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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각자의 집에 머물게 된 사람들. 자발적 자가 격리의 상황에서 가족들은 서로의 말에 더 귀 기울이고,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운동, 독서, 그림 등 자신만의 시간에 깊이 몰입한 이들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며 고난의 시간을 치유의 시간으로 바꿔 나간다. 그런데 이 치유는 비단 인류에만 해당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활동이 멈추자 자연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 저자는 기후위기를 맞은 인류의 변화를 꿈꾸며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내서 지구가 깨끗이 나을 수 있도록 돕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깨끗이 나은 것처럼요!’ 미국 교사 출신의 저자는 팬데믹 이후 위로와 희망을 노래한 그림책을 내놓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시로 표현돼 여운을 남긴다. 앞서 미국이 록다운에 돌입한 지난해 3월 저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한 동명의 시가 화제가 돼 이를 모티브로 한 노래와 무용, 단편영화가 만들어졌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인류의 첫 문명사적 전환으로 꼽히는 농경에 대해선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농경을 통해 비로소 문자나 계층 같은 인류 문명의 기반이 마련됐다는 게 지배적 견해다. 반면 인류가 수렵을 포기하고 농경을 택하면서 여가시간이 대폭 줄고 노동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농경문화는 수직적 지배체제로 이어져 피지배층에 대한 폭력적 억압을 낳았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이 책에서 자유롭고 발전하는 국가들의 차별화 요소를 선원과 농부의 차이로 설명한다. 고대부터 바다는 다양한 문명의 통로가 돼 왔으며 이에 따라 주요 도시를 해안에 건설한 나라가 강대국이 됐다는 것. 고대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르네상스 이후 베네치아 플랑드르 영국, 현대의 미국 일본 중국 등이 모두 그랬다. 반면 농경을 통한 지대에 길들여진 내륙국가는 폐쇄적 기득권에 갇혀 뒤처졌다. 아탈리의 바다 예찬은 끝이 없다. 오랫동안 바다를 통해 번영한 나라치고 장기간 독재가 지속된 곳은 없다고 주장한다. 해상무역을 통해 물산은 물론이고 여러 사상들이 들어와 민주적 시각을 끊임없이 자극해서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히틀러의 독일 같은 대륙국가와 대비되는 미국, 영국의 해양 강대국이 대표적이다. 미래학 대가답게 아탈리의 시선은 미중 갈등 이후 해양 지정학으로 나아간다. 1956년 수에즈 위기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등에서 보듯 냉전 이후 초강대국의 힘이 투사되는 바다의 전략적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주요 해상 운송로와 해저 유전의 경제적 효용은 막대하다. 특히 핵무기를 비행기나 미사일로 운송하는 것보다 바다 아래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게 군사적으로 훨씬 효율적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미중 갈등과 맞물려 남중국해, 동중국해, 인도양, 홍해, 페르시아만, 지중해, 대서양 순으로 국가 간 분쟁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이 그림은 초상화라기보다 영화의 한 장면에 가깝다. 심각한 표정으로 작전을 논의하는 지휘관 두 명을 중심으로 병장기와 북을 챙기는 장병들의 부산함이 겹쳐 있다. 마치 당장이라도 진격할 태세의 역동성이 그림 전체를 휘감고 있다. 강렬한 에너지 그 자체다.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간순찰’은 프란스 반닝코크 대위 등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민병대로부터 주문받은 초상화다. 흥미롭게도 이 시대의 걸작에 대해 정작 주문자들은 자신들의 실제 모습과 너무 다르다며 대가 지불을 꺼렸다. 예술은 현실의 단순한 복사판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독일 관념철학의 대가 헤겔도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철학과 문화비평을 전공한 저자가 쓴 이 책에 따르면 헤겔은 렘브란트의 그림이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도래를 반영한다고 봤다. 유럽 절대왕정 시대가 절정에 이른 17세기 네덜란드인들은 에스파냐 펠리페 2세의 아르마다(무적함대)를 무찌르고 자유를 쟁취했다. 렘브란트의 ‘야간순찰’이 뿜어내는 시민들의 진취적 기상과 쾌활함은 당시 네덜란드의 시대정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헤겔의 해석이다. 그는 ‘미학강의’에서 “사교계나 궁중의 겉치레나 오만한 고상함 따위로는 감히 네덜란드 회화의 내용에 접근할 수 없다”고 썼다. 외양과 본질은 구분되지 않으며, 외양을 통해 본질이 드러난다는 헤겔 철학의 정수를 렘브란트 그림이 반영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이 밖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빈센트 반 고흐 등 서양미술 걸작들과 서구 철학의 접점이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우리 전통 식문화인 ‘떡 만들기’가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떡을 만들고 이를 나눠 먹는 문화를 아우르는 떡 만들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다고 8일 밝혔다. 떡은 곡식가루를 시루에 안쳐 찌거나 기름에 지지는 등의 조리 과정을 거친 음식이다. 예로부터 관혼상제나 명절에 빠지지 않고 상에 오르는 단골음식이었다. 가족, 이웃과 나누는 떡은 정을 주고받는 나눔의 문화를 상징했다. 문화재청은 떡 만들기가 한반도에서 고대부터 전승돼 왔고, 고문헌에 관련 기록이 나오며, 현재도 여러 전승 공동체가 레시피를 유지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청동기, 철기시대 유적에서 시루가 발견됐고 고구려 고분인 황해도 안악 3호분 벽화에서도 시루의 존재가 확인됐다. 삼국사기에는 떡을 뜻하는 글자 ‘병(餠)’이 나온다.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의 떡이 전승되고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예를 들어 강원도에서는 감자나 옥수수로 만든 떡이 유명하고, 쌀이 귀했던 제주도에서는 팥 메밀 조를 활용한 오메기떡이나 빙떡을 만들어 먹었다. 문화재청은 떡 만들기가 전국 각지에서 폭넓게 전승되고 있는 걸 감안해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중국은 현상유지(status quo) 국가인가, 아니면 수정주의(revisionist) 국가인가.’ 2000년대 들어 국제정치학계의 최대 화두다. 현재의 국제 체제를 받아들이면 전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후자다. 급격히 힘을 불린 신흥 강대국은 수정주의로 치달아 주변국과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이런 시각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존 미어셰이머 등 미국 학자들이 중국의 공격성을 부각하는 것과 배치된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은 1949∼2008년 주변국과 23건의 영토 분쟁을 벌였는데 이 중 17건이 중국의 양보나 타협에 의해 해결됐다. 대만 인도 부탄 일본 베트남 등 나머지 6건의 미해결 영토 분쟁은 본토 수복(대만)을 제외하고 대부분 해양 진출과 관련돼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이 기간 영토 분쟁에서 양보한 이유는 무얼까. 저자는 1949년 건국된 신생국의 취약성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마오쩌둥의 극좌운동으로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른 상황에서 소수민족들의 저항에 부닥친 중국 정부가 외부 위협을 낮추기 위해 인접국과의 갈등을 피했다는 얘기다. 예컨대 1959년 티베트 봉기에 이어 1962년 대약진운동 실패로 어려움에 처한 중국은 북한 몽골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소련과의 영토 분쟁에서 한발씩 물러섰다. 그러나 중국이 일방적으로 양보만 한 건 아니다. 횟수는 적지만 중국은 양자관계에서 자국의 협상력이 현격히 줄었다고 판단되면 무력을 동원했다. 예컨대 중국은 1962년 10월 인도와의 국경협상이 결렬된 후 군사 공격을 감행했다. 인도의 병력 증강이 가시화된 데다 경제위기로 중국의 입지가 약화됐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런 맥락에서 대만과의 영토 분쟁을 매개로 향후 미중관계의 불안요인이 커질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는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대만 지원이 자국의 협상력을 현격히 약화시켰다고 중국이 인식하면 무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것. 게다가 중국의 군사력이 갈수록 강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중국이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을 평화적으로만 해결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조선 태조 이성계가 건국 직전인 1390, 91년 조성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사리를 봉안한 기구)의 사리병(사진) 재질이 석영유리로 밝혀졌다. 불순물을 최소화한 석영유리는 일반 유리보다 제작 기술이 한층 까다롭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보물 제1925호) 유물을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리병 재질을 규명했다고 30일 밝혔다. 고승의 유골을 봉안하는 사리장엄구는 통상 항아리(舍利壺·사리호)와 사리병, 부처에게 바치는 공양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성계는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건국의 염원을 담아 금강산에 사리장엄구를 봉안했다. 중앙박물관이 재질 조사를 마친 사리병은 높이 9.3cm, 지름 1.2cm, 무게 31g이다. 은으로 도금한 받침대와 마개를 위아래에 각각 설치했고, 안에는 사리 받침대를 뒀다. 중앙박물관은 사리병의 파손 부위를 최근 수리했다. 일반 유리보다 강도가 약 2배인 석영유리는 1500도의 고온에서 만들어야 해 제작이 까다롭다. 일반 유리는 1000도 미만의 열로도 제작이 가능하다. 앞서 경북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유리구슬 6점이 석영유리 재질로 조사됐다. 이 구슬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걸로 추정된다. 이성계 사리장엄구는 15일부터 열린 국립춘천박물관의 ‘오색영롱―유리, 빛깔을 벗고 투명을 입다’에서 전시 중이다. 8월 15일까지.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로버트 졸릭이 쓴 미국 외교사 책이라기에 일단 택했다. 그처럼 세계경제와 외교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의 철학을 현실에 적용한 인물이 드물어서다. 아버지와 아들 부시 정권에서 국무부 부장관, 세계은행 총재,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졸릭은 단순한 관료가 아니다.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그는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지향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을 고리로 각국의 시장개혁을 유도하는 모델을 설계한 당사자다. 그러나 그를 시장의 힘을 절대시한 신자유주의자로만 규정하기는 힘들다. 2003년 미 정부의 농업보조금을 옹호한 데서 알 수 있듯 국내 정치지형에 따라 보호무역주의로 단번에 돌아서는 실용주의 노선을 고수했다. 좀 삐딱하게 보면 소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가까운 태도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 책은 그런 그의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졸릭은 책 서두에서 현실주의 외교 대가인 헨리 키신저를 미국의 기를 꺾은 냉소주의자로 비판하고 있다. 키신저는 “미국인들은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기에 미국 외교정책이 과도한 개입과 후퇴를 반복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졸릭 관점에서 미국 외교는 인위적 관습과 추상적 개념, 도그마를 거부한 이른바 ‘실용주의’ 외교 노선을 추구해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 이와 관련해 졸릭은 미국 외교정책의 일관된 특징으로 북아메리카에 뿌리를 두고 해외무역과 기술, 동맹국과의 질서를 강조한 점을 들고 있다. 이와 함께 의회 동의 등 국내 정치를 중시하는 동시에 패권국으로서 추구하는 목적 지향도 미국 외교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이런 관점에서 졸릭은 중국의 부상과 트럼프의 동맹 방기가 동북아 역내 질서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 방향은 주변국들의 중국 수용 혹은 핵 억제력 개발의 두 가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예상이다. 졸릭은 트럼프 외교를 비판하며 다소 희망 섞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나는 미래의 세계질서를 형성할 미국의 역량이 트럼프나 그의 비판자들이 믿는 것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유물 등록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최근 이건희 컬렉션을 인수해 개관 이래 최대 경사를 맞은 국립중앙박물관(국박)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국박은 삼성가로부터 넘겨받은 2만1600여 점의 유물과 목록을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막대한 양의 컬렉션을 옮기는 과정에서 유물들이 서로 뒤섞일 수 있어서다. 유물을 수장고에 보관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유물 등록’은 예산과 인력이 확충되는 내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물 등록은 단순히 관리번호만 매기는 게 아니라 실측과 재료 파악, 사진 촬영 등을 복합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에 따라 국박은 이건희 컬렉션 등록에만 최소 2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유물 등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함께 있어야 할 세트 유물이 따로 떨어져 보관되는 등의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4년 전 동그란 몸돌로 유명한 고려시대 홍법국사실상탑(국보 제102호)의 상륜(相輪·탑 꼭대기 장식)이 사라진 지 50여 년 만에 국박 수장고에서 뒤늦게 발견된 게 대표적이다. 박물관에 따르면 상륜이 세로로 반파(半破)돼 탑 위에 고정되지 않자 1960년대에 이를 분리 보관했다. 문제는 당시 유물 등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50년 넘게 존재가 잊힌 채 수장고에 방치된 것. 국박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촬영한 탑 사진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이를 파악했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제101호) 사자상도 한동안 분실된 걸로 알려졌지만 국박 수장고에 보관된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사실 박물관에서 유물 등록 이상으로 중요한 건 ‘조사 연구’다. 소장품 연구가 새로 발굴된 고고 자료와 맞물려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밝혀낼 수 있어서다. 예컨대 국박은 2013년 금관총(金冠塚) 출토 둥근고리칼(環頭大刀·환두대도) 칼집에서 ‘이사지왕(爾斯智王)’ 명문을 발견했다. 이는 2년 후 금관총 재발굴 때 출토된 ‘이사지왕도(爾斯智王刀)’ 명문의 칼집 장식과 더불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던 금관총의 주인이 이사지왕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근거였기 때문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비지정 문화재(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것) 중에도 수월관음도 등 희귀 유물이 상당수 포함돼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박 관계자는 “외부 연구자들과 함께 시간을 들여 찬찬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부 환경은 이런 분위기와 거리가 있다. 최근 약 20곳에 달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과열 양상으로 치닫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수도권에 이건희 미술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기증품을 제대로 보존해 국민들에게 문화 혜택을 돌려주는 게 기증자의 뜻이라면 미술관 설립을 서두르기보다 유물 관리와 조사 연구에 먼저 힘쓰는 게 순서다.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최근 장인 어른이 코로나19 백신을 맞도록 설득해 달라는 장모님의 요청을 받았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혈전 부작용 보도와 더불어 지난해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보도가 영향을 끼친 모양이었다. 유튜브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부추기는 백신 공포도 한몫했다. 결국 “고령자가 코로나에 걸리면 죽을 수 있다”는 주치의 엄포에 장인 어른은 “한번 고민해 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 책에서 미국 뉴욕공과대 교수(생리학) 출신의 저자는 백신 거부의 역사를 통해 백신 포비아가 만들어진 원인을 추적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최초의 백신 거부 운동은 1853년 영국 정부가 백신접종법을 제정해 생후 4개월 이상의 모든 유아에게 천연두 백신 등의 접종을 의무화한 직후에 시작됐다. 이유는 다양했다. 우선 소의 생체(우두)를 추출해 사람에게 투여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작용했다. 이는 ‘우두를 맞으면 소가 된다’는 웃지 못할 미신으로 이어졌다. 미신에 사로잡히지 않은 지식인들도 백신 거부에 동참했다. 자유주의 세례를 받은 일부 지식인은 국가가 개인의 몸에 관여하는 건 옳지 않다고 믿었다. 대지주였던 존 깁스는 1854년 백신 반대 책자를 내고 “백신접종법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 이 법은 사람들을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어리석은 존재로 취급한다”고 주장했다. 백신 거부 운동의 여파로 영국의 백신 접종률은 1873년 86%에서 1884년 36%로 급감했다. 이는 천연두 사망자 급증으로 이어졌다. 이에 공공의 이익을 앞세운 영국 정부는 공권력으로 맞섰다. 1885년 레스터시에서만 백신 접종 거부자 60여 명이 감옥에 갇혔다. 1905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백신 접종을 거부해 벌금형에 처한 이가 제기한 소송에서 “대중의 안전에 큰 위험이 있을 경우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백신을 맞아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백신 거부자가 백신을 맞고 싶어도 맞지 못하는 사람들(장기 이식자, 알레르기 질환자, 영아 등)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증상 감염자’ 비율이 높은 코로나19의 경우 이런 위험은 더 클 수밖에 없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깊은 동굴 벽면에 검은색으로 그린 벽화가 있다. 뿔 달린 사슴 다섯 마리가 떼를 지어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모두 목 윗부분만 그려져 있다는 것. 도대체 무얼 그린 걸까. 의문을 풀 실마리는 이 벽화가 그려진 암벽에 숨어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슴 목 부위로 석회암 특유의 물결무늬가 지나간다. 암벽의 독특한 자연 형태를 이용해 강물을 건너는 사슴 떼의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8일 시작된 ‘호모 사피엔스’ 특별전의 압권은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를 재현한 영상 코너다. 2부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 전시실 진입로에 동굴 암반 색상의 벽면을 설치한 뒤 빔 프로젝터로 유명 동굴 벽화들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투사했다. 강물을 건너는 사슴 떼를 그린 라스코 동굴 벽화는 1만7000년 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굴 벽면의 질감까지 이용한 이 벽화에 대해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미술사학)는 “인류가 이미지를 이용한 진일보한 지적 능력을 갖춰나가고 있었음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라스코를 비롯해 스페인의 알타미라, 프랑스의 쇼베 코스케 루피냐크 동굴 등에서 발견된 벽화들은 모두 3만2000∼1만3000년 전에 걸쳐 그려졌다. 이 시기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때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와 상징을 이용한 의사소통과 협업을 바탕으로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것으로 본다. 호모 사피엔스가 그린 여러 동굴벽화들은 고도의 추상화 능력을 잘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충북 단양 수양개에서 발견된 ‘눈금 돌’ 유물이 눈길을 끈다. 약 4만 년 전에 다듬어진 걸로 보이는 20cm 길이의 자갈돌에 눈금 22개가 0.4cm 간격으로 촘촘히 새겨져 있다. 이를 놓고 부족 인원이나 날짜와 같은 숫자 개념을 기호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동아시아에서 이 같은 유형의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건 수양개 눈금 돌이 처음이다. 김상태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은 “눈금 돌은 호모 사피엔스가 머릿속 정보나 기억을 외부에 기록할 수 있게 된 사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시 말미에는 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각지로 이동한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경로를 보여주는 패널이 나온다. 안락한 환경을 버리고 미지의 장소로 떠나도록 이들을 이끈 건 무엇일까. 바로 옆 우주시대의 개막을 보여주는 전시물을 통해 인류의 끝없는 ‘호기심’이 그 원동력임을 짐작게 해 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고인류의 진화를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를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인류학을 전공한 전임 배기동 관장이 역점을 둔 전시인데,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의 고인류 화석을 대여하지 못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그 대신 모션 캡처(사람의 동작을 인식하는 센서로 영상을 촬영한 것)나 인터랙티브 영상 등 다양한 컴퓨터그래픽으로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9월 26일까지. 관람료는 3000∼5000원.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불과 20년 내 수도 한복판에서 독가스 테러가 벌어지고, 1만 명 넘게 숨진 대지진이 발생한 데 이어 원전마저 폭발한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웬만한 국가라면 거의 망국(亡國)에 가까운 위기를 맞을 것이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자연재앙이 거대 문명의 붕괴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사린가스 테러,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폭발 등 지구상에서 전무후무한 이 재앙들은 일본의 헤이세이(平成) 연간에 모두 일어났다. 헤이세이는 일왕 아키히토의 연호로 그의 재위 기간은 1989년부터 2019년까지 30년이다. 이 책은 일본 외교관 출신의 유명 작가(사토 마사루)와 법학전공 교수(가타야마 모리히데)가 헤이세이 30년의 정치, 사회, 문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대담집이다. 두 저자 모두 우파 성향 지식인인데도 자민당 정부를 강하게 비판해 눈길을 끈다. 예컨대 이들은 아베 신조 총리의 안보·경제 정책에 합리성이 결여됐음을 지적하며 “실증성과 객관성을 무시하고 자신이 바라는 대로 세계를 이해하는 반지성주의자”라고 질타했다. 저자들은 일본이 겪은 재앙들이 중국 및 북한에 대한 위협 인식, 버블경제 붕괴와 더불어 “상당히 지루하게 질질 끌며 계속될 ‘만성적 위기’”라고 진단한다. 문제는 큰 사고를 당한 이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는 것처럼 일본의 경우 대중의 공포가 극우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과거 러시아와의 북방영토 협상에 참여한 저자는 1997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의 유라시아 외교 연설을 ‘일본의 제국주의 선언’으로 규정한다. 냉전 종식 후 아태지역 안정을 위해 일본이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선언인데 한반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 미일중러 중심으로 아태지역을 관리할 수 있으니 한반도 등 주변국은 이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였다는 얘기다. 외교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북한과 일본이 실상 미국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는 지적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한국전쟁 휴전 이후 북한의 정체성은 미제로부터 국가 방위였다”며 “일본도 미국으로부터 버려지면 곤란하다는 측면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쏴주면 미일 안보가 중요하다고 호소하기가 쉬워진다”고 털어놓았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20년 전 꿈에 자주 보이던 길이 하나 있다. 서울 시내 왕복 6차로 도로가 지나는 그 길은 지극히 평범했다. 차량 소음, 후면 도로와 연접한 주택가, 적당히 떨어져 있는 재래시장까지.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장소다. 그러나 20대 중후반 내내 이곳을 차마 걷지 못했다. ‘그녀’를 바래다주려 매일같이 오가던 길이어서다. ‘이 거리는 널 기다린다’는 성시경 노래의 가사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던 시절의 얘기다. 이 책은 노르웨이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어린 시절 다녔던 오솔길부터 각국의 유명한 장거리 도보여행길까지 다양한 장소를 걸으며 느낀 감상을 적은 것이다. 어느 날 뇌전증 진단을 받은 저자는 운전면허를 반납한 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한 걷기’에 나선다. 그는 노르웨이 하르당에르 고원을 가로지르는 옛 산길을 걷고, 오슬로 근처 노르마르카 숲을 지도와 나침반도 없이 오직 햇빛에만 의존해 걸으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렇다고 단순한 여행기는 아니다. 그의 홀로 걷기는 빠른 속도의 삶에서 놓친 일상을 재발견하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숱한 길을 걸었건만 그에게 모든 길에 대한 평가 기준은 오직 하나다. 바로 어린 시절 부모, 형제들과 주말마다 지겹게 걷던 노르웨이 시골 오두막의 오솔길이다. 마치 통과의례처럼 그의 부모는 오두막에서 자유롭게 퍼지기 전 반드시 아이들과 뒷길을 산책했다. 이 길에서 맞은 서늘한 공기하며 뺨을 스치는 빗방울,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풀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고무장화가 풀밭에 푹 빠지는 느낌 등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단다. 이 책 부제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와 딱 어울리는 대목이다. 저자는 “여태껏 내 인생의 모든 길을 우리 오두막 뒤로 난 그 작은 오솔길을 중심으로 평가해 왔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고 썼다. ‘길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가게 하기도 한다.’(작가 제프 니컬슨)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대규모 인재(人災)에는 ‘내부 고발자’가 있기 마련이다. 사회 시스템의 결함과 맞물린 대규모 감염병 사태도 마찬가지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할 당시 의사 리원량(李文亮)이 이 역할을 수행했다. 중국 당국이 정체불명의 ‘괴질’ 유행을 감추기에 급급할 때 그는 세상에 이를 처음 알렸다가 공안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부패한 사회와 의로운 개인이라는 이항 대립구도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 책은 코로나19 사태에서 중국의 대응을 분석하고, 코로나 이후의 변화를 전망하고 있다. 최근의 반중 정서를 감안해 중립성을 담보하고자 한국과 중국, 대만 연구자 12명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내·외부자의 시선을 골고루 반영해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하려는 시도다. 저자는 “단순히 반중 정서에 휘둘리지 않고 깊이 있게 접근할 때 중국의 현실을 실사구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필진에 속한 일부 중국 학자들의 자국(自國) 중심주의는 오히려 중국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예컨대 5장을 쓴 셰마오쑹 중국 국가혁신발전전략연구소 연구원은 혁명 경험과 시장경제와 결합된 중국 시스템(신형 거국체제)이 방역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자평한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와 싸울 당시 인민전쟁 경험이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원동력”이라는 중국 당국의 선전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중국 우한에서의 초기 방역 실패는 중국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산물이라는 한국 필자(박우 한성대 기초교양학부 교수)의 지적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문제는 중국 당국이 홍콩의 민주화 요구와 미국과의 갈등을 극복하려는 수단으로 권위주의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 이는 결국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중국과 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이건희 26兆 유산의 60% 내놓는다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이 26조 원에 달하는 유산 중 60%를 사회에 기부하거나 세금으로 납부한다. 상속세 12조 원을 포함해 의료 기부 1조 원,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포함해 총 15조∼16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28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은 삼성이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거듭 강조한 고인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환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며 기부 계획을 밝혔다. 1조 원 기부는 한국의 의료 발전에 쓰인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한국 최초의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등에 7000억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3000억 원은 소아암과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개인 소장 미술품 2만3000여 점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한다. 국보 14건과 보물 46건, 클로드 모네와 파블로 피카소, 김환기, 박수근 등 국내외 작가의 걸작이 포함됐다. 미술계 관계자는 “실제 경매에 들어가면 5조 원이 넘을 것”이라며 “값을 매길 수 없는 진귀한 컬렉션”이라고 평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예술성, 사료적 가치가 높은 주요 예술품을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한 것은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역대급 수준이다. 6월부터 순차적으로 전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이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 원대로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이달부터 5년 동안 6차례에 걸쳐 낼 계획이다. 상속세 역시 세계적으로도 역대 최대 수준이다. 유족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유족은 지분을 지키면서 상속세를 내느라 제2금융권 신용대출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수조 원대의 사회 환원에 나선 것은 이 회장의 뜻을 잇기 위해서라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사회가 기대하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겸재 단원 모네 샤갈… ‘이건희 컬렉션’ 올여름 시민에 공개전시미술품 2만3000점 대규모 기증국보-보물 60건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립현대미술관, 모네 작품 첫 소장지역미술관 5곳-서울대에도 기증, 감정액 2조 추정… 정부도 “역대급”삼성이 기증하는 2만3000여 점의 소장품은 양과 질 모두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선 삼성 측과 기증 논의를 시작한 올 초까지만 해도 이 정도 규모의 컬렉션이 오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귀속될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약 2만1600점은 지금까지 기증된 유물(약 5만 점)의 43%에 달하는 규모다. 이 중 1급 유물로 통하는 국가지정문화재가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다. 이번 기증 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의 최대 기증은 고 동원 이홍근 선생이 1980, 81년에 내놓은 4941점이었다. 문화재계에선 박물관 기증품 중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단원 김홍도(1745∼?)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를 첫손에 꼽는 이가 많다. 조선 회화사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그림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문화재계 인사는 “겸재와 단원의 그림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이들의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며 “기증품들은 이런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영조 27년(1751년) 겸재가 그린 인왕제색도는 가로 138.2cm, 세로 79.2cm의 대작으로, 인왕산에 비가 내린 후 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담았다. 거대한 암벽을 그릴 때 아래로 붓을 내리긋는 대담한 필치가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중국 산수화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의 산수를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추성부도는 단원이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시를 읽고 그 감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단원 그림의 상당수가 작자나 연도 미상인 데 반해 이 그림은 단원이 1805년 동지 사흘 후 그렸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이수미 국립광주박물관장은 “단원의 말년 작으로 그의 쓸쓸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시적인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계 일각에선 기증품 수량과 질을 감안할 때 박물관에 별도의 전시실을 두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박물관 관계자는 “별도의 기증관을 만들 계획은 아직 없다”며 “기존의 주제별 상설전시관에 기증품을 분산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은 두 그림을 포함해 이건희 컬렉션 중 대표작 40, 50점을 추려서 올 6월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이어 내년 10월경 전시품을 수백 점으로 늘려 이건희 컬렉션 명품전(가칭)을 개최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클로드 모네, 마르크 샤갈 등 국내외 거장의 근현대 미술품 1400여 점이 기증된다. 강렬한 붉은색 배경에 울부짖는 듯한 황소가 힘찬 기운을 뿜는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는 작가가 헤어진 가족과 곧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시기에 그려 당당한 기세가 돋보인다. 김환기가 한국 전통미에 주목하며 그린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소박한 정취를 풍기는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도 포함됐다. 클로드 모네의 대표작인 수련 연작 중 ‘수련이 있는 연못’(1919∼1920년)도 눈길을 끈다.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모네가 그린 대작(가로 2m 세로 1m)으로 미술계에선 400억 원대의 가치를 지녔다는 추정이 나온다. 이로써 미술관은 이중섭의 황소와 모네 그림을 처음 소장하게 됐다. 미술관은 올해 8월 서울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가제)을 시작으로 9월 과천관, 내년 청주관에서 전시를 연다. 이 밖에 삼성은 대구미술관, 제주 이중섭미술관, 강원 박수근미술관 등 지역 미술관 5곳과 서울대에도 143점을 기증하기로 했다. “수집 어렵던 근대미술품 대거 보강… 엄청난 선물”전문가 “희소가치 높은 작품들로 박물관-미술관 도약 계기 기대”‘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의 수준을 크게 높이게 됐다. 박물관은 보유 문화재의 스펙트럼을 넓히게 됐고, 미술관은 희소가치가 높고 수집하기 어려웠던 근대미술 작품을 대거 보강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진우 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은 “발굴 매장 문화재가 대부분이었는데 우리 역사 시대 대부분을 아우르는 회화, 공예 등 문화재를 고루 소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 작가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거장의 작품을 상설전으로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우리 국민의 문화 향유권이 한층 높아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는 “세계 미술계의 시간표가 어떻게 짜여졌는지 항상 볼 수 있어야 예술적 안목을 키워 한국 미술을 국제화할 수 있다”며 “대단히 중요한 작품들이 기증돼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삼성이 ‘한국의 메디치가’에 비견될 정도의 역할을 해 한국 박물관과 미술관이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단숨에 마련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미술계 인사들은 이번 기증이 이뤄진 배경에는 이 회장이 일찌감치 기증을 염두에 두고 걸출한 미술품들을 수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 회장은 과거 일본 오쿠라호텔의 뒷마당에 있던 조선 왕조 왕세자의 공부방인 자선당의 기단을 구입해 정부에 기증하기도 했다. 1997년 펴낸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동아일보사)에서 국립박물관을 관람한 경험을 전하며 “상당한 양의 빛나는 우리 문화재가 아직도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실정이다. 이것들을 어떻게든 모아서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손효림 기자 / 김상운 sukim@donga.com·김태언 기자}

삼성이 이번에 기증하기로 한 2만3000여 점의 소장품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 수 있는 컬렉션이라는 게 문화계의 시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귀속될 소장품 약 2만 점은 지금까지 기증된 유물(약 5만여 점)의 43%에 달하는 규모다. 박물관 소장 유물(43만여 점) 기준으로는 전체의 약 5%에 이르는 수량이다. 이 중 1급 유물로 통하는 국가지정문화재가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문화재들이지만 박물관 안팎에선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와 단원 김홍도(1745~?)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를 첫 손에 꼽는 이들이 많다. 조선 회화사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그림 중에서도 대표작이자 대작으로 통하는 문화재들이기 때문이다. 문화재계 인사는 “겸재와 단원의 그림들이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작품이 거의 없었다”며 “두 작품은 이런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걸작들”이라고 평가했다. 영조 27년(1751년) 겸재가 그린 인왕제색도는 가로 138.2㎝, 세로 79.2㎝의 대작으로, 인왕산에 비가 내린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담았다. 거대한 암벽을 그릴 때 아래로 붓을 내리긋는 대담한 필치가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중국의 산수화를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조선의 산수를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단원이 그린 추성부도는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시를 읽고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을밤 책을 읽다가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는 시를 그림 왼쪽에 행서체로 썼다. 단원 그림 상당수가 작자나 연도 미상인데 반해 이 그림은 단원이 1805년 동지 사흘 후 그렸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이수미 국립광주박물관장은 “단원의 말년작으로 그의 쓸쓸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시적인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계 일각에선 기증품 수량과 질을 감안할 때 박물관에 별도 기증관을 세우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박물관 관계자는 “현재로선 별도의 기증관을 세울 계획은 없다. 기존 주제별 상설전시관에 기증품을 분산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은 두 그림을 포함해 이건희 회장 컬렉션 대표작 40, 50점을 추려서 올 6월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이어 전시품을 수백 점으로 늘려 내년 10월경 명품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으로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등 국내외 거장들의 근현대미술 1600여 점이 기증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을 비롯해 강렬한 붉은 색 배경에 울부짖는 듯한 황소가 힘찬 기운을 뿜어내는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가 포함됐다. 끌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9~1920)은 대표작인 수련 연작 가운데 하나다. 가로로 긴 화폭에 연못의 수면과 수련만 담았고, 수면에 반짝이는 빛을 묘사했다. 이로써 미술관은 이중섭의 황소, 모네의 그림을 처음 소장하게 됐다.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년)은 신화 속 존재인 켄타우로스들이 복부 구멍에서 아기들을 꺼내는 장면을 묘사했다. 전교한 기술과 균형감 있는 구도가 돋보인다. 삼성 측은 대구미술관, 제주 이중섭미술관, 강원 박수근미술관 등 지역 미술관 5곳과 서울대에도 143점을 기증하기로 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김태언 기자beborn@donga.com}

며칠 전 점심식사를 빨리 마치고 회사 근처 경복궁에 갔다. 너른 풀밭과 색색의 꽃잎 사이로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멀리 고운 한복을 입고 손을 맞잡은 젊은 커플이 보인다. 옛 왕들이 주연을 베풀었을 경회루(慶會樓)에는 늘어진 버드나무 옆으로 조그마한 목선(木船)이 떠 있다. 순간 주변 시간이 잠시 멈추는 듯했다. 오전 내내 머리를 휘감은 근심거리도 증발했다. 바야흐로 ‘문화재 힐링’의 시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지친 이들이 궁궐로, 왕릉으로 휴식을 찾아 떠난다. 특히 조선 궁궐이나 왕릉은 서울 시내 도처에 자리 잡아 접근성이 뛰어나고 탁 트인 야외공간에 있어 감염 우려도 작다. 코로나 시대에 알맞은 힐링 방법인 셈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인해 가을로 연기된 궁중문화축전에 인원 제한에도 불구하고 1만3000여 명이 4대 궁궐을 찾았다. 비단 거창한 궁궐에서만 힐링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배우 윤여정이 출연한 TV 프로그램 ‘윤스테이’를 촬영한 전남 구례군 쌍산재(雙山齋)가 대표적이다. 200년 된 고택과 지리산 풍광, 100여 종의 수목(樹木) 정원이 어우러진 이곳에 지난해에만 3만6000여 명이 방문했다. 주변 문화재들이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는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아쉬운 대목이 있다. 이들이 사람과 ‘분리’돼 있다는 것. 예를 들어 멋들어진 경관을 자랑하는 경복궁 경회루는 누각이라기보다 외딴 ‘무인도’에 가깝다.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 아래 1년 중 정해진 기간에 소수의 인원만 관람할 수 있어서다. 주변 전각들도 마찬가지다. 광복 후 복원된 전각들에도 빗장이 걸려 있다. 사람이 생활하지 않는 화석화된 공간 그 자체다. 잠긴 전각을 바라보면서 수년 전 취재차 방문한 이탈리아 문화부 청사를 떠올렸다. 로마시내 테베레 강가와 연접한 이 청사는 400년 된 고건축 문화재다. 17세기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의 조카가 보육원 겸 요양원으로 지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연합군 병영으로도 쓰였다. 1, 2층의 연속된 아치들과 아름다운 중정(中庭)이 중세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옥상에 올라가면 수백 년 묵은 나무기둥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자 깔끔한 현대식 인테리어로 개조된 사무실에서 공무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문화재와 사람의 공존은 서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경주와 비견되는 고도(古都)인 중국 시안(西安)에선 성벽 주변 전각들을 전망대나 상점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각에서 내려다보는 시안 성벽의 위용은 밖에서 올려다볼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닫혀 있는 서울의 광화문 문루(門樓)에서 내려다보는 경복궁 풍경도 결코 이에 뒤지지 않으리라. 문화재청은 2015년 창덕궁 내 일부 전각에서 숙박 체험을 하는 ‘궁(宮)스테이’ 프로그램을 추진했지만 당시 문화재 훼손을 우려한 야당(현 더불어민주당) 등의 반발에 포기했다. 목조건물의 화재가 우려된다면 전각 내부를 방염재로 리모델링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민들에게 최고의 힐링을 선사할 수 있는 문화재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가 국내에서도 화제다. 해양 생태계의 오염 실태를 추적한 이 다큐가 주목받는 건 새로운 관점과 상상력을 자극해서다. 많은 이가 생활쓰레기로 배출되는 미세 플라스틱을 해양오염의 주범으로 알고 있지만, 다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어부들이 던지는 어망이 바다오염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반면에 빨대 등 플라스틱의 오염비율은 0.01%에 불과하다는 것. 사실 우리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묵묵히 그물을 들어올리는 어부의 전통적 이미지에 갇혀 어업의 바다오염 가능성을 제대로 상상하지 못했다. 이 책은 이런 상상력의 부재가 기후변화의 주범임을 보여준다. 문학이나 역사, 정치의 영역에서 기후변화를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 체계적인 대응에 실패했다는 거다. 인도 태생의 유명 소설가인 저자는 기후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라고 갈파한다. 기후위기에서 상상력이 중요한 건 인간이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행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기후변화의 재앙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따라서 저자는 기후위기의 잠재적 위험을 일깨울 수 있는 건 작가들의 상상력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문제는 20세기 이후 기후변화에 대한 작가들의 상상력이 극히 빈곤하다는 점이다. 근대화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제3세계 작가와 예술가들이 특히 그렇다. 서구 근대화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이들을 압도하면서 기후변화의 위험을 사실상 외면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환경보다 성장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 이와 함께 특정 이익집단에 휘둘리는 현대 정치체제의 속성도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무력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희망은 없는가. 저자는 정치체제와 별도로 존재하는 종교 및 환경운동이나 작가들에게서 새로운 기대를 품고 있다. “세계 각지의 종교집단이 대중운동을 통해 서로 협력한다면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길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추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수많은 기후 활동가들이 이미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희망의 조짐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국가무형문화재 전수자들의 삶과 예술을 정리한 문화유산 총서 1권으로 ‘춤추는 농사꾼 이윤석’(문보재)을 19일 출간했다. 예부터 경남 고성 지역에서 전승돼 내려온 가면극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이윤석 보유자의 삶을 다뤘다. 그는 경남 고성군 마암면 도전리 명송마을에서 태어나 들판과 춤판을 오가며 기예를 갈고 닦았다. 책에서 그는 “농사짓는 춤꾼이 아니라 ‘춤추는 농사꾼’으로 불리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부모가 5명인 기구한 가족사와 결혼식 당일 처음 본 두 살 연상 아내를 만난 이야기, 고성오광대를 지켜간 사연 등도 담았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20여 년 전 구글이 검색 서비스를 시작할 때 시장 반응은 미지근했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찾는 정보를 잘 찾아준다 치자. 그래서 돈은 어떻게 벌 건데?’였다. 실제로 구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MS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발머는 “구글이 무얼 판매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비아냥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구글이 검색정보를 바탕으로 모바일 광고시장으로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MS 독주 체제는 종언을 고하게 된다. 이 책은 꿀벌의 꽃가루받이(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붙이는 것·수분)가 생태계 전반을 떠받치는 개념을 경제에 적용하고 있다. 생물학계는 후기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되는 꽃식물 종의 폭발적인 증가가 꽃가루받이를 하는 벌이 등장한 덕분으로 본다. 책에서 꿀벌이 생산하는 꿀이 부의 생산과 축적을 상징한다면 꽃가루받이는 의도치 않은 긍정적 외부효과를 뜻한다. 마치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정보 찾기나 관계 맺기 등 수많은 이용자들의 인지활동을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경제의 모든 영역에 걸쳐 금융화가 과도하게 진척되면서 경제위기가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기관들이 꿀을 모으는 데만 혈안이 된 나머지 시스템 붕괴 위기를 방치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예컨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기관들은 비우량 신용등급(서브프라임) 채권을 모아 복잡한 산식의 금융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금융공학자들조차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가상의 상품이 부실화되면서 금융 시스템 전반을 무너뜨렸다. 그렇다고 저자가 금융기관이나 금융을 마치 사회악으로 치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시장금융이 꽃가루받이처럼 생태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금융거래세를 도입해 금융권 전반을 투명하게 감시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각종 뼈와 직물, 목재 등 발굴 현장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유기물의 연대를 체계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시설이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들어섰다. 연구소는 국내외 유적지에서 수집된 유물시료를 보관하고 분석할 수 있는 문화재분석정보센터를 15일 개관했다. 총 190억 원을 투입해 2017년 착공한 이 센터는 연면적 6919m² 규모다. 내부에 연대 측정 실험실과 질량분석실, 분석시료 보관실 등을 갖추고 있다. 연구소는 극미량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분석해 유물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용 가속질량분석기’를 연내 들여 놓을 예정이다. 내년에는 빛에너지를 이용해 토기 등의 제작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광발광 연대측정기’를 갖출 계획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문화재 시료의 전(前)처리와 분석, 보관, 데이터베이스 구축까지 연대 측정의 전 과정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