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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의 어둠은 일찍 찾아왔다. 첩첩이 이어진 나지막한 산들은 빠르게 음영에 휩싸였고, 능선을 따라 희뿌연 산안개가 넘실거렸다. 철커덩하는 기차 소리가 점차 커지더니 청량리행 무궁화호 열차가 빠르게 스쳐갔다.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는 강원 정선의 별어곡(別於谷)역에 서서 멀어져가는 기차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소설가 임철우(59)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제 기억에는 승객이 타고 내렸던 기차역으로 남아있는데, 이제 더는 그렇지 않네요.” 임 작가는 17, 18일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한국 문학 번역을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 13명과 함께 강원 정선과 영월로 문학 기행을 떠났다. 임 작가가 2010년 발표한 장편소설 ‘이별하는 골짜기’(문학과지성사)의 배경을 함께 돌아보는 여행이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그린 이 소설은 한적한 간이역의 이미지와 맞물려 애절하게 읽힌다. 하지만 작가에게 창작의 동기가 된 별어곡역은 승객 감소로 2011년 무정차역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억새전시관으로 변해 역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별하는 골짜기’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더이상 이별의 공간이 아닌 셈이다. 전남 완도 출신인 작가가 강원도 오지인 정선, 그것도 간이역에 왜 매료됐을까. 외국 학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자 작가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제가 어릴 적 살던 고향에는 전기도 없었고, 마을에 바퀴 달린 것이 딱 하나 있었어요. 우체부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였죠. 열한 살 때 광주로 나왔는데 그제야 자동차도 보고 기차도 봤죠. 정선의 자연도 좋고, 기차도 좋아해서 이런 소설을 쓴 것 같습니다.” 임철우는 느림에서 여유를 찾는 작가다. 차를 운전할 때도 주로 국도를 타고, 기차는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를 좋아한다. 그런 작가는 한적하고 소박해서 좋았던 정선의 매력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별어곡역에 들르기 전 학생들과 찾은 정선 5일장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정선 장은 옛날 모습을 점차 잃고 있어요. 예전에는 (현지인들이) 집에 있는 물건을 가져와서 팔거나 바꿔가는 소박한 장이었지만 지금은 외지인을 상대로 한 상인들이 대부분이죠. 장에서 열린 공연에서 들었던 ‘정선아리랑’도 사실은 굉장히 흥겹게 불렀지만, 사실은 일종의 노동요입니다. 여자들이 밭에서 일하면서 힘든 일을 잊기 위해 주거니 받거니 부른 슬픈 노래죠.”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들은 번역원에서 운영하는 번역아카데미 5기 학생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에서 왔다. 지난해 가을부터 1년여 동안 한국 문학 번역을 공부했던 학생들은 작가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었고, 이따금 한국어로 질문도 던졌다. 문학 기행의 느낌은 어땠을까.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 4세 폴리나 최 씨(27)는 “장터나 간이역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작가님과 함께 소설의 배경을 둘러보니 소설을 더 잘 이해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온 소피 보우만 씨(25)는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이 외국에 많이 알려졌는데 노래로만 외국인들에게 다가설 수는 없어요. 노래를 잘 듣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문학으로도 다가서야죠. 언젠가 은퇴하고 나서는 (한국의) 어느 산골에 들어가 한 10년 동안 (한국)고전을 번역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정선·영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서울에서 1만7000여 km 떨어진 빙하의 나라.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추위와 블리자드(눈보라)가 생명을 위협하는 곳. 지구의 최남단에 위치한 남극이다. 과학자들의 연구 전초기지로 알려져 있던 이 미지의 세계에 한국 예술가들이 발을 내딛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극지연구소가 후원하는 ‘극지 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올겨울 남극 세종기지에서 머물며 활동을 펼칠 예술가 5명을 최근 선정했다. 이 프로그램은 격년으로 시행되는데 이번이 2회째다. 올해엔 ‘이끼’ ‘미생’의 웹툰작가 윤태호(44), 소설 ‘생강’ ‘잘 가라 서커스’의 작가 천운영(42), 영화 ‘해피 엔드’ ‘은교’의 정지우 감독(45), 싱어송라이터 이이언(38),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 씨(40)가 한 팀을 이뤄 남극행에 나선다. 이들은 12월 초 4주 일정으로 떠난다. 각기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어떻게 ‘남극원정대’를 꾸렸을까.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자로 나선 천운영을 통해 들어본 의기투합 과정은 이렇다. 천운영과 윤태호 작가, 정지우 감독은 2009, 2010년 KT&G 상상마당에서 마련한 ‘스토리텔링학교’에 각각 강사로 참여했다가 친해졌다. 2010년 9월 이들은 알래스카로 여행을 갔고, 영롱한 오로라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올해 초 ‘극지 노마딕 레지던스’ 신청 공고가 뜨자 이들은 의기투합했다. “그래 남극 한번 가보자. 남극에서 (우리들이) 모이면 뭔가 하나 만들 수 있지 않겠어?” 이들은 ‘알던 동생’ 이이언을 끌어들었고, 이이언은 다시 지인인 이강훈을 추천해 팀을 꾸렸다. 대체 이들은 왜 이런 ‘사서 고생’을 반긴 것일까. “일단은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게 가장 큰 매력이죠. 어쨌건 지구에 살면서 한번쯤 가봐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얼음이랄지 추위도 경험하고 싶고요.”(윤태호) “남극,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만 봤잖아요. 실제 가보지 않으면 제대로 모르는 거죠. 특히 남극이 풍기는 무국적인 공간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듣기로는 빙하로 팥빙수 해먹는다는데 한번 먹어봐야죠. 호호”(천운영) 이들은 프로그램 신청서에 이렇게 적었다.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영원한 고향도 될 수 없는 절대적인 공간, 남극이 갖는 일상성은 절대적으로 비일상적이다… 각기 다른 영역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서로의 작업을 지켜보고 주고받고 거리를 좁혀나가다 보면 하나의 쇼크를 경험하게 되리라. 그 쇼크에서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남극에 머무는 동안 천 작가는 산문을, 윤 작가는 새 남극 관련 웹툰 취재를, 정 감독은 영상 촬영을, 이이언은 음악작업을, 이강훈은 드로잉작업을 각각 진행한다. 하지만 이들은 함께 모여 하나의 ‘미디어 아트’ 작업에도 나설 예정이다. 이이언은 “남극에 있는 위성 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서울로 보내고, 이를 다시 남극으로 전송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송 속도의 지연이나 결손 부분을 기록해서 이를 소리나 그림으로 변환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언제부턴가 오지, 그중에서도 추운 곳이 흥미로운 것 같았어요. 일상적이지 않은 환경에 들어가면 제 마음속부터 변하는 것 같아서요. 남극에서 할 새로운 작업이 벌써 기대됩니다.”(정 감독)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놀랍도록 치밀한 전개, 압도적인 흡인력, 강력한 서사의 힘…. 정유정은 2011년 3월 펴낸 ‘7년의 밤’으로 한국 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현재 49쇄까지 찍으며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7년의 밤’은 30만 부가량 팔렸다. 독자와 문단은 그의 차기작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2년 3개월 만에 돌아온 정유정(47)의 이번 신작을 읽고 나니 이런 말이 떠올랐다. 명불허전(名不虛傳). 2011년 말 초고를 완성한 뒤 무려 1년 반 가까이 글을 다듬고 고쳤던 작가는 빈틈을 찾아보기 힘든 완전체 같은 이야기를 들고 왔다. 국내 문학 시장의 불황 속에서 정유정의 등장은 축복이자 희망이다. 서울과 맞닿은 경기도 북부에 위치한 가상의 도시 ‘화양’. 인구 29만 명의 이 도시에 ‘빨간 눈’이란 전염병이 발생한다. 눈이 핏빛으로 변하는 게 특징인 이 병에 걸리면 40도가 넘는 고열과 호흡곤란, 폐출혈 증세를 보이고 며칠 내 사망에 이른다. 최초 발병된 중년 남자의 사망 이후 병은 그의 이웃, 그를 병원에 후송했던 구급대원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책 제목은 28일간의 혼돈을 가리킨다. 인수(人獸)공통전염병이라는 사실만 확인됐을 뿐 전염 방식조차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빠르게 증가하자 정부는 화양시를 봉쇄한다. 세기말적인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전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디스토피아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철저히 까발린다. 폭력, 배신, 절망, 구원, 박애…. 작가는 1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술술 넘어가는 재미있는 책을 쓰고 싶다”고 밝혔는데, 책은 읽는 즐거움에 덧붙여 진한 감동까지 선사한다. 초반은 조금 참을성 있게 넘길 필요가 있다. 작품은 수의사 재형, 구급대원 기준, 신문기자 윤주, 간호사 수진, 공익근무요원이자 살인마인 동해, 그리고 투견이었던 링고의 눈을 통해 지옥으로 변해가는 화양을 그려내는데, 이들의 소개에 초반 100쪽가량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초 발병자가 난 이후부터 이야기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그 관성을 받아 나머지 400쪽이 숨 가쁘게 넘어간다. 한국 소설 중에서 이토록 매력적인 페이지터너(page turner·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재미있는 책)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야기 전개 방식도 흥미롭다. 재형을 비롯해 소설을 풀어가는 6개의 시선이 서로 교차되며 하나의 사건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를테면 링고와 기준의 격투에서 링고와 기준의 시선,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재형과 윤주의 시선이 교차되며 상황을 좀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활자화된 영상을 보는 느낌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불타는 도시로 변한 화양, 그 속에서 절규하는 사람들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올 여름휴가 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여행지에 무겁게 들고 간 책이 재미없을 때 화가 치민다. 이 책은 그런 우려를 씻어준다. ▼ “동물이 禍를 당하면 인간도 당합니다” ▼■ 정유정 작가 일문일답 ―인수공통전염병을 소재로 택한 이유는…. “모든 생명은 본질적으로 귀한데 인간은 동물을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동물이 어떤 기여를 하는가를 기준으로 보고 기여를 하지 않으면 버리죠. 구제역 때 (동물을) 도살 처분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동물이 화를 당하면 인간도 화를 당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읽다 보니 접속사가 거의 보이지 않던데…. “한두 개 정도 넣은 것 같아요. 속도감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뺐어요.” ―6개의 시점이 이색적이다. “일인칭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하면 작가의 목소리가 드러날 것 같았죠. 도시 전체의 이야기를 다루려면 다중시점이 좋을 것 같았어요.” ―집필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개) 링고를 쓸 때가 힘들었어요. 하하. ‘내가 개가 돼봐야 하나’ 싶었죠. 개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작가는 ‘재미있었던 것은 안 물어보세요?’라며 이렇게 말했다. “(사이코패스인) 동해가 되어 글을 쓸 때가 가장 즐거웠어요. 하하.”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고 실망시켜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작가 박완서(1931∼2011)의 단편소설 전집(문학동네·사진)이 완간됐다. 2006년 6권으로 선보였던 전집에 일곱 번째 권인 ‘그리움을 위하여’가 추가돼 총 7권으로 전집이 마무리됐다. ‘그리움을 위하여’에 담긴 작가의 말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나도 사는 일에 어지간히 진력이 난 것 같다. 그러나 이 짓이라도 안 하면 이 지루한 일상을 어찌 견디랴.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세상을 뜬 작가가 출간의 변을 남길 수는 없을 터. 이 글은 2007년 나온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문학과지성사)에 실린 것인데 이번에 재수록됐다. 박완서는 당시 소설집을 내며 “마지막 소설집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했는데 그의 느낌대로 생전 펴낸 마지막 소설집이 됐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CJ E&M, 영화 ‘연평해전’ 배급계약 체결CJ E&M이 영화 ‘NLL-연평해전’의 배급을 맡기로 하고 이 영화의 제작사인 로제타시네마와 협약을 체결했다고 13일 밝혔다. 영화는 한일 월드컵 4강전이 열린 2002년 6월 29일 북한의 도발로 야기된 제2차 연평해전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이 교전으로 윤영하 소령, 한상국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해군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다. 김학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정석원이 주인공 윤 소령 역을 맡았다. 이창현 CJ E&M 영화 홍보팀장은 “제작사가 배급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의 취지에 공감해 이번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현재 막바지 촬영 중이며 후반 작업을 거쳐 올 하반기 개봉될 예정이다.■ 토지문화재단 내달 26, 27일 청소년 문학캠프올 여름방학에는 시인이 되어 보면 어떨까. 토지문화재단은 7월 26, 27일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토지문화관에서 청소년 문학 창작캠프 ‘1박 2일, 시인 되기’를 연다. 이 행사는 중학생 연령의 청소년(1998년 3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출생자)을 대상으로 열리며 나희덕 박형준 김소연 시인이 시 창작 강의와 지도에 나선다. 학생들은 직접 시를 쓰고 시화를 그린 뒤 낭독하는 기회를 갖는다. 참가를 원하는 학생들은 ‘나의 대표시를 말한다’(출판사 b)에 수록된 시를 읽은 뒤 1편 이상의 독후감과 자기소개서, 별도 신청서를 30일까지 제출하면 된다. 세부적인 내용은 토지문화재단 홈페이지(www.tojicf.org) 참조. 참가비는 3만5000원. 033-762-1382■ 사진작가협회 ‘대한민국사진축전’ 17일까지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이사장 류경선)는 17일까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사진, 인간+자연을 품다’를 주제로 제2회 대한민국사진축전을 연다. 작가 70여 명이 참가해 개인전을 열고 관객과 소통하며 김한용 작가와 고 최민식 작가의 작품 초대전도 열린다.}

유홍준 시인(50·사진)이 제28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북천-까마귀’를 비롯한 24편. 상금은 1000만 원이며 시상식은 11월 초에 열린다.}

시인 A 씨는 최근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내용증명서를 받았다. 이달 30일까지 책을 출간하지 않으면 2009년 재단으로부터 받았던 창작지원금 1000만 원을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A 씨는 억울한 면도 있다. 시집을 내기 위한 원고는 몇 해 전 이미 완성했지만 출간하고 싶은 출판사와 일정이 맞지 않았기 때문. 결국 A 씨는 당초 고려하지 않았던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서울문화재단이 창작기금을 받고도 책을 내지 않은 문인들에게 지원금 환수라는 ‘칼’을 빼들었다. 재단이 독촉을 넘어 지원금 환수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재단은 매해 60여 명의 문인들에게 1000만 원씩의 창작기금을 지원해 왔는데, 문인들은 지원 시점으로부터 1년 반 이내에 책을 출간해야 한다. 하지만 출판 불황 속에서 애초 약속했던 기한을 넘기는 문인들이 늘자 재단은 2년간의 유예를 더 줬다. 그리고 이번에 지원받은 시점으로부터 3년 반이 넘었지만 미출간한 문인 10여 명에게 결국 환수조치를 알린 것이다. 재단 측은 “지원금은 세금으로 마련된 것이어서 결과를 내지 못한 부문에 대해 환수조치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지난해 2월 서울시 종합감사에서 (미출간)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물론 몇 년이 지나도록 책을 출간하지 않은 문인들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출판계의 구조적 문제도 크다. 한 출판사 사장은 “지원금을 받은 문인들이 출간을 부탁할 때마다 곤혹스럽다. 손해를 볼 게 뻔한 시집이나 소설집 계약에 선뜻 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단은 창작기금의 일부를 출판 지원금으로 돌리는 방안이나 몇몇 출판사와 출간 협조를 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지원 제도를 둘러싸고 재단과 문인이 얼굴을 붉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작가 성석제의 장편소설 ‘단 한 번의 연애’, 가수 인순이의 에세이 ‘딸에게’를 비롯한 도서 22종이 사재기 의혹에 휩싸였다. 이 책들은 한 도서요약전문업체의 독서캠페인을 통해 독자들에게 배송됐는데, 출판계 사재기 감시기구인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는 이를 ‘변종 사재기’라고 판단하고 과태료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에 이어 이번엔 20개 출판사, 22종의 책이 무더기로 사재기 논란을 빚게 된 것이다. 기존에는 출판사가 직원이나 지인들을 통해 직접 사재기를 했으나 이번에 적발된 사안은 독서캠페인이라는 형식으로 불특정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성석제의 ‘단 한 번의 연애’는 지금까지 3만 부가 판매됐고, 올해 1월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3위까지 올랐다.○ 사재기 수단으로 변질된 독서캠페인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가 문제 삼은 것은 도서요약전문업체 북코스모스가 1월부터 진행 중인 ‘얼리버드 캠페인’이다. 이 업체는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매달 1∼7종의 ‘우수 신간도서’를 선정해 왔다. 회원들은 배송료 2500원만 부담하면 해당 신간을 받아볼 수 있다. 북코스모스 회원은 10만 명에 달한다. 언뜻 보면 독서 진흥을 위한 공익성 캠페인처럼 보이지만 사재기의 비밀은 배송 방법에 숨어 있다. 이 캠페인의 도서 배송은 북코스모스나 출판사가 아니라 교보문고나 예스24 같은 인터넷 서점을 통해 진행된다. 이 때문에 독자가 신청한 도서는 인터넷 서점의 매출로 집계되고, 또한 해당 서점이 집계하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그대로 반영된다. 출판사들은 자사의 책을 손쉽게 순위에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가의 약 35%에 달하는 제작비 손실을 감수하고 북코스모스에 권당 약 2000원씩을 추가로 지원하면서 캠페인에 참여했다. 북코스모스는 출판사의 지원금 외에도 인터넷 서점으로부터 마일리지를 적립받고, 회원들에게서 연 9만 원의 회원비를 받아왔다. 출판사들은 권당 500∼5000부씩 참여했는데, 6개월여 동안 모두 6만3000부가량을 캠페인 행사에 보냈다. 성석제의 ‘단 한 번의 연애’(휴먼앤북스)는 5000부, 인순이의 ‘딸에게’(명진출판)는 3000부, 제9회 세계문학상을 받은 박향의 소설 ‘에메랄드 궁’(나무옆의자)은 3000부, 신정근의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21세기북스)는 4000부 등이었다.○ 성석제, “작가로서 큰 상처다” 출판사들은 해당 캠페인이 사재기 방법인 줄 몰랐다고 주장한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는 “판촉의 한 방법으로 생각했을 뿐 사재기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인순이의 책을 펴낸 명진출판사도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량이) 집계되는 줄 몰랐다”고 밝혔다. 이 캠페인을 벌인 북코스모스의 최종옥 대표는 “광고나 판촉의 방법일 뿐 사재기가 아니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는 행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는 “북코스모스는 인터넷 서점에 판매 수치가 집계되는 것을 ‘부수적 효과’라고 말하지만 이런 효과가 없다면 출판사가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변형된 사재기의 한 유형으로 보고 과태료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출판인회의도 최근 실무회의에서 “사재기 요소가 강하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성석제는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혀 몰랐다. 날벼락 같은 일이어서 굉장히 난감하다. 출판사가 하는 마케팅에 관여한 적도 없거니와 내가 관여할 부분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작가가 신경 써서 할 수 없는 부분이 결국 작가에게 가장 큰 짐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작가로서 상당히 큰 상처다”라고 밝혔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반론보도문]본보는 6월 12일자 A13면 “수상한 독서캠페인…‘단 한 번의 연애’ 등 22권 변종 사재기 의혹” 제하의 기사에서 도서요약 전문업체 북코스모스가 올해 1월부터 진행 중인 ‘얼리버드 캠페인’에 대해 사재기 감시기구인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가 ‘변종 사재기’라고 판단하고 과태료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북코스모스(최종옥 대표)는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로부터 현재 얼리버드 캠페인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지 다른 문제는 없는지 검토 중이며, 센터는 과태료 부과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전달받았고, 본사는 얼리버드 캠페인이 법률 위반이 아니라는 법적 검토를 받은 바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의한 것입니다.}

‘그곳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는 내가/이곳으로 걸어올 수 없는 너에게.’ 고형렬 시인(59)이 최근 펴낸 아홉 번째 시집 ‘지구를 이승이라 불러줄까’(문학동네·사진)를 펴면 이런 짧은 글귀가 눈에 띈다. 여운이 남는 모호한 문장. 여기서 ‘나’는 고 시인이고 ‘너’는 7년 전 세상을 뜬 박영근 시인(1958∼2006)이다. 박 시인은 1980년대 노동시 운동을 이끌었고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시 ‘백제’를 쓴 문인. 고 시인은 네 살 아래 박 시인의 시가 좋아 “한번 만나자”고 먼저 청했단다. “1981년 (서울) 피맛골 막걸리집에서 박 시인을 처음 만났는데 물들인 군복을 입은 그의 눈에서 빛이 났어요. 대뜸 ‘왜 나를 만나자고 했나’라고 묻기에 솔직히 털어놨죠.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이후로 박 시인은 얼큰하게 취하면 새벽에 고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괴롭혔단다. 박 시인은 7년 전 결핵성 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세상을 등졌지만 문우는 아직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너에게 내 슬픔을 주마, 나의 슬픔을 가져가거라/문청(文靑)처럼 너의 슬픔을 건축하리라… 너의 이름은 이 추운 겨울, 어딜 혼자 걸어가고 있니/그 누구의 등도 따라가지 않으면서/이쯤 세월이 지나 우리의 이름은/하나의 시어(詩語)가 되었다….’(시 ‘죽음의 부쳐진 자-박영근 시인에게’에서) 고 시인은 5년 전 서울을 떠나 경기 양평군 지평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전원생활을 시작한 시인들은 대개 자연을 노래한 시편을 많이 선보이지만 그는 이번 시집에서 삭막한 도시의 어둠, 죽음,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을 다수 수록했다. “전원에 와서 도시와 거리를 두니 도시가 더 뚜렷하게 보이더군요. 도시에서 소외되거나 버려진 존재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을 시집에 담았습니다.” ‘바람이 불면 빌딩들이 운다/빌딩 벽을 타고 오른 사각의 도면들이 전율한다/사변과 모서리를 지키고 껴안기 위해//그 아래 황사가 유사(類似) 태평천하처럼 떠 있다/먼지가 된 모래들이 깨어지는 소리가 바각댄다…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소리가/도시에서, 아니 지구에서, 땅속에서, 철골에서/먼 기억으로부터 울리고 있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소리가’에서) 볼일이 있어 서울에 올 때면 빌딩이, 지하철이, 꽉 막힌 도로가 내는 도시의 절규를 듣곤 한다는 시인. 이런 비명을 듣지 못하는 도시인은 어느새 난청 환자가 된 듯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8세기 영·정조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왕권이 강화됐고 민생은 안정됐으며 문화가 융성했다. 책은 조선만이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18세기 청나라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통치하던 중국도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고 문화가 번성한 시기였다. 당시 조선의 왕들은 어진 스승을 자처하며 권력을 유지했고, 청나라 황제들은 한인에게는 전통적 성인(聖人) 군주로, 몽골 사람이나 티베트인에게는 문수보살로 자신을 선전했다. 책은 18세기 조선과 청을 넘어 유럽에도 비교 연구의 돋보기를 들이댄다. 학술자료집이어서 친절성은 떨어진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남조 시인(86)은 올해 2월 이사를 했다. 6년 전 그는 58년간 살던 서울 용산구 효창동 자택을 재단법인 김세중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조각가 김세중(1928∼1986)은 그의 남편이다. 그 집이 예술인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는 공사에 들어가자 100여 m 떨어진 빌라로 옮긴 것이다. 그가 이사한 뒤 방안에 들여놓은 것은 새 가구가 아니라 산소발생기였다. 그는 폐에 석회가 침착되는 질환을 앓고 있는데 폐와 심장의 기능이 약화되자 의사가 산소발생기 사용을 권했다. “어떤 밤에는 숨이 가빠져서 깰 때도 있어요. 전에는 숨을 쉰다는 것이 가장 평범했는데 처음 숙연해졌죠. ‘나와 이것(심장)이, 둘이 함께 살았었구나. 내 안에 내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동안 가려져 있었구나’ 싶었죠.” 김 시인이 17번째 시집 ‘심장이 아프다’(문학수첩)를 최근 펴냈다. 여든이 넘어 찾아온 삶의 깨달음과 사색을 영롱한 시어들에 담았다. 1953년 6·25전쟁으로 부산에 피란 갔다가 펴낸 첫 시집 ‘목숨’(수문사)이 세상에 나온 뒤 꼭 60년 만이다. “1948년 서울대(사범대 국문과) 다닐 때 연합신문을 통해 등단하기는 했지만 저는 첫 시집이 제 문학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시인은 첫 시집 출간 후 60년의 의미를 이렇게 되새겼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내며 “절실하고 심각했다”고 말한다. 젊었을 때는 약간의 재능도 있고 예술적 흥분과 목마름도 있어 열심히 썼는데 이번엔 무언가 자신의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시로 옮겼다고 한다. 이른바 ‘뿌리론’이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지상의, 반의 풍경만 보다가 그 밑의 절반인 지하, 뿌리를 생각해보게 됐어요. 우리의 인내와 양분을 꼭대기까지 끌어올리는 인고와 아픔들이죠. 모든 생명체가 최선을 다해서 삶이라는 등불을 발화시키는 것 같아요.” 시인은 이것을 시로 옮겼다. ‘…겨울나무는 이제/뿌리의 힘으로만 산다//흙과 얼음이 절반씩인/캄캄한 땅속에서/비밀스럽게 조제한 양분과 근력을/쉼 없는 펌프질로/스스로의 정수리까지/밀어 올려야 한다…겨울나무들아/새 봄 되어 초록 잎새 환생하는/어질어질 환한 그 잔칫상 아니어도/그대 퍽은/잘생긴 사람만 같다’(시 ‘나무들’에서) 가까이 지내던 출판사와 후배들이 출간기념회를 열자고 청했지만 시인은 고사했다. ‘첫 시집이 환갑을 맞는 일’은 문단에서도 드문 일이지만 시인은 “좀 부끄러워 그랬다”며 말을 아꼈다. 시인은 수필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1981년 펴낸 수필집 ‘바람에게 주는 말’은 26만 부를 넘겼다. 뜻밖에 서정주 시인(1915∼2000) 얘기가 나왔다. “항상 열등감을 느꼈어요. 선생님 책(시집)보다 변변치 않은 제 책(수필집)이 당시 더 많이 나갔지만 감히 겨뤘다고 얘기하면 제가 오만한 사람이 되는 거죠.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2주 전 병상에서 뵈었는데 반가워하시던 모습이 선하네요.” 그의 얘기는 지난 60년의 순간순간을 오가며 이어졌다.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열렸던 서울대 졸업식, 서정주 선생과의 인연, 자택 공사 진척 상황 등이었다. 최근 논란이 돼 절판에 회수까지 된 한국시인협회의 인물시집 ‘사람’(민음사)에 이르자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일부 생각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100명이 넘는 시인이 참가한 시집이 절판되는 것은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죠. (논란이 된) 몇 편의 시를 빼고서라도 출간이 재개됐으면 좋겠어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54)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온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재국 씨는 1989년 오디오 전문 계간지 ‘스테레오사운드’를 발간하며 출판계에 뛰어들었고, 이듬해 ㈜시공사로 법인을 전환했다. 1996년 교양서 시리즈인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를 내고, 1997년 아동도서 브랜드인 시공주니어를 설립해 사업을 확장했다. 시공사는 국내 문학보다는 외국 문학과 잡지 출간에 집중하며 성장했다. 1990년대 초반 미국 작가 로버트 제임스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100만 부를 넘겼다. 외환위기로 출판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2000년에는 계열사인 리브로를 통해 을지서적을 비롯한 중대형 서점을 인수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시공사는 디지털 만화콘텐츠 전문기업 파프리카미디어를 비롯한 14개 회사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시공사의 지난해 매출은 442억7700만 원에 영업이익이 30억900만 원이다. 2011년에는 매출 421억8500만 원, 영업이익 12억4700만 원을 기록했다. 재국 씨가 지분 50.53%(30만3189주)를 갖고 있으며, 부인 정모 씨와 동생 효선 재용 재만 씨가 각각 5.32%(3만1914주)를 갖고 있다. 가족이 전체 지분의 71.81%를 소유하고 있는 ‘가족 기업’이다. 한편 배우 출신 박상아 씨(41)와의 비밀결혼으로 화제를 뿌렸던 차남 재용 씨(49)는 국민채권 형태로 관리해 온 자금 73억5000만 원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확인돼 2004년 구속되기도 했다. 박 씨는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으로 입학시킨 혐의로 최근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이재찬 씨(39·사진)가 제37회 오늘의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장편소설 ‘펀치’. 상금은 3000만 원이며 시상식은 하반기에 열린다.}

《 “한국의 고려시대 때 송나라 상인들이 고려의 벽란도를 통해 비단을 비롯한 귀중품을 가져왔지요. 그때 한국에 왔던 상인들이 대개 푸젠(福建) 성 상인들이었어요.” 소설가 김주영(74)의 설명에 푸젠 성 출신인 소설가 판샹리(潘向黎·47)는 “이런 얘기를 처음 듣는다”며 반색했다. “푸젠 성이 한국과 역사적으로 상당히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지 몰랐어요. 중국은 한국과의 유구한 역사에 대해 연구나 홍보를 많이 안 하는 것 같아요.” 》26일 제7차 한중작가회의가 중국 푸젠 성 샤먼(廈門) 시에서 열렸다. ‘자연과 인간, 아름다운 공존의 방식’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양국 작가 40여 명이 참석했다. 작가들은 27일까지 서로의 작품을 바꿔 낭독하는 것을 비롯해 양국 문학과 문화에 대해 생각을 나눈다. 김주영과 판샹리의 대담을 통해 문학의 주제 선택, 베스트셀러 기준, 사재기 문제까지 다양한 얘기를 들어봤다. 판샹리는 루쉰문학상, 상하이문학 우수작품상을 받은 중견 작가. 주로 도시를 배경으로 한 감각적 소설을 써왔다. ▽김주영=한국은 핵가족화가 가속되면서 인간관계가 차갑고 냉정해지고 있다. 이런 ‘이성적 인간’을 그린 소설도 많이 나온다. ▽판샹리=중국도 마찬가지다. 또한 중국인은 예전에는 (국가가 지정한) 어떤 집단이나 단체에 소속돼 일을 해왔는데, 지금은 이런 게 와해되면서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는 데 대한 고독감을 표출하는 사람도 많고, 이를 다룬 작품도 많다. ▽김=2년 전 중국 시안(西安)에 갔을 때 ‘베스트셀러 소설의 내용이 주로 어떤 것이냐’고 물었더니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현지 작가가 말하더라. 좀 놀랐다. ▽판=저는 생각이 좀 다른데, 현재 중국에선 추리소설 같은 장르소설이 인기가 높다. 경찰의 수사 과정이나 해커를 다룬 소설들이다. 인구 13억의 나라 중국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몇 만 부일까. 판샹리는 “보통 10만 부를 넘겨야 베스트셀러라 불리고, 가장 인기가 높은 작품은 200만 부까지 나간다”고 말했다. 인구는 한국보다 20배 이상 많지만 베스트셀러 기준은 엇비슷한 셈이다. ▽김=한국에는 현안이 하나 있다. 사재기 문제다. 한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작가(황석영)가 자기 책을 내준 출판사(자음과모음)를 고발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중국에도 이런 문제가 있나. 판샹리는 통역을 통해 사재기가 무엇인지 한참 설명을 들은 뒤 “이런 문제를 처음 듣는다”며 놀라워했다. “중국에서 그런 행태를 보지 못했어요. 중국은 작가들이 책을 내면 어느 정도 팔릴 것인가 거의 정해져 있어요. 보통 2만 부에서 8만 부 사이죠. 대부분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죠. 다만 중국에서는 매체들이 인기 작가에 대해 ‘몇 만 부 팔렸다’ ‘얼마 벌었다’는 식으로 추측 기사를 많이 써서 작가들이 뒤늦게 오보라고 항의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요.” 대담을 마친 뒤 김주영에게 최근 불거진 사재기 논란과 이에 대한 23일 황석영의 기자회견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굉장히 씁쓸해요. 한국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작가가 그런 피해를 입었다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가가 회사를 고발하는 것까지는 가지 말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결과적으로 작가가 욕을 본 셈이 됐지만 출판사가 처음부터 작가를 욕보이려고 (사재기를)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샤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 거리에서 그를 알아보고 사인 요청이 오면 “미안합니다만, 저를 아인슈타인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요”라며 재치 있게 넘겼단다. 늘 자신의 명성이 과분하다고 느꼈으며, 개인에 대한 우상이나 숭배는 부적절하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그가 남긴 신문과 잡지 기고, 강연 내용을 묶은 책. 과학, 종교, 유대인, 평화, 개인, 학문, 경제 등 7개 주제로 글을 정리했다. 겸손하면서도 명쾌한 그의 지적 세계를 한 권으로 살펴볼 수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서울 강북의 한 남자 고등학교 국어시간. 평소 화장기 없이 털털한 옷차림이었던 여자 교사가 분홍색 원피스에 화장을 곱게 하고 교실에 들어오자 아이들이 술렁댄다. 한 학생이 “선생님, 오늘 쩔어요!”라고 말하자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된다. 하지만 정작 교사는 애매하다. 예쁘다는 뜻일까, 아님 짜증난다는 뜻일까. ‘쩐다’는 말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는 없지만, 학생들이 흔히 쓰는 비속어, 은어들. 어원과 정확한 뜻조차 애매한 이들 단어에 대해 5년차 고교 국어교사인 저자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정리해갔다. 더 신기한 것은 지난해 2학기에 당당히 국어 시간에 비속어 수업을 5분씩 진행한 것이다. 반응은 어땠을까. “선생님 입에서 비속어가 나오니 학생들이 ‘왜 그런 말을 써요’라며 오히려 신기해했죠. ‘너희들이 자주 쓰는 말들의 정확한 뜻을 알려주려고 하는 거야. 뜻은 알고 써야 하지 않겠니’라고 설명했죠.” 고충도 있었다. 사실 비속어라는 게 욕이 대부분이고 특히 성적인 표현에서 만들어진 것이 많아서 어원을 설명할 때마다 부끄러웠다는 것. 아이들이 맞장구치고 실실거리는 모습을 보니 힘도 빠졌다. 하지만 적나라한 어원을 몇 번 설명하자 예전처럼 수업 중간에 학생들이 무의식적으로 비속어를 말하는 양상이 줄었다고. 학생들에게 무조건 “쓰지 마” “안 돼”라고 말하기보다는 비속어의 뜻을 설명해주고 자연스럽게 사용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한 것이다. 책은 ‘꽐라’ ‘존나’ ‘쩐다’ ‘쌩까다’ ‘간지나다’ ‘깝치다’ 등 청소년들이 자주 쓰는 단어 70여 개의 뜻을 풀이했고, 그와 관련해 저자가 겪은 에피소드들을 덧붙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언어 습관과 교육 현장에 대한 생생함이 느껴져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아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비속어는 ‘존나’다. ‘남성의 성기가 튀어나올 정도’라는 어원을 갖고 있으며 현재는 아이들에게 ‘아주’ ‘매우’와 동의어가 돼버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학생들은 수업 중에 “선생님 애들이 존나 떠들어요” “선생님 칠판이 존나 안 보여요”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정작 황당한 것은 저자의 다음 말이다. “보통 이런 말을 하는 학생들은 그나마 수업 시간에 잘 참여하는 모범생들이다. 보통 공부할 마음이 없으면 수업 시간에 뭘 하는지 관심도 없고 선생님에게 질문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자신도 많이 배웠고, 스스로 반성도 했다는 저자. 이를테면 수업시간에 분위기를 깨고 장난치고 웃는 학생에게 홧김에 “어디서 실실 쪼개고 있어?”라고 말했다는 것. “‘쪼개다’라는 말은 주로 강자가 약자에게 위협을 가할 때 많이 써온 단어다. … 강하게 말해야 (학생이) ‘꼬리’를 내린다고 정당한 변명을 해보고 싶지만 나는 그 학생에게 강자이고 싶었던 거였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비속어 사용을 조심하게 됐지만 저자는 “비속어 사용을 금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적절하게 사용하면 우리 대화를 말랑말랑하고 재미나게 만들어준다는 것. 국어교사로서 소신 발언인 셈인데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책은 비속어를 ‘B끕 언어’라 칭하며,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B급 정서가 세계인을 움직인다고도 말한다. “B급은 A급보다 솔직하고 당당하다”는 논리도 편다. 하지만 싸이의 B급 뮤직비디오는 ‘장난’이지만, B급 언어(비속어)는 ‘언어폭력’에 가깝지 않을까.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사재기 의혹이라는) 오물이 저한테 튀었어요. 튄 김에 들어가서 청소하고 좋은 텃밭을 만들어서 새로운 씨앗을 뿌리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자신의 등단 50년 작인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가 사재기 논란에 휩싸인 소설가 황석영 씨(70·사진)는 23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아직도 충격과 모욕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당 책을 낸) 자음과모음이 아직 직접적인 해명도 없이 (사재기를) 부인하고 있는데 사실 여부를 밝히고, 독자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황 씨는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번 사태가 전업 작가로서 개인의 불명예로 그칠 수 없는 사회 문제임을 깨달았다”면서 “잘못이 있는 곳에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며 (사재기 처벌을 강화하도록) 현행법을 개정하기 위한 청원운동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출판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며 형사소송을 위한 법리 검토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출판계에 만연한 사재기 근절을 위해 △검찰이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수사에 나설 것 △교보문고를 비롯한 대형서점은 지난 5년간 베스트셀러 도서의 판매 자료를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에 제공할 것 △국회는 관련 법 개정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박범신 신경숙 김영하의 팬이라면 솔깃할 소식이 있다. 이들과 오붓이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다음 달 찾아온다. 교보문고는 독자 이벤트 ‘우리들의 정다운 저녁시간’ 신청을 31일까지 받는다. 해당 작가의 도서를 구입한 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 있는 해당 이벤트 페이지에 댓글로 참가 신청을 하면 된다. 작가들은 댓글을 읽고 직접 저녁식사에 초청할 독자를 정한다. 박범신은 독자 10명, 신경숙 김영하는 각각 독자 5명과 만난다. 아직 장소와 일시는 미정이다. 국내 대표적 작가들과 함께하는 자리지만 아직 신청은 저조한 편이다. 2일부터 시작한 이 이벤트의 온라인 신청자는 아직 50명이 채 안 된다. 교보문고 측은 “원래는 황석영 작가도 이벤트에 참여했지만 (사재기) 논란 이후 빠졌고, 그 때문에 며칠 동안 해당 이벤트를 홈페이지에서 내린 영향이 있다”면서 “교보문고 각 매장에서 받는 오프라인 신청 집계가 완료되면 참가자가 늘 것”이라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국시인협회가 펴낸 시집 ‘사람’에 대해 시인 55명이 22일 협회 집행부의 사과와 시집의 전량 회수를 요구하고 나섰다. 논란이 커지자 시인협회는 이날 오후 6시부터 4시간가량 집행부 회의를 열어 사과 및 전량 회수로 입장을 정리하고 이를 23일 발표할 예정이다. 시집을 낸 민음사도 이 시집을 회수하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고영 김요일 박정대 박지웅 손택수 전윤호 조동범 조현석 채풍묵 함민복을 비롯한 시인들은 이날 ‘다시 시인으로 돌아가자’라는 제목의 글을 협회 홈페이지에 올려 “(해당 시집이) 이승만 박정희 등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들의 삶과 행적을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과오를 언급하지 않았고, 친일 행적으로 비판받는 인물들과 재벌 총수들에 대해 찬양 일색의 작품들을 게재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협회 집행부에 사과와 함께 시집에 들어간 인물의 선정 기준을 밝히고 배포된 시집을 전량 회수할 것을 요구했다. 시인협회는 최근 한국 근대사 인물 112명에 대한 시 112편을 모은 ‘사람’을 펴내면서 일부 인물에 대해 공로 중심으로 다룬 시를 포함시켜 논란을 빚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예술계와 학술계 원로들의 ‘동거’가 26년 만에 끝날까. 서울 서초구 반포4동 대한민국학술원 건물에 입주해 있는 대한민국예술원이 독립 건물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1954년 나란히 창설된 예술원과 학술원은 1987년 반포동에 3층짜리 학·예술원 신청사를 짓고 입주했다. 당시만 해도 예술원 회원은 65명, 학술원 회원은 100명(이하 정원 기준)으로 3층짜리 건물을 함께 써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1988년 학술원법이 개정되며 학술원 정원은 150명으로, 1996년 예술원법이 개정되며 예술원 정원도 100명으로 늘어났다. 1980년대 후반에 비해 양쪽 회원을 합한 수가 100명 가까이 증원되고 각종 사업이 증가하자 양 기관은 중앙부처에 모두 공간 부족을 호소해 왔다. 현재 건물 1층은 예술원, 2·3층은 학술원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개관 당시만 해도 학술원과 예술원이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 산하에 함께 있었고, 건물은 공동 관리 개념이었다. 그러나 1989년 예술원이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로 소속이 바뀌고, 학술원이 건물 관리를 전담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학술원이 회원 수도 훨씬 많아 예술원이 학술원에 세를 사는 것처럼 됐기 때문이다. 김정옥 예술원 회장은 “학술원이 그동안 말이 없다가 (최근에는) 공간이 좁다고 우리보고 ‘나가 달라’고 하더라. (예술원 이전에 대해) 당국에 의견을 전달했고, 대통령직인수위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예술원 사무국은 회원들의 의견을 받아 서울 덕수궁 석조전과 대학로 옛 예총회관 등을 이전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다. 이미 실사를 통해 적합 여부를 살핀 곳도 있다. 강병구 예술원 사무국장은 “덕수궁 석조전에 대해선 일부 반대 의견도 있다. ‘전 국민이 향유할 공간을 예술원만 쓰는 게 합당하냐’는 지적이다. 서울 동숭동 대학로의 옛 예총회관은 현지답사를 해보니 엘리베이터와 주차장이 없어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계속 이전 장소를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