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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소치 겨울올림픽 선수단 초청 오찬에 앞서 김연아 선수에게서 성화봉을 형상화한 기념품을 전달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한 번 넘어지고 두 번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꿈을 이뤄낼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준 것이 이번 겨울올림픽을 통해 얻은 아름다운 결실”이라며 선수단을 격려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는 5일 상봉 정례화 등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12일 판문점 한국 측 평화의 집에서 열자고 북한에 제의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11시 15분 판문점 남북 연락관 채널을 통해 대한적십자사 총재 명의로 이 같은 내용의 통지문을 보냈다. 통일부는 “고령의 이산가족이 하루빨리 이산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후속조치”라며 “북한 측이 조속히 호응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매년 6000명 이상씩 상봉할 수 있도록 매주 상봉을 정례화하는 방안을 북한에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는 7만1503명이고 이 중 70세 이상 고령자가 81.5%(5만8258명)에 달한다. 정부는 이산가족의 전면적 생사 확인과 서신교환, 화상상봉 재개,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근본적 해결도 북한에 제의할 계획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이 3일 사거리 500km 이상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합동참모본부가 전 군에 비상경계 태세를 지시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 군사분계선(MDL)과 서북 도서 인근 북한군의 동향을 밀착 감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최윤희 합참의장(해군 대장)은 3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보고받은 직후 작전사급 이하 지휘관과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만큼 대비태세에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4일 북한의 방사포 발사 당시 사전에 항행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 민항기가 해당 지역을 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이 오후 4시 17분 방사포를 쏜 후 7분 뒤인 4시 24분에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출발해 중국 선양(瀋陽)으로 가던 중국 난팡(南方)항공 소속 민항기(CZ628)가 방사포 발사 궤적을 교차해 지나갔다는 것. 몇 분의 시차로 고도차가 10km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한편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5일 헌정회 초청 강연에서 남북관계가 일부 진전된 것과 관련해 “‘앞으로 북한이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속된 말로 국물도 없다’ 이런 것들이 북한 측의 위정자들에게 조금씩 전달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이용환 채널A 기자 zumbak@donga.com / 윤완준 기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5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에 참석하기 위해 4일 오전 급히 비행기를 탔다. 애초 인권이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제기하려던 윤 장관은 2일 갑자기 차관보급인 외교부 신동익 다자외교조정관을 대신 보내기로 했다. 이틀 만에 다시 자신이 직접 가겠다고 변경한 것이다. 외교부 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강조한 만큼 윤 장관도 그에 걸맞게 인권이사회 연설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엄중한 상황인데 왜 처음부터 일관되게 윤 장관이 참석하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정부 관계자는 장관 참석으로 확정한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이사회 안건을) 들여다보니 중요한 안건이 많아 장관 참석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장관이 가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석연치 않은 설명이다. 더 유력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 윤 장관이 인권이사회 개최 기간에 예정됐던 박 대통령의 외빈 접견에 배석하려다가 그 행사가 취소되자 인권이사회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다른 관계자가 귀띔했다. 이번 인권이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아베 정권을 강력히 비판하고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경고한 북한 인권의 참혹한 실태에 한국 정부의 냉철한 입장을 밝혀야 할 중요한 외교 무대다. 한국의 외교 수장이 참석할지 말지 오락가락한 이유가 대통령 접견 행사 배석 일정 때문이었다면 국정의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이 외교부 장관에게 무얼 더 기대할까. 외빈 접견 배석인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 노력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윤완준·정치부 zeitung@donga.com}

4선 국회의원을 지낸 고재청 전 국회부의장(사진)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고인은 전남 담양-곡성-화순에서 9, 10대(이상 신민당), 11대(민한당), 12대 의원(민한당 신민당)을 지냈다. 11대 국회(1983∼85년) 때는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신민당 대변인을 비롯해 인권옹호위원장, 민한당 원내총무, 한-프랑스 의원 친선협회 회장, 한-오스트리아 의원 친선협회 회장, 대한민국 헌정회 수석부회장, 국회 헌법개정심의 특별의원(1987년), 헌정회 원로회의 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서희석 여사와 아들 유석 씨(삼성물산 기획실 부장), 딸 신영 선영 순영 씨, 사위 황승덕(부천 순천향병원 내과 교수) 강은모 씨(유성컨트리클럽 대표)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3월 2일 오전 8시. 장지는 충남 천안 공원묘지. 02-3410-6920}
“남북대화 개선 국면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저강도 도발’의 일환이다.” 북한이 26일 단거리 발사체 4발을 발사한 의도에 대한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4일 심야에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세 차례 침범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한쪽으로 대화하는 동시에 다른 쪽에서 군사적 위협을 통해 협상의 몸값을 높이려는 북한의 양면전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부는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제재나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한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중·장거리가 아닌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한 점에 주목했다. 북한은 대화 국면에서도 상습적으로 군사도발을 해왔다. 한 당국자는 “사거리가 비교적 길지 않은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해 직접적인 대남 도발보다는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 기간에 대응하는 북한군의 통상적 군사훈련으로 보이려 한 의도가 읽힌다”고 말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대화 국면에서 자신들 뜻대로 안 되면 한국과 미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군사적 활동의 수위를 높일 수 있다고 재차 위협하면서 남북대화에서 주장을 관철하려는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서해 등에서 미사일 발사 등 추가 도발을 벌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일본과 다음 달 3일부터 적십자 실무회담을 갖기로 한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만성적인 외화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이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을 벗어나기 위해 대화 채널을 넓히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내달 회담은 2012년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집권한 이후 처음 공개적으로 열리는 북-일 회담이다. 양국은 2012년 8월 초 10년 만에 처음으로 적십자회담을 했다. 이는 8월 말 정부 간 회담으로 이어졌다. 양측은 12월에 다시 국장급회담을 열기로 약속했지만 북한이 장거리 로켓(은하 3호)을 발사하면서 회담은 취소됐다. 북-일 접촉 재개는 상호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일본이 대규모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일제강점기 배상 문제를 일단락한 한국과 달리 북한은 일본에 여전히 청구권이 남아 있다. 일본의 대북 배상금 규모는 100억 달러(약 10조687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역시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라’는 국내 여론 때문에 북한과 접촉할 필요가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는 2002년, 2004년 두 차례 방북해 평양선언을 채택하고 납북자 유골 송환과 생존자 일부 귀국을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내달 적십자회담이 열리면 주요 의제는 북-일 정상회담을 위한 정지작업,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본부 건물 경매 문제와 일본의 대북 제재 부분 해제 등 다양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한국 정부는 다음 달 초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북한에 제의해 이산가족의 전면적 생사 확인과 상봉 정례화 등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협의할 방침이다.윤완준 zeitung@donga.com·조숭호·정성택 기자}
북한이 ‘남조선 정보원 첩자’라고 주장하며 억류 중인 침례교 선교사 김정욱 씨(50)가 27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 당국의 선처를 호소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김 씨는 “중국을 통해 북한에 들어간 다음 날인 지난해 10월 8일 붙잡혔다”며 “반국가 범죄 혐의로 억류됐고, 나의 행동에 대해 사죄한다”고 밝혔다. 이어 “성경과 교리 교육용 영상물 등을 갖고 평양에 들어갔으며 북한에 들어가기 전 수많은 정보 요원들을 만났고 수천 달러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김 씨의 신원 공개를 거부해오던 북한이 갑자기 기자회견을 마련하고 외신기자들에게 이를 공개한 것은 향후 남북 대화에서 그를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는 김 씨의 기자회견 소식이 알려진 뒤 북한을 향해 “김 씨를 조속히 석방해 송환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김 씨 석방을 놓고 남북간 교섭이 시작될 수도 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평양에 잠입한 정체불명의 ‘남조선 첩자’를 붙잡았다고 발표했지만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억류자의 신원 확인을 요청하는 통지문을 보내려 했으나 북한은 통지문 수령 자체를 거부했다. 김 씨는 2007년부터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의 지하교회에서 탈북 주민 등에게 숙식을 제공해왔다. 지난해 상반기 중국 공안이 교회에서 생활하던 북한 주민들을 강제 북송하자 그해 10월 7일 압송 주민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 평양에 들어갔다. 김 씨는 “북에 기독교 나라를 세우려면 현 정권과 정치 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국가정보원의 도움을 받았다”며 ‘남조선 첩자’라는 북한의 주장을 시인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던 중에 한동안 입을 다문 채 침묵하기도 했다. 김 씨는 기자회견에 나온 이유에 대해 “가족에게 건강하게 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북한 당국이 자비를 보여 풀어주기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이 외신기자들까지 불러 김 씨의 기자회견을 공개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김 씨의 석방을 ‘통 큰 용단으로 양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정원 측은 “국정원과 김 선교사의 입북은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한편 국내에 체류 중인 김 씨의 부인 이모 씨는 “얼굴이 초췌하지 않아 그나마 안심했다. 국정원 일을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저쪽(북한)에서 협박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 윤완준 기자}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27일 청와대에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세제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무함마드 왕세제는 정부의 창조경제와 ‘아부다비 경제비전 2030’을 접목하는 양국의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남한의 이영실 씨(88·사진)는 20일 이산가족 상봉행사 만찬에서 그토록 그리워한 딸 동명숙 씨(67)를 바로 앞에 두고도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동 씨가 “엄마랑 나랑 서로 보고 싶어서 찾았잖아요”라며 울먹여도 이 씨는 “그래요?”라고 답했다. 이 씨의 눈시울은 분명 붉어져 있었는데 얼굴 표정에는 격한 슬픔이 드러나지 않았다. 4년 만의 이산가족 상봉. 예년보다 ‘격렬한 슬픔’이 많이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왜 그럴까. 시간이 너무 지나 감정이 메말라서일까. 상봉 장면을 지켜보며 분석한 미술해부학자, 정신의학자 등 전문가들은 24일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얼굴 연구가로 유명한 조용진 미술해부학 박사는 “나이가 너무 들어 굳어버린 표정근육이 내면의 북받치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산가족들의 고령화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던 2000년 첫 이산가족 상봉 때는 억제할 수 없는 슬픔과 반가움의 표정이 많았다고 조 박사는 설명했다. 이런 격렬한 감정은 얼굴 표정근육의 수축과 긴장을 통해 ‘불수의(不隨意)적으로’(자기도 모르게) 표출된다. 하지만 고령화로 인해 신체와 뇌 활동이 둔화돼 표정근육이 함께 둔화되면서 고통과 슬픈 내면의 감정이 얼굴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조 박사는 “다른 사람이 보기엔 담담한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노화와 치매 등으로 심연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조차 얼굴에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종민 인제대 의대 신경정신과학교실 교수는 “64년이라는 시간 동안 너무 오래 억제돼 지쳐버린 체념의 표정”이라고 정의했다. 분단이라는 ‘타의’ 때문에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고통을 너무 오래 억누르고 살아온 나머지 그리움의 감정이 바랬다는 분석이다. 재회한 가족과 새로운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없다는 ‘포기의 심리’도 표정에 나타나는 감정의 강도를 약화시킨다. 김석주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60년 넘게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이번에도 만나지 못하는구나’ 하는 절망의 교차가 반복되면서 감정이 무뎌진 복합적 내면 심리의 결과”라고 분석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와 함께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상설화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이 원하는 때에 언제든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등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남북대화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21일 “남북의 정치 군사적 상황에 상관없이 이산가족 상봉을 한 달에 한 번 등으로 정례화하고 상봉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며 “남북 이산가족의 전면적 생사확인과 자유로운 서신 교환을 통해 가족들이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원하는 날짜에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이 14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편리한 날짜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만큼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끝나는 25일 이후 고위급 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북한에 제의할 것이 유력하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이후 △국제 비정부기구(NGO)와 협력해 온실과 농축산 자재를 지원하는 남북 농업협력 △나무 심기(시범 조림), 산림 병충해 지원 등 산림 협력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 승인 기준을 완화해 현재의 영유아 취약계층 지원 위주에서 농업, 의료 지원 등으로 품목을 확대하는 등 대북 인도적 지원 확대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42년 만이었다. “행님아!” 이마를 맞댔다가 두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고…. 얼싸안고 눈물범벅이 된 두 형제는 도무지 서로를 놓지 않았다. ‘이제 테이블에 앉으시라’는 안내원의 말에 겨우 앉았지만 형제는 부여잡은 두 손을 결코 놓지 않았다. 서로 손을 토닥여줬다. 뜨거운 눈물이 형제의 뺨을 타고 흘렀다.○ 10대에 헤어져 초로에 만난 형 납북자 박양수 씨(55)는 20일 금강산에서 한국의 동생 양곤 씨(52)를 만나 오열했다. 1972년 12월 28일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도우려 오대양61호를 타고 바다에 나갔던 형은 초로의 모습으로 동생 앞에 나타났다. 양곤 씨는 3남 1녀의 막내, 양수 씨는 그의 둘째 형이었다. 거제도에서 농번기 일을 함께 거들고 겨울철 땔감을 같이 구하러 다니던 중학생 형은 양곤 씨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바다에서 납북됐다. 형은 이제 거센 경상도 사투리 대신 북한말을 쓰고 있었다. 양수 씨는 광산에서 반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금색 노력영웅 훈장과 2개의 은색 영예훈장을 꺼내 보였다. “형님이 어릴 때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추억의 편린을 맞춰가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형님, 할아버지 산소 어디 있는지 기억나요?” “그 저수지 옆으로 올라가서….” “그 동네 이름이 중박골이에요. 할아버지 산소 옆으로 국민학교(초등학교) 소풍도 갔었잖아요.” “맞다, 맞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와 큰형 얘기를 들은 양수 씨는 한동안 말을 잊은 채 한숨만 쉬었다. 손바닥만 한 논을 경작해 입에 풀칠하며 어렵게 생활했던 아버지는 자식의 납북에 충격을 받아 시름시름 앓다가 12년 만인 1984년 세상을 떠났다. 기약 없이 아들을 그리워하던 어머니도 13년 전 눈을 감았다. 누나는 최근 건강이 악화돼 남동생을 만날 기력이 없었다. 형이 부모님 얼굴을 잊었을까 걱정해 양곤 씨가 가져온 아버지 어머니 사진과 묘 사진을 보던 양수 씨는 다시 굵은 눈물을 쏟았다. 양수 씨는 “빨리 통일이 돼야지, 자주 만나자”고 말했다. ○ 6남매가 그리워한 넷째 동생 상봉장 다른 편에서 다른 형제가 한참을 부둥켜안고 목메어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내 동생아, 40년 전 얼굴 그대로구나….” 최선득 씨(71)가 납북된 넷째 동생 영철 씨(61)를 40년 만에 만난 것이다. 1974년 2월 15일 당시 21세 영철 씨는 홍어잡이 어선 수원33호를 타고 백령도 인근으로 나갔다. 북한 해군이 함포를 쏘며 배를 납치할 줄은 그도, 그의 가족도,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동생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 충남 청양을 떠나 서울로 올라갔다. 외양 어선을 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납북’이라는 악몽 같은 비보에 4남 3녀의 맏이였던 선득 씨의 억장이 무너졌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국 넷째를 다시 보지 못한 채 1988년, 1998년 차례로 세상을 떴다. 선득 씨가 가져온 부모와 형제 사진을 보던 영철 씨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선득 씨가 “너 수학여행 갔을 때 막 일찍 가려고 했던 것 생각나느냐”고 묻자 영철 씨는 “다 양복 입고 가는데 나만 바지저고리 입고 가니까…”라고 답하며 추억을 더듬었다. 선득 씨가 “헤어질 때보다 살이 더 찐 것 같다”고 하자 영철 씨가 “원수님 덕이에요. 우리가 못사는 줄 알았시오?”라고 되묻기도 했다. 최병관 씨(68)는 6·25전쟁 때 납북된 아버지의 북한 이복동생 병덕(47), 경희 씨(53)를 만났다. 병덕 씨가 북한의 7남매 사진을 보여주자 병관 씨는 “이렇게 사셨으니 외로움이 덜했을 것이다. 가정을 꾸리지 못했으면 얼마나 외로웠겠느냐”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금강산=공동취재단}

“60년 넘게 기다렸는데 지금은 하루가 60년 같소.” 이산가족 상봉을 하루 앞둔 김철림 씨(95)의 얼굴은 설렘과 긴장으로 가득했다. 김 씨는 이번 상봉에서 북한에 살고 있는 여동생 2명을 만난다. 함경남도가 고향인 김 씨는 1·4후퇴 때 피란을 떠난 것이 동생들과의 생이별이 됐다. 이제는 동생들의 얼굴도, 정확한 나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70대로만 기억하고 있다. 김 씨는 “물어볼 말은 많은데 막상 만나면 말이 안 나올 것 같아. 너무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만나게 돼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19일 오후 강원 속초의 한 콘도 1층 로비는 남측 이산가족 상봉자와 동행 가족, 선물 보따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은 간단한 건강검진과 방북 교육을 받고 리조트에서 하루 묵은 뒤 20∼22일 4년 만에 금강산에서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꿈에 그리던 가족들을 만난다. 23∼25일에는 북한 측 신청자가 한국의 가족을 찾는 2차 행사가 이어진다. 1차 상봉 대상자 82명 가운데 최고령인 민재각 씨(96)는 아들과 함께 정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 씨의 마음은 설렘보다 한스러움이 더 크다.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삼남매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민 씨는 이번 방북에서 손자 지영 씨(46)를 만난다. 민 씨는 “의외로 기분이 담담해. 그래도 이렇게 오래 산 게 남아 있는 피붙이를 만나려고 그런 것 같아. 늦었지만 다행이지”라고 말했다. 같은 최고령자인 김성윤 씨(96·여)는 여동생 석려 씨(81) 등 3명을 만난다. 휠체어에 의지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김 씨는 “어젯밤 2시간밖에 못 자고 뜬눈으로 보냈다. 가족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만나게 해 줘 고맙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달려온 이도 있었다.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인 홍신자 씨(84·여)는 10일 서울 순천향대병원에서 척추골절 치료를 위한 수술을 받았고 이날 오전 주치의의 퇴원 허락을 받아 상봉행사에 참가했다. 휠체어에 의지한 홍 씨는 “오늘 아침까지도 못 가는 줄 알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여동생을 70년 만에 만나는데 눈물만 나올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속초=이인모 imlee@donga.com / 윤완준 기자}
북한에 있는 딸을 만나려던 90세 서모 할머니는 ‘20∼25일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를 합의한 적십자실무접촉이 열리던 5일 끝내 눈을 감았다. 서 할머니는 한국의 딸 김모 씨에게 북한의 여동생을 꼭 만나라는 유언을 남겼다. 지난해 9월 말 추석을 계기로 마련됐던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예정대로 열렸다면 서 할머니는 꿈에도 그리던 딸을 만났을 것이다. 18일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상봉 대상자 96명(지난해 9월 16일 기준) 중 2명이 사망하고 12명이 건강이 악화돼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지 못한다. 한국 측 신청자가 찾은 북측 이산가족의 건강 악화로 상봉이 어려워진 1명을 포함하면 96명 중 15명(15.6%)이 불과 5개월 만에 가족 상봉의 꿈을 잃었다. 이 중 2명은 자녀가 대신 행사에 참석한다. 북한 측 신청자가 한국의 가족을 찾는 상봉행사에 참석하는 북한 측 상봉 대상자도 같은 기간 100명에서 88명으로 12명(12%)이 줄었다. 3명이 사망했고 2명이 건강이 악화됐다고 북한 측이 통보해 왔다. 여기에 북한 측 신청자가 찾은 한국 측 가족 7명이 건강 문제로 상봉을 포기했다. 전문가들은 “몇 개월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도 사망과 건강 악화라는 벽을 넘지 못한 상봉자가 이렇게 많은 것은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더이상 미룰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한국의 이산가족 등록자 12만9287명 중 사망자만 5만7784명(44.7%)에 이른다. 매년 약 4000명의 이산가족이 사망하고 있다. 이산가족 생존자 7만1503명 중 절반 이상(52.8%)이 80세 이상 고령자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처럼 남북 각각 100명씩 찔끔찔끔, 우여곡절 끝에 만나는 일회성 상봉행사는 더는 안 된다”며 “전면적 생사확인, 자유로운 서신 교환 등을 통해 이산가족들이 금강산 가족면회소를 언제든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남북대화를 곧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국무회의에서 “이산가족들이 자주 만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이산가족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북한도 이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이 같이 협력을 해서 모든 이산가족이 오랫동안 쌓여 마음에 맺힌 한을 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이산가족을 실은 버스가 금강산을 향해 출발할 수 있게 됐다. 남북이 14일 열린 2차 고위급 회담에서 ‘20∼25일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금강산에서 예정대로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합의됐던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볼모로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연기하라”며 억지 주장을 해오다가 이날 ‘통 큰 용단’을 거론하며 스스로 물러섰다. 한국 측 수석대표인 김규현 대통령국가안보실 제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과 북한 측 수석대표인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은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열린 회담에서 3대 합의사항이 담긴 공동언론보도문을 채택했다. 내용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중단하며 △상호 관심사를 계속 협의하며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것이다. 남북은 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상호 편리한 날짜에 고위급 접촉을 갖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 ‘김규현(NSC)과 원동연(통전부) 파트너’가 남북관계의 상시 채널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김 차장은 회담 뒤 브리핑에서 “박근혜 정부의 첫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신뢰에 기초한 남북관계 발전’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은 1시간 15분 만에 신속하게 마무리됐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측은 24일부터 시작되는 한미 연합군사연습 기간에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열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들고 나왔으나 이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예정대로 해야 한다는 한국 측 입장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원동연 부부장은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하는 데 합의하면서 ‘우리가 통 큰 용단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오후 5시경 “원동연 노동당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국방위원회 대표단이 참가했다”고 전하며 합의 내용을 보도했다. 정부는 15일 오전 이산가족 상봉행사 준비를 위한 선발대를 금강산으로 보낸다. 같은 날 오후에는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 주재로 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어 남북 고위급 회담 결과에 대한 후속 조치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
13일 0시경 1차 남북 고위급 회담 성과 없이 종료→12시간 만인 13일 낮 12시 북한, ‘오후 3시’ 회담 제의했으나 한국이 ‘14일 회담’ 역제의→북한, ‘14일 오전 10시’ 회담 수용→14일 회담 전체회의 40분+수석대표 접촉 10분+종결회의 25분→총 1시간 15분 논의 만에 ‘이산가족 상봉행사 예정대로 진행’ 합의. 북한이 이처럼 하루 만에 태도를 사실상 180도 바꿨다. 1차 고위급 회담에서 한미 연합군사연습(키리졸브와 독수리연습) 연기를 주장하고 그 기간에 이산가족 상봉행사(20∼25일)를 못 연다던 북한이 왜 뒤늦게 고개를 숙인 걸까. 북한 전문가들은 “‘되로 주고 말로 받기’ 위한 전략전술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관측했다. 예정됐던 행사(이산가족 상봉)를 뒤늦게 트집 잡은 뒤 원래대로 하기로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한국 정부는 “이른바 ‘외상 상봉’이란 있을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 ‘양보의 모양새’가 필요했던 북한 북한 측 수석대표인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은 이번 회담의 의미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진솔하게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한국 측 수석대표인 김규현 대통령국가안보실 제1차장에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렇게 진지하고 진솔하고 싶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느냐는 시각이 많다. 한 관계자는 “북한은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올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남북관계 개선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적, 외교적 고립이라는 난국을 탈피하기 위해서도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북한이 한국에 극적으로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향후 남북관계 현안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대남전략일 가능성이 있다. 1차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 북한 측 대표단이 평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개성에서 평양의 훈령을 받아 태도를 바꾸는 모양을 취한 것도 이번 합의가 ‘김정은의 통 큰 양보’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북한은 12일 1차 회담에서도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북한이 양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그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현 제1차장은 14일 브리핑에서 “남북 합의에는 어떤 조건도 붙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향후 남북대화에서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양보해줬으니 한국도 양보해야 한다’는 식으로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국은 “대통령 마음이니 믿어라” 한국 측은 고위급 회담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이해시키고 남북관계의 진전이 박근혜 대통령의 뜻임을 북한에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차장은 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을 중시한다. 흩어진 가족의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겠느냐. 대통령은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통령의 마음이니 믿으라”고 설득했다. 원동연 부부장은 “대통령이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니 믿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 차장은 사후 브리핑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제대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에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북한도 ‘그러면 그렇게 얘기하니까 한번 믿어보자’는 차원에서 합의를 했다”고 말했다.○ 청와대-통전부 회담 굳어지나 남북은 이날 서로의 관심사를 협의하기로 하면서 조만간 남북 고위급 회담을 다시 열기로 했다. 이 회담에서 성과가 나올 경우 청와대-통일전선부 간 이른바 ‘박근혜-김정은의 대리 만남’이 정례화 또는 상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남북 간 상시대화 채널 구축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국정과제이다. 한국 정부로서도 남북 고위급 회담의 정례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간 실무접촉 수준으로는 남북관계의 포괄적 진전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김규현-원동연 채널’이 남북관계 개선의 진전 속도에 따라 더 높은 급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직접 북한을 상대하는 이런 식의 ‘첫 단추’가 과연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

《 “얘, 얘, 이리 오라우. 어서 오라우. 온다. 온다. 아이고, 우리 둘째 저기 온다.”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잠자던 어머니가 갑자기 눈을 뜨며 허공에 외쳤다. 아들 김기암 씨(56)가 깜짝 놀라 물었다. “어머니, 도대체 누가 온다 그래요?” “누구긴 누구냐, 내 둘째 동생 저기 있잖니. 아이고, 저기 다섯째도 오는구나. 저기 온다. 온다. 기암아, 빨리 데려와라.” 어머니는 팔을 내밀어 허우적댔다. 김 씨가 울먹이며 말렸다. “어머니, 제발 정신 차리세요. 누구를 데려오라 그래요?” 어머니 뺨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치매 1등급. 셋째아들 김 씨밖에 못 알아보는 왕소군 할머니(84)는 64년 전 북녘의 고향일지, 4년 전 금강산의 마지막 이산가족 상봉장일지 모르는 그곳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지난달의 일이다. 김 씨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남북은 14일 고위급 회담에서 4년 만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20∼25일) 개최에 극적으로 최종 합의했다. 》 ▼ “동생 두고 또 나혼자 왔어”… 어머니 목소리가 떨렸다 ▼“이번엔 정말 만날수 있다는구나”#1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겨울, 아홉 자매 중 맏이였던 왕 할머니는 고향 평양에 부모님과 여덟 여동생을 남겼다. 지주 집안 출신 남편과 함께 스무 살 새댁은 눈보라를 헤치며 38선을 넘었다. 전쟁이 끝나면 금방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분단이라는 날선 칼날에 갈가리 찢겼다. 홀로 가족을 떠났다는 죄의식이 30년을 괴롭혔다. 왕 할머니는 1980년대 이산가족 찾기 캠페인 때 TV 방송국을 찾았다. 혹시라도 여동생들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현실은 희망을 저버렸다. 다행히 왕 할머니 외삼촌의 아들을 찾았다. 김 씨는 어머니가 전화기를 부여잡고 울던 그때의 TV 화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 재회의 희망은 비로소 현실이 됐다. 가장 최근 이산가족 상봉행사였던 2010년 10월 제18차 행사에서 둘째와 다섯째 여동생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다리 수술을 받았지만 치매기 전혀 없이 멀쩡했던 왕 할머니는 소녀처럼 들떠 여동생에게 선물할 점퍼를 골랐다. 금강산으로 향하던 날, 어머니는 김 씨를 불렀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기암아, 나 이제 정말 동생 만나러 간단다. 내가 맏이인데 여덟 형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정말 궁금하구나.”“黨에서 동생 맞다니 그리 아시오”#2 두 살 터울의 둘째 동생, 여덟 살 터울의 다섯째 동생. 막상 만난 동생들이 자신보다 쭈글쭈글 늙어 보이자 왕 할머니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언니 걱정 말라요. 잘 먹고 잘 살아요.” “아이고, 얘들아. 나는 그렇게 안 보인다. 어쩌다 이렇게 됐니…. 입은 한복 저고리는 깨끗한데 옷과 몸이 맞질 않아….” 왕 할머니는 동생들한테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왕 할머니가 38선을 넘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맏딸이 보고 싶다며 집을 나갔다가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왕 할머니를 괴롭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셋째인지 넷째인지 동생이라며 나온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통 기억이 안 났다는 거예요. 어머니가 화를 내시며 하신 말이 이랬습니다.” “이 간나 새끼들이 앞잡이를 붙여 놓은 거야. 둘째에게 귓속말로 ‘못 보던 애인데 누구냐’고 물으니 ‘언니 신경 쓰지 말라요. 여기서 셋째라면 셋째인기요’라고 하는 거야. 아이고, 동생들이 불이익을 받을까 봐 화도 못 내고….” 그 답답함에 상처는 더 깊어졌다.가족 만난뒤 충격… 치매가 왔다#3 상봉행사를 마치고 서울 집으로 돌아온 날 저녁 어머니는 계속 울었다. “어머니가 집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7시 반이었습니다. 제가 외출했다 밤 10시에 돌아왔는데 그때까지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계셨어요. 서로 부여잡고 한참을 같이 울었어요.” 그날 이후 왕 할머니는 동생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이렇게 됐다는 자책이 심해졌다. 한 달을 매일같이 울었다. 몇 개월간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 한술 뜨다가 “걔들은 뭘 먹고 살까” 하며 밥맛이 없다고 수저를 내려놓기 일쑤였다. 동생들을 찾는 헛소리가 늘더니 말 순서가 틀리기 시작했다. 상봉행사 서너 달 뒤, 치매 4등급 판정을 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도로 심신이 쇠약해졌다. 2년 뒤인 2012년 치매 2등급으로 악화되더니 지난달에는 급기야 1등급 판정이 나왔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아들 김 씨와 함께 극심한 가난과 싸우고 있다. 거동을 거의 못하고 대부분을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지금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때론 그때 상봉행사에 안 보내드렸으면 하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듭니다. 자꾸 그때 생각하며 우시니까…. 한번은 꿀꿀이죽을 먹어도 동생들과 같이 먹고 잤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누구한테서 흠씬 두들겨 맞은 것보다 더 마음이 아픕니다. 가슴이, 가슴이 미어집니다….” 결국 김 씨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상봉뒤 절반이 스트레스 장애 겪어#4 2000년 8월 제1차 상봉을 시작으로 2010년 10월 제18차 상봉까지, 분단으로 흩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 한국인은 1만1800명이다. 대한적십자사에 명단을 올린 이산가족 등록자가 12만9264명이니 10.9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행운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리운 북녘의 가족과 상봉한 이들은 단 한 번밖에 가족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통스러워한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하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동아일보는 2009년 대한적십자사의 도움으로 그해 열린 제17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한 남측 이산가족 200명을 전수조사했다. 당시 상봉자 중 절반이 상봉 후유증으로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는 20∼25일로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앞두고 대한적십자사와 납북자가족모임의 도움으로 ‘단 한 번의 기회’ 때문에 힘겨워하는 이산가족 상봉자와 그 가족들을 만났다. “살아있어줘서 고마워요”#5 왕 할머니가 여동생들을 만나던 2010년 10월, 북한에 막내 여동생을 남겨둔 노인이 한(恨)을 풀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2009년 9월 여동생을 만나고 돌아온 지 1년여 만이었다. 고(故) 송재봉 할아버지의 나이 82세 때였다. “아버지는 1951년 1·4후퇴 때 북녘에 남기고 온 부모님과 여섯 남매를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움에 가슴이 답답할 때면 홀로 임진각을 찾으셨어요,” 아들 송성호 씨(55)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평생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로워했다. 2009년 마침내 막냇동생과의 재회를 앞둔 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했다. 손목시계, 금반지에 화장품까지 동생에게 줄 선물을 한가득 준비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아버지를 위해 아들 송 씨가 금강산에서 열린 17차 상봉행사에 동행했다. 상봉 첫날, 수많은 북한 측 참석자 중에 유독 아버지와 닮은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와 고모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두 사람은 눈물로 범벅이 됐다. “오빠, 건강하게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요.” 아버지가 1·4후퇴 때 세상을 떠난 줄 알았다는 고모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아버지는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다른 형제들 소식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부쩍 말이 없어졌다. 가족들과 대화하지도, 외출하지도 않았다. 고모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 한참 바라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타고난 강골 체질이셨는데 상봉행사 뒤 눈에 띄게 수척해지셨습니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어요.” 송 씨는 깊은 회한에 잠긴 듯 먼 산을 바라봤다.“엄마!”… 엉엉 울어버린 63세 아들 #6 송 할아버지가 막냇동생을 만난 2009년. 그해 2월 북한에 납북된 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88세 할머니가 눈을 감았다.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아들을 만난 지 2년이 채 안 된 겨울이었다. 고 이동덕 할머니의 아들 김홍균 씨(2007년 5월 15차 상봉 당시 63세)는 1968년 5월 속초항에서 대성호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납북됐다. 아들의 납북 소식에 실신했던 어머니는 그로부터 꼭 39년 만에 아들과 재회했다. 어릴 적 형과 뒹굴었던 동생 강균 씨(60)도 함께였다. “형님이 나이에 비해 많이 늙어보였습니다. 이가 다 빠지고…. 어머니와 차이가 없을 정도였어요.” “내가 어머니를 마침내 만나려는 징조였는지 지난겨울에 많이 아팠어요.” 철강회사에서 일한다는 아들, 굳은살이 너무 많이 박여 돌덩어리처럼 변한 아들의 그 말에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졌다. 상봉 둘째 날 개별상봉. 단체상봉 때 유독 어색해하던 홍균 씨가 어머니와 동생의 숙소 문을 열자마자 달려와 어머니를 힘껏 껴안았다. “엄마!” 단체상봉 때 북한을 찬양하며 단답형으로 답하던 홍균 씨. 그 홍균 씨가 어머니를 부여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 “너희 수령 지시 잘 들으렴… 어쨌든 살아야 또 만나지” ▼“상봉 장면, 40년전 꿈과 똑같더라”#7 집으로 돌아온 뒤 이 할머니는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곤 했다. 매일 나가던 경로당에도 잘 안 나갔다. “내가 지금 너랑 있어야겠다. 제발 어서 오너라….” 전화기 너머로 힘없이 떨리는 어머니의 목소리. 강균 씨는 자꾸 자신과 있어야겠다는 어머니 때문에 일하다가 집으로 불려 들어가기 일쑤였다. 상봉 뒤 주체할 수 없는 허탈감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찾아온 우울증. 그 어두운 그림자가 어머니를 덮쳤다. 상봉 얼마 뒤 강균 씨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어머니가 이동덕 할머님 맞으세요?” “예, 왜 그러시죠?” “어머님이 경로당을 가시다가 정신이 흐려져 길을 도저히 못 찾겠다고 도움을 청하셨어요.” 강균 씨의 숨이 턱 막혔다. 상봉 뒤 어머니는 40년 전 꾸었다는 꿈을 자꾸만 얘기했다. “솔밭이야. 홍균이가 한복을 입고 솔밭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거야. 억울한 표정으로. 종아리에 못이 박혀 있었어. 그래서 내가 쑥 빼줬지. 그랬더니 홍균이가 너무나 기뻐하더라. 같이 손잡고 행복했어. 그런데 얘야. 상봉 때 말이다. 홍균이랑 삼일포로 나들이를 가지 않았더냐. 거기 가는 길에 솔밭이 있었다. 내가 꿨던 꿈을 생시로 겪었어. 너무 똑같아. 희한해….”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면서도 그 얘기를 했다. “이제 홍균이를 다시 만나기 어렵겠지? 통일이 돼야 하는데, 살아생전엔 다시 못 만나겠다. 홍균이가 타향에서 얼마나 괄시를 받을까 걱정이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형의 소식을 물었다.“문학소년 형의 모습 간데없고…”#8 “형님은 원래 뱃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을 도우려 배를 탄 지 한 달 만에 북으로 끌려갔어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형님이, 형님이 없어진 겁니다….” 강균 씨는 3남 4녀의 맏이인 형이 참 든든했다. 큰형은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시를 좋아하던 문학소년이었다. 펜대에 먹물 찍어 방바닥에 엎드려 시를 쓸 때면 형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밭에서 같이 일하고 개천에서 같이 수영하던 형. 인정 많은 큰형은 가족의 삶을 책임지려고 바다로 나갔다. “그 순수한 형님의 모습은 간데없고 할아버지가 돼 만나니 감정이 북받쳤지요.” 당시 오열하던 강균 씨의 모습은 사진으로 찍혀 전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아픈 동생 손도 못잡아주고 작별” #9 이 할머니와 강균 씨가 홍균 씨를 만난 2007년 5월의 상봉장. 다른 편에선 조상순 할머니(77)가 북한에 두고 왔던 언니와 여동생을 만나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1950년 헤어진 지 57년 만이었다. 조 할머니는 6·25전쟁 발발 직전 고향인 황해도 장단군에서 서울 이모집에 놀러왔다가 전쟁으로 가족들과 생이별했다. 언니 상희 씨(79)와 동생 상옥 씨(75) 얼굴에 파인 주름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부질없는 흔적이 조 할머니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상봉 둘째 날, 동생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먹은 게 잘못돼 쓰러졌다고 했다. 조 할머니가 한국에서 가져온 ‘가스활명수’를 들고 구급차로 달려갔다. 구급차의 북한 의사가 조 할머니를 가로막았다. “우리도 이런 거 많으니 줄 필요 없소!” 구급차에 누워 링거 주사를 맞는 창백한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 할머니는 속이 타들어갔다. 상봉 마지막 날, 동생은 떠나는 언니에게 멀리서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헤어진 동생의 소식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 할머니는 듣지 못했다. 구급차에 맥없이 쓰러져 있던 동생이 떠오를 때마다 조 할머니는 억장이 무너진다. “아픈 동생의 손도 제대로 못 만져 봤어. 만나고 온 뒤 마음이 더 아파. 약조차 못 먹이고 온 게 마음에 자꾸 걸려. 그거라도 먹이고 왔으면….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나았을까….”“고향도 가고 성묘도 하게 해줘야”#10 윤채금 할머니(81)는 이들이 상봉장에서 오열하는 모습을 TV로 보며 함께 울었다. 윤 할머니는 2001년 2월 3차 이산가족 상봉 때 막냇동생을 만났다. “상봉 뒤로 상봉행사 때마다 잊지 않고 TV로 챙겨 봤지. 어머니 살아 있고, 아버지 살아 있어 서로 붙들고 눈물 흘리는 거 볼 때마다 나도 어머니 살아생전에 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어요. 그 모습들 보며 같이 눈물 뚝뚝 흘리면 아이(자녀)들이 채널을 돌렸지.” 윤 할머니는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함경남도 이원군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피란했다.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은 고향에 남았다. 아버지는 큰딸에게 석 달만 피해 있다가 다시 오자고 했다. 석 달이 50년으로 둔갑했다. 당시 어머니 배 속에 있던 아기. 윤 할머니가 상봉행사에서 만난 막냇동생이다. “아이고, 네가 우리 아버지 아들이 맞느냐?” “누님이, 우리 어머니 딸이 맞나요?” 윤 할머니의 아버지가 세상 떠나기 전까지 남쪽 생활 내내 손이 새카매지도록 화랑 담배를 피우며 그리워하던 아들, 내 막냇동생.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헤어질 때 네 살이던 남동생도 죽었다. 상봉장에 나오지 못해 죽은 줄 알았던 여동생은 홀로 막내를 키우다 시집도 늦게 갔다고 했다. 남쪽으로 온 지 얼마 안 돼 가족들은 집을 빼앗긴 채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윤 할머니는 기가 막혔다. “내가 나오지 않고 빨갱이에게 시집갔으면 어머니 동생 다 살리지 않았을까. 죄 지은 마음에 괴로웠어요. 허탈한 마음뿐이었지.” 막내의 태도도 윤 할머니를 실망시켰다. “옷을 가져갔더니 수령님이 먹여주고 입혀주니 필요 없다는 거예요. 농사짓는다는 손은 시커멓게 터져 있는데.” 섭섭했다. 하지만 윤 할머니는 막내가 그렇게 살아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막내야. 너는 네 나라 법이 있고 나는 내 나라 법이 있다. 그래, 지금처럼 수령님 지시 따라 충실히 살아라. 누나 봤다고 마음 흐트러지지 말고. 법 어기면 안 돼.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그렇게 살아야 통일 돼 우리 꼭 다시 만날 수 있지 않겠니….” 그렇게 서울로 돌아왔다. 동생이 밥 굶을 것 생각하면 떨어진 밥알도 다시 주워 먹었다. 그토록 보고 싶던 어머니. 막내는 어머니 사진이 하나밖에 없다고 해 가져오지 못했다. 죽어서 어머니를 볼 수 있다면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상봉 때 막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마루 벽 액자에 끼워놓고 보기만 하면 울자 자녀들이 사진을 앨범에 넣었다. “속내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한 번짜리 상봉, 이제 안 돼요. 고향 가게 해줘야 하고 어머니 산소 찾게 해줘야 해요. 그래야 내 눈 감을 수 있지 않겠어요.”“한번 보고 끝… 잔인하지 않소”#11 윤 할머니가 막냇동생을 만난 3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4차 행사는 원래 3차 행사와 같은 해인 2001년 9월에 열리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북한이 일방적으로 무산시켰다. 그 일이 한의수 할아버지(83)에게 천추의 한이 됐다. 한 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옹진군. 6·25전쟁 때 그는 아버지, 첫째 남동생과 남쪽으로 왔다. 누나와 여동생, 막내 남동생은 고향에 남았다. 옹진군이 북한 영토가 되면서 이들은 영영 만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2001년 9월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한 할아버지는 51년 만에 만나는 형제들 수만큼 순금반지와 시계를 준비했다. 하지만 상봉행사는 무산됐다. 다음 해인 2002년 4월 4차 상봉행사가 열렸지만 한 할아버지는 정성껏 마련한 반지와 시계 모두를 형제들의 손에 끼워줄 수 없었다. 그사이 누나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한 씨는 다섯 살 어린 여동생만 만날 수 있었다. “동생을 만난 지 12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검은 손톱을 잊을 수가 없어.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영양실조 때문이라는 거야….” 동생은 상봉 때 호텔에서 나온 음식을 “속이 좋지 않다”며 거의 먹지 못했다. 한 할아버지는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리다. “다시 한 번이라도 동생 소식을 듣고 싶지만 방법이 없어. 어떻게든 편지를 보내보려 했지만 북한 당국이 알고 동생을 해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들었지. 상봉 행사 뒤 영영 못 만나게 하는 것, 너무 잔인한 것 같아….”에필로그 윤채금 할머니는 헌 옷을 모은다. 막냇동생을 만난 뒤로 13년째다. 그렇게 모은, 남이 버린 헌옷이 집 다락을 가득 채웠다. 여전히 헌 옷은 어김없이 다락에 올린다. 언젠가 막내가 활짝 웃으며 옷을 받아들 날을 기다리며. 납북된 형 김홍균 씨를 북한에 둔 강균 씨는 편지 한 통을 7년째 간직하고 있다. 상봉 전날 밤, 강균 씨는 호텔에서 형과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다섯 장의 편지를 밤새 써나갔다. 상봉 둘째 날 숙소에서 가족끼리 만날 때 슬며시 편지를 건넸지만 형은 주변 눈치를 보다 결국 받아 들지 못했다. 그는 부치지 못한 편지를 고이 접는다. 언젠가 큰형의 굳은살 박인 손에 편지 쥐여줄 날을 기다리며.윤완준 zeitung@donga.com·백연상·권오혁 기자}
정부는 20∼25일 금강산에서 열릴 예정인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관련해 ‘북한이 행사 진행을 보장하는 확실한 약속을 하지 않으면 상봉단을 금강산에 보낼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이런 확약을 하지 않으면 상봉 행사 무산도 감수하겠다는 방침인 셈이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13일 “상봉 행사는 반드시 20∼25일에 열어야 한다”며 “24일부터 시작되는 키리졸브 기간에도 상봉 행사를 진행한다는 북한의 명확한 확약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상봉 행사 뒤로 연기하라’는 북한의 주장에는 어떤 타협이나 절충안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12일 접촉(회담)에서 한국 측이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이산가족 상봉 행사(20∼25일) 뒤로 연기하라’는 북한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자 북한 측 대표단은 ‘올라가 그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북한 측 대표단은 13일 “다시 만나자”는 뜻을 한국에 보내왔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지시를 다시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남북 고위급 2차 회담이 14일 오전 10시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열린다. 북한은 고위급 접촉 수석대표인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명의의 회담 속개 제의 통지문을 김규현 대통령국가안보실 제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 앞으로 보냈다.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

북한의 ‘회담 공세’가 시작된 것일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자, 7년 만의 남북 고위급 회담이었던 12일의 남북 판문점 접촉이 가시적 성과 없이 끝난 지 12시간 만에 북한은 ‘회담 속개’를 제의해온 것이다. 13일 낮 12시에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3시간 뒤에 만나자고 알려왔다. 속사포처럼 회담 제의를 쏟아낸 것이다. 결국 남북 간 협의를 통해 ‘14일 오전 10시’로 조정됐지만 북한의 적극적이면서도 신속한 회담 제안은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대화 파트너로 청와대를 꼭 찍어 회담장으로 끌어낸 뒤, 북한의 통일전선부와 한국의 대통령 직속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간의 ‘비대칭 회담’을 정례화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할 말 많은 북한, 들어 보려는 한국 북한이 12일에 이어 14일 고위급 회담을 잇달아 갖는 것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주장한 ‘북한식 남북관계 개선’의 결과물을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 내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장성택의 전격 처형 이후 중국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더 어려워지고,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도 심화되는 조짐을 보이는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 진전으로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 고위급 회담에서 한국 측이 키리졸브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상봉행사 뒤로 연기할 수 없음을 강조하자 북한 측 대표단은 “올라가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김정은의 구체적 지시를 받고 다시 협의해 보자는 뜻으로 읽힌다. 남북한 대표단이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의 의중을 다시 전달받아 벌이는 14일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 등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은 “앞으로 고위급 회담에 NSC 사무처가 이번처럼 전면에 계속 나가진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청와대에 직접 얘기하고 싶다고 하니 ‘그럼 한번 들어보자’는 취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냉탕 온탕 오간 12일 회담 분위기 12일 첫 고위급 회담에서 한국 측 수석대표인 김규현 대통령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북한에 비핵화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고 비핵화를 행동으로 보이라고 강조했다. 김 차장은 오전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북한에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가능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취지와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북핵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 측 수석대표인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은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고 북한도 비핵화를 추진하고 있다’면서도 “기본적으로 핵문제는 남북 간에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의 신년사, 북한 국방위원회의 중대제안, 김정은 특명에 따른 북한 국방위의 공개서한을 차례로 거론하면서 비방 중상 중단, 군사적 적대행위 중지를 주장했다. 북한 측이 이번 회담이 김정은의 뜻임을 암시하는 발언을 계속했으나 김정은의 친서나 별도 메시지를 가져오지는 않았다고 한다. 북핵 문제에 이견을 보이긴 했지만 이날 오전까지는 서로 입장을 설명하거나 제기하는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한국 측은 무력도발 중단 등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조치의 필요성,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과 남북한 철도 연결을 통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계획도 설명했다. 오후 전체회의 때 남북이 공동언론보도문을 만들기로 한 뒤 북측이 “예정대로 이산상봉 행사를 진행하되 군사훈련 기간 중에는 상봉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게 원칙적 입장”이라는 점을 보도문에 넣겠다고 주장하면서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원동연은 ‘최고존엄’과 북한 체제에 대한 한국 언론의 비방 중상 중단도 보도문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측은 “이산가족 상봉은 중대제안 정신에 따라 우리가 남측에 양보한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하며 그에 대해 한국이 군사훈련 연기로 북한에 보상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오후 9시 45분경 수석대표 접촉 뒤 2시간 동안 정회하며 최종 합의를 시도했으나 평행선을 달리자 양측은 더 만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한국 측은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향후 회담에 대해 협의하자”며 여지를 남겼다.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

12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남북 고위급 회담은 양측이 각자 제기하고 싶은 의제를 모두 꺼내 놓고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부 관계자는 “테이블에 남북관계에서 논의될 수 있는 거의 모든 현안을 올렸다”며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한 논의는 비교적 잘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남북은 서로 제기한 문제와 함께 공감대를 이룬 부분을 공동언론보도문에 담기로 하고 문구 조율에 돌입하면서 진통이 시작됐다. 양측은 각자의 의견이 더 담기도록 밀고 당기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13일 0시를 넘기고 말았다. 12일 오전 10시 5분에 시작된 회담은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며 2번 이상의 전체회의와 2차례 이상의 수석대표 회의를 잇달아 했다. 정부 관계자는 “회담 분위기는 진지했고 많은 얘기를 나눴으나 남북 간 의견 차이는 여전히 컸다”고 말했다. ○ 쉽게 꺼내놓은 남북 메뉴(현안), 주워 담기는 힘들었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의지를 보이라고 요구하면서 강조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이다. 비핵화가 진전되면 북한에 대규모 경제협력과 인프라를 제공하는 ‘비전코리아 프로젝트’가 시작될 수 있음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때도 북핵 문제를 빠뜨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정부는 북한에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과거 도발 행위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도 요구해 왔다. 이날도 “북한이 책임 있는 조치를 보이면 서해 등에서 군사적 충돌을 막을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남북회담을 열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산가족과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한 전면적인 생사 확인도 한국 정부가 중요하게 북한에 요구해 온 사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욕을 보인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남북한 철도 연결을 통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의지도 이날 북측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도 그동안 주장해 온 문제들을 대부분 꺼내놓았다고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북한은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 의지는 변함없다”고 주장하면서도 핵개발을 “미국의 핵 위협에 대한 억제수단”이란 논리를 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 이후 취해진 대북제재 5·24 조치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이 밤늦도록 난항을 겪은 것에 대해 북한의 대남담당 부서인 통일전선부를 상대로 청와대가 직접 회담에 나선 것도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당국자는 “최고 결정권자인 청와대가 공개회담에 나가서 북한과 마주 앉으면 책임을 누구에게 미룰 수도, 시간이 필요하니 다음에 만나자고 요구할 수도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비공개 요구했던 북한, 고위급 접촉 신속 보도 북한은 8일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면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에서 비공개로 만나자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 비정상 관행의 정상화’ 차원에서 ‘공개 접촉’을 역제의해 이를 관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12일 이같이 전하고 “어차피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을 들어 북측을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비공개를 원했던 북한은 12일 고위급 접촉이 시작되자 곧바로 이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고위급 접촉이 시작된 지 1시간여 만인 오전 11시 24분경 회담 개최를 전하면서 “원동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고 국방위원회 성원들이 참가해 북남(남북)관계와 관련한 문제들을 협의한다”고 보도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
북한이 12일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키리졸브 등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연계시키며 24일로 예정된 군사연습을 이산가족 상봉 행사(20∼25일) 이후로 연기할 것을 요구했다. 7년 만에 열린 고위급 회담은 특별한 성과 없이 종료됐다. 정부는 “순수한 인도주의적 사안과 군사적 사안을 연계하는 북한 측의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며 “북한은 자신들이 최고 존엄이라 부르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북한 체제에 대한 한국 언론 보도를 트집 잡으며 한국 정부가 언론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고 밝혔다. 한국 측은 “언론에 대한 정부의 통제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남북은 다른 주요 현안에서도 기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 측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다. 남북은 이날 논의된 사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판문점에서 열린 이날 회담에서 남북은 이산가족 문제부터 북핵 문제까지 광범위한 남북 현안에 대한 관심과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 양측은 서로 제기한 문제와 함께 공감대를 이룬 부분을 공동언론보도문에 담으려 했으나 12일 오후 11시 35분까지 문구 조율에 난항을 겪다가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회담이 끝났다. 수석대표인 김규현 대통령 국가안보실 1차장은 회담장인 판문점으로 향하기에 앞서 “남북관계 사안을 중심으로 하지만 저희로서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합의대로 잘될 수 있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