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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사과에 ‘피짓 스피너(fidget spinner)’를 던지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한 남성이 한껏 회전시킨 피짓 스피너를 10cm 앞에 둔 사과에 툭 던지자 3cm 깊이로 꽂혔다. 이 남성은 “이렇게 쉽게 박혀버린다. 무섭다. 절대 따라 하지 말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영상 속 피짓 스피너는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1만5000원 정도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조회수 61만 회를 기록한 이 영상에는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쉬이익 하고 잘릴 것 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댓글도 보였다. 피짓 스피너는 지난해 해외에서 유행한 손장난용 장난감의 일종이다. 살이 셋 달린 선풍기 날개를 손 안에 들어갈 정도로 줄였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두 손가락으로 가운데 축을 쥐고 돌리면 살이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주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고 금속제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 초부터 초·중학교 남학생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해 판매량이 급속히 늘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입고한 지 한 달 만에 2만5000개가 팔려 나갔다”며 “남아용 일반 완구 판매 상위 1∼5위가 모두 피짓 스피너”라고 말했다. 문제는 안전성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살 끝부분이 둥근 원래 제품과 달리 최근 수리검이나 표창을 본뜬 모조품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나 학원같이 남학생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박모 씨(28·여)는 “사용 연령을 14세 이상으로 정해놓은, 끝이 날카로운 제품을 초등학생 아이들이 버젓이 돌리고 다닌다”며 “수업 시간에 책상 밑에서 돌려대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조모 양(9)은 “짓궂은 친구들은 모서리가 뾰족한 피짓 스피너를 표창처럼 던지며 논다”며 “얼굴 같은 데 맞을까 봐 무섭다”고 했다. 특히 사용자가 위험하게 변형한 자작(自作) 피짓 스피너가 위험을 부채질한다. 동영상 사이트에는 자작 제품의 파괴력을 테스트하는 영상이 계속 올라온다. 끝을 날카롭게 간 피짓 스피너를 합판에 던져 꽂는 영상은 조회수 130만 회를 기록했다. 10대 외국 소년은 압정을 부착한 피짓 스피너를 자기 얼굴에 피가 날 정도로 직접 가져다 대는 가학적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대학생 최모 씨(19)는 “점점 무게가 무겁고 특이한 모양을 찾다 보니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피짓 스피너를 돌리는 친구들이 점점 늘고 있다. 조마조마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피짓 스피너는 처음 출시될 때 ‘주의력 분산을 막아준다’는 홍보로 학부모와 학생에게 어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김은주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피짓 스피너가 집중력을 강화해 준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며 “반복적으로 기구를 돌리면 결국 기구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오히려 주의력이 분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최지선 aurinko@donga.com·권기범 기자}

‘아빠만큼은 못 하겠지만 우리가 엄마 잘 책임질게. 여기서 너무 고생하면서 살았으니까 올라가서는 편하게 아프지 말고 있어.’ 16일 경남 김해시의 한 추모관 내 납골함에 놓인 편지의 내용이다. 편지 속 ‘아빠’ 김모 씨(46)는 8일 세상을 떠났다. ‘밧줄 절단 사건’의 피해자 김 씨다. 이날 경남 양산시의 한 아파트 외벽에서 작업 중이던 김 씨는 휴대전화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주민 서모 씨(41)가 밧줄을 자르는 바람에 떨어져 숨졌다. 김 씨의 아내 권모 씨와 5남매는 하루아침에 든든한 남편, 사랑하는 아빠를 잃었다. 5남매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에 담았다. 김 씨의 큰딸(17)은 ‘어제 아빠가 우는 거 보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매년 챙긴 결혼기념일&어버이날인데 어제만 울길래. 아, 우리 아빠가 늙었구나. 앞으로 일이 다 잘 풀리고 좋은 일만 있길’이라고 아빠 생전에 쓴 편지를 납골함에 놓았다. 그 옆에는 립밤(입술보호제) 새 제품을 뒀다. 겨울철 야외에서 일하는 아빠를 걱정해 아이들이 선물한 것이다. 다가오는 무더위도 걱정했었다. 큰딸은 ‘내가 준 선밤(선크림 종류)도 열심히 발라야 해. 이제 여름이 곧 오는데 아빠 일이 너무 힘들까 봐 걱정이야. 수분 보충도 열심히 하고 너무 무리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둘째 딸의 편지는 유난히 반짝거렸다. 편지에 코팅까지 해서다. ‘아빠, 독수리 오남매 때문에 고생 많이 했을 거야. 우리 독수리 오남매랑 엄마를 위해 고생 많이 해줘서 고마워♡ 아빠 얼굴 목소리 꼭 기억할게. 그리고 팔 못 주물러주고 아빠 보내서 정말 미안해. 다음에 보면 내가 백만 번 주물러 드릴게요. 아빠, 자주 보러 갈게! 진짜 많이 사랑해요♡’ 넷째 아들은 직접 만든 종이 카네이션을 아빠 곁에 놓았다. ‘사랑해요, 아빠는 너무 멋져요.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I love you. 나는 아빠가 좋아요’라고 쓴 그림 편지도 남겼다. 아빠가 멀리 떠난 걸 모르는 생후 27개월의 막내딸은 자동차 장난감 3개를 선물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와 함께 갖고 놀던 장난감이다. 가족들은 퇴근 후 기분 좋게 반주를 즐긴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며 납골함에 소주병과 소주잔을 나란히 놓았다. 23년간 함께한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 권 씨는 캘리그래피(손으로 쓴 그림문자)에 못다 한 사랑을 담았다. ‘사랑하는 내 남편,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큰 충격에 빠진 권 씨와 5남매이지만 서로를 보듬으며 슬픔을 이겨내고 있다. 넷째 아들은 아빠가 세상을 떠난 걸 알면서도 “내가 울면 엄마가 더 슬프니까… 지금은 안 울거야”라며 엄마를 달래고 있다.최지선 aurinko@donga.com / 김해=배영진 채널A 기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13일 경기지역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 10개교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뒤 후폭풍이 거세다. 도내 해당 학교들은 14일 “학교를 강탈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며 반발했다. 외고나 자사고 진학을 염두에 둔 중학교 3학년 학부모들도 곤혹스러워했다. A 자사고 관계자는 이날 “노무현 정부 때 설립 승인을 받아 개교해 10년이 좀 지났는데 현장을 한 번도 찾아보지 않고 폐교 운운하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용인한국외대부설고는 반경 10km 내에 중학교 1곳이 있을 뿐이다. 만약 일반고로 전환해서 현재 선(先)지원 후(後)추첨의 진학 방식이라면 학생 미달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용인외고 관계자는 “교육청이 일선 학교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밀어붙이는 데에 당혹스럽고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외고나 자사고 입시를 준비하는 중3 자녀를 둔 학부모들도 패닉 상태에 빠졌다. 경기 성남시 분당의 중3 학부모는 “수능, 내신 절대평가니 하면서 대입 전형을 정하지도 않은 마당에 고교 입시마저 흔들어대면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말이냐”며 “기존 제도를 흔들지나 말았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내년 6월 임기가 끝나는 교육감이 무책임하게 던진 한마디가 혼란만 키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수목적고 재지정 여부 평가는 안산동산고 2019년, 나머지 9개교는 2020년으로 모두 후임 교육감이 할 일이다. 서울시교육청도 시내 외고, 자사고, 국제고 30개의 단계적 폐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서울의 학부모와 학원가도 술렁였다. 강남구 대치동의 수학학원 원장 B 씨는 “오늘 하루 자사고 문제로 문의 전화를 예닐곱 통 받았다”며 “본인들 자식은 다 외고, 자사고 보내 놓고 우리 아이들만 희생양이 된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학부모도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외고와 자사고가 공교육을 파행시켰다며 폐지 조치를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기 수원의 일반고 교사는 “외고, 자사고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사교육에 매달려야 입학이 가능해 학생 간 위화감을 조성했다”며 “설립 취지와 달리 입시교육에만 치중해 공교육을 해쳐 온 장본인은 없어지는 게 낫다”고 말했다.수원=남경현 bibulus@donga.com / 최지선 기자}

7일 오후 7시 58분. 긴장이 최고조에 올랐다.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2분 후에는 드디어 방탄소년단(BTS)의 ‘홈파티’ 행사 예매 시작이다. BTS 팬들은 티켓 예매 사이트 접속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근처의 피시(PC)방을 찾았다. 또 친구나 가족을 동원해 스마트폰과 컴퓨터 여러 대로 동시 접속을 준비했다. 마침내 시곗바늘이 8시 정각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일제히 사이트로 몰렸다. 응답 속도는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로고침’ 버튼을 눌러도 흰색 화면에 ‘불러오기 중’을 의미하는 동그라미만 계속해서 돌아갔다. 8시 5분. 온라인 커뮤니티에 “망했다” “이럴 줄 알았다”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욕설을 날리는 사람도 있었다. 간간이 “성공했다. 손이 떨릴 지경” “내가 앞자리 예약에 성공하다니 믿기지 않는다”라는 글도 보였다. 하지만 그 수는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8시 15분. 한 티켓 거래 사이트에 “BTS 홈파티 티켓 팝니다”라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3만3000원짜리 티켓의 가격은 10만 원부터 50만 원까지 치솟았다. 일부 팬이 “어차피 본인 확인을 철저히 하기 때문에 남의 티켓을 사도 소용이 없다”는 글을 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인기 아이돌그룹의 공연이나 주요 개장행사 예매는 오래전부터 ‘하늘의 별따기’다. 30초 만에 모든 티켓이 동나는 공연도 나온다. 하지만 얼마 뒤에는 온라인에 몇 배나 비싼 가격에 티켓을 팔겠다는 사람이 등장한다. ‘30초 매진’ ‘전석 매진’의 비밀을 파헤쳐봤다.프로그램만 잘 쓰면 나도 ‘온라인 암표상’ “입금만 해주시면 바로 드립니다!”(매크로 프로그램 판매업자)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자동으로 예매를 도와준다는 ‘매크로(자동)’ 프로그램 판매자는 시원시원했다. 판매자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 “고객들의 피드백을 받아 업데이트도 한다”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검색부터 전달까지 온라인으로 티켓 자동 예매 프로그램을 구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매크로란 원래 사람이 해야 하는 반복 작업을 컴퓨터가 대신 해줘 작업 효율을 높이는 프로그램이다. 이후 온라인 게임 등에 악용되다가 티켓 예매 시장으로 침투했다. 손으로 일일이 클릭을 하는 것보다 빠르고 정확도도 높기 때문에 촌각을 다투는 ‘피케팅(피 터지는 티케팅)’ 현장에서 효자 노릇을 한다. 원래 온라인 암표상들이 쓰던 프로그램인데 이제 일반인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자가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유명 밴드의 공연 예매를 직접 해봤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예매일’ ‘예매 시간’ ‘원하는 좌석’ 등을 지정한 뒤 이 과정을 특정 단축키로 지정한다. 실제 예매를 할 때는 마우스를 움직일 필요 없이 단축키만 두 번 누르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예매를 하자 예매 1단계에서 4단계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9초에 불과했다. 반면 프로그램을 쓰지 않고 순수한 ‘마우스질’로 걸린 시간은 19초였다. 이런 매크로 프로그램은 2만∼3만 원에 거래된다. 2배 이상의 웃돈을 줘야 하는 ‘플미 티켓’(프리미엄 티켓의 준말로 웃돈을 주는 티켓을 말함)에 비하면 오히려 싼 편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은 반칙”이라며 거부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가격이 싸고 성능이 확실하다 보니 유혹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 동방신기의 11년 팬이라는 이모 씨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쓰는 사람 때문에 짜증은 나지만 이제는 워낙 만연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7만 원→120만 원’ 무서운 온라인 암표 이렇게 만들어진 암표는 당연히 정가보다 비싸다. 인기 있는 공연일수록, 좋은 좌석일수록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다. 최근 10대와 20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는 7월 1일 ‘피날레 콘서트’를 연다며 지난달 31일 티켓 예매를 시작했다. 여느 공연이 그렇듯 표는 몇 분 만에 다 팔렸다. 그러나 티켓 거래가 이뤄지는 사이트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8일 오전 티켓 거래 사이트에는 여전히 120여 장의 티켓이 있었다. 문제는 가격. 정가 7만7000원짜리 티켓의 거래 희망 가격이 최소 30만 원에 달했다. 공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스탠딩석 중에서 앞자리에 해당하는 티켓의 가격은 무려 120만 원에 이르렀다. 이 프로그램의 팬이라는 조모 씨(25)는 “120만 원에 티켓을 살 사람이야 없겠지만, 문제는 판매용으로 티켓을 선점하는 암표상 때문에 정작 100명이 넘는 팬이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온라인 암표는 아이돌 공연에만 그치지 않는다.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프로야구 주말 경기의 프리미엄석은 8일 현재 정가(7만 원)의 2배에 가까운 12만5000원에 올라와 있다. 4만8000원짜리 테이블석의 가격도 장당 8만 원에 달한다. 온라인 암표는 주로 중고 제품을 거래하는 카페나 앱, 티켓 거래 전문 사이트를 통해 거래된다. 소규모 ‘업자’들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판매한다. 현장에서 암표를 매매하는 행동은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처벌을 받지만 온라인 암표 거래의 경우 제재할 만한 뚜렷한 방법도 없다.딱, 한 걸음 앞서가는 암표상 티켓 판매 업체들과 공연 주최 측은 온라인 암표를 근절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이용한 티케팅으로 소비자 불만이 높아지자 업체들은 나름의 대응책을 내놨다. 가장 대표적인 건 ‘자동 예매 방지 문자’다. 영문과 숫자를 혼합한 보안문자를 결제 중간 단계에 끼워 넣는 식이다. 사람이 문자를 직접 읽고 입력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해뒀다. 매크로의 질주를 막기 위한 일종의 ‘방지턱’이다. 인터파크는 지난해부터 이런 방식을 적용한 ‘안심 예매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매크로를 이용한 대량 예매 흔적이 2년 전 포착됐기 때문이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안심 예매 서비스를 시작한 뒤 매크로를 사용한 구매가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옥션 티켓도 비슷한 시기에 자동 예매 방지 문자를 도입했다. 실시간으로 인터넷주소(IP주소)를 모니터링해 매크로를 사용한 비정상적 구매 행위가 있는지도 확인한다. 암표 거래를 막기 위해 한 아이디당 구매가 가능한 티켓 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이 밖에 공연 주최 측은 티켓 본인 확인제를 강화해 암표 구매자의 입장을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나 암표상들도 발 빠르게 변화한다. 본격적인 예매가 시작되기 1, 2시간 전부터 SNS나 중고 거래 사이트를 통해 ‘선입금 5000원만 해주면 대리 티케팅을 해주겠다’거나 ‘아이디를 빌려주면 대리 티케팅을 해주고 성과금을 받겠다’는 글을 올리며 일대일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모바일 메신저의 일대일 익명 채팅 기능을 이용해 거래를 제안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괜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몸을 사리겠다는 것이다. 9일 한 중고거래 카페에서 ‘대리 티케팅 전문가’를 자처한 사용자(esc****)의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거의 모든 티케팅을 맨 앞자리부터 5줄 이내로 잡아준다”며 “비밀 댓글로 신청해 달라”는 글이 등록돼 있었다. 2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또 다른 글에는 4월 말 매진과 함께 접속 불가 사태를 일으킬 정도로 인기였던 아이돌그룹 ‘하이라이트(구 비스트)’의 공연 티켓 13장을 확보했다는 글도 생색내듯 올라와 있었다. 이들은 업체들이 자동 예매 방지 문자를 입력하도록 절차를 복잡하게 한 것도 “별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어차피 나머지 단계에서 속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손을 쓰는 사용자에 비해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체와 암표상들의 물고 물리는 싸움은 경찰의 지속적 단속에도 근절되지 않는 프로야구 현장 암표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권기범 kaki@donga.com·최지선 기자}

▼ 청년 일자리 어떻게… 3부 ‘노오력의 귀환’ 시작합니다 ▼《 온종일 도서관에서 스펙을 쌓는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티슈 인턴’임을 예감함에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원서를 넣는다. 오늘도 청년들은 ‘노오력의 배신’(1부)을 겪는다. “노력의 방향과 방법이라도 알려 달라”는 청년들의 요구에 ‘취업 내비게이션’(2부)도 가동했다. 이젠 취준생 개인을 넘어 기업과 노동시장, 나아가 우리 사회가 어떤 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활성화할 것인지, 청년들의 요구가 정치와 정책에 어떻게 반영돼야 하는지를 5회에 걸쳐 알아본다. 그들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지 않고 사회 안으로 온전히 ‘귀환’(3부)시키기 위해서다. 첫 번째로 청년이 진짜 원하는 일자리를 탐험했다. 새 정부의 일자리 만들기에 시사점이 되길 바란다. 》 2017년 대한민국은 근심이 있다. 청년들이 꿈꿨던 보물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함)이 사라진 것. 보물을 잃은 청년들은 고시원과 빌딩 숲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다. 이제는 그런 보물이 정말 있는지조차 다들 의심하는데…. 서울에서 464km 떨어진 섬 제주가 고용률 70%를 돌파하며 워라밸을 만들었고 청년들이 이를 발견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워라밸이 정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주로 갔다.○ 서울 토박이가 제주로 온 이유 지난달 3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제주신화월드. 두꺼운 철문이 양쪽으로 열리자 분수가 쉼 없이 물을 뿜었다. 넓게 펼쳐진 정원은 야자수로 가득했다. 흡사 남태평양 리조트 같은 이곳은 250만 m²의 부지에 외국인 카지노와 테마파크까지 건설 중인 복합리조트다. 투입된 자본만 외국 자본까지 합해 2조5000억 원에 달하는 제주의 ‘대기업’이기도 하다. “직원의 30% 정도가 외국인이고, 영어와 중국어로 처리할 업무가 많은 편이에요.” 인사팀 사원 김철규 씨(25)가 사무실 게시판에 걸린 각종 외국어 문서를 보여주며 말했다. 서울 토박이인 김 씨는 제주에 연고가 없다. 하지만 전공을 살릴 수 있고 매일 여행하는 기분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국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그는 “또래인 동료가 많아 주말에 축구도 같이 하면서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도 직장이고, 조직 생활인데 힘든 점은 없을까. “스트레스가 없진 않죠. 그래도 창밖을 내다볼 때마다 가슴이 뻥 뚫려요.” 막상 살아보니 제주 생활은 정말로 심심할 틈이 없다. 주말이면 근처 오름을 오르고 바다낚시도 간다. 서울 친구들이 그리우면 훌쩍 비행기를 탄다. 제주에 워라밸이 출몰했다는 첩보에 신빙성을 더했다. 그러나 표본이 더 필요했다.○ 디지털 노마드로 일한다 야트막한 돌담이 펼쳐진 서귀포시 월평동의 한 마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으니 서핑보드 두 대가 세워져 있는 건물이 나왔다. 두 번째로 발견한 워라밸의 흔적이다. 이곳에서 콘텐츠업체 ‘카일루아’를 운영하는 소준의 대표(31)가 반바지 차림으로 나왔다. 서핑을 즐기는 탓인지 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털이 보송보송한 강아지 세 마리와 함께였다. “카일루아는 ‘두 개의 해류가 만나는 곳’이란 뜻이에요. 다양한 능력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재밌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카일루아는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제주도 여행 코스를 짜주는 콘텐츠 정보기술(IT) 회사다. 힐링을 선호하는 사람에겐 ‘고요한 나 혼자 여행’ 일정을, 연인과 함께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에겐 ‘레포츠 중심 커플 여행’ 일정을 짜주는 식이다. 소 대표를 포함해 청년 5명이 근무하는데 제주 토박이 1명을 빼면 모두 육지 출신이다. 전공은 컴퓨터공학 독어독문 불어불문 신소재공학 등 다양하다. 카일루아는 사무실과 근무시간이 없다. 일하고 싶을 때 원하는 곳에서 일한다. 중문해변에서 일하거나 침대에 누워서 일하기도 한다. 윤정욱 씨(28)는 “오전 10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11시쯤 일어난다”며 “이전 직장의 스트레스가 8∼9점이면 여기는 1∼2점”이라고 말했다. 카일루아는 ‘디지털 노마드’(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면 언제 어디서든 일하는 문화)를 지향한다. 직원들은 최근 소 대표를 따라 서핑을 배우기 시작했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일하면서 서핑까지 할 수 있다니. 제주로 온 청년들의 가슴엔 분명 워라밸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쐐기를 박기 위해 마지막 청년들을 찾아 나섰다.○ 하루가 있는 삶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의 ‘단추스테이’. 노남경(40) 김세정 씨(36) 부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다. 대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부부가 막 수확한 양파를 담아둔 박스가 보였다. 그림으로 장식된 건물 외벽에는 부부의 손길이 물씬 묻어났다. “금잔화가 밤에는 꽃망울을 오므렸다가 낮에 활짝 피는 걸 여기 와서야 알았어요.” 부부는 6년 전 제주에 정착했다. 그전에 남편은 재무설계회사, 아내는 공익재단에서 일했다. 직장생활이 크게 불만스럽지는 않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삶을 위해 고민 끝에 제주행을 결심했다. 정부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했다. 중소기업청의 ‘나 사장 프로젝트’를 통해 1000만 원을 지원받았고 직업훈련사업으로 바리스타와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건물은 폐가를 보수하는 조건으로 무상 임차했고 인테리어는 직접 했다. 게스트하우스 이름은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재료를 십시일반 모아 수프를 만들어 나눠 먹었다는 동화책 ‘단추수프’에서 따왔다. 조용하고 주인 부부의 인심이 따뜻한 곳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5년간 다녀간 손님만 총 3000여 명. 서울에 있을 때보다 소득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돈 쓸 데는 더 많이 줄어 부족하지는 않다. 부부는 방문한 손님의 이름으로 유니세프에 모기장을 기부하고 있다. 물론 제주 생활이 마냥 편한 건 아니다. 아이가 생기니 병원이 부족한 게 제일 힘들다. 숙박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나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래도 노 씨는 “어려운 점도 있지만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하루가 있는 삶’이라 즐겁다”고 말했다. 회사원부터 창업가까지 다양한 청년이 모인 제주는 그야말로 워라밸의 보고(寶庫)였다. 도시 한복판 고시원과 빌딩 숲에 갇힌 청년들도 워라밸을 하나씩 품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탐사보고서를 쓰기 위해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제주·서귀포=최지선 aurinko@donga.com / 유성열 기자}

건국대는 학생들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이순덕 할머니(사진)가 2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29일 밝혔다. 향년 90세. 건국대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2005년 1월 4억 원이 넘는 2층 건물을 시작으로 2006년 1월 현금 2억 원, 2015년 1억 원 등 지금까지 7억 원 넘게 기부했다. 당시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건국대 기부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6·25전쟁 때 동생들과 떨어져 홀로 피란길에 올랐다. 1961년 서울 모진동(현 화양동) 건국대 근처에 정착한 할머니는 “통일이 되면 북에 있는 동생들에게 줄 것”이라며 담배장사를 시작했다.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동생들 소식을 기다렸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할머니는 동생들 만나는 꿈을 포기하는 대신 “학생들 덕에 번 돈을 돌려주고 싶다”며 기부를 선택했다. 2015년 대학 측은 할머니 이름을 딴 ‘이순덕 장학기금’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10명이 혜택을 받았다. 대학 내 산학협동관 3층에는 ‘이순덕 기념 강의실’도 마련됐다. 이 할머니는 가족이 없어 빈소는 학교 측 직원 4명이 지켰다. 유자은 이사장과 민상기 총장 등 교직원과 학생들이 조문했다. 빈소는 서울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30일 오전 6시.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네? 취업준비 다시 하라고요?” 1년 백수생활을 거쳐 지난해 동아일보에 입사한 기자에게 다시 취업준비생이 되어 기업공채에 도전하라는 조금 황당한 미션이 떨어졌다. 특별기획 ‘청년이라 죄송합니다’ 취재팀원으로서 청년실업난을 몸소 체험하고, 눈높이에 맞춘 기사를 준비하자는 취지였다. 비(非)상경 전공, 토익 940점, 인턴 2곳(언론사), 핀란드 교환학생…. 학창 시절 내내 ‘기자 공채’만을 목표로 삼았던 기자의 스펙이다. 취업 준비카페에 접속해 보니 이 정도 스펙은 모자라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애매한 수준이었다. ‘혹시나 절박한 사람의 자리 하나를 빼앗으면 어쩌나’ 하던 생각은 기우였다. 국내 대기업 공채에 도전했지만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취업 준비기부터 구직자가 무엇을 해야 노력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지 알게 됐다. 이 탈락 경험과 구직일지를 취준생들에게 공유한다.○ D-60일…승률 높은 직군은? 본보 취재팀은 ‘11회’(본보 5월 2일자 A10면)에서 취업준비생에게 ‘SWOT분석’을 제안했다. 구직에 앞서 자신을 알아보고 적합한 직무를 찾아야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다. 기자의 장점(S)은 다양한 아르바이트, 인턴 경험. 특히 식음료 매장에서 1년 넘게 일하고, 학원과 언론사 등 대인 업무가 많은 곳에서 주로 일했다. 단점(W)은 비상경계열 졸업생에 자격증과 수상 경력이 없다는 점이다. 넣어볼 만한 직군은 영업, 마케팅뿐이었다. “경영학 전공 안 하면 넣을 회사가 없어요”라며 울상 짓던 청년들 얼굴이 스쳐갔다. 아르바이트 경력을 살리면서 영업과 마케팅을 해볼 만한 곳은 대기업 식품 관련 계열사라는 결론이 나왔다. 기자는 4월 말 공채원서를 접수하는 SPC그룹의 계열사 ‘비알코리아’를 목표로 세우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D-30일…희망고문과 팩폭 사이 언론사를 제외한 기업공채를 도전한 적이 없었기에 정보가 부족했다. 기자는 3월 말∼4월 초 각 대학에서 열리는 채용상담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인사 담당자들의 애매한 답변 탓에 머릿속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사 부스에서 마케팅 직군에 필요한 스펙 기준선을 묻자 상담직원은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특히 ‘토익(TOEIC)’에 관해선 답변이 모두 달랐다. “870점인데 부족하죠?”라고 묻는 학생에겐 “기준선만 넘으면 전혀 상관없다”고 설명하더니, 뒤이어 “990점인데 가점을 받을 수 있느냐?”는 이에겐 “플러스 요인”이라고 답했다. 무엇이 진짜였을까. 여러 캠퍼스에서 채용상담회를 진행한 △△사는 ‘학벌 프리미엄’을 설명하는 데 차이가 있었다. 서울대에선 “이 학교 학점 3.0과 지방 4.5가 같겠느냐. 학벌은 당연히 본다”고 했지만, 중하위권 대학에서 만난 같은 회사 인사 담당자는 “학벌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김모 씨(26)는 “애매한 정보로 희망고문만 한다”고 토로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측은 “채용설명회 만족도가 평균 63점(100점 만점)에 불과하다”며 “설명회에서 핵심 정보를 얻지 못한다는 불만이 반영된 결과”라고 전했다. 한 기업 인사 담당자는 “인사기밀을 모두 밝힐 수는 없지 않나”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담당자는 “공채 흥행이 곧 인사팀 실적이다. 많은 지원자를 유치하려고 하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디데이…탈락이 남긴 교훈 정보를 모았으면 자기소개서 작성에 돌입해야 한다. 분량은 3000자였다. 이를 완성하는 데 5시간 20분이 걸렸다. 전문 컨설턴트의 첨삭을 거쳐 마감기한에 맞춰 지원했지만 결국 탈락 통보를 받았다. 실제 취준생만큼 절박함이 부족한 탓인지, 정말 실력이 부족했는지 분명하게 알 길은 없었다. 무엇보다 글 쓰는 게 생업인 기자가 자소서 단계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정주헌 더빅스터디 대표는 “글 솜씨가 좋다고 자소서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게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지원하는 회사의 핵심 사업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 채용설명회는 ‘커트라인 몇 점’을 묻는 자리가 아니라, 이런 정보를 캐내는 기회의 장(場)이다. 인크루트 이종서 주임은 “같은 채용설명회에서도 준비된 정도에 따라 얻어가는 정보가 천차만별”이라며 “예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써야 하나요?” 대신 “○○사의 인재상이 정직·혁신인데 이 점을 평가하는 자기소개서 가이드라인이 있느냐?”와 같은 질문이 훨씬 영양가 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의미다. 돌이켜보니 기자는 이런 태도가 부족했다. 잠시나마 기업공채를 도전하면서 1년 전보다 더 어려워진 취업의 난관을 실감했다. ‘채용 흥행’을 위해 애매한 정보를 흘린다는 모 기업 내부자의 이야기를 들을 땐 화도 났다. “차라리 팩트폭력(냉정하게 사실을 말해서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을 해달라”던 구직자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선생님 북한에도 치킨이 있어요?” “북한에서는 어떻게 해야 도망칠 수가 있어요?” 경인교대 4학년 장광선 씨(32)는 교생실습을 갈 때마다 초등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마주한다. 담임선생님이 “이번 교생선생님은 북한에서 오셨어요”라고 알려주면 아이들의 눈은 휘둥그레진다. 가장 최근 실습을 나간 인천 남구 경원초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 씨가 스마트폰으로 구글 지도를 열어 함북 회령시 모습을 보여주며 “북한에도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가 있고 기차역도 있단다”라고 하자 학생들은 신기한 듯 생글거렸다. 장 씨는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북한에서도 선생님을 꿈꿨다. 첫 번째 탈북한 2008년에 그는 남포사범대에서 교사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가난이 문제였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으로 갔다가 붙잡혀 1년 반 동안 수용소에 감금됐다. 매일 ‘사상 조사’를 받았다. 맞다가 정신을 잃기도 했다. 2012년 4월 두 번째로 국경을 넘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버거웠다. 교사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퇴직 후 새터민을 돕던 강정규 씨(67·여)와의 만남이 꺼져가던 희망에 다시 불을 지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강 씨는 장 씨에게 “여기서도 교사가 될 수 있다”며 교대 입학을 권유했다. 돈이 부족한 장 씨에게 매달 용돈을 줬고 겨울엔 오리털 점퍼를 사주기도 했다. 장 씨는 2014년 경인교대에 입학했다. 장 씨는 스승의 날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12일 “한국 사람에게 초등학교 교사는 평범한 꿈일지 몰라도 나 같은 탈북민에게는 ‘거대한 꿈’”이라고 말했다. 새터민이 3만 명에 이르지만 북한을 탈출한 사람 중에 초등 교사는 지금까지 단 1명이었다. 올해 2명이 임용시험에 합격해 3명으로 늘었지만 문턱은 여전히 높다. 새터민 전형을 갖춘 곳도 경인교대 한 곳뿐이다. 어렵사리 입학한 뒤에도 가시밭길은 계속됐다. 무엇보다 ‘북한에서 온 사람이 남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는 편견이 가장 두려웠다. 장 씨는 북한 말투를 고치려고 신경을 쓰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했다. 첫 지도안(案) 발표가 임박했을 때는 위궤양까지 앓았다. 장 씨는 이제 두려움을 극복하고 교사의 길에 ‘한 걸음’만 남겨뒀다. 장 씨는 “‘북한에서 온 사람이 교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들 하는데 북한이 싫어서 온 사람을 왜 걱정하는지 모르겠다”며 “양쪽의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다 접해봐서 오히려 더 객관적이고 풍부하게 가르칠 수 있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에게 가장 힘이 되는 건 교생실습 때마다 자신을 편견 없이 대해 주는 학생들이다. 그는 “남북한의 가교 역할을 하는 교사가 돼 내년 스승의 날에는 꼭 아이들에게 감사 편지를 받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과 함께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빗방울이 흩뿌리고 미세먼지까지 심한 흐린 날씨 속에도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하기 시민들의 발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세대와 성별을 막론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19대 대선 투표는 ‘질서정연하지만 축제처럼 즐거운’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 유권자들 밝은 표정으로 한 표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이 넘는 1107만 명(26.06%)이 사전에 투표한 덕분인지 9일 오전 전국 투표소는 2012년 18대 대선보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국민들의 후보 선택 기준은 다양했다.>> 나연주 씨(30·여)는 “돈없고 힘없는 근로자들도 같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줄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했다. 팔순의 노모를 모시고 온 최영택 씨(63)는 “모든 사람이 꿈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반증하듯 온라인에는 투표 관련 인증사진이 40만 건 이상 올라왔다. 인증샷을 올리면 최대 500만 원을 주는 ‘국민투표로또’ 참가자 수는 90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인 부인과 투표장을 찾은 호주인 피터 태넌트 씨(40)는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잘 살게 해주는 통합대통령이 나오면 좋겠다”고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들도 적극적으로 민주주의 축제에 참가했다.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초교에서 봉사활동을 한 중학생 홍선표 군(14)은 “어른들이 투표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며 “미래에 투표권이 주어지면 빠지지 않고 참여하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한국YMCA전국연맹이 주축이 된 ‘청소년이 직접 뽑는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운동본부’는 만 18세 이하를 대상으로 ‘청소년 모의 대선’을 진행했다.● ‘동명이인’ 투표 등 곳곳에서 해프닝 황당한 해프닝도 곳곳에서 발생했다. 울산시 북구 양정동 제2투표소에서 40대 여성이 투표용지를 촬영하자 선거사무원들이 즉시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이 여성이 사진을 지우고 용지를 기표소 밖으로 들고 나오는 과정에서 투표용지가 다른 유권자와 선거사무원들에게 노출됐고 결국 해당 표는 무효 처리됐다. 동명이인(同名異人) 중 한 1명이 투표소를 착각해 다른 사람의 투표소에서 투표하는 일도 있었다. 나중에 투표소를 찾은 시민 A 씨(58)가 투표사무원에 항의하면서 이 사실이 밝혀졌다. 부산시 부산진구 전포5동 제5투표소에서는 이모 씨(76)가 김모 씨(79·여)에게 투표 방법을 설명하겠다며 기표소에 데리고 들어간 뒤 자신이 표를 찍었다. 의정부시 송산1동 제1투표소에서는 시어머니의 투표용지를 찢은 며느리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며느리 B 씨(50)는 선거 시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아 기표를 제대로 못했다며 시어머니의 기표용지를 훼손했다. 인터넷 카페 ‘중고나라’에는 투표용지를 150만 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오후 8시 투표가 종료되자 전국 각 지역에 설치된 개표소에서는 각 지역 선관위원장이 개표를 선언하고 본격적인 작업이 이뤄졌다. 개표참관인들이 스마트폰을 사진을 찍으며 꼼꼼하게 봉인 상태를 확인하고 투표함을 개봉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초등학교 체육관에는 한국 개표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남미의 선거 담당자 11명이 방문하기도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2년 전과 지난해에 ‘내년 어버이날에 취업 기념 선물을 드려야지’ 다짐했는데, 올해도 똑같네요.” ‘취업 삼수생’ 김모 씨(26·여)는 며칠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1만4900원짜리 ‘어버이날 효도 카네이션 바구니’를 주문했다. 부모님이 보내준 한 달 용돈 50만 원에서 생활비를 절약해 산 것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아끼겠다며 ‘특가’로 싸게 나온 것을 골랐다. 생활비가 떨어져 지난달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못했기에 어버이날만큼은 꼭 챙기겠다고 다짐했었다. 취업하면 첫 월급으로 사드리려고 점찍어 놓은 안마기가 눈에 밟혔지만 올해도 내년 어버이날을 기약하는 데 그쳤다. 김 씨는 “면목이 없어 카네이션도 직접 달아드리지 못하고 택배로 보냈다”며 “엄마가 보내준 용돈으로 엄마 선물을 사는 내 모습을 보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모습은 ‘취업 장수생’ 사이에서 흔한 일이다. 2년 넘게 구직 활동 중인 최모 씨(26·여)는 3월 말부터 두 달간 서울 광진구의 한 중학교에서 단기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최 씨는 2년간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용돈을 받아 생활해 왔지만 매번 불합격했다. 그는 올해 초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진 모습을 보고 결국 임용고시 준비를 잠시 접었다. 그리고 단기 기간제 교사 자리를 찾아 나섰다. 중고교 30곳에 지원서를 넣고 떨어지기를 반복한 끝에 갑자기 2개월 병가를 낸 교사 자리를 겨우 구했다. 최 씨는 두 달 동안 돈을 벌어 어버이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연극 공연도 보여드렸다. 최 씨는 “직접 번 돈으로 용돈을 드리자 부모님도 뿌듯해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손 벌릴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며 “다음 어버이날엔 꼭 취업에 성공해서 효도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어버이날 선물을 위해 청년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구직 기간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취업이 가장 큰 선물인 것은 알지만 기약이 없으니 당장 작은 선물이라도 하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어버이날을 맞아 대학생 972명에게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에 대해 물어본 결과 ‘취업’이라는 응답이 65.5%로 1위를 차지했다. 취업이 최고의 효도라는 응답은 9년 연속 1위였다. 2위는 ‘부모님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61.5%), 3위는 ‘내 몸이 건강한 것’(38.2%) 순이었다. 현실이 나아질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청년들의 좌절감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통계청이 6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한 번도 취업해 본 적이 없는 청년(20∼39세)은 9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1999년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뒤 가장 높은 수치다. 취업 재수생, 삼수생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 세대가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고, 이 때문에 부모 세대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청년들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작은 선물’이라도 부모에게 돌려주고 싶은 것”이라고 해석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고추스펙.’ 모르는 사람들끼리는 맨정신으론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이 단어를 계속 쏟아내야만 하는 난상토론이 15일 동아일보 사옥에서 벌어졌다. 남자 4명, 여자 4명 모두 취업을 앞두고 있거나 연거푸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 이들은 복면을 쓰고 ‘고추’ ‘고추스펙’을 연발하며 난상토론을 시작했다. “고추를 차라리 페퍼(pepper)라고 하면 안 되나요?” 수줍게 운을 뗀 남녀 참가자들은 점점 격정적인 발언을 쏟아내더니 2시간이 넘도록 토론을 이어갔다. ○ 1라운드 “고추스펙 존재하나?” 대학에서 페미니스트 운동을 한다는 여자 1호가 포문을 열었다. 얼마 전 서류전형에서 또 탈락한 여자 선배가 술을 마시다가 “얘들아, 요새는 고추도 스펙이다”라고 푸념했다고. 이제 갓 취업준비생이 된 그녀는 “불안하다”고 말했다. 바로 맞은편 남자 1호가 “절대 제 의견은 아니에요”라는 말과 함께 받아쳤다. “향우회에서 만난 증권사 임원이 그러더군요. 육아휴직이 부담된대요.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남자보다 느리고…. 직장생활을 학점으로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자 갑자기 욕설이 튀어나왔다. 여자 1호의 반격. “개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여자 2호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육아를 여성의 전유물로 보는 태도가 우습네요. 여성은 모두 ‘애 낳는 생명체’인가요? 같은 여성이어도 난임, 레즈비언, 딩크족 등 상황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존재해요. 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아요. 그런데 생물학적인 이유 때문에 기피한다고요?” 올해 초 취업포털 커리어에서 인사담당자 34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채용 시 여성보다 남성 지원자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152명(44.4%)이었다. 그 이유로 꼽은 것 중 1위는 여성의 출산과 육아(62.5%)였다. 여자가 일을 못하기 때문에 기피한다는 응답은 5.9%에 불과했다.○ “납득이 안 돼, 납득이” 남자 2호가 손을 들었다. “고추스펙 유무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죠. 누구나 인정하잖아요? 그럼 이유부터 따져봐야죠. 납득할 만한 이유가 맞는지….” 여자 3호도 거들었다. “조직문화에 남자가 적응을 잘한다고요? 성적 농담에 눈감고, 이치에 맞지 않는 명령을 따르는 게 정상인가요?” 현재 인턴십을 하고 있는 그는 “상관이 사적인 일을 맡겨 거절했더니 남성 동료가 불러 ‘군대 다녀왔으면 알 텐데, 그럴 때 싫다고 하는 거 아니다’라고 훈계하더라”고 말했다. 여학생이 많은 학과에 다닌다는 남자 3호는 ‘고추스펙’ 문제의 핵심 원인이 육아휴직이라고 꼽았다. “정부가 아무리 돈을 줘도 기업의 손해를 전부 보전하지 못해요. 결국 ‘여성 채용=더 낮은 생산성’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수밖에 없죠.” 실제 인사담당자들은 출산과 육아휴직이 큰 부담이라고 입을 모은다. 26일 취업포털 사람인이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사담당자 1006명 중 84.5%는 ‘출산 및 육아휴직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대체인력 비용이 발생하고, 업무에 차질이 발생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여성 참가자들은 반박했다. “황당하네요. 우리 지금 주 5일 근무를 당연히 하고 있죠? 처음 도입될 때만 해도 주 6일 일하다가 하루만 더 쉬어도 기업이 망한다고 난리였어요.” “어휴, 개저씨(개+아저씨).”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졌다. ○ 여성고용할당제 답 될까? 한동안 말이 없던 남자 4호가 말했다. “여성고용할당제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제 수단을 동원하면 해결될까요?” 그는 최근 신입사원의 40% 이상을 여성으로 뽑는다는 대기업 L사를 예로 들었다. 남자 2호가 대꾸했다. “지금까지 남성들은 ‘여성 차별’의 콩고물을 얻어먹던 존재예요.(웃음) 그런데 그런 변화에 동조할까요? 안 될 것 같은데….” 여자 4호가 팔짱을 낀 채 맞받아쳤다. “할당제는 우리도 반대해요. 몇 %를 할당해줄 건데요? 30%? 만일 여성들 능력이 뛰어나 공정한 경쟁에서 50%를 차지할 수 있다고 한다면 20%는 할당제 때문에 탈락하게 되잖아요. 적선하듯 일자리를 나눠주는 건 싫어요.” 전문가들은 할당제보다 중요한 건 채용의 투명성이라고 강조한다. 조혜련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면접위원으로 남녀 동수가 들어가거나, 응시자와 합격자 성비를 공개하는 등의 방법으로 공정한 채용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복면 대담자들은 뜨거운 논의를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아내진 못했다. “싸움처럼 끝난 거 같지만, 사실 이런 대화가 있어야 차별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요. 채용 장벽에 대한 여성들의 불만을 너무 ‘꼴페미’로 취급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남성 대 여성의 싸움이 아니잖아요.”(여자 2호) “하긴, 여성 생산성이 결혼 후 급감한다는 게 증명된 바 없죠. 기자님, 기사에 꼭 써주세요. ‘사회학자들이여, 기혼 여성의 생산성에 관한 연구 좀 열심히 해주세요’라고.”(남자 2호)김수연 sykim@donga.com·최지선 기자}

“정말 답답합니다. 미래를 향한 발전적 토론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23일 오후 열린 TV토론회 초반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토론 상황을 평가하며 ‘미래’를 언급했다. 그는 이날 미래라는 단어를 6번이나 꺼냈다. 이런 식으로 안 후보는 대선 정국에서 미래라는 단어를 200번이나 입에 올렸다. 본보가 4∼23일 5당 대선 후보의 연설과 토론회 발언, 인터뷰 내용 등 단어 약 17만 개(글자 수 약 76만 개)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 중의 한 내용이다. ‘국민’ ‘우리’ ‘대통령’ ‘대한민국’ 등은 모든 후보가 많이 언급한 단어였다. 하지만 이런 공통 단어를 제외하면 각 후보가 강조하려는 단어들의 차이가 분명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일자리’(252회) ‘경제’(205회) ‘산업’(110회) 등 정책과 관련한 단어를 자주 말했다. 배영 숭실대 교수(정보사회학)는 “집권 가능성이 높다는 평을 받고 있는 만큼 정부의 의미와 역할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이념 논쟁으로 가면 불리한 구도가 벌어질 수 있으니 정책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권교체’라는 단어도 170회나 꺼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제1야당이 가진 프리미엄을 적극 활용하려는 것”이라며 “대중의 ‘정권 심판’ 심리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후보가 미래를 강조하는 것에 전문가들은 “과거와 미래라는 프레임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했다. 윤 센터장은 “본인은 미래고 다른 후보는 과거라는 프레임을 계속해서 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과거와 미래라는 구도가 구축되면 문 후보에 비해 자신을 ‘미래 세력’으로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육’(150회)이라는 단어도 많았다.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는 건 안 후보의 주요 의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서민’(208회)이라는 단어를 유독 강조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스스로를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로 설명하며 중산층과 서민을 챙기겠다는 점을 앞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좌파’(233회) ‘노조’(143회) 등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념적 대립 구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보수’(167회)라는 이슈를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자신이 보수의 ‘적자’임을 강조하려는 뜻으로 풀이됐다. 홍 소장은 “‘분열’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보수 주도권 싸움’을 1차적인 목표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 분야에서 ‘경제’(172회)를 자주 언급하는 등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개혁’(133회) ‘촛불’(104회)을 자주 언급했다. ‘장애인’(87회) ‘농민’(78회) ‘노동자’(61회) 등의 발언 빈도도 높았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상대적으로 지지층 외연 확대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특성을 강조하고 이념적 노선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전략”이라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최지선·위은지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가 매각됐다. 박 전 대통령은 거처를 서울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길 예정으로 알려졌다. 내곡동 이전 예정지 주변에서는 이미 경호동 신축 공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인터넷대법원 등기소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사저에 대한 등기신청이 20일 서울중앙지법 등기국에 접수됐다. 등기 목적은 소유권 이전으로 되어 있으며, 이전 대상은 땅과 건물 모두다. 아직 등기가 완료되지 않아 사저를 산 사람이 누구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구매자는 3월 말 67억5000만 원에 사저를 산 것으로 알려졌다. 취득세는 2억3000만 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대통령 측은 사저 매각 배경에 대해 “변호인 선임 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국내 최고 권위의 공예품 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에 대해 검찰이 “남이 만든 작품에다 마무리 손질만 했다”며 작가를 기소해 대작(代作)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장본인은 2015년 제45회 대한민국공예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유모 씨(30)와 그의 스승인 전북 무형문화재 옻칠장 박모 씨(54)다. 전주지검 남원지청(지청장 김영기)은 스승 박 씨가 기초 작업을 한 뒤 건넨 작품을 받아 옻칠만 한 뒤 공예전에 출품해 상을 받은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유 씨를 불구속 기소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박 씨는 같은 혐의로 약식 기소됐다. 수상작은 작품명 ‘향의 여운’이라는 목칠(나무 칠기) 공예품으로 그릇과 컵으로 구성됐다. 접시는 은행나무를 직경 40cm 크기로 가공해 갈대 문양의 나전 작업을 거쳐 옻칠로 마무리됐다. 컵 안에는 향료를 먹인 한지 꽃을 담았다. 유 씨는 상금으로 1700만 원을 받았다. 검찰은 주최 측이 제시한 ‘출품자가 직접 제작한 제품일 것’이라는 심사 기준을 유 씨가 어긴 것으로 결론 내렸다. 유 씨는 나전이 끝난 작품을 스승에게서 받아 마무리 단계인 옻칠 작업을 해 완성했지만, 수상 뒤 실사 과정에서는 심사위원에게 자신이 나전 작업을 한 것처럼 시연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당시 심사위원은 이를 보고 “제작 과정의 특성상 많은 경험과 장인정신이 요구되는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심사기준인 ‘국내외에서 이미 전시된 작품의 모방품이 아닐 것’이라는 부분도 어겼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향의 여운’이 2014년 제13회 원주시 한국옻칠공예대전에 출품됐던 ‘나전 갈대문양 접시’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것. 이 작품은 박 씨의 다른 제자 장모 씨가 제작했다. 그러나 유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원래 나전 작업과 옻칠은 분업 형태”라며 “‘향의 여운’에서 나전은 장식 정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갈대 문양은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것으로 무형문화재 전승 특성상 당연하다”고 말했다. 공예가들 사이에서는 “곪았던 문제가 터졌다”는 말이 나온다. 공동 작업자의 이름을 누락하거나 심지어 완성된 작품을 구입해 자신의 이름으로 제출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는 것. 2015년 주최 측에 이런 문제 제기를 했던 공예가 김상실 씨는 “이 같은 관행 때문에 40∼50년 작품을 해도 ‘끈 없는 사람’은 상을 못 받는다”고 주장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을 향해 출발했다가 집으로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21시간 51분. 만 하루를 거의 채우고 귀가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은 오히려 집을 나설 때보다 밝았다. 21일 오전 9시 15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에서 에쿠스 리무진 차량을 타고 검찰로 향한 박 전 대통령은 22일 오전 7시 6분 같은 차량을 이용해 돌아왔다. 서울중앙지검을 떠난 차량은 올림픽대로를 거쳐 출발 12분 만에 자택에 도착했다. 차량에서 내린 박 전 대통령의 눈은 다소 부어 있었다. 밤샘 조사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에는 치아가 보일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전날 사저를 떠날 때 입을 꾹 다문 것과 상반된 표정이었다. “만족스럽게 조사받은 것 같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날 새벽부터 사저 앞에서 자유한국당 최경환 윤상현 의원과 서청원 의원의 부인이 박 전 대통령을 기다렸다. 윤 의원은 21일 오후 8시경부터 사저 근처에 승용차를 주차시켜 놓고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동 친박’으로 불리는 세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퇴거 당일에도 사저를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은 차량에서 내리면서 이들에게 “아이고 왜 오셨느냐. 안 오셔도 되는데… 고생하시게 (뭐하러 오셨느냐)”라고 말했다. 두 의원은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서 의원 부인과 가볍게 악수하기도 했다. 취재진이 박 전 대통령을 향해 “혐의를 인정했느냐” 등의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귀가 시간이 서너 시간 늦어지면서 전날 사저 앞에 모인 지지자 중 일부는 밤을 새웠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 차량이 자택 앞 골목에 들어서자 “사랑합니다” 등이 적힌 팻말과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일부는 흐느껴 울었다. 박 전 대통령은 뒷좌석에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친박(친박근혜) 단체인 박사모 회원들은 21시간 넘게 이어진 조사에 분노했다. 박사모 인터넷 카페에는 새벽 내내 “아직도 귀가 안 하셨느냐”는 글이 계속 올라왔다. “전직 대통령을 가혹 수사했다” “백첩반상을 차려줘도 모자란데 겨우 죽을 먹이고 밤샘 조사를 했다” 같은 성토도 눈에 띄었다.최지선 aurinko@donga.com·위은지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환을 하루 앞둔 20일 서울 삼성동 사저 안팎의 긴장감은 한층 고조됐다. 사저 내부는 검찰 조사에 대비한 막바지 준비로, 외부는 지지자들의 집회로 하루 종일 긴박한 모습이었다. 지난주 세 차례 박 전 대통령 사저를 찾은 유영하 변호사(55)는 이날 오전 9시 19분 모습을 나타냈다. 잠시 뒤에는 정장현 변호사(56)가 도착했다. 정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옮긴 뒤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탄핵심판 사건 때 대통령 대리인단이었던 정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을 앞두고 선임계를 낸 변호사 9명 중 한 명이다. 두 사람은 약 6시간이 지난 오후 3시 37분 함께 나와 차량을 타고 떠났다. 이영선 경호관(39)도 낮 12시 10분 걸어서 사저 안으로 들어간 뒤 약 2시간 20분 후 나와 현장을 떠났다. 21일 오전 사저 안팎의 혼란에 대비한 경찰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사저에서 서울중앙지검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 남짓. 경찰은 박 전 대통령이 가급적 지정된 속도를 지켜 가며 이동하도록 할 계획이다. 필요하면 이동 경로에 있는 신호 간격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사저 주변의 경비 인력도 늘어난다. 사저 주변의 혼잡은 계속되고 있다. 20일 오전 10시 근처 삼릉초교 학부모와 강남녹색어머니연합 회원 등 70여 명은 아이들의 안전한 등교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녹색 점퍼를 입은 학부모들은 ‘예전처럼 공부하고 싶어요’, ‘학교 다니기가 무서워요’ 등의 손팻말을 들고 30분가량 침묵 행진을 했다. 지지자들은 여전히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박 전 대통령 지지자 50여 명은 인근 삼성2동주민센터 앞에서 탄핵 무효 집회를 열고 “박 전 대통령 구속 불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박영수 특검”이라고 외쳤다. 한편 오후 4시경에는 5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벌거벗은 채 사저 앞을 뛰어 다니며 “내가 정도령이다”라고 외치다 경찰에 제지당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권기범 kaki@donga.com·최지선 기자}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소환 일정을 통보한 1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 안팎은 이전보다 분주했다. 박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손질하는 전담 미용사 정송주 원장은 전날에 이어 또 사저를 찾았고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도 이날 사저를 방문했다. 청와대 퇴거 나흘째인 이날도 사저 주변의 혼란은 여전했다.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에서는 이날도 수십 명의 지지자가 모여 집회를 열었다. 급기야 주민들은 “더 못 참겠다”며 집단 대응에 나설 분위기다. ○ ‘집회 금지’ 추진 나선 학부모들 사저 바로 옆 서울 삼릉초등학교 학부모들은 15일 오후 학부모총회에서 사저 주변 집회 문제를 논의했다. 총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집회 개최 반대에 서명했다. 이어 학교 ‘녹색어머니회 한마음회’ 명의로 강남경찰서에 집회 금지를 요청하는 민원서를 제출했다. 삼릉초 후문은 박 전 대통령 사저와 담벼락을 맞대고 있다. 등하굣길에만 열리던 학교 후문은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복귀한 다음 날 굳게 닫혀 지금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이날 하교 시간에는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귀가하는 초등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학교 측이 등하교 안전 확보를 교육청과 경찰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사저 주변은 삼릉초에서 반경 50m 이내에 있는 ‘교육환경보호구역’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따르면 ‘집회 신고 장소가 학교 주변 지역으로서 집회 또는 시위로 학습권을 뚜렷이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제한이 가능하다. 상황을 지켜보던 학부모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건 집회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3일 출범한 ‘박근혜 지킴이 결사대’는 4개월간 집회를 이어갈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날도 사저 주변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거나 고성을 질렀다. 삼릉초 2학년생의 학부모는 “아이들은 이런 모습을 신기해하지만 부모로서는 걱정이 크다”며 “집회가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근처 주민과 직장인들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든 모습이다. 사저 맞은편 주택에 사는 고교생 김모 양(16)은 “그제는 오전 5시에 한 여자가 괴성을 질러 잠에서 깼다”며 “학업 때문에 예민한데 불안하고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시 40분경엔 사저 인근 주유소 앞에 걸려 있던 박 전 대통령 환영 현수막 2개를 인근 회사원 A 씨(31) 등 2명이 칼로 끊어 입건됐다. 삼성2파출소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돌아온 12일에는 민원전화가 수십 통 걸려왔다”며 “조금 줄었지만 이후에도 매일 민원신고가 쏟아진다”고 말했다.○ 이틀째 사저 찾은 전담 미용사 박 전 대통령의 전담 미용사인 정 원장이 이틀 연속 사저를 방문했다. 전날처럼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동생과 함께 왔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을 때도 매일 오전 정 원장으로부터 머리 손질을 받았다. 하지만 이날도 박 전 대통령이 외출하려는 듯한 움직임은 없었다. 오후 1시 10분경에는 박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고 있는 유 변호사가 사저를 찾았다. 유 변호사는 취재진 질문에 일절 응하지 않은 채 곧장 사저로 들어갔다. 그는 약 2시간 10분이 지난 뒤 사저를 빠져나왔다. 유 변호사는 이날 오전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의 소환일을 21일로 통보하면서 관련 내용과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박 전 대통령과 상의한 것으로 보인다. 최지연 lima@donga.com·최지선·구특교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살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私邸)는 아직 주인을 맞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10일 오전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내리던 시간, 사저에는 경비 경찰과 취재진만 몰려 있었다. 오후 들어 박 전 대통령이 곧바로 청와대에서 나올 수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면서 사저 주변에 긴장감이 돌았다. 특히 청와대 차량들이 속속 사저에 도착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금방이라도 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오후 2시 55분경 짐을 실은 스타렉스 차량 등 중대형 승용차 두 대가 사저 앞에서 멈췄다. 취재진을 의식한 듯 사저 입구에 차량을 바짝 붙였고 경찰은 취재진을 막아섰다. 차량에서 내린 남성 2명은 상자 2, 3개와 사다리 등을 내려 사저 안으로 빠르게 옮겼다. 이후 사저 입구 바로 옆 삼릉초등학교 후문으로 차를 옮긴 뒤 캐리어 등 커다란 짐 가방 5, 6개를 갖고 사저로 들어갔다. 일부 남성은 공구 상자로 보이는 가방을 들고 들어가 집안 곳곳을 점검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2013년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23년간 살았다. 1983년 지어져 곳곳이 노후됐고 4년가량 방치돼 사람이 바로 들어가 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대통령총무비서관실과 경호실이 사저를 찾아 점검한 결과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보일러도 고장 난 상태였다. 집 내부 시설을 수리하는 데 며칠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저 주변의 한 보일러 업체 관계자는 “3, 4년 전 대통령 사저의 보일러를 한 번 수리한 적이 있는데 그 후로는 손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분주하게 사저를 오간 사람들은 대통령경호실 소속 직원 등 14명. 이들은 배달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하며 밤늦게까지 점검과 수리를 계속했다.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오면 경호원들이 24시간 교대 근무를 해야 한다. 그러나 사저 옆에 있어야 할 경호동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대통령경호실은 주변 건물을 서둘러 임차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까지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파면 후 거처에 대해 “아무런 지시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탄핵 인용을 감안한 사저 복귀 문제를 박 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웃 주민들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안타까워했다. 이곳에서 20년을 살았다는 노모 씨(70·여)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으며 좋은 모습으로 돌아올 걸 기대했는데 이렇게 임기도 마치기 전에 안 좋은 모습으로 돌아온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후 늦게부터는 태극기를 든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 20여 명이 사저 앞에 모여 “좌파 놈들, 방송들 다 믿을 수 없다. 이렇게 (박 전 대통령이) 돌아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최지연 lima@donga.com·최지선 기자}
필리핀에서 성매매 혐의로 체포돼 조사받는 장면이 6일 현지 언론에 의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공개된 한국인 중 일부가 국내 한 공기업 직원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해당 지역에 위치한 식품업체 대표 등도 함께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본보 취재 결과 4일(현지 시간) 필리핀 세부의 한 빌라에서 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한국인 남성 9명 중 A 씨와 B 씨 등 2명은 충남의 한 공기업에 근무 중이다. A 씨는 경영 관련 부서의 차장급이고 B 씨는 과장급이다. 이들은 직장에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갔다. 해당 공기업 측도 이들이 필리핀에서 체포된 한국인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공기업 관계자는 “관련 사실을 전해 들은 뒤 곧바로 무보직 발령 조치했다”며 “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필요하면 징계심사위원회 등을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함께 적발된 7명 중 일부는 충남 지역에서 식품업체와 식당 등을 운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동행한 공기업 직원들의 여행비용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여행사 등에 따르면 3박 4일 일정의 필리핀 여행은 상품에 따라 천차만별이나 중년층이 이용하는 패키지 상품의 경우 100만∼200만 원이다. 그러나 적발된 한국인들은 현지 조사에서 접대성 여행 의혹을 부인했다. 현지 외교당국 관계자는 “원래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온 것이고 돈도 각자 냈다고 주장했다”며 “필리핀 현지에 있는 한국인 지인을 통해 여성들을 소개받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초 여행 일정상 이들은 5일 오전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뒤 무혐의로 풀려난 2명은 7일 오후 귀국했고 나머지 7명은 우리 돈으로 한 사람당 약 380만 원에 달하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필리핀 당국의 출국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빨라야 9일에나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권기범 kaki@donga.com·최지선 기자}
김정남의 딸 김솔희는 마카오에서 또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학교생활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가족이었지만 밖에서는 최대한 이런 분위기를 드러내지 않고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17일 동아일보 취재진이 접촉한 김솔희의 친구들은 “솔희는 공부와 운동 모두 잘했다”라고 전했다. 마카오에 있는 롄궈(聯國)학교에 함께 다녔던 A 군은 “솔희는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 정도로 수재였다. 배구와 농구 동아리를 할 정도로 운동도 잘했다”고 말했다. 그는 “(솔희가)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고 공부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김솔희는 2000년 무렵 김정남과 둘째 부인 이혜경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빠인 김한솔보다 5세가량 어리다. 당시는 김정남이 위조 여권을 갖고 2001년 일본을 방문했다가 적발돼 북한의 후계 구도에서 멀어지기 전이다. 이 때문에 김솔희가 북한에서 태어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솔희는 마카오에서 2011년경부터 롄궈학교를 다니다 지난해 9월 마카오성공회중학으로 전학했다. 김정남이 피살된 13일 이후 다른 가족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국제학교에 다닌 때문인지 김솔희는 한국인에게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A 군은 “솔희가 한국인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고 설명했다. 평소 한국인과의 접촉을 꺼리지 않았던 김정남과 비슷한 모습이다. 김솔희가 북한 김정일의 손녀였다는 사실은 롄궈학교에서도 꽤 알려진 내용이었다. A 군은 “2년 전 솔희에게 김정남과 김정은에 대해 묻다가 학교 교장선생님의 제지를 받았다”며 “솔희도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솔희와 함께 롄궈학교를 다닌 B 양은 “솔희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는 먼저 말하지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은 (북한 출신인 걸) 대부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솔희가 또래와 비슷한 10대 생활을 보내고 있다는 증언도 있었다. B 양은 “솔희는 애니메이션을 즐겨 봤고 가끔 화장하는 것도 좋아했다”고 전했다. 평범한 학교생활과 달리 김솔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자신의 복잡한 상황을 암시하는 듯한 글이 여럿 있었다.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어두운 오늘(The present is dark, That I have no choice but to romanticize future)” “흑과 백이 공존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Live in a world that is black and white)”라는 글이 올라 있었다.황성호 hsh0330@donga.com·최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