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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 시인(58·사진)이 한국작가회의 산하 민족문학연구소가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다. 수상 시집은 ‘그 모든 가장자리’(창비).}

‘엄마를 부탁해’로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첨병이 된 소설가 신경숙 씨(50). 그에게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독자나 지인들로부터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다. “소설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얘기는 쓸 생각이 없으세요?” 작가에게 유머가 없다니. 처음엔 뜬금없는 얘기라고도 넘겼지만 같은 질문이 반복되다 보니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유머라든지 그런 거에는 제가 좀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그것(유머)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약간 서운한 점도 있습니다.” 작가의 하소연은 이랬다. 이를테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년)에서 실종사, 의문사를 비롯해 죽음의 고리들이 반복되고 연계돼 있지만, 굉장히 노력해서 잠깐이라도 얼굴을 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중간 중간 열심히 넣었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누르는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그런 ‘숨은 유머’를 짚어 주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소설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문학동네·사진)를 펴냈다. 21일 서울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함빡 웃게 만드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밝게 웃었다. 책은 확실히 웃긴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스님에게 전도하려고 애쓰는 젊은 목사 얘기, 스님이 집 앞에서 공양을 강요하며 ‘안∼주면 가나봐라∼’라고 염불을 외자 집에 있는 아낙네가 ‘그∼칸다고 주나봐라∼’고 응수했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읽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포근한 얘기들도 있다. 작가가 2008년 1월부터 2년여 동안 월간 ‘북새통’에 연재한 ‘짧은 소설’ 26편을 모았다. “매달 원고를 넘기면서 글을 쓰는 시간 자체가 즐겁고 좋았어요. 글로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것 같은 순간순간의 소중한 느낌을 글에 담았죠. 항상 긴장되고 늘 무엇을 관찰하는 게 제 삶인데, 그런 쪼여 있는 시간들을 풀어주는 의미의 글들이죠. 독자에게도 삶의 긴장된, 확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 순간들을 다른 순간으로 전환시키고 싶을 때 읽는 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1985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등단해 20여 권의 소설책을 펴낸 신경숙은 “저도 쉰 살이 됐다”며 웃었다. 그동안 문학이 워낙 무겁게 다가왔다는 그의 고백. 인간의 힘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비의(悲意)를 담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해 왔단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는 비의뿐만 아니라 ‘명랑성’도 다루고 싶다고 했다. “후기 작품에서는 두 가지가 배척하지 않고 거울처럼 서로를 빛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간담회를 마치고 신경숙과 한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었다. 내년 4월 ‘어디선가…’의 영문판이 미국에서 출간된다. 새 장편은 4개의 삶이 교차되는 옴니버스 소설과 앞을 못 보는 사람 얘기를 두고 저울질하고 있다고 했다. 330mL짜리 ‘호가든’ 맥주 두 병을 달게 비운 작가는 매일 아침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요가 수업 얘기, 최근 다녀온 중국 출장에서 체했다는 얘기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러던 중 그가 내뱉은 말. “나 되게 유머 있는데, 잘 몰랐죠?”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무용계가 봄을 맞아 기지개를 켜고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무용 공연이 앞다퉈 무대에 오른다. 세계 유명 안무가의 공연에서 신예들의 힘찬 무대까지. 성큼 다가온 봄의 역동성을 에너지 넘치는 무용가들이 펼치는 몸의 언어에서 읽어보면 어떨까. 국립현대무용단은 29일∼4월 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홍승엽의 댄스살롱’을, 4월 5∼7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벽오금학’을 연달아 무대에 올린다. 국내 안무가 초청공연 형식의 ‘…댄스살롱’은 김정은 박근태 송주원 안영준 4명의 안무가가 각각 15분 안팎의 신작을 발표하는 무대. 다양한 주제를 실험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돋보인다. 홍승엽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 직접 작품 해설에 나선다. 1만5000원. 02-580-1300 ‘벽오금학’은 소설가 이외수의 ‘벽오금학도’(1992년)를 무용으로 풀어낸 무대. ‘인연’을 주제로 땅과 하늘, 그리고 사람의 연(緣)을 섬세한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특히 무대와 객석을 넘나드는 붉은 실타래를 통해 안무가와 관객의 인연까지 짚어본다. 여백의 미를 살린 무대와 조명, 그리고 몽환적인 음악이 어우러진다. 1만5000원. 02-580-1300 4월 10∼1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오르는 ‘안성수·정구호의 단(壇)’은 국립무용단의 안무가 초청 프로젝트 첫 번째 작품. 현대무용가 안성수가 안무를,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을 맡았다. 지난해 국립발레단 창단 50주년 기념 창작발레 ‘포이즈’에 이은 두 번째 공동작업. 안성수의 한국적 춤사위에, 정구호의 미니멀리즘이 결합한다. 3막9장으로 구성된 공연의 각 막의 주제는 이체동심(異體同心), 자중지란(自中之亂), 혼연일체(渾然一體). 인간의 심리적 변화와 갈등, 중립 의지를 무용으로 표현한다. 2만∼7만 원. 02-2280-4114∼6 올해 3회째를 맞은 ‘한팩 라이징스타’는 젊은 안무가들의 패기와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 차세대 안무가 6명이 3명씩 짝을 이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마음껏 펼치는 공연이다. ‘1팀’인 임지애 정정아 최승윤은 29∼30일에, ‘2팀’인 곽고은 안수영 최수진은 4월 5∼6일에 각각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선다. 1팀은 수상경력과 활동상황을 기준으로, 2팀은 차세대안무가클래스 쇼케이스 심사평가로 선발됐다. 2만 원. 02-3668-0007 세계적 안무가인 시디 라르비 셰르카우이와 다미앵 잘레의 작품 ‘바벨(BABEL)’은 5월 17, 18일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선다. 제32회 국제현대무용제 모다페(MODAFE)의 개막작. 세르카우이는 ‘볼프스부르크 최고 젊은 안무가상’ ‘니진스키 젊은 안무가상’을 수상한 벨기에를 대표하는 안무가. 바벨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언어와 국가, 종교에 대한 정체성과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3만∼5만 원. 02-765-5352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얼마 전 한 출판인을 만나 이런 얘기를 들었다. “‘소설문학’(사진)이 창간됐는데 한번 기사로 소개를 해봐라. 뜻이 가상하지 않으냐”라는 권유였다. 이 외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소설 전문 계간지 소설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을 피부로 느낀다. 이른바 요즘 문단 내 뉴스다. 답은 창간호 안에 실린 ‘사고(社告)’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원고를 청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인문학상을 뽑지 않습니다.’ 신선했다. 기존 문예지들이 세(勢)를 늘렸던 손쉬운 방법을 스스로 버린다는 선언. 일종의 자기반성처럼도 들렸다. 이렇게 이해하면 쉽다. 문예지가 운영하는 신인상은 일반 회사로 치면 신입사원 채용과 같다. 문예지는 이런 작가지망생을 ‘고용’(등단)하고, ‘임금’(원고료)을 준다. 이미 등단한 작가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많지만 유력 문예지의 지면은 한정돼 있다. 문예지는 원고 청탁과 신인상을 비롯한 각종 문학상으로 권력화된다. 이 권력에 편입되기 위해 1, 2년 동안 작품 출간을 ‘대기’하는 작가도 있다. 그럴수록 문예지의 힘은 커지고, 이 같은 상황은 반복된다. 소설문학은 이 틀을 깼다. 원고 청탁을 하지 않는 대신 원로나 중진 작가들의 추천, 작가들의 투고 작품을 심사해 지면을 메울 예정이다. 신인상을 비롯한 어떤 문학상도 배제한다. 출판사 북인을 운영하는 조현석 시인이 발행인을 맡았고, 소설가 신승철 김도언 구경미 김이은 김나정은 편집위원으로 나섰다. 후배들의 취지에 공감한 윤후명 문형렬 이병천 임철우 이승우 강병석 이순원 심상대는 기획자문위원으로 나섰다.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연재소설이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신문과 잡지에 신작을 연재하는 전통적 방법을 고수했던 소설 연재는 2007년부터 인터넷 연재소설이 시작돼 이제는 꽤 보편화됐다. 앞으로는 스마트폰의 액정만 터치하면 유명 작가들의 연재소설을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모바일 소설 연재’ 시대가 열린다.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플래닛과 자음과모음은 5월부터 ‘모바일 소설 연재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1월 네이버가 장르 소설 작가들을 상대로 ‘웹소설’을 시작한 데 이어 이번에는 순수문학 작가들이 대거 휴대전화 액정 속으로 들어간다. 박범신 정이현 조경란 전경린 김이설 김선영 남인숙을 비롯한 작가 7명이 참여했다. ‘시간을 파는 상점’의 작가 김선영은 청소년 소설을, 남인숙은 에세이를 선보인다. 나머지 5명은 신작 장편을 선보인다. 5월부터 2, 3명의 작가가 주 3회 정도 함께 연재한다. 이번 연재 프로젝트는 6개월간 이어진다. 연재소설은 SK플래닛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마켓인 T스토어를 통해 무료로 공개될 예정이다. T스토어 가입자는 1월 기준 1640여만 명에 달한다. 문학은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급속한 정보통신 환경 변화에 대처가 늦었다.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소설 연재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 파급력은 크지 않았다. 무료 모바일 연재는 문학에 대해 관심이 적었던 대중에게 작품이 손쉽게 노출돼 연재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작가 자신들도 새로운 도전을 반기고 있다. 2007년 8월 네이버에서 ‘촐라체’를 연재해 인터넷 연재 1호 작가가 된 박범신은 “문학이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연재 공간의 특성상 기존 신문이나 잡지 연재와 다른 형식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경린은 “작품을 연재하는 매체 자체가 굉장히 빠르게 변해서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며 “모바일이란 형식을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고 쓰고 있다. (200자 원고지) 600매 원고를 완성해 내달 중 출판사에 넘길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콘텐츠에 목마른 정보통신기업과 보다 파급력 있는 발표 공간을 원하는 작가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모바일을 통한 연재물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SK플래닛은 자음과모음 외에도 김영사, 문학동네를 비롯한 여러 출판사와 서비스를 협의했다. 올 상반기 안에 음원, 전자책 등 디지털 콘텐츠를 유통하는 ‘카카오페이지’를 출범할 예정인 카카오톡도 출판사들과 각종 제휴를 타진하고 있다. 앞서 서비스를 시작한 네이버 ‘웹소설’은 현재 15명의 작가가 로맨스, SF판타지, 무협 등 장르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2월 한 달 동안 스마트폰 이용자 80만 명(안드로이드 휴대전화 이용자 기준·PC와 아이폰 이용자 제외) 이상이 웹소설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인기가 있는 한 연재소설은 월간 100만 명 이상이 작품을 읽은 것으로 자체 집계됐다. 현재 한 달 1700만 명 안팎이 방문하는 네이버 웹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모바일 소설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하지만 장르 작품이 아닌 순문학 작품도 모바일 시장에서 안착할지는 미지수다. 모바일 소설의 경쟁자는 다른 문학작품이 아닌 게임과 만화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장르소설은 게임과 만화의 대체재 성격이 있다. 순문학이 그런 역할을 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진은영 시인(43·사진)이 제15회 천상병 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 시집은 ‘훔쳐가는 노래’(창비). 시상식은 다음 달 27일 오후 2시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1879∼1944·사진)이 말년을 보낸 서울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은 작은 암자처럼 고즈넉하다. 심우장에 오르는 좁은 비탈길은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 어지럽고 지저분하다. 성북동에서도 가장 후미진 이 언덕배기 동네는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돼 주민들의 심경도 복잡한 듯하다. 담벼락에 온갖 욕설까지 섞인 구호가 덕지덕지 붙었다. 한용운이 살아서 이런 정경을 본다면 얼마나 난감했을까. 한용운은 충남 홍성의 외진 촌락에서 태어났다. 향리의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했던 그는 동학에 가담하면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가난한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큰 뜻을 세웠다. 그러나 동학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설악산 오세암에 숨어든 것은 나이 스물이 훨씬 넘어서의 일이었으며 이때부터 불가에 입문했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기 직전 그는 일본에 건너가 새로운 문물을 두루 살피고 돌아왔다. 경술년(1910년) 국치를 당하자 그는 망국의 한을 품고 만주로 떠돌다가 마음을 다잡고 돌아와 침체한 불교의 혁신운동을 내세워 유명한 ‘불교 유신론(維新論)’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의 불교운동은 종교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민족의 독립운동으로 확대되었다. 불교계를 대표하여 33인 중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참여한 한용운은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3년 가까이 투옥됐고, 옥중에서 ‘조선 독립의 서(書)’를 기초하였다.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온 후 백담사로 다시 들어가 거기서 시집 ‘님의 침묵’(1926년)을 내놓았다. 이후 많은 한시(漢詩)와 시조를 발표하면서 불교 개혁의 구상을 실천해 나아갔다. 그는 한국 불교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섰던 승려였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던 저항적인 지식인이었다. 심우장은 한용운이 평생에 가져본 유일한 집이었다. 서울에서 지낸 말년의 삶이 그대로 이 집에 담겨 있다. 백담사를 떠나 서울에 올라와 이곳저곳 절간을 떠돌며 지내고 있던 그가 1933년 유숙원(兪淑元·1898∼1965) 여사와 혼인하자 지인들이 뜻을 모아 이 집을 지어주었다. 그는 승려의 결혼을 지지했다. 한용운은 집이 생기자 심우장이라는 택호를 붙였다. 불도(佛徒)의 한 사람으로 초심(初心), 구도(求道)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이 이름을 붙인다는 설명도 하였다. 그리고 그 유명한 ‘십우송(十牛頌)’을 쓰기도 하였다. ‘십우송’ 10편의 시 가운데 첫 수인 ‘심우(尋牛)’는 이렇게 시작된다. ‘원래 못 찾을 리 없긴 없어도/산속에 흰 구름이 이리 낄 줄이야!/다가서는 벼랑이라 발 못 붙인 채/호랑이 용 울음에 몸을 떠느니’ 한용운은 심우장에 기거하는 동안 부처의 말씀이 아니라 중생의 언어와 씨름했다. 그는 ‘심우장 산시(散詩)’를 썼고, 장편소설 ‘흑풍’ ‘박명’ ‘후회’ 등을 발표했다. 그리고 잡지 ‘불교’를 속간해 ‘신불교’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면서 많은 불교 관련 논설을 직접 썼다. 그는 일제가 강요했던 창씨개명운동을 거부하였고, 이광수 등이 조선인 학병 출정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고 다닐 때 그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심우장은 늘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1944년 그는 한평생을 바쳐 투쟁하며 열망했던 조국의 광복을 끝내 보지 못하고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용운의 위대함은 그의 투철한 삶과 의지를 통해 확인되는 것이지만 특히 그의 글쓰기가 이를 입증한다. 투철한 역사의식도 글쓰기를 통해 구현되었고 깊은 정서도, 높은 이상도 글을 통해 구체화하였다. 특히 오랫동안 한학 수업을 받았을 뿐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통한 신학문 접근이 전혀 불가능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시집 ‘님의 침묵’에 수록된 한용운의 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13일 찾은 심우장은 찾는 이 없이 고즈넉했다. 마당 앞에 수령 90년이 넘은 커다란 소나무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심우장 본채는 작은 기와집이 비교적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이 일대가 재개발되어 성북동 언덕보다 더 높은 아파트로 둘러싸이면 어쩌나 걱정이다. 저 큰 소나무와 어울리는 ‘만해공원’이라도 들어선다면 어떨까. 돌아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죽산 조봉암(竹山 曺奉岩·1898∼1959). 조선공산당 창당의 주역이며 광복 후에는 우익으로 전향해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인물. 이승만에 의해 장관이 됐지만 결국 이승만에 의해 제거된 비운의 정치인이다. ‘약산 김원봉 평전’ ‘김산 평전’을 선보였던 저자는 2년 반의 자료조사, 3년의 집필 기간을 거쳐 600쪽 넘는 분량으로 죽산의 생애를 실감나게 조명했다. 죽산은 1952년, 1956년 두 차례 대통령선거에 나섰다가 이승만에게 패배한다. 이승만의 정적으로 떠오른 죽산은 1958년 1월 진보당 전 간부가 북한의 간첩과 내통하고 북한의 통일방안을 주장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된다. 1심에서는 5년 형을, 2심에서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2심 판결 사흘 뒤인 10월 28일 이승만은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봉암 1심 판결은 말도 안 된다. 그때에 판사를 처단하려 했으나 여러 가지 점을 생각해서 중지했다. 같은 법을 갖고도 한 나라 사람이 판이한 판결을 내리게 되면 국민이 이해가 안 갈 것이며 나부터도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사법권 독립이 요원했던 시절. ‘정치재판’의 희생자인 죽산은 1959년 2월 대법원에서 간첩죄 등이 인정돼 사형이 확정된다. 죽산은 당시 유일하게 접근이 허용됐던 김춘봉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판결은 잘됐어요. 무죄가 안 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요. … 이념이 다른 사람이 서로 대립할 때는 한쪽이 없어져야 승리가 있는 거고 그럼으로써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거지요.” 선고 5개월 후 사형이 집행됐다. 50년 넘게 흐른 2011년 1월, 대법원이 재심을 열어 죽산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그를 잊은 뒤였다. 저자는 죽산의 딸인 조호정 여사를 비롯한 관계자 인터뷰,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항일유적지 답사, 각종 학술·언론 자료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죽산을 살려냈다. 소설가인 저자는 미려한 문장과 세밀한 묘사를 덧붙였다. 딱딱한 보통 평전들과 달리 편하게 읽힌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한 대형 종(鐘)이 만들어졌던가?’ 이제는 아련한 기억으로 남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소설은 한반도가 온통 축구 열기로 뜨거웠던 그때 20t짜리 성덕대왕신종을 넘어서는 30t짜리 월드컵 기념종을 만들었던 두 장인의 성공과 좌절, 절망을 그린다. 물론 당시 그런 종도, 그런 종을 만든 사람도 없다. 하지만 소설은 평생의 역작으로 남을 종 제작에 자신을 내던진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다. 마치 진짜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서울 외곽의 시골마을인 금형리. ‘혐오시설’로 분류된 주물 업체들이 86아시아경기대회와 88올림픽이 개최되던 즈음 서울에서 밀려나 하나둘 모여든 곳. 월드컵을 앞두고 철로 된 기념품이 각광을 받으며 금형리도 활기를 띤다. 무엇보다 사람의 관심을 끈 것은 주철장인 규철이 만드는 거대한 기념종.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1년여 동안의 작업 끝에 첫 타종이 거행된다. 지축을 울리는 우렁찬 종소리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지만 규철은 절망한다. 종 어딘가에 금이 가서 깨진 소리가 미묘하게 들린 것. 축구장 한편에 종을 걸다 지지물이 깨져 종은 결국 훼손된다. 실패한 규철에게 모든 책임이 쏠리고 그는 광인으로 변한다. 초반부를 차지하는 기념종 제작과정은 이야기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사실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실패 후 종 제작에 다시 도전하는 사람들의 끈질긴 집념이다. 예술혼 운운은 지루해질 수 있다. 참고 읽을 진득한 독자도 적다. 작가는 여기에 여러 미스터리를 가미하는 영민함을 선보인다. 규철의 아내가 살해되고 규철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살해현장을 목격한 규철의 딸은 두 남성의 흔적을 봤다. ‘범인이 누구인가’란 의문은 작품 끝까지 이어지며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또 다른 미스터리는 거대 종 제작의 비밀. 다시 30t짜리 종 제작에 돌입한 규철, 그리고 그의 친구인 한위는 아기를 넣어서 만들었다는 성덕대왕신종의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결국 거대한 종이 맑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사람의 ‘인(P)’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일까. 장인들의 고민은 깊어진다. 작품은 종 제작과 살인사건이란 두 가지 비밀이 맞물리며 탄력적으로 진행된다. 살인사건에 대한 결말은 다소 엉뚱하지만 종 제작에 얽힌 장인들의 고뇌와 절망을 잘 끄집어내 책장을 덮고 나면 무언가 묵직한 것이 가슴팍에 박히는 듯하다. 지난해 마흔일곱의 나이에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9전 10기로 등단한 작가는 수상작이자 첫 장편인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4만 부를 넘겼다. 오랜 습작 덕분인지 중견 작가 같은 안정적 필력이 돋보인다. 한 가지 길에 몰두한 뚝심 있는 규철의 모습은 작가 자신의 얼굴 같기도 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박상순 시인(51·사진)이 제14회 현대시작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즐거운 사람에게 겨울이 오면’을 비롯한 10편. 1991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박 시인은 민음사와 웅진문학에디션 뿔 대표도 지냈다.}

이런 상상은 어떨까. 쿠웨이트 건설현장을 지키는 경비원으로 일하는 파키스탄인 마우두디 씨. 그가 만난 남한 기술자 김기태 씨와 북한 일꾼 최해진 씨는 같은 현장에서 일하지만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서먹하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서로 대화하지 않는 두 사람을/마우두디 씨는 안타까워했다/…/퇴근 후에 숙소에 돌아간/김기태 씨는 전공 서적을 펴놓고/밤늦도록 공부를 하였고/최해진 씨는 요기를 하고 나서/아침까지 잠에 곯아떨어졌다/그런 동안 마우두디 씨는 손전등을 켜들고/시간마다 건설현장을 순찰하였다’(시 ‘두 사람’에서) 10여 년 전부터 다문화와 남북문제에 관한 시들을 선보였던 하종오 시인(59·사진)이 시집 ‘남북주민보고서’와 ‘세계의 시간’(이상 도서출판 b)을 나란히 펴냈다. 남북한 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외국인 노동자의 시각을 담은 상상력 짙은 시편들이다. 리얼리즘 시를 쓰는 시인은 인물들을 바로 지켜보는 듯한 사실적인 묘사들로 남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그린다. 통일과 다문화 문제에 관심이 적은 요즘 문단에서는 반가운 작품들이다. 정치적으로 남북 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여론도 그렇다. 하지만 시인은 꾸준히 북에 손을 내미는 문학적 도전을 이어간다. 왜일까. “통일은 정치인이 아닌 남북한 주민들의 자발적 희망에 의해서 이뤄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주민들의 소통이 우선이죠. 결과를 떠나 문학적으로 소통의 물꼬를 트고 싶었습니다.” 시인은 통일을 민족문제가 아닌 세계자본주의 체제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남북을 둘러싼 경제 현장을 담은 시들이 많이 눈에 띈다. 북한 기술자로부터 언어를 배운 인도인이 한국 공장에 취직하는 얘기(‘말씨’)나 몽골 의류공장에서 양털 깎던 몽골인이 한국으로 돈벌러 떠나자 그 자리를 북한 노동자가 메우는 얘기(‘양털 스웨터’) 등이다. 시들을 읽다보면 외국인 노동자라는 한 다리만 건너면 남북이 벌써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가 당장 세상을 바꿀 순 없다. 시인도 이를 안다. 그래서 남북이나 다문화 문제도 결국 정서적인 교류와 상호이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인이 노래하는 ‘빨랫줄 소통’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피아(彼我)가 불분명하네. 눅진한 공기에 실린 모래바람. 앞을 가늠하기 힘드네. 여기는 사막 식당. 삶의 고통과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는 신기루 같은 곳. 내 아픔을 덜어줄 사람은 없네. 주검 같은 사람들이 부유하네. 지독한 허무와 고독만 가득한 곳. 여기는 사막 식당. ‘이달에 만나는 시’ 3월 추천작으로 김성대 시인(41)의 ‘사막의 식당’을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막 식당’(창비·사진)에 수록됐다.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시인이 추천에 참여했다. 김성대 시인의 시는 쉽지 않다. “모호하게 윤곽을 잃고 사라져가는 사물과 감각이 격리되는 순간에 집중했다.”(장은석 문학평론가) 그의 시들은 뚜렷한 형체가 없는 추상화 같다. 시인에게 ‘해독’이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하니 그는 웃었다. “다들 어렵다고 해요.” 2005년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는 2010년 시집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그로테스크한 그의 시에 어떻게 다가설 수 있을까. ‘사막의 식당’을 풀어달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막 식당은 고통의 장소예요. 사람들은 이 장소에서 고통들을 지우려고 하는데 지울 수 없죠. 유리종을 깨뜨린 것은 결국 자기 내면의 고통스러운 종소리죠….” 어렴풋 알 듯도 한 설명들이다. 작가는 “제가 쓴 시지만 한참 뒤 보면 제게도 전혀 다른 뜻으로 보인다”며 웃었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해석은 독자의 자유다. 김요일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김성대 시인은 낯설고 비대칭적인 화법으로 남루한 삶을 프리즘처럼 투영한다. 신음하고, 반성하고, 조롱하며 색색의 빛깔로 의미를 증폭시켜 시를 생(生)으로, 생을 시로 치환한다.” 이원 시인은 “김성대 시의 매혹은 ‘끝없는 벗어남’에 있다. 사막을 벗어난 사막 식당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이곳을 두 번 잊은 사람은 없다’는, 현실이 은폐하지 못한 목소리다”라며 추천했다. “전통 서정시의 문법을 통해서도 미지의 영역을 향한 모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인은 보여준다. 말하자면 그는 낡고 오래 묵은 악기로 첨단의 음을 연주하는 악사다. 그 고투가 욱신욱신 빛난다.” 손택수 시인의 추천사다. 이건청 시인은 복효근 시인의 시집 ‘따뜻한 외면’(실천문학사)을 추천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시가 진한 감동으로 읽히는 놀라움을 지니고 있다. 사소한 일상, 평범해 보이는 사물 속으로 깊이 침잠해서 도달한 발견의 말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장석주 시인은 우대식 시인의 시집 ‘설산 국경’(문예중앙)을 추천하며 “모래바람, 흐느낌, 국경 따위는 정주(定住)에의 욕망과 떠돎의 운명 사이에 있는 자들이 불가피하게 감당해야 할 현실의 은유들이다. 우대식의 서정적 자아들은 이 은유들 속에서 더 또렷해지고 풍성해진다”고 평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지난해 12월 개관한 대전문학관은 24일까지 개관 기념 소장 자료전 ‘대전 문학의 향기’를 열고 있다. 이 전시에 ‘귀한 손님’이 얼굴을 드러냈다. 월북 시인인 백석(白石·1912∼1996·사진)이 1936년 1월 20일 펴낸 시집 ‘사슴’의 초판본이다. ‘사슴’은 희귀 시집 수집가 사이에서 보물로 꼽혀온 희귀본 중에 희귀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백석은 선광인쇄주식회사라는 업체를 통해 단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비매품으로 책을 낸 시인은 지인들에게 책을 건넸고, 수량이 적다 보니 당시에도 시집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었다. 시인 윤동주도 ‘사슴’ 출간 소식을 듣고 시집을 구하려 애썼으나 구하지 못해 직접 도서관에 가서 필사를 했다. 이번 시집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을까. 대전문학관 소장본은 송백헌 충남대 명예교수(78)가 기증한 것이다. 송 명예교수는 문학관 개관 소식을 듣고 ‘사슴’을 비롯해 소장 도서 1만3000여 권을 기증했다. 1950년대 중반 경북대 사범대를 다닐 때 대구의 한 헌책방에서 ‘사슴’을 구입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구입할 때만 해도 가치를 몰랐습니다. 당시는 월북 시인에 대한 평가는 고사하고, 그런 시집을 갖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울 때였죠. 나중에야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았고, 오래전 ‘3000만 원 준다’는 제의도 받았지만 팔지 않았습니다.” 대전문학관에 전시된 ‘사슴’의 표지 안쪽에는 ‘永郞 兄 白石(영랑 형 백석)’이란 글씨가 있다. 백석이 시인 김영랑(金永郞·1903∼1950)에게 시집을 주며 쓴 친필로 보인다. 영랑은 백석보다 9세 연상이다.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백석과 영랑은 일본 아오야마(靑山)학원 선후배 사이로 백석이 후배다. 나이 차가 있어 수학한 기간은 겹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에 돌아와서도 선후배로 지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슴’은 사연이 있는 시집이다. 평북 정주 출생인 백석은 주로 북한에서 활동했으나 월북 시인으로 분류됐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수십 년간 유보됐고, 1988년 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재조명됐다. 고서업계에 따르면 ‘사슴’은 2011년 문화재로 등록된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1925년) 못지않게 구하기 어렵다. 반면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1948년)을 비롯한 광복 후 시집들은 상대적으로 전해지는 수량이 많은 편이다. ‘하늘과…’는 2011년 한 경매에서 17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사슴’은 현재까지 모두 4권의 존재가 확인됐다. 이번 대전문학관 소장본 외에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도서관, 그리고 헌책방 ‘고구마’의 이범순 대표가 한 권씩 갖고 있다. 그 가치는 얼마일까. 이 대표는 “수년 전 구입했지만 경로나 구입가를 밝히기 어렵다. 예전에 한 구입 희망자가 5억 원을 부른 적은 있다. 앞으로 가치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여 현재는 팔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우리 아이는 낳지 말고 문학만 하자!” 시인 김수영(1921∼1968)은 1950년대 초 신혼시절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시인은 번역 일을 했고, 아내는 삯바느질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이었다. 가난이 아이를 포기하자는 말로 나온 것이다. 형편이 더 어려워지자 아내는 재봉틀과 금가락지마저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수영은 아내에게 외설적인 소설 한 편을 써보라고 권한다. 필명으로. 아내가 쓴 원고를 들고나간 시인은 받은 원고료를 모두 쓰고 만취해 들어온다. 그러곤 말한다. “그 따위 소설을 쓰게 해서 미안해.” 시인의 아내인 김현경 씨(86)가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지 45년 만에 털어놓는 첫 회고록. 평생 현실보다는 시(詩)라는 이상향을 쳐다보며 고독한 싸움을 이어간 김수영의 슬픈 얼굴이 가득하다. 병약한 소년이었던 김수영은 치질과 위산과다, 대장염을 앓았고 기관지염은 달고 살았단다. ‘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시 ‘눈’에서)를 읽으면 겨울밤 쿨룩거리던 시인의 기침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는 아내. 시인과 20여 년을 함께 산 아내의 기억을 통해 ‘인간 김수영’을 만날 수 있는 책. 반갑고도 애잔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책장을 펴면 ‘독자 권리 장전’이란 소제목이 먼저 눈에 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라는 인간 기본권의 밑바닥에는 책을 읽을 자유와 권리가 깔려 있다. 독서할 권리, 그것은 양도할 수 없고 박탈할 수도 없는 신성불가침한 인간의 기본권이다.’ 그냥 책을 읽으면 되지, 무슨 기본권까지 운운하나 싶었다. 하지만 저자가 나열한 권리장전의 17개 항목을 꼼꼼히 읽다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권리를 마련하라’(1항 책을 읽을 권리), ‘강요와 강압에 의한 독서는 안 된다’(2항 책을 읽지 않을 권리), ‘베스트셀러만 권유해서는 안 된다’(9항 많은 사람이 읽는 책을 읽지 않을 권리) 등…. 저자는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사회학 박사 과정을 마친 뒤 서울과 파리를 넘나들며 인문사회 관련 서적을 펴내고 있다. 독서에 대한 그의 진지한 성찰을 살펴보면 자신의 독서 습관을 되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선택이 아닌 의무로 묵직하게 다가온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한동안 멀어졌던 독서에 대한 마음을 다잡는 데 이만큼 유혹적인 책이 없을 듯하다. 책인시공(冊人時空).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라고 풀이한 책의 제목대로 저자는 책 자체가 아닌 책을 읽는 행위에 집중한다. 책을 읽기 좋은 장소나 시간, 책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를테면 종이책과 전자책 가운데 선택은 어떤가. 저자는 아날로그적 체취가 남는 종이책의 손을 들어 준다. 세월과 함께 누렇게 변하는 책, 그 안에 적은 빛바랜 낙서가 주는 나와 책의 역사성. 책은 시각이 아니라 촉각과 후각으로도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종이책의 입체적 책 읽기를 전자책이 따라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가운데 3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평균 독서 권수는 9.9권으로 한 달에 한 권이 채 안 된다. 독서의 중요성은 익히 알지만 “시간이 없다”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꼬집는다. 배우이자 소설가로도 데뷔한 차인표는 부엌과 화장실, 침실 등 집안 곳곳에 책을 두고 틈날 때마다 책을 읽는다고 저자는 전한다. 가벼운 문고본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도 한 방법. 일정 시간을 정하는 것도 좋다. 점심 후 자투리 시간도 좋고, 출퇴근 지하철 안도 좋다. 바쁜 하루를 보냈다면 자기 전 30분만이라도 책장을 펴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책을 자주 접해 책장을 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중반을 넘기면서 저자가 경험한 인물이나 장소 얘기로 흘러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집에 책이 넘치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면 된다”는 해법 같지 않은 해법은 소개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손에 잡히는 아무 책이나 읽고 싶게 된다. 습관은 인생을 바꾼다. 이제 당신 차례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탈북 시인 도명학(사진)은 지난해 12월 동리목월문학상 시상식에 갔다가 수상자로 참석한 소설가 이문열을 만났다. 당시 이문열은 한국 문학이 세계로 뻗어 나가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아직도 한국 문학 하면 분단 문학을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이를 제대로 소화하는 작가가 없다. 남한 작가들은 자신이 분단국가의 작가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북한의 현실도 잘 모른다. 탈북 작가들은 북한 현실을 잘 알지만 문학성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9월 경주에서 열린 제78회 펜(PEN)대회에서 145번째 펜센터로 가입한 ‘망명 북한작가 펜센터’가 이달 말 서울 합정동에서 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 단체는 올해 9월 아이슬란드에서 열리는 제79회 펜대회 참가 준비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총회에서 자신들의 증언에 집중했던 탈북 작가들은 이번에는 별도 보고서를 작성해 북한의 실상을 세계에 알릴 예정이다. 문제는 경비다. 탈북 작가들이 운영비 마련에 곤란을 겪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이사장 이길원)가 나서 지난해 12월부터 모금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300여만 원을 모았고, 상시 모금할 예정이다. 문의 02-782-1337∼8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장석주 시인(59·사진)이 제11회 영랑시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오랫동안’(문예중앙). 특별상은 전석홍 시인(79)의 시집 ‘시간 고속열차를 타고’(시학)에 돌아갔다. 김영랑 시인(1903∼1950)을 기리는 이 상은 전남 강진군이 주최하고, 영랑시문학회와 계간 ‘시와시학’이 공동 주관한다. 시상식은 4월 26일 오후 6시 강진군 강진읍 시문학파기념관에서 열린다.}

김종철 시인(66)이 시집 ‘못의 사회학’(문학수첩·사진)을 최근 펴냈다. 1992년 ‘못에 관한 명상’으로 시작해 ‘등신불 시편’(2001년) ‘못의 귀향’(2009년)으로 이어진 못에 관한 네 번째 연작 시집이다. 그는 왜 못에 천착하는 걸까. 시인은 1960년대 초 중학생 때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그는 한 수녀의 교리 공부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단다. 못을 박고 그 못을 뺀 수녀는 “다른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을 일을 하지 마라”라고 했다는 것. 못은 빠졌지만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그가 받은 세례명은 교부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노(아우구스티누스). 시인이기도 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대천사 미카엘 같은 ‘멋진’ 세례명을 받았는데 저는 고작 시인이라서 속이 상했지요. 그런데 방학 때 일기를 썼는데 나중에 보니 시 같더군요. 그렇게 못과 시가 제 가슴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시집에 담은 못 연작시는 15편이지만 “넓게 보면 시집에 담은 모든 시가 못의 시”라고 시인은 말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 모두가 못 박힌 사람들이라는 게 그의 지론.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의 피해는 이렇게 그려진다. ‘나쁜 조련사일수록 일급이 되는/삼성 동물원과 LG 동물원/배상도 적고, 잡혀도 잠깐 사는 솜방망이 처벌/빼곡이 철창에 가둔 불공정 독점 계약/사는 게 별거냐고//죽어야만 빠져나갈 수 있는/을만 죽는 을사(乙死)조약’(시 ‘우리 시대의 동물원’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펴낸 문학수첩의 대표였던 김 시인은 맏딸 김은경 씨에게 1일자로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줬다. “이젠 술이나 먹어야지”라며 그는 호탈하게 웃었다. 2년 내에 일본군 위안부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못 박힌 사람들의 얘기를 담은 시집을 낼 생각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공공기관이 출판사 영역을 침범한 거죠. 정부가 좋은 책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자칫 출판사들에 피해가 갈까 걱정입니다.” 한 대형출판사 어린이책 담당자의 하소연이다. 이 담당자가 우려하는 책은 한국고전번역원이 최근 출간한 ‘우리 고전 재미있게 읽기’ 시리즈.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고전번역원은 5000여만 원의 사업비를 받아 1년여의 준비 끝에 이번 시리즈를 선보였다. ‘장복이, 창대와 함께하는 열하일기’ ‘조선의 과학자 홍대용의 의산문답’이 최근 출간됐고, 연내에 새로운 4권을 더 펴낼 계획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우리 고전에 대한 교육 현장의 관심과 수요는 증대하나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우리 고전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우리 고전을 소개하고자 한다”고 사업 취지를 밝혔다. 고전에 관한 국내 대표적 연구기관이 직접 기획과 감수를 맡아 보다 정확한 내용의 어린이 도서를 만든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어린이책 출판사들의 심경은 불편하다. 출판계 불황 속에서도 그나마 형편이 나았던 어린이책 시장마저 공신력이 높은 고전번역원에 뺏길까봐 걱정이 돼서다. 다른 시각도 있다. 다른 대형출판사 어린이팀 부장은 “(번역원이 출간한) 홍대용에 관한 책은 거의 출판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고전을 새롭게 발굴한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고전번역원도 조심스럽다. 홍인국 기획조정실장은 “한문고전을 다룬 기존 어린이책의 내용이 미흡하거나 부정확한 면이 있어 이번 시리즈를 기획한 것일 뿐 어린이책 출판사와 경쟁할 생각은 없다. 애초 수익을 기대하고 기획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서울 명동은 항시 세일 중이다. 호화스러운 간판과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호객 소리가 요란하다. 1950년대 꿈과 낭만, 사랑과 열정의 공간이었던 명동은 가장 화려한 패션의 거리로 변했다. 명동예술극장 건너편으로 유네스코 회관을 지나 골목 모퉁이에 있었던 ‘청동(靑銅)다방’. 이제는 그 자리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청동다방의 주인공이라면 단연코 시인 오상순(1894∼1963)이다. 오상순의 ‘청동다방 시대’라고 해도 좋다. 아니 청동다방의 ‘오상순 시대’라야 더 어울릴 듯하다. 공초는 매일같이 다방 ‘청동’에 들렀고,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문인 예술가들을 반겼고, 낯선 손님들과도 흔쾌히 어울렸다. 청동다방은 연극인 이해랑이 운영하던 곳이었지만, 사람들은 터줏대감처럼 머물렀던 오상순을 더 많이 추억한다. 》 오상순이 언제부터 청동다방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는 1954년 무렵부터 전후(戰後)의 불안과 혼란 속에서 문학과 예술의 심장이 되었던 명동을 지켰다. 불교의 인연을 따라 조계사(曹溪寺)에 몸을 기탁했던 그는 다방에 머물며 여러 문인들과 어울렸다. 오상순은 공초(空超)라는 그의 호를 붙여 불러야 더 어울린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경신학교를 다녔다. 일찍이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에서 종교 철학을 공부했으며, 1920년 황석우 남궁벽 변영로 염상섭과 문학 동인 ‘폐허’에 참여했다. 한국 문단사의 첫머리에 오르는 ‘폐허’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가로서 명패를 달았지만 그는 문단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한때 불교중앙학림에서 가르쳤고 보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는데, 1926년 부산 동래 범어사(梵魚寺)에 입산해 선불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 이미 속세의 삶을 등졌고 방랑의 객이 되어 전국의 사찰을 떠돌았다. 생전에 혼인하지 않았으니 그 자신에게 딸린 가족이 없었고, 방랑객으로 전국을 떠돌았으니 거처할 집도 없었다. 공초라는 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공초는 떠돌이가 되어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시련을 피했다. 해방 공간의 문단이 좌우 이념의 대립과 갈등에 휩싸였을 때 공초는 변영로 박종화 양주동 이헌구와 민족 계열의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고 문학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그는 결코 문단 모임에 앞장서지는 않았다. 6·25전쟁을 겪으며 모든 것이 다 불타고 무너지고 부서졌을 때 그는 다시 선인(仙人)의 모습으로 서울 명동에 나타났다. 당시 명동은 국립극장을 중심으로 연극인들이 모여들었고 동방싸롱, 갈채, 청동 같은 다방은 가난한 문학예술인들의 근거지가 됐다. 한국 문학예술의 ‘살롱시대’가 바로 명동에서 펼쳐졌다. 소설가 이봉구의 ‘명동 엘레지’에서부터 명동은 예술의 혼을 낳았고, 사랑과 인생과 예술과 열정과 낭만으로 채워졌다. 공초는 다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종이를 내밀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게 했다. 그가 이렇게 취미 삼아 모은 청동다방의 ‘낙서첩(落書帖)’은 그대로 한 시대의 귀중한 기록이 됐다. 살아생전에 시집 한 권도 내지 않고 초연했던 그가 청동다방의 낙서첩에 그렇게 열을 올렸던 이유는 알 수 없다. 당시 명동의 청동다방을 드나들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청동산맥(靑銅山脈)’이라는 이름의 이 낙서첩에 한두 개의 글 구절을 남겼고,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시인 공초의 이 새로운 사업은 십년의 세월 동안 무려 195권의 청동산맥을 이루었다. 공초의 청동산맥은 해외 문단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분량도 방대하고 그 내용도 다채롭다. 시인 이은상은 ‘오고 싶지 않은 곳으로 온 공초여, 가고 싶은 곳도 없는 공초여’라며 헛기침을 했고, 서정주는 ‘안녕하시었는가. 백팔의 번뇌 내 고향의 그리운 벗들’이라고 적었다. 박목월은 ‘우연히 다방에 들러 선생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라고 소박한 인사말을 써넣었다. 당시 문단의 신참에 해당했던 김관식은 ‘슬픔은 차라리 안으로 굳고, 겉으로 피는 자조(自嘲)의 웃음’이라고 시 한 구절을 적었다. 소설가 박경리는 ‘자학(自虐)의 합리화가 종교이며, 자학을 벗어난 경지에서 신이 존재한다’라는 에피그램(경구)을 남겼고, 비평가 이어령도 ‘여기에는 시초(始初)도 종말(終末)도 없다’고 적었다. 고은은 담배를 물고 살아서 ‘꽁초’로도 불렸던 공초를 향해 ‘담배의 공복(空腹)이란 건 더 야릇할 거예요’라고 낙서했다. 공초를 문학의 스승으로 생각한다는 시인 이근배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공초는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넓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공초는 누구든지 청동다방의 구석자리에 앉히고는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고 말하며 말동무가 됐다고 들려주었다. 공초야말로 모든 것을 비우고 살았던 공인(空人)이며 모든 것을 초탈해버린 초인(超人)이었다고 했다. 공초가 남긴 이 희대의 낙서첩인 청동산맥은 지금 그대로 한국 문단의 가장 아름다운 ‘잠언집’이 되었다. 지난달 13일 이근배 시인과 함께 번잡한 명동 거리를 걸으며 청동다방의 흔적을 찾았다. 다방이 있던 자리는 형형색색의 여성복이 전시된 옷가게로 바뀌었다. 이곳을 지나가는 수많은 한국인도, 외국 관광객들도 여기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적 성소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봄은 동방에서 꽃수레를 타고 온다는데 가을은 지금 머언 사방에서 내 파이프의 연기를 타고 온다’라고 썼던 공초는 1963년 세상을 떠났다. 벌써 50년이 흘렀다. 하지만 명동 어디선가 예의 그 뿌연 담배 연기를 뿜으며 공초가 환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