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의자, 한때는 권력-지위 표현의 도구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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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의자, 오늘의 의자/이지은 지음/각 256, 264쪽·각 1만8000원·모요사출판사

원형이 잘 간직돼 있는 프랑스 남부 알비 대성당의 스탈. 성직자와 교회 참사위원단이 앉는 이 스탈은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요사출판사 제공
원형이 잘 간직돼 있는 프랑스 남부 알비 대성당의 스탈. 성직자와 교회 참사위원단이 앉는 이 스탈은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요사출판사 제공

‘스탈?’ 이 책에서 의자에 대한 기억은 생소한 스탈로 시작한다. 스탈이 수도원이나 대성당의 제단 앞에 양옆으로 배치된 거대한 붙박이 의자라는 설명에서 비로소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스탈은 통상 앞뒤 2열의 계단식이며 좌우에는 어깨 높이의 칸막이와 등받이가 붙어 있다.

두 책은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에서 빠질 수 없는 의자를 입체적으로 다뤘다. 비교적 쉽게 접하는 디자인 위주의 책이 아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의자를 만든 장인(匠人), 나아가 의자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냈을 이들의 삶과 문화까지 아울렀다. 여러 전쟁과 재해를 거치면서 나무로 제작된 중세의 의자들이 남아있는 경우는 드물다. 스탈이 첫 소재로 등장하는 불가피한 이유일 것이다.

미술사학자이자 장식미술 감정사, 작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사물들의 미술사’ 시리즈 10권을 10년간 출간할 계획이다. 시리즈 1권 ‘액자’에 이어 이번에는 의자를 주제로 두 권의 책을 내놓았다.

중세시대 스탈을 차지한 주인공은 성직자와, 교회를 행정 및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참사위원단이었다. 하지만 이들조차 엄격한 전례 중 팔자 좋게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스탈 안쪽에는 작은 판처럼 튀어나와 엉덩이를 걸쳐 놓을 수 있는 ‘미제리코드’가 있었다. 이 단어에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판 아래 조각에는 성경은 물론이고 세속적인 풍경까지 표현하고 있어 흥미롭다.

책은 루이 14세의 은 옥좌와 귀족들이 선망했다는 프랑스 왕궁의 타부레, 18세기 장인들의 가구 제작 현장, 가구계의 셰익스피어로 불러야 할 토머스 치펀데일의 혁신적인 의자 등을 다룬다.

“프랑스 궁정에선 어떤 여인이라도 타부레에 앉을 수만 있도록 해준다면 몸과 영혼을 다 바칠 준비가 돼 있다.” 루이 14세 궁정을 관찰한 기록의 일부다. 타부레는 등받이와 팔걸이 없이 시트와 다리만 있는 의자를 말한다. 요즘 눈으로 보면 피아노 의자에 불과한 타부레를 통해 궁정의 엄격한 예법과 권력관계를 엿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치펀데일 스타일로 제작된 마호가니 게인즈버러 의자. 모요사출판사 제공
치펀데일 스타일로 제작된 마호가니 게인즈버러 의자. 모요사출판사 제공
‘기억의 의자’ 속편 격인 ‘오늘의 의자’는 산업화 이후 의자의 혁명을 주도한 의자 5개를 다뤘다. 미하엘 토네토의 토네토 14번 의자, 오토 바그너의 포스트슈파르카세,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 알바 알토의 파이미오 암체어, 찰스 임스의 플라스틱 의자다.

“어떤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건 재료나 기술처럼 사물을 구성하는 내재적 특성이 아니라 정교하게 기능하는 사회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부여한 가치에서 자유로운 사물은 아무것도 없다.” 서문에 실린 저자의 말은 의자가 단순한 생활도구가 아닌 사회적 가치의 산물임을 일깨워 준다. 너무 흔해서 관심 밖에 머물기 쉬운 사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미술사적 의미를 짚어보고 싶은 독자라면 추천할 만한 책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의자#권력#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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