을 냈다. ‘사라진 소녀들’은 그의 세 번째 장편. 독일 언론은 그에게 ‘스릴러의 신동’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큰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스릴러는 선과 악의 싸움이지요. 단순한 범죄 수사물이나 모험 소설에 비해 스릴러는 악의 심연까지 파고들 수 있고 악의 실제 모습, 즉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국내에서도 독일 스릴러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30만 부를 넘겼고 그의 또 다른 작품 ‘너무 친한 친구들’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그에게 독일 스릴러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얼마 전까지 독일에서도 주로 영미권 추리 스릴러가 시장을 거의 독식했어요. 최근 들어 좋은 독일 작가들이 많이 나와 영미권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겁니다. 영미권에 비해 독일 스릴러는 훨씬 현실적인 점이 특징입니다. 실제로 존재하기 힘든 영웅보다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보통 사람들을 내세워 현실감을 높인 게 강점이죠.” ‘사라진 소녀들’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일부 독자들의 불평도 있다. 소설 중반에 범인이 밝혀져 맥이 빠진다는 것. 가장 극적인 순간을 소설 중간에 배치한 까닭이 궁금했다. “제가 만약 범죄 수사물을 썼는데 범인을 초반에 노출시켰다면 제 실수겠지요. 하지만 제가 쓴 것은 스릴러 소설입니다. 오히려 범인을 일찍 노출시켜 독자들이 범인의 정신세계를 낱낱이 들여다보고 그의 행동을 함께 좇으면서 무서운 이야기에 동참했으면 했던 게 제 생각입니다.” ‘사라진 소녀들’이 10개국에 판권이 팔릴 정도로 유명한 작가가 됐지만 그도 긴 무명시절을 거쳤다. 택시운전사, 보험판매원, 체육교사, 군인 등의 직업을 거치며 10년간의 습작기를 보냈다. “하루아침에 성공할 수는 없다”는 게 신조라는 그는 밤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집필할 때는 실제 밤늦게 작업할 정도로 철저히 작품에 몰두한다. 그의 신작 ‘창백한 죽음’은 다음 달 17일 독일에서 출간된다. 소녀들의 살인과 실종 사건을 다룬 스릴러다. 또 내년 말 출간을 목표로 이미 새 소설의 집필에 들어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한국에 있는 누군가가 제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을 생각을 하니 마냥 기분이 좋습니다. 다른 작품으로 또 뵙기를 기대합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獨 스릴러의 매력이민자 등 사회적 이슈 초점… 퍼즐 조각 맞추듯 사건 풀어독일인들은 왜 스릴러 소설에 열광할까. 독일 베스트셀러의 상위권은 1년이 넘도록 스릴러 소설들이 점령하고 있다. 국내 독자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사라진 소녀들’ 등 독일 작가들의 작품들을 비롯해 스티그 라르손, 요 네스뵈 등 북유럽 작가들의 스릴러들도 그칠 줄 모르는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스릴러 소설은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는 독일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르로 꼽힌다. 전직 택시 기사부터 저널리스트, 심리학자, 변호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력의 스릴러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특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독일 스릴러 소설은 대중적인 사랑과 폭넓은 작가군을 바탕으로 이민자 문제, 환경, 사이코패스, 성도착증, 범죄자 처벌을 둘러싼 논란 등 사회적 이슈들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한층 자극적인 소재와 방대한 스케일의 서사를 추구하는 세계 독자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져 최근 독일 스릴러가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특히 독일 스릴러는 무의식에 대한 진지한 탐구, 치밀한 심리 게임, 그리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사건의 연결 고리로 이어지기 때문에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도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영미권 스릴러와는 차이가 있다. 독자들로 하여금 퍼즐 조각 맞추기 게임을 하듯 조심스럽게 사건을 예측해 나가며 이중 장치를 통해 복잡하게 엮어 놓은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독일 스릴러의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매력이다.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27년 동안 ‘나대로 선생’을 그렸지만 전시회는 처음입니다. ‘나대로 선생’을 추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만남의 자리를 갖고 싶습니다.” 동아일보 시사만화였던 ‘나대로 선생’의 작가 이홍우 상명대 문화예술대학원 만화영상과 교수(62·사진)가 28일부터 10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나대로 시사만화전’을 연다. ‘이홍우 화백이 본 격랑의 한국(1980∼2007)’이란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에서는 시대별로 화제가 됐던 ‘나대로 선생’의 주요 작품 60여 편을 비롯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전·현직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캐리커처 20여 편을 전시한다. 1967년 서라벌예대 2학년 때 일간지 시사만화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80년 11월 12일 동아일보에 ‘나대로 선생’ 연재를 시작한 후 2007년 12월 26일 마지막 회까지 27년간 8568회를 게재했다. “8500여 편 가운데 60여 점을 추리는 데 고생 꽤나 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처럼 저에게는 모두 자식 같은 작품이죠. 시대적으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하고,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작품들로 엄선했습니다.” ‘외교 굽신, 경제 망신, 치안 불신, 정책 등신, 날치기 귀신, 국민 배신’이라는 말로 6공화국의 실정을 풍자한 ‘6공6신’편(1991년 11월 29일자)이 이 교수가 뽑은 대표작. 이외에도 참여정부의 실정을 지적한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편(2005년 7월 9일자), ‘맞고 나니 눈앞에 별이 번쩍번쩍 하더군’으로 풍자한 ‘국방위 회식사건’편(1986년 3월 24일자) 등 촌철살인의 작품이 가득하다. 그가 말하는 ‘좋은 시사만화’는 무엇일까. “소금은 짜야 소금이고 만화는 재미있어야 만화입니다. 시사만화가 너무 기록적으로 가다 보면 유머가 빠지는데 이러면 안 돼요. 해학과 재치, 그리고 발상의 전환과 반전의 묘미가 있어야 좋은 시사만화죠.” 이 교수는 자신의 만화로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사람들도 있겠지만 만화 속에 들어 있는 ‘해학의 미’ 때문에 여태껏 척지고 지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나대로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수묵화 20여 점도 선보인다. 이 그림 속에서 ‘나대로 선생’은 산으로 들로 여행 가고, 술잔을 앞에 두고 사색도 한다. “30년 가까이 네 컷의 사각 틀에 갇혀 살았던 주인공이 ‘나대로 선생’입니다. 이제는 편안하게 인생을 즐기는 자유를 주고 싶었습니다.” 02-3210-0071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중앙아시아 고려문화인협의회(대표 최석)가 사단법인 이병주기념사업회(공동대표 김윤식 정구영)가 주최하는 제4회 이병주국제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1000만 원. 시상식은 30일 오후 5시 반 경남 하동군 북천면 이병주문학관에서 열린다.}

“프랑스에선 이제 한국 문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한국에서 문학작품을 직접 골라 완역한 뒤 현지 출판사에 출판 비용까지 주면서 ‘떠맡기는’ 번역 지원이 앞으로도 유효할까요?” 프랑스에서 13년 동안 한국 문학을 번역해 알려온 번역가 임영희 씨는 현재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주연)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이같이 꼬집었다. 국내의 한 출판 에이전시 대표도 “번역원이 그동안 해외 출간 자체에 의미를 둬 실제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임 씨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번역원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22, 23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5회 세계번역가대회를 연다. 임 씨를 비롯한 발표자들의 발표문을 미리 보면 해외 출판계에서 보는 한국 문학, 그리고 번역원에 대한 ‘애정 어린 쓴소리’가 가득하다. 번역원은 지금까지 28개 언어권, 486건의 작품을 번역 지원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 등 해외에서 성과를 거둔 작품들은 대개 민간 에이전시와 해외출판사가 직접 협력해 만든 성과물들이다. 이유가 뭘까. 이번 대회에 참석하는 독일 남서부방송2(SWR2)의 문학담당 기자 카타리나 보르하르트 씨의 말에서 답을 유추해볼 수 있다. “무조건 ‘가능한 모든 것’을 내놓는 식으로는 의미가 없다. 그런 책들은 도서관과 학자들의 사무실 책장을 장식하겠지만 이를 ‘우연히 읽는’ 독자는 별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번역원은 2001년 한국문학번역금고와 문예진흥원 산하 한국문학 해외소개사업과 통합해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다. 해외에 한국 문학이 생소하던 시절에는 국내 작품을 해외에 출간하는 것 자체로 의미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이문열 씨의 단편 ‘익명의 섬’이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뉴요커’에 실리는 등 한국 문학의 해외 위상이 높아진 지금 번역원의 역할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 해 60억여 원의 예산으로 운영하는 번역원이 한국의 순수 문학을 번역 지원할 필요성은 여전하다. 하지만 지원 장르를 다양화하고, 해외 독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마케팅에도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출판계의 목소리가 높다. “작품의 원작과 번역의 완성도가 아무리 높아도 해외 독자와 서평가의 손에 들려지도록 적극 노력하지 않으면 상업적으로 성공 못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브루스 풀턴 교수가 번역원에 보내는 따끔한 충고다.황인찬 문화부 hic@donga.com}

《비릿한 바닷바람이 제방을 넘어 날아와 코끝을 찔렀다. 짙은 남색 바다 위에 점점이 박힌 하얀 고깃배 위로 따사로운 가을 햇볕이 쏟아진다. 전남 목포항의 평화로운 한낮 풍경.》 1970, 80년대 문단의 독보적 평론가였던 김현(1942∼1990·사진)은 이곳 부둣가를 뛰어다니며 초·중학교를 보냈고, ‘청년 김현’은 수산시장 옆 목포 오거리의 한 허름한 다방에서 김승옥 최하림과 의기투합해 1962년 동인지 ‘산문시대’를 발행했다. 목포는 김현 문학의 고향이다. 목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남 목포시 용해동의 목포문학관. 고인의 21주기를 맞아 이곳에 그의 업적을 기린 ‘김현관’이 30일 문을 연다. 고인의 전시관이 마련된 것은 처음이다. 개관에 앞서 18일 목포에서 30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허형만 시인(목포대 교수)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목포 오면 너밖에 없다’며 저를 불러내셨던 선생님 모습이 아직 생생합니다. 1980년대 중반 황동규 선생과 함께 내려오셔서는 (목포) 오거리에서 늦도록 소주잔을 주고받고, 서로 껴안고 했지요. 허허.” 허 시인은 고인을 “따뜻한 인품과 치열한 문학정신을 동시에 가졌던 분”이라고 떠올렸다. “그 정도 이름을 날렸으면 오만해지기 쉬운데 선생에게선 전혀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고 추억했다. ‘김현관’은 178.5m²(54평) 공간에 유품 300여 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연보와 주요 저서 등을 전시한 ‘김현의 밖’, 책상 타자기 친필 메모와 그림 등으로 꾸민 ‘김현의 안’ 2개의 공간으로 구성했다. 고인이 문우들과 함께 만들었던 동인지 ‘산문시대’(1962년)와 ‘68문학’(1968년), 그리고 ‘문학과지성사’의 계간지 1호(1970년) 등이 전시돼 있다. 고인은 한자 또는 식민지 글자가 아닌, 한글로 사유하고 활동한 4·19세대의 선두 주자였다.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분석, 그리고 ‘김현체’로 따로 불릴 정도로 미려한 문장을 구사한 고인은 비평을 문학의 한 장르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속에는 ‘거장 비평가’의 인간적인 체취가 가득하다. 특히 1974, 75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유학 시절 보낸 편지에서는 문우를 향한 각별한 애정이 엿보인다. ‘병익에게, 대학 강의는 거의 듣지 않고 매일 도서관에 나가서 일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나는 내가 서울에서 너무도 공부하지 않고 놀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가지 사치벽이 생겼다. 돈 안 드는 것으로는 산보고, 돈 드는 것으로는 음악이다./…/ 병익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성실성이지, 기교가 아닌 것이다.’(1974년 11월 10일 김병익에게 보낸 편지) ‘청준에게, 하도 시끌시끌하고 그러니 너에게밖에 편지할 놈이 없다./…/여기서 보니까, 너하고 최인훈만이 고통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열심히 글 쓰거라. 불행의 사진을 그리지 말거라.’(1975년 2월 17일 이청준에게 보낸 편지) 고인은 마흔여덟 이른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떴다. 전시관의 벽면에 새겨진 고인의 글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신적으로 죽는다.’(1988년 2월 20일 일기) 30일 개관식에는 김병익 김치수 황동규 황지우 정과리 씨 등 선후배 문인 30여 명이 목포를 찾을 예정이다. 두 번 죽기에는 고인을 추억하고 그리는 사람이 아직 너무나 많다.목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황순원(1915∼2000·사진)의 미공개 초기작 67편이 한꺼번에 발굴됐다. 경희대 국문과 김종회 교수는 “황순원의 동요와 시, 단편소설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초기 작품을 최근 대거 찾아냈다”고 20일 밝혔다. 김 교수가 발굴을 완료한 황순원의 작품은 동요와 시 65편, 단편소설 1편, 수필 3편, 서평과 설문 각 1편 등 모두 71편이다. 이에 앞서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열린 황 작가의 10주기 추도식에서 발굴한 작품 4편을 공개했으며, 이번에 미공개 작품 67편을 새롭게 찾아냈다. 새로 발굴된 작품은 황순원의 등단 직후인 1930년대 전반 작품이 대부분이어서 작가의 문학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으며 6·25전쟁 이후 작품도 일부 포함돼 있다. 김 교수는 “습작기의 초기 작품들은 서정적 감성과 따뜻한 인간애를 잘 보여준다. 서정성과 사실성, 낭만주의와 현실주의를 모두 포괄하는 작가의 문학세계가 어떻게 발아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경기 양평군 서종면 황순원문학촌 문학관 내에 들어설 황순원문학연구센터의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들 작품을 발굴했다. 발굴 작품 71편은 23일부터 황순원문학촌에서 열리는 ‘제8회 황순원문학제’ 문학세미나에서 공개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제11회 미당·황순원문학상 수상자로 19일 시인 이영광 씨(46), 소설가 윤성희 씨(38)가 각각 선정됐다. 수상작은 이 씨의 ‘저녁은 모든 희망을’과 윤 씨의 단편 ‘부메랑’. 상금은 미당문학상 3000만 원, 황순원문학상 5000만 원이다.}

그늘지고 눅눅하다. 토악질이 날 만큼 역겨운 냄새가 지면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듯하다. 이 책은 문명과 사회에서 한 발짝 벗어나 음습한 개인만의 공간과 욕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괴한 분위기로 그린다. 단편 ‘뱀’에서 스물다섯이 되도록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한 헌책방 여주인은 헌책 속에서 작은 반지를 발견한다. 그 책을 팔았던 남자가 반지를 찾으러 왔지만 남자에게 관심이 있던 여자는 반지를 숨긴다. 하지만 어느 날 여자가 키우던 뱀은 반지를 삼키고, 허물을 벗은 뒤 도망간다. 애타게 반지와 뱀을 찾던 여자는 자신의 성기 속에서 뱀을 찾는다. 반지는 ‘사랑’으로, 뱀은 ‘욕망’으로 변주돼 점점 여자의 손이 닿지 않는 깊은 몸속으로 들어간다. 절망감은 더 깊어진다. 단편 ‘악취’는 문명화된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길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여성은 지독한 악취를 맡는 것을 즐긴다. 고기를 사서 냉장고에 넣지 않고 방치해 그 썩어가는 냄새를 맡을 정도다. “가식적”이라며 현대화된 냄새인 향수를 거부한 여성은 “쉽게 볼 수 없는 폐허 같다”며 악취를 더욱 병적으로 쫓는다. 저자는 성기 속에 뱀이 똬리를 틀거나 집을 시궁창처럼 만들어 악취를 즐기는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기존 사회 질서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시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로테스크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은 소설가 편혜영 씨의 ‘사육장 속으로’를 떠올리게 만든다. 비현실적인 단편들에 비해 중편 ‘바실리 사원’과 ‘살풀이 춤’은 고뇌하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끄집어낸다. ‘바실리 사원’은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마이미스트들을 통해 ‘언어가 지워진 자리에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내는’ 마임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살풀이 춤’은 고된 삶 속에서 춤을 완성하는 예술가를 그린다. 단편 다섯 편, 중편 두 편을 묶은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문학평론가 이경재 씨는 “사회라는 거대한 상징적 체계의 틀로 수렴되지 않는 개인의 고유한 충동이나 욕망을 집요하게 추구했다”고 평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문학 초키(존 윈덤 지음·북폴리오)=평범한 소년이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을 만난 뒤 다재다능한 ‘슈퍼 소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유쾌한 터치로 그린 SF 소설. 1만2000원. 금지된 정열(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지음·문학동네)=우루과이 출신인 저자가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 서민들의 빈곤과 좌절,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20여 편의 단편에 실어 전한다. 1만 원. 라스트 차일드(존 하트 지음·랜덤하우스)=지난해 미국 에드거상, 배리상 최우수소설 수상작. 납치된 쌍둥이 여동생을 찾아다니는 열세 살 남자 아이의 시각으로 유괴 사건을 그린 추리물. 1만4800원. ○ 학술 플라톤 서설(에릭 A 해블록 지음·글항아리)=대화로 소통하던 문화에서 읽고 쓰기를 중심으로 하는 문자 문화로 바뀌는 고대 그리스의 미디어 변화가 플라톤의 철학에 미친 영향을 살핀다. 2만2000원. 동서양 정치사상사 1(김영두, 지기영 지음·법영사)=동서양 정치사상의 변화를 비교 분석했다. 1959년 출간된 고 김영두 교수의 ‘동서정치사상사’를 제자들이 보완해 새로 펴냈다. 3만 원. 동양론과 식민지 조선문학(정종현 지음·창비)=이태준 이기영 김남천 김내성 최재서 김중한 등 문인들의 활동을 통해 1940년대 문학사를 재조명했다. 3만 원. ○ 인문 교양 중국사 강의(조관희 지음·궁리)=고대 신화에서부터 신해혁명까지 중국사를 개괄한 책. 중국 역사의 단순한 소개를 넘어 개별 사건이 가진 현재적 의미를 짚어냈다. 2만5000원. 시나리오 이렇게 쓰지 마라!(윌리엄 에이커스 지음·서해문집)=훌륭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100가지를 정리했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 이름을 비슷하게 해서는 안 된다. 1만8000원. 12종 문학 교과서 작품 풀어 읽기 시리즈(김태철 외 지음·해냄)=전국 28명의 국어 교사가 새로운 교육과정의 12종 문학 교과서에서 꼭 읽어야 할 작품들을 선별해 정리했다. 총 7권 8만2000원(각 권 1만1000∼1만3000원). 학교 혁신, 정답입니다(최영란 지음·이매진)=새내기 교사들의 좌충우돌 학교 보고서. 다양하면서도 솔직한 현장 이야기를 통해 학교를 학교답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한다. 1만3800원. 절, 그 속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우리 문화재들(박종두 지음·생각나눔)=국내 사찰과 그 안의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책. 절에서 문화재를 볼 때 그 의미를 몰라 답답했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1만5000원.○ 실용 기타 아프간 블루스(홍윤오 지음·큰곰)=한국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전쟁 후 아프간의 모습을 특종 보도한 저자의 회고록. 아프간 진입에 성공하기까지의 우여곡절과 현지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들을 담았다. 1만2000원. 주니어 로스쿨(이재만 지음·동아일보사)=법조인을 꿈꾸는 어린이 및 청소년에게 법적 사고력을 키워주기 위해 기획한 책. 생활 속 법적 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어른이 보기에도 손색없다. 1만3000원. 관능의 맛, 파리(민혜련 지음·21세기북스)=문화와 역사, 인생이 담긴 파리 미식 여행기. 각종 음식에 얽힌 사연을 정리했다. ‘혀끝의 축복’이라 불리는 프랑스 요리를 눈으로만 맛봐야 하는 점이 아쉽다. 1만5000원. 대한민국 대표 여행지 1000(유연태 외 지음·넥서스북스)=당일치기 여행부터 전국일주까지 국내 여행정보를 총정리했다. 지역별로 구분한 후 테마별로 정리해 여행 목적에 따라 쉽게 여행지를 고를 수 있도록 한다. 3만5000원. 위기관리 10계명(전성철 지음·웅진윙스)=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돌발적 상황에서 회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정리한 책. 올 초 발생한 농협 전산망 마비 등 국내 사례를 다양하게 수록했다. 1만5000원.}

바로크 미술은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과장된 양태를 보인다. ‘기괴함(grotesque)’이란 용어가 대명사가 될 정도로 고전적인 예술에 어긋나는 이질적인 미술로 취급됐다. 이런 과장되고 과장된 미술 사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16세기 종교개혁 후 가톨릭교회가 반종교개혁운동을 단행해 내부적인 반성에 들어갔고, 미술을 통한 ‘감동’으로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바로크 미술이 탄생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종교적이고 관념적 억압에서 탈출한 자유분방함의 분출이 바로크 미술을 이끌었다는 것. 서울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지낸 저자는 바로크의 등장과 발전을 건축, 회화, 조각을 중심으로 문학, 연극, 음악까지 확장시켜 풀어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998년 3월 2일 오스트리아에서 열 살 소녀가 등굣길에 납치됐다.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지만 소녀의 행방은 오리무중. 시간이 흘러 실종 사건이 잊혀질 무렵인 2006년 8월 23일. 앙상한 몰골의 한 여성이 한 시골집 창문을 두들기며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경찰이 출동했고, 여성은 말한다. “제가 8년 전 실종됐던 바로 그 소녀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소설 같지만 이것은 엄연한 실화다. 2006년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했던 희대의 유괴 사건. 그 피해자가 털어놓은 사건의 전말을 담았다. 열 살 때 납치됐던 소녀는 8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3096일. 소녀가 유괴된 날부터 자유를 되찾기까지 걸린 악몽 같던 시간이다. 납치는 한순간이었다. 소녀가 길가에 주차된 하얀 배달차 옆을 지나던 순간 범인은 소녀의 허리를 감싸고 번쩍 들어올려 차 안으로 집어넣었다. 마치 짐을 옮기듯이,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소리를 질렀는지, 반항을 했는지도 제대로 기억 못할 정도로 소녀는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였고,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컴컴한 지하실 안이었다. 5평(16.52m²) 남짓한 어둡고 습한 공간. ‘지하 감옥’은 한바퀴 도는 데 딱 스무 발짝이 걸릴 정도로 좁았다. “지하금고에 산 채로 매장당한 기분”이었다는 소녀. 생명의 위협을 느낀 소녀는 일단 하룻밤을 침착하게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3096번의 밤을 이 방에 갇힌 채 보내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때 어떻게 반응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놓는다. 30대 중반의 독신 남성인 범인은 소녀가 실수를 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음식량을 줄이거나 전기를 끊거나 라디오, 비디오 등 여가용품의 사용을 제한하며 그를 학대한다. 이 에세이는 끔찍한 유괴사건의 경과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극한의 상황에 놓인 한 인간의 심리 상태를 생생하게 드러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범인은 소녀가 자라자 대범하게 함께 외출까지 했고, 소녀는 여러 번 탈출 기회를 잡았지만 심리적 공포감 때문에 스스로 주저앉아 독자를 안타깝게 만든다. 또한 범인에게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인간이기에 때론 그에게 의지했다는 점에서 사회생활이 단절된 인간이 느끼는 극심한 외로움을 읽을 수 있다. 탈출 후 저자는 자유를 얻었지만 “새로운 감옥에 다시 빠져든 것 같다”고 느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대중과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희대의 유괴 사건 희생자’에 대한 의혹과 질시의 시선도 많았다는 것. “피해자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기만”이라고까지 말하는 저자는 여전히 피해자로 남아있는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는 현상)’으로 자신을 쉽게 규정하는 대중에 대한 반박도 곱씹을 만하다. “범인을 어두운 면뿐 아니라 밝은 면도 가진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 또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월간지 ‘샘터’가 10월호로 지령 500호를 맞았다. 1970년 4월 창간호를 낸 지 41년 만으로, 일반 교양 월간지로는 국내 최장수 기록이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88·샘터 고문)이 샘터를 창간하며 내세운 키워드는 ‘행복’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란 캐치프레이즈 아래 ‘샘터’는 40년 넘게 이웃들의 작지만 따뜻하고 가슴 찡한 사연들을 소개하며 일상 속 행복의 의미를 재조명해 폭넓은 공감을 얻어왔다. ‘샘터’의 지면을 장식했던 우리 시대 대표적인 문사들의 글도 큰 관심을 끌었다. 소설가 최인호 씨의 연작소설 ‘가족’은 1975년부터 2009년까지 35년간 연재돼 국내 잡지 사상 가장 긴 연재물이 됐다. 수필가였던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도 ‘샘터’에 연재했던 칼럼을 ‘내 생애 단 한 번’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등 두 권의 책으로 묶어 큰 호응을 얻었다. 법정 스님은 생전 ‘고산순례’ ‘산방한담’ 등을 연재하며 대중과 만났고, 이해인 수녀도 ‘두레박’ ‘꽃삽’ 등 다양한 칼럼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일깨웠다. 샘터의 편집장과 주간을 지낸 동화작가 고 정채봉 씨도 생전 ‘생각하는 동화’ ‘이솝의 생각’ 등 연재물로 독자와 만났다. 500호 특집에는 ‘행복을 주는 사람’이란 주제로 이해인 수녀, ‘시골의사’ 박경철 씨, 박재동 화백, 성우 배한성 씨의 ‘행복론’을 실었다. ‘인생 2막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한 강지원 변호사, 김영란 전 대법관 부부의 인터뷰에서는 은퇴 후 시작하는 나눔의 삶에 대해 전한다. 김 전 국회의장의 아들인 김성구 샘터 발행인은 “세상의 물이 되고자, 샘물이 되고자 시작했던 샘터가 어느새 지령 500호를 맞아 감개무량하다. 앞으로 더 진하고 맑은 감동의 샘물을 건져 올리겠다”고 500호를 맞은 소감을 밝혔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청소년소설’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지만 선입견을 버려도 좋다. 물론 중학생들이 나오고 학교와 집이 주요 배경이다.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 등 청소년소설의 단골 주제도 등장한다. 하지만 작가의 첫 청소년소설은 정확히 말하면 ‘청소년의 눈으로 본 비판적 세상읽기’로 해석할 수 있다. 게다가 상당히 우화적이며 비유적이다. 바닷가의 한 지방 도시에 사는 여중생인 ‘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우스웠다. 왜냐하면 서울을 흉내 내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울 자동차에서 차를 사고 서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안경은 서울 안경원에서 사고 여행은 서울 여행사를 통해서 갔다. 우스워지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서울로 갔다.” 중학교 같은 반 학생인 ‘나’와 ‘b’는 아이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나’는 먼저 당했고, ‘b’는 ‘나’가 학교를 나오지 않자 ‘대체재’가 된다. 불치병에 걸린 동생 때문에 집안이 어려워진 ‘b’는 이렇게 처지를 비관한다. “나한테 십억만 있으면 동생은 안 죽고 엄마는 공장에 안 나가고 나는 의사가 될 수 있는데, 하지만 나에겐 천 원밖에 없으니까 동생은 죽을 거고 엄마는 계속 공장에 나갈 거고 앞으로 나는 쓰레기가 되어야지.” 학교에서 노는 아이들에게서 폭력과 성추행을 당해 상처 입은 ‘나’와 ‘b’는 하루 종일 책만 읽는 정체불명의 남자 ‘책’을 만나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나b책’의 대안공간은 그렇게 완성되지만 그 안온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2005년 ‘영이’로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는 ‘미나’ ‘풀이 눕는다’ 등을 통해 10대들의 그늘지고 불투명한 삶을 꾸준히 조명해왔다. 스타카토처럼 딱딱 끊어 내뱉는 단문들로 표현한 폭력의 현장들은 그 무미건조한 문체 때문에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다만 개성 강한 문체로 독특한 시공간을 창출해낸 것에 비해 결말은 너무 ‘정석적’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