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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과 시장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부알못’과 ‘부잘알’ 사이, 보통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부동산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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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3~20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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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 다문화 빠진 다문화 시트콤

    미국 ABC의 시트콤 ‘닥터 켄’이 또 다른 아시아산(産) 히트 상품이 될 수 있을까. 3일(현지 시간) 방송을 시작해 2회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는 첫회부터 꽤 높은 시청률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코미디언 켄 정(46)이 주인공 켄 역을 맡고 제작 및 대본 작업에도 참여한 작품이다. 의사 출신 코미디언이라는 자신의 이력을 십분 살린 자전적 이야기다. 한국계 배우가 실제 한국계 이민자의 삶을 그린다는 이유로 주목했지만 웬걸, 기대와는 좀 다르다. 켄은 뛰어난 외과의사지만 시도 때도 없이 엉뚱한 농담과 때론 폭언을 수시로 내뱉는 인물이다. 가정에서는 10대인 딸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아마도 이민 1세대일 부모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정신과 의사인 부인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리는, 다소 모자란 가장이자 아빠다. 여기까지 설명했으면 눈치챘을 테다. 어디선가 봤던 미국의 전형적인 가족 시트콤에서 내용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아시아계, 혹은 한국계이기 때문에 겪는 일도 있지만 지금까지 방영된 두 에피소드는 대부분 켄의 귀엽지만 때론 짜증나는 코미디 연기로 채워졌다. 켄과 딸, 혹은 켄의 가족과 부모가 겪는 갈등도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세대 차, 입장 차로 인한 것들이다. 켄 정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경험을 일반화(normalizing)하려고 노력했다. 다문화 시트콤이지만 다문화라는 점을 크게 강조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 의도였다면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과연 켄 정의 ‘원맨쇼’만으로 여러 시즌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아직 방영 초반이긴 하지만 시청자 댓글 반응이나 각종 리뷰 사이트의 평점을 봤을 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닥터 켄’은 올해 시즌2를 내보내고 있는 ‘프레시 오프 더 보트’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제목 그대로 배에서 갓 내린, 미국에 정착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대만인 가정을 내세운 시트콤이다. 아시아계라곤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설정된 1990년대 미국 올랜도로 이사한 10대 소년 에디와 가족은 갖가지 문화충격을 겪는다. 에디는 중국음식을 점심으로 싸갔다 냄새난다며 따돌림당하고, 엄마는 이웃 백인 아줌마들과 어울리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롤러 블레이드를 타야 한다. 이런 무궁무진한 에피소드를 굳이 ‘일반화’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닥터 켄’이 1990년대가 아닌 2015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전형적인 아시아계 이민자 코미디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뜻도 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그래도 왠지 ‘닥터 켄’의 세계가 ‘프레시 오프 더 보트’의 그것보다 더 얕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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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계 배우가 ‘미드’ 주연부터 제작까지? ‘닥터 켄’ 히트할까

    미국 ABC의 시트콤 ‘닥터 켄’이 또 다른 아시아 산(産) 히트 상품이 될 수 있을까. 3일(현지시각) 방송을 시작해 2회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는 첫회부터 꽤 높은 시청률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코미디언 켄 정(46)이 주인공 켄 역을 맡고 제작 및 대본 작업에도 참여한 작품이다. 의사 출신 코미디언이라는 자신의 이력을 십분 살린 자전적 이야기다. 한국계 배우가 실제 한국계 이민자의 삶을 그린다는 이유로 주목했지만 웬걸, 기대와는 좀 다르다. 켄은 뛰어난 외과의사지만 시도 때도 없이 엉뚱한 농담과 때론 폭언을 수시로 내뱉는 인물이다. 가정에서는 10대인 딸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아마도 이민 1세대일 부모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정신과 의사인 부인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리는, 다소 모자란 가장이자 아빠다. 여기까지 설명했으면 눈치 챘을 테다. 어디선가 봤던 미국의 전형적인 가족 시트콤에서 내용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아시아계, 혹은 한국계이기 때문에 겪는 일도 있지만 지금까지 방영된 두 에피소드는 대부분 켄의 귀엽지만 때론 짜증나는 코미디 연기로 채워졌다. 켄과 딸, 혹은 켄의 가족과 부모가 겪는 갈등도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세대 차, 입장 차로 인한 것들이다. 켄 정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경험을 일반화(normalizing)하려고 노력했다. 다문화 시트콤이지만 다문화라는 점을 크게 강조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 의도였다면 어느 정도 성공한 듯 하다. 하지만 과연 켄 정의 ‘원맨쇼’ 만으로 여러 시즌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아직 방영 초반이긴 하지만 시청자 댓글 반응이나 각종 리뷰 사이트의 평점을 봤을 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닥터 켄’은 올해 시즌2를 내보내고 있는 ‘프레시 오프 더 보트’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제목 그대로 배에서 갓 내린, 미국에 정착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대만인 가정을 내세운 시트콤이다. 아시아계라곤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설정된 1990년대 미국 올랜도로 이사한 10대 소년 에디와 가족은 갖가지 문화충격을 겪는다. 에디는 중국음식을 점심으로 싸갔다 냄새난다며 따돌림 당하고, 엄마는 이웃 백인 아줌마들과 어울리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롤러 블레이드를 타야 한다. 이런 무궁무진한 에피소드를 굳이 ‘일반화’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닥터 켄’이 1990년대가 아닌 2015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전형적인 아시아계 이민자 코미디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뜻도 있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그래도 왠지 ‘닥터 켄’의 세계가 ‘프레시 오프 더 보트’의 그것보다 더 얕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

    • 201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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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소리 “저 보고 싶었죠?”

    한동안 극장에서 배우 문소리(41)의 이름이 뜸했었다. 1999년 데뷔 이래 매년 1, 2편씩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이지만 ‘자유의 언덕’(2014년) 이후 1년 넘게 이렇다 할 출연작이 없었다. 대신 학생 문소리는 꽤 바빴다. 2013년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학교 과제여서” “졸업하려고” 단편 ‘여배우’(2014년), ‘여배우는 오늘도’(2015년), ‘최고의 감독’을 연출했다. ‘최고의 감독’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그는 감독으로, 또 장률 감독이 연출한 ‘필름시대사랑’의 주연 배우로, 그리고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찾았다. 1인 3역으로 바쁜 그를 3일 오후 부산 해운대 한 호텔에서 만났다. ―‘여배우’ 시리즈로 가는 줄 알았더니 ‘최고의 감독’이 제목이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얘기를 하자 싶어 ‘여배우’를 찍었고, 그 다음에는 좀 더 ‘까발리자’ 싶어 여배우 주변까지 그린 ‘여배우는 오늘도’를 찍었다. ‘최고의 감독’은 제 주변에 최고의 감독님들이 많지 않았나. 영화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담은 작품이다.” ―작품에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심지어 풍자적으로 그렸다. 매니저한테 “내가 매력적이야, 안 매력적이야” 하며 윽박지른다든가 ‘평범하게 생겼다’고 스스로를 표현한다든가…. “배우가 원래 스스로를 오해하기 너무나 적합한 직업이다. 주변 사람들이 배우를 보호한다며 상황 파악을 못하게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연기를 잘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때때로 화려하게 꾸미기도 하지만 평소 생활할 때는 보통 사람으로 살자고 생각한다.” ―감독과 배우 중 어느 쪽이 낫던가. “당연히 배우다. 배우는 그래도 작품 도중에 숨 쉴 구멍이 있는데, 감독은 꼭 헬멧이 사방에서 조여 오는 기분이더라.” ―‘박하사탕’으로 데뷔했는데 ‘필름시대사랑’ 후반부에 ‘박하사탕’ 시절 문소리의 모습이 삽입됐다. “‘박하사탕’을 보면 늘 배우 되기 전 문소리의 얼굴, 내가 잃어버린 얼굴을 보는 것 같다. ‘박하사탕’이 바로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작품 아닌가. 내가 영화 속 영호가 된 기분이 든다.” ―자신이 변했다고 느끼는 건가. “나이가 들다 보니 흔들릴 때가 있다. 외모에 기대서 배우를 해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젊음에 기대 연기했던 면이 있었던 거 같다. 자존감이 떨어져서 힘들어하기도 했다. 잘못하면 막 얼굴 고치고 그럴 수도 있는 시기였는데, 정신없이 학교 다니며 잘 버틴 거 같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촬영은 어떤가. 일본어 대사가 많다고 하던데…. “큰 역할은 아니다. 1930년대 조선과 일본이 배경인데 다른 사람들은 조선인이 일본어를 섞어 쓰는 거고, 나만 유일한 일본인 역할이다. 아니 그럴 거면 일본 배우를 쓰지, 어유 정말.(웃음)” ―다음 작품은 정했나. “왜 다들 특별출연만 해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특별출연 여러 번 하면 더이상 특별하지 않은 거 아닌가? 여배우가 맡을 역할이 없다는 얘기가 하도 자주 나오다 보니 그런 말을 또 하기가 싫다. 연기에 대한 갈증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정말로, 연기하고 싶다.”부산=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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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장가에서 안보인다 했더니…감독, 배우, 영화제 심사위원 누구?

    한동안 극장에서 배우 문소리(41)의 이름이 뜸했었다. 1999년 데뷔 이래 매년 1, 2편 씩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이지만 지난해 9월 개봉한 ‘자유의 언덕’ 이후 1년 여 동안 이렇다할 출연작이 없었다. 대신 학생 문소리는 꽤 바빴다. 2013년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학교 과제여서” “졸업하려고” 단편 ‘여배우’(2014년), ‘여배우는 오늘도’(2015년), ‘최고의 감독’을 연출했다. ‘최고의 감독’이 제 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그는 감독이자, 장률 감독이 연출한 ‘필름시대사랑’의 주연 배우, 그리고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찾았다. 8월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를 촬영 중인 그를 3일 오후 부산 해운대 한 호텔에서 만났다. -‘여배우’ 시리즈로 가는 줄 알았더니 ‘최고의 감독’이 제목이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얘기를 하자 싶어 ‘여배우’를 찍었고, 그 다음에는 너무 내 얘기만 한 건가 싶어 여배우의 주변을 그린 ‘여배우는 오늘도’를 찍었다. ‘최고의 감독’은 제 주변에 워낙 최고의 감독님들이 많지 않았나. 그런 분들에 대한 존경과 함께, 어떤 감독이 누구에게 최고의 감독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모든 감독은 최고의 감독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다.” -작품에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심지어 풍자적으로 그렸다. 매니저한테 “내가 매력적이야 안 매력적이야” 하며 윽박지른다던가, ‘평범하게 생겼다’고 스스로를 표현한다던가. “배우가 원래 스스로를 오해하기 너무나 적합한 직업 아닌가. 주변 사람들이 배우를 보호한다며 상황 파악을 못하게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연기를 잘 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배우로서 때때로 화려하게 꾸미기도 하지만 평소 생활할 때는 보통 사람으로 살자고 생각한다.” -감독과 배우 중 어느 쪽이 낫던가. “당연히 배우다. 배우는 그래도 작품 도중에 숨 쉴 구멍이 있는데, 감독은 꼭 헬멧이 사방에서 조여 오는 기분이더라. 단편 3편을 내리 찍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대학원 최초로 제때 졸업하는 학생일 정도다. 덕분이 진이 쫙 빠져서 푹 쉬어도 사람들이 피곤해 보인다고 하더라. 덕분에 요즘은 술도 안 마시고 몸 관리를 하고 있다.” -‘박하사탕’으로 데뷔했는데 ‘필름시대사랑’ 후반부에 ‘박하사탕’ 시절 문소리의 모습이 삽입됐다. “‘박하사탕’을 보면 늘 배우 되기 전 문소리의 얼굴, 내가 잃어버린 얼굴을 보는 것 같다. ‘박하사탕’이 바로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작품 아닌가. 내가 영화 속 영호가 된 기분이 든다.” -자신이 변했다고 느끼는 건가. “나이가 들다보니 흔들릴 때가 있다. 외모에 기대서 배우를 해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젊음에 기대서 연기했던 면이 있었나 보다. 한동안은 자존감이 떨어져서 힘들어하기도 했다. 잘못하면 막 얼굴 고치고 그럴 수도 있는 시기였는데, 정신없이 학교 다니며 잘 버틴 거 같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촬영은 어떤가. 일본어 대사가 많다고 하던데. “큰 역할은 아니다. 1930년대 조선과 일본이 배경인데 다른 사람들은 조선인이 일본어를 하는 거고, 나만 유일한 일본인 역할이다. 아니 그럴 거면 일본 배우를 쓰지, 어유 정말.(웃음) 그래도 이번에 일본어를 어느 정도 읽는 수준까지 공부를 했다.” -다음 작품은 정했나. “왜 다들 특별출연만 해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특별출연 여러 번 하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거 아닌가? 시나리오를 뒤지고 있는데, 여배우가 맡을 역할이 없다는 얘기가 하도 자주 나오다 보니 그런 말을 또 하기가 싫다.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연기에 대한 갈증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크다. 너무나 연기하고 싶다.”부산=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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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쌈TV]‘그녀는…’ 뻔했다 vs 재밌다

    《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서 혜진(황정음)은 어릴 적엔 예뻤으나 역변(逆變·못생기게 변함)해 지금은 못생긴 여주인공이다. 반면 어릴 적 뚱뚱했다가 훈남이 된 성준(박서준)은 과거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혜진을 잊지 못한다. 시청률 20%에 가까운 SBS ‘용팔이’를 상대로 시작한 이 로맨틱 코미디는 첫 회 4.8%(닐슨코리아)의 시청률로 출발했지만 최근 방영된 6회에선 10%를 돌파했다. 문화부 여기자 2명이 이 드라마의 시청률 역주행 이유를 곱씹어봤다. 》 ▽염희진=역변은 국내 드라마에서 희소한 설정이긴 해. 여주인공의 몸속에 꽁꽁 숨어 있던 주근깨와 악성 곱슬머리 등의 유전자가 뒤늦게 발현된 건 뭐 그렇다 치자. 그런데 못생기면 패션 센스까지 그렇게 꽝일 필요가 있을까. ▽이새샘=상투적이긴 해도 로코의 설정이 그런 거 아니겠어.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봐. 외모에 자신감 없는 여자, 까칠한 남자, 그리고 나를 지켜주는 남자…. 뻔한 설정이어도 흘러가는 과정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가 중요하지. ▽염=여주인공 캐릭터에는 감정이입이 잘되는 거 같아. 왜 있잖아. 추레하게 하고 나온 날, 이날만큼은 어릴 적 첫사랑을 만나는 일은 피하고 싶다 생각하잖아. 혜진이를 보면 나이 들며 역변해가는 내가 떠올라 마음이 짠해. 미국 드라마 ‘어글리 베티’와 비슷한 게 많아. 못생긴 여주인공 베티가 잡지사에서 일하는 배경도 비슷하고. 그런데 로코의 여주인공은 망가져야 재밌는 걸까. ▽이=평범한 혹은 못난 여주인공의 등장 법칙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공식 같은 거지. 예쁜 여자가 사랑받는 스토리에 남녀노소 공감할 수 있겠어? 난 혜진의 절친인 하리(고준희)를 비중 있게 배치한 게 신선해 보였어. 보통 여주인공과 함께 사는 여자친구는 감초 역에 그쳤잖아. 이 드라마의 성패는 여자의 우정이 사랑 때문에 어떻게 바뀌는지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리느냐에 달렸다고 봐. ▽염=6회에서 하리가 성준에게 마음을 고백하자 이미 시청자 게시판은 하리 출연 분량을 줄여 달라며 시끌시끌하던데. ‘민하리=민폐리’라는 별명도 생겼어. 하리의 어두운 가정사가 밝혀지긴 했지만 그게 친구의 첫사랑을 뺏을 명분은 되지 않지. ▽이=황정음은 ‘골든타임’ ‘비밀’ 등에서 쌓아온 연기력이 이 작품에서 만개한 것 같아.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쓴 작가가 당시 작품을 함께 했던 황정음을 제대로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어. ‘더 모스트’ 편집장인 황석정은 과한 분장이긴 하지만 배우로서 열정이 느껴지고 성준 역의 박서준도 전형적이지만 나쁜 남자 캐릭터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어. ▽염=신혁(최시원)도 돋보이던데. 약간 과장된 듯하지만 능글맞은 표정은 꼭 할리우드 배우들이 연기하는 방식 같았어. 반면 성준의 독설은 너무 과해. 회의 때 말하기를 주저하는 혜진을 보고 “말 못해요? 유치원생인가. 삐악삐악. 어디가 좀 모자라요”라고 묻거나 “언어장애 있나”라고 말하니 비호감이 돼 버렸어. ▽이=나쁜 캐릭터로 나와야 성준이 혜진의 존재를 알게 될 때 피눈물 흘릴 테니까. 이 드라마는 상황을 풀어가는 방식이 마냥 뻔하지는 않은 것 같아. 성준은 왜 냉장고에 물만 가득 채워 놓고 신혁은 왜 호텔에 혼자 살까. 하리와 혜진의 우정은 사랑 앞에서 어떻게 변할까. 뭔가 예측을 빗나갈 것 같아. ▽염=맞아. 다들 혜진이 예쁘게 변하고 성준과 맺어질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혜진의 외모가 안 변한 채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들고. 그런데 여주인공이 계속 못생기고 옷도 못 입으면 협찬받기 힘들겠지?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 201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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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영호 대표 “세계최대 예술영화 제작국이었던 中, 한국 저예산-독립영화의 활로 될 것”

    “지금 중국 영화 시장은 돈(투자)은 넘치는데 좋은 시나리오와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한국의 숙련된 기획력, 스토리텔링 능력이 필요하죠.” 영화,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 업계에서 중국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동시에 중국에 한국 고유의 기획·제작 인력과 노하우가 유출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5일 오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에서 만난 유영호 화책유니온픽쳐스 대표(42·사진)는 “한국 영화산업이 지금까지 내수시장의 확장을 통해 성장해 왔지만 여전히 제작비 100억 원만 넘어도 손익분기점을 걱정해야 한다”며 “중국 시장을 통해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5월 설립된 화책유니온픽쳐스는 중국 최대 콘텐츠 기업 중 하나인 화처(華策)미디어의 자회사다. 유 대표는 1996년부터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중화권 국가와의 합작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괴물’ ‘식객’ 등을 중국에서 배급했다. 유 대표는 “한국의 문화콘텐츠 유행 흐름을 중국이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화려한 영상미의 단순 로맨틱코미디, 멜로가 대세였다면 앞으로는 한국에서 4, 5년 전부터 유행하는, 짜임새 있는 줄거리의 복합 장르물이 중국에서 히트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 진출에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분신사바’ 시리즈(중국 제목 ‘필선’)로 중국에서 흥행몰이를 한 안병기 감독님은 중국 공포영화를 섭렵하고 중국의 심의 규정을 잘 알고 있었죠. 그런 이해가 흥행의 발판이 된 겁니다.” 유 대표는 또 “중국 시장은 한때 세계 최대 예술영화 생산국이었다.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에 대한 포용력을 갖고 있고, 예술영화 시장 규모도 훨씬 크다”며 “국내 저예산·독립영화계에도 활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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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시장, 한국 저예산-독립영화계의 활로 될 수 있어”

    “지금 중국 영화 시장은 돈(투자)은 넘치는데 좋은 시나리오와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한국의 숙련된 기획력, 스토리텔링 능력이 필요하죠.” 영화,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 업계에서 중국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동시에 중국에 한국 고유의 기획·제작 인력과 노하우가 유출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5일 오전 제 20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에서 만난 유영호 화책유니온 대표(42)는 “한국 영화산업이 지금까지 내수 시장의 확장을 통해 성장해왔지만 여전히 제작비 100억 원만 넘어도 손익분기점을 걱정해야 한다”며 “중국 시장을 통해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5월 설립된 화책유니온픽쳐스는 중국 최대 콘텐츠 기업 중 하나인 화책미디어의 자회사다. 유 대표는 1996년부터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중화권 국가와의 합작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괴물’ ‘식객’ 등을 중국에서 배급했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리메이크로 중국에서 히트한 ‘20세여 다시 한번’과 ‘이별계약’을 제작하기도 했다. 화책미디어는 5일 국내 배급사 뉴와의 한중 합작 법인 화책합신을 공식 출범시키기도 했다. 유 대포는 화책합신의 이사직도 맡고 있다. 유 대표는 “한국의 문화콘텐츠 유행 흐름을 중국이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화려한 영상미의 단순 로맨틱코미디, 멜로가 대세였다면 앞으로는 한국에서 4,5년 전부터 유행하는, 짜임새 있는 줄거리의 복합장르물이 중국에서 히트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현재 만화가 강풀 원작의 웹툰 ‘마녀’를 중국판과 한국판으로 동시 제작해 개봉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중국 시장 진출에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분신사바’ 시리즈(중국 제목 ‘필선’)로 중국에서 흥행몰이를 한 안병기 감독님은 중국 공포영화를 섭렵하고 중국의 심의규정을 잘 알고 있었죠. 그런 이해가 흥행의 발판이 된 겁니다.” 유 대표는 또 “중국 시장은 한때 세계 최대 예술영화 생산국이었다.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에 대한 포용력을 갖고 있고, 예술영화 시장 규모도 훨씬 크다”며 “국내 저예산·독립영화계에도 활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만추’는 중국에서 2012년 개봉해 6500만 위엔(당시 환율로 약 100억 원)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김기덕 감독은 차기작 ‘무신’(가제)을 중국에서 준비 중이다. 제작비는 약 350억 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어차피 수년 내로 한국의 제작 능력이나 기획력을 따라올 겁니다. 장이모우 감독의 신작 ‘만리장성’의 제작비가 무려 3억 달러(약 3500억 원)입니다. 이런 자본에 기획력까지 결합하면 한국이 대적하기 힘들죠. 막연히 중국 시장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중국 시장에 안착하기 위한 이해와 다양한 시도가 필요합니다.”부산=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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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나 영화 찍게… 영상권력 해체돼야” ‘스마트폰영화제’ 위원장 이준익 감독

    “저는 많은 실패를 안고 사는 사람이에요. 실패는 나눌 수가 없잖아요. 감독 혼자 죽을 때까지 안고 거는 거지. 성공을 바라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나눌 수가 있거든요.” 2일 오후 부산 해운대에서 만난 이준익 감독(56)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이날 그가 연출한 영화 ‘사도’는 개봉 16일 만에 관객 500만 명을 넘어섰다. 개봉 전 그가 목표라고 공언했던 관객 수를 달성한 것이다. ‘왕의 남자’(2005년)로 1000만 관객을 맛본 이 감독이지만 이후 연출한 ‘평양성’(2011년), ‘님은 먼 곳에’(2008년) 등은 잇달아 저조한 흥행 성적을 보였다. 영화 ‘사도’는 조선시대 영조의 명으로 아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굶어 죽은 사건을 다뤘다. 이 감독은 “처음 연출 제의를 받았을 때는 이런 뻔한 얘기를 왜 또 하냐며 거절했지만 뻔한 얘기를 다른 관점으로 하면 새롭지 않겠느냐는 설득에 넘어갔다. 내가 또 맞는 말은 바로 인정하는 편”이라며 웃었다. “원래는 1, 2부로 나눠 만들고 싶었죠. 영조,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3대의 이야기죠. 그런데 아무래도 상업적인 측면을 고려하다 보니…. 사실 상업영화라고 보기 힘든 영화예요. 관객이 이해하기 힘들죠. 제작비도 사극치고는 적은 65억 원으로 만들었어요.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이 돈을 아끼게 만들더라고요.” 그는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KT올레국제스마트폰영화제 집행위원장과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감독은 올해 5회째인 스마트폰영화제 제1회 심사위원장에 이어 2회부터는 계속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1986년 서울극장 선전부 직원이 되면서 영화계에 뛰어든 지 30년이다. 내가 대학도 중퇴한 ‘깡통’인데, 영화감독은 젊은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직업 중에 유일하게 학벌이 통하지 않는 직업인 거 같다”며 “앞으로는 더욱 누구나 영화를 만드는, 그래서 ‘영상 권력’이 해체되는 세상이 올 거다. 그런 세상에서 이런 영화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고 했다. 영화를 빨리 찍기로 유명한 그는 벌써 올해 봄 후속작 ‘동주’의 촬영을 마쳤다. 시인 윤동주의 삶을 다룬 영화다. “상업적 기대치에 시달리는 것이 힘들다”는 그이지만 아직도 할 얘기는 많은 듯했다. “영화를 찍으면 남에게 평가받잖아요. 남들이 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는 것, 그건 정말 축복받은 일인 거 같아요.”부산=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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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노래 어땠어요, 감독님” 탕새댁 애교 작렬

    “제 노래가 진짜로 어땠는지 얘기해주세요, 감독님!”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세계적 스타 탕웨이와 김태용 감독이 부부애를 과시했다. 3일 부산 소향씨어터에서는 김 감독의 신작 ‘그녀의 전설’이 상영됐다. 약 30분 분량의 단편 ‘그녀의 전설’은 제주도 해녀가 곰으로 변한다는 상상을 바탕으로 한 작품. 탕웨이는 이 영화의 삽입곡 ‘꿈속의 사랑’을 한국어로 불렀다. 탕웨이는 객석에 앉아 관객들과 남편의 영화를 함께 관람했다. 김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꿈속의 사랑’은 어릴 때 어머니가 많이 불러주셔서 기억에 남아있는 노래인데, 그래서 제가 중국 사람이랑 결혼한 것 같다”며 “원곡을 탕웨이 씨가 한국어로 불러 삽입하면 어떨까 농담 삼아 얘기했는데 승낙해줬다”고 말했다. 또 “외국인이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쉽지 않은데 잘 부르지 않느냐”며 아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대로 올라온 탕웨이는 “저의 나쁜 한국어 발음을 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주변 사람들도 내가 연습하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 나보다 이 노래를 더 잘 부를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또 “내가 힘들어하면 그(김 감독)는 ‘잘한다’고 격려했지만 나는 그의 ‘잘한다’가 ‘그냥 그렇다’는 뜻이라는 걸 영화 ‘만추’ 때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해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탕웨이는 김 감독을 한국어로 ‘감독님’이라 부르며 “진짜 어땠느냐”고 애교 있게 묻기도 했다. 부산=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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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일에 만난 사람]선천적 시각장애 딛고… 세상을 비추는 선율

    소녀의 손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탄산음료 캔을 쥐고 있을 때는 작게 오므린 채, 책상 위에 올려놨을 때는 조금 느슨하게 편 채, 다섯 손가락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옆에 앉아 조금만 지켜봐도 알 수 있었다. 손가락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틈만 나면 ‘상상 연주’를 하는 소녀. 지난달 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기적의 피아노’의 주인공, 유예은 양(13)이다. 유 양은 다섯 살이던 2007년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처음 이름을 알렸다. 유 양은 선천적으로 안구가 없이 태어나 수술로도 앞을 볼 수 없다. 악보는 물론이고 음표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본 적이 없는 소녀가 제목도 외우기 어려운 클래식 음악을 통째로 외워서 치는 모습에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열광했다. 하지만 잠깐의 인기는 소녀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영화는 ‘스타킹’이 안겨준 유명함이 사그라진 뒤인 2010년부터 약 3년 동안 유 양의 성장 과정을 담았다. 후반 작업을 거쳐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또다시 2년, 소녀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난달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녹음 스튜디오에서 유 양과, 영화에서 유 양의 멘토로 등장하는 피아니스트 이진욱 씨(35)를 만난 것은 이런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 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을 졸업하고 현재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다.신동으로 불리던 소녀 “음…. 기억이 잘 안 나요.”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유 양이 가장 자주 한 말이다. ‘스타킹’에 출연했던 것도, 큰 행사에서 연주를 여러 차례 했던 것도, 워낙 어릴 때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TV 나갔을 때 믹키유천(박유천) 오빠랑 얘기했던 건 생각나요.” 2008년 SBS ‘초콜릿’에 출연해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를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자신을 잘 챙겨주던 멤버의 이름을 겨우 기억하는 정도다. 그러나 이 씨는 유 양을 만났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2011년 유 양이 초등학교 3학년일 때였다.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님 연구실에 들렀는데 예은이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저와 잘 맞을 것 같다고요.” 유 양이 한예종까지 찾아가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유 양의 어머니 박정숙 씨(45)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아버지 유장주 씨(48)는 경기 포천시 외곽에서 장애인 복지시설을 운영하며 장애인 10여 명과 함께 생활한다. 논밭으로 둘러싸인 시골에서는 마땅한 피아노 선생님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아버지 유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 양의 멘토를 찾아 여러 대학 음대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중 주성혜 한국예술종합대학 음악원 교수가 답장을 했고, 주 교수가 자신의 제자이던 이 씨를 유 양과 연결해줬다. “예은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만들고 있던 친구예요. 사교육 없이 혼자 도서관에서 책 읽으며 학문을 터득하는 학생 같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테크닉 위주로 정확하게 치길 요구하는 일반적인 한국식 교육과는 안 맞는다고 선생님이 생각하신 모양이에요. 제가 하라는 거 안 하고, 시키는 대로 안 하기로 유명한 학생이었거든요.” 악보를 보지 못하는 피아니스트 유 양이 처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건 세 살 무렵이다. 이웃에서 버리려고 내놓은 피아노를 집에 가져다 놨더니 건반을 누르며 놀다 스스로 음을 터득했고, 곧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서 치기 시작했다. 아버지 유 씨가 이런 모습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것이 방송 출연으로까지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신동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유 양의 꿈은 피아니스트. 피아노를 전공하려면 콩쿠르에 나가 수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유 양이 한 곡을 익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른 학생보다 훨씬 길다. 선생님이 왼손과 오른손을 구분해 쳐 주는 선율을 녹음해 수십 번 반복해 들으면서 외워야 한다. 건반도, 악보도 볼 수 없으니 정확하게 쳐야 좋은 점수를 받는 콩쿠르에서는 절대 불리하다. 유 양에게 “연주회와 콩쿠르 중에 어느 쪽이 더 좋으냐”고 묻자 조금도 망설임 없이 답이 돌아왔다. “연주회요! 콩쿠르는 경쟁해야 하잖아요. 잘 쳐야 하니까…. 처음에는 학교에서 숙제가 너무 많이 나와서, 콩쿠르 나가면 숙제 안 해도 되니까 콩쿠르 나가는 것도 좋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영화에는 유 양이 콩쿠르에 도전했다 좌절하는 과정이 등장한다. 선생님에게 “왜 자꾸 박자를 버리느냐(정확히 치지 않느냐)”고 혼이 난 뒤 혼자서 피아노 앞에서 울기도 한다. 콩쿠르 출전 뒤 한동안 피아노를 치지 않기도 했지만 지금은 훌쩍 큰 키만큼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처음에는 음을 하나도 안 틀리고 치는 게 잘 치는 건 줄 알았고, 그 다음엔 제 소리를 들으면서 치는 게 잘 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냥 즐기면서 치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아직도 유 양은 정확한 테크닉을 익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어제는 손목을 반듯하게 하고 손가락은 살짝 구부리고 피아노를 쳤어요. 그랬더니 손도 안 아프고 소리도 잘 나서 연습이 지루하지 않더라고요.”피아노는 내 모국어 콩쿠르에서 1등을 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유 양에게는 또 다른 재능이 있다. 바로 작곡이다. 영화에는 유 양과 이 씨가 함께 즉흥 연주를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 유 양이 그날 기분을 담아 선율을 만들어내면 이 씨가 조금 바꿔서 치고, 유 양이 다시 이어서 치는 식이다. 두 사람은 즉흥 연주를 주고받으며 유 양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인 백설공주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작곡했다. 2011년 8월 열린 이 씨의 연주회에서 실제로 두 사람이 함께 이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일반 피아노학원에서 배워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요. 저만 해도 어릴 때 악보 보면서 8분 음표가 무엇인지부터 배웠는데, 예은이는 음의 높낮이나 리듬을 동물적으로 익혀서 치는 것 같더라고요. 어린아이들이 외국어를 알파벳부터 배우는 게 아니라 계속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예은이는 모국어 배우듯 피아노를 익힌 거예요.”(이 씨) 이 씨는 “그동안 혹독하게 연습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예은이처럼 좋은 소리를 내는 사람은 보기 어려웠다”고도 했다. “아이가 소나타 한 악장을 다 쳐야만 김밥 하나를 주는 부모도 있다니까요. 그러다 보면 피아노를 왜 치는 지도 모르고, 재미도 못 느끼죠. 그런데 예은이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정말 예뻐요.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날까 제가 다 신기할 정도로요. 예은이가 곡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 ‘아, 이 아이가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느껴지죠.” 유 양도 요즘 작곡 욕심을 좀 더 내고 있다. “곡을 만들긴 하는데 자꾸 잊어버려요. 그래서 구성해서 만들려고요. 글로 쓸 때 구성하는 것처럼 하는 거예요. 시작도 있고 클라이맥스도 있고 끝도 있고, 소설 쓰는 것처럼, 그러면 안 잊어버릴 거 같아요.”(유 양) 물론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다. 영화 촬영 중 제작진은 한 작곡 콩쿠르에 유 양이 출전할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작곡한 곡을 악보로 제출해야 한다’는 조건에 결국 포기해야 했다. 악보를 볼 수 없는 유 양이 악보로 자작곡을 제출하는 건 불가능했던 것. 음원으로 제출할 수 없느냐는 문의에도 주최 측은 악보로 제출해야 한다는 회신만 줄 뿐이었다. 한예종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운영하는 소외계층 대상 아카데미에도 참가해보려 했지만 작곡 분야는 모집하지 않아 지원할 수 없었다.‘피아노 플래시’ 들고 나타날 그날까지 하지만 포기란 없다. 유 양은 요즘 점자 악보를 익히고 있다. 음계는 다 배웠는데 악보 기호를 배우는 일이 남았다. 영어 점자 읽는 법도 배워서 이제 알파벳을 읽는 정도는 할 수 있다. 배우고 외워야 할 것이 보통 사람의 서너 배는 되는데 새로운 악기에도 도전하고 있다. “요즘 플루트를 배우는데, 처음엔 소리가 안 나서…. 선생님이 입 모양을 이렇게 해서 하라고 가르쳐 주셔서 이번 주에 겨우 소리가 났거든요. 플루트는 바람 소리와 물소리에 어울리는 거 같아요.” 얼마 전 엄마가 마트에서 사와서 요리해준, “피아노를 진하게 치는 맛”이 나는 로브스터를 잊지 못하고, 배우 김상경이 나오는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를 너무 좋아해서 대사를 다 외운다. 하지만 유 양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릴 적부터 장난감이나 친구 대신이었던 피아노다. ‘민우’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남자친구로 삼았다. “플루트랑 바람피우는 거냐”고 농담을 던지자 “아니다, 요즘도 피아노를 제일 많이 친다”며 발끈했다. 그런 유 양에게 꿈을 묻는 건 괜한 말을 시키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할 정도다. 답은 망설임 없이 나온다. “피아니스트요.” 이 씨가 물었다.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세상을 비추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어떻게 비추는데. 플래시 들고 다닐 거야?” “네, 피아노 플래시. 크크. 슬퍼하는 분들, 가난한 분들한테 제 곡을 들려드리면 빛을 줄 수 있을 거 같아요.”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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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스타샤 킨스키-탕웨이-전도연… 레드카펫 홀린 여우들

    “‘와우!’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장소이고, 정말 축복받은 행사이고, 영화와 영화인에 대한 존경이 느껴집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위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오게 돼서 영광입니다.”(실비아 창 감독·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장)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배우와 감독, 영화제 관계자와 일반 관객 5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일 오후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6시에 시작된 레드카펫 행사는 올해 12월 개봉하는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다스베이더 군단과 로봇 캐릭터 R2-D2가 등장하면서 문을 열었다. 이어 전도연 손예진 황정민과 나스타샤 킨스키, 하비 카이텔, 장첸 등 국내외 스타와 임권택 김기덕 강제규, 조니 토 감독 등 영화인 200여 명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영화 ‘도둑들’에 출연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국 배우 런다화(任達華)는 관객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 함께 ‘셀카’를 찍어주느라 뒷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오후 4시 부산 일대에 내려진 강풍경보는 레드카펫 행사의 옥에 티였다. 일부 여배우가 바람에 머리가 흐트러지거나 드레스 자락이 날려 제대로 걷지 못했다. 관객들 역시 대부분 비옷을 입은 채 스타들을 맞이했다. 본 개막행사는 오후 7시 반경 시작됐다. 배우 송강호와 아프가니스탄 배우 마리나 골바하리가 사회자로 나섰다. 골바하리는 11세 때 아프가니스탄 현실을 담은 영화 ‘천상의 소녀’(2003년)로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배우다. 당시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던 그는 “어린 소녀였던 제가 세월이 흘러 영화제에서 사회를 맡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영화제 20주년 기념공연으로는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의 전통춤 공연에 이어 소프라노 조수미가 ‘아리아리랑’을 불렀다. 조수미는 영화제 초청작 ‘유스’에 출연하기도 했다. 개막작으로 상영된 인도 영화 ‘주바안’은 인도 발리우드 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반영한 작품으로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던 주인공 딜셰르(비키 카우샬)가 마침내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게 되는 여정을 그렸다. 개막식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모제즈 싱 감독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강수연 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은 “아름다운 음악과 가족애,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어우러진 영화로 일반 관객들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한편 유례없는 악천후로 이날 오후 부산 김해공항에 이·착륙하는 비행기 30여 편이 결항되면서 일부 게스트가 한때 서울에 발이 묶이는 일이 벌어졌다. 이 바람에 이정재 주지훈 등 일부 배우는 KTX를 타고 이동하기도 했다. 75개국 영화 304편이 상영되는 이번 영화제는 10일까지 부산 센텀시티와 해운대, 남포동 일대 상영관과 행사장에서 열린다. 예매 및 문의 www.biff.kr부산=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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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 안에서 즐기는 영화제…구글 플레이 인사이드 BIFF

    올해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포털 사이트 스폰서로 선정된 구글코리아는 영화제를 현장에 가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선 개막식과 폐막식 생중계를 유튜브를 통해서 진행한다. 구글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검색하거나 부산국제영화제 메인 홈페이지(www.biff.kr)를 방문해 관련 링크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전 세계 영화제 중 최초로 체험형 웹페이지 ‘구글 플레이 인사이드 BIFF’를 개설해 개막식을 온라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360도 파노라마로 촬영이 가능한 특수 장비를 사용해 개막식 장면을 촬영한 뒤 이를 온라인에서 동영상처럼 제공하는 것이다. 구글 지도의 스트리트 뷰와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자가 개막식 현장을 직접 방문한 것처럼 식장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또 개막식에 참석한 배우와 감독의 얼굴을 클릭하면 이들의 필모그래피와 관련 정보를 확인하고 관련 영화를 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로 이동한다. 웹페이지는 10월 한 달 동안 운영되며, 영화제 기간에는 이 웹페이지를 이용할 수 있는 부스를 현장에서 운영할 예정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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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국제영화제 20년]이젠 세계가 다 안다… 10월의 부산, 영화의 땅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10일 부산 일대에서 개막한다. 성년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성장은 눈부시다.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관객은 무려 289만8470명.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지원한 영화 제작 프로젝트만도 442편이다. 예산 22억 원으로 치른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해 제19회 영화제 기준 약 123억 원 규모의 주목받는 국제영화제로 성장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영화는 312편, 자원봉사자는 849명, 전 세계에서 영화제를 찾은 영화인과 기자는 1만173명이었다. 자원봉사자 334명이 참여해 영화 169편을 상영했던 1회 때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로 몸집이 커진 셈이다. 올해는 75개국 영화 304편이 상영되고, 이 중 94편은 월드 프리미어, 27편은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다. 나스타샤 킨스키, 틸다 스윈턴, 소피 마르소, 하비 카이텔, 자장커, 허우샤오셴, 레오 카락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세계 영화인들이 부산을 방문한다. 개막작으로는 이례적으로 신인 감독 작품이 선정됐다. 인도 모제즈 싱 감독의 ‘주바안’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성공을 꿈꾸며 대도시로 온 주인공이 대기업 총수의 휘하에서 일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다 삶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회의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특히 주인공과 그의 아버지가 부르는 인도 시크음악이 귀를 사로잡는다. 폐막작으로 선정된 중국 래리 양 감독의 ‘산이 울다’는 2005년 루쉰문학상 수상작인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폐쇄적인 공간인 중국 산골마을에서 사냥용 폭약이 잘못 터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를 일으킨 마을 청년에게 마을 사람들은 사고로 남편을 잃은 청각장애인 아내를 돌보라고 주문한다. 이외에도 자장커 감독이 자신의 청년 시절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신작 ‘산하고인’,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지대에서 벌어지는 마약과의 전쟁을 소재로 해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멕시코 영화계의 차세대 거장으로 불리는 미셸 프랑코 감독의 영화로 올해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크로닉’,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동네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그린 ‘혼자’ 등이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꼽은 추천작이다. 한국 관객에게 사랑받았던 해외 스타가 새롭게 연기 변신을 한 작품도 있다. 쥘리에트 비노슈가 고통스러운 과거를 지닌 채 아들의 여자친구와 마주하는 주인공을 맡은 이탈리아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청순함의 대명사였던 소피 마르소가 사랑하는 남자를 도운 대가로 감옥에 갇힌 죄수 역을 맡은 ‘제일버드’ 등이다. ‘아시아 영화의 허브’를 표방해온 부산국제영화제는 20주년 기념 특별전 ‘아시아 영화 100’도 개최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 세계 감독, 평론가, 영화학자 등 전문가 73명에게 아시아 45개국에서 배출된 영화와 감독 중 각각 ‘베스트 10’을 꼽아 달라고 한 뒤 이를 합산해 선정했다. 동점을 받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작품 113편, 감독 106명이 선정됐다. 1위 일본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 2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3위 인도 사티아지트 레이 감독의 ‘아푸 제2부-아파라지토’ 등이다. 1∼10위 작품 중 현재 리마스터링 작업 중인 ‘화양연화’를 제외한 작품 9편은 이번 영화제에서도 상영한다. 영화제 측은 “아시아 영화사 연구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상황에서 이번 투표로 숨은 걸작과 감독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아시아 영화에 대한 가치평가를 새롭게 해 나가고자 했다”며 “앞으로 100선에 포함된 작품의 시네마테크 판권과 디지털, 혹은 프린트 소스를 구입해 연구 활동을 위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작품 113편의 목록과 각 작품에 대한 영화평론가와 학자들이 해설이 담긴 책자도 발간된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은 “화려한 외양보다는 내실을 다지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제 20회 영화제를 준비했다”며 “올해 영화제를 발판으로 25회, 30회를 바라보며 더욱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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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격태격 알콩달콩, 본처와 후처의 46년

    TV 프로그램에서 먼저 소개됐고, 어르신 둘이 주인공이다. 3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춘희막이’(12세 이상)는 이 두 가지 공통점에서 지난해 역대 다양성영화 흥행 1위 성적을 갈아 치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480만 명)를 떠올리게 한다. 막바지로 갈수록 관객들의 눈물을 쏙 뽑는 ‘님아…’와 달리 ‘춘희막이’는 은근한 해학이 빛나는 영화다. 주인공들의 사연부터가 그렇다. 아들 둘을 태풍과 홍역으로 잃은 최막이 할머니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후처를 스스로 물색해 자기보다 열여섯 살 어린 김춘희 할머니를 데려왔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데, 춘희 할머니는 2남 1녀를 낳았다. ‘영감’은 세상을 떠나고 두 할머니만 벌써 46년째 해로 중이다. 여전히 젊을 때처럼 머리를 길게 길러 꼼꼼히 쪽을 찌는 막이 할머니는 깐깐하고 바지런하다. 안부전화만 넣는 자식을 향해 “돈이나 보내주지 미친×” 하고 내뱉는 시원한 화법도 매력 넘친다. 빠글빠글 파마머리에 통통한 얼굴이 귀여운 춘희 할머니는 애교도, 흥도 많다. 대신 어린아이같이 투정이 많아 일일이 막이 할머니가 챙겨줘야 한다. 확실하게 대조되는 두 캐릭터에 얄궂은 상황까지 겹치니 요즘 말로 ‘빵빵’ 터진다. 이런 식이다. 춘희 할머니 진료차 병원을 찾은 두 어르신에게 중년의 의사가 “두 분은 무슨 관계냐”고 묻는다. 춘희 할머니는 그저 웃고, 막이 할머니는 거침없이 답한다. “우리 영감 세컨드요! 영감은 이미 먼저 세상 떠났고.” 시종일관 담담한 카메라는 웃음 가운데 수십 년 세월을 함께할 수 있었던 두 어르신의 깊은 속내를 담아낸다. 걸핏하면 성질을 못 이겨 손부터 올라가는 막이 할머니는 사실 아들만 낳고 내쫓길 뻔했던 춘희 할머니를 가장 먼저 품었다. 돈도 셀 줄 모르는 춘희 할머니는 제작진에게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 집 돈은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고 털어놓는다. 주말이면 교회에서 맛난 것을 얻어와 나눠 먹고, 장날이면 장터에 들러 필요한 것을 사는 일상에서도 두 할머니가 본처와 후처라는 입장 차를 넘어서 쌓아온 진한 우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걸진 경상도 사투리 ‘독해’를 위해 자막까지 서비스되니 추석 연휴의 여운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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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강호 “이번엔 유아인한테 좀 묻어갈게요”

    송강호(48)는 16일 개봉한 영화 ‘사도’(15세 이상) 촬영 전에 한 후배 배우와 2박 3일 ‘개인 합숙훈련’을 했다. “사극은 두 번째지만 실존 인물인 영조를 연기하려니 부담스러웠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도 역을 맡은 유아인의 얼굴로 시작하고 끝맺는 작품이지만, 아버지와 군주를 오가는 영조의 눈빛이 오랫동안 잔상에 남는 것은 바로 이런 노력 때문일 것이다. 그를 1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도’는 개봉 7일째인 22일 관객 200만 명을 돌파했다. ―‘사도’의 영조 역할을 굉장히 탐냈다는 얘기가 들리더라. “지난번 ‘관상’(2013년)은 퓨전사극이었다. ‘사도’는 역사적 사건인 임오화변(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숨진 사건)을 정공법으로 다룬다는 점이 좋았다. 사실적이고 솔직하게 이 사건을 들여다본 시나리오가 반가웠다.” ―영조의 대사가 요즘 말투에 가깝다. 이유가 있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극 톤’에 알게 모르게 세뇌돼 있다. 영화에서 영조가 ‘1년에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몇 번 드느냐’고 묻자 사도가 ‘1년에 한두 번 든다’고 답한다. 이에 영조가 ‘솔직해서 좋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사료에 나온 대화를 그대로 옮긴 거다. 왕도 평소에는 편하게 말하고 욕도 하지 않았겠나. 영조를 해석할 때 왕, 옛날 사람이라는 데 얽매이지 않으려 했다.” ―시종일관 무거운 영화에서 영조의 말투나 행동 때문에 관객들이 웃는 순간이 있다. 이준익 감독은 웃기려고 의도한 장면은 없다고 했던데…. “어허, 이거 연기를 잘못했네! 감독의 의도를 못 살리고….(웃음) 애드리브를 한 장면은 하나도 없다. 즉흥연기가 필요한 작품도 있지만 지양해야 하는 작품도 있다. 다만 살다 보면 심각한 순간에도 웃음이 나올 때가 있지 않나. 자연스럽게 관객이 웃은 거라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가 주로 사도의 입장에서 전개되는데 영조로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 “내가 ‘비호감’ 캐릭터로 손해를 좀 봤지, 하하. 아무래도 희생당한 사도에게 연민이 가지 않겠나. 아들을 죽이게 된 아버지의 절절한 심정을 담으려 했지만 수십 년에 걸친 사건을 압축하다 보니 아무래도 부딪히는 면이 있었다.” ―사도가 죽기 직전 뒤주 앞에서 영조가 긴 독백을 하는 장면이 영조의 입장을 설명할 유일한 기회 아니었나. “고민을 많이 한 장면이다. 원래는 처음부터 내레이션으로 시작했는데 첫 대사라도 직접 말해야 설득력이 있겠다 싶어 촬영 직전에 바꿨다. 당시 비가 내린다는 설정인데 수염이며 분장이 물에 젖으면 감정이 방해받지 않을지, 대사가 제대로 녹음될지 걱정되더라. 그런데 스태프들이 밤을 새워서 이슬비를 내리는 장치를 만들었다. 영화 찍으며 그런 비는 정말 처음 맞아 봤다.” ―영화가 무거워서 추석 시즌 영화답지 않다. “흔히 말하는 명절용 영화는 아니지만 ‘사도’도 결국 가족 영화다. 군주인 아버지와 세자인 아들, 둘의 이야기에 집중하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명확하다. 유아인 씨가 ‘베테랑’으로 칭찬을 많이 받아서 그 덕을 좀 볼 거 같다.(웃음)” ―‘변호인’(2013년) 때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작품 전체를 아우르고 끝까지 가는 역이 아니어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 했던 말을 의식한 건 아니지만 영조 역도 크게 보면 그런 범주의 선택이다. 극의 중심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과 역할이 있고 이제는 그런 역할을 맡을 때가 됐다. 그게 나한테도 좋고.”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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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짝사랑으로 끝날 것인가… ‘테마파크 유치 잔혹사’

    ‘국제테마파크, 제발 이번만큼은 공염불이 아니기를’ 18일 경기 화성시 송산지구 국제테마파크 예정지 입구인 시1리 마을에 붙은 플래카드의 글귀다. 인근 부동산 사무실 관계자는 “플래카드에는 10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는 테마파크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애증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4200만 m²(약 127만 평)의 거대한 테마파크 예정지에는 현재 갈대만 가득했다. 같은 날 인천 연수구 송도 국제테마파크 예정지. 이 땅을 둘러싼 흰 울타리에는 ‘파라마운트 무비파크 코리아’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2008년부터 추진해 온 테마파크 유치가 진척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기도와 인천, 경남 등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이 수년 전부터 대규모 영화 테마파크를 추진하고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착공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제 ‘테마파크 유치 잔혹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말만 무성한 영화 테마파크 어디까지 국내에서 최초로 테마파크를 추진한 곳은 경기도다. 2007년 11월 당시 김문수 경기지사는 화성시 송산지구에 미국 유니버설사와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내용의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후 유니버설이 콘텐츠를 제공하고 롯데그룹이 시행하는 계획이 추진됐다. 하지만 땅 주인인 수자원공사와 롯데가 땅값 등으로 갈등을 빚다 사업이 무산됐다. 화성 테마파크 사업이 다시 힘을 얻은 것은 올해 7월. 정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국제테마파크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방안이 논의됐기 때문이다. 테마파크 예정지의 땅 주인인 한국수자원공사는 17일 사업자 재공모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인천시도 테마파크 꿈을 꾸고 있다. 시는 2008년 연수구의 옛 대우자동차판매 터 49만9500m²(약 14만8000평)에 미국 파라마운트사와 테마파크를 개발하겠다고 했지만 사업은 무산됐다. 인천은 이번에는 사업 파트너를 바꿨다. 올해 6월 유정복 인천시장은 미국을 방문해 20세기폭스 영화사와 테마파크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경남도 유치에 나섰다. 지난해 7월 홍준표 지사는 20세기폭스사와 창원 웅동지구 280만 m²(약 84만7000평)에 테마파크를 개발한다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지자체들이 유치에 나서는 이유는 테마파크의 경제적 효과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킹콩’ ‘죠스’ 등의 영화 테마로 놀이기구를 갖춘 유니버설 스튜디오, 미키마우스 등 디즈니 작품의 캐릭터를 활용한 디즈니랜드 등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플로리다의 월트디즈니월드는 지난해 1933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이는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관광객(1400만 명)보다 많다.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는 매년 1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자체장들 생색내기용?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의 유치 욕심만 클 뿐 ‘짝사랑’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유치가 부정적인 이유로 우선 우리나라는 내수 규모가 작아 수익성이 낮다는 점이다. 기존 사업의 경우 MOU 단계를 넘어 구체화된 적이 없다. 고정민 홍익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학과 교수는 “콘텐츠 공급 업체인 디즈니, 유니버설 등은 로열티만 받고 사업의 위험을 떠안으려 하지 않는다”며 “수익을 내지 못하는 위험은 시행자의 몫인데 국내 대기업도 수조 원씩 투자해 이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겨울이 길고 혹독하게 춥기 때문에 테마파크의 가동 시간이 줄어들어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디즈니와 유니버설은 국내 시장의 수익성을 우려해 각각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에 테마파크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 테마파크가 잇따라 들어서면 국내 테마파크 건설의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권유홍 한림국제대학원대 컨벤션이벤트경영학과 교수는 “지자체장이 급하게 서두르는데, 막상 실무 수준에서는 수익성 등 조건을 맞추기 힘들다”며 “중국에 테마파크들이 생기면 유치의 꿈은 사실상 끝나는 것”이라고 했다. 지자체가 테마파크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정치 논리 때문이다. 표를 의식한 지자체장들이 지역 주민에게 계속 ‘희망 고문’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한 건설 컨설턴트는 “국내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테마파크를 시행할 수 있는 기업은 테마파크 운영 경험이 있는 롯데그룹(롯데월드), 삼성그룹(에버랜드) 정도”라며 “그런데 화성의 사례처럼 롯데조차도 사업비를 버거워하는 수준이다. 테마파크라는 신기루를 지자체장들이 그만 우려먹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화성·인천=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이새샘 기자}

    • 201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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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5개국 영화 304편… 다 볼 순 없어도 이 작품만큼은 ‘꼭’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1∼10일 열린다. 올해로 스무 살, 성년을 맞은 영화제에는 75개국 영화 304편이 상영된다. 뭘 봐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 영화 팬들을 위해 영화제 프로그래머 7명이 딱 한 편씩을 골라 추천했다. 개·폐막식 입장권 예매는 오늘(22일) 오후 2시, 일반상영작 예매는 24일 오전 10시 시작된다. 지난해 개·폐막작은 5분 안팎에 매진됐다. (예매 및 문의 ticket.biff.kr 1666-9177)시카리오 -박도신 프로그래머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지대, 마약과의 전쟁을 위해 한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미국 정부에서 특별히 창설한 비밀 기동부대에 발탁된다. 그에게는 상상하지 못했던 임무가 주어지고 목숨을 건 전쟁이 시작된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살인 장면이 소름을 돋게 한다. 한 줄 평: 올해 나온 범죄 스릴러 중 최고. 냉혈한 베니치오 델 토로의 연기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산하고인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중국의 자장커 감독이 청년시절을 회고하며, 당시의 삶이 현재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고, 미래에는 어떻게 전개될지 그려낸 작품이다. 1999년 타오(자오타오)는 탄광주의 아들 진솅과 가난한 리앙즈 사이에서 갈등하다 진솅을 배우자로 선택한다. 이들의 2014년과 2025년의 모습을 함께 다룬다. 한 줄 평: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의외의 유머감각을 보이는 자장커. 크로닉 -박진형 프로그래머말기 환자를 돌보는 헌신적인 간병인 데이비드(팀 로스)는 맡은 환자와 친밀함을 쌓아간다. 하지만 깊은 슬픔을 안고 있는 그의 개인적 삶은 완전히 딴판이다. 멕시코 영화계의 차세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미셸 프랑코 감독의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작품. 올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한 줄 평: 파격적인 소재, 차가운 관점, 뒤통수를 내리치는 듯한 충격적인 결말. 세 도시 이야기 -김영우 프로그래머중일전쟁 혼란기에 헤어진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제목의 세 도시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따라 이주해야 했던 여자 주인공이 거쳐 간 도시들을 의미한다. 배우 청룽 부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알려져 있다. ‘가을날의 동화’(1987년)로 유명한 메이블 청 감독이 13년 만에 연출했다. 한 줄 평: 온몸으로 혼란의 역사를 돌파하는 강인한 여성 탕웨이, 그녀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운명적인 남성 류칭윈이 빛난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이수원 프로그래머시칠리아에 홀로 사는 안나(쥘리에트 비노슈) 앞에 어느 날 아들 주세페의 애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잔(루 드 라주)이 등장한다. 주세페는 이곳에 없고, 고통스러운 비밀을 안은 안나와 애인의 깜깜무소식에 속상해하는 잔. 두 여자는 주세페가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한 줄 평: 쥘리에트 비노슈의 열연과 이탈리아 영화의 저력이 빛나는 대단원이 뇌리에 깊이 남는다. 혼자 -남동철 프로그래머산동네 오피스텔에서 한 남자가 살인사건을 목격한다. 살인자들은 목격자인 남자를 쫓아 오피스텔로 오고, 남자의 머리를 망치로 내려친다. 눈을 뜨자 남자는 알몸으로 산동네에 버려져 있다. 산동네를 배경으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매혹적인 악몽이 펼쳐진다. 장편 데뷔작 ‘물고기’(2011년)로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했던 박홍민 감독의 신작이다. 한 줄 평: 산동네라는 공간을 절묘하게 활용한 창의적이고 흥미진진한 영화. 덤보 -홍효숙 프로그래머추억의 애니메이션 ‘덤보’를 대형 스크린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다. 귀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던 서커스단의 아기 코끼리가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귀로 날갯짓을 하며 나는 법을 배우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1941년 디즈니 만화로 제작된 ‘덤보’는 ‘백설공주’ ‘밤비’ ‘피노키오’와 함께 작품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 줄 평: 부모 세대에게 친숙한 아기 코끼리 덤보의 성장을 내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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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이 선택한 사람만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대기 중 산소의 양은 해수면의 3분의 1. 영하 40도의 추위와 강풍이 닥쳐온다. 열 발자국도 걷지 못해 휴식을 취해야 하고, 고산병으로 인한 두통과 무기력증, 구토, 판단력 저하를 겪는다. 에베레스트는 그런 곳이다. 정상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죽음도 가까워지는 곳. 24일 개봉하는 영화 ‘에베레스트’(12세 이상)는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고를 담은 영화다. 잡지 기자로 등반대에 동행했고, 정상을 밟은 뒤 수십 분 차이로 간신히 살아난 존 크라카우어가 쓴 논픽션 ‘희박한 공기 속으로’가 원작이다. 세계적인 등반가였던 롭 홀(제이슨 클라크)은 일반인에게 돈을 받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돕는 상업 등반 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인물이다. 그는 크라카우어(마이클 켈리)를 포함해 텍사스 출신 중년 남자 벡 웨더스(조시 브롤린), 우편배달부로 일하며 등정 비용을 모은 더그 핸슨(존 호키스) 등을 대원으로 한 상업 등반대를 이끌고 6주에 걸친 훈련을 거쳐 정상에 도전한다. 운명의 그날, 대원 중 일부는 정상을 밟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모든 재난이 그렇듯 사소한 실수와 판단 착오가 겹치면서 등반대의 하산 시점이 계속 늦춰지고, 일행은 엄청난 눈 폭풍과 맞닥뜨린다. “산이 선택한 사람만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영화의 주인공은 에베레스트 그 자체다. 산사태와 폭풍우를 일으키다가도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과 눈부신 설경을 선보인다. 영화 전체를 아이맥스 전용 장비로 촬영했는데 실제 산을 오를 때의 고통이 엄습하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화면은 압도적이다. 배우와 제작진은 실제 에베레스트를 5000m 이상 등정해 촬영했고 그중 일부는 6657m까지 오르기도 했다. 매혹적인 에베레스트의 풍광만큼이나 진한 감동을 담보하는 것은 실화가 갖는 힘이다. 정상 부근에 고립돼 위성전화와 무전기로 임신한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방금까지도 멀쩡히 얘기를 나눴던 동료의 시신 위에 배낭을 수의처럼 덮어줘야 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극한 상황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과, 그 속에서도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함께 목격할 수 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분위기, 등반대 간의 경쟁, 고산 적응 훈련과 고산병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아이맥스 등 대형 스크린에서 볼 때 ‘에베레스트 가상 체험’의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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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쌈 MOVIE]“소-탱크-전투기 3중 추격전 황당”…“편하게 웃고 즐길수 있는 코미디”

    《 24일 개봉하는 ‘서부전선’(12세 이상)은 심각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웃음으로 승부하는 영화다. 시점은 6·25전쟁의 막바지인 1953년 7월. 갓 태어난 아이 한번 안아보지 못하고 군대에 끌려가 비밀문서(비문) 전달 임무를 받은 40대 국군 졸병 남복(설경구), 7형제 중 막내로 북한군 학도병으로 지원한 탱크부대 막내 영광(여진구)이 주인공이다. 전투로 부대원이 전멸하고 홀로 살아남은 두 사람은 전장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각각 ‘비문’과 탱크를 사수해야만 하는 둘은 서로를 의심하며 뺏고 빼앗기는 ‘둘만의 전쟁’을 시작한다. 추석을 겨냥한 ‘사도’ ‘탐정’에 이어 이 영화를 본 남녀 기자의 생각은 이번에도 엇갈렸다. 》▽이새샘=근데 영광이나 남복이나, 왜 그렇게 ‘비문’과 탱크에 목숨을 거는 거야? 그냥 버리고 도망가면 안 되나? 그냥 ‘졸병’일 뿐인데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이유가 좀 이해가 안 되더라. ▽김배중=‘못 지키면 총살’이라는 말이 무서웠겠지. 군대 다녀온 남자들은 쉽게 이해할걸. 난 오히려 ‘개콘’ 느낌의 콩트가 개연성 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이야기 전개가 아쉽더라고. ▽이=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나오지 않아? 영광과 남복이 마을 사람들과 마주치는 장면이나, 막바지에 하늘에서 내리는 삐라를 ‘눈’이라 하는 장면은 왠지 ‘웰컴 투 동막골’(2005년)이 떠오르던데. ▽김=7년 전부터 기획한 영화라는데 그때 나왔으면 오히려 새로웠겠다 싶어. 난 과장된 코미디가 거슬렸어. 특히 소와 탱크, 전투기까지 나오는 ‘3중 추격전’은 황당했다니까. ▽이=소가 전속력으로 달리면 시속 50km라니까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닐 수도 있지. 난 그런 코믹한 요소가 장점이라고 봤어. 특히 둘이 탱크 안에서 초콜릿 갖고 티격태격하거나 탱크 운전하다 ‘몸 개그’ 하는 장면은 웃을 수밖에 없더라. ▽김=사투리 연기는 어땠어? “형 믿고 항복 햐∼” 하는 설경구의 충청도 사투리는 구수하고 입에 착착 붙어 보였는데 여진구의 북한 사투리는 좀 단조롭더라고. ▽이=천성일 감독과 설경구가 모두 충청도 출신이니 자연스러운 게 당연하지. 여진구는 보는 내내 ‘잘 컸다’ 싶던데. 순진한 학도병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여성 팬 좀 모으겠어. ▽김=둘의 연기 호흡이 나쁘진 않았는데 그 맛으로만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어. 확실히 웃겨주는 것도 아니고, 전투 장면도 생각보다 짧고. 전쟁 영화인지, 코미디인지, 아니면 휴먼드라마인지 장르가 불분명해. ▽이=그래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있지 않아? 아무것도 모른 채 전쟁에 끌려나온 졸병들, 말하자면 서민들의 애환도 보여주고, 또 그런 애환이 처음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는 점을 얘기해주잖아. ▽김=하지만 감동을 주려다 너무 질질 끄는 감이 있어. 대체 고향에 가고 싶다면서 ‘비문’ 문제가 해결됐는데도 왜 그렇게 가질 않는 건지…. 영화의 만듦새에 비해 제작비(73억 원)가 많이 들어간 것 같아. 손익분기점(280만 명)을 넘길 수 있을까. ▽이=탱크에, 전투기에, 소달구지까지 나오는데 그 정도면 뭐…. 천 감독은 지난해 800만이 넘는 관객이 든 ‘해적’의 시나리오 작가잖아. 그렇게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라고 봐. 경쟁작인 ‘사도’ ‘탐정’이 15세 이상인데 이 영화가 12세 이상이라는 것도 장점이지. 모든 연령대를 아우른다는 얘기니까.김배중 wanted@donga.com·이새샘 기자 }

    •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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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쌈 MOVIE]“깨알 코믹연기 굿” “좀 더 빵빵 터졌더라면”

    《 24일 개봉하는 ‘탐정: 더 비기닝’(15세 이상)은 전형적인 ‘추석용’ 코미디 영화다. 한때 경찰을 꿈꿨지만 만화방을 하며 추리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는 애 둘 딸린 ‘추리광’ 강대만(권상우), 한때는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후배보다 승진이 밀린 강력계 형사 노태수(성동일)가 주인공. 두 사람은 대만의 친구이자 태수의 부하 형사인 준수(박해준)가 살인 누명을 쓰자 진짜 용의자를 잡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한류 스타’ 권상우와 감초 조연으로 유명한 성동일의 조합은 과연 어떤 맛을 냈을까. 》▽김배중=솔직히 권상우, 성동일이 주연이라고 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 권상우는 영화 ‘통증’(2011년) 이후에 스크린에선 소식이 뜸했고 성동일은 조연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잖아.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어. 둘이 ‘케미’가 좋던데. ▽이새샘=둘의 캐릭터가 확실한 코믹 탐정물이라 생각 없이 재미있게 보기 딱 좋지. 근데 난 둘이 궁합이 잘 맞았는지는 좀…. ▽김=왜? 난 권상우가 그런 생활밀착형 개그를 할 수 있는 줄 몰랐어. 아내(서영희)한테 구박받으면서도 ‘형사질’하고 싶어 안달이 난 그 모습에 공감이 가던걸. 애 보는 모습도 썩 잘 어울리고. 성동일도 신들린 코믹 연기에 의외의 액션 연기까지 하잖아. ▽이=명절용 탐정물이라면 ‘조선명탐정’ 시리즈가 떠오르는데 거기선 주인공 김민(김명민)이 사건을 풀고 조연인 서필(오달수)은 웃음을 담당했잖아. 여긴 그런 역할 분담이 없어서 좀 정신없었어. 서로 치고 빠지는 호흡이 맞아야 하는데 두 사람이 계속 잽만 날리는 느낌이랄까. ▽김=난 그보다 권상우의 혀 짧은 소리가 좀 거슬리더라. 한번 그렇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그렇게 들리는 건가…. ▽이=그래? 난 그건 의식 못했는데. 영화 속 캐릭터가 어수룩하고 소심한 역할이다 보니 그런 발음이어도 어울렸던 거 같아. ▽김=두 사람이 평범한 가장이자 남편이라는 면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역시 추석용 영화다웠어. 대만이 쓰레기 버리러 가는데 아내가 새끼손가락에 음식물쓰레기봉투까지 걸어주거나 태수가 설거지하기 싫어서 고무장갑 손에 안 맞는다고 징징대는 장면에서 ‘물개 박수’를 쳤다니까. ▽이=근데 극중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전부 아내잖아. 그걸 보면서 마냥 재미있어 하긴 좀 힘들었어. 그런 사건에 아내한테 구박받는 대만과 태수의 모습이 겹치니까 기 센 여자는 다 죽어야 된다는 건지 뭔지…. ▽김=에이, 그건 좀 ‘오바’다. 시체나 살인 장면이 꽤 적나라하게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코믹한 요소가 강하니까 좀 희석되지 않아? 부부 사이에 솔직히 터놓고 얘기하자, 뭐 그런 메시지도 있고. ▽이=순제작비가 38억 원밖에 안 되니 손익분기점(약 180만 명)은 충분히 넘을 거 같아. 그래도 난 더 빵빵 터져주길 기대했는데 좀 아쉬웠어. 추리 과정이 아주 치밀한 것도 아니고. ‘사도’에 대적하기는 좀 힘들 듯. ▽김=어깨 힘 다 뺀 권상우 모습이 보기 좋았어. 권상우-성동일 콤비가 보여주는 ‘깨알 재미’가 확실하니 입소문만 제대로 난다면 ‘조선명탐정’ 1편처럼 기대 이상의 흥행도 가능할 거 같은데. ▽이=아, 그런데 제목이 ‘탐정: 더 비기닝’이잖아. 혹시 시리즈가 될 수 있을까? 끝에 속편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잖아. ▽김=그거야 뭐, 흥행 결과에 달렸겠지? 개인적으로 이 조합, 또 보고 싶긴 하다. 김배중 wanted@donga.com·이새샘 기자}

    • 201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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