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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열풍이 거세다. 올해 국내 소개된 ‘신참자’ ‘매스커레이드 호텔’이 줄줄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고,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도 동명의 국내 영화가 개봉하며 베스트셀러에 재진입했다. 후끈 달아오른 열기에 이번 신간이 휘발유를 끼얹을 수 있을까. 히가시노가 쓴 최초의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소개만으로도, 그의 팬이라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듯하다. 히가시노의 작품에 익숙한 독자라면 쉽게 새로운 점을 느낄 수 있다. 평범하고 세세한 일상들을 기술하다가 그것들을 연결시켜 반전과 결론을 이끌어내는 ‘미괄식’을 선호하는 그가 이번에는 초반부터 강력한 ‘미끼’를 던져준 뒤 내림차순으로 사건을 정리한다. 오밀조밀, 단단하게 얽힌 구성력에 탄복했던 독자라면 싱거울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 던진 화두부터가 강력하기에 좀처럼 책장을 덮기는 힘들다. 이른바 ‘잃어버린 13초’의 미스터리다. 각국의 과학자들이 위기의 징후를 발견한다. 블랙홀의 영향으로 거대한 에너지파가 지구를 덮친다는 것. 이 ‘P-13’ 현상은 3월 13일 13시 13분 13초부터 13초간 이어지는데, 문제는 이로 인해 어떤 위험이 발생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각국 수뇌부는 국민들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하지만 결국 운명의 시각이 다가온다. 시점은 다른 인물들로 옮겨간다. 범인 체포에 나선 경찰 후유키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다. 잠시 동안 세상은 변했다. 인간은 물론이고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텅 빈 도쿄에서 후유키는 천신만고 끝에 몇몇 생존자를 발견하고, 이들과 함께 생존을 위해, 사건의 비밀을 알기 위해 목숨을 걸고 총리 관저로 향한다. 치명적 바이러스의 창궐, 좀비나 외계인의 공격으로 인류의 지속이 위협받은 뒤 남겨진 소수 인간들이 펼치는 눈물겨운 생존기는 익숙한 소재다. 이런 내용이 재생산되는 것은 극한 상황에서의 갈등과 사랑이 손쉽게 드러나기 때문.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남을 살리려면 내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 놓인 생존자들을 그리며 ‘절대적인 선은 존재하는가’ ‘집단과 개인의 가치가 충돌하면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하나’ 등의 가볍지 않은 문제들을 던진다. 또한 ‘생존자 중에 왜 별 역할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가 끼어야만 했나’라는 의문이 풀리는 지점에 다다르면 이 작가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치밀한지를 깨닫고 탄복하게 된다. 단, 거대한 서사에 밀려 작가의 강점인 세밀하고 아기자기한 드라마가 부족한 점이 아쉽다. 소재와 구성에 있어 작가에게는 새로운 도전인 작품이다. 기발함과 재미, 감동을 뭉뚱그려 평가한다면 공상과학소설의 평균치를 훌쩍 넘는다. 하지만 히가시노란 이름의 기대치를 감안하면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필 듯 말 듯한 전자책의 시대. 언제 만개하게 될까, 기존 종이책은 생존할 수 있을까. 출판계에 입문한 지 30년을 맞은 출판평론가인 저자는 “진정한 책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전자책은 올드미디어인 종이책의 자양분을 먹고 성장하며, 종이책은 생존을 위해 자신만의 장점을 특화시키는 데 매달리고 있다는 것. 두 미디어가 상호보완하며 ‘책의 시대’를 이끌 것이라는 주장이다. 급변하는 출판 시장에 대한 진단과 전망을 담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만원 버스 안. 후끈한 열기에 덜덜거리는 진동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손잡이를 잡은 팔은 저려오고, 다리는 뻐근하다. 욕지기가 나오려는 찰나. 차가 속도를 낸다. 부응∼ 하고 달린다. 숙변이 내려간 듯, 두통이 씻겨간 듯 개운하다, 상쾌하다. 속도는 달콤한 것, 우리는 속도에 중독된 현대인들. ‘이달에 만나는 시’ 11월 추천작으로 김기택 시인(55)의 ‘금단 증상’을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가 추천에 참여했다. 평소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즐겨 이용하는 시인은 길거리에서 시를 건져냈다. 마치 느려터지게 가는 버스 안에 동승한 것처럼 시는 생생하다. “길이 막히면 승객들의 반응이 참 다양하게 나타나죠. 말하자면 일종의 속도에 대한 금단증상이죠. 빨리 달리면 편해하고, 느리거나 중지돼 있으면 불안을 느끼죠.” 한 장면을 묘사한 듯하지만 실은 각기 다른 시점과 장소의 여러 승객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대상을 직접 보고 시를 쓰지 않는다. 본 것들이 내 속에서 되뇌어져 한참 뒤 시가 나온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럼 시인은 느긋한가? 그가 껄껄 웃는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찰이면서 사실은 나에 대한 관찰이기도 하죠. 저도 안절부절못해요.” 손택수 시인은 “뭉크의 ‘절규’가 연상되는 시편들 속에 유머가 있다. 시원시원한 리듬과 야무진 풍자의식이 연출하는 블랙코미디!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참혹한 비애와 동시대 삶에 대한 연민이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다”며 추천했다. 김요일 시인의 추천사는 이렇다. “무겁고 어두운 삶과 죽음의 풍경을 지독히도 냉철하게 묘사하는 김기택 시인은 본질의 가장 중심에 자리 잡은 견자의 눈으로 세상을 투시한다.” 이번 시집 속 죽음을 다룬 시들에 대한 호평도 나왔다. 장석주 시인은 “죽음이 아니라 주검에 초점을 맞춰 문명의 지옥도(地獄圖)를 펼쳐낸다. 읽는 내내 소름이 돋는 시집”이라고 평했다. “김기택만의 ‘극사실적 묘사’의 힘은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되묻게 하는 시집. 읽는 이가 비정하다는 마음을 갖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이 방법론을 김기택식 기도라 부르고 싶다.” 이원 시인의 추천평이다. 이건청 시인은 김요아킴의 시집 ‘왼손잡이 투수’(황금알)를 추천했다. “야구 경기의 실체 속에서 삶의 근원을 밝혀내려는 정직하고도 열정적인 시편들을 담고 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연극배우라는 건 남는 게 없는 법이지요. 연기라는 게, 커튼콜의 박수갈채가 끝나면 담배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거니까. 60여 년간 연극무대를 지켜오면서 그게 못내 아쉬웠는데, 이렇게 연극의 현장이라 할 극장의 이름으로 남아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다는 게 감개무량합니다.” 지난해 2월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한 국립극단이 서울 용산구 서계동에 새로 극장을 열고 ‘백성희장민호극장’이란 이름을 붙였을 때 고 장민호 씨가 했던 말이다. 국립극단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두 원로배우는 개관작인 ‘3월의 눈’ 주역으로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2일 오랜 동료를 떠나보낸 백성희 씨는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을 말없이 바라보다 눈물을 흘렸다. “먼저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내 모든 의식이 정지된 것 같았어요. 죽을 것 같더니 눈물이 나더군요. 나도 죽을 것 같았습니다.” 백 씨는 “‘3월의 눈’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때 이미 몸이 좋지 않으셨다.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보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가슴 저미게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연습 때 ‘우리는 연륜 있는 배우답게 연출의 지시가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자, 오래 산 만큼 연극에 보답하자’고 한 말이 떠오른다”고 전했다. 그의 기억 속 고인은 ‘건실한 남자’였다. “배우로서 맡은 배역은 책임지고 소화했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은 진심으로 아파하는 사람이에요. 허튼짓 하지 않고 배우를 고집하면서 가족을 부양했죠.” 배우 손숙 씨는 “작품에 대해서는 완벽하고 후배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분이셨다. 연극이 인생의 전부였던 분”이라며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고인을 추모했다. 배우 신구, 강부자 씨도 빈소를 찾았다. 황해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왔다가 조선배우학교에 입학한 뒤 이듬해 종교극 ‘모세’로 연극 무대에 데뷔했다. 같은 해 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 라디오 전속배우(성우)가 됐고 1950년 국립극단 전신인 극단 신협에 들어갔다. 60여 년간 200여 편의 연극에 출연했는데, 특히 난해한 괴테의 ‘파우스트’ 주연을 네 차례나 맡아 ‘파우스트 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97년 국립극단이 그의 연기 생활 50주년 기념 공연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그는 주저 없이 파우스트를 골랐다. 그는 “파우스트 역을 평생 네 번씩이나 하는 행운의 사내는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평생을 학문에 바쳤으나 지식과 삶의 허망함에 전율하며 새롭게 정염을 불태우는 파우스트. 나 또한 생을 송두리째 던져 넣은 연극 무대에서 파우스트의 그 처절한 마음을 되새겨볼 작정입니다.” 배우로서 그의 진가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높아졌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제일 먼저 대사를 외웠고, 또렷한 발성과 정확한 타이밍, 깊이 있는 인물 분석으로 모범이 됐다. ‘영원한 현역 배우’라는 수식은 그래서 생겼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자신의 배우 인생을 극화한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2001년)의 주연을 맡았고 다시 10년 뒤 역시 자신을 모티브로 삼은 창작극 ‘3월의 눈’에서도 주연을 멋들어지게 소화해 극찬을 받았다. 햄릿의 대사를 원용한 “배우는 시대의 축도(縮圖)이다”와 “연기는 사라짐의 미학이다” 등의 어록을 남겼다. 고인은 연극뿐만 아니라 라디오 성우, TV 탤런트, 영화배우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30년 가까이 성우협회 이사장(1966∼1995년)을 맡았으며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제작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TV문학관’과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 출연했다. “화가는 그림을 남깁니다. 소설가는 책을 남기지요. 다 흔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극은 그렇지 못해요. 현장 예술이기 때문에 지나면 그만입니다. 제 배우 인생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때 그 무대’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온 세월이었지요.”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967년 12월 2일 일본 후지TV 프로그램 ‘만국 깜짝쇼’. 한국에서 온 네 살짜리 꼬마가 수학문제 풀이에서 도쿄대 학생들을 이겼고, 방청객은 깜짝 놀랐다. 꼬마는 IQ 210의 천재 김웅용이었다. 저자는 당시 프로그램의 기자 겸 프로듀서. 방송 이후 잊혀졌던 김웅용을 찾아 떠난 저자의 분투기를 다룬다.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김웅용과 한국 조기 교육의 모습을 전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일본을 위해 일해주십시오”라고 김웅용에게 부탁하는 장면 등 엉뚱한 부분도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상처와 회복에 관한 소설집이다. 인물들은 자신의 내면을 할퀴고 간 고통을 기억하고, 움푹 파인 상처를 가만히 응시한다. 지독한 슬픔과 공허가 책장 가득하다. 하지만 아무리 아픈 기억도 언젠가는 점차 희미해지듯, 깊게 파인 상처들에선 조금씩 새살이 돋는다. 인간의 고통과 치유는 어쩌면 소설을 이루는 기본적인 테마일 것이다. 한강의 소설이 특별한 것은 그 과정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 변화를 극히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잡아낸다는 것이다. 하루 동안 자란 손톱의 넓이를 알아채듯이. 중편 ‘노랑무늬영원’을 비롯해 단편 6편을 한 권에 묶었다.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단편 ‘에우로파’다. 각각의 소설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듯, 슬픔으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서도 ‘에우로파’가 가장 애처롭게 다가온다. 대학 시절 만난 ‘나’와 인아는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 왔다. 아니 솔직히 ‘나’는 인아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실은 여성성이 가득한 남자. 밤이면 화장을 하고 인아와 함께 거리를 산책한다. 작가는 감정의 떨림 차이를 섬세하게 집어낸다. ‘나’의 속에 있는 여성성이 인아를 동경하지만, 또한 남성성이 인아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이런 내면의 갈등을 잔잔히 짚은 수작이다. 에우로파. 목성의 ‘달’. 얼음덩어리 위성의 골은 차가운 얼음으로 채워지지만, ‘나’의 상처는 깊어만 간다. 단편 ‘왼손’은 담담하고 차분하게 읽히는 한강의 평소 소설 스타일과 차이점이 있다. 한 은행원의 왼손이 갑자기 주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그를 파멸로 이끌어 가는데, 무엇보다 거칠고 속도감이 있다. 작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읽기가 즐거웠던 것은 무엇보다 한강의 문체가 미려하기 때문이다. ‘문밖으로 빗소리가 추적추적 들려오던 그 오후, 두려워하는 두 입술이 만나던 순간을. 두 사람 모두 입술을 벌리지도 못한 채, 서로의 부드러움이 떠날 것이 두려워 뛰는 심장들을 맞붙이고 있었지요.’(단편 ‘파란 돌’에서) 조심스럽고, 설레고, 불안한 첫 키스의 순간을 그린 장면이다. 이렇게 메모해 두고 잘 보이는 데 붙여 두고픈 문장들이 소설집 곳곳에 숨어 있다. 작가가 한자 한자 공들여 눌러쓴 문장들은 아껴 읽을 수밖에 없다. 아쉬운 점도 있다. 상투적인 이야기 구조가 반복되는 듯하다. 현재 인물의 혼돈과 상실을 그려 준 다음, 이 슬픔의 근원이 되는 과거 사건을 기술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구조가 그렇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땐 한 권의 장편을 읽은 듯한 느낌도 든다. 이번 한강의 소설집은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밥공기와 같다. 오늘도 사람들은 하루분의 슬픔을 푹 숟가락으로 떠서, 힘겹게 넘긴다. 그렇게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이문열이 제15회 동리문학상, 시인 오세영이 제5회 목월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동리·목월문학상은 경북 경주 출신인 소설가 김동리(1913∼1995)와 시인 박목월(1916∼1978)을 기려 경주시와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만든 상이다. 수상작은 이문열의 장편 ‘리투아니아 여인’, 오세영의 시집 ‘마른하늘에서 치는 박수 소리’. 상금은 각 7000만 원이며 시상식은 12월 7일 오후 6시 경주시 신평동 경주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다. 두 작가의 수상소감을 들었다.》 ■ 동리문학상 이문열 “이 나이에 상받으니 민망할 뿐”소설가 이문열(64)에게 수상 소감을 부탁하자, 그가 먼저 꺼낸 말은 “민망하네요”였다. “나는 (동리문학상이) 젊은 후배들 격려하는 상인 줄 알았어요. 이 나이에 받는 게 민망하고, 사실 수상 소식을 듣고서 ‘받아야 하나’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이문열은 동리 선생과의 인연을 떠올려 상을 받기로 했다. 그는 “선생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은 애제자였다”고 털어놓았다. 특별한 사제관계가 없었던 그가 등단하자 동리 선생은 집으로 자주 그를 불렀고, 먼저 찾아오면 반갑게 맞았다. 저녁 술자리를 자주 함께 가졌고, 동리 선생은 직접 쓴 휘호를 보내기도 했다. ‘왜 그렇게 아껴주신 것이냐’고 묻자 이문열은 “한 번도 제대로 설명해주신 적이 없었다”며 웃음지었다. 동리문학상 수상작인 ‘리투아니아 여인’(민음사)은 이문열 문학의 이정표가 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1980, 90년대 숱한 히트작으로 문단을 평정하다시피 한 이문열은 2000년대 들어 정치적 발언들을 쏟아내며 작가보다는 보수 논객 이미지가 굳어졌다. “언론들이 제가 책을 내면 관심이 없다가 정치적 얘기를 한 마디만 하면 앞다퉈 다루었다”고 섭섭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해 출간한 ‘리투아니아 여인’에 대해 그는 “마음 가볍게 그야말로 근육을 풀고 쓴 소설”이라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강했던 색채를 빼고 편하게 쓴 소설이라는 설명이다. 동리문학상 심사위원회(이어령 임헌영 김주영 김지연 문순태)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한국 미국 영국 등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으면서도 여주인공 어머니의 조국이 한국과 비슷한 처지인 리투아니아인 점이 디아스포라(이산) 의식을 더욱 고조시켜준다”며 “원숙기를 맞은 작가가 세계화 시대로 전환하는 이정표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평했다. 이문열은 1999년 ‘변경’으로 호암예술상을 받은 이후 13년 만에 개별 작품에 주는 문학상을 받게 됐다. “오랜만에 받는 작품상이라 반갑기는 한데, 마음에 부담도 생깁니다. 동리 선생과 제 문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될 듯합니다.” ■ 목월문학상 오세영 “목월 선생께 이제야 인정받나”오세영 시인(70)은 참 부지런히 글을 썼다. 아니 치열했다는 표현이 더 맞다. 1968년 등단한 그는 44년 동안 시선집을 제외하고 창작 시집만 20권을 펴냈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서 학술서도 20권을 썼다. 시인으로, 학자로 ‘지독하게’ 활동한 셈이다. ‘문단의 원로이자 명문 국립대 교수가 왜 그토록 글쓰기에 절박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사실 문단에서도, 학교에서도 왕따였다”고 털어놓았다. “문단에서는 ‘서울대 교수면 학자지 무슨 시인이냐’고 하고, 학교에서는 ‘시나 쓰는 나부랭이가 무슨 훌륭한 학자냐’고 합니다. 나는 항상 외로웠습니다. 그런 주위의 말들을 벗어나기 위해서 오기 겸 집념으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이번에 그에게 목월문학상을 안겨준 시집 ‘마른하늘에서 치는 박수 소리’(민음사)는 그의 20번째 시집이다. 목월문학상 심사위원회(김후란 구중서 이하석 정호승 이남호)는 이렇게 평했다. “대범한 우주적 상상력과 건강한 언어는 예사롭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한다. 시인은 큰 무당이 되어 우주와 존재의 내밀한 네트워크를 언어로 드러낸다. 또는 헤르메스가 되어 우주의 신탁을 풀어서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오랜 시작(詩作)과 삶에 대한 관찰이 응축된 시들은 여유와 깨달음을 노래한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새를 주제로 한 시 20편이 실렸다. 연속되는 날갯짓 같다.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것이 새입니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엇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오 시인은 목월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목월은 오 시인에게 언어의 순결성을 강조했으며 시 표현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의 의미를 끄집어내는 ‘언어의 경제성’ 이론이다. “목월 선생은 작품에 대해서 굉장히 냉정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제자로 드나들던 시절에도 칭찬을 한 번 해준 적이 없으셨어요. 목월문학상을 받으니 이제야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구나 싶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총통 각하는 진노했다. 세간에 돌고 있는 한 권의 책 때문이다. 자나 깨나 국민 안위와 국가 부강만 고민하는 자신을 권력에 집착하는 자, 시대에 뒤떨어진 구악으로 그린 비판적 소설. 억울했다,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당장 잡아서 족칠 수도 없는 노릇. 총통은 관저로 작가를 포함한 예술인들을 정중히 초대했다. ‘예술인과의 대화’란 명목이었다. 자리가 파한 뒤 작가를 내실로 따로 불렀다. 문제의 책 ‘총통각하’(북하우스)의 작가 배명훈(34)은 얼굴이 희멀겋다. 총통은 속으로 끌끌 찼다. ‘쯧쯧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 모르는 백면서생이구먼.’ 총통=반갑네. 총통 관저는 처음이지. 어떤가. 작가=TV에서 본 것과 다를 바 없네요. 관저 앞 광장에 외국인 관광객만 가득하네요. 한국인은 시위 때나 오는 것 같네요. 총통=허헛, 말에 뼈가 있구먼. 공상과학소설 작가라고 들었는데, 웬 정치 얘기인가. 작가=장편 ‘타워’를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정치 얘기를 많이 다뤘습니다. 공상과학이 전혀 엉뚱한 것을 다루는 게 아니라 현실의 정치, 사회를 반영하는 겁니다. 2212년 10월 중순에 출간된 ‘총통각하’는 큰 논란을 빚었다. 200년 이상 공화국을 통치한 총통을 독재자로 지칭하거나, 심지어 총통이 고심 끝에 내린 인사권을 ‘낙하산 인사’라고 몰아세웠다. 국가도서등급판정위원회는 이를 유해간행물로 판단하고 즉시 배포금지 및 수거 결정을 내렸지만, 여론의 반발에 밀려 ‘청소년유해간행물’로 수위를 낮춰 판매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총통은 탐탁지 않았다. 총통=작가가 말이야, 작품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을 직접적으로 하면 되나. 작가=작가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규율은 누가 정했나요. 작가들은 자연의 아름다움만 노래해야 하나요. 총통=어허, 이 사람이. 그래 딱 까놓고, 자네는 내가 싫은가. 작가=아닙니다. 총통께서는 제게 무한한 상상력의 자유를 줍니다. 총통님의 기사 밑에 달린 수백 개의 댓글이 신선하고 기발하거든요. 감히 총통 앞에서? 총통은 ‘당돌하다’고 생각했지만, 호기심도 들었다. ‘얘는 내가 무섭지 않은 겨?’ 작가=책 내면서 주위에서 걱정도 하고, A일보 같은 곳은 인터뷰조차 안 할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총통=기백이 좋구먼. 좋아. 이번에 내 대선 캠프에 들어오는 것은 어떤가. 작가=싫습니다. 총통=따로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 건가. 작가=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 인물평만 가득한데 이보다는 후보가 당선 후 제대로 정책을 펼 수 있게 돕는 건전한 지지 세력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이 부분에서 세 후보 모두 확신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총통=하지만 책에서 나를 비판하면서, 내 표를 갉아먹고 있지 않은가. 작가=꼭 총통을 모델로 했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정치현상은 보편적인 것이어서 10년 뒤에 읽으면 또 딴 사람이 보이고, 아마 외국에 갖다 놓으면 그 나라의 정치인을 떠올리며 낄낄댈 겁니다. 총통=정치를 공부했다(서울대 외교학 석사)더니 정치적 언변이 뛰어나구먼. 내가 재선되면 어떻게 할 건가. 작가=글쎄요. 아마 다시 왕성한 창작열이 솟구치지 않을까요. 총통=쿨 하구먼. 나는 총통이 되고, 자네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하하. 하하하.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기택(55)의 시는 한 장의 사진 같다. 사람의 얼굴을 ‘찍었다’면 눈, 코, 입을 훑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미간의 주름이나 귓불의 처짐, 약간 하늘로 솟은 콧구멍들을 찬찬히 집어낸다. 시간이 멎은 듯하고, 사유는 깊어져간다. 최근 나온 여섯 번째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문지)에서도 집요한 관찰벽(癖)은 여전하다. 이번에 앵글이 멈춘 곳은 타인의 죽음이다. ‘발버둥치는 몸무게가 넥타이로 그네를 탄다/다리를 차낸 허공이 빙빙 돈다//몸무게가 발버둥을 남김없이 삼키는 동안/막힌 숨을 구역질하는 입에서 긴 혀가 빠져나온다’(시 ‘넥타이’) 숨이 턱 막히는 듯, 불편하고 답답하다. 시 ‘목을 조르는 스타킹에게 애원함’은 성폭행의 순간을, 시 ‘할여으에어’는 그의 귀에 들린. 화상(火傷)을 입은 이가 살려달라는 말을 제목으로 옮겼다. 최근 만난 시인에게 죽음에 현미경을 들이댄 이유를 물었다. “뭐가 즐겁다고 죽음을 상상하고 대입해보고 하겠어요. 하지만 타인의 죽음을 되뇌고, 그 순간 속으로 들어가면 내 안이한 습관이나 태도를 깨주는 것 같아요. 결국 그런 격렬한 긴장상태 속에서 고통스러운 시가 나오고, 강렬한 내적 희열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시인은 타인의 죽음을 파고들어가, 유사경험을 하고 그 속에서 시뻘건 시들을 건져 올렸다. ‘너무 생생하다’고 하자 시인은 “무서워서 제 시를 못 읽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웃었다. 김기택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들도 있다. 시 ‘우산을 잃어버리다’와 ‘풀’이 그렇다. ‘우산들은 어떻게 공기 속에서 비 냄새를 찾아내/첫 빗방울이 떨어지자마자 활짝 펴지는 것일까./눈물은 어떻게 슬픔이 지나가는 복잡한 길을 다 읽어두었다가/슬픔이 터지는 순간 정확하게 흘러내리는 것일까.’(시 ‘우산을 잃어버리다’) ‘관찰벽’이 행여 피곤하지는 않을까. “누구나 재미있는 얘기를 남에게 전할 때는 상세하게 전하게 되지 않나요. 제 시작(詩作)은 제가 흥미롭게 여긴 것을 자세히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겁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제20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에 백무산의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 소설 부문에 정영문의 장편 ‘어떤 작위의 세계’가 선정됐다. 평론 부문 상은 황현산의 ‘잘 표현된 불행’, 번역 부문 상은 번역가 부부인 고혜선, 프란시스코 카란사가 스페인어로 공역한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 돌아갔다. 상금은 시·소설 부문 5000만 원, 평론 3000만 원. 시상식은 대산문화재단 창립 20주년 기념식을 겸해 다음 달 29일 오후 6시 반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박경리의 작품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박경리는 우리(세계인)에게 한국인의 삶에 관한 백과사전을 보여줬습니다.”(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올해 세계문학상으로 거듭난 제2회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이 27일 강원 원주시 백운아트홀에서 열렸다.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박경리문학상은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제정됐다. 박경리 선생처럼 자국의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올해 수상자가 된 러시아의 류드밀라 울리츠카야(69)는 “(문화적) 오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이다. 문학과 영화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고 수상 소감을 밝히며 문학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경남 통영시를 배경으로 한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을 예로 들며 “통영을 배경으로 한국인의 역사, 인간관계 체계,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입고 어떤 일을 하며 생활하는지를 훌륭히 담아냈다”고 말했다. “‘김약국의 딸들’과 자신의 소설 ‘메데이아와 그녀의 아이들’에서도 많은 유사점을 발견했다”고 그는 밝혔다. “문화적 차이가 있음에도 우리는 가족, 인간의 존엄, 명예, 충성이라는 동일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작품과 한국이 낳은 위대한 작가 박경리 사이에 유전적 유대 관계가 있음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울리츠카야는 “우리가 변하고 있는 것보다 세상이 더 빨리 변하고 있다”며 “이는 러시아인, 한국인, 유럽인, 미국인이 모두 동일하게 겪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이해가 깊어지는 점과 정치적 갈등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부연했다. 이홍구 박경리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축사에서 “울리츠카야의 수상을 축하하고 토지문학상이 한국을 넘어 세계의 문학상으로 거듭나 지구촌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대사는 “울리츠카야의 작품이 한국에서 인기가 많아지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에도 많은 기여를 한 것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는 박윤초 서울예대 교수의 판소리, 금난새와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 테너 강무림, 소프라노 박성희 등의 공연이 펼쳐지며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원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옛날 옛적 불나국이라는 나라의 왕비는 내리 여섯 명의 딸을 낳았지. 온갖 치성을 드려 일곱째도 낳았지만 결국 딸. 화가 난 왕은 일곱째를 버렸어. 한참 세월이 흘러 왕은 위독해졌고, 이를 치료할 사람은 일곱째 딸뿐. 왕비는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일곱째를 찾았고, 딸은 불사약을 구해 왕을 구했지. 일곱째 딸의 이름은 ‘바리공주’. 이 이야기는 바리공주 설화로 불린다네.” 전국 각지에서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전해 내려오는 바리공주 설화. 작자 미상의 이 이야기는 ‘바리데기’ ‘오구풀이’ ‘칠공주’ ‘무조전설’ 등으로도 불려왔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이 소설은 설화와는 큰 차이점이 있다. 설화에서 바리공주는 뒤늦게 자신을 찾은 부모를 만나 지극한 효행을 하지만, 소설 속 ‘바리’는 끝내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혼자 떠돈다.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고, 애잔하다. 작품은 설화를 인천의 척박한 동네로 옮겨온다. 연탄회사 사장의 일곱째 딸인 바리는 엄마에게 버림받고 산파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인천으로 온다. 기찻길 옆 허름한 집에서 바리는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채 밑바닥 인생을 산다. 소설은 초반 바리가 태어난 과거와 성장해가는 현재를 교직하며 잔잔히 흐른다. 차분하지만 얼마간은 지루하다. 장편소설이지만 여러 단편을 묶은 듯한 느낌도 든다. 바리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장별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인천의 집창촌 ‘옐로우하우스’에서 일하는 연슬 언니, 그곳 여성들의 화려한 옷을 만드는 나나진, 굴뚝 청소를 하는 청하, 잡곡상을 운영하는 산파와 ‘토끼 할머니’ 등 인간 군상의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이야기가 확장되고 인물들의 삶이 교차돼 작품은 풍성해진다. 바리공주의 애달픈 설화와 도시 변두리에서 곤궁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이 시공간을 넘어 매끄럽게 중첩돼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평온하게 지내던 이들의 삶은 급격히 출렁인다. 바리가 사실은 산파로부터 독초와 약초를 쓰는 비법을 배웠고, 이 기술을 통해 자의 혹은 타의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바리가 동네의 유지인 ‘하얀대문집 영감’을 독살한 사실이 점차 외부에 알려지면서 긴장감이 높아진다. 설화에서는 바리공주가 불사약을 통해 타인을 살리는 역할을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타인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힘 있는 자들에게 억압당하며 좀처럼 삶의 희망을 찾기 힘든 서민들의 삶이, 스스로 죽음을 청할 만큼 위험하고 위태롭다는 것을 고발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제2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인 소설가 박범신의 평은 이렇다. “안정되고 감성적인 문체와 예민하게 끌어올린 문제의식, 우리네 밑바닥 삶의 디테일한 복원이 남다르다. 무엇보다 버림받은 ‘바리’의 사랑과 그 좌절이 매력적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똑같은 것 같아요. 사랑 고통 이별 사별 죽음 등이죠. 독자들이 제 작품을 읽고 삶의 위안이나 해답을 얻었으면 합니다.” 올해 세계문학상으로 거듭난 제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러시아 소설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69)가 25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박경리문학상은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제정됐다. 박경리문학상의 첫 해외 수상자가 된 울리츠카야는 “무엇이나 처음이 중요한데, 비행기에서나 공항, 호텔에서 만난 분들이 친절히 대해줘 한국의 첫인상이 너무 좋았다”며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문화적인 가치인데, 문화적 수준이 높을수록 사람의 질도 좋아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입국한 그는 3시간여 만에 서울 중구 정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했지만 1시간 넘게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과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울리츠카야는 수상 소식을 듣고 난 뒤 주최 측이 보내준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의 딸들’의 러시아어판을 읽어 봤다고 밝혔다. “제 소설(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과도 많은 공통점을 찾았어요. 미망인이 딸을 하나 키우지만 집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얘기죠. 다른 시대, 다른 장소를 산다고 해도 인간이 가진 본질적은 마음은 통한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방한에 맞춰 책도 나란히 출간됐다. ‘소네치카’(김영사)는 그의 출세작인 중편 ‘소네치카’를 비롯해 장편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 단편 ‘스페이드의 여왕’을 담았다. 2001년 러시아 부커상 수상작인 장편 ‘쿠코츠키의 경우’(들녘)도 출간됐다. ‘소네치카’의 여주인공 소네치카는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는 것을 넘어, 남편의 젊은 애인까지 집에 들여와 러시아 내에서 큰 논란을 빚기도 했다. “소네치카는 얼굴도 못생기고 볼품없는 여자죠. 하지만 남편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큰 행복을 얻었어요. 소네치카가 남편의 애인까지 받아들인 것은 남편에 대한 지극한 감사의 행위이자, 남편의 최대 행복을 지켜주고자 하는 행위죠.” 그는 “그렇지만 출간 이후 페미니스트들이 들고 일어났다”면서 “극히 비현실적인 얘기이기는 하다”며 웃었다. 모스크바국립대 생물학부를 졸업한 울리츠카야는 유전공학연구소를 다니다 ‘불온서적’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후 작가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 때문에 1993년 50세에 첫 소설집을 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독자들이 제 소설을 읽는 것은 굉장히 기쁜 일이죠. 각자 자기의 문화를 보존하고 그것을 소통할 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울리츠카야는 26일 오전 10시 반 고려대 백주년기념삼성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특별 강연을 한다.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은 27일 오후 3시 강원 원주시 백운아트홀에서 열린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시는 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 시 쓰기는 생업이다. 밤낮으로 시를 읽고, 쓰고, 시집을 낸다. 돈이 있어야 아이도 키우는 세상에 이들은 다른 직함 없는 ‘시인’으로 초등학교 3학년, 6학년 두 딸을 키운다. 가을 햇볕이 따사롭던 10월의 어느 날. 유종인(44) 문성해(49) 부부 시인이 사는 경기 고양시 아파트를 찾았다. 남편 유 시인이 인근 전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나와 기자를 맞았고 아내 문 시인은 정성스레 깎은 하얀 배를 내놨다. 아는 친척집에 온 것처럼 포근했다.》 부부는 지난달 나란히 시집을 냈다. 남편은 다섯 번째 시집 ‘얼굴을 더듬다’(실천문학사), 아내는 세 번째 시집 ‘입술을 건너간 이름’(창비). 남편이 첫 시조집을 겸한 신간 시집에서 척박한 현실을 벗어난 이상을 꿈꿨다면 아내의 시집은 세상에 발을 딛고 있다. ‘시 한줄 쓰려고/저녁을 일찍 먹고 설거지를 하고/설치는 아이들을 닦달하여 잠자리로 보내고 (중략) 시 한줄 쓰려고 먼 남녘의 고향집 전화도 대충 끊고/그곳 일가붙이의 참담한 소식도 떨궈내고/시 한 줄 쓰려고/바닥을 치는 통장 잔고와/세금 독촉장들도 머리에서 짐짓 물리치고.’(문성해의 시 ‘각시투구꽃을 생각함’에서) 속물적인 궁금증이 일었다. 시집을 내도 초판 1500부를 소화하기 힘든 요즘 시단. 네 식구는 어떻게 생활하며, 두 아이 교육비는 어떻게 감당할까. 답은 이랬다. 한 달 생활비는 200만 원 남짓. 부부는 부업으로 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강의를 하거나 각종 문예지에 글을 쓴다. 통장의 잔액은 넉넉했다 바닥을 드러냈다 한다. 올봄엔 지인에게 100만 원을 꾸었다. 적금은 못 붓는다. 더 어려운 얘기를 꺼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돈 들어갈 곳도 많아지지 않겠냐고. 아내가 질문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따라가려고 하니까 화가 났어요. 형편은 안 되는데 따라가려고 하니…. 결국 제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엄마 아빠가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 평생 가난했지만 시를 열심히 쓰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죠.” 척박한 시인의 길을 말없이 이해해주는 반려자를 어디서 또 만날 수 있을까. 시인 이윤학을 통해 연락처를 주고받은 이들은 전화 데이트 6개월 만인 1998년 여름 비 내리는 서울역 광장에서 처음 만났다. 딸이 시인 사윗감을 데려오자 “시인 둘이 만나 뭐먹고 살라카노”라던 장모도 사위의 부처 같은 성품을 보고 결국 허혼했다. 이성복 시인이 주례를, 손택수 시인이 사회를 맡아 2000년 친정인 대구서 치른 결혼식은 문인들의 잔치였다. ‘열심히 사랑하고, 시 쓰라’는 덕담들. 부부는 10여 년 전 약속 그대로 서로 사랑하며, 열심히 시 쓰고 있다. “시를 안 쓰고 다른 일을 하면 경제적 여유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요.”(문 시인) “생활은 계속 출렁거릴 테지만 시를 놓지는 않을 겁니다. 평생 시 쓰는 마음이 고갈되지 않는 게 소망입니다.”(유 시인) 점심을 달게 먹고 자전거로 인근 도서관에 가서 컴퓨터실 자판을 느긋이 두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유 시인이다. 설거지를 마치고 고무장갑을 탈탈 털어 널어놓은 뒤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화장대 앞에 앉아 밤새 커서를 옮겼다, 되돌렸다 하는 이는 문 시인이다. 일산의 거대한 아파트단지 귀퉁이에서 부부 시인은 오늘도 한 행, 한 연을 골똘히 채우며 산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문형렬(57·사진)이 제4회 현진건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단편 ‘귤의 시간’. 제2회 현진건문학상 신인상은 김정수의 단편 ‘숙주(宿主)’에 돌아갔다. 시상식은 다음 달 22일 오후 6시 대구 중구 동인동2가 대구시립중앙도서관.}

‘한 달 동안 단 6권 팔렸던 책이 판매금지 소식에 매진?’‘사디즘’의 어원이 된 작가 마르키 드 사드(1740∼1814)의 소설 ‘소돔의 120일’(동서문화사)은 최근 우여곡절을 겪었다.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유해간행물 판정을 받고 배포 중지와 수거 결정이 났다가 논란을 빚었지만 이후 재심을 통해 19세 미만 청소년에 한해 판매를 금지하는 청소년유해간행물로 제재 수위가 낮아졌다. 이 사태는 ‘문학작품의 음란물 기준’부터 ‘출판 자유의 허용 범위’까지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그런데 시장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동서문화사가 ‘소돔의 120일’을 처음 시장에 내놓은 것은 8월 중순. ‘월드북 시리즈’의 201번째 권으로 번역 출간하면서 초판 1000부를 찍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악과 광기를 다룬 소설로 프랑스 루이 14세 치하에서 권력자들이 남녀 노예를 이끌고 120일간 벌인 향락을 그린다. 음란하고 잔혹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심오한 사유도 들어 있다. 동서문화사 이용 편집부장은 “연구자들을 위해 펴낸 책인 만큼 초판 판매에 3년이 걸릴 것을 염두에 두고 펴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간행물윤리위원회가 9월 중순 유해간행물 결정을 내린 뒤 상황은 급변했다. “근친상간과 가학·피학적 성행위 등 표현수위가 지나치고 반인륜적인 내용이 상당히 전개됐다”는 간행물윤리위의 결정 등이 앞다투어 언론에 소개되고, 한국출판인회가 유해간행물 결정을 취소하라고 성명을 내는 등 논란이 빚어지자 주문량이 폭주한 것. 출간 이후 한 달여 동안 전국에서 단 6권 주문이 들어왔던 이 책은 유해간행물 결정 이후 일주일 만에 초판 1000부가 동났다. 하지만 시장의 관심은 ‘반짝’에 그쳤다. 다시 한 달여가 지난 11일 간행물윤리위가 재심에서 제재 수위를 낮춰 청소년유해간행물 결정을 내리자 주문이 삽시간에 줄었다. ‘퇴출’이 아닌 ‘성인물로 판매 허용’ 조치가 내려지자 책의 희소성이 사라지면서 관심도 썰물처럼 빠진 것이다. 이용 동서문화사 편집부장은 “간행물윤리위의 결정으로 판매가 잠깐 늘었지만 씁쓸하다. 철학적인 사유가 가득한 책인데 과연 호기심에 사간 사람들이 책을 끝까지 읽기나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침실에서 아내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질식사. 별다른 외상도, 누가 집에 침입한 흔적도 없다. 게다가 집의 모든 창문과 문은 안에서 잠겨 있는 상태. 이른바 ‘밀실(密室)’살인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범인의 흔적은 없고 시체만 남겨진 수수께끼 같은 밀실살인은 추리소설의 단골 소재다. 하지만 이 비상식적인 상황을 얼마나 그럴듯한 개연성으로 이끌어 내느냐에 따라 짜릿한 전율이 일기도, 김이 새기도 한다. 이 책은 전자에 더 가깝다. 다시 밀실로 들어가자. 질식사지만 목을 조른 흔적도, 독가스가 살포된 흔적도 없다. 사고사처럼 보이지만 무언가 찜찜하다. 경찰은 탐문 중 사건 한 달 전 인근에서 애완용 햄스터 세 마리가 질식사로 숨진 사실을 알아낸다. 아내와 햄스터의 죽음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예약’ ‘질식’ ‘비’ ‘공기’ 등 사건의 주위에서 건져낸 키워드들이 하나로 조합된 순간, 독자의 상상을 뛰어넘는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다. ‘기발하다’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밀실에서 숨진 아내의 비밀을 캐는 단편 ‘집 지키는 사람’이다. 이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밀실 살인 사건 이야기 중 이 작품은 단연 압권이다.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인형사의 집’에도 눈길이 간다. 외딴 별장에서 홀로 살며 여자 석고상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려는 한 남자, 우연히 그 별장을 찾은 아이 셋, 그중 한 아이의 실종…. 특히 성인이 된 아이가 다시 별장을 찾고, 현재와 과거를 숨 가쁘게 교차하며 기술하는 부분은 찌릿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단, 마지막 반전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이 밖에 건달 청년의 의문사를 그린 ‘즐거운 나의 집’, 산골 마을 속 변사 사건을 그린 ‘산골 마을’, 이사 온 새집에서 정체 모를 공포를 느끼는 ‘거주지 불명’ 등 개성 강한 추리단편들을 모았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과 본격미스터리대상을, ‘밀실 살인 게임 2.0’으로 두 번째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수상한 작가는 특히 ‘밀실살인의 달인’으로 꼽힌다. 각종 트릭과 반전으로 가득한 그의 작품은 가볍게, 즐겁게 읽기에 딱 좋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목련꽃 그늘 아래서/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박목월 시인의 시 ‘4월의 노래’의 도입부. 작곡가 김순애가 곡을 붙인 가곡으로도 익숙한 이 노래의 일부를 ‘베르터의 편질 읽노라’로 바꿔 부르면 어떨까. 출판사 창비가 ‘창비세계문학’ 시리즈(사진)를 펴냈다. 1차분으로 11권을 선보였고, 앞으로 매년 10여 권을 펴낼 계획이다. “원문과 일일이 대조해 엄격한 번역을 했다”는 이 전집의 1호는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익숙한 제목과는 차이가 있다. 이유가 뭘까. 이번 전집의 기획위원이자 직접 번역자로 참가한 임홍배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의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1774년 괴테가 펴낸 이 책의 원제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이다. 국내에는 1940년대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때문에 일본어 발음 ‘베루테루’에 영향받은 ‘베르테르’가 됐다는 것. 올바른 독일어 발음은 ‘베르터’란 설명이다. 또 ‘Leiden’은 영어권에서는 ‘Sorrow’로 번역됐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영향을 받아 ‘슬픔’으로 번역됐다는 것. 하지만 ‘Leiden’이 단순한 슬픔이 아닌 베르터의 고통과 괴로움을 복합적으로 그린 단어이기 때문에 우리말로 옮기면 ‘고뇌’로 번역하는 게 맥락에 맞다고 임 교수는 말했다. 또 ‘Leiden’이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인 것은 베르터의 고뇌가 그만큼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의 제목으로 소개됐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지하에서 쓴 수기’란 제목으로 나왔다. 기획위원인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영어식 제목(Notes from Underground)을 그대로 옮겨 ‘from’이 ‘으로부터’가 됐던 번역투 문장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자에게 익숙한 제목을 포기하는 점은 판매에 불리할 수도 있다. 임 교수는 “틀린 줄 알면서도 앞선 제목들을 그대로 따르기는 힘들었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도 있지만 유명 작가의 작품인 만큼 큰 혼동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국어를 해외에 널리 보급하는 데 힘쓴 김진우 미국 일리노이대 명예교수가 제34회 외솔상 문화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실천 부문 수상자는 한글 바로 쓰기 운동을 펼친 박홍길 동의대 명예교수다. 외솔상은 재단법인 외솔회가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을 기려 제정한 상. 시상식은 26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세종대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이인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왼쪽)와 최맹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업무협약식을 가졌다. 양측은 앞으로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입상자 초청 음악회 등 각종 문화사업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