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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라는 게 어디 있어요? 살면서 죽지 않으면 공부 아닌가요?”2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호연 작가(51)에게선 늦깎이로 빛을 본 사람 특유의 내공과 겸손이 느껴졌다. 전작 소설 ‘불편한 편의점’과 ‘나의 돈키호테’를 180만 부 베스트셀러에 올린 그가 이번엔 에세이를 냈다고 했다. 성공담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바로 만났다.김 작가는 신간 에세이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푸른숲)에 대해 “제가 뒹굴고 실족(失足)한 얘기들”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마따나 신간은 실패담 모음집에 가깝다. 글이 안 써져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고, 오늘도 한 줄을 못 쓰고 찝찝하게 침대에 몸을 누이고, 관찰 예능에 출연한 연예인이 자신의 책을 냄비 받침으로 쓰는 요행 덕에 책이 역주행하길 바라는 인간적인 고백이 담겼다.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김 작가는 시나리오 대본 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소설을 써왔다. 네 번째 소설마저 지지부진하던 2019년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 3개월간 머물며 집필할 기회를 얻게 됐다. 이때 경험을 동력으로 ‘불편한 편의점’과 ‘나의 돈키호테’를 썼다. “네 번째 소설마저 잘 안 되고 힘들 때 저는 거의 투명 인간 같은 존재였어요. 내가 과연 사회에 쓸모가 있을까 소외감도 들었고요. 민망한 모습이나 바보 같은 모습, 제 민낯을 가감 없이 담으려고 했어요.”김 작가의 이야기가 실패담에서 끝나지 않는 건 그가 계속 걸었기 때문이다. “죽지 않으면 돼요. 살아 있는 게 승리거든요.” 단순하고 명료했다. “누구나 자기 업(業)에서 ‘업 앤 다운’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김호연처럼 바보짓 한번 하고 혹은 무모한 도전이라도 해보고 농담하면서 버티고 이렇게도 사는구나 그러다가 좋은 기회도 생기는구나 하고 기운을 얻으면 좋겠어요.”그는 인터뷰 내내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기본적으로 독자들에게 유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쓴다고 했다. 강연도 가능한 한 그동안 소통하지 못한 곳을 찾아다닌다. 다음 주엔 3박 4일간 울릉도에 머물며 울릉도서관과 울릉중학교에서 강연한다고 했다. “도서관장님이 강연 섭외 메일을 보내주셨어요. 작가들이 많이 못 가는 곳이니까, 그럼 제가 가야죠.”해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만 스페인 이탈리아 대만 폴란드 등 8개국에 출장을 다녀왔다. 현지 출판사 초청이 없어도 일단 간단다. 가서 북토크와 인터뷰 기회를 직접 만들었다. 현재 ‘불편한 편의점1’은 27개국, ‘불편한 편의점2’는 15개국에 수출됐다. “외국 독자들이 한국 책을 읽는 것도 한국의 문화를 알기 위해서예요. 한국 문화, 한국 사회가 어떤지 알고 싶은 거예요. 물론 케이팝이나 영화, 드라마 보면 아주 선명하게 볼 수 있죠. 하지만 문학이라는 매체로 접하는 질감이 또 다르거든요.”작가들은 신간을 낼 때 책에 어울리는 사인 문구를 정하곤 한다. 김 작가의 이번 문구는 “계속 걸어요, 계속”이다. 그다운 메시지라고 생각했다.“제가 쓰는 소설들도 다 그런 얘기잖아요. 실패한 사람들 혹은 루저들. 그래도 밥은 잘 먹고 다니는. 제가 쓰는 평범한 사람들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버티면서 조그만 즐거움에 살아가요. 저도 그렇게 살아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사진)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한 작가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작가들’ 414명은 25일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인용을 지지하는 ‘한 줄 성명’을 모아 발표했다. 이날 성명에는 한 작가를 비롯해 소설가 은희경 김연수, 시인 김혜순, 문학평론가 신형철, 2020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아동문학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을 받은 백희나 작가 등이 참여했다. 한 작가는 성명에서 “훼손되지 말아야 할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를 믿습니다. 파면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입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사흘 뒤인 6일(현지 시간) 스웨덴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 기념회견에서도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성명에서 은 작가는 “민주주의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썼으며, 김 소설가는 “늦어도 다음 주 이맘때에는, 정의와 평화로 충만한 밤이기를”이라고 적었다. 김 시인은 “우리가 전 세계인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해다오, 제발”이라고 썼다. 작가들은 공동 성명에서 “자명한 내란과 헌법 유린에 대한 파면 선고가 지연됨에 따라, 사회 혼란은 극심해지고 국민이 지켜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며 “민주주의 회복과 내란 종식을 바라는 작가들이 뜻을 모아 목소리를 냈다”고 취지를 밝혔다. 서효인 시인은 “이번 성명은 뜻 맞는 문인끼리 온라인으로 의견을 모으다가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며 “한 작가는 성명의 취지를 전달했더니 회신이 왔다”고 전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동아일보사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22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작으로 조용미 시인(63)의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2024년·문학과지성사·사진)이 선정됐다. 본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감태준 이근모 장석남 시인은 “최종 후보작 5개 가운데 조 시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25일 밝혔다.수상작은 조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으로 “오랜 시간 지켜본 것에서 배어나는 삶의 정취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를 들면 표제작에서 시인은 숲을 지나며 서로 다른 명도와 채도를 띤 무수한 초록을 찾아낸다.‘빛이 나뭇잎에 닿을 때 나뭇잎의 뒷면은 밝아지는 걸까 앞면이 밝아지는 만큼 더 어두워지는 걸까//깊은 어둠으로 가기까지의 그 수많은 초록의 계단들에 나는 늘 매혹당했다.’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빛과 그림자의 교차 속에서 삶을 성찰한다. 살구나무 꽃이 진 뒤에도 그림자를 주의 깊게 바라보거나, 사과나무의 어두운 푸른빛에서 신비로움을 발견하는 시적 시선도 돋보인다. 관찰을 통해 시인은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드러낸다.심사위원들은 심사평에서 “이번 시집의 여러 갈래 의미 중에서도 ‘색’에 대한 천착은 이채롭다”며 “자꾸 어두워지려는 마음에 부지런히 색을 공급해보려는 심사 같다”고 밝혔다. ‘분홍의 경첩’부터 ‘초록의 어두운 부분’ ‘노란색에 대한 실감’ ‘검은 맛’ ‘붉은 대나무’ 등으로 이어지는 ‘색채담’이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여백을 연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어 “본심에 올라온 시 가운데 영랑 김윤식 시인의 ‘조선적인 정서’ 맥에 가장 가깝다는 데 전원이 동의했다”고 덧붙였다.조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제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색채와 소리”라며 “시는 이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시는 인간의 선함을 북돋우고,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잔혹한지 알려준다”고 말했다.“시를 쓰는 참뜻은 오로지 시에만 있지 않고, 세상을 잊고자 함도 아니고, 세상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가는 일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에 더욱 투철해지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고,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조화로워서 아름다워질 때까지, 혹은 불화가 이어지더라도 끊임없이 이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해보고 싶어요.”조 시인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0년 한길문학에서 ‘청어는 가시가 많아’로 등단하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제16회 김달진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시 부문(2012년), 제20회 고산문학대상 시 부문 등을 수상했다.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당신의 아름다움’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 등을 펴냈다.시상식은 다음 달 18일 오후 3시 전남 강진군 강진아트홀에서 열린다. 상금은 3000만 원.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사과나무의 어두운 푸른색에 깃든 신비함을 볼 수 있다면 더 깊은 어둠을 통과할 수 있다.”조용미 시인(63)의 시 ‘물야저수지’ 속 한 구절이다. 시인은 숲속 어딘가를 통과하며 서로 다른 명도와 채도를 띤 무수한 초록을 찾아낸다. 그에게 시란 한 덩어리로 보이는 각각의 존재에 개별적인 색깔을 부여하는 행위다.‘물야저수지’ 등이 실린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2024년·문학과지성사)이 동아일보사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22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본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감태준 이근모 장석남 시인은 최종 후보작 5개 중 조 시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25일 밝혔다.조 시인은 24일 동아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제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색과 음, 즉 색채와 소리”라며 “시는 이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시는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잔혹한지 알려준다”고 말했다.조 시인은 여덟 번째 시집인 이번 시집에서 오랜 시간 지켜본 것들만이 담아낼 수 있는 생의 정취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빛과 그림자의 교차 속에서 삶을 성찰한다. 살구나무의 꽃이 진 후에도 그림자를 주의 깊게 바라보거나, 사과나무의 어두운 푸른빛에서 신비로움을 발견하는 시적 시선이 돋보인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그는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지속하고자 하는 삶의 의지를 드러낸다.심사위원들은 심사평에서 “이번 시집의 여러 갈래 의미 층 중에서도 ‘색’에 대한 천착은 이채로운데 ‘분홍의 경첩’에서부터 ‘초록의 어두운 부분’, ‘노란 색에 대한 실감’, ‘검은 맛’, ‘붉은 대나무’ 등으로 이어지는 ‘색채담’은 영랑의 ‘모란’ 밭의 여백을 연상하며 읽어도 좋았다”며 “자꾸 어두워지려는 마음에 부지런히 색을 공급해보려는 심사 같다”고 밝혔다. 이어 “영랑시문학상 제정 취지인 ‘영랑 김윤식 선생의 문학 정신을 창조적으로 구현한 역량 있는 시인’이라는 차원에 초점을 두고 전원의 동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덧붙였다.조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시를 쓰는 참뜻은 오로지 시에만 있지 않고, 세상을 잊고자 함도 아니고, 세상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가는 일에 있지 않을까 싶다”며 “생에 더욱 투철해지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고,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조화로워서 아름다워질 때까지, 혹은 불화가 이어지더라도 끊임없이 이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 시인은 경상북도 고령 출생으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0년 한길문학을 통해 ‘청어는 가시가 많아’로 등단하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제16회 김달진문학상을 시작으로, 2012년 김준성문학상 시 부문, 2020년 제20회 고산문학대상 시 부문, 2021년 제24회 동리목월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당신의 아름다움’,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 등을 썼다.시상식은 다음 달 18일 오후 3시 전남 강진군 강진아트홀에서 열린다. 상금은 3000만 원.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한국 영화만 봐도 수준이 워낙 높아서 프랑스에서 만드는 영화로는 범접할 수 없습니다. 영화를 그만둔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웃음).”24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만난 프랑스 작가 장바티스트 앙드레아(54·사진)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영화감독 출신이나 2017년 소설가로 데뷔한 그는 8년 동안 프랑스에서만 문학상 19개를 휩쓸었다. 20일 국내 출간된 소설 ‘그녀를 지키다’(열린책들)는 2023년 그에게 프랑스 최고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안겨준 작품이다.‘그녀를…’은 이탈리아 사크라 수도원을 배경으로 왜소증을 타고난 천재 석공예가 ‘미모’와 아름다운 소녀 ‘비올라’의 우정을 그린 작품. 무솔리니 치하에서 파시즘이 득세하던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앙드레아는 “최근 파시즘이 다시 범람하고 있지만, 독재 정권의 득세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이 책을 통해 ‘어쩔 수 없이’ 같은 건 없다고, 힘은 우리 시민들 손에 있다고 강조하고 싶었습니다.”앙드레아는 현대 예술가의 지위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그는 “최근 유럽에선 예술가 다수가 빈곤에 시달린다는 보고서가 나왔다”며 “성공한 예술가는 아이돌화되고,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는 투명인간처럼 지내게 된다”고 했다.“공원 벤치에 노숙자가 앉아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사람이 알고 보니 억만장자였다면 달리 보이겠죠. 제가 공쿠르상을 받은 전후로 느낀 것도 비슷합니다. 갑자기 세상이 알아주는 존재가 됐다는 점에서요. 예술가가 아직 벤치에 앉은 노숙자 상태일 때부터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그는 이번 소설을 두고 “모든 등장인물이 저의 분신이고, 인정(認定)을 위해 투쟁하는 존재들”이라며 “스스로를 의심하는 자신과 싸우고 있는 분들에게 권한다”고 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집 ‘여름의 빌라’,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로 잘 알려진 백수린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2020년 ‘여름의 빌라’를 출간한 직후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4년 동안 쓴 단편 7편을 묶었는데 유독 겨울 풍경이 많다. 눈이 내리거나 쌓여 있는 장면이 자주 보인다. 상실 혹은 상실 이후의 풍경을 그리기 때문이다. 단편 ‘눈이 내리네’의 주인공 ‘다혜’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이모할머니와 동거를 시작한다. 빈방이 많은 할머니댁에 하숙생으로 들어가게 되면서다. 갓 스무 살이 된 다혜의 눈에 비친 70대 할머니는 끊임없이 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기침 소리, 코 푸는 소리, 앉았다 일어날 때 내는 신음. 걸어 다니면서 트림을 하고 방귀를 뀌며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갈 때는 문을 꼭 닫지 않은 채 볼일을 보는 사람. 오래된 집답게 방음에 취약해 할머니의 그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살 수밖에 없다. 다혜는 늙음이란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것, 품위를 잃고 수치를 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갓 성인이 돼 이성에 눈뜬 새내기에게 귀가를 재촉하는 할머니는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다혜 역시 열정 가득한 청춘의 시기를 지나 생의 중반기에 들어선다. 더는 죽음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든 다혜는 문득 할머니 생전 마지막으로 함께한 날을 떠올린다. 할머니는 큰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마침 하늘에서 그해 첫눈이 내렸다. 두 사람은 말을 잃은 채 앙상한 나뭇가지와 메마른 꽃 덤불이 흰빛을 덧입는 광경을 봤었다. 그가 할머니의 마음을 처음으로 이해할 것 같다 여긴 순간이었다. 눈 이야기가 많지만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봄’이다. 작가는 “우리의 삶이, 이 세계가,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로 선택할 수 있다. 봄이 온다고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썼다”고 말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영랑 김윤식 선생의 예술혼을 계승해 전남 강진군이 한국 문학의 중심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강진원 전남 강진군수(66·사진)는 13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 군수는 “강진 출신인 영랑은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우리 현대시의 새 장을 열고 1934년 4월 불후의 명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한 시인이자 1940년 ‘춘향’을 끝으로 절필을 선언하고 광복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한 인물”이라며 “앞으로도 영랑시문학상은 1930년대 한국 시문학사의 분수령을 이룬 영랑의 문학정신을 계승해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군수는 이를 위해 다양한 문학 행사를 벌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니어 문학도를 위한 ‘영랑시인학교’를 운영해 문학을 사랑하는 지역민들이 창작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문학인들의 창작을 장려하기 위해 ‘강진문학창작촌’ 운영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학의 저변을 넓히는 한편 지역 내 문학인들과 협업해 강진의 문화적 정체성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시 낭송회, 문학 강연 등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영랑의 작품세계를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며 “강진을 찾는 이들이 역사와 문학을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동아일보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22회 영랑시문학상 본심에 오른 후보작이 선정됐다. 영랑시문학상 예심 심사위원회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7일 심사를 진행해 5개 작품(시집)을 선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영랑시문학상은 섬세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그의 시 세계를 창조적으로 구현한 시인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지난달 영랑시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신달자 시인)는 올해 운영 요강과 심사위원 위촉 및 심사기준을 확정하고, 예·본심 심사위원단을 구성했다. 1차 예심 위원인 강경호 이병일 하재연 시인과 2차 예심 위원인 강동호 문학평론가, 김종 손택수 시인은 ‘등단한 지 10년 이상 된 시인이 2023, 24년 출간한 시집’을 대상(기존 수상작 제외)으로 최근 10개 작품을 선정했다. 이 중 심사를 거쳐 5개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본심에 오른 작품은 △고영민 시인의 ‘햇빛 두 개 더’ △박연준 시인의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안희연 시인의 ‘당근밭 걷기’ △정일근 시인의 ‘혀꽃의 사랑법’ △조용미 시인의 ‘초록의 어두운 부분’이다(이상 작가명 가나다순).고 시인의 ‘햇빛 두 개 더’는 서정적 미니멀리즘의 한 지평을 여는 시집이라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소박하고 담백하지만, 한편으로 선명하게 감각되는 이미지들이 시집 곳곳에 시적 푼크툼(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작품을 받아들일 때의 강렬함)의 계기들을 각인시켰다”고 했다. 박 시인의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은 사랑의 영원성을 향한 시적 증언이다. 심사위원단은 “거대한 것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 작은 것들의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삶의 국면을 응시하는 감각적 시선으로 가득하다”고 했다. 안 시인의 ‘당근밭 걷기’는 연약한 자의 역설적 강건함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그의 시집에서 걷는 주체는 그저 무언가를 기르고, 보살피고, 염려하고, 돌보는 다정한 마음으로 연약한 일상을 응시한다”며 “독자에게 ‘함께 있음’의 감각을 촉구한다”고 했다. 정 시인의 ‘혀꽃의 사랑법’은 숱한 상처와 아픔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존재들의 ‘순간’을 노래한다. 심사위원단은 “해소될 수 없는 고통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다시 회복하는 인간의 끈질긴 생(生) 의지로부터,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삶이 중첩되는 순간을 목도한다”고 했다. 조 시인의 ‘초록의 어두운 부분’은 생의 어둠을 오랫동안 바라본 이가 알아볼 수 있는 존재의 환함을 노래하는 시집이다. 심사위원단은 “시집의 화자들은 자신의 삶과 마음을 풍경처럼 응시하는 가운데, ‘초록’으로 상징되는 생명의 이미지들 속에 내포돼 있는 부재의 징조를 발견한다”고 했다. 심사위원들은 “다섯 권의 시집 모두 한국 서정시의 동시대적 확장과 갱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과들”이라고 밝혔다. 본심은 14일 열린다. 시상식은 다음 달 18일 전남 강진군 강진아트홀에서 열린다. 상금은 3000만 원.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삼면이 막힌 테이블에 휴대전화조차 반입이 금지된 100% 예약제 레스토랑 ‘뱅상 식탁’. 독특한 콘셉트 덕에 인기몰이 중인 이곳에 어느 날 커플 네 쌍이 방문한다. 식사가 한창일 즈음 갑자기 총성이 울리고 “테이블당 한 명만 살 수 있다”는 규칙이 공지된다. 10분 안에 누굴 살리고 누굴 죽일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 입버릇처럼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커플들은 숨겨두었던 진실을 꺼내놓기 시작한다. 최근 나온 스릴러 장편소설 ‘뱅상 식탁’(북다). 극한에 처한 인간들이 본모습을 드러낸다는 설정과 거침없는 전개, 선명한 캐릭터가 마치 레스토랑을 무대로 펼쳐지는 ‘오징어 게임’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설재인 작가(36)는 정작 “피 나오는 드라마는 무서워서 못 본다”고 한다. 설 작가는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나와 5년 반 동안 고교 수학 교사를 지낸 이력이 있다. 그는 “교사를 하면 보통 하루에 200명 정도를 만나게 된다”며 “200개의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을 보게 되는 셈이다. 다양한 성격의 인물을 만들어 내는 데 그때의 경험이 녹아 있다”고 했다. 또한 작가는 “인간의 다중성에 끌린다”고도 했다. 그의 소설에 겉으론 다정다감해 보이지만 내면은 추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저도 어렸을 때 되게 뒤틀린 면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걸 숨기기 위해 겉으로는 순종하고 착해 보이려고 하는 면도 갖고 있었고요. 인간은 누구나 이런 다중성을 갖고 있다고 봐요.” 소설은 ‘인간의 민낯이란 이런 걸까’ 싶을 만큼 피가 튀고 잔인하다. 설 작가는 “요즘 뉴스를 보면 상상했던 것 이상의 일들이 세상에선 벌어진다”며 “창작자로서 굳이 먼저 필터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했다. 2023년에 출간한 소설 ‘딜리트’(다산책방)를 쓸 때도 그랬다. 주변에선 교사의 극단적 선택이란 주제가 ‘너무 과장됐다’는 염려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직후 비슷한 실제 사건이 벌어졌다. 설 작가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다고 해서 세상에 그런 일이 없다고 단정 짓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며 “이런 일이 실제로 있다고 상상의 지평을 넓혀 주는 게 이런 소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목고 담임교사까지 맡았던 그는 서른 살이던 2019년 별 계획 없이 퇴사했다고 한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맨땅에 헤딩하듯 소설을 써서 투고했다. “한국에 있는 웬만한 출판사들은 투고 메일을 다 한 번씩 보내본 것 같아요. 50번 넘게 거절당하고 딱 한 군데서 받아준 게 첫 소설 ‘내가 만든 여자들’(카멜북스)이었어요.” 숱한 거절에도 맷집 좋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설 작가는 “10년 가까이 하고 있는 복싱 덕”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로 2018년 전국신인대회까지 나갔던 복싱 선수였다. 지금도 매일 두세 시간씩 “국가대표를 꿈꾸는 학생들의 샌드백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숱한 거절 메일을 받았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던 이유는 하도 맞아 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며 씩 웃었다. 설 작가가 정의하는 본인의 정체성도 흥미롭다. 자신을 “원고 노동자”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한다. 2019년 첫 책을 내고 지금까지 소설만 열여덟 권을 펴냈다. ‘뱅상 식탁’을 내고 한 달도 안 돼, 찜질방이 배경인 SF(공상과학)소설 ‘레드불 스파’(한끼)를 내놓기도 했다. “원고 노동자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마감을 늦지 않고 성실하게 쓰는 것, 지금까지 그거 하나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해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970년대 서울 외곽 초등학교 저학년에겐 2부제 수업이 일반적이었다. 한 주는 오전에, 다음 주는 오후에 수업이 진행됐다. 한 교실을 두 학급이 나눠 쓰려다 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불어난 학생 수를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1977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저자의 2부제 수업 경험은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이 수업을 받는 요즘 교실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신간은 1960∼1990년대 서울의 미시사를 들여다본다. 서울시청, 부산시립박물관 등을 거쳐 현재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일하고 있는 저자가 썼다. 1954년에는 전차 내부를 개조한 ‘전차 교실’이 있었다. 1960년대 초반까지 ‘세계 제일의 콩나물 교실’로 유명했던 동대문구의 한 초등학교는 한 학급에 90여 명이 편성됐다. 신입생들은 운동장에서 3부제 수업을 받았다. 저자는 전쟁의 상처가 가득한 서울에 갓 도착한 60년대의 이주 농민, 새벽마다 연탄을 갈던 70년대의 주부, 만원 버스 틈바구니에 여린 팔로 매달렸던 80년대의 버스 안내양, 콩나물 교실과 학력고사 입시 지옥을 버틴 90년대의 대학생 등 각계각층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서울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욕망하고 발버둥 친 온갖 작은 삶들에서 비롯됐음을 깨닫게 한다. 국가기록원,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보관하고 있던 비공개 자료까지 포함한 115장의 사진 자료는 ‘그때 그 서울’을 더욱 생생히 느끼게 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폐렴으로 3주째 입원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건강을 빌어준 이들에게 육성 감사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달 14일 병원에 입원한 후 대중에게 공개된 첫 음성 메시지다.영국 BBC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6일 오후(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의 건강 회복을 바라는 묵주 기도회가 시작되기 전, 교황의 나지막한 음성이 광장에 울려 퍼졌다. 교황은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광장에서 저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저는 여기서부터 여러분과 동행합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성모 마리아의 보호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해당 음성은 이탈리아 로마의 제멜리 병원에서 녹음됐다. 88세인 교황은 기관지염이 양쪽 폐의 폐렴으로 발전해 3주 전 입원했다. 입원 기간 2차례 호흡기 위기를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교황청은 이날 오후 언론 공지에서 “교황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새로운 호흡 부전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혈액 검사 결과도 안정적이며 발열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지난달 16일 서거 80주기를 맞은 윤동주 시인(1917∼1945)에겐 평생을 함께한 죽마고우가 있다. 동갑내기 사촌인 송몽규 선생(1917∼1945)이다. 두 사람은 학교도 같이 다니며 생애 대부분을 함께 지내다 일본에서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돼 같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윤 시인이 떠나고 19일 뒤였다. 윤 시인에 비해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송 선생도 애국지사였다. 같은 나이인 28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역시 조국과 문학을 깊이 사랑한 청년이었다. 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윤동주기념관에선 송 선생의 서거 80주기 헌화식이 열린다. ● 김구 군관학교 가려 했던 행동파 송 선생은 1917년 9월 28일 중국 북간도 용정의 집에서 아버지 송창희와 어머니 윤신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윤신영은 윤 시인의 고모다. 석 달 뒤 같은 집에서 윤 시인이 태어났다. 두 사람은 명동소학교와 은진중학교, 연희전문학교를 같이 다녔고 일본 유학도 함께 갔다. 절친했지만 두 사람의 성격은 상당히 달랐다고 한다. 윤 시인이 온순하고 침착한 성격이었던 반면, 송 선생은 행동파였다. 1935년 은진중 3학년을 마친 뒤 김구 선생이 이끄는 군관학교에 입학하고자 중국 난징으로 가기도 했다. ‘동주 시, 백 편’(태학사)을 쓴 이숭원 서울여대 명예교수는 “송몽규가 뚜렷한 독립 정신과 항일 의식으로 윤동주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며 “재판 기록을 보면 둘 다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송몽규는 체포·구금 일수를 제외하고 2년이어서 윤동주보다 더 길다”고 전했다.‘윤동주’(아르테)를 쓴 김응교 숙명여대 순헌칼리지 교수는 “1936년 윤동주가 쓴 ‘이런 날’이라는 시에는 ‘이런 날에는 잃어버린 완고하던 형을 부르고 싶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형이 바로 송몽규”라며 “송몽규는 윤동주의 세계관을 넓혀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윤 시인이 이 시를 쓸 당시에 송 선생은 난징에서 독립운동의 길을 모색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었다.● 소설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송 선생은 은진중 3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술가락(숟가락)’이란 제목의 글로 ‘콩트(엽편소설)’ 부문에서 당선된 문인이기도 하다. 1935년 1월 1일자에 실린 이 작품은 숟가락을 소재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부의 에피소드를 다뤘다. 홍성표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작품에서 일제 아래 억압받던 조선인의 삶에 대한 송몽규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며 “그는 인간을 존중했던 휴머니스트”라고 평했다. 윤 시인이 본격적으로 시를 쓴 계기도 송 선생의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에 자극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작 날짜가 명시된 윤 시인의 첫 시는 ‘초 한 대’ 등 세 작품이다. 이숭원 교수는 “윤동주가 ‘나라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느냐. 시를 아주 철저히 써보자’ 해서 썼다”며 “창작 날짜로 명시된 1934년 12월 24일은 송몽규 당선 통보일과 같은 날짜일 것”이라고 전했다. 송 선생은 연희전문 재학 당시 윤 시인과 잡지 ‘문우(文友)’ 발간에도 앞장섰다. 일제의 조선어 사용 금지에 따라 원고 대부분을 일본어로 썼지만, 두 사람이 쓴 것을 포함한 시 13편은 한글로 수록됐다. 1942년 4월 일본 교토제국대 사학과에 입학한 송 선생은 이듬해 7월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 주동 인물로 체포됐다. 2년형을 선고받고 1945년 3월 7일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홍 연구원은 “1930년대 후반이면 독립의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때였지만, 송몽규와 윤동주는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으로부터 억압받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가능성이 아닌 당위의 영역에서 생각했던 것”이라며 “청년이 어때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이들”이라고 했다.“큰아버지 송몽규 작품, 北서 수색당해 태워”2007년 입국한 조카딸 송시연씨“큰아버지(송몽규)가 쓰신 글이 우리 집에 한 보따리나 되었대요.” 독립운동가 송몽규 선생(1917∼1945)의 조카 송시연 씨(56)는 4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송 씨의 아버지는 윤동주 시인 사촌인 송 선생의 14세 터울 동생 송우규(1931∼2008)다. 함경북도에 살던 송 씨는 북한을 탈출해 2007년 한국에 왔다. 그는 “한 보따리나 되는 큰아버지 글들을 할아버지가 장롱 깊숙이 숨겨 보관하셨다”며 “하지만 수시로 가택 수색을 당하자 결국 태워 없애셨다”고 했다.“물론 나쁜 말은 없지만 북한에선 코에 걸면 코걸이니까요. 할아버지께서 ‘혹시 잘못 걸리면 남은 자식들 앞날에 해가 되겠다’ 싶어서 태우셨다고 들었어요.”송 씨는 중국에서 북송을 2번이나 겪는 등 3년간 떠도는 와중에도 송 선생의 중학교 앨범과 사진(사진)을 품에 간직했다.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일찍 돌아가신 큰아버지 얘길 자주 들었다고 한다. 송 씨는 “큰아버지는 똑똑하고 말도 잘했다고 한다”며 “일본 유학 갈 때도 ‘승낙을 안 하시면 자결하겠다. 일본을 알아야 일본을 이길 거 아니냐’며 할아버지를 설득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선 학창 시절 윤동주의 시를 배운 적이 없다고 한다. 중국에 가서야 윤 시인의 여동생 윤혜원 여사가 시집을 보내줘 처음 읽게 됐다. “‘별 헤는 밤’을 그때 처음 읽고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나’ 싶었지요.” 송 씨는 7일 큰아버지인 송몽규 선생의 서거 80주기를 맞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윤동주기념관에서 열리는 헌화식에 참석할 예정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송몽규 큰아버지가 18살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셨거든요. 책을 쓰신 게 저희집에 한 보따리나 되었대요.”4일 독립운동가 송몽규 선생(1917~1945)의 조카딸 송시연 씨(56)는 큰아버지에 관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회상했다. 지난달 16일로 서거 80주기를 맞은 윤동주 시인(1917~1945)의 동갑내기 사촌이자 평생지기인 송몽규 역시 이달 7일 서거 80주기를 맞는다. 두 사람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19일 간격으로 옥사했다. 7일 서울 연세대 윤동주기념관이 여는 헌화식에 참석할 예정인 송시연 씨를 최근 전화로 만났다.송 씨는 송몽규와 14살 터울인 동생 송우규 씨(1931~2008)의 딸이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북한을 탈출해 2007년 딸과 함께 한국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북송을 2번이나 겪고 3년간 떠도는 와중에도 큰아버지의 중학교 앨범과 사진을 가지고 나왔다. 이중 중국 북간도 용정의 한 들판에서 송몽규와 윤동주가 함께 앉아있는 사진은 현재 남아있는 두 사람의 가장 어릴 때 사진 중 하나다. 송 씨는 앨범과 사진을 연세대에 기증했다.그는 “크기는 요즘 아이들 교과서 정도, 두께는 2.5㎝ 정도 되는 앨범이었다”며 “‘윤동주 평전’을 쓴 소설가 송우혜 선생이 저를 만나러 중국 옌지로 오셨을 때, 큰아버지에 대한 자료가 있으면 다 가져오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회상했다. 이후 북한에 있는 인편을 통해 앨범과 사진을 중국으로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일찍 돌아가신 큰아버지 얘길 들었다고 했다. 송 씨는 “할아버지께서 큰아버지가 똑똑하고 말도 잘하고 여러모로 ‘난 놈’이었다는 얘길 입이 닳도록 하셨다”며 “일본 유학 갈 때도 할아버지가 엄청 반대하셨는데 큰아버지가 칼을 내려놓으면서 ‘아버지가 승낙을 안 하시면 자결하겠다. 일본을 알아야 일본을 이길 거 아니냐’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송 씨는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던 큰아버지의 글들이 현재 남아있지 않은 걸 못내 아쉬워했다. 한 보따리나 되는 큰아버지 글들을 할아버지가 장롱 깊숙이 숨겨 보관했는데, 수시로 가택 수색을 당하자 태워 없앴다고 한다. “물론 나쁜 말은 없지만 북한에선 코에 걸면 코걸이니까. 할아버지께서 ‘혹시 잘못 걸리면 남은 자식들 앞날에 해가 되겠다’ 싶어 태우셨다고 들었어요.”북한에서도 윤동주, 송몽규가 알려져 있을까. 송 씨는 학창 시절 윤동주의 시를 배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중국에 있을 때에야 윤동주 시인의 여동생 윤혜원 여사가 시집을 보내줘 처음 읽게 됐다고. “‘별 헤는 밤’을 그때 처음 읽고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나’ 싶었지요.”송 씨 역시 ‘국제펜클럽 망명북한펜센터’ 회원으로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시와 소설을 쓰고 있다. 그에게 두 사람의 80주기를 기억하는 것에 관해 물었다.“나라가 침탈당했을 때 얼마나 많은 청년이 목숨을 잃었는지….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니 저희 가족으로서 감사한 일입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가수 션(사진)이 3·1절 기부 마라톤으로 모은 2억여 원을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해 기부했다.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는 3일 “션은 주거복지 비영리단체 한국해비타트와 함께 1일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공원에서 개최한 ‘3·1런’을 통해 모은 기부금을 이날 해비타트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3·1런’은 3·1절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안락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라톤 행사다. 션과 해비타트는 2021년부터 이 행사를 진행해 왔다. 올해는 배우 진선규 이재윤 임세미 등이 동참했다. 션 측은 개인 참가자 3100명의 참가비와 기업 후원금 등을 합친 2억2425만 원을 해비타트에 전했다. 션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생활하실 수 있도록 힘을 보탤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션은 2020년부터 광복절에는 ‘8·15런’도 진행하고 있다. 두 행사를 통해 모은 후원금으로 독립유공자 후손 17가구에 새 보금자리를 제공했다. ‘연예계 기부천사’로 불리는 션은 지금까지 각계에 기부한 금액이 6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가수 션이 3·1절 기부 마라톤으로 모은 2억여 원을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해 기부했다.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는 3일 “션은 주거복지 비영리단체 한국해비타트와 함께 1일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공원에서 개최한 ‘3·1런’을 통해 모은 기부금을 이날 해비타트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3·1런’은 3·1절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안락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라톤 행사다. 션과 해비타트는 2021년부터 이 행사를 진행해 왔다. 올해는 배우 진선규 이재윤 임세미 등이 동참했다.션 측은 개인 참가자 3100명의 참가비와 기업 후원금 등을 합친 2억2400만 원을 해비타트에 전했다. 션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생활하실 수 있도록 힘을 보탤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션은 2020년부터 광복절에는 ‘8·15런’도 진행하고 있다. 두 행사를 통해 모은 후원금으로 독립유공자 후손 17세대에 새 보금자리를 제공했다. ‘연예계 기부천사’로 불리는 션은 지금까지 각계에 기부한 금액이 60억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최연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주목받은 소설가 예소연(33)이 최근 펴낸 장편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현대문학·사진)에는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로 남은 사건들이 등장한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다. 하지만 소설은 참사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참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다른 3명의 친구가 등장한다. 이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선 누군가의 아픔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설의 중심 인물인 ‘석이’는 2014년 캄보디아에서 봉사하던 도중에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는다. 캄보디아 친구가 과거 자기 나라에서도 300여 명이 압사한 사고가 있었다고 하자, 석이는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뭐 그런 죽음이 다 있어”라고 생각 없이 말을 뱉는다. 이후 석이는 이 ‘말빚’을 두고두고 후회하다 사과하기 위해 10년 만에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른다.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예 작가는 “말빚에 대해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상황은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그 개와 혁명’(다산책방)을 쓰고 6개월 뒤에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수상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쓰면서 마음이 참 단단해졌고, 그 덕분에 상주가 되어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개인적 상실을 크게 겪고 난 뒤에서야 내가 했던 모든 행동, 특히 죽음에 대해 가벼이 여겼던 행동이 많이 힘들게 다가왔어요. 슬픔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은 타인을 위한 일이기 전에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더군요.” 그의 소설에선 등장인물들이 상처를 훌훌 털고 일어나는 해피엔딩 드라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을 동반자처럼 곁에 두며 단단해지는 편을 택한다. 예 작가는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나와 먼 사람의 죽음도 피부에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며 “죽음을 툭 털어버리고 극복하는 식의 서사는 내 소설에선 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 당일에도 경기 안성에서 고속도로 붕괴 사고가 있었다. 작가는 “우리 사회가 참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졌으면 한다”고 했다. “사회적 참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급하게 마무리 짓는 방향으로 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이런 중차대한 일에는 마무리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신간 소설의 제목에 ‘영원’이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누군가를 계속해서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었다”며 “다음에는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이 좀 진득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마치 세계인이 식물과 열병 같은 사랑에 빠진 듯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2020년, 영국에선 약 300만 명이 난생처음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미국의 한 종묘 회사는 봉쇄 시작 뒤 첫 3월 판매량이 144년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많았다고 한다. 책을 쓴 영국 에세이스트 올리비아 랭 역시 그해 여름 식물과 사랑에 빠진 수많은 세계인 중 하나였다. 랭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8월 영국 서퍽의 한 주택으로 이사했다. 평생 불안정한 주거 환경에서 살아온 그는 처음으로 뿌리내릴 거처와 정원을 갖게 됐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꼈다. 방치된 정원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가지치기와 잡초 제거에 몰입했고 잡초로 무성했던 ‘낙원’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이 정원에 대한 평화로운 에세이로 읽힐 무렵, 갑자기 흐름이 바뀐다. 정원을 돌보던 그의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개인 정원에서 팬데믹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2020년 봄 영국 통계청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흑인은 백인보다 정원에 접근하지 못할 가능성이 4배 높았다. 비숙련직이나 반숙련직 종사자, 임시직 노동자, 실업자는 정원에 접근하지 못할 가능성이 전문직이나 관리직 종사자보다 3배 높았다. 랭은 이런 통계를 곱씹으며 덧붙였다. “봉쇄 조치는 세상의 피난처인 정원이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냈다.” 저자는 정원을 사랑하지만, 정원이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는 사유지란 걸 깨닫는다. 때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과 생계를 희생시킨다는 점도. 그는 “정원 이야기는 그 시초인 에덴동산 때부터 항상 어떤 유형의 식물부터 어떤 유형의 민족까지, 누가 제외되거나 쫓겨났느냐에 관한 이야기였다”며 정원 속에 숨은 계급과 정치로 인식을 발전시켜 나간다. 일례로 ‘풍경(landscape)’이란 단어는 원래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시골 경치를 그린 회화”를 의미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점차 일상적인 자연 풍경을 볼 때도 ‘그림 속 회화’ 같은 아름다움을 원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영국에서 대(大)정원화 작업이 진행됐는데, 당시 상류 지배 계층이 ‘회화처럼 완벽한 정원’을 만들기 위해 자연을 대대적으로 개조했다. 이 과정에서 오솔길과 농장, 때로는 마을 전체를 옮기기도 했다. 랭은 사람들이 주말에 돈을 내고 관람하는 영국에서 아주 유명한 정원 중 상당수가 “그로테스크한 도덕적 공백 위에 세워졌다”는 불편한 사실을 언급한다. 저자는 정원을 가꾸며 자신이 배제와 추방이란 과거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더없이 완벽한 정원을 꿈꾼 것, 식물이 갈색으로 변하면 패배감을 느낀 것 역시 정원에 불순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강박의 결과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개암나무 아래 나뭇가지와 죽은 나뭇잎 껍질에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조금 지저분한 경계 화단이 완벽한 화단보다 훨씬 비옥하다”는 걸 마침내 이해한다. 저자는 정원을 평화와 조용함, 아름다움의 장소로만 생각하면 놓치기 쉬운 특권과 배제, 착취의 문제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한글판 제목 ‘정원의 기쁨과 슬픔’은 그래서 참 적절해 보인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K팝과 K무비, K소설에 이어 K에세이까지.’2023년 국내 출간된 김금희 소설가의 에세이 ‘식물적 낙관’(문학동네)이 미국 주요 출판사와 억대 판권 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이야기장수)가 한국 에세이로는 이례적인 액수의 선인세 계약을 영미권 대형 출판사와 체결한 데 이어 ‘K에세이’의 해외 진출 낭보가 잇따르고 있다.23일 출판계 관계자는 “미 3대 출판사로 꼽히는 사이먼앤드슈스터 산하 서밋북스가 조만간 ‘식물적 낙관’을 출간할 예정”이라며 “선인세는 1억 원 이상”이라고 동아일보에 밝혔다.‘식물적 낙관’은 김 작가가 정원을 돌보며 사색한 내용을 담은 수필집이다. 영문판 제목은 ‘The Diary of a Korean Plant Parent(한국인 식물 집사의 일기)’로 정해졌다. 해당 에세이집은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과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폴란드 출판사와도 각각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김 작가는 “자연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이 (해외에도) 전달될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문단에서는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등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 문학의 기세가 에세이로도 확산되는 모양새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해외에서 인기를 모은 한국 에세이는 K팝 스타의 추천 덕이 컸다.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읽었다고 소셜미디어에 밝힌 뒤 영국 출간 반 년 만에 10만 부가 팔렸던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가 대표적인 사례다.하지만 최근엔 해외에서 관심을 갖는 K에세이의 소재가 음식부터 사회문제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영국 펭귄랜덤하우스 산하 트랜스월드와 억대 선인세 계약을 맺고 올해 현지 출간 예정인 윤이나 작가의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세미콜론)는 라면을, 러시아 최대 규모 출판그룹과의 수출 계약을 앞둔 성석제 소설가의 에세이 ‘소풍’(창비)은 한국 음식을 소재로 했다. 미혼 여성 두 명이 공동체를 이뤄 사는 내용을 담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지난해 미 뉴욕타임스(NYT)가 1개 면을 할애해 조명했다.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편집주간은 “최근 만난 한 영국 출판 에이전트는 ‘동아시아 역사와 젠더, 또는 응원봉처럼 사회문제에 대해 한국 2030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낸 에세이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K에세이에 대한 관심은 한류 유행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계약한 영국 펭귄랜덤하우스 산하 더블데이의 수재나 웨이드슨 대표는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미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물론이고 K푸드나 K뷰티 등을 통해 한국의 삶과 문화 전반에 관심을 키워 왔다”며 “한국 콘텐츠에서 접하는 이야기들은 매우 다양하며, 모두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들이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 콘텐츠는 무엇보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고도 덧붙였다.미국 하퍼콜린스 산하 에코의 데버라 김 편집자 역시 “한국의 오랜 역사, 특히 식민 지배와 억압을 딛고 문화를 보존하고 재건한 과정을 보면 매우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임을 잘 알고 있다”며 “이러한 역사를 통해 형성된 한국 사회의 창의성과 예술성, 회복력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에코는 김혜순 시인의 시·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를 2026년 봄 미국에서 출간할 예정이다.“한국 사회가 겪은 억압의 경험은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 사상가들의 깊이 있는 통찰과 지혜를 세계와 공유할 기회를 얻게 돼 매우 기쁩니다.”(데버라 김)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김광석의 ‘나의 노래’. 소설가 한강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할 때 들었던 플레이리스트라고 밝히면서 다시금 주목받은 노래들이다. 좋아하는 작가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고민을 하며 작품을 썼을지는 독자들에게 언제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유명 작가들의 집필 뒷이야기를 궁금해했던 독자들이라면 반가워할 만한 신간이 나왔다. 이 책은 세계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프랑스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문학 디렉터로 일하는 저자가 2012∼2022년 진행한 작가들과의 대담집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 퓰리처상 수상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 세계적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 등 20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1919년 개업해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서점에서 작가들은 집필 과정에 대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제 역시 문학과 자아, 시간과 삶, 여성과 예술, 계급과 정체성, 고독과 트라우마, 농담과 슬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19세기 미국 노예 탈출 비밀 조직을 다룬 장편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동시에 수상한 콜슨 화이트헤드는 소설에 담은 겹겹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큰 상을 받은 뒤 따라온 책임감과 부담감에 대해서도 꾸밈없이 들려준다. 그가 책을 쓸 때 어떤 음악을 즐겨 들었는지도 알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인물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매우 냉정하고 무미건조하게 표현한 이유”에 대해 질문받자 “날마다 일어나는 일은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스무 번을 맞았는데, 그 스무 번째를 어떻게 더 극적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 자체로 전달되는 것을 굳이 꾸밀 필요가 없어서였죠.”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서점은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머물 곳을 제공하고, 각종 낭독회와 행사로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며 실질적인 유대를 제공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100년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작가들은 들락거렸고 토론했으며, 밤에는 책장 사이에서 잠을 잤다. 창립자의 딸이자 현재 서점 대표인 실비아 휘트먼이 쓴 소개 글도 인상적이다. 그에 따르면 창립자 조지 휘트먼은 서점을 ‘평생 교육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야간 학교’라고 여겼다. 프랑스 정부의 강력한 비트족(기성 질서에 저항했던 문화) 척결 정책으로 1966∼1968년 서점이 잠시 문을 닫았을 때도 낭독, 강좌, 토론은 ‘파리 자유 대학’이란 이름으로 지속됐다. 서점 이름의 ‘컴퍼니’ 역시 회사가 아니라 동료나 친구라는 뜻에 가깝다. 책 읽는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해 보고 싶지 않을까. 이 서점에선 대담을 마치는 방식도 낭만적이다. “노트르담 종소리가 이제 시간이 다 됐다고 알려 주네요. 곧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한국에서 제 책이 출간된다고 들었을 때 가장 기대된 건 ‘북한 최고지도자(김정은 국무위원장)가 읽을 수도 있겠다’는 점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핵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파멸적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안보전문기자 출신으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도 오른 적 있는 애니 제이콥슨이 자신의 저서 ‘24분’(문학동네·사진)의 한국 출간을 계기로 18일 동아일보와의 온라인 화상 인터뷰에 응했다.지난해 현지에서 화제를 모은 ‘24분’은 북한이 미국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가상 시나리오로 다룬 책이다. 제목 ‘24분’은 북한의 공격에 미국이 ICBM으로 반격하는 시점을 뜻한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과 리언 패네타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결론은 간명하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72분 뒤 세계에서 약 50억 명이 목숨을 잃는다.이 가상 시나리오는 북한의 도발로 전쟁이 벌어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왜 하필 북한일까. 제이콥슨은 “모든 국가는 ICBM 시험 발사 때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게 인근 국가들에 발사 사실을 사전 통보하는 것”이라고 했다.“북한을 머리 위에 얹은 채 살고 있는 한국 독자들이라면, 북한이 한국이나 일본 등 이웃 국가들에 통보 없이 미사일을 발사한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제가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게다가 제이콥슨에 따르면 미국 핵 방어 시스템은 “사실상 환상”에 가깝다. “미 대통령들은 ‘아이언 돔’(방공 시스템)을 자주 언급하지만, 이건 국민에게 사실을 숨기는 거예요. 아이언 돔은 단거리 전술 무기를 방어하는 시스템일 뿐입니다. 미 당국자들을 취재한 뒤 얻은 결론은, 역대 미 대통령들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텐데, 왜 내가 알아야 해?’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거죠.” 책 ‘24분’은 이런 지도자들의 무감각에 반기를 들듯, 핵전쟁 시나리오를 분초 단위로 나눠 제시한다.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반격, 러시아의 참전과 한국의 피해까지. 초 단위로 이어지는 긴박한 순간이 스릴러가 따로 없다. 제이콥슨은 “이 책을 읽으면 (핵전쟁이란) 실존적 위협에 대한 진실을 직시할 준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그가 생각하는 핵전쟁을 막을 방법은 뭘까. 제이콥슨은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결국 유일한 해결책은 소통”이라고 했다. 적과 대화해야 군축도 추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1986년 세계엔 7만 개의 핵무기가 존재했어요. 현재 약 1만2500개로 줄었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냉전 시기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의 대화 덕이 큽니다. 핵무기가 줄어들수록 세계는 안전해진다는 공감대가 있어야 해요.” 최근 ‘24분’은 영화 ‘듄’ 시리즈로 유명한 영화감독 드뇌 빌뇌브가 영화화 판권을 사들였다. 제이콥슨은 어떤 영화를 기대하고 있을까.“제가 인터뷰한 모든 전문가는 핵전쟁이 터지면 수십억 명이 숨질 것이라고 진지하게 경고했어요. 이건 좀비나 유령이 나오는 공상과학(Science Fiction)이 아닙니다. 과학적 사실(Science Fact)인 거죠. 이 시나리오가 무서운 건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