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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새로운 정치체제가 탄생했을 때 ‘민주주의’란 말은 사용된 적이 없다.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이 일어난 기원전 594년부터 기원전 480년 사이에 아테네인이 작성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글은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 사소해 보이지만 결정적일 수 있는 오류들이다. 그런데 역사는 이를 생략하고 누군가가 원하는 바에 따라 취사선택한다. 역사가가 중요하게 여긴 흐름을 따르는 거대한 역사에 대한 질문에서 이 책은 탄생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인들은 카스피해, 중앙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까지 탐사했다. 그리스인 메가스테네스의 기록에 따르면 찬드라굽타 왕실에는 인도에 체류하는 외국인을 돌보는 부서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가 서로 연결됐다는 사실을 배운 적이 없다. 각각의 문명을 엄격하게 구분해 배우면서 전체를 안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고 저자는 판단했다. 고대사의 대다수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연못가 개구리처럼 모여 살았던 지중해 연안의 역사에 불과하다.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다양한 지역을 함께 아우르며 역사를 되돌아본다. 1부는 아테네와 로마, 중국에서 기원전 6세기 정치 협의로 탄생한 거대 사회를 살폈다. 2부는 지중해, 소아시아, 중국 등에서 전쟁으로 탄생한 고대 공동체의 관계를, 3부는 종교의 도입을 통한 인간과 신의 관계를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연간 500만 명이 찾는 테이트모던을 비롯해 영국 전역 4개 공공 갤러리를 갖고 있는 ‘테이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다. 이숙경 테이트 시니어 큐레이터(49)는 2007년 보수적 영국의 언어·문화 장벽을 뛰어 넘고 이곳의 동양인 최초 큐레이터가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최연소 학예사이기도 했던 그는 학예사가 되기 전 해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국내파’. 그를 국제적 큐레이터로 이끈 것은 학문적 호기심과 새로운 경력을 위한 절실함이었다. 현재는 의 전시 개발, 연구 플랫폼인 ‘리서치 센터: 아시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 작품 구입 위원회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고 있는 이 큐레이터를 최근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의 카페에서 만났다. ●고유 분야로 해외 개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개 채용으로 학예사가 됐을 땐 저도 아는 것이 많지 않았어요. 예술학을 전공했지만 현장 경험은 없어 일을 하면서 배웠죠.” 그는 ‘시험을 잘 봐서 큐레이터가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홍익대 대학원을 다니던 중인 26살에 학예사가 되어 일을 시작했고, ‘러닝 온 더 잡(learning on the job)’이라고 그 시절을 설명했다. 그리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국내 교육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전문화된 영국과 달리 한국은 학사 과정에서 다양한 미술사를 배웁니다. 또 유럽 대륙 철학, 후기 구조주의, 페미니즘 등 학문으로 기초 지식을 쌓을 수 있었어요.” 국내 교육의 장단점이 있었지만, 한국 미술사를 좀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아쉬움만은 분명하다. “한국 미술사는 한국어와 문화를 아는 사람이 해야 충실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후학들에게 늘 한국 미술사를 전문으로 하라고 조언하는 이유에요.” 그런 이 큐레이터가 영국에 오게 된 건 1998년. 사치 갤러리가 조명한 영국의 젊은 현대 예술가인 yBa(젊은 영국 예술가들·Young British Artists) 전시를 기획하면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연수 프로그램으로 영국에 왔고, 그 때가 학예사 경력 4년 반 남짓했을 시절. 경력을 좀 더 개발하고 싶은 마음에 영국 에섹스대에서 박사 과정을 새롭게 시작했다. 그가 정착했을 당시 영국은 yBa가 조명을 받고, 현대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였다.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한국의 미술 잡지에 기고하고, 독립 큐레이터 활동도 하며 꾸준히 경력을 쌓았다. 2000년 런던에 현대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이 생기면서 미술계 지형이 바뀌고 있을 시절이다. 박사 과정을 마친 뒤인 2007년, 테이트 리버풀에서 큐레이터로 일을 시작했고 그 때도 백남준 회고전을 기획했다. 이 큐레이터처럼 해외 취업을 꿈꾸는 젊은이가 많다고 하자 그는 외국 활동이 목적이 아닌, 자신만의 분야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는 세계 미술에 관심이 많아 영국에서 일하게 됐어요. 미술을 대중에게 보일 방법을 고민하는 테이트의 공공성도 저와 잘 맞았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미술관이 아닌 상업 갤러리나 옥션에서 일할 수도 있어요. 자신의 본성을 파악하고 선도할 수 있는 분야를 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래가 지금이다 이 큐레이터는 내년 10월 17일 개막하는 대규모 회고전 ‘백남준: 미래가 지금이다(Nam June Paik: The Future is Now)’전을 맡고 있다. 2012년부터 연구를 시작한 전시는 ‘이모지’를 연상케 하는 픽토그램 등 인터넷 시대를 예견한 백남준(1932~2006)의 선구자적 성격을 조명한다. “백남준은 일본 독일 미국 그리고 한국 미술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전위성을 폭발시킨 작가입니다. 그의 세계적 궤적을 보여주기 위해 테이트모던을 포함해 유럽, 미주, 아시아 투어로 5개 미술관에서 선보일 예정이에요.” 테이트 리버풀에서 처음 백남준 회고전을 열었을 때는 일반인이 잘 모르는 작가인만큼 대중적인 부분에 초점을 뒀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기술의 발전이나 20세기 문화 변화에 대해 갖고 있던 작가의 비전을 좀 더 깊이 파고들 예정이다. “전시가 순회하면서 결국엔 그의 작품이 자신이 영향을 끼쳤던 지역을 또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 만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도 재미있는 포인트죠. 특히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백남준을 어떻게 볼 것인지 저도 무척 궁금합니다.” 그는 테이트모던 전시가 열릴 때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개인전도 열리기 때문에 기술을 활용한 과거와 현재의 두 작가를 비교해보라고 귀띔했다.●‘세계미술’ 꿈꾸는 테이트 이 큐레이터는 백남준 전시뿐 아니라 리서치 센터의 시니어 큐레이터로서 테이트미술관의 미술사와 큐레이팅의 새로운 방법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경과 지역을 뛰어 넘는 국제적 미술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결과다. “지금까지 미술사의 서술은 서유럽과 북미 중심이에요. 그런데 미술사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죠. 일본의 구타이라던가 라틴아메리카의 네오콘크레테 같은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굉장히 많은 것들이 미술사에서 제외된 것이잖아요.” 최근 테이트미술관 역시 기존의 서유럽, 북미 중심의 미술사 개념 언급을 줄이고 있는 추세다. 12년 간 준비 끝에 2016년 테이트모던의 상징이었던 화력발전소 건물 옆에 새로 문을 연 블라바트닉 빌딩은 이런 테이트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준다. 올해 초는 러시아 설치작가인 카바코프 부부, 최근에는 미국의 여성 작가인 조안 조나스를 조명했다. 20세기 미술사에서 제외된 여성, 비서구 거장의 전시가 꾸준히 열리는 셈이다. “전시를 잘 살펴보면 미니멀리즘, 포비즘이라는 규정적 단어 사용을 지양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까지의 미술사를 원점에서 되돌아보면서, 글로벌한 미술사를 다시 쓰는 작업을 테이트가 앞서서 해보겠다는 것이 제가 요즘 하는 연구의 요지입니다.” 그가 일하는 리서치 센터는 2012년 미국 앤드류 멜론 재단의 후원으로 설립됐다. 이 큐레이터는 이 때 리서치센터에 합류하면서 백남준에 대한 연구도 시작했다. 특히 아시아 파트를 담당, 체계적인 소장품 구입과 전시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구입위원회에서는 아시아와 호주 대륙을 포함한 지역의 예술 작품 구입 전략을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내년 초에 리서치센터에서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대대적인 론칭 행사가 있을 것이고 장소는 런던이 아닐 수도 있어요. 아직은 논의 중인 단계이지만 방법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좀도둑 가족의 이야기로 프랑스 칸을 사로잡은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56)이 30일 한국을 찾았다.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받은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갖고 기자회견장에 나온 고레에다 감독은 “뜻하지 않게 큰 상을 받았고 그에 힘입어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소개하게 됐다”며 “영화를 시작한 후 15년 동안 독립영화를 만드는 심정으로 일해 왔기에 꾸준히 작업한 데 대한 보답을 받는 것 같아 기쁘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26일 개봉한 고레에다 감독의 ‘어느 가족’은 할머니의 연금과 훔친 물건으로 살아가는 가족을 그렸다. 혈연관계가 아닌 각자 사연을 지닌 채 모이게 된 ‘유사 가족’을 통해 구멍 난 사회 시스템을 드러낸다. 이 때문인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칸 수상 축전을 보내지 않은 것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정부의 축하는 영화의 본질과 상관없는 문제”라며 “국회 등에서 해결할 사안이 산적한 때에 영화가 정쟁의 소재가 되는 것이 편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어느 가족’은 부모가 사망했지만 이를 신고하지 않고 연금을 계속 타다 적발돼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준 가족의 실화에서 출발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가족이 아님에도 가족으로 살 수 있는 부모 자식을 생각했을 때, 배우 기키 기린과 릴리 프랭키 외에는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각각 할머니와 아버지 역할을 맡은 두 배우는 고레에다 감독과 여러 영화를 함께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릴리 프랭키와 촬영 전 역할에 관해 손편지를 쓰고 이를 찍은 사진을 메신저로 주고받으며 논의했다”며 “그가 맡은 ‘오사무’는 인간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어려운 역할이었다”고 했다. 또 “기키 씨가 바닷가에서 소리 내지 않고 입만 벙긋거리며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장면은 현장에서 나온 애드리브”라며 “기키 씨는 핵심을 예리하게 포착해 슬쩍 꺼내놓기에 이를 잘 살리는 연출을 위해 기키 씨와 늘 진검승부를 벌이듯 일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차기작으로 이선 호크, 카트린 드뇌브, 쥘리에트 비노슈가 출연하는 영화를 작업 중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문화와 언어를 뛰어넘는 연출을 할 수 있을지가 숙제”라며 “한국에도 매력적인 배우가 많기에 지금의 작업을 발판 삼아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 배우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좀도둑 가족의 이야기로 프랑스 칸을 사로잡은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56)이 30일 한국을 찾았다.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받은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갖고 기자회견장에 나온 고레에다 감독은 “뜻하지 않게 큰 상을 받았고 그에 힘입어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소개하게 됐다”며 “영화를 시작한 후 15년 동안 독립 영화를 만드는 심정으로 일해 왔기에 꾸준히 작업한 데 대한 보답을 받는 것 같아 기쁘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26일 개봉한 고레에다 감독의 ‘어느 가족’은 할머니의 연금과 훔친 물건으로 살아가는 가족을 그렸다. 혈연관계가 아닌 각자 사연을 지닌 채 모이게 된 ‘유사 가족’을 통해 구멍 난 사회 시스템을 드러낸다. ●‘쇼타’와 ‘린’의 성장기 고레에다 감독은 “기본적으로 작품이 전부라고 생각하기에, 그것을 설명해야 한다면 작품이 미숙한 거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일하고 있다”면서도 “작품에 대해 감독이 질문을 받는 것도 귀중하다고 생각해 계속 많은 분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질문에 답하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털어 놨다. 그는 “영화를 만들 때 관객을 떠올리기보다 어떤 상대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한다. 그 상대는 영화마다 다르다”면서 “‘어느 가족’은 아이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 속 아이들인 쇼타(죠 카이리)와 유리(사사키 미유)에 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오사무(릴리 프랭키)는 영화 내내 인간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어려운 역할이다. 그리고 오사무가 성장하지 않음으로써, 쇼타가 성장하고 아버지를 앞질러 간다. 그것을 아이가 인식하면서 죄의식을 느끼기도 하고 그 변화를 아버지가 지켜보기도 한다는 점에서 슬픈 아버지상이다.” 마지막 장면을 찍으며 쇼타가 영화에서 전개되는 과정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앞으로 살아나갈 때 어떤 형태로든 그의 양식이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엔딩을 두고 어떤 분은 잔인하다, 어둡다고 말하고 밝은 빛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각각 보는 방식이 다르고 해석의 몫이지만, 저는 그런 느낌을 받으며 찍었다.” 유리는 자신을 낳은 엄마의 품으로 돌아갔기에, 부정적 요소가 제거됐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친엄마는 린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영화 첫 머리에서 유리가 아파트 난간의 틈새로 얼굴을 내밀고 밖을 보지만, 다시 집으로 왔을 때는 뭔가를 놓고 올라가 난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본다. 유리는 아마 훨씬 넓은 시야를 갖게 됐을 것이고, 이는 아주 큰 변화다.”●“키키 키린과는 늘 진검승부하며 작업” ‘어느 가족’은 부모가 사망했지만 이를 신고하지 않고 연금을 계속 타다 적발돼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준 가족의 실화에서 출발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가족이 아님에도 가족으로 살 수 있는 부모 자식을 생각했을 때, 배우 키키 키린과 릴리 프랭키 외에는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각각 할머니 하츠에와 아버지 오사무 역을 맡은 두 배우는 고레에다 감독과 여러 영화에서 일했다. 영화에서 가족 여섯 명이 함께 바닷가에 가는 장면이 있다. 물놀이를 하는 가족을 보며 하츠에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중얼거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고레에다 감독은 이 장면이 애드립이라고 했다. “첫 촬영날 바다 장면을 찍었다. 혼잣말은 대본에 없던 내용이었다. 키키 씨의 얼굴을 찍고 있었음에도 현장에서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편집실에서 입이 움직이는 걸 자세히 보니 ‘고맙습니다’라는 말한 것이었다. 그것이 영화의 크랭크인 첫 날 있었던 일이다. 이 장면이 영화 막바지에 나오도록 했다. 키키 씨는 그런 식으로 영화의 핵심을 예리하게 포착해 연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슬쩍 꺼내놓는다.” 그는 그렇게 배우가 연기한 것을 간과한다면, 아마도 키키 씨는 ‘이 연출자 별로네’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고 한다. “배우가 그렇게 꺼내놓은 것을 놓치지 않고 나도 다시 한번 받아쳐서 던져주는 연출을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키키 씨와는 그렇게 늘 진검 승부를 하고 있다. 그런 주고받는 과정이 가능한 배우가 현장에 있다는 것은 연출자로서 정말 감사하고 큰 혜택을 받은 것이다.”●일본 영화 시야 좁아질까 우려 이날 간담회에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칸 수상 축전을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고레에다 감독은 “정부의 축하는 영화의 본질과 상관없는 문제”라며 “국회 등에서 해결할 사안이 산적한 때에 영화가 정쟁의 소재가 되는 것이 편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한편 일본 영화 산업이 점점 국내 지향적이 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일본 영화 산업이 국제 사회나 해외에 작품을 소개해야겠다는 발상보다는 국내로 향해, 그 시야가 더 좁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등 정말 멋진 선배들이 있었다. 그들의 영화가 국제적 호평을 받자 그 후광에 힘입어 다른 일본의 작품까지 좋아 보이는 혜택을 입었다.” 그러나 일본 영화의 지금 같은 경향이 지속된다면 10년, 15년 뒤에는 재능 있는 인재가 넓게 소개될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만드는 사람이 자신의 시야를 좁혀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외연을 확장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국제 무대에 도전을 하고 있다는 것. 고레에다 감독은 차기작으로 에단 호크, 카트린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가 출연하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다음주 프랑스 파리로 돌아가 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 작품이 언어와 문화를 뛰어 넘어 많은 관객이 공감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는 연출을 할 수 있을지가 숙제”라고 했다. 또 “이 도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프랑스 뿐 아니라 다른 문화, 언어권에서의 작업도 가능할 것이다. 한국에도 매력적인 배우가 많기에 지금의 작업을 발판 삼아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 그 결과물을 갖고 다시 한국을 찾게 된다면 굉장한 행운일 것이다”고 말했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 ‘우울하고 무력한 세대’…. 최근 국내 영화에서 청년은 연민과 불안, 나아가 현실 도피를 꿈꾸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19일 개봉한 영화 ‘박화영’의 10대들은 온갖 욕설로 악다구니를 쓰며 “나 아직 여기 있거든!”이라고 소리 지른다. 멋지게 포장해도 모자랄 판에 불편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이환 감독(39)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이 감독은 충무로 한 극장에서 열리는 ‘관객과의 대화’에 거의 매일 참석하고 있다. 그는 “이틀 전엔 좌석이 꽉 찼는데 출연 배우의 팬이 많았다”며 “영화를 여섯 번까지 본 사람도 있는데 세 번째쯤부터 좋아하는 배우가 아닌 영화를 봐주는 것 같다”고 웃었다. 이런 주제를 택한 계기는 뭘까. 감독은 “미성숙한 사람들이 맺는 기형적 관계에서 인간의 실제 모습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인공인 고교생 ‘박화영’은 “엄마에게 버림 받은 소녀가 자신이 받지 못한 감정을 베풀며 존재를 증명하려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10대의 언어와 행동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려고 오랫동안 취재했다고 한다. 그는 “영화를 보고 ‘박화영’이 과장됐다는 의견도 있던데, 경찰서 등에서 마주한 현실은 훨씬 더 충격적”이라며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 믿지 않고 적당히 허구를 섞어야 진짜라 믿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영화 제작사 명필름의 아카데미 ‘명필름랩’에서 영화를 완성했다. ‘박화영’의 시나리오 초고를 본 심재명, 이은 대표는 “이 영화를 왜 만들려고 하냐”고 물었단다. 이 감독은 “그때 ‘관객을 내보내려고 만들었다’고 대답했더니 심 대표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 이 대표는 ‘아유, 그러면 안 되고, 관객이 봐야지’라고 했다”고 떠올렸다. 작품이 채택되자 주변에선 “이렇게 저돌적인 영화를 명필름에서?”라는 의아한 반응도 나왔다. 이 감독은 “독립영화의 제작 시스템이 열악한데 노하우와 인프라를 갖춘 명필름 덕분에 작업에 훨씬 집중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박화영’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최근 독일 뮌헨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이 감독은 “작품을 본 한 독일 배우가 피상적인 폭력에 신경 쓰지 않고 ‘가족과 부모 자식에 관한 영화’라고 있는 그대로 봐줘 인상 깊었다”고 했다. 이 감독은 현재 촬영하는 박정범 감독의 신작 ‘이 세상에 없는’에 연기자로 참여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속칭 ‘가출 팸(가출 청소년들이 가족처럼 떼거리를 이룬 것)’을 다룬 작품이라 캐릭터에 맞춰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했다. 그는 “5년째 가출 청소년 이야기를 계속하니 정말 힘들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박화영’은 개봉관도 잡기 힘든 실정이지만 누군가에겐 초석이 될 영화를 발견한다는 마음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화가 겸 평론가 박이소(1957∼2004)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26일 개막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박이소: 기록과 기억’전은 2014년 유족이 기증한 자료와 대표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증 자료는 박이소가 미국 뉴욕의 프랫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활동을 시작한 1984년경부터 작고할 때까지 노트와 드로잉, 교육자료 등 수백 점에 이른다. 작가가 직접 녹음하고 편집한 재즈 라이브러리도 있다. 전시는 작가 노트를 중심으로 연대기적으로 작가의 예술세계를 조명했다.이번 전시는 박이소가 뉴욕 브루클린에 설립한 대안 공간 ‘마이너 인저리’나 직접 만든 재즈 테이프 200여 개, 1995년부터 교수로 재직했던 삼성디자인교육원(SADI)에서 남긴 교육자료 등을 보여주는 아카이브적 성격이 강하다. 12월 16일까지. 2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도시의 화려한 외양 뒤 숨겨진 민낯을 골목은 알고 있다. 부산 초량초등학교 담장에 가면 이 학교 출신 나훈아, 이경규, 박칼린이 태어난 집을 표시한 지도가 있다. 그것을 보면 이들이 골목길에서 살았을 평범한 일상이 떠오르며 왠지 더 가깝게 느껴진다. 골목길은 이처럼 솔직한 사람들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작은 볼거리부터 골목길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오래된 건물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거제도에서 최초로 멸치어장을 개척한 집안에서 태어나 웅변대회에서 외무부 장관상을 받은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바보처럼’ 돌본 장기려 선생, 구설수에 오른 의료인이 버리고 간 병원을 탈바꿈시켜 만든 디자인 카페와 동네 터줏대감 맛집까지. 골목길은 거대한 역사와 소소한 역사를 아우른다. 1권 ‘서울편’이 조선 건국부터 대한민국정부 수립까지 골목에 담긴 우리 역사를 정리했다면, 이번 편은 근대의 중심지이자 한국 기독교의 시작이 된 5개 개항 도시를 찾았다. 부산 개항장 소통길, 인천 개항장 평화길, 광주 양림동 근대길, 전남 순천시 꽃길과 목포시 생명길이 그 주인공이다. 각 장 말미에는 간추린 골목길 이야기와 지도를 수록해 소개한 내용을 따라 골목길을 걸어볼 수 있다. 셀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순간에만 소비되고 마는 산책이 아니라 역사의 흔적을 깊이 맛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러닝타임 내내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다.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소리 나지 않게 노래를 벙긋거리다 결국 ‘댄싱 퀸’에서 어깨를 들썩인다. 2008년 개봉해 전 세계 흥행 수익 6억 달러(약 6720억 원)를 넘기고 국내 관객 457만 명이 본 영화 ‘맘마미아!’의 속편이 10년 만에 돌아왔다. 영화는 도나(메릴 스트립)가 대학을 졸업한 1979년부터 시작된다. 젊은 도나(릴리 제임스)가 번쩍이는 부츠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추는 장면부터 흥이 넘친다. 그 후 도나가 그리스의 섬으로 떠나 세 명의 남자를 만나는 사연이 전개된다. 딸 소피(어맨다 사이프리드)는 엄마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호텔 벨라 도나’를 리모델링해 문을 열기 직전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도나의 꿈에 집중하는 듯하지만 결국 한 지점으로 나아가 두 모녀를 연결한다. 바로 아이를 낳는 신비로운 과정이다. 도나는 친구도 연인도 모두 떠난 뒤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섬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출산해야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노래한다. 소피 역시 자신이 임신한 걸 확인하고 “그 어느 때보다 엄마와 가까워진 걸 느낀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감동은 정점에 달한다. 아바의 전설적인 명곡은 여전히 빛난다. 전작에 나온 곡들을 다시 활용하지만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도나의 친구 로지(줄리 월터스)와 타냐(크리스틴 버랜스키)의 코믹한 대화도 즐거움을 더한다. 두 사람은 소피에게 “너를 빛나게 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영화에서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모두가 반짝인다. 소피의 할머니로 셰어가 출연해 페르난도(앤디 가르시아)와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깜짝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바웃 타임’과 ‘러브 액츄얼리’를 연출하고 ‘노팅힐’ 각본을 쓴 리처드 커티스가 각본에 참여했다. 콜린 퍼스, 피어스 브로스넌, 스텔란 스카르스고르드 등 전작 출연진도 그대로 함께해, 전작의 로맨틱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공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그 덕분일까. 개봉 첫날부터 전 세계 25개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3일 만에 제작비 7500만 달러(약 840억 원)를 벌어들여 손익 분기점을 넘겼다. 세대를 뛰어넘는 음악과 엄마와 딸을 이어주는 이야기, 뜨거운 햇살 아래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이 국내 관객도 사로잡을지 기대된다. 8월 8일 개봉. ★★★★(★ 5개 만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00만 관객이 몰리는 초성수기 8월.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의 ‘텐트폴 영화’(높은 수익을 책임질 만한 영화)가 앞다퉈 개봉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시기에 1000만 관객을 넘은 영화는 2015년 ‘암살’ ‘베테랑’, 2016년 ‘부산행’, 지난해 ‘택시운전사’였다. 올해 승자는 어떤 작품일까. 가장 많은 주목은 단연 ‘신과 함께―인과 연’(롯데엔터테인먼트)에 쏠린다. 전편 ‘죄와 벌’의 관객(1440만 명)만으로 이미 손익분기점은 넘겼지만, 후속편이 흥행할 경우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24일 언론 시사를 통해 공개된 ‘인과 연’에서는 강림(하정우), 혜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의 1000년 전 과거가 드러났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이승과 저승,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가운데 이번에는 세 인물의 이야기까지 복잡하게 얽혀 초반부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족과 용서, 구원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건드리는 김용화 감독 특유의 연출이 폭발력을 지닌다. 1, 2편을 함께 제작했지만 편집 과정에서 수많은 블라인드 시사를 거쳐 더 많은 공감대 형성에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전편을 즐겁게 본 관객이라면 다음 편도 무난히 즐길 것으로 보여 흥행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25일 개봉한 ‘인랑’(워너브러더스코리아)도 200억 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입한 액션 대작이다. 2029년 반통일 테러단체가 등장한 한반도를 배경으로 늑대로 불린 인간병기 ‘인랑’의 활약을 그린다. ‘공각기동대’를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오시이 마모루의 원작을 각색해,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통해 제작한 강화복이나 무기가 눈길을 끈다. 공간 디자인과 영상 스타일이 뛰어난 데 반해 스토리는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해 아쉽다. 앞선 두 영화가 화려한 그래픽을 활용한 판타지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면, 다음 달 8일 개봉하는 ‘공작’(CJ엔터테인먼트)은 국내 관객에게 익숙한 장르로 승부를 건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주도한 북풍 공작 실화인 ‘흑금성 사건’을 토대로 만든 첩보물이다. 북으로 잠입한 스파이 ‘흑금성’ 역은 황정민이 맡았다. 남북 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시사적인 주제를 선호하는 관객들이 호응할지가 관건이다. 외화 시리즈도 쟁쟁하다. 25일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은 스토리가 반전을 거듭함에도 결말이 뻔히 보이지만, 톰 크루즈가 대역 없이 펼치는 액션 연기만큼은 56세라는 나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긴장감이 넘친다. 누적 관객 2000만 명을 넘은 이 시리즈의 고정 팬이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북미 애니메이션 흥행 신기록을 세운 ‘인크레더블2’는 박진감 넘치는 영상과 가족애가 돋보인다. ‘맘마미아2’(8월 8일 개봉)는 ‘맘마미아1’에 나왔던 익숙한 아바의 음악과 시원한 그리스의 풍경 속에 엄마와 딸의 사랑을 찡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83년부터 35년 동안 남북 접경지역을 기록한 사진집 ‘분단의 현장 판문점과 DMZ’(도서출판 윤진)가 휴전협정 65주년인 27일 출간된다. 오랫동안 분단에 관심을 갖고 현장을 촬영한 다큐멘터리사진작가 김녕만 씨(69)의 사진은 남북 관계가 변곡점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더욱 상징성을 갖는다. 사진집은 1부 판문점, 2부 비무장지대(DMZ)와 서해안 북방한계선(NLL), 3부 접경지역의 삶으로 구성했다. 1부에서 1992년 남북 고위급회담 수행원으로 평양에 간 남측 장교가 빙판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북측 안내장교와 손을 잡는 사진은 매우 인상적이다. 판문점을 취재하는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바라보는 북한경비병의 호기심 어린 손길도 재밌다. 최근 자주 언론에 모습을 미치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20년 전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도 당시 김 작가를 만나 1990년대 판문점 사진들을 참고했다고 한다. 2부에서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DMZ에서 사람의 발길이 사라진 뒤 피어난 자연의 민낯을 볼 수 있다. 강을 건너는 고라니와 푸른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3부에선 철조망을 눈앞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과 실향민의 애틋한 모습이 분단의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288쪽 분량인 책에는 사진 187점이 담겼다. 김 작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기록한 ‘광주 그날’, 1980, 90년대 사회상과 민주화운동을 기록한 ‘격동 20년’, 1970년대부터 40년간 촬영한 사진을 모은 ‘시대의 기억’ 등을 출간했다. 김 작가는 “이번 정전협정일을 터닝 포인트로 분단 현실이 바뀌고, 지금까지 기록한 사진들이 과거의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는 소회를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비록 ‘그랑블루 페스티벌’은 22일 막을 내렸지만 색다른 주제로 무더위를 날려 줄 여름 지역 영화제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 달 3일부터 5일까지 강원 강릉시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올해 20회째를 맞는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열린다. 공모 작품 840편 가운데 단편 23편, 장편 2편을 상영한다.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시체들의 아침’, ‘자유연기’와 전주국제영화제 수상작 ‘어른도감’ 등을 선보인다. 3일 개막식에는 변영주 감독과 배우 이상희가 사회를 맡고 밴드 ‘새소년’이 개막 공연을 펼친다. 또 영화 상영 외에도 독립영화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강연 프로그램 ‘5교시 영화수업’도 새로 마련됐다. ‘공동정범’을 함께 연출한 김일란, 이혁상 감독과 ‘걸스온탑’, ‘연애다큐’의 구교환, 이옥섭 감독이 강연자로 나선다. 한여름의 가족 피서 영화제를 자처하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도 충북 충주호 등지에서 다음 달 9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38개국 117편(중·장편 51편, 단편 66편)의 음악 영화를 상영하며, 특히 올해는 인도의 다양한 음악 영화를 만나볼 수 있다. 카슈미르 지역의 저항 음악을 다룬 ‘저항의 발라드’와 힌두스타니 전통 음악을 담은 ‘싯데슈와리’ 등이다. 개막작인 ‘아메리칸 포크’는 데이비드 하인즈 감독의 작품으로 9·11테러의 충격을 두 주인공이 포크송으로 치유하는 로드 무비. 국내 영화로는 집행위원장인 허진호 감독의 단편 ‘두 개의 빛: 릴루미노’도 공개한다. 음악 영화제인 만큼 가수 김연우와 혁오, 자이언티, 윤수일 등 40여 팀이 관객을 만나 축제의 분위기를 돋울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핑은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내가 탈 수 없는 파도에 오르려다 고꾸라지고, 좋은 기회를 나도 모르게 놓치기도 해요. 마치 영화나 인생 같죠?” 15년간 집행위원장을 맡아 이끌어 온 미장센 단편영화제를 내려놓은 이현승 영화감독(57)이 서핑에 푹 빠졌다. 그가 만든 서핑 영화제 ‘그랑블루 페스티벌’이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강원 양양군 죽도해변에서 열렸다.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에서 21일 만난 이 감독은 구릿빛 피부로 모래사장을 누비고 있었다. “서핑은 20년 전 하와이에서 처음 배웠습니다. 그 후 잊고 있다가 우연히 사진을 보고 2013년 양양에 왔어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는 서핑이 인생 같아 빠져들었고, 이곳에 정착하게 됐죠.” 죽도해변은 해안선이 오목해 크기가 아담하고, 수심도 깊지 않아 초보자도 서핑을 즐길 수 있다. 해변 인근에는 횟집 대신 수제버거, 맥주, 타코를 파는 음식점과 서핑용품 대여점이 가득했다. 양양 생활 6년 차인 이 감독이 처음 왔을 때 현지 주민들은 그를 낯설어했다. “먼저 인사하고 맥주도 함께 마시니 ‘영화감독이래’ 하며 조금씩 알아봤어요. 이곳 서퍼들이 도시락이나 커피를 내줘 지난해 첫 영화제가 열릴 수 있었습니다.” 그랑블루 페스티벌은 매일 아침 쓰레기를 줍는 ‘비치 클린’으로 시작했다. 이 감독에 따르면 이곳 서핑 가게 상인들은 평소에도 아침마다 해변 청소를 한다. 파도를 선물하는 자연을 존중하는 의미다. “2020년 올림픽에 서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을 때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서핑은 경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런 취지를 살려 그랑블루 페스티벌도 ‘물, 즐거움을 품다’를 주제로 바다와 환경보호에 관한 영화를 상영했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부터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섬을 그린 ‘키리바시의 방주’, 시인 네루다와 어부의 아들 마리오의 우정을 그린 ‘일 포스티노’까지. 아일랜드 서부 라힌치에서의 서핑을 그린 다큐멘터리 ‘비트윈 랜드 앤드 더 시’는 국내 첫 상영작이었다. 21일 오후 8시부터 시작한 영화 상영은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이어졌다. 서퍼들이 해변을 따라 일렬로 늘어서면 기업 코웨이가 바다환경보호기금을 적립하는 ‘서프보드 플래시몹’도 열렸다. 배우 전도연 오광록 박호산 이천희와 이준익 방은진 한지승 봉만대 감독 등도 찾아와 함께 어울렸다. 전도연은 가족과 함께 바다 수영을 하고 이준익 감독은 해먹에 누워 여유를 즐겼다. 지역 주민들은 영화인들이 온 줄 몰랐다가 뒤늦게 “저 배우도 왔어?” 하며 놀랐다. 이 감독은 “영화인들이 스트레스가 많다는 걸 알기에 편히 와서 힐링하길 바랐다”며 “그래서 ‘페스티벌’ 이름에 ‘필름’이란 말을 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장 화제를 모은 건 바닷가 스크린에서 깜짝 상영한 ‘시월애’였다. 2000년 개봉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건축, 감각적 화면은 물론이고 배우 이정재와 전지현의 앳된 모습에 300여 명 관객이 즐거워했다. 이정재도 참석해 “오래전 영화여서 다시 보면 어떨지 궁금하다”고 인사한 뒤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보정) 작업을 거친 ‘시월애’는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감각적 표현에 능숙한 이 감독은 최근 한국 영화가 액션이나 스릴러에 쏠려 아쉽다고 털어놨다. “최근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분노, 불안, 슬픔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회를 반영해 영화도 복수나 울분이 많았죠. 하지만 고요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를 많은 관객이 찾았다고 하니 희망이 보입니다.” 이제 ‘강원도민’인 그는 최근 제작사 ‘스튜디오 블루’를 차렸다. “젊은 사람들이 와서 정착하도록 일자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국내 최초 면 단위 제작사일 겁니다.”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묻자 그는 생계를 위해 다양한 영상물을 주로 제작할 것이라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또 모르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처럼 이현승표 ‘죽도 서핑 다이어리’가 나올지도요. 하하.”양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빨대가 바다거북의 코에 박혀 발견되고, 물고기의 몸속에서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나온다. 이런 소식들을 보며 내가 수없이 버렸을 빨대와 페트병들은 어디로 갔을까 궁금하고 걱정스럽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있다. 다만 모든 결과가 나에게 직접 돌아오지 않기에 모두가 어느 정도는 무책임한 일상을 살아오고 있었을 뿐이다. 이런 가운데 인도 오로빌, 미국 이타카, 호주 크리스털워터스, 영국 핀드혼 등 세계의 생태마을이 가입된 네트워크 단체 젠(GEN·Global Ecovillage Network)의 사례를 모은 책이 나왔다. 국내 활동가들이 번역하고 동아시아 생태마을 사례를 추가했다. 국내 사례로는 천연 비료를 생산할 수 있는 생태화장실을 사용하는 전남 고흥 ‘선애빌’, 유기농업과 교육으로 공동체를 꾸려가는 충남 홍성 ‘홍동마을’이 소개됐다. 젠 20주년에 맞춰 발간된 이 책은 이 밖에도 생태마을을 설립했거나 그 속에서 함께 생활한 사람들이 직접 쓴 글을 통해 세계 각국의 생태마을 현장을 돌아본다.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 사회, 고도로 발달한 시스템 사회에서 비현실적인 이야기일 것만 같았던 지속 가능한 공동체들의 실질적인 모습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여기자협회(회장 김균미)가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포럼 ‘남북 문화체육관광 교류, 현재와 미래’를 개최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사진)은 이날 포럼에 참석해 4월 평양에서 열린 ‘봄이 온다’ 공연의 후일담을 전했다. 도 장관은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호기심이 많고 거침없이 화통하게 이야기하는 편이었다”며 “가수 나훈아는 왜 오지 않느냐고 물어 개인 일정이 있었다고 하니 의아해하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또 북한 인사들은 남한 뉴스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한 고위급 인사가 식사 자리에서 “드루킹이 뭐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북측 요청으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노래를 부를 때도 인상적인 일이 벌어졌다. 마지막 가사 ‘남자는 다 그래’가 나오자,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와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맞아! 남자는 다 그래”라고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도 장관은 또 삼지연관현악단이 우리 노래를 10곡 이상 불러서 준비를 많이 했다는 인상도 받았다고 전했다. “오히려 우리가 준비를 많이 하지 못했고, 제안받은 5곡 중 ‘버드나무’를 소녀시대 서현이 불러 열화와 같은 반응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도 장관은 또 문체부의 남북 교류 추진 상황도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제안한 ‘가을이 왔다’ 공연은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까지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며,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대비해 남북 선수의 합동 훈련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강산 등 관광 교류에 대해서는 “대북 제재 문제가 있어 당분간은 문화 교류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88년 할리우드 영화 ‘다이하드’. 브루스 윌리스를 세계적 스타로 만든 레전드 작품으로 지금도 ‘엄지 척’ 액션영화로 회자된다. 배경은 미국 캘리포니아 35층(150m)짜리 빌딩 ‘나카토미 플라자’. 영화에선 일본계 기업의 미국 지사 본부로 묘사됐는데, 당시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던 일본의 위상이 은근히 묻어났다. 그로부터 30년 뒤. 11일 국내 개봉한 ‘스카이스크래퍼’도 초고층 빌딩이 주요 무대. 225층(1100m) 높이의 ‘더 펄’이다. 할아버지 윌리스가 아닌, 요즘 ‘잘나가는’ 드웨인 존슨의 출연 말고도 격세지감은 또 느껴진다. 장소는 홍콩으로 바뀌었고, 빌딩 역시 중국 소유. 존슨이 맡은 전직 FBI 요원 윌 소여와 그의 가족을 제외하면 상당수 캐스팅이 대부분 중국계.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할리우드는 뭐가 변한 걸까.○ 중국 완다그룹에 인수된 할리우드 ‘레전더리’ 맡은 역할의 성격도 다르다. ‘다이하드’에 등장한 일본인 경영인은 한낱 인질로 존재감이 미미했다. 하지만 ‘스카이스크래퍼’의 아시아 배우들은 비중도 크고 입체적이다. ‘더 펄’을 지은 부동산 개발자이자 윌 소여의 상사 자오룽지(친 한)와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경찰관 우(바이런 만)가 대표적. 모두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배우들. 영화 내내 광둥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눈에 띈다. 전형적인 근육 배우 존슨이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에 왜 이런 색깔이 묻어날까. 이 작품을 제작한 유명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가 이젠 중국 회사이기 때문이다. ‘다크 나이트’ ‘인터스텔라’ 등을 만든 레전더리는 2016년 중국 완다그룹에 인수됐다. 3월 개봉했던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원래 일본 만화가 원작. 그런데 1편과 달리 중국계 배우가 대거 등장하고, 미국인 박사의 서툰 중국어를 꾸짖는 장면까지 나왔다. 이렇다 보니 미국 현지에서도 ‘찰리우드’(차이나+할리우드)란 소리가 나올 정도. 하지만 ‘스카이스크래퍼’의 제작 과정을 살펴보면 더욱 입이 벌어진다. 사실 이 영화는 대부분 캐나다에서 촬영했다. 그런데 컴퓨터그래픽(CG)을 입혀 굳이 배경을 홍콩으로 바꿨다. 개봉 날짜도 미국보다 홍콩이 하루 먼저였다. ○ 깜짝 ‘세계 1위’로 올라선 중국 영화시장 ‘스카이스크래퍼’ 개봉 당시 출연배우 존슨은 “중국 영화시장은 2년 이내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다소 ‘립서비스’였겠지만 현실은 더 빨리 찾아왔다. 미국 영화매체 버라이어티는 최근 “올해 1분기(1∼3월) 중국 박스오피스 규모가 북미 시장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고 전했다. 중국은 202억 위안(약 3조4000억 원)을 벌어들여 북미의 28억9000만 달러(약 3조2000억 원)를 사상 처음으로 제쳤다. 물론 이 역전이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번 성적은 중국 박스오피스의 흥행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나 성장하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통상 중국 정부가 내놓는 예측 성장률이 15∼20%인 점을 감안하면 한시적인 성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국 극장산업의 규모는 이미 지난해 북미를 넘어섰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7 중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중국 스크린 수는 5만776개로 북미 4만4900개를 훌쩍 뛰어넘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중국이 영화산업에 대내외적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며 “미국의 콘텐츠·제작 노하우를 단박에 뛰어넘긴 어렵겠지만 ‘스카이스크래퍼’ 같은 찰리우드 영화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화와 서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랑블루 페스티벌 2018’이 19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 올해 2회째를 맞는 ‘그랑블루 페스티벌’은 서핑 마니아가 즐겨 찾는 강원 양양군 죽도해변 일대에서 즐길 수 있다. 해변에 설치한 스크린과 마을 극장 등을 이용해 서핑과 물에 관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올해는 특히 아일랜드의 서핑 다큐멘터리 영화 ‘비트윈 랜드 앤 씨’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한다. 파도가 바위를 깎아 만들어진 절벽 마을인 아일랜드 리한치를 배경으로, 서핑을 하려고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 캐나다 다큐멘터리 ‘키리바시의 방주’ ‘가자 서핑클럽’ 등도 상영한다. 서핑 강습을 들을 수 있는 그랑블루 서프 캠프와 밤샘 상영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열리는 푸드마켓도 관심거리. 그랑블루 페스티벌은 영화 ‘푸른 소금’ ‘시월애’ ‘그대 안의 블루’ 등을 연출한 이현승 영화감독이 총감독을 맡고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어, 정말 핸드폰을 갖고 다니네.” “저 축구복, 푸마 아니야?” 15일 오후 8시 경기 부천시청 야외광장.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최초로 북한 영화 공개 상영회를 열었다. 이날 대형 스크린을 통해 공개된 영화는 2016년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우수영화상을 받은 ‘우리집 이야기’. 김정은 체제하에서 만들어진 비교적 최근작이다. 그동안 북한 영화는 별도 허용 절차를 거쳐 ‘제한 상영’으로만 볼 수 있었는데, 누구나 볼 수 있는 장소에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집 이야기’는 부모를 잃은 세 남매 중 자존심 세고 공부 잘하는 15세 맏이 ‘은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부모 없이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업 성적이 떨어지지만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다 조건 없이 애정을 베푸는 이웃 언니 ‘정아’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 사회의 사랑을 깨닫고 성장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초반부는 비교적 일상적이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끼리 온 관객 약 200명이 이날 상영회를 찾았다. 스크린 앞 좌석은 물론이고 잔디밭에도 돗자리를 펴고 맥주를 마시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때로는 웃음도 터뜨리며 영화를 지켜봤다. 정아가 은정에게 “죽도록 공부해, 공부하다 죽은 사람 없어”라고 하자 폭소가 터지는가 하면 등장인물들이 서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거나, 어색한 플래시백 장면이 한국 영화와 사뭇 달라 재미있다는 듯 웃음이 나왔다. 후반부로 갈수록 ‘어버이 원수님’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체제 선전적인 내용이 나오자 허탈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은 생각보다 볼만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부천 시민인 이득규 씨(46)는 “어릴 적 동네 사람들이 아이를 함께 키웠던 기억도 나고, 초반부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더빙이어서 어색하고 기술도 완벽하지 않아 영화로서 평가하기보다는 귀엽게 봤다”고 했다. 윤은채 씨(34)는 “영화의 최대 반전이 ‘우리 집은 결국 당’이라는 메시지였다. 군대를 20년 간다거나 정아를 ‘처녀-어머니’라고 호칭하는 부분이 놀라웠다”면서도 “북한 사람들의 옷이나 음식, 집 등 일상을 엿볼 수 있어 재밌었다”고 말했다. 김미정 씨(50·여)는 “영화의 의도가 눈에 뻔히 보인다. 꽃제비라든가, 북한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많이 들어왔는데 삼남매의 집 안 환경이 깨끗하고, 서랍형 김치 냉장고가 나와 북한의 관객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느낄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번 상영은 4·27 남북 정상회담 후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 문화 교류 활동의 하나다. BIFAN 측은 올해 초 통일부의 사전 접촉 승인을 받아 최근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로부터 작품 상영 허가를 받았다.부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벽에 닿는 순간 발목이 부러진 걸 직감했죠. 그럼에도 직접 스턴트를 하는 건 관객을 위해서입니다.” ‘미션 임파서블: 폴 아웃’으로 돌아온 배우 톰 크루즈가 한국을 찾았다. 16일 서울 송파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크루즈는 대역 없이 액션을 소화한 소감을 밝혔다. 컴퓨터그래픽 없이 액션 장면을 촬영하고 싶었다는 그는 이번 영화에서 고난도 스카이다이빙과 헬기 조종을 직접 했다. 특히 70미터 높이 건물 위에서 10미터 거리를 뛰어 넘는 연기를 하다 발목 부상을 당해 6주 간 촬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부상을 당하고 직접 액션한 걸 후회하진 않았냐”는 질문에 “평생 영화를 하면서 뼈가 부러진 적은 정말 많지만 그래도 발목이 다쳤을 땐 조금 후회됐다”며 “그럼에도 스턴트 연기는 언제나 흥분되고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경험”이라고 답했다. 함께 한국을 찾은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은 헬리콥터 액션 장면을 촬영할 때 무척 긴장했다고 한다. 그는 “액션 연기는 스케일이 크건 작건 쉬운 장면이 없다”면서도 “톰은 아주 오랜 훈련을 받고 경험이 많은 프로이기 때문에 다른 변수를 걱정했지만, 헬리콥터 장면을 찍을 때 나는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고 그가 모든 것을 제어해야 했기에 정말 무서웠다”고 말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 헨리 카빌, 사이먼 페그도 이날 간담회에 참석했다. 2016년 영화 ‘스타트렉 비욘드’ 홍보로 한국을 찾아 방송 출연까지 했던 페그는 “이번에 서울에 와서 선물을 열어보고 정말 감격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님에도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줘서 벅찬 마음을 느꼈고 다시 오게 돼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25일 개봉.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어, 정말 핸드폰을 갖고 다니네”, “저 축구복, 푸마 아니야?” 15일 오후 8시 경기 부천시청 야외광장.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최초로 북한 영화 공개 상영회를 열었다. ○ 4·27 이후 첫 문화교류…‘우리집 이야기’는 최초 공개 이날 대형스크린을 통해 공개된 영화는 2016년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우수영화상을 받은 ‘우리집 이야기’. 김정은 체제 하에서 만들어진 비교적 최근작인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처음 공개됐다. 이번 상영은 4·27 남북정상회담 후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문화교류 활동으로, 별도 허용 절차를 거쳐 ‘제한 상영’으로만 볼 수 있었던 북한 영화가 누구나 볼 수 있는 장소에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BIFAN 측은 올 초 통일부의 사전 접촉 승인을 받아 최근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로부터 작품 상영 허가를 받았다. ‘우리집 이야기’는 부모를 잃은 세 남매 중 자존심 세고 공부 잘하는 15살 맏이 ‘은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부모 없이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업 성적이 떨어지지만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다, 조건 없이 애정을 베푸는 이웃 언니 ‘정아’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 사회의 사랑을 깨닫고 성장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 일상과 유머그린 초반부…간접적 생활상 드러나 영화의 초반부는 대다수 관객들의 기대와 달리 비교적 일상적이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끼리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 약 200여 명이 이날 상영회를 찾았다. 스크린 앞 좌석은 물론 잔디밭에도 돗자리를 펴고 맥주를 마시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영화를 지켜봤다. 특히 은정이 학교에서 수학 수업을 듣는 장면에서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설명하던 교사가 웃음을 유도하는 ‘북한식 유머’도 나왔다. “세 평방의 정리를 발견한 피타고라스가, 너무 좋아서 돼지 300마리를 잡아 잔치를 벌여 돼지 300마리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성립될 수 없지만 네 평방의 정리를 발견했으면 돼지 400마리를 잡지 않았을까요?” 또 세 남매가 식사를 하는 장면도 나왔는데, 은정이 동생들에게 국수를 만들어주자 막내 은철이가 “밥이나 토마토를 먹고 싶다”고 반찬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이런 동생들에게 섭섭함을 느낀 은정이 집을 뛰쳐나가자, 은철이 태연하게 “돌아 올 거야”라고 해 웃음을 유발했다. 정아가 일터에서 요리 경연대회에 나가는 장면도 등장했는데, 이 때 상품으로 1등은 ‘봄향기화장품’이, 2등은 치마 저고리, 3등에겐 학용품이 주어졌다. 은철이가 학교에서 축구하는 장면에서는 학생들이 붉은 푸마 체육복을 입은 모습도 나왔다. 정아가 은정에게 “죽도록 공부해, 공부하다 죽은 사람 없어”라고 하자 폭소가 터지는가하면 등장인물들이 서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거나, 어색한 플래시백 장면이 한국 영화와 사뭇 달라 웃음이 나왔다. 후반부로 갈수록 ‘어버이 원수님’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체제 선전적인 내용이 나오자 허탈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 관객 반응은? “예상 외로 자연스럽지만 갈수록 의도 뻔해져”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은 생각보다 볼만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부천 시민인 이득규 씨(46)는 “어릴 적 동네 사람들이 아이를 함께 키웠던 기억도 나고, 초반부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더빙이어서 어색하고 기술도 완벽하지 않아 영화로서 평가하기보다는 귀엽게 봤다”고 했다. 매번 부천영화제를 찾는다는 박수만 씨(34)는 “예상 외로 주연 배우의 연기가 자연스러웠고, 카메라 연출이 나름 다양한 시도를 해 눈길이 갔다”고 말했다. 북한 영화가 궁금해 친구들과 찾은 김미정 씨(50·여)는 “영화의 의도가 눈에 뻔히 보인다. 꽃제비라던가, 북한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많이 들어왔는데 삼남매의 집안 환경이 깨끗하고, 서랍형 김치 냉장고가 나와 북한 관객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윤은채 씨(34)는 “영화의 최대 반전이 ‘우리집은 결국 당’이라는 메시지였다. 군대를 20년 간다거나 ‘정아’를 ‘처녀-어머니’라고 호칭하는 부분이 놀라웠다”면서도 “북한 사람들의 옷이나 음식, 집 등 일상을 엿볼 수 있어 재밌었다”고 말했다. ○ 체제 선전이 목적…판타지 장르 없는 북한 영화 이날 상영 직전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와 재일교포 박영이 감독이 무대 인사를 통해 북한 영화를 소개했다. 전 교수는 북한 영화와 드라마를 연구했고, 박 감독은 남북한을 오고가며 영화를 제작한 경험이 있다. 전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체제 선전을 위해 영화를 제작하기 때문에, 판타지나 범죄물 등 장르가 존재하지 않는다. 전 교수는 “북한 사람들이 만약 한국 영화를 본다면 왜 이렇게 공포물이 많으냐고 의아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70년 동안 벌어진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박 감독은 “최근 북한 영화는 인간의 삶과 양심, 도덕에 관한 내용이 많은데 ‘우리집 이야기’가 이러한 트렌드를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라며 “사회 문제나 나라를 지킨다는 의식을 강조해 교육적인 내용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사상적인 것보다 유연하고 생활적인 모습을 담으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그 결과가 영화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짝수 해마다 북한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인 ‘평양국제영화축전’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박 감독에 따르면 티켓 값이 저렴해 생각보다 많은 북한 사람들이 영화를 즐긴다고 한다. 특히 국제영화제가 열리면, 평소 볼 수 없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 해외 영화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박 감독에게 티켓을 몰래 구해달라고 요청해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평양국제영화축전은 10일 동안 열리며, 이 기간 동안 평양 내 10개 가량 되는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된다. 박 감독은 “가장 큰 영화관인 평양국제영화관에는 100~2000개 좌석이 있는 상영관 6개가 있고, 그밖에 ‘개선문 영화관’, ‘대동문 영화관’이 있다”고 전했다.부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랑스에 많은 한국 작가들이 왔음에도 그간 흔적이 많이 보존되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프랑스 예술의 만남을 잊지 않기 위한 재조명이 시급합니다.” 11일 서울 종로구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프랑스 파리 세르뉘시박물관 큐레이터인 마엘 벨레크(36·사진)는 현지에 한국 예술을 소개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2015∼2016년에 1950년대부터 프랑스를 거쳐 간 한국 작가를 다룬 ‘서울-파리-서울’ 기획전을 세르뉘시에서 개최했다. 파리 공공미술관이 자체적으로 한국 미술 전시를 기획한 첫 사례였다. 지난해 이응노 화백(1904∼1989)의 회고전 ‘군상의 남자’도 열었다. 그런 그가 세르뉘시박물관과 퐁피두센터가 소장한 이 화백의 작품 29점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13일부터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응노, 낯선 귀향’전을 위해서다. 벨레크 큐레이터는 2013년 전후 세르뉘시 소장품을 통해 이 화백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세르뉘시박물관의 아시아 컬렉션은 프랑스에서 국립동양미술관인 기메박물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 특히 이응노는 세르뉘시에서 ‘동양미술학교’를 운영해 인연이 깊다. 벨레크는 “프랑스 제자들은 당시 이응노가 프랑스어에 익숙지 않았음에도 수차례 반복했던 ‘열심히 그려라’ ‘붓을 수직으로 세우라’는 말을 여전히 기억한다”고 했다. 이런 이미지 탓에 프랑스에서 이 화백을 동양화가로만 조명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벨레크 큐레이터가 보기에 이 화백은 1950년대 이후 파리 앵포르멜(제2차 세계대전 후 표현주의적 추상예술)과 깊이 연관돼 있고, 그의 문자 추상은 기하학적 추상, 미니멀리즘, 옵아트 등 여러 측면으로 확장된다. 벨레크 큐레이터는 “이 화백의 ‘군상’은 픽토그래프의 측면에서 20세기 후반 미국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키스 해링과도 연관점이 있다”며 “수많은 연결 고리와 동서양의 맥락을 모두 갖고 있고, 프랑스-한국의 교류사를 한 몸에 담고 있는 흥미로운 작가”라고 설명했다. 이번 한국 전시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이 화백의 예술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는 데 중점을 뒀다. 겸재 정선(1676∼1759)과 조선 민화, 장식 예술 등과의 관계 등도 살펴본다. 벨레크 큐레이터는 “1970년대 말부터 이 화백은 프랑스 전통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나 세브르국립도자기제작소, 파리 조폐국과 많은 협업을 했다”며 “그런데 이때 오히려 한국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마르코 폴로’ 시리즈를 흥미로운 작품들로 추천했다. 벨레크 큐레이터는 최근 세르뉘시의 한국 예술 컬렉션 규모를 키우는 작업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3년 90여 점이었던 컬렉션은 현재 200여 점으로 늘어났다. 그는 “문화 교류 차원에서 프랑스에 머물렀던 한국 예술가에게 관심이 많다”며 “이 화백 외에도 남관 윤형근 김창열 방혜자 작가와 사진작가 김중만 등의 작품을 새로 소장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이응노, 낯선 귀향’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29점을 포함해 모두 90점이 전시된다. 13일 오후 2시에는 이응노의 ‘동양미술학교’에 관한 벨레크 큐레이터의 강연이 대전시립미술관 세미나룸에서 열린다.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은 “암스테르담에 고흐가 있고, 파리에 피카소가 있듯이 대전에는 이응노가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며 “이응노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면 대전의 도시 브랜드도 향상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9월 30일까지. 김민 kimmin@donga.com / 대전=이기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