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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v 와 f 발음도 한글로 표기 가능인터넷 영어사전에서 한글로 ‘파일’을 입력하면 서류철을 의미하는 ‘file’과 건축용 말뚝이나 포개 놓은 더미를 뜻하는 ‘pile’이 동시에 뜬다. 영어 발음인 p와 f를 한글 표기법으로는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v와 b도 마찬가지다. 한글 발음으로 ‘베스트’라고 하면 외국인들은 제일 좋다는 ‘best’인지 조끼를 뜻하는 ‘vest’인지 헷갈려 한다. 한글이 세계 어느 나라 말도 비교적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는 우리의 자부심과 외국학자의 칭찬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한글이 매우 과학적으로 만든 글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사용하는 한글은 원래의 글자보다 줄어들어 기능적으로 불완전한 상태가 돼버렸어요. 우리 학계가 15세기 천문 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한글을 19세기 말에 정립된 서양 언어학의 잣대로 연구하는 바람에 세종의 창제 원리를 놓친 측면이 있습니다.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한글 세계화 운동’도 좋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게 전 세계의 외국어를 원 발음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도록 한글의 옛 글자를 살려내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v와 f 발음은 훈민정음의 합용병서(合用竝書)인 ㅅㅂ, ㅅㅍ으로 온전히 표기해낼 수 있어요.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여 있으나 근세에 사라진 합용병서를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한글 세계화의 핵심 열쇠가 될 것입니다.” 초성 합용병서 사용을 주창하는 유일한 한글학자이자 연구가인 반재원 훈민정음연구소장(66)의 말이다. 40년 가까이 한글 한 분야만 연구해온 반 소장은 1443년 한글 창제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한글은 세계 언어의 90% 이상을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훈민정음에서 사라진 합용병서 중 외국어 발음 표기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몇 글자만 되살려내도 돼요. 우리는 이미 발음 구조가 굳어져 굳이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 세계의 공용도구인 컴퓨터 자판에서 합용병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놓기만 해도 괜찮아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글로 자신들의 발음을 충분히 표기할 수 있도록 해놓으면 자발적으로 한글을 이용하는 세계 인구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합용병서를 사용하면 과연 전 세계 언어를 한글로 모두 표기할 수 있을까? 내친김에 한국인들이 가장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th(θ· ð)’에 대한 그의 표기법을 들어보자. 이 글자는 훈민정음에서 반설음(ㄴ)의 합용병서인 ㄴㅅ(θ)과 ㄴㄷ(ð)으로 표기할 수 있다고 한다. 즉 ‘this’는 ‘ㄴ디스’로 표기하고 발음할 때는 혀를 살짝 빼물어 ‘디-’하면 된다고. 마찬가지로 ‘tooth’의 경우 ‘투ㄴㅅ+ㅡ’로 표기할 수 있으며 혀를 살짝 빼물어 ‘스’를 발음하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 영어의 ‘r’는 물론, 중국어의 권설음 ‘ch’ ‘zh’ ‘sh’ 등도 모두 한글 표기가 가능하다고 했다. “현재 한글은 자음 14자와 모음 10자를 합친 24자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글의 모체인 훈민정음은 원래 28자였습니다. 초성의 ‘ㆁ, ㆆ, ㅿ’ 자와 중성의 ‘ㆍ’자가 없어졌지요. 사라진 4자의 음가를 복원하고 앞서 말한 합용병서를 일부 사용하면 모든 언어를 제대로 발음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한글 28자를 사용하면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비롯해 아랍어, 힌디어, 몽골어, 네덜란드어, 루마니아어 등 21개국 언어의 발음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외국 학자들이 한글이 왜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글자라고 말하는지, 왜 국제 공용어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지요.” 반 소장은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현지인의 정확한 발음을 채록해 한글이이들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라는 것을 증명해냈다고 말했다. ○훈민정음 28자는 천문도 28宿의 원리 한글 예찬론자인 반 소장도 처음부터 한글에 푹 빠져 살아온 것은 아니다. 부친과 형제들 모두 교직자 집안인 그는 서울 시내 공립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2012년 정년퇴직한 ‘선생님’ 출신이다. 그는 평소 동양철학과 역학에 관심이 많아 교직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이 분야를 연구해왔다고 한다. 동양철학이나 역학과 관계된 분야면 어디든 마다 않고 찾아다니며 배웠다. 그러던 중 “훈민정음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역학이론에 근거한 언어”라는 어느 역리학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 “훈민정음에 목·화·토·금·수 5행과 10간12지의 이론이 다 들어 있다는 말을 듣고 정말 그럴까,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주학 대가를 찾아 사주 명리학을 배웠는데, 한 2년을 공부했는데도 뭔가 막혀서 잘 풀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5행 이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한의학 공부에도 도전했지요. 당시 한약학원 같은 곳이 있어서 방과 후 수강을 하며 또 열심히 2년을 배웠지요. 덕분에 침놓는 법도 알게 됐지만 학문적 궁금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어요. 그런 식으로 주역, 성명학 분야 등을 섭렵하면서 결국 천문학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그 과정이 근 40년 세월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8괘의 근본 생성원리를 논하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천문도임을 알게 되고, 훈민정음 역시 하도 및 낙서와 연계된 천문원리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글자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그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훈민정음의 중성 배열 순서(· ㅡ l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는 동양천문도인 하도에 이론적인 바탕을 둔 것이고, 초성 배열 순서(ㄱㅋ¤, ㄷㅌㄴ, ㅂㅍㅁ, ㅈㅊㅅ, ¤ㅎㅇ,ㄹ,△)는 낙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 훈민정음이 28자로 만들어진 이유 역시 28수 천문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의 천문 사상은 동서남북에 각각 7개의 별자리를 배치해 모두 28개의 별자리로 하늘을 상징한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33년 세종이 직접 28수 거리 및 도수 등을 일일이 측정해 천문학자 이순지에게 석판에 새기게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세종은 당시 혼천의·자격루·앙부일구 등 뛰어난 천문·계측기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후 훈민정음을 완성했다. 반 소장은 “당시 중국의 책력·달력을 얻어다 쓰던 조선은 세종의 자주적 천문역법 제작으로 명실공히 주권국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렇게 천문으로 ‘우리 하늘’을 찾은 세종이 그 다음 작업으로 천문으로 우리글을 창제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즉 세종은 명나라의 하늘에서 벗어나 ‘조선의 하늘’을 갖고자 했던 자주정신의 연장선상에서 ‘조선의 문자’인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그가 훈민정음이 천문의 원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당시 마치 도를 닦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개안(開眼) 같은 신비 체험도 했다고 한다. “눈알에 덮여 있는 투명하면서도 하얀 막이 벗겨지는 듯한 현상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러고는 하늘의 별자리와 하도 및 낙서의 원리가 하나로 엮여져 입체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마음이 읽혀지면서 한글이 철저히 28수 천문의 원리를 적용시켜 만든 글자임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불교에서 말하는 견성(見性)이 바로 이런 체험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의 체험은 학문을 깊이 천착하다 보면 어느 순간 홀연히 모든 이치가 하나로 관통하면서 막힘이 없는 이통(理通)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나 그러기까지에는 집안의 희생이 있었다. “제가 교사 생활하면서 받은 월급이 보름이 지나면 바닥이 나는 바람에 아내가 이웃들에게 생활비를 빌리는 일이 한두 해가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1980년대 초반인가, 제 월급이 80만 원쯤 하던 시절입니다. 월급의 3분의 1을 제 공부하는 데 쓰다 보니 아내는 늘 생활비에 쪼들리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엄두도 못 냈다는 거예요. 아내는 그런데도 한번도 월급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어요. 결혼 선물로 받은 백금반지를 전당포에 맡겼다가 되찾아오는 일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는 얘기를, 교사직을 은퇴할 즈음에 처음으로 듣고는 얼마나 미안했던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저는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오로지 공부하는 데만 집중하느라 신나게 돈을 쓰고 돌아다녔던 거지요.” 아내의 희생 덕분으로 그는 2013년 그간의 천문학과 훈민정음 연구 결과를 논문(훈민정음 창제원리와 천문도와의 상관성)으로 발표해 이 분야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옛글자를 사용한 21개 외국어회화 표기 예’ ‘한글의 세계화 이대로 좋은가’ ‘한글 창제원리와 옛글자 살려 쓰기’ ‘씨아시말’ ‘쥐뿔이야기’ 등 한글 관련 저서를 꾸준히 펴냄으로써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한글이 훌륭하다는 걸 알면서도 의외로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연구하는 학자가 적다는 점이 늘 아쉬워요. 경기도와 여주시가 여주 영릉에서 개최하는 한글날 기념식 때 훈민정음 서문을 옛 발음으로 낭독할 수 있는 이가 없어 할 수 없이 제가 수년째 낭독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도로명 주소는 정체불명의 안내판 그의 한글 사랑은 훈민정음 연구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한국땅이름학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순우리말 땅이름이 한자 이름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원래 지니고 있던 의미를 잃어버린 경우가 허다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몇 가지 사례. 전남 ‘목포(木浦)’라는 지명을 보자. 남쪽의 개펄이라는 뜻의 ‘남의 개’가 ‘나무개’로 변하고 그것이 나무 목(木)과 물가 포(浦)로 잘못 인지돼 오늘의 목포라는 지명이 됐다고 주장한다. 남이섬도 잘못 안 사례다. 이 역시 ‘남쪽의 섬’이라는 뜻인 ‘남의 섬’인데, 그것이 와전돼 ‘남이섬’이 돼버렸고, 엉뚱하게 남이장군의 가짜 무덤까지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남이 장군의 진짜 무덤은 경기 화성군에 있다. 또 여우고개는 산길이 넓지 않고 여윈(살찌지 않은) 길이 나 있는 고개라는 뜻의 ‘여윈고개’인데 여우고개로 둔갑했다. 몽촌토성의 ‘몽촌’은 어떨까. 원래는 큰 마을이라는 뜻의 ‘검마을’이었고, 이게 경음화 현상으로 ‘끔마을, 꿈마을’로 변했다. 그런데 ‘꿈’이라는 단어 때문에 한자음을 빌려 꿈 몽(夢), 마을 촌(村)으로 표기함으로써 오늘의 몽촌이 됐다. 원래의 우리말과 그 변천 과정을 아는 것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렇게 부지기수로 잘못 알려진 지명을 바로잡아야 우리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반 소장의 주장이다. 반 소장은 한국땅이름학회 회장 자격으로 2014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서울 종로의 종각 사거리에서 도로명에 동이름을 병기해야 한다는 길거리 서명 운동을 주도한 바 있다. 그 결과 현행 도로명 주소에 동명을 추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역의 역사와 유래, 형세, 기후풍토, 지세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이 동네 이름입니다. 선비마을, 정승골, 비석골, 효자동, 삽다리, 양산다리, 너덜이, 놀뫼, 노루목, 구리골, 말죽거리, 마장동, 구파발, 역삼동, 역촌동, 비상리, 비하리, 무너미, 온정리, 초정리, 약수동, 옥수동 등은 그 마을의 유래와 용도를 정감 있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지명에는 우리 역사와 문화가 들어 있어요. 그걸 행정 편의성을 이유로 ‘월가 몇 번지’하는 서구식 주소로 개편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현행의 도로명은 정체불명의 주소입니다. 오히려 우리 전통이 살아 숨쉬는 지명을 찾아내 적극적으로 사용해도 모자랄 판에 말입니다.” 그는 울분을 토해내듯 현행 도로명 주소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했다. 그의 한글과 우리 문화 사랑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옛날에 배운 한약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토종의 홍화씨와 오이씨를 구해 20여 년 전에 구해 지금까지도 보존해오고 있을까. “토종 홍화씨와 오이씨 등 우리 종자가 없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씨앗을 보관해오고 있어요. 저마저 이것을 갖고 있지 않으면 언제 멸종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예요. 진심으로 우리 토종 씨앗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나누어줄 생각도 있습니다.” 그는 기자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체 한다’는 얘기를 꺼냈다. ‘쥐뿔’은 ‘제 뿌리’라는 말로 제 뿌리도 모르는데 남의 일에 참견한다는 의미다. 비어로 알고 있는 ‘¤도 모르면서 까분다’는 말도 비슷하다고 했다. ‘¤’은 조상 조(祖)에서 유래한 것으로 역시 ‘조상도 모르면서 까분다’는 뜻이라고.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그의 말에 기자의 마음 한쪽이 뜨끔했다.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북한의 도발적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에 맞선 대북 제재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논란으로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상황을 대놓고 바둑 싸움에 비유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추(環球)시보는 “사드를 배치하면 한국은 중국과 미국이 벌이는 바둑 싸움에서 어쩔 수 없이 바둑돌 신세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무례하고 불쾌한 제국주의적 시각이지만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미-일-중-러 4대 강국이 치열하게 수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강대국의 흥망’을 쓴 폴 케네디가 한국을 네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들 사이에 낀 작은 동물에 비유한 것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상황을 내다본 선지자들이 있다. 구한말에 활동한 강증산(1871∼1909)은 한반도의 ‘4대 국운혈(國運穴)’ 중 하나인 순창 회문산의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반도 미래가 다섯 신선이 바둑판에 둘러앉아 바둑을 두는 오선위기의 형국처럼 전개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묘하게도 당시 조선은 지방 행정 체계를 바둑판 모양으로 바꿨다.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8도제를 폐기하고 23부 337군으로 지방조직을 개혁한 것. 모두 합쳐 360개로 재편한 부군제(府郡制)는 바둑판의 360점과 일치한다(바둑판은 19×19줄로 모두 361점이지만 정중앙의 1점은 왕의 자리라 하여 제외한다). 강증산은 “조선은 바둑판이고 조선 사람들은 바둑돌이다. 두 신선은 바둑을 두고 두 신선은 훈수하고 한 신선은 주인이다. 주인은 어느 편도 훈수할 수 없기에 손님 접대만 잘하면 주인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백돌과 흑돌 두 패로 나뉘어 바둑을 두고 훈수하는 네 신선은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를 가리킨다. 나머지 한 신선은 바둑판 주인인 한국이다. 네 신선이 벌이는 바둑 게임의 결말은 동학계 비결서로 알려진 ‘춘산채지가’에 묘사돼 있다. “수는 점점 높아가고 밤은 점점 깊어간다. 상산사호(商山四皓·중국 진한 시대에 난세를 피해 산시 성 상산으로 들어가 바둑을 두며 조용히 살던 네 명의 도인) 네 노인이 개가 짖고 날이 새니 각자 귀가하는구나. 주인 노인 거동 보소. 일장춘몽(一場春夢) 깨어보니 바둑판과 바둑돌은 주인 차지 되었구나.” 선지자들의 예언은 한결같이 4대 강국이 열심히 바둑 싸움을 벌이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각자 갈 데로 돌아가고 한반도는 결국 한국 몫이 된다고 했다. 오늘의 국제정치 상황에서 이런 예언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이라는 숙제를 풀어야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특히 한반도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기(殺氣)인 핵무기를 수용할 수 없는 땅이다. 팔괘(八卦) 방위론으로 간방(艮方·동북방)에 해당하는 한반도 자체가 살기와는 상극인 생기(生氣)의 땅이기 때문이다. ‘주역 설괘전’에서는 간방을 만물의 결실과 탄생이 동시에 이뤄지는 곳(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의 생식기 부위처럼 생명의 잉태와 출산이 이뤄지는 성스러운 터라는 뜻이다. 지구의를 보아도 그렇다. 일본과 미국이 좌청룡(左靑龍)을 이루고 중국과 러시아가 우백호(右白虎)를 이뤄 명당 한반도를 감싸주는 모양새다. 북한의 핵은 한반도에 스스로 살기를 끌어들이는 꼴이다. 풍수에서 명당은 그 기운에 맞지 않는 것을 내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도교 경전 ‘음부경(陰符經)’은 “땅이 노해 살기를 뿜어내면 용과 뱀이 땅 위로 나온다”고 경고한다. 화산과 지진을 용과 뱀으로 비유한 말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백두산 화산이 폭발할 조짐이 있다는 우려는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핵을 고집하는 김정은 정권 역시 한계로 향하고 있다. 한국 비결서들에 들어있는 예언 코드를 풀이해보면 한국의 19대 대통령 임기 중에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와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진다고 한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 신선들이 한반도라는 바둑판에서 평화롭게 물러가도록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고 통일 과업을 수행해 낼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탁월한 협상력으로 강동 6주를 되찾은 고려의 정치가이자 외교가인 서희 같은 지도자가 그리운 요즘이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식물에도 4가지 체질이 있다” “기원전 300년 이전에 지은 ‘태일생수(太一生水)’란 문헌을 보면 생성과 순환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잘 표현해주고 있어요. ‘음(陰)과 양(陽)은 서로 도와 사시(四時·사계절)를 이루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은 서로 도와 차가움과 더움을 이루고, 차가움과 더움은 다시 서로 도와 습함과 건조함을 이루고, 습함과 건조함은 다시 서로 도와 한 해(歲)를 이룸으로써 멈춘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차가움과 더움, 습함과 건조함을 자연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적 개념으로 차가움과 더움은 온도의 문제이고, 습함과 건조함은 습도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온도와 습도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요소지요. 식물을 키우는 농사법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독특한 농사 철학을 갖고 있는 농부 이훈규 씨(59·이온종묘 대표)의 말이다. 자연물은 오로지 사계절의 춥고 따뜻하고 건조하고 축축한 성질에 따라 성장과 멈춤을 반복하므로, 그에 맞춰 농사를 지으면 된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식물도 사계절의 한난조습(寒暖燥濕)의 4가지 특성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 이 대표는 이를 실험을 통해 처음 밝혀낸 인물이기도 하다. “식물에 대해 수많은 임상 실험을 한 결과 식물의 기질과 환경은 서로 반대가 돼야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20℃(기준)의 비교적 차가운 환경에서 잘 자라는 ‘열성기질’의 식물과 30℃(기준)의 비교적 무더운 환경에서 잘 자라는 ‘냉성기질’의 식물이 따로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25℃(기준)에서 습도가 낮은 곳에서 잘 자라는 ‘습성기질’의 식물과 온도 25℃(기준)에서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 잘 자라는 ‘조성기질’ 식물도 있고요.” ● 사상체질의학을 바탕으로 한 오행농법 그의 설명을 듣노라니 사람을 네 가지 체질로 분류해서 유명한 조선 말기 의학자 이제마(1837~1899)의 체질의학이 머리에 떠올랐다. 목·화·토·금·수라는 오행 이론을 바탕으로 사람을 4가지 체질(태양인·태음인·소양인·소음인)로 구분한 이제마의 이론과 그의 식물 분류 이론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동양의 음양오행 이론을 사람에게 적용한 학문으로는 사주팔자를 풀이하는 명리학(命理學)과 이제마의 체질의학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명리학 고수를 찾아 취미 삼아 사주팔자론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체질의학에도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런데 한의학계에서는 체질의학 이론을 치료에 적용하면서도 그 이론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연구는 눈에 띄지 않더군요. 저는 농부이다 보니 체질의학에서 체질에 따라 달리 처방하는 식물군을 채집해 직접 키우면서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체질 분류 이론이 식물분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걸 찾아낸 거지요.” 이 대표는 담담하게 표현했으나 그의 말은 결코 담담하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제마는 한 해에 한난조습의 4가지 특징이 드러나는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사람 체질도 여름인(소양인), 겨울인(소음인), 봄인(태양인), 가을인(태음인)으로 분류하고 그 원리를 설명했지만 체질별로 처방하는 약재를 분류하는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즉 어떤 약재가 무슨 이유로 특정 체질에 좋은지를 객관적,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는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체질별로 도움이 되는 식물 분류의 툴(도구)을 개발해낸 것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보리, 쑥갓, 시금치, 미나리, 부추 같은 열성기질 식물은 20℃ 이하의 차가운 환경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몸이 찬 소음인(겨울인)과 궁합이 잘 맞는다. 인삼 역시 광합성 최적온도가 15℃로 열성기질 식물이기 때문에 소음인이 먹을 경우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명약이 된다. 마찬가지 원리로 상추, 오이, 토마토, 고추, 수박, 참외 등은 30℃ 이상의 고온에서 잘 자라는 냉성기질 식물이어서 몸이 뜨거운 소양인에게 좋다. 체질이 건조한 태양인(봄인)은 25℃ 정도의 건조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습성기질 식물인 메밀, 포도와 궁합이 잘 맞으며, 체질이 습한 태음인(가을인)의 경우 25℃ 정도의 습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조성기질 식물인 무와 찰떡궁합이다. “결론적으로 이제마 선생이 사상의학 처방에 사용한 약재는 식물의 생육 온도와 습도를 기준으로 분류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온도, 구체적으로는 약재의 광합성 최적 온도가 핵심입니다. 저는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은 끝에 식물 분류 기준이 되는 최적온도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의학 서적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황제내경’에서 ‘차가운 것은 따뜻하게 하고, 더운 것은 차갑게 하라(寒者熱之 熱者寒之)’는 말이 왜 질병을 치료하는 대명제인지를 깨닫고는 극도의 희열감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지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흐뭇한지 그의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식물과 ‘연애’를 하느라 환갑이 다 돼가는 지금도 그는 미혼이다. 그는 아직도 연구 중이다. 서울대 농대 원예학과 출신인 그는 2007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채소작물의 음양오행학적 고찰’이란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후 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학위 논문까지 제출해놓은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본업인 농사를 접어두고 학자의 길을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모교인 서울대 후배들에게 식물에도 체질이 있으니 그걸 연구하면 식물분류학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연구를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따라오지 않더라고요. 할 수 없이 처음 시작한 제가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현재 제 학위 논문이 농학과 의학의 중간지대에 있다 보니 논문 심사를 해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주춤해 있는 상태입니다. 농학에서는 음양오행론에 기반한 약재 이론을 아는 이가 없다 하고, 한의학에서는 식물학을 연구한 사람들이 없다는 거지요.” 이 대표는 지난해 중국의 중의학자가 고대의학서 ‘주후비급방’에 학질약으로 기록돼 있는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 성분인 아르테미시닌을 찾아낸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탄 사례를 들면서 매우 안타까워했다. 한국의 사상체질의학은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의학 이론이자 과학 이론이니 꾸준히 연구하면 노벨상도 받을 수 있는 보고라는 것이다. 또 체질별 식물분류는 당장 한의학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천연식물을 주재료로 삼는 약학계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 남에게 도움되는 일이 가장 즐거운 일 의학과 동양철학을 넘나드는 그의 얘기에 푹 빠져들어 있다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봤다. 그의 집무실이자 농사를 짓는 터는 경기 일산의 북쪽 끝자락에 있는 농지인데, 전체가 비닐하우스로 되어 있다. 그의 본업은 육묘와 육종 사업. 그는 이곳 비닐하우스 온실에서 식물의 체질분류를 연구하면서 상추, 전대, 배추, 고추, 토마토 같은 채소도 육종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1982년 대학을 졸업한 후 5년간 국내 굴지의 종묘회사에서 일한 뒤 1987년 독립해 30년 가까이 이 사업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사실 기자는 5년 전 이 장소에서 이 대표를 처음 만났다. 이번이 두 번째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별로 없어 보인다. 그가 육종사업으로 개발해낸 빨간 카네이션도 잘 자라고 있었다. “어버이날에 주로 쓰이는 꽃인지라 이름을 부모님의 건강과 장수를 빈다는 뜻에서 ‘만수무강’이라고 지어 특허 등록을 해놓은 꽃이에요. 현재 국내 카네이션 시장은 300만 본 정도로 추정하는데 우리나라 농부들이 대부분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고 외국 모종을 사서 기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열 받아’ 토종 카네이션을 개발했던 거지요. 외국산 품종은 삽목묘 1주당 600~700원 정도 하는데, 품질이 좋은 ‘만수무강’을 350원 정도에 농가에 보급하니까 국내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어요.” 그는 카네이션만 10종류의 특허를 갖고 있고 외국 수출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다고 밝혔다. 얼마 전엔 ‘화분용 카네이션’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는데 반응이 썩 괜찮다고 한다. 외형은 5년 전 그대로인 듯한데도 무언가 발전의 에너지가 충만한 분위기다. “지금까지는 내가 즐거운 일을 해왔기 때문에 지나온 삶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그리고 내게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란 결국 나 자신의 이익보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때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농가에 도움이 되는 육종 사업을 지속적으로 할 계획입니다.” 그와의 두 번째 온실 방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은 늦추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기자에게까지 전해진 때문일까. 미래의 어느날 세 번째 방담에서는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된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1. “길 건너 보이는 A아파트 단지는 도깨비 터로 소문나 있어요.” 인천 남구에 있는 A아파트 매물을 소개하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에 사업가 지인이 귀를 쫑긋 세웠다. 중개업자는 ‘도깨비와 친하면 일이 잘 풀린다’는 속설로 지인의 마음을 끌려고 했다. 왜 도깨비 터라고 하는지는 얼마 후 아파트 주민들이 즐겨 찾아 담소를 나누는 K미용실의 원장(45)을 통해 드러났다. “20여 개 동이 있는 아파트 단지인데 최근 3년 사이 몇 개 동에서 서울대 합격생이 8명이나 나왔다고 하더군요. 다른 일류대에도 많이 들어갔고요. 그런데 대형 평수가 있는 다른 동에서는 사업하는 사람들이 입주했다가 족족 망해서 나갔다고도 해요. 그래서 도깨비 터라고 숙덕거리는 것 같아요.” #2. 서울 인왕산 자락을 끼고 10여 개 동이 오밀조밀 들어선 B아파트 단지. 중고교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단지로 소문난 곳이다. 이 아파트에서 10여 년째 살고 있는 주부 김모 씨(53)는 서울 강남의 어느 유명 학군 아파트에도 꿀리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자녀가 SKY대(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합격했다고 해도 함부로 자랑을 못해요. 한 집에서 두 명 이상은 나와야 명함을 내밀 수 있어요. 우리 애 둘도 SKY대에 다니고 있고요. 그런데 우리 아파트는 기가 세다는 인왕산 자락에 있어서 그런지 웬만한 사람들은 버티지 못하고 많이 떠나기도 했어요.” 인천과 서울 강북 지역의 특정 아파트와 특정 동에서 SKY대를 비롯한 일류대 진학생을 많이 배출하는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을까.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두 아파트를 풍수적 시각으로 살펴봤다. 인천의 A아파트 중에서 50평형대로 구성된 특정 동은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만나 형성된 생기혈(生氣穴)이 3층 간격으로 맺혀 있는 형국이었다. 오행(五行)의 기운으로 분류하자면 집중력과 성취력을 높여주는 목(木) 에너지가 많았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만했다. 반면 60평형대로 이루어진 일부 동에서는 땅의 살기(殺氣)인 암반 수맥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었다. 이런 터에서 오랫동안 살면 건강은 물론이고 생업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전체적으로 이 아파트 단지는 갯벌을 매립한 터에 들어서 있는데, 수맥파의 영향을 받는 동과 명당 기운이 깃든 동이 명확히 구별되는 곳이었다. 정작 도깨비 터로 불릴 만한 곳은 서울의 B아파트 단지. 옛 명문고교 터에 들어선 이 아파트는 단지의 대부분이 인왕산의 강한 지기를 받는 생기혈 명당이었다. A아파트의 특정 동처럼 목기가 풍성하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었다. 터의 기운을 감당해내는 사람들은 그 혜택을 보지만, 터의 기운에 치이면 떠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기가 셌다. 이를 두고 ‘도깨비놀음’이라고 한다. 터의 기운과 잘 사귀면 하는 일이 술술 풀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터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오묘함을 도깨비에 비유한 것이다. 터와 사람의 교류는 고전 양택서인 ‘황제택경(黃帝宅經)’에서도 중요하게 다룬다. 사람은 집으로 말미암아 바로 서고, 집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니, 사람과 집은 서로 돕는 관계라는 것이다. 중국 위진시대의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명으로 유명한 혜강(5康)은 명당의 기운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는 “집이 길하다고 해서 모두 복을 받는 것은 아니다. 군자가 순리에 따라 적덕(積德)을 행해야만 원래의 길함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양의 고차원적 수양론은 제쳐두더라도 자녀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주는 게 좋다. 이때 무엇보다도 생기와 반대되는 살기 터는 피해야 한다. 학업과 건강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곳, 개미들이 들끓거나 벌집이 생긴 집, 아이들이 잠을 설치는 방 등은 땅의 살기인 수맥파가 흐르기 십상이다. 반경 100m 이내에 고압전류가 흐르는 지역 역시 권할 게 못된다. 이런 터에서는 성적을 올려준다는 풍수 인테리어를 해도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까치나 참새 등은 본능적으로 살기를 피해 집을 짓고 산다. 사람이 새집보다 못한 집에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수도 서울의 땅심(지기·地氣)을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은 누구일까. 풍수학에서 볼 때 기자는 조선의 21대 왕 영조(1694∼1776)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꼽는다. 두 사람 모두 서울의 명당수(明堂水)인 청계천을 살리는 데 노력했기 때문이다. 영조는 인공천인 청계천을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한 임금이다.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 등지에서 내려온 물줄기들이 모이는 청계천은 장마 때면 물이 넘쳐 큰 피해를 냈다. 영조는 1759년 준천소(濬川所)라는 임시 관청까지 만들어 대대적으로 청계천 준설작업을 벌였다. 도시 빈민 구제 목적도 있었다. 당시 한양에는 지방에서 몰려든 실업자들로 북적였다. 하천 바닥을 파내고 여러 다리를 놓는 데 2개월이 걸렸고 총인원 20여만 명이 동원됐다. 한양 실업자들에게는 좋은 일자리였다. 이렇게 해서 청계천은 새로 태어났다. 영조의 청계천 살리기 사업에는 정치적 의도도 숨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평안도와 함경도 일대에서는 ‘정감록’이라는 참위서가 나돌아 민심이 흉흉했다. 내용은 한양의 땅 기운이 다해 왕조가 바뀌게 된다는 것. 즉위 이후 역모 사건에 시달려온 영조로서는 무시하지 못할 예언이었다. 땅 기운을 조절하는 데는 물만 한 것이 없다. 풍수 고전 ‘장서(금낭경)’는 ‘물을 얻는 것(得水)이 으뜸’이라고 할 정도로 물길은 매우 중요하다. 지상에서 흐르는 물은 생김새, 유속, 맑기 등에 따라 인근의 명당 기운을 가두거나 담아주는 그릇 역할을 한다. 풍수에 밝았던 영조가 이런 이치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영조가 청계천 물길 살리기를 통해 한양의 기운이 건재함을 백성들에게 과시하려 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연유다. 그 덕분일까. 서울은 조선 왕조가 끝나고 대한민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수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명당수는 고이지 않고 흘러야 하며, 지상에 드러나 있어야 생명력이 있다. 그래야만 그 주변에 형성된 명당 기운을 모으거나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복개된 청계천을 되살려 놓은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그래서다. 명당수처럼 좋은 물인 양수(陽水)도 있지만, 나쁜 물인 음수(陰水)도 있다. 지하의 수맥지대, 웅덩이처럼 갇혀 썩은 물, 인공물질에 덮여 그 아래로 흐르는 물 등이 음수다. 건물 지하에 있는 수족관(아쿠아리움)이나 복개천도 음수에 속한다. 음수는 부근의 좋은 기운을 갉아먹거나 나쁜 기운을 활성화시킨다. 그래서 그 위에 터를 잡은 사람들의 건강과 재운(財運)을 위협하기도 한다. 청계천은 복원을 통해 음수에서 양수로 바뀌었다. 청계천의 양수 기운은 주변 땅값을 올리고 상권을 일으키는 ‘선물’을 가져왔다. 이 사업을 벌인 이명박 시장이 대통령이 되는 데도 청계천이 한몫했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들어선 SK, 한화, 아모레퍼시픽, 미래에셋, 두산 등 대기업 사옥들도 명당수에 의한 사운(社運) 강화를 기대하고 있다. 청계천으로 사옥을 이전한 후 일부 그룹 총수들이 비리 사건으로 구속되는 수난을 겪자 ‘청계천은 대기업의 무덤’이라는 괴담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청계천을 탓할 일이 아니다. 사옥 기운이 업그레이드되면 사옥 ‘주인’도 그에 맞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강한 기운을 가진 터일수록 그 터에 어울리지 않는 주인을 반기지 않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터와 사람의 동기감응(同氣感應) 현상이다. 청계천은 풍수적 관점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청계천의 시작 지점인 청계광장의 조형물(스프링)은 수원(水源)의 상징이라고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풍수학자 김두규 교수는 “외국 유명 조각가가 디자인한 조형물이 마치 똬리 모양의 변(便)이 쌓여 있는 모습이어서 청계천을 더럽히는 형세”라며 혹평했다. 기자 역시 이 자리에는 수원을 상징하는 산이나 금생수(金生水·금이 물을 만든다)의 오행원리를 담은 상징물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자연생태와 역사문화를 왜곡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전국에 복개천 복원 붐을 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복원된 수원천을 둘러봤다. 2012년 자연형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수원천 일대는 예전과 달리 생기가 충만했고 인근 시장 상인들에게서도 활력이 느껴졌다. 수원천을 복원하기 전에 근처에서 1년간 살아본 적이 있는 기자로서는 물의 변신과 그에 따른 땅 기운의 변화를 실감했다. 물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물이 아니라 사람이다.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풍수학 중에 음택(묘지)풍수론은 땅에 묻힌 조상의 ‘유전정보’를 읽어내는 술학(術學)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조상 유골의 기운이 땅의 기운과 교합해 살아 있는 후손에게 전해진다는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이다. 이때 자손은 친가든 외가든 유전적으로 친연성이 강한 쪽 조상의 기운을 받는다. 이건 멘델의 유전법칙과도 얼추 비슷하다. 멘델은 자식 세대가 부모로부터 우성이나 열성 정보가 담긴 유전 형질을 전달받는 비율을 각각 50%로 봤다. 또 조상의 특징적 유전 형질은 당대(자식)에 나타나거나 잠복 후 손주 세대에 발현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자손이 친가와 외가의 기운을 절반씩 확률로 이어받는다는 동기감응론은 ‘위험한’ 사고체계로 변질되기도 했다. 신라의 골품제가 좋은 예다. 골품제는 고구려와 백제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유독 신라에만 고유했는데 그걸 두고 왕권 강화니 계급사회 유지니 하는 학설이 제기됐다. 하지만 풍수학의 눈으로 보면 쉽게 설명된다. 신라의 집권층은 이집트의 파라오 왕가와 비슷했다. ‘명당의 뼈대가 검증된’ 성골(聖骨)끼리 혼맥으로 명당 기운을 독점적으로 누리려 한 점에서다. 혼인 상대로부터 올 수도 있는 ‘정체 모를’ 조상의 기운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명당 기운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서는 왕권의 정통성과 영속성까지 꾀하려 한 것이다. 근친결혼으로 인한 유전적 결함과 기형아 출산까지 감수하며. 이런 흔적은 현대에도 발견된다. 지난 250년간 세계적 금융 재벌로 군림해온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렇다. ‘사촌 간 결혼 장려’ ‘외척의 경영 참여 배제’를 유지로 삼을 정도로 가족순혈주의를 강조한 집안인데 그건 축적한 부를 외부인에게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런데 유대계의 이 가문이 구사한 풍수법을 보면 신라의 골품제 못지않게 명당 순혈론을 강조하고 있다. 5개 집안으로 구성된 로스차일드 가문이 구사한 음택과 양택을 살피자 한결같이 재물 명당 혈을 정확히 차지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것도 지기형(地氣形)으로 기운은 모두 균일했다. 유대계에도 나름의 명당 논리와 동기감응 전통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확인시키는 대목이었다. 후손이 친가와 외가 조상의 기운을 동등하게 받는다는 동기감응론이 조선왕조에서만은 심하게 변질됐다. 남성 위주의 유교적 세계관 확산이 그 배경이다. 풍수학에까지 부계 위주의 풍수 논리가 횡행해 모계로 유전되는 동기감응론이 무시되는 풍조가 만연한 탓이다. 이는 풍수학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조선의 역대 군왕이 최고의 지관을 동원해 명당에 음택을 조성했음에도 그 말로가 좋지 않은 것을 들어 제기한 명당 무용론이 그 요체였다. 모계 쪽 조상에서 이어져 내려온 유전정보를 무시하거나 인지하지 못해 그럴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도 못한 채. 그렇다면 ‘외손발복(外孫發福)’이란 명당론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부계 쪽의 음택(무덤)이나 양택(거주지)만 기준으로 삼아 백호(무덤 오른쪽 산줄기) 기운이 발달하면 딸(외손) 쪽이 번성하게 된다는 이론인데, 모계로 내려오는 기운의 영향력을 완전 배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동기감응론은 비단 음택에만 머물지 않는다. 터와 거기 사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기운 같은 것으로 서로 연결돼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엔 서로의 기운이 동조(同調)돼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양택 이론에 따르면 터나 특정 건물에서 어떤 징후나 사달이 발생하면 그 터와 연관되는 이의 앞날에도 변화가 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우리 삶에서도 가끔 목격된다. 사는 집의 상하수도가 말썽을 일으키거나 가구나 전자제품이 자주 오작동을 일으키면 가구주가 이사 갈 상황에 놓이거나 의도치 않은 변고를 맞는 것이 그 예다. 그리고 이건 역으로도 추론된다. 터의 주인이 편안하고 활기차면 그 터 역시 그에 맞는 기운에 동조돼 생기를 띠게 된다는 논리다. 터 주인이 어떠한가에 따라 터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궂은일을 맞더라도 조상 탓, 터 탓만 할 건 아닌 듯하다. 내 터를 좋은 기운으로 스스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똑같은 하늘 아래서 숨쉬고 먹고 살아가면서도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나 인증하는 별난 생각과 튀는 행동으로 ‘별종’이니 ‘기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도시 속에서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면서도 보통 같지 않은 삶을 사는이들도 있다. 속세인도 출가인도 아닌, 이른바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인물들이다. 평범하지만 도인 같기도 한 그런 인물들을 ‘이인(異人)’으로 명명하고, 그들의 내면을 살짝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 》 “잘 지은 이름은 보약보다 훨씬 좋다” 하루 19시간, 호흡을 통한 명상 수련을 했다. 들숨 30초, 날숨 30초를 지속적으로 하면 하루 종일 뇌파가 델타파(4Hz 범위 이하의 주파수) 상태가 돼 명상이 가능했다. 수련 장소도 동굴이나 암자 같은 격리된 공간이 아니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 결재를 하는 등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몸은 저절로 호흡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비한 현상이 나타났다. 저승에서나 마주칠 법한 영(靈)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말까지 걸어왔다. 이른바 영통(靈通)의 단계였다. 이 정도면 세상에 나가 영능력자 대접을 받으며 우쭐거리며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욕심을 버렸다. 그랬더니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과거와 미래의 모습이 보였다. 전세(前世)와 후세(後世)의 장면이 컬러TV 화면처럼 펼쳐져 무불통지(無不通知)의 경지에 오른 것 같았다. 예지력으로 돈 방석에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그러나 또 버렸다. 그랬더니 더욱 깊은 단계로 들어갔다. 초능력이 찾아왔다. ‘삼국지’의 제갈량이 동남풍을 부르고, 전우치의 호풍환우(呼風喚雨) 같은 도술이 마냥 허황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호기심에 본인도 해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도술 같은 것을 부리면 자연계의 질서를 어지럽혀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명상을 멈추었다. 30년간 명상 호흡을 해온 안동연 박사(60ㆍ두원네임컨설팅연구소장)의 수련기다. 그에 대한 소문은 15년 전부터 듣고 있던 터였다. 당시 국내 최대 수련단체 중 하나를 이끌고 있던 한 명상 지도자가 공사석에서 그를 ‘사백(師伯)’으로 대접할 만큼 내공이 깊다고 했다. 그런 그가 최근 느닷없이 ‘이름치료사’란 명함을 들고 나타났다. 시쳇말로 사람의 이름을 풀이하는 성명학(姓名學)이라는 술수를 들고 작명가로 등장한 것이다. 동양에는 사주명리학, 풍수지리학, 관상학 등 여러 술학이 있다. 그런데 성명학은 그 이론 체계가 간단하고 도식적이어서 역술계에서도 별로 대접을 해주지 않는 분야다. 그의 수련 이력을 볼 때도 성명학은 무언가 격에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세상에 드러나 있는 그의 사회 이력을 봐서도 그렇다. 1970년대 경찰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경찰대학 교수,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기법개발실장, 행정자치부 국가재난관리시스템기획단 총괄조정반 등에서 근무한 공직자 출신인 데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명함을 받아 들고 ‘도대체 왜?’하고 뜨악해하는 기자의 표정을 읽은 듯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우주와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도 해요.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하늘로부터 운명(運命)이란 게 주어지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의 기운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런 걸 연구하는 학문이 사주학이고 풍수학 아닙니까. 이건 우리가 바꾸려고 하거나 어찌 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그러나 이름은 다릅니다. 이건 내 의지로 스스로 바꿔볼 수 있는 인간의 영역이에요. 그리고 이름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안 소장은 이름의 중요성을 명상 수련을 통해 체득하게 됐다고 말했다. 7년 전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를 화두로 삼아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바꿔 불러보았다. 그랬더니 몸 상태가 확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여러 개의 이름을 불렀더니 그때마다 몸의 반응도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이런 현상을 풀어보기 위해 본격적으로 이름 연구에 나섰다. 그런데 이름법과 관련한 50여 권의 서적을 훑어보고, 국내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작명가들을 만나 궁금증을 물어봐도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대부분 중국 송나라 때 만든 이론에 기댄 작명법에 따라 좋은 이름과 나쁜 이름을 구별할 뿐,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지 못하는 게 답답했다. 무엇보다도 이름의 힘이 사람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데도 옛날 이론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작명을 한다는 현실이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안 소장은 스스로 과학적 탐색에 나서기로 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김재수 KIST 명예교수가 이름의 에너지를 측정할 수 있는 각종 과학 장비를 준비해 줬다. FDA 승인을 거치고 의료기관에서도 쓰고 있는 생체정보(오라) 측정기를 비롯해 심장박동측정기, 뇌파측정기, 항산화역량측정기, 혈압계 등의 의료 장비가 모두 들어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의 소리 에너지가 심장 박동과 뇌파, 체온, 장기 등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장비들이었다. 측정 방법과 해석에 대해서는 파나톡스통합뇌센터 정윤수 원장, 장신대 자연치유대학원 이영좌 외래교수, 전 전주대 대체의학대학원장 오홍근 교수, 도연한의원 이상건 박사 등에게 자문했다. 측정 결과는 놀라웠다. “지금까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름은 우리 심장과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좋은 이름을 부르고 듣다 보면 불안정하던 심장 박동이 안정적인 상태로 바뀌고, 뇌파의 불균형 상태가 바로 잡히면서 인체 에너지를 전반적으로 안정시키는 동시에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효과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 결국 운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개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개명 전과 후에 나타난 인체 에너지 변화를 주시하며 수만 건의 데이터를 직접 측정하고 분석하면서 ‘이름의 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안 소장은 그간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2012년과 2013년, 이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한 논문을 한국정신과학학회 학술지에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논문은 한글과 한자의 획수에 따른 이름값과 기계로 측정한 오행(五行)활성도, 몸의 에너지 균형, 뇌파 심장 같은 생체 정보 등을 모두 점수로 표준화해 바로 검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기존의 작명 이론에 따라 이름을 짓던 작명가나 역술가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지만 과학적 검증이라는 잣대 앞에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2013년 11월에는 그의 논문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중국벤처기업협회 초청으로 베이징에서 학술 발표를 하기도 했다. 올해에는 그간의 논문과 최신 연구 자료를 엮어 ‘과학과 의학으로 밝혀 본 이름의 힘’이란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잘 지은 이름은 보약 이상이에요. 좋은 이름을 자꾸 불러주면 침이나 약보다 효과가 빠릅니다.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름을 그동안 검증 없이 만들어 썼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죠. 나쁜 이름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좋은 이름을 찾는 치료법을 널리 알림으로써 건강과 행복을 찾게 해주는 일이 제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답해야 할 ‘밥값’이 아닌가 합니다.” 안 소장은 그래서 작명가라는 표현 대신 이름치료사란 간판을 내걸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요즘 책이 시중에 소개된 이후 여러 단체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두는 곳이 여성 단체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갖고 있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는 ‘계몽 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출생 시간의 기운이 아이의 운명을 바꾼다고 믿고, 자연분만을 할 수 있는데도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제가 수행 중 체험한 바에 의하면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가 수정을 하면 아이의 운명, 즉 사주팔자란 게 이미 정해지는 거예요. 그 후에는 태아가 엄마의 뱃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태어나는 순간의 시간 기운을 받겠다고 인위적으로 손을 대는 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운명적 시간을 인간이 자의적으로 바꾸는 것은 문제가 많지만 소리 에너지인 이름을 좋게 만들어서 자꾸 불러주는 게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고 과학적입니다.” 안 소장은 21세기는 인간의 의식세계가 비약적으로 진화하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세상에 선보이고 있는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은 그 전조적 현상이라는 것. 또한 10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성명학도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학적으로 여과되고 검증돼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웨어러블 스마트 헬스케어 시스템이 대중화하면 누구나 자신의 이름이 좋은지 나쁜지를 손목 등에 부착한 측정기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되므로 엉터리 작명법이 발붙일 여지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명상을 통해 얻은 지혜를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그는 분명 도시의 이인이라고 할 만하다.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1990년대 중반 풍수 소설 ‘터’로 유명했던 손석우 지관(1998년 작고)을 만났다. 소설에서 풍수설로 김일성의 사망 시기를 ‘예언’한 게 들어맞아 당대 최고의 지관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터라 손 씨의 말 한마디가 뉴스가 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명당 혈을 한눈에 찾아내고, 배우지 않고도 풍수지리서를 훤히 꿰고 있으며, 패철(나침반) 없이 정확히 방향을 잡아낸다 하여 스스로 삼경도인(三驚道人)이라고 자처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구를 다스릴 세계적 지도자를 배출하는 자미원(紫微垣) 명당 터를 혼자만 알고 있다”며 대권에 뜻을 둔 정치인들을 은근히 유혹했다. 기자는 “말씀에 ‘뻥’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하고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그는 껄껄 웃으면서 “이보시게! 풍수의 바람 풍(風) 자가 바로 ‘뻥 풍’이고 ‘허풍(虛風)’이라는 걸세. 풍수쟁이는 뻥을 먹고 사는 법이야” 하고 응수했다. ‘뻥 풍수’는 특히 땅의 모양새를 보고 사람이나 짐승에 빗대 표현하는 물형론(物形論)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납득할 만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대로 땅의 기운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지형을 예로 들어보자. 조선시대 실학자인 이익(1681∼1763)은 한반도는 백두산이 머리이고 제주도와 대마도가 두 발인 ‘사람형’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동시대 인물인 이중환(1690∼?)은 서쪽으로 얼굴을 내밀어 중국에 절을 하고 있는 ‘노인형’이라고 사대주의적 풍수관을 드러냈다. 또 1900년대 초 일본 도쿄제국대학의 고토 분지로가 한반도는 네 발을 모으고 일어선 토끼가 중국 대륙을 향해 뛰어가는 ‘토끼형’이라고 하자, 최남선이 발을 들고 대륙을 향해 달려드는 ‘호랑이형’이라고 반발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처럼 물형론에는 정치적, 사상적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배어 있다. 최근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묘를 두고 봉황이 좌우 날개에 알을 하나씩 품고 있는 ‘쌍알 명당’이라는 물형론도 등장했다. 신화와 상상 속의 신수(神獸)인 봉황이 같은 장소에서 한 개도 아닌 두 개의 알을 낳을 수 있을까. 또 양 날개에 두 개의 알을 품고 있는 새라는 주장도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물론 현충원을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공작장익형(孔雀張翼形)이나 봉황이 알을 품은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으로 보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 그런데 공작형이든 봉황형이든 그 핵심 터는 현충원의 ‘안방주인’인 창빈 안씨(1499∼1549)가 묻혀 있는 동작릉이다. 조선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는 양주 장흥 땅에 묻혔다가 당시는 과천 동작리였던 지금의 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궁의 자손인 선조가 왕위에 오르자 이곳이 천하 대명당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풍수학자인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선조 이후 조선이 망하기까지 역대 임금이 모두 창빈 안씨의 후손인 데다 창빈 사후 130년 만에 그 후손이 1000여 명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명당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창빈 안씨 묘역을 중심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 묘와 박정희 전 대통령 묘, 장군 제1묘역과 유공자 제1묘역 등이 호위하듯 배치돼 있다. 김대중,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의 묘 터는 어떨까. 창빈 안씨와 지척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가 하늘에서 기운이 하강하는 천기형(天氣形)이라고 한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는 땅에서 기운이 치솟는 지기형(地氣形)이라고 할 수 있다. 천기형이든 지기형이든 그 기운(에너지)의 질과 강도에 따라서 명당 여부를 따질 수는 있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아닌 듯하다. 어찌 됐건 두 사람의 인연이 참 묘하기는 하다. 같은 지관에게 의뢰해 300m 거리를 두고 좌우로 나란히 자리를 잡았는데도 기운의 성질은 확연히 다르니 말이다. 평생 동지적 관계이자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숙연은 내세에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내면서 이제는 풍수도 ‘뻥’에서 벗어났으면 싶다. 한자 자원(字源)을 찾아보면 풍(風)은 허풍이 아니라 하늘의 기운(天氣), 생기(生氣), 기세(氣勢)라는 고차원적인 의미로 풀이하고 있음도 사족으로 달아둔다.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미국 뉴욕의 JFK공항에 착륙하는 한밤의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맨해튼은 불야성이었다. 여전히 세계의 자본이 몰려드는 미국 경제의 중심임을 과시라도 하는 듯했다. 맨해튼의 거리는 2001년 9·11테러 악몽과 2008년 뉴욕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듯했다. 사람들에게서 활력이 느껴졌다. 곳곳에 초대형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고 새로 짓고 있는 호화로운 빌딩도 많았다. 뉴욕 일대에서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하는 샘리(44) 씨는 “맨해튼의 토지와 건물 가격은 2008년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됐다. 지금은 부동산 투자 열기가 인근의 뉴저지와 필라델피아까지 번져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맨해튼의 지기(地氣)가 다시 한 번 용틀임을 하는 걸까. 원래 맨해튼은 ‘재물 명당’의 교과서라 할 만큼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땅의 기운을 동물이나 사람의 생김새에 비유해 설명하는 물형론(物形論)으로 보면, 맨해튼은 영락없는 남성 생식기 모양이다. 생식기는 생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쪽 뉴욕 만의 바닷가까지 불끈 뻗어 내린 ‘양물’의 기운을 양옆의 이스트 강과 허드슨 강이 좌청룡, 우백호처럼 호위하고 있다. 두 강은 육지에서 나오는 명당 기운을 가두는 그릇이면서, 그 기운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까지 한다. 그래서 공중에서 기운이 뻗어 내리는 천기형(天氣形) 명당이나 땅 밑에서 기운이 용솟음치는 지기형(地氣形) 명당은 물이 둥그렇게 감싸주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부자가 되려면 물(양수·陽水)을 얻어야 한다고 한다. 즉 득수(得水)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맨해튼은 바로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다. 맨해튼 기운이 응집된 곳은 생식기 끝 부분에 해당하는 월스트리트 일대다. 묘하게도 바다 한가운데 리버티 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과 짝을 이루고 있다. 남성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을 만나야 복을 얻는다는 믿음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세워 놓은 남근석과 여근석 세트에 비유할 만하다. 월스트리트를 직접 걸어 보니 명당 기운이 몰려 있는 혈(穴)들이 곳곳에 포도송이처럼 맺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혈이 있는 곳은 세계 최대의 주식시장인 뉴욕증권거래소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금괴를 보유하고 있다는 뉴욕연방준비은행. 두 곳은 마치 피를 나눈 형제처럼 동질의 혈이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주식시장의 활황을 기원하는 월스트리트의 명물 황소 동상(Charging Bull) 역시 명당 혈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 황소를 뜻하는 영어 ‘bull’과 남성의 고환을 가리키는 ‘ball(s)’은 모두 라틴어 ballere(볼록한 물체)에서 유래했다. 비록 후세에 만들어진 우연이긴 하지만 맨해튼이 생식기 명당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황소상의 고환을 만지면 돈이 붙는다는 속설 때문인지 해당 부위는 반질반질할 정도로 사람들의 손을 탔다. 그런데 이런 터에서 왜 9·11테러 같은 참사가 일어났을까. 월스트리트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참사의 현장은 현재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는 이름으로 정사각형의 물웅덩이를 만들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방 벽면으로 흘러내리는 물은 그 아래 깊숙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주위를 살펴봤다. 짐작한 대로 이 일대는 거대한 암반 수맥(음수·陰水)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큰 명당 터라 하더라도 수맥 같은 ‘암초’는 군데군데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히 지하 깊숙한 곳에서 방사되는 암반 수맥파는 웬만해서는 막지 못할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풍수학에는 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한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이란 말이 있다. 암반 수맥지대에서 퍼져 나오는 살기는 또 다른 살기와 동조한다는 의미다. 이때는 피하는 게 최선이다. 미국인들은 9·11테러로 잃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인지 참사 현장 부근에 또 다른 이름의 세계무역센터를 여러 채 짓고 있었다. 바로 인근에 있는 훌륭한 지기 명당을 활용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다. 금리 인상을 검토할 정도로 회복 단계에 접어든 미국 경제가 앞으로도 계속 순항할지 걱정된다. 터로 세상을 바라보는 풍수학인의 염려가 기우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대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의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반경 50m 거리로 10여 층의 빌딩 세 개가 키 재기를 하듯 서 있다. 지하철 출입구도 제각각 건물 지하로 연결돼 대표적인 역세 상권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세 빌딩은 입지 여건상 똑같이 종합쇼핑몰로 출범했다. 그러나 승패는 이미 난 듯했다. “A몰은 시행업체 부도로 완공도 못 하고 방치돼 있다. 분양받은 투자자만 수백 명인데 돈만 묶인 채 발만 동동거린다. B몰은 분양을 끝내고 개장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특급층인 1층마저도 미분양분이 있고 분양가보다 싸게 나온 급매물도 상당수다. 하지만 C쇼핑몰은 다르다. 유독 이곳만 요즘 같은 불황에도 그런대로 장사가 된다고 한다.” 여기서 50년을 산 토박이 부동산중개업자 김모 씨의 말이다. 엇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세 쇼핑몰의 운명이 이렇듯 극명하게 차이 나는 이유? 전통풍수론으로도 겉만 봐선 잘 모른다. 우선 이 터에 영향을 줄 만한 산의 용맥(龍脈)이나 하천 같은 물길이 드러나 있지 않다. 돈을 불러들이는 물길이 보이지 않을 땐 도로가 그걸 대신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점에서도 세 빌딩은 차이가 없다. 도로 이용 면에서 동등한 조건을 갖춰서다. 하지만 변수는 존재했다. 드러나지 않는 땅속의 수맥이다. A와 B몰은 지하에 거대한 암반 수맥이 형성돼 있다. 반면 C몰은 그걸 피했다. 게다가 그 땅 밑에선 풍요로운 기운의 지기(地氣)가 건물 전체로 전달된다. 기자는 두 쇼핑몰의 분위기를 찬찬히 살폈다. C몰의 상인은 대체로 잘 웃고 표정도 밝았다. 반면 B몰 상인은 표정이 굳어 있었고 안색도 어두운 편이었다. 장사가 잘되지 않아선지 목소리엔 짜증도 적잖이 실렸다. 두 몰을 자주 찾는다는 한 여성은 “C몰은 찾을 때마다 상쾌한 느낌이 드는데 B몰은 무언가 어수선하고 분위기마저 어둠침침하게 느껴지곤 한다”고 말했다. 땅속의 살기(殺氣)인 수맥은 이렇듯 그 위 사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수맥의 영향은 비단 사람에게 그치지 않는다. 도로나 지반이 꺼지는 싱크홀도 대부분 수맥지대에서 발생한다는 게 풍수적 판단이다. 요즘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싱크홀의 원인을 두고 설왕설래다. 다시 강조하지만 수맥이 없는 곳에선 싱크홀도 발생하지 않는다. 건설 관계자들은 유의해 볼 일이다. 건강과 부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수맥은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다. 수맥은 유해 전자파와 성질이 비슷하다. 전자파가 발생되는 전자기기 옆에서 오랫동안 지내면 피로가 가중되듯이, 수맥의 살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인체도 거기에 반응한다. 이것은 ‘의식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주창한 ‘근육역학’ 이론과도 상통한다. 긍정적인 의식이나 물질은 근육의 힘을 강화시키는 데 반해 부정적인 것은 근육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정적 에너지인 수맥은 사람의 근육까지 무력하게 만든다. 이를 이용해 수맥 유무도 가려낼 수 있다. 피실험자가 한쪽 팔을 어깨 높이의 수평으로 든 상태에서 실험자가 자신의 팔심으로 위에서 아래로 세게 누르면 피실험자의 팔 근육에서 강도 차이가 난다. 수맥지대에서는 비수맥지대에서 실험할 때보다 팔심이 현저히 떨어진다. 흔히 ‘ㄱ’자처럼 구부러진 모양새의 ‘L로드’로 수맥을 찾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L로드는 이런 신체반응을 보여주는 가늠자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L로드가 수맥을 찾아주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 우리 몸 자체가 수맥 감지 센서다. 시중에는 수맥을 차단해 준다는 제품도 나와 있다.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차단 효과는 수맥의 강도에 따른다. 약한 수맥이라면 은, 알루미늄, 동판 등으로 어느 정도 차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강력한 수맥은 그걸로 역부족이다. 이걸 제압하는 제품은 아직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강한 자기력이나 양자역학을 응용한 신소재 정도가 수맥을 차단하는 효력이 있을 것으로 보고된다. 그에 비해 전통풍수는 확실한 답을 준다. 명당의 혈(穴)이 맺혀 있는 곳에서는 수맥을 피한다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풍수가 실용학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독교 주기도문의 한 구절처럼 풍수의 본질을 쉽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고대 중근동을 무대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기도문을 외던 시절,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하늘의 뜻이 지상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곳을 찾아내고자 하는 감여학파(堪輿學派)가 등장했다. 하늘의 이치를 나침반 삼아 명당 길지를 추구하는 풍수가들이었다. 풍수학의 비조로 받들어지는 곽박(郭璞·276∼324)을 비롯해 원천강(袁天綱), 이순풍(李淳風) 같은 초기 풍수가가 모두 역법에 밝은 천문학자였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풍수의 고전 ‘영성정의(靈城精義)’에는 하늘의 뜻이 더욱 섬세하게 묘사돼 있다. “땅은 본래 정기(精氣)가 없으나 별빛이 내리쬐는 것으로 정기를 삼고, 땅은 원래 길흉(吉凶)이 없으나 별의 기운(星氣)으로 길흉을 삼는다.” 하늘의 뜻이 별을 매개체로 삼아 땅으로 전달돼 기운이 감돌고 나아가 인간사 길흉까지 좌우한다는 의미다. 천광조림(天光照臨), 즉 하늘의 기(빛)가 땅에 직접적으로 임하는 곳을 가리켜 이른바 ‘천기형(天氣形) 명당’이라고 한다. 신명(神明)이 밝았던 고대 한국인들은 이를 충실히 따랐다. 황남대총과 천마총 등 경주 고분군, 태왕릉과 장군총 등 중국 지안(集安) 현 퉁거우(通溝) 무덤군, 그리고 서울 석촌동 고분군 등 삼국시대 고분이 대표적인 천기형 명당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천기형 명당은 권력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천기형 기운은 명예와 권위, 지배라는 속성을 인체의 유전코드처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등장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선대(先代)의 천기형 명당 기운에 힘입어 그 자리에 올랐다고 보는 게 풍수적 시각이다. 그런데 천기형 기운은 양면의 모습을 띤다. 이 기운이 적절히 작동할 때는 출세와 권력 쟁취라는 길한 작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지나치거나 왜곡될 때는 아집과 소통 부재, 불명예라는 흉한 작용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천기형 명당인 청와대를 보자. 이 건물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새로 조성됐는데 대통령 집무실인 본관과 거주 공간인 관저가 분리된 구조다. 권력의 핵심 터답게 두 곳 모두 하늘 기운이 직접 내려오는 곳임이 분명하다. 300∼400년 전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암벽 글자가 관저 신축 공사 중에 발견됨으로써 이곳이 길지(吉地)라는 확신은 더욱 확고해졌다. 다만 청와대 터는 천기가 너무 강하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자칫 기운이 지나치면 땅속에 잠복돼 있던 살기(煞氣)가 발동할 수도 있다. 천기형 명당 기운을 강하게 지닌 권력자일수록 이런 역기능도 비례해서 받는다. 과연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에 입성한 역대 권력자가 독선과 아집의 정치,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소통 부재의 정치라는 꼬리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미국의 백악관처럼 천기의 강기(剛氣)를 부드럽게 해줄 수 있는 지기(地氣)의 보충이 못내 아쉽다. 터는 그 기운에 맞지 않는 사람이 주인이 될 경우 쇠락하기도 한다.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정은이 머무는 주석궁이 이에 해당한다. 원래 평양의 주석궁은 청와대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강한 천기가 내려오던 곳이다. 그런데 최측근을 가차 없이 제거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김정은의 행보는 주석궁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무장지대의 지뢰 도발 사건으로 야기된 청와대(박근혜)와 주석궁(김정은)의 힘겨루기는 주목할 만하다. 판문점 남북회담은 청와대의 강기가 긍정적인 작용을 한 반면 주석궁의 천기는 왜곡되고 쇠락하기 시작했음을 여실히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갓 태어난 진돗개 새끼 다섯 마리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올린 내용이 화제가 되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 의지가 담긴 대통령의 메시지로 보인다. 무엇보다 천기나 지기 같은 기(氣)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진돗개 식구들이 건강하다는 점도 다행스럽다. 청와대의 천기가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싶다.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1년 365일을 보름씩 쪼개 24개의 이름을 붙인 24절기는 농사짓기에 매우 유용하다. 24절기에 맞춰 씨를 뿌리거나 모내기를 하고 추수하는 법을 알려주는 ‘농가월령가’는 지금도 농가에서 유용하게 쓰고 있다. 자연의 선물인 24절기는 사람도 ‘인생 농사력(農事曆)’으로 바꿔 사용할 수 있다. 60년(60갑자)을 한 사이클로 보고 2년 6개월씩 쪼개 24절기의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다.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6월 7일∼9월 13일)에서 지저스(예수) 역을 맡고 있는 배우 박은태를 11일 만나봤다. 그와 인터뷰를 하며 기자는 인생 24절기를 떠올렸다. 인생 농사력을 처음 주창한 역학자 김태규 씨는 박은태처럼 입춘에서 대설까지 각 절기에 맞춰 살아가는 삶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1981년 6월 14일생. 우리 나이로 35세인 그는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삼형제 중 막내인 그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중고교 시절 열심히 공부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해 효도를 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나중에 뮤지컬 배우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다른 이보다 특별히 예능감이 있거나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단, 노래를 즐겨 불렀고 남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싶은 욕구는 갖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 대학 축제의 가요제에 여러 번 참가했지만 번번이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니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변신의 기회가 찾아온다. 2001년 MBC 강변가요제였다. 그의 나이 스무 살, 인생 농사력으로 보면 소만(小滿)의 시기다. ‘인생 24절기’ 중 특히 기자가 주목하는 절기가 바로 소만이다. 양력으로 5월 말과 6월 초인 이 시기는 여린 싹이 땅 위로 고개를 내밀어 풍성한 가을을 기약하는 때다. 이때 싹을 틔우지 못한 식물은 그대로 시들어버리고 만다. 1년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시기이다. 인생 농사력에서도 성공할 인생과 그렇지 못할 인생이 갈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성공하는 인생들은 대개 이 시기에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확인한다. 박은태 역시 강변가요제에서 우연찮게 동상을 받았다. “사실 제가 노래를 썩 잘해서 받은 게 아니에요. 패자부활전을 두 번이나 거쳐서 받은 것이니 억세게 운이 좋았던 셈이지요. 그저 부모님과 동네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또 잘난 척하고 싶은 어린 마음에 가요제에 나가 좋은 추억거리를 만든 것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강변가요제가 가수들의 등용문이라는 것도 옛말이었어요. 2001년을 끝으로 강변가요제도 문을 닫았잖아요.” 그러나 소만에 틔운 싹은 쉽게 꺾이지 않는 법. 저 멀리 희미한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노래부르기가 현실적인 의미를 띠고, 도전의식 같은 것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 군에 입대해 해군홍보단에서 복무했다. 음악전문가들과 군 생활을 같이 하면서 꿈을 키워보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아무리 제가 노력해도 노래 잘한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사실 제가 남들 눈에 확 띌 만큼 타고난 목소리가 아니거든요. 심지어 ‘강변가요제 나온 것 맞느냐’고 의심하는 이도 있었고, ‘공부나 해. 너는 공부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라는 말도 숱하게 들었어요. 주위에서 하도 그러기에 저도 헛된 꿈을 접고 정신 차려서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대한 후 복학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때 한양대 경영학과 학생들이 120여 명 정도였는데 4등까지 하고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부모님께 성적표를 보여드리니까 너무 좋아하셔서 ‘아, 나는 공부에 재능이 있나 보구나’ 생각하고는 노래는 그냥 취미로 삼자고 결심했지요.” 근 1년간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진짜로 열심히 공부했단다. 그러다 25세가 되던 해, 억지로 잠재웠던 싹이 또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서도 대학교 축제 행사, 가요제 같은 것이 열리면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고, 앞으로의 인생 항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갈등과 번뇌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3개월간의 고민 끝에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노래를 하는 쪽으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지저스 역을 맡아 부르는 노래를 들어봤습니다. 청아한 느낌의 미성인 듯하면서도 객석을 장악하는 무게감 있는 목소리 등 다양한 창법을 구사하던데요. 데뷔 전 노래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정도인데…. “제 노래에 늘 따라붙는 평가가 있었어요. ‘너의 노래는 발음이 또박또박하고 너무 정직해. 뭔가 그루브(groove)가 느껴지지 않아’라는 겁니다. 이게 저한테는 엄청 스트레스였어요. 200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흑인음악이 한창 유행해 그루브와 솔(soul)을 중시하던 때였어요. 어렸을 때 그런 장르의 악기를 다뤄본 적도 없고, 흑인의 감성을 타고나지 않은 이상 어디 일이년 공부한다고 습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가 조시 그로번이라는 미국인 가수의 팝페라를 접하게 됐습니다. 눈이 번쩍 뜨였죠. 그루브 없이도 솔이 느껴지는 창법을 구사하는 거였어요. ‘앗! 저거다’ 했죠. 내가 잘할 수 있는 장르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어요. 그때부터 휴학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고 본격적으로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지요.” 박은태는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음악 스승으로 조시 그로번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물론 만나본 적도 없지만 음악을 통해 사제지간을 자처했다. 바로 이 대목이다. 소만의 시기에서는 자신의 인생에 극적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하거나 기연(奇緣)을 만나게 된다. 일반인들도 이때 직업적 변동이나 변신의 기회를 맞는다. ―목소리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연기자들이 부럽지는 않던가요? “옛날엔 부러웠죠. 그러나 지금은 안 그래요. 성악 공부를 꾸준히 해오면서 제 실력도 덩달아 늘어나는 것을 체험했으니까요. ‘계속 노력하면 앞으로도 더 늘 수 있겠구나’하는 확신을 가진 이후부터는 타고난 천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결국 노력이 정답입니다. 그리고 성악공부를 하면서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남을 바라보지 않고 나만 바라보는 방법을 깨달았다는 거예요.” 30대 치고는 ‘내공(內功)’이 단단하다. 스스로 체득하지 않고서는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 절기로 하지 무렵인 2007년 정식으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 후 질풍노도처럼 한국 뮤지컬계를 장악해나가기 시작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와르 역, ‘햄릿’의 햄릿과 레어티스 역, ‘모차르트’의 모차르트 역, ‘프랑켄슈타인’의 앙리 뒤프레 역, ‘엘리자벳’의 루이지 루케니 역, ‘지킬앤하이드’의 지킬과 하이드 역, 그리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지저스 역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굵직한 뮤지컬에서 잇달아 중요 배역을 맡아 마음껏 기량을 쏟아냈다. 그리고 2010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더뮤지컬어워즈의 남우주연상(2014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딤프 어워즈의 올해의 스타상(2013년, 2015년)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절정의 시기를 달리고 있지만 그는 지금도 성악 레슨을 받고 있다고 한다. 동료후배들이 그를 ‘연습벌레’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만하다. “저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노력으로 대신하고 있어요. 노력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재능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후배들에게 저는 ‘나를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노력은 저의 존재 이유이고, 제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연 중에도 성악 레슨만큼은 빼놓지 않고 있어요.” 그와 인터뷰할 때는 공연을 불과 2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라이브 무대라 긴장이 안 되는 지 물어봤다. “똑같은 무대에 계속 서면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매번 정말 죽을 만큼 긴장돼요. 뮤지컬 배우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노출된 고위험군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일 큰 걱정은 목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랑 갑자기 가사가 틀리거나 생각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에요. 저는 무대에 서기 전 긴장과 두려움을 풀기 위해 앞에 한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해 봅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무대에 오르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게 있다면…. “뮤지컬 관객들은 매우 냉정합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감정이입이 되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금방 알아챕니다. 그 반응도 즉각적, 직설적이죠. 그래서 일관되게 공연의 질을 유지하는 게 뮤지컬 배우가 명심해야 할 자세예요. 사실 똑같은 컨디션으로, 그리고 매번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오늘은 이런 걸 보여줘야지’ ‘관객들에게 이런 느낌을 전달할 거야’ 하는 욕심을 내려놓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날의 파트너 배우가 주는 눈빛, 그날의 관객이 주는 호응에 맞춰 가사와 음악을 따라가면, 오히려 연기력이 극대화되고 스스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작품이 나올 때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 버린다는 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그는 인터뷰를 끝내고 곧바로 오른 무대에서 예수가 죽음을 앞두고 부르는 ‘겟세마네(Gethsemane)’를 울음이 밴 극도의 감정이입으로 열창해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뮤지컬에 바쳤다고 말한다. 그래서 공연 중에는 일체의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수도승처럼 산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런 일이 계속되다보니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도 다 떠나버렸다고 한다. 아내(탤런트 고은채)와 세 살배기 딸과의 가정생활 외에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도 모두 내려놓았다. 특별한 취미 같은 것도 없다. 잠자기 정도가 취미라면 취미란다. 뮤지컬 배우로서의 박은태는 인생 24절기 중 이미 가을의 절정기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간사한’ 몸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한다. 성공한 인생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 박은태가 말하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제대로 즐기기 ▼ 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 솔로곡 ‘겟세마네’엔 비종교인도 전율 뮤지컬은 음악과 함께 배우의 힘과 에너지로 공연장을 채우는 라이브 무대다. 배우들의 독특한 목소리와 개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만큼 배우들의 긴장감은 매우 크다. 특히 박은태가 현재 출연 중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출연 배우에 따라 작품의 매력이 달라지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대척점에 서서 팽팽한 긴장감으로 무대를 이끌어가는 지저스 역과 유다 역은 어떤 배우들이 호흡을 맞추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배우들의 개성 못지않게 음악의 힘도 느껴볼 일이다. 송스루 뮤지컬(Song Through Musical·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하는 뮤지컬)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서곡(序曲)부터 마지막의 커튼콜 무대까지 음악의 힘으로 이끌어가는 작품이다. 특히 박은태가 부르는 솔로곡 ‘겟세마네’는 완창이 힘들 정도의 고난도 음악으로 유명하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에 고뇌하는 지저스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노래다. 그는 “관객들이 제 노래에, 그리고 작품에 집중하는 분위기를 느낄 때마다 나도 전율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은태는 예수와 12제자가 등장하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누구나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뮤지컬 애호가들은 ‘오페라의 유령’, ‘캣츠’의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대표작으로서 전형적 뮤지컬 작품으로 즐길 수 있고, 종교인은 성극이나 종교극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 또 현대적인 편곡과 캐릭터의 디테일 등 드라마적 요소도 매력적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한국에서는 마지막 공연이 될 수도 있다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

‘해변 개가 산골 부자보다 낫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산간벽지는 길이 막히거나 좁아서 교통과 교역이 불편하다. 반면 강이나 바닷가는 물길을 따라 도로가 열리고 각종 물산과 사람들이 오가며 자연스레 시장과 도시가 발달한다. 그러니 해변 개가 산골 부자보다 먹을 게 많다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돈 되는 곳’임은 동서와 고금이 똑같다. 물가 혹은 물길은 예전부터 부를 축적하는 데 유리한 조건이었다. 풍수에서도 그렇게 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물은 재록(財祿)을 맡은 것이므로 큰 물가에는 부유한 집과 유명한 마을이 많다. 비록 산중이라도 시내와 계곡물이 모이는 곳이라야 여러 대를 이어가며 오랫동안 살 수 있는 터가 된다”고 말했다. 물을 만나야 부귀를 누릴 수 있다는 ‘택리지’의 논리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집터를 고를 때도 금과옥조였다. 풍수에서는 돈을 부르는 물이 있는 곳을 귀한 터, 곧 명당이라 한다. 그러니 본능적으로 ‘돈 냄새’를 잘 맡는다는 부자들이 그런 터를 애써 구하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자들만큼 풍수를 좋아하는 집단도 찾아보기 어렵다. 부의 원천이 터에 있다는 풍수적 믿음은 우리나라 부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재벌그룹이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서울 종로구 서린동의 SK그룹 사옥은 부자들의 풍수에 대한 믿음, 그리고 부와 물의 상관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 중 하나다. 1999년에 완공한 SK그룹 서린동 사옥은 재물을 쌓는 데 도움이 되는 명당으로 손색이 없다. 일부 풍수가들은 이 터가 북한산에서 기원한 용맥(龍脈·산의 정기가 흐르는 산줄기)이 삼청공원을 거쳐 남쪽으로 흐르다가 청계천을 만남으로써 지기(地氣)가 응집돼 명당이 됐다고 말한다. 이는 중국식 풍수이론으로 이 터가 용맥에서 기원한 유동형지기(流動形地氣)의 덕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엔 지세(地勢)가 너무 약하다. 오히려 통일신라시대까지 전승돼온 우리식 풍수 읽기로 설명하는 게 맞을 듯싶다. 우리의 전통 풍수로 보면 이 터는 땅속에서부터 곧장 솟아오르는 상승형지기(上昇形地氣)가 지상 36층 규모의 사옥 전체를 덮을 정도로 매우 세다. 아쉬운 점은 이런 지기가 작동을 잘하도록 윤활유 역할을 해줄 ‘물 기운’이 부족하다는 것. 이럴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비보(裨補)풍수’다. 약한 부분을 인위적으로 보강해주는 풍수적 장치를 가리킨다. 서린동 사옥 완공 당시 손길승 SK그룹 회장(현 SK텔레콤 명예회장)은 빌딩에 물의 상징인 거북 모양을 새기도록 풍수비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옥이 있는 서린동은 화기(火氣)가 승한 자리라 그 기운을 누르기 위해서는 수(水)의 기운인 거북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현재 서린동 사옥은 거북이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물(거북)을 상징하는 어두운 장방형 건물의 남쪽 정문 앞에는 점 8개로 상징한 거북의 머리를, 북쪽 후문에는 삼각형 모양으로 거북의 꼬리를 새겨 놓았다. 또 건물의 네 귀퉁이 기둥 아래에는 5개의 발가락을 가진 거북의 발 문양을 새겨 넣었다. 언제부턴가 사옥 정문 앞쪽에는 장방형의 돌 수조도 만들어 놓았다. 거북이 사시사철 물을 축이도록 한 풍수적 조치다. 이로써 서린동 사옥은 신령스러운 거북이 물을 마시는 ‘영구음수형(靈龜飮水形)’ 명당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인작(人作)은 자연의 선물인 천작(天作)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던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영구음수형 사옥에 입주하고 나서 SK그룹 총수들의 수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는 터의 주인이 직접 비보를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사옥은 수덕(水德)을 가진 경영자가 이끌어야 물을 갖춘 재물 명당으로서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물은 순리를 따라 아래로 흐르되 작은 빈틈도 놓치지 않고 적셔드니 마치 지혜를 갖춘 자와 같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고난을 딛고 수덕의 경영 능력을 발휘하길 기대해 본다.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비슷한 듯하지만 비슷하지 않은 두 학과가 하나로 통합됐다. 충남 아산의 선문대학교 상담심리사회복지학과. 기존의 상담·산업심리학과와 사회복지학과가 2015학년도에 통합하면서 새로 얻은 이름이다. 독립돼 있던 두 학과 모두 학생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아 학과 존립 위기 같은 문제도 없던 터였다. 보통 학과 간 통폐합은 담당 교수들과 학생들의 반발 등으로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그런데도 ‘잘나가는’ 두 학과는 왜 굳이 험난한 통합의 길을 택했을까? 손진희 학과장은 한마디로 “학생들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상담심리나 임상심리, 사회복지 분야는 휴먼서비스라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다. 실제로 현장에 나가보면 청소년층이나 취약계층의 경우 심리와 복지라는 두 가지 면에서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상담심리학 전공자는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미세하고도 개인적인 분야에서는 역량을 발휘하지만 클라이언트(대상자)의 심리적 갈등을 부추기는 사회복지 문제 등 환경적이고 거시적인 분야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거꾸로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사회복지 관련 정책에 대한 이해와 실행력은 높지만 인간 심리라는 내밀한 부분까지 반영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상담심리와 사회복지 분야를 두루 섭렵한 전문가들에 대한 욕구가 많았다. 우리 학생들을 바로 이런 전문가로 키워 훨씬 유리하게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사회복지 분야에 이해를 갖춘 상담심리사는 더 완벽한 심리상담을 할 수 있고,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 사회복지사들은 피부에 와 닿는 사회복지관련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이런 시너지 효과는 특히 다문화가족, 이주여성 분야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게 손 교수의 견해다.“2000년대 중반부터 전국 각 지자체가 다문화센터 등을 개설해 다문화가족, 이주여성 등에 대한 지원을 해 왔다. 그러나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없는 데다 일시적이고 단기교육 위주여서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는 추세다. 상담 영역과 복지 영역의 교집합 지점에 있는 다문화가정에 특화한 전문가 양성이야말로 사회적으로도 시급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학과가 선도적으로 특화된 전문가를 양성하면 서울 수도권 대학 못지않은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이 학과가 다문화가정에 주목한 데는 학교가 있는 아산시의 인구 구조와도 연관이 깊다. 현재 아산시 인구의 5.8%(2만 명 추산)가 다문화가족이며, 출신국가로는 중국 일본 동남아 순이라고 한다. 선문대의 교직원 구성도 14.1%가 다문화가정 출신이다. 선문대가 학교 설립 특성상 다른 대학보다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성이 높은 점도 다문화에 특화된 학과의 장래를 밝게 한다. 지방 소재 대학으로서는 외국인 유학생이 1100여 명이나 될 정도로 많고, 외국인 유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해외에 40여 명의 글로벌 부총장을 두고 있다. 학교 내에는 글로컬다문화교육센터를 만들어 ‘탈북 학생들을 위한 멘토링’ 등 다양한 다문화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충남 지역의 기업체에서도 다문화 관련 전문가들에 대한 욕구가 높다. 손 교수팀이 충남 지역에서 다수의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50개 중소기업체 대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14년 4월)에서도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다문화 인재를 우선 채용하겠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66.0%가 ‘예’라고 답했고, 외국인 노동자 채용 의사를 묻는 항목에서도 69.8%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즉 기업주들은 다문화 출신 근로자 채용과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다문화 인재 채용에 적극적이라는 뜻이다. 또 기업주들은 외국인 노동자와 일할 때 부닥치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문화적 차이(응답자의 42%)를 꼽았다. 그래서 기업주의 74%가 대학에서 다문화 관리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선문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과는 학교 안팎에 상당히 긍정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다문화에 대한 특화된 교육 과정은 ‘지역 특화학과 육성’을 권장하는 교육부로부터 2014년 지방대학 특성화사업(CK-1)으로 선정됐다. ‘다문화 상담복지 현장실무인재 양성사업단’의 이름으로 사업 1차연도에 2억1000만 원을 지원받았고, 2015년 중간평가에서도 ‘우수’ 평가를 받았다. 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은 상담심리 분야 30학점, 사회복지 분야 30학점, 다문화 관련 분야 15학점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학생들은 졸업 학점 부담이 늘어나는 대신 상담심리와 사회복지 과정을 한 학과에서 복수전공을 하는 이득을 누릴 수 있다. 상담심리와 사회복지 관련 자격증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자격 취득에 필요한 교과목을 별도로 개설해놓고 있다. 4학년생 조희주 씨는 “사회복지와 상담심리를 결합해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점이 우리 학과의 매력”이라면서 “경기 의왕시 복지관에서 장애인 대상 봉사 활동을 경험한 후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한편 특별 과정(especial course)인 다문화 관련 교육은 교과와 비교과 과정으로 이원화해 운영하는 것도 특징이다. 교과 과정은 다문화에 대한 감수성과 역량을 갖춰 내국인과 다문화 가정과의 매개자 혹은 소통자로 일할 수 있는 ‘다문화 상담복지 실무인재’를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교수들은 다문화 현장경력을 갖춘 실무자 또는 다문화 가족 당사자들까지 교육과정에 참여시켜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시아 문화의 이해 및 다문화 상담복지 사례연구’라는 교과목은 현장 실무 전문가, 다문화 가족 당사자, 교수가 함께 어울려 진행하는 팀티칭 교육이다. 비교과 과정은 해외전공 연수, 다문화현장체험단, 다문화 멘토링, 이주노동자 buddy프로그램(친구맺기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다문화 및 가족에 대한 이해와 민감성을 증진하도록 하고 있다. 비교과과정의 프로그램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9박 10일간 몽골 농촌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돌아온 김보경 씨(4학년)는 “학교 측의 지원으로 자비 25만 원만 내고 몽골 현지 체험을 하면서 다문화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편견과 선입견이 없는 휴먼서비스를 지향하는 이 학과가 추구하는 인재상이 있다. 바로 ‘창의적 전문인’이자 ‘윤리적 포용인’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HUGS형 인재’다. 손 교수는 상담, 사회복지, 다문화, 인성이라는 4가지 영역의 역량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자체적으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을 이 도구로 평가해 HUGS 역량지수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HUGS형 인재로 성장했음을 알게 해준다는 것. 학과 출범 후 6개월간 학생들의 교과 및 비교과 활동의 역량지수를 측정한 결과 5점 만점에 평균 3.29점이었다고 한다. 손 교수는 HUGS인재를 늘리기 위해 멘토링 장학금, 봉사활동 우수 장학금, 비교과활동 마일리지우수 장학금 등 성취 유발형 장학금을 만들어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학과는 출범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취업률을 내기는 어렵다. 이성수 교수(글로컬다문화교육센터장)는 통합학과 취업률을 60%대 이상으로 올리는 게 일차적 목표라고 밝혔다. 상담과 복지에 능통한 전문가 수요가 늘고 있어 목표 달성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5학년도의 입학정원은 100명(정원외 17명 포함). 수시에서 학생부교과(60%)와 면접(40%)으로 선발하는 ‘일반전형1’은 교과등급으로 평균 3.18이었고, 학생부교과만 100% 반영하는 ‘일반전형2’는 2.09였다. 정시는 학생부 평균 3.69(수능평균 180.54)였다. 아산=안영배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생활의 달인’이라는 한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이다. 호떡 만들기, 자동차 복원, 구두 닦기, 다슬기 채취, 유리공예 등 각양각색의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 기량을 갖춘 달인들의 삶이 감동을 준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오로지 한 분야만을 파고 또 파서, 더이상 팔 수 없을 정도로 깊고도 중후한 내공(內功)을 쌓았다는 점이다. 달인은 다른 달인을 통해 진한 동지 의식을 느끼는 것일까. 소설가 조정래(72)도 이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기상천외한 신기(神技)를 발휘하는 온갖 직업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 어떤 직업을 하찮게 여길 수 있으며, 그 어떤 사람을 경시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저마다 존재할 가치가 있고, 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한 가지 일은 신을 능가할 만큼 잘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는 게 그 이유다. 물론 그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주는 대상은 소설, 즉 글쓰기다. 집필 7년 만에 완성한 ‘태백산맥’(200자 원고지 1만6500장)과 6년의 연재 끝에 완성한 ‘아리랑’(2만 장), ‘한강’(1만5000장)은 ‘조정래의 한국 현대사 3부작’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1300만 부 이상 팔린 역작이다. 게다가 중국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 ‘정글만리’도 2013년 출간 이후 이미 100쇄를 돌파했고 현재도 여전히 인기몰이 중이다. 그는 무협소설로 치자면 최상승 무공을 익혀 대하소설계에서 한 문파(門派)를 창시한 장문인급 반열에 이미 올라섰다고나 할까. 달인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고난과 위기, 절망과 좌절 같은 뒤안길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 역시 “50년 동안 글을 써오면서도 늘품이라고는 전혀 없이 새 글을 쓸 때마다 절망감에 빠져 스스로의 무능함을 탄식하는 제례 의식을 치른다”고 고백했다. 그러니 그 통과의례를 돌파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존경과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가가 되기 위한 연단술(鍊丹術)이란 게 있을까요? “저는 ‘손자에게 주는 할아버지의 잠언 365’라는 주제로 틈날 때마다 글을 기록해두고 있어요. 그중에 ‘재능을 맹신하는 자가 받는 선물은 필패(必敗)이고, 노력을 신봉하는 자가 받는 선물은 필승(必勝)이다’는 잠언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만든 것이지만 참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특정 분야에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10년 단위, 20년 단위, 30년 단위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연단술이라는 게 있다면 그 핵심은 노력일 겁니다.” 동양 도학(道學)의 사유 체계에서는 무슨 일이든 10년의 내공을 거치지 않은 것은 결국 사상누각이 되고 만다는 믿음이 있다. 10년의 내공을 닦아야 그 바닥에서 나름 알려진 ‘선수’가 되고 20년 정도 지나면 초심자로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새로운 경지에 이른다. 또다시 30년을 채우고 나면 모든 연단(鍊丹) 과정이 끝나 자신만의 여의주(단·丹)를 얻게 된다. 소설가 조정래는 온 몸으로 이 세계를 경험한 듯했다. ‘시간의 법칙’에 예민한 기자의 눈에는 그가 소설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시간의 틀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고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다가 1973년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으로 교단을 떠나게 된 후 오로지 문단 활동과 작품 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10년 만인 1983년, 그의 인생을 뒤바꿔놓을 대표작이자 불후의 명작인 ‘태백산맥’을 집필하게 된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인 1953년 최초로 자작 문집을 만든 지 30년 만의 일이기도 하다. “제가 30년 전인 불혹의 나이 마흔을 보내면서 ‘내가 이대로 죽어버린다면 내 무덤에 뭐가 남을까’ 점검해 봤어요. 객관적으로 평가해봤더니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요. 그러면 헛산 거 아니야?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살면 안 되지 하면서 시작한 게 ‘태백산맥’이에요. 그러면서 ‘태백산맥’ 10권, ‘아리랑’ 12권, ‘한강’ 10권을 내리 쓰다보니까 훌쩍 20년 세월이 가버렸지 뭐예요.” 그는 대하 장편소설 집필에 몰두한 20년 세월을 ‘황홀한 글감옥’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매일 25∼30장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과 이를 감당할 체력이 필요하다. 그는 20년간 매일 16시간을 집필에 몰두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맨손체조로 건강을 다졌다. 두주불사인 그가 집필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외부 인사와의 술을 끊어버려 사람들은 그를 참 지독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가 단 한번도 연재물의 마감 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는 사실도 언론계의 전설 중 하나다. 원고지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글을 써내려가는 동안 오른팔 마비, 위궤양, 탈장 같은 직업병이 빚쟁이처럼 어김없이 찾아왔다. 20년간 수도승 같은 삶은 대하소설의 신경지를 펼치는 결정적 연단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이 단단한 결계(結界)를 풀 수는 없었다. 소설의 내용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고발되고 수시로 걸려오는 협박 전화에 10년간 시달렸지만, 그가 쌓은 ‘20년의 공’을 꺾을 수는 없었다. ―어려서부터 일기 같은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것은 거기에 재능이 있었다는 건데요. 선생님은 재능에 노력을 가미해 오늘의 성취를 이뤘다고 볼 수 있는데, 만일 재능 혹은 적성에 맞지 않는 노력은 헛고생이 되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이 사회에서 존재하는 이유, 즉 재능을 갖고 있어요. 그걸 언제 깨닫느냐 하는 시기적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게 분명히 재능이 있는 분야예요.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일이 있듯이 저는 글 쓰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시간을 들인 노력이 가미되는 거지요. 저는 ‘삼국지처럼 영원히 죽지 않는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는 노력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심중에 돌비석처럼 새겨 넣었지요. 지금도 이런 의지와 결심이 인간적 고통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돼주고 있어요.” ―‘정글만리’ 이후 교육과 연관된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방금 말한 재능이나 적성과 관련된 주제인가요? “우리나라에서 풀무질로 칼을 만들어 파는 대장장이가 있습니다. 칼을 쓰는 외식업체가 많으니까 수요는 있다 치고, 그 사람이 1년에 얼마 정도나 저금할까요? 기자 양반 한번 맞혀 봐요(기자는 한 달에 기껏 50만 원 저금을 예상하고 1년에 600만 원 정도라고 선심 쓰듯 답했다). 그 사람이 1년에 1억 원을 저금하고 조그마한 빌딩도 가지고 있어요. 게다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는데도 장인으로 인정받아 대학교수를 하고 있어요. 대기업 간부인 아버지를 둔 한 젊은이가 대장장이의 칼 만드는 솜씨에 반해 배우려고 하자, 대장장이도 젊은이의 손재간을 알아보고 대신 부모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지요.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 검사가 되기를 원하던 그 집안에서 난리가 났어요. 젊은이 아버지가 대장장이를 찾아가 왜 아들을 부추기느냐고 따졌어요. 그러자 대장장이는 ‘당신은 일류대학 나와 대기업 간부로 있는데 나처럼 빌딩이 있는가, 1년에 1억 원씩 예금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퇴직 후 무얼 할 것인가?’ 하고 되물었어요. 그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교육 관련 소설이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학벌에 얽매여 출세지향적, 권력지향적인 삶을 성공한 삶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가장 불행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그가 강조하는 성공한 인생이란 무얼까. “사람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가 있는 것이고, 인간다운 삶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거기서 행복과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자기 분야에서 장인 의식을 가지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던 중산층 문화가 이미 무너져 버렸다고 그는 진단했다. 사회의 버팀목이 되는 중산층이 무너진 사회는 그리 오래 지탱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젊은이들에게 재능을 바탕으로 한 장인 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중산층 문화를 복원하는 교육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동안 수많은 역작을 내셨는데 조금 쉬었다가 하실 만도 한데요. “기자 양반, 이것 좀 봐요(그는 서재의 책상 위에다 향후 10년간 해야 할 작업을 기록한 메모지를 신주단지처럼 ‘모셔놓고’ 있었다). 나는 교단에도 서 본 몸이기 때문에 이 일은 싫어도 내가 해야 해요. 나라고 쉬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소.” 그는 현재까지 지은 150여 개의 잠언 중에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서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며 달려가는 노정이다’는 육필 글씨를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평생의 경험과 지혜가 농축된 그의 잠언대로라면 그는 80세가 훌쩍 넘어선 나이에도 끝없이 스스로를 연단해 가고 있을 것 같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실제로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고 살짝 언급했다.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해 아버지가 “물감 값 줄 돈 없어!” 하는 한마디에 그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접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손자를 위한 잠언집을 만들 때는 그림도 선보이겠다며, 맛보기 삼아 직접 그린 인물 캐리커처를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그는 새로운 재능 씨앗을 뿌리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림을 보여주며 의기양양해 하는 노소설가의 모습에서 어린이 같은 모습을 발견하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10권짜리 태백산맥 베끼기, 며느리에게 시킨 까닭은?▼조정래-김초혜 부부의 자식교육법 소설가 조정래는 부인 김초혜 시인과의 사이에 외동아들(도현)을 두고 있다. 그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10권 분량의 ‘태백산맥’을 필사케 한 얘기는 유명하다. 아들은 ‘태백산맥’을 다 베껴 쓴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아리랑’까지 필사했고, 며느리 역시 숙제를 마치고 자발적으로 ‘아리랑’ 옮겨 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들 내외에게 이런 일을 시킨 이유로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분단국이라는 불행한 나라에 태어난 국민으로서 그 멍에와 비극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태백산맥’은 왜 우리 역사를 똑바로 알아야 하는지, 역사에 대한 인식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 둘째, 지식인으로 살아가려면 자기의 생각을 글로 쓸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소설을 베끼다 보면 분명히 문장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책을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의 필사가 독해에 더 도움이 된다. 셋째, 이 세상을 살다보면 불의한 일도 많고 불행한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모진 세파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가려 볼 줄 알고 처세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소설에서는 각양의 인간군이 하늘의 별들처럼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사후 70년간 판권이 자식에게 유산으로 남겨진다. 직접 글을 옮겨 보면서 아비가 어떤 고통과 노력 끝에 번 돈인지를 각인시켜 주어야 허투루 돈을 낭비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는 필사 교육이 효과를 거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어느 날 며느리가 저더러 ‘큰손자가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하는 것은 제가 ‘태백산맥’을 베끼면서 태교를 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하고 아부를 하더라고요. 며느리가 이미 시아비를 다룰 줄 아는 100만 불짜리 처세술을 익힌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습디다” 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조정래 김초혜 부부의 아들 교육은 손자 교육으로도 이어진다. 할머니 김초혜는 1년간 손자 재면을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온 편지를 지난해 책(행복이-할머니가 손자에게)으로 엮어 손자의 중학교 입학 기념 선물로 줬다. 그는 편지에서 책만큼 인생을 빛나게 하고 알차게 해주는 것은 없으므로 평생 동안 책을 손에서 놓지 말기를 신신당부하고, 이 세상에 가장 강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이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인데 할아버지는 바로 그런 분이라고 하면서 할아버지를 본받으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위해 365개의 잠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할머니의 손자 사랑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자식 교육은 그의 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것이라고 한다. 승려이자 교육자였던 그의 부친(조종현)은 도를 닦듯이 삶을 살다간 사람이었다. 조정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절대 거짓말하지 말라, 올바르게 살아라, 허튼짓 하지 말라, 주색잡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20년간 줄기차게 받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조정래)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아들도, 손자도 자연스럽게 그 뒤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대대손손 이어가는 모범적 가정교육 현장이다. :: 조정래는… ::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아버지 조종현과 어머니 박성순 사이에 4남 4녀 중 넷째(아들로는 차남)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제식민지 종교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시범적인 대처승이었다. 1953년 초등학교 때 최초의 자작 문집을 만들었고, 글짓기대회에서 전교 1등상을 타기도 했다. 1959년 서울 보성고에 입학한 후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962년 동국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66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입대한 후 1967년 시인 김초혜와 결혼했다.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동구여상과 중경고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단편과 중편 소설을 잇달아 발표했다.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으로 1973년 교직을 떠나게 된 이후 전업작가로 길을 틀었다. 1976년 최초의 장편소설 ‘대장경’을 완성한 데 이어 1983년에 대하역사소설 ‘태백산맥’을 집필하기 시작하며 작가의 표현대로 20년간 ‘황홀한 글감옥’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1989년 모두 10권의 ‘태백산맥’을 완간한 데 이어 이듬해인 1990년 ‘아리랑’ 집필에 들어가 1995년 12권을 완간했다. 또 1998년부터 연재한 ‘한강’이 2002년 10권으로 출간됨으로써 그의 대표작인 대하소설 3부작이 완성됐다. 2013년에 출간한 ‘정글만리’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 출간되었고 TV 드라마와 뮤지컬로도 제작됐다. 또 소설 ‘아리랑’의 배경인 김제시에는 그를 기념하는 ‘아리랑 문학관’도 세워졌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양의 수행 체계 중에 망신참법(亡身懺法)이라는 극단적인 수련법이 있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돌 등으로 내리쳐 훼손해가며 참회를 하고 진리를 구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신라시대 법상종을 개창한 진표율사가 유명하다. 그는 21일간 자신의 신체를 돌로 훼손해가며 수행한 끝에 지장보살과 미륵부처를 친견했다고 한다. ‘피터팬’의 후크 선장처럼 쇠갈고리 손을 하고 있는 ‘의수(義手)화가’ 석창우 화백(61). 기자는 그를 지켜보면서 불현듯 망신참법이 떠올랐다. 그것도 2014년 3월 소치 장애인겨울올림픽의 폐막식을 중계하는 TV 화면을 통해서…. 러시아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국악신동’ 송소희의 아리랑 민요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석 화백이 퍼포먼스를 펼치는 장면이었다. 그는 쇠갈고리 손에 먹물을 잔뜩 머금은 붓을 끼워 넣고서 대형 화선지(856cmx210cm) 위에 5개 올림픽 종목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크로키 기법으로 그려냈다.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분 37초. 이를 지켜본 4만여 관중들은 석창우 화백의 놀랍고도 신기한 퍼포먼스에 감탄했다. 당시 이름 석 자도 낯선 그를 보며 왜 망신참법이란 수련법이 머리에 스쳤는지 지금도 기자는 그 이유를 모른다. 다만 언젠가는 그와 만나게 될 인연이라는 느낌만은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그와의 만남은 이뤄졌다. 이달 6일 서울 대방동의 그의 작업실. 처음 만나는 손님에게 갈고리 손으로 보이차 한 잔을 내놓는 그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대뜸 30년 세월을 화두로 던졌다. ―중국의 속언에 ‘하동삼십년(河東三十年) 하서삼십년(河西三十年)’이란 말이 있지요. 황허(黃河)의 동쪽에 있던 마을이 30년을 지나고 보니 황허 서쪽에 있게 됐다는 뜻인데…. “손 있어 30년 세월을 살았으니 사고 당하고 손 없이 30년 세월을 살아보리라 작정했지요. 작년(2014년)이 정확히 손 없이 살아온 마지막 30년이었습니다. 올림픽 퍼포먼스를 끝내놓고 보니 많이 헛헛했습니다.” 그는 기자의 화두에 빙그레 웃더니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직관으로 30년의 의미를 진작 깨닫고 있던 거였을까. 동양철학을 전공한 기자에게는 역학 스승이 있다. 스승은 중국 하동과 하서를 예로 들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사단은 서로 인과법으로 돌고 돌아 30년이 지나면 정반대의 일이 전개되는 이치를 역(易)철학으로 설명하곤 했다. 사람 역시 겨울과 봄이라는 절망과 시련의 30년 시기가 있는가 하면 여름과 가을이라는 희망과 결실의 30년이 있다는 인생 사계(四季)도 설파했다. 올해 61세인 석창우 화백 역시 그랬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중소기업의 전기관리자로 일하던 1984년 10월 29일 2만2900V의 고압 전류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의 나이 30세, 아내(곽혜숙)와의 사이에 어린 남매를 둔 패기왕성한 가장이던 때였다. 그가 깨어났을 때는 양팔과 발가락 두 개가 절단되고 뇌출혈 수술도 받은 후였다. 인생 사계로 치면 절망과 시련의 기간이었다. 그런데 수술을 마친 뒤 집에서 재활치료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노트를 들고 와서는 “그림을 그려 달라”는 네 살배기 아들의 뜬금없는 말 한 마디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게 된다.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던 터였다. 그런 아들의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었다. 그는 의수에 볼펜을 끼워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참새, 독수리 등 주로 동물을 그려줬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그림 공부를 해보지 않았던 전기기술자가 그린 그림을 보고 아이가 좋아할 뿐만 아니라 아내와 주위 사람들도 잘 그린다며 치켜세웠다. 특히 처형은 그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정식으로 그림 그리기를 권유했다. ―이전에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그림 공부를, 그것도 정상적이지 못한 손을 가지고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이곳저곳 화실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물감을 쓸 수 있는 양팔이 없다는 이유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먹물만 이용하는 사군자 그림은 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제의 소개로 여태명 스승님을 만나 서예부터 시작했습니다. 스승님도 처음 찾아갔을 때는 고개를 저으시며 반신반의하셨지만 ‘내가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만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해서 겨우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게 1988년이다. 붓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갈고리로 붓을 잡으면 어깨 통증이 오고, 먹을 발로 갈아야 하기 때문에 발가락에 물집도 생기고 피가 터져 나왔다. 핏방울이 화선지에 뚝뚝 떨어지고 나서야 코피가 터진 것을 알아차린 것도 수십 차례. 그렇게 해서 서예에서 수묵화로, 그리고 서각과 크로키의 세계까지 작업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그가 창안해낸, 먹물을 입힌 붓으로 크로키를 하는 수묵(서예) 크로키도 그런 노력의 결실이다. ―양팔을 가져간 하늘(운명)이 원망스럽지 않던가요? 왜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는가 하는…. “사고 후 깨어나니까 울고불고 해야 할 아내가 양팔만 잃어서 천만다행이라고 덤덤히 말하니까 나도 별로 놀랍지 않더라고요. 아내가 말하고 숨쉬고 걸어 다니는 것 외에는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저를 보고서 ‘경제적인 부분은 내가 해결할 테니 덤으로 사는 나머지 삶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라’고 해준 말이 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었어요. 생각해보세요. 지극히 평범한 전기기사로 살던 제가 양팔을 내주지 않았다면 올림픽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할 수 있었겠어요? 저는 양팔 없는 예술 인생과 양팔 가진 평범한 직장인 중 하나를 택하라면 지금의 삶을 선택할 겁니다.” 기자는 이 대목에서 슬며시 ‘망신참법’이란 수련법을 꺼내들었다. 설명을 듣고 난 석 화백은 스스로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양팔을 내주고 얻는 득도의 세계에 공감하는 듯했다. “양팔을 걷어가 준 하나님(그는 교회에 다닌다)의 뜻은 분명히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팔 없는 30년을 보내고 새로 시작하는 2015년을 맞아 그는 성경의 전 구절을 붓글씨로 표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가장 한국적인 것 중 하나인 한글을 ‘문자추상’이라는 예술세계로 끌어들이겠다는 의지이자, 새로운 구도자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뜻일 게다. 그의 구도자적 삶은 그가 직접 지은 ‘유빙(流氷)’이라는 호에서도 읽을 수 있다. 유빙은 바다 위에 떠돌아다니는 빙산을 보고 마음에 담은 것인데, 바다 위에서 유유자적하게 놀다가 어느새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닷물과 동화되는 삶을 살겠다는 뜻이란다. 자신의 체질에 맞게 절묘하게 지은 호다. ―동양의 역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30년 인연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자신의 운명구조와 비슷한 호를 지은 것을 보면 도인인가 본데요. “언젠가 저에게 서양의 누드크로키를 지도해준 김영자 선생님께서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김연아 선수의 크로키를 보면서 ‘참 산에서 방금 내려온 사람 같네. 도통했어’ 하는 거예요. 크로키에 김연아의 신체가 펼쳐내는 아름다움과 생명력, 그리고 그녀의 내면세계까지 담겨 있다는 칭찬이었어요. 실제로 수묵(서예) 크로키를 하다보면 대상과 제가 일체가 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또 그런 일치가 되지 않으면 작품이 잘 나오지 않아요.” 흥미로운 점은 그의 수묵 크로키에 등장하는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기량이 절정기에 있을 때 자신의 작품 또한 걸작이 된다는 것. ―그림을 그리면서 상대방의 현재 몸과 심리 상태까지 교감한다는 의미인가요? “크로키를 하면서 스포츠 선수의 특징적인 동작을 잡아내기까지는 끝도 없는 관찰과 교감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들이 표현해내는 동영상을 한 컷씩 잡아내고 집중해 관찰하다보면 일반인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얼굴과 근육의 움직임, 고뇌와 고통, 기쁨과 환희 같은 심리상태 등이 그대로 제 몸속으로 파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동작과 선이 온전히 내 안에 들어왔을 때 저는 단숨에 그림으로 표현해냅니다. 제가 크로키를 하다보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유이지요.” 그는 그러면서 거실 중앙에 놓여 있는 사이클 선수의 크로키를 가리키며 껄껄 웃었다. “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떼어내고 다른 그림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니, 어느새 그림이 ‘제발 조금만 더 걸려 있게 해주세요’하고 타협해오는 거예요. 그래서 며칠째 지금도 저렇게 걸려 있어요. 아무래도 자신이 신문에 소개될 것을 예감하고 내게 협상해온 것 같아요.” 그건 그만이 느낄 수 있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세계일 것이다. 여기서 환상인가 체험인가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석 화백의 신체 장애를 극복한 ‘인생 스토리’는 우리나라 중학교 교과서 3종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그를 보고 강연과 방송 출연 요청 등이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온몸의 氣를 다 쏟아넣어… 며칠씩 앓아눕기도”▼석창우 화백의 수묵 크로키 석창우 화백은 수묵(서예) 크로키라는 독창적 화법을 창시한 화가이자 국내 최초의 의수화가이다. 수묵 크로키는 동양의 먹과 붓으로 서양의 누드크로키를 그리는 것으로 그가 고안해낸 새로운 장르이다. 이 기법은 짧은 시간에 고도의 집중력과 스피드를 필요로 한다. 그것을 정상적인 손이 아니라 의수로 해낸다는 점에서 석 화백의 존재가 빛난다. 장애 때문에 입이나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입과 발의 감각을 잘 활용하면 정상인 못지않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갈고리 손 같은 의수는 다르다. 감각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치명적 단점을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하고 석 화백은 갈고리 손의 감각만으로 종이의 앞면과 뒷면을 감지해내는 능력을 갖게 됐다. 석 화백은 공개된 장소에서 수묵 크로키 퍼포먼스를 하고 나면 집에 돌아와 드러눕는다고 한다. 온몸의 기를 작품에 쏟아 넣다 보면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며칠을 쉬면서 서서히 생기(生氣)를 회복하는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 그의 작품은 살아 있는 생명 에너지인 셈이다. 사실 석 화백의 체험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선 그림에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을 담고자 했고, 그것을 보는 이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최상으로 쳤다. 동양 예술사는 산수화는 좋은 땅 기운을 추구하는 풍수를 연원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옛사람들은 그림을 단순한 감상용이 아니라, 그림의 기운까지 읽고 거기에 취하길 원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화가의 기 에너지가 담긴 작품은 그림을 감상하는 동시에 그 에너지를 느끼고 체험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화가의 작품값은 그 기 에너지를 사는 대가이지 않을까 싶다. 과연 석 화백의 기 에너지는 얼마나 값어치가 나갈까. 궁금증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전국 204개 4년제 대학의 협의체다. 국공립과 사립, 수도권과 지역, 규모와 인지도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가 많다. 그런데도 올 1월 대교협 회장에 취임한 부구욱 회장(63·영산대 총장·사진)은 25일 “대학 간 인수합병(M&A) 등 특단적 조치를 통해 대학의 국제 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이 살려면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민감한 사안을 정면으로 건드린 것이다. 대교협에서 ‘고등(대학)교육 발전 10개년 계획’을 수립해 정부와 정치권에 제시할 예정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과 관련해 부 회장은 “고등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 감축 등 양적인 구조조정만으로는 안 되고 국가 차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선두대학을 육성해야 한다. 향후 10년 내 세계 200위권 대학에 20개 대학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부 회장은 20개 대학의 선별 기준에 대해서는 “국립대는 권역별 거점 국립대 10곳(서울대+권역별 9개 국립대)을 중심으로 대학 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사립대는 10개 명문 사학이 세계 200위권 진입 계획을 제시하고, 선정되면 정부가 등록금상한제 폐지 등 각종 규제를 예외적으로 풀어줬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 간 합종연횡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 회장은 세계적 대학을 20개 정도 보유한다면 한국은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교육 강국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대학 간 통폐합 등 구조개혁을 게을리한다면 현재 진행 중인 5단계 대학평가에서 D(4등급)와 E(5등급)를 받는 지역 사립대 중 30, 40개는 퇴출될 것으로 봤다. 한편 지역 사립대 총장으로서 느끼는 ‘사립대 상황’에 대해 부 회장은 “현재 지역 대학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교육부의 대학특성화사업(CK) 등에 동참해 특성화 학과 발굴과 명품 학과 육성 등 자구책 마련에 적극적이다. 다른 대학과 차별화되는 학과를 적극 육성하려는 움직임은 권장할 만하다. 이는 ‘대학 브랜드’라는 수직적 서열화를 ‘학과 브랜드’라는 수평적 서열화로 깨는 길이자 졸업생의 취업문도 넓힐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