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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 선진국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이 일어났다.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공무원이 매뉴얼 핑계를 대 비난 여론이 들끓어 오르고 있다. 지난해 7월 도치기(회木) 현 우쓰노미야(宇都宮) 시에 사는 야마구치(山口) 씨 부부는 출장을 떠나며 생후 9개월 된 딸 에미리(愛美利)를 인근 숙박형 보육시설에 사흘간 맡겼다. 에미리는 보육시설에 온 직후부터 설사를 했고 이틀째에는 38도 이상 고열이 났다. 부모가 데리러 갔을 때는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시설 측은 에미리의 고열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고 의사도 부르지 않았다. 실의에 빠진 야마구치 씨 부부에게 며칠 뒤 사진 몇 장이 배달됐다. 발신자는 문제의 보육시설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사진 속의 아이들은 끈으로 묶인 채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부부는 사진에 나온 아이 중 한 명의 부모에게 연락해 실제 그 보육시설에 애를 맡겼는지 확인했다. 사실이었다. 그 후 다른 부모들의 증언도 잇달아 나왔다. 한 아이의 부모는 보육시설에 다녀온 아이의 손톱이 빠졌다며 그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또 다른 아이의 할머니는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마치 동물원을 보는 느낌이었다. (유아들은) 모두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고 울어도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쓰노미야 시는 에미리가 숨지기 두 달 전에 ‘아이들이 끈으로 묶여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있다’는 보육시설 내부자의 고발장을 접수했다. 시 공무원은 보육시설 측에 “현장 감독 하러 간다”고 미리 연락하고 현장을 방문했다. 그러곤 “아무 문제 없다”고 결론지었다. 야마구치 씨 부부는 보육시설 경영진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고소했고, 시 공무원에게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달 11일 우쓰노미야 지방재판소에서 열린 1차 구두 변론에서 시 측은 “매뉴얼에 따라 사전 통보를 했다. 강제로 조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지도감독은 권한이고 의무는 아니다”라고 변론했다. 그러자 비난 여론이 폭발했다. 인터넷에는 아이들이 끈으로 묶여 있는 사진이 퍼졌다. 18일 인터넷 블로그들에는 ‘공무원은 불필요한 것에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공무원은 그런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보육 행정의 구조적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문제의 보육시설은 일본 정부가 정한 설치기준을 맞추지 못한 비(非)인가 보육시설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227만 명의 어린이가 인가 보육시설에, 20만 명은 비인가 보육시설에 다니고 있다. 부모들은 모두 인가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싶지만 빈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비인가 보육시설을 이용한다. 메이세이(明星)대 인문학부 복지실천학과 가키우치 구니미쓰(垣內國光) 교수는 18일 보도된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린이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끈으로 묶었다니 이런 학대가 어디 있느냐”고 지적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최근 일본 우익들이 영화 ‘언브로큰(Unbroken)’을 깎아내리며 왜곡된 역사인식을 퍼뜨리고 있다. 17일 일본의 인터넷 카페 ‘NHK 해체!’에는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가 감독한 영화 ‘언브로큰’을 평하며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내용”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 아래에는 “일본인은 (일본의 전쟁 책임을 단죄한) 도쿄재판사관에서 지금이야말로 탈피해야 한다” “앤젤리나는 조선인과 마찬가지로 피해망상 덩어리인 것 같다” 등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언브로큰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군 포로로 잡힌 육상선수 루이스 잠페리니가 겪은 실화를 담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후 올해 초 한국과 중국에도 상영됐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우익들이 강하게 반발해 아직 상영되지 않고 있다. ‘앤젤리나 졸리 반일영화를 저지하자!’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영화를 비판하는 글이 연일 올라온다. 영화에서 포로수용소의 악랄한 감시관 역으로 출연한 일본 록스타 미야비에게는 ‘매국노’라는 딱지가 붙었다.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일본인 영화감독 소다 가즈히로(想田和弘) 씨는 17일 보도된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가 독일에서 상영되지 못한다면 세계는 어떤 눈으로 보겠는가”라고 쓴소리를 했다. 한편 일본 집권 자민당의 미하라 준코(三原じゅん子) 참의원은 1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팔굉일우(八紘一宇)의 이념 아래에 세계가 하나의 가족처럼 서로 돕는 경제를 운용토록 하는 숭고한 정치적 합의문서와 같은 것을 아베 총리야말로 세계에 제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팔굉일우는 ‘천지 사방을 하나의 지붕으로 덮는다’는 뜻으로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의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이 내세웠던 슬로건이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실은 미국 교과서의 수정을 요구한 데 이어 독일 교과서에도 시비를 걸고 있다. 12일 산케이신문 온라인판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독일 출판사 ‘클레트’가 펴낸 중등 교육용 역사 교과서에 ‘일본 점령지역에서 20만 명의 부녀자가 군의 매춘시설에서 매춘을 강요당했다’는 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집권 자민당 산하 위원회에서 밝혔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며 독일 출판사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역사 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는 제7장 ‘민주주의와 독재의 갈림길에서 유럽과 동아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아시아를 아시아인의 손에’라는 장(章)에 기술돼 있다. 교과서에는 위안부와 함께 ‘경제적 착취와 다수의 전쟁범죄 및 점령 지역에서 민중에 대한 차별 때문에 저항 운동이 거세졌다’는 해설도 함께 실려 있다. 독일은 원칙적으로 각 주가 교과서 검정을 실시하고, 각 학교는 검정된 교과서를 독자적으로 선택한다. 앞서 일본 외무성은 지난해 말 미국 뉴욕에 있는 출판사 ‘맥그로힐’에 위안부 관련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외무성은 당시 ‘일본군은 14∼20세의 여성 약 20만 명을 위안소에서 일을 시키기 위해 강제로 모집, 징용했다’ ‘도망치려 했다가 살해된 위안부도 있었다’ ‘일본군은 위안부를 천황의 선물로 군대에 바쳤다’ 등의 기술을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맥그로힐은 “우리는 명백히 교과서 저자들의 저술과 연구, 표현을 지지한다”며 수정을 거부했다. 미국 역사협회 소속 역사학자, 미 국무부도 “일본의 요구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 시도를 차단했다. 일본이 미국과 독일의 역사 교과서를 잇달아 문제 삼는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국제 홍보 강화 차원이다. 아베 정권은 지난해 8월 아사히신문이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제2차 세계대전 때 제주에서 다수의 여성을 강제로 연행해 위안부로 삼았다고 증언한 인물) 관련 기사를 취소한 이후 위안부 문제에서 공세로 돌아섰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아사히신문의 오보로 일본의 이미지가 크게 상처 났다. 전략적인 대외 발신(홍보)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후 집권 자민당 내에 ‘일본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특명위원회’를 설치했고 이 위원회는 위안부 문제 관련 국제 홍보를 주도하고 있다. 일본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각종 재판 기록과 위안부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강제 동원의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총무회장을 맡고 있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76)는 자민당을 움직이는 3역(간사장 정무조사회장 총무회장) 중 한 사람이다. 11선 의원으로 당내 최대 파벌인 ‘니카이파’ 수장이기도 한 그는 일본 내에서 여야를 뛰어넘어 존경받는 정치 원로로 꼽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방일 기간(9∼10일)에 과거사 문제 해결에 대해 쓴소리를 던진 것과 관련해 일본 정치권과 언론은 애써 무관심하거나 언짢아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러나 니카이 총무회장은 총리가 떠난 다음 날인 11일 도쿄(東京) 시내에서 열린 강연에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제대로 하라’고 말했다”며 “모든 기관과 협력해 하루빨리 정상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메르켈 총리가 던진 메시지를 이어야 한다고 발언한 첫 정치인인 셈이다. 그는 현재 자민당 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이견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도 통한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7일 도쿄 지요다(千代田) 구 자민당 본부에서 그와 단독으로 만났다. 10여 일 전(지난달 12∼15일) 그가 일본전국여행업협회 회장 자격으로 일본 관광업계 인사 1400여 명을 이끌고 방한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정치인들의 책임”이라고 거듭 말했다. ―방한 기간에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살아있을 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들었다. “평균 연령 88세인 피해자들이 살아있는 동안 문제를 해결하자는 대통령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맞는 말씀’이라고 답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끝났다고 하고 한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런 대립 때문에 지금까지 정상회담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 박 대통령 말씀처럼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 계실 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우리 세대가 문제를 해결해야지 다음 세대에 짐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해법에 대해선 말을 아꼈지만 일본 정가에서는 집권 자민당의 현역 핵심 간부가 “위안부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일본 정부, 나아가 아베 총리를 향한 ‘무언(無言)의 압력’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평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말해왔는데…. “이렇게 한일 관계가 충돌해서는 일본 한국 둘 다 얻는 게 없다. 정치가는 서로 결단할 것은 결단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그는 또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을 언급하며 “산케이신문이 1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병기 전 주일 대사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됐다. “대통령이 주일 대사였던 인물을 관방장관(한국의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일본에 하나의 시그널을 주는 것이다. 현 주일 대사(유흥수 대사)도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는데 일본은 그런 인물들을 요직에 임명하는 한국을 보며 적극적으로 한국과의 외교를 전개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일의대수(一衣帶水·냇물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라는 말로 요약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9일 오전 일찍부터 일본 도쿄 아사히신문사는 외부 인사들로 붐볐다. 캐나다 우크라이나 헝가리 등의 각국 대사를 비롯해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대사관 간부 등 외교관들이 총출동했고 일본의 지식인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일반 시민들까지 합쳐 500여 명이 신문사 내 ‘하마리큐(濱離宮) 아사히홀’에 모였다. 이들은 곧이어 있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의 강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이윽고 오전 11시 20분 검은색 벤츠 승용차가 신문사 정문 앞에 섰다. 밝은 하늘색 재킷을 입은 메르켈 총리가 차에서 내려 환하게 미소를 짓자 기자들과 시민들 사이에서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긴자(銀座)중학교 2학년생 40명은 미리 준비한 독일기와 일장기를 함께 흔들었다. 메르켈 총리가 다가가 일일이 악수를 하는 모습이나 한 중학생이 “일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영어로 인사말을 건네자 독일어 대신 영어로 “생큐”라고 답하는 모습이 감동을 안겼다. 인파 속에 있던 40대 시민은 “정치인이기도 하고 물리학을 전공한 학자 출신이라고 들어 권위적이고 빈틈없는 분위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종일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악수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1층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와타나베 마사타카(渡邊雅隆) 아사히신문 사장의 안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집국이 있는 5층으로 갔다. 부장단에 둘러싸여 아사히신문이 9일자로 발행한 독일 특집판에서 독일 요리를 하는 일본 요리사 사진을 보고는 “독일 소시지를 잘 만드는 사람인 것 같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당초 메르켈 총리의 방일은 6월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준비 성격이 강한 의례적 행사여서 메르켈 총리가 아베 신조 정부를 곤혹스럽게 할 과거사 문제를 발언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이런 관측은 빗나갔다. 신문사 강연, 기자회견에 야당 대표까지 만나면서 과거사 직시는 물론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거론할 정도로 할 말을 다한 것이다. 심지어 일본인들에게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의 상처로 남아있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언급하면서 독일의 원전 폐기 정책을 소개했다. 10일 산업계 여성 지도자들과의 조찬에서는 “일본 과학계에서 활동하는 여성이 적은 것은 문제”라며 여성의 능력 발휘에 호의적이지 못한 일본 사회 분위기까지 짚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40대 중반에 독일 기독교민주당(CDU)의 당수가 되었을 때 ‘여자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남자인데 총리가 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 남자아이들이 있을 정도”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베를린에서부터 그를 수행한 외국 언론사 기자에게 메르켈 총리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매우 신중한 사람이다. 마음을 정하기가 어렵지 한번 정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또 서민적이다. 남편과 함께 슈퍼마켓에서 쇼핑하거나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독일 언론들은 “일본 정부를 비판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서도 아주 노련하게 처신했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은 무관심했다. 메르켈 총리의 발언을 상세히 보도한 곳은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 일부에 불과했으며 요미우리신문과 NHK 등 대부분 언론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작게 취급했다. 심지어 산케이신문은 11일 외무성의 한 간부의 말을 소개하면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일본의) 동맹국으로 오랜 친분이 있어 (일본 사정을) 잘 알고 있지만 유럽 각국은 한국의 로비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도해 메르켈 총리의 행동이 한국의 로비 때문이라는 뉘앙스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9일 강연장에서 총리의 연설을 직접 들은 강상중 세이가쿠인(聖學院)대 총장은 10일자 아사히신문을 통해 “동독 출신으로 2개의 체제를 살아온 메르켈 총리가 무슨 말을 할지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과거와 제대로 마주한 독일의 경험을 진솔하게 전한 총리는 일본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11일 지한파로 알려진 집권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총무회장의 발언이 주목된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도 할 말은 많지만 해결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독일 메르켈 총리도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 시대에 빨리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일본 정치권에서도 뭔가 분위기가 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메르켈 총리의 방일은 짧았지만 여운은 길었다. 일본은 과연 그가 던진 메시지에 어떻게 화답할 것인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박형준 특파원}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총무회장을 맡고 있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76)는 자민당을 움직이는 3역(간사장, 정무조사회장, 총무회장) 중 한 사람이다. 11선 의원으로 당내 최대 파벌인 ‘니카이파’ 수장이기도 한 그는 일본 내에서 여야를 뛰어 넘어 존경받는 정치 원로로 꼽힌다. 메르켈 총리가 방일(9일~10일)기간 동안 과거사문제 해결에 대해 쓴 소리를 던진 것과 관련 일본 정치권과 언론은 애써 무관심하거나 언짢아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러나 니카이 총무회장은 총리가 떠난 다음날인 11일 도쿄(東京)시내에서 열린 강연에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제대로 하라’고 말했다”며 “모든 기관과 협력해 하루빨리 정상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메르켈 총리가 던진 메시지를 이어야 한다고 발언한 첫 정치인이다. 그는 현재 자민당 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유일하게 이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7일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자민당 본부에서 그와 단독으로 만났다. 그가 일본전국여행업회장 자격으로 일본 관광업계 인사 1400여명을 이끌고 지난달 방한(지난달 12~15일)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정치인들의 책임”이라고 거듭 말했다. -지난 방한 기간 중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자리(2월13일)에서 ‘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살아있을 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들었다. “평균 연령 88세인 피해자들이 살아있는 동안 문제를 해결하자는 대통령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맞는 말씀’이라고 답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끝났다고 하고 한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런 대립 때문에 지금까지 정상회담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 박 대통령 말씀처럼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 계실 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우리 세대가 문제를 해결해야지 다음 세대에 짐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해법에 대해선 말을 아꼈지만 일본 정가에서는 집권 자민당의 현역 핵심 간부 입에서 “위안부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일본 정부, 나아가 아베 총리를 향한 ‘무언(無言)의 압력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평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말해왔는데. “이렇게 한일 관계가 충돌해서는 일본 한국 둘 다 얻는 게 없다. 정치가는 서로 결단할 것은 결단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그는 또 명예훼손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산케이신문을 언급하며 “산케이신문이 1차적으로 문제 해결 노력을 했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병기 전 주일대사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됐다. “대통령이 일본 대사였던 인물을 관방장관(한국의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일본에 대해 하나의 시그널을 주는 것이다. 현 주일 대사(유흥수 대사)도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는데 일본은 그런 인물들을 요직에 임명하는 한국을 보며 적극적으로 한국과의 외교를 전개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달 방한은 어땠나. “한국 분들의 친절한 배려로 대성공으로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여러 한국 분들이 우리의 방문을 두고 ‘최근 50년 사이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해 나도 너무 감사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일의대수(一衣帶水·겨우 냇물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라는 말로 요약했다. “일한관계는 싫다고 해서 보고 안 보고를 선택할 수 없는 운명적 관계다. 나 역시 일찍이 고교 시절 한국에서 열린 하키 선수권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아다시피 내 고향 와카야마(和歌山)는 김충선 장군(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킬 때 반기를 들고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인)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한일교류의 역사는 매우 길고 깊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도쿄=박형준 특파원lovesong@donga.com}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일본에 과거사 청산을 촉구한 데 대해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해외 지식인과 언론들도 일본에 과거사 직시를 충고하고 나섰다. 다나카 히로시(田中宏)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10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메르켈 총리의 연이은 과거사 관련 발언에 대해 “역사수정주의 경향을 보이는 아베 신조 정권을 향해 던진 경고”라고 해석했다. 그는 9일 메르켈 총리가 일왕을 예방했을 때 일왕이 올해 1월 타계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에 대해 애도를 표시한 것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했다. 다나카 교수는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은 1985년 서독 의회에서 ‘과거에 대해 눈을 감은 자는 현재도 보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천황(일왕)도 아베 총리의 우경화에 간접적으로 의견을 밝힌 것 같다”고 말했다. 쓰노다 기이치(角田義一) 전 참의원 부의장(현 변호사)도 “메르켈 총리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베 총리가 8월에 발표할 전후 70주년 담화(일명 아베 담화)에 과거 반성 표현이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폭넓게 관여해 온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메르켈 총리 방일 전에 역사 관련 발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과거 직시 발언을 한 것은 매우 고마운 일로 아베 총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반응은 아베 총리에게 비판적인 지식인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아베 총리의 안보 브레인으로 전후 70주년 담화 관련 총리 자문기구의 좌장 대리를 맡고 있는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고쿠사이(國際)대 학장은 9일 도쿄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일본은 침략전쟁을 했고, 매우 심한 일을 한 것이 분명하다. 일본의 역사 연구자에게 물으면 99%는 (침략전쟁이라고) 말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외 지식인과 언론도 아베의 역사인식 비판에 가세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데니스 핼핀 연구원은 9일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문에서 “일본 역사 수정주의의 출발점이 일본군 위안부와 난징대학살이라면 최종 목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정부를 전쟁범죄자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온라인은 9일 ‘도쿄의 메르켈, 정중하게 일침 가했다’라는 제목으로 메르켈 총리의 아사히신문 강연 내용을 상세히 전했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일본의 과거사를 세척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10일 사설에서 “일본이 반성을 거부함으로써 더욱 분쟁을 가열시키고 상시적인 역사 갈등을 조장했다. 이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일본일 것”이라고 경고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7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9일 “과거 총괄(정리)은 (전쟁 가해국과 피해국 간) 화해를 위한 전제”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의 과오를 정리할 수 있었기에 훗날 유럽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며 “독일에서는 나치가 저지른 무서운 죄악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우회적인 말로 아베 정권을 향해 과거사를 직시할 것을 주문했다. 앞서 이날 오전 아사히신문사에서 한 강연에서도 “세계는 독일 때문에 나치스 시대라는 비참한 상황을 겪었지만 이후 국제사회는 독일을 받아들여 줬다”며 “이는 독일이 과거와 제대로 마주했기(Deutschland hat sich auch der Auseinandersetzung mit seiner Vergangenheit gestellt) 때문”이라고도 했다. 독일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등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고 사죄함으로써 프랑스 폴란드 등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이룰 수 있었다는 취지의 말로 해석된다. 메르켈 총리는 또 이날 강연에서 올 1월 타계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이 1985년 서독 의회 연설에서 “(독일의 패전일인) 1945년 5월 4일은 해방의 날”이라고 말한 대목도 언급하면서 “그날은 나치스의 만행에서 해방된 날이기도 하고 2차대전의 공포에서 해방된 날이기도 하며 홀로코스트 시대에 이뤄진 문명 파괴로부터도 해방된 날이었다”고도 했다. 이어 “전쟁을 치르며 서로 적대관계였던 독일과 프랑스 관계가 2차대전 후 화해를 통해 우정의 관계로 발전했다”며 “양국이 서로 한발씩 양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해 과거사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웃 나라의 관용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메르켈 총리가 이날 일본의 양심적 언론으로 불리는 아사히신문사를 방문하고 강연한 것 자체가 일본을 향해 과거사 문제 해결을 조언하는 정치적 행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와타나베 마사타카(渡邊雅隆) 아사히신문 사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은 ‘과거에 눈감은 자, 현재에도 눈멀게 된다’는 말을 남겼다”며 “일본이 독일에서 배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박형준 특파원}
9일 전용기로 일본에 도착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박 2일의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이날 오전 도쿄(東京) 주오(中央) 구 아사히신문사를 방문해 편집국을 둘러보고 장시간 강연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정치적 메시지가 있는 행동이란 평가가 나온다. 총리는 오전 도쿄에 있는 일본과학미래관을 찾아 로봇산업의 현황을 살펴본 데 이은 두 번째 공식 일정으로 아사히신문사를 찾았다. 와타나베 마사타카(渡邊雅隆) 아사히신문 사장의 안내로 5층 편집국을 방문해 신문이 9일 발행한 독일 특집 기사를 살펴봤다. 편집국 간부들과 환담도 나눴다. 이어 신문사 내에 있는 ‘하마리큐(濱離宮)아사히홀’로 옮겨 강연을 했다. 총리의 이번 아사히신문사 방문은 독일 측의 결정이었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총리가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그 나라 대표 언론사를 파트너로 정해 강연이나 인터뷰를 한다. 일본 경영주간지인 현대비즈니스는 7일 “일본 각 매체가 강연 요청을 했으나 아사히신문이 선택됐다. ‘역사인식 문제’에서 아사히신문의 (양심적) 보도 내용을 본 결정”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내 요미우리신문에 이어 발행부수 2위인 아사히신문은 일관되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과거사를 부정하는 역사인식을 비판해왔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는 지난해 11월 아사히신문사를 향해 “아베 정권을 타도하는 것을 사시(社是)로 삼고 있다고 전 주필이 말했다고 한다”며 목소리를 높여 비판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해 8월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제2차 세계대전 때 제주에서 다수의 여성을 강제로 연행해 위안부로 삼았다고 증언) 관련 기사를 취소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우익들이 집요하게 ‘날조 신문’이라고 아사히를 공격하며 불매운동을 벌였고 테러 협박까지 했다. 메르켈 총리는 그 같은 상황을 모두 알면서 아사히신문을 파트너 언론사로 선택했다. 아베 총리와 일본 우익에게 ‘무언(無言)의 경고장’을 던진 셈이다. 한편 아사히신문사는 이날 아침 일찍부터 메르켈 총리 환영 준비로 들떠 있었다. 총리 도착 30분 전부터 “1층 정문으로 내려와 메르켈 총리의 방문을 환영해 주었으면 한다”는 사내 방송을 했다. 사원 200여 명은 총리 도착 전부터 현관 입구에 늘어섰다. 정문까지 이어지는 레드카펫도 준비했다. 편집국의 한 기자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좋은 일이 생겼다. 침체된 사내 분위기에 큰 활력이 됐다”고 말했다. 한 간부 기자는 “올해 8월 아베 담화를 앞두고 메르켈 총리가 아사히신문사에서 ‘독일은 과거와 마주했다’고 밝힌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9일 아사히신문 강연을 1871년부터 유럽을 돌며 문물과 제도를 배운 이와쿠라 사절단 얘기로 시작했다. “142년 전 오늘 이와쿠라 사절단이 베를린에 도착했다. 사절단은 일본의 세계를 향한 열린 자세, 지식욕을 대표하고 있었다. 그 전통은 이 나라(일본)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총리는 곧바로 과거사 극복에 대한 독일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일본이 가야 할 올바른 자세를 우회적으로 주문했다. 메르켈 총리와 동행해 일본을 방문한 한 독일 기자는 “메르켈 총리가 방문국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이 정도로 강한 발언을 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 “화해의 손 잊지 못해” “우리 독일인들은 많은 괴로움을 유럽과 세계에 안겼지만 세계가 독일인들을 향해 내민 화해의 손을 잊지 못한다. 당시로서는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독일연방공화국’에 국제사회가 큰 신뢰를 보낸 것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었다. 40년 후 베를린 장벽 붕괴, 동서 대립 종결, 1989년부터 1990년에 걸쳐 독일 통일에의 길이 열린 것도 역시 신뢰가 깔려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70년이 지나고 냉전으로부터 25년이 지난 오늘, 독일과 일본은 깜짝 놀랄 발전을 이뤘다. 독일과 일본은 자유롭고 열린 나라와 사회, 진보적이고 규범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질서 속에서의 책임을 져야 할 파트너 국가다.” 30여 분의 연설이 끝나자 총리는 단상에 마련된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진행자로 총리와 마주 앉은 니시무라 요이치(西村陽一) 아사히신문 편집담당 이사가 동아시아의 현재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화해를 위해 어떤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지 질문했다. 총리는 앉은 상태로 길게 답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국제사회는 독일이 아니었으면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던 나치스 시대와 홀로코스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받아들여 줬다. 우선은 독일이 과거와 제대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을 관리하고 있던 연합국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등을 통해 독일이 확실히 과거를 극복하는지를 지켜본 것도 동력이 됐다. 독일과 프랑스 간 화해도 언급하고 싶다. 두 나라를 두고 불구대천의 적, 상속된 적이라는 무서운 말도 있었으나 양국은 한발씩 양보했다. 지금은 우정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이웃나라들의 관용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독일이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자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역사적 교훈은 국민 스스로 깨쳐야 한다. (독일인인) 내가 동아시아에 조언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평화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해당국의) 노력이라고 본다.”○ “6자회담, 문제는 북한” 메르켈 총리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유효성과 한일 협조를 묻는 강상중 세이가쿠인(聖學院)대 총장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문제는 북한이지만 이 문제 역시 긴 호흡을 갖는 게 중요하다. 일한 협력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양국이 좋은 관계를 맺기를 희망한다. 독일은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과도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가치관과 테크놀로지, 기술력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관계가 더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연구하고 있다는 한 학자가 “언론의 자유가 정부에 위협이 된다고 보나”라고 질문했을 때에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언론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30년을 넘게 살았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 가족까지 끌려가지 않을까 불안에 떨며 살았다.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없으면 혁신적 상상력이 불가능해져 국가 경쟁력을 잃게 된다. 정부는 시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러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 “어릴때부터 기술 즐거움 가르쳐야” 총리는 이날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중대한 사건”이라 말하면서 독일의 원전 폐기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후쿠시마 사고는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국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원전은 극단적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독일은 2022년 마지막 원전을 없앤다.” 여성의 이공계 진출에 대해서도 “독일도 이공계에 여성이 적다. 어릴 때부터 기술의 즐거움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길과 관련해 “첫 선거가 제일 힘들다. 많은 사람이 여성으로 괜찮을까 하고 망설였겠지만 일단 내딛고 나면 그게 점점 당연한 일이 된다. 역시 전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장내에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박형준 특파원}

7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9일 “과거 총괄(정리)은 (전쟁 가해국과 피해국 간) 화해를 위한 전제”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의 과오를 정리할 수 있었기에 훗날 유럽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며 “독일에서는 나치가 저지른 무서운 죄악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우회적인 말로 아베 정권을 향해 과거사를 직시할 것을 주문했다. 앞서 이날 오전 아사히신문사에서 한 강연에서도 “세계는 독일 때문에 나치스 시대라는 비참한 상황을 겪었지만 이후 국제사회는 독일을 받아들여 줬다”며 “이는 독일이 과거와 제대로 마주했기(Deutschland hat sich auch der Auseinandersetzung mit seiner Vergangenheit gestellt) 때문”이라고도 했다. 독일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등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고 사죄함으로써 프랑스 폴란드 등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이룰 수 있었다는 취지의 말로 해석된다. 메르켈 총리는 또 이날 강연에서 올 1월 타계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이 1985년 서독 의회 연설에서 “(독일의 패전일인) 1945년 5월 4일은 해방의 날”이라고 말한 대목도 언급하면서 “그날은 나치스의 만행에서 해방된 날이기도 하고 2차대전의 공포에서 해방된 날이기도 하며 홀로코스트 시대에 이뤄진 문명 파괴로부터도 해방된 날이었다”고도 했다. 이어 “전쟁을 치르며 서로 적대관계였던 독일과 프랑스 관계가 2차대전 후 화해를 통해 우정의 관계로 발전했다”며 “양국이 서로 한발씩 양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해 과거사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웃 나라의 관용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메르켈 총리가 이날 일본의 양심적 언론으로 불리는 아사히신문사를 방문하고 강연한 것 자체가 일본을 향해 과거사 문제 해결을 조언하는 정치적 행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와타나베 마사타카(渡邊雅隆) 아사히신문 사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은 ‘과거에 눈감은 자, 현재에도 눈멀게 된다’는 말을 남겼다”며 “일본이 독일에서 배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bae2150@donga.com 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가 9, 10일 1박 2일 일정으로 7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면서 역사 청산과 관련해 일본과 정반대 행보를 보여 왔기 때문에 이번 방일 중에 그가 내놓을 메시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9일 일본군위안부 문제 보도를 주도해 오면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측과 우익들의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는 아사히신문사에서 강연도 할 예정이다. 메르켈 총리의 방일은 2008년 7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정권 때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후 7년 만으로 올해가 특히 2차 대전 종결 70년이 되는 해라는 점도 관심을 끌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방일에 앞서 7일 “(방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독일 정부 관계자는 기자단에 “이번 기회에 아베 총리와의 개인적인 신뢰 관계를 강화하고 싶다”고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예상과 달리 일본에 호의적인 코멘트”라면서 “메르켈 총리가 ‘공동의 가치관’을 지렛대로 역사 수정주의 행보를 보이는 아베 총리의 발을 묶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내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표면적인 방일 이유는 6월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준비 성격이다. 그동안 G7 회원국인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를 차례로 방문했고 일본이 마지막 방문국이다. 일본은 내년도 G7 의장국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4월 독일을 방문한 데 대한 답방 성격도 있다. 메르켈 총리는 아베 총리와 만나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우크라이나 사태 대처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본 방문을 앞두고 메르켈 총리의 골머리를 싸매게 한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 역사 인식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독일 언론들은 최근 일본의 우경화 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독일 유력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1월 26일자 ‘일본의 성노예(Japans Sexsklaven)’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의 국가주의자들이 2차 대전을 재해석하고 있다. 3월에 일본을 방문하려는 메르켈 총리가 아베에게 어떻게 역사를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확실히 말해줘야 한다”고 쐐기를 박기도 했다. 이번 메르켈 총리의 방일은 또 하나의 포석을 깔고 있다. 그동안 중국에 치우쳤던 아시아 외교에 일본에도 무게감을 실어 균형을 잡겠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2005년 취임 후 지금까지 ‘셔틀외교’ 형식으로 중국을 7차례 방문했다. 중국은 독일의 아시아 최대 무역 상대국이고, 독일 역시 중국의 유럽 최대 무역 상대국이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서 중일 갈등에 대해 “동아시아 내 지정학적 위험이 높다”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아시아 외교 다변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메르켈 총리의 방일을 일독 관계 회복 및 아베 정권의 ‘적극적 평화주의’를 홍보하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면서 자연스레 자위대의 활동 반경 확대에 대한 이해를 구하겠다는 것이다.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박형준 특파원}
일본 정부와 중국 언론 등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결코 용서할 수 없으며 강하게 비난한다. 미국 정부와 피해를 당한 리퍼트 대사에게 마음에서 나오는 위로를 드린다”고 말했다. 스가 장관은 “한국 정부에 대해 주한 일본대사관 등 일본 관련 시설에 대해서도 경비를 강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은 이 사건을 주요 뉴스로 신속하게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사건 발생부터 용의자 신병 확보, 병원 이동 등을 실시간 속보로 타전했고 NHK 아사히신문 산케이신문 인터넷판도 톱뉴스로 전했다. 특히 테러를 한 김기종 씨가 2010년 7월엔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주한 일본대사의 특별 강연 도중 콘크리트 조각을 던졌던 전력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외교사절에 대한 한국의 허술한 경비를 비판했다. NHK는 “행사장 주변에서 경찰 30명이 경비를 맡고 있었지만 관람객의 소지품 검사도 없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아사히 인터넷판은 “셔먼 차관 발언이 ‘일본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어 당국이 관련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중국 관영 런민왕(人民網)은 리퍼트 대사의 피습이 셔먼 차관 발언과 관련이 있다는 일본 언론의 분석을 소개했다. 관영 중국국제방송의 인터넷판인 궈지짜이셴(國際在線)도 사건의 경위와 수사 상황, 리퍼트 대사가 수술받은 내용 등을 상세히 전하면서 범인이 한미 연합훈련을 반대하면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을 자세히 전했다.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겪은 프랑스 등 유럽 언론도 안전하다고 알려진 서울 한복판에서 미국대사 테러가 있었다며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일간 르몽드는 “한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통일을 외치는 운동가가 서울의 중심부에서 미국대사에게 칼을 들고 테러를 가하는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BBC는 김기종 씨가 테러 직전 “남북통일을 외쳤다”고 전하면서 “한국인 가운데 소수는 주한미군이 남북통일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정부와 중국 언론 등도 이번 사건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결코 용서할 수 없으며 강하게 비난한다. 미국 정부와 피해를 당한 리퍼트 대사에게 마음에서 나오는 위로를 드린다”고 말했다. 스가 장관은 “한국 정부에 대해 주한 일본대사관 등 일본 관련 시설에 대해서도 경비를 강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이 사건을 주요뉴스로 신속하게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사건발생부터 용의자 신병확보, 병원이동 등을 실시간 속보로 타전했고 NHK 아사히신문 산케이신문 인터넷판도 톱뉴스로 전했다. 또 테러를 한 김기종 씨가 2010년 7월엔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주한 일본대사의 특별 강연 도중 콘크리트 조각을 던졌던 동일범이라는 것에 주목하며 외교사절에 대한 한국의 허술한 경비를 비판했다. NHK 방송은 “행사장 주변에 경찰 30명이 경비를 맡고 있었지만 관람객의 소지품 검사도 없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아사히 인터넷 판은 “셔면 차관 발언이 ‘일본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어 당국이 관련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중국 관영 런민왕(人民網)은 리퍼트 대사의 피습이 셔먼 차관 발언과 관련이 있다는 일본 언론의 분석을 소개했다. 관영 중국국제방송의 인터넷판인 궈지자이센(國際在線)도 사건의 경위와 수사 상황, 리퍼트 대사가 수술 받은 내용 등을 상세히 전하면서 범인이 한미 연합훈련을 반대하면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을 자세히 전했다. 지난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겪은 프랑스 등 유럽 언론들도 안전하다고 알려진 서울 한복판에서 미국 대사 테러가 있었다며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일간 르몽드는 “한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통일을 외치는 운동가가 서울의 중심부에서 미국 대사에게 칼을 들고 테러를 가하는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BBC는 김씨가 테러직전 “남북통일을 외쳤다”고 전하면서 “한국인 가운데 소수는 주한미군이 남북통일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시정연설에 이어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서 한국에 대해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데 대해 한일 외교 전문가 사이에서는 누적된 불만의 표시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한국 법원의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사법 판결, 남수단 탄약 대여 사건, 쓰시마(對馬) 섬 불상 반환 문제, 일본 수산물에 대한 한국의 수입 금지 조치 등이 겹치면서 일본의 악화된 대한(對韓) 감정이 표면화됐다는 것이다. 초점은 이번 사태의 파장이다. 특히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을 맞는 시점으로 양국 간 관계 복원이 어느 해보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달 하순에는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도 예정돼 있다. 이런 시점에 일본이 한국과의 가치관 공유를 부정하는 것은 동북아 외교 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일본은 한국을 중국과 차별화하는 개념으로 “가치관을 공유한다”고 표현해 왔기 때문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한일 관계의 출발점은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걸 부정한다는 것은 한일 협력의 기본 바탕을 흔드는 것으로 큰 문제”라고 말했다. 아베 정권이 “가치관이 다르다”는 수식으로 한일 관계 파탄의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며 우경화 흐름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전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는 “일본이 점차 외교 융통성이 없어지고 있다. 한국에 대해선 앞으로도 계속 할 말을 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고, 그런 행동은 점차 증폭될 것이다. 또 올해 발표할 아베 담화에서 분명한 자기 색깔을 내려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건이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흔들기 위한 ‘명분 쌓기’용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태도도 변수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최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의 ‘과거사 봉합’ 발언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라며 “미일 간에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고 역사 문제에 집착한다’는 시각이 공유되고 증폭되는 측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언론은 이번 사태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의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기소와 연결하는 분위기다. 아사히신문은 4일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의식 변화가 배경에 있다”며 “산케이 지국장 기소가 표현 삭제에 영향을 미쳤다”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지난해 말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전문가 세미나에 참석한 한 한국 학자는 “일본 국회의원들이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 기소와 관련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맞느냐, 언론의 자유가 있느냐’고 너무 도전적으로 질문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와 외무성이 한국에 대한 표현을 바꾼 것은 일본 상층부의 험해진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내부에서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 유력 언론 한반도 담당 논설위원은 “불만의 표시로 보면 된다. 한국과의 근본 관계에 자신이 없으면 그런 표현을 삭제할 수 없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삭제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박형준 특파원}

“여보, 빨리 짐을 싸서 후쿠시마(福島) 밖으로 떠나.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아예 일본을 떠나.” 후쿠시마 현 소마(相馬) 군 이타테(飯관) 촌에 살던 주부 간노 유미(菅野友美·29) 씨가 남편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때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당일인 2011년 3월 11일이다. 남편은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일하고 있었다. 간노 씨는 당시 한 살이던 아들 레온(麗央)을 데리고 친정 부모가 있는 후쿠시마 현 니혼마쓰(二本松) 시로 급히 피난했다. 이타테 촌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곳이다. 그나마 그녀는 운이 좋았다. 피난을 가지 않은 이웃들은 고스란히 방사성 물질에 피폭당했다. 이타테 촌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30∼50km 떨어져 있다. 일본 정부는 30km 이내 지역에 대해서만 피난 혹은 옥내 대피 지시를 내렸으나 방사성 물질은 바람을 타고 이타테 촌을 지나갔다. 약 한 달이 지나서야 일본 정부는 이타테 촌을 계획적 피난 구역으로 지정했다. 11일로 동일본 대지진 및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4주년이 된다. 사망 및 실종자는 1만8483명. 지금도 피난민이 22만9000여 명에 이른다. 일본 전역에서 이뤄지는 재기를 위한 노력이 눈물겹지만 아직도 상처는 깊다. 이타테 촌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5일 후쿠시마 역에서 동쪽으로 약 50분 동안 차를 타고 달리니 완만한 구릉지가 나왔다. 집은 드문드문 보였고 산과 논밭만 펼쳐져 있었다. 이타테 촌이었다. 농업과 축산업 종사자가 많은 이곳은 지진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이 3대가 함께 살면서 ‘가난하지만 마음은 부자’인 곳이었다. 2010년 기준 촌민들의 1인당 연간 소득은 168만 엔(약 1550만 원). 후쿠시마 현 평균(259만 엔)보다 훨씬 적지만 촌민들의 삶엔 항상 여유가 있었다. 쌀과 채소를 직접 재배하는 자급자족이 많아 돈 들어갈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공기가 깨끗해 마을 한중간에 마라톤 코스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이날 기자의 방문을 가장 처음 반긴 것은 논밭에 쌓인 검은색 대형 비닐백이었다. 백 안에는 오염토가 담겨 있다. 저장할 장소를 찾지 못해 논밭에 쌓여 있는 것이다.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자 절반 정도 깎인 산이 흉측하게 서 있었다. 오염토를 파낸 자리를 산을 깎아 낸 흙으로 덮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타테 촌은 ‘주거 제한 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낮에만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직도 매일 7000명의 인부들이 오염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주민센터 앞에 설치된 방사선량 측정기는 시간당 0.40μSv(마이크로시버트)를 나타내고 있었다. 같은 날 도쿄(東京) 신주쿠(新宿) 구는 0.04μSv였으니 10배나 높고 일반인의 인공 방사선 피폭 한계(연간 1000μSv)를 시간당으로 계산한 0.19μSv보다도 배 이상 높은 수치였다. 산등성이 낙엽 더미에 측정기를 댔더니 6.49μSv까지 치솟았다. 시민단체인 ‘후쿠시마 재생 모임’의 다오 요이치(田尾陽一) 이사장은 “바람이 불면 산에 내려앉은 방사성 물질이 흘러내려와 갑자기 수치가 높아지곤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고 전 이곳 주민은 약 6000명이었다. 90% 주민들이 승용차로 1시간 이내 거리인 후쿠시마 현 내에 피난해 있고 나머지는 현 이외 지역으로 떠났다. 미무라 사토루(三村悟) 후쿠시마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고 후 예전 가족 구성원이 다 함께 사는 가정은 44.7%에 그쳤다. 앞에서 언급한 간노 씨 가족도 사고 전 6명이 함께 살았지만 지금은 3곳으로 흩어졌다. 자신과 남편, 아들은 후쿠시마 시 임대주택에서, 시어머니는 혼자 가설 주택에서, 시할머니와 시할아버지 부부는 또 다른 가설 주택에서 살고 있다. 간노 씨는 “과거가 그립다. 이제 그런 시절이 다시는 올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현의 경우 동일본 대지진으로 1608명이 죽었다. 그 후 대지진의 간접 피해로 인한 희생자도 있어 총 1793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무라 교수는 “열악한 피난 환경, 심리적 상실감, 인간관계 붕괴 등 대지진의 2차 피해로 죽은 사람이 후쿠시마에 유독 많다”고 설명했다. 평화롭던 이타테 마을을 한꺼번에 무너뜨린 대지진의 악몽은 4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후쿠시마=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지난달 27일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 버밍햄의 한 공원에서는 페이스북에서 말다툼을 벌이던 10대 소녀 3명이 직접 만나 난투극을 벌여 14세 소녀 1명이 숨졌다. 이른바 ‘현피(온라인에서 알게 된 누리꾼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 싸우는 일)’가 빚은 참사다. 현피는 ‘현실 PK’의 줄임말이며 PK는 온라인 게임에서 다른 캐릭터를 죽이는 행위를 뜻하는 용어 ‘플레이어 킬(Player Kill)’에서 유래했다. 이 소녀 3명은 3주간 페이스북에서 이어진 심한 말다툼 끝에 직접 만나 싸우기로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싸움 과정을 녹화해 이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자고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싸움이 격화되자 현장에 있던 소녀들과 친한 19세와 17세 소년 두 명이 소녀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그 결과 키에라오나 라이스라는 14세 소녀가 숨졌고, 나머지 소녀 2명도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이들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이들의 신상과 다툼의 원인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총을 쏜 소년 가운데 한 명이 라이스와 싸우던 소녀 가운데 한 명의 남자친구라는 점만 밝혀져 10대들의 애정 문제가 살인의 원인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무서운’ 10대들 때문에 미국과 일본 사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해 1월 중순에는 일본 가나가와(神奈川) 현 가와사키(川崎) 시의 한 주택가에서 18세 고교생 A 군이 중학교 1학년 우에무라 료타(上村遼太) 군의 무릎을 꿇리고 약 10분간 때렸다. 우에무라 군이 모바일 메신저 ‘라인’에서 항상 늦게 답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우에무라 군은 지난달 20일 가와사키 시 하천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목에는 흉기에 찔린 듯한 깊은 상처가, 몸 곳곳에는 오랫동안 구타당한 흔적이 있었다. 일본 경찰은 지난달 27일 A 군을 포함한 10대 소년 3명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이들은 우에무라 군을 때리기 전부터 SNS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지난달 13일에는 미 플로리다 주 오코이에서 중고생 900여 명이 SNS를 통해 사전 모의를 한 뒤 인근 극장과 편의점을 점거한 채 총을 쏘고 물건을 훔쳤다. 불특정 다수가 SNS를 이용해 정해진 시간 및 장소에 모여 특정 행동을 한 뒤 곧바로 흩어지는 이른바 ‘플래시 몹’을 강도에 이용한 사례다. 이 사태로 미국에서는 ‘플래시 롭(플래시 몹과 강도를 뜻하는 영어 robbery의 합성어)’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전문가들은 10대 청소년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보유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작동할 수 있는 페이스북, 라인, 트위터 등 각종 소셜미디어가 10대들의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일본 고교생의 83%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다. SNS가 청소년 사이에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지만 경찰서에는 아직도 이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경찰관이 많아 범죄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요 외신이 전했다. 노다 마사토(野田正人) 리쓰메이칸(立命館)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보기술(IT) 발달로 자녀들의 실제 교우 관계 파악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아이들이 SNS에서 서로 어울리며 어른들 몰래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이를 막을 길이 없다”고 우려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올해 3·1절 기념사는 과거 2년에 비해 미래 지향적 메시지가 강조된 점이 특징이다. 올해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만큼 일본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보여 준다면 한일이 미래 동반자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인 것이다. 일본에 대한 표현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일본의 태도가 변하면 한국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상응 조치를 보여 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3·1절 기념사에서 “역사는 자기 성찰의 거울이자 희망의 미래를 여는 열쇠”라며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가는 길을 늦출 수는 없다”고 ‘실용’을 강조한 것과 대조됐다. 지난해 3·1절 기념사는 한결 강경했다. 박 대통령은 “일본이 역사를 부정할수록 궁지에 몰릴 것”이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상처는 당연히 치유받아야 한다”고 구체 사안에 대해 처음 발언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고노 담화 검증 시도까지 정면 비판했다. 3·1절 직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스위스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 처음으로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식 제기하는 등 국제 공론화 작업도 병행했다. 올해는 과거 2년의 기념사가 혼용된 형태다. 질타와 미래 비전이 모두 담겼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며 다시 한 번 일본에 적극적인 해법을 촉구했다. 또 “일본 정부의 교과서 왜곡 시도가 이웃 관계에 상처를 준다”며 교과서 문제를 처음 제기했다. 지난달 초 일본 아베 정권의 미국 역사교과서 왜곡 시도를 비판하며 미국 역사학자 19명의 집단 성명을 주도했던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역사란 편한 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5월에 있을 아베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과 8월에 나올 ‘아베 담화’에서 과거사를 얼버무려선 안 된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하지만 3·1절 기념사 중 처음으로 한일 간 교역량과 인적 교류 현황을 열거하며 “1965년 수교 이래 양국이 쌓아 온 교류 협력 성과는 놀랍다”고 평가했다. 일본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이라는 우호적 표현도 처음 썼다.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 A 씨는 “한일 정상회담이나 적어도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보여 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전직 고위 외교관 B 씨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헌법 아래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발전을 위해 공헌한 점을 평가한다는 메시지가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 태도가 비교적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가시가 있다고 지적했다. NHK는 “박 대통령이 지난해처럼 직접 아베 정권을 겨냥한 발언을 피했지만 역사 인식에 관해 일본의 움직임을 경계하는 태도를 다시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교도통신도 “전체적인 어조가 억제됐고 요구를 강화하는 자세를 보이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한편 21일경 서울에서 개최될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의에서 다룰 의제와 사전 준비를 위한 한중일 차관보급 회의가 10일경 서울에서 열린다. 외교장관회의는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회의 성격을 갖고 있다.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세손(왕위 계승 서열 2위)의 첫 방일에 일본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 4주기(3월 11일)를 앞두고 원전과 지진해일(쓰나미) 피해 지역을 찾은 그의 소탈한 모습에 감동하는 분위기다. 윌리엄 왕세손은 2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함께 원전 피해지인 후쿠시마(福島) 현 모토미야(本宮) 시의 어린이 전용 운동시설을 방문했다. 윌리엄 왕세손이 피해지 아이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대부분의 일본 신문에 실렸다. 이어 윌리엄 왕세손은 후쿠시마 현 고리야마(郡山) 시의 한 료칸(旅館·일본 전통 여관)에서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채 현지 식재료로 만든 만찬을 했다. 함께 만찬을 한 아베 총리는 “후쿠시마 식재료를 둘러싼 잘못된 소문 피해를 불식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윌리엄 왕세손은 1일 쓰나미 피해를 입었던 미야기(宮城) 현 이시노마키(石卷) 시 해안가도 찾아 헌화 후 묵념을 했다. 일본 시민들은 윌리엄 왕세손의 방문지마다 몰려가 일장기와 영국 국기를 흔들며 환영했다. 윌리엄 왕세손은 무역과 문화 교류 촉진 등을 목적으로 지난달 26일부터 1일까지 나흘간 일본을 찾았다. 1∼4일에는 중국을 방문한다. 배우자인 캐서린 세손빈은 출산을 앞둔 관계로 동행하지 않았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1999년 2월 일본의 한 민영방송은 ‘오염지의 고뇌, 농작물은 안전한가’라는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사이타마(埼玉) 현 도코로자와(所澤) 시의 채소에서 고농도의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전역의 소비자들이 도코로자와 시에서 출하된 채소를 일절 사먹지 않았다. 농가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비난의 화살을 산업폐기물 처리 회사에 집중시켰다. 폐기물 소각 때 나오는 다이옥신 함유 연기가 채소를 오염시켰다고 외쳤다. 결론적으로 그 주장은 근거 없는 억측이었다. 하지만 산업폐기물 처리 회사 이시자카(石坂)산업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주민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거래 기업도 잇달아 끊어졌다. 이시자카 노리코(石坂典子·당시 27세·여) 씨는 이시자카산업의 영업본부장이었다. 부친이 창업한 회사에 입사해 일하고 있었다. 어깨가 축 처진 부친의 모습을 본 이시자카 씨는 말했다. “아빠, 제가 이 회사를 되살릴 게요.” 반신반의하던 부친은 딸의 강한 요구에 2002년 경영권을 넘겨줬다. 30세 여성 사장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회사 상황은 ‘엉망’이었다. 누드 화보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고 저질 책들이 굴러다녔다. 종업원이 헬멧을 쓰지 않는 것은 예사였고 슬리퍼 차림으로 일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이시자카 씨는 정리, 정돈, 청소라는 ‘3원칙’을 정했다. 먼저 정리. 누드 화보 등 기업 활동에 필요 없는 것들은 철저히 버렸다. 6곳이던 휴게소도 1곳으로 통합했다. 그러자 아버지뻘 되는 사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이시자카 씨는 그런 사원들을 퇴사시켰다. 전체 인원의 40%가 회사를 떠나면서 평균 연령이 55세에서 35세로 낮아졌다. 이어 일, 제도 등을 하나하나 정돈했다. 데이터를 축적하고 매뉴얼을 만들었다. 사원의 하루 움직임과 작업 순서 등을 체계화했다. 마지막으로 청소를 강조했다. 이시자카 씨는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5시 두 차례 공장을 돌며 청소 상태를 확인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 감독 보고서’도 작성했다. 사장 취임 8년이 지나자 회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밝고 깨끗한 회사로 변해 있었다. 이시자카산업은 지난해 재단법인 일본청소협회가 주는 ‘청소대상’을 받았다. 기술력이 축적되면서 회사 경영도 안정됐다. 지난해 매출액은 41억3000만 엔(약 385억 원)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12년부터는 ‘탈(脫)폐기물 회사’를 내걸고 반딧불이와 멸종 위기의 일본 꿀벌 보호 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의 성과가 알려지자 도요타자동차 등 대기업, 장관, 지사, 대학교수, 주일 각국 대사 등이 견학을 하러 왔다. 2013년 12월 총리관저에도 초청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만났다. 이시자카 씨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경험담을 엮어 ‘절체절명 상태라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회사로 바꿀 수 있다!’(사진)는 제목의 책을 냈다. 이 책은 출간 직후 인터넷 전자서점 ‘아마존’에서 종합순위 1위에 올랐다. 발매 3일 만에 2쇄에 들어갔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