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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사진전이 열린다. 2일 개막한 뮤지엄그라운드(경기 용인시) 특별기획전 ‘르네 마그리트, 더 리빌링 이미지: 사진과 영상’은 마그리트의 사진 원본 130여 점과 영상 2점으로 구성됐다. 벨기에 샤를루아 사진미술관이 함께한 이 전시는 5곳의 컬렉션이 소장한 마그리트의 사진 가운데 그의 예술관에 영향을 준 작품을 선택했다. 총 6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마그리트가 작업할 때 모습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마그리트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회화들이 영화나 사진에서 영향을 받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마그리트는 영화가 발명됐을 때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자비에 카노네 샤를루아 사진미술관장은 “지금과 달리 마그리트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예술가가 영화와 사진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 흔치 않았다”며 “마그리트는 영화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 1세대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멜버른, 홍콩, 타이베이를 거쳐 온 순회전이다. 다만 사진 대다수가 과거 촬영한 원본으로 크기가 손바닥만 한 것은 아쉽다. 마그리트 연구자나 마니아가 즐기기에 적합한 아카이브성 전시다. 7월 10일까지. 6000∼1만2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 단색화는 서양 모노크롬 회화를 모방해놓고, 사후에 한국 고유의 미술 양식이라고 항변하는 격.’ 홍가이 전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71·예술철학)가 지난해 출간한 ‘현대예술은 사기다1·2’(소피아)가 미술계에서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미술 시장에선 대표 상품으로 내세우지만 국내외에서 거품 지적이 끊이지 않는 ‘단색화’에 대한 시원한 비판 덕분이다.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열린 아트바젤 홍콩에서도 해외 갤러리는 단순한 모노크롬보다 화려한 신표현주의가 강세였다. 최근 만난 홍 교수는 “설득력 있는 미학의 부재가 단색화의 한계”라며 “한국 미술이 도태되지 않으려면 탄탄한 미학 담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단색화는 1975년 일본 도쿄화랑의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을 전후로 등장한 단색조의 회화를 말한다. 과거 ‘모노크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시를 통해 한글명 ‘단색화’로 통일됐다. 단색화는 서양 모더니즘 회화의 ‘평면성’을 받아들이며 ‘백색’과 ‘정신성’이라는 한국적 특징을 가진 회화로 정의된다. 그러나 홍 교수는 이를 한국 고유의 특징으로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람이 백의민족이라는 것은 일제강점기 외국인의 피상적 시각입니다. 국내 역사 문헌에서는 상을 당했을 때 소복을 입는다는 기록밖에 없습니다.” 또 서양 모더니즘의 ‘평면성’을 재해석한 시도는 좋지만, 왜 그런 시도가 필요했는지에 대한 답은 찾기 힘들다고 그는 설명했다. 서양 모더니즘과 ‘평면성’은 그들의 미술사 흐름에서 의미가 있는데, 국내는 이런 개념을 비판적 성찰이나 철저한 분석 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단색화 ‘거품’ 지적은 상업 갤러리뿐만 아니라 학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홍 교수는 말했다. 그는 “단색화의 상품화는 ‘벌처 캐피털리즘’(투기성이 강한 자본주의)의 전형이지만 서양 화상도 이런 전략을 쓴다. 그러나 미술관이나 학계가 중심을 잡고 미술사를 전개하지 않고 상업 전략에 휩쓸리는 것은 한국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선진국에서는 상업 갤러리가 전략적으로 띄워도 학계는 미술사 전통과 고유 원칙에 따라 가치를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국 미술이 국제적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토대와 미학적 담론이 절실하다는 것이 홍 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국내 비평이 미사여구로 인상 비평에 머물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미술사와 미학적 맥락에서 연결고리를 맺어 작품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자생적 현대미술’의 의미를 다시 질문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미술 작업의 독창적 시각은 축적된 지식에서 비롯됩니다. 오랜 시간 차분한 준비를 통해 세계화 이후의 한국적 현대성이란 무엇인지, 그러한 가운데 우리만의 독창적인 미술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절실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알록달록한 마카롱, 뾰족한 에펠탑, 골목의 오래된 서점…. 프랑스 파리의 어떤 풍경들은 서울의 일상에서도 뚜렷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20세기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세계에 영향을 미쳤던 파리의 최근 풍경을 담은 에세이가 출간됐다. 젊은 정치 신예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생생한 과정. 옛것만 사랑할 듯한 파리의 스타트업과 창업을 키우는 의외의 활기찬 분위기. 파리 사람들이 아이를 교육하는 방식과 16구의 정겨운 동네 시장까지. 프랑스에 대한 오랜 추억을 간직한 사람은 물론이고 방문을 앞둔 사람도 참고할 만한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가장 흥미로운 건 패션을 다룬 2장 ‘혁신과 럭셔리’다. 시대를 읽는 발 빠른 눈과 창의적 감각으로 세계를 사로잡는 파리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저자는 패션, 와인, 미식 등 중요한 문화 콘텐츠 분야를 다루며 본격적으로 프랑스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또 프랑스 학자, 건축가, 디자이너, 미술가, 요리사를 인터뷰하며 깊은 시선을 갖췄다. 현직 기자이기도 한 저자는 2016년 에스모드 이젬 파리에서 1년 동안 럭셔리 패션 비즈니스를 공부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품었던 ‘프랑스 사랑’이 이뤄진 순간. 이때부터 현지에서 탐구하고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내밀한 속내까지 들여다본다. 뭣보다 넉넉하면서도 잘 벼려진 글맛이 그 자체로도 일품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세대 사진작가 황규태(81)의 개인전 ‘픽셀’이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황 작가는 1960년대 필름 태우기, 아날로그 몽타주 등을 시도하고 1980년대 디지털 이미지에 관심을 가졌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픽셀’ 시리즈는 무언가를 새로 촬영한 것이 아니라 기존 이미지의 작은 부분을 확대했다. 1990년대 후반 처음 작업을 시작한 ‘픽셀’은 궁금증 때문에 확대경을 들여다보다가 발견한 이미지다. 텔레비전 모니터를 확대했더니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점이 나타났고, 이것을 흥미롭게 여겨서 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픽셀’은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를 가리킨다. 작가는 “내가 이미지를 만든 것이 아니라 픽셀을 선택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개념적 미학이 작가의 목표로 보인다. 장르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현대미술에서 사진에 한정해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은 든다. 또 픽셀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임의로 형태를 다시 재구성해 이미지를 만든 작품도 많다. ‘pixel; bit의 제전’이나 ‘pixel; 외계에서 온 편지’ 등 잘 정돈된 화면에 구상적 형체가 들어있는 작품들은 화소가 낮은 구식 비디오 게임 화면을 연상케 한다. 황 작가는 동국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사 사진기자로 활동하며 사진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1950년대 말부터 사진을 연구하다가 1973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 개인전을 시작으로 여러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는 4월 21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입장 대기시간 2시간 30분, 3일간 방문 관람객 1만 명, 실시간 검색어 순위 입성. 기획자라면 누구나 탐낼 인기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82)의 전시가 한국을 찾았다. 개막 전 반응은 갈렸지만, 목말랐던 관객은 이미 구름처럼 몰렸다. 22일 개막한 서울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전은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공동 기획했다. 호크니의 회화, 드로잉, 판화 133점을 선보이는데, 대부분 테이트미술관 소장품이다. 전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관람 포인트를 큐레이터 헬렌 리틀(사진)과 함께 짚어봤다.○ 다양한 미술사 전통의 활용 리틀은 2017년 테이트브리튼에서 열려 관객 50만 명이 찾은 호크니의 회고전을 기획했다. 이번 전시는 “호크니가 3차원을 평면에 담는 방식을 탐구한 60년간의 여정”이라고 했다. 초기 작품에서 돋보이는 건 다양한 미술사 전통의 활용이다. 전시장 초입에서 볼 수 있는 ‘첫 번째 결혼’(1962년)은 고대 이집트 회화의 구도를 반영했다. 호크니가 런던이 아닌 잉글랜드 북부에서 보수적 교육을 받은 영향이다. 그는 런던 왕립예술학교로 오고 나서야 추상예술 등 진보적 시각 언어를 경험했다. “호크니는 이후에도 르네상스와 프랜시스 베이컨, 추상과 구상 등 여러 미술사적 전통을 자유자재로 혼합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피카소 앞 벌거벗은 호크니 “피카소와 마티스는 세상을 흥미롭게 보이도록 만든 반면, 사진은 오히려 따분하게 보이게끔 만든다.”(호크니, ‘다시, 그림이다’, 디자인 하우스) 2층 전시장의 ‘블루 기타’ 섹션은 피카소를 향한 호크니의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판화 ‘아티스트와 모델’에서 호크니는 피카소 앞에 벌거벗은 채 앉아 있다. 리틀은 “마치 선생님에게 겸허한 자세로 그림을 검사받는 듯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개념에 지친 대중 매혹하는 ‘신표현주의’ 1960년대 호크니 작품은 ‘팝아트’로 분류된다. 하지만 리틀은 “당시 호크니는 팝아트 호칭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미술계는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등 난해한 작품이 주류였는데, 호크니는 늘 구체적 형상의 표현에 집중해 예술계의 ‘변방’ 작가였다. 그러다 1980년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신표현주의’ 회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호크니의 작품도 재조명을 받았다. “호크니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가장 단순히 표현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가 한순간에 대중의 눈을 사로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8월 4일까지. 1만∼1만5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구글, 카카오…. 21세기 일상에 밀착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들은 처음에 사람들을 ‘연결’시켜 준다는 호의로 다가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들이 고객의 내밀한 정보를 이용해 부를 축적한다는 비난도 받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지만, 이 공간에 공유하는 데이터를 먼저 독차지한 건 결국 자본, ‘돈 냄새’를 맡은 이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3일부터 열리는 전시 ‘불온한 데이터’는 이런 데이터를 가공, 소유, 유통하는 주체가 누구이며 이 정보가 어떻게 권력이 되는지를 살핀다. 덴마크 출신 예술집단 ‘수퍼플렉스’의 벽화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2019년)는 데이터 접근권의 불균형을 지적한다. 이 밖에 데이터를 매체로 한 국내외 작가 10팀의 작품 14점을 함께 전시한다. 영국 연구 단체 ‘포렌식 아키텍처’는 데이터를 활용해 국가의 폭력에 맞서 흥미롭다. 영상 작업 ‘지상검증자료’(2018년)는 이스라엘 북부에서 발생한 베두인족의 강제 이주에 관한 항공, 지상 관측 사진을 수집해 정부가 숨긴 진실을 파헤친다. 역사를 ‘증언’하는 예술의 속성을 담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7월 28일까지. 4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젊고 아름다운 여자 사라 텍사스. 그녀는 미국과 스웨덴을 오가며 5건의 연쇄살인을 저질렀다 자백해 스톡홀름을 떠들썩하게 했다. 충격적 범행으로 타블로이드를 장식한 그녀는 감옥에 갇힌다. 그러나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를 보기 위해 특별 외출로 감옥을 나서고, 감시관의 눈을 따돌린 뒤 강물에 몸을 던져 사망한다. 사라 사망 6개월 뒤, 그의 오빠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매력적이고 유능한 변호사 마틴 베너를 찾아온다. “당신이 분명 텔레비전에서 사라를 변호하고 싶다고 말했지 않느냐”며 그는 사라의 무죄를 주장한다. 초라한 행색인 남성의 말에 마틴은 주저하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수사의 허점에 사건에 빠져들고 만다. 사라는 정말 억울한 누명을 쓴 걸까? 이제는 세계적 브랜드가 된 ‘북유럽 누아르’의 매력을 담은 책이다.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퍼즐을 푸는 듯한 전개에 손을 떼기 어렵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에도 흔히 등장하는 ‘클리프행어’ 기법이 돋보인다. 주인공을 충격적인 곤경에 처하게 만들어 다음 스토리를 궁금하게 만드는 전략을 ‘클리프행어’라고 한다. 저자는 스웨덴 정부에서 외교정책 전문가로 활동하고 유럽안보협력기구에서 반테러담당관으로 일했다. 2009년 ‘원하지 않은’을 출간한 이래 모든 작품이 스웨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전 세계 320만 부 판매를 기록한 스타 저자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선진국의 도시 재생은 대부분 예술가가 주도해서 이뤄졌습니다. 국내도 이제는 장기적 시각에서 자생적인 예술촌을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 전남 담양군에서 만난 장현우 담빛예술창고 관장(55)의 눈빛이 반짝였다. 담빛예술창고는 2015년 9월 문을 연 전시 공간. 660m² 규모로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건물은 1968년 지어진 곡물 창고다. 페인트로 큼지막하게 쓴 글씨 ‘남송창고(南松倉庫)’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2004년 국가수매제가 폐지되며 10년 동안 방치됐다. 그러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이 들어서고 예술 작품이 채워지면서 담양의 대표적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담양은 대나무축제와 떡갈비가 유명해 예술 공간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담빛예술창고는 개관 3년 만에 연간 15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곳은 동시대 예술을 위주로 한 기획전을 담양문화재단 자체 예산으로 연간 6, 7회 개최한다. 진행 중인 전시 ‘사유의 정원 소쇄원을 거닐다’도 가상현실(VR)기기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선보여 호응이 높다. 미대 출신인 장 관장은 “예술가 시절 국제적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부족한 시스템에 스스로 길을 개척하려다 보니 경영자가 됐다”며 “지방자치단체의 결단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담양군도 문화 수준이 지역의 경쟁력이라 보고 시각예술에 특화된 관광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담빛예술창고 인근에 들어서는 국제예술창작촌도 마찬가지. 내년 9월 개관을 목표로 국내외 예술가 20명이 정착해 작업하는 공간으로 운영한다. 장 관장은 “미술시장 자본이 10년 주기로 전 세계를 돌고 있다”며 “국내 대다수는 예술가가 배제된 도시 재생으로 기회를 놓쳤다”며 아쉬워했다. 2010년경 중국 베이징 798 예술구에 놓친 기회가 다시 찾아올 때를 대비해 국내도 장기적 관점에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에 장 감독은 영세 갤러리의 네트워크인 한국갤러리연대(KAGA)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국내 미술계는 메이저 화랑을 제외하면 아트페어만 쳐다보는 실정”이라며 “좋은 예술 작품이 소외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기반이 마련되면 해외 진출에도 나설 예정으로 우리도 글로벌 미술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담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선진국의 도시재생은 대부분 예술가가 주도해서 이뤄졌습니다. 국내도 이제는 장기적 시각에서 자생적인 예술촌을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 전남 담양군에서 만난 장현우 담빛예술창고 예술총감독(55)의 눈빛이 반짝였다. 담빛예술창고는 2015년 9월 문을 연 전시 공간. 660㎡ 규모로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건물은 1968년 지어진 곡물 창고다. 페인트로 큼지막하게 쓴 글씨 ‘남송창고(南松倉庫)’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2004년 국가수매제가 폐지되며 10년 동안 방치됐다. 그러다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이 들어서고 예술 작품이 채워지면서, 담양의 대표적인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담양은 대나무축제나 떡갈비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예술 공간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담빛예술창고는 개관 3년 만에 연간 15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곳은 동시대예술을 위주로 한 기획전을 연간 6, 7회 담양문화재단 자체 예산으로 개최한다. 현재 열리고 있는 전시 ‘사유의 정원 소쇄원을 거닐다’도 최근 화제인 VR기기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선보여 호응이 높다. 장 관장은 “예술가 시절 국제적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부족한 시스템에 스스로 길을 개척하려다 보니 경영자가 됐다”며 “지방자치단체의 결단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담양군도 문화 수준이 지역의 경쟁력이라 보고 시각 예술에 특화된 관광 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담빛예술창고 인근에 들어서는 국제예술창작촌도 마찬가지다. 내년 9월 개관을 목표인데, 국내외 예술가 20명 정도가 머물 수 있는 작업 공간으로 운영한다. 단기로 머무르는 기존 레지던시와 달리 작가가 지역에 정착해 작업하도록 할 계획이다. 장 관장은 “국내 대다수 지역은 예술가가 배제된 도시 재생으로 기회를 놓쳤다”며 아쉬워했다. 2010년 경 중국 베이징 798 예술구에 놓친 기회가 다시 찾아 올 때를 대비해 국내도 장기적 관점에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에 장 관장은 영세 갤러리의 네트워크인 한국갤러리연대(KAGA)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국내 미술계는 메이저 화랑을 제외하면 아트 페어만 쳐다보는 실정”이라며 “이런 체제에서 좋은 예술 작품이 소외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기반이 마련되면 해외 진출에도 나설 예정이다. 우리도 글로벌 미술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장기적 관점에서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담양=김민기자 kimmin@donga.com}
“이번 프로젝트는 특히 동아미디어센터의 규모가 크고,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다는 상징성이 있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수호해 온 동아일보의 건물이라는 측면에서도 관심이 컸습니다.” 프랑스 현대미술가 다니엘 뷔렌(81)이 20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 작품 ‘한국의 색, 인 시튀 작업’(Les Couleurs au Matin Calme, travail in situ)을 선보인 소감을 밝혔다. “30년 전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해 보면, 서울은 같은 도시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뷔렌은 1960년대 중반 아티스트 그룹 ‘베엠페테(B.M.P.T)’를 결성했고, 프랑스 68혁명 당시 퍼포먼스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줄무늬 패널을 등에 짊어진 사람이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샌드위치 맨’ 퍼포먼스였다.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 듯한 줄무늬는 뷔렌이 택한 의도적 전략으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이번에 설치한 작품에도 흰 줄무늬가 포함됐다. 뷔렌은 파리 팔레 루아얄의 ‘두 개의 고원’(1986년),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아이의 놀이처럼’(2014년), 파리 루이뷔통재단미술관 ‘빛의 관측소’(2016년) 등의 작품으로 80대가 돼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 뷔렌은 2006년 아틀리에 에르메스 개관전과 환기미술관 ‘공간의 시학’ 그룹전 등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벗어나 바깥 공공장소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지난해 처음 동아미디어센터를 방문해 구석구석 훑어본 작가는 처음엔 전체 빌딩을 단색으로 덮을 것도 검토했지만, 고민 끝에 다양한 색감이 더 잘 어울리겠다고 결정했다. 이에 5층부터 20층까지 16개 층을 두 부분으로 나눠 비슷한 색조가 겹치지 않도록 8개의 컬러를 입혔다. 뷔렌은 “거대한 건물의 각 층에서 저마다 다른 업무를 하는 이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상징한다”며 “아래부터 노랑과 보라, 오렌지, 진빨강, 초록, 터키블루, 파랑, 핑크로 명명하고 한글 가나다순으로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강철과 유리로 되어 있는 건축적 특성을 중점적으로 고려했습니다. 낮에는 햇빛으로 인해 색이 내부로 유입되고, 밤에는 내부 형광등을 통해 빛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컬러 필름을 부착했어요.” 이번 전시는 동아미디어그룹이 20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뷔렌을 초청해 성사됐다. 뷔렌은 “제 작품을 보고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몫”이라며 “많은 시민들이 청계천을 거닐며 직접 보고 느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동아일보가 굉장히 열려 있고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옥의 전면을 변화시키는 대규모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잘 진행해주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30년 전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해보면, 서울은 같은 도시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프랑스 현대미술가 다니엘 뷔렌(81)이 20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 작품 ‘한국의 색, 인 시튀 작업’(Les Couleurs au Matin Calme, travail in situ)을 선보인 소감을 밝혔다. 뷔렌의 작품은 2020년 동아일보 100주년을 기념해 동아미디어센터 외관에 설치됐다. 뷔렌은 1960년대 중반 아티스트 그룹 ‘베엠페테(B.M.P.T)’를 결성했고, 프랑스 68혁명 당시 퍼포먼스를 선보여 주목 받았다. 줄무늬 패널을 등에 짊어진 사람이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샌드위치 맨’ 퍼포먼스였다. 아무 것도 뜻하지 않는 듯한 줄무늬는 뷔렌이 택한 의도적 전략으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이번에 설치한 작품에도 흰 줄무늬가 포함됐다. 뷔렌은 파리 팔레 루아얄의 ‘두 개의 고원’(1986년),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아이의 놀이처럼’(2014년), 파리 루이뷔통재단미술관 ‘빛의 관측소’(2016년) 등의 작품으로 80대가 돼서도 왕성한 활동을 과시하고 있다. 국내에서 뷔렌은 2006년 아뜰리에 에르메스 개관전과 환기미술관 ‘공간의 시학’ 그룹전 등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벗어나 바깥 공공장소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그는 “1960년대엔 미술관에 자주 초청받는 작가가 아니었기에 이 때부터 거리에 나가 작업을 많이 했다”며 “현장 작업은 아주 오랫동안 해 온 친숙한 일”이라고 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특히 건물의 규모가 크고,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다는 상징성이 있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수호해 온 동아일보의 건물이라는 측면에서도 관심이 컸습니다.” 지난해 처음 동아미디어센터를 방문해 구석구석 훑어본 작가는 처음엔 전체 빌딩을 단색으로 덮을 것도 검토했지만, 고민 끝에 다양한 색감이 더 잘 어울리겠다고 결정했다. 이에 5층부터 20층까지 16개 층을 두 부분으로 나눠 비슷한 색조가 겹치지 않도록 8개의 컬러를 입혔다. 뷔렌은 “거대한 건물의 각 층에서 저마다 다른 업무를 하는 이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상징한다”며 “아래부터 노랑과 보라, 오렌지, 진빨강, 초록, 터키블루, 파랑, 핑크로 명명하고 한글 가나다 순으로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강철과 유리로 되어 있는 건축적 특성을 중점적으로 고려했습니다. 낮에는 햇빛으로 인해 색이 내부로 유입되고, 밤에는 내부 형광등을 통해 빛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컬러 필름을 부착했어요.” 이번 전시는 동아미디어그룹이 20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뷔렌을 초청해 성사됐다. 동아미디어그룹은 새로운 100년을 향한 밝은 꿈을 서울 도심 광화문에서 국민과 함께 나누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의 작업은 2020년 12월 30일까지 동아미디어센터 건물 외관에 전시한다. 뷔렌은 “제 작품을 보고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대중들 각자의 몫”이라며 “많은 시민들이 청계천을 거닐며 직접 보고 느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사진)가 미국 현지에서 드라마로 제작된다. 미 엔터테인먼트 에이전시 WME의 에이전트인 테리사 강은 18일 “최근 드라마 등 콘텐츠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미 애플은 최근 시리즈 제작을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애플은 이 같은 내용을 25일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 열리는 키노트 스피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소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한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으로 간 이민자의 처절한 삶을 다룬다. 2017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등으로 선정됐다. 8부작으로 제작되는 드라마 역시 아시아계 배우가 대부분 캐스팅될 예정이며 대사도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로 구성한다. 애플이 제작을 결정한 오리지널 콘텐츠 중 예산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계 작가인 수 휴가 시나리오를 맡아 지난해 8월부터 집필에 들어갔으며 저자인 이민진 역시 드라마의 총괄 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한다. 에이전트 테리사 강은 “애플이 첫 시즌을 제작하기로 결정한 것은 제작진뿐 아니라 전 세계의 한국인, 한국인을 가족으로 둔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라고 전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과 브라질의 수교 60주년을 맞아 올해 브라질의 예술인들이 잇달아 한국을 찾는다. 브라질 교민화가 전옥희 씨(61)의 개인전을 출발로 5월에는 브라질 현대 미술가 10여 명이 참여하는 그룹전이, 9월에는 브라질 구성주의 예술가 잭 라이너의 개인전이 열린다. 10여 년 만에 한국을 찾는 세계적 기타리스트 아사드 듀오의 공연도 7월 예정되어 있다. 전 씨의 개인전 ‘우리는 하나’는 서울 종로구 주한 브라질대사관 내 브라질홀에서 20일부터 열린다. 전 씨는 1994년 브라질 주재원으로 근무하게 된 남편을 따라 이주했다 2009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사우바도르 여행을 하던 중 전통 의상을 입은 바이아주 여인들의 모습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열정적이고 화려한 색감이 고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그림에도 화려한 색상의 옷과 두툼한 입술이 강조된 바이아 여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작품 35점이 공개되며 전시는 5월 19일까지 무료로 열린다. 5월에는 한국과 브라질의 현대 미술가 17개 팀의 그룹전 ‘인류세 프로젝트: 디어 아마존’이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미술관 비데오브라질과 협업하는 전시는 인류가 자연환경에 일으킨 변화를 주제로 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지구의 역사 중 인간이 지배하는 시대를 ‘인류세’라고 본 것이다. 환경 문제가 중대한 이슈로 떠오르는 가운데 여러 주제를 통해 서구 세계의 관점과 구분되는 남미와 아시아 문화만의 독자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브라질에서는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브라질관 대표 작가였던 신시아 마르셀을 비롯해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작가 11명이 참가한다. 또 2020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개최에 맞춰 한국 작가 10여 명이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에서 순회 교류전도 선보일 예정이다. ‘디어 아마존’은 5월 31일부터 8월 11일까지 열린다. 9월에는 브라질 구성주의 작가 잭 라이너(58)의 개인전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라이너는 가치가 떨어진 지폐, 빈 담뱃갑 등 일상의 물건을 활용한 설치 미술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다. 브라질 구성주의는 유럽의 아르테 포베라(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전위적 예술운동)와 미국의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은 사조를 가리킨다. 7월에는 피아졸라가 ‘현존하는 최고 기타리스트’라고 격찬한 ‘아사드 듀오’가 콘서트를 연다. 브라질 출신 기타리스트인 세르지우와 오다이르 아사드 형제로 구성된 듀오는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첼리스트 요요마 등 세계적인 연주가와도 자주 협업했다. 피아졸라의 탱고 연주 앨범 등으로 라틴 그래미상도 여러 차례 수상했다. 아사드 듀오가 한국을 찾는 것은 10여 년 만이다. 루이스 엔히키 소브레이라 로페스 주한 브라질대사는 “축구와 삼바 외에도 브라질에는 파울루 코엘류 작가, 영화 ‘시티 오브 갓’ 등 한국과 친숙한 문화자산이 적지 않다”며 “다채로운 문화 행사를 통해 양국이 더욱 가까워지길 바란다”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국의 컴퓨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대기업 ICL의 1970년 8월 사보. 사내 각종 소식을 전하는 지면 한편에 ‘여성’란이 있다. 그 코너 속에는 천공 테이프를 두른 여성이 활짝 웃는 사진이 보인다. 앤 데이비스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결혼을 앞두고 동료들이 열어 준 ‘퇴직 파티’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당시 여성 직원들에게 결혼 후 퇴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성 대부분에게는 발전 가능성이 없는 하급 일자리만 주어지는 상황에서, 결혼은 경제적으로도 여성에게 나은 선택이었다. 결국 결혼한 앤 데이비스는 활짝 웃는 사진만을 남긴 채 영국 정보기술(IT) 업계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저자는 이처럼 여성 인력을 배제한 영국의 보수적 관행이 20세기 컴퓨터 산업의 몰락 원인이라 지적한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무렵, 미국이 애니악(ANIAC)을 완성하기도 전에 콜로서스 컴퓨터를 만들어 작전에 활용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도 이 덕분이었다. 그런데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 에이다 바이런 러브레이스를 배출했지만, ‘구글’을 갖지 못한 나라”라는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의 추천사처럼 1974년을 기점으로 영국의 컴퓨터 산업은 멸종의 길을 걸었다. 여성 기술인의 배제가 산업의 멸종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책에 따르면, 사실상 영국 컴퓨터 산업의 발전은 여성 없이는 불가능했다. 2차대전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블레츨리 파크 암호해독 작전에도 여성 프로그래머들이 대거 투입됐다. 남성들이 군인으로 차출돼 부족한 노동력을 영국 정부는 여성을 동원해 해결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이다. 여성들은 남성보다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줬지만 정부는 이들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고자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1950년대 여성공무원노동조합은 동일 임금 청원을 의회에 제출하는 운동을 벌인다. 그러자 재무부는 여성이 대부분인 직군을 남성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억지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성이 하는 일은 단순 노동에 불과하다는 논리였다. 지금도 역사는 남성만을 기억한다. 이를테면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남성 암호해독학자 앨런 튜링을 영웅으로 그리면서, 그와 함께 일했던 수많은 여성의 성과는 서사에서 생략했다. 분명한 건 앤 데이비스를 쫓아낸 ICL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IBM과의 경쟁에 밀려 몰락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뒤늦게 공개된 정부 문서와 인터뷰, 주요 컴퓨터 회사의 아카이브에 남은 기록물을 통해 숨겨진 역사를 꼼꼼히 파헤친다. 그의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건, 성과 인종차별 없이 사람을 대하는 것이 단순한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수자는 약자라서 보호돼야 할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산업과 사회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구성원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세계적인 동화 ‘어린 왕자’를 예술로 재해석한 ‘나의 어린왕자에게’전의 전시 기간이 연장됐다. 서울 강남구 K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현재까지 관객 7만여 명이 찾아 이달 31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전시는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집필할 때 마음에 드는 삽화가를 찾지 못해 직접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에서 출발한다. 국내외 젊은 작가 20여 명이 ‘어린 왕자’에게 받은 감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참여하며 즐길 만한 요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예쁘게 사진 찍기 좋은 전시” “어린 왕자의 구절을 만날 수 있는 전시” “어린 왕자를 테마로 한 포토 스폿이 많은 전시”라는 평가가 나온다. 관람객이 직접 자기만의 양(羊)을 그려 전시 공간에 붙이거나, 조이스틱을 이용해 우주 공간을 탐험하는 체험형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책 속 문구를 네온사인으로 재현한 ‘포토존’도 인기다. 8000∼1만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룹 하이라이트의 멤버 용준형(30)이 정준영이 보낸 불법 촬영 성관계 동영상을 봤다고 시인하고 그룹에서 탈퇴했다. 음주운전과 사건 무마 청탁 의혹이 불거진 밴드 FT아일랜드 멤버 최종훈(29)은 연예계 은퇴를 발표했다. 용준형은 14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동영상을 받은 적이 있고 그에 대한 부적절한 대화도 했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몰카를 찍거나 유포하는 범법 행위는 하지 않았다”며 “과분한 사랑에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팀을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용준형은 13일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같은 날 최종훈의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는 입장문을 통해 “본인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불법 행위와 관련돼 추가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어 이번 주 내로 성실하게 경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라며 “최종훈은 팀에서 영원히 탈퇴하고 연예계를 은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소속사는 사건 초기 의혹을 부인하고 법적 대응을 거론하며 거짓 해명을 했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게 됐다. 용준형의 소속사 어라운드어스 엔터테인먼트는 “섣부른 판단으로 혼란을 야기시킨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FNC엔터테인먼트도 “정확하지 않은 입장 발표로 혼란을 일으켜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80년대 격동의 시기를 은유한 ‘바보 예수’로 잘 알려진 화가 김병종(66·사진)이 개인전을 연다. 14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이번 전시 주제는 ‘송화분분(松花粉粉)’. 봄을 맞아 대기에 분분히 날리는 송홧가루를 담아낸 회화 등 신작 30여 점을 공개한다. 12일 전화로 만난 김 작가는 이번 작품이 “유년의 기억을 소환해낸 것”이라고 했다. “요즘 회색 도시의 분위기와 달리 유년 시절은 대기의 청량감이 높았고, 낙락장송도 많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 경험을 담고자 했습니다.” 어린 시절 봄날이면 “노란 구름 떼가 일어나는 것처럼 송홧가루가 휘날리는 광경을 바라보곤 했”던 만큼, 이번 작품에서 색채에 신경을 썼다. 특히 노란색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전통 동양화는 먹이 중심이 되고 색은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김 작가는 “이번에 ‘애기똥풀’ 색을 공부하며 탐미적인 부분을 알아가게 된 것이 소득”이라며 “먹과 색을 동등한 위치에 놓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의 이력에 비하면 이번 작품들은 다소 편안하면서도 가벼워 보인다. 과거 그는 1980년대 교정에서 마주친 격렬한 집회 속 최루탄과 화염병을 보고 눈물 흘리는 ‘바보 예수’를 그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생명의 노래’는 연탄가스에 중독돼 생사를 넘나든 경험을 담는 등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이런 의견에 작가는 “30년 세월이 지나니 자연스레 작고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게 된 것 같다”며 “대작이 많고 그 뼈대를 이루는 먹을 중심으로 한 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교수였던 그는 지난해 정년퇴임 후 다시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다. 비교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한국화의 위치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도 과제다. 그는 “작가도 전통의 아름답고 훌륭한 재료를 참신한 방식으로 제시해야 하고, 사회도 한국적 아름다움에 대한 확고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 한국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국학 진흥 차원에서라도 연구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 도쿄예술대의 일본화과는 일본적 미의식의 산실입니다. 중국 명문 미술대의 ‘국화과’도 중국적 미의식의 토대이고요. 우리도 작가와 정책이 양면에서 함께 노력을 해서 토대를 이뤄 가야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문학성을 좀 더 수용하고자 했다는 그는 새 책 ‘도시를 걷다’도 집필하고 있다. 서울과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등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시리즈 원고를 준비 중이다. 미술평론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문인이기도 한 김 작가는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중국회화연구’나 ‘화첩기행’ 등 여러 저서를 집필했다. “준비 중인 책은 단순한 여행 가이드가 아닌 도시에 관한 명상을 담을 겁니다. 그림을 그리다 공허함이 찾아오면 글을 쓰고, 또다시 그림으로 돌아가고 있지요.” 전시는 다음 달 7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야생화 사진작가 고홍곤의 8번째 개인전 ‘그대, 다시 꽃으로 피어나리’가 21∼27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는 흔들림, 위로, 극복, 희망 등 4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야생화 사진 80점이 글과 함께 포토 에세이 형식으로 전시된다. 작가는 어려운 환경에서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추운 겨울을 견디고 피어나는 꽃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작가는 2003년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했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예술가로서 권리를 따지는 것을 예술가답지 못하다고 여기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 관심이 전혀 나쁜 것이 아니라고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극과 극의 영역으로 오해 받는 법과 미술의 관계를 쉽게 풀어낸 책이 나왔다. 김영철 법무법인 정세 대표변호사(60)의 책 ‘법, 미술을 품다’(뮤진트리·1만8000원·사진). 김 변호사는 22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고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까지 지냈다. 1987년 목포지청 근무를 계기로 미술에 관심을 갖고 서울대 미대 최고경영자(CEO)과정에서 미술을 배우며 법 강의까지 하게 됐다. 책은 김 변호사가 2012년부터 강의한 ‘미술법’을 토대로 한다. 강단에 처음 섰을 때 미대 학생 대부분은 법을 ‘나와 관련 없는 일’로 여겼다. 민사법과 형사법의 개념조차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현대 법은 권리를 스스로 주장해야 하기에 기본은 알아야 최소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책 속에는 19세기 영국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한 작가 휘슬러와 비평가 존 러스킨의 소송사건부터 현대미술 작가 댄 플래빈까지 풍부한 사례를 담았다. 이는 7년 동안 강의를 하며 학생들과 함께 쌓아온 자료라고. 이 덕분에 미술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미술계 주요 사건을 곁들여 법을 이해하는 교양서적으로 읽을 만하다. 미술인을 위한 책인 만큼 기초를 사례와 다룬 것이 특징이다. 김 변호사는 “향후 몇 년간 법적 문제가 될 만한 대부분의 사례가 담겨 있다”며 “미술계에서 실질적으로 많이 부딪칠 만한 문제가 궁금하다면 기본 원칙을 다룬 1장과 2장을 추천한다”고 했다. 책을 쓰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쉽게 쓰느라 진땀을 뺐다는데, 왜 바쁜 변호사가 미술에 관심을 가질까 궁금했다. 그는 “무미건조한 형사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미술 공부를 통해 행복을 얻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성장 가능성이 많은 한국 미술계에 보답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회 수준이 높아질수록 미술에 대한 관심도 많아질 겁니다. 특히 감정의 중요성이 커질 거예요. 제 강의를 듣고 미술법 논문을 쓰거나 감정을 배우러 유학하는 학생이 늘어났어요. 향후 공신력 있는 기관이 감정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신뢰와 투명성을 제고해야 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친 듯이 돈 많은 사람들의 결혼식이니 교회에 정원을 만들어 버렸어요. 그런데 그 장면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4일 반밖에 없었답니다.” 지난해 할리우드를 깜짝 놀라게 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아트 디렉터 넬슨 코츠를 싱가포르에서 7일 만났다. 영화의 모든 세트 디자인을 총괄한 코츠는 1994년 TV 시리즈 ‘더 스탠드’로 에미상을 수상한 베테랑. 이번 영화로도 ‘할리우드 아트 디렉터 조합’의 프로덕션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코츠는 ‘2019 싱가포르 디자인 위크’에서 마련한 ‘브레인스톰 디자인’의 연사로 이날 참석했다. 영화 속 화려함의 극치였던 결혼식 장면의 뒷이야기는 아슬아슬했다. 싱가포르의 유명한 성당인 ‘차임스’에서 촬영한 장면은 세트 설치부터 촬영, 철수까지 정확히 4일 반의 시간이 주어졌다. 압권인 버진 로드에 물이 흐르는 장면은 테스트 없이 진행해야 했다. “결혼식장의 화려한 꽃 속에 물을 뿜는 제트와 댐이 숨어 있었어요. 물이 필요 없는 장면을 촬영한 다음 존 추 감독과 손을 붙잡고 물을 틀었죠. 운 좋게 모든 장치가 잘 돌아갔고, 아름다운 장면이 탄생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충분한 돈과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고 하자 “작은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블랙팬서’ 같은 영화라면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 영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시아인이 주인공이라는 설정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 자신도 이번 작업으로 다양성의 힘을 믿게 됐다고 했다. 그가 함께 일한 디자인팀만 해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인도, 태국 등 12개국 출신으로 구성됐다. 제작진은 우스갯소리로 자신들을 ‘유엔’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카메라 앞뒤에 다양한 구성원이 있어 더 힘 있는 콘텐츠가 나올 수 있었다고 코츠는 자신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만큼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못해 아쉽다는 의견도 많았다. 아카데미 회원인 코츠는 “전통적으로 로맨틱 코미디가 진지한 장르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할리우드에 뜸했던, 키스하고 사랑하는 아시아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영화가 성공했으니 이제 시작이다”라고 했다. 그는 삶의 모든 것이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의 시각을 이해하고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디자인입니다. 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으니 의사나 엔지니어만큼 가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해요.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하길 바랍니다.” 싱가포르=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