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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호 7단이 처음으로 세계대회 결승에 올랐다. 3일 열린 삼성화재배 준결승전 3번기 2국에서 박정환 8단을 물리친 것. 올해 꾸준한 성적을 내며 상승세를 타 국내 랭킹 5위에 오른 그가 드디어 세계대회 우승컵까지 노리게 됐다. 결승 상대는 김지석 7단을 누른 중국의 구리 9단. 경험이나 명성으로 보면 구리 9단보다 못하지만 지금의 기세만 유지한다면 좋은 승부가 될 것 같다. 바둑은 거의 종착역에 다다랐다. 복잡한 끝내기가 없다. 흑이 미세하게 우세한데 뒤집힐 만한 차이는 아니다. 백 80은 반상 최대이며 흑도 81을 선수한 것이 기분 좋다. 홍기표 4단이 백 90으로 붙였다. 하변의 뒷맛을 좀 보겠다는 것. 흑은 그냥 참고도 1로 받아주면 그만이다. 백 2가 끝내기 요령인데, 흑은 백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준 뒤 흑 9를 두면 된다. 그러나 염정훈 7단은 엉뚱하게 흑 91로 달려갔다. 참고도처럼 둬도 먼저 둘 수 있는 곳인데…. 홍 4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순식간에 백 92를 내려놓는다. 백 96까지 이곳에서 흑 집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건 재역전이다. 염 7단이 흑 91에 눈독을 들인 건 흑이 두든 백이 두든 반(半) 선수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만 모든 수가 그렇듯 다 순서가 있는 법이다. 염 7단은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이후 수순은 총보.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흑, 이긴 바둑 던져좌하와 우상을 바꿔치면서 서로 큰 집을 마련했는데 흑이 이득을 본 장사. 별 탈 없으면 그냥 골인할 수 있는 형세다. 그런데 이 바둑은 황당한 파국을 맞는다.○ 장면도=흑 143이 첫 번째 실수. 144의 곳에 둬 두텁게 정리하는 것이 좋았다. 이어 백 ‘가’로 붙이면 ‘나’로 젖혀 넘어가기만 해도 충분하다. 흑 ‘다’에는 백 ‘라’. 백 144가 놓이자 중앙 흑 6점이 졸지에 잡혔다. 백 144를 못 보고 있었던 박정환 8단은 당황했다. 숨을 돌린다는 뜻에서 흑 147을 선수하려고 했는데 이것이 대실수. 백의 다음 수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전도=백 1이 죽었던 우상 백을 살리는 묘수. 흑은 울며 겨자 먹기로 2, 4로 처리했는데 백 5로 우상 백이 부활했다. 기분이 상한 박 8단은 여기서 돌을 던졌는데 반전은 아직 남아 있었다.○ 참고1도=흑이 조금만 냉정했다면 승리를 안을 수 있었다. 백 1(실전 144) 때 흑 2, 4로 백 6점을 내준 뒤 6을 선수했으면 흑이 여전히 유리했다.○ 참고 2도=더 기막힌 것은 백 1을 보고 박 8단이 돌을 던졌을 때에도 미세하지만 흑이 유리했다는 것. 흑 8까지 침착하게 두면 최소한 반집 이상은 흑이 좋았다.도움말=김승준 9단}

흑이 역전한 것은 분명한데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백의 실리가 아직은 말을 하고 있다. 백은 판을 흔들어 재역전 기회를 노려야 한다. 백 60으로 밀어간 수에는 책략이 숨어있다. 흑이 아무 생각 없이 참고 1도 흑 1로 막으면 백 2로 붙이는 것이 맥이다. 흑 3으로 저항하는 것은 무모하다. 백 16까지 흑은 꼼짝 못하고 걸려든다. 그래서 흑이 한발 늦춰 61로 받은 것이 정수. 홍기표 4단은 백 64로 끊어 또 한 번 ‘흑 유리’라는 벽에 도전한다. 중앙 흑의 단점을 최대한 활용해 흑 집을 깨자는 것이다. 백 70, 72로 활용한 것은 좋았는데 백 74가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격이다. 참고 2도 백 1로 단수 쳤으면 더 많이 흑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만약 흑이 2로 버티면 백 11까지 수가 난다. 따라서 백 1 때 흑은 3의 자리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역시 서로 두 점씩 때려내는데 실전보다 백이 훨씬 이득인 건 자명하다. 흑 79까지의 결과는 흑이 선방한 셈. 홍 4단의 심경은 답답하다. 두 번의 노림수가 모두 무산되면서 이젠 승부처로 삼을 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는다. 변수가 별로 없는 끝내기만 남은 상황. 흑이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백은 승리를 바라보기 힘들다. 백은 여기서 주저앉는가.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한국 바둑의 세계 보급은 1960년대 아마강자 임갑 씨가 파리에 바둑 클럽을 연 이래 숱한 기객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수행했다. 최근에는 젊은 프로기사들이 적극 나서 해외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둑의 세계화를 도맡았던 일본이 점차 쇠퇴하면서 한국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국면이다. 2006년 윤영선 8단의 독일 진출을 필두로 안영길 8단이 영국을 거쳐 호주에 정착했고 김명완 9단도 미국에 3년째 머물고 있다. 올해는 김성래 이영신 고주연 8단이 헝가리에 거점을 차려 단체 보급에 나섰고, 이강욱 8단은 무더운 베트남에서 분투하고 있다. 해외 보급에 일찍 눈뜬 황인성 조석빈 등 아마강자 그룹도 활약이 적지 않다. 이들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가장 큰 어려움은 현지화 문제다. 언어의 장벽도 높고 2년 제한의 비자도 곤혹스럽다. 윤영선 8단은 바둑 인연으로 만난 현지인과 결혼해 독일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여름에 잠시 귀국한 윤 8단은 한국 친구들이 생각날 때가 힘들다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지만 이내 씩씩한 웃음을 지으며 이제 살 만하다고 했다. 안영길 8단은 호주 진출 2년 만인 올 8월 바둑 특기 전형으로 영주권을 획득해 바둑 아카데미를 차렸다. 바둑이 해외에서 정식 직업으로 인정받은 것. 김명완 9단은 실력으로 모든 걸 보여주고 있다. 2008년 미국에 진출하자마자 그해 미국 바둑대회(콩그레스) 우승을 차지하더니 내리 3년 연속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이 기간 그는 중국 출신 프로들과 현지 강자들을 모조리 격파하며 26연승을 거뒀다. 명성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영미권에서 바둑을 제대로 보급하기 위해서는 강자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오래전 최배달이 미국에 진출해 수많은 파이터를 쓰러뜨리며 동양의 무예를 전파했던 것처럼 김 9단도 미국 문화에 맞게 철저히 이기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한국 바둑의 매운맛은 두고두고 현지인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현지 적응을 마친 기사들은 최근 새로운 보급 지원책들을 속속 요청하고 있다. 김 9단은 미국 등 북미 지역에서 프로제도를 도입하는 데 한국기원이 적극 나서 달라고 주문했다. 미국 같은 곳에 프로제도를 도입해 한국 바둑과 연계한다면 미국 바둑이 들풀처럼 자생력을 갖고 발전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동안 기사 개인의 분투로 현지화도 이뤄냈고 한국 바둑의 실력도 충분히 보여줬다. 여기에 시스템적인 지원을 가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해외에 진출한 프로기사는 현재 9명. 제도적인 지원으로 그들 스스로 자생력을 갖게 하는 것이 보급의 궁극점이다. 그것이 일본과 중국이 갖지 못했던 차별화 전략이자 세계 바둑 보급 역사의 지평이 될 수 있다.이세신 바둑TV 편성기획팀장}

■ 이달 명승부 잇달아11월 바둑 팬들은 즐겁다. 정상급 바둑 기사들이 펼치는 명승부가 잇따라 열리기 때문이다. 국내 기전으론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박영훈 대 원성진), 올레 KT배(이세돌 대 강동윤), GS칼텍스배(조한승 대 원성진) 결승전이 열리고 있다. 명인전과 KT배는 우승 상금이 1억 원, GS칼텍스배는 5000만 원이다. 국제 기전은 삼성화재배의 준결승전(구리 대 김지석, 허영호 대 박정환)이 펼쳐지고 있다. ○ 최강 황소들의 대결 박영훈 9단과 원성진 9단은 1985년생 소띠 동갑내기. 이들이 신예일 때 최철한 9단과 함께 ‘송아지 3총사’로 불렸다. 지금은 무럭무럭 자라 어엿한 황소가 됐다. 최 9단과 박 9단이 세계대회와 국내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한 반면 원 9단은 국내 정규 기전에서 딱 한 번 우승한 것 외에는 성적을 내지 못해 우승이 누구보다 아쉽다. 명인전 결승 1국에선 박 9단이 이겨 기세를 올렸지만 원 9단이 2국에서 거대한 대마를 잡으며 이긴 뒤 3국마저 밀어붙였다. 원 9단은 “2승 1패로 앞서나가 유리하지만 4국을 지면 심리적으로 쫓길 수 있기 때문에 우승 확률은 50%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투라면 자신 있다 KT배에서 만난 이세돌 9단과 강동윤 9단은 둘 다 막강 전투력을 보유한지라 대국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두 기사는 2008년 박카스배 천원전 결승에서 만나 강 9단이 3승 2패로 이겼다. 하지만 같은 해 명인전 결승에선 이세돌 9단이 3승 1패로 앙갚음했다. 1국에서 두 기사는 명불허전의 난타전을 펼쳤다. 17개의 흑 말과 28개의 백 말이 처절한 수상전을 벌이며 관전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막판 타협을 하며 계가로 이어졌지만 강 9단이 막판 끝내기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이 9단이 어렵게 1승을 챙겼다. 이 바둑을 해설한 김성룡 9단은 “이 바둑만으로 책을 한 권 써도 될 정도로 변화가 많았다”며 “프로들이 보기에도 대단한 승부였다”고 말했다. 1국에서 기세를 탄 이 9단이 2국마저 승리해 우승에 1승만 남겼다. 하지만 강 9단이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군인 정신 vs 기세 상승 GS칼텍스배 타이틀 보유자는 현재 군복무 중인 조한승 9단. 조 9단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광저우 아시아경기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등 활약을 펼치고 있다. 원 9단도 명인전과 이 대회 결승에 오르며 기세를 타고 있다. 1국에선 조 9단이 특유의 유연한 행마로 원 9단을 꼼짝 못하게 묶어버리며 낙승했다.○ 구리를 꺾어라 삼성화재배 준결승이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 선수로 박정환 8단, 허영호 김지석 7단 등 젊은 기사가 진출한 반면 중국은 구리 9단 한 명만 남았기 때문. 숫자만 보면 3 대 1이지만 경험 면에선 구리 9단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김지석 7단은 구리 9단과의 1국에서 패했지만 8강에서 쿵제 9단을 누른 저력이 그냥 잠자지는 않을 것이다. 허 7단은 그동안 정상급보단 한 등급 아래라고 여겨졌지만 올해 약진을 거듭하며 랭킹 5위까지 올라 절정의 기량을 보이고 있다. ‘차세대 선두주자’라고까지 칭찬받는 박 8단을 1국에서 끈질긴 추격 끝에 이긴 것도 예사롭지 않다. 김승준 9단은 “구리 9단의 컨디션이 최근 저조한 편이어서 세계 기전에서 처음 우승하는 한국 기사가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바둑의 흐름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여전히 백의 실리가 많지만 흑이 중앙 백을 공격하며 두터움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두터움을 집으로 환산하긴 어렵지만 언젠가 빛을 발할 때가 온다. 이렇게 흐름이 바뀌기 시작하면 쫓기는 쪽은 불안해진다. 이 불안감 탓에 마음의 평정을 잃고 실수가 잦아진다. 이것이 누적돼 역전에 이른다. 이제 관전자들의 시선은 좌중앙 흑세로 쏠린다. 이곳에 집이 얼마나 나느냐가 승패를 결정짓는다. 중앙은 한 줄 차이로 집 크기가 많이 달라진다. 염정훈 7단은 흑 23으로 중앙 집을 최대한 크게 품으려고 한다. 그런데 홍기표 4단이 중앙 쪽을 응수하다 말고 갑자기 백 28로 우변 한 점을 살린 것이 착각이었다. 쫓기는 자의 불안이 점차 표면화되고 있는 것. 참고 1도 백 1로 계속 중앙을 돌봤어야 했다. 흑 2로 백 한 점을 잡으면 중앙을 삭감한 뒤 백 13을 차지해 아직도 백 우세. 미세하지만 말이다. 실전에선 흑 29를 당하자 좌상 백이 두 집 내고 사는 꼴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백 34가 연이은 실수. 참고 2도 백 1로 뒀어야 했다. 백 7 때 흑 8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 흑의 아픔이다. 실전에선 흑 45가 선수여서 흑 47로 막을 수 있다. 참고 2도에 비해 흑이 무려 7집이나 이득을 본 것. 이래선 역전이다. 46…40.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전보에서 흑이 날린 독수(백 94 위)는 상상하기 힘든 수였다. 백이 튼튼하게 연결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 하지만 막상 놓이고 보니 백이 받기가 매우 까다롭다. 참고 1도 백 1로 받으면 완벽하게 걸려든다. 흑 12까지가 필연인데 흑이 큰 실리를 얻어 역전이다. 백 94, 96이 최선인데 흑 97로 끊겨 졸지에 중앙 백 대마의 삶이 불투명해졌다. 흑의 노림수가 멋지게 통한 장면. 중앙 백이 밖으로 탈출하는 건 흑의 주변이 강해 쉽지 않다. 안에서 사는 것이 최선. 백98로 한 점을 희생해 확실히 선수 한 집을 내는 것이 좋은 수순이다. 백의 고민은 중앙 백을 사는 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 사는 과정에서 우변 백이 다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중앙 대마를 돌보는 와중에서도 백 102처럼 우변에 힘이 되는 수를 둬야 한다. 그만큼 중앙 백은 위험하다. 백 108 때 염정훈 7단은 잡으러 갈까 말까를 놓고 오랜 시간을 보냈다. 잡으려면 참고 2도 흑 1로 둬야 한다. 백은 8까지 중앙으로 탈출하며 삶을 꾀한다. 생사는 확률은 반반.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라면 참고 2도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염 7단은 흑 109로 참는다. 백은 114로 살아 일단 한숨을 돌렸다. 흑도 백을 살려줬지만 중앙을 싸발라 백을 따라잡았다. 게다가 우변 백에 대한 공격도 아직 남아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겉으론 평온하다. 그러나 내밀한 긴장이 이어진다. 약간의 차이를 뒤따라가려는 흑과 계속 앞서 달려 나가려는 백이 서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흑 75, 77로 은근히 백을 위협한다. 백도 얼른 80까지 모양을 갖춘다. 백 대마가 쉽게 공격당할 모양이 아니다. 게다가 흑 81로 보강하는 것이 필수여서 백이 선수를 잡았다. 백이 대마를 보강하면 더 이상 공격은 없는데 홍기표 4단은 백 82로 실리부터 챙기고 본다. 백은 안전하다는 확신에 차 있는 듯하다. 흑 83으로 백을 다시 위협할 때 백 84로 좌하귀를 단속한 것도 마찬가지. 백은 이렇게 실리를 확보해 놓으면 역전은 없다고 믿고 있다. 염정훈 7단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감히 대마를 돌보지 않는 백의 무모함이 신경을 긁는다. 통쾌한 공격으로 손을 봐주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흑 85부터 정면 공격에 나선다. 사실 흑이 이 백 대마를 공격하지 않는다면 마땅한 대안도 없다. 백 86이 처음으로 나온 백의 실수. 참고도 백 1로 둬도 대마가 끊기지 않는다. 흑 2, 4는 5, 7로 응대해 별일 없다. 그래도 백은 여유만만. 안형도 풍부하고 약점도 없다는 것이다. 염 7단은 곧 홍 4단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뺏어 간다. 흑 93. 아까부터 노리던 독수(毒手)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백 56까지 되자 우상 백의 신수가 훤하다. 아무래도 상변 처리는 백이 더 잘됐다. 지금이 흑으로선 기로. 흑이 한 번 더 느슨하게 두면 ‘포석 실패’에 빠진다. 참고 1도 흑 1처럼 평범하게 걸쳐가는 것이 대표적 사례. 백 12까지 주도권을 완전히 백에게 빼앗긴다. 흑으로선 초반 포석에서 백에게 약간 밀렸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지금까지의 진행을 잊고 새로 출발하면 늦지는 않았다. 흑 57은 하변 백 한 점을 공격해 흐름을 바꿔보겠다는 수. 홍기표 4단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홍 4단은 백 58, 60으로 단단하게 둔다. 좌변 쪽에 있는 흑 세력이 제법 튼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백 60은 근거의 급소일 뿐 아니라 백 68로 붙이는 수도 노리고 있어 놓쳐서는 안 된다. 참고 2도를 보자. 백 68 때 흑 1로 젖혀도 백 2로 되젖히는 수가 준비돼 있다. 결국 하변 흑 한 점은 당장 움직일 수 없다는 얘기다. 이로써 실리로는 백이 확실히 앞서고 있다. 흑 69의 침투는 당연한 승부호흡. 이곳을 백이 지키면 흑은 해볼 데가 없다. 흑 73으로 가르고 나와 판을 뒤흔들 ‘거리’를 만들고 있다. 흑의 도전에 백은 여전히 침착하다. 백 74가 안형을 확보하면서 흑 집을 부수는 수. 백이 빈틈을 보이지 않는데 흑은 어디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백 26은 수습을 위해 흔히 쓰는 수법. 흑 27 때 참고 1도로 끊는 수가 일반적 정석이다. 그러나 지금은 흑 10으로 다가서 우상 백의 근거를 빼앗는 것이 싫다. 백 28 때는 흑이 고민이다. 참고 2도 흑 1로 치받는 수가 보통인데 백 8까지 되면 실전보다 백 모양이 더 단단해서 흑이 꺼린 듯하다. 그래서 염정훈 7단은 흑 29로 꽉 잇는 수를 선택했다. 백 32까지 선수를 잡고 흑 33으로 뛰어나가 백보다 한발 먼저 움직인다. 이런 대목에선 사실 막막하다. 딱히 흑을 공격하는 마땅한 수는 없다. 백도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은데 흑과 같이 뛰어나가자니 밋밋한 느낌이다. 홍기표 4단은 잠시 생각하더니 백 34를 놓는다. 이처럼 낮게 넘어가는 것이 굴욕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그러나 홍 4단은 “일단 이렇게 넘어가 연결해두면 향후 행마가 편하다”고 말한다. 모양에 신경 쓰지 않는 실전적 수법이다. 흑도 백을 싱겁게 연결시켜주면 별 볼일이 없다. 흑 39로 끼운 것이 백을 차단하는 맥. 흑 49까지 상변 백을 좌우로 분리시켰다. 그렇다고 해도 백이 나쁜 것은 전혀 없다. 양쪽 백이 어느 정도 근거를 갖고 있어 쉽게 공격당할 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 52로 가볍게 뛰어나가 전체적으로는 백이 잘 수습한 형국이다. 44…39.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


1960년대 일본 바둑을 풍미했던 사카다 에이오 9단이 최근 별세했다. 향년 90세. 혼인보(本因坊) 7연패를 비롯해 64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기사 최초의 1000승 달성, 최고승률(30승 2패 93.75%), 전관왕(7관왕) 2차례 달성, 공식기전 29연승 등 기록을 양산했다. 국내에선 고급 기력자를 위한 바둑 책 ‘묘(妙) 시리즈’로 유명했다. 홍기표 4단은 지난해 준우승자. 결승 5번기에서 이창호 9단에게 한 판을 완승하며 인상적인 대결을 펼쳤다. 올해 시드를 받아 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에 올랐다. 첫판부터 떨어진다면 준우승자의 면목이 서지 않는다. 염정훈 7단은 동갑내기인 이세돌 9단의 절친. 같이 복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흑 7의 세 칸 뜀은 염 7단이 준비해온 수. 백 8로 참고1도 백 1을 두는 것은 흑 2로 살짝 비켜 받는 수가 좋다. 이후 백은 ‘A’나 ‘B’의 뒷맛을 노릴 수 있다. 참고2도 백 1에는 흑 2로 붙인다. 흑 8, 10으로 흑이 주도권을 잡은 모습. 실전은 신형인데 쌍방이 불만 없다. 백 22는 백 24를 미리 염두에 둔 수. 백 24 때 흑이 ‘가’로 받으면 ‘나’ 부근으로 벌려 모양을 갖출 생각이다. 염 7단은 그런 밋밋한 진행은 싫다는 듯 흑 25로 반발하고 나섰다. 초반 싸움이 불가피해졌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