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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는 (조선총독부의) ‘총독’이라고 불렀죠. 올 때마다 하도 간섭하고 시키는 게 많아서 잔뜩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획재정부 최희남 국제금융정책국장은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국제통화기금(IMF) 담당 사무관이었다. 최 국장은 당시 한국의 구제금융을 위한 협상실무를 진두지휘하며 한국에 혹독한 구조개혁을 요구했던 휴버트 나이스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을 ‘점령군 수장’의 모습으로 기억했다. 짧게 깎은 머리에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나이스 국장은 장미셸 캉드쉬 당시 IMF 총재와 더불어 한국에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이 방한할 때마다 공항에서부터 깍듯하게 영접했다. 또 벼랑 끝에 몰린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했던 구제금융을 받으려고 이들에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구제금융 조건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해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선량한 친구처럼 보이는 나이스 국장의 얼굴이 외환위기 땐 마치 호랑이처럼 보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지금. 그렇게도 한국을 떨게 했던 나이스 전 국장의 역할을 이젠 거꾸로 한국인이 맡게 됐다. IMF는 17일 연말에 은퇴하는 아누프 싱 아태국장의 후임으로 이창용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53·사진)를 지명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지명자는 서울대 교수를 거쳐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후에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ADB에서 활동하는 등 실무경력이 많아 ‘현실참여형’ 경제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인이 IMF 아태국장에 지명됐다는 소식에 IMF 체제를 경험한 베테랑 경제관료들은 한목소리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글로벌 경제 무대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 지역 등의 경제조사 및 감시, 금융지원을 담당하는 아태국은 IMF의 5개 지역국 중 하나이며 아태국장은 총재와 4명의 부총재에 이어 실무급 최고위직으로 평가받는다. 정부 관계자는 “나이스 전 국장이 한국에 그러했듯이 아태 지역 내에 경제위기에 몰리는 나라가 생기면 고강도 구조개혁과 정책 권고를 통해 그 나라 경제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또는 한국계로 국제금융기구 고위직에 오른 사례는 정부 파견직을 제외하면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내년 임기를 시작하는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경제자문역 겸 조사국장(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등이 있다. 이 지명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간 데다, 현오석 부총리가 추천서를 써주는 등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이런 영광을 얻게 됐다”며 “아시아 경제가 앞으로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정부가 다음 달 내놓는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의료 교육 레저 등 서비스산업 분야의 핵심 규제를 풀어 내수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함께 도모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근혜 정부 첫해가 정부 재정을 대거 풀어 위기 탈출에 집중한 시기였다면 내년은 민간 부문이 정부의 바통을 이어받아 경기회복을 이끄는 해가 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는 특히 내수와 직접 연관이 있는 서비스 분야의 규제를 풀어야 기업 투자가 늘고 체감경기가 살아나는 경기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 가운데 일부 방안은 부처 간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았거나 이념적 사회적 논란의 소지를 제공할 수 있어 정책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가 있다.○ 해외 수요 국내로 돌려 일자리 만들기 정부가 구상하는 이번 대책의 주된 목적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수요를 국내로 돌리고 외국인 관광객도 더 많이 끌어들임으로써 회복 기미를 보이는 경기의 군불을 지피는 데 있다. 이번에 국내 외국인 학교의 내국인 학생 비율을 높이려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유학·연수 적자액은 43억 달러나 됐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쓴 유학연수 비용보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며 쓴 돈이 그만큼 더 많은 것이다. 정부는 국제학교의 입학 규제를 풀어주면 한국인의 유학 수요를 국내로 돌려 내수경기 진작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투자와 국제학교 설립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교육 의료 분야의 규제 완화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해 최근 ‘불황의 무풍지대’로 우뚝 선 제주도의 성공사례를 정부는 주목하고 있다. 카지노 분야의 규제 완화도 고급 일자리를 늘리고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방안으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영종도에 카지노가 들어섰을 때 고용창출 효과가 5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 베트남 등이 카지노를 통한 관광객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상황에서 중국 관광객을 대거 끌어들여야 하는 한국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조세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하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는 불법도박의 규모를 감안할 때 카지노 규제를 풀어 세원을 양성화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밖에도 관광산업과 관련해 정부는 재계 의견을 반영해 유흥시설이 없는 호텔을 학교 주변에 지을 수 있도록 하고 경사가 급하지 않은 산에는 숙박시설 건립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기업들은 회원제 골프장의 개별소비세나 관광숙박시설에 대한 교통유발부담금을 감면해 달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영리병원 이슈는 우회적으로 풀기로 정치·사회적으로 가장 민감한 보건의료산업 분야는 논란을 최소화하면서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간 ‘투자개방형 병원 전면 도입’이라는 정공법을 고집하다가 지난 10년 동안 이슈가 한 발짝도 진전하지 못한 점을 의식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의료 분야 종사자의 말을 들어보면 영리병원 전면 도입에 찬성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이런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궤도를 대폭 수정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병원의 해외 환자 유치를 돕고 외국인 환자의 입원 한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관련 규제를 풀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고급의료 서비스를 많이 필요로 하는 외국인 가운데 한국 병원을 찾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지금도 외국인 환자 병상 비율이 1%도 채 안 되는데 5%인 현재 한도를 10%로 올린다고 해서 정책 실효성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도 있다. 척추교정(카이로프랙틱) 전문가, 놀이 및 음악 미술 치료사 등에 국가공인 자격증을 부여해 해당 분야의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는 환자들이 의료 현장에서 이런 전문가들의 도움을 이미 많이 받고 있는 만큼 일정 자격요건을 둔 채 양성화하면 소비자의 선택권도 크게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국민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의료계의 반발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다. 창조경제 분야에서는 업계의 재하도급 관행을 금지하는 정책이 검토되고 있다. 소프트웨어업계에서는 일감을 따낸 큰 기업들이 가격을 낮춘 뒤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건설업과 달리 수주 기업이 프로젝트 전부를 다른 업체에 위탁할 수 있고, 하도급 단계에 제약도 없어 하청에 재하청이 꼬리를 물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주 업체가 다른 업체에 하청을 주더라도 일감의 50% 이상을 넘기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세종=유재동 jarrett@donga.com·홍수용 기자김용석 기자}
정부가 각 부처 산하 공공기관에 이어 전국 388개에 이르는 지방 공기업의 부채와 방만경영 문제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개혁에 나서기로 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차관은 26일 ‘시·도 경제 협의회’에서 “지방에서도 정부의 정책방향에 맞춰 소속 공기업의 부채나 방만경영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강도 높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전체 지방 공기업들의 부채는 72조5000억 원으로, 2006년(35조7000억 원) 이후 6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났다. 지난해 이들 기업의 적자규모도 1조5000억 원으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았고, 이에 따라 지방 공기업들의 부채비율도 2006년 60.0%에서 지난해 77.1%로 높아졌다. 지방 공기업의 부채 증가는 공공기관의 빚이 불어나는 것과 원인이나 과정이 대체로 비슷하다. 우선 각 지자체가 물가관리를 위해 상·하수도와 지하철 등 공공요금을 찍어 누르면서 공기업들의 수익기반이 무너졌다. 지난해 지자체들의 하수도 처리 요금은 원가의 38.1% 수준에 불과했고, 전국 7개 도시철도공사 요금도 수송비용의 60.8%에 그쳤다. 특히 작년 한 해만 8000억 원의 적자를 본 도시철도 부문은 고령화에 따라 무료승차 비율이 늘어나면서 적자가 앞으로도 계속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각 지자체가 산하 공기업들을 동원해 무리하게 개발 사업을 밀어붙인 것도 이들의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끼쳤다. 부채비율이 350%에 육박하는 서울시 SH공사는 분양실적 부진, 임대사업 손실 등으로 지난해에만 5354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봤다. 한편 정부는 내달 초 발표하는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을 통해 민간기업과 견줬을 때 지나친 직원복지 사례로 언급되는 몇 가지 제도들을 고쳐나가기로 했다. 대학생 자녀의 학자금을 저리융자 대신 무상지원하는 제도나, 업무상 또는 개인적 이유로 직원이 사망했을 때 가족들에게 채용 혜택을 주는 ‘고용세습’ 관행 등이 주된 개혁 대상이다. 정부는 앞으로 이런 제도를 유지하는 기관들을 매년 경영평가에서 심사해 임직원의 성과금을 삭감하는 등 제재를 가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 밖에 내년부터 공공기관장과 소관부처 장관이 경영성과협약을 체결해 기관장 임기 중 부채 감축과 방만경영 관리 여부를 평가하도록 할 계획이다. 세종=유재동 jarrett@donga.com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올 들어 9개월 연속 출생아 수가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1.3이었던 합계출산율도 올해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25일 통계청의 인구동향에 따르면 9월 출생아는 3만72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500명(10.8%) 줄었다. 전년 동월 대비 출생아 수는 올해 1월부터 9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 1∼9월 누적 출생아 수도 33만69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6만9800명)에 비해 8.9% 적다.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앞으로 분양 광고가 실제와 크게 다르거나 중대한 하자가 있는 아파트에 대한 계약을 해지하기가 쉬워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4일 입주자의 계약 해지에 대한 권리를 이전보다 강화한 ‘아파트 표준 공급 계약서(표준약관)’ 개정안을 한국주택협회 등 각 사업자단체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기존 약관은 구체적인 항목 없이 ‘사업자의 입주 지연’이 발생할 때에만 입주자의 계약 해지 권한을 보장하고 있어서 사업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입주자로서는 민사소송 등을 거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입주예정일로부터 3개월을 초과해 입주가 지연된 경우 △분양주택의 하자가 중대하고 보수가 곤란한 경우 △분양광고 내용과 실제 건축물의 차이가 현저한 경우 입주자의 계약 해지가 가능하도록 했다. 개정약관은 또 계약이 해지됐을 때 돌려받는 분양대금의 이자율도 명문화했다. 지금까지 사업자가 이자율을 임의로 낮게 정하거나 아예 이자를 주지 않기도 했지만 앞으로는 사업자가 계약 해지로 매매대금을 반환할 때는 법정이율(현재 민법 연 5%, 상법 6%)에 해당하는 이자를 입주자에게 함께 돌려줘야 한다.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세계 조선업계 1위인 현대중공업은 고부가가치 선박인 시추선을 2011년 11척 수주했지만 지난해는 단 2척밖에 수주하지 못했고, 올해 들어서는 수주 실적이 제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시추선 발주 물량이 급감한 데다 컨테이너선,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초대형 선박의 가격이 하락해 올해 기업 실적이 악화됐다”며 “특히 2011년과 2012년에 수주한 물량은 올해 실적에 반영되지만 올해 수주한 물량은 내년 이후 반영돼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올 들어 3분기(7∼9월)까지 매출액이 17조64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줄었고 영업이익(6300억 원)은 무려 47.4%나 급감했다. 올 들어 국내 주요 그룹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포스코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은 영업이익이 지난해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했다. 21일 금융감독원과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그룹 83개 상장사의 올 들어 9월까지 영업이익은 36조35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감소했다. 매출액(526조8000억 원)은 1.9% 늘었다. 이에 따라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평균 7.4%에서 올해 6.9%로 줄었다. 10대그룹 가운데 지난해보다 영업이익률이 개선된 곳은 SK와 LG그룹밖에 없었다. 포스코는 올해 매출액(22조8400억 원)이 지난해보다 17.2% 줄었고, 영업이익(1조7300억 원)은 28.3%나 급감했다. 원자재 가격은 평균 7% 하락한 데 비해 철강 제품 가격이 10%나 내렸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올해 매출이 10% 늘었고 영업이익은 2.2%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1.6%에서 올해는 10.8%로 감소했다.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된 것은 세계 경기 부진으로 가격 경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여기다 원화 강세로 대규모 환차손이 발생하면서 실적부진이 심화됐다. 이성룡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대기업은 환위험 회피(환헤지)를 통해 환율 변동에 어느 정도 대응하는데도 불구하고 환차손이 크게 발생했다”며 “환율변동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중소기업의 수익성 악화는 더 극심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46만 개 국내 기업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평균 영업이익률은 2010년 5.3%에서 2011년 4.5%, 지난해에는 4.1%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는 고용 둔화, 세수 감소 등으로 이어진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낼 수 없는 한계기업이 늘어나면 기업파산이 늘고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게 돼 가계가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세종=유재동 기자 / 이원주 기자}

직장인 최모 씨(35)는 약 400만 원의 월급 중 150만 원을 은행 빚 갚는 데 쓴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고 여윳돈으로 금융상품에 투자도 하면서 나름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전세금은 치솟고, 그에 맞춰 은행 대출금도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최 씨는 우선 빚부터 빨리 갚아버리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는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부채 상환에 쓰는데도 빚이 여간해서 잘 줄어들지 않는다”면서 “생활에 필수적인 지출 외의 소비나 저축은 나에겐 사치로 느껴진 지 오래”라며 한숨을 쉬었다. 좀처럼 탈출할 수 없는 ‘빚의 굴레’가 가정 경제에 주름살을 더하고 있다. 소득이 늘어도 대부분 빚을 갚는 데 쓸 수밖에 없고,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매도 빚의 규모는 계속 늘기만 한다. 또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느끼는 가구가 많다 보니 정상적인 소비지출이 어려워져 국가 경제도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은 19일 전국 2만 가구의 가계수지를 표본 조사한 ‘가계금융·복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가구의 자산과 부채, 소득, 지출 등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가계의 살림살이는 1년 전보다도 더 팍팍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이 부채 증가 속도 못 따라가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경제는 이미 전형적인 ‘부채 디플레이션’에 돌입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가구 평균 소득은 4475만 원으로 2011년에 비해 5.7% 증가했다. 하지만 식료품 주거·교육비 등 일반적인 소비지출액은 같은 기간 0.2% 늘어나는 데 그쳐 사실상 정체 상태를 보였다. 소득에 비해 소비 증가율이 이처럼 미미한 것은 막대한 부채 상환 부담 때문이다. 올 3월 현재 가구당 평균 부채는 5818만 원으로 1년 전(5450만 원)에 비해 6.8%나 급증했다. 덩달아 이자도 불어났다. 이자 비용과 연금 및 보험료, 세금 등 비(非)소비지출은 9.6%나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소득 증가율이 부채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가계의 재무건전성은 더욱 악화됐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작년 3월 106%에서 올해 3월 현재 108.8%로 올라갔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의 비율도 같은 기간 17.2%에서 19.5%로 상승했다. 이제 100만 원을 벌면 20만 원을 온전히 빚 갚는 데 쓴다는 뜻이다. ○ 저소득층 부채 증가율 심각 소득계층별 양극화 현상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20%인 5분위의 평균 자산은 7억5438만 원이었고 이들의 자산 총합은 전체 가구 자산의 46.3%를 차지했다. 반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의 자산 점유율은 6.2%밖에 되지 않았다. 부채도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크게 늘었다. 1분위 가구의 빚은 올 3월 현재 1246만 원으로 1년 전보다 24.6% 급증했지만 상위 20% 가구의 빚은 1억3721만 원으로 전년보다 오히려 2만 원 줄었다. 저소득층은 빚 상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부채가 부실화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정부는 그동안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대부분 고소득층이 지고 있기 때문에 큰 위기로 번질 확률이 낮다”고 설명해 왔다. 국민 6명 중 1명꼴인 16.5%는 지난해 소득이 빈곤선인 1068만 원(중위소득의 50%)을 넘지 못해 빈곤층으로 분류됐다. 국민의 21.4%는 최근 2년 동안 빈곤을 잠시나마 경험해 봤고 2년 내내 빈곤층에 머무른 비율도 11%에 달했다. :: 부채 디플레이션 ::가계 빚이 늘거나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하락하면서 소비가 줄고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현상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시사한 집권 2년차 국정 운영기조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과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활성화’로 요약된다. 혹독한 저성장의 흐름을 보다 확실히 끊을 수 있도록 경제민주화에서 경제활성화로 넘어온 정책기조의 틀을 내년에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이날 연설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단어도 ‘경제’로 모두 46회나 됐고 ‘활성화’라는 말도 12차례나 나왔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단 두 차례 언급되는 데 그쳤고 내용도 상대적으로 짧았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은 “최근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1%대로 올라가고, 취업자 수는 석 달 연속 40만 명 이상 늘었다”면서도 “그러나 이제 겨우 불씨를 살렸을 뿐이며 이런 경기회복의 움직임을 국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제조업, 입지 분야 중심으로 추진돼 온 규제 완화를 전 산업 분야로 확산해 투자 활성화의 폭을 넓혀가려 한다”며 “특히 의료 교육 금융 관광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다음 달 발표를 목표로 추진 중인 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규제의 제한적 완화, 의료분야의 각종 자격증 제도 도입을 통한 고급 일자리 창출 등의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그간 서비스업 대책이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보다 과감한 방안을 넣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도와주는 ‘창조경제타운’ 사이트의 소개에도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 창조경제 어젠다를 내년에도 계속 밀어붙일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박 대통령은 “업종 간 융복합을 저해하는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겠다”며 규제완화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 밖에도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각종 경제활성화 법안의 국회 통과를 호소하고 방만경영 공공기관들에 대한 개혁 의지도 재천명했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가 어렵다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경제활성화를 강조한 것은 바람직했지만, 각종 법안 처리 등 여야가 대립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발언에 그치고 좀 더 강한 주문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이날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 의지를 보여줬다”며 환영하는 논평을 냈다.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들의 방만한 경영 행태를 이례적으로 거세게 질타하며 향후 고강도 개혁을 예고했다. 공기업의 부채 규모가 국가경제의 부담요인이 될 정도로 심각한 지경인 데다 국정감사 등을 통해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문제가 지적되면서 정부로서도 더는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기관들 대규모 소집…이례적 질타 현 부총리는 1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주요 공공기관장들을 불러놓고 부총리의 당초 일정에 없던 조찬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부채가 많거나 부채비율이 높은 12개 기관(한국전력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철도공사 등), 과다한 임금과 복리후생으로 비판을 받는 8개 기관(한국무역보험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수출입은행 등)을 합쳐 모두 20곳의 기관장이 불려나왔다. 현 정부 들어 이처럼 많은 공공기관장이 한꺼번에 소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현 부총리가 이들 앞에서 작심한 듯 쓴소리를 하고 기관장들은 숨죽인 채 이를 수첩에 메모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현 부총리는 “민간기업이었다면 감원의 칼바람이 몇 차례는 불고, 사업 구조조정도 수차례 있어야 할 상황”이라며 “기업이 위기의 순간으로 치닫는 상황에도 임직원들은 안정된 신분, 높은 보수, 복리후생을 누리며 각계의 공분을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국회는 ‘국정감사에서 아무리 지적해봤자 고쳐지는 게 없어 자괴감이 든다’고 한탄하고 언론은 공공기관을 ‘방만경영’ ‘비리’ ‘과잉복지’ 등의 단어와 세트로 취급하고 있다”며 “이제 파티는 끝났으니 냉정히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자”고 촉구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전체 공공기관의 부채는 2009년 337조 원에서 2012년 493조 원으로 3년 만에 무려 150조 원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임직원 수는 23만4000명에서 25만4000명으로 2만 명이 늘고 기관장 평균 연봉도 1억3700만 원에서 1억6100만 원으로 17.5% 올랐다. 조직의 경영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데 임직원들은 임금인상과 숫자 불리기에만 급급했던 셈이다. 이날 불려나온 기관들은 막대한 부채에도 불구하고 과다한 임금과 직원복지로 구설수에 오른 곳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연 수입으로 이자조차 내지 못할 정도의 열악한 재무 상황인데도 고용을 세습하거나 비리 퇴직자에게 퇴직금을 과다 지급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정부가 책임 떠넘긴다” 지적도 정부는 향후 추진할 공공부문 개혁의 시동을 걸기 위해 우선 이날 참석한 부채 상위 12개 공공기관에 대해 부채 규모와 발생 원인을 연말까지 모두 분석해 공개하고 사업조정, 자산매각 등 자구노력을 하도록 지시했다. 만약 이런 노력이 미진하면 다른 분야의 평가가 우수하더라도 경영평가에 따른 성과급을 제한하기로 했다. 또 방만한 경영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고위층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고 보고 기관장 및 임원들의 보수부터 깎고 학자금 전액 지원, 고용세습 등 과다한 복리후생을 보장하는 노조협약이 있는지도 점검할 계획이다. 현 부총리는 “현 공공기관장 중 많은 사람이 새로 임명돼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공직자로서 무한책임을 느껴야 한다”며 “앞으로 공공기관에 대해 A부터 Z까지 모두 살펴보고 정상화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 부총리의 이날 발언을 두고 정부가 공공기관 부채의 책임을 기관들에만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기관의 부채가 보금자리주택이나 4대강 사업 등 정부의 공약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늘어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무리하게 억제하거나 무능한 정치인을 낙하산 기관장으로 내려보낸 것도 공공기관의 재무구조가 악화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으로 꼽힌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공공기관 부채는 대개 방만한 경영보다는 정부 시책을 따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긴 결과”라며 “공공기관 부실화는 하루 이틀에 생긴 문제가 아닌 만큼 정말 누구 책임인지는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들의 경영 행태를 바로잡는 것 못지않게 정부가 인기영합적 정책을 수행하느라 공공기관 부채를 늘리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내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본격화되면서 정부의 쌀 목표가격 인상안이 정치권의 핵심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기준이 되는 가격(목표가격)을 정한 뒤 산지 쌀값이 그 밑으로 떨어지면 차액의 85%를 보전해준다. 목표가격이 높게 책정될수록 농민들이 받는 정부 지원금도 많아지게 된다. 원래 정부는 법령에 명시된 산식에 따라 80kg(한 가마)당 17만83원이었던 목표가격을 올해부터 4000원 인상된 17만4083원으로 조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의 표를 의식한 민주당은 이보다 약 2만2000원이 더 많은 19만5901원, 새누리당도 18만 원대를 각각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농민단체들은 그간의 생산비 상승분을 감안하면 목표가격이 23만 원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과 농민들의 반발로 코너에 몰린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감해하는 상황이다. 쌀 목표가격의 과도한 인상은 정부 곳간을 심하게 축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계산에 따르면 민주당 안대로 목표가격을 올렸을 때 당장 내년에는 2400억 원의 직불금이 들어가고 2018년에는 소요재원이 무려 1조5000억 원으로 불어난다. 해가 갈수록 지출액이 급증하는 것은 직불금을 노린 농민들의 쌀 생산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쌀의 과잉생산은 쌀값 하락으로 이어지고 그러면 정부가 지불할 차액도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언뜻 보면 정부가 나라 재정만 생각한 나머지 농민들에게 야박하게 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최근 수년간 쌀 생산량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돼 왔지만 국민들의 쌀 소비량은 반대로 1982년 1인당 130kg에서 작년 69.8kg으로 30년 만에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여기에 국제협약에 따라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도 1년에 40만 t에 이른다. 수요 대비 공급이 넘쳐나는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을 위한답시고 목표가격만 무턱대고 올려놓으면 쌀값 폭락과 유통구조 붕괴로 오히려 농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진정 농가소득을 올리려면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지원하거나 기초연금 같은 복지제도를 더욱 탄탄히 하는 게 더 낫다고 농업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번 사례는 현 정부가 내세우는 복지재원 조성 방안이 얼마나 취약한지도 보여주고 있다. 세출 삭감, 세원 확대는 항상 이해 관계자의 반발,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국회가 한 해 수조 원이 들어가는 선심성 법률들을 마구 쏟아내는 요즘, 5년간 ‘마른수건을 짜내’ 135조 원의 공약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구호가 유난히 공허하게 들린다.―세종에서 유재동 경제부 기자 jarrett@donga.com}
고질적인 내수 침체가 지난 10여 년간 상대적으로 쪼그라든 가계소득 때문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민간소비 수준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서 “현재의 소비 부진은 단기적인 내수 진작책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가계소득을 늘리는 방향으로 풀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총소득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2000년 69%에서 지난해 62%까지 하락했지만, 기업소득은 같은 기간 17%에서 23%로 증가했다. 가계소득 비중의 이 같은 하락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헝가리, 폴란드에 이어 세 번째로 빠른 수준이다. 이 보고서는 “가계소득이 1% 증가하면 민간소비는 0.8∼0.9% 늘어나지만 기업소득은 1% 올라도 민간소비가 0.1∼0.2% 늘어나는 데 그친다”며 “1990년대 말 이후 급속히 진행돼 온 가계소득 비중의 하락이 소비 확대에 상당한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 전반의 성장세 및 활력 저하가 소비 둔화의 1차 요인이라면, 성장의 과실(果實)이 가계보다 기업에 쏠리는 것은 내수 침체를 더욱 고착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에서 10월 백화점 및 할인점 매출이 각각 전년 동월 대비 1.7%, 6.4% 감소했다고 밝혔다.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이 동반 감소한 것은 7월 이후 석 달 만이다. 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지금이 심각한 위기라는 인식을 갖고 법안 통과는 물론이고 경제 구조 개혁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 경쟁에서 영영 낙오될 수 있다.” 전직 경제부총리 등 경제 원로들은 한국 경제가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며 안심하고 있을 국면이 아니다”라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 대통령과 총리, 장차관들은 발로 뛰는 협상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입법 문제를 푸는 한편 꾸준히 국민과 기업을 향해 ‘경제활성화’에 대한 정부 의지를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그동안 위기 극복에만 치중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해 온 한국 경제의 구조 개혁에도 바로 돌입해 미래에 닥칠 위기도 함께 대비해야 한다고 원로들은 조언했다.○ “각료들이 자꾸 언론에 등장해 소통·설득해야” 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인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경제활성화 입법을 위해서는 야당을 설득해 손을 잡아야 하는데, 정부가 도무지 주고받기 협상을 못 하고 있다“며 “경제민주화가 됐든, 공기업 기관장 인사가 됐든, 야당도 생색을 내고 싶은 점을 일부 들어줘야 하는데 압박만 하고 있으니 문제”라고 지적했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도 “지금 정부는 국회에 자료 하나 던져주는 걸 설득이나 소통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더 성의를 갖고 해야 한다”며 “대안을 내놓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국무위원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승윤 전 부총리도 “총리나 부총리가 자꾸 TV에 나가서 우리 경제상황이 어떤지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며 “대통령은 각료들을 앞세워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총리도 자꾸 귀찮게 야당을 찾아가서 협조를 구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의 위기가 평소 규제 개혁을 등한시해 온 정부의 자업자득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번 국회에서 중점추진 과제로 거론되는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 벤처기업 지원, 내수활성화 방안 등은 지난 10여 년간 항상 정부의 주요 과제로 거론돼 왔지만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다. 현정택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정부가 국회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정부와 국회가 다 같이 똘똘 뭉쳐서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막고 있다”며 “정부 스스로 규제를 줄이는 게 어렵다면 청와대가 나서서 부처들 간에 규제 개혁 경쟁을 붙이고 그에 맞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요즘 경제 나아졌다고 착각하면 곤란” 경제 원로들은 최근 경제가 조금씩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결코 박수치고 기뻐할 상황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성장세가 회복되는 것이 경제의 체질 개선보다는 정부의 재정 투입과 금리정책, 또 경기 사이클 변화에 기인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요즘 경제는 고무적이긴 하지만 착각하면 곤란하다”며 기업투자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만큼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이 모이는 보건의료 분야를 산업화해야 한다”며 “대기업 투자를 국내로 돌리기 위해 과격한 노동조합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는 “1.1%라는 숫자(분기별 성장률)가 벌써 두 번 나왔지만 이마저도 한국 경제로서는 그리 좋은 숫자가 아니다”며 “저성장의 질곡을 탈출하기 위해 국가 역량을 한곳으로 몰아주고, 일부 사회적 논란이 있더라도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정책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이헌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작은 정책만으로도 벤처 활성화나 대기업 투자 확대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지렛대 효과’를 정부는 모색해야 한다”며 “기업인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파격적인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원로들은 “경제지표는 양호하지만 체감경기가 부진하고, 몇몇 대기업을 빼면 주요 기업의 실적이 줄줄이 하락세를 보이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승윤 전 부총리는 “일본은 정부와 기업, 국민이 일치단결해 앞으로 나아가고 중국도 총리 주도의 경제 구조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며 “지금 방향을 잡지 못하면 영영 낙오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세종=유재동 jarrett@donga.com·홍수용·박재명 기자}

수출은 월 500억 달러 초과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물가상승률은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제성장률도 두 분기 연속 1%를 넘겨 경기 사이클상 이제는 바닥을 통과했다는 분석이 대세다. 이렇게 수치만 놓고 보면 경제는 분명 나아질 조짐을 보이는 것 같은데 정작 국민들은 아직도 어깨를 펴지 못하고 있다. 지표와는 별개로 도무지 살림살이가 나아진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정부도 당장 수치로 나타나는 성과보다는 경기회복의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정책의 초점을 옮기고 있다.○ 월간 수출 사상 최대 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10월 수출액이 505억 달러로 월 수출액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경기둔화와 엔화 가치 하락이라는 커다란 악재들을 딛고 이뤄낸 성과다. 반세기 전인 1964년만 해도 수출이 한 해 통틀어 1억 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은 이제 한 달에만 500억 달러어치의 상품을 수출하는 무역대국이 됐다. 산업부 당국자는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기회복이 받쳐주고 있어 당분간 수출의 증가 추세는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가 안정세도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이날 발표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7%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비록 물가수준이 너무 낮은 나머지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좀처럼 늘지 않는 서민 가계의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그나마 물가라도 안정돼 있는 것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경기지표들의 개선 흐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경기는 여전히 한겨울이라는 것이 정부의 고민이다. 우선 소비자들이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다. 가계소득이 정체돼 있는 데다 경제 전망을 낙관하지 못하다 보니 빚어진 현상이다. 9월 소매판매는 백화점과 마트 매출이 모두 줄면서 1년 전과 비교해 1.5% 감소했다. 기업 수출이 전년 대비 7% 이상 늘어나는 추세와 확연히 대조가 된다. 물가 역시 지표와 체감 사이 괴리가 크다. 최근 한 민간연구기관의 설문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민의 체감물가 상승률은 5.4%로 지표물가 상승률의 4배가 넘었다. 공공요금, 집세처럼 피부에 와 닿는 항목들이 유난히 많이 오른 탓이다. 수출이 잘되고 증시도 호황이라는데 살림살이는 그대로인 현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경기 미스터리’라는 표현도 쓰고 있다.○ 기업 설비투자 1년 전보다 5% 넘게 줄어 체감경기가 살아나려면 우선 내수가 회복돼야 하고, 기업들의 투자 확대에 따른 일자리 증가로 가계소득이 늘어야 한다. 하지만 올 3분기(7∼9월) 기업 설비투자는 77조555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5% 넘게 줄었다. 9월 사업체 종사자 수 역시 18만7000명 늘어나는 데 그쳐 전달에 비해 증가폭이 감소했다. 기업 이익이 늘어도 고용과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사내(社內) 유보만 쌓이면서 내수와 수출, 가계와 기업 간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것이다. 최근 방한한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협의단도 이런 맥락에서 내수 진작과 가계소득 증가를 한국의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로 꼽았다. 회복세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경기둔화 국면이 2011년 이후 벌써 3년째 이어져왔는데 최근 한두 분기 반짝 좋아진 것으로 회복세를 체감하기는 무리라는 뜻이다. 가계부채가 1000조 원에 육박하고 주택경기가 살아나지 못하는 것도 체감경기 악화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수출 및 실적 개선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는 데다 체감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경기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정부나 정치권의 경제 살리기 의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은 상황에서 가계가 지갑을 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세종=유재동 jarrett@donga.com / 문병기 기자}

기업들의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1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7개월 만에 최고치를 보인 데 이어 기업심리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제조업 업황 BSI는 지난달보다 6포인트 오른 81로 나타났다. 이는 2012년 6월(82) 이후 1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올 들어 5월까지 회복세를 보이던 제조업 업황 BSI는 중국 경기둔화, 엔화 약세 장기화 등 대외변수로 6, 7월 하락한 뒤 8월부터 석 달 연속 개선됐다. BSI는 기준치 100보다 높으면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고 100에 못 미치면 그 반대다. 여전히 기준치를 밑돌고 있지만 기업심리가 빠르게 개선되는 모습이다. 특히 내수기업의 경영여건이 크게 나아졌다. 내수기업의 BSI는 지난달보다 7포인트 오른 78, 수출기업은 4포인트 상승한 86이었다. 업종별로 보면 전자영상통신과 자동차 부문의 호황이 제조업 전반에 훈풍을 불어넣었다. 전자영상통신과 자동차업종 BSI는 지난달보다 각각 17포인트 오른 83, 102를 기록했다. 이성호 한은 기업통계팀 차장은 “스마트폰 수출이 늘어나는 가운데 반도체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고, 자동차 파업이 이달 들어 정상화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제조업의 업황 BSI는 69로 지난달보다 1포인트 떨어져 체감경기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9월 광공업 생산은 자동차 파업과 추석 연휴 등의 영향으로 전달보다 2.1% 감소했다. 또 경기동행지수 및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전달보다 0.1포인트, 0.2포인트 각각 하락해 경기 흐름이 다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홍수영 gaea@donga.com / 세종=유재동 기자}
한국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기업 환경이 좋은 나라라는 평가가 나왔다. 역대 가장 좋은 성적표다. 다만 평가 결과가 경기침체와 고강도 세무조사 등으로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은 현 경제상황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2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국은 2013년 ‘세계은행 기업환경 평가(Doing Business)’에서 세계 189개국 가운데 7위에 올랐다. 이는 지난해 순위(8위)보다 한 계단 오른 것으로 한국은 2011년 이후 3년 연속 ‘톱10’에 들었다. 한국의 기업환경 순위는 2007년 30위에서 2008년 23위, 2010년 16위, 2011년 8위 등으로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왔다. 올해 순위는 주요 20개국(G20) 국가 중에는 미국에 이어 2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는 뉴질랜드, 미국, 덴마크에 이어 4위에 해당한다. 1, 2위는 싱가포르와 홍콩으로 지난해와 변동이 없었다. 10개 분야를 평가한 이번 조사에서 한국은 법적분쟁 해결(2위), 전기 연결(2위), 국제교역(3위) 등의 분야에서 지난해에 이어 세계 최고수준을 유지했다. 전기 연결 부문은 기업들의 초기 비용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도입한 시설부담금 분납 제도가 규제개선 사례로 평가받았다. 법적분쟁 해결 부문은 소송절차를 간소화하고 현대화한 전자소송시스템이 우수 사례로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다. 국제교역 부문 역시 통관절차 간소화, 전자통관시스템 도입 등의 제도 개선 노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퇴출(15위) 자금조달(13위) 건축 인허가(18위) 부문은 20위 이내 순위를 유지했지만 투자자 보호(52위), 재산권 등록(75위) 등의 항목은 중·하위권으로 처지며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기재부는 “세계은행의 기업환경평가는 중소기업이 창업부터 퇴출까지 생애주기 동안 겪는 표준적인 규제를 정량적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인 설문조사를 병행하는 세계경제포럼(WEF),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평가와는 근본적으로 조사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WEF의 올해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25위로 지난해보다 6계단 하락했고 IMD 평가에서는 3년째 22위에 머물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근의 경제민주화 입법이나 체감경기 악화 등 정치·경제적 상황을 놓고 볼 때 과연 한국의 기업환경이 세계 7위나 되는지 의문스럽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평가순위와 관계없이 투자활성화 대책 등을 통해 기업 애로를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원화 가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점을 향해 치솟고 있다. 엔당 원화 환율은 이미 2008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달러당 원화 환율 역시 당시 수준에 근접하며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겉으로는 “일단 지켜보자”며 담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속으로는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실물경기가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경제회복의 동력이 되는 기업들의 수출경쟁력마저 나빠질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5.0원 내린 1055.8원에 마감했다. 올 1월 이후 9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조만간 연중 최저점인 1054.7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장기적으로 세 자릿수 환율을 나타냈던 2008년 초 수준으로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원-엔 환율은 이미 24일 종가 기준으로 100엔당 1079원을 기록해 2008년 9월 수준까지 떨어졌다. 최근 환율 하락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경상수지 흑자가 장기간 누적되면서 외국인자금이 국내 증시에 물밀 듯이 몰려들고 있다. 달러화를 원화로 바꿔 주식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이 늘다 보니 원화 수요가 많아져 원화가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외국인은 25일에도 증시에서 2000억 원 이상을 사들여 이날까지 39거래일 연속 순매수 기록을 보였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시점이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으로 달러화가 약세 흐름을 보이는 점도 원화 강세의 원인이 되고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미국의 고용지표를 봤을 때 월가에서는 다음 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MOC)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달 미국의 비(非)농업 부문 일자리는 14만8000개 늘어나는 데 그쳐 시장의 기대치(18만 개)에 크게 미달했다. 미국이 경기회복 지연으로 출구전략을 미룬다는 것은 달러화를 시장에 계속 푼다는 의미이고 그만큼 국내로 유입되는 달러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외환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정부는 지난주 공식 구두개입을 통해 “투기적인 요인이 없는지 경계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상황에 따라 외환당국이 추가 개입에 나설 가능성은 있지만 환율 하락의 대세를 막을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향후 세계경제가 좋아지면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이 가장 수혜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며 “여러모로 환율이 오를 요인은 안 보이고 내릴 요인만 많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환율은 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 하나하나의 움직임보다는 시장을 주시해야 한다”며 “요즘 수출경쟁력이 가격경쟁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마케팅이나 품질도 있고, 해외 생산도 많다”고 말했다.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정부가 현재 계류 중인 각종 경제 활성화 법안의 국회 통과를 호소하면서 100여 개의 해당 법안 리스트를 공개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경기회복 지연의 책임이 국회에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정치권을 다시 한번 압박했다. 현 부총리는 23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지난 8개월간 주택시장 대책과 투자활성화 대책 등 다양한 정책 패키지를 마련했지만 국민이 느끼는 체감도는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이는 대내외 경제 여건이 불확실한 측면도 있지만 입법 조치가 신속히 진행되지 못해 대책이 현장에서 집행되지 못하고 있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이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각종 대책이 적기에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며 “국회도 이런 법안들이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해 줄 것을 간곡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날 공개한 ‘정기국회 경제 분야 중점 추진 법안’에는 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국정과제 이행 등을 위한 102개 법안이 들어 있다. 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국민의 체감 경기가 좀처럼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자 정부가 부쩍 다급해진 모습이다.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경제부총리에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경제의 발목을 잡지 마라”라며 국회를 정면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지금 국회에는 서너 달, 길게는 3∼4년씩 묵은 경제 관련 법안들이 여야 간에 별다른 논의도 없이 방치돼 있다. 정부는 경제와 민생 이슈에 관해 국회가 사실상 ‘셧다운(shutdown)’ 상태라고 주장한다. 반면 여야는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 책임”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최근의 경기 부진을 놓고 정부와 정치권이 책임 공방을 벌이는 양상이다.○ 발표만 되고 잊혀진 경제 법안들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국무회의에서 “지금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며 “그런데 현재 국회에는 각종 경제 활성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돼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자신들이 법과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증세 얘기부터 꺼내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도 도리도 아니다”며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내에서는 국무회의 이전부터 국회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자주 새어 나왔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주말 기자들과 만나 “국회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정부의 예산안이나 공약 이행 계획이 기존에 발표한 정책 효과가 달성되는 걸 전제로 했는데 이대로 법안 통과가 미뤄지면 성장률은 물론, 세수 확보나 국정과제 이행이 더 어려워진다는 우려였다. 조원동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도 최근 재계 간담회에서 “정부도 노력하고 있지만 입법부에 걸려 추진하지 못하는 게 많다”며 정치권을 비판했다. 실제 새 정부가 출범 후 발표한 경제 정책들 중에는 국회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발표’에만 그친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4·1 부동산 대책이다. 당시 발표된 분양가 상한제 신축 운영, 수직 증축 리모델링 허용, 개발부담금 한시 감면 등의 대책들은 발표 6개월이 지난 지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 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정부 때부터 추진돼 왔지만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대책들도 널려 있다. 정부의 서비스산업 지원 근거가 되는 서비스업발전기본법은 2010년,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는 2009년부터 정부가 각각 추진해 법안을 내놨지만 “대기업·부자 특혜”, “의료 민영화” 등 정치 논리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 밖에 당장 2조3000억 원의 투자를 일으킬 수 있는 외국인투자촉진법, 서울 도심의 7성급 한옥호텔 건립을 지원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도 정부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법안들이다.○ 경기 부진 “네 탓” 공방 이처럼 경제 법안들의 논의가 ‘올 스톱’되자 각종 대책의 정책 효과를 자신했던 정부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대외 여건도 불안한 마당에 부동산 경기나 기업투자를 유도하는 법안 처리마저 지연되면 성장률은 물론, 고용 소비 등 경기지표들의 회복도 줄줄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자는 “각 부처에서 의원과 보좌관, 전문위원 등을 다각도로 접촉하고 있지만 대책들이 국회에서 묶인 채 시간만 흐르고 있어 답답할 따름”이라며 “경제는 ‘타이밍’인데 한시가 급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정부가 경기 부진의 책임을 국회에 떠넘기고 있다고 반박한다. 지난주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현 부총리가 “내년 성장률 전망은 정책 효과를 전제로 한 것”이라며 국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부도 대책만 내놓고 ‘강 건너 불 보듯’ 할 게 아니지 않으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역시 “공약 불이행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려는 의도”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국가와 공기업 부채 문제가 큰 과제”라며 “정확한 자료를 공개해 국민이 실태를 알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평소 ‘재정에 관한 투명한 정보 공개’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소신이 반영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세종=유재동 기자·동정민 기자 jarrett@donga.com}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박은심(가명·51) 씨는 지난해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3년 전 갈빗집을 시작하면서 2억 원을 대출받았다가 사업 부진으로 원금과 이자를 제때 못 갚았기 때문이다. 손실이 커지면서 급한 대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대부업체 대출 등을 이용했지만, 채무불이행자 신세를 면치 못했고 결국 법원으로 발길을 향했다. 박 씨는 “빚은 절반 이상 탕감 받았지만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불가능해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세가 저성장 탈출이 시급한 한국 경제에 또 하나의 시름을 안기고 있다.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이라는 글로벌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는 것. 경기침체로 가계소득이 정체돼 있는 가운데 빚의 규모는 빠르게 늘어나면서 부채 문제는 한국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부상한 상태다. 내수에서 경제 활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 1000조 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는 정책당국에 심각한 족쇄가 될 수 있다. 선진국의 출구전략이 본격화되면 금리인상으로 채무자의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부담이다.○ 전문가들 “위기 탈출에 급급했던 부작용 나타났다” 한국 가계부채의 절대 규모는 지난 10년 동안 경제성장률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성장률이 4, 5%대였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가계부채 증가율이 무려 10% 안팎에 달했고, 금융위기 직후 경기침체기에 빠진 다음에도 가계 빚은 매년 7, 8%씩 늘어났다. 특히 이 같은 부채 증가 속도는 가구 소득의 증가 속도를 압도하면서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도 심각하게 떨어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자산·소득 대비 부채와 이자비용, 연체율 등을 계산한 결과 올해 가계부채의 위험도는 148.7로 금융위기 때인 154.4에 거의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가계 빚이 선진국과 다르게 유난히 빠른 속도로 불어난 이유는 경제위기 대응방식이 다른 나라와 달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위기 이후 미국 등이 씀씀이를 줄이고 빚을 갚는 데 주력한 반면, 한국은 일단 과도한 충격을 막기 위해 소비를 늘리고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등 경기 부양에 힘을 썼다는 것이다.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금융위기 직후 실질금리가 한동안 마이너스일 정도로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상당 기간 유지한 부작용이 결국 가계부채 급증으로 이어졌다”며 “그 결과 과도한 빚이 소비지출 억제로 이어지는 ‘부채 디플레이션’ 현상이 지난해 말부터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7월 국회에서 열린 가계부채 청문회에서도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서 “이명박 정부가 금리 인상 타이밍을 놓친 게 가계부채를 키웠다”는 비판론이 나왔다. 당시의 저금리 기조가 금융위기 탈출에는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부채 관리’라는 경제 구조적인 문제는 외면해 결국 현 정부에 부담을 줬다는 지적이다. 지난 정부에서 현 정부까지 이어진 각종 부동산 관련 대책들도 가계부채를 막기보다는 키우는 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명박 정부가 27차례 발표한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은 경기를 부양하고 서민층에게 내 집 마련의 길을 열어줬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었지만 동시에 빚을 통한 주택구매를 유도함으로써 ‘정부가 빚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새 정부도 ‘4·1 부동산 대책’을 시작으로 ‘7·24 대책’, ‘8·28 전월세 대책’ 등 발표된 정책마다 신개념 주택금융상품 개발, 대출규제 완화 및 금리 인하 등 가계부채 증가세를 사실상 용인하는 내용들이 주로 담겼다.○ “중장기 구조적 대응 절실” 정부는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지만 당장 급박한 정책대응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회 답변에서 “가계부채 문제는 규모나 증가 속도, 금융시스템 등으로 볼 때 아직 위기상황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계부채는 증가 속도뿐 아니라 질(質)도 같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우선 정부가 제도권 금융기관의 대출 억제에 초점을 맞추다가 오히려 더 위험한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을 늘렸다는 지적이 많다. 기재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3, 4년 동안 비(非)은행 부문의 대출 증가율은 은행대출 증가율의 거의 두 배가량이나 됐다. 전체 가계대출에서 3개 이상 금융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부채 규모 역시 올 6월 말 기준 29.1%나 된다. 이들의 1인당 평균 부채액은 1억300만 원으로 일반 채무자 채무액(5000만 원)의 두 배가 넘는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는 가계소득을 높여 채무상환 능력을 높이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전한 대출자에게는 돈이 돌도록 하되, 빚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부채를 줄이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가계부채 위기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금리 인상도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가계부채는 결국에는 채무자의 소득을 올려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부채의 상당 부분은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는 자영업자가 차지하고 있는 만큼 서비스업을 활성화해 이런 자영업자의 소득을 늘려주는 방법이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세종=유재동 기자·이상훈·정임수 기자 jarrett@donga.com}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들이 가계부채를 성공적으로 줄인 데 비해 한국은 빚의 양과 질이 모두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금융위기를 가장 잘 극복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단기적인 경기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정작 민간경제 부문에서 가장 위험한 ‘시한폭탄’을 키우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막대한 부채가 경기회복의 짐이 될 수 있다”며 선진국들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이 본격화되기에 앞서 가계부채 위기가 경제 전반에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20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91.1%까지 치솟았다. 2004년의 70.5%에서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빠른 속도로 불어난 것이다. 반면 미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2007년 102.2%로 정점을 찍은 뒤 2011년 89.5%까지 떨어졌고 영국도 같은 기간 107.7%에서 100.9%로 하향세를 보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도 2011년 76.0%로 한국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 역시 한국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은 2007년 이 비율이 145.7%였지만 2011년에는 162.9%로 크게 올랐다. 그러나 미국은 같은 기간 142.5%에서 119.6%로 큰 폭으로 떨어졌고, 영국도 185.3%에서 159.6%로 내렸다. 이 통계만 놓고 보면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 위험수위는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 당시보다 높은 셈이다. 특히 가계와 정부 부문의 엄청난 부채로 장기불황에 빠져 있는 일본 역시 이 기간에 133.8%에서 131.6%로 부채 비율이 소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경제 활성화가 지금처럼 더디게 진행된다면 가계부채는 더욱 심각한 지경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세종=유재동 기자·홍수영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