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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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칼럼니스트입니다.

yuri@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칼럼97%
정치일반3%
  • [김순덕의 도발]민주당은 文대통령과 결별하라

    “우리가 받았던 높은 지지는 한편으로 굉장히 두려운 일입니다. 그냥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는 정도의 두려움이 아니라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그런 두려움이라 생각합니다. … 높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2018년 6·13지방선거에서 집권당 압승 뒤 문재인 대통령 발언은 감동이었다. 대선 2라운드처럼 치러진 선거에서 대승을 했는데도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그러고는 너무나 겸손한 모습으로 수석·보좌관들에게 세 가지를 주문했다. 유능함과 도덕성, 그리고 국민들과 별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는 태도.그 자리에 있던 민정수석 조국, ‘흑석선생’ 청와대 대변인 김의겸이 ‘나는 빼고’라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유능하지도, 도덕적이지도 못하면서 내로남불의 태도만 유별났던 집권세력은 2020년 4·15총선에서 또 압승을 거뒀다. 다음 날 문 대통령의 입장문은 2018년과 딴판이었다. “국민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겠습니다.”● 부동산정책-윤석열 논란 전부터 지지층 균열대깨문의 극성맞은 지지에 취한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180석의 바닥민심을 들여다보면 지지층 균열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2020총선 득표율은 의석수와 비례하지 않았다. 선거구당 1석만 뽑는 소선거구제여서 압승이 가능했지 더불어민주당(49.9%)과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 41.4%) 득표율 격차는 9%포인트에 불과했다. 득표수로 보면 제1당(1430만여 표)과 제2당(1186만여 표)의 격차가 244만1623표다. 대선과 비하면 300만 표 이상 표가 사라진 거다. 2018지방선거 때 630만 표라는 1, 2위당 격차는 ‘진보성향+중도성향+대통령 탄핵으로 돌아선 보수성향 이탈층’ 덕분이다. 이 중 중도층과 보수성향 이탈층이 2020년 총선에서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분석했다. 부동산정책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놓고 집권세력이 추태를 보이기 전부터 이미 여권 지지층은 깨지고 있었다는 얘기다(‘대깨문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살벌한 농담도 있긴 하다). ● “문 대통령 탈당하라” 주장도 나올 것4·7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이 압도적 격차로 당선됐다. 집권세력의 패배요인을 꼽자면 101가지로도 모자란다.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되, 집권세력에선 “180석을 가지고도 제대로 개혁을 못 해서 졌다”는 친문 강경파와 “중도층을 못 잡아서 졌다”는 나머지파가 격하게 맞붙고 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이미 충분히 결집해 1번을 찍었다. 총선 때 1번을 찍었던 중도층이 떨어져 나왔다는 이 분명한 현상이 그들에게는 안 보인다는 게 기이할 따름이다. 이것도 모르는지 모르는 척하는지, 문 대통령이 대깨문만 믿고 담대하게 계속 갈 경우 민주당은 초조할 수밖에 없다. 지지율 32%의 문 대통령은 영락없는 레임덕에 들어섰지만 21대 국회는 3년이나 남아 있어서다. 8일 민주당은 지도부 총사퇴에 비상대책위원회 돌입이라는 대안을 내놨다. 그러나 대깨문 눈치나 보는 친문 비대위가 들어선다면 지금까지와 달라질 게 없다. 당명에서 ‘더불어’를 떼내고 정통 민주당으로 돌아갈 경우엔 차원이 달라진다. 2022년 대선을 위해 “문 대통령 탈당하라” 요구할 가능성도 크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이해관계는 다르기 때문이다. ● 文은 변하지 않는다… 이 길이 전부니까문 대통령은 8일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고 밝히긴 했다. 그러나 부동산투기가 의심스러운 LH 직원들 잡아넣는 것 말고 문 정권이 성과를 낼 수 있는 건 없다. 안 들여온 해외 백신을 가짜로 만들어 코로나 극복을 할 수도 없고, 4년간 망친 경제를 별안간 살릴 수도 없다. 북한 김정은이나 중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이 문 대통령을 덥석 만나줘 한반도를 국뽕의 도가니로 만들면 또 모른다. 이 정권의 실력을 빤히 아는 그들이 문 대통령 좋으라고 나서줄 것 같지도 않다. 국정기조를 바꿀 리도 없다. 아는 건 이 길이 전부여서다. 문 대통령이 국가적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퇴임 뒤 평안한 노후 보장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이 시급하다. 국민의힘의 약을 올려 정쟁에 빠져들게 만들어서 나쁠 것도 없다. 국민의 정신만 괴롭히다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 문 대통령으로선 다행이다. 안 돼도 나쁠 것도 없다. 고분고분한 김진욱을 공수처장으로 앉혀놓은 이유다. 이렇게 되면 더불어민주당이든, 그냥 민주당이든 2024년 총선에서 또 이번 같은 대패를 당할 공산이 크다. ● 민주당이 대한민국 중심정당 되는 길 문 대통령+문파와 민주당의 운명이 반드시 같이 가야 할 이유는 없다. 문 대통령은 5년 단임이지만 민주당은 앞으로 천년만년을 가야 할, 국민의 세금으로 움직이는 대한민국 정당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대깨문의 볼모 신세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는 기실 답이 나와 있다. 2018년 지방선거 대승 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지속가능한 중심정당을 위하여’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1.5당 체제로 장기집권하는 일본 자민당처럼, 민주당도 고정 지지층과 부동층의 압도적 지지뿐 아니라 경쟁정당 지지층의 상당한 지지를 받는 ‘중심정당’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거다. 5년 대통령 임기, 10년 정권교체 주기를 넘어 30년 주기의 시대교체 정당으로 굳히려면 민주당이 ‘북핵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문 정권 어젠다에 골몰해선 안 된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저출산·고령화, 일자리 같은 생활인의 절박한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협치를 해야 한다고 절절하게 지적했었다. 과거 열린우리당처럼 대통령과 더불어 운명을 함께 하는 정당은 정말이지, 다시 보고 싶지 않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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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박원순은 살아있다… 정권교체 될 때까지

    투표장 가기 전에 꼭 읽어보라며 중학교 동창이 카톡을 보내왔다. 사전투표든 제때 투표든 반드시 투표용지를 여러 번 접어 투표함에 넣으라는 거다. 그래야 자동개표기 아닌 수작업으로 처리된다고 했다(맨 끝에 “맞는지는 모르지만” 하고 덧붙였다). 서울대 법대 출신 변호사까지 부정선거·개표를 걱정하는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나이 지긋한 시장의 성추행 때문에, 그것도 대한민국 제1도시와 제2도시의 집권당 소속 시장 두 사람이 나란히 저지른 비리 때문에 선거를 치르는 나라는 정상일 수 없다. 심지어 전 부산시장 오거돈은 지금껏 처벌도 안 받고 잘만 지내다 첫 공판기일도 4·7선거 뒤로 연기되는 특혜를 누렸다. 작년 사퇴할 때도 총선 뒤에야 성추행을 고백하더니, 정권 차원의 고래심줄 같은 ‘빽’이 작동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괜히 극단적 선택을 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만 안됐다는 소리가 또 나올 판이다.● 서울이 세계 표준 도시로 가고 있었다고?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한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공소권 없음’으로 끝났고, 덕분에 친노 폐족은 화려하게 부활해 재집권할 수 있었다. 박원순 충격 뒤 원희룡 제주지사가 에둘러, 그러나 용감하게 지적했듯 “함께 져야 할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죽음으로 속죄하라며 내몰았는지도 모른다.”자살이 공(功)은 지나치게 미화하고 과(過)는 지나치게 축소하는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집권세력은 서울 시민들의 기억력을 새 수준으로 아는지, 박원순이 굉장히 훌륭한 서울시장이었던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다. “지금 서울은 미래 100년의 좌표를 정확하게 찍고 글로벌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세계의 표준 도시로서, 리딩 도시로서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도시로 가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후보 박영선이 2일 방송에서 따따따따 따발총처럼 발사한 소리다. 박원순이 미래 100년의 좌표를 정확하게 찍고 서울을 세계의 표준 도시, 리딩 도시로 만들었다니 우하하하 우습다. ● 박원순이 서울시와 시민들에게 지은 죄이런 일이 벌어질까봐 박원순이 재임 8년 7개월간 서울시를 얼마나 어떻게 망쳤는지, 주택부터 고용·노동, 서울시 조직까지 조목조목 밝혀낸 책이 최근 나왔다. 제목부터 섬뜩하다. ‘박원순은 살아있다’. 나연준 ‘제3의 길’ 편집인(40), 여명 국민의힘 서울시의원(30) 등 젊은 우파와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이 합세해 만들었다. 박원순은 어눌한 듯 순박한 모습으로, 착하고 부지런한 흥부 같은 ‘쇼’로 바쁜 서울시민의 마음을 훔쳤지만 실은 서울시를 ‘좌파의 병참기지’로 만든 권력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서울시의 정책 방향성은 도시 문명에 대한 거부, 전근대를 향한 향수였다. 이러한 틈새에서 공동체니 이웃이니 생태니 하며 음풍농월을 읊어대는 시민단체는 호시절을 맞았다. 반면 낡은 도심은 재생이란 이름으로 과거에 결박당했고, 빈자의 삶은 박제된 채 외지인의 구경거리로 전락했다.”(‘박원순은 살아있다’에서)그 결과 컨설팅사 AT커니가 평가한 글로벌도시전망 순위에서 서울은 지난해 42등이다. 2015년 12등에서 형편없이 추락했다. 서울이 세계 표준 도시라는 박영선은 도쿄와 헷갈린 거 아닌가? ● ‘박원순 계승자’와 반대파의 싸움 문재인 정부가 만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박원순은 2011년부터 서울에서 만들고 있었다. 서울특별시장은 외교 안보 빼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거의 소통령이다. 심지어 서울시는 박원순이 없는데도 박원순 때 추진하던 2032 올림픽 서울-평양 공동개최 유치 제안서까지 1일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제출했다. 어쩌면 박원순은 도시정부방위특공대도 만들고 싶었을 것 같다. 사실 박원순의 서울시는 2017년 문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이른바 진보진영을 먹여 살린 마르지 않는 젖소였다. 온갖 공동체의 이름으로 서울시 예산을 받아가고, 서울시 산하 온갖 ‘위원회’에서 권력을 맛본 이들이 지금 운동권 네트워크에, 서울시 핵심 조직에, 문 정권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다. 자연인 박원순은 없지만 박원순의 정치적 유산은 살아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그래서 올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단순한 시장을 뽑는 선거가 아니다. 박원순의 계승자와 반대자의 싸움이다. 시대를 가르는 대회전이다. 시민단체의 서울이 될 것인가, 시민의 서울이 될 것인가. 윗세대가 물려준 근대화의 결실을 지킬 것인가, 버릴 것인가. 대한민국을 택할 것인가, 조선을 택할 것인가.”(‘박원순은 살아있다’에서)● 선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동아일보 창간 101주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후보 오세훈(52.3%)이 민주당 박영선(30.3%)을 크게 앞서긴 했다. 그러나 선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민주당이 싫어서 이런 수치가 나온 것이지 국민의힘이나 오세훈이 엄청 잘한 것도 없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대통령과 중앙정부와 협력하고 국회에서 여당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일하게 될 것”이라고 여당에선 단언을 했다. 박영선 서울시장이 나오면 ‘문재인 보유국’을 외친 만큼 박원순보다 더 대통령에 충성할 것이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만큼 더 정부에 서울시정을 맞출 것이며, 국회의원 지역구를 청와대 출신에게 물려준 만큼 더 여당과 찰떡 공조할 것이다. 그런 서울시가 싫다면 서울시장 박영선은 일본으로 날아가 잠깐 도쿄 아파트에서 기분전환 할 수 있어 좋겠다.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서울시민에게는 이번 투표가 정말 중요하다. 단, 오세훈이 당선된대도 많은 일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박원순은 살아 있다는 거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못한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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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이러다 내년 대선도 ‘마스크 투표’ 할 판

    대통령이 ‘주사기 바꿔치기’로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는 주장은 참 황당하다. 의혹이나 논란 축에도 낄 수 없는 웃기는 소리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라고 홍보하고는 다른 백신을 접종했다는 건데, 일국의 대통령이 그럴 리가 없다. 그럼에도 간호사한테 폭언을 퍼붓거나 보건소에 협박 전화가 쏟아져 경찰이 내사에 나섰다고 한다. 당연히 폭력은 막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제 정세균 총리까지 철저한 규명과 엄정한 조치를 수사당국에 요구한 건 좀스럽고 민망하다. 총리는 ‘국론을 분열시키는 허위·조작정보’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큰 뜻을 품은 정치인이라면 왜 그런 소리가 나도는지 민심을 살펴야 한다. 일부에서 격앙된 반응이 나온 건 간호사가 백신을 바꿔쳤다고 진짜 믿어서도 아니고, 아스트라제네카를 불신해서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백신 확보를 제때 안 하고 못 한 탓에 우리는, 우리 부모는 언제 백신을 맞게 될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접종 한 달이 넘었는데 접종률은 겨우 1.6%, 세계 110위권 밖이다. 우리보다 가난한 부탄이나 캄보디아에도 뒤졌다는 국민적 분노와 실망이 엉뚱한 데로 번진 것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백신에 대한 불안을 덜기 위해 생중계로 접종한 뒤 “나의 최우선 순위는 가능한 한 빨리 국민들 팔에 백신을 놓는 일”이라고 말했다. ‘취임 100일 안에 1억 회’라는 접종 목표도 58일 만에 달성하고 2억 회로 올려 잡았다. 그게 대통령다운 모습이고 리더십이다. 문 대통령은 접종 전날 “다른 나라에 비해 초기 접종 속도도 빠른 편”이라고 참 못 믿을 발언을 했다. 그러고는 영국서 열리는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김정숙 여사와 백신을 앞당겨 맞으면서 “주사를 잘 놓는다” “다 있는 데서 옷을 막 벗는다”며 새새거리는 모습에서 존경심은 우러나기 어렵다. 서울시장 선거 TV토론회에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이스라엘 총리는 집단면역 비결을 한국에서 배웠다”고 1년 전 기사를 잘못 말해 시청자를 웃겼다. 코로나19 초기, 정부가 K방역을 잘한 건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정부 방역 지침만 잘 지키면 바이러스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고 우리는 마스크를 단단히 쓴 채 정부 시책에 잘 따른 착한 국민이었다. 덕분에 집권당은 180석을 차지했지만, 거기까지다. 문 정권은 K방역으로 재미 본 나머지 코로나 정치에 골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이 ‘우한폐렴’을 거칠게 종식시킨 뒤 홍콩 민주화시위를 진압하고 공격적 늑대외교로 세계를 위협하듯, 독재자는 팬데믹도 권력 확대 기회로 이용한다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지적한다. 대통령이 선거 전에 돈을 뿌리는 매표 행위를 하고, 반대 세력의 집회를 막고, 가짜뉴스와 종이신문의 바이러스를 잡겠다며 언론을 탄압하는 게 바로 독재정권들의 수법이다. 국가와 정부도 위기 때 본성이 극대화되는 법이다. 코로나 위기를 거치며 중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이 마오쩌둥을 능가하는 전체주의 패권국가로 뛰고 있다면, 포퓰리스트 도널드 트럼프 대신 바이든 대통령을 선택한 미국은 인권과 자유민주의 가치를 강조하는 추세다. 문 정권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는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대통령은 작년 8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우리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끔찍한 죽임을 당했을 때도 대통령은 잠을 자고 있었다. 코로나 백신 확보는 헌법상 기본권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대통령이 셀트리온 같은 업체를 찾아 치료제 개발을 격려하면서 작년 11월까지 백신 선(先)구매를 독려하지 않은 행위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작년 말 “(정부 여당이) 코로나 백신이나 재난지원금 스케줄을 내년 재·보선에 맞췄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최근에는 정부가 코로나를 일찍 종식시키는 것도 원치 않는다는 소문이 나돈다. 내년 대선까지 광화문광장 공사를 하면서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계속해야 정권 재창출에 유리하다는 거짓말 같은 얘기다. 아무리 모든 정치의 원동력이 통치자의 사적 이해관계라 해도 이것만은 아니었으면 한다. 북한에 갖다 바쳐도 좋으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백신 확보에 죽을힘을 다해주기 바란다. 다행히 오늘은 만우절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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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김상조의 파렴치 행각, LH와 뭐가 다른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29일 전격 경질됐다. 본인은 사퇴라지만 대통령이 문책 경질한 것이어야 마땅하다. 작년 7월 29일 자기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14% 올려 계약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날은 전월세 5% 인상 상한제 등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민주당 단독 처리된 날이었다. 30일 본회의 통과, 31일 국무회의 통과 후 곧바로 효력을 발휘하기 이틀 전 김상조는 서둘러 사익을 챙겼다. 법적으로 그가 잘못한 건 없다. 그럼에도 경질된 것은 전월세상한제가 전격 실시된다는 미공개 내부정보를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3기 신도시 발표 전 미공개 내부정보를 이용한 땅 투기로 사익을 노린 것이 LH사태다. ‘김상조 사태’는 미공개 내부정보로 사익을 챙겼다는 점에서 LH사태와 닮은꼴이다. ● 미공개 내부정보로 사익 챙기기 당초 청와대는 김상조도 세입자인데 자기가 사는 전셋집의 임대료가 올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그 청와대 관계자도 혈세로 비싼 월급 받으며 김상조 개인의 변명이나 해주다니 한심한 혈세 낭비다). 그러나 김상조가 땅 투기만 안 했을 뿐이지 청와대 내부의 탐욕과 불통의 논의구조, 공직자 무능과 비윤리성이 드러났다는 점에선 LH사태보다 더 심각하다. 진정 김상조가 양심적 공직자라면 전월세상한제를 논하는 당청회의에서 “이 법은 문제가 있다. 개인적 사례지만 나만해도 이만저만하게…” 식으로 보완을 주장했어야 옳다. 틈새기간을 이용한 임대료 급등, 전셋집 공급 감소, 전세의 월세 전환 급증 등 부작용을 김상조가 몰랐을 리 없다. ‘운동권 청와대’의 강성분위기 때문에 입을 못 뗐다면 불행한 일이다. 입은 뗐으나 보완책 마련까지 못 갔어도 당청 논의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김상조가 청와대에선 잠자코 있다가 집에 가서 냉큼 전셋값이나 올려 받았다면 파렴치하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이틀 뒤 새 법이 시행된대도 5% 정도만 올리고 말지, 이런 얌체 짓은 못 한다. 내가 사는 전셋집의 임대료도 올랐기 때문이라고? 그럼 공직자로서 그런 법을 막아야 옳지, 입 다물고 있는 것이야말로 파렴치한 직무유기다(심지어 김상조는 예금 재산만도 꽤 되는 사람이다). ● 권력이용한 치부, 김상조뿐인가29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불법 투기 근절·재발방지 대책’이 얍삽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직자 투기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달래기 위해 미공개 정보 이용 투기를 강력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영악한 공직자는 김상조처럼 이미 살뜰하게 사익을 챙겨 놨을 것으로 사료된다. 부동산정보만 문제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투자든 뉴딜정책이든, 권력 내부에서 논의되는 모든 미공개 정보는 그 자체가 바깥세상에선 돈이다. 어디 정책 관련 정보뿐인가. 돈으로도 움직이기 힘든 인허가권 역시 최고의 권력이자 노다지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농지 매입도 그래서 개운치 않다. 청와대는 “국민들이 귀농 귀촌을 준비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해명했지만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소리다. 값싼 농지를 사서 그렇게 쉽고 빠르게 농지 전용(轉用)허가를 받는 걸 민간에선 ‘빽’이라고 한다. 농지 낀 사저 부지를 사들여 특혜성 농지 전용을 하고도 청와대는 국민 앞에 뻔뻔할 만큼 태연하니까 그 탄탄했던 40대 돌부처들도 돌아앉는 것이다. ● 집권세력 도둑정치 속수무책인가 권력자가 뇌물 받는 것만 부패가 아니다. 집권세력이 법과 제도를 교묘하게 움직여 국민의 재산을 축내고 사익을 챙기는 게 부패이고, 도둑정치(kleptocracy)다. 결과적으로 이익이 됐대도 마찬가지다. 김상조나 문 대통령처럼 문제를 알고도 가만히 있었기에 그들은 사익을 늘렸고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은 급등했다. 김상조 꼬리 자르기로 집권세력의 실정을 덮어선 안 된다. 재차 강조하지만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민주당 소속 시장의 잘못 때문에 혈세 들여 치르는 선거다. 집권세력에 제대로 된 경고장을 보내지 못하면 국민은 개돼지 취급 받으며 사는 수밖에 없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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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적폐청산으로 망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이라는 말은 문재인표 관용구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 취임사 자체는 명연설이었다. 작년 연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란 부제가 붙은 책이 나왔다. 번득 문 대통령을 연상시키지만 실은 고종에 대한 책이다. 제목은 황공하게도 ‘매국노 고종’. 역사 발굴 기사로 이름난 저자 박종인은 고종을 만악의 근원이라고 했다. “오로지 자기 목숨과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해 나라를 버렸다”며 서문부터 “누가 고종을 자주 독립을 염원한 개혁 군주라고 찬양하는가” 일갈했다. 고종의 개혁성을 강조해온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가만있지 않았다. 일간지 칼럼을 통해 “고종 황제 무능설은 일제가 1905년 ‘보호조약’ 강제 후 저들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지적한 거다. ● 어쩌랴, 역사도 제 눈에 안경인 것을 고종에 대해선 문 대통령도 언급한 적이 있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했던 2017년은 마침 정유년이었다. 유력 대선주자로서 그는 정초 페이스북에 1597년 정유재란과 1897년 정유년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를 적시했다. “2017년 정유년 대한민국은 이순신 장군의 비장한 재조산하(再造山河)와 고종의 이루지 못한 새로운 나라 꿈이 합쳐져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도전과 변혁이 시작되는 해로 기록될 것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된다.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는 모든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동등한 주권과 독립성을 갖는 ‘새로운 나라의 꿈’으로 볼 수 있다. ‘매국노 고종’에서처럼 모든 권력과 경제력까지 장악하겠다는 시대착오적 황제의 꿈으로 볼 수도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정권 차원의 ‘과거사 바로잡기’가 전체주의로 흐르기 십상인 이유다. ● 과거 뒤집기에 골몰한 무능한 지도자 굳이 밝힌다면 나는 의도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본다. 어떤 멍청한 지도자가 내 나라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의도를 거죽으로 드러내겠나. 사회와 국가는 이상(理想)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역사학자 윌 듀랜트가 알려준 역사의 교훈이다. 자연과 역사는 살아남은 것이 선, 몰락한 것이 악이다. 이 기준에 비춰보면 고종은 선했다고 봐주기 어렵다. 더구나 지리는 역사의 기반이다. 한반도가 일본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영향은 기술이 발달하면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오직 지도자의 상상력과 진취성, 추종자의 강한 근면함만이 가능성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고 듀랜트는 지적했다. 무능한 지도자가 나라를 망국으로 이끄는 역사의 법칙이 여기서 나온다. 부친 대원군의 10년 집권을 종식시킨 뒤 고종이 한 일이 대원군 정책을 판판이 뒤집는 ‘적폐청산’이었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상상력과 진취성 없는 무능한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밖에 없었던 거다. ● 앞뒤 안 따진 적폐청산… 경제가 파탄 났다 1873년 말 친정을 선포한 고종은 인사부터 대원군과 반대로 시작했다. 영의정 이유원은 경복궁 재건을 놓고 대원군에 반대해 좌의정 직을 박탈당했던 인물이다. 대궐도 대원군이 복원한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적폐청산 중에서도 획기적인 건 친정 두 달 만에 선언한 청나라 돈(淸錢) 철폐다. 청전은 돈 풀어 물가를 앙등시킨 대원군의 대표적 악정이었다. 고종이 앞뒤 따지지 않고 폐지하는 바람에 당장 화폐경제가 마비된 것이다. 심지어 왕조가 보유한 재정 비축분은 하루아침에 고철덩어리가 돼버렸다. 적폐청산하다 재정 파탄을 자초했다는 얘기다. ‘매국노 고종’의 부제대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의 적폐청산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문 대통령이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인 탈원전정책이 단적인 예다. 군주제에선 왕명이 법이었지만 공화제에선 대통령도 법치 아래다. 문 대통령은 “월성 1호기는 언제 폐쇄하느냐”는 한마디로 장관부터 공직자들이 줄줄이 법의 담장을 타게 만들었다. 전기요금 인상, 기업의 에너지비용 증가, 탄소배출 증가 등은 온 국민의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특히 40년 이상 대한민국이 쌓아온 세계적 기술과 원전 인프라를 포기함으로써 북핵 앞에 사실상 무장해제를 자행한 죄상은 언젠가 반드시 규명돼야 할 일이다. ● 고종 때와 달리 우리에겐 선거가 있다 열강의 제국주의가 밀려들던 고종의 시대는 강대국 패권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오늘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일본군함 운양호가 강화도 앞바다로 밀고 들어온 1875년, 조선은 재정난도 재정난이지만 뱁새눈에 밴댕이 속으로 방위력도 외교적 선택지도 키울 수 없었다. 대한민국이 그때에 비해 놀랍게 부강해진 것은, 고종이 갔던 길과 정확하게 반대로 갔기에 가능했다.문 정권은 오늘도 한명숙 전 총리의 전임 정권 때 유죄 판결을 뒤집기에 분주하다. 과거 정부가 어렵게 지켜낸 삼권분립의 법과 제도를 뒤흔들고, 재정은 물론 한일관계를 파탄 내고 한미동맹을 뒤집으려 든다. 조선과 달리 우리에겐 다행히도 선거가 있다. 2020년 총선은 선거법이 뒤바뀌는 바람에(또 솔직히 야당도 문제였다) 정권심판을 피할 수 있었지만 4·7선거는 달라야 한다. 적폐청산으로 망한 지도자를 경험하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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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부동산투기 정권’이 일으킨 LH사태

    문재인 대통령이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정치력을 발휘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건 부동산 개발을 하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개발예정지에 조직적 땅투기를 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15일 느닷없이 ‘부동산 적폐 청산’을 들고나왔다. 과거 정부 부동산투기까지 파헤치라는 물 타기 전법이다. “국민은 사건 자체의 대응을 넘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 발언은 탁현민의 쇼처럼 현란하다. 여기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근본적 해결책이 물론 요구되지만 지금은 LH 말고도 현 정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땅투기를 했는지 철저히 수사하는 게 중요하다. 당장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의 안산 지역구 보좌관 부인이 3기 신도시 발표 한 달 전에 땅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장관 측은 보좌관만 자르고는 “개발정보를 이용한 투기로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대통령 지시대로 부동산 ‘적폐’ 청산에 매달리다간 4·7 재·보선까지 국민 시선만 분산시킬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공직자들의 부동산 부패를 막는 데서 시작해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부동산 부패의 사슬을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역대 정부에선 부동산투기가 의심스러운 장관 후보자들을 단호하게 낙마시켰다. 2000년 인사 청문회가 도입된 이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2명,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10명이 눈물을 머금고 탈락했다. 공직자가 공직에 헌신하라고 국가는 혈세로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이다(공직자윤리법 2조). 아무리 스스로는 투자라고 믿는대도 공직자가, 또 공직자 될 사람이 부동산투기를 했다는 건 자신의 업(業)에 헌신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문 정권은 ‘부동산투기 정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동산투기는 물론이고 위장전입, 논문표절, 세금탈루, 병역면탈까지 5대 불가 원칙을 내세웠지만 투기로 낙마한 장관 후보자는 달랑 두 명이다. 투기 의혹이 역력해도 임명 강행된 장관이 수두룩하다. 2019년 임명돼 1년 반 벼슬한 진영 행안부 장관은 의원 시절 지역구인 용산구에서 ‘용산 참사’로 개발이 중단된 땅을 사들인 경우다. 2년 만에 아파트와 상가를 분양받아 20억 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뒀다. 본인은 용산 개발에 국회의원 영향력을 행사한 적 없다고 주장했지만 알 수 없다.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 부동산정책을 수립하는 부처와 산하기관 1급 이상 공직자 107명 중에서도 다주택자가 39명이나 된다(2020년 경실련 조사). 1인당 재산이 신고가액 기준으로 20억 원, 부동산재산은 12억 원이다. 국민 평균치의 무려 4배다. 우리나라에서 부자가 되는 길은 사업(37.5%) 아니면 부동산투자(25.5%)라는 게 KB국민은행 조사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 상속받은 부자가 많지(19%) 노동소득으로 부자 된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 정도다. 봉급 말고는 받는 게 없는 공직자들이 부동산정책을 하다 부자가 됐다면 유심히 봐야 할 일이다. 부동산 관련 공직자들의 이해충돌을 막는 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여권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터다. 하지만 이해충돌방지 의무는 공직자윤리법에도 이미 들어가 있다. 법과 제도가 미비해 공직으로 사익을 취하는 게 아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에 관한 법률)이 그렇게 엄중하다면 김명수 대법원장은 후보자 시절 의원들에게 국회 임명동의 통과를 잘 봐달라고 부정청탁을 했는데도 왜 처벌받지 않는지 답해야 한다. 결국 부동산투기 의심 장관을 임명하는 문 정권에 문제가 있다. 자기네 편은 부동산투기도 별문제가 아니라는 뻔뻔함이 LH 투기 직원들의 간덩이를 키운 것이다. 공직자윤리는커녕 시민의식도 부족한 장관이 대통령에게는 충성스러울지 몰라도 국민은 불행하다. 김영란법보다 더한 법을 만든대도 우리 편은 괜찮다는 ‘선택적 정의(正義)’ 쉽게 말해 내로남불이 없어지지 않는 한, 문 정권에서 부동산투기는 사라질 리 만무하다. 내 집 장만은 보통사람에게 삶의 보람이고 유일한 재산 형성의 기회였다. 문 정권은 잘못된 부동산정책으로 그 기회를 박탈했다. 과정은 불공정했다. 결과는 문 정권 패거리에게만 정의롭다. 이 정권의 5년이 너무 길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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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공공 고양이는 생선을 더 좋아한다

    LH사태가 결국 문재인 정부의 뒷목을 잡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가 랜드(land)와 하우징(housing)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사건은 이 가장 예민한 문제를 건드리면서 부동산정책 실패부터 국가주의 파탄까지 문 정권의 총체적 실패를 폭로해버렸다.● 문 정권의 국가주의는 파산했다‘개발을 노린’ 공직자 땅 투기와 이번 사건을 헷갈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있는 사람들이 땅이나 사대는 것을 곱게 봐주긴 어렵지만 농지법 어기지 않고 세금 제대로 냈다면, 공직자가 땅 샀다고 때려잡을 순 없다고 본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공공귀족들이 직무상 정보를 빼내 땅을 샀느냐는 점이다. 그걸 정부합동수사반에서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자기 컴퓨터에서 위조문서가 나와도 위조 안 했다고 잡아떼는 게 이 정권의 DNA다. 머릿속을 뒤집어볼 수도 없고, 땅을 사고도 “개발정보 몰랐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다. 수사는 요란해도 흐지부지 끝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이번 사태의 의미는 공(公)은 선(善), 사(私)는 악(惡)이라는 듯 공공부문을 지배세력연합으로 확장해온 문 정권 국가주의의 파탄에서 찾아야 한다. 운동권네트워크 정권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는 파산했다. 대깨문도 정신이 번쩍 드는, 그래서 집권세력으로선 정권이 무너질 망국적 범죄가 아닐 수 없다.● 계몽적 부동산정책, 시장의 복수에 완패문 정권의 부동산정책 실패를 LH사태는 만화경처럼 드러냈다. 정권 출범 때 서울에서 아파트 살 돈으로 지금은 전세밖에 못 산다. 4년 전 서울의 아파트가 평균 5억9861만 원인데 지금은 전셋값 평균이 5억9829만 원이다(KB국민은행). 열심히 노력하면 내 집 장만하고, 또 늘려갈 수 있다는 희망은 사라졌다. 이 정부 믿고 있다간 ‘벼락거지’ 될 판에 어물전 고양이가 뭔들 못하겠나.문 대통령이 ‘아파트 공급대책’으로 다주택자들에게 징벌적 과세 때리고, 임대차보호법 등 서민을 위한다는 규제를 휘두른 결과가 이 꼴이다. 정부는 ‘계몽적 방향으로 조정하고 통제’하려 했으나 주택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생태계 교란으로 결론 났다.자가(自家)율 향상은 규제완화로 집값이 올라가면서 주택공급도 늘어날 때 발생한다는 게 이창무 한양대 교수의 최근 연구결과다. “부동산 문제는 정부에서 잡을 자신 있다”고 큰소리쳤던 문 대통령의 국가주의가 ‘시장의 복수’에 완패한 거다. ● 견제 없는 공공부문은 무섭게 부패한다 뒤늦게라도 부동산 실패를 깨달았으면, 공급에선 수요자 요구를 존중해야 했다. 이 정권의 특성이 죽어도 방향전환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못되면 더 가열하게 그 길로 간다. 2월 4일 발표한 주택공급대책의 제목이 ‘공공주도 3080+’였다.전임 정부에서 ‘공공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했던 성과급 체제마저 문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없애버렸다. 공공부문의 무한정 확대가 국가주의 특징이다. “공공이 주도하면 충분한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다” “공공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책임지고 조율할 수 있다” “그 결과 얻어진 개발이익은 우리 사회 모두가 공유한다”며 문 정권은 LH에 부지 확보부터 분양까지 전 과정을 맡긴다고 발표했다. 개뿔이었다. 공공부문도 결국 공적 이익 아닌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 공공선택이론의 핵심이다. ‘공공’의 고양이라고 생선 좋아하는 본성이 없어지지 않는다. 특정 공기업은 부패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특히 더 크다고 OECD는 지적했다. 공공 고양이는 더 좋은 생선을 더 맛있게 잘 먹는다. 공산주의 소련이 괜히 망했겠나. ● 당신의 삶을 책임져주는 국가는 없다무엇보다 정부가 밀실에서 신도시를 결정한다는 것이야말로 국가주의의 결정판이다. 그것도 문 정권이 극혐하는 전두환 국보위 시절에 나온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로 사유재산을 강제 수용하는 방식이다.신도시가 발표될 것 같으면 후보지로 떠오른 지역을 중심으로 투기 열풍이 불 수밖에 없다(정말 안타깝지만 그게 40년 경험에서 배운 학습효과이고, 인간 본성이다). 불과 몇 달 만에 수십 배 불로소득을 올릴 기회를 주는 ‘적폐’를 문 정권도 자행했다. 그리고는 국민적 공분을 풀어준답시고 공공귀족들 가솔까지 샅샅이 수사하겠다는 건 끔찍한 국가주의의 극치다. 부동산 정책으로 인간 본성을 통제하는 정부가 있는 한, 투기는 좀비처럼 살아난다. 당신의 삶을 책임져 주는 국가는 없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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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한 번도 보수당을 찍어본 적 없는 세대

    왜 막대한 혈세 들여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하는지 생각하면, 지방권력은 교체돼야 옳다. 일국의 대통령이 자기네 잘못으로 재선거할 경우 후보 안 낸다고 당헌까지 고쳤으면, 지켜야 맞다. 문재인 정부가 야당 복 하나는 타고나는 바람에 정의(正義)가 4·7 재·보선에서 시험받게 됐다. 보수 야당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 결과가 오늘 발표된다. 축제처럼 컨벤션 효과를 일으켜 정권교체까지 몰고 가도 모자랄 판에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 룰 놓고 씨름하다 진 빠질까 걱정이다. 서울시장 선거법칙 중 하나가 대통령 지지율이 45% 밑이면 야당이 이긴다는 거다. 작년 총선 직전 56%였던 문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지난주 37%까지 떨어졌다(이하 갤럽조사). 야권이 단일화만 하면 무조건 찍는다고 유권자들이 팔을 걷고 기다릴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보수당을 찍어본 적 없는 세대가 도끼눈을 뜨고 있다. 거대여당 됐다고 입법폭주를 서슴지 않는데도 지지 정당 1등이 더불어민주당(37%)인 것도 이 때문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어떤 후보든 기호 2번을 달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그 당 지지율이 22%다. 전임 대통령 탄핵 반대층과 비슷하다. 과거 콘크리트 지지층 중 20%는 아직 마음을 안 줬다는 의미다. 김종인이 광주에서 사죄했음에도 총선 직전 25%에서 되레 내려갔다. 유력한 대선 주자가 없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장 예비경선 진출자가 8명이나 됐으면 국민의힘은 서울 방방곡곡을 다니며 미스터 트롯처럼 보수 야당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관심 끌기 싫다는 듯 경선을 끝내놓고 단일화 설문으로 ‘시장 적합도’를 물으면 당만 우스워질 뿐이다. 그럼 적합하지 않은 후보도 있단 말인가. 당연히 여당과 맞붙어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따져야 한다. 제1야당 조직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안철수가 국민의힘 간판을 달 경우 28%나 되는 무당층이 2번 안 찍을 수도 있다. 특히 서울에서 25∼29세(86만 명) 다음으로 많은 45∼49세(82만 명), 50∼54세(81만 명)의 거의 절반은 보수당을 찍어본 적 없는 자칭 진보요, 강성 문파다. 두 번째 지지 정당은 없다고 할 만큼 압도적이다. 1990년대 초반 X세대라고 불렸던 1970년대생은 부모세대보다 먼저 컴퓨터와 배낭여행을 즐긴 풍요의 세대였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져 어렵게 사회에 진출했고, 자신들이 만든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정권에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믿는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외쳤던 이들에게 국민의힘은 상위 1%의 정당이다. 민주당이 아무리 못한대도 보수당은 토착왜구 같아 손이 안 나간다는 거다. 1987년 민주화항쟁에 나섰던 50대는 물론 넥타이부대의 자녀들인 30대도 40% 안팎이 민주당을 지지한다. 그 다음은 ‘지지 정당 없다’이지 보수당이 아니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은 60대 이상이 제일 많다(35%). 당의 이미지도 결코 오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댁 어른 같다. 심지어 당 내부에서 국민의힘은 국회의원을 하려고 모인 정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번듯한 당사 있겠다, 다달이 국고 보조금 나오니 TK(대구경북) 의석만 잡고 있으면 굳이 집권하려 애쓸 것도 없고, 혁신할 필요도 없이 편하다고 했다. 이런 정당이라면 민주당은 20년 집권도 쉬울 듯하다. 오죽하면 김세연 전 의원이 총선 불출마선언을 하면서 당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민폐라고 했겠나 싶다. 그럼에도 돈 때문에 당을 깰 수도 없는 것이라면 정권 교체를 갈망하는 국민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이라고 일갈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만일 직을 박차고 나온다면, 2번을 벼슬처럼 떠안기지 말았으면 한다. 제3지대에서 제대로 된 정당을 차리는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다. ‘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를 쓴 서울대 강원택 교수는 영국 집권 보수당의 성공 비밀을 강한 권력 의지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국가 비전이 있어도 집권 못 하면 소용없다. 유연하게 변화하고 외연을 넓혀 정권을 잡은 다음, 원칙으로 돌아가면 된다. 지금은 딴판인 민주당도 그렇게 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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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공수처장은 ‘법의 지배’를 말했다

    역사든 과거든 그중에서 무엇을 기억할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과거 나의 선택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 하지만 어떤 과거를 기억할지 선택한 것이 나를 만들 수도 있다. 내가 살아본 적 없는 역사의 기억은 더욱 그러하다.이번 삼일절 역사에선 문재인 대통령은 위기 극복을 선택했다. “3·1독립운동으로 우리는 식민지 극복의 동력을 찾았고 민족의 도약을 시작할 수 있었다”며 100년 전 의학도의 헌신과 현재 의료진의 노고, 국민의 인내, 그리고 현 정부의 성과를 연결하는 식이다(“충분한 물량의 백신과 특수 주사기가 확보됐다”는 언급은 참 뜬금없다).그 앞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자유와 독립의 외침은 평범한 백성들을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태어나게 했고 정의와 평화, 인도주의를 향한 외침은 식민지 백성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함성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 3·1운동에서 비롯된 ‘민주공화국’을 놓고 최근 인상적 연설을 한 사람이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김진욱 처장이다.● 군주제와 공화제의 차이를 아는가관훈클럽이 초청한 포럼에서 김진욱은 “남산 둘레길에서 일본 통감관저의 터, 위안부 희생자 할머니 기억의 터, 중앙정보부 터 등을 탐방하며 남산에서 군주국가 조선과 제국주의 일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흔적들이 서로 만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1910년 순종은 한일병합조약으로 주권, 인민, 영토를 포기했다. 군주에게 국가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주권이 있는 군주국 시절이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임시헌장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못 박았고, 우리 헌법으로 계승됐다. 문 대통령 연설대로 3·1운동의 외침이 평범한 백성들을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태어나게 한 거다.김진욱은 남산의 역사 탐방에서 군주국과 민주공화국의 차이를 기억했다.“군주국이 백성을 위한다는 민본주의 사회라면 민주공화국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군주국이 군주가 법을 통치의 수단 삼아서 통치하는 법에 의한 지배를 추구하는 사회라면, 민주공화국은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고 군주조차도 법 아래에서 법의 적용을 받는, 법의 지배가 통용되는 사회입니다.”즉 대통령제에선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고 ‘법의 지배’를 받는 사회가 민주공화국이라는 기억을 공수처장 김진욱은 선택한 것이다.●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다이 당연한 연설에 주목한 것은 공수처의 특별한 위상 때문이다. 공수처는 검찰이 수사 중인 고위 공직자 사건도 넘겨받아 수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야권에선 “공수처가 검찰수사 중인 현 정권 관련 비리 사건을 가져와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무력화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언제 폐쇄하느냐”며 챙겼던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청와대가 개입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라임·옵티머스 정관계 로비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그런데 김진욱은 거꾸로 “권력자이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문 때문에 공수처가 생긴 것이고, 공수처는 법의 지배를 구현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법에 의한 지배’가 정치적으로 유불리를 따져 법을 적용하는 것이라면, ‘법의 지배’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렇다면 김진욱이 공수처로 월성 1호기 사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이첩받아서는 그야말로 법대로, 대통령이든 대통령비서실장이든 누구도 법 위에 있지 못하도록, 추상같이 수사하는 거다! 이렇게 되면 집권세력의 허를 찌르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가장 한국적 인과응보(因果應報)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아닐 수 없다.● 역사에 사필귀정은 있는가문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사 이규원도 자기들 사건을 공수처로 보내달라고 주장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사건 수사를 중단시킨 혐의로 수원지검에서 수사 중인데 공수처로 이첩되면 수사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이 사건 자체가 문 대통령이 2019년 3월 18일 “검찰과 경찰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며 지시하는 바람에 터졌기 때문이다.판검사에 대해선 공수처가 기소권까지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검사와 고위경찰이 정권 관련 사건을 함부로 수사할 수 없기를, 재판에 넘기더라도 판사들이 양심껏 실형을 내릴 수 없는 ‘독재 수사처’를 문 정권은 노렸다고 나 역시 생각했다.그러나 김진욱이 민주공화국의 ‘법의 지배’를 실현한다면, 역사가 달라진다. 대한민국이 달라질 수도 있다. 102년 전 목청껏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던 것처럼,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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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김어준의 뉴스공장, 세금으로 들어야 하나

    직언(直言)은 쉽지 않다. 신현수 민정수석처럼 직(職)을 걸고 직언을 해도 권력 앞에선 말한 사람만 우스워지기 십상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예비후보인 조은희가 1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교통방송을 정권의 나팔수 아니라 시민의 나팔수로 하겠다”고 밝힌 건 용감했다. 심지어 김어준 앞에서, 대놓고 말한 것이다.김어준은 권력자다. 1년 반 전 (https://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191023/98032047/1)을 쓴 적도 있지만 지금은 더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누굴 뽑아야 할지 헷갈린다면 이 프로에 대한 판단을 보고 결정해도 좋을 듯하다. ● 출연자부터 친정부적인 뉴스공장교통방송을 정권 아닌 시민의 나팔수로 만들겠다는 조은희 말에 김어준은 “그러면 저는 뉴스공장 관둬야 되는 겁니까?” 물었다. 조은희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요.”김어준 “나한테 잘 보여라(라는 뜻이군요).”조은희 “대신 진중권, 서민, 서정욱 변호사 코너도 만들면 되죠.”조은희가 뉴스공장 공장장을 살릴 대안을 제시한 건 중요하다. 김어준을 무조건 퇴출시키겠다는 것도 아니고, 진중권 같은 특정 인물을 출연시키라는 외압도 아니다. 출연진부터 너무나 친정부적이니 균형을 맞추라는 발랄한 제안이다.당장 뉴스공장 출연자만 봐도 1월 1일부터 2월 23일까지 더불어민주당 의원만 9명이었다. 정청래(민주당)-하태경(국민의힘)처럼 제1, 2당 의원이 같이 나오는 코너나 통일부 장관 이인영,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정세현 같은 정부 측 인사는 제외하고도 지독하게 편향적이다. ● MBC 출신 박영선이 틀렸다다음 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조은희처럼 김어준에게 대놓고 말한 건 아니고 다른 방송에서 “방송이라는 건 시청률로 시민의 호응도를 말하는 건데 교통방송 청취율이 굉장히 높은 것으로 안다”며 “한 방송을 시장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발상”이라고 민주화운동 투사처럼 말했다. 언론 자유란 대개 정부 비판언론이 쓰는 말이다. 민주주의란 한마디로 비판이 제도화돼 있는 제도이고, 그래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김영평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주의는 만능인가’에서 강조했다. 더구나 tbs는 서울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대놓고 정부 편향적인 공영방송 뉴스공장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 땡전뉴스의 웃기는 버전과 다름없다. 역시 조은희는 지지 않았다. 다음 날 “뉴스공장 패널 구성이라도 살펴보고 말하는 게 도리”라고 팩폭(팩트 폭격)을 가한 거다.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청취율이 좋으니 문제없다거나 공정한 방송이라는 방송사 출신 정치인 박영선 후보의 철학이 안타깝다”며 “서울시장은 공정하고 균형 잡힌 방송을 들을 권리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정직해야 한다”고 똑 부러지게 지적했다. ● 제1야당 다른 의견은 들을 필요 없다? 교통방송은 서울특별시 산하 미디어재단에서 운영한다. 1년 예산 500억 원 중 서울시 출연금이 2021년 무려 375억 원이다. 국정감사 때 서울시장에게 감독 책임을 묻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公營)방송이니 정부여당의 사정을 충실히 알리는 게 당연하다는 해명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걸 바로 편파방송이라고 한다. 방송법 6조는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특히 정부 또는 정책 등을 공표하는 경우 의견이 다른 집단에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방송법은 적시해 놨다. 뉴스공장은 대통령 신년회견 관전평을 듣는 데도 정의당 의원을 등장시켰다. 올해 두 달이 다 가도록 국민의힘 의원은 단 한 명도 단독으로 나오지 않았다. 미얀마 대학생도 나오는 판에 이 정도면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하다고 하기 어렵다’(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관련 방송의 공정성을 분석한 한국언론학회 보고서에서 따온 문장이다).● 차베스를 숭배하는 사람들 모여라 출연자 균형을 맞춘다 해도 공정성이 확보될지는 의문이다. 김어준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다. 무소속의 금태섭 전 의원은 민주당을 극단주의적으로 몰고 가는 음모론자의 대표적 인사가 김어준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예비후보, 국민의힘 나경원 예비후보 역시 교통방송이 취지대로 운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미디어재단 tbs 사업 중 첫째가 ‘교통 및 생활정보 제공’이다. 하지만 tbs가 김어준을 제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tbs 이강택 대표이사는 “tbs에서 김어준은 한마디로 킬러 콘텐츠”라고 했다. 한국경제에 비유하면 삼성전자 정도의 비중이라는 거다. 뉴스공장이 벌어들인 수입으로 tbs 다른 프로를 먹여 살릴 정도다. 이 대표가 그대로인 한, tbs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언론노조위원장 출신 이강택이 2004년 KBS PD 시절 ‘신자유주의를 넘어―차베스의 도전’을 만든 걸 보면 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민주당 예비후보 우상호는 김어준 방송에 문제가 있으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거를 것이라고 싸고돌았지만 이강택이 차베스 칭송 프로를 만들 때 KBS 사장이던 정연주가 방송통신심의위원장으로 예정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견제할 삼권분립이 무너졌듯, 김어준의 tbs도 견제할 길이 없는 형국이다. ● 방송도 정치도 영원한 권력은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웃기는 뉴스공장의 재미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청취율 높다고 껌뻑 죽는 건 지지율 높다고 문 대통령 앞에서 껌뻑 죽는 풍토와 다르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의 극단주의를 키운 음모론도 그래서 끊임없이 기어 나왔고 종국엔 미국 민주주의까지 뒤흔들었다. 음모론으로 범벅된 인터넷 매체로 시작해 일국의 대통령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김어준은 미국 브레이브바트 뉴스의 스티브 배넌과 많이 닮았다. 하지만 배넌은 트럼프의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들어가 공적 책임을 졌지, 공영방송 마이크를 쥐고 책임지지 않는 정치적 영향력을 휘두르진 않았다. ‘트럼프 혁명’을 일으켰던 배넌이 공적 목적을 빙자해 모금한 돈을 빼돌려 구속됐다 트럼프 퇴임 19시간 전에 사면받았다는 사실은 슬프기 짝이 없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한국의 배넌이 진짜 배넌의 운명까지 닮지는 않기 바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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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민정수석 폭탄 투척 사건

    신현수 민정수석이 열일했다. 일제시대 애국지사 폭탄 투척하듯, 청와대 한복판에서 사표를 투척함으로써 정권 핵심부의 음모를 백일하에 노출시켰다. 적지 않은 국민이 지금껏 문재인 대통령만은 선하고 정의롭다고 믿었다. 대통령은 선하고 공정한데 일신의 영달과 장기집권을 노리는 ‘운동권 청와대’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줄 알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막가파식 검찰 인사를 서슴지 않는 것도 대권욕에 사로잡힌 전 법무장관 추미애의 단독 플레이로 생각했다. ●검찰 장악은 대통령의 의지였다그게 아님을 이번에 신현수가 드러냈다. 그가 반대한 ‘추미애·박범계 라인’ 인사가 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는 것은 이 모든 ‘검찰 장악’이 문 대통령 뜻임을 시사한다. 설령 법무장관 박범계가 대통령 재가 없이 발표했고, 문 대통령이 사후 승인했다 해도 마찬가지다.대통령의 경희대 후배로 윤석열 턱밑에서 정권 관련 수사마다 견제구를 날린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을 신현수는 교체할 작정이었다고 한다. 이성윤을 그대로 둔 이번 인사는 계속 그 자리에서 어명(御命)을 받들라는 대통령 의지가 분명하다. 그것을 신현수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특히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백운규 영장 청구 직후 문 대통령이 격노했고, 신현수를 패싱 한 검찰인사가 승인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청와대는 ‘격노’가 출발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백운규는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도록 지시한 혐의다. 수사가 계속되면 “월성 1호기 언제 폐쇄되느냐” 물었던 문 대통령까지 칼끝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다(이 수사를 막는 것을 집권세력은 ‘문민통제’로 표현한다). ●직을 걸고 직언하는 것이 민정수석 순장조로 채워진 임기 말 블루하우스에선 1년 3개월 뒤 대통령을 무사히 퇴임시키고, 그 뒤엔 조용히 잊혀지게 만드는 것이 최대 현안일 터다. 신현수가 비공개회의에서 특별감찰관을 빨리 둬야 한다, 선거 코앞에 과거 국정원 사찰 문제를 청와대가 언급해선 안 된다는 소리를 괜히 했겠나. 대통령 아들딸과 비서실 관련 의혹은 계속 터지는데 청와대에선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지면 대선도 위험하다며 정치 공학에나 골몰하니 기가 막혔을 거다. 민정(民情)수석이 본래 그런 자리다. 민간(民間)의 정서(情緖)까지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전하는 자리. 서슬 퍼런 5공화국 시절 ‘땡전 뉴스’를 없앤 사람도 김용갑 당시 민정수석이었다. 당시 공중파 TV의 밤 9시 뉴스가 “9시를 알려드립니다. 땡” 하고 시보가 울리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된다고 해서 땡전 뉴스였다. 김용갑이 “각하, 국민들이 땡전만 나오면 TV 꺼버립니다” 직언을 했더니 뜻밖에도 전두환은 그럼 민정수석이 조치를 하라고 했다는 거다.신현수는 직(職)을 걸고 직언(直言)하는 대통령 참모의 참모습을 보였다. 정권 보위 수사로 뒤집힌 검찰 인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민심이 떠난다 싶어 안타까웠을 터다. 문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최측근인 만큼 그도 대통령이 진심을 받아 주리라 믿었을 듯하다. ●공직자들은 제자리에서 투쟁하시라신현수가 알았던 문 대통령은 지금 없다. 죽창가나 부르는 전 민정수석 조국류의 극단주의자들에게 정권 자체가 공중납치당한 지 오래다(그러고 보니 문 대통령 역시 조국과 다름없는 극단주의자라는 생각이 든다). ‘조국의 아이들’ 이광철 민정비서관은 작년 말 공수처법이 통과되자 “조국 전 수석과 그 가족분들이 겪은 멸문지화(滅門之禍) 수준의 고통을 특별히 기록해 둔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검찰 인사가 문제가 아니다. 국정 기조 역시 조국류의 극단적 방향으로 치달리는 형국이다. 조국에 반(反)하다간 멸문지화의 고통이 올 수도 있다.신현수의 사표 투척으로 문 정권의 궤도 이탈을 만방이 알게 됐다. 그렇다고 모두가 박차고 나갈 순 없다. 일제시대엔 만주의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이 땅에서 제 할일 했던 사람도 애국자였다. 특히 공직자들은 최재형 감사원장처럼 제자리에서, 또박또박 자신이 할 일을 함으로써 나라와 국민에 충성했으면 한다. 공적 자리에선 “모든 일은 반드시 절차를 밟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라. 윗분의 지시는 서면으로 요청해 증거를 남기시라. 윗분이라면, 부하 직원에게 최대한 천천히 지시하는 것도 애국이 될 수 있다. 이상 미 중앙정보국(CIA)이 과거 독재국가 상공에서 살포했던 ‘자유의 전사 교범’ 내용이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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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왜 대통령 자신의 명운은 걸지 않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최근 북한 김정은이 경제 실패 책임을 경제 담당 간부에게 물었다는 기사를 보는데 속담이 떠올랐다. 김정은은 임명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경제 비서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일으켜 세워서는 삿대질까지 하며 공개 망신을 주고 해임했다. 콩은 자기가 심어놓고 쌀밥에 고깃국 안 나왔다고 남 탓하는 꼴이다. “남북은 많은 문제에서 한배를 타고 있다”는 대통령 신년사처럼 이 땅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심어놔서 얽히고설켜 버린 콩 줄기가 많다. “빨리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청와대가 밝힌 한일관계도 그중 하나다. 신년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2015년도 양국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가 공식 합의였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번 3·1절 기념사에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의 전향적 해결책을 담는다는 보도도 나왔다. 문 정권 출범 때부터 입이 아프게 양국관계 개선을 촉구해온 ‘토착왜구들’로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한일 합의가 나온 직후 “우리는 이에 반대하며 국회 동의가 없었으므로 무효”라고 선언했던 이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강제징용 상고심이 진행 중이던 2017년 9월 문 대통령은 “대법원 판례로도 징용자 개인의 민사적 보상 청구권은 인정된다”고 결론을 제시했다. 대통령의 복심 양정철은 ‘한일 갈등이 2020년 총선에서 여당에 긍정적’이라는 민주연구원 보고서를 돌려 과거사와 외교까지 선거에 이용하는 정권본색을 드러냈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국민 앞에 문 대통령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는 중에 위안부 판결 문제가 더해져 곤혹스럽다”고 했다. 7월 도쿄 올림픽이 열리면 남북 대화와 북-미 협상 자리에 팥죽을 잔뜩 쑤어낼 작정이었는데 웬 콩이냐는 소리로 들린다. 사인(私人) 간에도 자기가 콩 심은 걸 인정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면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16일 문 대통령은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주택 가격과 전월세 가격을 조속히 안정시키는 데 부처의 명운을 걸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2·4대책 전까지 24번이나 투기 억제라는 명분으로 공급억제책을 쏟아낸 대통령은 딴 나라 대통령인 모양이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던 문 대통령이 왜 사유재산 침해로 위헌 소지가 있는 대책에 자기 명운은 안 걸고 국토부의 명운을 걸라는 건지 무책임하다. 문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명운을 걸라던 일이 또 한 번 있다. 2년 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클럽 버닝썬, 고 장자연 씨 사건 의혹에 대해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수사하라”고 구체적 사건을 콕 찍어 지시한 일이다.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이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면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이라는 대통령 발언은 지당하다. 그렇다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원전 조기 폐쇄 사건에 대해선 왜 검찰 조직까지 흔들면서 진실 규명을 막는지도 말해야 한다. 그 발언 닷새 뒤 김학의 출국을 막으려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이용구 법무차관 등 현재 검찰과 법무부 실세들이 불법 개입한 정황이 최근 드러나고 있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출국금지처럼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은 적법 절차에 따라야 했다. 지배세력이 법을 지키는 것이 법의 지배이고 법치주의다. 법치주의가 막히면 선진국 진입도, 성장도 막힌다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지적했다. 결국 공소시효까지 무시한 문 대통령 말씀 때문에 권력기관들이 불법을 불사하고, 공직자가 원전 관련 증거를 말살하고, 감사원장을 집 지키는 개 취급하는 방자한 일이 자칭 민주개혁정부에서 버젓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문 정권의 정치적 술수를 이제 다수 국민이 알아버렸다는 사실이다. 선거 코앞에 불거진 전임 정권의 민간인 사찰 의혹쯤엔 놀라지도 않는다. 집권세력엔 적용되지 않는 선택적 정의에 분노하고, 치솟는 집값 때문에 절망하고, 이웃 나라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할 수 없게 된 데는 문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 스스로의 명운을 걸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사람은 문 대통령 자신이다. 대통령이 죄 없는 정부 조직만 명운을 걸라는 바람에 대한민국 법치주의도, 민주주의와 경제도 무섭게 흔들리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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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사법부는 야당승리도 무력화한다

    2020년 총선 전에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은 “우리가 지면 (한국이) 베네수엘라 된다”고 했다. 행인지 불행인지, 국힘이 이겼대도 베네수엘라처럼 될 공산이 없지 않다. 김명수 대법원장 사태의 본질은 사법부(司法府)가 3권 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것을 온 국민 앞에 드러냈다는 데 있다. 대법원이 행정부, 입법부에 장악돼 있으면 아무리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해도 판판이 무력화 된다는 사실을 베네수엘라가 보여준다.● 집권세력만 봐주는 차별적 법 적용2015년 말 베네수엘라 야권연합인 민주연합회의(MUD)가 17년 만에 총선에서 승리했다. 167석 중 112석. 대통령 탄핵 개시, 공직자 퇴출 등 막강한 권한을 갖는 3분의 2 의석을 아슬아슬하게 넘긴 수치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놀고 있지 않았다. 새 의회 출범 직전 집권 통합사회주의당(PSUV)을 움직여 대법원 법관 32명 중 13명을 더 친마(친마두로) 인사로 갈아버린 거다(이 나라에선 대법관을 의회가 선출. 헌법재판부도 대법원 안에 있다). 선출된 권력이 민주주의 제도를 허물어 독재를 굳히는 첫 공식이 ‘심판 매수’다. 법원과 검찰, 정보기관, 국세청,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내 편’과 충신으로 채우는 것이다. 임기가 정해져있어 해임하기 어려우면 마두로처럼 ‘대법원 재구성’을 한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전임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2004년 대법원 정원을 늘릴 이래 대법원은 대통령에 반(反)하는 판결을 한 적이 없다. 우리가 익히 보고 있듯, 심판 매수는 정권 보호막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놈의 내로남불! 법률을 차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지네 편을 감싸고 적들에 복수하며, 공정과 정의를 박살냄으로써 국민에게 분노와 절망과 냉소를 안긴다는 점에선 거의 살상무기다.● 검찰총장이 감히 정권비리 파헤치다니마두로의 대법원은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의결한 야권 정치인 사면법 등에 판판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국회가 대통령의 경제비상사태 명령을 부결한 것도 무효로 판결했다. 관보 게재 절차를 안 지켰다는 것이다(절차적 문제로 당선무효형 원심을 파기한 김명수 대법원이 연상된다). 심지어 2017년 3월엔 의회 입법권을 박탈해 대법원이 가져버렸다.물론 대법원도 이유는 있다. 야당 의원 3명이 부정 당선됐다는 대법원 결정을 국회가 무시했고, 국회가 법치주의를 모욕했으므로 입법권이 박탈됐다는 게 주한 베네수엘라 대사관 측 설명이다. 그러나 주베네수엘라 한국 대사관은 “마두로 정부가 사실상 군과 대법원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홈페이지에 소개해 놨다. 마침내 마두로는 ‘의회 재구성’에 나선다. 제헌의회를 545명 전원 친마 의원으로 구성한 거다. 제헌의회가 제일 처음 한 일은 마두로 정권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총장의 해임이었다(이 역시 우리의 윤석열 총장을 연상케 한다). 제헌의회 결정에 따라 마두로는 조기 대선을 실시해 2018년 재선됐고, 2019년 1월 젊은 야당 국회의장 후안 과이도가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인정 못한다”며 과도정부의 임시 대통령을 선언한다.● 쿠데타에도 대법원장이 필요했다마두로의 최측근인 대법원장 마이켈 모레노는 그 뒤에도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했다. 2019년 4월 말 쿠데타 실패 또한 대법원장의 배신 때문이라는 게 워싱턴포스트 보도다. 백악관 안보보좌관 시절 존 볼튼 역시 대법원이 제헌의회를 불법으로 선언하고, 마두로가 사임하고, 군이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했다고 ‘그 일이 일어난 방’에 썼다. 대법원장은 법보다 권력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쿠데타 주동세력과 막판 비밀회의 때 “성공하면 과이도가 대통령 되는 건가?” “내가 잠시 하면 안 되나” 이러더니 결정적 순간에 연락이 끊어졌다는 거다. 지금 그 나라 대법원장은 한때 동지였던 자들을 반역죄로 심판 중이다. 국회가 구성해야 할 새 선거위원회를 구성하고, 두 주요야당의 지도부 기능을 중단시킨 뒤 새 지도부를 임명하기도 했다. 그 결과 작년 말 총선에서 마두로의 정당은 민심과 상관없이 91% 득표율을 올렸다. 다같이 박수 짝짝짝. ● 대한민국 판사들은 안녕하신가위기의 미국 민주주의는 조 바이든 민주당 소속 대통령과 함께 일어섰다. 하지만 대선 후에도 위태롭던 법치주의를 복원해낸 최종병기는 결국 대법원이었다. 미 연방대법원은 대선 이후 근 한달 계속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무효 소송전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세운 것이다. 확실한 보수 에이미 코니 배럿 신임 대법관도 두 달 전 자신을 지명해 준 트럼프에 대한 보은 따윈 생각도 안 한 모양이다. ‘21세기의 사회주의’를 표방한 베네수엘라에선 사법권이 독재자의 통치수단일 뿐이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자랑하는 중국에서도 중국공산당은 법 위에 존재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노동당 규약이 헌법의 상위개념이다. 그러나 문주주의(文主主義) 대한민국(大韓文國)의 대법원장은 문파를 머리 위에 모신 형국이다.대법원장이 정권에 사로잡혀 있는 한, 야권이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승리해도 안심할 수 없다. 2022년 대선까지 시간이면 대법원은 선거 구도까지 뒤바꿀 수 있다. 설령 야권이 정권 교체에 성공해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엔 문 정권이 꽂아놓은 재판관들이 수두룩하다. 전 법무장관 추미애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징계했을 때는 추라인을 제외한 전 검사들이 법치주의를 지킨다며 분연히 나서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지켜온 우리나라인데 한줌 그악스러운 무리에 민주주의를 강탈당할 순 없다. 대한민국 판사들의 자존감은 지금 안녕하신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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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대법원장 잘못 뽑으면…”이 가짜뉴스인가

    김명수 대법원장이 최근 사법부(司法部) 인사로 ‘남자 추미애’임을 재차 입증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1, 2심 유죄를 선고한 재판장들을 이례적으로 이동시키는 식이다. 이런 노골적 인사를 김명수 혼자 했을 리 없다. 대통령법무비서관이 그가 초대회장을 맡았던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이다. 이번 인사에서 정치적 ‘냄새’가 나는 이유다. 이 연구회는 자칭 진보성향 판사들 단체인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되고 재탄생했다. 2017년 8월 김명수에게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을 전화로 알려준 전임 법무비서관도 같은 단체 출신이었다. ● 나라가 망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3권 분립의 한 축이어야 할 사법부(司法府) 수장이 청와대와 정치적, 이념적으로 너무 가깝다는 우려가 그때 벌써 나왔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선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4만5000건의 대법원 판결이 있었는데 단 한 건도 정부에 거슬리는 판결을 내놓지 않았다”며 개탄했다. “(대통령의) 사법부 장악이 베네수엘라 몰락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거다. 당 대변인은 “대법원장 한 명 잘못 뽑으면 베네수엘라처럼 망할 수 있다”는 논평까지 내놨다. 이 논평은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팩트체크’에 ‘전혀 사실 아님’으로 게시돼 있다(). “베네수엘라 위기의 주요 원인은 유가 하락이고, 정부의 경제개혁 실패, 부정부패와 포퓰리즘도 국가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며 국가위기에 대법원이 일조를 했을 수는 있지만 주원인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그렇게 치면 “대통령 잘못 뽑으면 나라 망한다”고 했다간 당장 가짜뉴스로 찍힐 판이다. 논평기사 검증을 서울대가 직접 한 건 아니다. 인터넷매체인 뉴스톱이 “가장 중요한 것은 김명수 후보자가 과거 정권과 결탁했다는, 그리고 앞으로 결탁할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며 ‘거짓’ 판정을 내렸고 이 팩트체크를 서울대가 정보서비스 했다. ● 인터넷 수다까지 샅샅이 검열될 판지금 다시 팩트체크를 할 경우 뉴스톱은, 그리고 서울대는 같은 판단을 내릴지 궁금하다. 김명수의 법관 인사, 대편향적 대법원 판결, 탄핵을 둘러싼 녹취록 발언 등을 뜯어보면 영락없이 베네수엘라 대법원장을 따라가는 형국이어서다. 즉, 현상을 거죽만 전달하는 보도가 아니고는 팩트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의견을 표현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헌법에 규정해 놓고 있다.집권세력은 가짜뉴스 유포를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다스릴 태세다. 기존 언론은 물론 우파가 많이 활약하는 유튜브에 1인 미디어까지 포함된다. 대한민국 하늘 아래 인터넷을 거의 샅샅이 검열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물론 집권당에선 “법원이 가짜뉴스라고 판결한 보도에 한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한다”고 너그러운 척 밝혔다. 하지만 김명수가 법원 인사를 통해 “재판 똑바로 하라”는 메시지를 날린 마당에 어떤 간 큰 판사가 정권을 거스르는 판결을 하겠나. 결국 김명수의 사법부를 이용해 정권 비위에 안 맞으면 가짜뉴스로 처벌하겠다는 언론 개악(改惡)이요, 산 입에 재갈 물리는 인권탄압이 전개될 판이다. ● ‘노무현 언론법 위헌’도 따라할 텐가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 시절 모셨던 고 노무현 대통령도 언론에 불타는 적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주류언론에 대해 강한 피해감을 지녔는데 취임 1년도 안 돼 “서울 한복판에 거대한 빌딩을 갖고 있는 신문사가 행정수도 반대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난했을 정도다. 당시 동아일보에서 “여권이 동아 조선을 과녁으로 삼은 데는 ‘전략적’ 포석이 가미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여권이 위기 때마다 활용해온 ‘표적 설정→지지세력 총결집→정면 돌파’의 수순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라고 기사로 대응한 기자가 윤영찬이었다. 그랬던 그가 집권당 의원이 되어 징벌적 손해배상제 언론법을 발의했다. 비극이다. 노 정권이 주류신문의 목줄을 죄기 위해 만든 신문법은 2006년 헌법재판소에서 핵심 조항(시장지배적 사업자 조항) 위헌 결정을 받았다. 그래도 그때는 헌법정신에 투철한 헌재가 있어 언론자유를 지켰고, 정권도 교체할 수 있었다. 독재 정권이 헌재를 포함한 사법부를 장악할 경우, 어떤 저항도 먹히지 않는 참극이 닥칠 수 있다. 다음에 쓸 베네수엘라가 바로 그런 경우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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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대법원장은 ‘남자 추미애’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김경수 경남지사가 그리 당당한 이유를 이제 알겠다. 대법원장에 문재인 정권의 충실한 법비(法匪)를 앉혀놨으니 겁날 게 없었던 거다. 안타깝게도 김명수 대법원장의 정체가 드러났다.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한다는 그의 녹취록 발언을 뜯어보면, 김명수가 사법부 수장으로 임명된 것 자체가 사법농단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라는 숙원사업을 위해 정권 입맛에 맞게 재판거래를 했다지만 김명수는 알아서 기는 ‘사법굴종’을 했다. 법비란 법을 악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무리다.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혀준 정권을 위해 추하게 보은(報恩)한다는 점에서 김명수는 ‘남자 추미애’였다. 사법부 적폐청산의 미션을 수행하면서도 전 법무부 장관 추미애만큼 시끄럽진 않았으니 ‘조용한 추미애’인 셈이다. ● 보은판결은 재판개입-사법농단 아닌가?김경수와 조국은 김명수가 대법원장으로 있는 한, 대법 무죄 판결을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경기지사 이재명도 작년 7월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재판을 다시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덕분에 이재명은 피선거권 박탈을 모면했고 지금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 지지도 1등이다. 친문도 아닌 이재명이 ‘정치적 판결’로 정치 목숨이 살아났는데 정권의 두 황태자가 정치적 사망을 할 리 없다. 민주당 소속 은수미 성남시장도 2심 당선무효형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살아났다. 정치자금법 위반 유죄는 인정되지만 검사가 항소장을 부실 기재했다며 파기 환송한 거다. 은수미가 문 정권 청와대비서관 출신이 아니라면 대법원이 절차적 문제까지 찾아내 본안을 뒤집겠느냐는 의문이 당시도 나왔었다. 그러고 보면 청와대와 재판거래 ‘문건’을 남긴 전임 대법원장은 하수(下手)라는 생각이 든다. 대법원장의 정체가 노출된 이상, 앞으론 어떤 대법 판결도 신뢰받기 어렵다. 그 자리에 있을수록 정권의 짐이 된다는 점에서 김명수가 ‘추미애 이상’이 됐다. ● 조국 재판까지 김명수는 안 떠날 것 당연히 야당은 물론, 문 정권과 문빠를 제외한 각계에서 김명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김경수와 조국의 대법원 판결이 무사히 끝날 때까지 그는 대법원장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사퇴할 생각 없다고 김명수가 단호하게 밝힌 것도 정권의 뜻을 잘 알기 때문일 터다.“법원은 국민의 권리와 법치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며 “법관은 국민의 신뢰를 배신하는 것이 국민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는 일인지 절실하게 깨달아야 한다”고 김명수는 말한 바 있다. 2018년 문 대통령이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콕 찍어 질타한 직후였다. 김명수 파동을 몰고 온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재판개입’이 과연 무죄인지, 탄핵당해 마땅한 사안인지는 더 깊은 판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김명수가 법치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수장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배신해 국민에게 큰 고통을 안긴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추미애처럼 김명수를 내칠 수도 없고, 그대로 둔 채 사태를 키울 수도 없어 문 정권은 더 큰 고통일 것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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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박원순 서울시’는 먼저 온 文 정권이었다

    역시 선거의 귀재 정부다. 가덕도 신공항을 띄워 부산시장 보궐선거 판을 흔들어놨듯, 서울에선 재건축·재개발 승인권을 장악해 야권 시장 주자들을 무력화할 모양이다. 문재인 정부가 오늘 발표할 주택공급 대책에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들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행법상 정비구역 지정·인허가·해제 권한은 지방자치단체장이 갖고 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1년 당선된 지 한 달도 안 돼 처리한 것이 강남구 개포동 주공2, 4단지 재건축 보류였다. 아파트로 인한 서울시민 불만이 들끓는 지금,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은 물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재건축·재개발 신속 추진을 철석같이 약속했다. 이 권한을 중앙정부가 뺏어가겠다는 거다. 문 정권이 오로지 국민을 위해, 사업속도를 높이려고, 그것도 한시적으로 인허가권 행사를 검토한다지만 얕은수가 빤하다. 주택공급 칼자루는 정부가 쥐었으니 야권 시장 뽑아봤자 소용없다는 암수(暗數)다. 그렇게 뺏은 권력을 돌려줄 리도 없다. 이 정권의 말 뒤집기가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러고 보면 ‘박원순 서울시’는 5년 반쯤 먼저 온 문재인 정부였다. 반(反)시장적 부동산 공급 규제가 대표적이다. “뉴타운사업은 시민들을 피눈물 흘리게 하는 나쁜 정책”이라는 박원순 이념대로 2012∼2018년 393곳이 해제됐다. 한국주택학회가 서울시의회 의뢰로 2019년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됐다면 2014∼2024년 착공됐을 주택 수가 24만8893호”이고 “미착공 물량이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보고서를 내놨을 정도다. 뉴타운 대신 박원순이 강조한 도시재생사업이 서민들 살기 좋게 해줬다면 또 모른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시 산하 SH공사 사장 시절 박원순과 손잡고 ‘재생’시킨 관악구 난곡동엔 빛바랜 벽화만 남아있다. 좁은 골목길이며 불편한 화장실은 그대로다. 문 정권이 2018년 10조 원을 투입해 착수한 ‘도시재생 뉴딜’ 또한 주민들의 보다 나은 삶과 상관없이 벽화나 그려놓는 관변 단체들 배만 불려줄 공산이 크다. 그러고도 박원순이 3선을 할 수 있었던 건 2014년 세월호 참사, 2018년엔 야권 단일화 실패 덕이 크다. 2011년 보선에선 혈혈단신 무소속 후보인 척 나섰지만 고인은 공수처 설치 입법운동 등 사실상 좌파 정당 노릇을 해온 참여연대의 야전사령관이었다. 시장 당선 전에 광우병 시위세력 등 운동단체와 ‘시민참여형 민주정부’에도 합의했다. 탁현민 뺨치는 쇼통의 달인이 견제세력 없이 10년 장기 집권한 서울공화국을 들여다보면 문 정권 5년, 아니 이 정권이 꿈꾸는 ‘진보 20년 집권’의 결말을 짐작할 수 있다. 전면 무상급식,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같은 박원순 복지는 문 정권이 선보일 문재인 케어, 아동수당 확대 등 복지폭탄의 서곡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학생에게 제공되는 교육복지재정 규모는 늘었지만 저소득층 학생에게 돌아가는 복지재정은 줄었다는 연구가 적지 않다. 점진적 선별적 무상급식에 직(職)을 걸었던 당시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오세훈이 옳았던 것이다. 박원순 집권 시절의 골목경제, 서울형 뉴딜일자리 등 혁신사업을 자랑한 백서를 보면 서울은 경쟁력도, 도덕성도 드높아졌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세계적 컨설팅사인 키어니가 집계한 글로벌시티 인덱스에서 서울은 2020년 17위다. 2015년 11등에서 6계단 떨어졌다. 극단적 선택은 안타깝지만 박원순은 시민단체의 도덕성 추락만 입증한 게 아니었다. 시민단체 활동이 돈도 되고 권력도 된다는 전범을 문 정권에 보였다는 것이 ‘박원순 서울시’의 치명적 잘못이다. 서울시청 6층에서 박원순을 보위한 시민단체 출신 ‘6층 사람들’은 문 정권의 ‘운동권 청와대’와 다르지 않다. 서울시립대학까지 서울시 공무원 출신과 측근들을 밀어넣는 것도 참으로 흡사하다. 학생운동권이나 시민운동권이나 그들만의 이권 네트워크는 너무나 끈끈해서 마을공동체위원회 등 217개 위원회에 5000여 명, 2500여 개 사회적기업에 5만여 명이 등록돼 서울시민의 혈세로 먹고사는 상황이다. 운동권 정치의 큰 문제는 불평등이든 불공정이든 빈곤이든,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데 있다. 밥줄과 권력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보유국’을 외치고 “문 대통령 지키기 선봉에 서겠다”는 집권당 서울시장이 탄생하면 서울시민은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할 길이 없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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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서울시를 정치에서 해방하라 ①

    왜 안 나오나 했다. 국민을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갈라치는 좌파의 전매특허. 서울시장 보궐선거 집권당 주자인 우상호 의원은 “23억짜리 아파트 녹물은 보이고 23만 반지하 서민 눈물은 안 보이느냐”고 28일 SNS 포문을 열었다. 강남 은마아파트, 지은 지 42년이 넘어 녹물이 나오는 곳을 찾아 재건축을 공약한 나경원 국민의힘 주자를 겨냥해서다.우상호는 은마아파트 32평형 시세가 23억 원이고 용적률을 높여 재건축하면 ‘예상가액은 약 50억 원에 이를 예정’이라며(추정도, 예상도 아닌 예정이라니 기이한 어법이다. 집권당은 아파트값도 미리 정할 작정인가) “서민은 평생 꿈도 꾸지 못할 가격”이라고 했다. 그러곤 익숙한 감성을 건드린 거다. “문득 내가 다녀온 강북 반지하에 살고 계신 장애인 부부가 떠올랐다”고. 지금은 세상에 없는 서울시장 박원순도 비슷한 소리를 했었다. 2019년 4월 8일 노후주거지역 주민들 앞에서 자신의 재건축·재개발 억제 정책을 역설하는 자리였다. “여러분은 제가 피를 흘리며 서 있는 게 보이지 않습니까!”● ‘정치쇼’의 원조는 박원순이었다피를 흘린다고? 충격적 발언으로 사람을 놀라게 한 박원순은 “아침에 화장해서 얼굴은 말끔한 것 같지만 저는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저를 상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층고를 높여 달라, 용적률을 높여 달라(요구하는지)…”면서 괴로운 듯 말했다. “사람들이 개미구멍처럼 (집에) 찾아 들어가면 옆집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마치 당신들이 재건축을 요구하는 바람에 옆집에선 개미구멍에 살고 있다는 식의, 죄책감을 자아내는 어법이다. 흥. 그렇게 절륜한 공감능력을 지닌 시장이 화장은 왜 하셨을까.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를 생각한다면 박원순은 화장 따윈 하지 말았어야 한다. 개미구멍에 사는 서민이 진정 가슴 아프다면 시장은 전셋값 28억 원이나 되는 가회동 공관이 아니라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에 계속 살아야 맞다.쇼의 원조는 탁현민이 아니라 박원순이었다. 그는 옥탑방에서 선풍기를 틀고 지낸 한 달을 자랑하며 “옛날 쌀집, 이발관, 전파상, 이런 것들이 없어지고 프랜차이즈, 대형마트로 (주민들이) 다 갔다”고 개탄했다. “(이런 것이) 전 세계 불평등, 99 대 1의 사회를 만든 원천이라는 깨달음을 가졌다”고 했지만, 얄팍하다. 쌀집이 없어지고 대형마트가 생겨 불평등해졌다는 논리는 자동차 말고 우마차 타야 평등해진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황당한 시장에게 빼앗긴 억울한 10년시장이 살다 간 뒤 삼양동이 발전했으면 또 모른다. 달라진 건 노인 쉼터 하나라는 게 매일경제 보도다. 심지어 동네시장 상인들은 도시가스 공급이라도 해결해 주길 원했는데 시청에선 시장길 도로정비를 하는 ‘성은’을 베풀었다. ‘도로정비 예산’이어서 다른 건 안 된다고 했다니, 이런 황당한 시장 아래 서울시민이 10년을 살았다는 얘기다. 포르투갈의 집권 사회당 총리 안토니우 코스타는 그 따위 쇼를 하지 않았다. 2011년 리스본 시장 시절 그는 마약과 매매춘이 우글거리는 옛 타일공장 자리, 인텐덴트(Intendente) 지역으로 아예 시청을 옮겨버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유럽연합 중에서도 약한 고리인 PIGS(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의 재정위기로 번졌을 때였다. 오늘날 리스본에서도 가장 핫한 곳으로 꼽히는 인텐덴트가 그 결과 탄생했다(아… 코로나19만 사라지면 꼭 다시 갈 거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모여 멋과 맛, 꿈과 끼로 공간을 채웠다. 땅값 올라서 못해준다! 관(官)이 이런 식이면 그 동네 사람들은 계속 마약과 매매춘으로 살라는 얘기다. 땅값은 오를지 몰라도 임금 오르고, 일자리 많아지면 훨씬 이익이다. 무엇보다 내 꿈과 끼와 깡을 통해 돈도 벌 수 있다는 것만큼 신바람 나는 것도 없다. ● 수구꼴통 좌파 말고 제대로 하라불평등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시장은 그런 일을 하라고 혈세로 월급 받으면서 일하는 것이다. 유능한 좌파 리스본 시장 코스타도 덕분에 2017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총리가 됐다. 이 나라에선 그런 시장이 없기 때문에 2030세대가 ‘벼락거지’ 될까 봐 죽창 대신 주식에 매달리는 동학개미가 되는 것이다.우상호는 “오래된 은마아파트 상황도 안타깝지만 반지하에 사는 서민들을 위한 주거정책이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은마만 챙기고 반지하는 내버려두라는 서울시민은 단언컨대 1명도 없다. 둘 다 하면 된다. 새 은마에서 나오는 더 많은 세금으로 서민주거를 더 좋게 만들 수도 있다. 서민 위한다는 좌파정치를 하려면 제대로 하란 말이다! 그러나 그 전에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서울시장은 서울시민 전체를 위한 행정서비스를 하는 공직자라는 사실이다. 서민을 위하는 것도 좋지만 서민만을 위하고 은마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녹물을 먹어야 한다는 건 국민을 인민과 적인(敵人·인민의 적)으로 갈라 인민에게는 민주를, 적인에게는 독재를 하는 인민민주독재다. 이런 좌파정치를 휘두르는 정치인을, 서울시장 잠깐 하고 대통령 나서려는 정치꾼을 서울시민이 또 뽑아야 할 이유는 없다. ● 서울 수복에 동참하실 분, 어디 없나요 극단적 선택을 한 (좌파) 정치인에 대해선 우리가 모든 허물을 잊고, 순교자처럼 기억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박원순의 경우, 고인의 성추행은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가 인정한 사실이다.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집권당에 소속된 지자체장 때문에 487억5111만 원의 혈세를 들여 치른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당 대표 시절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의 중대한 실수로 보궐선거를 진행할 경우 후보를 내지 못하게 당헌에 규정했던 장본인이었다. 그러고도 신년회견에서 “당원의 전체 의사가 당헌”이라고 약속 파기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언급한 사실은 중요하다. 국민에 대한 어떤 약속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언제든지, 얼마든지 깨버리는 정권임을 온몸으로 입증한 것이다. 4월 7일 선거가 집권당 탓이라는 것 말고도, 성추행을 용서할 수 없다는 걸 빼고도 박원순의 위선과 무능, 반(反)개발 일변도의 수구꼴통 정책, 행정서비스 아닌 좌파정치로 인해 서울시민이 겪은 10년의 고통을 또 되풀이할 순 없다. 박원순과 비슷한 소리를 하는 우상호나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박영선이 서울시장이 된다면, 서울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박원순 같은 좌파정치에 사로잡혀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시민인 나는 서울특별시가 좌파에서 해방되는 그날을 위해 시리즈로 글을 올릴 작정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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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조율 없는 신년회견이 무슨 자랑이냐

    대통령의 연출가 탁현민이 또 잘난 척을 했다. 청와대 의전비서관 자격으로 18일 대통령 신년회견을 연출한 다음 날 “이제는 당연해진 ‘조율 없는 기자회견’도 이전 정부들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페이스북에 자만심을 분출한 거다.불통의 전임 대통령보다 쇼통의 문재인 대통령이 훨씬 많이, 훌륭히 기자회견을 해왔음을 알리려는 충정은 알겠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과거 두 대통령보다 많이, 무려 9번이나 기자회견을 했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이번 회견까지 7번이 팩트다. “자기가 연출한 쇼의 횟수와 헷갈린 듯”하다는 게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 지적). ‘사전에 예정된 질문을 주고받던 기자회견’이라고 탁현민이 과거 정부 때 행사를 은근히 조롱하는 것도 불편하다. 중요한 건 기자가 국민을 대신해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을 대통령에게 캐물었고, 그래서 대통령의 정직한 답변을 끌어냈느냐다. ● ‘해야 할 질문’ 못 하면 기자단 망신 2015년 신년회견. 박근혜 대통령은 답변 도중 “그런 바보 같은 짓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된다”고 동생 박지만을 향해 모질게 경고했다. “정윤회 씨가 비선 실세인가, 아닌가? 박지만 회장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는데 앞으로 친인척 관리를 강화할 건지 말해 달라”는 질문이 나와서다(돌아보면 참 부질없긴 하다. 대통령이 그런 바보 같은 짓에 말려들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만일 이번 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30년 절친을 위한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통령은 어디까지 관여하셨습니까?” 같은 질문이 나왔다고 상상해보라. “대통령이 월성 1호기는 언제 폐쇄되느냐고 물어서 공무원들이 무리하게 폐쇄를 했다. 책임을 느끼지 않는가?” 추궁했다면 문 대통령은 뭐라고 답했을까. 대통령이 대충 얼버무릴 경우 보충질문으로 캐물었다면?6년 전 날카로운 질문과 (약간의) 솔직한 답변은 청와대 기자단이 ‘질문 내용과 질문자, 그리고 순서는 기자단이 정하기’로 홍보수석실과 미리 합의했기에 가능했다. 이것이 탁현민이 우습게 본 ‘조율’이라면 조율이다. 그러고는 외교·안보, 국내정치, 경제, 사회, 긴급 현안으로 분야를 나눠 국민이 궁금해할 질문거리를 정하는 기자단 회의를 무지하게 했다. ‘해야 할 질문’이 누락됐을 때 기자단 전체가 당할 후과를 본능적으로 직감해서다(이지운 서울신문 국제부 전문기자 관훈저널 기고). 그러나 질문지를 청와대에 전달하진 않았다.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푸틴에게 묻는다 “나발니 독살했나?” 대통령 회견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따져보면, 조율 여부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연말에 4시간 넘게 진행하는 연례 기자회견은 고도로 연출된 쇼로 유명하다. 보충질문이 허용되지 않아 지명된 기자는 일어선 김에 최소한 두 개는 물어보는데 설마 저런 것도 크렘린에 제출했을까 싶은 질문이 빠지지 않는다. “당신의 딸과 전 사위, 또 당신과 가까운 이들의 부패 탐사보도가 계속 나온다. 사실인가?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독극물 중독 사건에 러시아 정부가 연루된 의혹이 있다는 해외 보도가 최근 나왔다. 러시아정부는 왜 조사하지 않는가? 누가 독살(하려)했나? 말해 달라.”친정부 매체인 라이프뉴스 기자가 작년 말 쏟아낸 질문이다. 그러고도 멀쩡한 걸 보면 날카롭게 묻되 푸틴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짰을지는 알 수 없다. “‘베를린 환자’는 미국 정보당국의 도움을 받고 있다. 러시아 특수요원들이 그를 처단하기를 원했다면 (이미)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푸틴의 답변이 여기서 나왔다. 딸 관련 보도 역시 부인한 건 물론이다. 그러나 먼 후일이라도 사실은 밝혀진다. 독재자는 그때 거짓말 했다고 역사에 남는다. 기자가 꼭 알아야 할 것을 권력자에게 물어야 하는 이유다.● 탁현민의 쇼에 전 국민이 넘어가야 하나 적폐청산을 역사적 사명으로 아는 문 정권은 신년회견 역시 적폐청산을 중시한 것 같다. 2018년 회견을 앞두고 “가장 경계한 대목은 청와대와 출입기자단이 사전에 질문을 주고받아 ‘짜고 친다’는 비판을 받았던 과거 구습을 깨는 것”이었다(노효동 연합뉴스TV 정치부장 관훈저널 기고). 그런데 출입기자단이 외신까지 합치면 무려 350명이다. ‘반드시 물어봐야 할 질문’을 정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결국 기자들이 각자 알아서 질문하고, 질문자 지명은 대통령이 직접 하기로 했다. 올해도 비슷했다. 끝난 뒤 ‘각본 없는 기자회견’이라는 쇼로서의 이미지만 부각되고 정작 얻어내야 할 것은 얻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올해는 올해는 탁현민의 건방까지 더해진 거다(점점 과거 새마을행사 같아지는 탁현민쇼를 보는 것도 고역이다).청와대 출입기자 경험은커녕 대기만 하는 기자인 내가(‘대기자’거든요) 이런 소리를 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긴 하다. 다만 청와대 기자단 총간사쯤 되면 맨 먼저 광나는 질문이나 하는 특권을 즐길 게 아니다. 꼭 해야 할 질문을 할 수 있게 조율하는 ‘구습’도 필요하다. 대통령을 담당하는 기자들에게 기대하는 독자들이 아직 많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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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A4용지 없는 文 신년회견

    대통령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믿고 싶은 신화가 있다. 대통령은 선하고 현명한데 주변에서 눈과 귀를 가려 문제라는 거다. 실세가 누구냐는 의문도 그래서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를 진심으로 싫어했다는 사람이다. 밥도 혼밥, 인사도 노무현-문재인 청와대 중심의 근친교배, 국민과의 소통도 의전비서관 탁현민이 꾸민 모델하우스에서나 하는 대통령이어서 나는 늘 궁금했다. 참모진이 써준 말씀자료 없이 문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지. 18일 신년회견은 A4용지 없는 대통령의 발언을 접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어떤 질문에도 문 대통령은 막힘없이 답변했다. 전직 대통령 사면 같은 민감한 문제는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말로 ‘왕관의 무게’를 피해갔다. 부동산 문제에선 세금 폭탄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난 정책 실패도 인정하지 않았다. 무책임하고도 당당한 모습에 대통령이 진짜 일각에서 주장하듯 운동권 세력에 얹혀있는 마리오네트가 아닌가 싶어질 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참모진이 대통령의 눈을 가린다거나 민심을 왜곡한다는 것은 다 틀린 말”이라며 대통령은 신문도 댓글까지 꼼꼼히 읽는다고 했다. 그 말이 맞는다면 문 대통령은 누구도 흔들지 못하는 신념의 실세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실제 생활이나 정치라는 힘의 영역에선 뛰어난 인물이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일이 드물다”고 간파한 바 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인간이 결정권을 쥐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문 대통령이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는 불경(不敬)의 소리가 아니다. 만만할 줄 알고 1999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후임에 옹립된 블라디미르 푸틴이 뜻밖의 정치력으로 장기 집권하듯, 문 대통령도 카리스마의 정치인임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고백이다. “월성 1호기는 언제 폐쇄하느냐”는 한마디로 장관부터 엘리트 공무원까지 백방으로 뛰게 함으로써 문 대통령은 실세의 참모습을 드러냈다. 작년 한 해를 윤석열 검찰총장 축출 기도로 보내고도 신년회견에서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평가로 정치권을 평정하기도 했다.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해 “집을 지키라고 했더니 안방까지 차지하려 한다”고 비난한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는 비교도 안 될 세련된 정치적 낙인이다.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나오면 정권 교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무너뜨렸을 정도다. 권력비리 의혹 수사팀을 날린 검찰 인사가 ‘추미애의 난(亂)’의 시작이었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인사권을 통한 ‘문민통제’를 법무장관 추미애 독단으로 했을 리 없다. 그가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윤석열 징계 청구 및 직무 배제 조치도 문 대통령은 침묵으로 승인했었다. 180석 거대 여당의 탄생 역시 문 대통령 ‘30년 절친’을 위해 청와대 참모진이 대거 나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덕분으로 봐야 한다. 추미애가 공개를 완강히 거부했던 사건 공소장이 보도되자 집권당 핵심 인사들은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비례 위성정당 창당에 나섰기 때문이다. 대통령 퇴임 후 안전을 위해 온 나라를 뒤집어 놓고도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에 대해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실세이거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같은 정치적 인간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원리가 아주 건강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자찬으로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한때 우리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불렀던 이유는 독재가 지긋지긋했기 때문이었다. 집권세력은 물론 대통령도 법을 지키는 ‘법의 지배’가 민주주의다.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인 줄 알고 말끝마다 ‘국민’을 외치는 포퓰리즘의 큰 문제가 정치적 무책임이다. 반대는 문파의 온라인테러가 무서워 못 하고, 나라가 잘못돼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달님을 떠받드는 국민이 원한다는데 어쩔 것인가. 권력과 이권에 중독된 좌파 운동권 네트워크 집권세력이 문 대통령의 정치력을 키웠는지는 알 수 없다. 서울·부산시장 선거와 내년 대선을 거저먹을 것처럼 기고만장해진 야권이 정신 차려야 할 이유다.※문재인 대통령 앞에 이 나오는 모니터 또는 프롬프터가 있더라는 독자 의견이 적지 않다. 청와대에 따르면 기자의 질문을 속기사가 요약해 올린 것일 뿐, 답변이 담긴 것은 아니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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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안철수는 경선하지 않는다

    ‘안철수의 마법’에 야권이 또 빠져들었다. 국민의당(이하 국당) 안철수 대표의 작년 말 서울시장 출마 발표는 거의 도시락폭탄 수준이었다. 의석수 3석의 군소야당 대표가 담대하게 야권후보 단일화를 제안하는 정도가 아니다. “서울의 시민후보, 야권 단일후보로 당당히 나서 정권의 폭주를 멈추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쉽게 말해 중도층 지지를 받아 당선되려면 자기가 야권단일후보로 나서야 하니 다른 야당은 후보를 내지 말든가, 양보하라는 소리다.명색이 제1야당이 안철수 앞에 당장 엎드릴 리 없다. 안철수도 출마 선언 당시 국민의힘(이하 국힘) 입당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이라고 했고, 통합경선도 “공정경쟁만 된다면 어떤 방식도 좋다”고 밝혔다. 이후 야권은 안철수가 던진 도시락폭탄에 혼란과 갈등, 분열로 치닫는 양상이다. ● 총선 지역구 포기가 양보였다고? 국힘에서 입당하라, 들어와서 경선하라, 노래를 부른 건 당연하다(안철수가 열린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리하여 국힘과 국당이 통합경선 방식에 합의해낸다면,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서울시민은 희망차게 새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국힘이 서울시장 후보를 준다고 약속을 한대도(공당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철수가 그 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합당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입당은 웃기는 소리다). 선입당 후경선이 싫은 건 이해한다지만 안철수는 14일 “이미 지난해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양보했는데 또 양보를 하라고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오잉? 국당이 지역구 후보를 못 낸 게 아니라 양보를 한 거라고? 긴 외유에서 귀국해 2020년 1월 국당을 창당한 안철수는 국힘(당시 미래통합당)과의 연대를 단호히 거부했었다. “여당과의 일대일 구도는 백전백패”라고 했다가 나중엔 “거기(통합당) 대표나 공천관리위원장이 오히려 생각이 없다고 한다”고까지 했다. 당 지지율이 지지부진해 안철수계 의원들이 자꾸 통합당으로 떠나자 2월 말 기자회견을 열어 “253개 지역 선거구에 후보자를 내지 않기로 했다”고 비례대표 후보만 공천한 게 전부다. 그게 아니라 안철수 자신이 서울시장(원래는 대통령) 야권 단일후보가 되려고 일부러, 미리, 당을 희생시키는 양보를 했다면 그야말로 당을 사유화한 당권남용이다. ● 서울시장 포기는 부친 반대 때문이었다 ‘양보’라는 데 안철수의 상품가치가 있기는 하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지지율 50%를 달리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안철수는 시민운동가 박원순을 위해 조건 없는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단박에 대선주자로 등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300명 멘토’ 중 하나였던 윤여준은 그해 12월 “안철수가 부친의 결사반대 때문에 (출마) 못 한다고 했다”고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나도 생생히 기억한다. 서울시장에 출마를 생각 중이라는 기사가 9월 1일 밤 오마이뉴스에 뜨자 다음 날 모든 매체가 안철수의 입만 바라보는 형국이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며 9일 최종 결심을 밝히겠다고 했다. 그런데 윤여준에 따르면 안철수는 2일 아침에 벌써 “부친이 결사반대한다”고 전화해왔다는 거다. 이렇게 발칵 엎어놓고 안 하겠다면 장난하는 거냐, 빠지더라도 명분이 있어야 하니 박원순에게 양보한다며 빠져야 명분이 선다는 취지로 말해줬더니, 그게 7일 사심 없이 양보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포장됐다는 얘기다.● 파파보이 안철수, 지금은 달라졌을까안철수의 부친 안영모 씨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2012년 4월 국제신문 인터뷰에서 “평소 내가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한 요소도 있었을 것”이라며 또 한 가지 중요한 얘기를 했다. 안철수가 2012년 대선에 나오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을 때였다. 부친은 “내가 성격을 봐서 아는데 큰아이는 경선하자고 해도 경선할 아이가 아냐. 절대 경선은 안 한다”고 단언한 것이다. 실제로 그해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과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는 경선을 하지 않았다. 당시 안철수의 진심캠프에서 단일화 협상에 나섰던 금태섭은 무슨 대책이 있는 게 아니라 문재인의 양보만 기다렸다고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 썼다. 계속 시간만 흘러가 나중엔 여론조사 방식만 남았는데 그마저 못 믿겠다며 거부해버렸다. 그러더니 안철수는 누구와 의논했는지도 모르게 11월 23일 느닷없이 사퇴를 선언했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문 후보 지지율을 압도하고 있다고 해도 제1야당의 후보가 자진해서 사퇴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금태섭이 책에 쓴 대목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국힘은 10명의 경선 주자 중 후보를 만들어낼 것이다. 서울시를 집권당의 폭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선 야권후보 단일화가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러나 안철수로선 더는 물러설 수 없다. 그렇다고 국힘과 단일화 경선을 할 ‘아이’인지는 의문이다. 과연 안철수는 달라졌을까. ● 눈썹 굵어진 안철수, 마음도 굵어졌어야아닌 것 같다. 눈썹이 진해지고, 목소리도 굵어졌지만 자신을 비판하는 소리에 “저를 잘 알지 못하는 분들까지 나서 근거 없는 비판을 한다”고 발끈한 걸 보면 안철수는 아직 밴댕이속이다. 10년의 정치 실패를 반성하고, 공부하며, 큰 뜻을 갈고 닦았다면 “과거에 그랬다면 미안하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같이 정치하며 큰 뜻을 펴보자”는 식으로 정치인의 도량을 보여줬어야 했다. 국힘과 단일화하기로 결론이 났다 해도 경선방식에 합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안철수는 “단일후보 결정은 이 정권에 분노하는 서울시민들이 하면 된다”고 했는데 국힘이 제시하는 여론조사 방식은 ‘이 정권에 분노하는 서울시민 대상’이 아니라는 식으로 합의가 안 될 가능성이 크다(심지어 국당의 이태규는 14일 “100% 시민경선에서 표본수 표본도 전체 표본으로 할지, 야당 지지층과 무당층으로만 할지, 적합도로 할지, 경쟁력으로 할지, 여기에 따라서 엄청난 관점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복잡한 소리를 했다). 경선방식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안철수는 당연히 출마한다. 안철수와 국힘, 무소속의 금태섭까지 야권이 표를 갉아먹다 패배할 공산이 크다. ● 그래도 집권당에 비하면 양질이다 집권당 소속 고 박원순 서울시장 때문에 하게 된 보궐선거다. 자기네 잘못 때문에 재·보궐선거를 하게 되면 후보를 안 낸다는 당헌까지 고치는 집권세력에 비하면, 안철수나 국힘은 양질이라고 봐야 한다.그럼에도 제1야당인 국힘이 이 선거도 이기지 못하면, 그런 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서울시민이 원하는 것은 야권의 승리이지 국힘의 운명엔 미안하지만 관심 없다. 어떤 식으로든 국힘은 안철수를 껴안고 승리하든지, 논개처럼 자폭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안철수든, 국힘이든 비판전으로 제 살 깎아먹진 말았으면 한다(좌파는 그런 짓 절대 안 한다. 그러고 보니 안철수는 좌파는 아닌 모양이다). 행운을 빈다. 해피 뉴 이어.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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