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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주택용지 확보를 위한 부지를 거론하며 구체적인 실명을 거론한 곳은 태릉골프장 단 한 곳이었다. 이에 국방부도 “공공주택 공급물량 확대 필요성, 시급성과 군인 복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계부처, 지방자치단체 등과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군 일각에선 “제대로 된 주택 공급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군 유휴부지부터 활용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와 담벼락을 사이에 둔 태릉골프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들었다. 육사생도의 교련 훈련용 부지를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66년 육사 전용 골프장으로 바꾼 것.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골프장 개장식 때 직접 시타를 하기도 했다. 각 사단 공병대가 한 홀씩 공사를 맡았기에 지금도 홀마다 군부대 마크가 새겨져 있다. 육사와 태릉골프장 부지를 합치면 216만 여㎡에 이른다. 서울 시내에 있는 유일한 군 골프장인 만큼 이곳은 그간 전·현직 군 장성들이 자주 찾았다. 취미 생활로 골프를 즐기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과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재임 기간 종종 태릉골프장을 찾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릉골프장은 2018년에도 택지 후보지로 거론됐으나 군에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번 태릉골프장의 택지 활용이 본격적으로 서울 시내 군 유휴부지 활용 논의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서울 시내 유일한 군 복지시설이기도 한 이곳을 주택 공급 우선순위로 두는 것은 그만큼 ‘군 홀대’ 기조가 반영된 것”이라며 “예비역 장성 등 군 원로들의 반발도 상당할 듯하다”고 전했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국가보훈처가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에 백선엽 장군을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고 명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17일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백 장군 안장식이 이뤄진 다음 날인 16일 백 장군의 안장자 정보 비고란에는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결정(2009년)’이란 내용이 게재됐다. 보훈처는 지난해 3월부터 이른바 ‘친일 장성’들에 대해 안장자 정보 비고란에 진상규명위의 결정 내용을 게재했다.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엔 백 장군을 포함해 12명의 정보에 이 같은 내용이 적시됐다. 이는 피우진 당시 보훈처장이 국방부와 협의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2018년 말경부터 여권에서 친일 행적이 있는 장성들에 대한 행적을 기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여권이 추진 중인,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 시신 및 유골을 이장하도록 하는 ‘파묘법’의 관련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 관계자는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진상규명위의 결정 사항을 기재해야 될 법적인 근거는 전혀 없다”며 “안장된 지 하루 만에 고인을 모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훈처는 이에 대해 “국회 등에서 다양한 지적이 있어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관련 사항을 게재하기로 한 것”이라며 “향후 관계기관과 심도 있게 논의해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정부와 여당이 15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해 수도권 주택 공급 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것은 서울 핵심 지역에서의 획기적인 공급 확대 방안 없이는 집값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서울시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 정부 내에서도 엇박자 냈던 그린벨트 해제안최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권을 중심으로 그린벨트 필요성이 언급되어 왔지만 주택 정책의 실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신중한 입장을 취해 왔었다. 그린벨트 해제는 서울 도심에 공급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한 방’에 잠재울 수 있어 유력한 대안으로 꼽혔었다. 국토부는 2018년 수도권 공급 계획을 내놓을 당시 국토부 장관 직권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서울시가 완강히 반대해 무산됐었다. 7·10부동산대책에서 별도로 그린벨트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주택공급확대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이끄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필요하다면 그린벨트 문제를 점검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발언한 데에 이어 이날 당정협의에서 그린벨트가 주요 안건으로 언급되며 기류가 급격하게 변했다. 국토부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박선호 국토부 1차관이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 그린벨트 해제는 아직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당정에서 그린벨트를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논의된 바가 없다”고 밝혔던 국토부는 당정의 압박이 거세지자 결국 그린벨트를 논의 대상으로 꺼내 들게 됐다. 이날 오후 국토부와 기획재정부,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 등은 ‘주택공급확대 실무기획단’ 첫 회의를 서울시청에서 열었다. 실무기획단장을 맡은 박 차관은 이 자리에서 “도시 주변 그린벨트의 활용 가능성 여부 등 지금까지 검토되지 않았던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를 하겠다”고 말해 그린벨트 해제 검토를 공식화했다. ○ 서울시 설득이 그린벨트 해제의 관건지난해 12월 기준 서울의 그린벨트 면적은 150km²로 서울시 면적(615km²)의 약 4분의 1이다. 특히 서초구 그린벨트 면적은 23km²로 25개 구 가운데 가장 넓다. 서초구에 우면산, 구룡산, 대모산 일대가 포함돼 있어서다. 부동산 업계는 그린벨트 해제 효과가 가장 큰 지역으로 서초구 내곡동, 강남구 세곡동을 주목하고 있다. 이 일대에 과거 보금자리주택을 짓고 남은 땅을 추가 활용할 수 있다는 것. 내곡동 탑성마을이나 가구단지 일대, 강남·서초예비군훈련장, 강남구 세곡동 자동차면허시험장 주변 지역 등이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된다. 하지만 서울시가 이날 그린벨트 해제 방안에 대해 여전히 반대하는 상황이어서 향후 논의 과정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는 주택 공급 확대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그린벨트 해제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사망 직전 연 기자간담회에서 “그린벨트는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놔야 할 보물과 같은 곳”이라며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그린벨트 활용을 반대했다. 하지만 수장이 사라진 상황에서 당정의 압박을 버틸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 군 유휴지 활용과 도심 고밀도 개발 관측도 정부는 가급적 이달 안에 주택공급확대 TF를 통해 주택 공급 방안을 발표한다는 방침이어서 서울이나 서울 근교의 유휴지 등 숨어 있는 부지를 발굴해내는 등의 속도전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도심의 유휴지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군은 국토부와 경기 성남시 창곡동 위례 군부지를 활용한 주택 공급 방안을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토부와 서울시는 ‘수도권 30만 호 공급계획’을 발표하며 서울 관악구 남태령 군 관사 등 군 유휴부지 7곳을 활용하는 방안을 포함시킨 바 있다. 이날 당정협의에서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시내 역세권 용적률 상향 등 도심 고밀 개발도 유력하다. 정부는 2018년 수도권 공급 계획 발표 당시 주거용 사용부문의 용적률을 기존 400%에서 600%로, 준주거지역 용적률을 400%에서 500%로 올린 바 있다. 또 서울 지하철 3호선 오금역 인근 송파구 가락동 예전 성동구치소 부지(1300채), 은평구 수색역세권(2170채), 강남구 삼성동 서울의료원 강남분원(800채), 대치동 동부도로사업소(2200채) 등 역세권 부지를 택지로 개발해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방안을 밝힌 바 있다. 도심 용적률이 추가 상향되면 여기서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동부도로사업소에 인접한 서울무역전시장(SETEC), 3호선 대청역 인근의 서울도시주택공사(SH) 사옥 등도 용적률을 높여 공급을 늘릴 후보지로 떠오른다. 일각에서는 용적률을 1000%까지 획기적으로 높여 고밀 지역으로 조성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다만 그간 정부가 용적률을 완화하되 증가된 용적률의 절반은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도록 하는 원칙을 유지할 경우, 수요에 맞는 공급이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주택 비중을 늘릴 경우 수익성 문제로 사업 추진 과정에서 민간이 선뜻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도심 역세권에서 정부는 주로 1, 2인 가구를 위한 원룸형 소형주택 위주로 공급해왔는데 이 역시 양질의 공급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이새샘 iamsam@donga.com·신규진·김호경 기자}
고 백선엽 장군의 안장식이 열린 국립대전현충원에선 고인의 국립묘지 안장을 둘러싼 찬반 단체들이 대치하면서 한동안 소란이 연출됐다. 광복회, 독립유공자유족회,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등은 15일 오전 10시경 대전현충원 입구 왕복 4차로 한쪽 인도에서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걸고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으로 민간인 학살 주범인 백선엽은 현충원이 아닌 일본 야스쿠니로 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반대 단체 관계자는 현충원에 들어서는 고인의 운구 차량을 방해하려 도로에 뛰어들었다가 경찰에게 제지되기도 했다. 맞은편 인도에선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회원들이 “구국의 영웅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외쳤다. 향군 회원들은 입구부터 200m에 이르는 인도에 ‘6·25전쟁영웅 현충원 안장 반대가 웬 말이냐!’ 등 현수막을 걸어 놨다. 양측은 1시간여 동안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거나 차량 경적을 울리며 대립했다. 이날 현충원 입구에는 경찰병력 420명이 동원됐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대전=신규진 기자}

때마침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 장군(예비역 대장)을 태운 운구 차량이 15일 오전 11시 반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김판규 전 육군참모총장은 추도사에서 “마른하늘이 울고 대지가 통곡하며 애국 국민의 애도 물결이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고 말했다. 안장식이 끝나자마자 비가 그쳤다. 하늘이 다시 화창해질 때까지 1000여 명의 전·현직 군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현장을 지켰다.○ “미군과 달리 영웅 제대로 못 모셔” 안장식에 앞서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백 장군의 영결식은 서욱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이날 오전 7시 반부터 1시간가량 엄수됐다. 송영근 예비역 중장은 영결식 추도사에서 “한미연합사령부에 근무할 때 고인의 저서가 미국 장병 필독서로 활용됐고 미군들이 ‘진정한 영웅’이라며 고인에게 인사드리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정작 우리는 살아있는 영웅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나 회한이 컸다”고 했다. 그는 “국가장으로 동작동(서울현충원)에 모시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도 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참석 인원을 최소화해 100여 명만 참석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박한기 합동참모본부 의장,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 등 전·현직 군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지도부가 참석한 미래통합당과 달리 지도부가 불참한 더불어민주당은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과 황희 의원, 예비역 육군 대장인 김병주 의원만 왔다. 장의위원장인 서 참모총장은 조사에서 “백 장군은 다부동 전투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별이자 평양 입성의 선두에 섰던 북진의 별이었다”며 “한미동맹의 상징인 고인은 호국의 별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도 “백 장군은 애국자이자 군인 중의 군인으로 전쟁의 참화 속에서 흘린 피로 강화된 철통같은 동맹의 창시자 중 한 분”이라며 “(6·25전쟁) 전투의 가장 절망적이고 암울한 순간에 유엔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국군을 이끈 영웅을 떠나보내 비통한 심정”이라고 애도했다. 그는 “전우여, 안녕히 가시라(Farewell, friend)”라는 말로 추모사를 끝냈다. 역대 한미연합사령관 6명도 영결식장에 백 장군을 추모하는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다. 월터 샤프 전 연합사령관은 “한미동맹의 위대한 ‘롤 모델’이었다. 6·25전쟁 때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그의 헌신은 역사적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버웰 벨 전 연합사령관도 “백 대장은 미국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과 같은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했다. 백 장군의 장남 남혁 씨(67)는 “아버지는 모든 전우의 이름을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했다”며 “이제 아버지의 꿈이 이뤄졌다. 저 하늘에서 모든 전우와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다부동 전투’ 전사자 미망인도 허토대전현충원에서 40여 분간 진행된 안장식에선 정부 대표로 온 박삼득 국가보훈처장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에이브럼스 사령관 등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굵어진 빗줄기를 맞으며 굳은 표정으로 헌화했다. 6·25전쟁 당시 전투복을 수의로 입은 고인의 관엔 생전 유지에 따라 다부동 전투 등 6·25전쟁 8대 주요 전쟁터에서 퍼온 흙을 허토(흙을 관 위에 뿌리는 일)하는 의식이 진행됐다. 6·25전쟁 참전용사들과 한미 장병 등으로 구성된 8명이 허토했다. 특히 19세에 결혼한 지 반 년 만에 다부동 전투에서 남편을 잃은 김임선 여사(88)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볼링앨리(Bowling Alley)’에서 퍼온 흙을 관에 부었다. 조포는 대장 예우에 따라 19발 발사됐다.대전=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미 국무부가 고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 대장)을 추모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앞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12일 공식 트위터로 애도를 표한데 이어 백 장군의 영결식에 맞춰 미 정부가 거듭 깊은 추모의 뜻을 밝힌 것이다. 미 국무부는 14일(현지시간)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 명의의 ‘백선엽 장군의 별세에 대해’라는 성명을 내고 “한국 최초의 4성장군으로 한국전쟁에서 조국에 헌신한 그의 업적은 한미 양국이 오늘날까지 이어온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한 싸움의 상징이었다”며 “한국민에게 가장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통상 미 국무부는 정상급 지도자가 사망했을 때 애도 성명을 내는 만큼 이날 성명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1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엄수된 백 장군의 영결식에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철통같은 한미동맹의 창시자 중 한 분이셨다. 전우여, 안녕히 가시라(Farewell, friend)”며 조의를 표했다. 송영근 예비역 중장은 “(고인이 지휘한 다부동전투에서) 패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날 고인의 영결식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된 안장식에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참석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별도의 추모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10일 별세한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 대장)의 영결식이 1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육군장으로 열린다. 서욱 육군참모총장(장의위원장) 주관으로 오전 7시 30분부터 50분간 유족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역대 육군총장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약력 보고, 추모 영상 시청, 조사 및 추도사 순으로 진행된다. 이어 고인은 군사경찰 차량의 호위 속에 국립대전현충원 제2장군 묘역으로 운구돼 오전 11시 반 안장식을 갖고 영면에 들어간다.》 “장군아버지….” 6·25전쟁 때 가족을 잃은 최모 씨(78·여)는 조화가 들어서기도 전인 11일 이른 아침 백선엽 장군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그는 영정 사진이 놓인 빈소에서 헌화를 하며 눈물을 훔쳤다. 최 씨는 조문을 마친 뒤 접견실에서 백 장군의 부인 노인숙 여사(96)를 만나 “어머니, 앞으로도 효도하겠습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이날 빈소를 찾았던 박모 씨(75)도 기자에게 “아버지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게 해준 영웅”이라고 말했다. 최 씨와 박 씨는 각각 9세, 6세이던 1951년 겨울, 국군의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때 부모를 잃었다. 살던 마을이 완전히 불타 오갈 곳 없었던 두 사람은 백 장군이 세운 보육원(백선고아원)에서 자랐다. 당시 30대였던 백 장군은 눈밭에 버려진 전쟁고아들을 위해 자비를 들여 지리산 일대 일본인 소유 적산가옥 부지를 매입했다. 보육원에 모인 200여 명 대부분이 열 살도 안 된 고아들이었다. 1952년 보육원이 문을 연 뒤 미8군과 기독교 단체인 선명회 등으로부터 옷가지와 음식 지원이 이어졌고 고아들은 고교 과정까지 이수할 수 있었다. 백 장군은 지리산에 숨어든 빨치산(공산 게릴라)을 토벌하는 책임자였다. 토벌 과정에서 마을이 불타 부모를 잃었지만 고아들은 백 장군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 씨는 “모두가 살기 힘들었던 시절 (보육원에서 자란 건) 운이 좋았다. 그만큼 풍족하고 따뜻했다”고 회상했다. 고인은 한국군 최초로 4성 장군에 오른 뒤에도 종종 보육원을 찾았다. 최 씨는 “아버지는 오실 때마다 아이들을 두 팔로 부둥켜안고 반가워했다”고 기억했다. 보육원 출신들이 아직도 백 장군을 “장군아버지” “대장아버지”로 부르는 것도 보육원 인근 광주 상무대 비행장에 도착한 고인을 마중 나간 기억 때문이다. 박 씨는 “장군 특유의 과묵함이 있었지만 수많은 전투를 치른 군인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인상이 선했다”고 회상했다. 최 씨와 박 씨는 6·25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봄 이후 5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백 장군과 다시 만났다.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부모를 잃은 사실을 자녀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수십 차례 주저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혹여나 아버지를 찾으면 그분께 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해 엄두조차 못 낸 점도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신문에 나온 아버지를 보고 (고인 사무실이 있던) 전쟁기념관으로 불쑥 전화를 걸었더니 ‘○○예요’라는 말에 바로 기억을 하시더라”며 감격해했다. 보육원 출신들이 만든 ‘백선회’ 회원이기도 한 두 사람은 6·25전쟁 60주년이었던 2010년 5월 8일 어버이날 백 장군과 다시 만난 순간을 또렷이 기억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백선회 회원 10여 명은 고인을 만나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박 씨는 “아버지는 연신 ‘잘 성장해줘서, 건강하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 씨와 박 씨는 10일 고인이 별세한 뒤 생각날 때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를 찾았다. 14일 분향소 앞에 선 두 사람은 200m 이상 늘어선 추모객들을 보며 뿌듯해했다. 이들은 15일 안장식이 열리는 국립대전현충원도 찾아 고인의 넋을 기린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백선엽 장군이 6·25전쟁 때 국군이 착용한 전투복을 수의로 입는다. 유족 관계자 등에 따르면 영결식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4시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리는 입관식에서 백 장군은 6·25전쟁 당시 착용했던 전투복과 같은 모양의 옷을 수의로 입는다. 전용 전투복이 없었던 국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이 입었던 군복 등을 착용하고 전쟁을 치렀다. 당시 1사단장이던 백 장군은 이 같은 전투복을 입고 6·25전쟁 최대 격전으로 꼽히는 1950년 8월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하며 전세를 역전시켰다. 백 장군 빈소가 마련된 지 사흘째인 13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각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1968년 1·21사태 당시 남파된 무장공비였던 김신조 서울성락교회 원로목사(78)는 빈소를 찾아 백 장군을 처음 만난 50년 전을 회상했다. 그는 “(장군님이) 김일성이 민족보위성 정찰국 특수부대를 창설한 이유를 집요하게 물었다”며 “헤어질 때 ‘대한민국에서 잘 살아가라’라고 한 그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과 박한기 합동참모본부 의장도 이날 빈소를 찾아 ‘한미동맹 영웅’의 넋을 기렸다. 나란히 선 둘은 영정사진을 향해 절도 있는 거수경례를 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백 장군의 장남 백남혁 씨(67)에게 “그는 한미동맹의 심장이자 영혼이었다. 백 장군의 복무에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백 씨와 함께 아버지인 크레이턴 에이브럼스와 백 장군의 오랜 인연을 공유하기도 했다. 박 의장은 “장군의 뜻을 이어받아 확고한 군사 대비 태세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백 장군을) 서울현충원에 모시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면서도 “더 이상 국론이 분열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정진석 장제원 의원, 무소속 권성동 의원 등도 백 장군의 서울현충원 안장을 촉구했다. ‘선배 외교관’인 백 장군 빈소를 찾아 유족과 10여 분간 대화를 나눈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소회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답변하지 않았다.신규진 newjin@donga.com·윤다빈 기자}

10일 밤 향년 100세로 별세한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사진)을 추도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아산병원에는 12일 정세균 국무총리와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전임 총리이자 유력 대선주자인 이낙연 민주당 의원 등 여야 정치인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노 실장은 방명록에 “한미동맹의 상징이시고 한국군 발전의 증인이신 백선엽 장군을 애도합니다”라고 썼다. 앞서 11일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빈소를 찾았다. 그는 트위터에 “지도자이며 애국자였던 백 장군은 현대 한미동맹 구축을 주도했다”면서 2018년 고인의 생일 파티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도 “진심으로 그리워할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는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 군 수뇌부와 예비역 인사들의 조문도 줄을 이었다. 고인은 15일 육군장으로 영결식을 치른 뒤 국립대전현충원 제2장군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정치권에선 고인의 장지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통합당은 국립서울현충원(서울 동작구)에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의당은 친일파 전력 인사의 현충원 안장에 반대한다면서 각을 세웠다. 민주당은 관련 입장을 내지 않았다. 주 원내대표는 “(빈소에서 만난 노 실장에게) 어른(백 장군)을 제대로 모셔야 한다. 왜 동작동에 모시지 않느냐고 항의했지만 (노 실장은) 답변을 하지 않고 갔다”고 했다. 유족 측은 “장지 문제가 더 이상 거론되길 원치 않는다. 대전현충원 안장에 만족한다”고 밝혔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규진 기자}

백선엽 장군은 병석에서도 대한민국의 안보를 내내 걱정했다고 한다. 석 달 전 병세가 악화돼 의식의 끈을 놓기 직전까지 “우리가 어디에서 힘을 얻을까 봤을 때 중국은 믿을 수 없다. 미국과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사실상 대한민국에 남긴 유언인 셈이다. 고인은 생전 두 차례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6·25전쟁의 쓰라린 경험과 교훈, 북한 위협의 실체 및 대북관계의 유의점,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해 확고한 소신을 밝혔다. 온몸을 던져 1128일간 6·25전쟁을 겪어낸 노병이 인터뷰에서 쏟아낸 ‘촌철살인’과도 같은 어록은 작금의 대한민국이 처한 안보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6·25 최대 격전인 다부동 전투 등에서 숱한 전우의 희생을 목격한 그는 “평화를 위해 전쟁을 기억하라”, “자유와 평화는 절대 공짜가 없다”고 누차 강조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 풍요가 얼마나 많은 피와 고귀한 희생의 대가인지를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사활적 국익이 걸린 문제”라고도 역설했다. 강력한 한미동맹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만든 원동력인 동시에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원활한 협조관계를 위해서 필수적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당부였다. 북한에 쓸데없는 환상을 갖지 말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백 장군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대남위협이 사라지기 전에 평화체제나 협정을 운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냉철한 상황 인식을 주문했다. 2012년 본보 인터뷰에선 김정은 3대 세습체제는 윗대의 고심과 고통을 모르기 때문에 예측이 힘들고, 도발 위험성도 크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규진 기자}

“큰 별이 졌다.” 11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숙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허리를 숙여 예를 올린 정 장관은 “고인은 대한민국의 발전과 군 건설에 초석을 놓은 영웅이셨다”면서 유족을 위로했다. 빈소에는 첫날(11일)부터 각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당정청 주요 인사들이 대거 다녀갔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빈소를 찾아 “(고인은) 집안 형님과 함께 창군동지회 멤버였다”는 인연을 공개했고, 미 인도태평양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해군 대장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하얀 국화꽃을 영전에 올리며 추모한 뒤 절도 있는 동작으로 ‘뒤로 돌아’ 자세를 취하며 군인의 예를 갖췄다. 12일엔 정세균 국무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등이 조문 대열에 합류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도 다녀갔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낙연 민주당 의원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유족을 접견하고 나서는 이해찬 대표를 향해 보수 유튜버들이 “누가 친일파냐. (일본) 천황에게 고개 숙여 절한 김대중이 친일파다”, “어떻게 장군님을 이렇게 대우할 수 있느냐”고 고함을 치면서 빈소를 지키는 관계자들과 잠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빈소 앞 복도에는 육군 의장대 10여 명이 부동자세로 예를 갖춘 가운데 고인이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다부동 전황을 신성모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는 장면 등 사진 10여 장과 동영상이 전시됐다. 고인의 영정 앞에 놓인 태극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등은 생전의 위업을 증언하는 듯했다. 백 장군에겐 ‘살아 있는 6·25 전쟁 영웅’ ‘죽음보다 패전을 두려워한 용장’ 등 숱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6·25전쟁 발발부터 정전협정 체결 때까지 1128일간 1사단장과 최연소 육군참모총장 등을 맡아 숱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공산군과 격전을 치렀다. 1사단장 시절 최대 격전인 ‘다부동 전투’에선 공포에 질려 퇴각하는 부하들을 가로막고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수 없다”면서 “내가 앞장설 테니 날 따르라. 내가 물러서면 날 쏴라”라고 권총을 들고 독려해 승리를 일궜다. 이는 인천상륙작전 성공과 평양 진격의 발판을 만든 것으로 한미 양국군에 전설로 회자된다. 백 장군은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인정받는 전쟁 영웅이었다. 주한미군은 그를 ‘살아 있는 전설(living legend)’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들은 “한국전쟁의 영웅이신 백선엽 장군님”이라는 말로 이취임사를 시작하는 게 전통이 됐다. 그럼에도 고인은 생전에 ‘노병’으로 불러달라면서 “시대가 부여한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1군단장 시절 휴전회담의 초대 한국군 대표 당시 에피소드도 회자된다. 당시 맞은편의 이상조 북한군 소장이 빨간 색연필로 “제국주의의 주구는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고 쓴 것을 보여주며 자극했지만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고 그는 회고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일도 유명하다. 1949년 군 내 남로당 연루자를 가려내는 숙군 작업 당시 정보국장이던 고인은 남로당 연루 혐의로 조사를 받던 박정희 당시 소령의 구원 요청을 수용해 상부에 재심을 요청했고, 그 덕택에 박 소령은 불명예 제대로 처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고인은 1940년대 일본군(간도특설대) 복무 이력으로 친일파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와 광복회 등은 그가 자서전 등에서 언급한 간도특설대 활동 내용을 근거로 독립군을 토벌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그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독립군을 본 적이 없다. 친일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규진·강성휘 기자}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는 12일 백선엽 장군의 국립묘지 안장 논란에 대해 “구국의 영웅인 백 장군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라”고 밝혔다. 향군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일제강점기 일본군 경력만을 이유로 (백 장군을) 매도하고 폄하하는 것은 군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국군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백 장군이 6·25전쟁 당시 함께 싸운 11만 명의 호국 영령들이 잠든 서울현충원에서 영면하실 수 있도록 즉각 조치하라”고 촉구했다. 또 향군은 “집권 여당이 공식 논평을 유보하는 등 전쟁 영웅의 마지막 가는 길을 외면하고 있는 데 대해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백선엽 장군의 장지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백 장군 유족 측은 11일 빈소에서 만난 동아일보 기자에게 “더 이상 장지 문제가 외부에서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유족은 “서울이나 대전이나 대한민국 땅이고, 둘 다 현충원이다. 고인을 대전현충원에 모시기로 한 것에 만족한다”며 유족이 내심 서울현충원 안장을 원하는 걸로 비치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대전현충원 (안장)을 원했고, 정부에도 그런 의사를 전달했다”며 “고인도 병석에 눕기 전인 지난해 대전현충원으로 결심하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족은 “고인이 그런 문제(장지)에 왈가왈부하거나 하실 분이 아니라는 걸 잘 알지 않느냐”면서 “정부 방침과 관련 절차에 따라서 대전현충원에 모시게 된 것에 거듭 만족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유족들은 이 같은 유족의 취지가 외부에 제대로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백 장군의 장지 문제가 정치권이나 이념 공방으로 번지는 것은 고인의 유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백 장군이 생전에 서울현충원에서 전우들과 영면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던 적이 있는 만큼 ‘서울현충원을 원하지만 더 이상의 논란이 싫어 대전으로 결정한 것 아니겠느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고인은 15일 오전 7시 반 서울아산병원에서 육군장으로 영결식을 치른 뒤 같은 날 오전 11시 반 국립대전현충원 제2장군 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국가보훈처는 “유족이 대전현충원 안장을 신청했고, 통상적인 안장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규진 기자}

백선엽 장군의 장지가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최종 결정됐지만 안장 위치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군 원로들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 데 이어 미래통합당이 이런 주장에 힘을 싣고 나섰다. 반면 일부 단체들은 백 장군이 ‘친일파’라며 현충원 안장 자체를 반대했다.○ 군 원로들 “정부, 서울현충원 안장 의지 없다” 육군과 국가보훈처는 11일 백 장군 유족의 뜻에 따라 대전현충원 내 장군 2묘역 안장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백 장군이 별세한 다음 날인 11일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겠다는 의사를 육군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백 장군은 한국군 최초 4성 장군이자 6·25전쟁 영웅으로 평가돼 온 만큼 공로로 보면 현충원 안장 자격엔 문제가 없다. 다만 서울현충원은 1996년 장군 묘역이 다 찬 상태다. 대전현충원에는 장군 묘소를 위한 공간이 23곳 남아 있다. 애초 백 장군은 이명박 정부 당시부터 서울현충원 장군 묘역이 다 찬 점을 고려해 서울현충원의 사회공로자 묘역에 안치하는 방안이 논의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현충원 안장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나타나자 유족들은 한때 경북 칠곡군의 6·25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 현장에 안장하는 것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백 장군 측 관계자는 “정부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아쉬움도 있다”고 전했다. 유족의 결정에도 일각에선 6·25전쟁 전사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서울현충원의 상징성을 감안해 백 장군을 이곳에 안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군 원로들 사이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현충원 내 국가원수 묘역이 다 찼음에도 안장됐던 사례가 거론되며 ‘정부의 의지가 결여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예비역 장성은 “대통령들도 산을 깎아 자리를 만들었다. 서울현충원에 안장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만 있었어도 해결됐을 문제”라고 했다. 육군협회도 11일 “백 장군이 서울현충원 전우들 곁에 영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예비역 장성 등 군 원로들은 11일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백 장군의 빈소를 찾아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백 장군은 생전에 서울현충원 장군 묘역을 다녀가기도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 장관은 이에 “서울현충원 장군 묘역이 다 찼다”면서도 “보훈처에 (원로들의) 의견을 다시 전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게 나라냐” vs “대전도 안 된다” 12일 빈소를 찾은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정세균 국무총리를 만나 백 장군의 서울현충원 안장을 촉구했다. 주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왜 동작동(서울현충원)으로 모시지 못하느냐고 항의했다. (노 실장은) 답변은 하지 않고 갔다”고 전했다. 그는 빈소 방명록에 “감사합니다 구국의 전쟁 영웅! 죄송합니다 잘 모시지 못해서!”라고 적었다. 주 원내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백 장군을 서울현충원에 모시지 못한다면 이게 나라인가”라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백 장군 별세 사흘째인 12일까지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반대해 온 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과거 친일 행위에 대해 생전 진심 어린 사과만 했어도 공도 높이 평가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걸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0명은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 행위자의 시신, 유골을 파묘’하는 법을 발의했다. 여권에선 벌써부터 “법이 통과되면 백 장군도 이장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일부 단체는 백 장군의 대전현충원 안장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군인권센터는 “백 씨가 갈 곳은 현충원이 아니라 야스쿠니신사”라고 주장했다.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도 “6·25전쟁 공로가 인정된다고 독립군을 토벌한 친일파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이 나라다운 나라인가”라며 “진정 나라를 위해 살아온 영웅이었다면 조용히 선산에 묻히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신규진 newjin@donga.com·강성휘·이은택 기자}

10일 밤 향년 100세로 별세한 6.25 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을 추도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아산병원에는 12일 정세균 국무총리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등 여야 정치인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노 실장은 방명록에 “한미동맹의 상징이시고 한국군 발전의 증인이신 백선엽 장군을 애도합니다”라고 썼다. 앞서 11일엔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도 빈소를 찾아 예를 다해 고인을 추모했다. 해리스 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지도자이며 애국자였던 백 장군은 현대 한미동맹 구축을 주도했다”면서 2018년 고인의 생일 파티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로버트 에에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도 “백 장군은 오늘날 한미동맹을 구체화하는데 믿을 수 없는 공헌을 했다. 진심으로 그리워할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는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 군 수뇌부와 군 원로 등 예비역 인사들의 조문 행렬도 줄을 이었다. 고인은 15일 육군장으로 영결식을 치른 뒤 대전국립현충원 제2장군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정치권에선 고인의 장지를 둘러싼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고인의 공적을 인정해 국립서울현충원(동작동)에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의당은 친일파 전력 인사의 현충원 안장에 반대한다면서 각을 세웠다. 민주당은 관련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에 유족 측은 “장지 문제가 더 이상 거론되길 원치 않는다. 대전현충원 안장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북한이 평양 인근의 원로리에서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는 정황이 공개됐다. 북한에서 핵탄두 제작 목적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핵 관련 시설을 수년간 추적해 온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는 8일(현지 시간) 민간 위성업체 플래닛랩스 촬영 사진을 분석한 결과 평양 시내로부터 10여 km 떨어진 원로리에서 핵탄두 개발 시설이 가동되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부지를 둘러싼 보안 경계선, 과학자 숙소로 추정되는 고층 주거지, 지도자 방문 기념물, 지하 시설 등 기존 핵시설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 군 전문가들은 원로리 시설 공개로 평양 인근에 ‘핵물질 생산-핵탄두 제작-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조립’이 가능한 ‘핵 벨트’가 사실상 구축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원로리 시설은 5월 공개된 평양 인근 신리의 ICBM 조립 시설에서 14km 떨어져 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원로리 시설은 핵무기 개발 및 생산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지원 시설로 판단 중”이라면서도 “해당 부지 내 차량 움직임 등이 포착되고 있어 한미가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가 8일(현지 시간) 민간 위성사진을 토대로 평양 인근 원로리에서 핵탄두 제작 공장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핵 시설의 존재를 공개하면서 그 실체를 둘러싼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 평양 주변에 ‘핵 벨트’ 구축하려 한 듯지난 2년여간 북-미 비핵화 협상 중에도 북한이 핵무력 증강에 몰두했다는 핵심 증거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미 당국도 관련 동향을 주시 중인 걸로 알려졌다. 원로리 시설은 평양 중심부에서 불과 10여 km 거리에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가 방문하기 용이한 장소에 자리 잡은 셈이다. 2015년부터 원로리 일대의 위성사진을 추적 분석한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센터 소장은 핵시설임을 뒷받침하는 특징을 두루 갖췄다고 주장했다. 삼엄한 보안 시스템과 지하시설, 지도자 방문 기념물, 부지 내 사택 등 기존 핵·미사일 관련 시설과 유사점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시설 곳곳에서 화물 컨테이너와 트럭 등 차량의 활발한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포착되는 등 핵개발 관련 활동이 유력하고, 핵탄두 제작 시설로 추정된다는 것이 연구소의 결론이다. 원로리 시설의 위치도 의미심장하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14km 떨어진 평양 순안비행장 인근 신리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조립 관련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앞서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 사이트 ‘분단을 넘어서(Beyond Parallel)’는 5월에 신리 시설을 ‘탄도미사일 지원 시설’로 지목한 바 있다. 시설 규모로 볼 때 최대 4기의 ICBM 동시 조립이 가능한 걸로 추정됐다. 군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원로리에 핵탄두 제조 설비가 있다면 완성·비축한 핵탄두를 신리로 조속히 옮겨서 ICBM에 장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로리와 신리를 지하로 연결해 외부 노출을 피해 핵탄두를 이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을 개연성도 제기된다. 또 원로리 시설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강선 지역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포진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강선 농축 시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북-미 하노이 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영변 플러스알파(+α)’로 폐기를 요구한 핵시설 중 한 곳. 당시 김 위원장이 이를 거부하면서 ‘하노이 담판’은 결렬로 무산됐다. 두 시설의 위치로 보면 강선에서 만든 핵물질(HEU·고농축우라늄)을 원로리로 가져와 핵탄두를 일사불란하게 제작하는 데 용이한 동선이다. 군 소식통은 “평양의 김 위원장 집무실에서 11∼19km 구역 내에 우라늄 농축(강선)과 핵탄두 제작(원로리) 및 ICBM 조립 시설(신리)로 추정되는 핵 의심 시설들이 집중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핵무력의 산실’인 핵·ICBM 시설을 지척에 두고 수시로 실태 점검과 독려를 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핵·ICBM의 통제력을 확고히 하는 차원에서 평양 인근에 주요 핵시설을 포진시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원로리에서 핵탄두 소형화와 대기권 재진입 기술 고도화 작업 진행했을 수도북한의 새로운 핵 의심 시설이 공개되면서 핵 능력이 양적 질적으로 더 고도화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 정보 당국은 수년 전부터 2020년경 북한이 최대 100여 개의 핵탄두를 제작 보유할 걸로 추정한 바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 기간 북한이 비밀 핵시설에서 핵물질 생산 및 핵탄두 제조에 박차를 가해 그 수준을 달성했을 거란 관측이 적지 않다. 또 다른 군 소식통은 “2017년에 미 본토를 사정권에 둔 화성급 ICBM의 잇단 발사 성공 이후 핵탄두 소형화는 물론 대기권 재진입 기술도 상당 수준에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원로리 시설의 존재가 공개된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3차 북-미 정상회담 의향을 밝힌 지 불과 하루 만이다.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과의 ‘스몰딜’을 경계하는 워싱턴 조야의 대북 강경파가 과거 신고되지 않았던 북한 핵시설의 존재를 노출시켜 북한 핵활동의 문제점을 상기시키려고 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규진 기자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최근 연이은 밀입국 보트 경계실패로 질타를 받은 군이 지난달부터 육군경비정 해상매복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군 내부에선 병력이나 장비 증원 없이 실효성 없는 대책들을 ‘재탕’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7일 군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육군 32사단은 제2작전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밀입국 사건이 벌어진 충남 태안군 해상에서 육군경비정(20t급)의 해상매복을 실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정을 특정 뱃길에 대기시켜 경계근무를 서게 하는 것으로 중국에서 태안으로 오는 신종 밀입국 루트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취지다. 앞서 군은 4월부터 지난달까지 태안 해상으로 연달아 진입한 소형보트 3척을 인지하지 못해 경계실패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인력이나 장비 증원 없는 해상매복 작전을 두고 보여주기식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육군경비정 매복은 10년 전에나 했던 작전을 재탕하는 것”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육군경비정은 그간 노후화와 작전효율 등 문제로 해상매복을 실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합동참모본부는 경계실패 대책으로 대대급 무인기(UAV) 및 드론의 해상 경계 투입 방안을 내놨지만 일선 부대에선 운용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군은 지난해 6월 북한 어선의 동해 ‘삼척항 노크 귀순’ 사건 때도 동일한 대책을 내놨다. 군 관계자는 “해안 경계 임무는 늘었지만 인력은 그대로라 피로감을 호소하는 장병들이 많다”며 “향후 장병 감소 등 구조적 문제로 인해 군 수뇌부도 대비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전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공군이 이른바 ‘황제 병영생활’로 논란이 된 최모 상병에 대한 감찰 조사에서 부모가 해당 부대장과 통화를 하거나 직접 만난 사실을 파악하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7일 공군에 따르면 지난달 9일 서울 금천구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 제3여단장은 최 상병의 아버지인 최영 전 나이스그룹 부회장과 통화한 후 기지대장과 함께 부대 밖에서 면담을 했다. 공군본부는 감찰 과정에서 이 같은 내용을 파악하고도 지난달 24일 감찰 결과 언론 브리핑 때 설명하지 않았다. 공군 관계자는 “최 상병이 부모에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자 부모가 덜컥 걱정이 돼 부대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라며 “어느 병사 부모든지 아이의 상태가 심각할 경우 부대장을 만날 수 있어 특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감찰 결과 때 해당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청와대 청원으로 제기된 핵심 의혹을 설명하는 데만 1시간여를 할애했다. 의도적인 설명 누락은 아니다”고 밝혔다. 특히 공군 참모차장을 지냈던 A 예비역 중장이 지난달 8일 부대 안에서 해당 부대장을 만나 최 상병을 언급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군사경찰 수사 과정에서 A 예비역 중장은 “최 상병 부모를 알지 못한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 관계자는 “A 예비역 중장은 지인인 의사로부터 최 상병 소식을 듣고 조언한 것이며 해당 부대장과 친한 선후배 사이로 취임 축하 차원에서 부대를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사경찰은 최 상병이 부대 안에서 편의를 제공받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부모로부터 별도의 대가를 받았는지 등을 수사하고 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제임스 드하트 미국 국무부 방위비분담금협상 대표(선임보좌관·사진)가 이달 중 물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4월 한미 협상단의 실무합의안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거부한 가운데 미국 협상 대표가 교체되면서 장기 교착 상태에 빠진 방위비분담금협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3일 한미 사정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 등에 따르면 미 당국은 최근 드하트 대표가 이달 말 사임한다는 소식을 한국 정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2일 협상 대표로 임명된 지 10개월여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셈이다. 드하트 대표는 한국 협상단과 지난해 10월부터 제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해 7차례 협상을 진행해 왔다. 외교가에선 통상 방위비분담금협상 대표가 1년 이상 임기를 보장받아 왔던 것과 비교하면 드하트 대표의 사임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드하트 대표의 전임인 티머시 베츠 전 대표는 3년간 방위비 협상을 이끌기도 했다. 드하트 대표의 사임을 두고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당초 개정 시한을 넘긴 지 반년이 지났지만 증액 규모를 두고 한미가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등 난항을 겪는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한미 협상단은 3월 말 방위비 총액을 전년(1조389억 원) 대비 13% 인상한 뒤 2024년까지 연간 7∼8% 상승률을 적용한다는 안에 잠정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1년 계약의 13억 달러(약 1조5918억 원)를 역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협상에 차질을 빚었다. 일각에선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협상 대표 교체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한미는 지난달 2일(현지 시간) 4월부터 무급휴직에 돌입한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를 한국이 지급하는 방안에 합의하며 급한 불을 끈 상황이다. 드하트 대표 교체 직전 한미 당국이 막판 협상 속도를 높여 방위비분담금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한 외교 소식통은 “(한국이) 한 개인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협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 대표가 교체된다고 해도 협상 국면에 큰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한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