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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사진)이 27일 오후 10시 15분 90세로 선종(善終)했다. 정 추기경은 2006년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서울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해 서울대 화학공학과 재학 중 발발한 6·25전쟁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한 뒤 사제의 길로 진로를 바꿨다. 1961년 사제가 된 후 로마 우르바노대에서 교회법을 전공했으며, 1970년 39세의 나이에 국내 최연소 주교로 임명됐다. 1970년부터 28년간 청주교구장을 지냈으며 1998년 김수환 추기경 후임 서울대교구장(대주교)에 임명돼 2012년까지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지냈다. 2월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한 정 추기경은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 그간 여러 차례 고비를 맞기도 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추기경님은 오래전부터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고 말씀했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 마련될 예정이다. 서울대교구는 28일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5일장으로 치러질 장례절차를 발표할 계획이다. “모든이에게 모든것이 되게 하소서”… 바지 한벌로 18년 ‘청빈한 삶’얼어붙은 남한강을 걸어서 건너는데 바로 뒤에서 얼음이 깨졌다. 뒤따라오던 동료들이 몰살됐다. 앞에 가던 동료가 지뢰를 밟고 숨져가는 것을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6·25전쟁은 27일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의 행로를 바꾸었다. 1931년 서울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중앙고를 거쳐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해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전쟁 때 국민방위군으로 소집돼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들을 겪은 것이 그를 사제의 길로 이끌었다. 1960년 성신대(지금의 가톨릭대)에 들어간 그는 1961년 사제품을 받고 서울대교구 중림동 본당 보좌신부로 사제의 첫발을 내디뎠다. 정 추기경은 1970년 청주교구장을 맡은 뒤 한여름에 에어컨을 켜지 않았고, 바지 한 벌을 18년 동안 입을 정도로 청빈하게 생활했다. 식사 초대를 못 하는 사람이 소외감을 느낄까 봐 일절 초대를 받지 않았고, 식사는 항상 교구 내 식당에서 했다. 그는 신자들이 “생활비에 보태 쓰라”며 한 푼 두 푼 내놓은 돈을 40년 동안 모아 1999년 5억 원을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에 장학기금으로 쾌척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 착좌(着座)에 이어 2006년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된 정 추기경은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가톨릭의 전통을 지켜낸 신앙의 수호자였다. 민감한 현실정치에는 입장 표명을 삼갔지만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정부의 사학법 개정안에 대해 비판하는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2010년 일부 시민단체가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4대강 개발에 반대한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자 정 추기경은 간담회에서 “주교회의의 결정은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아니었다. 난개발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면서 제대로 잘 개발해 달라는 취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의 목소리가 큰 분위기에서 쉽지 않은 발언이었다. 정 추기경의 발언은 초유의 추기경 용퇴 주장과 이에 맞선 서울대교구 사제들의 반발로 이어졌다.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과 함께 평양교구장 서리도 맡아 매일 밤 북한에서 어렵게 신앙을 지켜가고 있는 신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2007년 평양교구 설정 80주년 행사 준비 등 평양교구 재건을 위해 힘썼다.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 주교관에 머물며 저술활동에 매진해왔다. 이임 미사의 한 대목에서 서울대교구에 대한 깊은 애정과 소탈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여기(명동대성당)에서 (가톨릭의) 7개 성사 중 (혼인성사와 병자성사를 뺀) 5개를 받았는데….(좌중 웃음) (떠나는) 감회를 말로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들(교구 사제와 신자들)이 일러주는 대로 따라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14년이 휙 지나갔네요.” 교회법의 권위자인 정 추기경은 작은 것에서부터 신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한 약속과 원칙의 사제였다. 부제(副祭) 시절 룸메이트였던 고 박도식 신부와 매년 책을 내기로 한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 지난해까지 수십 권의 교리서와 에세이를 출간했다. ‘참신앙의 진리’와 ‘교회법 해설’ 개정판이 마지막 약속이 됐다.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될 당시 그가 세운 사목표어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소서’였다. “사제는 우리말로는 ‘신부님’이지만 서양에선 보통 ‘아버지(father)’라 부르는데,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이제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책임감이 무거웠다. 그 책임감도 잠시, 사람들로부터 시중과 존경을 받으며 지내다 보니 처음 느꼈던 그 맘도 사라지더라.” 이런 점을 의식해 ‘사제’를 빼놓는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정 추기경은 생전에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장기와 각막을 기증하겠다는 글을 직접 써두었다.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내어주었다. 영혼의 농부, 천상의 농부가 되다신달자 시인의 ‘정 추기경 추모’정진석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나’가 아니라 ‘너’를 생각하신 모습에 다시 울컥 목이 멥니다. 이 글을 쓰는 제 손이 떨립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암담한 제 마음이 저립니다. 누구에게나 오는 순연한 결과이지만 추기경님이 이미 이 지상의 분이 아니라는 생각은 제 온몸을 아리게 합니다. 물론 예수님 곁으로 가셨으니 행복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영원한 안식보다 부족한 저희들로부터 먼 곳에 계신다는 것이 더 안타까운 것은 아무래도 믿음이 미숙한 제 생각일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그리워지는 분입니다. 누구보다 의연하셨지만 누구보다 외로우셨을 추기경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추기경님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온전히 자신을 바쳐 예수님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꾸준히 세심하게 쉬지 않고 해 오신 분입니다. 누구보다 청빈하며 몸을 낮추고 가톨릭 정신과 예수님을 성스럽게 가르친 분이셨습니다. 죽음은 그 사람의 삶에 불을 밝히는 일입니다. 평상시 보았는데도 안 본 것처럼 스쳐 지나간 작은 일까지, 그가 눈을 감으면 그 일이 중심에 불을 켜는 것같이 밝아집니다. 추기경님을 처음 뵌 것은 2008년 11월 평화방송의 이스라엘 성지순례 여행에서였습니다. 모든 이에게 어렵지 않고 자연스러운 수평적 분위기를 만들려 매우 노력하셨지요. 어려운 분이 분위기가 기울어지지 않게 하시려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지난해 7월 교계 신문의 주교 수품 50주년 인터뷰를 위해 서울 혜화동에서 뵈었습니다. 6·25전쟁 때 옆 사람들이 죽고 추기경님만 살아남았다고 하셨죠. 추기경님은 “그때 왜 자신을 살렸는가”를 철저히 삶을 통해 답하셨던 충실한 하느님의 제자였습니다. 깊고 넓고 따뜻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은 쉴 새 없이 일해 온 ‘영혼의 농부’였습니다. 영혼을 밭갈이하며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키우고 거두는 농부, 그 험난한 신앙의 박토를 일구신 농부, 예수님의 말씀을 땅으로 삼으신 농부였습니다. 동시대에 함께 살았던 것은 제게 큰 선물이었습니다. 이 생각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겠습니다. 추기경님은 인생이라는 먼 길을 가는 우리에게 최종 목적지와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성경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추기경님이야말로 우리에겐 그 길잡이며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등대지기셨습니다. 누가 쳐다보지 않아도 늘 불을 켜고, 바닷가에 외롭고 당당하게 서 있는 등대. 추기경님! 저는 추기경님이 너무나 먼 하늘 어디로 떠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울, 부산처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저희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계실 것을 확신합니다. 저희도 기억할 것입니다. 그 고귀한 흔적은 성경처럼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가수 최희준의 ‘하숙생’을 부르셨는데 음정·박자가 하나도 틀리지 않아서 많은 박수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추기경님이 가신 곳은 우리 다 알고 있지요. 빛나는 곳이라는 것을요. 사제로 태어나 사제로 떠나신 분, 정진석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가시는 길에 성모님이 마중하시는 그림을 떠올리며 두 손을 간절히 모읍니다. 김갑식 문화전문 기자 dunanworld@donga.com}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사진)이 27일 오후 10시15분 90세로 선종(善終)했다. 정 추기경은 2006년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서울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해 서울대 화학공학과 재학 중 발발한 6·25 전쟁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한 뒤 사제의 길로 진로를 바꿨다. 1961년 사제가 된 후 로마 우르바노대학에서 교회법을 전공했으며 1970년 만 39세의 당시 국내 최연소 주교로 임명됐다. 1970년부터 28년간 청주교구장을 지냈으며 1998년 김수환 추기경 후임 서울대교구장(대주교)에 임명돼 2012년까지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지냈다.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퇴임한 뒤에는 서울 혜화동 주교관에서 지내며 출판 작업에 힘썼다. 지난 2월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한 정 추기경은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 여러 차례 고비를 맞기도 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생전 추기경님 의사에 따라 각막 적출이 이뤄졌다”며 “추기경님은 오래전부터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고 말씀했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 마련될 예정이다. 서울대교구는 28일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5일장으로 치러질 장례절차를 발표할 계획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나를 궁멀에 묻어주길 바랍니다. 저는 ‘궁멀 전씨 전위렴’입니다.” 미국 남장로회 소속으로 호남 선교에 힘썼던 윌리엄 전킨 선교사(1865∼1908)의 유언이다. 궁멀은 전북 군산시 구암동의 옛 이름이다. 그는 스스로 ‘궁멀 전씨 전위렴’이라고 불렀고, 자녀 8명 중 세 아들이 조선 선교 중 풍토병으로 사망했다. 전킨은 개신교 초기 호남 부흥을 이끈 선교사 7인 중 한 명이다. 선교를 위한 몇 년간의 조선 답사 끝에 1895년 군산에 정착한 전킨은 군산 구암동산을 중심으로 전북 김제와 전주, 충남 서천 논산 부여 등지에서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펼쳤다. 선교사 7인의 영향으로 군산은 전남 신안, 인천 강화 등과 함께 개신교 신자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손꼽힌다. 군산기독교연합회에 따르면 군산 전체 인구 약 28만 명 중 개신교 신자 수가 10만여 명(600여 개 교회)에 이른다. 1897년 전킨이 선교부에 보고한 예배 모습은 흥미롭다. “주일예배 등록인이 40명입니다. 예배드리는 방은 종이문막이에 의해 두 개의 방으로 분리되었습니다. 남녀가 다른 방을 사용합니다. … 설교 제목은 ‘주님께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헌금 시간을 가졌습니다. 16불6센트와 엽전 530전이었습니다. 이 헌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선교뿐만 아니라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도 그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영명학교(군산제일중·고), 멜볼딘여학교(군산영광중·여고), 군산예수병원 등이 건립됐다. 군산에 야구를 처음으로 소개한 인물도 전킨이다. 21일 찾은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앞에는 야구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안내판에는 전킨 캐릭터와 이 사연이 적혀 있다. 몸이 약했던 전킨이 헌신적인 선교로 체력이 바닥나고 풍토병에 시달리자 1904년 남장로회 선교부는 그에게 강제 휴식을 권했다. 습기가 덜한 전주교회(전주서문교회)로 발령을 내고 20리 반경 안에서만 선교하라고 명령한 것. 1908년 전킨이 장티푸스로 세상을 뜨자 선교부는 그의 공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전주에 세운 여학교 이름을 ‘기전(紀全)학교’로 명명했다. 전킨기념사업회와 군산기독교연합회는 전킨의 업적을 조명하는 기념탑과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기념탑은 올해 내에, 기념관은 2023년까지 건립할 예정이다.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은 서종표 목사(군산중동교회)는 2019년 미국 버지니아주를 찾아 전킨 생가와 출신 신 학교, 장로교 기념관 등을 둘러보고 유가족에게서 사진 자료를 입수해 사진전을 개최해 왔다. 서 목사는 “호남 부흥의 뿌리는 전킨을 비롯한 선교사 7인에서 시작된다”며 “이들의 활동이 교회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전킨이 40대 초반에 세상을 뜬 데다 교회사가 북장로교 위주로 정리됐다는 사정이 깔려 있다. 서 목사는 “기념관 건립을 통해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의 현장과 적산가옥으로 기억되고 있는 군산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전신인 KNCC 회장을 지냈고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전병호 목사는 “전킨 선교사의 삶은 한국 교회사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 여성, 스포츠 분야의 근대화를 조명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된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를 통해 1919년 당시 군산 지역의 3·5만세운동과도 연결된다”고 말했다.군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비밀은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생명은 오늘 벌써 내일의 정보를 안다./ 검객의 검처럼 날카로운 감각,/ 생명은 뜨거운 것에 반응한다.’ 이 책 서문 앞에는 독일 생물학자인 저자가 쓴 시 ‘생명의 비밀’이 실려 있다. 자연생태를 다룬 책들이 최근 자주 출간되고 있지만 저자의 책은 조금 독특하다. 자연 생태계의 흥미진진한 비밀에 뜻밖의 문학적 감수성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바이오커뮤니케이션(Biocommunication). 생명체들 사이의 정보 전달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해 왔다. 소통이야말로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예컨대 야생토끼와 오소리가 이용하는 ‘공중 화장실’은 인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비유된다. 이곳에 쌓인 배설물에는 각 개체의 나이와 성별, 짝짓기 준비 등에 대한 정보들이 잔뜩 들어 있다. 이들에게는 눈에 잘 띄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보고(寶庫)이지만, 포식자 입장에서는 손쉽게 먹잇감을 찾을 수 있는 장소다. 책은 단세포 동물부터 익숙한 포유동물까지 소통을 위한 다양한 방식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곤충 같은 절지동물은 체모나 안테나 같은 신체 부위를 이용해 음파를 수신한다. 수컷모기의 청각 수신기는 오로지 암컷의 비행으로 생긴 진동에만 반응한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낮이 지나면 밤이 온다. 해로움에서 은혜가 나오고 반대로 은혜에서 해로움이 올 수 있다.” 20일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열린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28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전산(田山) 김주원 종법사(宗法師·73·사진)는 “지난해 (코로나19라는) 해로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은생어해 해생어은(恩生於害 害生於恩)’이라는 말씀처럼 해로움을 극복함으로써 인류 사회가 더 좋아질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종법사는 원불교 최고지도자이며, 대각개교절은 교조(敎祖) 박중빈 대종사(1891∼1943)가 깨달음을 얻은 날을 기념하는 교단 최대 축일이다. 전산 종법사는 “낮과 밤, 고락(苦樂), 생사(生死)가 짝을 이루듯 삶도 그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며 “우리는 힘겨운 여건 속에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 부모 형제 얼굴을 쉽게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고마웠던 일인가를 깨닫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각개교절의 의미에 대해 “교조의 탄생일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날을 기리는 것은 마음공부를 통해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대각개교절 봉축행사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주제로 진행된다. 코로나19로 대면행사가 축소된 가운데 28일 오전 10시 중앙총부에서 기념식이 열리며 사회봉사와 나눔행사가 이어진다. 2018년 제6대 종법사로 취임한 그는 2019년 여성 교무(성직자)의 결혼 허용과 올해 초 황도국 미국 종법사 임명 등 큰 변화를 이끌었다. 최고 책임자인 종법사를 미국에도 둔 것은 종교계 분위기를 감안할 때 파격적인 일이다. 그는 “익산의 중앙 종법사와 각 국가를 담당하는 지역 종법사들이 조화롭게 교단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갈등 극복을 위한 지혜는 무엇일까. “원수도 은인도 마음이 만든다. 그 마음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 최고의 가르침인데, 사실상 같은 의미다. 이런 다짐을 담은 마음공부가 세상의 평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익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6일 찾은 경기 김포시의 한 상가 건물 7층에는 특이한 이정표가 있다. 작은 십자가가 어우러진 ‘Co-Worship station(코워십 스테이션)’이라는 알쏭달쏭한 글자다. 아래에는 시간 표시와 함께 주향교회, 더사랑교회, 하늘백성교회, 시와사랑이있는교회, 또오고싶은교회, 샘솟는교회 등 무려 9개 교회의 이름이 나온다. 온라인 사역이 중심인 주향교회를 빼면 나머지 8개 교회는 같은 공간에서 1시간 반 간격으로 주일(일요일) 예배를 올린다. 코워십 스테이션은 기차가 시간에 맞춰 잇달아 출발하듯 한 공간에서 교회들의 예배가 이어진다는 플랫폼의 의미다. 개신교계에서 2, 3개 교회가 한 공간을 나누는 사례는 있었지만 ‘한 지붕 아홉 가족’은 이례적이다. 소속 교단도 7개나 된다. 7층은 예배당이고 6층은 전시와 소모임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돼 있다. ‘교회 공유’의 씨앗을 뿌린 김포명성교회 김학범 목사(60)와 스테이션에 입주한 시와사랑이있는교회 박경철 목사(59), 샘솟는교회 안남기 목사(53)를 만났다. 1999년 김포명성교회를 개척한 김 목사는 교회를 매각한 뒤 지난해 그 재원으로 교회 공유를 담당하는 선교단체 ‘어시스트 미션’을 설립했다. “세상은 빠르게 공유로 바뀌고 있는데 교회만 자기 것을 고집하며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이곳은 작은 교회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플랫폼이자 인큐베이터가 될 것이다.”(김 목사) 이들의 동행 실험은 대형 교회 건축으로 상징되는 한국 교회의 성장주의에 대한 깊은 반성이 깔려 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이른바 ‘작은 교회’의 어려움이 더욱 커졌다는 시기적 요인도 더해졌다. 지난해 4월 부활절 예배로 본격화한 이곳은 ‘르호봇’으로, 12월 인근에서 또 다른 6개 교회가 입주한 공간은 ‘엔학고레’로 불린다. 명칭은 성경에 나오는 우물이다. 입주 교회들은 임차료 10만 원과 최소한의 관리비만을 부담한다. 시와사랑이있는교회 박 목사는 17년간 목회를 하다가 포기하고 2년간 가정 예배를 올렸다. 그는 “적지 않은 기간 목회를 하면서 ‘내 교회 한번 키워보자’는 욕심이 컸던 것 같다”며 “현재 신자는 많지 않지만 선교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에게 신앙을 전할 수 있는 사역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샘솟는교회 안 목사는 20년간 군종목사로 활동했다. 그는 “유튜브 설교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며 “이곳 교회를 베이스캠프로 해서 전국 군 부대를 대상으로 선교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종을 쳤는데 곳곳에서 그 소리가 울려 감격스럽다는 게 김 목사의 자평이다. 르호봇은 비교적 경력이 많은 목회자들이 재기하고, 엔학고레는 기업으로 치면 스타트업에 가까운 30, 40대 젊은 목회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두 곳을 합치면 9개 교단 15개 교회가 입주해 있어 “다양한 교단에 진보와 보수 성향 교회들이 골고루 있어 교회 일치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공간의 공유뿐 아니라 한국 교회에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싶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김 목사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다”며 “교회의 건축과 공간 유지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온라인과 특정 대상을 중심으로 선교를 강화하는 ‘강소형’ 교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작은 교회의 경우 교회 운영과 생활을 위해 다른 부업을 하는 목회자들도 적지 않다”며 “교회 유지를 위해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면 목회자들이 더욱 열심히 목회할 수 있다”고 했다. 김포=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올해 부처님오신날(5월 19일) 연등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기존 행사가 대폭 축소되는 대신 온라인 중심으로 진행된다.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연등회의 핵심인 연등 행렬과 전통문화마당 등 여러 행사가 온라인으로 대체된다. 다음 달 15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리는 연등회 인류 무형문화유산 등재 기념식과 코로나19 국난 극복 염원을 담은 연등법회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행사다. 연등법회 후에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비롯한 불교계 지도자들이 연등을 들고 조계사 일대를 걷는 등 연등 행렬을 간소하게 보여준다. 이에 앞서 이달 28일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선 최소 인원만 참석한 상태에서 봉축 장엄등 점등식이 열린다. 다음 달 14∼23일 서울 조계사와 봉은사, 서울광장, 청계천 일대에서 전통등 전시회가 열려 도심 곳곳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인다. 봉축법요식은 부처님오신날 당일인 5월 19일 오전 10시 서울 조계사에서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봉행한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9일 찾은 전북 익산시 나바위 성지는 봄기운 속에 몇몇 순례객이 성지를 돌아보고 있었다. 천주교전주교구 나바위 성지(주임 강승훈 신부)는 올해 김대건 신부(1821∼1846) 탄생 200주년을 맞아 8월까지 라파엘호를 제작해 성지에 설치할 예정이다. 라파엘호는 1845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은 김 신부가 조선에 입국할 당시 타고 온 배의 이름이다. 교회사에 따르면 그해 8월 31일 김 신부는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후에 제5대 조선대목구장), 교우 11명과 함께 귀국길에 오른다. 이 배는 무동력 범선으로 당시 제물포를 향했으나 풍랑으로 28일간 표류 끝에 제주시 용수리에 표착한다. 배 수리 뒤 다시 출발한 라파엘호는 10월 12일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닻을 내린다. 그래서 제주 용수성지는 김 신부 일행이 조선에 입국한 첫 장소, 나바위는 조선 본토 중 첫 착지처(着地處), 즉 처음 발을 내디딘 곳으로 기록돼 있다. 강승훈 신부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라파엘호는 40여 일에 걸쳐 제주 용수포, 다시 나바위로 들어올 때까지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며 “조선에 신앙의 씨앗을 뿌리려는 김대건 성인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강 신부와 함께 둘러본 나바위 성지 주변은 1925년 대규모 간척 사업이 진행돼 금강 물줄기가 들어왔다는 당시의 분위기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조선시대 유학자 송시열은 너럭바위가 많은 경관에 감탄해 이곳을 화산(華山)으로 불렀는데, 성지 뒤편에 그 글자를 새긴 바위가 있다. 나바위 성지에서는 길이 14.6m, 높이 2.1m, 너비 4.8m 규모의 라파엘호를 제작 중이다. 제주 용수성지에서 고증·복원한 라파엘호와 전주교구가 제공한 자료, 전통 선박 전문가의 조언, 익산시의 지원을 받았다. 이 배는 김대건 신부 탄생일인 8월 21일까지 제작을 마친 뒤 성지 내에 마련된 착지처에 설치될 예정이다. “김대건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분의 삶과 영성을 어떻게 의미 있게 전할까 의논하면서 라파엘호 복원이 추진됐다.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린 시절이 됐다. 성인이 이곳에 첫발을 내디뎠듯, 우리 모두 새롭게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공간으로 성지를 찾아 영적인 힘과 위로를 받으시길 바란다.”(강 신부) 나바위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행적에 맞춰 행사를 진행한다. 8월 21일 김대건 신부의 삶과 영성을 주제로 한 토크 콘서트에 이어 착지일인 10월 12일 3.5km에 이르는 행렬 재연과 미사가 이어진다. 이 성지는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순례객과 관광객 11만여 명의 발길이 이어졌다. 1907년 완공된 성지 내 본당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고, 내부에는 전통 관습에 따라 남녀석을 구분하던 칸막이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대건 신부와 다블뤼 주교의 유해 일부가 안치된 ‘치유의 경당’도 있다. 익산시 주변에는 나바위 성지뿐 아니라 인근 미륵사지를 잇는 종교 순례 코스가 여럿 조성돼 있다. 강 신부는 “젊은 나이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신앙 여부에 관계없이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라는 메시지를 준다”며 “모든 분들이 첫 마음과 다짐, 꿈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익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스탈?’ 이 책에서 의자에 대한 기억은 생소한 스탈로 시작한다. 스탈이 수도원이나 대성당의 제단 앞에 양옆으로 배치된 거대한 붙박이 의자라는 설명에서 비로소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스탈은 통상 앞뒤 2열의 계단식이며 좌우에는 어깨 높이의 칸막이와 등받이가 붙어 있다. 두 책은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에서 빠질 수 없는 의자를 입체적으로 다뤘다. 비교적 쉽게 접하는 디자인 위주의 책이 아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의자를 만든 장인(匠人), 나아가 의자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냈을 이들의 삶과 문화까지 아울렀다. 여러 전쟁과 재해를 거치면서 나무로 제작된 중세의 의자들이 남아있는 경우는 드물다. 스탈이 첫 소재로 등장하는 불가피한 이유일 것이다. 미술사학자이자 장식미술 감정사, 작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사물들의 미술사’ 시리즈 10권을 10년간 출간할 계획이다. 시리즈 1권 ‘액자’에 이어 이번에는 의자를 주제로 두 권의 책을 내놓았다. 중세시대 스탈을 차지한 주인공은 성직자와, 교회를 행정 및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참사위원단이었다. 하지만 이들조차 엄격한 전례 중 팔자 좋게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스탈 안쪽에는 작은 판처럼 튀어나와 엉덩이를 걸쳐 놓을 수 있는 ‘미제리코드’가 있었다. 이 단어에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판 아래 조각에는 성경은 물론이고 세속적인 풍경까지 표현하고 있어 흥미롭다. 책은 루이 14세의 은 옥좌와 귀족들이 선망했다는 프랑스 왕궁의 타부레, 18세기 장인들의 가구 제작 현장, 가구계의 셰익스피어로 불러야 할 토머스 치펀데일의 혁신적인 의자 등을 다룬다. “프랑스 궁정에선 어떤 여인이라도 타부레에 앉을 수만 있도록 해준다면 몸과 영혼을 다 바칠 준비가 돼 있다.” 루이 14세 궁정을 관찰한 기록의 일부다. 타부레는 등받이와 팔걸이 없이 시트와 다리만 있는 의자를 말한다. 요즘 눈으로 보면 피아노 의자에 불과한 타부레를 통해 궁정의 엄격한 예법과 권력관계를 엿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기억의 의자’ 속편 격인 ‘오늘의 의자’는 산업화 이후 의자의 혁명을 주도한 의자 5개를 다뤘다. 미하엘 토네토의 토네토 14번 의자, 오토 바그너의 포스트슈파르카세,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 알바 알토의 파이미오 암체어, 찰스 임스의 플라스틱 의자다. “어떤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건 재료나 기술처럼 사물을 구성하는 내재적 특성이 아니라 정교하게 기능하는 사회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부여한 가치에서 자유로운 사물은 아무것도 없다.” 서문에 실린 저자의 말은 의자가 단순한 생활도구가 아닌 사회적 가치의 산물임을 일깨워 준다. 너무 흔해서 관심 밖에 머물기 쉬운 사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미술사적 의미를 짚어보고 싶은 독자라면 추천할 만한 책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전남 해남 미황사 주지로 20년을 지낸 금강 스님(55)이 행낭을 푼 곳은 제주시 원두길의 한 선원이었다. 사숙인 대효 스님(77)이 40년 넘게 참선 프로그램을 운영한 원명선원이다. 선원이 있는 주변의 옛 이름은 화북(和北)이다. 해남에서 쌀을 싣고 처음 도착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강 스님이 미황사를 떠난다는 얘기가 돌자 해남 지역신문에는 3000명이 서명한 ‘달마산에 미황사가 있어 산이 아름답듯이 미황사는 금강 스님이 계셔야 아름다운 절입니다’라는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제주살이 1개월여의 스님을 선원에서 만났다. ―제주살이는 어떤가. “1989년 미황사와 첫 인연을 맺은 뒤 30여 년이 흘렀다. 올해 2월 중순 제주로 건너왔으니 아직 잘 모른다. 사숙이 참선재단의 선 프로그램을 맡아달라고 해서 오게 됐다. 살아오신 것 보니 저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하셨더라. 한 주 나흘은 서울에 머물며 승가대에서 강의하고, 사흘은 제주에서 지내는 ‘반서반제’ 생활을 하게 됐다.” ―미황사와는 아름다운 이별을 했나.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저 때문에 미황사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잘 못 산 것 아닌가? 원만하게 잘 마무리됐다.” ―‘주지(住持)는 오도 가도 못하는 기둥 주(柱)자, 주지’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주지에는 더 이상 뜻이 없나. “아쉬움이 하나도 없다. 미황사 주지를 맡은 뒤 시작한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참선 수행 프로그램, 괘불재 등이 정착됐다. 도량 정비도 해서 불사(佛事)는 어느 정도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새 주지 스님에게 업무를 인계하면서 ‘당신이 나를 구제하러 온 부처님’이라고 했다. 하하.” ―교수 생활은 어떤가. “종단의 교육위원과 교육 아사리(阿(도,사)梨·모범적인 스승) 회장을 맡아 승가 교육에 관한 끈을 갖고 있었다. 미황사에서 나오면 승가(僧家) 교육에 매진하겠다고 생각해왔다.” 금강 스님의 승가 교육에 대한 포부는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서옹 스님(1912∼2003)과의 인연, 1994년 종단 개혁에 대한 성찰, 최근 또 다른 개혁이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금강 스님은 서옹 스님의 손자 상좌(上佐·제자)가 된다. ―서옹 스님은 어떤 분이었나. “조금 긴 얘기가 있다. 스무 살 때 경주 남산 사찰에서 지낼 때인데 바위마다 부처님이 새겨져 있어 마주할 때마다 절을 하고 다녔다. 한나절 그렇게 지냈는데 40대 중반의 한 스님이 저를 불러 세우더니 ‘서옹 스님이 도인이신데 열반 전 모시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 무심코 들었는데 1997년 서옹 스님이 ‘금강 수좌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더라.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평화로운 성품(性品)이 있으니 그 마음의 주인이 되면 물질이나 과학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아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었다. 나중에 참사랑수행결사로 이어졌다.” ―서옹 스님은 손자뻘인 스님에게도 존댓말을 썼나. “그분은 아랫사람에게도 함부로 하는 법이 없으셨다. 3년간 시봉했는데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일이 생각난다. 스님은 ‘나라가 망하고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우리가 할 일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제대로 답을 못하니 사나흘 꾸중을 듣다 실직자를 위한 4박 5일 단기출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승가 교육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팔만대장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다)라고 한다. 21세기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맞고 있다. 마음 수행집단을 자처하는 승가가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스님 박사들이 260여 명, 교육 아사리가 60여 명에 이른다. 주지보다는 교육과 상담으로 평생 살아온 분들이 함께 연구하면서 사회적 대안을 내놓고, 여생까지 보낼 수 있는 교육총림(叢林) 또는 불교계의 학술원으로 발전해야 한다.” ―논란에 휩싸였던 혜민 스님과도 각별한 사이다. “혜민 스님이 일 터진 뒤 2개월 정도 미황사에 머물렀다. 나한전에서 기도하고 법화경을 사경하는 등 시간표를 만들어 수행하면서 지내더라. 본인은 힘들겠지만 수행자의 긴 삶에서 보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제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올해 기독교계의 부활절 연합예배는 4일 오후 4시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 대예배당에서 거행된다. 연합예배의 주제는 ‘부활의 빛으로 다시 하나!’이며 68개 교단과 17개 광역 시도 기독교연합회가 공동 주최한다. 연합예배에 앞서 전국 각 지역에서도 개별 교회, 지역연합회 중심으로 부활절 예배와 기도회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2021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열린 간담회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나 기도회, 전국교회의 예배가 안전한 예배가 되도록 방역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연합예배는 예배당 좌석의 10%만 착석하게 된다”고 밝혔다. 사랑의교회 대예배당 좌석 수는 6700여 석으로 현행 수도권에 내려진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에 따라 최대 20%인 1300여 명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한 예배 환경을 위해 절반 수준인 10%, 최대 700명까지 참석 인원을 낮추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예장 합동 총회장이자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으로 연합예배 대회장을 맡은 소강석 목사는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당면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과 함께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희생과 섬김의 ‘파라볼라노이’의 정신을 구현하고 공유하는 플랫폼 예배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파라볼라노이는 헬라어로 ‘위험을 무릅쓰며 함께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과거 로마제국 때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하며 많은 사람이 쓰러지는 상황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서 곁에 남아 환자들을 돌본 데서 유래했다. 사랑의 실천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이날 연합예배는 교계 5개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며 이철 감독(기감 감독회장)의 인도, 신정호 목사(예장통합 총회장)의 설교, 한기채 목사(기성 총회장)의 기도, 소강석 목사의 대회사, 박문수 목사(기침 총회장)의 파송기도, 장종현 목사(예장백석 총회장)의 축도 등으로 진행된다. 코로나19 종식과 고통 속의 이웃, 나라의 평안과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특별기도도 이어진다. 연합예배 참가자들은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부활절 선언문’도 발표한다. 이 선언문에는 “부활의 빛 아래 하나 된 우리는 또한 사회의 고통에 동참해 그곳에 생명을 전하고 희망을 나누는 공통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준비위는 연합예배 때 모인 헌금 전액과 미리 마련한 기금 등으로 코로나19 방역 일선에서 헌신하는 이들을 위한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한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부활절 예배를 ‘그리스도의 부활, 새로운 희망’이란 주제 아래 4일 오전 5시 반 서울 신내감리교회에서 새벽 예배로 진행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분열을 넘어서 화해의 길로 나아갑시다”한교총 부활절 메시지2021년 부활절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용서와 화해를 향한 일대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인간의 삶을 향해서 참된 희망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 세상을 치료하고, 구원하시는 이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여전한 지구촌의 코로나19 팬데믹의 고통 가운데에서, 공직자들의 토지 투기로 인한 공분이 한국사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국가의 공무를 담당한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임직원은 마땅히 공적 책무를 우선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국민들의 처지를 세밀하게 살피며 국민을 위한 국가 경영에 헌신해야 합니다. 국가정책에 대한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쉽지 않으니, 이제라도 공무담당자는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우지 말고 국가와 국민을 섬기기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나 정당들도 극단적인 분열과 분노의 길로 국민을 이끌지 말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여 국민적인 화합에 치중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국민은 양보하고 타협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하여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도 포용하며 함께 사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급한 코로나19 팬데믹의 소멸과 경제만능주의로 인한 도덕적 해이를 성찰과 회개를 통하여 극복해야 합니다. 분노와 증오와 적대감을 버리고, 존중과 배려로 서로의 삶을 보장하는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나아갑시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의 소멸과 극복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탄소배출 감소를 통한 기후환경 보전에 힘써 창조세계를 지키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본을 보입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이의 본을 따라 평화를 이루며, 좁고 험한 길을 선택합시다. 비난받는 부요(富饒)보다 정직한 가난을 택하고, 논란 속의 명예보다 외로운 거룩을 택합시다.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부르신 소명에 따라 썩어가는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삽시다. 각각 자기의 소견대로 행하며 자신의 옳음만을 주장하면 혼돈만 있을 뿐, 밝은 미래는 오지 않습니다. 2021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인류 구원을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그 크신 사랑을 따라 이 땅이 구원의 생명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2021년 4월 부활절에 사단법인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소강석 이철 장종현}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자 ‘마스크 공장’으로 변신한 교회가 있다. 인천 남동구 백송교회다. 이 교회는 지난해 수제 면마스크 3만 장을 만들어 지역주민과 단체에 기부했다. 매주 2회 마스크를 나눠줬는데 교회 앞은 물론이고 멀리서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로 긴 줄이 이어졌다. 이순희 목사를 비롯한 신자 20여명이 재봉틀 작업을 하면서 헌신적으로 마스크를 제작했다. 백송교회 마스크는 천 마스크에 갈아 끼울 수 있는 리필용 필터 7개가 들어 있어 인기를 끌었다. 이 목사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도 “수제 마스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나눔과 섬김의 경험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1997년부터 CCM(기독교 계열 대중음악)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평신도 부흥사로 교회 일에 전념하면서 음악과 관련한 일은 접었고 2015년 뒤늦게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인천을 비롯해 대구, 미국 로스앤젤레스, 캐나다 토론토에 지교회가 있고, 충남 보령시에 수양관이 있다. 백송교회는 지난해 8월 코로나19와 긴 장마로 어려움을 겪는 포도 및 고추농가를 찾아 봉사활동도 벌였다. 경기 화성시 송산의 한 포도농장을 방문해 포도 따기와 포장 등으로 부족한 일손을 도왔다. 긴 장마로 인해 당도가 떨어지면서 포도 값이 떨어진 데다 인력 부족으로 수확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포도밭을 찾아 영농 지원에 나선 것이다. 포도 농장을 찾은 봉사자들은 이틀에 걸쳐 포도를 수확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 교회는 농가를 돕는 봉사에 그치지 않고 수확한 포도 150박스를 구매해 판로가 막막했던 농민의 한숨을 덜어주었다. 고추밭 자원봉사에서도 수확한 고추를 현장에서 전부 매입했다. 교회는 매년 보령에 있는 수양관에서 농사를 지은 배추로 김장을 한 뒤 이를 형편이 어려운 목회자와 이웃들과 나눠왔다. 백송교회는 코로나 블루에 따른 우울증, 스트레스 등 심리적 고통과 가정불화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가족치유 집회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설 명절 기간에는 백송수양관에서 설맞이 가족치유 상담집회를 열었다. 대면 집회는 예배 좌석 수의 20% 범위에서 철저한 방역과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 진행됐다. 이 교회는 사회적 나눔과 마음치료뿐 아니라 건강한 목회자 육성에도 모범적이다. 서울신학대 대학원에 역대 최다 입학생을 배출한 것도 제자 양성을 위한 교회의 남다른 비전을 보여준다. 2021학년도 1학기에 이 교회에서 입학한 신입생은 신학과 철학 박사과정 5명, 신학 석사과정 2명, 목회학 석사과정 2명 등 총 9명이다. 특히 이 목사도 선교학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도전으로 화제가 됐다. 학부 신학과와 평생교육원 신학 전공까지 합치면 서울신학대에 몸담고 있는 백송교회 학생수는 23명에 이른다. 교회는 박사과정 학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후원하고 있다. 이 목사는 “백송교회의 비전은 기드온의 300용사와 같은 제자 700명을 양성하는 것”이라며 “백송의 신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하겠다”고 말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올해 부활절에는 세계가 한마음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식을 위해 기도합시다.” 최근 인천 남동구 영광교회에서 만난 윤보환 목사(62)의 말이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부흥사로 손꼽히는 그는 지난해 소속 교단인 감리교 직무대행 감독회장을 비롯해 진보적 성향의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과 보수적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공동회장 등 굵직한 소임을 마쳤다. 세계교회연합기도운동을 조직한 그는 ‘코로나19 소멸을 위한 전 세계 부활절 한마음 기도 행동’에 매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종식을 위한 이 운동에는 현재 한국교회연합, 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 인천기독교총연합회, 미래목회포럼,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미국기독교총연합회, 뉴욕 한인교회협의회, 유럽한인교회협의회,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 등 국내외 여러 단체가 참여했다. ―부활절 기도에 꼭 필요한 주제인 것 같다. “지난해 12월 첫 주에 일주일 동안 금식하면서 우리 교회와 감리교, 한국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기도했다. 코로나19로 세계에서 200만 명 이상이 희생됐다. 명색이 목사인데 이들의 아픔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반성을 했다.” ―왜 기도인가. “모든 고통과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은 코로나19 종식이다. 기독교는 기적을 믿는, 기적의 종교다. 세계인이 함께 기도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기도운동은 어떻게 진행되나. “자신이 어느 교회, 어느 나라에 있든 관계없이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는 취지다. 가톨릭이나 기독교 신자, 혹은 신앙이 없어도 같이 마음을 모으면 된다. 부활절을 앞둔 사순절 기간에는 매일 오후 10시에 함께 기도하고, 고난주간에는 하루 한 끼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부활절 연합예배에는 같은 기도문으로 참여하면 된다.”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도 동참하나. “아시아 지역 책임을 맡고 있는 채드 해먼드 목사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로 했다. 기독교 사명이 영혼 구원인데 코로나19 상황에서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는 반성을 하고 있더라. 다른 해외 선교단체들도 동참하고 있다.” ―단체장을 맡고 있을 때 이 운동을 시작했으면 더 효과적이었을 텐데…. “‘끈’ 떨어지기 전에 했으면 더 좋았을 거다(웃음). 그때는 정부와 교계, 영상예배와 대면예배를 주장하는 분들의 갈등을 조정하느라 여력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직책 때문에 일을 시킨 것은 아니다.” ―방역 문제는 없나. “기도를 위해 특정한 장소에 모이자는 게 아니다. 연합예배와 개별 교회 예배, 영상예배에 관계없이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는 것이다. 기도 열심히 하고, 방역 잘하고, 백신도 잘 맞으라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다.” ―비신앙인의 경우 영적(靈的)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제가 성령 운동, 부흥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논리적, 과학적인 분이다. 성경 해석은 과학보다 더 논리적이어야 한다.” ―성향이 다른 두 연합단체에서 일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예수님이 바로 최고의 복음주의자이자 진보주의자다. 복음에는 좌파, 우파가 없다.” ―큰 직책 뒤 공허함은 없나. “성도(신자)들을 더 사랑하게 됐다. 제가 일하는 동안 배려해준 것도 고맙다. 하나님과 함께하는데 공허할 일이 있나?”인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신길교회(이기용 목사)는 지역사회가 사랑하는 교회, 다음 세대가 좋아하는 교회다. 이 교회는 선교, 비전, 가정 사역, 교육, 성숙, 섬김과 희망, 예배, 성령의 8대 핵심 비전을 지향한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자 교회는 어느 단체보다 앞장서 방역활동에 나섰다. 교회 내부는 물론 인근 주택과 지하철역, 시장 등 지역 방역에 참여했다.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이웃에게 매주 마스크와 사랑의 롤케이크를 전하고 영등포 보건소에 위문품을 보내는 지원 활동도 이어졌다. 교회의 방역조치는 정부 지침에 협조하는 수준을 넘어 모범이 됐다는 평가다. 식당과 카페에는 선제적으로 아크릴 가림막을 설치했고, 인공지능(AI) 안면인식 카메라와 열화상카메라, 비접촉식 체온계 등으로 발열체크 시스템을 확립했다. 신길교회는 지역사회가 사랑하는 교회로 꼽히고 있다. 매년 영등포구청으로부터 독거노인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웃 400가정을 추천받아 김장김치와 쌀 등을 나누고 있다. 한부모 가정 후원을 비롯해 고아원 방문과 침수 피해 교회 후원, 지역 작은 교회 나눔 활동, 지역사회 상권 살리기 운동이 이어졌다. 성탄절 무렵 신길역에 설치되는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은 지역주민들이 기다리는 문화축제로 자리 잡았다. 교회는 최근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지역사회의 고난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신길 사랑 나눔 축제’와 영등포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100개 교회를 섬긴 ‘지역교회 파트너십&섬김마당’, 한부모 가정과 어려운 이웃 800가정을 섬기는 ‘한부모 및 어려운 이웃 섬김의 날’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 재래시장 상권을 살리기 위해 재래시장 상품권 등을 만들어 12억 원 이상을 지원했다. 이기용 담임목사는 “하늘 보좌에서 낮고 낮은 이 땅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답은 언제나 낮은 곳에 있다”며 “코로나19 장기화로 모두가 어려운 요즘 교회는 지역사회의 고난과 아픔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 리모델링을 통해 조성한 ‘길 카페’와 ‘키즈 카페’는 지역과 다음 세대를 섬기기 위한 대표적인 사례다. 길 카페는 25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청소년들이 밤늦게까지 방황하지 않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쉼터로 세미나실과 북 카페 등도 마련돼 있다. 키즈카페는 주변 지역에 살고 있는 유아를 동반한 부모들이 편히 쉬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1946년 창립된 신길교회는 교회 본연의 사명인 선교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해외 선교 65개소와 국내 선교 76개소에 선교비를 후원하고 있다. 특히 네팔 선교에서 큰 성과를 이뤄 130개의 네팔 신길에벤에셀 교회를 통해 3만6000여 명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교회 당회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선교비를 줄이지 않는 것을 가장 먼저 결정하기도 했다. 향후 1000명의 선교사 파송이 목표다. 이 목사는 “지금은 신길교회가 위치한 영등포 지역을 중심으로 섬기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은 세계를 선교하고 섬기는 것”이라며 “다음에는 더 큰 섬김과 나눔을 하고 싶다”고 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사진)이 주님 부활 대축일(4월 4일)을 앞두고 지도자들이 국민만을 섬기는 봉사자로 새롭게 태어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31일 발표했다. 염 추기경은 이날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불의와 불공정, 부정과 이기심은 국민들 사이에 불신과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염 추기경은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절감하면서 과오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지녀야 한다”며 “지도자들이 개인의 욕심을 넘어 공동선에 헌신하고 가난과 절망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며 그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한다”고 요청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오늘 퇴비 와요.” “예, 시간 내서 TV랑 화장실 고쳐 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할머니 댁에 가 봤는데 별일 없더라고요.” 9일 찾은 전북 진안군 오천리 평촌마을 ‘이장 목사’ 최인석 씨(54)의 휴대전화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이 마을은 41가구에 80명이 거주하는데, 노인 혼자 사는 집만 19가구나 된다. 진안 옥토성결교회 최 목사는 농부이자 이장, 보살핌이 필요한 청소년들의 삼촌, 목회자로 1인 4역을 꾸려가고 있다. 처음부터 농촌 목회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1992년 서울신학대를 졸업한 뒤 터키에서 10년간 선교사로 활동했다. 2002년 귀국한 그는 청년 사역에 이어 충남 당진시의 한 양로원 원목으로 있다가 2010년 진안에 정착했다. ―어떻게 이곳에 정착했나. “양로원에서 1년 넘게 노인들을 섬겼는데 정작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니는 못 모시고 있어서 귀농을 결심했다.” ―여기가 고향인가.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전북 완주군 삼례읍이 고향이다. ‘무진장’의 진안이 청정 지역인 데다 귀농을 위한 지원 등 조건이 좋아 정착했다.” 2010년 진안 읍내에 아동보호시설 ‘창조의집’을 연 그는 2012년 귀농정책자금 등으로 평촌마을에 밭과 집을 마련했다. 2016년 가로 6m, 세로 3m의 컨테이너에 작은 나무십자가를 달았다. 그해 12월에는 마을 이장이 됐다. 고추재배와 함께 기관지, 염증 치료에 좋다는 개복숭아 농사를 지어 즙을 판매하고 있다. ―새 교회는 단층이지만 번듯하다. “컨테이너 교회는 좁은 데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는 몹시 추웠다. 하나님께 교회를 달라고 함께 기도했는데 기적이 이뤄졌다. 고추 농사짓던 땅이 교회 부지가 되고 주변에서 건축비도 도와줘 2018년 새 예배당에 입당했다.” ―농부, 이장, 목사 중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가. “한 가지 더 보태 삼촌 역할이 있다. 청소년을 위한 그룹홈을 운영 중인데 지금까지 30여 명이 거쳐 갔다. 농촌엔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사랑에 배고픈 아이들이 적지 않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힘들면서도 보람 있는 일이다.” ―이장은 어떤가. “이장은 재미있다. 마을에서 젊은 편이라 마을 간사와 노인회 총무를 맡고 있는데 ‘간사님, 우리 마을에 살게 해야 된다’며 이장 감투까지 주셨다. 마을에서 30년 살아도 외지인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장을 두 번째 하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마음을 얻은 비결이 뭐냐. “여기 어르신들은 한동안 내가 목사인 줄 몰랐다. 그런 티도 내지 않았으니까. 그냥 농사지으며 아이들과 같이 살았다. 그러면서 마을회관에서 한글과 산수 교실, 건강 체조, 한지 공예처럼 화투를 대신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했다.” ―일 잘하는 ‘젊은’ 이장 있으니 평촌마을이 복 받았다. “보람 있는 머슴이 됐으니, 복은 내가 받았다.” ―뒤편에 양로원도 보인다. “지난해 10월 완공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다. 방 5개와 거실, 부엌 등이 있다. 어르신은 손자들을 보고 싶고, 아이들은 가족의 정이 그립다. 어르신과 아이들이 함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앞으로 계획은…. “올해 가을 무렵 교회 앞 공간에 빵 카페가 있는 작은도서관 ‘상상공유소’를 개관해 문화복지프로그램을 재개할 생각이다. 뒤쪽에는 4계절 이용할 수 있는 실내 수영장을 만들어 어르신들 건강에 도움을 주고 싶다.” ―농부 성적표는 어떤가. “고추 농사는 웬만한 편이다. 개복숭아즙이 잘 팔려 교회도 자립하고, 문화 프로그램 운영계획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웃음).” ―농촌 목회를 위한 조언을 준다면…. “지역에서 함께 살고, 어르신들을 잘 섬기는 게 목회다. 나누고 살다 보면 어느 날 교회 앞에 감자, 양파, 마늘이 놓여 있다. 이런 게 사람 사는 재미 아닌가.”진안=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책 출판기념회 해야죠.”(금곡 스님) “시절이 그래서 작게 할 생각인데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혹 절에서 할 수 있나요?”(홍창진 신부) “얼마든지요.”(금곡 스님) 오랜만에 소식을 주고받은 스님과 신부의 대화는 이랬다. 홍창진 가톨릭 신부(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의 책 ‘괜찮은 척 말고, 애쓰지도 말고’(허들링북스) 출간 간담회가 28일 오후 3시 금곡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총무부장)이 회주(會主·사찰의 큰 어른)로 있는 서울 성북구 흥천사에서 열린다. 종교 간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온 금곡 스님과 홍 신부의 오랜 교분 덕분이다. ‘종교계 마당발’이자 활발한 문화사역으로 ‘날라리 신부’로까지 불리는 홍 신부의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은 미래와 일, 위기, 정체성, 죽음, 성공 등 30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추상적이기 쉬운 주제임에도 개인적 사연과 적절한 사례, 세상에 주고 싶은 메시지를 잘 버무려 먹음직한 읽을거리로 만들었다. 23일 책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한다. 재미가 바로 내 인생의 출구다. 신부라 고민이 없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과 같다. 재미를 찾는 과정을 통해 인생을 즐길 수 있다.” ‘인생의 가장 큰 죄는 삶을 즐기지 못한 죄다’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장이 흥미롭다. 영화 ‘두 교황’ 중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고백성사를 하면서 “아이였을 때 가장 먼저 지은 죄는 삶을 제대로 즐길 만한 용기를 포기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실수하는 것이 두려워 음악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지금 평화와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언제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틱낫한 스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다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날마다 좋은 날)’ 같은 불교적 세계관이 느껴진다고 물었다.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나답게 사는 것이 누구나 꿈꾸는 행복과 만족의 지름길이다. 종교의 길은 모두 통한다.” 홍 신부는 2014∼2016년 종교인 토크쇼 ‘오마이갓’에 이어 지난달 방영된 EBS ‘아주 각별한 기행: 홍창진 신부의 절집 탐방’에 출연했다. 책을 낸 계기를 물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100일간 미사를 드리지 못했다. 나처럼 사람 만나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래서 글을 썼다. 모일 수 없으니 장애인 어린이 합창단 ‘에반젤리’의 살림살이가 너무 어려워졌다. 책의 인세는 모두 합창단 운영에 쓸 계획이다.” 홍 신부는 영화와 TV 드라마, 오페라에 이어 지난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연극 ‘레미제라블’에 출연했다. 그의 도전은 어디까지일까. “몇 해 전 세 번째 스무 살 잔치를 했다. 네 번째 스무 살 잔치는 히말라야에서 했으면 좋겠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과 계율(戒律)을 관장하는 전계대화상을 지낸 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사진)이 23일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88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1933년 경남 울주군(현 울산시)에서 태어나 13세 때 입산 출가했으며 1948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범어사, 해인사, 직지사, 청암사 선원 등에서 화두를 붙잡고 정진하면서도 경전과 율장을 놓지 않았다. 1972년 서울 조계사 주지를 맡아 처음으로 불교합창단을 창설하는 등 불교 대중화에 앞장섰고, 1975년 폐사에 가깝던 쌍계사 주지를 맡아 불사를 통해 교구 본사로서의 사격(寺格)을 갖췄다. 부산 혜원정사, 부천 석왕사를 창건해 도심 포교의 토대를 닦았다. 스님은 포교에 힘쓰면서도 평생 수행자의 강직함을 지켜 ‘지리산의 무쇠소’로 불렸다. 한 번 옳다고 믿는 일에는 물러섬이 없었고,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여길 때는 단호히 거부해 붙여진 별칭이었다. 1998년 제29대 총무원장에 선출됐지만 이후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홀연히 자리를 떠나 주변을 놀라게 했다. 경율론(經律論) 삼장에 두루 능한 종단의 대표적 원로로 수행과 함께 평생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모범이 됐다. 쌍계사에 따르면 ‘봄이 오니 만물은 살아 약동하는데 가을이 오면 거두어들여 다음 시기를 기다리네. 나의 일생은 허깨비 일과 같아서 오늘 아침에 거두어들여 옛 고향으로 돌아가도다’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효(孝)상좌로 잘 알려진 쌍계사 주지 영담 스님은 “언젠가 입적하실 것으로 생각했지만 너무 갑작스럽다”며 “한시도 수행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던 은사의 가르침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장례는 종단장으로 치러지며 분향소는 24일 오전 10시부터 쌍계사 팔영루에 설치된다. 영결식은 27일 오전 10시 경내 도원암 앞에서 봉행된다. 055-883-1901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과 계율(戒律)을 관장하는 전계대화상을 지낸 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사진)이 23일 오전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88세를 일기로 입적(入寂·별세)했다. 1933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나 13세 때 입산 출가했으며 1948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범어사, 해인사, 직지사, 청암사 선원 등에서 화두를 붙잡고 정진하면서도 경전과 율장을 놓지 않았다. 1972년 서울 조계사 주지를 맡아 처음으로 불교합창단을 창설하는 등 불교대중화에 앞장섰고, 1975년 폐사에 가깝던 쌍계사 주지를 맡아 불사를 통해 교구 본사로서의 사격(寺格)을 갖췄다. 부산 혜원정사, 부천 석왕사를 창건해 도심포교의 토대를 닦았다. 스님은 포교에 힘쓰면서도 수행자의 강직함을 지켜 ‘지리산의 무쇠소’로 불렸다. 한 번 옳다고 믿는 일에는 물러섬이 없었고,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여길 때는 단호히 거부해 붙여진 별칭이었다. “나는 한번 하고자 하는 일은 그 누가 반대해도 하고 마는 성정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출현해서 못하게 한다면 그만두지, 그렇지 않고는 지금까지 중도에 폐한 일은 없었다. 이러한 의지로 강사와 법사와 포교사와 율사와 선사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지리산의 무쇠소’, 조계종출판사) 스님은 엄격한 수행자이면서도 거칠 것 없는 열린 마음의 스승이었다. 별명 중 ‘땡비’(땅벌)도 있다고 하자 스님은 “땅에 집을 짓고 살다 무섭게 쏘아대는…. 조금이라도 생각이 비뚤어져 있으면 인정사정없이 귀싸대기 붙인다고 해서…. 내 성질이 좀 별나서…”라며 껄걸 웃었다. 1998년 제29대 총무원장에 선출됐지만 ‘천하의 총무원장’ 자리를 박차고 낙향한 일화는 유명하다.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젊은 사람(지선 스님)과 선거를 두 번이나 할 수 없다”며 물러나 본격적으로 후학 지도에 힘썼다. 경율론(經律論) 삼장에 두루 능한 종단의 대표적 원로로 수행과 함께 평생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모범이 됐다. 스님은 호박 키우는 재미를 아냐며 이런 말을 들려줬다. “한 구덩이에서 호박 한 줄기에 다섯 개씩, 다섯 줄기면 5 곱하기 5 해서 25개, 이걸 다시 열 차례 따 먹으면 한 해가 가요. 사람들이 이 재미를 잘 몰라요. 허허허.” 스님은 어려운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묻자 “처염상정(處染常淨),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항상 깨끗함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세상사가 갈등과 다툼으로 얼룩져 있어 힘겨워하는 이가 너무 많다.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살아가면 좋겠다.” 쌍계사에 따르면 스님은 ‘봄이 오니 만물은 살아 약동하는데 가을이 오면 거두어 들여 다음 시기를 기다리네. 나의 일생은 허깨비 일과 같아서 오늘 아침에 거두어들여 옛 고향으로 돌아가도다’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효(孝)상좌로 잘 알려진 쌍계사 주지 영담 스님은 “언젠가 입적하실 것으로 생각했지만 너무 갑작스럽다”며 “한시도 수행과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라던 은사의 가르침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장례는 종단장으로 치러지며 분향소는 24일 오전 10시부터 쌍계사 팔영루에 설치된다. 영결식은 27일 오전 10시 경내 도원암 앞에서 봉행된다. 055-883-1901김갑식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6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에 들어서니 봄볕에 활짝 핀 매화가 맞이한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수상하지만 산문(山門) 안의 봄은 한결 보기 편하다. 포교국장을 맡은 선행(禪行) 스님의 처소에 들어가니 한쪽에 클래식 기타가 있다. 법문 때 흥이 오르면 가요 한두 곡 구성지게 ‘뽑는’다는 스님. 충남 공주시 마곡사 아래 우체국에서 근무하다 출가했다는 그와 차담을 나눴다. 최근 선행 스님은 절집 수행자의 삶과 자신의 사연을 발심, 기도, 정진, 수행 등 4개의 장으로 엮은 에세이 ‘맑은 가난’(담앤북스)을 출간했다. 2011년 나온 그의 책 ‘선객(禪客)’은 경전류를 다뤄온 동국대 출판부가 처음으로 낸 에세이로 기록돼 있다. ―기타는 언제 배웠나. “10년 전 ‘선객’ 출간 뒤 탈진했는지 뭐가 손에 안 잡히더라. 몇 년 전 문화강좌를 통해 기타를 접했다.” ―펼쳐진 악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 노래가 기본 코드를 익히는 데 좋다. 아침 공양 뒤 기타를 잡으면 스님들이 좋아한다. 속세 사랑이나 부처님 사랑이나 모두 쉽지는 않다. 하하.” ―‘맑은 가난’에 개인사를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이 많다. 부담스럽지 않았나. “살아온 얘기인데 무슨 부담이 있겠나. 네 살 때부터 조부모님 곁에서 자랐다. 일찍 철이 들었는데 모든 게 인연으로 연결되더라.” 법대에 낙방한 스님은 입시와 일을 병행하기 위해 9급 우정공무원이 됐다. 마곡사 아래 우체국에서 4년간 근무한 그는 인근 은적암에 있던 비구니 성호 스님과 인연을 맺었고 1985년 진철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통도사 강원과 율원을 거쳐 여러 선원에서 참선했고 백양사, 선운사 강주(講主·경전을 가르치는 책임자)를 지냈다. ―성호 스님은 어떤 분이었나. “속세로 치면 어머니 같은 분이었다. 그분과의 인연으로 불교를 알게 됐고 출가까지 하게 됐다. 백양사 강주로 있던 2008년 입적(入寂·별세)하셨다.” ―조계종 종정과 통도사 방장을 지낸 월하 스님의 발우 시봉을 2년간 했다. “방장 스님은 공사가 분명하고 강직한 분이었다. ‘출가해 잘못 살면 세속과 승가 모두에 죄를 지는, 양가득죄(兩家得罪)’라고 했다. 평생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 ―출가 뒤 번뇌는 없었나. “출가 뒤 하루 잤는데 이전 삶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했다. 삭발하면서 눈물 흘리는 이도 있었는데, 난 싱글벙글했고 지금도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부처님 제자로 살아가는 게 체질이다.” ―‘맑은 가난’이라는 책 제목은 어떻게 지었나. “분향세발과여생(焚香洗鉢過餘生), 향 피워 예불하고 발우로 공양하고 여생을 보낸다. 그런 삶에 더할 게 뭐가 있겠나.” ―지나치게 소박한 것 아닌가. “사찰 강주도 해 봐서 더 큰 소임에 집착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산문 밖 삶이 어렵다.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들려 달라. “화두에 ‘개구즉착 폐구즉실(開口卽錯 閉口卽失)’이라고 했다. 입을 열면 그르치고, 입을 닫으면 잃게 된다. 치우침이 없는 중도(中道)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좋아하는 경전 구절을 들려 달라.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元功德母), 믿음이 도의 으뜸이고 공덕의 어머니다. 승려 생활은 하다못해 ‘말뚝 신심’이라도 있어야 지탱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런 마음가짐이 흐트러질 수 있는 삶을 바로잡을 수 있다.” 인연이 닿으면 그때, 스님의 기타 반주에 맞춘 노래를 듣기로 했다. 매화 향기 속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리라.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