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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로 파경설을 유포했는지, 이를 퍼 나른 사람은 누구이고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합니다. 방송 활동 중 매일매일 수많은 의혹의 눈길을 느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황수경 KBS 아나운서(42) 부부가 10일 서울중앙지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앞서 황 아나운서 부부는 8월부터 증권가의 사설정보지(속칭 ‘찌라시’)와 트위터 카카오톡 등에 파경설이 유포되자 “전혀 사실무근이며 화목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며 8월 말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수사에 속도를 내 달라고 진정서를 낸 것이다. 황 아나운서의 남편(46)은 지방검찰청 차장검사로 재직 중이다. 그런데 사실 황 아나운서 부부가 진정서를 낸 시점에 검찰은 이미 사건 수사에 급진전을 이룬 상태였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조재연)는 이날 황 아나운서 부부의 파경설 루머를 유포한 혐의(명예훼손)로 종합일간지 기자 P 씨와 인터넷 블로그 운영자 등 2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P 씨가 루머를 주변에 유포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로그 운영자는 파경설 외에도 증권가 루머를 블로그에 게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황 아나운서 부부는 파경설을 당사자에게 확인한 것처럼 보도한 종합편성채널 TV조선에 대해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의 혼외관계 의혹이 제기된 임모 씨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 계열 시민단체 법조계바로정돈국민연대(법정련)가 임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곽규택)는 조만간 임 씨에게 소환을 통보할 방침인 것으로 8일 확인됐다. 임 씨는 현재 경기 가평군의 한 아파트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임 씨를 소환하는 것은 최근 법정련 고발인 대표 강모 씨에 대한 조사를 마쳤기 때문이다. 강 씨는 검찰 조사에서 “이번 사태가 초래된 원인은 임 씨가 학교생활기록부에 해당 아동의 생부로 채 전 총장 이름을 기입하고 ‘애 아빠가 채동욱’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라며 “채 전 총장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의혹을 규명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채 전 총장과 대한민국 검찰 조직 전체에 대한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만약 채 전 총장이 검찰에 임 씨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오면 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된다. 검찰은 채 전 총장이 별다른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수사를 계속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원고(대한민국)는 채권(17억3695만 원) 중 절반에 해당하는 금원(8억6847만 원)에 대한 청구를 포기하라.” 서울중앙지법 민사35부(부장판사 이성구)는 7일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의 피해자 가족 구모 씨(79) 등 5명이 과다하게 지급받은 배상액 중 절반을 국가가 포기하라는 취지로 화해권고 결정을 냈다. 민사35부는 인혁당 재건위 피해자 강모 씨(85) 등 4명에 대한 소송에서도 4일 ‘채권(15억3017만 원) 중 절반을 포기하라’고 권고했다. 이 화해권고는 국가정보원이 7월 인혁당 재건위 피해자 열여섯 가족(77명)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한 법원의 절충안이었다. 이들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게 인정돼 2009년 1, 2심에서 759억 원을 배상받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1년 지연이자 산정이 잘못됐다며 1, 2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1, 2심은 손해배상의 지연이자 계산 시점을 유죄 판결이 확정된 1975년과 1976년으로 봤지만 그동안 통화가치 변동으로 과잉배상의 우려가 있다”며 지연이자의 발생 시점을 항소심 변론이 종결된 시점(2009, 2010년)으로 봤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미리 받은 배상액 일부(490억 원) 중 211억 원을 국가에 돌려줘야 했다. 피해자들이 계속 배상액 반환을 거부하자 국정원은 올 7월 소송을 냈다. 화해권고를 내린 취지에 대해 법원은 “당사자의 형편을 고려하고, 사건의 공정한 해결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일부 피해자와 가족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 것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앞으로도 법원이 이런 식의 결정을 낸다면, 잘못 나간 세금 100억 원은 돌려받을 길이 없다. 국정원은 서울고검 송무부(부장 신유철 검사장)의 지휘를 받아 다음 주 법원에 이의 신청을 낼 예정이다. 피해자와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국가는 분명 배상액을 지급했고, 잘못 지급된 부분을 돌려받으려는 것이다. 그런데도 법원이 대법원 판결을 뒤집으면서까지 화해권고를 내린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법원이 여론을 의식해서 세금 낭비는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8월에 과다 지급된 배상액 18억4137만 원을 국가에 반환한 두 가족(4명)은 법원의 권고를 어떻게 볼까.최예나 사회부 기자 yena@donga.com}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광수)는 내주 초부터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30여 명을 순차적으로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소환 대상자들과 일정을 조율하고 있으며 7일부터 조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봉하 이지원’에서 확보한 회의록은 ‘대통령기록물’로, 국가정보원이 보관하고 있는 회의록은 ‘공공기록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3일 “삭제된 회의록은 녹취록을 풀어놓은 초본 수준을 넘어 체계를 갖춘 ‘완성본’이기 때문에 대통령기록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검찰 내에서는 국정원 회의록은 공공기관인 국정원이 녹취본을 토대로 만들고 국정원장 결재를 받아 만들어 관리했기 때문에 공공기록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록의 성격규정은 삭제 및 공개행위에 대한 처벌에 영향을 미친다. 국정원 회의록이 공공기록물로 간주되면 올 6월 전문을 공개한 행위로 민주당에 의해 고발된 남재준 국정원장과 새누리당 김무성 정문헌 의원 등도 무혐의 처분될 가능성이 있다. 공공기록물은 공공기관에서 직무수행상 필요에 따라 제한적으로 열람할 수 있다. 반면 삭제된 회의록이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되면 이를 파기한 행위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된다.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삭제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참여정부 인사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의록을 국정원에 보내고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지 않은 건 보호기간(15∼30년) 중 열람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서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노 정부 당시 국정원이 회의록을 왜 1급 비밀로 지정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회의록은 2009년 3월에 2급으로 강등됐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처음부터 2급으로 지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정부 인사들은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의 회의록도 국정원이 관리했다고 설명하지만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시행된 건 2007년 7월, 대통령기록관이라는 직제가 신설된 건 그해 11월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이 각종 대통령기록물의 반출과 삭제를 지시하는 회의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대통령기록물 반출 사건 조사에 참여했던 A 씨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인 2008년 1월과 2월 사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져갈 것은 가져가고, 국가기록원에 넘길 것은 넘기고, 없앨 것은 없애라’는 취지로 말하는 육성이 회의 장면과 함께 담긴 동영상이 있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돼야 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이관되지 않은 것으로 2일 확인되면서 그 경위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 정작 있어야 할 곳에 없는 회의록 대통령기록물은 청와대 이지원→대통령비서실 기록관리시스템과 이동식 하드디스크→대통령기록관의 기록물관리시스템인 ‘팜스(PAMS)’ 순으로 이관되어야 한다. 전자문서 형태가 아닌 기록물은 대통령기록관의 서고로 옮겨진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도 이 절차를 거쳐 팜스로 이관돼야 했지만 검찰 조사 결과 1차 회의록과 수정 회의록(수정본)이 청와대 이지원에만 등록된 뒤 팜스로 이관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차 회의록은 이지원에만 보관됐다가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1차 회의록은 청와대가 정상회담 녹취록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며 수정본은 청와대와 국정원이 국정원의 특수장비를 이용해 녹음 상태가 좋지 않은 부분을 보완하는 등 1차 회의록을 일부 수정해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록이 발견된 ‘봉하 이지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2월 시스템을 통째로 복제, 저장해 봉하마을 사저로 가져갔다가 대통령기록물 유출 논란이 일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같은 해 7월 대통령기록관으로 반납한 바 있다. 검찰은 앞으로 국가의 중요 사초(史草)인 정상회담 회의록이 무슨 이유 때문에 국가기록원 이관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고, 이지원에만 남게 됐는지를 집중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수정본이 ‘봉하 이지원’과 국정원에 남아있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은폐하기 위해 회의록을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았다는 여권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수정본을 ‘봉하 이지원’에만 남긴 것은 회의록을 사적으로만 보관하고 국가기록원의 공식적인 기록, 즉 사초로 영구히 남기고 싶지는 않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검찰 조사 결과 삭제된 1차 회의록과 수정본은 내용상 유의미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회의록들이 정상회담 대화내용을 아무 첨삭 없이 기록한 원본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 수정본이 국정원에 보관된 회의록과 동일한 것이며, 국정원이 회담 녹음테이프를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수정본이 대화내용을 원래 그대로 담고 있는지는 앞으로 확인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회의록 한 부는 왜 지웠을까 검찰은 ‘봉하 이지원’에서 1차 회의록이 삭제된 경위 역시 반드시 밝혀져야 할 수사 대상으로 보고 있다. 노무현재단 측은 그 회의록이 초안인 데다 국정원에도 한 부가 있기 때문에 삭제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삭제된 한 부 역시 완성본 형태의 회의록이고, 중요한 대통령기록물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삭제를 지시해 실행됐다면 불법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회의록이든 이지원에 등록된 뒤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이 되지 않거나 삭제됐다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의 지시를 받고 누가 언제 어떻게 왜 삭제했는지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친노 인사는 대통령기록관으로 회의록을 이관할 경우 열람할 때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차기 정권이 열람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국가정보원과 이지원에만 각각 한 부씩 보관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통령이 행사한 일종의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지원과 국정원에 보관함과 동시에 대통령기록관에도 보관하면 되는데, 이를 굳이 삭제하고 이관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킨 이유가 석연찮다고 지적한다.○ 정상회담 회의록 작성, 관리 30여 명 소환 검찰은 다음 주부터 정상회담 회의록 작성, 관리를 담당한 노무현 정부 당시 인사 30여 명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기록물 관리 담당자였던 임상경 전 대통령기록관리비서관과 조명균 전 대통령안보정책비서관 등이 핵심 조사 대상이다. 조 전 비서관은 올 1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노 전 대통령의 서해 NLL 포기 발언과 관련한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할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회의록을 이지원에선 삭제하는 대신 국가정보원에 보관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회의록 삭제 및 실행, 보고 과정에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문 의원에 대한 소환 조사는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유성열·최예나 기자 ryu@donga.com}
검찰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한 기간은 약 50일로 사상 최장을 기록했다. 수사팀은 8월 16일부터 지금까지 매일 오전 10시∼오후 10시에 대통령기록물 755만2000여 건을 확인했다. 수사팀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반드시 있다’는 전제 아래 압수수색을 했다. 그러지 않으면 “회의록이 없다”는 결론을 냈을 때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고 실수로 놓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사팀은 매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떠나기 전 “회의록과 관련해 파지 한 장이라도 반드시 있다”고 외치며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비전자 기록물 중 34만5000건에 달하는 문서는 일일이 한 장씩 넘겨가며 봤다.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 DVD 등으로 구성된 시청각 기록물(82만5000건)도 하나씩 듣고 봤다. 카세트테이프는 양면을 모두 듣는 데 2시간이 필요해 하루에 6개밖에 못 들을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전자기록물(635만8000건)의 경우 이관용 외장하드와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PAMS), 데이터 저장매체(NAS)에 검색 구동 엔진을 연결해서 봤다. 수사팀은 각각 검색어 50∼90여 개를 넣어 추출되는 기록물에서 회의록이 있는지를 살폈다. 검찰은 공정성 시비를 피하기 위해 국가기록원에 있는 폐쇄회로(CC)TV와 별도로 압수수색 전 과정을 캠코더로 녹화했다. 또 기록원 직원들이 수사팀에 일대일로 붙어 작업 과정을 지켜봤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서 압류한 그림 중에 고 이대원 화백의 ‘농원’과 고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최고가로 감정됐다. 이들 그림은 각각 4억∼5억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감정됐다.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사저에서 나온 120호(약 194×130cm)짜리 ‘농원’은 검찰이 당초 1억 원대로 추정했지만 미술 전문가들은 훨씬 높은 가격을 매겼다. 장남 재국 씨의 평창동 사무실에서 최근 추가로 압류한 60여 점을 포함해 600여 점의 미술품 가격은 주로 5000만∼1억 원이 많았다. 국내 현대 작가의 작품 중에는 △김종학의 ‘꽃’ △천경자의 ‘여인’ △배병우의 ‘소나무’ △오치균의 ‘집’ △고 변종하의 ‘새와 여인’ 등이 있었고, 고미술품 중에는 겸재 정선, 심사정, 최북의 작품 등이 있었다. 외국 작가 중에는 △장샤오강의 ‘혈연 시리즈’(판화) △데이미언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실크스크린) △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무제’(판화) △프란체스코 클레멘터의 ‘우상’ △미모 팔라디노의 ‘무제’ 등이 포함됐다. 서울중앙지검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예금보험공사로 구성된 ‘압류재산 환수 태스크포스(TF)’는 9월 30일 미술품 관련 첫 회의를 열고 ‘전 전 대통령 일가 컬렉션’을 높은 가격에 공매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다고 1일 밝혔다. 검찰은 그림들을 순차적으로 공매할 예정이다. 우선 11월 초에 ‘농원’ 등 고가 작품을 먼저 공매할 계획이다. 이후 1억 원대와 5000만∼1억 원 등 가격대별로 모아 공매하고, 여러 점이 있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분산해 공매할 계획이다. 검찰은 공매 전 ‘전 전 대통령 일가 컬렉션’ 전시회를 여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검찰은 옥션사의 미술계 인사 e메일 리스트를 활용해 공매 관련 정보를 보내는 방안도 살피고 있다. 외국 작가 작품은 홍콩에서 공매할 계획이다. 검찰은 서울옥션 홍콩지사나 소더비 홍콩지점 등을 활용할 생각이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감찰에 반발하며 사의를 표명했던 김윤상 대검찰청 감찰1과장(44·사법연수원 24기)의 사표가 1일 수리됐다. 검찰 감찰 업무 실무자였던 김 과장은 지난달 14일 검찰 내부 통신망(이프로스)에 “후배의 소신을 지켜 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 차라리 전설 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다”며 사의를 밝혔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법무부의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에 대한 진상 조사 결과와 채 총장의 사표 수리 건의 발표는 오후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20분 전 갑작스러운 통보를 거쳐 기자회견이 이뤄지자 검찰 안팎에선 그 배경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감찰 전 진상조사 단계에서 그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검찰총장이 부재한 상태에서 검찰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낸 고육책이라는 견해와 혼외자 의혹을 해소할 특별한 내용을 담지도 못한 채 굳이 발표할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견해 등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법무부는 이날 한 장짜리 발표문을 통해 세 가지 내용을 담았다. 우선 채 총장과 혼외관계 의혹이 제기된 임모 씨가 2010년 당시 대전고검장이던 채 총장 집무실을 찾아가 부인이라고 주장하며 면담을 요청했고 면담을 거절당하자 ‘피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꼭 전화하게 해 달라’고 직원들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또 채 총장이 임 씨가 경영한 부산의 카페, 서울의 레스토랑 등에 상당 기간 자주 출입했다는 것과 임 씨가 의혹이 최초로 보도되기 직전인 6일 새벽 여행용 가방을 꾸려 급히 집을 나가 잠적한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발표 내용 중 2010년 집무실 방문 건 이외에는 이미 모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또 법무부는 “(채 총장에게)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여러 참고인의 진술과 정황 자료가 확보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사실관계를 단정하듯 발표해놓고 구체적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법무부의 발표 내용은 법무부 감찰관실이 열흘 넘게 부산과 대전 등을 오가며 채 총장과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는 검사와 직원들, 임 씨의 친지 등을 조사한 결과다. 채 총장이 조사를 거부하고 있어 그의 의견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발표 경위와 관련해 황 장관으로선 채 총장이 사표를 내고 조사를 거부하는 상황이 오래갈수록 검찰 조직을 안정시키는 데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진상조사의 한계 때문에 더 밝혀낼 것이 없는 상황에서 총장 부재부터 우선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법무부의 건의를 받은 이날 공식적으로는 “아직 정해진 입장이 없다”고 말을 아꼈지만 내부적으로는 법무부의 건의를 받지 않기는 어렵게 됐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대통령이 추가 감찰을 지시할 경우 대통령이 검찰 조직보다 채 총장의 개인 비리를 밝히는 데만 집착하는 모양새처럼 비칠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주말까지는 가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일각에선 법무부 발표가 혼외아들 의혹을 밝힐 확증을 제시하지 못한 채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다’는 인상만 굳히려는 발표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채 총장의 프라이버시를 감안한 듯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음을 인정’한 구체적 근거를 밝히길 거부하면서도 임 씨가 채 총장의 사무실에 찾아가 ‘내가 부인이다’라는 내용처럼 세세한 대목을 공개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고검장급 인사는 “이 정도로는 법무부 주장처럼 채 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을 사실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사 내용도 신뢰하기 어렵다. 이번 발표로 검찰 조직 내의 혼란이 한층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채 총장이 24일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한 뒤 사흘 만에 사전 예고 없이 발표한 것도 채 총장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법무부 발표로 논란만 더 거세지자 검사들 사이에선 “이제 임 씨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검사들은 “임 씨가 아들의 유전자 검사에 동의하고 아이의 처지를 고려한 합리적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야 이 혼란이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전지성·최예나 기자 verso@donga.com}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이규진)는 27일 미성년자 3명을 성폭행하고 강제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가수 고영욱 씨(37)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전자발찌 부착 기간은 10년에서 3년으로, 개인정보 공개기간은 7년에서 5년으로 줄였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의 재의(再議) 요구를 거부하고 서울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것은 적법했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26일 교육부 장관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재의 요구 요청 권한을 침해당했다”며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헌재는 “교육감의 재의요구 권한과 교육부 장관의 재의요구 요청 권한은 별개의 독립된 권한”이라며 “시도의회의 재의결 전에는 언제든지 재의 요구를 철회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대법원 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지난해 무단 방북해 김정일과 김일성을 찬양하는 등 이적행위를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된 노수희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69)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한 원심을 26일 확정했다. 또 노 씨의 방북에 가담한 혐의를 받은 원모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40)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노 씨가 방북 기간에 한 발언과 행적이 국가의 존립·안전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여환섭)는 4대강 공사 입찰 과정에서 들러리 업체를 내세워 입찰을 담합한 혐의(건설산업기본법 위반, 입찰방해)로 11개 건설사 전현직 임원 22명을 24일 기소했다. 김중겸 현대건설 전 대표이사와 서종욱 전 대우건설 대표이사 등 16명은 불구속 기소, 6명은 구속 기소됐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대림산업 GS건설 SK건설 등 6개 대형 건설사는 2008년 12월 정부가 4대강 살리기 사업계획 수립에 착수하자 6개사 협의체를 구성하고 ‘경쟁 없이 공사 물량을 나눠 갖자’고 합의했다. 또 포스코건설과 현대산업개발 등 입찰 경쟁 가능성이 있는 다른 건설사도 영입했다. 이들은 들러리를 서주거나 중견 건설사를 들러리 세우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설계 점수에서 져주려 낙찰이 예정된 건설사의 설계 자료를 받아 그보다 저급하게 만든 ‘B설계’를 내거나 졸속으로 만든 느낌이 들도록 완성된 설계도에서 곳곳을 종이로 오려 수정하는 ‘따붙이기’ 수법을 동원했다. 투찰 가격은 낙찰이 예정된 건설사의 가격보다 높게 썼다. 검찰은 이 과정에 삼성중공업 금호산업 쌍용건설이 참여한 사실을 확인하고 임원들을 함께 기소했다. 이런 방식으로 8개 건설사들은 2009년 2∼6월 발주된 14개 보 공사를 나눠 가졌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배상액을 과다 지급받은 피해자 가족 중 4명이 18억4137만 원을 4년 만에 국가에 반환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국가가 과거사 사건과 관련해 과다 지급된 배상액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뒤 이를 받은 건 처음이다. 서울고검 송무부(부장 신유철 검사장)와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유모 씨(48)와 정모 씨(79·여) 등 피해자 유족 4명이 과다 지급된 배상액 총 15억3453만 원과 4년간 배상액을 반환하지 않은 데 따른 이자(연 5%) 3억684만 원을 서울고검 환수금 입금용 통장에 지난달 이체했다. 지금까지 배상액 반환을 거부했던 이들은 국가정보원이 7월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고 관련 소장을 받자 서울고검에 반환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돌려받은 건 과다 지급된 배상액(총 211억 원)의 7%에 불과하다. 국정원은 7월 국가 대상 소송 지휘권을 갖고 있는 서울고검의 지휘에 따라 서울중앙지법에 열여섯 가족(77명)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이들에게 “대법원 판결에 따라 과다 지급된 배상액을 돌려줘야 한다”는 통지서를 보냈지만 피해자와 가족들은 거부했다. 결국 피해자와 가족들이 이번처럼 자발적으로 반환하지 않으면 법원 선고를 통해 반환 여부가 결정 날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 사건의 배상 문제와 관련해 사상 초유의 소송까지 벌어진 건 대법원이 배상액에 대한 이자 선정 기준을 1, 2심과 달리했기 때문이었다. 인혁당 재건위 피해자와 가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1심은 2009년 6, 7월 국가에 ‘위자료와 인혁당 재건위 유죄 판결이 확정된 시점부터 5%의 지연이자를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전창일 씨(92) 등 67명은 위자료 235억 원에 1975년 4월 9일부터의 지연이자 402억 원을 더한 637억 원을, 이현세 씨(64) 등 10명은 위자료 44억 원과 1974년 6월 15일부터의 지연이자 78억 원을 더한 122억 원을 받게 됐다. 이들이 가집행을 신청함에 따라 서울고검은 2009년 8, 10월에 총 배상액 가운데 490억 원을 1차로 지급했다. 2심도 1심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1년 1월 지연이자를 대폭 낮추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통상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이자는 불법행위 시점으로부터 발생하지만, 불법행위 이후 장시간이 흘러 통화가치 변동으로 과잉배상의 문제가 생길 경우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 변론종결 시점부터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자가 발생하는 시점은 각각 2009년 11월 5일과 2010년 7월 2일로 바뀌었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족들은 이자 발생 시점 전에 이미 배상액을 가집행 받았기 때문에 490억 원 중 위자료 279억 원을 뺀 211억 원을 반환해야 했다. 서울고검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2011년 8월까지 과다 지급된 배상액을 돌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국정원은 올해 6월부터 법원에 22건에 대한 부동산 가처분 보전처분을 신청했다. 피해자와 가족들이 소송 판결 전에 재산을 은닉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법원은 1건을 제외하고 모두 기각했다. 결국 국정원은 7월 “211억 원과 이자 40억 원 등 251억 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국정원은 배상액을 반환한 유 씨에 대해서는 소를 취소했고, 정 씨 등에 대해서도 곧 취소할 예정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1975년 중앙정보부가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이라는 학생운동 조직의 배후 세력으로 인혁당을 지목하고 북한 지령을 받은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뒤 8명을 사형하고 17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건이다. 서울고검에 따르면 과거사 사건과 관련해 과다 지급된 배상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 사건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유일하다. 대법원은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사건 △이중간첩 이수근 씨 사건 △태영호 사건 △아람회 사건 등 4건에 대해서도 2010∼2011년 지연이자를 낮추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앞선 3건은 대법원 확정 판결 뒤에 배상액이 지급됐고, 아람회 사건은 가지급된 배상액이 대법원에서 확정한 금액보다 적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13일 지시한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감찰’이 사실상 16일부터 시작됐다. 안장근 법무부 감찰관을 비롯해 감찰담당관, 검사 2명 등이 투입돼 기초 자료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는 현 상태가 ‘감찰’이 아닌 ‘진상조사’, 즉 수사로 치면 내사 단계라고 설명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진상조사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법무부 감찰 규정을 준용할 예정인데 어떤 규정을 준용할지 감찰관실에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상조사의 성패는 혼외 아들의 어머니라는 의혹이 제기돼 있는 임모 씨(54)의 협조에 달렸다. 감찰관은 참고인에게 자료 제출이나 출석 및 답변을 요청할 수 있지만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임 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이번 사건을 밝히는 데 핵심인 유전자 검사를 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임 씨의 아들도 강제로 귀국시킬 근거가 없다. 채 총장과 임 씨 간 통화 기록이나 계좌 추적은 법무부가 할 수 없다. 법무부는 수사기관이 아니어서 통화 기록이나 계좌 추적에 필요한 영장을 청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채 총장의 경우 감찰 규정에 따라 △질문에 대한 답변 △증거물 및 자료 제출 △출석과 진술서 제출 등에 협조해야 하지만, 결국 임 씨 측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선 임 씨의 동의가 없는 상황에서 법무부 감찰은 임 씨와 아들의 기본적인 신원과 인적사항 등을 수집하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감찰 규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감찰 결과는 언론에 공표하지 않지만 언론 등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은 공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법무부가 이례적으로 감찰 착수 사실도 언론에 공지한 데다 온 사회가 주목하는 사안인 만큼 감찰 결과 역시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과정에 대통령민정수석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두고 야권과 청와대가 16일 공개적으로 치열한 진실 공방을 벌였다. 야권은 청와대가 혼외 아들 의혹 보도가 나오기 이전인 8월부터 채 총장을 사찰했다고 폭로했고, 청와대는 보도 이후 관련 규정에 따른 적법한 특별감찰 활동만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16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곽상도 전 민정수석과 국정원 2차장이 채 총장을 사찰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졌다”며 “(8월 초) 곽 전 수석이 해임당하자 이중희 민정비서관에게 채 총장에 대한 사찰 파일을 넘겼다”고 주장했다. 대통령민정수석실이 혼외 아들 보도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채 총장에 대해 광범위한 사찰을 벌였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또 “(이 비서관은) 8월 한 달간 채 총장을 사찰했고, 서울중앙지검 김광수 공안2부장과만 연락하면서 이런 내용을 공유했다”며 “이 비서관은 김 부장에게 ‘채 총장이 곧 날아간다’고도 했고, 이에 대검찰청에서 둘의 통화사실을 알고 감찰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 비서관은 검찰 출신이며 김 부장과 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은 “민정수석실이 파일을 인계받은 사실이 없다.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이 비서관이 김 부장과 채 총장에 대한 사찰 내용을 공유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 비서관과 김 부장이) 9월 1일부터 15일까지 통화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비서관이 혼외 자식 보도 내용을 사전에 알고 몇몇 검사에게 미리 알려줬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전화를 받았다는 검사를 한 명이라도 데려와라. 전혀 사실무근이다”라고 거세게 부인했다. 곽 전 수석과 김 부장 역시 박 의원의 주장에 대해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본보 취재 결과 곽 전 수석이 채 총장의 혼외 아들 보도가 나가기 이전인 8월부터 채 총장에 대해 광범위한 사찰을 벌였다는 박 의원의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다. 곽 전 수석이 채 총장 사찰에 개입했다는 주장 역시 뒷받침할 증거는 나온게 없다. 그러나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비서관이 김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채 총장의 혼외 아들이란 의혹을 받고 있는 아이의 혈액형을 알려주며 채 총장이 3, 4일 뒤에 물러날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 비서관이 김 부장 등에게 전화를 건 시점은 본보 취재 결과 이달 8일이다. 그 전에는 전화를 걸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이날 이 수석은 대통령민정수석실의 개인정보 불법 취득 의혹에 대해서도 “총장의 혼외 자식 의혹이 보도된 9월 5일(6일의 잘못) 이후부터 민정수석실 규정에 따라 (채 총장에 대한) 특별감찰에 착수했다. 보도 이전엔 어떤 확인 작업도 거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등 관계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해 응하면 자료를 확보하거나 열람했고, 이를 거부하면 전혀 확인을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본보 확인 결과 의혹 보도가 나온 이틀 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채 총장을 만났으며, 그날 저녁엔 민정수석비서관이 채 총장을 만나 의혹의 대상인 임모 씨의 전화번호를 건넸으며 민정수석비서관실 관계자가 채 총장에게 청와대의 직무감찰을 받으라고 요구하는 등 채 총장에 대한 일련의 압박이 마치 준비된 것처럼 이뤄졌다. 채 총장이 김 부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했다는 주장은 채 총장이 대검 대변인을 통해 김 부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김 부장이 이 비서관과 통화한 뒤 대검에 곧바로 보고하자 채 총장은 “무슨 얘기냐. 더 알아보라”고 했고, 이것이 마치 감찰 지시를 내린 것처럼 와전됐다는 것이다. 한편 법무부는 16일 황 장관과 국민수 차관이 채 총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황 장관은 이번 일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채 총장과 만나고 전화한 일은 있지만 사퇴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국 차관은 총장과 통화한 사실도 없다”고 말했다.유성열·최예나 기자 ryu@donga.com}
청와대가 채동욱 검찰총장(54·사법연수원 14기)이 제출한 사표 수리를 유보하겠다고 밝혔지만 채 총장은 16일 연가를 내고 출근을 하지 않았다. 채 총장은 17일까지 연가를 내고 출근을 하지 않은 채 지방 모처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날 총장 업무는 검찰청법과 관련 규정에 따라 길태기 대검찰청 차장이 수행했다. 채 총장은 혼외 아들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내기 위해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는 이날 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감찰에 착수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진상 규명 조치를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채 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에 대한 검사들의 반발 움직임은 이날도 이어졌다. 대검찰청 간부들이 검찰 내부 통신망에 황 장관에 대한 항의성 글을 올린 데 이어 이날 평검사 5, 6명도 글을 올렸다. 서울중앙지검 소속 이모 검사는 내부 게시판에 실명으로 올린 글에서 ‘검찰수사 외압 및 검찰총장 음해’와 관련해 8가지 의혹을 제시한 뒤 “법에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수사 외압이 직권남용 등으로 처벌받은 전례가 있고, 위법한 방법을 통한 음해 정보 취득 및 사용 등 역시 형사처벌 대상이다”라며 수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유성열·최예나 기자 ryu@donga.com}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표를 청와대가 수리하지 않으면 총장 직무의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사표가 수리돼야 대검찰청 차장이 총장 권한대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15일 “의혹의 진위 규명이 우선”이라고 했기 때문에 진위 규명 때까지 공백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법 13조는 ‘검찰총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대검 차장이 그 직무를 대리한다’고 돼 있다.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권한이 정지되는 상황을 말한다. 감찰이 진행돼도 권한 정지는 아니기 때문에 직무는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사표도 수리되지 않고 총장도 직무를 안 하는 애매한 상황이 된 것이다. 과거에도 총장의 사표가 수리되고 퇴임식이 열리면 그때부터 차장이 권한대행을 맡아왔다. 채 총장이 출근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일단 결근이나 휴가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도 이런 사태가 처음이라 총장 직무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고심하고 있다. 차장이 대외 행사 등에 대리 참석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결재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몰라서다. 보통 권한대행은 ‘대행 대리결재’ 형태로 결재하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검찰은 당장 총장 결재가 없으면 안 되는 긴급한 사건의 경우 불가피하게 차장이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채동욱 검찰총장을 대신할 새 총장이 임명되기까지는 최소 한 달 반, 길면 석 달까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후보자를 추천받은 뒤 3명 이상을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하고 장관이 최종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과정이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도 3명의 후보자가 뽑힐 때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고, 대통령이 최종 한 명을 지명하고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15일 이상 걸렸다. 그때까지 총장 직무는 검찰청법 13조에 따라 당분간 길태기 대검찰청 차장(55)이 대행하게 된다. 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한 기수 후배인 길 차장은 채 총장의 사표가 수리대는 대로 총장 직무대행을 맡는다. 올해 3월 총장 인사 당시 후보군에는 김진태 전 대검 차장(61·사법연수원 14기·법무법인 인 고문변호사)과 소병철 법무연수원장(55·15기)이 포함돼 있었다. 김 전 차장은 채 총장과 동기다. 한 기수 아래에는 소 법무연수원장과 길 대검 차장이 있고, 16기 중에는 임정혁 서울고검장(57),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55) 등이 있다. 새 총장은 친박 성향의 검찰 출신 인사나 공안 출신 인사가 될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검찰 출신이자 공안통인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의중이 많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아저씨 치한이죠?” 열다섯 여중생이 만원 지하철에서 간신히 내린 남자를 따라와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한다. 교복 차림의 소녀는 이 남자가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자신의 엉덩이와 몸을 만졌다고 확신한다. 소녀는 울먹이며 남자를 원망스럽게 바라본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남자를 비난한다. 경찰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자백을 강요하며 “(소녀를 만진 사실을) 인정하면 벌금만 내고 조용히 나갈 수 있다”고 한다. 당직 변호사마저 “성범죄는 재판을 해도 99% 진다”며 회의적이다. 남자는 정말 치한 짓을 하지 않았기에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증거도 소녀의 눈물어린 진술을 이기지 못한다. 1년 동안의 법정 다툼을 벌였지만 남자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징역 3개월, 집행유예 3년에 처해진다. 남자는 그렇게 ‘성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7년)는 성범죄 수사와 재판이 피해 여성의 진술을 절대적인 증거로 인정해 남성이 무죄임을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을 꼬집는다. 실제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엄중히 처벌해야 마땅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억울하게 성폭력범으로 낙인찍혀 신음하는 남자들도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고소당한 성폭력 사범 중 11.6%(1만6679명 중 1941명)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조건만남’의 참혹한 대가 “띵동, 띵동, 띵동.” A 씨(32)는 5월 6일 오전 10시경 연달아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깼다. ‘월세를 좀 안 냈더니 집주인이 찾아왔나.’ 짜증스럽게 반지하방 문을 열었다. “A 씨 맞죠? 당신을 특수강간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건장한 체격의 형사 4명이 문을 열자마자 A 씨를 덮쳤다. 순식간에 무릎을 꿇리고 등 뒤로 수갑을 채웠다. 그러곤 16.5m²도 채 안 되는 좁은 원룸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왜 이러느냐”고 항변하자 “B라는 여자 알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B 씨(20)는 보름쯤 전 온라인 채팅으로 만나 ‘조건만남’을 했던 여자였다. A 씨는 경찰서에 끌려가서야 자신에게 씌워진 무시무시한 혐의를 알게 됐다. 자신이 신원불상의 남성 두 명과 함께 B 씨를 집단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섹스 파트너를 구해 돈을 내고 성매매를 하는 조건만남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지만 5년 이상의 징역에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해지는 특수강간과는 죄질이 달랐다.▼자고 간 그녀가 날 성폭행범으로 고소했다, 도대체 왜?▼A 씨는 구속됐다. 휴대전화 속 지인들은 성폭행 공범으로 의심받아 경찰의 연락을 받고 DNA 채취를 받아야 했다. 순식간에 A 씨 지인을 중심으로 A 씨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퍼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봤다. A 씨와 B 씨는 4월 18일 오전 2시경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처음 만났다. 둘은 이미 인터넷 채팅에서 성관계를 하기로 합의했던 터라 곧장 택시를 타고 남자의 집으로 향했다. 40분가량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다가 자연스레 성관계를 가졌다. 이후 A 씨는 “아침까지 같이 있어줄 수 있느냐. 혼자 잠들기 싫다”고 부탁했고 B 씨는 흔쾌히 “그러자”며 응했다. 둘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고 오전 8시 30분경 깼다. A 씨는 B 씨가 지하철을 타러 간다고 하자 “집에서 나가서 우회전만 계속하면 지하철역이 나온다. 데려다주고 싶은데 미안하다”며 길을 알려줬다. 여기까지가 A 씨가 기억하는 정황이다. 하지만 B 씨는 집을 나선 뒤 경찰서로 가 집단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했다. 검찰조사 결과 B 씨의 성폭행 고소는 사소한 거짓말에서 비롯됐다. B 씨는 당초 A 씨와의 조건만남이 끝나고 PC방에 같이 있었던 친구와의 약속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A 씨가 성관계 이후 아침까지 같이 있어달라고 하자 B 씨는 오전 4시 반경 PC방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게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변명을 위한 거짓말 치고는 너무 과했다. “나 뒤통수 맞은 듯이 머리가 얼얼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라며 말을 흐리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B 씨의 친구는 아침까지 기다려도 연락이 없자 경찰에 납치 신고를 했다. B 씨는 뒤늦게 소식을 듣고 경찰서로 갔지만 이미 사건이 너무 커져버렸다. B 씨는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와 경찰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순간의 거짓말을 무마하기 위해 또다시 거짓말을 했다. 집단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진술도 제법 구체적이었다. “A 씨를 오전 2시경 만났는데 그 이후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오전 4시 30분경 깨어나 보니 A 씨를 포함한 남자 세 명이 성폭행하고 있었다. 안경 쓴 남자와 다리에 문신한 남자가 나를 성폭행하는 동안 A 씨가 그 장면을 촬영했다. 이후 다시 의식을 잃었고 오전 8시 30분쯤 일어나 간신히 도망쳐 나왔다.”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나왔다. B 씨의 몸에선 A 씨의 정액과 복수 남성의 타액, 수면제 성분의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과 알프라졸람이 검출됐다. 진술과 증거가 나온 이상 A 씨가 구속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스무 살 B 씨의 거짓말은 그럴듯했어도 빈틈은 있었다. A 씨를 처음 만나 집에 가는 길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집단성폭행 장면만큼은 너무나 생생히 묘사하는 게 의아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김홍창)가 이 점에 의문을 품고 파고들수록 B 씨의 진술은 증거로서의 효력을 잃어갔다. 마침 둘이 나란히 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도 발견됐다. 그러자 B 씨는 “집에 가는 과정은 기억나지만 집에 들어간 이후는 정말 기억 안 난다”고 진술을 바꿨다. 가만히 따져보니 진술과 증거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B 씨는 “안경 쓴 남자와 다리에 문신한 남자가 나를 성폭행하는 동안 A 씨가 그 장면을 촬영했다”고 진술했지만 B 씨의 몸에서는 카메라 촬영을 했다던 A 씨의 정액만 검출됐다. A 씨의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뒤지고 복원까지 해봤지만 찍었다던 동영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전 4시 30분경 세 명에게 성폭행당한 뒤 잠들었고 오전 8시 30분쯤 깨 보니 손에 정액이 흐르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도 모순이었다. 사실이라면 B 씨가 눈을 떴을 때 이미 정액이 말라붙어 있었어야 했다.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니 스스로 진술을 뒤집기도 했다. 성폭행 공범이라는 신원미상 남자 두 명의 인상착의에 대한 진술은 조사 때마다 계속 바뀌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 세 명이 있었다”던 진술은 “원래 세 명이 있었는데 아침에 깼을 때는 A 씨만 있었다”고 바뀌었다. 반면 A 씨의 진술은 일관됐다. 둘이 함께 가다가 집 근처 편의점에서 술과 과자를 산 뒤 화대 11만 원을 인출했다고 했고 실제 카드명세도 진술과 일치했다. 집단성폭행이 이뤄졌다는 A 씨의 집에서는 다른 남성의 머리카락이나 지문 같은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A 씨는 사건 직전 이사를 한 뒤 주변에 주소를 알려주지 않아 아무도 집에 놀러오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검찰은 B 씨의 몸에서 검출된 복수 남성의 타액에 대해선 A 씨를 만나기 전에 묻은 것으로 판단했다. B 씨가 A 씨를 만나기 직전에 조건만남을 했다고 추정되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약물에 대해선 B 씨가 시종일관 아무런 진술을 하지 않아 검출 경위를 알 수는 없지만 A 씨와는 무관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A 씨는 지난달 말 무혐의 처분을 받아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25일 동안 무고하게 철창신세를 지고 3개월 넘게 악몽에 시달린 피해는 고스란히 그의 몫으로 남았다. 검찰이 B 씨를 무고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게 그나마 위안이랄까. 사건을 조사한 검사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는 게 범죄사실을 밝히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번 사건은 의외의 물증(수면제 성분)까지 있어 거짓말을 밝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한번 거짓말을 하면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계속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사이에 본인도 모르게 진술에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망가진 내 인생은 어디서 보상받나” “띵동, 띵동, 띵동,” 기자는 1일 어렵게 A 씨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날의 기억 때문일까. 한참 후에야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그는 “사건 이후 초인종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겁이 난다”고 말했다. A 씨는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자마자 ‘이제 내 인생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B 씨의 구체적인 진술과 증거 앞에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 여겼다. 성관계를 한 건 사실인 데다 자신은 소년 시절 폭행 전과까지 있는 나이트클럽 종업원이라는 자조감이 절망을 증폭시켰다. 유치장에서 만난 사람들도 “아무리 억울해도 성범죄는 정말 뒤집기 힘들다. 하루빨리 죄를 인정해야 그나마 형량이 줄어드니까 잘 생각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5년 넘게 감옥에 가기엔 너무나 억울했다. 어차피 특수강간 혐의라 합의도 불가능했다. A 씨가 강력히 억울함을 호소하자 나이트클럽 동료들이 나섰다. 돈을 모아 변호사 비용도 보태주면서 적극 도왔다. A 씨는 “나중에 들어보니 동료들이 죽은 사람한테 부조한다는 마음으로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고 하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A 씨는 그나마 모아뒀던 돈을 변호사 비용(500만 원)으로 다 썼다. 구속된 25일 동안 일을 못해 방 월세도 못 내고 있다.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성폭행해서 잡혀 갔다더라’는 소문은 이미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 부모님도 사건을 알게 됐다.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하지만 사회에 나가기가 무서워졌다. A 씨는 “망가진 내 인생은 어디서 보상받나. 안 그래도 고달팠던 인생인데…”라며 허탈해했다. 하지만 B 씨를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결과를 떠나서 조건만남을 한 것 자체가 잘못된 행동이었고, 조건만남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A 씨가 무고하게 고초를 겪은 바를 참작해 조건만남에 대해선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겨우 누명 벗어도 의심 눈초리들… 낙인찍힌 삶 어쩌나▼무죄추정의 원칙이 소용없는 성폭력 고소 성범죄 고소사건은 성관계 등 성적 접촉이 실제로 이뤄진 상태에서 그에 대한 강제성 유무를 따지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일단 성범죄로 고소를 당하면 주변 사람들은 “뭔가 하긴 했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고 여기며 ‘성폭행 용의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긴다. 혐의만으로도 낙인이 찍히는지라 성범죄만큼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소용없다. ‘화간(和姦)’과 ‘강간(强姦)’의 애매한 경계를 판가름해야 하는 사건은 주로 연인 사이에서 발생한다. 남녀가 서로 좋아서 성관계를 했어도 여자가 갑자기 앙심을 품고 허위로 고소하면 남자는 영락없이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죄가 없더라도 둘만의 공간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행위와 그 상황에서의 심리상태까지 입증해야 해 진실 규명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죄가 없다고 인정받아도 이미 남자는 사회적으로 만신창이가 된다.#1. ‘무시당했다는 괘씸함에…’ 유흥업소 종업원 C 씨(31·여)는 지난해 9월 22일 밤에 처음 만난 손님 D 씨에게 호감을 느껴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여자는 일을 마치곤 남자에게 먼저 연락해 만나자고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둘은 술을 마신 후 남자의 집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가진 뒤 함께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뜬 여자는 남자에게 넌지시 물었다. “결혼할 생각 있어?” 하지만 남자가 “난 연애하고 싶지 아직 결혼하긴 싫다”고 답하자 섭섭함을 느낀 여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남자가 마음에 들었던 여자는 그날 저녁 또다시 데이트 신청을 했다. 둘은 술을 마시고 다정하게 사진도 함께 찍은 뒤 잠자리를 함께했다. 하지만 여자는 그날 새벽 남자가 친구에게 “C 씨는 그저 잠자리 상대일 뿐이야”라는 메시지를 보낸 걸 우연히 보고 분노했다. 배신감을 느낀 여자는 남자의 집을 나오자마자 “D 씨가 내 어깨와 몸을 누르고 두 번이나 성폭행했다”고 경찰에 고소했다. 명백한 화간이었지만 남자에게 괘씸함을 느껴 허위 고소를 한 것이다. 여자는 올해 초 검찰이 무고죄를 의심해 출석요구를 하자 급하게 고소를 취소했다. 당시엔 성범죄가 피해자의 고소 없이는 수사할 수 없는 친고죄였던지라 고소만 취소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으로 될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검사가 무고 혐의를 인지하면 무고에 대한 수사는 고소 취소와 별개로 진행된다는 건 몰랐다. 여자는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징역 8개월로 감경됐다. 금전을 목적으로 고소한 게 아닌 데다 불안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린 점이 고려됐다. C 씨가 성폭행으로 고소하는 건 고소장 하나면 충분했지만 D 씨는 화간이었음을 입증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사투를 벌여야 했다. 남자는 고소 소식을 듣고 급하게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것도 원하는 거 없어. 나 너무 자존심 상했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의 삶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혹시나 회사나 지인에게 성폭행으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질까 극도로 두려워하다 보니 대인기피증이 생겨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2. ‘뽀뽀를 안 해줘서…’ ‘뽀뽀’를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자를 성폭행범으로 고소한 사례도 있다. E 씨(43·여)는 2011년 11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F 씨와 술을 마시고 모텔로 가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가졌다. “모텔에 있는 물은 비위생적일 수 있다”며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주고 집까지 차로 바래다주는 남자의 자상함에 여자는 큰 호감을 느꼈다. 여자는 집 앞에 도착해 남자에게 뽀뽀를 한 뒤 “(나에게도) 뽀뽀를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뜻밖에 거절당했다. 자존심이 상한 여자는 집으로 돌아가 “그만 만나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없자 수차례에 걸쳐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남자의 답장은 5일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실 때 저에게 뽀뽀도 해주고 해서 잘될 줄 알았는데 바로 문자로 그만 만나자고 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찌됐든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미 여자의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뒤였다. 여자는 “아무리 그래도 술 취한 저를 모텔로 가서 강제로 겁탈한 것은 큰 죄입니다”라고 답장한 뒤 경찰서로 가 “F 씨가 주량이 맥주 한 잔인 내게 전통주 두 병을 먹인 뒤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며 고소했다. 무고한 남자를 성폭행범으로 몰아간 여자는 2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에 사회봉사 200시간에 처해졌다. 생수를 사러 함께 갔던 편의점의 CCTV에 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찍힌 데다 남자가 차로 집에 데려다줄 때 여자가 아파트단지 앞에서 내릴 수 있었음에도 굳이 동까지 상세히 가르쳐주며 집 앞까지 함께 간 사실이 증거로 인정됐다.#3. ‘이혼 안 당하려고…’ 불륜을 저질러 오다 배우자에게 들킨 여성이 이혼을 피하려고 내연남을 성폭행범으로 고소하는 사건을 부르는 법조계 은어인 ‘100번 강간사건’도 무고한 성범죄 고소의 단골 메뉴다. 이런 사건은 불륜의 기간이 길수록 증거가 많아 여성의 무고를 입증하기 수월한 편이다. G 씨(42·여)는 이삿짐을 옮기던 중 남편에게 내연남과의 ‘섹스 다이어리’를 들켰다. 거기엔 불륜관계였던 H 씨와 2년여 동안 성관계를 해온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를 본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과 이혼하고 싶지 않았던 여자는 “불륜이 아니라 강압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온 것”이라고 주장하며 올해 2월 서울의 한 경찰서에 내연남을 고소했다. “H 씨가 2010년 1월부터 2012년 9월까지 나를 강제로 끌고 다니며 수없이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수사에 착수해야 했다. 둘은 같은 교회에서 만나 2년 넘게 불륜관계를 지속해 왔기에 무고를 입증할 증거는 충분했다. 내연남은 “절대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각종 증거를 연이어 제출했다. 여자가 스마트폰 메신저로 보낸 노출사진, 둘이 옷을 벗고 같이 찍은 사진, 사랑을 속삭였던 연서, 서로 주고받은 선물까지…. 여자가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해온 2년여 동안 두 사람이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함께해온 정황도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성폭행이 아닌 장기간의 불륜”이라고 결론내리고 남자를 무혐의 처분하면서 여자의 무고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자 여자는 “성폭행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며 진단서를 제출하고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2년 넘게 벌어진 불륜의 증거는 너무나 명백했다.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100번 강간사건’의 특징은 불륜 여성의 남편이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것”이라며 “불륜이 확인되면 이혼당하기 때문에 여성은 아무리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성폭행당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처분에 불복해 사건 종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 난다’ “여성이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게 명백해 보여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피해자인 나를 의심하냐’고 몰아붙이면 어쩔 수 없이 고소장을 접수할 수밖에 없어요.”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한 인권보호 원스톱지원센터 상담원의 고백이다. 경찰은 여성이 성범죄를 당했다고 고소하면 웬만해선 고소장을 반려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성범죄는 특성상 피해자인 여성의 진술 자체가 결정적인 증거 역할을 하는 데다 정부가 성폭력을 ‘사회 4대악(惡)’ 중 하나로 규정한 상황에서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고소를 만류했다가 자칫 민원이라도 걸리면 거센 비난을 받게 된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고소장이 접수되면 남자는 무조건 경찰조사를 받아야 한다. 성범죄는 피해자 편에서 수사하는 경향이 강해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남성보다는 여성의 진술을 신뢰하는 편이다. 피해 여성을 위한 지원단체는 많지만 피의자 남성이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CCTV앞 다정하게… 대화 녹음” 무고 예방법까지 돌아▼억울하게 고소당했다 해도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가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는 데엔 두세 달은 족히 걸린다. 남성이 죄가 없더라도 사회적으로 ‘성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충분한 시간이다. 택시운전사 I 씨는 택시요금을 안 내려는 여성의 무고한 고소에 성추행범으로 몰려 직장을 잃었다. I 씨는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태운 손님 J 씨(50·여)가 술에 취한 채 2시간 가까이 목적지를 수차례 번복하면서도 요금을 낼 의사가 없자 무임승차로 경찰에 신고했다. 야간에 흔히 일어나는 사건이기에 경찰은 간단하게 조사한 뒤 여자를 즉결심판에 넘기려 했다. 그러자 여자는 “택시운전사가 내 몸을 강제로 만지면서 옷을 벗기려 했다”며 강제추행 혐의로 I 씨를 고소했다. 황당한 일이었지만 고소장을 접수한 이상 경찰은 조사를 해야 했다. 택시운전사는 택시의 블랙박스 영상, J 씨를 태운 시간 동안의 운행기록 등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고 검찰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사건을 마무리한 뒤 여자를 무고 혐의로 기소했지만 택시운전사의 삶은 이미 파탄난 뒤였다. 너무나 명백한 무고였지만 일단 성범죄에 연루된 이상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결국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이미 소문은 택시업계 전체에 돌아 다시 일자리를 잡기도 쉽지 않았다. 성폭력 전문 김광삼 변호사는 “무고하게 성범죄 고소를 당하면 도의적으로라도 절대 사과해선 안 된다. 그 순간 죄를 인정하는 꼴이 돼 불리한 증거로 쓰인다”며 “고소당한 직후부터 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루빨리 무고함을 밝혀낼 수 있다”고 말했다.소문만으로도 치명적인 ‘성(性)’ “루카스 선생님 고추가 앞으로 뻗어 있었어요. 막대기처럼.” 유치원생 소녀 클라라는 한참 망설이다 원장에게 입을 연다. 부모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던 클라라는 아빠의 친구인 루카스 선생님이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해주자 호감을 느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클라라는 루카스 선생님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 그러자 루카스 선생님은 “이런 건 엄마 아빠에게나 하는 것”이라며 타일렀다. 클라라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루카스 선생님에게 앙심을 품고 원장에게 거짓말을 했다. 진위를 따질 새도 없이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 전체에 퍼졌다. 마을 사람들은 루카스의 집에 돌팔매질을 하고 평생 우정을 약속하던 친구들마저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루카스는 경찰 조사까지 받고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며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고 루카스는 이웃들로부터 견디기 어려운 모멸을 당하며 버림받았다. 덴마크 영화 ‘더 헌트’는 평범한 남자가 소녀의 말 한마디에 파렴치한 아동 성추행범으로 낙인찍히면서 삶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진위와 관계없이 당사자로 지목되는 것만으로도 삶을 파멸시키는 성추문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당시 42세)는 2010년 10월 교내 연구실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자 조교를 성희롱했다는 추문에 시달리다 학교에서 징계를 받게 될 처지에 처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교수는 2010년 8월 교내 양성평등센터에 여자 조교를 성희롱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는 소식을 듣고 극도로 괴로워했다. 교내 자체 조사가 이뤄진 두 달 동안 반박 증거를 제시하며 필사적으로 해명했지만 양성평등센터는 교수의 징계를 요구하는 결정을 내놨다. 교수는 이 사실을 듣자마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너무나 억울하고 슬프다”며 결백을 호소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 교수의 지인은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성추문이 마구잡이로 퍼져나가자 그는 폐인처럼 지낼 수밖에 없었다”며 “억울하게 성추문에 얽혀 유가족까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사망한 교수의 부인은 졸지에 세 자녀의 가장을 잃어 생계를 홀로 꾸려나가야 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부인은 사건 이후 지방으로 내려가 베이비시터 일을 하며 세 자녀의 학비를 대고 있다. 고인의 지인들은 자발적으로 후원회를 조직해 매달 일정 금액을 모아 유가족을 돕고 있다. 부인은 사건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성희롱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남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게 남은 자녀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명망 높은 서울의 한 대학 명예교수는 허위 성폭행 추문에 시달리다 학교로부터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2006년 당시 80대였던 이 명예교수는 평소 알고 지내던 30대 여성으로부터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평소 흠모하던 교수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앙심을 품고 허위로 고소한 것이었지만 교수는 진실이 알려지기도 전에 파렴치한 성폭행범으로 몰렸다. 대학 총여학생회는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성폭행 교수’의 퇴진을 요구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학교는 수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교수를 직위 해제시켰다. 그로부터 한 달여 후 여성이 증거를 짜깁기해 무고하게 교수를 고소한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80대 노교수가 평생 쌓아온 덕망은 무너지고 지울 수 없는 불명예만 짊어진 뒤였다. 학교는 진실이 밝혀지자 뒤늦게 복직 요청을 했지만 교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교수는 2009년 크나큰 상처를 안은 채 83세에 쓸쓸히 사망했다.‘성폭력 무고 공포’에 떠는 남자들 “남자가 야외에서 전신 노출을 하다 여자가 보면 남자의 공연음란죄고, 여자가 야외에서 전신노출을 하는 걸 남자가 보면 남자의 성희롱죄다.” 최근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우스갯소리다. 물론 공연음란죄나 성희롱죄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이런 농담이 인기를 얻을 만큼 일부 남성들은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고 느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무고죄 사범은 2009년 3716명에서 2012년 3979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성범죄 무고는 따로 집계하지 않아 정확한 건수를 알 수는 없지만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게 경찰과 검찰의 공통된 분석이다. 물론 남성이 저지르는 성범죄 건수가 계속 늘고 있고 수법도 흉포화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는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더욱 귀담아듣고,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은 강화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억울하게 낙인찍히는 남성은 없는지 동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경찰청은 올해 초 블로그 ‘폴인러브’에 여성의 성범죄 자작극 유형을 소개하며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성추행당했다고 울면서 특정 남자를 가리키면 공범이 도와주는 척하며 신고하거나 찜질방의 CCTV 사각지대에서 술에 취해 누워 있는 남성에게 접근해 성추행당했다고 협박하는 사례 등이 소개됐다. 인터넷에는 ‘성범죄 무고를 피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떠돈다. 이를 종합하면 △모텔비는 여자가 직접 계산하도록 하고 △CCTV가 있다면 최대한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고 △남자가 먼저 방에 들어가 여자를 뒤따라오게 해야 하며 △둘만 있는 방에선 모든 대화를 녹음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방편이다. 검찰 관계자는 “실제 수사에서 남성에게 유리하게 쓰일 수 있는 증거인 건 맞다”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만 성관계를 하면 될 텐데 이렇게까지 하는 남성이 안쓰럽다”고 말했다. 일부 남성 사이에선 “성폭행 위험에 처한 여성을 봐도 절대 도와줘선 안 된다”는 극단적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여성을 구하려 달려들었다가 자칫 여성이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면 공범으로 몰릴 수 있는 데다 여성이 중간에 달아나기라도 하면 도와준 남자만 범인을 때린 죄(폭행 또는 상해)를 뒤집어써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성범죄가 친고죄였던 6월 19일 이전까지는 죄 없는 남자라도 고소를 당하면 ‘합의의 유혹’에 빠지기 쉬웠다. 친고죄에 속하는 범죄는 피해자가 합의해 고소를 취소하면 수사를 종결해야 한다. 이런 점을 노려 ‘꽃뱀’이 무고한 남성을 고소한 뒤 합의금을 받고 취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술에 취한 채 ‘꽃뱀’에게 준강간 혐의로 고소당했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K 씨(41)는 “나는 미혼에 개인사업을 하고 있어 끝까지 버텼지만 가정이 있는 직장인이었다면 어떻게든 빨리 합의를 하고 사건을 끝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6월 19일부터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되면서 합의금을 노리는 무고한 고소가 줄어들 거란 기대가 높다. 어차피 합의를 해도 수사가 끝까지 진행되고, 그러다 보면 무고죄가 밝혀질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성폭력 고소사범 중 30%는 검찰 단계에서 서로 합의를 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제3자도 성범죄로 고발을 할 수 있게 되다 보니 제3자에 의해 무고하게 성범죄 누명을 쓰는 남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법이 바뀐 지 석 달이 채 안 된 만큼 친고죄 폐지의 효과는 올해를 넘긴 뒤에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조동주기자 djc@donga.com최예나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