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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에서 권총을 쏴 의경을 숨지게 한 은평경찰서 소속 박모 경위(54)가 과거에도 이런 장난을 여러 차례 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엄격한 규정에 따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할 총기를 현직 경찰 간부가 장난감처럼 다룬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과거에도 권총 장난 했다” 26일 은평서 관계자는 “박 경위가 ‘과거에도 2, 3차례 권총을 갖고 장난을 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박 경위는 25일 검문소 내 의경 제1생활실로 들어가 간식을 먹고 있는 의경들에게 “나를 빼고 너희들끼리 빵을 먹느냐”며 38구경 권총을 꺼낸 뒤 “총은 이렇게 나가는 거야”라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때 실탄이 발사되면서 함께 근무하던 박모 상경(21)이 실탄에 맞아 숨졌다. 특히 박 경위는 17년 전 총기관리 규정이 바뀐 사실조차 알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경위가 경찰로 채용된 1989년에는 격발 때 가장 먼저 총탄이 발사되는 약실을 비워둬야 했다. 하지만 1998년 7월 규정이 바뀌면서 이 자리에 공포탄을 넣고 시계방향으로 다음 실탄 4발을 차례로 약실에 넣도록 바뀌었다. 이렇게 장전하면 회전식 탄창의 약실 6개 가운데 하나는 빈 약실이 된다. 경찰 관계자는 “박 경위는 여전히 처음 격발되는 약실을 비워둬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나마 박 경위는 잘못 알고 있던 규정조차 지키지 않았다. 사건 당시 그가 갖고 있던 권총의 탄창은 평소보다 왼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첫 격발 때부터 실탄이 발사되게끔 바뀌어 있던 것이다. 통상 전임자로부터 총기를 인수할 때 반드시 장전 순서와 위치, 총탄 종류를 확인해야 하지만 박 경위가 총탄 수만 확인한 탓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경찰 내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 터졌다”는 목소리가 크다. 전·의경 관리 경험이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대원들과 친밀감을 쌓으려고 경찰봉이나 수갑으로 자주 장난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총기는 절대 ‘금기의 영역’이다”며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대원들을 겨눴다는 것 자체부터가 정신 나간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 관리감독 사각지대 ‘검문소’ 허술한 검문소 관리감독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검문소는 관할 경찰서 경비과 소속이지만 소수만 근무하고 경찰서와는 따로 떨어져 있어 감독이 소홀할 수밖에 없다. 2010년 서울 시내 모 검문소에서 근무했던 강모 씨(27)는 “단순 업무가 반복되다 보니 고참이나 지휘관이 비상식적으로 군기를 잡거나 도를 넘는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검문소에서 근무하던 최모 일경(30)이 이달 초 탈영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한편 이날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총을 꺼내 겨눴다는 것 자체가 명백한 가혹행위”라며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 오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박 경위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김호경 whalefisher@donga.com·김재형 기자}

“내 아들 양효동 양효식…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두 아들의 이름을 힘껏 외치는 양철영 씨(97)의 목소리가 떨렸다. 25일 ‘이산가족 상봉 재개 계획’이 담긴 남북 고위급 접촉 결과가 발표된 이후 양 씨는 “6·25전쟁 때 북에 두고 온 두 아들과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단꿈을 다시 꾸게 됐다”고 심경을 전했다. “부탁드립니다. 꼭 만났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마지막 바람을 전할 땐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현재 우리 정부에 등록된 이산가족은 12만9000여 명. 생존자는 6만6000여 명으로 절반가량이 양 씨와 같은 80세 이상의 고령자다. 그간 남북관계가 악화일로에 놓이자 이들은 ‘속앓이’를 하며 초조하게 기다려 왔다. 이산가족 허갑섬 씨(81·여)는 “19번이나 상봉행사 참가 신청서를 냈지만 다 떨어졌다. 상봉행사 소식이 없어 막막했는데 오늘 방송을 보고 가슴이 떨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며 “북한에 있는 오빠, 언니를 만나면 어떤 선물을 보낼까 고민하며 기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 춘천시에 사는 심영순 씨(70·여)는 다섯 살 때 생이별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밤잠을 설쳤다. 6·25전쟁 당시 아버지가 북한군 부역에 끌려가면서 헤어진 뒤 여러 경로를 통해서 북한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제는 생사를 알지 못한다. 심 씨는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허사였다”며 “아버지를 만난다면 상봉의 한을 가슴에 안고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꼭 해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상봉 행사가 확정되진 않았지만 일회성에 그칠까 걱정하는 이산가족들도 있다. 형제자매 4명이 북한에 있다는 김성훈 씨(87)는 “상봉 이후 연락이 끊겨 전보다 더 애태우는 이산가족이 많다고 들었다”며 “고령이 된 이산가족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 상봉 이후에도 서로 소식을 확인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봉 계획이 단순히 인도주의적 측면뿐 아니라 그간 경색됐던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발표 때 정례화 이야기도 나왔는데 성공한다면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제도화 단계로 돌입하게 되는 것”이라며 “비정치적인 분야의 교류가 확대되면 그 파급효과는 정치 경제 사회 곳곳으로 퍼져 남북 간 신뢰 구축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김재형 monami@donga.com·권오혁 / 춘천=이인모 기자}

“48시간 안에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지하지 않으면 강력한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겠다.” 북한의 위협은 그 어느 때보다 강경했다. 국민들 사이에 전면전이라는 단어까지 오르내릴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나 북한은 뒤로 남북 고위급 접촉을 제의했다. 그리고 지뢰 도발에 ‘유감’이라는 표현을 공동보도문에 실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당초 북한이 기대했을지 모를 ‘남남 갈등’이 이번에 자취를 감춘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국내 여론이 천안함 폭침 때처럼 ‘괴담’에 휘둘리는 대신 “더이상 끌려다닐 수 없다”는 분위기로 모아졌기 때문이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협상팀이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있어 국민들이 ‘이번만큼은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컨센서스(공감대)를 마련하고 응원해줬던 것이 큰 힘이 됐을 것”이라며 “특히 여론을 주도하는 30대가 ‘자주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진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금의 30대는 20대 초반이던 2000년 6월 13일 남북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TV 생중계로 보면서 감격과 충격을 느꼈다. 남북을 대치하는 적이 아닌, ‘같은 민족’으로서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 직장인 김지선 씨(37·여)는 “다들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리던 모습을 뭉클하게 봤고 곧 통일이 올 것이라며 우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 때까지 이어진 대북유화정책을 지켜보며 ‘북한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만큼 경계심도 낮아졌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을 비롯해 연평도 포격과 지뢰 도발을 겪고 최근에는 잊혀졌던 연평해전까지 다시 주목받으면서 북한에 대한 젊은층의 의심과 불만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전국 16개 시도의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년 통일의식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조사에서는 ‘북한의 무력 도발이 가능하다’는 응답이 20대 53.2%와 30대 35.8%였으나 2013년에는 20대 74.8%, 30대 70.5%로 크게 높아졌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교수는 “북한이 수년간 해왔던 패턴이 있기 때문에 (이를 지켜본 세대들에게) 일종의 ‘학습효과’가 생긴 셈”이라고 설명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분위기도 과거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한 폭침 이후 같은 해 4월 민관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SNS에서는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 난무했다. 잠수함 충돌설, 좌초설 등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떠돌았다. 일부 종북좌파 인사들도 거리낌 없이 음모론을 언급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에는 “천안함 폭침과 세월호 참사는 국정원이 자행했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이번 지뢰 도발 이후에도 “한국 정부가 지뢰를 묻은 자작극 아니냐”는 글이 SNS를 통해 퍼졌지만 이에 호응하는 시민들은 매우 적었다. 이런 음모론을 언급하는 종북좌파 인사의 글이나 주장도 SNS에서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협상팀 뒤에는 국민들이 버티고 있으니 이번에는 확실히 악순환 고리를 끊어 보자”는 목소리가 더 큰 힘을 얻었다. 페이스북에는 예비군들이 “부르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인증샷이 유행하기도 했다. 남북 합의 내용에 대해서도 ‘과거에 비하면 낫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노지현 isityou@donga.com·김재형 기자}

북한 포격 도발로 남북 간 군사 충돌 위험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한국의 2030 세대는 어느 때보다 침착하게 대응해 눈길을 끌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번 기회에 북에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 “확실한 사과 없이는 대화도 없다”, “박근혜 정부는 계속 확성기 방송을 해야 한다”며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는 청년층의 목소리도 크다. 이에 대해 ‘신(新)안보세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1, 2차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에 이어 최근 지뢰 도발까지 북한의 잇따른 도발 행위를 겪은 20대와, 2000년 6·15 평화선언을 보며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가졌지만 “쌀 주고 돈 줬지만 변한 것이 뭐가 있느냐”며 냉소적으로 변한 30대가 주축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박모 씨(30)는 “대학생 때는 대북 포용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지만 반복되는 북한 도발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며 “북한 내부의 불확실성이 과거보다 커진 만큼 앞으로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단호한 대응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24일 육군에 따르면 전역을 연기하는 장병이 50명에 달한다. 15사단 GOP 대대에서 근무하는 조기현 병장(23)은 “나처럼 일반전방초소(GOP)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전우가 적 지뢰에 부상한 모습을 보면서 분노와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취업을 미룬 장병도 있다. 육군 3사단 백골부대 조민수 병장(22)은 25일 전역한 뒤 9월부터 첫 출근을 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북한 도발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전역 연기를 신청했다. 백령도의 해병대 소속 장우민 병장(23)도 24일 전역 신고를 마치고 육지로 나가는 배를 타려다 전우를 두고 갈 수 없어 전역 연기를 신청했다.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많은 병사가 북한 지뢰 도발로 같은 또래 동료 2명이 하반신을 크게 다치는 걸 목격했다”며 “북한의 도발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더는 묵과할 수 없음을 확고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지뢰 도발을 통해 ‘북한=실질적인 위협’으로 느낀 젊은이가 많았다. 김의진 씨(27)는 “전에는 별 걱정이 없었지만 지뢰 도발에 이어 포격을 가해 왔다는 점이 확인돼 북한은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이후 이와 관련된 유언비어는 5년 동안 계속됐다. 북한 소행이라고 민관 합동조사단이 최종 결론을 내렸는데도 인터넷에서는 “천안함 폭침은 미군 잠수함이 들이받은 것”, “천안함은 좌초 후 이스라엘 잠수함과 충돌했다”라는 등의 괴담이 퍼져 나갔다. 야당 정치인과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인 지식인들도 “합동조사단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유언비어에 힘을 실어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 이번에도 SNS에서는 “휴전선 포격 사건, 알고 보니 그네정부(박근혜 정부)의 자작극? 연천군 주민조차도 북이 쏜 포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다”는 등의 일부 유언비어가 유포되긴 했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21일 트위터에 ‘연천 주민들은 북쪽 포격을 못 들었다고 한다’는 미디어오늘 기사를 리트윗(재전송)했지만 도리어 시민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민들이 천안함 폭침, 세월호 침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사태 등을 겪으며 유언비어를 대하는 자세가 성숙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 대해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교수는 “젊은 세대는 대북 관계를 통일 담론이 아닌 외교 문제로 인식한다. 동북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북한보다 훨씬 높다는 것에 자신감을 갖고 그에 걸맞게 대응하라는 요구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전쟁을 불사하자는 단순 강경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참에 박살내 버리자’는 식의 극단적인 표현도 있는데 분단의 역사적 의미와 전쟁의 참혹함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우발적으로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이라며 “‘전쟁하자’는 주장의 배경에는 취업난 등 현실 속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욕구도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해병대 출신인 새누리당 이우현 의원(58)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만일의 상황이 발생하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해병 가족들과 최전방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데 목숨을 바칠 것”이라고 밝혔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호경·김재형 기자}

안중근 의사가 투옥됐던 감방에서 사형장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사형장으로 걸어가는 생의 마지막 순간 안 의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행은 모두가 숙연해졌다. 9일 오후 1시경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 시 뤼순(旅順) 감옥 사형장. 안 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애국지사가 목숨을 잃은 곳이다. 일제의 만행을 설명하던 장대진 서울 천왕초등학교 교사(37)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숱한 애국지사의 목숨을 앗아간 목줄과, 시신을 구겨 넣던 허름한 나무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장 교사의 설명을 듣던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이내 고개 숙여 애도했다. 항일 독립 유공자 후손 12명과 대학생 등 41명으로 구성된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흥민통) 탐방대 답사의 한 장면이다. 탐방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달 3∼9일 중국 동북 3성 일대 항일 유적지와 북-중 접경지대를 돌며 민족의 독립 정신을 되새겼다.○ 버스 창밖 곳곳이 ‘독립 정신’ 배움터 하얼빈(哈爾濱) 시에서 버스로 하루 400km 이상을 달린 지 사흘째인 5일. 탐방대는 지린(吉林) 성 룽징(龍井) 시에서 옌지(延吉) 시로 넘어가고 있었다. 탐방대 이수아 씨(21·여)는 “유적지보다 오히려 창밖 풍경 하나하나가 역사의 현장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만주 지역의 험난한 지형만 봐도 이곳에서 맨몸으로 일제에 맞서던 애국지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것. 동포들이 많이 거주했던 만주 지역은 일제강점기 국외 무장 투쟁의 거점이었다. 홍범도 김좌진 장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동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 일본군은 항일 독립운동의 근간을 없애기 위해 간도 지역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류종열 흥민통 상임대표는 “이곳의 중국동포 모두 항일 투쟁 당시 독립투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탐방대는 농가 한 모퉁이에 덩그러니 방치된 ‘3·13 반일 의사릉’에 참배했다.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만세운동을 따라 이곳에서 만세삼창을 하며 항일 무장 투쟁의 계기를 마련했던 박상진 의사 등 13명이 안치된 묘역이다. 국내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른 고 최중삼 선생의 후손들은 묘역 위의 잡초를 뜯어 정리했다. 최 선생의 후손 최원재 씨(21)는 “뜻깊은 일을 했는데 묘역이 방치돼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항일 유적지에도 동북공정의 흔적 탐방 내내 오한민 양(18·여)은 오른손에 푸른색 팔찌를 차고 있었다. 판매 수익금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는 데 쓰는 기부 팔찌다. 오 양은 3년 전 어머니에게서 선조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얘기를 듣고 이 팔찌를 샀다. 오 양은 “항일 유적지를 살피며 모두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란 자긍심을 갖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항일 유적지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훼손되고 있는 장면도 탐방대에 목격됐다. 룽징 시 밍둥(明東) 촌 윤동주 시인의 생가 입구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관할 자치주인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가 일제에 저항한 대표 민족 시인을 중국 국적의 조선족으로 기록해 놓은 것. 양영두 흥민통 공동대표는 “앞서 발해와 고구려 유적지(천리장성 등)에서도 동북공정의 흔적을 발견했다”며 “민족의 저항 정신이 깃든 이런 유적지를 계속 빼앗기면 우리의 미래까지 어두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귀국 전날인 8일 탐방대는 압록강 너머 신의주가 바라보이는 랴오닝 성 단둥(丹東) 시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숙소 너머로 6·25전쟁 때 끊어진 압록강철교와 그 옆에 새로 생긴 철교 위로 북한 트럭들이 쉴 새 없이 물품을 나르는 것이 보였다. 설바다 씨(21)는 “삼포세대라 불리는 우리 세대에게 통일은 그저 먼 얘기로만 느껴졌다”며 “북한 주민들이 코앞에서 농사짓고 차와 배로 이곳을 왕래하는 것을 보고 통일은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하얼빈·다롄=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패드립마저 익숙해져 버렸어요.” 11일 오후 국민대통합위원회 주최로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로 동작구청에서 열린 ‘청소년 100인 원탁토론회’에서 나온 명덕고 황동수 군(16)의 지적이다. ‘패드립’은 패륜 드립의 줄임말로 주로 상대방의 부모나 가족을 욕하거나 농담 소재로 삼아 놀리는 것을 뜻한다. 황 군은 “‘어미 없는 놈’처럼 상대 어머니를 비하하는 못된 말을 주변에서 많이 쓰는데 대부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며 “습관처럼 말끝마다 패드립을 치는 친구가 많은데 그 욕의 의미가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서울시내 중고등학생 103명이 모여 △소통을 방해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 △저속한 말의 문제점 △좋은 언어 사용을 늘릴 방안 등 3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강신중 김혜란 양(15)은 신체적 결함을 깔보고 놀리는 표현을 상대에게 가장 상처 주는 말로 꼽았다. 김 양은 “키가 작아서 ‘우유나 더 마시고 와라’ ‘뭘 해도 안 될 것 같다’ 같은 놀림을 많이 받았다”며 “살찐 친구에겐 ‘쓰레기 더미를 덮은 것 같다’는 식의 놀림도 많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습관’을 꼽았다. 대동세무고 최성은 양(16)은 “습관처럼 쓰다간 면접처럼 인성을 평가하는 자리에서도 욕이 튀어나올 수 있다”며 “언어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에 바꾸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일상적으로 욕설과 비속어 은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다 보니 교사나 부모 앞에서도 죄의식 없이 이런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게 참석 청소년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세 시간 토론 끝에 학생들은 ‘상대방 입장되기’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명덕고 김대선 군(16)은 “상황극을 통해서라도 욕 듣는 사람의 기분을 느껴보고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상대방을 강하게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이 그런 욕설을 듣게 될 때를 먼저 생각하라는 의미다. 이날 토론회에는 자녀를 따라온 학부모도 많았다. 김명순 씨(42)는 “오늘 패드립을 알게 됐다”며 “역으로 생각하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자녀 세대의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고 말했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투신자살한 여중생의 아버지가 “딸이 집단 따돌림을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진정서를 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3일 경기 양주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1일 오전 양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중학교 3학년 A 양(14)이 휴대전화로 ‘죄송하다’는 문자메시지를 가족에게 보낸 뒤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갑작스런 딸의 죽음에 의심을 품은 A 양의 아버지는 같은 달 22일 ‘딸이 집단 따돌림을 당했고 학교가 이를 은폐한 의혹이 있으니 수사해 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진정서에는 A 양이 친구들과 주고받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 내용과 ‘학교가 장례식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입단속을 했고 운구차가 학교를 방문했을 때 행렬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는 주장 등이 들어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아버지가 제출한) SNS에는 A 양이 친구들과 일상적으로 나눈 대화만 있을 뿐, (A 양에게) 욕설을 하거나 따돌림을 한 흔적은 없었다”며 “학교가 입단속을 했다는 것도 확인되지 않아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A 양의 아버지는 같은 학교의 한 학부모에게 전해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진정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김재형기자 monami@donga.com}
서울 서초경찰서는 법무법인 강남 박영수 대표변호사(63·전 서울고검장)를 흉기로 습격했다가 구속된 이모 씨(63)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 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씨는 17일 0시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건물 앞에서 공업용 커터 칼로 박 변호사 목 부위를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는 경찰조사에서 자신이 고소한 사건에서 패소하자 상대측 변호를 맡았던 박 변호사에게 앙심을 품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범행동기를 진술했다. 한편 박 변호사는 최근 상태가 호전돼 병원에서 퇴원했다. 그러나 상처 부위의 신경이 일부 손상돼 부분적으로 마비 증세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김재형기자 monami@donga.com}

2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진혜원 영양팀장(54·여)은 격리병동에서 치료 중인 환자 11명과 의료진의 점심 도시락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순환근무로 그날 식사 명단에서 빠지는 의료진을 감안해도 한 끼에 만들어야 할 도시락 수는 약 25개. 진 팀장은 국물 하나 새지 않게 모든 도시락을 손수 랩으로 밀봉해 격리병동으로 전달하고 있다. 진 팀장은 “배식 음식을 만드는 것 외에 따로 격리병동 음식을 챙겨야 돼 평소(메르스 이전)보다 일거리가 배 이상으로 늘었다”며 “피곤하긴 하지만 메르스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환자와 의료진을 생각하면 하나라도 허투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낮 12시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진 팀장은 병원 주차장의 승합차로 분주히 도시락을 날랐다. 격리병동까지는 채 300m가 되지 않는 거리. 도시락 전달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 환자들과 의료진에게 따듯한 음식을 전하고자 고안해낸 방법이다. 진 팀장은 “차에 싣고 내리는 과정이 힘들긴 해도 반갑게 도시락을 받는 의료진을 보면 그저 기쁘다”고 설명했다. 고훈석 시설관리팀 차장(41)은 수시로 음압병실을 찾아 병실 내 공기압 상태를 확인한다. 병실 내 공기압을 낮은 상태로 유지해 공기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병실에서 나오는 휴지 등 폐기물을 수거해 폐기 차량에 전달하는 일도 고 차장의 몫. 고 차장은 “방호복을 입으면 찜통에 들어간 기분이다. 한 번 일을 끝내고 병동을 나올 때마다 탈진 상태가 된다”며 “최근에는 공기압 이상이 생기는 악몽까지 꾸고 있다”고 전했다. 남들은 꺼리는 음압병실 청소를 자원한 직원도 있다. 권오찬 시설관리팀 차장(53)과 고객지원실 장우태 씨(25)는 지난달 26일부터 매일 오전 10시면 메르스 환자들이 격리돼 있는 음압병실로 가서 쓰레기를 치우고 시설물을 세척하고 있다. 청소가 끝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 방호복 안은 온통 땀으로 뒤범벅돼 격리병동을 나올 때면 그야말로 기진맥진하기 일쑤다. 장 씨는 “온몸에 땀이 차 가렵기도 하거니와 지칠 때도 많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해 자원했다”고 전했다. 최재필 감염내과 과장(42)은 “의료진이 따듯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영양팀 직원, 병실 내 시설 안전을 책임져 주는 시설관리과 직원 등 감사드려야 할 분이 많다”며 “이분들 덕에 환자 진료에 전념할 수 있다”고 전했다.김재형 monami@donga.com·임보미 기자}
서울시가 자체 판단에 따라 자가 격리 조치를 내렸던 재건축조합 총회 참석자들에게 22일 긴급생계비 110만 원씩(4인 가구 기준) 지원한다고 발표한 이후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총회 참석자는 지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열린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차 재건축조합 총회 참석자 주소지 지방자치단체에 협조 공문을 보내 자가 격리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성남시 등 경기지역 지자체에서는 대상자들을 찾아 자가 격리 조치를 끝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이들이 밀접 접촉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동감시(증상이 있다고 판단한 시민이 자발적으로 신고한 경우) 대상이라고 판단했을 뿐 자가 격리 대상자로 지정하지 않았다. 정부의 긴급생계비 지원 대상은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메르스 통합정보시스템(PHIS)에 등록된 자가 격리 대상자로 제한된다. 결국 정부 기준에 따르면 재건축조합 총회 참석자는 긴급생계비 지원 대상이 아니지만 서울시는 자체 판단에 따라 서울에 주소를 둔 참석자에게는 생계비를 지원한다고 나선 것. 서울 이외 지역 총회 참석자는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총회 참석자 유모 씨(40·경기 성남시)는 “서울시로부터 자가 격리 대상자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생업도 접은 채 집에 머물러 피해가 컸는데 나는 지원 대상이 아니라니 어이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유 씨처럼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못 받고 있는 서울 외 지역 거주 총회 참석자는 128명에 이른다. 경기 남양주시 관계자는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생긴 일이니 그에 따른 보상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긴급생계비는 중앙정부 50%, 광역지자체 25%, 기초지자체가 25%씩 부담하지만 서울시는 일단 자체 예산으로 지급한 뒤 나중에 중앙정부로부터 부담금을 받아내겠다고 밝혀 향후 갈등이 우려된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여파로 여름휴가 계획을 짜고 있던 직장인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다. 본보 취재팀이 2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게시물과 구글 설문 등을 통해 직장인들의 올해 여름휴가 계획을 분석한 결과 크게 △해외도피형 △국내여행형 △방콕형(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방식)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다. 해외도피형은 메르스가 발병하지 않은 국가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일단 해외로 출국한 뒤 국내 메르스 사태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려보겠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회사원 이모 씨(29)는 다음달 3일 아내가 근무하고 있는 일본 도쿄로 휴가를 갈 계획이다. 당초 아내가 한국으로 들어와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갈 계획이었지만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급히 수정했다. 이 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내가 한국으로 들어와 친정과 시댁을 방문하며 휴가를 보냈지만 올해는 내가 먼저 일본으로 가겠다고 말했다”며 “일본에 머물면서 메르스 사태 변화를 지켜볼 계획이며 상황에 따라 휴가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4살 된 딸이 있는 회사원 김모 씨(35)는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이후 면역력이 약한 딸의 외출을 금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딸이) 바깥 공기를 쐬지 못해 답답해하는 것 같아 메르스 걱정이 없는 해외로 휴가를 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중국, 홍콩 등 인접국이 한국인 여행객에 대한 철저한 메르스 검역에 나섰다는 소식에 불만을 품은 직장인들은 국내 ‘청정 지역’을 찾아 여행을 할 계획이다. ‘국내 여행형’ 휴가 계획자인 교사 박모 씨(29)는 “가족들과 홍콩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지만 한국인에게 발열 검사를 강화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메르스 여파로 한국인들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할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고 말했다. 박 씨는 학교에 휴가 계획을 제출 한 뒤 메르스 감염 소식이 없는 국내 여행지를 찾아 휴가를 보낼 계획이다. 그는 “정부의 메르스 확진 환자 발표를 지켜본 뒤 행선지를 결정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해외·국내 여행이 모두 불편한 직장인들은 자택에서 홀로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콕형 휴가’를 준비 중이다. 통상 이런 유형은 육아부담이 큰 직장인들에게서 나타나지만 메르스 사태 이후에는 미혼인 직장인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년차 직장인으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권모 씨(26)는 “여름휴가로 3일을 사용할 수 있다.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집에 있을 계획”이라며 “여행을 가서 메르스에 걸리면 회사에 눈치가 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에 종사자인 황모 씨(33)는 “고향이 경기 평택시인데 부모님께서 (휴가 때) 찾아오지 말라고 하셨다”며 “자취방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즐기며 쉴 계획”이라고 전했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과 서울고검장을 지낸 박영수 변호사(63·법무법인 강남 대표변호사·사진)가 자신이 변호인을 맡았던 사건의 상대방 측으로부터 흉기로 습격을 당했다.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이모 씨(63)는 17일 0시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 앞에서 공업용 커터로 박 변호사의 목 부위를 찌른 뒤 흉기를 사건 현장 인근에 버리고 도주했다. 경찰은 이 씨가 박 변호사와 대화하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목 부위에 13cm가량의 상처를 입은 박 변호사는 서울 강남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 신고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은 법무법인 관계자 등을 상대로 수사해 피의자 이 씨의 신원을 파악했다. 그러던 중 이날 오전 4시경 이 씨가 서초경찰서로 찾아와 자수했다. 이 씨는 경찰에서 “내가 고소한 사건에서 상대방 변호사 때문에 일이 틀어져 앙심을 품고 찔렀다”고 진술했다. 이 씨는 경찰 조사가 계속되자 몸이 좋지 않다고 주장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는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도 찍었지만 별 이상이 없었고 계속 잤다”고 말했다. 2006년 H건설을 운영하던 이 씨는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로 불렸던 정덕진 씨와 자금 문제로 다퉜고, 정 씨로부터 업무상 횡령 혐의 등으로 고소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2월 구속된 이 씨는 2009년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정 씨와 합의해 2심에서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 씨는 2009년 “수사와 재판 당시 정 씨에게 유리하게 진술한 관련자들이 정 씨의 사주로 거짓 증언을 했다”며 정 씨를 위증교사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그때 정 씨의 대리인이 박 변호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씨 측 변호인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 씨는 정 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자 크게 화를 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씨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정윤철 trigger@donga.com·김재형 기자}
보건 당국의 지시를 어기고 자택을 무단이탈한 메르스 자가 격리 대상자들이 잇따라 경찰에 고발됐다. 보건 당국이 메르스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들에게 자가 격리 조치를 취한 이래 자택 이탈로 고발된 것은 처음이다.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서울과 대전지역에서 자가 격리 대상자의 자택 이탈 혐의(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와 관련한 3건의 고발장이 접수됐다. 피고발인은 모두 4명으로 서울 송파구(2명)와 강남구(1명), 대전 동구(1명)에 각각 거주하고 있다. 강남보건소는 자가 격리 기간에 자택을 이탈한 채모 씨(50·여)를 강남경찰서에 고발했다. 보건 당국에 따르면 채 씨는 76번 환자가 경유한 서울 강동구 강동경희대병원에서 진료받은 것으로 확인돼 이달 6일부터 자가 격리된 상태다. 그러나 채 씨는 강남구 삼성동 자택을 이탈해 14일 오후 1시경 연락이 끊겼다. 경찰의 위치 추적 결과 채 씨는 친정집이 있는 양천구 목동과 신정동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채 씨는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양천구까지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소는 16일 채 씨의 신병을 확보해 자택에 재차 격리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병원은 자가 격리 도중 자택을 나와 병원 진료를 받은 A 군과 어머니 B 씨(35·여)를 경찰에 고발했다. 보건 당국에 따르면 A 군은 76번 환자가 입원했던 건국대병원 응급실을 방문해 10일부터 격리됐다. 그러나 B 씨는 아들이 감기 증세를 보이자 13일과 15일 집 근처 소아과를 함께 찾았다. 환자가 자가 격리 대상자라는 사실을 파악한 병원 측이 보건소에 신고했다. 보건 당국에 따르면 B 씨는 당초 “건국대병원 응급실에 자녀와 함께 가지 않았다”고 말해 자가 격리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A 군의 자택 이탈과 관련해 보건소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뒤늦게 “건국대병원에 동행했다”고 실토했다. 대전 동구의 자가 격리 대상자인 전모 씨(40)는 보건 당국의 경고에도 2, 3차례 자택을 이탈해 보건 당국에 의해 고발됐다. 경찰은 메르스 감염 여부 확인과 자가 격리 기간이 끝난 뒤 이들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80조에 따르면 피고발인들은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정윤철 trigger@donga.com·김재형 / 대전=이기진 기자}
14일 오후 1시 30분경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 공원.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일광욕을 즐기거나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붐볐다. 메르스 사태에 간혹 마스크를 쓴 채 홀로 떨어져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3, 4명씩 소규모로 모여 “메르스 예방차 운동하러 왔다”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6세 아들과 함께 공원을 찾은 회사원 최모 씨(37)는 “밀폐된 공간도 아닌데다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 (메르스 예방에) 더 좋을 것 같아 나왔다”며 “하루 이틀 계속될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이럴 때일수록 바람도 쐬고 햇빛도 받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놀이하던 대학생 최모 씨(25)는 “요즘 술 먹자고 하면 ‘메르스라는데 제정신이냐’는 소리를 듣기 일쑤”라며 “차라리 공원에서 족구나 하자는 친구들이 많아 운동도 할 겸 같이 공원을 찾았다”고 전했다. 야외활동 동호회 회원들도 평소처럼 야외활동을 즐기고 있다. 한국산악회 김서원 회원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지난주 주말 회원 10명과 함께 경기 포천의 한 체육공원에서 인공암벽 등반을 했다”며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는 건 심리적 위안만 될 뿐, 실질적인 메르스 예방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대규모 인원이 한꺼번에 모이는 공식 행사는 연기하고 있지만 회원들끼리 소규모로 모여 하는 야외활동은 적극 추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자전거 동호회 회원 민모 씨(36)는 “평소 자전거로 집에서 5km 떨어진 회사까지 출근했는데 최근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줄어 오히려 자전거 타기가 수월해졌다”며 “주말 술 약속도 줄어 오히려 동호회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방지환 서울 보라매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메르스가) 병원 밖 지역사회에서 전파됐다는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굳이 방 안에만 있을 필요는 없다. 야외활동이 활력을 높여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다만 일광욕으로 인체에 비타민D 생성을 높여 메르스를 예방하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는 입증되지 않은 사실이니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재형기자 monami@donga.com}

메르스 3차 확산의 ‘뇌관’이 될 수 있는 잠재적 슈퍼 전파자의 행적을 밝혀내기 위해 보건당국이 전방위 추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정확한 동선을 파악해야만 지역사회 감염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추적 과정에는 보건당국과 경찰은 물론이고 금융기관과 이동통신사까지 참여하고 있다. ○ CCTV, 블랙박스까지 분석 서울 수서경찰서 강력5팀은 14일 오후부터 강남구 도곡동의 한 아파트 단지 정문의 폐쇄회로(CC)TV 분석에 매달리고 있다. 이곳은 13일 141번째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A 씨(42)의 자택. 경찰이 CCTV에서 찾는 것은 A 씨가 확진 판정을 받기 직전 강남세브란스병원까지 타고 온 택시다. A 씨는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라”는 보건소의 지침을 무시한 채 택시를 타고 이동한 것이다. 그는 ‘선별진료실’에 격리돼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도중에도 “내가 메르스에 걸렸다면 다 퍼뜨리고 다니겠다”며 난동을 피우고 탈출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경찰은 A 씨가 탄 택시를 몰았던 운전사의 감염 가능성을 확인하려고 CCTV 분석을 통해 택시번호를 확인하고 있다. 경찰은 “A 씨의 휴대전화와 인근 주민의 차량 블랙박스까지 살폈지만 아직 택시번호를 확인하지 못했다. 택시비도 현금으로 지불해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강남구 보건소 관계자는 “A 씨가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택시 운전사에게 전파했을 가능성도 있어 신원이 확보되는 대로 격리조치시킬 예정”이라며 “만약 택시 운전사가 메르스 증상이 있으면 A 씨 이후에 택시를 탄 손님들도 격리조치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밝혔다. 상황에 따라 격리조치 대상자 수가 급증할 가능성도 있다. 잠재적 슈퍼 전파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부산 143번 환자(31)의 이동경로와 접촉자를 확인하는 데도 경찰이 투입됐다. 부산지방경찰청은 15일 143번 환자가 다녀간 수영구의 좋은강안병원 등 병원 4곳과 식당 등의 CCTV 분석을 위해 지방청 과학수사계와 경찰서 직원 5명을 메르스대책본부에 파견했다. 대책본부에는 보건복지부와 부산시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협업해 143번 환자의 동선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143번 환자의 접촉자를 빨리 확인하는 게 목적이어서 범죄 수사 때 CCTV 분석 경험이 많은 직원을 선발해 파견했다”고 밝혔다.○ 신용카드 거래명세도 확인 자체 역학조사반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는 확진환자의 신용카드 결제 명세까지 살펴 동선을 확인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역학조사가 의료기관 방문 위주로 이뤄져 버스, 지하철 등 다중이용시설 방문을 모두 잡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37번 환자(55)가 5일 동작구 보라매병원 응급실을 방문한 사실도 바로 신용카드 결제 명세 확인을 통해 14일 파악됐다. 137번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이송요원으로 역시 잠재적 슈퍼 전파자로 지목됐다. 김창보 서울시 보건기획관은 “대부분의 환자에게 중앙역학조사반 조사와는 별도로 역학조사를 1번 더 하고 있다”며 “하지만 워낙 과정이 복잡해 1팀당 ‘하루 1건’을 조사하는 것이 한계다”라고 설명했다. 동선 파악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최근 정부는 ‘위치추적팀’을 신설해 통신사가 제공하는 위치추적 정보까지 조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했다. 역학조사반원들은 이 시스템으로 확진환자가 다녀간 장소로 출동한 뒤 CCTV를 확보해 분석하거나 탐문조사를 벌인다. 필요할 경우 가족이나 직장동료들의 진술까지 확보하는 등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김재형 monami@donga.com / 부산=강성명 / 이철호 기자}

12일 오후 1시 30분 경기 평택시 평택공용버스터미널 입구. “안으로 들어가 주세요. 살균액 뿌립니다.” 한국방역협회 경기지회 소속 김명도 씨(53)의 외침과 함께 방역차가 뿜어낸 살균액이 부슬비처럼 터미널 안으로 날아들었다. 살균액은 차아염소산(HOCI)으로 만든 것으로 대장균 살모넬라 등 병원성 바이러스나 세균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 10여 분 뒤 김 씨는 직접 수건을 들고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문손잡이, 의자 등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모두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는 부분이다. 김 씨가 힘주어 닦아내자 손때가 사라지고 말끔해졌다. 광채가 날 정도였다. 약 30분에 걸쳐 방역작업을 벌인 김 씨가 발길을 돌리는 순간 터미널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그의 등 뒤에서 외쳤다. “기왕 하는 김에 여기도 좀 해줘요. 메르스 달아나게….”○ “우리는 ‘방역 예비군’입니다” 요즘 김 씨는 회사(방역업체)가 아닌 평택시 보건소로 출근한다. 오전 9시 오늘 맡은 방역지역을 확인하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김 씨는 9일부터 하루에 많게는 40곳 가까이 돌아다니며 소독하고 있다. 대상 지역에 따라 2인 1조 또는 4인 1조로 팀을 꾸려 이동한다. “보건소에서 나눠주는 살균액을 제외하고 모든 장비를 자체적으로 가져와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평택지역 방역에 참여 중인 자원봉사자는 약 25명. 한국방역협회 경기지회 소속 업체 10여 곳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다. 이들은 요양원이나 병원, 공부방 등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을 찾아다니며 소독하고 있다. 이들의 자원봉사는 17일까지 예정됐다. 김 씨가 직접 방역작업에 나선 이유는 ‘공포의 지역’이 된 평택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 김 씨는 “어디에 ‘평택에서 왔다’는 소리조차 못할 지경”이라며 “마치 (평택에서) 난리가 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며 답답해했다. 김 씨는 그래도 자신들의 활동을 보며 공포심에서 벗어나는 주민들 덕분에 힘을 내고 있다. 그는 “‘고생하시네요’라며 음료수를 건네주는 주민이 많다”며 “실질적인 방역 효과도 있지만 이처럼 과도하게 퍼진 메르스 공포를 잡는 것이 주된 목표”라고 강조했다. 하루의 방역작업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6시경. 김 씨는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한 뒤 그제야 밀린 회사 일을 본다. 김 씨는 “요즘 거리를 지나는 사람이 10분의 1로 줄었다. 이 일대 상가 주인들은 죽을 맛”이라며 “평택이 다시 정상을 되찾을 때까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계속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내 고장 내가 지킨다”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한 경기 부천시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보건소 등 일손이 부족한 공공기관을 대신해 경로당 은행 등을 찾아 직접 방역에 나서고 있다. 서강진 부천시 소사본3동 청소년지도위원장은 “현재 회원 19명이 공공기관을 도와 방역 활동을 하고 있다”며 “메르스 사태를 극복하는 데 지역 주민들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경북 포항시의 오천청년회는 9일 방역봉사단을 결성했다. 참가자를 모집하자 무려 200여 명이 지원해 교대로 지역을 돌며 소독 작업을 하고 있다. 시장과 공중화장실, 주택 밀집지역을 돌며 살균액을 뿌리고 있다. 서현준 청년회 국장은 “우리 지역 안전은 우리 스스로 지킨다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과 경기 전북 충남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메르스 관련 봉사활동 정보는 행정자치부가 만든 1365자원봉사 포털 사이트(1365.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평택=김재형 monami@donga.com / 손가인 기자}
회사원 하모 씨(29)는 이달 초 친구 7명과 함께 헌혈하기로 한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하 씨는 2009년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를 위해 헌혈을 한 뒤 석 달에 한 번 꼴로 꾸준히 헌혈을 해왔다. 하 씨는 “젊은 사람도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마당에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메르스 사태가 진정이 되면 헌혈을 계속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 여파로 대한적십자사가 고민에 빠졌다. 하 씨처럼 메르스에 감염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헌혈 예약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가 특히 우려하고 있는 문제는 단체 헌혈자의 급격한 감소다. 대한적십자에 따르면 3~9일 헌혈 예약을 취소한 단체는 고등학교 29곳, 군부대 10곳 등 모두 51개소다. 통상 전체 헌혈자 중에 33%가 단체로 참가하는 이들이다. 특히 메르스 확산의 거점지역인 수도권 일대에서 헌혈 취소 사례가 줄 잇고 있다. 수원시, 오산시, 화성시 등 경기 31개 지역에 혈액공급을 담당하는 경기혈액원의 경우 헌혈자 수가 지난해 6월 초에 비해 70%대로 떨어졌다. 유성렬 경기혈액원장은 “지난해 일일 평균 헌혈자 수가 640명은 됐는데 최근 4일간 400~500명 선에 그치고 있다”며 “혈액 수급양보다 출고량이 두 배가 된 상황이라 모두들 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적십자는 줄어든 단체 헌혈자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한 홍보 활동을 강화해 개인 헌혈자로 대체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주 후반에 접어들며 개인 헌혈자들이 많아져 예년과 하루 평균으로는 비슷한 수급량을 보이고 있지만, 다음주에는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헌혈자 수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큰 효과를 거두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 원장은 “헌혈한 경험이 있는 분들께 헌혈 촉구 메시지를 보내고 대학교 등에 차를 보내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김재형 기자}
불법체류 사실을 신고하겠다는 말에 격분해 동료 직원을 살해한 조선족 동포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살인 등의 혐의로 조선족 이모 씨(42)를 검거해 조사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이날 오전 6시 25분경 송파구 방이동의 한 양파 재배 비닐하우스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A 씨(64·여)와 B 씨(55)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당시 이 씨가 사용한 흉기는 양파 껍질을 벗길 때 사용하던 칼로, A 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B 씨는 중태다. 범행 직후 이 씨는 B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며 자해소동을 벌이다가 약 40분 뒤 경찰이 쏜 테이저건에 맞고 붙잡혔다. 경찰조사에서 이 씨는 “평소 조선족이라고 멸시하고 약점을 잡아 괴롭혔다”며 “불법체류자라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위협까지 해 그랬던 것”이라고 범행 동기를 설명했다. 경찰은 “해당 비닐하우스에서 1년간 일해 온 피의자는 조선족이라며 자신을 멸시하던 피해자들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며 “주변인 조사가 끝나는데로 이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서울 강남보건소 보건과 A 간호사(46·여)는 요즘 슈퍼맨이 됐으면 좋겠다고 상상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여러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탓이다. 자가 격리 대상자의 검체(가래)를 받으러 갈 때면 찌는 날씨에 두꺼운 방역복까지 입어야 해 기진맥진하기 일쑤. 그래도 같이 고생하는 다른 직원들을 생각하면 쓰러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9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강남보건소 방역대책본부에서 만난 A 간호사는 제대로 말 한 번 건네기가 민망할 정도로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휴일 없이 하루 15시간 강행군 A 간호사의 하루 일과는 오전 7시 30분 보건소에서 야간 당직 근무조로부터 전날 상황을 인수하면서 시작한다. 날마다 상황이 바뀌는 터라 A 간호사는 그날 출근을 해봐야 어떤 업무를 맡을지 알 수 있다. A 간호사가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은 오전 8시. 한 곳에서 채 30분을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한 손으론 상담전화를 받고 다른 손으로는 자가 격리 대상자 보고서 항목을 체크한다. A 간호사는 “관리해야 하는 인원이 1000명이다. 강남구 직원들도 도와주긴 하지만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저마다 각자의 업무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손이 빌 때마다 다른 팀 업무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허락된 식사 시간은 20분. 낮 12시 10분 직원식당에 사람들이 빠질 때 허겁지겁 달려간다. 다른 직원들과 교대로 식사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물 마시듯 밥을 먹을 수밖에 없다. 급히 먹다 목이라도 메면 서러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이는 오후 6시경 시작되는 저녁시간에도 마찬가지다. 오후 보건소 직원들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자가 격리된 주민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 이곳 직원들은 자신이 관리하는 자가 격리 대상자의 발열 상태 등을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사전에 통화 가능한 시간을 묻고 전화를 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 주민이 적지 않아 늘 긴장하고 있다. A 간호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체온 확인이다. 오전에 미열이 있던 환자라면 오후에 더 신경 써서 살펴야 한다”며 “이상이 감지되면 직접 집으로 찾아가 검체를 확보해 정밀 검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때론 주민들의 야속한 말에 상처받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는 “문진 갈 때 하얀 방역복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도 힘든데 격리 주민이 오히려 ‘신분이 노출되게 왜 이러느냐’며 역정 낼 때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메르스 방역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오히려 주민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큰 듯했다. A 간호사의 전쟁 같은 일과는 오후 10시 30분에 끝난다. 집에 도착하면 11시가 넘지만 자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혹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묻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몸 구석구석을 씻느라 자정을 넘기게 된다는 것. A 간호사는 “나보다는 가족들, 또 괜히 병을 옮기면 더 바빠질 수밖에 없는 100여명의 다른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처럼 집안일은 이미 포기한 직원도 많고 배우자가 휴직계를 내고 아이들을 돌보는 가정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 안쓰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긴장감 더해진 구급대원 일선 소방서 구급대원들의 처지도 비슷하다. 지난 일요일부터 서울 시내 일선 소방서에는 메르스 의심환자 이송을 전담하는 팀이 꾸려져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이곳 대원들은 의심환자 신고가 떨어질 때마다 “확진환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한다. 서울 도봉소방서 김모 구급대원은 “이송전담반 직원의 가족들이 걱정이 많다”며 “남자 직원들한테는 (이송전담반에 있다는 것을) 여자친구에게 알리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메르스 전담팀으로 활동하는 대원들은 신고가 떨어지면 서둘러 고글, 마스크, 장갑, 신발, 방역복 등을 착용하고 현장으로 출동한다. 요즘 같은 날씨에 통풍도 안 되는 방역복을 입으면 그 안은 40도가 넘는다. 출동을 끝내고 돌아와 보면 속옷까지 흠뻑 땀으로 젖어있다. 하지만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가족의 건강. 최모 구급대원(27·여)은 “의심환자를 이송한 날이면 혹시 가족에게 옮길까 봐 내가 샤워하는 안방 화장실을 비워 달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이 소방서의 또 다른 대원은 “유난스럽다고 말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메르스 전파를 막기 위한 우리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라고 말했다.김재형 monami@donga.com·임보미·손가인 기자}

“초기에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완치될 수 있어요. 병원 이름 공개도 꼭 필요하고요.” 8일 오후 메르스 완치 판정을 받고 서울 강동구 천호동 자신의 병원으로 돌아온 정모 365열린의원 원장(51)은 메르스 사태에 대한 지나친 우려를 경계하며 이같이 말했다. 정 원장은 지난달 17일 국내 첫 메르스 감염 환자를 치료하다 감염돼 이날까지 병원 격리치료를 받았다. 정 원장은 “지난달 25일 오전 근육통에 소화불량이 있었는데 심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날 저녁이 되자 열이 나기 시작해 메르스에 걸렸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정 원장을 가장 괴롭힌 것은 ‘통증’이 아니라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였다. 인터넷에는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가 진료를 계속하고 있다”는 등 허위 사실이 나돌았다. 질병관리본부와 관할 지자체인 서울 강동구의 확인 결과 정 원장이 확진 판정을 받기 전 진료한 환자들 중에는 메르스에 감염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는 확진 전까지 모든 의료진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진료 활동에 나섰으며 몸에 이상을 느낀 직후 스스로 보건 당국에 연락하고 진단을 받았다. 정 원장은 “격리치료 중에는 통증과 소화불량 등의 증상에 시달렸지만 독감에 비하면 가벼운 편이라 건강한 사람이라면 크게 걱정할 질병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병원 이름이 공개된 것에 대해 정 원장은 “당연히 공개해야 하는 일이다”라고 답했다. 정 원장은 “시민들이 막연한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병원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이해식 서울 강동구청장과 지역 주민 다섯 명은 정 원장의 퇴원을 축하하고 조속한 재개원을 기원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이 구청장은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했던 병원도 날벼락 맞은 셈인데 훌륭한 이 의료 시설이 안전하다는 점을 알리고 정 원장의 완치를 축하하기 위해 급히 달려왔다”고 말했다. 주민 김명자 씨(63)는 “정 원장님은 밤 12시에 아프다고 전화해도 5분 안에 병원으로 뛰어와 진료해 주는 분으로 유명하다는 걸 많은 주민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정 원장은 닫았던 병원 문을 다음 주 다시 열 예정이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